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 to 20-292: 우리의 자랑

우리의 자랑
1968.07.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20-240
우리의 자랑
로마서 8:36-39

[기 도(Ⅰ)]

아버님! 고요한 가운데 당신의 심정을 헤아려서 저희들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의 뜻 앞에 멀어져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인간 시조가 아버님을 저버리고 패망된 타락의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망해 버려야 할 후손으로 태어난 자신임을 탄식하면서, 아버님을 찾아가는 데에 그렇게도 좁히기 어려운 하나의 간격을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망의 뿌리에서 번식되어 나와 가지고 태어난 자신을,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사망의 세계에 얼크러져서 휩쓸려 다니는 자신을 생각해 보면, 아버님께 속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고, 아버지의 능력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은 마음 깊이 본성의 인연을 지니고 있사옵니다. 이것만은 당신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요, 이것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될 인연이 저희에게 남아 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인연을 세우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역사과정을 통하여 저희들을 일깨워 주셨사옵고, 오늘 이 시간도 그것을 위한 아버지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사오니 그 사실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본성이 간곡하게 울부짖는 소원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본성이 실제로 아버지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본성에 대립된 원수의 쓰디쓴 죄악의 뿌리가 저희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본성은 하나님의 힘을 대신하여, 저희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고, 저희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붙들려서 엉클어진 모든 사망의 인연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생명의 출발을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많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사옵고 지금까지 인류를 품어 나오신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크셨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또 아버지께서 참아 나오신 역사과정에서 맺힌 한을 인간을 통하여 해원하시려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전체를 위한 해원도 중요하지만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부활되지 아니하면, 저희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도 부활할 수 없기에 먼저 저희 개체를 위한 해원을 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전체의 식구로서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존전에 개인으로서 모였사오니, 이제 저희들 각자가 아버님이 분부하시는 명령을 다시 한번 들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그 일념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다져 넣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 각자를 통하여 모든 죄악의 요소를 제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심정에 일치되고, 생활 가운데에서 사정이 일치되고, 소원을 가진 입장에서 영원한 미래와 일치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아버님이 찾아 품고 싶었던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아버지께 바쳐지기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저희들이 너무나 미비하고 불충하며 부족한 것을 발견하게 되오니, 여기에 부끄러운 마음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망각해 버리고 아버지 앞에 체면을 모르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개체가 통일의 뜻에 입각하여 보게 될 때,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신임을 명시하여 놓고 그 사유를 밝혀서, 이 시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버님의 긍휼한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간곡히 원하는 마음 자세를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통일의 문을 두드려 찾아 왔사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여기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기에 말씀은 말씀대로 나는 나대로 있어서는 안 됨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실체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말씀에 반대되는 환경을 타개하고 원수들의 화살을 꺾고 넘어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이달을 맞이하여 첫주일이옵고, 일년의 반을 보내고 새로이 후반기를 맞이하여 처음 맞는 안식일이오니 이 거룩한 날에 아버지께서 저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아버지의 뜻 가운데 온전히 사로잡아 주시옵고, 아버지의 능력의 손길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악의 모든 요소를 제하여 주시옵고, 선의 본질을 일깨워 주시어서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이 이곳을 흠모하면서 당신께 경배드리는 시간을 갖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고, 당신을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만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모든 정성을 모아서 아버님께 드리는 경배이오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고,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여기에 화답하여 아버지 앞에 해방의 한날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제단에 수많은 영인들이 땅에서의 한을 풀어 달라고 요망할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을 기하여서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이 시간도 한국 땅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이 정성들이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전부는 뜻 하나를 위한 것이요, 당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오니, 그들이 간구하는 모든 뜻을 살피시어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성취시켜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 일본에서 왔던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오늘 돌아가게 되었사오니 친히 같이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가고 오는 전부가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머무는 것이나 혹은 활동하는 것도 당신의 영광이 아니면 되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본의 모든 백성들은 당신 앞에 복귀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는 자들을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하늘이 사자로서 받아 주시옵고, 그들을 세우시어 그 땅 위에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자리에 모인 부족한 자녀들에게 새로이 분부하고 권고하여 주시어서 이 시간 새로운 약속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데 부조함이 없는 자세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정병으로 무장을 하고 적진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족한 저희들이 모여서 경배드리는 이 한 시간을 친히 아버지의 은사로 품으시옵고, 거룩한 은사로 시작하여 결과도 거룩한 은사로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243
기 도(Ⅱ)
아버님, 만유의 주인 되시는 당신 앞에 온 천지만물은 영원무궁토록 찬송을 돌려 드리기를 원하옵니다.

어느 하나 당신의 인연 가운데서 벗어나서 지음받은 존재가 없기에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빚어진 온 천지만물은 아버지의 영광을 높이고, 아버지의 거룩함과 심오함을 드러내어, 아버지의 무한한 가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온만물의 중심으로 인간을 지으실 때는, 아버지의 내성적인 전체와 외형적인 전체를 겸하여서 만물을 대표할 수 있는 아들의 형상, 딸의 형상으로 빚어 만드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아버지의 마음속에 영원히 영원히 있어야 할 존재이었사오며, 아버지와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었사옵니다.

만물도 그런 인연 가운데 인간과는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함께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깃들 수 있는 천국에서 존재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영원한 승리의 자리에서 좋아해야 할 것이었으나, 인류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렇듯 비참한 역사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의 결과로 인간만이 비참하게 된 것이 아니라 만물도 비참하게 되었고, 만물만이 비참하게 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비참한 자리에 놓일 수 밖에 없던 이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이처럼 슬픔의 역사를 출발하게 된 모든 여건들을 완전히 제거시켜야 하는 것이 인간의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분담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 책임분담 과정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 천상세계에 있는 수많은 선한 영들은 아담 해와 창조 당시에 협조하던 선한 천사세계처럼, 제2의 터전을 바라보면서 소망의 한마음을 갖고 이 땅을 대신하여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역시 당시에 천사세계를 중심삼고 움직이던 방향과 반대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불쌍한 인생들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슬픈 역사를 거슬러 나오고 계시오니 이처럼 수고하시게 된 동기는 우리들의 선조가 잘못한 탓이었사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것을 복귀하여 해방을 보시기 위해 수고하시니, 이것이 아버지의 노고의 역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생활해 나가는 역사의 한부분 중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저희 개체의 해원성사를 하여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수고 앞에 스스로의 면모를 세울 수 없는 불초(不肖)한 모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렇듯 슬픔의 역사를 남기게 한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슬픔의 흔적을 지닌 저희들이 오늘 아버지의 존전에 다시 모였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부족한 몸들이옵니다. 이렇게 불초한 죄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나이다.

하늘의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없고 부활의 은사를 받을 수 없는, 패역무도하고 몰상식하여 당신의 뜻 앞에 도저히 설 수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그러나 당신은 긍휼하시고, 자비하시고, 사랑의 본체이시기에 그와 같은 저희들을 지금도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 그것을 알았기에 부족한 몸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부끄러운 자세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옵니다. 아버님 앞에 저희들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마음 깊이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라 부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 나왔사오니, 아버지여, 찾아오셔서 긍휼의 심정으로 저희들을 일으켜 주시옵고, 아버지의 생명의 인연을 통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가 천지를 창조한 만유의 주인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분과 일치된 이상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 나서 몸둘 바를 몰라하고 아버지의 은사에 보답할 길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려야 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또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사탄의 혈통을 받아 온 흔적으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 피살을 갖고 있을 뿐이요, 저희들에게 속한 전부는 원수의 것으로 당신의 탄식권내에 있기 때문에, 당신 앞에 제물로서 세워질 수 없는 것들이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이 모두를 저버리고 벌거숭이와 같은 몸과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님께 안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저희가 가진 관념과, 저희가 아는 모든 것을 일체 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지식이, 목적이, 생활이 온전히 당신을 위하는 것이 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시봉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이 시간,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친히 분부하시게 될 때 스스로 저희의 전부를 다 살라 버릴 수 있는 마음들을 가지고 부복한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경배드리는 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옵시고, 세계에 널려 통일의 깃발을 꽂고 각 민족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시고 지켜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누구나 당신의 사연을 알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당신을 위하여 충효의 일념을 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뜻을 따라가는 데에 있어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의 인연을 찬양하면서 민족을 넘어 세계를 사랑하겠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벌걸음을 지켜 주시옵고, 그들의 환경을 보호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이 아버님이 친히 같이하시고 역사하시는 아들딸이라는 것을 증거하시옵고, 그들에게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될 수 있는 능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또한 부활의 권한을 이방 민족들 앞에 펴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는 하나의 세계를 건국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를 위하여 싸우는 정병으로서의 내적 단장과 외적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 육성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한국 땅을 위하여 기도하고 눈물짓는 모든 사연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헛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한스러운 눈물이 그 땅 위에서 사라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이 시간 현현하시어서 말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망의 세계에 눌리어서 사탄의 쇠사슬에 얽매인 모든 것을 해방시켜야 할 당신의 손길이 있음을 알고 있사옵고, 당신의 심정의 인연과 보호가 여기에 있어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사랑의 손길로 저희를 일깨워 주시옵소서. 새로운 생명의 불길로써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는 인연을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온전히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뜻 가운데에 일체를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역사에 맺힌 서러움의 조건을 제거시키고 시대의 한을 해원시킬 수 있는, 아버지와 직접 상봉하고 아버지의 소원을 위한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허락된 시간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친히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 단에서 내려진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아버지와 인연맺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 되게 하시옵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심정적인 인연을 통하여 저희들을 하나로 엮어 매시옵소서. 그리하여 본연의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하는 식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가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247
말 씀
이 시간에는 `우리의 자랑’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한 민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민족 자체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 민족의 요구일 것입니다. 또한 어떤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자가 있다면 그 국가의 위세를 만방에 떨칠 수 있는 자랑스런 주권자가 되고 싶은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한 국가도 그렇지만, 크게는 세계를 두고 봐도 작게는 여러분 개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기의 환경을 움직여 국가와 세계에 인연맺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인간의 본심이 그러하고, 인간의 생활환경이 그러하고, 인류 역사의 흐름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부인 못한다 할진대, 이러한 사연의 인연, 이러한 사연의 동기는 어디서부터 출발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계셔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면 하나님 자신이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연맺어진 모든 존재들은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창조주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48
만물을 지으신 목적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자랑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멀리 역사전 시대로 돌아가서, 창조의 세계를 흠모하시던 창조주께서 6일간 창조하신 창조물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던 그 시대를 회상해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도 지어진 모든 만물을 통하여서 자신을 자랑하고 싶으신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음받은 어떠한 존재를 두고 보더라도 그러한 사연이 엉키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이 피조세계, 혹은 이 자연에는 각양각색의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만상(萬象)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창조되었느냐? 그것은 창조주의 정성어린 심정의 과정을 통하여 지어졌던 것입니다. 아무리 미미한 존재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자랑의 마음을 지닌, 그런 자리에서 지음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작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로부터 크게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우주에까지,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으셨던 자랑의 존재로 지어졌음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 땅 위에 남아진 피조만물을 중심삼고 살아왔습니다. 즉 싫든 좋든 만물을 이용하고 만물을 사용해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사랑하고 자랑하기 위한 목적 아리에서 지음받았다 할진대, 과연 그것을 알고 그 가치대로 여러분들이 대해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본심에 자문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밖을 바라보면 광명한 아침 햇빛이 여러분을 반겨 줍니다. 그러면 그 태양 빛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즉, 자연이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은 그 빛을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은사라고 찬양하는 마음으로 대해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생활을 했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내용으로 지음받은 만물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0-249
하나님의 자랑이 되어야 할 인간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이 하나님의 자랑의 일면을 드러내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지어진 만물을 그렇게 알아주고 자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했습니다.

천사세계를 짓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는 것이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 다시 말하면 만물의 주인공인 사람을 지으신 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자랑하시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었던 만물을, 당신 대신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지으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중심 존재로 세우려던 아담과 해와가 만우주 앞에 중심존재로서 서게 되는 날, 하나님은 이 아담 해와를 얼마나 자랑하고 싶으시겠습니까? 그 자랑하고 싶었던 대상의 한계선이 어느 정도까지냐? 지어진 만물의 어떤 부분부분을 통해서만 자랑할 것이냐? 아니예요. 온 피조만물 전체를 동원하여 자랑하고 싶은 한날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렇듯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로서 지음받은 것이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리에 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만유 앞에 창조의 위업을 찬양해 달라고 친히 선포할 수 있는 한 날을 인간이 찾아 주기를 바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이었다는 거예요. 역사과정에 있어서 어느 한때 이 세계가, 혹은 국가가 그런 자리에 서 보았으며, 개인이 그런 자리에 서 보았습니까? 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은 그 내용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슬퍼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 할진대,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기준과는 상치(相馳)되고 대치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가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 나는 이러이러한 무엇을 갖고 있고, 이러이러한 사회적 위신을 갖고 있고, 국가 앞에서도 이만하면 애국하는 사람이다’ 하며 자신을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자랑하는 것이 누구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입니까? 제일 먼저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0-250
자랑할 수 없게 된 인간
인간은 먼저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랑이 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렇게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취하여,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우주의 주인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며 주인의 행장을 갖추어 나서야 할 것이 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태어난 본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자리에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을 갖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자신만을 중심삼고 자랑하는 그 기준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이것은 국가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요, 세계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중심하고 자랑해야 될 입장을 떠나서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입장이 먼저 되었기 때문에 천륜에는 부합될 수 없는 자신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후손들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는 그런 자리에 섰었느냐? 그들 역시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전체 목적대로, 만우주가 총합된 결실의 존재로서 만우주를 품고 하나님께서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세움을 받을 수 있었던들, 인류는 이런 비참한 역사를 엮어 나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인류는 시조인 아담 해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자랑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얼굴을 들고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인류 역사가 출발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 시조는 하나님의 자랑과 더불어 자기 스스로의 권위를 갖춘, 만우주의 중심존재의 자격을 갖춘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즉,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섰으며, 존재하는 만유 앞에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시조가 타락한 결과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기원을 가지고 나온 인간이었기 때문에 천륜의 법도를 두고 볼 때, 그런 인간의 자랑이란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 백, 천, 만………,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자랑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자기를 내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20-251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자랑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인간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지으셨기에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자기의 권위를 자랑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천도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슬픔의 자리로 몰아내고, 스스로의 입장을 자랑하고자 했던 것이니, 이것이 타락의 기원입니다.

이렇게 뿌려진 죄악의 씨가 그대로 거두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랑하는 인간을 내리쳐 버리는 거예요. 그러므로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거쳐온 우리 선조들이었고, 현세에 머물러 있는 인류라는 거예요.

인류가 소망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자기 개인을 내세워 자랑하는 것이 소망이 아니요, 어떤 가문이나 종족을 내세워서 자랑하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어떤 나라를 세워 자랑하는 것이 그 나라 백성들의 소망이 아니요, 세계를 하나의 평화의 왕국으로 자랑하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 아닙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 집어 던지고 잃어버리더라도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본래 소망하시던 그 자리에서, 만우주를 대하여 자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위치를 찾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소망중의 소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최후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개인이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할 수 있느냐?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일치된 자리에서, 개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할 수 있는, 전세계 30억 인류가 전부 다 그 영광을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던 본래의 기준, 자랑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다시 찾았다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한날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에 대한 구원섭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20-252
하나님 홀로 이룰 수 없는 뜻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입니다. 그럼 복귀섭리는 무엇인가?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기준으로 다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창세 전 에덴 동산에서 모든 만물을 지어 놓으신 후 그것들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시고 자랑하실 수 있었던 아버지의 입장, 다시 말하면 창조주의 입장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원래 모든 만물은 무엇을 표준으로 지으셨느냐? 인간을 표준으로 지었습니다. 모든 만물도 인간에 귀결시키기 위해서 창조했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창조한 사람을 최초의 출발과 더불어 최후의 자랑으로 세우시려던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인류의 시조가 서지 못하여 인류역사는 슬픔으로 출발이 되고 말았으니 그 과정에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슬픈 사실이 나타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비참사요, 탄식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진 이러한 출발의 기원은 어떻게 해서 제거시킬 것인가? 이것은 하나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출발이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졌느냐?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졌기 때문에, 이 일을 성취시키고 이 과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짓기 전에는 인간을 창조하여 인간을 중심삼고 뜻을 이룰 수 있는 소망의 권이 있었지만, 창조 후에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을 통하여서 다시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후가 거꾸로 되어 있고, 모든 상하 관계가 뒤집혀져 있는데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엔 반드시 사람이 개재되어야 됩니다. 이 엄청난 문제는 인간이 지은 죄가 초래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원래대로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엄청난 죄상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해방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본래 바라던 자랑의 세계, 자랑의 인류, 자랑의 피조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원칙으로 보아 불가피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타락한 자리에 떨어진 인간에게는 다시 한번 본연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자랑하시려던 그 만물을, 또 지으신 그 모든 만물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보아야 되겠습니다. 그 만물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마음이 기뻤다면 그 기쁜 마음을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잃어버린 이 자랑의 권한을, 또 그 위에 세워야 할 모든 만물세계를 복귀할 수 없다는 거예요.

20-254
본연의 사랑과 심정을 회복하자
만물은 사랑의 존재요, 기쁨의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만물을 보시고 지극히 선하다고 하셨듯, 여러분도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 지극히 선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일깨워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당시의 심정세계를 알아보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미물인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즉,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가치를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어서 지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에 대해서 그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우리들이 이런 자리를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비경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해서 모르지만, 하나님이 만물을 대해 주인으로서 기쁨을 표시하면 그 기쁨을 만물이 모르게 돼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만물도 기뻐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타락권내에 있으므로 육적인 오관을 통하여 감지할 수 있는 자극밖에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본성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주인이기에 상대적 입장에 있는 만물에 대해 기쁨을 표시하면, 그 만물들이 기쁨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느끼구 일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본연의 사랑, 본연의 심정을 찾아야 됩니다.

인간의 육신은 타락했으나 인간의 심성에는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기준, 출발의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출발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공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명(共鳴)된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기뻐하시던 기준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바울은 만물이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막연한 어떤 관념을 가지고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자리를 탐구해 들어가니 만물이 탄식하는 소리가 이 세계 어떤 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0-255
타락 인간이 찾아가야 할 궁극의 자리
타락한 세계의 사람으로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지니고 있는 본연의 심성을 통해 하나님과 일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이 우주만상의 세계를 바라보면 피조물은 물론 오늘 이 사회 전부가 탄식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던 본래의 그 기준으로 만물과 일치되어서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자리가 여러분이 찾아 들어가야할 궁극적인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신비스러운 이런 경지를 찾아가기 위해 자기의 모든 육정(肉情)을 제압하고 현실적인 모든 조건을 포기해 버리면서 깊은 마음의 세계를 더듬어 들어가기 위해 산중수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러한 뜻과 기준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접근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자연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연은 여러분과 상관없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즉 여러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의 완성을 위해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깨달아 만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출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목적의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자로 설 수 없습니다. 도의 세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자랑의 존재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동반한 자리에 서서 이 피조세계를 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기쁨을 체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놓고 나를 위해 지어진 자랑의 존재물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체휼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성의 마음 터전 위에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이 찾고 자랑하고 싶었던 자식의 인연을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준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그런 자리에 서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개인도 없었으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타락인간으로서, 하나님이 영광의 자리에서 자랑할 수 있는 가치를 체득하지 못하고 쓰러진 후손으로서, 그와 같은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못 나갑니다.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랑의 심정을 통하여 만유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그 기준에 선 사람도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20-256
하나님의 자랑이 되지 못한 이스라엘
하나님은 온 우주만상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에 일치되고, 온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이상의 모습으로서, 이 지구상에 하나의 인간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타락한 인간은, 선조가 자랑의 심정을 체득하지 못한 채 뿌린 죄악의 열매로 거두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참다운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법입니다. 인류 시조가 죄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타락된 존재로밖에는 거두어 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들로서는 하나님의 자랑된 자리에 도저히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 앞에,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중매자로서의 한 인물을 이 땅 위에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하여 선민사상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것만으로는 자랑의 기준에 설 수 없습니다. 그 민족은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선민으로 택함받은 가치를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못 됐습니다. 역사과정에서 번번이 사탄세계에 굴복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맞추어 민족을 지도해야 할 책임자들도 시대시대를 거쳐 오면서 하나님의 뜻 앞에 언제나 상치된 자리에 섰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가는 이러한 상치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하심으로 유대백성이 선민으로서 택함을 받았지만, 그 민족은 하나님의 국가를 세워 자랑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개인도 그러했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기준을 세워 국가적인 자랑의 기준으로 연결시키는 구원섭리를 위해 4천년 동안 준비해 오셨습니다. 국가적인 기준으로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이스라엘권을 수습하고 그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이 땅위에 주인으로 보내진 분이 메시아입니다. 국가적인 메시아! 바로 국가적인 메시아라는 거예요. 그런데 국가적인 메시아로서 등장해야 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는 어떻게 되었느뇨? 예수님은 개인적인 메시아로 떨어졌습니다.

만일 그때 예수님이 죽지 않고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건국이념을 중심삼고 일치되었다면, 거기서부터 세계는 구원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적인 구주의 권한을 가져야 할 예수님이 국가에서 몰리고 쫓김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메시아의 자리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요, 민족적으로도 내몰렸기 때문에 종족적인 메시아의 입장으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종족적인 구주의 입장에서 몰렸기 때문에 가정적인 메시아의 입장으로 떨어져 나갔고 가정적인 메시아의 입장에서도 몰렸기 때문에 세 제자한테까지 몰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설 수 있는 발판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발판도 없게 된 것이며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자랑하시려던 하나님의 소원 또한 이룰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니 예수님이 안 죽을래야 안 죽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참하게 몰리고 쫓긴 예수님은 최후의 결판을 짓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비통한 기도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인데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비참한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20-258
국가적인 기준을 가져야 할 메시아
개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구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결정됐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가정을 구원할 수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개인만 구원 받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정을 또 구원해야 됩니다. 가정의 구원이 이루어지면 종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즉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구원해 줄 메시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수님은 무엇을 해 나왔느냐? 개인적인 메시아의 입장에서만 머물렀지 가정적인 메시아의 자리에는 못나왔습니다. 가정적인 메시아가 되려면 예수님은 가정적인 메시아로서 만민의 표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시며 가정적인 구주의 기준을 결정하러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요 바램이었으며, 그것을 바라보며 나온 것이 2천년 기독교사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시시한 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륜의 법도도 가정적인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보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으로 국가적인 메시아의 권한을 가지고 만민을 통치하는 실권을 행사하여야 할 입장에서 땅 위에 그 나라를 건국하여 만 우주를 호령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어 출발해야 할 것이 국가적인 메시아의 기준이었습니다. 이 기준을 갖는 것이 곧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하여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 이후 2천년이 지나도록 주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리고객으로 깨깨 고생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노아를 세우고,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을 세워서 4천년 동안 귀중한 터전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민족적인 메시아를 중심삼고 국가적인 터전을, 국가적인 메시아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터전을 마련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어 개인의 터전마저도 갖지 못하는 서러운 입장에 섰다는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을 개인의 터전에서도 자유로운 구주의 권한을 가질 수 없는 슬픔의 자리로 떨어뜨린 장본인인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에는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학살을 당했지만, 그들의 죄값에 비하면 적다는 것입니다.

20-259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세계
이제 여러분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본래 아담은 하나님 앞에 자랑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만세의 구세주로서의 권한을 다 차지한 것이며 만민의 소원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가정에서 가정적인 구세주의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구세주란 타락했기 때문에 쓰는 말이지, 타락하지 않았다면 구주란 말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본연의 아담은 하나님의 특권적인 권한을 가진, 하나님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특권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며, 나아가 종족도 이룰 수 있었는데 모두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개인을 상실하게 된 장본인은 누구냐? 바로 인간 조상인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메시아의 권한과 특권을 파탄시킨 것이 아담 해와요, 종족적인 메시아의 영원한 승리의 권한을 파탄시킨 것도 아담 해와요, 세계를 통치할 주권을 전부 잃어버린 것도 아담 해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을 중심삼고 소원하시던 세계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개인도 필요로 하지만 그 개인은 가정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이요, 가정은 종족을,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와 세계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를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을 중심삼은 천상과 지상세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말한 바와 같이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런 예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천세 만세 영원하기 위해서는 천상세계와 지상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변할 수 없고, 어긋날 수 없고, 옮겨질 수 없는 자랑의 기준으로 엉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편으로 가면 같이 우편으로 가고, 좌편으로 가면 같이 좌편으로 가고, 올라가면 같이 올라가고, 내려가면 같이 내려갈 수 있는 천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십자가의 구원을 믿고 있으면 되겠어요? 만일 그렇다면 통일교회에 들어올 필요 없습니다. 날도 더운데 이런 놀음 할 핑요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천당 간다고 하지만, 믿고 천당 갈 것 같습니까? 천만에, 그런 자들은 천국이 이루어진다 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영계에 가도 기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나라가 없기 때문에 몰면 몰리는 것이요, 찢으면 찢기는 것이요, 총칼로 찌르면 찔리는 것이요, 또한 자르면 잘리는 것입니다.

20-261
영원한 자랑권(圈)에 살아야 할 인간
땅 위의 기반을 잃어버린 슬픈 민족, 슬픈 무리가 종교인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방패로 세계적인 소망의 터전을 위해 선민사상을 주어 분열된 이스라엘을 통해 자랑할 수 있는 국가와 세계를 창건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천신만고의 4천년 역로(逆路)를 고심참담하며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게 마련해 나온 터전 위에 보내신 메시아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을 수 있어요? 십자가는 부수어 버려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달려 죽임을 당하던 형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면서 부활의 권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인류는 예수를 믿고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도리를 믿는 것이지 십자가의 도리를 모르고는 믿는 게 아니예요. 그런데 십자가의 도리를 믿는 것들이 뭐 정통이라고요?

우리는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자랑할 수 있는 요건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만천주 앞에 인간을 세워 하시고 싶으셨던 그 자랑은 최후의 자랑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자랑으로 출발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자랑을 보시지 못하였습니다. 그 자랑은 알파요 오메가니 처음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랑을 영원무궁토록 계속하며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자랑권에서 살아야 할 인간은 어디로 갔던가?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천 갈래 만 갈래로 다 깨어져 나갔습니다. 이런 여러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자랑의 천국을 창설할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모두 누더기판이 되었으니 휘발유를 뿌려서 불살라 마땅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타락한 인간으로서 소망하는 것은 개인적인 구주의 사명을 해줄 수 있는 민족적인 기원을 가진 개인이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을 통하여 선조들이 가정적인 메시아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앞에 제물의 자리를 통해 섰던 그 자리를 내가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망했지만, 망하기 전까지 복을 받고 살던 기준을 찾아 그 터전을 우리의 것으로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지금까지 신 구약을 통한 이스라엘 역사의 기반을 중심삼고 나온 것입니다.

20-262
자랑해야 할 본연의 가치
노아는 인간 조상의 자리에 세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책임을 못 할 때는 사탄이 참소하므로 여러분은 책임을 다해 조상의 실수를 시정할 수 있는 권위까지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서 실수한 것을 권고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아들딸, 모세가 실수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부여 안고 충고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도 당신의 왜 죽었느냐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비참한 기도를 했는데 왜 죽었느냐 말입니다. 왜 죽게끔 만들었습니까?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하게끔 왜 만들었느냐는 말입니다. 기왕 부활할 것이라면 십자가를 지고 죽지 않을 수 없었느냐?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물론 당시, 예수님을 대한 책임을 못 하여 2천년 한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확산시키는 동기를 만든 이스라엘 민족에 책임이 있지만 예수님도 책임을 못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런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자체이신데 신성을 침범하다니 아, 무섭다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이단의 괴수다’라고 기성교인들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인들은 껄렁껄렁한 패들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바람에 날려 가는 가랑잎과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예요. 태풍이 불어도 밀고 나갈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세계기독교라는 간판을 등에 지고, 신령한 협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물론 이것을 요리할 수 있는 능동성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요리하려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선민을 요리하려다 죽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기독교와 맞먹는 것이 유대교요, 전세계 기독교인들과 맞먹는 것이 유대인이요, 이스라엘 민족과 맞먹는 것이 민주세계요, 또 로마와 맞먹는 것이 공산세계입니다. 이것을 요리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런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랑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을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을 때 이런 본성의 기준을 통하여 어떠한 미묘한 가치까지도 부여하여 자랑하려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그런 가치가 있습니까?

있다면 여러분들도 만물들과 신비스런 얘기도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나무하고도, 돌하고도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는 새나 늑대에게도 설교를 했어요. 그런 우화 같은 얘기가 있지만 원래 인간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연의 가치를 가진 인간은 존재하는 만유의 생명선을 움직여 가지고 만물이 자극을 받으면 그 존재 앞에 다시 수고를 해서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263
자랑할 수 있는 자리
우리는 잃어버렸습니다. 자랑할래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통일교회 처음 갔더니 대단하던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법정에 서 있는 사형수보다 더 천대하나’하며 불평할 사람이 있으면, 불평하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거짓말했나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 있느뇨? 가정을 들어 자랑할 수 있다면 그 가정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으며, 종족을 들어 세계 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다면 그 종족은 어떤 종족이뇨? 또 그러한 민족, 국가, 세계는 어디에 있느냐? 이것을 하나님은 마음으로 원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마음을 통고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전체의 가치를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이 땅 위에 다시 올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야 되니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던 방식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좋다고 하는 그런 방식을 모두 무시하는 것입니다. 도의 길은 이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은 편하게 걸어가는 길이 아니요,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되는 길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어서 만물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인간은 자랑할 수 있는 자리로 못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직 자랑할 수 있는 그 경계선을 못 넘었어요. 하나님은 마음으로 자랑하려고 했지만 자랑할 수 있는 실체의 자리에 인간이 못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이 온 피조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고요? 그래, 여러분들이 만물의 영장입니까? 영장이 다 뭐요? 만물이 송장이지. 영장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속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죽을 구덩이에 쳐박혀야 되는 것입니다.

20-264
자랑할 수 있는 특권의 기준
개인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특권의 기준이 어디 있을 것이며 가정으로서 만유의 존재세계에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특권의 기준이 어디 있느뇨? 종족의 특권의 기준은 어디 있을 것인가? 또 민족의 특권의 기준과 국가, 세계의 특권의 기준은 어디 있을 것이뇨? 또한 우주를 총합할 수 있는 특권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인간이 이것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타락한 인간 사회에서 이상세계를 찾기 위해 자유와 평화를 찾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잡해지기만 한다는 것이니, 아무리 찾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과 인연되지 않은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패를 들고 이 땅 위에 한분이 와야 됩니다. 즉 다리의 역할, 중매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후손으로 죄악의 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하더라도 그 사슬을 끊을 수없으니, 끊어줄 수 있는 사람이 와서 여러분을 거기로부터 해방시켜 줘야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십니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형무소에 들어간 사람도 나올 때에는 갈 곳을 정하고 나옵니다. 자신의 집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갈 데가 어디입니까? 집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아내와 아들딸이 있다고 하지만 진짜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딸 같아요?

하나님의 본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개인의 가치는 만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세움을 받아야만 있는 것입니다. 아들딸도 그런 자리에서 세움을 받아야 하고 가정도 그런 자리에서 세움을 받은 후 가족끼리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서 사랑했습니까? 여러분은 마음대로 시집 장가 가고 별의별 놀음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얽어 매어서 대심판을 해야 합니다. 망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대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심판이 공산당들이 학살하는 것보다 더 무섭겠는가? 안 무섭겠는가? 대심판 날을 맞으려면 공산당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마가 깨지더라도 싸워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통일교회 사람들은 대심판을 바래요? 안 바래요? 대심판날이 오길 바래요, 안 바래요? 바란다면 그날을 피할 수 있는 재간이 있어요, 없어요? 없다면 그날이 오기전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미리 죽어두는 것이 낫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미리 죽여 주려고 죽어라 하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이예요 선이예요? 선이라면 죽여 주겠다고 하면 `좋다’고 해야겠군요. (웃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자랑하고 싶을 거예요. 아가씨들도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랑해서 뭘 합니까? 자기 중심하고 자랑하고, 가정 중심하고 자랑해 봐야…, 남의 눈을 중심삼고 자랑해서는 소용없어요.

20-265
자랑하고 싶으신 하나님
태백산맥의 분수령을 중심삼고 볼 때, 한쪽의 물은 동해로 흘러가고, 다른 쪽의 물은 서해로 흘러갑니다. 맑은 동해로 흘러가는 물은 빨리 가기를 원하지만 흐린 서해로 흘러가는 물은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최후의 분수령에서는 모두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아이고 너와 나는 갈라지면 안 되는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돼’ 해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자랑하고 싶어요? 자랑하고 싶지 않아요? 모르긴 몰라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선생님은 거지들이 살고 있는 곳에 많이 가 봤습니다. 그들은 낮에 밥을 얻어 가지고 오는데 거기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서로 먹을 것을 얻어 가지고 와서 `무엇을 얻어 왔어?’ 그러면 `나는 잔치집에서 돼지고기 얻어 왔어’하며 춤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그것이 또 자랑이 되거든요. 수십 명이 밥을 얻으러 갔다 왔어도 한 사람이 조금만 기준이 오르게 되면 전부 다 그것을 가지고 떠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랑하고 싶어요? 자랑하고 싶지 않아요? 자랑하고 싶지 않으면 관둬요. 그러면 천국에 못 갑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자랑하고 싶다 이겁니다. 어떤 사람이 `저 사람 얼굴이 왜 저렇게 생겼어? 제멋대로 생겼구만! 어이쿠, 거기에 또 혹이 달렸구만!’할 때, 사람에게 혹이 달렸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 돼요? 이런 사람이 자랑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자기에게 남에게 없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랑하고 싶지요? 선생님도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하면 세계가 놀라서 자빠지게 되어 있으니 자랑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어떻다고 별의별 욕을 해도 가만히 있었어요. 통일교회에서 신문광고 내서 변명하는 말 들어 봤어요? 욕을 하려면, 실컷 해보라는 것입니다. 목이 아프고, 배가 고프면 하다가 그만두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자랑하고 싶고, 선생님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자랑하고 싶으시겠습니까? 안하고 싶으시겠습니까? 하나님도 자랑하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데려다 자랑할 것이냐? 통일교인들을 데려다 자랑하실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도 기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자랑하고 싶은데, 거기에는 자랑을 받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못난 사람이겠느냐, 잘난 사람이겠느냐, 그 사람은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과 완전히 심정과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됐습니까? 이런 멋진 아들의 표준을 세워 놓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며 통일교인들은 신나 있는데 세상은 다 잠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67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
하나님도 자랑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상의 성인 현철, 모든 위인들을 세워서 인류를 수습하게 한 후 자랑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조건으로 한 시대, 한 세계, 한 역사과정을 통해서 자랑하셨지만, 그 사람들이 하늘땅을 거쳐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지 못할 때는 그 자리에서 전부 다 쓰러져 갔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비참하게 기도를 하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 간 예수님은 얼마나 처량하고 쓸쓸했겠습니까? 생명을 걸고 믿는다던 열두 제자는 어디로 갔으며, 사랑하던 세 제자는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님이 죽기 전에 먼저 죽겠다고 맹세하던 제자들은 전부다 도망가 버리고 여자들만이 길가에 엎드려 울고 있는 것을 보셨을 때 예수님의 기분이 좋았을 것 같아요? 나빴을 거예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녀석들아 나라를 잃어버리고 세계를 잃어버린 너희들이 이제 와서 울면 뭘 하느냐 잃어버리기 전에 노력했어야지’ 하셨을 것입니다. 여자가 이혼을 당하고 소박을 맞고 나서 보따리를 싸면서 울면 뭘 해요. 그 전에 그러지 않게 노력해야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울며 따라오는 여자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눅 23:2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말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사람들은 자랑하고 싶은가 안 하고 싶은가? 얼마나 자랑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세계의 인류가 전부 두 번, 세 번, 네 번은 구경하려고 왔다갔다 할 수 있을 만큼 자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럴 수 있는 기력이 있어요? 그것이 3대(代)를 거쳐야 됩니다. 3대를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이 못 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3대를 거쳐야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렇게 3대를 거쳤으며 야곱도 7년씩 3단계를 거쳤습니다. 또 아담시대, 예수님시대, 재림주님시대의 3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인들이 핍박받고 있을 때 통일교인인이 여러분은 자랑했어요? 마음으로는 자랑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이제는 자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자랑을 하려면 무엇부터 자랑해야 합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자랑스러운 일을 했으면 그 부모의 자랑부터 해야 하는 거예요. 그 다음 아들딸이, 그 다음 그 손자가 와서 자랑할 수 있으면 신나는 거예요. 이렇게 3대를 거쳐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못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이 가담해서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이 될 때까지 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가정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길을 가서 하나님이 세워준 민족을 거친 그 후부터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0-268
우리의 자랑을 하려면
사회의 구성요소는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명실상부하게 구주노릇을 다 하고간 줄 알고 있나요? 로마 통치 4백년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참히 학살당했는데, 예수님이 구주로서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마다 몰리고 피흘리는 역사를 갖지 않는 나라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가 구주의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본래의 목적은 개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고 그 나라에서부터 천국을 건설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유대교인, 제사장, 교법사, 로마의, 바오로 1세까지 전부 다 예수님께 굴복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 전부가 굴복해야 합니다. 기분 나쁘겠지만 그래야 됩니다. 그리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수습해서 천국을 향해 출발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양손 양발에 못 박히려고 이 땅에 왔다구요?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 죄악된 세상에 아무리 하찮게 태어난 사람도 그런 놀음 안 합니다. 예수님은 영광이 변하여 극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가 왔다 간 후 2천년 동안 한의 고개를 넘게 된 것입니다. 1948년 5월 15일 유엔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독립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이 독립되거든 주님이 오실 때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나라 잃어버린 민족이 얼마나 서러운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보다 20배나 더 큰 아랍권내에 들어가서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되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여 가지고 작년 5월중동전에서 6일 동안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이 흘렀습니다. 이러한 전 역사를 청산짓고 나가야 할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럼 `우리의 자랑’을 하기 위해선 자랑의 관문을 통과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그러나 자기의 자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우리의 자랑은 꺼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자랑이 뭐냐? 그것은 피조세계와 만우주를 대신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과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것들을 수습하여 주관하며 사랑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 모두 나를 본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어이쿠 참부모가 뭐야? 뭔데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 하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참부모의 뜻이 뭔지 알아요? 참부모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천세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조상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세워진 인류의 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 또한 새로운 조상을 중심삼고 섭리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딱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 한분으로는 통하지 않기에,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야 합니다. 즉 예수는 아버지 신이고 성신은 어머니 신이니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나 그런 부모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신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이 없어 가지고는 완전한 구주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사실을 모르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복을 빌면 되겠습니까? 모두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처럼 속고 있는 세계의 10억이 넘는 기독교인들을 재교육 시켜야 됩니다.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자신 있다는 사람들 대답이 왜 그렇게 약해요? 그럼 선생님을 한번 해방시켜 봐요. 선생님도 해방 못 시키면서 나라를 해방시킨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회개를 못하고 눈만 껌벅 껌벅하고 앉아 있지요. 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바쁜데 언제 그런 말을 늘어 놓습니까?당장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20-270
자연은 제1의 성경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오서 오라’하는 노래가 있지요? 그래, 우리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통일교회가 왜 바쁜 줄 알아요? 죽어도 통일, 살아도 통일, 사람을 만나도 통일, 밥을 먹어도 통일, 모든 것을 통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통일을 하려면 세계 제일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송곳이면 세계 제일가는 송곳이 되어야 합니다.

차돌을 자르는 절단기 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끔 공장에 가서 보면 선반이 돌아가는데 거기에 바윗돌을 갖다대면, 쉭! 하고 잘라집니다. 그것을 보면서 통일교회 교인들의 손톱이 이렇게 단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탄을 산 채로 밀어 버릴 수 있게 말입니다. 그게 악이예요, 선이예요? 남을 치는 것은 죄이지만 사탄을 치는 것는 선입니다.

우리의 자랑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명사를 통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은, 만우주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자리에서 자랑할 수 있는 권위를 상속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도의 길을 통해 깊고 오묘한 하나님이 심정세계로 넘어가서, 만물을 품고 눈물을 흘리며 피조세계의 존재물을 향하여 자기를 하소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향해 `내 사정이 있기 전에 네 사정이 있지만, 너는 나 때문에 이렇게 불쌍한 자리에 있으니 조금만 참아다오. 10년만, 20년만 참아다오!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기 위한 것이 도의 길입니다.

석온씨 노친 왔어요? 지난번에 선생님에게 와서 “아! 선생님 이상해요. 오늘 내가 산에 가서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데 소나무, 버드나무, 할 것 없이 전부 춤을 둥실둥실 추면서, 저에게 잘 부탁한다고 하는데 그거 왜 그래요?” 그래서 “이 노친네 미쳤구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사탄놈이 그랬구만!” 했어요. 그러나 그건 복이예요, 복! 그렇게 좋은 일이 있었으면 선생님이 반대를 하더라도 참이라고 믿어야지요. 그것을 전부 다 밟고 올라서지도 못하고 자기 것을 만들 수 있어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사탄이 빼앗아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연은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거든요.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알아요? 그것은 점장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 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내가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손들었으니까, 선생님이 한가지 물어 볼께요. 여러분이 처음에 색시를 보니까 곱던가요, 안 곱던가요? 「곱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곱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또 곱다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예」 그럼 상대되는 여자가 `나는 영광중에 영광입니다. 내 남편은 하늘 나라에서 왔나요, 별나라에서 왔나요’ 하면서 찬사하던가요? 「예」 예라는 말이 어디서 나와요, 예라는 말이.

여러분은 징검다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지요? 냇물 속에 있는 징검다리지만 슬쩍슬쩍 건너면 발에 물을 안 묻히고도 갈 수 있어요. 이것은 명사 그대로 징검다리입니다. 그러나 복귀의 길은 징검다리 건너기처럼 쉬운 것이 아니예요. 아주 어려워요. 한 발자욱만 내디뎌도 들러붙습니다. 수렁에서 허우적허우적 하게 되면 자꾸자꾸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272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한다
봄에 얼었던 땅이 녹은 진창길을 갈 때, 깨끗한 신발을 신고 나갔으니 돌아올 때도 깨끗하기를 바랄거예요. 그러나 신발, 버선, 치마 할것 없이 온통 진흙이 들러붙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 묻어서 인사도 없이 버티고 있거든요. 그런 진흙탕 길도 가기 귀찮아하는데 복귀의 길은 쉬울것 같아요?

복귀의 길은,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세계 복귀, 천주 복귀, 하나님 복귀를 모두 거쳐야 됩니다. 하나님을 복귀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복귀해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복귀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잠겨있는 수심을 벗겨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혼자서는 하나님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모셔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복하시려면 효자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하가 효자로 말미암아야만 하나님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식이 전부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께서 편안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와 같은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욕을 하려면 얼마든지 하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옥살이도 많이 했습니다. 인생살이에, 인생 철학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노동판에 나가서 노동을 해도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염전에 가서 소금 가마니를 메는 데 있어서도 누구에게 지지 않아요. 선생님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뜻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여봐라’하면 전부 다 `예! 할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수염을 쓸고 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 잘못 알고 있다는 거예요. 하기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작전하는데 도움도 돼요. 그래서 기습작전을 한다, 기습작전! 선생님은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 나이가 50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나 갈 길이 멉니다. 여러분들, 따라 갈래요? 여기서 그만 둘래요? 「따라가겠습니다.」

20-273
끝까지 가야 할 복귀의 길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욕을 먹었습니다.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을 춘다든데, 음란한 단체지’ 하면서 자꾸 덮어씌운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덮지 못하고 추운데 얼마나 좋아요?

옛날 3·1운동 때 선생님 동네에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죽어도 만세, 살아도 만세를 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잡혔습니다. 그때 만세를 부른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불러야 했었는데 이 사람은 잡혀 가면서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옆에서 일본 헌병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신이상자 같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잡히게 되면 주름살이 잡히고, 눈이 찡그러지고, 사지를 다 오그리면서 기운을 못차리고 죽어가는데, 이 사람은 끌려가면서도 만세를 부르거든요. 지금까지 자기들이 본 것과 다르니까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니고 돌았다면서 가다가 그냥 풀어줬습니다. (웃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일본 헌병들처럼 여기서 그만 두겠어요, 따라가겠어요? 「따라가겠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태평양을 건너갈 텐데 따라가겠습니까? 태평양을 건너갈 자신이 있어요? 「예」 어떻게 건너갈 거예요? 거북이를 타든가 다리를 놓든가 해야지요? 그렇다고 `누가 다리를 놔주면 건너가지. 아이고 건너가다 다리 아프면 조금 쉬고 그래도 고단하면 돌아오면 되지’라고 하겠어요? 말은 쉽지요. 그래도 따라가겠어요, 그만두겠어요? 「따라가겠습니다」 정말이예요? 「예」

선생님은 참으로 많이 속았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마음들을 쓱 들여다 보면 무슨 시시껄렁한 것만 잔뜩 채워져 있는 것이 보이니 다짐하는 말들이 믿어져야지요.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불쌍하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열에서 백까지 한번 쫙 펴 보세요. 하나님과 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여러분은 좋은 것이 있으면 `내 것’ 그렇게 하지요? 그때는 하나님도 자기 뒤에 서라는 거예요. 그러다가도 조금만 나쁜 것이 있으면 `난 싫어!’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귀노정을 가는데, 좋아하는 것만 취해 가지고 복귀할 수 있어요? 좋은 것은 사탄도 안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선두에 서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선두에 서야 되겠어요? 누가 선두에 서야 됩니까? 선생님이 선두에 섰으면 좋겠지요?

요즈음 선생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은 여러분 모아 놓고 뒤치닥거리하다가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동정도 못 받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본래 선생님의 사명이 그것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하기야 그런 사명이 있다면 얼마나 거룩하겠어요?

자, 여러분은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고, 우리를 중심삼고 자랑할 거예요? 그러나 지금 여러분에게는 그런 자랑할 자격이 없습니다.

개인이 타락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즉 구원받을 수 있는 때를 잃어 버렸더라도, 가정이 구원받을 수 있는 도리를 다해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으면 개인도 제이차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만일에 가정이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그 친척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앞에 세움 받을 수 있는 종족으로 결정되면, 개인도 구원받을 수 있고, 그 가정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7월 20일부터 전부 다 지방 파송이라는 명령을 하고 꽁무니에다 불을 붙일 때 여러분은 어디로 가겠어요? 집으로 도망가겠어요, 세계로 뛰어나가겠어요? 열이면 열 사람 전부 다 집으로 도망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불을 붙여 놓으면 전부 다 세계로 뛰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마음 자세가 되어 있어요?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20-275
복귀해야 할 본연의 기준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 자랑 한번 해봅시다. 지금까지는 욕 먹는 때였습니다. 여러분이 이제까지 뜻길을 따라오면서 자랑해 본 적 있었어요! 동네에 들어가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겨서, 다리를 다치지 않나, 머리가 터지질 않나, 또 남편에게 쫓겨 오질 않나. 그런 여러분을 볼 때, 선생님의 팔자가 왜 이렇게 거센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등의 상관없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핍박을 당해야 하나! 그것은 여러분들이 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욕을 당한 것입니다. 또 이건 그저 하지 말래두 해 가지고 욕먹고….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욕먹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얻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지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 기준을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말하는 복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우주에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마음이 전부 동강동강 잘려서, 말할 수 없는 수심에 잠겨 있으니, 이것을 모두 붙여서 본연의 마음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세울 것이냐?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짓고 기뻐하시던 그 마음을 어떻게 하여 되찾아 드릴 것이냐? 이것이 6천년사의 한으로서, 인류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예컨대 한 부인이 있는데 그 부인은 자기에게 본남편이 있는 줄을 모르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들딸을 낳고 살다보니 본남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낳은 자식들을 데리고 본남편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역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혈통을 통해 태어난 자식들이 여러분들입니다. 그래서 양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남편을 놔 두고 시집갔다가 다시 그 남편에게 돌아온 그 부인이 성신입니다. 따라서 성신은 사탄세계에 있는 아들딸들을 데리고 하나님 폼으로 돌아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본래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어야 할 텐데, 나는 다른 핏줄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이런 내 얼굴을 바라볼 때 그 아버지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얼마나 나쁘겠어요? 그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지난날의 역사가 생각난다는 거예요.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을 했구나’ 한다는 거예요. 여기에 6천년 역사의 사연이 포함되어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20-276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할 우리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악물고 이런 한을 억누르며, 그런 인간을 접붙여 가지고 `너는 내 아들이다, 내 아들이다, 내 아들이다’ 하는 것입니다. 또 `날 닮아라 날 닮아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짜를 놓고 진짜다 진짜다 하여, 진짜를 만드는 일과 같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입장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얼마나 하나님에게 반박하고 원망해 나왔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입장에 선 인간들을 중심삼고 나가면서도 이 땅 위에 진정한 메시아 사상을 중심으로 본연의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다면 여기에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아벨이 아벨로서 서기 위한 결정적인 판가름은 가인을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준을 닦는 데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당신의 그런 입장을 억울해하고 분해하시는 것보다도 당신의 아들이 그런 사연을 수습하여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더분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의붓자식과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드는 섭섭한 마음보다도, 억울한 자리에서도 할수없이 친자식으로 만들기 위한 일을 해야 할 아들의 입장을 놓고 더 서러워하셨기에 참고 지금까지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오시는 주님은 영광의 주님으로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의 한스러운 구렁텅이를 모두 메워서 평지를 만들어야 하나님이 본래 이상하시던 천국, 에덴 동산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유스러운 행차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들을 앞에 세우고 행차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차하실 때 앞에 서시지 않습니다. 한 나라 대통령이 행차할 때 시위대가 앞에 서서 호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 위에 하나의 새로운 천국이 이루어질 때는, 아들이 아버님을 모시고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역사를 하셔야 하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종의 종 자리에서 종의 자리, 또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거쳐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을 몰고, 가정을 몰고, 국가를 몰고, 세계를 몰아서 자유의 천국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엮어져 나온 6천년 역사입니다.

여기서 누가 희생했느냐? 하나님편에 가까운 종들과 양자들과 아들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희생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천국의 길잡이로 이 땅에 오셔서 타락인간이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돌아설 수 있는 길을 개척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 세계를 창건하였고 그 2천년 소원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와 시대를 수습해서 새로운 이상의 천국을 향하여 출발하려는 무리가 통일교회의 무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통일의 무리는 허위대가 별난 것이 아니요, 얼굴을 봐도 남과 같은 얼굴, 모양도 대한민국의 배달민족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달리 잘먹고 잘사는 무리도 아닙니다. 어떤 국가를 가져서, 자랑할 수 있는 국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으로 보나 아무런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무리를 중심삼고 역사적인 해원성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숙한 과제가 우리의 두 어깨에 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마운 일입니까, 슬픈 일입니까? 「고마운 일입니다」 진정으로 고마운 일입니까? 진정 고마워요? 「예」 그러면 그 고마움에 대해 보답을 해야 합니다.

20-277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
그러면 이 뜻을 찾아 나올 때 어떤 수고를 했는가? 이런 자리가 닦여질 때까지 어떤 죽음의 길을 거쳤는가?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의 한 무리로서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주위에서 들려 오는 역사적인 모든 원한에 얼마나 사무쳐 있느냐? 시대적인 원한에 얼마나 사무쳐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미래의 기준을 완전히 해결짓지 못할 때는 미래에까지 그 한이 뻗어 나간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결정선에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긴장된다는 사실을 느껴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무리들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복귀노정에서 탈선하여 어긋나지 않도록 하늘땅은 바라고 있습니다. 과거의 선지선열들도 여러분에게 자신들이 풀지 못한 역사의 한을 풀어 구원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자리에 서서 그것을 해결짓기 위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통일의 무리입니다. 비록 가냘픈 무리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해원성사 해 드릴 터전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할 때 모두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후원하고 하늘땅 앞에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니, 울타리가 되어 주겠다고 할 수 있게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을 갖춘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신임을 누구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을 볼 때, 여러분은 오늘도 회개 내일도 회개, 오늘도 고통 내일도 고통, 오늘도 몰리고 내일도 몰리는 길을 자진해서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심정의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 가서 이제까지 하나님이 걸어오신 그 길을 수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한의 시대, 세계적인 때는 우리의 목전으로 다가왔는데,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중심삼고 이때를 수습해야 할 여러분은 그것을 책임하지 못한 부족한 입장이라는 것을 통회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 자비의 마음, 동정의 마음, 사랑의 손길을 기다려야 할 입장에서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나가게 될 때, 비록 초초한 모습이요,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로되 `내 몸은 하나님의 한을 대신했나니 사망의 물결이 홍수가 되어 탁류로 흘러갈지라도 반석과 같은 나를 꺾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흘러가는 사망의 무리들이 여러분을 붙들고 살 수 있게 여러분은 하나의 추가 되고, 하나의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있다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현재의 사회는 복잡하고 혼란한 환경이기 때문에 인간은 곳곳에서 신음을 하고, 사랑에 메말라 허덕이는 판국입니다. 이것을 안팎으로 넘어서서 이 세계를 중심삼고 혼란된 정상을 해결지을 수 있는 평화의 왕국을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20-279
하나님의 자랑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
여러분은 외적인 면에서는 낙심이요, 탄식이요, 절망의 환경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있어서는 천상천하에 행복을 자랑할 수 있는 자세를 스스로 갖추고 있습니까?

과거에 그렇게 하지 못했고 현재에 그렇게 하지 못하거든 미래를 놓고 숨은 결심을 하여 내일부터는 그럴 수 있는 내 모습을 세워야 합니다. 스스로 적진을 향하여 나아가 적장의 머리를 자르고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작전을 세워서 기필코 점령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는 그랬지만, 미래에 나아가야 할 행로에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결의를 해야 됩니다. 이걸 못하겠으면 보따리 싸서 나가라구요.

여러분의 앞길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참한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하는 치열한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신을 단련하여 안팎으로 무장을 하고 사탄세계의 어떤 무리도 상대가 될 수 없는 무적의 정병이 되어 진격해야 합니다.

천만년 전의 썩어져 행동의 자국을 그냥 지니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자리에서 모두 없애 버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아침에 기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거든 희망에 벅차 목표했던 적진을 향하여 힘차게 진군할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극을 주어 그 발걸음에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통일의 무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세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스승을 모시고, 자랑할 수 있는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찾자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 땅 위에서 4천년 동안 한의 고빗길을 거친 후, 영계의 수많은 선조가 하소연하는 기도의 내용대로 고대하던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소원하던 그 한날이 왔었다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는 이 땅 위에 울려 퍼졌고, 그날부터 새로운 천지는 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이 그것을 알지 못했고, 교법사 제사장들도 모두 알지 못했습니다. 밤중같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홀로 깨어서, 그 마음을 다하여 소망의 천국을 그리워하는 예수님은 환경이 복잡하년 복잡할수록 내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하게 사무쳐 올랐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과 담판짓기 위해 간곡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얼마나 비장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본연의 사명은 이러했는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십자가의 관문에 걸려야 했는가?

그때 예수님은 `나 하나 죽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께서 4천년 역사노정에서 흘린 눈물과 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의 제단에 연결시켜 가지고 그 제단을 정화시켜 하나님 앞에 승리의 푯말을 박고 여기서부터 천국의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진 예수님이 일대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저나라에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밀리고 쫓기고 천대받으면서 끌려 나오는 기독교인들의 고통은 당연하겠지만, 하나님이 또다시 한 맺힌 심정으로 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 해야 할 수고를 생각할 때, 아들의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담판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천륜의 한이 풀린다면 그 길이 응당 아들로서 가야 할 길이지만, 예수님이 책임 못하고 죽은 후에 하나님 심정에 맺혀진 한의 여건들이 역사에, 또 세계에 맺혀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을 친아들의 입장으로 차마 볼 수 없고, 남길 수 있는 사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때가 지난 그 환경을 잘 아시고 하나님께서 결정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줘야 하셨던 하나님의 내적인 고충이 얼마나 크셨던가를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20-281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주인공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이 몰려와 아우성을 치며 `이단자들의 괴수야 잘 죽는다. 네가 4천년 동안 소원하던 우리의 메시아란 말이냐?’ 하면서 저주하던 소리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그런 무리들에 의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교가 아직까지 이 땅 위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박대해서 돌려 보내고, 주인까지도 박대하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주인편이라고 나발을 불고 잔치를 하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 무리들이 2천년 동안 비참하게 유리고객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 민족은 2천년 역사의 소원으로 예수님이 다시 이 땅 위에 와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하나의 조건을 세워 주지 않으면 해방받을 수 없는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비참했던 것은 보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해방이 되어 새로운 천지,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한을 품고 오셨던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역사적인 모든 성인 현철들에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한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자랑하고, 이 시대 30억 인류 앞에 자랑하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수많은 후세 앞에 천년 만년 걸어간 길을 자랑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총합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감사의 눈물로 올릴 수 있고, 예수님을 감사의 눈물로 올릴 수 있고, 성신의 감사의 눈물로 올릴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네가 아니었던들 어떻게 될뻔 했는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아들딸의 사명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존재로 설 수 있고, 만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존재로 설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라 불러 보았습니까? `아버지’라고 불러 보았어요? 아버지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의붓 아버지인지 친아버지인지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내용을 아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오직 그 아버지의 가슴에 품은 사정을 붙안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폭발된 분함이 한스러움과 교차되는 자리의 그 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길도 자진해서 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예수님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처럼 비참하게 기도하기보다는 죽음의 길도 당당히 자청해서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282
자랑해야 할 축복가정
선생님은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몇백 번, 몇만 번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선생님은 심장에 총탄이 수백 번을 지나가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고 마음으로 결의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생각이라도 해보았습니까? 선생님이 죽음의 골짜기로 가라고 명령하게 될 때 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길은, 열 번 가면 아홉 번은 살아 올 수 있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 나가는 길조차 피해 가는 여러분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이 고대하는 것은 인류를 들어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중심으로 한 가정을 세워 자랑하고, 종족을 세워 자랑하고, 민족을 세워 자랑하고, 국가와 세계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소망의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고대하는 마음을 품으시고, 보잘것없는 여러분을 소망하는 한날의 역군으로서 세우겠다는 하나님의 사정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천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 일대에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의 위신과 자격을 결정짓고 죽겠다고 몸부림쳐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곳이 비록 사망의 골짜기일지라도 하나님께 `저를 믿고 저에게 가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정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래야 할 통일교인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들의 자격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을 자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36가정이니 120가정이니 하면서 세계에도 없고 역사에도 없는 축복행사를 합니다. 즉, 역사에 없는 일을 알고 있으며, 또 역사에 없었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온세계 인류가 전부다 몰려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인류를 위해서이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으면서도 축복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을 알아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인간들이 알아 주지 않는 그 심정을 가지고 6천년 동안이나 참아 나오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는 것이니 그것을 알아주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민이 쌍수를 들어 그의 거룩함을 찬양하게 될 때, 오히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자리가 아들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련하기 전에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수그리며 엎드려 통곡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얼굴을 들라고 분부하기 전에는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악된 조상의 피를 받고 태어난 후손임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신을 수습하여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을 세움으로 만유와 인류가 그리워하는 자체가 되고, 가정을 세워 수습하여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세움으로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권위를 가진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못 되었는데, 우리 가정을 부른 것을 도리어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가정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시며 세워 주기를 바라기 전에, 하나님이 불러 세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 가정을 하나님 품에 안겨 드리는 사명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가정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가치를 알고 있는 축복가정이 얼마나 됩니까?

또 내가 아니면 네가 있을 수 없고, 네가 아니면 내가 살 수 없는, 피와 살이 인연된 가운데서, 하나의 종적인 터전을 만드는 것이 통일의 가정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영광된 터전을 만들어 빚내라고 하며, 거기에 내가 거름이 되고 터전이 되겠다고 앞을 다투어 나설 수 있는 생활적인 기반을 자랑해야할 것이, 통일의 이념을 가지고 가는 가정들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됩니까?

20-284
통일교인의 인격 기준
주일날 준비된 시간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경배드리는 것은 제한된 권내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초월해서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향하여 정성을 다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몰리고 쫓김받는 자리에서도 본부를 위하여 기도하며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 앞에 `옳소이다’ 하며 찬양하고, 그들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받들여야 할 책임을 가진 것이 본부식구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렇게 정성들이는 자리에 있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함부로 여기고 비판, 비소하는 무리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만일 그와 같은 마음이 있거든 잘라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심정의 세계는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 예배시간을 위하여 사흘 전부터 마음을 조여가면서 준비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의 행복을 빌어 주고, 나를 통해 만민이 소생할 수 있는 부활의 권한과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교회문을 들어서야 하고 하나님 앞에 목이 메이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도 부족할 텐데 여러분은 오히려 장돌뱅이보다 더 뻔뻔스럽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6천년의 역사를 거쳐 찾아온 무리의 모습이었겠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과 세계 인류는 지금까지 바라던 한때를 맞기 위하여 사방에서 시시각각 우리의 문전을 향하여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때에 여러분은 내적 정비를 하고 모든 것을 훌쩍 받아서 넘겨 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밀려 들어오는 사조 앞에 전부 다 밀려서 자빠지는 입장에 서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시간을 아껴서 이 비참한 정경을 처리하고 넘겨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식의 입장을 세워야 하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망각해 버리고 타락된 자기 몸을 다스리지 못하여 책임을 못하는 무리가 될 때는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6천년 수고의 노정을 통하여 찾아 나오신 무리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진리를 세계 만방에 자랑해야 됩니다. 이 통일의 이념을 만세에 자랑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내용을 가지고도 승리하지 못하여 자랑하지 못하게 되면, 후손들이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승리하여 자랑할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의 무덤을 파헤쳐서 당대에 가져야 할 영광의 가치를 지녔으면서도 하늘땅에 책임 못했다고 참소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광된 말씀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하나밖에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통하여 하나의 인격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이 맘대로 농락하던 환경의 터전 위에서, 침범당했던 선지선열들의 한스러운 인격 기준이 아니라 사탄을 굴복시켜서 영계의 모든 성현들을 해원성사시켜 줄 수 있는 인격기준입니다.

하나남의 6천년 동안 맺힌 한의 마음을 풀고 해방의 한날을 그리워하는 아들딸을 맞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애태우시던 그 가슴을 터놓고 사랑하는 그 아들딸을 맞이할 수 있는 자유로운 천국의 터전이 통일교회입니다. 이 땅 위에서 역사상의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하나님의 심정과 직행할 수 있는 곳이 이 자리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렇게 엄청나고 두려운 자리에 불리움을 받아 세워진 모습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반드시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워서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즉, 통일의 무리를 세워서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귀하다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생을 뜻을 위해 바쳐 이 가치를 천세 만세에 길이길이 빛내고 가겠다고 다짐하며, 이 일을 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신도들은 회개하여야 됩니다.

20-286
요셉과 같은 심정의 선생님
통일교회 문선생은 50평생을 이 길을 개척하면서 민족 앞에 몰리고, 국가 앞에 몰렸습니다. 왜정 때에는 왜놈들의 총칼 앞에, 공산당 치하에서는 공산당의 총칼 앞에, 민주세계에서는 독재정권 앞에 몰렸습니다. 이 3시대의 핍박속에서도 생명을 걸고 헤쳐 나온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3정권(자유당, 민주당, 공화당)까지도 통일교회를 몰아내려고 별의별 핍박을 다 했으며, 또한 하늘의 동지요, 하늘의 형제가 되어야 할 기독교도 우리를 반대한 것입니다. 먼저 나왔기에 우리의 형님이 되고 식구가 되어서 우리의 울타리가 돼야 할 그들이 우리를 몰아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반대하고 핍박했습니까?

기성교단에서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소리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분하고 원통합니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요셉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함정에 빠졌다가 이방민들에게 팔려서 애급나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그 당시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은사를 받아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온 땅에는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요셉의 형제들도 애급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왔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고 분한 그의 마음대로 그들을 박대해서 돌려보낼 수도 있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혈육이며 자기의 형제라는 것을 생각하여 혀를 깨물며 참았던 것입니다. (창39 ~ 42장 참조)

요셉의 그 마음을 선생님은 알고 있기에 그런 심정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갖은 비난과 모략의 화살이 날아 오더라도 그 화살이 꺾어지면 꺾어졌지 선생님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땅 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타락성을 중심삼고 올라선 사탄의 권한은 있었지만, 하나님이 심정을 중심삼고 올라설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의 골짜기에 사체와 같이 눕는 자리에서도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총칼이 엇갈리는 생사의 기로에서도, 운명을 판가름하는 그런 자리에서도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은 졸장부의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애를 사나이답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준비하고 갖추어 놓은 면양떼는 다 어디가고 산양떼들이 있냐는 거예요. 이것은 민족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아야 할 기성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기성교회마저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몰리고 쫓김받는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산양떼를 잃어버린 면양떼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모든 양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오늘까지 지탱해 나온 선생님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20-287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
선생님이 생각없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독한 사람이요, 누구보다도 분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크나큰 뜻을 알았고,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원수가 어떠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것을 수습하여 넘어갈 수 있는 선생님의 길을 나가지 못했기에 그때까지 말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조건으로 삼아서 사탄의 내적인 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것이 지금까지 나타난 내용입니다.

이제는 우리 앞에 최후의 때가 왔습니다.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때가 왔기에 전체적으로 동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은, 과거처럼 원수들이 조롱하는 자리에서 흘리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민족의 슬픔을 대신하여 제사장의 입장에서 흘리는 눈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여러분이 핍박받고 몰리는 것은 민족이 핍박받고 몰릴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대신해서 당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긍지를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이 몰리고 쫓기고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도 하늘땅을 붙안고, 나무를 붙안고 통곡하며 참아 나온 것은, 이 민족이 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길을 막기 위해, 하나님을 부여 안고 사정할 수 있는 한 자리를 갖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해서 이 민족을 다시 한번 부활시키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인류의 영혼을 부활시켰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살아생전에 이 민족을 부활시키는 한날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것을 위해서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 나왔습니다.

이제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우리를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통일교회가 나가는 길에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동원되어 반대해도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으며, 하늘 땅 전체가 동원되어 없애려 해도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환경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어두운 밤길을 개척하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대낮과 같이 되었으니 눈을 뜨고 사방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살 길은 어느 곳에든지 있습니다. 이런 때 책임을 못한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 그리고 피조만물 앞에, 여러분은 스스로 맹세하고 나아가야 할 통일교회의 무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여러분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고, 가정의 권위, 종족의 권위를 세워서 그런 통일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지 천국을 향하여 나가야 할 통일교회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원수를 무찌르기 위해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가 선봉에 서서 적진을 타파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금년에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를 세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20-289
끝날에 처한 우리의 자세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언제 한번 국위선양을 하여 수많은 민족 앞에 자랑한 때가 있었습니까? 이 민족은 참으로 불쌍한 민족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며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한민족 가운데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선생님은 이 민족에게 욕을 먹고 원망을 들으면서도 반대를 받고 쫓김을 받고 별의별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이 민족을 놓지않고 붙들고 나왔습니다.

이제는 외국 사람들이, 즉 사탄의 종자들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스승이 태어난 이곳에 서서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자기 조국보다도 고향보다도 이나라를 더 그리워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대한민국의 앞날이 밝아오는 것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져야 할 자세와 권위는 무엇인가?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의 자세와 권위인 것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려면 영광의 자리에서 효자 효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배척하고 침을 뱉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화살을 내가 대신 맞겠다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고통을 내가 대신 당하고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효의 인연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민족 앞에 핍박과 조롱을 받으며, 몰리고 쫓기는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터전 위에 우리는 생명의 씨를 심었습니다. 거기에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를 맺게 되었으니 그 열매는 처음으로 얻어진 열매요, 이것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전통, 세계적인 전통이 하늘의 새로운 인연으로 출발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승리의 터전 위에서 천국이 출발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한민족 외에 수많은 민족들도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다른 민족들은 하늘편의 승리를 찬양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효의 도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핍박을 받고 몰리고 쫓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서럽고 억울한 사정을 체휼하고, 아무도 대하지 않는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거쳐서 하나님을 붙안아야 효의 인연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리에서 충신, 효자가 되어 싸워 나가야 합니다. 이 길은 어떤 민족, 어떤 신앙자, 어떤 교회, 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하는 특권을 쟁취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을 갖는 길이니 꼭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 나타나는 우리는 비참하지만 내면에 있는 사연을 보면 뼛골이 녹고 심장의 고동이 멎을 만큼 긴장된 자리에서 소리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죽었던 사망세계의 인간들을 다시 부활시키는 동기와 원천이 된다면 이런 자리에서의 효와 충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한때의 좋은 선물인 것이요, 우리만이 지닐 수 있는 자랑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지닐 수 있는 자랑의 조건을 왜 사탄에게 빼앗겨 오히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저주의 조건으로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랑의 조건으로 가지기 위한 것이, 이것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편히 먹고 자고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이때에 여러분은 책임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만민이 그리워하는 광명한 천국을 앞에 두고 효자의 절개라고 세워 놓겠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이러해야 할 때가 제2차 7년노정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제2차 7년노정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몇 해만 지나게 되면 이 길을 가지 못한 것이 천년 한으로 맺힐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닙니다.

20-291
하늘의 정병이 되어 적진을 향해 총진격하자
과거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그 시대을 중심삼고 통곡과 호소를 할 수 있는 우선권을 받은 무리입니다. 그런 역사의 인연을 여기서 또다시 재현시킬 것이냐? `차라리 몰랐으면 행복했을 텐데….’라고 탄식하는 자리에서는 비참한 무리가 되지 않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자유의 천국인 새로운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엄청난 피를 흘리며 싸웠다면 그는 망하지 않습니다.그가 흘린 피는 사망의 피가 아니오,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 창건한 그 곳이 우리가 가야 하고, 머물러야 하고, 남겨 놓아야 할 터전입니다. 이것이 뼈아픈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하늘 앞에 `하늘이여! 당신이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으셨던 모든 바램이 제게서 결실되었습니다. 인간을 세워 영원토록 모든 세계에 자랑하려던 당신의 내적 심정과 일치를 이루었나이다’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오냐!’ 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유와 평화의 천국으로 행진하는 그날을 그리워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천군천사와 만우주의 온갖 존재물들이 비로소 만물의 영장이 나왔다고, 중심이 생겼으니 해원성사 되었다고 찬양을 할 때, 그 찬양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기반을 세우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만유의 창조주이며, 만세에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무궁토록 자신의 것으로 지녀야 됩니다.

이것을 중심삼고는 세계가 그 안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까지도 그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절대적인 사랑의 권위를 남길 수 있는 이 시대적인 기점을 상실하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통일의 이념을 통해 세우시려는 자랑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인 환경 속에서 이 길을 가는 우리는 외로운 고아와 같지만 결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 배후에는 억천만 역사를 통하여 오늘을 준비한 하나님의 정병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입니다. 이들은 전부 다 지상을 중심삼고 활동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원군이 세계에 널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용자로서 적진을 향하여 총진격하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낙오하여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이 관문을 통하게 하여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름으로 영광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 영원무궁토록 행진하는 인류의 조상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잘 알겠습니까? 「예」

20-292
기 도
높고 귀하신 거룩한 성상과 선하신 내정적인 심성을 통하여 그리워하시던 아버지, 그것의 실체로 지으신 자식을 품고 기뻐하시던 아버지. 본연의 세계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우리 조상의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조상이었던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자리에 놓이게 될 때, 당신께서는 무자비하게 잘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여기에서 저희가 제아무리 충성과 노력을 한다 해도 아버지께 사랑받던 아담 해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으면 당신 앞에 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명이 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탄의 계교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그런 환경을 뭉그려뜨려서 거기에 아버지의 뜻을 세우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스스로가 아버지의 말씀을 중심삼고 원수의 화살과 모든 계교를 물리쳐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않고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후의 기도는 정전으로 인하여 녹음이 안 되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