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8 to 21-169: 복귀의 주류

복귀의 주류
1968.11.17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128
복귀의 주류
고린도전서 13:11-13

[기 도(Ⅰ)]

오늘은 이달 들어 세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하늘의 엄숙한 과제를 맡은 개체 개체로서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당신의 품에 안길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인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때, 엄청난 사명 앞에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무책임하였던 저희 자신들임을 여실히 드러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세월은 슬픔을 붙안고 흘러가는데 저희들마저 그 과정에 끌려들어가 수많은 날들을 헛되이 보낸 것을 다시 아버지 앞에 회개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은 당신께서 복을 주실 수 있는 거룩한 성일이오매, 당신의 높고 귀하신 자비와 사랑을 추구하는 만민이 당신의 존전에 모여 있사옵니다. 이 가운데는 당신의 심정을 통하여 높고 귀하신 그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시대적인 사명을 간구하면서 하늘이 맡기신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엎드려 있는 자녀들도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가정과 수많은 민족이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었사온데, 개인이, 가정이, 종족이, 민족이 하나되지 못한 실상을 바라보시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서러우시겠는가를 저희들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수많은 무리가 당신 앞에 부복하기를 바라셨사오나 그럴 수 있는 무리가 없기 때문에 소수의 무리라도 그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 주기를 바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가정들이 그러한 자리에 인연되기를 바라오나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이 세계에서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벌거숭이와 같이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부족한 몸들이옵니다. 과거도 그러하였거니와 현재도 그러하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소망의 일념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자체를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허물을 가려 주시옵고,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베풀어 주시사 저희의 부족한 것을 충족하게 해주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세계에는 수많은 모임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 보잘것 없는 환경 가운데 있는 부족한 자녀들이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구하시는 기준을 갖고 아버지를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부족한 자신을 부여안고 진정 깊은 마음의 흐름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회개하고자 하오니 저희의 마음을 움직여 아버지의 사정의 인연을 갈구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무한한 권위와 능력으로 이 땅과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해 나왔사오나, 저희들은 아버지의 능력보다도 아버지의 자비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말씀을 회고하면서 아버지라 부를 때, 아버지 심정의 품에 안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폭발될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 주시옵고 심정의 변화를 일으켜 주시어서, 저희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취해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모습을 진정 원하고 있사오니, 아버님, 여기 찾아와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정이 저희의 사정이 되고, 당신의 소원이 저희의 소원이 되어 당신의 심정과 저희의 심정이 일치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슬픔에 처하시면 저희도 슬퍼하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면 저희도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을 위주로 하여 당신의 상대되는 실체로서 당신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는 모습을 갈구하며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일체의 모든 것을 제거시키어서 거기에 완전히 부합될 수 있고, 흡수될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일으키시사 아버지의 아들 된 자각과 딸 된 자각을 할 수 있도록 이 시간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뜻 앞에 세움받은 당신의 자녀들로서 부끄럽지 않는 하늘의 권위를 갖고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 통일교단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저희들이 가진 것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로 통일되는 은사를 그 누가 고대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겠고, 일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겠고, 모든 움직임이 아버지 앞에 통일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 일체의 모든 것이 아버지와 동기부터 결과까지 연결된 자리에서 저희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을 기르신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저희들이 불쌍한 자리에 설 때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하시며, 저희들이 외롭고 처참한 자리에 설 때 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고 처참하신지를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몇천 번 몇만 번도 마음으로 위로하시기를 개의치 않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위신과 체면을 망각하시고 저희를 붙들고 애걸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통하여 나온 저희였습니다.

부디부디 망하지 말라고, 부디부디 약해지지 말라고, 부디부디 최후까지 남아지라고 하시는 권고를 받고 자란 저희 자신들이 오늘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려 아버지의 분부에 합당하고 아버지의 분부에 기뻐할 수 있는 결실의 실체가 되었는가 생각하게 될 때 이 또한 아버지가 찾아오셨던 그 사연이 저희 앞에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조건이 된 것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의 요건을 주기 위해 찾아오셨사오나 저희들이 책임하지 못한 연고로 아버지를 슬픔의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고, 원통한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이 시간 깊이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소원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이 땅 위에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으며, 새로운 가정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을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당신의 소원을 붙들고 내심적인 깊은 골짜기에 파묻혀서 당신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그와 같은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체면과 위신을 세워 드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각자가 느끼는 이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 남한 각지에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때와 하늘의 벅찬 사명의 짐을 짊어지고 몸부림치는 통일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의 일에는 밤이 없고 쉬임이 없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들의 마음 몸 위에 당신의 은사를 쉬임없이 베푸시어서 그들을 다시 일깨워 주시옵고, 새로운 시대의 역군으로서 당당코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리어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아버지의 권고와 위로가 같이하게 해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직접 지도하시어서 그 나라와 그 민족 앞에 맡기신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뭇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은 죽든지 살든지 뜻을 위해 태어났으니 뜻을 위해 살고 뜻을 위해 죽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신념에 가득차 원수를 갚고 승리를 획득하고 말겠다는 결의에 불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부족한 무릎들을 모았사오니 아버지의 위로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 주시옵고, 이 자리를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권한을 나타내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 가운데 하늘 앞에 용납될 수 없는 쓴 뿌리가 남아 있거들랑 빼버리시옵고 제거시키시옵소서. 아버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옵고 그 전체를 주관하시어서 사탄권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당신만이 주관하고 당신만이 지도하여 주시옵길를 바라오며, 일체의 소원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하고 저희 전체가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남아진 은사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1-132
기 도(Ⅱ)
자비의 아버님, 이 자리가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지성소가 되도록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에 접하고, 아버지의 사정에 어리고, 아버지의 소원에 화하여 당신만이 주관할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사(私)된 것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자기 나름의 탈을 쓰고 자기 나름의 주의 주장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 굶주린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저희의 마음에 끝없는 사모하는 심정, 한없는 흠모의 심정이 온전히 그 자체로 화하여 아버지 마음속 깊이 흡수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처해 있는 모습은 부모 잃은 어린애와 같이 처참하고 불쌍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어머니 아버지를 향하여 울부짖는 애절한 절규가 저희 마음속으로부터 폭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환경을 박차기 위하여 몸에 상처를 입은 것도 잊어버리고 발버둥치면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그 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 됨을 스스로 증거할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달려와 품으면서 내 아들 내딸이라 하시며 목에 목을 대고 눈물을 흘리며 붙안아 줄 수 있는, 그러한 인연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세상의 어떠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옵고,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니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천정의 인연이 그리워서 나왔사옵니다. 저희들은 여기에 어떤 사정의 뿌리를 박고 남아 있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정의 인연과 사정을 중심삼고 뽑을래야 뽑을 수 없고 아버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뿌리의 인연을 추구하기 위해 나왔사옵니다. 당신이 동할 때에 동하고 정할 때에 정하는 자체가 되기 위하여 나왔사오니 부디부디 당신은 뿌리가 되시고 저희들은 줄기와 가지와 잎이 되게 하시어 만국을 소생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힘과 동력과 맥박을 대신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든 아버지와 어머니 품에 안긴 자식들은 행복한 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살벌하고, 아무리 죽음의 준령에서 하루하루 생활한다 할지라도, 부모의 품에 안겨 잠든 어린아이는 평화의 심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악한 세상, 혼란된 세상, 사망의 물결이 출렁이는 세상 가운데 사는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갈래야 갈 수 없는 몸들이었사오나,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그 한 시간만이라도 동경하고 흠모하고 사모하여 열의로 아버지앞에 나왔사오니, 이 시간 분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둔하고 목석같은 이 인간에게 아버지의 마음에 화할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비의 마음으로 저희를 성별하시어 뼛골과 심정과 세포 세포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감정이 아버지 앞에 화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되게 하시어 놀라우신 당신과 저희들이 일체이옴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높으심을 자랑할 수 있고, 아버지의 귀하심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땅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사옵고, 또 수많은 교단이 아버지 앞에 예배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하나의 모습을 갖추고 나선 저희는 어린아이의 벌거숭이 몸 그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심정을 지켜 나온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 주실 수 있는 적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소원이 없사오니 여기에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서 인연 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은 일찌기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외로운 환경에 처할 적마다 가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고, 가야 할 태산준령의 산길이 남아 있다고 권고하시던 당신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심정을 이들에게 상속하여 주시옵고, 그 환경을 뜻 앞에서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무리 외로울지라도 당신을 모셔 놓고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가 불쌍한 자리에 처할지라도 당신과 더불어 당신의 뜻을 붙들고 당신의 권위와 인연을 가지고 서게 될 때는 저희들이 슬픈 자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땅 위에서 몰리고 쫓기고 밟히고 배척 당하더라도 하늘이 세워 주게 될 때는 천상천하에 그 누구도 그 영광의 가치와 터전 앞에 머리 숙인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거된 사실을 통하여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인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으로 부르며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저희가 마음으로 모시게 하여 주시옵고, 심정으로 인연맺어 나오는 그 인연을 저희 자체에서 하나의 결실로 맺기 위해서, 체휼적인 실체로서 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심정의 제물로 바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이 자리에 주축이 되시고 중심이 되시옵소서. 그 누구도 아버지의 인연을 통할 자가 없게 하시고, 그 누구도 아버지의 사연을 그리워할 자가 없게 하시옵소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만이, 아버지와 관계가 있는 자만이 이 자리에 있게 하시어서 당신의 분부하신 말씀을 중심삼고 영원히 생명의 주체성을 갖추게 하여 주옵시고, 새로운 생애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소망의 원천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 아버지를 모신 가운데 말씀을 나누고자 하옵니다.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서로가 하나의 주체요, 서로서로가 하나의 동기요 식구이기에 하늘의 사정을 중심삼아서 일체화된 마음으로 이 한 시간을 봉헌하고자 하오니, 친히 군림하시고 좌정하셔서 당신이 뜻하시는 경륜의 법도와 치리의 은사를 여기에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나타난 은사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 위에도 인연되게 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과 천상세계에까지 인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새아침 광명한 환희의 빛발을 받으며 기뻐할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은사의 한 날을 맞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1-135
말 씀
오늘은 `복귀의 주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복귀라는 말은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근거지를 떠났기 때문에 다시 그 근거지를 찾아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1-135
종교가 바라는 것
인류 시조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자녀로서 출발하였던들, 우리에게 복귀라는 명사는 필요 없는 것이요, 구원이라는 명사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사가 필요하게 된 것은 인류 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복귀의 운명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구원받아 본연의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이 지구상에는 어느 한 때 결정적인 하나의 기준을 결정지어 가지고 복귀의 사연을 전부다 넘어 구원의 목적을 완결 지었다는 어떠한 한 개체, 한 가정, 한 종족, 한 민족, 한 국가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이상 그러기 전에는 천국은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는 길 앞에 그 이상의 세계가 등장할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오입니다. 이미 출발할 때부터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는 원천을 지니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낙망과 절망의 비운을 지니고 출발한 연고로 종말도 반드시 그러한 결과로 거두어져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지만 소망하는 그 하나의 세계가 과연 이 역사시대 앞에 나타날 것이냐 할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인간이 출발을 그릇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역사를 안고 나가는 인간 앞에는 참의 기준을 온 세계적으로 갖춘 세계가 올 수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상,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생명을 지닌 새로운 사랑 등 이런 모든 것은 인류가 소망하는 역사과정과 그대로 역사과정을 한단계 청산지어야 합니다. 청산짓지 못하겠으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찾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러한 양면의 입장을 취해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이상세계가 오기 전에 심판이 와야 됩니다. 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인 사정과 인연을 그냥 그대로 품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흐르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박차고 뒤로 돌아서서 길을 피해 가는 사람이라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이상적인 출발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세상을 버려라.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라. 세상을 가까이하지 말라. 세상과 화하지 말라. 세상과 절단하라. 부정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각심(覺心)을 키우라’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현재를 밀고 나갈 수 있고, 미래를 타개하고, 과거를 수습할 수 있는 이러한 각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교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흘러가는 역사과정에서 그냥 그대로 이상세계를 맞이할 수 없는 비운에 처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권내에 서 있는 우리 개체들은 이 운명을 그냥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청산짓든가 거슬러 올라가든가 해야 됩니다.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이런 운명길을 개척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개척하는 데는 대번에 국가적으로 개척할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라는 것은 종족 기준을 넘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대번에 세계적으로 개척할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국가의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갈 수 있는 근본적인 기원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것은 세계가 있기 전에 국가가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기 전에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기 전에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전에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기 전에는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상천국을 그리는 종교인들이 구원이니 뭐니 하며 부르짖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다 개인의 구원목적에 결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당도 개인 천당, 극락도 개인 극락을 추구해 나온 것이지 가정천국, 종족천국, 국가천국, 세계천국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천당이나 극락에 갈 수 없습니다. 개인을 구한다는 결정적인 완전한 기준을 마련해 가지고 역사시대에 전무후무한 하나의 기초가 결정될 수 있는 한날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 비로소 새로운 인생으로서 출발하여 천국이니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1-137
대표적인 표본이 나와야
오늘 가야 할 역사의 조류 가운데 처해 있는 내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마음 자세는 지극히 위대한 이념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계는 하나의 가정권을 형성하는 이상세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감정이 우리의 감정과 통할 수 있고, 세계의 사정이 우리의 호흡과 접할 수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리 외적인 기준과 외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지금 이 세계와 더불어는 이상세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의 역사적인 표본이 나와야 됩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대표적인 표본이 나와야 되고, 가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표본, 종족적, 민족적, 나아가 국가 형태를 중심삼고 하나의 복귀된 입장에서 그 원칙에 설 수 있는 표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표본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이상세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즉, 그 표본이라는 것은 뿌리가 되는 한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상에는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찌하여 왔다 갔느냐? 그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서 자의에 의해서 역사에 하나의 소원을 남기고 갔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운명이 그렇게 만든 것이냐? 만일 역사의 운명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면 그 선열들의 운세는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재판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자의에 의해서 왔다가 갈 때 어떤 공헌을 남겼다면 그것도 우리에게는 필요없습니다. 그것은 흘러가 버리고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1-138
표준은 예고에 의해서
그러면 어떠한 인연을 갖고 와야 하느냐? 천상의 인연을 갖고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귀의 사연을 필요로 하는 그 원칙에 관계맺은 존재로서 천상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이라야 오늘날 역사적인 소망의 세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공헌할 수 있고 그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탕감받게 됩니다. 아무리 그가 역사상에 남긴 공이 커서 오늘날 문화세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더라도 그 공헌 자체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내용은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 가? 자체의 노력, 혹은 시대의 환경에 빚어진 공(功)의 실적을 통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인연을 가져야 되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누구를 찾는가? 참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성현 중에도 참된 성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최고의 실체냐? 어느 것이 주류의 핵심이냐?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이 인간으로서 제1기준에 입각했느냐? 오늘날 학문이나 인륜도덕도 그러한 기준의 차원을 표상하고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적 기준이 이 땅 위에 아직까지 확정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목적은 아직까지 이 지구상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가 있고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도 아직까지 그런 목적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소망권에서 허덕이는 종족이 되었고, 민족과 국가가 되었고, 세계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문화세계가 창조하고 현대와 같은 문명권을 형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최고의 목적에는 아무런 공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인간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되느냐? 한 사람의 표준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적인 기준을 예고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하는 말씀도 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예고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 있나니, 그것은 인간 중에 최고의 표준형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사람은 이 철칙의 법도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사상입니다.

그 표본이 등장하게 될 때 이 지구상에는 비로소 개인적인 행복의 요건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출현은 물론이요 사회와 국가의 형성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천국이념으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의 내용을 초월한, 복귀의 인연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사정과 인연을 갖춘 사람이 와야만 비로소 지상에 천국이 현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체가 나오게 될 때 그 한 개체는 세계를 종합한 결실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는 이 표본을 모방해 가지고 민족사상이니 민족정기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 하나의 기준 앞에 몇 퍼센트 공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그 국가가 역사에 얼마만큼 남아지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는데 사랑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어떤 자리에 갖다 놓고 사랑하고 싶겠느냐 하게 될 때 하나님이 보시면서 `좋구나’하고 그냥 구경만 하신다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일 가까운 곳에 인간을 갖다 놓고 사랑하셔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백성의 자리에 갖다 놓고 `나는 군왕이니 절대 복종해라’고 하시느냐? 아닙니다. 군왕과 백성의 입장은 너무나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 동네의 어른의 입장에서 사랑하시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에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랑 중에서도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의 제일 핵심된 자리에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21-140
사랑의 관계
인류의 조상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들딸이 못 되었으니 참다운 자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들 멋대로 짝을 이루어 아들딸을 또 낳게 되고 거기에서 종족이 생기고, 민족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고……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원칙적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평화의 세계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희망의 세계니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만하면 천상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행복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런 외적인 것은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조건은 될 수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결정되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을 가진 사람은 거기에 해당하는 비례적인 슬픔을 느낄 것이요 비례적인 불만이 가슴 가운데 남아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할 때는 아들의 자리, 딸의 자리에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자인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는 실감이 나요? 실감이 나요, 안 나요? 틀림없는 아들딸이라는 실감이 나요? 아무리 실감을 하려 해도 실제적으로 느껴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있기는 한데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가 뭐냐? 아버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아버지를 놓고 아버지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효 중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가장 큰 불효입니다. 아무리 국가에서 효행상을 탄 아들딸이라고 해도 그 아버지 앞에서 한번만이라도 `나는 아버지가 없다’고 하게 되면 그것은 불효 중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최고의 불효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서 눈을 껌뻑거리고 계시는 데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심판 받을 날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심판 받아야 됩니다. 누가 심판하느냐? 선생님이 심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21-141
안타까운 심정의 하나님
오늘날 인류가 추구하는 표본적인 인간은 어떠한 인간이어야 하느냐? 하나님이 슬픔을 느끼는 것은 사랑의 실체적 상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실체적 상대인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아무리 배짱이 센 혁명적인 일국의 수령이라 하더라도 아들이 죽게 되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물이 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요? 갖추어진 분야와 환경이 넓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곱절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평민이 흘리는 눈물은 그 사람으로서 끝나는 것이지만, 중심적 인연을 갖춘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사연과 더불어 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의 치하에 있는 국민으로서 그 분의 슬픔에 동반하지 않는 사람은 반역자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일 것이냐? 하나님이 정녕 우리 인간과 부자의 관계에 서 계시는 하나님일진대 아담과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으리라고 해 놓으시고 관망만 하셨다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혁명해 버려야 됩니다. 혁명해 버린다는 말이 좀 안 된 말이긴 하지만…….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염려했던 대로 되는 구나. 조금만 더 해라’고 했겠어요? 아닙니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모든 감각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그걸 따먹어서는 안 되느니라’고 피흘리며 떨고 형용할 수 없는 애절한 안타까움 때문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있을때 구경만 했겠나 말입니다, 칼이 있으면 역사를 베고, 이 천하를 베어 짤라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는 자기 자신을 자탄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것을 기독교인들은 뱀이 속닥거려 가지고 따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원칙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얼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역사상의 그 누구보다도 처량하고 그 누구보다도 안타깝고 그 누구보다도 비참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심장이 폭발하는 듯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 시조를 보고 하나님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까지도 정성을 들여 천신만고 끝에 7대 독자를 낳아 애지중지 사랑하는데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잘 알 것입니다.

타락한 핏줄을 통해서 맺어진 인연도 다 동기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출발한 것입니다. 그 동기의 주체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여러분이 낳은 자식이 불한당이 될지 역적이 될지 간신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 해와, 그 아들딸은 천하의 어떠한 역사시대에서도 찾을 수 없는 대표자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사랑을 해도 몽땅 합니다. 인연도 깊은 심정으로 맺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인류시조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더냐고 물을 때 그것은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설명을 앞서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청년 남녀들이 사춘기를 넘어서 이성을 느끼는 것은 배워 가지고 그런 것입니까? 남성은 이래야 된다는 공식과정을 거치고 무슨 대학 학부를 다녀 공부해 가지고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서로 사랑하자’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7대 독자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 이상입니다. 또, 그 사랑은 천지의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사실을 막을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만큼 사랑하려고 하셨을까요? 사랑하는 것을 봤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21-143
최고의 사랑을 가진 종교라야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시조로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종지조상의 자리에 서 가지고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받은 사람이 있었느냐? 공자, 석가, 예수님도 못 받았습니다. 받으려다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이 사랑이란 말은 안 했습니다. 그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 생명이 생명으로서 영원히 하나님을 업고 넘어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그 사랑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사랑이란 말을 거쳐야 됩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 하는데, 선생님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했습니까?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는 사랑을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그렇지 않은 종교는 다 쓸데없는 종교입니다. 인륜도덕만을 주장하는 종교는 겉치레하는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기독교가 어떻게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하면 사랑을 가르치는 동시에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나는 천주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나는 신랑이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자신있게 외쳤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못 되었다면,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사랑을 논위할 때 어떤 종교의 교리에도 없는 심정의 골수를 파고 들어가서 부자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설파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타락으로 인한 한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해원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주님은 이 종교를 흠모해 가지고 만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즉 사랑의 주체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창조법도에 입각하여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했지만, 그럴 수 있었던 하나의 남성이 이 지구상에서 없어졌으니 다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남성이 없어졌으니 그것을 메꿀 수 있는 기틀을 가져 가지고 잃어버리기 전의 자리, 그 이상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독생자다’라는 멋진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노릇하는 허울 좋은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쓰이는 곳은 많지만 아버지라고 한다고 해서 다 아버지가 아닙니다. 진짜 사랑이란 심정의 골수에 어려 있는 사랑을 몽땅 퍼부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몽땅 갖고 나올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아들이 여러분과 손발이 달라서, 눈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본연의 사랑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한으로 되어 버린 것을 다 타파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지녀 비로소 천지간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만민을 구원할 메시아입니다. 즉, 사랑의 구주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를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구주입니다. 또한 자녀의 자리를 복귀해 주는 주인공입니다. 이러한 분으로서 남성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남성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부를 찾던 과정에서 뜻과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다시 오겠다는 재림의 이상을 남기고 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남성을 찾는 복귀역사였습니다. 남성으로서 하늘 앞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에 치리될 수 있는 승리적인 표본, 그 기준을 맞춰 놓기 위한 사람들이 성인, 열사, 위인입니다. 거기에는 공자, 석가 등 많은 사람들이 포함됩니다. 큰 일을 하려면 그 이면에 필요한 여건들을 갖추듯이 기독교가 세계적 기반을 닦는 데에 수많은 종교가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표본적인 하나의 남성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남자라는 동물은 세계를 한번 내 마음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라는 껍데기만 쓰면 다 그렇습니다. 여자들도 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지 마음은 그렇죠? 왜 그러겠습니까? 세계를 요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 자격이 없습니다. (중략)

여러분 우주의 별들이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쉬지 않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충돌하지 않고 지금까지 안전하게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를 지으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21-145
표본적인 남성
선생님이 옛날 공산당들에게 잡혀 가서 매를 맞을 때 그 채찍질이 무척 드세었지만 뻗대면서 아무리 맞아도 안 넘어가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고 때린다면 옥살박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매도 맞아 봤습니다. 그런 엄청난 힘을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요즈음 간판이나 울타리만 커도 으스대는 판국인데, 이런 분이 아버지라니 좋아서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아서 천년 만년 사랑하고 사랑해도 그 연한이 짧습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한 하나님을 진짜 알고 나면 죽어도 감사, 살아도 감사, 봉사해도 감사, 어떻게 되든 감사하기만 합니다. 이 대우주를 당장이라도 주관할 수 있는 원동력의 주체의 권한을 알게 됐으니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서 소개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 눈을 뜨고 보니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잡아죽이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 지구성을 다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배포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배포 없이는, 세계를 전부 손아귀에 넣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상속을 해줍니다. 왜냐하면 끝없이 사랑해 줄 수 있는 끊을 수 없는 특권적인 인연을 가진 실체로 화했기 때문입니다. 그 인연을 돈 가지고도 못 끊고 원자탄 가지고도 폭파시킬 수 없습니다. 그 누가 아무리 위협하고,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그분이 내 아버지다’하는 사실을 부정하게는 못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표본적인 남성이 오는데 그는 어떤 사람이냐? 만우주를 치리(治理)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주류가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하나님 입회하에 결혼식을 했으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목사 혹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인간들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 봤습니까? 하고 물어 보면 `아, 내가 알 수 있나. 하나님이……’ 하며 대답을 못 합니다. 그들은 근본문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을 누가 결혼시켜 줬습니까? 사탄입니다. 사탄들이 잘 되었다 하면서 결혼시켜 줬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타락되었으니 완성한 하나의 남성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누가 동기가 되었느냐? 여자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지금까지 남성에게 유린당하는 슬픈 역사를 걸어온 것입니다. 원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여자가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찬성입니까, 반대입니까? 지금까지는 반대했더라도 이제부터는 찬성하고 나서야 합니다.

지금 무슨 미스 코리아니 미스 아메리카니 하고들 있습니다. 60년대에 들어와서 심화된 그런 운동은 미스터를 맞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런 섭리적인 내용을 알지만 기독교인들은 지금 이 섭리의 내용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미스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스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신부가 준비되어야 신랑이 올 게 아닙니까? 그렇지요? 세계적으로 훌륭한 색시들이 준비됐다 하는 시대가 되면 미스터가 오게 됩니다. 세계적인 미스터로 그분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각 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이니, 미륵불이니, 진인이니 하는 재림사상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등 레테르를 붙여서 보내는 미스터가 세계적인 미스터 진(眞)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오죽 좋겠습니까? 그분이 오시면 온 세계 남성들이 뜀뛰고 다니면서 찬양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비록 타락의 감투를 쓰고 나왔지만 그는 미스터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는 멋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껍질에만 일등 레테르가 붙으면 안 됩니다. 그 속에 일등 레테르가 붙어야 합니다. 그 레테르가 밖으로 보이면 알지만, 속에 있을 때는 누가 무슨 재주로 알 수 있겠습니까? 겉으로 나쁘다고 해서 속도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욕을 먹어 본 사람이 진짜 욕을 할 줄 압니다.

21-147
참다운 미스터가 등장할 때-하나님의 웃음보따리가 터질 때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망해라, 망해라 하지만 통일교회는 절대 안 망합니다. 저번에는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 어떤 사람에게 통일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통일교회 뭐 저쩌고 어쩌고……’ 합디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렇게 껄렁껄렁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려면 멋지게 하지 얼빠져 죽을 짓을 왜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선생님이 수십년 동안 이 일을 해 나오는데, 목사들이 눈에 불을 켜 가지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욕을 하는데 신사훈같은 이는 통일교회를 `무시무시한 이단’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무시무시합니까? 말로도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보니 어느 한때 놀라긴 놀란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그들에게 밥을 달랬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선생님은 앞길이 바빠 그들과 공론할 사이도 없었습니다. `아이쿠 저것들은 그저 싸움은 잘 해가지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안 것입니다. 욕을 먹고 두드려 맞아 가면서 세계적 발판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세력과 권세를 가진 자라도 빼버릴 수 없는 진가가 통일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자랑합니다. 기독교에서 처음으로 온 사람이나 목사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간이 서늘해 져서 나가 자빠질 정도입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라면 나쁘다는 것은 다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미스터가 되어야 해요. 남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그만한 배포도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오지 마십시오. 안 와도 괜찮습니다.

선생님이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전부 나오라고 하면 나오고, 땅 속에 들어가자 하면 들어가고, 산으로 올라가자 하면 올라갈 수 있어요? `아이고 나는 여자니까 그럴 수 없어요’ 이래서 되겠습니까? 산에서만 싸우겠습니까? 바다 밑에서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산에서 싸우면 문제 없이 승리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지무지한 훈련을 시키려고 작정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이러한 말씨가 기분나쁘면 오지 마십시오. 이곳은 껄렁껄렁하게 눈치나 보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껄렁껄렁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사탄세계에나 있을 미꾸라지 같은 녀석들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 가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나간 사람들은 선생님 때문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밉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기분 나쁜 때가 있었다구요. 그러나 기분 나쁘더라도 선생님이 참아야지 어떻게 합니까? 왜 선생님이 참느냐? 세계적인 미스터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인 미스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참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분이 와서 `이북에 김일성이 잡으러 가자’한다면 가고 싶어요?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잘먹고 잘살고 콧노래까지 불러가면서 갈 수 있는 자리라면 세상의 어느누구도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그런 자리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입산수도는 속세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데서, 아주 고립된 자리에서 남 모르는 어려운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도의 훌륭한 본색이요, 본질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아가씨들 `내가 이만큼 생겼으면 어딜 가도 빠지지 않겠지’ 하면서 뭐 거울을 들여다보고 어쩌고 하는데, 그런 사람 선생님에게 걸려 들기만 해보세요. 걸려만 들어봐요! 이런 말이 섭섭하면 뛰쳐 나가십시오.

그분이 청춘의 깃발을 들고 천하에 행차를 할 때는 천상세계와 만국의 존재란 존재는 전부가 환영해야 합니다. 공자도 예수도 전부 손들고 환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웃음 보따리가 터져서 `어허!’ 하고 기분 좋게 되어야 될 게 아닙니까? 하나님이 언제 한번 웃어 봤습니까?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죽은 아들딸이 살아나길 바라면서 부활이니 뭐니 하면서 나오셨는데 죽은 자식 들여다보는 하나님이 어떻게 웃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타락하라고 제사를 지내도 타락하지 않을 수 있는 아들딸을 보아야 비로소 웃음 보따리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 미스터가 등장하면 하나님은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대주인이니 그분의 웃음 보따리가 터지지 않으면 이 불운한 세상은 구제될 길이 없습니다. 인류의 부모이신 그분의 웃음 보따리가 터져야만 자식이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내용을 터전으로 하여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주체적인 표본, 즉 표본적인 남성은 신랑입니다. 그런데 신랑되면 미스터만 와서 되겠습니까? 그에 어울리는 한 여성이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남성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 세계적인 여성의 표준을 완성해야 됩니다.

21-150
부모로서의 구주가 나와야
이 땅 위에 하나의 남성이 출현하게 될 때에 하나의 여성도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성과 여성이 출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여성에서부터 타락해서 남성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그때에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 다시 찾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그 여성을 찾아야 비로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구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성적인 구주만 가지고는 완전 구원이 성사될 수 없습니다. 완전복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역사가 진행되고 천지가 개벽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사건은 어떤 사건이겠느냐? 전쟁으로 세계가 통일되는 사건이 아니라 천지의 대운세에 따라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은 남성앞에 하나의 여성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그 남성과 여성에게 결혼식을 해주는 사건입니다. 그날이 천지가 개벽하는 날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는 거짓 부모의 혈통을 타고 났습니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잘난, 무슨 대학의 학장이 되어 수많은 학생들이 `우리 스승님’ 하면서 머리 숙이는 사람, `이만한 자세 같으면 되겠지’ 하고 자기 나름대로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라도 근본을 파헤쳐 보면 전부가 사기(詐欺) 공장에서 박아 놓은 가짜 레테르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은 나라의 공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구주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완전한 구주가 못 되었으므로 새로운 구주가 나와야 됩니다. 무슨 구주가 나와야 되느냐? 예수님은 성령으로서의 구주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서는 구원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로서의 구주가 와야 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들이 거짓 부모의 혈통을 받고 났으니 참된 부모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기독교인이 들으면 또 이단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했지만,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다고 `어이쿠 이단이구만’ 합니다. 하지만 누가 이단인 줄 아세요? 우리는 벌써, 십단, 삼십육단 다 넘어가 가지고 수준이 다른데, 그들은 이제 일단 올라와 가지고 `저건 내가 배우지 않은 것이니 이단이다’라고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적 수준으로 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 하고 싸우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참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세계가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는 때가 되면 하나의 국가적인 선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그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맞겠다고 알뜰히 알뜰히 비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 두시간에 마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한 시간만에 말씀 끝내는 것 봤어요? 뚜껑만 여는데 한 시간이 넘어갔구만. 하지만 결론만 내리자면 5분이면 됩니다. 어때요? 결론만 내릴까요, 더할까요? 좀 더 하죠?

21-151
한국을 제3이스라엘 선민으로
지금까지의 역사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민사상이 있습니다. 그러면 `택한 백성’ 즉, 선민을 만들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선민은 천민(天民)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기분 나쁘겠지만 지금 인류는 악민(惡民)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 인류는 악민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에서 선민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악민을 수리하여 선민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악민 가운데서 선민사상이 나온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역사과정에 선민사상을 가지고 나왔던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은 비참한 민족같지만, 그 민족은 선민족입니다. 그 민족이 가슴을 헤쳐 보면 6천년의 역사가 살아 나오고, 인류 역사의 근본이 살아 나옵니다. 또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오고 역사적인 모든 성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전통이 통일교회의 원리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도 따를 수 없는 전통적인 사상을 지닌 것입니다. 그것이 선민사상입니다.

선민사상은 어떤 민족에 한정된 주의나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사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일신인데도 불구하고 역사를 볼 때, 무슨 헬레니즘이니 헤브라이즘이니 했는 데 그것들은 하나님을 비수로 찌른 사상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때 예수님을 완전히 알았더라면 그들은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었을 텐데 예수님을 죽여 버렸기 때문에 그 죄로 2천년 동안 유리고객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848년도에 재봉춘(在逢春)하는 역사가 벌어져 이 땅에 새로운 하늘주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방이 벌어지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재림역사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상대 없는 역사와 목적없는 역사는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느냐? 이스라엘 민족을 훅 불어 버리고 대한민국을 제3이스라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욕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쁜 사람은 한국 민족의 반역자야! `될 수 없더라도 좋다, 거짓말이라도 좋다’ 해야 한국 민족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될 수 있다니 한번 들어봐라 이겁니다. 될 수 있다는 데 왜 들어보지도 못하고 자꾸 반대를 합니까?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한국을 제3이스라엘로 창건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제2이스라엘을 찾아왔던 예수님은 마음깊이 눈물을 삼키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음 길을 갔지만, 제 3이스라엘이 그 권한을 세우게 되면 천상천하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족보가 가진 민족이라고 자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머리가 좋아서, 선생님에게 비약적인 지혜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선생님이 남들 앞에 서고 싶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어서 안 설래야 안 설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제2이스라엘은 선민을 형성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이것을 제3이스라엘 선민을 중심삼고 세계에 선민사상을 옮겨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세계에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선 주도적인 무리가 욕먹고 쫓김받는 통일교회의 무리인 것입니다. 역사는 쫓김받는 무리의 혁명으로 점철되고 수습된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리고 쫓긴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몰리고 쫓기는 입장을 딛고 넘어 자신의 희망을 큰 곳에 둘 수 있는 자주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주의와 사상을 가졌거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날엔 희망이 빛나고 새싹이 싹터옴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의 조사록에 적혀도 낙심하지 말고 그것을 밟고 새로운 뜻을 세워 주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가져야 합니다. 그 발판이 되는 주의가 통일교회의 통일주의니 우리는 이 통일주의로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외적인 고난은 우리의 몸을 짓누를지 모르지만, 통일주의를 중심삼은 우리의 사상은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삭막하고 무서운 단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개털 걸어 놓고 썰어 먹습니까? 들추어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통일교회가 부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선생님의 지갑에는 몇천원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이 없지요.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은데 없습니다. 있는 것 같지만 사탄이 올 때는 없고,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오실 때는 있습니다.

21-153
이상세계는 이미 배운 사실만 갖고는 이룰 수 없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각자의 마음에 선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주성을 어떻게 폭발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운명 길, 순간에 생명이 좌우되는 환경에서도 이 일에 힘을 쓰다가 죽을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죽엄에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런 자리에 입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본연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시옵나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다고 누가 알아 보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죄악으로부터도 승리합니다. 어디 이 세계속에서 그런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아직까지 수료증을 받지 못하고 훈련과정에 있으니, 승리단계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더 박차를 가해야 되겠습니까, 박차를 여기서 정지해야 되겠습니까? 좀더 고생시키고 좀더 몰아쳐야 됩니다. 그게 좋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선생님이 만약 여러분이라면 그냥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개척하여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빽 그라운드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갖은 곡절을 거쳐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도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오늘 다시 여러분과 상봉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죽을는지 살는지 망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렇게 만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란 최고의 독선과 통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최고의 독선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참다운 기준에 설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영원성을 보존할 수 있고 참을 옹호할 수 있는 독선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독선 그 자체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이 시대를 앞서서 훑어보고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배우지 않은 것을 내가 아나? ‘ 하고들 대답합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오직 배운 권내의 일밖에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세계에 새로운 이상세계를 이루는 데는 이미 배운 사실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배우지 않은 미지의 것도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때에 행해지는 것은 자기의 힘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섭리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악민에서 선민으로 선민에서 천민으로 이러한 단체로 복귀해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선민이 된다고 그냥 천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천민의 권한을 가지고 천자와 천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보면 엄청난 내용이므로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문선생이란 사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알아 보고 싶으면 하나님께 담판기도를 해 보십시오. 가짜면 큰일이니 잘 살펴 보십시오.

21-155
자식을 구하려는 부모의 심정
여러분은 관념적인 생활관, 관념적인 심정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곳에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생활관을 심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생활관은 천민관(天民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소망의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둘이 타락함으로 처음부터 잘못 심었기 때문에 그렇게 거두어야 됩니다. 때문에 그것을 밟고 누를 수 있는 한 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타락한 인간들이 계속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아담 해와가 16세의 처녀 총각 때 하나님의 천도를 떠나서 자기들 멋대로 사랑하는 잘못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말세인 오늘날 청소년들이 부패하는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을을 맞이하면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청소년들이 자기들 멋대로 타락하는 것은 조상이 잘못 뿌린 씨를 거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것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힘으로 들어오면 힘으로 정복해야 하고, 머리로 들어오면 머리로 정복해야 하며, 권한으로 들어오면 권한으로 정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악의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그렇게 뿌려져서 그러한 탈을 쓰고 한의 역경 속에서 역사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나온 인간들이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거짓부모의 출현으로 오늘날까지 탄식의 역사가 엮어져 나왔기 때문에 참다운 부부인 참다운 부모가 천지간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선생님에게 환경 중의 준비된 환경이요, 희망 중의 희망이요, 해원의 목적을 이루는 소망중의 소망입니다.

역사가 어긋났기 때문에 그런 한 기준을 이 땅 위에 제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륜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앞에 가깝게 하고 하나님을 모시게 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제 성경은 무엇을 밝혀야 되겠습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반대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어떻게 옵니까? 비행기 타고 온다면 모르지만. 주님은 구름 타고 안 옵니다. 그런 말 하다가는 영계에 가서 억천만세 참소받습니다. 타고 올 게 없어 비행기 타고 온다면 모르지만 구름 타고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허황된 믿음을 가진 자신들이 이단이면서 선생님한테 이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계 학자들을 놓고 이야기를 하면 30분 이내에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벌벌 떨게 만들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천륜의 원칙과 더불어 생활한 인연이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날 인류의 본성의 인륜도덕이 천지에 창건되는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을 탈피하는 불행한 청년 남녀가 많은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륜의 법도에 일치된 사랑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그 가정에 좌정(坐定)시킬 수 있는 천지부모가 현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예수님 혼자 오셔서는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우리를 구해 줄 때 어떻게 구해 주어야 하느냐? 부모의 자리에서 구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이 물에 빠졌는데 그 형을 보고 `너의 동생이 물에 빠졌는 데 구해 줘라’ 하는 부모는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 자신이 이 땅 위에 와서 부모의 자격으로 인간들을 직접 건져 주는 것입니다. 자식이 사망세계에서 신음하며 구원을 요청할 때 구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다리를 놓아 주는 사명을 하도록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그 다리를 통해서 부모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의 대문을 열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천지의 종말시대에는 부모가 와야 됩니다.

21-156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종교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 잔치가 벌어져야 됩니다. 그 잔치를 하는 때는 6천년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으로 결혼식을 해주려고 했는데 그들이 악민으로 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것을 재봉춘(再逢春)하여 비로소 하나님 입회하에 참다운 인류의 부모로 등극시키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그 부모는 참감람나무로 와서 타락한 인간인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 가지를 갖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어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름 타고 와서 무슨 천년 잔치를 한다고요?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시면 떡은 무슨 떡을 드리고, 옷은 무슨 옷을 드릴지 준비도 안 해 놓고 잔치를 하겠다고 생각만 하는 기독교인들, 참 한심합니다.

때문에 앞으로는 부모로서 만민을 구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종교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입장에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가정 구주가 되어 세계의 많은 가정을 대하여 `가정은 이래야 된다’ `천도, 천륜, 천리를 따라 세워진 가정은 이래야 된다’는 모든 가정이 수긍할 수 있는 도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한꺼번에 빨리 구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의 법도를 통한 구원의 도리를 부모가 따르고 자식이 따라서 가정이 몽땅 천국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면 좋겠습니까? 부모의 구주로서 가정을 대한 구주의 사명을 완결짓고 그 다음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구주로 등극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 땅에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수많은 민족, 혹은 오색 인종이 만든 문화권의 세계를 전부 타파해 버리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주의적인 가정제도, 하나님주의적인 사회제도, 하나님주의적인 국가제도, 하나님주의적인 내용을 갖춘 이상세계가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의가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주의입니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아담주의예요. 그것은 하나님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주의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찾아나가는 지팡이입니다. 주의 자체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 주의라는 것은 변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선진국가라지만 앞으로 돈으로 말미암아 부패하게 되어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지금 그런 실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좋긴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선 돈 때문에 별의별 모략 중상이 벌어지고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까? 그것은 특권주의적인 상태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자세히 보면 아주 이상적입니다. 자기 집에는 벽돌담을 쌓고 철문에다 셰퍼드를 매어 놓고 밤낮 집 지키느라 정신 없는데 여기에 와 보면 다 열려 있거든요. 그래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화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떡 앉아 있으면 도시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집에 가려고 하면 `아이고 그 철문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꼬’ 하는 생각에 집에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선생님에게 괜한 욕을 많이 먹게 했습니다.

21-158
천주주의(天宙主義)
천주주의, 원리연구회에서도 천주주의를 말하는데 천주주의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계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천국을 건설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지금은 합동결혼식을 천하고 몹쓸 것으로 알지만 앞으로는 입을 벌리고 눈이 뒤집어져서 `나 좀 살려 주소’ 해도 안 해줄 겁니다. 선생님이 누구 보다 못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 사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이런 일을 단행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핍박과 몰림과 지탄을 받더라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싸움판이 벌어져 우리 신랑 내놔라, 우리 아내 내놔라, 우리 아들 찾아내라, 우리 딸 찾아내라고 난리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혼자 생각하기를 지금은 모르지만 한 이태만 지나면 반드시 `통일교회 선생님이 딴 것은 몰라도 우리 사위 하나는 잘 얻어 줬다. 우리 며느리 하난 잘 얻어 줬다’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선생님만 보면 핏대가 서 가지고 반대하던 사람이 지금은 통일교인이 되어 가지고 선생님만 보면 꾸벅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하나 하나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비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삼키려면 삼키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상을 가지고 통일교인을 삼켜 버리든지,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을 삼켜 버릴 자신이 있으면 삼켜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꽁지가 얼마나 긴지 다 삼킬 수 없을 것입니다. 다 삼켰다고 생각하고 눈을 떠보면 꽁지가 몸통의 배 이상 남아 있을 테니 큰일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배가 터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삼켜 버리려 해도 안 삼켜진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갑니다. 공산당한테 매를 맞고 곤욕을 겪으면서도 `이놈들 다시 만나자! 공산당을 때려잡을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복수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들이 나를 먼저 쳤기 때문에 그것을 선생님이 탕감복귀해서 치는 것이 공의의 법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공의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채찍을 들어 쳐도 죄가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은 간파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청년들, 우리는 고향 땅을 탈환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본향의 부모를 탈환하기 위함이요, 본향의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탈환하기 위함입니다. 알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것을 복귀해 들어가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지의 대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권위와 체면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심정일체가 되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 기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거짓 아들딸을 낳고 그러다 보니 거짓 종족, 거짓 민족, 거짓 국가, 거짓 세계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복귀의 도상에 선 우리가 탈환하여야 할 것이 무엇이냐? 참부모를 탈환하고 참부모의 사랑을 탈환하여 참부모의 혈통적인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종족을 이루고, 참부모의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천상의 대법도를 세우고 하나님께 해원성사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천주주의인 것입니다. 이것 이상의 주의가 있거든 보따리 싸 가지고 억천 만년 가 보세요. 다시 여기로 돌아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쫓기고 별의별 일들이 생기고 거지같이 밟히고 쓰레기같이 밀렸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핍박도상에서도 망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선생님에게 그렇게 했던 사람이 선생님 앞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망해가는 것을 여실히 보고 있습니다.

21-160
복귀의 주류에는 전통이 필요하다
그러면 복귀하기 위한 주류사상은 무엇이냐? 복지건설입니다. 좋은 말은 통일교회에 다 있습니다. 욕심도 많아요. 이상천국이니, 자유세계니, 사랑의 동산이니, 꽃동산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 전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의 어떤 개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하나님주의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기쁘고 최고로 행복해야 그 자녀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지건설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합니까, 미워합니까?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사랑해요? 「예」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벌떼같이 와서 서로 면회하겠다고 싸움을 하던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화여자대학 사건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세상에서는 `뭐 통일교회가 어떻고, 어떻고’ 말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일입니다. 그때 형무소에서 선생님을 괴롭히던 녀석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사나이가 통일교인인가? 잘 생겼구만 잘 생겼구만!’ 하길래 선생님은 속으로 `그래 이 자식아, 이만하면 잘 생겼구말구’ 했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까지 그 녀석들을 주시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뼈가 없는 무골충 사나이가 아닙니다. 외적으로 보더라도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보더라도 어느 누구보다 사랑받는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내가 여기 몇 달 있는 동안에 너희들이 나에게 머리를 숙이나 안 숙이나 보자’하고 별렀습니다.

감옥 안에 선생님의 소문이 자자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선생님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을 푸대접하던 사람들이 만나러 오면 선생님은 벌써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여 `이 녀석아 앞으로는 그런 마음을 갖고 내 앞에 오지 마라’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리하여 형무소를 나올 때쯤 되니 그들이 선생님에게 `뭐 드시고 싶은 것 없으세요?’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나는 먹고 싶은 것 없으니 당신들이나 먹어요’ 했습니다.

또한 거기에서 목사라는 한 양반은 선생님이 이단이요 원수의 입장이라고 맨 처음에는 서슬이 시퍼래 가지고 `그래 당신이 주장하는 교리가 도대체 뭣인가?’ 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시간을 정해 놓고 찾아와서 상당히 친해진 일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소문이 자자해지니 형무소 소장까지도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같이 들어간 제자들도 악착같이 선생님을 따르고 모시니 사람들이 `세상이 저렇게 욕을 하고 반대해도 저렇게 끈질기니 과연 통일교회 문선생은 난사람이야’ 라고들 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는 이렇듯 미천하지만 귀한 자리로 누구더러 대신하라 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치는 사람도 절대 못합니다. 저기 미국의 닉슨이나 존슨 같은 대통령이라도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 한번 하라고 하면 다 도망갈 것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그들에게 이 자리를 맡기고 산천 골짜기 바위굴, 열 발자국 내디디면 겨우 한 발자국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에 가 있더라도 거기까지 찾아올 것입니다. 통일교회 지도자는 누구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밖에는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복귀의 주류에는 전통이 필요합니다. 세계를 요리하기 위해서 전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자기 주의를 펴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복지 건설을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복지건설의 기점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점이 본향 땅입니다. 본향을 잃어버린 인간, 고향을 잃어버리고 향수에 잠겨 있는 인간은 복귀라는 서러운 탈을 쓰고 탕감이라는 어려운 고빗길을 돌아 본향을 찾아야 합니다. 나라의 행복이 있기 전에 고향으로 가는 행복의 통로를 갖추어 그 나라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복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거점이 있어야 합니다. 본향 땅에 가려면 부모가 있어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천년 만년 한을 풀고 찾아진 식구로서 하나의 천지 부모를 모시고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형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가까운 내용을 가진 이 `식구’라는 감정이 넘쳐 흐르지 않는 한 통일이념은 성사될 수 없습니다.

21-162
선생님의 고향 정주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했지요? 「예」 그러면 선생님 고향에 한번 가 보고 싶습니까? 「예」 선생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인데 옛날에는 평안도 사람을 되놈의 사촌쯤으로 생각했지요? 선생님은 그런 족속입니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여러분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얼마만큼 인연이 있습니까, 세계적입니까? 절대적입니까? 이런 말은 있지도 않지요? 그래도 한번 대답해 봐요. 「절대적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복지건설을 위하여 고향 땅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구의 고향 땅을 찾아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고향 땅을 찾아가야 되겠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의 고향 땅을 찾아 가야 되겠습니까? 「선생님 고향입니다」 그러려면 이북 공산당을 전부 몰아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삼천만 민족을 전부 통일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은 토끼 사냥도, 노루 사냥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데리고 가까운 데 한번 갈까 합니다. 더구나 일생의 소원이요, 천추만대의 한이 맺혔다는 사람 한 사람쯤은 데려갈지 모릅니다. 데려갔으면 좋겠습니까? 「예」

삼천만을 통일하려면 삼천만 민족 전체를 통일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통일사상이란 무슨 사상입니까? 문선생의 사상입니다. 이 문선생의 사상을 삼천만 민족 모두에게 집어넣어서 사상 무장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노루 사냥을 할 때 노루새끼들을 살살 얼려 몰아 가면 처음에는 바위 틈에 숨고 하지만 몰아 올라가면서 꼭대기까지, 어찌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몰지 않아도 `나 살려주소’ 합니다. 그러면 절을 받고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 방위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에서 통일교회를 반대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음대로 해쳐 보라고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들이 파헤친다고 해도 통일사상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떠받듬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바쁩니다. 6년 내지 7년 전부터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욕을 먹으며 이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붉은 무리가 산천을 깔고 있는 이북에는 여러분이 사랑하고 따르는 스승의 고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여러분이 이 스승의 고향 산천을 찾아가 봐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통일사상과 통일주의를 따르는 수많은 민족, 인류가 그곳을 자기의 복귀의 본향이라고 절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내 고향의 강변, 그 고향을 사랑하고 그 고향을 위해 죽어 그 고향의 흙에 묻히고 싶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 만민이 흠모하고 사모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통일주의입니다. 기필코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21-163
통일용사의 갈 길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에 그런 매를 맞아 가지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한이 됩니다. 그러니 그러한 복지 탈환을 위해서, 본향 땅을 탈환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투쟁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복음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악랄하고 잔악한 공산 무리들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 가지고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추방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적 사상입니다.

요즈음 주위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사태들을 바라볼 때 이 나라 이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슬퍼하면서 생각합니다. 이 민족 이 나라로부터 통일교회는 몰리고 쫓김받고 있는데 이 나라 이 민족은 우리에게 이런 사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제3국에서 이 사상을 찾아 국가의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민족정기로 삼겠다고 하게 되면 한국은 불쌍한 민족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일본의 현황을 보면 그러한 단계로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한국의 정부 고관들이 외국에 들락날락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처음 알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창피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갔는데 미국의 저명인사가 당신이 한국에서 왔다는 데 통일교회(Unification Church)를 아느냐고 물어서 모른다고 했다가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각성을 해야 됩니다. 세계적인 제3이스라엘로서 특권적인 권한을 갖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세를 갖추어야 됩니다. 한국의 얼과 배달민족의 피와 혼을 이어받고 태어났으니 이 민족의 비참상을 제거시키고 새로운 전통을 남겨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신념입니다. 때문에 이 민족에게는 통일교회 활동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쳐오는 태양빛을 바라볼 때, 자유의 천국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만백성은 물론이요 산천초목까지도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마음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의 그날을 위해서 오늘 나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신도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 때도 이 땅 위의 악당들을 몰아내겠다는 결의를 하고 젓가락을 들 때도 이 땅 위의 모든 악당들을 처치하겠다는 결의에 불타야 합니다. 언제든지 선의 천국, 제3이스라엘을 창건하기 위해 나서는 숨은 용사요, 하늘의 밀사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제3이스라엘 창건을 위해 갈 길을 재촉하여야 할 것이 우리 통일용사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내 손으로 이 땅 위의 악당들을 제거할 날이 올 것이다’하는 소망을 갖고 있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입니다.

소년시절에 매를 한 대 맞으면 그 가족이 전부 사과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더운 피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의분을 갖고 있는 사나이인데, 지지리 못난 거지, 물건을 팔러 다니는 거지 차림의 여인들까지도, 통일교회 문 아무개’ 하며 비웃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한창 선생님을 반대할 때 국민학교 2, 3학년 아이들을 붙들고 `너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고 아느냐?’ 고 묻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들이 선생님의 얼굴을 알 리가 없지요. 그 때는 고무신짝을 신고 미군 작업복을 검고 물들인 옷을 입고 있었으니 알 수 있겠습니까? `너희 엄마가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든, 나쁜 사람이라고 하든?’ 물었더니 그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장로교인인데, 통일교회는 이단이라 망한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그래 소문 잘 냈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 가슴에 이 민족의 소망의 터전을 막는 선전을 누가 해 놓았는가! 바로 기독교인들이 한 것입니다. 이것을 힘으로 대결해서 멸망시킬 것이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밤이 되면 어서 빨리 아침이 오길 고대했고, 아침이 되면 저녁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저녁이 되면 밤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으면서 개척의 길, 선구자의 길, 순례자의 행각을 마다 않고 오늘날의 통일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여기에는 풍운한설이 어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슬픔의 장벽이 몇 번이고 선생님의 가는 길을 막았지만 그때마다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모든 숱한 슬픔의 여건들도 선생님의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삶의 원천이 되었고 하늘편적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반대받으면 반대받을수록 우리는 시선을 세계에 두고 나왔습니다. 이 민족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앞으로 세계가 환영하는 민족이 될 것이요, 오늘날 대한민국 삼천만 배달민족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가 고대하는 그때는 명실공히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발걸음을 맞추어 세계로 행진해야 되겠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막을 수 없는 자유의 천국무대를 이루기 위해서 주력을 하고 정성을 다하여 싸워 나가야 합니다. 쓰러지더라도 그러다가 멋지게 쓰러지는 것을 사나이의 보람으로 생각하며 긍지를 갖고 이 길을 가야 할 것이 통일 청년 남녀들의 갈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21-165
복귀의 주류
우리는 복귀의 주류 행각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담가정의 아벨이 피를 뿌려 놓은 복귀의 노정을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잔악한 환경에 몰리면서도 죽음 길에 찾아든 환경도 타파해 버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천신만고한 복귀의 행각을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고향 산천을 다 버리고 방랑자가 되어 밤이면 별을 바라보고, 낮이면 벌레소리를 친구 삼아 천명을 따라가던, 그 모든 사연도 복귀의 인연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바로 궁중에서 왕자의 권한을 다 버리고 몰리는 이스라엘, 핍박받는 이스라엘, 고생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누더기 옷을 입고 나선 모세도 복귀의 행각에 모델적인 하나의 기적을 남기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4천년 역사의 이스라엘 민족을 탕감하여 수습하기 위해 세례요한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책임 다하고 천적인 인연을 따르기 위하여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준비한 그의 모든 생애도 복귀의 행각 노정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받들지 못해 천추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승리의 기원을 세워 천국을 건설하고자 한 예수님의 소망이 오늘날 전민족적인 한으로 남아졌습니다. 세계의 기독교가 희생의 피를 흘리며 싸워서 민주세계를 이룬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 얼마나 많은 피의 대가가 깃들어 있고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이 고여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그 한의 요건과 피의 요건을 찾아 온 것이 통일이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자신의 관점이나 생활권에 갇혀 있어서는 아무것도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마음 한 뜻 한 행동으로 하나의 폭탄이 되어 어느 한 때에 적진에 뛰어들어 폭발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 몸에, 이 가슴에 화살이 엇갈려 박혀도 죽음 도상에 나가 수난을 당했지만 선생님은 천명을 따르기 위하여 죽을래야 죽을 수 없고, 이 길을 안 올래야 안 올 수 없었습니다. 네 활개를 펴고 낮잠을 잘 수 있는 그날까지 참기를 생활 철학으로 삼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참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생애의 원수를 갚고 악에서 탈피하여 선의 기원을 창설하기 위해 대도의 원칙을 이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통일의 이름을 나타내 길이길이 빛낼 수 있는 전통의 기틀을 세우고 그 자체가 하나의 화신체가 되어 `아무개’ 하면 역사가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눈물이면 눈물, 피땀이면 피땀, 그 피눈물이면 피눈물을 하늘땅을 위해서 흘리고, 하늘땅을 부여안고 인연지울 수 있는 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형제들의 생활원칙입니다.

이러한 내용과 사명이 있는데, 오늘날 삼천리 반도가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작년에 선생님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공산당에 대해서 결심을 하고 왔습니다. 일본의 국민도, 자민당도, 대학교수도, 그 누구도 못하는 것을 해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그들의 질서가 잡힐 때에 그들은 눈이 뒤집혀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인격적인 모독을 합니다.

21-167
복귀섭리노정의 주류인 통일교회의 주류 사상
앞으로 통일교회는 철저한 관으로 무장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민족전체의 선두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뜻과 하늘과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는 결의를 하지 못해 가지고는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충신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결판지으려고 하는 긴급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의 모든 주의와 사상을,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요한, 그리고 예수님과 그의 12사도와 수많은 기독교인이 지금까지 기대하고 소망했던 종합적인 실체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는 길 앞에 나타나는 원수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원수를 축출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통일이라는 거룩한 이념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결의를 갖고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야만 통일신도입니다.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오지 마십시오. 자기 자식이나 사랑하고 자기 아내만을 사랑하고, 자기 집이나 친족을 중심삼을 사람은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만일 그랬더라면 누구보다 좋은 가정의 아버지가 됐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고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고개를 넘어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너무나 험한 길이기 때문에 부모도 이해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아는 사람은 가야 합니다. 눈물과 피땀이 흘러도 피는 피를 통해서 호소해야 됩니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그래도 안 되면 세 번, 세 번 해도 안 되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여기에 선 사람은 다 버리고 나선 사람입니다. 버렸던 것은 하늘이 다시 찾아 주실 것입니다.

이 길이 수십년 걸리더라도 복귀의 행각 노정을 가서 이 민족을 중심삼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해야 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 무리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야할 길 앞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결단이 되어 있느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 하나가 망하는 날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하고, 나 하나가 흥하는 날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이 흥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망하는 날에는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망하는 자리는 자기를 위해 나라를 팔아 넘기는 자리요, 흥하는 자리는 자기를 희생시켜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삼천만 민족이 나 하나 때문에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위신과 권위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개인, 그러한 가정, 그러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엄숙한 권위를 선포하고, 말없이 맞으면서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인하여 스스로 무릎을 꿇고, 따라올 수 있는 기반을 닦지 않고서는 완전한 승리의 기반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언이설로 그들을 설득시켜서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의 실적을 중심삼고 반대하는 무리들을 탄복시키고 눈물로 호소하여 그들을 회개시켜 손에 손을 붙들고 결의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연을 이 민족에게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민족을 새로이 부활된 역사적인 민족으로 끌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통일교회주의, 통일교회사상도 다시 전복(顚覆)될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주류인 동시에 통일교회가 갖고 나가야 할 주류사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이러한 관점에서 생활을 수습하고 사회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최후의 목적인 복지건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향 땅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향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21-169
기 도
아버지, 지금부터 수십년 전을 회고하옵니다. 철부지한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에 민족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그 배후에 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던 그때에 고요히 분부하시던 당신의 음성이 새롭나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자처하는 그 자리보다도 눈물과 피를 흘리는 자리에서 입술을 깨물며 아버지 앞에 맹세했던 그 시간이 그립나이다. 인간들끼리 교류하는 그 자리보다도 몰리고 쫓김 받으면서도 하늘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그립나이다.

현재 이 땅의 인간들은 모르나 저희들은 하늘을 찾아가는 자녀의 길이 그러하고, 자녀들이 가야 할 인연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저희가 죽음의 길을 자청하여 가기로 결의할 적마다, 하늘은 그 길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의 길로 엮어 나오셨다는 것 또한 알았나이다.

아버님, 통일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들이 스스로 그 무엇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아무것도 갖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왔사옵니다.

통일의 이념, 이것은 하늘이 저희에게 주신 이념이고, 이 땅에서의 실천을 통하여 하늘과 인연된 이념인 것을 확실히 아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늘로부터 왔으니 하늘 것으로 거두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두어지는 데는 말씀 자체가 그냥 그대로 거두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말씀을 실체를 요구하기에 실체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말씀이 말씀 앞에 앞장서서 갈 수 있는 아들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 이념을 좋다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이념을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버지의 한인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아 아버지의 말씀을 끌고 갈 수 있는 실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말씀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말씀으로 심판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도 그런 아들딸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남이 알지 못하는 심정적, 내정적 사연을 통해서 하늘의 인연을 알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천세 만세 그 어떤 한을 품고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체험을 아버님께서 저희에게 일일이 찾아와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나갈 수 없고 웃음거리로 흘러갈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요, 엄연한 실제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그러니 산 역사의 사연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씨가 되어서 싹이 나고 가지가 되어 그 가지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동산에서 수확될 수 있는 향기의 실체가 되기를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대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아버지께서 통일 제단을 쌓아 올리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수고한 결실의 수확이 오늘날 여기 머문 개체인가를 스스로 뉘우치면서 아버지 뜻 앞에서 일체화되지 못한 자체임을 탄식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복귀의 주류사상을 붙안고 가는 목적은 아버지의 나라를 건국하는 것이옵니다. 또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세계를 해원성사하고 복귀하는 것이옵니다. 새로운 천국의 이념을 오늘 이 지상에 이루어야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앞에 놓고 역사과정에 그 누구도 실천으로 옮겨 이룬 실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저희들이 가야 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펐던 아버지의 심정 앞에 저희들은 기쁨의 상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고난과 탄식권내에 계시는 아버지를 저희들이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 앞에 재롱부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저희를 보시고 슬퍼하시던 아버지께서 그 슬픔을 잊으시고 이제는 저희를 붙안고 기쁨으로 품어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저희를 보고는 슬퍼하실 수 없게 해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과 이 세계와 이 땅에 대한 불쌍한 마음, 죄악이 팽창한 이 모든 실상을 걱정하시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저희를 보고 참을 수 있도록 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엄숙하고도 역사적인 사명을 오늘도 다짐하고 내일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여기에 당신의 전통적인 심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녀가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천배 만배 주입시키시어서 하늘 앞에 새로이 설 수 있고 새로이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통일의 무리에서 떠나게 될 때는 슬픈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길도 알고 보면 가슴을 억제하고 살 수 없는 애달픔이 깃들어 있는 길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이 땅 위에 부모가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요, 형제가 없어서, 혹은 생활권이 없어서, 재산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오라 하늘이 이렇듯 비참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눈물 없이는 갈수 없는 길이 통일의 길이요, 싸우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 통일의 길인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것을 전통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아들딸 가운데, 이 스승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온데 오늘 그들의 마음에 무엇을 남겨주었사옵니까? 죽든 살든 하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땅의 전부를 뿌리치고 하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 스승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눈물이 뒤섞인 가운데서 눈물로 전하고 눈물로 몸부림치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것을 스스로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이 엇갈리는 가운데에서 뜻을 놓고 오늘도 저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그 가슴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눈물을 억제하는 아버지의 그 가슴이 얼마나 비통한가 하는 것 또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도리어 아버지의 슬픔을 동정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아들딸을 아버지께서 찾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 어디 한 곳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준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준비된 하나의 마음도, 집도, 동산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땅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음으로써, 우리가 살아 싸울 준비와 결의를 그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께서 위안 받으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를 원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상이 무어라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우리의 사명적인 책임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부모가 죽었는데 어찌 저희들이 웃을 수 있겠사옵니까? 사랑하는 부모가 슬퍼하는데 어찌 저희가 기뻐할 수 있겠사옵니까? 저희들이 천주의 인연을 따라 갈 수 있는 아버지의 모든 전체의 위업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로 삼아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바라며 지금까지 생애를 걸고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이 길을 따라 후대에 후손들이 올 수 있는 하나의 산 증거적인 표준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민에게 이렇게 가라고 가르쳐 줄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는 실체로 삼아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나라, 그 세계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신으로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늘이 오기를 고대하신 아버지 `이 영광 받으소서’하며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치고 빈손으로 돌아서서 이 땅의 죄를 다시 용납해 달라고 눈물 뿌릴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것 삼아 가지고 기뻐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도 자기 혼자만 모시고 혼자만 행복하겠다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우리는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여 세계 만민을 구하고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만세 한이 된 것을 죽더라도 이 땅 위에 재림부활하여 실천하겠다는 아들딸이 되고 아버지의 심정을 이어받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참석한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시고 이날의 모든 인연을 다시 한번 명심하여 하늘의 깊은 사정을 깊이깊이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소원하는 그날을 위하여 저희들이 참음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시고, 만사에 만전을 기하여 패자가 되지 않는 완전한 자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믿고 당신이 의지하실 수 있는 아들딸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이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곳을 향하여 마음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싸움터에서 우리를 만날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교단 위에, 수많은 민족 위에, 새로운 시대의 경종이 울려오는 것을 확신시켜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