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 to 20-293: 선의 결실을 거두라

선의 결실을 거두라
1968.06.09 (일), 한국 전본부교회

20-164
선의 결실을 거두라
누가복음 10:1-2

[기 도]

이 시간을 기하여 아버지 앞에 경배드렸습니다. 금번에 특별히 분배받은 책임 지역에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모인 새로운 식구들이 아버지 앞에 처음으로 경배드리는 자리이오니 친히 임하여 주시옵고, 각별하신 은사와 사랑과 가호로 같이하여 주시옵길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제2차 7년노정을 통하여 새로운 계획과 새로운 뜻을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 앞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사명을 앞에 놓고, 금년 들어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움직여 나온지가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는 이때까지 어느 한반도 그 기준에 맞추어 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오며, 아버지 앞에 민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와 같은 심정에 있는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어떠한 조건이라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기에, 이번에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동원되어 있사오니, 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와 일치시키시어 최후의 승리의 결과를 아버지 것으로 거두어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더우기 오늘 이 자리에 각별히 당신의 자녀들이 모인 것은, 당신께서 일본으로부터 보내 주신 어린 아들딸들을 축하하고 환영하기 위해서이옵니다. 이런 거룩한 시간이오니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들을 이 자리에 보내 놓고, 여기 와서 아버지의 뜻을 대하게 된 이들 위에 당신의 특별한 은사가 같이하기를 이 시간에도 기도하고 있는 줄 아오니, 그들 위에도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도 이번 기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줄 아오니, 그들 위에도 같은 은사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이 통일의 무리를 이 민족 앞에 불러 모으셨사오니, 이들을 최후의 싸움터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어서, 한 많으신 아버지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성사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165
말 씀
오늘은 원래 일본에서 온 식구들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날이지만, 오늘이 주일이어서 전국에 있는 식구들이 이 시간에 예배드리고 있기 때문에,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나서 환영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잠깐 동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5
현세계는 타락이 심어 놓은 결과의 세계
세상에서도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말을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지요. 오늘날 이 세계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민주와 공산이 대결하고 있는데, 하나는 유심사관이요, 하나는 유물사관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개의 사관이 대립되어 있는 세계가된 것입니다. 또 이러한 세계 무대 위에 청소년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러한 결과의 세계가 되었으냐? 말하자면, 심기를 그렇게 심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가 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사람들은 전부 다 그러한 환경에서 살면서 어떻게 그러한 환경을 고쳐 나갈까 하는 것을 크나큰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살고 있는 사람들, 더우기나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때가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끝날은 어떠한 때인가? 모든 것이 끝을 보는 때입니다. 봄절기에 소생했던 초목이나 곡식들은 가을에 수확됨으로써 끝날을 맞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때가 역사적인 수확시기, 즉 가을절기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옛날에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타락의 결과를 복귀노정을 거치면서 기필코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인류의 시조가 어떻게 외었느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 되어야 할 몸과 마음이 돌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즉 한사람이 둘로 갈라진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렇게 뿌려짐으로써 그러한 형태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거쳐 나왔기 때문에,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결실하는 때가 오게 됐으니 그때가 끝날, 말하자면 말세인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뿌린,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갈라진 입장에서 번식되어 나온 인간들이기 때문에, 갈라진 몸과 마음의 형태로 반드시 결실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심, 유물의 두 세계로 갈라져 결실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은 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어느 한 날,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이루어서 천륜을 따른 뚜렷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 보지 못한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면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지탱시켜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두 세계로 갈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 마음은 언제나 하나의 표준과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가려 하는데, 이 몸뚱이는 언제나 그 마음 앞에 반대합니다. 몸이 마음을 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내적인 입장에 있는 것을 제어하고 방해하고 공격해 나왔던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에 선과 악은 상대적 관계에 있으며, 그 중선은 내적이요 악은 외적이기 때문에, 외적인 입장의 악이 언제나 내적인 입장의 선을 공격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의 세계가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체의 마음과 몸이라는 싸움의 형태를 민족적, 국가적, 혹은 세계적으로 전개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20-167
왜 끝날이 와야 하는가
그러면 이러한 형태가 계속되어 언제까지나 역사를 지탱해 나갈 것이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과 몸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고충이 커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개재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비극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의 간격을 좁혀 가지고 그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세계에 평화나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싸움, 자기 한 개체의 싸움을 종식시키지 못한 사람은 세계적인 싸움이 종식되어서 그런 세계에 들어가 산다 하더라도 희망이나 행복 혹은 평화의 여건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 자신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자신이 외적인 세계의 이상적 환경을 맞이하게 될 때에 비로소 마음에 스며드는 평화, 마음에 스며드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서 세계와 연결되어야 비로소 자유롭고 행복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환경이 제아무리 갖추어졌다 해도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입장에 있으면 어떤 행복한 환경에도 화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이러한 실정에 놓여 있는데, 이는 타락의 결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한 개체가 싸우는 형태를 세계적으로 벌려 놓은 것이 오늘날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와 같이 분립된 입장에서 싸움으로 시작하여 싸움으로 끝나게끔 세상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본래 인간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성되었더라면, 인간의 몸과 마음은 영원히 하나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과 마음은 이 땅에서 하나로 출발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그 기준에서 이 땅에 심어졌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인간 조상으로부터 번식된 후손들이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이토록 비참한 세계가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이러한 세계가 이루어진 것은 애초에 그러한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거둘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의 응보로 이러한 세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까지나 이런 세계가 계속될 것이냐? 이런 세계는 종말이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싸우고 있는 내 개체에는 고통이 깃들고 있고, 그 고통은 반드시 악을 유발하는 터전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지어야 합니다. 청산되어야 할 이 세계를 심판하는 끝날이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심판과정을 거쳐서 몸과 마음이 통일된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0-168
통일권의 세계를 이루려면
그러면 갈라진 이 세계를 수습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몸과 마음이 완전히 통일되어 몸이 추구하는 것에 마음이 자동적으로 응해 줄 수 있고, 마음의 바램이 몸의 소망으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한 존재, 하나의 중심을 이 땅에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세계적인 혼란시기에 있어서의 참다운 지도자,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다운 책임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한 것이 메시아 사상,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희망의 세계가 반드시 와야만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만으로써 수습할 수 있을 것이냐? 수습할 수 없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권위를 가졌고, 현재의 입장이 어떻다고 자랑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세계가 절대로 수습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제3의 인간이 나타나야 됩니다. 제3의 인간이 인간 전체를 대표한 모델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남성과 그런 하나의 여성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둘이 완전히 안팎으로 하나가 되어 완전한 통일권의 힘, 혹은 그 동기를 중심삼고 영원한 역사적인 통일의 기원과 접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될 수 있는 남자와 여자, 즉 부부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 신부의 이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결과의 시대에 봉착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에 있는 우리가 염려해야 될 것은, 이 세계를 손아귀에 넣는다 해도 그것을 다시 한번 수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천하를 통일했다 하더라도 그 통일된 세계는 그 내부에 싸움을 내포하고 있는 통일권의 세계이지, 그 내부가 통일되어 가지고 외적인 통일권을 이룬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설령 외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어차피 갈라진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를 바라고 평화를 바라며 천국생활을 누리고자 하여도 현재의 어떠한 줄거리로 얽어매어 가지고는 그런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들 개체의 통일입니다. 몸과 마음이 통일을 이루어 가지고 그 근본된 마음이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의 여건을 차지했다고 주장할 수 있고,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무엇에 부딪쳐도 양보하지 않고 깨지지 않는 중심을 갖춘 인간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세계 평화의 기원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20-169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양대진영을 통합하는 방안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원래의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세계를 통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수습하고 로마제국을 제패하여 타락의 역사적 결과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식권내에 있는 세계를 통일하기 위해 하나님은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약속하신 뜻을 무엇이냐? 이 땅 위에 평화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자유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그러한 자유의 천국, 평화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하나의 개체로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지만, 그의 상대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될 부부가 있을 수 없었고, 하나 될 부부가 없었으니 하나 될 자녀가 나올 수 없었으며, 하나 될 자녀가 없었으니 하나 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이루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왔던 주인공은 슬프게도 악당들에게 몰리고 쫓겨 마침내 십자가에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갔으니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재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양과 염소의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다시 올 그때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2-33)”고 하였습니다. 이 오른편에 둔다 하신 양의 입장에 있는 것이 민주세계요, 왼편에 둔다 하신 염소의 입장에 있는 것이 공산세계입니다. 양은 주인이 있는 입장이요, 염소는 주인이 없는 입장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 하나님을 주인이라 하는 입장, 즉 주인을 가진 면양의 입장에 있는 것이 민주권이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입장, 즉 염소의 입장에 있는 것이 공산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끝날에 가서 양을 옹호하고 염소는 심판할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양을 중심삼고 염소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염소를 심판해 가지고 완전히 제거시켜야 되느냐? 아닙니다. 내적 기준인 민주권이 세계화의 기준을 세우면, 외적 기준인 공산권도 그 민주권의 상대권으로서 세계화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쳐서 깨뜨려 부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는 사람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제어하고 관리하고 통괄하고 주관하여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공동 목표를 달성해 나가야 합니다. 마음과 몸은 그러한 상대적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대적 기준을 아주 제거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적인 것을 중심삼고 몸적인 것을 흡수하여 그에 동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이 시대의 세계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는 투쟁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산세계의 원수는 민주세계요, 민주세계의 원수는 공산당이라고 하면서 서로가 때려잡으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평화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몸 마음을 중심삼은 새로운 운동입니다. 마음이 절대적으로 완전히 몸을 관리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기반을 닦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 이 지상에서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민주세계를 포섭하고 나아가 공산세계까지 포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계가 크나큰 세계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개인이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이 뿌린 것을 세계적으로 열매맺어 놓은 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사람의 형태, 하나는 외적인 사람의 형태로서 이 둘이 계속 싸워 가지고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본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인류를 대신하여 역사과정을 거쳐 섭리를 추진시켜 오신 하나님은 기필코 통일을 모색하는 하나의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이 지상에서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혹 그런 운동이 지상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소망적인 이상의 터전이 역사과정에 남아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종교를 중심삼은 역사상의 문화권입니다.

20-171
민주 공산 회회교권으로 갈라져 나온 배경
오늘날의 종교는 이 땅 위에 어떤 주권국가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기독교를 들어 말하면, 기독교는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로서 이 지상에 아직까지 그들의 나라를 갖지 못하였고, 그들의 세계를 갖지 못했습니다. 만우주 앞에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세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존재, 만우주를 주관하고 이끌어서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권한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가 되어야 하느냐? 종교권을 중심삼고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 예수와 바라바, 이렇게 씨를 뿌렸습니다. 역사가 이렇게 뿌려졌고 뿌린 대로 거두어지는 것인데, 맨 먼저 나타난 것이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형인 우익 세계와 좌익세계, 즉 민주와 공산권이고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이 예수의 십자가를 중심삼고 등장한 바라바형인 회회교권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수 있게 된 바라바형의 회회교는 기독교의 구약을 중심삼고 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뿌려진 역사는 세계의 형태가 3대 진영으로 결속하는 결과적인 시대의 운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랍권의 낫세르는 회회교권을 통합하여 아랍통일국가를 꿈꾸었습니다. 거기에 대비하여 기독교는 지금 `모든 종교를 통합하자’ 하는 세계적인 새로운 추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경향을 바라볼 때, 비운으로 심어진 역사가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종말시대가 되면 이것이 노골화되어 가지고, 처음에 뿌린 것을 이때에 맺어진 모양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섭리의 법도에 의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경향입니다.

그러면 이제 나타나야 할 것은 무엇이냐? 예수는 인류를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그때 왼편 강도는 십자가를 진 예수를 바라보며 비방하였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하며 비방했던 것입니다. 그런 왼편 강도형으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비방하고 부인하는 좌익, 즉 공산권입니다. 그에 반하여 `이 녀석아, 네가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벌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지만, 이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다’ 하며 예수를 인정하고 하늘을 옹호하고 하늘편을 증거하던 오른편 강도형으로 나타난 것이 우익, 즉 민주세계입니다.

그것 참 이상하지요? 누가 공산권을 좌익, 민주세계를 우익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붙였겠습니까? 그렇게 심었으니 그런 결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입니다. `빨갱이’의 `빨강’은 위험을 상징한 반면에 흰색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민주세계를 백색주의라 하고 공산주의를 적색주의라 합니다. 누가 애당초 그렇게 이름 지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천륜 앞에서는 자기 양심을 중심삼고 직고해야 됩니다. 직고해야 돼요. 거짓은 거짓으로써의 종국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정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좌익이니 빨갱이니 적색주의니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실을 확실히 아는 자 앞에서는 직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이 아무리 세계적인 세력의 기반을 가졌다 해도 그 정체의 내부까지 세밀히 투시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좌익 혹은 적색주의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죽을 자리에서 해방을 입은 바라바형인 회회교권의 낫세르, 이 사람은 이러한 좌우의 투쟁 사이에서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낫세르의 정책입니다.

민주세계가 내적이면 공산세계는 외적입니다. 우익이 내적이면 좌익이 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메시아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민주세계의 내적 기반 위에 오셔서 외적인 환경권을 흡수하고, 기독교 문명권을 중심삼고 통합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최후에는 이런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동기가 심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빚어진 것입니다.

20-173
타락의 기원과 그 결과
그러면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복귀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어떻게 돌아가야 될 것인가? 옛날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던 그런 역사에 끌려서 갈 것이냐? 아닙니다. 그런 역사의 줄거리를 다 제거해 버리고, 외적인 결과로 말미암아 빚어진 비참한 환경을 넘어가서 내적인 심정의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를 연결시켜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하신 그 내정적인 심정의 골짜기를 헤쳐 들어가 거기에 일치되어 그의 친구가 되고, 그 상대가 되고, 형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기점에서 내 마음에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내 마음에 자유와 행복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그 기준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제압하여 이 세계를 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나가는 운동이 이 지상에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을 달리 말하면, 예수가 가지고 왔던 새로운 세계주의 이념인 것입니다. 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무엇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거짓말고 갈라짐과 불신의 결과로 이런 세계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에서도 인륜 도덕이란 것이 있어 가지고 피폐해 들어가는 역사의 한 면이나마 지탱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때에는 그러한 역사적인 인륜 도덕이나 삼강오륜도 근본적으로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 혹은 부부 등 이런 모든 가족적인 기본 형태는 원래 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전부 자기를 중심삼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때는 모두 깨부수고 맙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전부 재정립해야 합니다.

타락의 기원이 무엇입니까? 천륜의 질서와 법도를 망각하고 자기 제일주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 타락의 기원입니다. 그러니, 끝날에도 개인주의 풍조가 만연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었으니 그렇게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결과의 세계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거두어 드릴 수 있는 역군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한 세계적인 풍조에 휩쓸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풍조를 가로막고,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전통을 중심삼고 다시 한번 본연의 원칙에 입각하여 새로운 생활의 원칙을 세우며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이 땅에서 벌어져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 선생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이 어디 있어요? 남편이 어디 있습니까? 유한 마담이 얼마나 많습니까? 유한 마담이라고 해서 안 됐지만, 부인이 어디 있습니까? 전부가 엉망진창입니다. 자기의 향락을 위해, 자기의 만족을 위해 역사적인 환경을 팔아먹는 세상입니다. 자기를 위해 이웃을 유린하는 세상이예요. 역사의 기원부터 죄를 심었으니 그 심은 대로 거두어지는 결과의 세계가 지구상에 도래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망국지세로 몰려 들어갑니다. 세계는 망해야 합니다. 세계는 망해 들어가는 운세권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천법을 중심삼고 나가야 할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은 이념을 앞세우고 그 비원리적 법도에 따라 개인의 입장을 중심삼고 자기만을 위한 세계를 꿈꾼 것이 타락의 기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의 후반기에 접어든 오늘날에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풍조가 어떤 것이냐? 개인주의 풍조입니다. 개인 위주의 풍조를 이상시하는 시대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사람들의 안중에는 가정이 없습니다. 스승도 부모도 없습니다. 형제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나라도 없습니다. 오직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향락을 누리면 된다고 하는, 내 고깃덩어리, 즉 몸을 중심삼은 천국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시대라는 거예요.

20-175
청소년 문제도 타락의 씨가 뿌려진 결과다
타락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팔아 먹고 환경을 팔아 먹은 것입니다. 자기 고깃덩어리를 중심삼고 떨어져 나간 것이 타락이예요. 그러한 타락으로 인한 결실이 세계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보고 거기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응수하여 왼손으로 붙들고 오른손으로 쳐 갈겨야 합니다. 이러한 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앞으로 이 민주세계에 돈을 가지고 국권을 팔아 먹을 수 있는, 수표를 가지고 국가를 놓고 거래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마지막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벌어질 때가 온다는 거예요. 이러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현재 어느 편에도 설 수 없습니다. 어차피 정비해야 할 세상이지만, 악이 그렇게 뿌려졌으니 악이 결실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론을 보아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대학가의 청소년들, 20대와 틴에이저 권내에 있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들은 나라를 팔아 먹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나라조차도 자기를 마음대로 팔아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들고 나서면 나라도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젊은이들이 들고 뛰쳐나가면 나라도 왔다갔다해요. 이런 것은 문화국이라고 자처하는 콧대 높은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에게 헛점을 보이게 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다간 대학가의 젊은 청년들 앞에 콧대가 꺾인다는 것입니다. 요즘이 그러한 때입니다. 불란서 같은 나라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면, 곳곳에서 파업과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젊은이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들이 타락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입니다. 또 부부가 합하는 데도 자기들 멋대로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는 천륜의 공법이 원천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천륜의 공법에서 벗어나서 모든 생명의 원동력, 생명의 기원이 되는 사랑의 법도가 길거리에서 하나의 놀이거리가 되고 춤가락에 나가 떨어지는 이러한 세계가 되었으니, 종말이 올 것이 뻔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시기가 언제냐 하면 10대, 즉 청소년기였습니다. 그래 타락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타락했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문제를 중심삼고 타락하여 둘로 나뉜 타락의 씨를 심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두 갈래로 만든 것은 악이 침입한 연고입니다. 악이 침입한 연후의 불륜한 사랑의 결과로 말미암은 그 씨가 세계에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점점 확대되어서 세계가 두 패로 갈라져서 좌우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최상의 선진국에서부터 최하의 후진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그러한 태풍이 불어닥치는 그때가 세상의 끝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심었으니 그렇게 거두어야지….

오늘날 청소년들이 나무 그늘에 숨어서 타락하는 것은 아담 해와가 나무 그늘에서 부모의 공인을 받지 않고 불륜한 사랑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씨를 뿌려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경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고 사상과 주의를 초월하여 세계적인 공통 현상으로 벌어질 때가 올 것이거늘, 그때가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때가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되었습니다」

그러한 바람에 젊은이들도 젊은이들이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 놀아난다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에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라는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 가 보면 의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의자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고 하면 가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대개가 혼자 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일부러 가정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면서 얼마든지 육체의 향락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왜 구태여 가정을 가져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구속받으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그런 육체의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잘못 뿌려진 결과의 바람이 세계적으로 몰아쳐 들어가는 현상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 뿐만이 아닙니다. 구라파의 국가들, 그리고 기독교 문명권이나 불교권의 민족들, 나아가 세계의 국가들이 전부 다 그러한 바람에 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177
앞으로의 시대는 종교의 시대
그러면 그러한 타락의 씨를 누가 심었느냐? 누가 심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은 사탄이 심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모든 타락의 결과를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이 누구겠습니까? 심은 이가 주인 아니겠어요? 사탄이 심었으니 세계적으로 사탄이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두어 가지고 어떻게 하는가? 젊은이들을 앞에 세우고 나이든 사람들을 뒤에 세워 가지고 전부 다 끌고 가는 것입니다. 누가 끌고 갑니까? 「마귀요」 어디로 끌고 갑니까? 지옥으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건 내 수확물이로구나’ 하면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춤바람도 그렇지요. 비비 꼬면서 추는 춤을 선생님이 뱀춤이라고 했지요? 그러한 춤은 흥분제요 자극제입니다. 그래서 그 춤에 걸리면 전부 나가 떨어집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를 망치로 두드려 패는 지옥행 급행열차에 올라타서, 특급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고 `허허…. 나는 간다 간다 세상아 잘 있거라’ 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사망의 골짜기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거 내가 꾸며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했잖아요. 여러분은 마음과 몸의 싸움을 종결시킬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습니까? 자기 마음에 불타오르는 정열 등의 모든 감정을 주관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습니까? 그러한 천륜과 천도가 이 땅에 나타나기를 고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나오면 망국 지경에 봉착해 있는 세계는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전세계에 대하여, 그러한 천도를 가진 한 분이 오셔야 되고, 그런 주의가 나오고,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그러한 숙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제 종교의 시대는 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몰림의 종교, 쫓김의 종교, 피흘리고 핍박받고 눈물짓는 종교의 시대가 있었으니, 천상천하에 그 권위를 자랑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유와 해방을 노래하며 영원무궁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시대권을 한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끝날이여! 어서 오라’ 하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심판역사가 벌어질 것인데 `나는 그 심판의 고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했으며, 그분을 위한 기준이 있으니, 그분이 나를 몰라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이 오셔서 나를 사망의 세계로부터 옮겨 놓아 주실 것이다’ 하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끝날에 이루어질 소망의 천국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무엇하러 왔습니까? 밥 얻어 먹으러 왔습니까, 눈요기하러 왔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계의 비참한 운명과 부딪쳐서 깨지지 않고 비약하여 새로운 천지로 넘어서야 합니다. 통일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마음과 몸의 통일,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통일을 부르짖어야 됩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고, 갈라진 하나님의 사랑의 인간의 사랑을 통일시키기 위해 통일교회에 온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대응관계이니다. 그런데 그것이 끊어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랑의 법도를 세우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서지 못한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싸우는 데는 사탄이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에게 악이 침입하여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싸우면서 개인을 중심삼은 욕정에 불타 사망의 세계로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20-179
혼란된 풍조를 막아내는 통일이념
그러니 여기에서 하늘의 남편을 추구하는 사상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중심삼고 사람들을 정적인 면에서 하나님 앞으로 집중 집결시키는 운동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다, 신랑되신 주님이 오시니 너희는 순결한 처녀의 몸을 지녀 가지고 그 신랑 앞에 순정을 바칠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라’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교리입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갈라진 인간을 규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인간의 마음과 몸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 안팎으로 모순이나 상충 또는 투쟁이 없는 결과를 빚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사탄을 중심삼고 외적인 사랑을 한 것이 동기가 되어, 몸과 마음이 상충된 입장에서 투쟁하는 결과가 빚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외적인 몸을 중심삼은 사랑이 내적인 마음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영원한 생명의 기원이 되는 하나님으 사랑을 배반하여 나오는 역사의 결과가 빚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외적인 사랑, 즉 사탄의 사랑을 제거하고 거기에 본연의 내적인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서 몸과 마음을 규합시켜야 됩니다. 그래야만 여기서부터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은 개체로부터 필요하지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방안을 제시해 주는 곳이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세계를 규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싸움을 종결시켜서 마음이 권한을 갖고 몸을 지배할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빚어내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천륜의 법도에 응할 수 있는 사랑의 법도를 세워, 인륜이 아닌 천륜을 중심삼은 새로운 도덕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교리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관과 우주관을 설정할 수 있고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빚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천국이념이 될 것이요, 또한 그것은 이 세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부터 벌어질 것인가? 1967년부터 벌써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소련 공산당이든 누구든 제멋대로 높다고 꺼떡거리는 녀석들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자기 멋대로 높다고 하는 것들은 다 꺽이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 못 간다는 거예요. 높다고 하는 녀석들을 하늘이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금년부터는 미국 같은 나라도 주도권을 상실해 갈 것이고, 공산권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입니다. 또한 한국에도 그런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고, 세계 전체까지도 그런 바람이 불어닥칠 것입니다.

이런 혼란된 풍조가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고, 또한 우리의 생활권내에까지 침입해 들어오고 있는 이 마당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세계의 모진 바람이 자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밀어치는 이때에, 세계의 모진 바람이 자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밀어치는 이때에, 세계의 이런 풍조가 태풍같은 기세로 나를 몰아치는 이때에, 우리는 그러한 기세를 때려부술 수 있는 자력과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 힘과 권한을 갖고 있습니까, 안 갖고 있습니까? 안 갖고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70문도를 세워 가지고 각 지방에 둘씩 둘씩 보내서 추수할 일꾼을 찾으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추수하려면 낫이 있어야 되지요? 그런데 그 낫이 볏단보다 강해야 되겠습니까, 약해야 되겠습니까? 약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 강해야 합니다. 얼마만큼 강해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만들 수 없어서 그렇지, 돌멩이가 있어도 그것을 깰 수 있을 만큼 강해야 됩니다. 강하기로 말하면 세계에 둘도 없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강합니까? 아주머니들, 강해요? 내가 자르면 잘리겠어요, 안 잘리겠어요? 「안 잘립니다」 안 잘려요? 목을 잘라도 안 잘려요? `목은 잘려도 마음은 안 잘린다’ 해야 합니다. `고깃덩이는 잘려서 떨어져 나가도 마음덩이는 안 떨어진다’ 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이 되어 있어요? 「예」 내가 그렇게 한번 해 봤으면 좋겠는데…. (웃음) 그러니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수확입니다. 그 수확이 문제입니다.

20-181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이념으로
오늘날은 전부 다 두 패로 나뉘어 있습니다. 외적인 세계에서도 두 패로 나뉘고, 내적인 세계에서도 두 패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한 패와 사탄을 중심삼은 한 패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서로 자신들을 자랑합니다. 선생님은 오늘날 이 현실세계, 20세기 문명의 세계 곳곳을 다 다녀 보았지만, 나는 그런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놈의 뉴욕아, 네가 찬란한 문화의 상징이냐? 이 세상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때에 있는 줄을 아느냐?’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48주를 전부 돌아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미국을 사랑하시니 미국이여,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어림도 없어요. 내가 세계 40여개국을 돌아다녔지만 어디를 가도 기가 막히고 답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못난 통일교인 여러분들을 보면 좀 낫습니다. (웃음)

아무리 찬란한 문화권이라 해도 그것이 사탄이 기뻐하는 문화권이라면 언젠가는 거기에 하늘의 비수가 일격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토막을 내서 없애버려야 됩니다. 그러나 자를 때 뼈가 있으면 잘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살은 다 잘렸는데 뼈가 안 잘리고 남아 있으면 잘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살은 다 잘렸는데 뼈가 안 자리고 남아 있으면 거기에 또다시 살이 붙게 됩니다. 살이 있는 곳을 내리치면 잘 잘리다가 뼈다귀가 있으면 거기서부터 잘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뼈다귀가 있든가 철근이 있든가 강철이 있든간에 내가 칠 수 있는 칼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부패한 전통을 소탕시킬 수 있는 하나의 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도 자를 수 없는 뼈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요즘에는 `돈!’ 하면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주권을 가진 사람이든간에 꼼짝 못합니다. 그러니 새로운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이런 불합리한 것들을 모두 밀어 제칠 수 있는 무리들이 나타나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를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남을 타고 앉아 찌르고 패고 찢고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자기의 위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남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애국자도 그러한 사람이요, 충신 열녀도 그러한 사람이요, 예수님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성인의 기준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더 큰 것을 위하여, 즉,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온 만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갈래갈래 찢어서라도 나눠 주고 싶어하는 데서 결정됩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위대한 사상입니다. 기독교 사상이 바로 그러한 사상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공산당들은 선전미화를 위하여 3대조상 중에서 부르즈와 계급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종교사상을 중심삼고 원수까지 용서해 주는 기준에서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즉, 그러한 것을 실천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종교에 있다는것입니다.

앞으로는 공산세계도 아니고 민주세계도 아닌 무슨 세계가 와야 하느냐? 우리의 마음을 위주로 한, 하나님을 존중하는 세계가 이 땅에 나타나야 됩니다. 사망의 몸뚱이를 넘어서 우리의 마음이 갈구하는 소망의 세계가 이땅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갈망하는 평화의 왕국시대요, 우리 통일교인들이 말하는 지상천국시대입니다. 그 세계를 향해서 우리는 사망의 구렁텅이를 메우고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세계로 넘어가기를 원합니까? 얼마만큼이나 원합니까? 죽음에서 소생하기를 바라는 그 이상의 간절한 마음을 가져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남편이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져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7일 금식이 끝나기 5분 전에 밥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 이상의 간절한 마음으로 그 세계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7일 금식을 할 때도 그러는데,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할 때는 어떠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떠났던 사탄이가 광야에서 금식하는 처량한 예수 앞에 나타나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지요? 그 이상의 것을 부정하고 넘어가서 천륜의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 하늘의 역군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인격과 하늘의 이념을 찾아서 그것을 따라가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한 간절한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까? 가져 보았어요?

20-183
선한 사람들이 가는 길
새천국, 새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종자는 어떤 종자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심어서 거둔 종자는 자기 아들딸을 종심삼고 `아이구 나는 너 없이는 죽고 못 산다. 너 안 데리고는 못 살아, 너는 죽어도 내 것, 살아도 내 것이다’ 하는 종자들입니다. 이런 패들은 새시대, 새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이 모든 사망의 환경을 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지 않고서는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이 세상에 있을 수 있습니까? 네로 황제가 폭군이듯이, 예수님도 폭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폭군은 폭군이지만 사랑이 폭군인 것입니다. 사랑의 폭군이예요.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나밖에 없다’ 했으니 사랑의 폭군이 아닙니까?

사랑의 폭군은 말없이 주면서 세계를 정복해 나옵니다. 사랑의 폭군은 주면서, 희생하면서 정복해 나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의 폭군은 남에게 칼침을 놓고 남의 배를 찌르면서 망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법도에 지배받는 세계가 본연의 세계요, 소망의 천국입니다. 여러분이 본연의 세계, 소망하는 나라의 백성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 봤습니까? 그런 마음 갖지 않으면 절대 천국 못 갑니다. 천국 못 가요. `하나님, 예수님, 내 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그 나라에 붙들어 주십시오’ 하고 암만 기도를 하고 큰절을 해봤자 그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어림도 없어요.

기성교회를 다니다가 오늘 여기에 처음 온 분들이 있거든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거든 영계에 가서 다시 만나 봅시다. 지옥에 가 있으면 내가 “너 그때에, 내가 얘기할 때에 `설마 그럴까?’ 했지? 그것 봐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나하고 다시 한번 얘기해 봅시다.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보자는 겁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이 말을 왜 했겠습니까? 지금까지 인간들의 사랑은 타락하여 깨진 사탄세계에 그 기원을 둔 것이나, 새로이 접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접붙여야 되는 거예요. 기독교의 교리는 접붙이는 것입니다. `나는 참감람나무요, 너희는 돌감람나무니 잘라서 접붙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모릅니다.

결과의 세계가 이런 세계로 벌어졌으니, 결국 사탄이 심은 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이 모양 이 꼴로 나가다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흥하겠습니까, 망하겠습니까? 망합니다, 망해요. 이것만 알아 두십시오. 다 잊어도 괜찮습니다. 복잡한 내용 같은 거야 몰라도 괜찮아요.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나가다가는 망한다는 것만 알아 두라는 겁니다. 미국이든, 소련이든 다 망한다는 거예요. 알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어떻습니까? 망하는 세계에서는 살지 않겠습니까? 망하는 세계라도 괜찮으니 그냥 살겠습니까? 어때요? 전자예요, 후자예요? 「전자입니다」 욕심들은 많구만. 병신 곰배팔이도 전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라고 주장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세계를 위한 마음이 얼마만큼이나 피살에 연결되어 있고 골수에 젖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곤란할 때에 자신을 염려하는 것보다도 그 세계를 사랑하고 앙모하고 동경하는 비중이 커야 합니다.

오늘 괜히 통일교회에 와서 벅찬 말만 들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럭저럭 살아 가지고도 천국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거 듣고 보니 전부 다 천국 못 가게 되어 있으니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수라도 써야지…. 이 세계가 어떻게 된다고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말만 들어도 슬프지요? 흥한다고 하면 기분 좋겠지요? 이 세계를 끌어다가 불사를 곳이 어디냐? 지옥입니다.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악한 마귀대왕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가만히 보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논리에 따라,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는 종말시대가 왔습니다. 결실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악은 그렇게 뿌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거두어지는 세계적인 종말이 왔는데 선은 어떠한가? 악은 나타나게 뿌려졌지만, 선은 보이지 않게 뿌려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악한 사람들은 드러내는 데 있어서 선두를 달렸지만, 선한 사람들은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맨 말미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타나지 않는 자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선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비참한 길입니다. 참소와 저주와 핍박의 울타리 안에서 고독단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외로움을 느껴 보았습니까? 사망의 홍수가 밀어치고 사망의 태풍이 몰아치는 환경에서 고독단신으로 `오호라, 나는 외로운 사람이로다’ 하는 사람, 동서남북 어디를 바라보아도 사망의 환경이 가로놓여 있고, 사망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사망의 사자가 농락하며 으르렁대는 환경에서 홀로 의연히 세계를 바라보며 한탄할 수 있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분한 마음을 품고 사탄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하며, 천년 만년이 흐르더라도 `어느 한때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비참한 자리에서 그 마음에 개인적인 한을 간직하고, 가정적인 한을 간직하고,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한을 간직하고, 이 땅 위에서 싸우다 간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세계를 위해 총칼에 찔리고, 창끝에 끌려 간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남이 모르는 자리에서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화살을 맞아 비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20-185
선의 결실이 맺어져야 할 끝날
여러분, 선은 어떤 자리에 어떻게 뿌렸졌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선은 칼끝에 쫓기는 자리에 뿌려졌고, 악으로부터 몰리는 환경에 뿌려졌으며, 지극히 고독한 자리에 뿌려졌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러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아니고서는 참다운 선의 씨가 뿌려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선은 비참한 자리에서 양심적인 터전을 다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 연단의 역사과정을 거쳐서 선의 씨가 뿌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찌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정을 향해 가야 했느냐? 어찌하여 피눈물이 엇갈리는 생사의 교차로를 지나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야만 했는가? 사탄이 그런 자리에서 뿌렸기 때문에, 사탄의 떨리는 손길로 뿌려진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수확하는 농군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시련을 당하는 비참한 자리에서 하늘의 심정을 능가하는 심정을 갖고, 떨리는 손으로 낫을 가누어 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런 비참한 생애노정을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야 그 바람이 어떤 바람이었는지 분석하여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그러한 비참한 생애를 보내고 그 비참한 운명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사람들은 그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의 업적을 찬양하여, 그성현들을 중심삼고 세운 것이 역사상의 중심사상으로 남아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선은 어떻게 뿌려졌던고! 인간으로서 최고 비참한 자리에서 뿌려졌고, 생사의 결정권이 교차되는 숨막히는 자리에서 뿌려졌고, 사망의 총끝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자리에서 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두는 데도 뿌린 대로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뿌려진 모양대로 거두어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어떤 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져야 됩니다.

세계 역사를 이끌어 온 기독교가 눈물로써가 아니면 하늘을 대할 수없고, 눈물로써가 아니면 세상을 대할 수 없는 입장에서 악과 부딪쳐 눈물로 씻어 나오는 피눈물의 역사를 이어온 것도, 그렇게 뿌려 온 4천년 역사의 기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결실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려진 역사의 결실을 청산지어야 할 때가 되었으니, 이제 악은 전부 다 물러나고 사랑이란 두 글자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하나의 천지가 나타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악마의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로 통합하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악마의 골짜기도 청산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이 지구상에 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입니다.

갈라진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고, 갈라진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통일시켜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선의 세계가 결실된 하나의 천국 세계로 들어가자고, 통합을 부르짖는 운동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되는 사상, 즉 원수들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는 세계의 가치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선으로 거두어지는 세계의 가치가 더 커야 새로운 천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가 마지막 끝날입니다.

20-187
선의 결실을 거두어야 할 통일의 역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정욕을 절제해 왔습니다. 자유와 평등과 이상을 존중하고, 그 이상의 나라를 찾기 위해 개인의 향락은 전적으로 부정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으로 보면 모순입니다. 세상에서는 이상의 나라를 추구하는 동시에 개인의 향락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거꿀잡이가 돼서, 이상의 나라보다 현실을 더 중요시합니다. 현실의 먹고 사는데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고 뭐고, 다 시시하고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천국이다. 그러니 여기서 잘 먹고 잘 살면 됐지, 장래는 생각해서 뭘 하느냐’고 하며 현실의 향락을 위주로 미래를 망각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가 우리 목전에 벌어지고 있는 이때에 기독교는 현실과 반대되지요? 기독교는 지금까지 현실을 부정하고 천륜의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신랑신부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추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추수를 하는 데는 논바닥에 나가 벼를 베는 그런 추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망세계에 썩어져서 사탄의 제물이 될 그런 벼를 추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6천년 피어린 투쟁의 역사과정에서 몰리고 쫓기며 쓰러지는 가운데 뿌렸던 씨를 하나님 앞에 공적인 실적으로써 거두어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눈물과 피와 땀으로 뿌렸으니, 거두는 데도 비참한 환경에서 눈물과 피와 땀으로 거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산지사방의 환경으로부터 핍박과 저주가 몰아치더라도 `나만 남았나이다’ 하면서, 하늘의 수확을 거두어 가지고 힘차게 돌아올 수 있는 하늘의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뿌려 놓은 역사를 심판하여 하늘 것으로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추수기에 결실이 되어 가는 모든 것을 우리가 하늘의 수확으로 분별해 거두어 들여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두어 들이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거두어 들여야 되느냐? 눈물이 감돌고, 피땀이 감돌고, 죽음이 감도는 생사지권(生死之圈)이 좌우로 뒤넘이치는 그런 지경에서 거두어 들여야 됩니다. 예수도 그 자리를 꿈꾸며 십자가의 길을 갔고, 기독교 또한 그 자리를 꿈꾸며 순교의 역사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뿌렸던 것이 세계적으로 결실되는 이때에, 그것을 거두어야 할 사명이 오늘날 이 끝날에 하늘을 믿고 나가는 사람들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책임지기 위해 나선 것이 통일교회라면, 여러분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아요, 나빠요?

그 어떤 종교가 한국 땅에 나와서 20세기 문명을 자랑하는 사탄 주권을이 땅에서 몰아낸다면, 세상 사람이 전부 비웃고 저주하고 우습게 생각하는 한국 땅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 사람들도 한국 땅에 와서 굴복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다 좋아해야 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다 좋아해야 됩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숨이 떨거덕 넘어가면서도 `아이고 좋다’ 해야 됩니다. 그렇게 못 죽어가는 사람은 얼마나 원통할까요! 그러니, 떨꺼덕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세상아, 네가 암만 그래도 나는 간다. 하지만 괜찮다’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멋지겠어요, 안 멋지겠어요? 여기 젊은이들, 멋져요, 안 멋져요? 멋지지요? 그럴 수 있다면 벌거벗고 춤을 춰도 괜찮습니다.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소문도 났지만…. (웃음) 여러분, 얼마나 멋집니까? 여름날 냇가에 가서, 아! 하고 숨을 들이쉬고 물 속에 뛰어들 때의 그 기분보다 더 좋지요? 저러면서도 왜 신랑은 교회에 안 데리고 나올까? 남편한테 절대 복종만 해 보세요. 남편이 여러분한테 뭔가 툭하면 불평불만하고, 불순종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환경이 옥살박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부에 그렇게 폭발될 수 있는 원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남편이 오늘 통일교회 안 간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제서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는 여러분이 처량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보고 `아이고 하나님의 딸이 저 꼴이야!’또 `하나님의 아들이 저꼴이야!’ 하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반대를 왜 받습니까? 반대를….

우리 통일교회가 반대를 많이 받았지요. 내 이 두 눈으로 별의별 꼴을 많이도 보아 왔습니다. 머리가 깨져서 오지를 않나, 다리가 부러져서 오지를 않나, 뭐 궁둥이 살이 떨어져 나가고 치마를 벗은 채 쫓겨오질 않나, 별의별 꼴을 다 봤습니다. 그렇게들 하고 오는 것을 내가 구경하겠다고 했습니까? 제발 그런 꼴을 하고 오지 말라고 해도 그러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는 사람을 쫓아 보낼 수도 없고…. 한참 그럴 때는 통일교회가 흘러가는 물결에 자국도 없이 떠내려가 버릴 줄 알았겠지만, 오늘날까지 여전히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전부 다 흘러 내려가 버리지만 뭣이 큽니까? 「콩나물이요」

20-189
지도자의 길
그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나서 그런 일을 당했느냐! 선생님의 외모도 이만하면 못생긴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미국이나 구라파 일대를 다녀 보았지만, 내 키가 작은 키가 아닙니다. 중키는 되지요? 동양 사람이 이만하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 축에 들어가도 작지 않습니다. 남들만큼 잘나지 못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본다고 해서 땀흘려 일할 필요 있습니까? 그런 일은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은 누가 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해달라고 해서는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안 하면 안 될 공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여러분을 위해서보다도 하늘을 부름을 받고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충절을 다해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때 어느 동네에 들어가면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씩이나 죽어 나가빠집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아이고 우리가 급벼락을 맞은 것은 저 젊은 녀석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 녀석을 쫓아내자’고 합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쫓겨나 보기도 했습니다. 지독하지요? 왜 하필이면 나중에 죽지 않고 내가 들어갈 때 죽었을까? 선생님이 어딜 가든지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가는 곳곳마다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겠습니까? 원수의 세계에 하늘의 사람이 왔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간첩이 내려오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편안해 하는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좋아하고 세상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지도자는 아무리 좋은 주의와 사상을 갖고 나왔다 하더라도 세상과 함께 뒤넘이치는 길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피를 토하고 매를 맞아 몸을 가눌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갔을 때에도 나는 누구를 원망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 원수를 복수해야겠다. 기어코 원수를 갚고 말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뿌릴 때에 그렇게 뿌렸기 때문에 그렇게 거두는 것이므로,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터전 위에서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주인이 못 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혹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좋기는 좋다. 그 가르침도 좋고, 믿음도 그 가르침대로 따라서 해야 되겠지만, 그것 따라가려면 너무 비참하다. 비참해! 아이고, 너무 너무 비참해’ 하며 후퇴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보면 비참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통일교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이 일을 혼자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게는 스승도 없습니다. 친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싸워 나오신, 몰리고 쫓기는 외로운 자리에 내가 대신 들어가고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나왔습니다. 그 자리는 모든 화살이 퍼부어지는 자리요, 삶고 죽음이 교차되는 자리요, 골고다를 거쳐 가야 할 탄식의 자리인 것입니다.

만일, 민주주의가 나오지 않았으면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어땠을 것인가?

선을 뿌려 오신 하나님이 거두리라고 약속하셨던 그 약조를 이루어 드리는 수확의 역군이 되기 위해서는 비참한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절정에서부터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서라도 거기에 뿌려진 선의 결실을 수확해 드리겠노라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슬피 우시며 탄식의 한을 품으시고 이 땅에서 사망의 세계를 심판할 목표를 세워 놓고 나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슬퍼하신 그 자리에 들어가 `당신이 거두기를 원하시는 수확을 제가 거두어 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죽은 해골의 곳이 그러한 자리였고, 아브라함 등 역대의 우리 선조들이 걸어간 그 자리 또한 하나같이 그러한 비참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선조들을 부활의 실체로 거두어 들일 수 있고,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권위를 갖추어야만 추수의 역군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20-191
선의 결실을 거두려면
하나님이 그러한 선의 씨를 뿌리는 데는 하나의 놀이거리로써 하나의 취미거리로써 뿌린 것이 아닙니다. 심정이, 몸과 마음이, 세포와 몸의 모든 것이 일체가 되어 있는 정성을 다하여 뿌린 것입니다. 전역사에 걸쳐서 이렇듯 떨리는 손길을 통하여 뿌려졌으니, 그 결실을 거두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가지고, 마음이 호소하는 자리에서 손길이 떨리고 세포가 떨리고 전신경이 집중되는 자리에서 수확을 거두지 않으면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정성을 다하여 뿌렸으니 그러한 성의를 갖고 수확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이 땅에 뿌려진 선의 결실을 거두어 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가자는 것입니다.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을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을 거치셨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만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고, 그런 자리에서만이 결실된 것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의 도리를 가르쳐 나오는 것입니다.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자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민족을 사랑하고, 그런 기준에서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한 이 세계를 품어서 굴복시킬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외적인 세계까지 굴복시킬 수 있는 주도적인 권한을 갖추자는 것입니다. 결국은 본래 인간이 이루어야 했던 몸 마음을 통일하여, 그것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로 출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결실을 이 땅에 이루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이념으로 완성해야 할 표준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내용을 중심삼고 나아가는 것이니만큼 그 과정에도 비참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의 눈에는 눈물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가면서 피땀을 흘려야 됩니다. 하늘 앞에 제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로마 제국시대에 또는 바로의 학정 밑에 비참하게 쓰러진 기독교인들의 터전을 응당히 자신이 가야 할 현실적인 무대로 생각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승리의 실체가 되겠다고 내적인 다짐을 하며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그러한 현장이 있다면,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뿌려진 선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민족의 뒷골목을 가야 합니다. 오늘날 천도를 중심삼고 선악을 판별, 분별하는 기준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선은 악한 세계의 뒷골목에 있다는 것입니다. 뒷골목에 있어요! 비참한 눈물이 감도는 그 세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하는 것입니까,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갯벌에 뿌려진 선의 결실을 거두지 않고는 악을 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것을 위해 존속해 나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7년노정을 승리하고 돌아왔지만, 선생님은 7년노정에서 피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피눈물이 많이 흘렸어요. 밤이나 낮이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 해도 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누가 아니 간다고 원망할 일도 아니고, 친구가 없다고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작정하신 섭리의 결과를 거두어야 할 사명이 있기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선의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실을 거두어서 심정의 낫질로 갈라진 자신을 통일시키고, 분리된 천정과 인정을 통일시켜야 할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라나오고 있는 무리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 자체는 무딘 낫끝일 망정 수확하는 데 쓰이는 도구로서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실체를 통하여 오늘날 망해 들어가는 세계를 바르게 이끌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중심의 세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퇴폐적인 풍조를 잘라내야 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점령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그러한 세계의 풍조를 막아 치워없애 버리고, 사탄이 끌고 가는 사망세계의 인연을 모조리 다 끊어 버리고, 사망의 세력을 방지해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통일용사로서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하늘땅을 중심삼고 그러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천주는 하나님 앞에 완성한 결실체로써 거두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감당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전번에 백일 동안 기도한 것도 그런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음 알고, 더더욱 정성을 들여서 제2차 7년노정을 의미 있게 출발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선의 결실을 거두는 추수의 역군이 되어 하늘에 기억되고,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20-193
기 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로부터 부름받고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의 눈 앞에는 사망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가 교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역사적인 교차가 저희의 갈 방향을 혼란시키고 있는 이 마당에, 세계적으로 종교인들이 전부 꺽여 나가는 이 마당에 있어서, 하늘이 이런 것을 꺽으실 때는 선한 기준을 세워 놓고 치신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하늘의 때가 어떤 기준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표정과 자세를 가다듬어 백일청천하에 아버지를 부르며, 저희의 때가 왔노라고 활개를 치고 춤을 추며 아버지께로 달려갈 수 있는 자유의 천지가 저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고, 슬펐던 과거가 기쁨으로 변할 수 있으며 억울하고 비통한 사실이 찬란한 하늘이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때로 바뀌어 찾아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저희들을 이런 자리에 몰아 넣으신 그 모든 것이 다 저희들에게 당신의 심정을 상속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천만사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사옵니다. 하오나 이런 자리에 서지 못한 자신을 자탄하게 하시옵고, 지금까지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하늘땅 앞에 나서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을 탄식할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생명과 사망이 교차되는 이 순간에 생명의 권한을 갖고 사망의 주권을 굴복시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와 같은 날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각 지구별로, 지역별로 흩어져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오늘 당신의 은사로써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뿌리신 선의 결실을 거두기 위한, 수확하기 위한 그 자리를 저희들이 돌파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러하고 일본에서도 그러하고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도 그러하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통일의 역군들의 이마에는 땀을 흘려야 되겠고, 눈에는 눈물을 흘러야 되겠고, 그 손길과 몸에서는 피를 흘려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이 길을 다 가서 아버지께서 안식할 수있는 그날을 맞이할 때까지 죽고 또 죽기를 고대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싸움에서 지치는 자들이 되지 말고, 싸우고 또 싸우겠다고 결의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많은 역사의 서러움을 잊어버리고, 생명의 깊은 심정을 품고 자유로운 천지에서 당신을 `아버지’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러 볼 수 있는 기쁨의 날을 이 땅에서 맞이하여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고, 아버지를 높여 드릴 수 있으며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시간에도 당신의 거룩한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 남한 각자에서, 혹은 세계 각처에 널려서 이 통일의 본부를 그리워하고 있는 아들딸들이 많사오니, 그들의 애원을 전부 이루어 주셔서 아버지와 더불어 기필코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세계에서 저희들, 뜻 앞에 충절을 다짐하는 이 시간 되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내리신 깊은 심정을 중심삼고 자신을 반성하고, 당신 앞에 부복하여 당신께 결속되고, 당신의 위치에 터를 잡고 서겠다고 새로이 결의하고 새로이 맹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사가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올 때,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