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78 to 21-212: 자녀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자녀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1968.11.20 (수), 한국 전본부교회

21-178
자녀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968년 11월 20일, 음력으로 10월 1일, 9년 전 이 땅 위에 새로이 자녀의 날을 선포한 날이옵니다.

그동안 수많은 날을 보냈고 여러 해를 지내왔사옵니다. 뜻을 따라가는 노정에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와 같은 자리에 참석할 적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기준에서 볼 때, 저희들의 모습은 거기에 너무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를 뵈올 면목이 없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저희를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본부를 향하여 정성을 모아 아버지 앞에 간곡한 심정으로 경배드리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외로운 개척노정에서 지친 몸을 끌고, 이 한 날에 참석하는 가치를 마음 길이 생각하면서, 자신들도 한국 땅에서 이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고대하고 그날을 위해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비록 그 처지와 환경이 각각 다르더라도 친히 같이하시어서 그들의 마음과 심사를 살펴 주시옵고, 해원성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도의 길을 가고 정성을 들이는 종교인들이 이 땅위에 많사오니 그들이 소원하는 자리를 찾아 자녀의 영광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고, 해방의 한 날을 표방하고 나가는 그들의 바람이 기필코 이 땅 위에서 결실되어야 하겠사오니, 그곳을 흠모하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들을 수습하시어서 그들이 실제로 이 땅 위에서 아버님과 상봉하여 저희들과 같이 이런 날을 축하하는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뿐만 아니라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을 위하여 지금까지 복귀의 탕감노정을 걸어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한 개체가 책임을 못 하면 다음 후손을 세우시어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개척해 오신 것 또한 아옵니다. 영계에 간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뜻을 따라 수고하고 공의의 터전을 세웠지만, 이 땅 위에서 해원성사의 한 날을 갖지 못했는데, 오늘날 저희들이 이 땅 위에서 자녀의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해원성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이 자녀의 날을 맞이한 것이 우주사적인 의의를 지닌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와 같은 식전에 참석할 적마다 형식적이요, 세상의 재래식과 같은 모임과 식전으로 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이와 같은 기념일이 생겨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진심으로 기념하옵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더듬어 지금까지 엄청난 수고를 하시며 복귀섭리의 길을 개척하여 오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참석한 당신의 아들딸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국의 식구들이 같은 자리에서 식전을 갖지 못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오나 환경적인 여건이나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음으로 인하여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지 못한 아들딸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아버지를 마음껏 모시고, 아버지 앞에 마음껏 경배드리고, 마음껏 기념할 수 있는 그날을 저희들이 빨리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저희 마음에 섭섭함이 있는 것은 저희들이 책임 못한 연고인 것을 자각하면서 내일의 개척자의 사명을 더더욱 깊이 느끼게 하시고 민족 복귀와 세계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새로이 결심 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 참석하였다가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당신의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옵고, 그들이 가는 길과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일체가 언제나 당신과 보조를 맞추고 언제나 당신과 동행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의 무리가 서 있는 자리가 우주적인 크나큰 사명의 자리요,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를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 개체들을 세워 역사적인 한을 풀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저희 가정들을 세우시어 우주적인 해원성사의 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완전히 알아 가지고 이 엄청난 사명에 감사하며 맡겨진 책임에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축하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니다. 천배 만배 그 마음과 몸에 넘쳐 흐르는 은사를 가해 주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일률적인 은사로 품으시어 지도하고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오늘 하루가 아버지 뜻 앞에 기쁨의 날이 되고 거룩하게 기념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위에도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시어서 복귀되어 가까워 오는 천국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악의 세력이 아직까지 등등하니 그들의 기세를 꺾으시어 선의 기준을 세우시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를 이 자녀들로 하여금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의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겨진 날들을 아버지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고 이 하루도 아버지의 뜻앞에 충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을 다시 한번 맹세하옵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 승리의 영광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전체가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이곳을 찾아올 수많은 자녀들을 어서 모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선조들이 참다운 뜻을 따라 땅 위에 있는 선한 후손들을 중심삼고 재림부활 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어서 그들을 땅 위에서 규합할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자유로운 환경의 지상을 중심삼고 활동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대를 부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날이 그들에게도 복이 되고, 이 땅 위의 만민에게도 복이 되고, 온 천주세계에도 복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일체를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1-181
말 씀
오늘은 제9회 자녀의 날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자녀의 날을 맞을 때마다 명심해야 될 것은 자녀의 날이 얼마나 귀중한 날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21-181
자녀의 날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어 놓으신 후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자녀의 날을 맞이하셔야 했습니다. 만일 그때에 자녀의 날을 맞이하셨더라면 거기서부터 부모의 날도 세울 수 있었을 것이요, 만물의 날도 세울 수 있었을 것이요, 하나님의 날도 책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녀의 날은 어떠한 날이냐? 자녀로서 승리하여 우주적인 영광의 자리에 나갈 수 있게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인간 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 이후 전 인류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된 자리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역사, 구원하기 위한 역사, 즉 다시 전과 같은 자리로 끌어다 놓기 위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주란 어떤 분이냐? 타락한 사람들을 원래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구주입니다. 자녀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이날 하루가 무슨 다른 날과 특별히 달라서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날이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없었던 인간들이 비로소 역사 이후에 처음으로 그런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녀들로서 최초로 기념하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 이날이 있기까지 노력한 분을 따라가게 되면 그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따라가게 되면 반드시 자녀의 영광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지 못해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계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저 나라의 낙원에 가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셔야 됩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받고 오셨으나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가셨기 때문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장소로 출장을 가서 일을 다 끝내고 왔으면 다시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해야 할 사명의 절반을 남겨 놓고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책임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아직까지 자기가 소망하고 희망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 힘을 보급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다시 오셔 가지고, 본래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승리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이지 영육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영적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서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천국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물론 아담 해와의 아들딸도 천국인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역사 이래 그러한 기준을 세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도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21-183
진리의 핵심은 아버지 어머니(부모)
그런데 타락은 아담 혼자서 된 것도 아니요, 해와 혼자서 된 것도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함께 타락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원한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둘이 뿌린 것을 뽑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오셔서 신랑과 신부라는 표준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뿌렸던 죄악의 쓴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오셔서 이 땅 위에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을 재현시켜 놓고 그것을 뽑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예수란 분은 어떤 분인가 하면 구주인데, 그 구주는 형님격이 아니라 아버지격입니다. 즉, 우리들을 직접 낳아 줄 수 있는 아버지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한다고 합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생명이 다시 난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다시 나는 데는 형님을 통해서 나는 법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아버지요, 성신은 어머니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은 어머니 신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이를 복귀해야만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부모가 되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표준 또한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고,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고, 또 자기의 처나 아들딸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생명 안에 진리에 대한 의욕과 욕망이 있어야 됩니다. 여기서 욕망은 자신의 인격 기준과는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입니다.

21-184
예수님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해야
그러면 기독교가 2천년 동안 무엇을 해 나왔느냐?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해온 것입니다. 이 땅의 인간 가운데에 신랑과 신부가 오셔야 되는데 신부는 어머니요, 신랑은 아버지로 오십니다.

그러면 왜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필요하냐? 우리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잘못 태어났으니 다시 태어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생, 곧 거듭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부모도 없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구원역사인 것입니다.

구원을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오셔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아버지인 예수님밖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격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형님격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장가가기 전의 총각의 뼛속에 숨어 있는 아들의 씨, 딸의 씨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닮자. 그리하여 예수님과 하나되자. 예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하는 데 그게 뭡니까?

예수님은 아직까지 결혼도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디를 찾아가시느냐? 신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한 입장에서 영적으로 남자에게 있는 애기의 씨를 찾아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 신부의 몸, 즉 어머니의 몸을 통해 가지고 그 애기를 해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중생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땜질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신을 받지 않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고, 어머니의 뱃속을 거치지 않고는 죄를 탕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신은 죄 씻는 역사를 하느냐?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어머니인 해와가 죄를 뿌렸기 때문에 어머니 신인 성신이 와서 죄를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탕감원칙에 의해서 성신은 이 땅에 와서 죄 씻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씻어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인류를 아버지가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사람, 즉 장가가기 전 아담의 뼛속에 있는 아들의 씨, 딸의 씨의 자리에 들어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예수님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예수님을 그리워해야 되며 여자도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예수님을 그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이 세상적인 일입니까? 세상에서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가 죽더라도 예수님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자녀의 날이라고 하는데 이건 간단한 얘기가 아니예요. 여러분, `자녀’는 남자 여자지요? `자녀’라는 글자를 거꾸로 하면 뭡니까? 여자가 됩니다. 자녀를 거꾸로 보면 남자는 없어지고 여자만 남게 돼요. 그러니 세상을 뒤집어 놓으면, 천지법도를 뒤집어 놓으면 전부 여자예요. 이건 그냥 하는 얘기지만 그런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자녀의 날을 결정했다는 것은 아담과 해와가 뿌린 죄악의 씨를 뽑아 버리고 인류를 악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기원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 인간이 자녀의 날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만물도 해방을 받지 못하고 탄식권내에 있었고, 하나님도 탄식권내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자녀의 날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의 날도 찾지 못하고 만물이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만물 앞에 원한이 남아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영광의 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된 모든 원인이 자녀의 날을 세우지 못한데 있다는 것입니다.

21-186
거룩의 참뜻
그러므로 자녀의 날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릇된 자녀로 하여금 그릇되게 한 것을 전부다 시정할 수 있는 기원에서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릇된 자녀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을 시정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나와서 자녀의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영광의 자리에 나가 기뻐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되니 아들딸도 기뻐하게 되고 만물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웠습니다. 자녀의 날과 부모의 날은 서로 통하는 날입니다. 자녀의 날과 부모의 날은 한꺼번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 남성을 두고 볼 때, 그 남성을 혼자 살도록 놔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서 종의 종의 자리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떨어졌다가 다시 종의 자리로 다시 종의 종의 자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종의 종이란 종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종의 종의 자리까지 기가 막히게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노정을 어떻게 해나가야 되느냐? 종의 종의 자리에서 거꾸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까지 올라왔고, 신약시대에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까지 떨어진 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야곱 때부터 모세 때까지는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자리를 닦아 올라가면 되었고, 신약시대에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넘어가는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로마서 8장에 기록된 것과 같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이 되지 못한 양자입니다. 양자,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핏줄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돌감람나무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 하나가 와서 접붙이는 일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아들로 오셨어요. 참감람나무로 오신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는 무엇이 다르냐? 외모로 보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입고 먹고 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밥도 안 먹고 변소도 안 가는 줄로 알지만, 예수님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고 밥을 먹어야 했고, 변소에 가서 소변도 봐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하면 기분 나빠할 것입니다. `오 거룩한 예수님이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다른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에서 밥 먹는 것이 제일 거룩한 것이요, 변소에 가는 것이 그 다음으로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과 모든 자연계가 다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추방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거룩’ 이라고 해서 뿔이 났다거나 하는 별난 것이 거룩한 것인 줄 알지만 나비가 날고, 벌이 날고, 새가 노래하고, 어린이들이 뛰노는 것들이 거룩한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것이 `별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금식을 했다고 `거룩한 예수님이 금식을 했으니 우리도 하자’고 하는데, 예수님이 왜 금식을 했겠어요? 좋아서 한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한 것입니다. 거룩하려면 입에 지퍼(Zipper)를 달아 가지고 채웠다 열었다 할 것이지 왜 금식을 했겠어요? 알고 보면 할 수 없어서 한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이란 무엇이냐?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하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별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이냐?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잘 수 있는 곳입니다. 세계 밖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해서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진 곳이 천국입니다.

21-188
6천년 동안 계속되는 전쟁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구가 달라지느냐? 천만에요. 방향이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지금까지 뒤로 가던 것이 거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자꾸만 타락의 길을 향해 앞으로 나가지 말고 돌아서야 합니다. 돌아서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날 우리조상이 출발한 자리를 지나가야 됩니다. 거꾸로 자꾸자꾸 올라가다 아담이 타락한 그 기준을 넘어서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도 하나님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를 모두 정리하고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날 아담이 출발하던 그 기준 이상을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가려면 세상을 부정하고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지 않고는 종교로서의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세상의 것을 부정하고 나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타락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전부 타락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에 올라가, 다시 양자의 자리를 거쳐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 아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은 감람나무와 접붙임을 받지 않은 감람나무는 어떻게 다르냐? 열매를 맺으면 서로 다른가 같은가? 돌감람나무도 참감람나무로부터 접붙임을 받으면 참감람나무가 됩니다.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거기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요, 마귀와 사탄은 참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거기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도 참과 거짓이 있는데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냐? 양심이 참이요, 몸뚱이는 거짓입니다. 그러니 이 돌감람나무인 몸뚱이가 참감람나무인 마음을 잘라 버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또 참감람나무인 마음이 돌감람나무인 몸뚱이를 잘라 버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상세계의 다른 동산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보좌에서 춤을 추고 계시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에 계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접붙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몸뚱이의 접붙임을 받은 사람은 사탄의 자식입니다. 자기를 정복하게 되면 책임완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전쟁 중에 가장 큰 전쟁은 구라파 전쟁이나 세계대전이 아닙니다. `나’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 이상 큰 전쟁은 없습니다. 이 전쟁은 6천년이나 계속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났습니까, 안 끝났습니까? 계속 죄악의 보따리만 더욱 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6천년 죄악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집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죄악의 역사를 누가 뒤집어 버릴 것이냐? 여러분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의 날이 왜 필요한가? 자녀의 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가 그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잃어버리게 했느냐? 하나님이? 만물이? 누가 잃어버리게 했습니까? 아담과 해와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누가 찾아야 됩니까? 아담과 해와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실수해서 구멍을 냈으니 아담과 해와가 때워야 됩니다. 그래서 첫번째 아담은 망치는 아담이 되었지만, 둘째 아담은 고치는 아담이 되었습니다. 첫번 아담은 망하는 아버지가 되었지만, 둘째 아담 예수는 구해 주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21-190
지옥에 가서도 전도할 수 있어야
성신은 무엇이냐? 이 성신은 아직까지 땅 위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신을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주님은 재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재림하겠습니까? 공중에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고요? 뭐 탈 것이 없어서 구름을 타고 오겠어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구름이 무엇이예요? 구름은 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구름타고 온다고요? 허황된 그런 신앙은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하지만 누가 이단인가 두고 보라지요. 진짜는 가짜를 들이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나가면 선생님이 기독교인들과 싸움하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통일교회에 한 발짝 들여놓은 사람은 기성교인 몇백 명이 달라붙어서도 못 당합니다.

사탄이 무서워서 `아이고 통일교회에 가지도 마라. 거기 가면 망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셔서 3일간 지옥에 있는 영들을 전도하셨습니다 (벧전 3:19). 그러니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지옥에 가서라도 전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옥은 구경도 안 하겠다고 합니다. 지옥 구경을 안 하고는 천당의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고생의 맛을 톡톡히 느껴 본 사람이라야 조그만 행복도 아주 달콤한 행복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꿀맛을 보고 나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고기 요리를 먹어 보았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자꾸 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것 참 약 중의 명약은 그것이더군요. (웃음) 보통 사람은 ‘그저 그렇구만’ 할 정도인데 나는 그렇게까지 맛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고생해 본 사람이 재미있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마음에 맞지 않는 아내를 만나서 재미없게 살다가 재미있게 사는 집에 가면 그들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고 장가를 두번 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웃음) 행복해지려면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자극은 평상시 그 자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비되는 데서 자극이 오는 것입니다. 하늘만으로는 하늘이 못 됩니다. 땅이 있어야만 하늘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전부 다 상대성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 계시기 때문에 불쌍한 예수님이 되셨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은 구원을 해도 불쌍한 구주밖에 못 됩니다. 또다시 와서 다 하시지 못하고 가셨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논법입니다. 통일교회의 논법은 곧 하나님의 논법입니다. 통일교회만의 논법이라면 선생님이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된 것을 선생님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입니다.

21-191
말씀복귀, 실체복귀, 심정복귀
남자와 여자가 구멍을 뚫었으니 이것을 때워서 구멍이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참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참부모가 나와야 돼요. 예수님이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참부모로서 타락한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한을 다 풀고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의 공판정에 세워 놓고 검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이 우리를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내놓고 검사 노릇을 했습니다. 악을 중심삼은 사탄이 검사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중심삼고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의 입장에서 악을 처단하는 검사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누구냐? 인류의 아버지입니다. 인류의 어머니도 함께 나와야 합니다. 인류의 부모가 될 아담 해와 두 사람을 잃어버렸으니 인류의 참부모가 될 두 사람이 함께 나와야 됩니다. 이 참부모가 나오지 않고는 자녀의 날을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부활을 해야 됩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몸뚱이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과 인격과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하려면 이러한 것들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말씀대로 실천해 가지고 말씀대로 화하여 말씀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는 데는 사랑을 중심으로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됩니다. 사랑을 하는 데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말씀을 중심삼고 실체복귀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엔 심정복귀를 해야 됩니다. 말씀복귀, 실체복귀, 심정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몸뚱이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이 세 가지를 복귀하기 위해 통일교회에서는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은 무엇이냐? 역사 이래 하나님이 찾고자 하신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일치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일치된 사람이 되라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이 반대했고, 세계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꺾이지 않고 선을 중심삼고 승리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심정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나 여자나 그런 심정을 가진 분을 따라가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동기의 원천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타락한 이 세상을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울면 아들딸도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 여러분도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눈물 흘릴때 여러분도 눈물 흘리나요? 남자나 여자나 동감해야 됩니다. `내 마음도 틀림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면 여러분은 또다시 그럴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통일교인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저버리고라도 선생님이 좋고, 아내나 남편을 저버리고도 선생님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영적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몸 가운데 있는 아들의 씨, 딸의 씨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주님이 실체로 오시면 그 실체를 중심삼고 옛날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몸 속에 있는 애기의 씨의 자리에 들어가서 앞으로 어머니를 만나 태어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죄악의 씨가 되었느냐 하면, 죄악된 사랑을 통해서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랑함으로써 어머니 아버지의 뼛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그러한 원칙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할 때는 통일교회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또 가야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통일교회를 버리고라도 그런 내용을 갖춘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사실 그렇겠다’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와 보면 이상하다고들 합니다. 남자고 여자고 선생님을 보면 어쩔 줄을 모르거든요.

요즘은 선생님이 직접 지도를 안 합니다만 옛날에는 선생님이 하도 욕을 많이 먹고 시끄럽게 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이들을 떼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밤이 새도록 말씀에 취해서 얘기를 하면 그들도 취합니다. 선생님이 침울하게 얘기를 하면 그들도 침울하고, 선생님이 신이 나서 얘기하면 그들도 신이 나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가짜든지 내가 가짜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선생님이 가짜가 아니면 여러분이 가짜라는 거예요. 둘 다 가짜면 여러분도 죽게 되고 선생님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자기의 부모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지요? 못 입고 못 먹고 고생하는 부모를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못 했기 때문에 그저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모가 병으로 고통받으며 누워 있다면 자기의 일생을 걸어놓고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뼈가 녹는 듯한 감정이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떨어질 때, 그런 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슬프고 비통한 마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21-194
모든 것은 합해져야 조화가 벌어진다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들의 도리이지만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친다고요? 「부모의 도리요」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아들과 부모중에 누가 더 높습니까? 부모가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단계 앞서가는 것이지요.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로 계신다면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기도해야지,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까? 왜 한 분의 이름만 갖고 기도하느냐는 거예요. `부모’하게 되면 전부 다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기왕이면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왜 섭섭하게 한 분의 이름만을 갖고 기도하느냐고요? 여러분, 남자 여자 중에 남자만 좋다고 떡을 주고, `아이고! 인절미 맛 기가 막힌다’고 하면 여자가 기분 좋겠어요? 성신도 삼위일체라고 하면서 기도할 때는 왜 성신은 빼놓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것입니까? 집에서도 아버지는 좋고 어머니는 있으나 없으나 하는 존재입니까? 아버지 생일은 성대하게 차려 주면서 어머니 생일을 기억도 하지 않습니까? 부모라는 인연은 천지조화라는 것을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전부다 상대적입니다. 무엇이든 합해져야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도 코도 귀도 입술도 모두 서로 합하는 데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머니 아버지 둘이 합해야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암만 해봐야 안 됩니다.

숨을 들이쉬기만 해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들이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소를 마시고 사니까 숨을 들이쉬는 것만 필요합니까? 세 번을 계속 들이쉬기만 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내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숨을 내쉬어 탄산가스를 몸밖으로 내보내야 산소가 많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만 나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요즈음 세상은 남자를 위주로 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3년 이상을 남자가 여자한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개체가 복귀하는 데는 정도(正道)대로 거쳐 가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 해와가 둘이서 떨어졌으니, 올라갈 때도 둘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재창조와 같은 것입니다. 창조할 때 아담을 먼저 만들고 해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재창조할 때도 아담을 만들어 놓고야 해와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복귀역사로 아담을 만드는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여자 성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자 성인 봤어요? 여자 성인이 있다는 것을 들어 봤습니까? 성인의 어머니란 말은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분이 성인은 아닙니다.

결국 지금까지는 재창조의 역사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데는 둘을 한꺼번에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다시 만드는 과정, 즉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냐? 창조목적을 완성한 남성으로서 천주의 상속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시는 분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 즉 에덴 동산에 지어 놓은 그 아담이 장가가기 전 입장을 대표한 인격자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런데 타락하지 않은, 장가가지 않은 에덴 동산의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서 오시는 그 주님은 결혼식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서는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느냐 하면 여자, 즉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역사에서 보면, 교회의 지도자나 예언자나 선지자는 전부다 남자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한 남자를 세워 그를 중심삼고 더 크게 더 크게 성장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 인류를 대표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만큼 크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소망을 전부다 가지고 오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오시는 주님은 하나님의 직접 관계해서 만든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마찬가지인 분입니다.

21-196
기성교인을 대하는 바른 자세
아담을 지어 놓은 후에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해와를 지었다 하는데 갈빗대를 뽑아서 만들었다는 것은 본떠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은 남자는 갈빗대가 하나 없다고 하는데 배를 째 보라지요. 더 크고 굵은 것이 있는데, 없기는 뭐가 없어요? 그래 가지고 천당에 가겠다고요? 유치원 울안에서 `나는 대학원 박사가 되겠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나왔으니 이제 기독교의 해방이 벌어집니다. 천주교의 수녀들을 해방시켜서 결혼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천당은 커녕 지당에도 못 갑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지금 감투가 너무 커서 사고입니다. 감투가 너무 커서 다리가 휘청휘청하고 관절통이 걸릴 지경입니다. 머리에만 담아 두어 머리만 크고 몸은 적으니 그렇지요. 그러니 몸은 기성교회 교인들 몸을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기성교인들이 필요합니다. 기성교인들은 통일교인들을 욕하지만, 나는 기성교회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 나 혼자 져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멀리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을 가까이하려고 하니 어쩌겠어요? 가까와 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배척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찰거머리요 원수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을 미소로 대하고 천년 만년 봉사하겠다는 자세로 대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그들이 따라오게 됩니다.

요전에 신사훈이가 우리 통일교회를 비방하는 집회를 하다가 봉변을 당한 모양인데, 선생님은 춘천에 갔다 돌아와 보니 그 일이 벌어져 버렸더란 말입니다. 그 일에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관계도 없는데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했다고 뒤집어 씌우니 죄를 누가 더 지은 것입니까? 하늘에서 보면 그 사람이 죄를 더 지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위로받습니다. 심판대에 나서면 그 사람이 선생님의 참소조건에 걸리지, 선생님은 그 사람의 참소조건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통일교회를 `무시무시한 이단’ 이라고 합니다.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입니다.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고 왜 무서워하겠습니까?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성교인들이 선생님을 보고 `문예수, 문예수’ 하는데 예수가 되어서 나쁠 게 뭡니까? 세상 사람이 모두다 예수를 찾고 있는데, 선생님이 예수 되면 세계 사람들이 다 나를 찾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에 불쌍한 한국 백성들을 살려 주면 되지 나쁠 게 뭐예요. 나는 그런 말도 안 했는데 기성교인들이 `문예수, 문예수’ 하고 있거든요. 또 `통일교회’라는 이름도 내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이름도 과히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들의 말이 전부 다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다가 죽으면서 자기 아이들 보고 `나 죽으면 너희들은 통일교회 나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웃음)

21-197
여자가 더 고생한 나라에서부터 재창조역사는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남자는 복귀될 수 있으니 여자를 복귀하고 여자를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자를 찾아서 부부를 이루게 된다면 남자나 여자나 같다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세계적인 여권운동 및 인권옹호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신랑인 인류의 아버지가 인류의 어머니를 맞이하여 천국의 법도를 확립하는 시대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방향으로 종결점을 찾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바를 따라 하늘나라에 가기에 벌써 자격을 다 갖추어서 조금도 거리낌없다는 사람은 선생님의 신세를 안 져도 되겠지만, 전부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신세를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전부다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가 필요한데, 왜 처음 출발할 때 동등한 권리와 위치를 갖고 출발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아담을 창조한 후에 해와를 창조한 천지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완성되기 전에 해와는 이 땅 위에서 혼자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천리를 뒤집어엎어서 남자까지 못 쓰게 했기 때문에, 남자가 해원성사하여 여자를 구해 줄 때까지 여자가 제자리를 벗어났다가는 큰일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역사를 조명해 볼 때, 어떤 국가가 제일 복받을 수 있는 국가냐? 여자가 무자비하게 착취당하고 처참한 고통을 받은 역사를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가까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보다 여자가 천대받고, 말할 수 없이 불쌍한 지경에 이르는 자리까지 가야 가히 세계를 대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제일 비참하고 천대받는 민족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시 빚어 만들어져야 됩니다.

다시 빚는 데는 걸레 조각처럼 다 찢어진 마지막 판국에 가야 다시 만들기에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는 역사의 배경을 가진 국가에서부터 재창조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주님이 오실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여자들이 고생을 했어요, 안 했어요?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여자가 고생을 합니까, 안 합니까? 아이가 천대받지 않으면 자기가 누군가에게 천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 없으면 하나님이 천대를 하심으로써 그 사람을 탕감하려 하십니다.

한국 여자들이 불쌍한 것 같지만 이런 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통일교인들을 좀더 고생시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싫어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자들이 선두에 서서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간첩이 나타나면 간첩 잡는 수색작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수색기동대를 조직해서 선발대로 나가서 우리가 간첩들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인간이 복귀되기 위해서는 맨 밑의 자리인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이 되고, 양자가 되고, 거기서 다시 접붙임을 받아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계의 아들이 돼야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 혼자서는 아무리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완전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아무리 여왕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복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여왕이라고 큰소리치고, 아무리 군왕이라고 큰소리치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남자들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여자가 없으면 자기 일대에 망하는 것입니다.

21-199
상대를 잘 만나는 것이 복 중의 복
복이 무엇이냐? 잘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상대를 잘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천지의 인연을 따라 천륜의 법도를 따라 부부의 길을 닦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그 이상의 복이 있습니까? 아무리 인기가 있고 권위가 있고 가문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아내를 잘못 만나면 그 사람은 형편없어지는 것입니다. 간판 좋고, 허우대 좋은 사람이라도 아내를 잘못 만나면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남편을 잘못 만나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이냐? 상대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상대를 잘 만나야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 있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아들을 중심삼고 복귀하여 나중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거짓 인연을 중심삼고 거짓 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참사랑의 하나님이 주시는 참사랑을 받아 가지고, 즉 천도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천도에 따라 천법을 지킬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천국을 이루어야 되는데, 예수님도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계시는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과 같은 곳입니다. 지옥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부를 찾지 못하여 아들딸을 두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낙원에서 2천년 동안 기도하시면서 성신으로 하여금 역사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죄는 여자가 먼저 지었기 때문에 여성신인 성신이 와서 어머니의 실체로 나타나 죄를 씻고 세상을 깨끗이 하면, 예수님은 다시 신랑으로서 새로운 씨를 가지고 재림해야 됩니다. 재충전하여 새로운 천지의 참부모의 혈족으로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런 세계가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계획이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도 없이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믿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의 인간이 타락 후의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런 인간들을 아무리 구원한다 해도 나중에 또 타락할 가능성이 다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이 자녀의 날을 세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날을 제정했고, 통일교회가 이 역사적인 내용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축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돈이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벌어지느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과정을 거쳐 가지고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 부모의 날을 설정한 후에 자녀의 날을 설정한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가 등장하게 될 때에 자녀도 결정지어지는 것입니다. 자녀를 결정짓는 자리로 나가기 전에 부모의 출발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귀노정에서는 부모만이 아니고, 자녀의 인연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인 인연인 자녀를 중심삼고 볼 때는 부모의 날이 먼저 출발하고 자녀의 날은 나중에 출발해야 되지만, 복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자녀의 날이 먼저 출발하고 부모의 날은 나중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부모의 날을 설정하고 자녀의 날을 선언했기 때문에 천지간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그날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날은 천지 간에 승리의 환성을 올릴 수 있는 날입니다. 이날이 설정됨으로써 영계는 때를 맞았으니 맺혔던 것이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의 악한 세력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서 점점 소멸되어 갑니다. 세계역사는 선생님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8대를 못 넘어서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견지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0년을 지나면서 공산당내에서 둘로 나뉘어져야 합니다. 1917년부터 공산당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40년이 지난 1957년부터 소련과 중공의 이념분쟁이 생겼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때를 전후해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때가 선생님으로서는 제2차 7년노정의 3년째로 들어가는 때였습니다. 그것이 다 그래야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동기에 박자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21-201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명절 중의 명절은 자녀의 날
복귀섭리의 주류를 이루는 심정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변하던가요? 하나님도, 우리의 수백 대 아버지 어머니도 그러했으니, 그 사랑을 침범하는 존재는 이 땅 위에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지가 그 사랑을 찾기 원하고, 예수님도 그 사랑을 찾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신랑이 온다면 신부가 나와야지요. 그래야 가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나? ‘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자로 태어난 까닭이 무엇입니까? 시집가기 위한 것입니다. 시집간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남자를 맞아 사랑을 하고 그래서 부부를 이루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존재물이든 그 과정을 밟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가 흥한 것은 남자창조시대권내에, 그 천운권내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이제는 대처승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에 신부와 수녀들만 있다면 망합니다. 만약 로마 교황에게 가인 아벨 두 아들이 있다면 이들을 `장가를 보내야 됩니까, 안 보내야 됩니까? ‘하고 물을 때 `안 보내야 됩니다’ 하는 패들은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려고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려고 태어났지요? 그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따라서 축복권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최고의 진리권을 이탈하는 것은 최고의 악입니다. 최고의 악.

사랑은 콤파스의 중심대와 같아서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지식에 대한 부모의 그 사랑의 심정적 기준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사탄이 점령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 `야! 내가 사람 때려잡을 때 기분 좋더라. 너희들도 사람을 때려잡아 봐라’하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습니까? 자기는 악한 강도일망정 자식에게는 `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그 법도에는 순응하여야 됩니다. 그것이 천법입니다. 악도 그것을 점령할 수는 없습니다. 악은 언제나 상대적인 입장이지 중심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에 주시하셨고 예수도 그것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세우려 하신 아들과 딸의 자리를 찾지 않고는 그 높은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은 날을 기념하고, 이것을 결정지을 수 있게 한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공적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앞으로의 역사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명절 중 제일 큰 명절은 부모의 날보다도 자녀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날은 무슨 날이라고요? 「자녀의 날입니다」 그날은 부모의 권한을 다시 찾는 날이요, 6천년 동안 인류 역사를 유린하던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타나는 날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날을 맞아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라도 교인들끼리만 가서는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없습니다. 다리를 놓아서 모셔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통일교인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만민이 영원히 지켜야 될 날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문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제일 복된 날이 무슨 날이라구요? 자녀의 날입니다. 그 다음에 자녀의 날의 영광을 지니고 그 권위를 가진 승리의 왕자, 왕녀들이 부모를 모실 수 있는 날이 부모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탕감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가만히 보면 탕감의 길을 똑바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똑히 다 가르쳐 줬는데도 가르쳐준 대로 똑바로 못 가면 선생님은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영계에 가서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 제가 청파동 교회 때부터 선생님을 뵙지 않았습니까? ‘해도 그때는 선생님은 원리의 안경을 끼고 볼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걸어온 노정으로서의 안경을 끼고 볼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으면 받아들일 것이고,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실 때에 그런 안경을 끼고 보시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거기 맞추려고 이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지고는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것입니다.

21-203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자! 그러면, 이러한 기쁜 날을 여러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짐작이나 했지, 확실히 알았어요? 뼛골에 찌르르 전기가 통하고 전신이 불덩어리가 될 정도로 느꼈느냐는 것입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그저 너무 좋아서 기절하고 넘어질 정도로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좋아해 보았어요?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해서 찾아온, 아들딸이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리고 함께 춤 출 수 있는 날이 온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좋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 저 하나님 왜 저래’하고 의아해 하겠습니까? `아버지’ 하고 달려가서 팔만 들어 춤출 것이 아니라, 손발을 총동원하여 춤을 추며 아버지를 더 즐겁고 더 기쁘게 해드리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느 정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있습니까? 그저 마지 못해 `아버지’하며 흉내나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피 중의 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날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길이 빛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2층에 있다가 사흘 후에 내려오더라도, 여러분들이 여기에 왔다가 인사도 안하고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무리 축하를 한다고해도 축하가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종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자녀의 날은 선생님 개인에 있어서는 말씀부활, 실체부활, 심정부활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실체부활, 심정부활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겠지만 말씀부활이라는 말은 못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말씀부활, 실체부활, 심정부활을 거쳐야 합니다. 심정부활을 거치지 않고는 주체적인 남성의 위치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남성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축복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를 재창조할 수 있는 완성한 이상적 남성으로서의 심정을 지니고 말씀을 중심삼고 상대인 해와를 재창조할 수 있는 주체적인 견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인 해와는 절대 복종해서 거기에 하나되는 기준까지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입장에서 아들의 자리를 결정하고, 그 다음에 중심의 목적인 부모의 자리를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1960년도에 그런 부모의 자리를 종적으로 결정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과정을 거치는 여러분은 그런 형태의 길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을 설정해 가지고 횡적인 입장에서 자녀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부활, 실체부활, 심정부활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한 남성을 중심삼고 여기에서 축복을 이루어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을 대해서는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을 새시대의 아들딸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탕감노정에서 선생님처럼 실체부활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그것을 다 접붙여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여러분들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21-205
우주통일의 공식
자녀의 날이 기쁜 날입니까, 슬픈 날입니까? 「기쁜 날입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하면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자녀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날을 맞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부모 없이 태어난 고아와 같은 입장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들이 부모를 찾게 되니, 정상적인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와 같은 기준을 갖추어 이날을 설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도 3월(음력)에는 부모의 날, 10월(음력)에는 자녀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중심삼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2자녀를 찾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소생, 장성, 완성의 3시대별로 36가정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조상된 입장인 36가정이 가인과 아벨을 세워 탕감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72가정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환경을 넘어서서 국가형태, 세계 형태로 이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인데 선생님이 대신 찾아 주는 것입니다. 이제 가정이 들어가고 사회가 들어가고 만국이 들어갈 수 있는 때, 하늘과 땅이 겹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새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7년노정을 거쳐가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역사는 점점 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민주세계에도 끝이 오고 공산세계에도 끝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자녀의 날을 얼마나 뜻 깊이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얘기해 주니까 그렇게 알지 어디 여러분들이 알기나 했어요? 어떤 사람은 `아이고, 선생님은 꾸미기도 잘 꾸미는 구만’ 할 겁니다. 사실 꾸미기야 잘 꾸몄지, 아무리 꾸몄다 하더라도 그렇게 잘 꾸밀 수 있겠습니까? 그 이상 꾸밀 수 없다면 그것은 공식입니다. 아무리 꾸며도 더 이상 꾸밀 수 없고 비난받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되면 불변합니다.

공식이 무엇이냐? 어떤 한 가지를 가지고 백 가지의 문제에 적용시켜 다 풀어 내면 그것이 모든 것의 모델, 즉 표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그만 원칙이 전체 앞에 부합될 수 있으면 그것은 공식이 되고 법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다 갖다 붙여도 공식은 이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갖다 붙여도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연구를 해 보아도 그것은 공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마지막 우주통일의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세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별의별 욕을 먹으면서도 버젓이 버티면서 이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쳐서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참 재미가 납니다. 이 세상에 벌어지는 가지가지의 사건들을 보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텐데……’ 하면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다른 생각 안 합니다. 복귀노정이 이렇게 되어 가는데도 여러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1-206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멋지게 죽을 수 있는 길을 가자
선생님은 통일교회라는 한 집안의 주인인 아버지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생을 하니 그 결과가 다같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의 일, 우리들의 일에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협조를 못 했으면 그 결과를 보고 감사해야 하고 그 다음에라도 협조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그러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전부가 엉망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몸에 때가 있지요? 그 때가 때가 되기 전에는 살이었어요. 그렇지요? 여러분은 몸에 때가 있으면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살이 되어 있습니까? 때가 되어 있습니까? 때가 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 씻어 버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좋았다고 해도 오늘에는 해가되기 때문에 씻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필요합니까, 필요치 않습니까?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합니까?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양이 다 차면 집어 던져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예 교회를 나오지 말아야지요! 여러분은 민족 복귀, 구원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선생님을 필요로 하고 그 이상이 되면 집어던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천주 복귀를 완성할 때까지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통일교회는 6천년 노정을 통해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접붙이기 위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이 멀고 시간이 없고 바쁩니다. 쉬면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쉬는 사람들은 도중에 침뱉고 도망갈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얼마만큼 필요합니까? 죽을 때까지 필요해야 합니다. 뜻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죽을 때까지 필요하다는 말은 천주 복귀보다 더 실감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죽고 난 후에 남아 지는 것은 하늘 뜻 앞에 충성한 실적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죄수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천법에 의하면 살인강도보다 더 큰 죄인의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몇십 년 후에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남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에 의해서 죽는 것입니다. 엄연히 사형선고의 팻말이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차피 죽어야 할 몸인데 죽을 바에는 멋지게 죽자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미모를 지닌 미인이라 하더라도 백년을 넘길 수 없습니다. 장송곡을 울리며 칠성판을 지고 가야 할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왕지사 죽어야 할 몸인데 멋지게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축복을 받아 사위기대를 이루어서 3대를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고 합니다. 자기와 자식만으로는 2대 복귀밖에 안 됩니다. 종적으로 보면 하나님, 선생님, 자신, 해서 3대이지만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는 선생님이 할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아들, 손자까지 결혼시켜야 종적으로 3대가 복귀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대가 완전히 복귀되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21-208
이 세상의 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온다
신앙생활을 그냥 적당히 하다가 죽어서 다른 사람들은 이 뜻을 이루고 왔는데 자기 혼자 그러지 못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신앙인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죽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갈 길이 바쁜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언제 탕감복귀를 완결지을 수 있겠습니까?

옆을 보지 말고 가야 되는데 여러분은 반대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옛날에 선생님은 통학을 하면서 전차를 타지 않고 거의 걸어 다녔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탕감의 길을 걷는데’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제물이 되는 입장에서 하늘 앞에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도의 길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하겠다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만 복귀의 길, 즉 탕감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탕감을 하는 데는 자기 자신이 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존재를 세워 놓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존재가 지금까지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인 물질을 통해서 탕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물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실체가 나왔으니 실체제물시대, 즉 예수님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최고의 상대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찾으려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상대는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으려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자기 몸을 중심삼고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늘세계의 사랑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자신에게서 물질을 초월하고, 몸 중심의 욕망을 초월하고, 욕정을 초월하고, 지금까지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요소 일체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출발시킨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지 못한 남자는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가 모두 탕감복귀노정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교회 교파는 망합니다. 장로의 직을 주어야 교회에 나가고, 목사가 듣기 싫은 설교를 했다고 해서 교회 안 나가는 교인들은 지옥 가는 겁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21-209
물질을 초월해야 할 우리
우리에게는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뜻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 몸의 순결을 지키며 자기의 혈족, 친족을 일시에 잃어버리더라도 뜻을 따라가야 됩니다. 모든 일가친척이 자기를 버리더라도 뜻을 따라가야 됩니다. 역사상의 노아가 그러했고,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그렇다고 전부다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것으로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영원한 것을 얻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대충 알기만 했지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을 통하여 탕감하는 제물시대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를 보게 되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갖고 만민을 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물질을 통하여 탕감해야 됩니다. 물질을 통하여 탕감하고 뜻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넘어가셨듯이 여러분도 죽음의 길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접할 수 있는 소망의 신랑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살겠다고 집 사고 살림살이 들어놓고 합니다. 잘살겠다고 하다가는 전부 망합니다.

오늘의 탕감복귀는 신구약 성서를 중심삼고 내 자신이 완성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구약시대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신약시대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성약시대에 있어서 주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체가 구약적인 입장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몸을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이 뜻 세계에 들어오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자기가 죽밖에 먹을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 죽 한 그릇을 뜻을 위해 바치면 물질을 다 바친 셈이 됩니다. 자기가 거지 사촌이 되어 가지고 누더기 쪼가리를 걸치고 있는 데 거지굴에 가서 그 누더기 나누어 주면 물질적인 것은 하루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최악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탕감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중심삼고 탕감하던 때이며,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중심삼고 탕감하던 시대입니다. 다음에는 그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권내로 들어가야 됩니다. 거기에서 자녀의 입장이 결정되는 것이고, 거기서 신랑 신부의 입장이 결정되어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만물과 아들딸에 한정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신랑 신부가 되어야 하고 가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가 6천년을 두고 내려와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뜻 앞에서 물질을 초월하지 못하면 뜻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 드리기에 인색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소서’ 하고 감사하면서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민족을 대표해서 세계적 골고다 언덕을 넘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지도방법입니다. 여러분은 홀로 가야 됩니다. 홀로 가야 돼요. 예수님도 제자들로부터 버림받고 고독단신으로 골고다를 넘었듯이 여러분도 홀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골고다를 넘는 데는 예수와 같이 죽어서 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가 이 7년노정에 해당됩니다. 6천년을 7년에 탕감한다는 것입니다. 6천년에 천년을 합한 7천년을 7년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7년노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어떤 일이든지 수습이 가능해집니다. 그러기에 신령한 부흥집단도 7년만 넘어가면 바닥이 나서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그 7년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 걸리는 기간입니다. 지금까지는 제물시대를 거쳐 이 길을 다 감으로써 기독교가 길을 닦아서 예수와 성신이 영적으로 제물을 바치는 시대였습니다. 부모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실제적으로 부모가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공식적인 노정은 자식으로서 누구나 다 걸어가야 합니다. 앞으로 누구나 하늘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하늘 창고에 입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입적시켜야 되고 자기 자신도 입적해야 됩니다. 시집가는 신부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라 했고 우리는 신부라 했으니 전부다 시집 갈 준비를 해야 됩니다. 시집을 갈 때는 재산도 몸도 모두 가지고 가지요? 자기의 모든 것을 신랑 집에다 입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입적되어야 했는데 입적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적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물질을 입적시키고 몸을 입적시키고 심정을 입적시켜야 합니다. 그 입적하는 것이 바로 신부로서 신랑에게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는 외적인 예수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내적 외적인 신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 가야 된다고 하면 기독교에서는 펄쩍 뛸 것입니다.

타락권내에서 그 일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물질을 수습해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할 수 있어야 되고, 몸은 이 땅에서 예수님이 실천했던 것과 같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2천년 동안 역사 하던 내용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여러분은 종족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가 갈 수 있는 길을 선생님이 닦아 놓았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수습해 나가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모든 여건들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날이 옴으로써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되는 우주사적인 기원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우주가 찬양할 만한 엄청난 일입니까? 지상에서는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영계에서는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녀의 날의 귀한 가치를 여러분이 알고 이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21-212
기 도
아버지여, 저희의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 기쁨과 슬픔이 깃드는 모든 전부는 땅 위의 자녀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사옵니다. 역사적이고 엄청난 자녀의 날이 이 땅 위에 기틀을 잡고 출발한 이날은 천추만세에 인간들이 감사해야 할 날이란 것을 저희들이 알고, 길이길이 기념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모인 뭇 자녀들이 이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사오니, 뜻 깊은 이날, 하늘 앞에 영광을 드리고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날로, 아버지 앞에 바쳐드릴 수 있는 날이 되게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체를 맡기오며, 어디를 가나, 어디에 머무나, 당신이 뜻하시는 모든 것이 성취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