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7 to 20-65: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자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자
1968.04.18 (목), 한국 전본부교회

20-47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자
수련기간 중에 여러분과 시간을 같이하려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20-27
이번 수련회의 의의와 특징
금년은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는 첫해이고, 또 여러분들이 받은 이번 수련회가 1968년에 들어서는 처음이고, 또 제1차 7년노정이 끝나고 처음으로 가지는 수련회이니만큼 상당히 의의가 큰 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과 많은 시간을 같이하려고 했었고, 여러분도 본부에 왔으니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수련회를 마치고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수련회에 올 때의 마음과는 달리 돌아가야 하는 지금의 마음은 여러 모로 착잡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집이면 집, 지역이면 지역에서는 돌아올 여러분을 상당히 고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에는 전과는 달리 외부 강사들을 많이 초청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대외활동에서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웠고, 또 그들이 인식할수 있는 평형기준에 섰다고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들음으로써 이중의 이익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수련생들에게는 흠모하고 선망하는 어떤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대학교에 있는 학박사들은 얼마나 훌륭할까? 대학교를 졸업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한국에서 저명하다는 인사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강의를 들음으로써 여러분 자신과 비교하고, 비판하고, 관찰하고, 타진해서 얻어진 결과가 많을 줄 압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떠하다고 평가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내세우는 어떤 기준에 대해 내가 평할수 있다는 그 입장 그 자체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또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이념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여러 면으로 생각한 바가 많으리라고 봅니다.

또 한 가지의 이익은 그 사람들에게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항녕 교수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강의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했었는데,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의 외모를 보고 처음에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할 말을 다 못하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강의를 하는 동안 ‘아차! 내가 잘못했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 우리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자기의 지식기준, 혹은 현재 사회적인 지식기준과 우리가 갖고 있는 인격적 기준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생각으로 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꼈지만 강의하는 도중에 자기를 제어시키고 자기를 재평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크나큰 교훈이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느낀 사실은 그가 어느 집회를 가거나, 어느 공식석상에서 서게 되더라도 생각날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청년들을 외적으로 보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질문하는 내용을 보고는 ‘젊은 사람들이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떠한 공식석상에 서더라도 대중을 바라볼 때, 그런 모습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서 생각나는 것이 통일교회 수련생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번에 우리가 그 사람에게 좋은 자료를 주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20-29
외래 강사들을 초청한 목적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은 갖추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배경이 어떻게 되어 있고 그 배경을 통하여 나타난 사실이 어떠한가가 문제라는 것, 즉 현재 나타난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다녀간 교수들은 반드시 ‘통일교회 갔더니 뭐 어떻더라’ 하고 함부로 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강단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고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많이 느끼면 많이 느낄수록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사람들을 대했으니만큼 종교 문제가 나오면 반드시 통일교회 얘기를 더 많이 할 것입니다.

그들은 고위층을 대할 수 있는 관계를 갖추고 있으니 그 사람들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를 간접적으로 천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 좋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런 일을 해봤는데, 앞으로는 각계 인사들을 전부 초청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그들이 와서 강의한 내용은 그들이 연구한 전문 분야의 골자입니다. 이것을 불과 한 시간 반, 또는 두 시간 이내에 전부 배운 것입니다. 만약 책을 한 권 출판하려면, 한 20여 명 초청하여 강의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이 강의한 것을 모으면 좋은 책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에 서게 되면 자기의 자랑을 하려 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 중에서 최고 우수한 부분을 대중 앞에 내놓으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강의하는 내용은 그들 나름대로 주장할 수 있는 것 중의 최고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앙 일변도였지만 이제는 사회적으로 그런 사람들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강의를 접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서 이번에 외래 강사를 초청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루밤만 자면 여러분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돌아가서 무슨 말을 할 것입니까? 사람은 어디에 출타했다가 돌아가게 되면 선물을 가져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기 왔다가 돌아가는 선물로 무슨 말을 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쁘게 할 것입니까?

어떤 초청을 받고 강의를 하게 될 때, 제일 큰 문제가 처음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 마디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돌아가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제목은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자’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20-50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
이제 여러분이 집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말을 해야 될 것입니다. 비록 집을 떠났다 돌아가는 기간은 10여 일에 지나지 않지만 돌아가는 그 자체에는 크나큰 변동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할 것이냐? 남의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이 밥 먹는 것을 구경만 하고서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실감이 안 나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도 실감이 안 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들으나마나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나서 어떻게 어떻게 먹었다고 하는 말은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이번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면 자기 자체에 변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란 좋은 의미의 변화입니까, 나쁜 의미의 변화입니까? 어떤 의미의 변화가 제일 좋겠습니까? 물론 좋은 의미의 변화입니다. ‘좋다’는 데는 한도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출세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동기를 포착하는 그 시간은 영원한 시간이 아니며 많은 시간도 아닙니다. 그것은 똑딱 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래 걸려서 하는 마음의 결정도 천상에서는 극히 순간적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이렇게 순간적으로 결정된 것을 전체에 어떻게 반영시키느냐에 따라 사회를 혁명할 수 있고, 역사를 혁명할 수 있으며,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가지고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무엇인가 달라지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내적인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다, 또는 스스로는 주체할 수 없는 폭발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어느누구나 출세하기를 원하고 있고, 성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대한민국은 세계에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자는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에 있는 사회단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대한민국에 말할 수 있는 단체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 말을 들을 대상이 누구겠습니까? 자기 이하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기 단체내의 사람들보다도 더 차원 높은 상대를 대하여 말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감동시키려고 합니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욕구인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함으로써 보다 더 큰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말을 들을 수있는 대상으로 요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다 아는 이야기지 뭐. 먹고 쓰고 난 나머지, 껍데기, 찌꺼기, 꽁다리지. 그까짓 것’ 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알지 못했던 보다 더 행복스럽고, 보다 더 가치있고, 보다 더 보람있는 것을 추구할 때 비로소 진지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음을 합하여, 공통의 목적점을 취하여, 둘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릴 때의 목적은 개개의 목적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자기보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때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 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어떻게 합니까? 선생님은 ‘하나님, 저희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으니 이 세계는 내 것이 아닙니까? 내게 세계를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먼저 잘못했다고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내 욕망이 이러이러하니….’ 하고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먼저 하나님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실 수 있는 재료를 가져야 됩니다.

20-52
말할 수 있으려면 말할 수 있는 재료를 갖추어야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전부다 무엇을 주시옵소서라고 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달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재료를 구해야 합니다.

그럼 그 재료가 어떤 것이겠습니까? 웃고 얻을 수 있는 재료입니까? 죽고 얻을 수 있는 재료입니까? 웃고 얻을 수 있는 재료라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이 세계에 왔다 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웃으며 얻을 수 있는 거라면 벌써 다 훔쳐 가고 빼앗아 갔을 텐데, 지금 여러분에게 나눠 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재료는 여러분이 웃고 찾을 수 있는 그런 재료가 절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그 재료를 취할 것이냐? 죽기내기로 해야 됩니다. 죽기내기를 하는데, 손 하나나 팔 하나를 잘라 버리겠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 손 다 자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이며, 두 손을 자르겠다는 사람은 두 손과 한 다리를 자르겠다는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이며, 또 그 사람은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내놓은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목숨을 내건 사람에게는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했으면 목도 자르라고 내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는 말씀이 있듯이 죽고 보니 그곳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필요한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재료는 악과 바꿀 수 없고, 지상의 악을 제거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또 그 재료가 하늘 땅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일 때는 하늘 땅을 모시고 와서 그 재료와 바꾸자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려면 말할 수 있는 재료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료가 건달꾼 같이 뒷골목에서 훔쳐 온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 재료를 가지고 말을 하면 모두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그런 재료를 가지고는 내 양심이 자극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재료를 찾기 위해 피땀을 흘린다면 하늘땅으로 보나, 양심으로 보나, 과거 현재 미래로 보나 부끄러운 일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런 재료를 가지고 있습니까? 옛날의 충신 열사들을 왜 지금의 사람들이 추모하고 그 인격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만민이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가야할 표본을 남겨 놓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 재료로 가야 할 길에 다리를 놓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자신의 부활권내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사람들이 지금가지 그 길을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래서 말할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20-53
인정받을 수 있는 재료가 있어야 참이 번식된다
여러분은 원리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럼 그 원리가 누구의 재료입니까? 들은 재료입니까? 찾은 재료입니까? 찾은 재료라면 어떻게 해서 찾은 재료입니까? 건들건들하면서 힘없이 파 가지고 찾아질까요? 그렇게 해가지고 찾아지겠습니까?

여기에는 천태만상의 사람이 다 모였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노래를 하고, 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천태만상의 차이가 여기서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재료는 누구의 재료입니까? 그것은 누구에게서 찾아지는 것입니까? 또 어떻게 찾아지는 것입니까? 그것이 찾아지는 높이와 넓이와 깊이와 폭에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에 비례해서 발산하는 빛의 광채도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찾기 위해 밤을 새워 봤어요? 밥을 굶어 봤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잠을 자서는 안 될 텐데, 이놈 왜 자꾸 자려고 그래?’ 하고 자책해 봤어요? 「안 해봤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다는 재료가 어떤 것입니까? 종이 쪽지 같은 것입니까? 혹은 쇠막대기 같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못 같은 것입니까?

자식이 부모 앞에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습니다. 저것은 저래야 되고 이것은 이래야 됩니다’ 하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식이 가진 재료가 부모에게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효자냐? 자식으로서 부모 앞에 나타내는 일이나 행동이나 생활에서 제시하는 모든 재료를 부모가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선 아들이 되어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충신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을 대신하는 공적인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말 하나에서부터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전부 긍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나라의 역사에 빛날 수 있는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충, 효, 열의 근본을 헤아려 볼 때, 듣고 나서 행하는 것은 충이 아니요, 듣고 나서 행하는 것은 효가 아니며, 듣고 나서 행하는 것은 열이 아닙니다. 자기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자리에서 행하는 것이 충과 효와 열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행하면 참이 번식되어 나가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재료를 중심삼은 사연 가운데 참이 건설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누구의 말씀으로 들었습니까? 강사의 말로 들었습니까, 협회장의 말로 들었습니까, 선생님의 말로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말로 들었습니까? 내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이건 이런 말씀이다’ 하고 들었습니까? 천년 한을 품고 오신 아버지가 자식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어 명령하는 것처럼 엄숙한 자리에서 들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적진을 향해 출전하는 아들의 입장에서 들었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서 이 말씀을 들었습니까? 여러분들이 어떠한 입장이라는 그 자체가 말할 수 있는 재료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 말씀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의 과거는 어떠했으며, 오늘 현재의 나는 어떻습니가? 또 내일의 내 자신은 어떠한 것입니까? 과거보다도 현재, 현재보다도 미래가 발전적이고 실체적인 산 재료의 형태를 갖추어서 가정이면 가정, 부락이면 부락을 붙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재료는 부락 전체가 공의의 것으로써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55
우리가 고생한 것이 산 재료
이 말씀이 이런 역사과정의 서러움을 안고 찾아졌기 때문에 이 서러움의 사정을 내가 체휼했다면, 그 서러움에 뒷받침될 수 있는 인격적인 기준을 내 스스로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서러움과 피흘림 이상의 시련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결의와 맹세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을 실천한 후에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자리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대신하여 자기의 위신을 굽히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재료를 지닌 입장, 즉 실천적인 결과를 지닌 입장에 서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들은 것을 교회에 돌아가서 말하고, 가정에 돌아가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통일교회를 대표한 자로서 민족을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은 아직 못 되었습니다.

민족을 대하여 말할 수 있으려면 민족이 요구하는 재료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 민족이 난세에 처해 있거나, 혹은 비상시에 처해 있을 때, 그런 환경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 즉 그 사람들이 공인할 수 있는 산 재료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재료를 갖지 못한 사람이 민족을 위하여 말한다고 하면 그는 민족 앞에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산 재료가 전체적으로 강력히 반영될 때,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혁명의 봉화가 들려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통일교회는 이나라, 이 민족 앞에 무슨 말을 할 것이냐? 선생님은 이 민족 앞에 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선생님이 만든 것이 통일교회이며, 내가 여러분을 이끌고 지금까지 지탱해 나온 과거였습니다. 그것이 다 사실입니다.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온 7년노정의 행로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가 민족 앞에 비판을 받고 규탄을 받았지만 그들이 우리가 갖춘 재료를 감소시키거나 격퇴시키지는 못 했습니다. 도리어 때가 옴에 따라 불이 붙어 나가는 데에 나무를 더 보태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불이 더 붙어 활활 타오르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비쳐진다면 우리는 국가나 민족 앞에 절대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당한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 온 과정은 역사를 더 빛낼 수 있고, 이 시대가 우리에게 말없이 항복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고 욕을 먹으며 다니던 그 모든 생활이 우리에게는 흘러간 시대에 한의 조건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소망의 세계 앞에 하나의 자랑의 조건이요, 말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우리의 재산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취지와 그런 목적을 중심삼고 민족 앞에 더욱더 외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과거에 그런 경험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한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경험은 자기의 결심 여하에 따라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핍박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핍박받을 수 있는 환경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은 세계를 인류를 대신하여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세계 인류가 하나님을 위해서 말할 수 있는 인류가 되는 날, 바로 그때가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0-57
인생에 있어서 좋고 나쁜 기준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재료는 어느 하나라도 버릴 수 없습니다. 눈물의 인연과 심정의 인연과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 자리는 슬픈 하나님과 완전한 친구의 입장에서 동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자연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관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눈물로써 아버지 앞에 나아가면 그 눈물을 통하여 아버님이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공분심과 의분심을 가지고 원수의 진영을 향하여 출전하겠다고 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동반자, 생활적인 동반자, 투쟁적인 동반자의 과정을 거치고, 나아가 영원히 행복한 동반자가 되어야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기 나름대로 세계에 무엇인가 남기기를 바라왔고, 남기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 목표가 자기가 소망하던 기준을 중심삼고 노력한 결과로 남게 된다면 그 재료는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세계에 소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이 소망하시는 천국이념을 성취해 드리기 위하여 살고, 그 생활이 하나님께서 고대하고 있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의 전반적인 내용과 융화할 수 있고, 통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산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재료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사연을 대표할 수 있는 재료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이 지우개가 그런 재료라면 이것은 만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물건이 지극히 미미하지만 승리를 찬양할 수 있고 영광 가운데 찬란히 빛날 수 있는 인연이 깃들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돌려 드리는 영광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우리 인생에 좋고 나쁜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우주이념, 만민이 공통적으로 목표하는 최후의 하나의 세계 이념입니다. 그런 이상세계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부끄럽지 않게 나타날 수 있는 존재라면 그는 영원히 이상세계에 존재하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을 가지고 오늘 통일교회는 이 땅에서 태동되어 개척의 행로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20-58
복귀의 사명
이제 여러분은 사회에 나가서 통일교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되지 않으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쳐야 됩니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간단하다면 누구나 다 할 것이지만 쉽지 않은 것이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손댔다가도 대번에 떨어져 나가고, 응전했다가는 패배의 서러움을 맛보게 됩니다. 이 하늘의 높은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금까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자식이 잘못했으면 그 자식들을 불러 놓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어버이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기 자식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없이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기 가정을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심어 주시고자 하는 그 재료와 세계 인류의 사상적인 깊은 골짜기에 남겨 주시고자 하는 그 재료를 죽는 날까지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인 것입니다. 통일은 여기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산꼭대기에 통일이 벌어지게 되면 골짜기를 메워야 됩니다. 산이 평지가 될 때까지 골짜기를 메워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통일이라야 평면적인 통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제재를 받지 않고, 어디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 통일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은 골짜기를 이룬 것이며, 골짜기를 메우는 것이 복귀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처량한 골짜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 골짜기를 메우기 위하여 그 골짜기에 샘물을 터지게 하고 흙을 부어 평지를 만드는 사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복귀과정에 있어서 재료로 등장할 인물들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 나라와 민족을 대표해서 깊은 골짜기의 시련 가운데에서도 높은 이념의 환경에서 이루어질 행복을 그들 앞에 보여 주기 위해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같은 심정으로 투쟁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할 때는 그 앞에 환경 전체가 굴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 그런 재료를 지닌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불이 통하고 역사의 맥박이 울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교훈의 말로써, 양심의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감동을 받게 될 때 혁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체성을 지닌 사람은 백만장자가 되려는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눈물과 피와 땀이 엉클어져 있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의 교차로를 몇 번이고 왕래했다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공인하게될 때 그 가치는 청사에 길이 빛날 수 있게 되는 것이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20-59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지 않은 입장에서 영광을 원하셨지 십자가를 통한 입장에서 영광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원하신 영광의 세계는 책임을 다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영광의 세계인데, 이스라엘이 반대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 영광의 세계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를 영광의 세계를 이루는 재료삼아 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면 그것은 천만인이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관문이 되고, 그런 관문은 비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피눈물이 흐르고 양손과 양발에 피가 흐르고 가슴이 터져 핏줄기가 뻗쳐 나가는 걸 보면서도, 그 핏줄기 넘어 보이는 영광의 세계를 바라보며 갈 수 있는 인격자였기에, 역사는 기필코 그분의 운명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기독교 문명권에 흡수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상천국을 창건하자’는 통일교회 이념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창건하기 위해서는 창건할 수 없는 자리에서 천국의 맛을, 아니 그 이상의 맛을 느끼지 않고는 지상에 천국을 창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은 순순히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기 위해서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가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순리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역리의 역풍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러한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 때는 다 도망갈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겠습니까, 이루어 놓은 데서 살겠습니까? 「이루고 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손을 봅시다. 권투 선수나 당수 선수들처럼 손을 많이 쓰면 휜다고 하는데 하물며 지상천국을 이루겠다는 여러분의 손들이 그보다 못하다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손에는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겠다고 하는 신념에 찬 개척자의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통일교 교인들은 선생님 앞에서 꼼짝을 못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나하고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어느 사람이나 귀와 눈과 입과 코가 같고 모든 것이 같을진대 무엇이 다릅니까? 그것은 천국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통일교회 원리 말씀은 선생님이 실천해서 이루어 놓은 후에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그 점이 여러분과 선생님의 다른 점입니다. 별의별 것들이 다 나와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이용하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나라에 가서는 이용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되돌려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하려면 얼마든지 이용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런 사람의 선조의 복까지 빼앗아다 그것 때문에 더 핍박받고 더 수고한 통일교회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즉 필요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필요한 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20-61
고생의 열매는 귀하다
천국을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앉아서 가야 되겠습니까, 서서 가야 되겠습니까, 누워 가야 되겠습니까, 엎드려 가야 되겠습니까, 거꾸로 가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가야 되겠습니까?

그곳에 가려면 거꾸로 가야 됩니다. 발로 가는 것은 정상이므로 손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앉아서 먹지 않고 거꾸로 서서 먹고, 무엇을 볼 때도 거꾸로 서서 보고 전부 다 거꾸로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단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보긴 바로 봤습니다. 우리는 전부 다 거꾸로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눈을 뜨고 살면 우리는 눈을 감고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에는 소망의 천국이 비쳐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눈에는 원수의 속까지도 비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를 악물고 싸우는 최고로 긴장된 자리에서 사는 사나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선생님은 나이가 50이 되어 오지만 지금까지 하루도 편안하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시대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냐? 말할 수지상에 천국을 창건한 후에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현재에 대해서 있고, 미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고생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고생의 나무가 되지 말고, 고생의 꽃이 되어야 합니다. 고생의 나무는 누구든지 다 될 수 있지만 고생의 꽃이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야 고생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고생의 향기를 맡으며 고생의 열매늘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생의 열매가 뭐냐? 내가 고생하고 남긴 것은 가락지 하나라도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며, 남루하고 냄새가 나고, 보면 천리만리 도망갈 것이어서, 선조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욕을 한다 해도 천만금을 주고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생의 열매입니다.

내가 비록 개인적으로 남겨 놓았으나, 이것은 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며, 만인이 이것을 원하고 손끝을 이어 가면서 찾으려고 애달파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수고와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내가 생활과정의 일편을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얼마나 고대하고 얼마나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며 알고 싶어할 것인가! 그 심정의 빚이라도 갚아줄 수 있는 재료를 고이 간직했다가 그들의 숙원을 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걸레 조작 같은 런닝셔츠 한 장이라 해도 천만금과 바꿀 수 없으며, 그 집이 아무리 누더기 자박지여서 동네 개까지 법석대며 짖고 난리를 피울 것 같은 집일망정, 그 집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어느 국왕의 궁전보다도 더 빛나고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찬란하게 세워진 궁전은 그 한계권내에서 가치를 나타낼 수 있지만, 그 한계권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초라한 집이라도 그 가치는 무한한 가치여서 궁전의 가치를 가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의 맛을 느끼기 위하여 고생의 나무가 되고, 고생의 꽃이 되고, 고생의 열매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 열매야말로 하나님이 끌려들어 오실 수 있는 열매요,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는 열매입니다. 그것이 내 것이다 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천년 만년 공을 들여 떠나라고 기도해도 못 떠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20-62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그런 것인가? 그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누구 때문이라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이구 저 아들 나타났구나!’하고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아버지 어머니는 사회에서 저명인사인데 반하여 자식이 팔다리가 병신이라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아버지가 자랑할 수 있는 자식이 되겠습니까, 걱정하는 자식이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부모가 자랑할 수 있는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자랑하기 위하여 선생님이 지금까지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생님이 자랑 안 하려고 하는데 누가 옆에서 자꾸 들쳐 자랑시키려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재료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자랑하는 것이 미족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국가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고, 국가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하늘나라에 자랑할 수 있고, 하늘나라의 하나님 앞에 가서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20-63
사랑을 통한 재료가 최고의 재료
사랑을 통할 수 있는 눈물과, 사랑을 통할 수 있는 비판과, 사랑을 통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분도 사랑을 중심삼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엄숙한 길입니다. 세계적인 어떠 길보다 더 엄숙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탕감의 길을 거쳐 가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러한 사랑을 체득하면서 내 가정을 위해서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고, 그런 사랑을 지녀서 민족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통하여 내 뼛골의 모든 감정이 합하여져 성대를 통하여 울려 나와 만민의 귀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 앞에는 만민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재료는 하나님도 울릴 수 있고, 역사상의 그 어떤 성현도 울릴 수 있고, 전세계 인류도 울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지닌 주님이 오셔서 천지를 울리고, 천지를 감싸고, 천지에 행복의 꽃을 피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상의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온 세상과 역사 전체를 다 들추어 대조하고 비교하기 전에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사무친 사랑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 사랑을 찾으려는 심정을 가지고 외치는 말과 더불어, 자기의 심정이 기울어짐과 더불어 우리의 눈물과 피땀이 같이하는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와 부활의 역사가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반발하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몰라서 반발했더라도 ‘몰랐다’는 그 점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의 선조와 더불어 부끄러움을 느껴야 됩니다.

오늘 이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이 천지에서 그 재료를 찾아 역사시대로부터 현시대를 거쳐서 영원한 역사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재료가 이 땅 위에 남아질 수 있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 일은 오직 우리 원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계로 이런 수련회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이 민족 앞에 내놓을 재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그런 재료를 지니러면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각 가정의 식구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민족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통일교 교인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되고 하나님께도 기억되는 사람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제부터 그런 재료를 지니기 위해서 그런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책임 여하에 달렸습니다. 여러분, 그런 길을 한번 가 보겠습니까? 「예」

탕감복귀하는 데는 별의별 어려움이 따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의 길도 가야 되고, 거지의 왕초가 되어서 탕감복귀해야 될 곳이면 거지 노릇도 해야 되고, 노동자면 노동자로서 최고의 고난의 자리를 극복해야 되고, 공산당과 싸우는 입장에서도 최일선에 서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이렇게 천태만상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의 가치는 귀중하고 입체적인 우주에 해당할 만큼 넓고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에 해당될 수 있는 자기 인격 수준을 찾아 내는 것도 역사 분야 분야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분야에서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65
기 도
인류는 당신을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라고 부르옵나이다.

저희들은 진정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 그리워 그 아버님과 인연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들은 아버님의 혈육을 통해서 빚어진 내 자신이라는 것을 체휼하였나이다.

자라온 수십 성상, 혹은 자기 연령에 따라 아버님과 인연되었던 과거지사가 과연 아버지와 인연될 수 있었던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님, 뜻을 알고 난 후 지금까지 외형적인 인간의 표준을 중심삼고 나왔는지 내성적인 인간의 표준을 중심삼고 나왔는지, 두 인간의 대상형에서 어디에 내가 속했었는가를 스스로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두 가지의 대상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하였으면, 그런 교회 책임자를 중심으로 세워야 될 것인데 교회 책임자가 그렇지 못하였거든 각자가 아버님을 중심삼고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지 못했던 과거지사가 있으면 전부다 아버지 앞에서 청산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마음 가운데서 제일은 아버지요, 잊을 수 없는 분도 아버지요,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분도 아버지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분도 아버지요, 더불어 살고 싶은 분도 아버지요, 더불어 행하고 싶은 분도 아버지요, 말미암아 같이 싸우고 싶은 분도 아버지라는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버지의 사랑하는 품 안에서 진정한 아들의 인연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분부하신 그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아들이 여기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버지, 그들의 마음을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의 수자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런 아들딸이 하나도 없다 할진대는 이 민족은 쓸데없는 것이옵니다. 세계에 30억 인류가 있다 해도 그 가운데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없다 할진댄 이 인류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역사에 왔다 갔던 사람들이 다 그러했기에 아버님의 눈물이 걷히지 아니하였고, 아버님의 한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타파하기 위하여 나선 통일성도의 부푼 마음이오니,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이 아버지의 심정 가운데서 기억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무엇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뜻을 놓고는 살 수 없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가 되시옵고, 이들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가 되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관계를 저희들이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그 자리에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가운데 민족을 위해 눈물짓고, 그런 입장에서 서서 저희들이 책임진 사명을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는 자리를 저희 자신들이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도 그런 자리에서 상봉하기를 고대하고 계시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과 우리가 상봉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따르는 자녀들을 끌고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랴을 보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기뻐했던 것과 같이 아버지의 심정에서 흘러 넘치는 인연 가운데에서 엉클어질 수 있고, 천정 가운데 맺혀 있는 그 사연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을 인식시키는 책임을 대신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로만 아들딸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심히 두려운 사실이옵니다. 심판을 피하지 못할 입장의 아들딸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과 그리움에 도취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이 땅 위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의 재료를 남겨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의 심정의 인연이 엉클어질 수 있는 하나의 재료를 내 마음 속에 지녀야 되겠사옵고, 생활 가운데 심어야 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1968년 들어 이곳에서 새로이 개최한 수련회에 참석했던 당신의 자녀들이 이제 어떠한 길을 가겠습니까? 이들이 새로운 7년노정에 있어서 선조의 책임을 지고서 역사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시험받고 실패했던 그 과정을 다시 따라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기억하고 찬양할 수 있는 역사적인 흔적을 남길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망 가운데 당신이 고대하던 이 기간에, 아버님, 이들의 마음을 각별히 기억하시옵고, 이들의 마음 속에 잊혀질 수 없는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맹세로 아버지께 각오할 수 있는 심정을 일으켜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의 목표를 향하여 원수들이 집중하는 그 길을 응징하기 위한 최후의 결전을 기다리는 아들딸로서 출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이 저희를 부르고 있사옵고, 사망과 혼란과 도탄 중에서 신음하고 있는 30억 인류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사오니 주저하는 저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난국이 저희 앞에 첩첩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고 처리하여 넘어갈 줄 아는 힘차고 씩씩하고 늠름하고 믿음직한 당신의 자녀들이 이 가운데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이 수련 기간을 무사히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오며, 이날을 마지막으로 하여 각처에 내려가겠사오니 가는 길 전체를 보호하시옵소서. 승리의 결과가 이 민족은 물론 더 나아가 인류 앞에 남겨질 수 있는 재료를 마련하여 천상세계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기뻐하므로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전부를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형제와 식구들에게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