21-213 to 21-232: 본되는 생활

본되는 생활
1968.11.2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213
본 되는 생활
[기 도]

아버지, 오늘은 1968년 11월 24일, 이달 들어 네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 만민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흠모하는 자리마다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과 기쁨이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인간인 연고로 어차피 생의 길을 넘고 넘어서 아버지와의 본연의 인연에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사실을 알고 따라가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마음 가운데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깃들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1968년 이해를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지금까지 나왔사옵니다. 그간에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미흡하고 불충스러웠던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남아진 40일 기간 동안도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의 흐름 전체를 통하여 모든 것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순간을 통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남아진 이후의 기간에 저희들이 소망하고 목표하고 나오던 모든 전부가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두어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고 만민 앞에 감사드릴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를 개의치 않고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쳐드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경배드리고, 충성을 다하여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자비롭고 평화스러운 마음이 깃들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이 땅을 대하여 소원하시듯이, 저희들도 아버지를 대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저희들을 대하시듯이, 저희들도 아버지를 대하여 부모를 사모하는 심정이 부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마음과 저희들의 마음이 하나 된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한 많았던 아버지의 사연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를 붙들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그 한 날이 어서 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아버지의 높고 귀함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감사드릴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어차피 세계를 향하여 나가야 할 저희들이오니 속히 세계 각국에 나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준비를 다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갈 길이 바쁜 그 목적지를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이 쉬어갈지라도 통일의 무리들인 저희들은 쉬지 않고 가야 할 곳을 직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 가야 할 그곳에는 시련과 고통과 수고의 길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원수의 총칼이 저희의 앞을 가로막는 다는 사실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직행하려는 그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거기에 나타날 모든 외적인 환경을 쉽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아버지를 위하여 움직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이 길을 직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나긴 6천년 세월 동안 섭리해 오신 것도 이 길을 직행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셨음이요, 탕감해야 될 조건을 넘지 못하였기 때문이란 사실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과 탕감의 조건이 저희의 앞길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이 길을 찾아 나오심에 있어서 참다운 인격과 참다운 탕감의 조건이 필요하셨듯이 아버지를 찾아 나가는 저희들도 참다운 인격을 갖추고 참다운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저희 자신이 사탄 앞에 해방받을 수 있는 자체, 즉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자체가 되는 동시에 만민을 이끌고 제물을 아버지 앞에 드려 놓고 사탄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래야 갈 수 없는 나그네의 신세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갈 길이 멀고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멀고 바쁜 이 길을 돌아가서는 안 되겠고 직행해야 되겠습니다. 이 먼 길을 저희들이 돌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의 마음과 사정에 일치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저희 자체를 탓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저희 자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런 자리에서 뜻을 위하여 온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자극적인 심정을 느끼게 될 때에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간곡한 심정이 솟구치게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자리에서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역사해 주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지 앞에 간곡한 심정으로 해원의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이제 저희들의 생명은 저희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책임은 이것을 완수하는 것이요, 이것은 아버지 앞에도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이렇게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과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깊고 오묘한 당신의 뜻과 당신의 높으신 사랑을 그리워하는 자녀들이 있사올진대, 그 깊으신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헤아릴 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높고 깊으신 사랑 가운데 잠기게 하옵소서. 저희 자체를 완전히 묻어 버리고 온전히 나설 수 있는 그 모습을 아버지도 그리워하고 저희 본성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극 받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새벽에 모인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마음을 활짝 열어 아버지께 안길 수 있는 심정의 준비를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몸은 기필코 아버지 품에 안겨야 되겠사옵고,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자녀들이 이 터전을 닦아 오기까지 당신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까지 저희들을 끌고 나오시기 위하여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어제는 슬펐던 사실이 오늘은 기쁨으로 변하고, 오늘 기뻤던 사실은 미래에 소망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모인 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 한국의 강토를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만나는 그날을 몹시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그들을 아버지의 자비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으로 품어 주시옵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다시 한번 아버지 앞에 아뢰오니 그들을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당신만이 운행하시옵고, 저희들을 한마음으로 묶어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아버지 뜻 앞에 충성할 수 있고 맡겨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위하여 눈물짓고, 이것을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하늘의 뜻이 성사되기를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간곡히 호소하는 자녀들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가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그 발걸음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자비로운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우나 괴로우나 슬프나, 당신의 기쁨을, 당신의 의를, 당신의 외로움을 체득하면서 당신을 위로할 수 있고, 생명의 인연을 그대로 상속받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하루가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오늘 이 한 시간이 아버지 앞에 자신을 세워서 기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오늘 전체의 시간을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앞으로 따라올 수많은 인류를 아버지께서 사랑의 마음을 갖고 품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21-217
말 씀
사람들은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갑니다. 이와 같이 어떤 목적을 정하여 그 목적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는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21-217
생활에 있어서 바른 목적의식의 중요성
한 해의 목적을 세우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게 될 때에도 일년의 목표를 세웠으면 그것을 생활 가운데 본으로 삼아 나가지 않고는 그 해에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두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어떤 목표를 중심삼아서 그 목표를 표준으로 하여 생활이 그 목표와 일치되어 나가지 않고는 일생의 목표를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류를 구원섭리해 나오시는 데 있어서도 맨 처음에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표준으로 하여 나오셨습니다. 목표에 대한 소망, 목표에 대한 책임, 혹은 사명, 이 모든 것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생활에 있어서 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무엇을 목표로 나오셨느냐 하면 여러분 개인을 목표로 하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개체를 표준으로 해서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을 중심삼은 가정을 목표하셨고, 이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을 목표하셨고, 그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을,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이렇게 하여 세계와 천주까지 목표하셨습니다. 소목적을 완결시키지 않고는 대목적의 터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대목적을 완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는 여러분 개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필요함과 동시에 여러분 가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필요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이 필요하고, 이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목적해 나오시는 방향과 오늘날 우리가 목적하는 방향이 서로 달라서 둘이 되게 되면 하나의 목적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아서 하루하루 책임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목적하는 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의 방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의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그 목적을 지향해 나오셨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나 선생님은 정해진 기간 내에 그 목적을 완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운 한 인간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어떠한 조건을 세워 이것을 연장시켜 후세로 밀고 나가서 목적을 성사할 수 있지만, 인간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같이 후세로 밀고 나가서 목적을 성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어떤 일이 연장된다는 것은 그 목적 성사에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제한된 권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 기준과 일치되지 않아 그 뜻을 연장시키면 일생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21-218
어떤 목적을 이룬 자리는 또 하나의 출발의 자리
이것을 볼 때 우리들의 목표점,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멉니까? 우리에게는 개인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어떤 목표의 기준과 일치되어 하나님께서 `됐다’ 할 수 있는, 본이 되는 기준에 섰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서 모든 것이 성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의 요인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국가면 국가 앞에 만민을 대신하여 그들의 본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할지라도 본이 되는 그 입장이 하늘의 전체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목적을 완성한 종점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발, 혹은 그 과정의 일점(一點)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의식 중에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가깝거나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면 갈수록 시간이 없고 바빴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길을 알지 못하고 우리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찾아오신 목적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나를 끌고 가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지, 나를 현재에 머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대개 맨 처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은사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넘쳐 마치 자기 일신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듯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출발하는 그 자리가 기쁘고 혹은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느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발의 자리에 지나지 않지 목적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목적의 자리에 가려면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자리를 거쳐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목적이라는 것이 시일이 가면 갈수록 작아지느냐, 또 내가 뜻을 성사해 나가면 나갈수록 더 작아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점점 확대되고 일체성을 두고 점점 커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맨 처음에 뜻을 중심삼고 나오는 소망의 일념보다도 뜻을 깨달아 나오고, 내 자신이 뜻을 중심삼고 따라 나가는 시일이 쌓이면 쌓일수록 맨 처음에 출발하던 때보다 더 힘있고, 더 자극적인 하나님의 은사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지향하는 목적의 자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왕왕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생활과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21-220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한 생활
그러면 우리가 찾는 참된 생활, 본 될 수 있는 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으려면 우리 개체를 중심삼은 제한된 한계성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 개체의 어떠한 소원이니, 목적이니, 생활의식이니, 생활감정이니 하는 것들을 지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한된 권내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하나님의 목적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제한된 이 환경권내에 머물러 있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이 권내에서 갖는 생활습관이나 생활태도는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영원한 목적관에 일치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현세의 우리로서는 자기의 어떤 주장을 중심삼고 `나는 이렇게 산다’는 본을 세울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러한 자리까지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은 주체성을 지니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성복귀를 하여 주체성을 갖출 수 있는 그 날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사탄이 이 땅 위에 참소할 수 없는 자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모두의 생명체와 내 자신과 완전히 화합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목적의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적인 무대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목적과 너무나 상극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권내에 머물러 있는 내 자신을 두고 볼 때, 나를 중심삼아서 본 되는 생활이라는 원칙과 기원을 세웠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자체의 결과를 맺는 것이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 이 기준을 어디에 세워야 하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기준을 세우면 출발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거쳐가는 과정도 하나님과 더불어 가야 하고, 목적점도 하나님과 더불어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21-221
하나님을 본으로 삼아야
하나님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세계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는 제한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환경적인 모든 여건이 무한한 그 세계와는 너무나 머나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전부가 상충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길을 가야 할 우리의 인생길, 그런 길을 찾아가는 우리의 도의 길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는 우리 생활의 본 되는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본으로 삼고 하나님을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직접적으로 대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계실 수 없게 됩니다. 먼 거리에서 관념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뿐이지, 사실적인 내용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연 맺는 자극이나 동기로 삼을 것인가 할 때에 이것은 역사시대의 섭리의 뜻을 대했던 수많은 선지자, 수많은 우리 선조들을 디딤돌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시느냐? 인간을 중심삼지 않고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인간 세상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우리 조상들이 남긴 섭리의 터전을 연결시켜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도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이 남기신 모든 사연, 즉 하나님을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접하셨던 초점, 그 초점을 우리 생활에 흡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역사 과정에 있었던 일로, 그냥 지나간 그분들의 사연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늘날 우리 생활 가운데 재현시킬 수 있는 자기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적인 섭리의 인연을 크게 해서 하나님 앞에 현실적인 기반을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먼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이 하나님과 인연맺던 간곡한 심정의 자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을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관계맺지 않고는 역사적으로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하나님과 인연되지 않고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미래에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없는 것입니다.

21-222
실적을 남기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가 문제
그럼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현재에 있어서 본 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결부시킬 수 있는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것은 역사적인 선조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명령을 받든가, 가정을 중심삼고 명령을 받든가, 종족을 중심삼고 명령을 받든가, 민족을 중심삼고 명령받든가 해야 합니다. 이렇게 최고의 자리에서 결정된 것을 우리 생활권에 흡수시켜 가지고 이것을 현실과 결부시키는 자리에서 역사적인 재현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역사적이 재현의 기준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결정된 그 사실이 이루어졌더라도 그것을 두고 보는 자리에서는 나하고는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이것을 내가 끌고 갈 수 있고, 내가 밀고 갈 수 있는 어떤 흔적과 실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 비로소 과거부터 남겨진 그런 생활기준, 즉 하나님께서 찾아 나오시던 생활적인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원한 재산이 되고 밑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관계 맺을 수 있는 초점이 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복받을 수 있었던 자리를 찾을 수 있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복받을 수 있었던 자리를 찾을 수 있고,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의 모든 여건도 헤아릴 수 있는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그냥 알고만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내가 아무리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 생활적으로 본이 될 수 있는 흔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뜻 앞에 본 되는 생활을 했다 할 수 있는 여러분 각자의 현실적인 기반을 어느 자리에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요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 뜻을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우주사적인 뜻이 있고, 개체로 보게 되면 개인의 뜻이 전부다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뜻, 개인의 목적, 개인의 본 될 수 있는 기준과 가정의 목적, 국가의 목적, 세계의 목적, 천주의 목적 전부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래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중심삼아 지금까지 찾아 나오시던 과거의 인연을 현실기점에서 상속받아 가지고, 상속받은 그 기준을 나 자신을 통하여서 목적을 중심삼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생활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들어온 사람은 개체에서부터, 오래된 사람은 그 범위에 따라 닦여져 있는 생활기반을 통하여 어떻게 실적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기준에서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교회 울타리 안을 섭리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생활 무대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생활무대가 사방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여기서 여러분 각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할 때 역사를 대표하여 본 될 수 있는 생활기준을 만들어서 개인이면 개인을 찾아 나오시느라고 지금까지 수고하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내용을 중심삼아서 현실에서 그것을 나와 관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맺은 현실적인 기반을 통해서 개인은 가정을 연결시키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가정은 종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종족은 민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겨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서 하늘땅이 요동치고, 온 세상이 진동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절대적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이 없어서는 본 되는 생활권내의 한 기준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21-224
하나님과 동역동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뜻에 일치화되어 있습니까? 일치화되어 뜻이 지향하는 그 목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이겨 나가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뜻이 크면 큰 만큼 그 자리는 최고의 훌륭한 자리이기 때문에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역사는 거기서부터 출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본 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은 너무나 경솔합니다. 한 개인이면 개인이 민족과 국가를 대표해서 그 민족과 국가를 구할 수 있는 본 되는 생활은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그런 기준을 찾고, 그 다음에는 민족과 국가를 이겨내야 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민족과 국가를 대표한 본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그런 입장에서 살았는가를 비판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멋대로 둥둥 떠다녔습니다.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고 방황했습니다. 오늘 한 순간 순간을 뒤에서는 하나님이 밀어 주고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앞장서서 가는, 이런 동역동사하는 마음을 느끼고 협조하면서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자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자리하고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은 떨어진 것을 말하고, 갈라졌다는 것을 말하고, 간격이 생겨 벌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압축시켜 접촉시키려면 중간에서 제지하려는 어떤 힘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 사이에는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압축시켜야만 합니다. 이것을 압축시키는 힘은 외적인 힘이 아니라 심정입니다. 우리 몸으로는 할 수 없지만 심정세계에 입각한 그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힘입니다. 이와 같이 목적의식에 대한 강한 힘, 생활의식에 대한 강한 힘, 집념에 대한 강한 힘이 작용해야 오늘날 이 간격을 좁혀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최후의 운명을 결정짓던 그때의 각오와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개인을 중심삼은 일이라면 심각한 것이 아니지만 민족을 대할 때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 패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서러움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또 나 하나 패하게 될 때 세계적인 문제가 좌우되기 때문에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결정하는 그 순간은 자기가 수십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해 왔던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수십년 동안 아무리 수고했다 하더라도 그 수십년 역사가 문제가 아니라 결정짓는 그 한 순간이 문제인 것입니다.

패하게 되면, 패자의 서러움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뜻을 대하고 나갈 때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과 결부된 생활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벨도 그런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였고, 노아도 역시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맺어 나왔고, 아브라함도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으며,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하고 기도하실 때 얼마나 심각하셨겠습니까? 얼마나 간절하셨겠습니까?

왜 우리 선조들이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맺어 와야 했느냐? 그것은 우리 인간이 타락한 세상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번식된 몸이니 이 권내의 의식이나 인식을 가지고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기준과 접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정성이 합할 수 있는 그 초점상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터전을 닦아온 우리 선조들이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자리가 후대에 연장되고 계승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우리들이 현실에서 과연 하나님앞에 본 되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 우리는 한 나라와 한 세계를 대표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21-226
큰 짐을 져야 큰 복을 받는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옛날에 아담이 타락하지 않은 기준에서 천사장이 유혹하던 그 자리를 넘고 나가야 했던 길, 노아가 120년 동안 수고한 자리를 넘고 나가는 길,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않고 나그네 신세가 되어 걷던 외로운 길, 모세가 가던 길, 예수가 가던 길, 역대의 모든 우리 선조들이 가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중심섭리의 때가 가정적인 시대면 가정적인 기준을 넘어서야 하고, 민족적인 시대면 민족적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시대면 국가적 기준을 넘어서야 하고, 세계적인 시대면 세계적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시대에 해당하는 시련 과정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여기에 들어와서는 전부다 짐을 풀고 홀가분하게 되어 자기 혼자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그러나 짐을 풀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짐은 바꿔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그 짐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짐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짊어지고 가는 이짐은 우리가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해서 가벼운 짐으로 바꿔 져서는 안 됩니다. 그 짐이 만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힘이 없으니 가벼운 짐을 지겠다’ 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할 큰 복의 터전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고대하고 만민이 필요로 하는 복을 나누어 주어야 하므로 짐을 무겁게 지면 질수록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복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귀한 복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만일 민족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복을 짊어지고 가겠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인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적인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21-227
본 되는 사람이 역사의 주류로 남아진다
통일교인들은 여기 들어오면 모든 것이다 해결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옴으로 시작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짐을 지는 이것은 그야말로 여러분의 선조면 선조 앞에 본 되는 길입니다. 아울러 지금 이 현실 세계의 만민 앞에 본 될 수 있는 길이요, 후손들 앞에 본 될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선조가 잘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기서부터 박차를 가하고 여기서부터 힘을 다하여 나아가야 됩니다.

나라가 크면 클수록 살림살이 또한 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진 사람은 책임을 진 만큼 그 범위에 해당하는 복잡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표자와 미국의 대표자는 위치가 다릅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이 조그마한 삼천리 반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큰 나라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큰 나라의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해결짓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의 운명과 운세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해결 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크면 클수록,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거기에 해당하는 십자가와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피해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즉, 내가 남을 시켜서 공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시점에서 역사를 몰고 가야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향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필요한 것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탁받을 사람으로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내게 옮겨서 국가를 거쳐 세계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인도 현재의 이 자리에서 기뻐하는 자가 될 것이 아니라, 여기에 기반을 형성하여 수많은 교파 앞에 이것을 밀고 나가고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묶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지상에 있어서의 본 되는 사람입니다. 뜻을 위해 싸워서 승리하여 본 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여러분은 발전하는 역사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을 따라 나왔지만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한강이면 한강을 중심삼고 볼 때 흐르는 주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주류는 언제나 주류로 남는 것입니다. 시대가 교체되고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그 주류는 언제나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함없이 흐르는 주류와 함께 흘러 나가던 물줄기라 하더라도 그 주류가 흘러가는 방향에 조금만 거슬려도, 혹은 조그마한 조건만 걸리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주류는 어디로 가느냐? 이 주류의 방향이 세계로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민족을 위하여 가다가 돌기 시작하면 세계의 주류와는 인연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새로운 주류는 이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 이어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그 목적기준이 어디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목적은 일개 국가가 아닙니다. 세계도 아닙니다. 지상만이 아닙니다. 이 온 소망세계의 수많은 억천만 사탄까지 추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류의 목적을 향하여 우리는 희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라는 것은 돌아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길이 있다면 죽으나 사나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류는 가는 도중에 어떤 것과 부딪친다 해도 무섭지 않습니다.

21-229
승패는 오늘 이 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딪쳐도 먼저 부딪치고 상처를 입더라도 전체를 위해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주류가 흘러가는 길입니다. 그러지 않고 구경이나 하고 있다든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나야 이 정도로 가면 되겠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류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주류의 물줄기를 먼저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반대되는 여건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기동대의 능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모든 물줄기는 반드시 주류를 따라 가야 합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이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역사적인 모든 시점이 시작되는 이때에 우리는 노아의 심각했던 기분을 느껴야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 위해서 자기의 고향산천을 이별하고 가던 그 심정을 찾아가야 됩니다. 모세는 자기 민족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 민족과 더불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의분심에 불탔습니다. 그래서 내심에서 원수들의 모든 장벽을 일시에 폭파시키고 싶은 간절함이 폭발되어 물질세계의 영화로운 모든 생활을 저버리고 뛰쳐 나갔는데, 그와 같은 결의를 우리들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승패라는 것은 과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원수를 대하여 싸워야 할 때에 그 원수가 수십년 동안 어떤 분야에 종사해 전문가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과거에 닦은 모든 실력을 가지고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기준을 밟고 넘어서 이겨야 최후의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밟고 넘지 못하면 자기가 배운 지식이라든지 능력, 혹은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것이 자기에게 있다 할진대는 그것을 들고 나가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탕감복귀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피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는 자리, 보통의 인간들이 하기 좋아하는 자리가 아닌 슬픈 여건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연결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애국자는 반드시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과거의 역사가 비참했다면 비참한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선전포고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현재에 대해 부정할 수 있는 능력과 능동성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시대를 혁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애국자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선지선열들이 거쳐왔던 모든 뜻은 한때밖에 안 됩니다. 그들을 영원한 표준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들도 역시 생활적으로 본 될 수 있는 것은 한 부분이지, 내 생활 전체에 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도 나의 혜택을 받아야 된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선지선열들이 지금까지 남긴 실적을 연결시켜서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에서 밀고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와 더불어 준비하여 엉클어진 역사를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지선열들의 생활기준은 하나의 재료는 될 수 있지만 전체의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전체의 기준은 누가 연결시켜야 되느냐? 우리가 연결시켜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성도들의 생활관념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본 되는 생활의 기대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어려울 때 무엇이든지 끌어다가 인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한번 잡아당기면 전부다 끌려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과거의 그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고는 더 큰 인연의 실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또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전력을 기울여 현재에 본 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복 받던 그런 본이 될 수 있는 자리,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인연을 들고 나오는 그런 본이 될 수 있는 자리,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본이 되는 이런 기준을 여러분이 연결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21-231
본 되는 생활의 기본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우리는 이 복잡한 것을 다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모든 것을 풀고 무난히 넘어갈 수 있고 갔다가 다시 올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이 길을 못 가겠다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왔다갔다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개척노정이기 때문에 `너희들 오라’하면 전부다 달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선 통일교회 교인들은 목적 완성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가서 거기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와 가지고 만민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아이구 이 놈의 세상! 다시 올 것 생각하면 진저리난다’ 했더라면 이 땅 위에 오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셨다가 오셔야 할 운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실 때도 오실 것을 생각하고 가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다시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이 민족의 선두에 서서 개척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 고개를 넘어 평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소원의 닻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와서 만민을 데리고 가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후대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는 사탄이 참소한 역사요, 하나님께 불충한 역사였기 때문에 앞으로 올 사람에게는 쓸데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말미암아 그들의 역사를 잘라 버리고 선한 역사와 연결시켜 지금까지 선한 역사의 기로에 가려 있었다는 입장에 서서 새로운 미래를 갖추게 될 때, 거기서 비로소 천국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선은 선끼리 연결할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축복가정들을 보게 되면 그저 자기 가정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보다도 나라를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도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다가는 자기의 목적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본 되는 생활의 기본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사람, 우리의 역사를 밝히는 데 필요한 사람, 이 시대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사람, 기준에서 터전을 닦는 데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적 기준에서 내가 짐을 지고 밀고 나가야겠습니다. 그리하여 10년이면 10년 기간에 이룩해 놓은 그 업적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자기의 소유로 남겨 놓을 수 있는 재산이 되게 하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남은 복귀섭리 과정에 얼마만큼의 흔적을 남길 것입니까? 귀찮다고 집어치워서야 되겠습니까? `아 그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수고한 공적을 반드시 보태주어야 되겠다’하는 것을 느껴야 하며, 뜻을 이루려는 때의 환경을 확인할 줄 알아야 됩니다.

21-232
기 도
아버님, 저희는 효자 효녀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겠다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 땅 위에서 불효자로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란 한의 역사 가운데서 참된 효자 효녀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가를 알았사옵니다. 또한 충성하지 못하였던 역적들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이 타락한 세계를 지금에 와서 비로소 충성으로 탕감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런 것이 자명하기에 그 누구라도 피가 끓어 솟구치는 마음으로 자기의 말 한마디가 역사를 심판한다는 마음으로 신중히 판단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이 모든 사연을 거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수많은 선조들이 저희 앞에 남겨 놓은 것들이 전체의 생활에 표준이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도 다시 한번 저희들로 인한 혜택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은 역사의 모든 초점을 연결시켜 현실 무대에 이것을 밀고 나가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는 전통과 실적을 남기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여,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 민족의 운명을 해결 지어야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세계가 기필코 저희들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세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필요로 하시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아버지 앞에 필요한 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 저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필요로 하는 자는 역사적인 부활의 실체로서 필요한 동시에, 그 부활의 실체는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세계를 향해 항진하는, 그 내적인 사정, 생활적으로 본 될 수 있는 기준을 남기는 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뭇 자녀들이 이와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아버님이여!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요구하시던 그 뜻이 이렇게도 엄청난 줄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버지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할 것을 알았사오나, 이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걸고 결의하지 않고는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와 같은 각오와 결의로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가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면 아버지께서 전폭적으로 같이하시고, 전폭적으로 그 마음과 하나 되시어서, 위로하시고 권고하시고 힘의 원천이 되시어서 오늘날 이 환경을 가려 나가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앞으로 통일의 무리가 가는 길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그 길을 가는데 심혈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길을 따라가는 데에 있어서 저희들이 아니면 만민을 살릴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기고, 갈 길을 닦는 데 있어서 온갖 충성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 개인 생활이 본 됨과 동시에 내 생애가 본이 되고 내 생애가 만민에게 생활의 본이 되어 만민이 그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고, 수많은 후대 사람들이 그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는 그러한 기반을 닦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그와 같은 생활 이념을 중심삼아서 현실에서 책임을 지는 아들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딸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와 같은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불붙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위하여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흠모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이 충천하여 기필코 아버지를 위하고 모셔 드리겠다고 절규하는 자녀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내가 아니라 사랑의 뜻을 세우겠다고 노력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현실에서 이와 같은 심정을 느끼고 결의를 하여 본 되는 역사적인 생활기반을 남김으로써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은 기준이 될 때 아버지께서 위로받는 것이요, 이와 같은 터전 위에서 아버지와 저희가 새로운 의논을 함으로써 내일의 소망의 일념이 더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다할 때까지 온갖 노력과 온갖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버지여 만민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시고, 이날 당신의 영광이 저희들과 인연맺을 수 있는 귀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것을 위하여 경배하고, 이것을 위하여 사모하고, 이것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여 만나 보기를 고대하는 수많은 민족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내일의 승리의 표본을 세우는 데 있어서 그들의 온갖 수고의 경륜을 하나의 뜻과 결부시켜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우주관을 연결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니다.

가고 오는 시대 앞에 빛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잡아서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뭇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전체를 맡겼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