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0: 제2차 7년노정과 자녀의 책임

제2차 7년노정과 자녀의 책임
1968.08.18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20
제 2차 7년노정과 자녀의 책임
[말씀 요지]

제 2차 7년노정은 식구들이 가야 할 노정이다. 어떻게 하면 초창기의 뜻대로 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번 지방의 지역장 이동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 선생님이 전국을 순회한 결과는 대체적으로 안심될 정도였다.

사람의 일생을 70년으로 잡고 여기에서 밤을 빼면 35년밖에 안 된다. 또 여기에서 의식주에 할애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진짜 생활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매일 평균 30분씩이라도 천지가 부러워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하루에 단 10분도 편할 수 없고 기쁠 수 없는 입장이다.

마음과 몸의 싸움이 씨뿌려져서 오늘에 거두어진 것이 민주세계(마음적 세계)와 공산세계(몸적 세계)이다.

아무리 미미한 피조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정성이 들어 있는 것이다. 되는 대로 지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은 것은 기뻐하시기 위함이었고 함께 사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은 사람이다. 그것은 오묘한 인체 구조를 보아서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잘못 지어진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미완성품이다. 그래서 완성되고 싶어한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었으면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어떻게 하셨겠는가? 최고의 자리에 놓고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 자리는 부자(父子)의 관계가 맺어진 자리이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해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주체가 되어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데는,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주체가 되게 해주어야 한다.

공적(公的)ㅡ 영원, 전체 위주 사적(私的)ㅡ 임시, 자아 위주

주고서 대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구하는 일을 수만년 후에라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라. 이런 사람의 이념은 수 만년 계속된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지 않으면 가짜다. 남을 도와주고서 그것을 기억하지 말라.

부모를 위해서 말없이 생명까지 바쳐야 한다. 형제를 위해서도 그래야한다.

선생님은 수십년 이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지치지 않았다. 지칠 사이가 없다. 내가 춘천에 가 있는데, 윤청정심(尹淸淨心)이 춘천으로 전보를 보냈다. 원세(怨世)는 지나가고 영세(英世)는 돌아왔다고.

선은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최고의 저기압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영생하시기 때문에 그 자녀인 인간도 영생해야 한다. 선하고 영생하려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양심은 지치지 않고 더 예민해진다.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은 악인(惡人)이요,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선인(善人)이다. 하나님도 인간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종교를 만드셨다. 싸움을 말린 뒤에는 재생을 시켜야 한다. 그 재생공장이 종교다. 누구나 다 재생공장을 거쳐야 한다. 선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종교가 필요하다.

지옥은 고장난 영혼의 창고다. 죽더라도 지옥은 안 가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재생공장에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은 재생공장의 기술부장이다.

천국은 완성품의 납고(納庫)다.

종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친다.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생사권을 좌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계에는 부품 공장이 널려 있다. 이제 그것들을 종합하는 공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통일교회다. 그 주인은 재림주다.

그리고 종교는 병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병이나 다 고쳐야 한다.

양쪽 세력이 비숫비슷하면 싸운다. 세력 대비의 차가 크면 싸움이 안된다.

정성들이라. 정성들이는 부모는 외지에 가 있는 자식의 불상사를 안다. 정성들이면 도통(道通)한다. 고행을 하라.

6천년 묵은 돌감람나무를 자르고 참감람나무의 씨눈을 갖다가 접붙여야 한다. 즉, 고목의 목을 잘라내고 새로운 씨눈을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담은 실체를 쓴 남성적 하나님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여성적 하나님이다.

악한 존재는 선을 영원히 지배하지 못한다.

예수는 후(後)아담이기 때문에 후(後)해와를 만나 가지고 성혼식(聖婚式)을 해야 했는 데, 못 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한 개 더 박은 결과가 되었다.

재림주는 제 3아담이다. 재림주는 두 차례에 걸친 원한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통일교회는 아담과 예수의 실패로 조성된 모든 한을 풀고 이루려는 것이다.

예수가 뜻을 못 이룬 것은 요셉 가정에 그 첫 번째의 책임이 있고, 세례요한에게 그 두 번째의 책임이 있다.

십자가의 도리로 기독교가 성립된 것이 아니고, 부활의 도리로 기독교가 성립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빛을 보고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나온 것이다. 눈의 목적을 갖게 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

예물을 잘못 받으면 천법에 걸린다.

1960년도는 장성기 완성급에 해당한다. 완성기는 7년이다.

1960년 장성기 완성급에 세 자녀를 세웠다. 세 자녀는 베드로·요한·야고보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담 가정을 찾음으로써 사탄세계에서 결혼한 영육세계의 복귀가 가능하다.

36가정은 인류의 조상 복귀형이다. 72가정은 가인 아벨 복귀(자녀 복귀)형이다. 124가정은 세계 국가를 대표한다. (그중에는 기성가정 4가정도 포함) 그 기반 위에서 성지 택정을 하였으니, 그것이 세계 40개국의 120개 성지다.

1968년 1월 1일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함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입장을 복귀했다. 이로써 사탄은 완전 제거되고 사람은 완전 복귀된다. 금년에 비로서 전면적 진격이 있게 되었다.

금년 1월에서 7월까지는 7천년의 역사에 해당한다.

제 1차 7년노정은 가인 아벨 형제복귀시대지만, 제 2차 7년노정은 자녀복귀시대다. 오늘의 제 2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해방 직후 7년노정을 출발하던 때와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처럼 핍박받지 않고 환영받는 것이 다른 점이다.

동생쯤은 두들겨 패서라도 복귀시켜야 한다. 그것은 가인(형)이 그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것을 복귀하는 것과 같다.

처녀 총각들은 믿음의 세 자녀를 복귀해야 한다. 그러면 믿음의 부모인 자신들을 합해 여덟 식구가 복귀되는 것이다. 자기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자녀를 만들어야 한다.

믿음의 세 자녀는 세 천사장 복귀형이다. 세 천사가 아담 해와 창조시부터 받들고 협조한 것같이, 믿음의 자녀는 믿음의 부모의 축복실체자녀를 복중에서부터 모셔 가지고 키워서 장가까지 들여야 비로소 자신들이 복귀 될 수 있는 기준까지 세울 수 있다.

축복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보지 않고는 천국 갈 수 없다. 이번에 전도된 믿음의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그것은 자식을 낳아서 거리에 버린 것과 같은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7년 동안 끌고 나가야 한다.

탕감 복귀 ① 아담 대신 존재…… 7년 노정 ② 조건물 …… 3자녀 ③ 기간 …… 선생님의 40년을(1960) 40일로 탕감복귀

7년노정 가지 말고, 40일활동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통일교인으로서는 제일 무서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