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 to 10-142: 새롭게 출발하자

새롭게 출발하자
1968.05.01 (수), 한국 전본부교회

20-113
새롭게 출발하자
오늘은 협회창립 14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우리가 이날을 기념하는 마당에서 지나간 7년노정을 바라볼 때 이러한 것이 왜 필요했느냐? 그것은 우리가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20-113
탕감의 제반요건
탕감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탕감은 개인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면 탕감을 해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탕감된 자체가 그냥 탕감된 것으로 끝나 버린다면 이것은 밑도 끝도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탕감을 해가지고는 승리의 존재로 서야 됩니다. 승리의 존재란, 승리를 했을지라도 그 환경을 중심삼고 거기에 따라가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주동적인 입장에서 주체적인 승리자의 권한을 가지고 그 환경을 대표해서 나타나지 않으면 승리의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탕감을 통한 승리권은 먼저 개인의 승리한 기반 위에서 가정이 승리해야 되고, 가정이 승리한 그 기반 위에서 종족이 승리의 터전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로 복귀역사는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이 발전해 나오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왜 탕감이 필요하고, 왜 승리가 필요한 것이냐?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근원은 우리 조상이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탕감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 우리 자신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태어나 보니 이런 타락된 세상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 태어난 그 자리가 탕감의 조건을 넘어서지 못한 자리요, 탕감조건을 밟고 넘어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운명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탕감을 하는 데는 대신자로서는 안 됩니다. 지은 죄를 탕감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이웃 사촌도 안 되며, 자기의 아들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해야 되느냐? 인간의 종지조상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그 한 분을 세우지 않고 탕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된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할 때,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대표자요 책임자는 어떠한 분이어야 되느냐?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가의 통치자로서도 안 되며 어느 시대 하늘의 사명자, 선지자로도 안 됩니다. 탕감의 중심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이면(裏面)에서 조상의 책임을 대신 상속받아 가지고 오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런 분이 아니고는 세계적인 승리의 조건을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로부터 타락이 빚어졌고 그 이후 인간들도 계속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를 걷어치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간 조상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한 분을 찾아 인류 앞에 소개하기 위한 것이 세계의 수많은 종교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양심이 목표로 하는 이상을 중심삼고 세계의 인류를 하나로 수습해야 합니다. 이것을 수습하려면 자아를 어느 기준까지 완성해야 하느냐? 인간 조상의 후손으로서 그 모든 죄의 보따리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아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조상 되는 대신자는 천상세계로부터 대를 이어 가지고 이 땅 위에 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탕감하여 승리권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권한을 세운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로서의 기준도 아니요, 아들로서의 기준도 아니며, 종으로서의 기준인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천사와 얍복강에서 씨름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천사장이 인간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인간이 천사장을 대신한 천사와 싸워 천사를 굴복시켜 가지고 승리의 권한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기준을 중심한 이스라엘을 세워서 영적 기준의 이스라엘을 계대(繼代)하여 실체적인 이스라엘권을 조성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기준이 이스라엘권을 가졌던 이스라엘 민족도 실체적인 기준, 즉 아벨의 입장에서 승리의 권한을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번번히 망했던 것입니다.

20-115
양자와 독생자
그러면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무엇이며, 선민사상이란 무엇이냐?

기독교 역사는 종의 터전 위에 양자를 세운 역사였습니다. 아들은 아들인데 직계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양자였습니다, 양자! 양자도 물론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권은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와 직계자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양자는 그 핏줄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자기의 핏줄을 잘라 버리고 접을 붙여 직계의 혈통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혈통이 다르다는 것은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다른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에 의하지 않고는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는 타락하지 아니한 종지조상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그한 분이 올 때까지 종교의 이념을 중심으로 연결시켜 왔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천당에 가고, 안 믿으면 못 간다는 말을 합니다. 도대체 이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기독교인은 만민의 구세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불교나 유교에서는 `우리도 세계적인 종교인데 기독교만 중심삼고 만민을 구원할 것이 무엇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하여튼, 불교나 유교도 동서양의 문화를 묶기 위해 하늘이 특별히 세운 종교입니다. 세계적인 아벨, 혹은 양자로서 책임을 할 수 있는 역사를 대표한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나 유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땅 위에 죄악이 출발되었던 것은 인류의 종지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책임지고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나는 인류 조상이다’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주장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한마디가 세계사를 출발시키는 새로운 선민적 표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이 말은 예수님이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독생자라는 그 말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이 예수님이 주장하시는 말씀인 복음 가운데 나타났다는 사실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새로운 시대가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요, 새로운 세계가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된 것입니다.

20-116
제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와 다른 종교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다릅니다. 다른 종교는 국가와 인류의 도덕을 가르치며, 영계에 관한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교는 영계를 가르쳐 주고, 유교는 사회에 관한 인륜 도덕을 가르쳐 줍니다. 이들은 땅에 대한 치리, 영계에 대한 치리법(治理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정을 세울 수 있는 혈통적 기원인 사랑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 기독교나 타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전부 다 하나가 되는 것음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피와 살이 얼크러져 일체로서 움직일 수 있는 부자의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예수님은 신랑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인 예수님은 신부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서로가 형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와 신랑 신부, 아들딸이 일체가 되어 사탄세계를 청산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보면 예수님은 인류의 조상으로 오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실패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2의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신랑의 입장에서 신부를 맞아 부부를 이루어야 했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거꿀잡이로 섭리했던 것입니다.

원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부모가 되어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관하는 거짓부모가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했던 참부모는 없어졌습니다. 참된 인류의 조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20-117
참부모와 거짓 부모
오늘날 지구상에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래의 참된 부모의 후손이 아닙니다. 타락의 혈통을 타고난 후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양자밖에 못 됩니다. 양자!

고생해서 심어 놓은 나무가 돌감람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외부야 번지르르 하지요. 핀 꽃도 같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맺히고 보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수리 밥이나 또 다른 밥밖에 되지 못합니다. 즉 거짓부모의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 근본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섭섭하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립니까? 거짓부모의 핏줄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몸 속에 흐르는 이 피가 원수의 피입니다. 원수의 피가 내 몸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태어나 보니 내게서 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몇 대조의 할아버지로부터 그 원수의 피를 받아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피를 뽑을 자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조상이 원수의 피를 받아 태어났으니 하늘이 혈통을 받은 새로운 조상이 아닌 사람으로는 이 피를 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늘의 혈통을 받은 새로운 조상이 아닌 사람이 그 피를 뽑으려고 한다면 사탄은 `야 이녀석아! 너의 조상이 있는 데 너는 뭐냐’ 할 겁니다.

이 세계에 수십억의 인류가 살고 있지만 모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문제는 참부모, 이 한 분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 일반 잡도(雜道)에서도 천지부모니 뭐니 하는데, 그들이 알기는 잘 알았어요. 천지부모가 왜 생기느냐 하면 그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한이 무엇이냐? 태어나보니 가짜로 태어난 것이 한이어요. 가짜 운명이 좋아요, 나빠요? 모양이야 번지르르 하지요. 뻔질뻔질하고 허울은 좋은데 가짜가 더 윤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 패입니다.

그런데, 가짜도 순수한 가짜가 아닙니다. 수천 대 가짜 부모의 피를 타고 내려오면서 오만 잡탕이 다 섞였다는 것입니다. 즉, 가짜 부모의 피를 종합해서 태어난 주식회사란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들썩들썩하고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세상이 뭐가 좋아서 지금까지 명(命)대로 다 살고, 이래 가지고도 무엇을 먹는다고 먹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분이 나빠요?

이런 가짜 보따리를 언제 청산할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런 마음이 없습니까? 한쪽 눈이 안 보이면 그 눈을 뽑아 버리든가 고쳐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것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기심이나 질투가 많아서 지옥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가짜가 생겨나서 가짜를 처리할 수 있는 처치 창고로서 지옥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누가 쓰레기통을 먼저 만들고 집을 짓겠습니까? 예를 들면 김치를 담그려고 좋은 채소를 사 왔는데, 담다 보니 벌레먹은 우거지 같은 것이 나오니 쓰레기통에 담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인간의 종지조상이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여 죄를 청산짓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자격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어떠한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기독교가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20-119
신앙은 스스로 탕감의 길을 가는 것
하늘편은 언제나 맞고 나서야 때렸습니다. 맞고 때리면 그것은 정당방위지 죄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늘편은 먼저 맞아 나왔지만 먼저 때린 쪽에서 번번히 져 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먼저 친 나라들이 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먼저 친 나라들이 졌습니다. 요즘에도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보세요. 미국이 번번히 맞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조그마한 월남을 중심삼고 큰 미국이 한대 얻어 맞았잖아요?

이제 하늘편에서는 공격작전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심판할 단계가 되면 세계적인 공격작전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야 이 땅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편에서 언제나 총칼을 들고 하늘편을 칠 수 있게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람은 언제나 빼앗기면서도 좋다고 합니다. 지지리 고생하면서 쓰레기통 속의 벌레에 가까운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 작전 태세를 보이는 사람이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원수 사탄에게 전부를 빼앗겨 버리고 더구나 몸에는 사탄의 피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 원수 사탄의 피를 칼로 찔러 뽑아 내야 합니다. 목숨이 할딱할딱 하더라도 죽지 않을 만큼 칼로 찔러서 뽑아 내야 합니다. 이 원수 사탄의 피가 아직도 남아 있을진대, 이것이 생명력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 있는 입장일진대 선생님은 싫습니다. 이것을 전파(全破)해 버려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종교생활은 사탄적인 육신을 치는 것입니다.

요즈음 술 먹어도 좋고, 담배 피워도 좋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패들은 사탄의 이웃 사촌들이 다 된 자들입니다.

종교는 악착같이 환경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부정의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나오는 종교는 마지막에 승리하는 종교입니다. 그럴 것이 아닙니까? 어차피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부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부정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 가정 국가 세계를 모두 부정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내가 그 아버지의 괴로움을 책임지고 싸워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탕감은 누가 할 것입니까? 원리적으로 볼 때, 종의 탕감시대를 거쳐 양자의 탕감시대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양자의 탕감권을 세우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종으로 출발해서 승리한 터전 위에 이루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인 것입니다. 따라서 민족권내에 들어온 사람은 양자권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직계의 아들권으로 넘어가야 됩니다. 넘어가는 데는 자기 혼자서는 못 넘어갑니다. 그것을 넘어가는 데는 한 그루의 참감람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이 참감람나무는 세계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민사상을 터전으로 하여 죄악을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참감람나무로 세워진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로소 참감람나무가 오셨으니, 그분을 중심삼고 가지를 잘라다가 접붙이는 운동을 해야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혈통은 사탄의 혈통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혈통 관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런 창조본연의 기준을 대표하여 오신 예수님은 이 역사를 그르친 인류 조상의 잘못된 기원을 타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이 땅 위에 확실히 성립시키지 않고는 구원이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그냥 이 상태로 살면서 지상천국, 평화의 세계, 평등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하는 종이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하는 양자가 나오는 것입니까? 종도 필요하긴 필요하지요. 이웃 동네의 원수와 싸움의 판국이 벌어졌을 때 자기 집의 종이 필요하긴 필요하지요. 그러나 종보다는 양자가 더 났습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양자가 아닌 친자식입니다. 양자가 아닌 친자식!

하나님의 직계로서 죄악의 타락권을 없애고, 모든 죄악이 그를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그러한 아들의 사명을 갖고 오시는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맏형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맏형님은 누구냐? `아 나는 독생자다’라고 외치신 예수님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 맏형님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양자를 직계의 아들로 만들어서, 직계 아들인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 맏형님으로서 책임이 끝나고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결과입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과연 기뻐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들, 사랑하는 아들이 못 되었습니다.

20-121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3의 아담
그러면 왜 이러한 결과가 벌어졌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통일교회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자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자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다는 사람들이 전부 다 거꾸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아벨의 사명을 못 했기 때문에 이 사명을 못한 것을 다시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에서 양자권을 찾아 세우고 여기서 다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제2이스라엘을 형성했습니다. 그 터 위에 재림의 한 날을 고대하면서 2천년 동안 투쟁의 역사를 이끌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무엇으로 오시느냐? 예수님은 제2의 아담으로 오셨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제3의 아담으로 오십니다.

제3의 아담이 왜 와야만 됩니까? 그것은 이 땅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위에서 사고가 났으니 이것을 수리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리할 수 있는, 고장나지 아니한 새로운 주인이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로운 주인이 와서 사고난 것을 언제 고쳐 주실 것인가를 고대해야 됩니다.

제3의 아담이 누구냐? 이 땅 위에 인류 조상의 이름을 지니고 세번째로 오시는 분입니다.

20-122
행복의 길을 개척하자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아담 가정의 혈족에서 벌어진 가인 아벨의 싸움으로 인해 찌그러진 죄악 역사가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죄악을 청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청산해 주어야 하느냐? 타락한 아담 해와로서는 청산할 수 없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조상이어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은 어떻게 되느냐? 그런 아담이 와서 인간과 더불어 만물까지도 천국의 자리까지 같이 가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기쁨의 자리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행복은 무엇이냐?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백성들이 6천년 만에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이 이상 기쁜 일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종교를 갖는 것은 이러한 부모를 찾는 일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죽은 부모가 영원히 죽은 줄 알았는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습니다. 부모를 찾는데 재산이 문제입니까? 친척이 문제입니까? 나라가, 세계가 문제입니까?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제쳐 놓고 부모를 찾는 일에 온갖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의 부모가 죽어 가는데 땅이나 돈을 붙들고 희희낙락거리는 자식이 어디 있어요?

본성의 인연을 중심삼은 본연의 부모가 죽은 줄 알았는데, 그 부모가 다시 회생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내가 개척하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또한 누구보다도 하늘의 서러움에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하며, 그 억울함과 분함을 느낀 그 자리에서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의 도리이며, 효자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때문에 생사를 개의치 않고 이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세상의 좋은 것과, 세상의 핍박과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충효의 인연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생명을 바치는 순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피흘린 재단을 이어받아 개인의 제단, 가정의 제단, 민족의 제단, 세계의 제단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물로서 하늘에 바칠 수 있는 그 민족이 복받는 권(圈)과 보호받는 권을 세워서 오늘날 기독교의 이념을 발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사람은 사람이되 부모를 잃은 고아입니다. 고아란 말입니다.

본래 그 부모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담 가정에서의 아담은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족장이 되는 동시에 민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의 대표자가 되어 아담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아담주의 하나로 통일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시시껄렁한 주의들은 다 집어치워야 되는 것입니다. 시시한 주의들이 나와서 세계를 교란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런 주의를 뿌리째 전부 뽑아 버려야 합니다.

미국 돼지나 한국 돼지나 다같이 꿀꿀하고, 참새도 똑같이 짹짹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왜 이 모양입니까? 돼지새끼 말도 아니고 소새끼 말도 아니고…. 수십 개국을 돌아다녀 보아도 가는 곳곳마다 말이 다릅니다. 밥을 좀 얻어먹는 데도 정말 힘이 들어요! 벙어리가 되어도 상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누가 만들어 놨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말도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고, 한 종류의 말도 쓰지 못하는 인간이 무슨 만물의 영장입니까? 얼마나 분한 일입니까? 참 기가 막힌 일이 많습니다.

주의도 아담 주의, 언어도 아담 언어, 문화도 아담 문화, 전통도 아담 전통, 생활방식도 아담 생활방식, 제도도 아담 제도, 아뭏든 모든 것이 아담 국가의 이념제도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의도 하나님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의해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니 하나님 주의라는 것입니다.

20-124
천주주의를 들고 나온 통일교회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주의가 벌써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죽었는데 손 하나를 잘라 바쳐서 그 부모가 다시 살아난다면 손을 잘라서 바칠 수 있겠습니까? 바칠 수 있다면 어디를 자르겠습니까? 왼손이요? 하고 자르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불효자식입니다. 손가락 하나만 잘라 바치라 해도 `아, 왼손가락 이거요? 이만큼요?’ 한단 말입니다. 자르는 것은 어디를 자르나 마찬가지이니, 이 손을 전부 힘줄까지 완전히 잘라서 바치란 말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배포들을 가졌습니까? 쯧쯧, 그러니 믿은 사람들이 전부 껄렁패들입니다.

이 따위들이 세계적으로 뭉쳐서 시시하게 논다는 것입니다. 정통? 무엇이 정통이오! 이건 전부 때려 부셔야 합니다. 일시에 밀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6천만 한의 심정을 억누르면서 복귀의 한 날을 고대하던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생각하게 될 때 참을 수 없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선의 세계인 천국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한마디의 말씀도 못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알았지요?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뭐 사도들! 사도가 무슨 사도란 말입니까? 예수님이 죽게 될 때는 난 몰라 하던…. 그들은 전부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뭐 주(主)의 나라에서 좌정승 우정승이 되기만을 바랬으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깡패의 세계에서도, 거지의 세계에서도 의를 갖고 생명을 내놓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하물며 하늘의 도와 의와 선을 중심삼고 무엇을 한다 하는 사람들이 그꼴이니 생각해 보면 분한 일입니다.

이 땅 위에 4천년 만에 비로소 인류의 참부모의 명분을 가지고 찾아왔던 분이 사탄의 몰림을 받고 돌아가시다니…. 최후에 돌아가실 때는 강도를 좌우편에 두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땅에 인연을 맺기 위해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인연을 던지고 가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참회한 오른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하셨으니 기가 막힌 사실입니다. 기가 막힌 사실이예요.

예수님은 한을 풀지 못하고 이처럼 서글픈 심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걸 모르는 터전 위에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생겼으니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이런 감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무지한 기독교인들, 이 멍청이들! 무슨 박사? 뭐가 어떻고 어때? 박살을 당해야지!

잃어버린 참부모를 어디 가서 찾을 것입니까? 참부모가 나오지 않는 한 참다운 형제는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꿈이란 말입니다. 참부모 없이 참형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가짜입니다. 가짜예요. 참부모가 없는데 참형제가 있을 수 있습니까? 분명히 참형제 참자녀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참다운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참다운 사랑도 못 찾는 것이고, 참다운 생활도 할 수 없습니다. 참다운 부모가 없으면 참다운 행복의 나라도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바라신 이상적인 완전한 기준은 이 땅 위에서 참다운 선을 이어받은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다운 혈통의 인연을 맺은 자녀들이 있어야 비로소 그 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녀들만 있어서는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자녀인 주제에 무엇을 주고 다니고, 입고 다니고, 지고 다니고, 안고 다니니 아이고 꼴보기 좋군요, 꼴보기 좋아요.

20-126
섭리로 본 미국과 한국
선생님이 미국 48개주를 돌면서, 그 도로만 쓱 보아도 부자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돌아다닌 곳 중에서 아리조나주와 네바다주, 그리고 캘리포니아주가 접하고 있는 접경지대는 산악지대인데 여기에 대협곡이 있고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만년 전 지구가 생기던 그때부터 비가 오면 빗물이 한곳으로 모여 강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골짜기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산맥이 강물에 끊겼습니다. 이곳 강폭이 약 150미터 내지 200미터가 되고 물이 흘러 내려가는 이 골짜기는 전부 청석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 강물을 막아 댐을 만들어 발전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댐이 후버댐입니다. 이 댐의 높이가 얼마냐 하면 172미터입니다. 그리고 이 댐의 공사비로 약 3억불이 들어갔습니다.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세계적인 공사로 알려진 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댐에 사용된 시멘트가 얼마나 들었나 알아 보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까지는 시속 백 마일로 하루 6시간씩 달려 일주일을 가야 하는 길인데, 이 길이 온통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 길을 만들 때 들어간 시멘트만큼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뭏든 미국이라는 나라는 큰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왜 이렇게 작은지…. 선생님의 배포는 미국보다 더 큰데 왜 이렇게 작은 한국에서 태어났느냐 말입니다. 내 조상들도 여기서 살았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미국에는 길도 꼬부랑 길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직선으로 잘 닦아 놓았어요. 운전대만 잡고 있으면 잘 가게 되어 있는데, 한국은 길이란 길은 꼬부랑 꼬부랑 굽어져 있으니 운전수들이 운전하기도 힘들지요.

오늘날 한국을 볼 것 같으면 금수강산이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명승지라는 곳을 가서 조금 후미진 곳에 들어가면 코를 막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러나 미국의 명승지는 어디나 깨끗하여 차를 세워 놓고 기분 좋게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잔디를 보더라도 전부 금잔디라서 차에서 내려 폭신폭신한 그런 곳을 지나가노라면 아주 기분이 좋아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하루 백 마일 이상 달리다 보면 허리가 아픕니다. 그때 차에서 내려와 잔디 위에서 쉬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것은 미국 천지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길이 얼마나 멋지게 닦여져 있는지 모릅니다.

한국은 땅이 좁기 때문에 공장 건물을 지어도 높게 짓습니다. 물론 미국의 공장도 굴뚝이 대단한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공장을 보면 2층, 3층의 공장은 드물고 단층 공장들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기술상 어려운 분야는 반드시 그 분야의 기술을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대통령인 존슨도 타락의 조상이 낳은 후손임에도 틀림없습니다. 타락한 조상이 낳은 후손은 전부 가짜입니다. 진짜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되는 가짜란 말입니다. 만약 미국의 존슨 대통령보다 한국의 빈민촌에서 가장 빈한한 노동자가 진짜 부모를 먼저 알고 모신다면 둘 중에 누가 형님이 되겠습니까? 진짜 부모를 부여 잡고 `당신들은 제 어머니, 아버지가 아닙니까, 하면서 달려드는 자식이 있다면, 진짜 부모는 그를 떼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존슨 대통령보다 진짜 부모를 먼저 만난 자리에 들어가면 천막집에 살든 어떤 집에 살든 괜찮습니다. 제일 처량한 자리에서 잠을 잔다 할지라도 나중에는 미국에서 세계를 호령하며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보다 형이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진짜 부모를 먼저 만났으니 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이것을 알았지요? 「예」

20-127
미국은 심정이 메말라 있는 곳
통일교회 사람들의 눈을 보면 보통사람과는 좀 다릅니다. 외양을 보면 처량해 보이지만 눈을 보면 달라요. 왜냐하면, 그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기분 나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왜 가르쳐 주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가르쳐 주었으면 말을 잘 들을텐데…. 가르쳐 주고 나니 말을 안 듣는단 말입니다.

미국의 어떤 곳에 가 보면 참으로 그림과 같은 집들이 있습니다. 좋은 명승지에다 집을 지어 놓았는데, 그 명승지의 풍경에 어울리도록 한 그림 같은 집들이 있습니다. 갈 길이 아무리 멀더라도 그러한 집들을 볼 때에는 그곳에서 낮잠이라도 한번 자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생각이 안 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납니다. 그런 곳을 차를 타고 지나가게 되면 차를 세워 놓고 한참 거기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 집은 누구의 손을 거쳐 지어진 것이며, 누가 사는 집일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집들은 사탄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하늘 앞에 승인받을 수 없는 패들이 좋다 하며 사는 집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누워서 노래를 부르고 생활하는 곳은 하늘이 기뻐하고 천군천사와 수천만의 성도들이 환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 복된 안식처여! 천년 만년 행복의 꿈과 노래가 흘러 나올 수 있는 자리로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천리의 법도를 알지 못하고 악주권 내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과 그러한 환경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원수에게 맺혔던 한을 풀고 싶은 곳입니다.

미국은 심정적으로 빼빼 말라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래도 손을 붙잡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동지라도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몇 마디 사연을 나누면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심정적 터전이 되어 있는 곳입니다.

미국이 아무리 살기 좋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본연의 심정의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기쁨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영광의 상징에 접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 천지가 슬픔과 탄식의 한 구덩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볼 때 기가 막힐 일입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선생님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찬란한 문화로써 이룩한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빌딩입니다. 야! 이놈의 빌딩아, 이 죄악의 뉴욕 땅에서 너를 중심삼고 하늘과 인연을 맺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 너도 탕감을 받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뉴욕 땅에서 아무리 찾고 들춰봐도 하나님과 본연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오실 때, 참다운 혈연적인 인연을 맺어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약 8백만이나 되는 뉴욕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 할 때 없었습니다. 1억 2천만이 되는 미국 국민을 다 들춰봐도 없었습니다.

미국 사람이 있기 전에 미국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인디안이 있기 전에도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미국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미국에 가서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마음에 언짢았습니다. 여자들은 그러한 모양으로 어떠한 식당에도 마음대로 들어가는데 남자들은 오뉴월 삼복 더위에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못 들어갑니다. 아주 기분이 나빴어요.

소위 통일교회의 선생님도 동양 사람이지만,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을 참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미국의 48개주를 찾아다니면서 기도하고 다짐했습니다. 어디 두고 보라지…. 아무리 그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2백년 미만의 역사의 배경을 진고 있는 미국이 세계의 문화권을 제패했다는 사실은, 옛날 그 비탄 속에서 무엇보다도 하늘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며 하늘이 뜻하시는 섭리노정에서 제물되는 입장으로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하늘이 축복해 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탱해야 하는 현재의 젊은 층에서 타락해 가는 사회를 뒤넘이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20-129
부모의 종교를 믿자
하나님은 오늘날 세계의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참부모를 이 땅 위에 보내십니다. 그런데 그 참부모 앞에 효자 될 수 있고, 효녀 될 수 있도록 준비된 기독교인들이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서도 믿고 천당에 가겠다고 주일이면 `교회 갑시다! 교회 갑시다’ 하지만, 무조건 예수님만 믿고 천당에 갈 것 같습니까? 주님은 다시 오셔야 합니다. 땅 위의 인간들은 타락한 부모의 핏줄을 받아 태어났으니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7년노정이니, 무슨 노정이니 하는 것은 다 탕감노정입니다.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인물이 필요하고, 기간이 필요하고, 조건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이 왜 필요한가?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참부모가 오시는 다리를 놓아 드림으로써 참부모가 오실 때에 거리끼는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

에덴 동산은 자유의 천국입니다. 그 천지에는 누구도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운행하고, 사랑만이 깃들 수 있습니다. 평화와 행복만이 있는 안식의 보금자리가 에덴 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렸던 본연의 기준을 세워야 하셨기 때문에 서러움을 당하시면서도 복귀의 길을 닦아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게 하기 위해서 동원된 자들이 바로 이 땅 위의 수많은 종교인들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라고 보내어진 종교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가 제일인 줄만 알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하고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는 양자로서의 책임을 짊어지고 세계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입니다. 물론 그런 종교를 믿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도 참된 부모의 종교를 믿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제일 지혜롭고 제일 똑똑하다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는 시시한 양자의 종교를 믿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도 한 단계 앞선, 예수님이 소원하던 참부모의 종교를 믿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만하면 믿을 만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그런 것을 알았습니다. 기도해 보면 다 가르쳐 줍니다.

20-131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6천년 역사를 이끌어 나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본연의 참 종지조상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어디로 오실 것인가? 어떠한 길을 거쳐서 어느 나라로 오실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에 오시면 좋겠지요? 그런데 고생스럽게도 이 한국 땅에 오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서글픈 심정을 가지고 간구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잘먹고 잘사는 곳에 가게 되면 뻔한 일입니다. 세상에서도 자식이 병신이면 그 자식을 더 생각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어디로 오셔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이 어디로 오셨으면 좋겠습니까? 한국 사람은 한국으로, 미국 사람은 미국으로 오라고 할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주님! 한국에 가소서’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영국 사람도 `하나님! 당신은 우리 영국을 사랑하시지만 주님은 한국으로 보내소서’라고 기도하겠습니까? 누구든지 그저 `주님이시여! 우리 나라로, 내 안방으로, 내 마음에 오소서’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 전부가 도둑놈들입니다. 이 땅을 추잡한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서 `주님이시여! 어서 오소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자기들 욕심대로, 자기들 멋대로 `주님이시여! 여기로 오소서, 저기로 오소서’ 하고 있습니다. `아이구 하나님 불쌍도 하시지요’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만약 주님이 자기들 원하는 곳으로 오시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오늘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선생님을 잘 모를 것입니다. 오늘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은 한번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들은 주님이 어디로 오시면 좋겠어요? 어디로 오시기를 바랍니까? `하나님! 한국 땅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이토록 반만년 동안 이 민족이 걸어온 길은 내용이 복잡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오소서!’ 이렇게 기도하여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느 방에 모시겠습니까? 초가삼간으로 모시겠습니까? 하기야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모셔 놓고…’ 하는 좋은 노래가 있긴 있지요. 그러나 말은 근사한데 내용이 형편없어요. 선생님이 기도할 때에 `아이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한국에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걸 봤습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했어요, 안 했어요? 아니면 `하나님 저녁 때가 되었으니 아침 기분을 잊어버리고 저녁 기분으로 그저 한번 와 보소서!’ 했겠습니까?

세계에 비해서 한국에 기독교인이 많으면 얼마나 되나요? 미국에 가서 알아 보니까, 1억 2천만이 전부 기독교인이었어요. 명패 붙은 기독교인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구교, 신교, 껍데기 명분을 쓴 신도들까지 전부 합해야 겨우 250만이라든가? 사실 알고 보면 이 수자도 안 됩니다. 이런 판국에 세계 각국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요?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걸 모릅니다.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모르고 있어요. 이것을 안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뛰쳐 나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은 아직 그 맛을 못 봤습니다. 요즘에 선생님이 설교도 안 하고 지도를 안 했기 때문에 그 맛을 모릅니다. 협회창립 14주년이든, 무엇이든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해야 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이 미국으로 가실 것이냐, 영국으로 가실 것이냐, 어디로 가실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발길을 한국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꼼짝 못하시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 찾아오신다면 어떠한 사람을 찾아오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주님을 어느 혈통을 통해서 보낼 것인가를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20-132
주님은 하늘과도 싸워 승리할 실력을 갖추었다
여기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은 선생님 일대에서 세 교단의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즉 불교 유교 기독교 세 교단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려면 120만 이상이 핍박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반대를 해야 됩니다. 물론 한국도 여기에 동원되어야 하겠지요. 이러한 반대는 영계까지도 동원되어야 합니다. 영계에는 지금까지 수천년간 이 땅에 왔다 간 조상들이 전부 다 한곳에 몰려 있는데 그 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몇십억? 몇천억? 얼마만큼 될까요? 수많은 영인들은 전부 다 자기 민족을 통해서 자기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바라는 모든 것들을 심판해 버려야 합니다. 전부 부결시켜 버려야 합니다. 부결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닦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되어 영계하고도 싸워야 합니다.

통일적인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지상천국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계나 육계, 어디를 막론하고 전부 다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전입니다. 따라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생명을 걸고 넘어가는 기도를 세차례나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 차례나 기도를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곤경에서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의 본래 뜻은 그러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하고 일문일답을 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석가, 공자, 마호멧트와도 일문일답을 통하여 담판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영계에까지 전부 실력전을 벌여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와 싸우고 지상과 싸워서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와 싸워서 승리해야 되고 지상의 사탄세계와 싸워서 승리의 패권을 잡지 않고는 하나님을 모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은 세계의 영통인들은 전부 다 제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은 `어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겠지만, 이제 돌아가서 영통인을 찾아가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한번 물어 보십시오. 도통하는 사람들도 다 우리의 원리를 알게 되면 원리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20-134
한국에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길
오늘 아침에도 이 목사가 얘기를 했지만, 이것 참! 통일교회에 패중에도 껄렁껄렁한 패들이 많아요. 싸구려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다 의안을 끼워서 모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이 자가선전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선생님이 자가선전을 할만도 합니다. 선생님이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십대 소년시절부터 서울 도성을 위해 눈물 흘린 것만도 한이 없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싸웠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부관 연락선을 타기 위해 7-8시간을 통곡하면서 내려가던 지난날이 새롭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만 해도 표방해 가던 걸음이 한때는 영웅이라는 길을 거치기도 했고, 한때는 배신자로부터 반대받는 길을 거치기도 하여 오늘날에는 명실공히 통일교회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을 무엇 때문에 영계에서 증거해야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내막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선생님이 손에 걸리는 날에는 나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꼼짝달싹 못하고 반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말 같아서 믿지 못하겠거든 목을 걸고 한 40일 동안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지요? 그러면 효자가 되어 주님을 모셔 와야 하는데, 누가 모셔 올 것입니까? 그분을 모셔 오는 나라, 즉 그 한 분이 나오시는 나라, 그 나라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주관하고 세계만국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한 사람이 실수했기 때문에 다시 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한국의 생활방식이 유대인들의 생활방식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영통하는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필경 한국으로 오실 거라고 합니다. 한국에 주님이 오실 수 있다는 레테르가 붙은 것은 자랑 같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어떻고, 한국에 어떻고….’ 하면서 엎드려 기도하면 주님이 오신다고 하지만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알기나 합니까? 날이 새어 해가 떠올랐다 할 때는 누구나 해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오시는 때와 방향을 몰라 운세를 잡지 못하고 야단하는 패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면서도 많은 정성을 들인 나라도 있는데, 어떻게 해서 한국에 주님을 모셔 올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통일교회의 공로입니다. 통일교회가 주인들인 것입니다.

통일교하에 들어와서 큰 뜻을 알았다 하면서도 7년노정을 가라는데, `아이구 내가 잘못 오지 않았나’ 하면서 어정비정하는 이런 눈꼴 사나운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세상 같았으면 선생님이 성격에 전부 다 싹 쓸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6천년의 한을 참고 오셨으니 선생님도 참음으로써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입을 다물고 있기에 망정이지 이 나라에 대해서 할 말이 많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뭣 좀 하자고 내보내면 나갈 때는 아주 당당하게 뛰어 나갑니다. 그러나 올 때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와서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정말 처량한 모습들입니다. 이게 뭡니까? 낙오자 아니면 패잔병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되었습니까? 선생님은 지금도 뛰기를 하거나, 또 그 무엇을 해도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데….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그렇게 시시하지 않습니다. 나이 50이 가까운 지금도 누구든지 일대일로 한다면 무엇을 해도 지지 않을 수 있는 기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35
이 민족의 갈 길
아직까지 천하에 원수들이 없어지지 않았으니 이 원수들을 다 물리치기 전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습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잘래야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먹을 것 다 먹고 언제 합니까? 밥 먹는 것에 구애받아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 점심도 안 먹었어요. 먹고 입고 난 찌꺼기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그런 짓은 사탄세계에서도 싫어합니다. 천지의 대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시는 길은 그렇게 시시한 길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런 껄렁패들을 보면 기분이 나쁠 때가 많습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압니다. 어느 정도의 문화 수준에 있으며, 세계적인 정세가 어떻게 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보조를 맞춰 나갈 마음의 태도가 되어 있기 전에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위로 받고 다니는 줄 모르지요? 눈꼴사나운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어요. 통일교회가 뭐, 벌거벗고 춤을 춘다고요? 그것 참! 소문 잘 났군. 춤이나 추어 보고 그런 소리 들었으면 귓맛이라도 좋겠는데, 추어 보지도 못하고 그런 소리를 들으니…. 그것 다 좋다는 거예요. 자는 척하는데 싸운다고 소문이 났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닦고 그분 앞에 세계의 형제를 규합하는 일입니다. 또 이런 책임을 짊어진 선조들로서 후손들이 짊어질 십자가와 핍박의 길을 없애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연의 사명인 것입니다.

만민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갈 수 있는 탄탄대로를 닦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분 좋게 몇백 마일로 달릴 수 있는 하이웨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록 후대인들이 누가 닦았는지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른다 할지라도 이러한 길을 닦아 놓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직선으로 탄탄대로의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좁고 산천이 많은 한국에서 직선 도로를 내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아이구 통일교회의 말씀은 좋고 진리는 옳은데, 고생 때문에 못 따라 가겠다고? 이 못난 졸장부들! 오늘 모처럼 나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일단 통일교회에 들어와 문선생님의 손에 걸려 들면 용서가 없습니다.

20-136
선생님의 한
우리는 하늘의 권위를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바라시고 하늘이 혼자서는 못 하시는 모든 내용을 지녀 가지고 만국 앞에 선전포고하여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의 권한을 고집하여 세울 것이 아니라 자아주관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만민의 뒤에서 뒷치닥거리를 하면서 뒷골목의 험한 것을 전부 다 메워 나가야 합니다. 가시밭길이 있으면 제거해 버리고, 구렁텅이가 있으면 매워야 합니다. 돌짝밭이 있으면 이것을 정리하여 만민이 갈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남이야 욕을 하든지 말든지 열심히 길을 닦아야 합니다. 도중에서 칭찬을 한다고 하여 그 자리에서 큰 웃음을 웃고 쉬면서 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누가 욕을 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작당을 하여 싸워서 분풀이할 수 있는 내 몸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 대하여 싸움을 벌이는 것보다도 더 바쁜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절대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발걸음이 이 강토, 삼천리 반도를 전체를 편답하지 못한 것이 한이 아닙니다. 삼천만 민족에게 선생님의 입을 통해 말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짐짓 책임을 못한 죄인과 같이 입장에서 길을 찾고 뚫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인 중에는 양반이 참 많습니다. 요즘 들어서 선생님이 양복을 입고 지내지만, 그전에는 항상 잠바를 입고 지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내복을 입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것입니다. 이 제단을 지키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비참한 자리에서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오셨던 그 길을 내가 이 땅 위에서 다시 재현시키고 그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비참한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비참한 신세의 모습을 갖고서도 정열과 피끓는 사랑의 마음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삼천만 민족을 넘어 세계 만민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면 만민이 자기 품안에 있고 자기의 눈앞에 있어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문제로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했던 대로 일은 전부 그렇게 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이제까지 욕먹고 뭐…. 남들은 문선생이란 분이 실제로 없는 분이고, 또 있다고 할지라도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상감마마처럼 수염을 길게 해 가지고 `여봐라!’ 하면 `예이, 대령했소이다’ 그렇게 사는 줄 알거든요. 오늘도 선생님이 여기에 나와 이렇게 말하지만 처음 오신 사람들은 내가 문선생인 줄도 모르고 그저 어떤 교인이겠지 하고 가버린단 말입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문선생입니다. 요전에도 미국에서 신문기자가 왔었는데 선생님이 개별적으로 만나 주지 않고 같이 앉아서 예배를 보았지요. 같이 옆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은 못 알아 보고 가버리더군요.

선생님이 예루살렘에 가 보았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옛날 복귀섭리시대에 하나님께 정성들이던 그 성스러운 곳이 지금은 전부 회교의 성당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무덤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지금 회교권이라서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믿음의 조상을 빼앗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사람들 어디 두고 보자! 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 내 손으로 기어코 여기를 장악할테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20-138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늘을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합니다. 충성을 하는 데는 어디서 충성을 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복귀섭리노정에서 충신을 찾았고, 효자와 효녀를 찾았고, 열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귀섭리노정 가운데서 그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찾지 못한 한이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쳤는데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것입니까? 거지의 소굴과 같은 밑창에 들어가서 그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럼 밑창에 들어가 싸워서 망하거든 참소하십시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 싸웠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이치고, 한 민족이 들이치고, 한 나라가 들이쳐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통일교회는 빽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생동안 핍박과 몰림받는 길이 걸어왔지만, 오늘날 그 어느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쯤은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낡은 찌프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에라도 찌프차 10대를 사려면 살 수 있습니다. 집도 사려면 살 수 있습니다. 선생님에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서도 안 하는 것, 그것이 멋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통일교인들을 고생시키지만 그 고생이 고생으로 시작해서 고생으로 끝나 망하게 될 것이라면, 그런 일은 아예 시키지 않습니다. 고생을 함으로써 청사에 길이 빛나고, 만세가 찬양할 수 있고, 그 무덤에 꽃이 피고, 역사를 빛낼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내몰아 무자비하게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당연히 고생을 해야 됩니다.

20-139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냐? 배우자를 만나서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자를 잘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역사적인 숙명의 터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인류역사의 근원이요, 종지조상인 참부모와의 잃어버렸던 인연을 찾는 것입니다. 천상세계의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 묻혀 있는 그 내막을 끌어다가 지상세계에 옮겨서 이것을 이론화, 조직화, 체계화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민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심정적인 발판을 닦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국가에 있어서 정치도 문제이고, 경제발전도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제일 큰 문제는 사상적인 무장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상으로 무장하든지 만민이 소원하는 최고의 희망적인 사상으로 무장시키려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도, 죽어가는 사형수도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본연의 부모를 찾는 것이요, 본성이 지향하는 고향, 즉 본성의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만민이 공통으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요, 만민이 찾아야 할 본연의 목적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람이나 현재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이나, 이것을 쟁취하지 않고는 그 나라에 행복이 깃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은 이것을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집어 던졌던 것입니다. 부모도 버렸습니다. 선생님을 낳아준 부모를 몰라보고 처자도 몰라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는 일본 제국주의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선생님은 나라를 배반하는 역적의 자리에 나가지 않게 되어 도리어 감옥에 들어갔던 것을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 추구했던 것은 하늘 나라의 주권을 바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이 나라는 군왕이 있고, 주권이 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압제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마음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출세할 수 있었던 환경을 다 버리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이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러한 선생님이 오늘날 대한 민국의 부패한 모양을 바라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피끓는 가슴을 억제해 가면서 말없이 묵묵히 싸웠습니다. 우리의 존엄성과 가치를 그들이 인정할 수 있고 하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을 정복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며 밤낮을 개의치 않고 투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우리가 쌓은 실적을 이 나라에서 공인하지 않을 수 없고, 이 민족이 공인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명실공히 통일교인들은 국가적으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슬픈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발을 붙일 수 있는 완전한 터전을 아직 못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터전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소원하는 바요, 몽매(夢寐)에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20-141
선생님이 찾고자 하는 심정적인 사람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6천년을 두고 찾아오신 곳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요,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고아와 같은 한 많은 삼천만 민족입니다. 이 강토에서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나라가 황폐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아들이 되느냐 못 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상처 입은 것을 바라볼 때, 모든 준비된 약을 발라 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준비된 양식을 줄 것이니 구하고 두드려라 이것입니다.

자신이 그런 공인을 받아 가지고 `내 아들아! 아버지!’ 하며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아들딸, 하나님의 6천년의 사연을 풀어 놓고 해원할 수 있는 그러한 아들딸이 삼천리 반도에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떤 국가 어떤 민족보다도 그런 사람의 수가 하나라도 더 많아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이 우주적인 하나님의 섭리의 주권과 하늘의 존재 목적은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개인의 출세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이 모임 자체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서 모인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싸워야 할 전쟁 마당이 여러분보다도 더 크게 남아 있습니다. 밤이 오기 전부터 그 밤을 예상하면서 싸워 나왔고, 아침에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밤새껏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오늘 그 아버지를 만나 뵌다면 어떤 마음을 가질 것입니까? 여러분은 편히 쉬고 싶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무친 한을 풀고 싶은 분이 누구겠습니까? 민족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민족의 갈 길을 닦는데 선두에 서야 합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한이 남아 있는데 이 한을 언제 풀 것이냐? 여러분들이 풀지 않으면 선생님이 대신 풀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한을 남기지 않고 가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심정입니다.

오늘도 공장에 가서 얘기했지만, 이런 날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여러분들은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겠습니까?

하늘의 심정이 깃들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자신의 심정을 동여매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본질을 토로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하나님! 제 피는 옛날 선조들의 피와는 다릅니다. 배반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가운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은자들과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나를 동정하지 마시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 인류를 동정하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영인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도록 아버지여 도와 주시옵소서! 나를 앞세워 그들의 살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피를 토하며 기도해 나온 것이 선생님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사상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 통일교회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주체가 되어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0-142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하늘의 심정이 피와 더불어 얽히어진 사실들이 여러분의 생활적인 이면과, 사상적인 이면과, 정신적인 이면에 있어서 폭발적으로 솟아오르는 샘물과 같은 것이 되고 억제할 수 없는 충격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용사들은 그런 생활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충격과 더불어 얻은 힘은 이 사악한 죄악의 땅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형성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땅을 바라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한 마음을 억제하며 참다운 주권을 찾아 아버지의 사랑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만 그 나라의 소망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남아진 무리로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민족과 종족과 가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어디 갔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가정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가정과 종족이 없으면 하나님의 민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처참한 운명의 역사가 선생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박차 버리고 위급한 때에는 위급한 대책을 세워서 순간적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이러한 세계가 점점 회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과 여러분은 이런 길을 자발적으로 재촉하여 걸어야 합니다. 이런 걸음을 내 자체뿐 아니라 세계적인 생사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선 걸음이기 때문에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내일의 역사에 소망을 두고 한을 남기고 간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우리의 갈 길에 소망을 두고 한을 남기고 간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우리의 갈길에 소망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도저히 주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이 2차 7년노정을 지나 21년노정에는 국가적인 면과 세계적인 면으로 이루어져야 할 섭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서는 외상이 없습니다. 하늘 앞에 자기가 취해야 할 위치를 망각하고 자기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하늘의 진노가 있을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시대의 환경에 자기가 처할 수 있는 입장을 명시해 가지고 역사가 새로운 날을 고대하고 미래의 사람들이 나를 찬양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것을 명심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념의 날이 그러한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참부모의 탕감의 인연을 완전히 벗겨 줄 수 있는 내 가정, 내 종족, 내 민족, 내 국가, 내 세계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책임은 지겠지만, 오늘 이 시간을 맞아 다시 한번 우리의 사명을 다짐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날을 맞는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