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to 20-40: 형제의 애

형제의 애
1968.03.3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0-07
형제의 애(愛)
고린도전서 13:12-13

[기 도(Ⅰ)]

아버님, 당신의 사랑이 각자의 마음에 깃들게 하여 주시옵고, 사랑으로 영원한 참된 인간의 모습이 천지간에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온 만상은 그러한 존재를 중심삼고 움직이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또한 아버님께서 그 참다운 인간과 하나 되시어서 찬란한 문화의 세계, 영광의 세계를 창건하실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사랑이 깃들 수 없게 된 것이 한이요, 그 사랑을 저희들이 찾아도 찾아도 만날 수 없음이 또한 한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타락의 후예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역사노정을 걸어 나온 저희들이오니, 긍휼의 아버지시여, 본연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저희들을 찾아 주시옵고, 당신의 그 심정 앞에 부복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아버지에 대한 배역자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또 아버지의 심정에 배역하는 무리로 살아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실체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긍휼과 사랑으로 저희를 붙들어 주시옵고 자비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지난날의 부족한 것과, 지난날의 불충한 것과, 지난날의 불효한 것을 낱낱이 아버지 앞에 고하고 회개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은 저희들이 영원히 모셔야 할 아버님이시옵니다. 아버님과 저희는 그 인연을 영원히 끊을 수 없는 본연의 관계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타락하여 아버님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와의 영원한 인연이 끊어졌사오니 그것이 저희들의 서러움이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저희가 부복한 것은 잃어버린 아버지를 다시 찾고 끊어진 아버지와의 인연을 다시 맺기 위함이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은사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직접적인 사랑의 인연으로 저희들을 묶으시어서 하나의 통일된 제단으로 아버님 앞에 바쳐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을 따라오는 데 있어서 잊지 못할 사연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지난날의 모든 사연을 아버지 앞에 솔직히 내놓고, 아버님의 축복의 심정에 동하여 마음 깊이 아버지를 사모하고 흠모하며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고대하는 간곡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손을 붙들고 아버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를 간곡히 원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와 같이 간절한 심정의 터전 위에, 아버지, 군림하시어 저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고, 생명의 인연을 다시 엮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새로운 사명을 분부받아 소망의 세계를 향하기에 책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 되고 당신이 요구하는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이옵니다. 금년에 들어와 4분의 1을 보내는 마지막 날이오니 이날을 거룩되게 하여 주시옵고, 또한 이날은 안식일이오니, 지금까지 아버지 앞에 책임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 심정에 다시 안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본부를 그리워하며 예배 드리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모습이 아버지 보시기에 그리 탐탁하지 못할 줄 아오나 그 가운데 넘쳐 흐르는 사랑의 심정이 하늘땅의 인연을 끌어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사망세계에 있는 뭇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해외에 널려져서 외로운 개척자의 길을 더듬어 가고 있는 당신의 적자(嫡子)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외로움을 당신께서 친히 동정해 주시옵소서. 그들이 슬플 때 같이 슬퍼해 주시옵고, 그들이 싸우는 마당에 같이 싸워 주시어서 역사과정에서 싸우신 아버지의 실적을 그들이 승리로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피와 땀이, 당신께 속한 자리에서 흘려질 때, 그 민족은 기필코 하늘 앞으로 찾아질 것이며 부활의 터전으로 접붙임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아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교단과 수많은 종교인들, 선을 추구하고 참된 길을 동경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사망세계에서 생명을 이끌고 가기에 지쳐 있는 불쌍한 인류를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을 통하여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 아버지으 은사 앞에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데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이 한 시간 온전히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09
기 도(Ⅱ)
당신께서 가신 길이 제아무리 험하다 할지라도 저희들은 따라 나선 걸음을 놓치지 않을 것을 맹세하나이다. 당신께서 당하시는 핍박이 아무리 죽음이 엇갈리는 것이라 할지라도, 저희들은 이미 생축의 제물이 되겠다고 바친 몸들이오니 고이고이 제물로서 사라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는 이 사망세계 가운데에 당신의 품에 인연될 수 있는 생명의 터전이 세워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기필코 그 생명의 터전을 세우고야 말겠습니다.

아버님, 이날 다시 한번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님을 그리워하옵나이다. 무진장 그리워하옵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길이길이 살고 싶사옵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하고, 아버지의 분부의 말씀을 받들면서 살고 싶사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인류가 타락한 그날부터 우리의 존재는 어느 한 날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겨 본 일이 없이 살아왔사옵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한의 고비고비에서 하루하루 처참한 눈물의 역사를 엮어 온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이러한 역사를 다시 찾아 소망의 기준을 복귀하려는 심정을 지니고 저희를 찾아오시는 아버님을 붙들고 동고동락할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온 영계가 굽어살피는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여, 이 자리를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사 사망과 죄악의 쓴 뿌리가 저희 마음 깊은 가운데 남아질 수 없게 하시옵소서.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사 저희들이 오늘 이 시간, 모든 죄악의 뿌리를 뽑고 아버지 앞에 귀일(歸一)되게 하여 주시옵고, 겸손히 엎드렸사오니 운행하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의 마음과 몸이 당신의 마음대로 빚어질 수 있는 진흙덩이와 같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없어져야 되겠사옵고, 본성에 화합할 수 있는 절대적인 마음이 있어야 되겠사오니 그 마음을 일으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오로지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이 민족이 사랑을 받아야만 되겠사옵고, 수많은 종족을 위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저희가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맡겨 주신 책임을 하는 가운데 최후의 싸움에서 남아지는 용사가 되어 승리의 개가를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리고 최후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직접 동행하시어 주관하시옵고 분부하시옵고 통솔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 환경에 진정 아버님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운행하시옵고 주관하시옵소서. 어둠의 권세가 틈나는 자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간악한 사탄이 엿보는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에 대하여 방어하는 마음, 선만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시간을 몽땅 아버지 앞에 묶어 바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전체를 아버님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과 몸에, 오로지 아버지의 마음에 녹아질 수 있는 본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11
기 도(Ⅲ)
아버님, 저희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아버지 앞에 떼쓰는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를 흠모하는 갈급함이 있사옵니다. 그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합니다. 키우면 키울수록, 고이고이 품고 가꾸면 가꿀수록 부모의 표준을 따라 자라납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거듭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천태만상의 사정을 품고 온 이들이 그 사정을 다 털어놓으면 아버지께서 아니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다 털어놓고 굶주린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흠모하는 것과 같이,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누가 스승이 되오리까? 이들은 인간의 말을 원치 않사옵니다. 지금까지 많은 말을 들어 보았사옵고, 많은 교회를 다녀 보았사옵고,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사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생명의 꿀이 없었고, 생명의 젖이 없었기에 이들의 마음은 고갈해 있었사옵니다. 피폐한 상태로 의지할 곳 없이 황무지 같은 처참한 자리에 있사오니, 아버지, 이들을 모으시옵소서. 자신들의 사정을 다 제쳐놓고, 아버지의 사정을 중심삼은 생명의 말씀과 생명의 인연을 중심삼고 엉클어지는, 생명이 꿈틀거리는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야만 되겠사옵니다.

‘나’를 아버지 앞에 세울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오나 나의 전부를 아버지 앞에 바치고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는 나를 찾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는 참된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주일 동안 상심된 마음을 가지고 여기 나왔사오니, 아버지, 위로하여 주시옵고, 상처에 약을 바르시옵고, 기름을 바르시어서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외롭고 처참하고 남루한 이들에게 아버지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넘치는 사랑의 양식을 갖추고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가는 모습을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하시옵니까? 이들도 그런 자리를 고대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줄을 매는 데 있어서 공감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운행하시어서 저희의 마음과 몸이 온전히 한감정, 한심정으로 동하게 하시옵고, 한 생명길로 움직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12
말 씀
오늘 말씀드릴 제목이 ‘형제의 애’이므로 먼저 사랑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20-12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받은 피조만물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길가에 자라고 있는 하나의 풀포기로부터 뜰에 살고 있는 하나의 미물에 이르기까지 전부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예술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도 소망의 일념을 가지고 자기의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런 정성과 소망이 부합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은 그 작가에 있어서는 지극히 귀한 것이요,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자기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스런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권내에서 느껴지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장난거리로, 취미거리로 지어졌다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보더라도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으며, 그 속에 흐르고 있는 모든 생명의 인연 혹은 관계되어지는 모든 인연 가운데는 우주 전체가 벗어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크나큰 동기와 과정을 거쳐 크나큰 목적과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 가운데에서 지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같이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있다면, 즉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런 사람은 미물을 바라보거나 동물을 바라보거나 초목을 바라보더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숨은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만물을 수습하여 보호해 주고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의 그 사랑을 대신해서 이 땅 위의 만물만상을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만, 만물을 창조하신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보다도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될 때에 하나님과 인간은 둘이 아닌 것입니다. 남편을 중심하고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내가 사랑을 중심삼고 남편과 완전히 하나 될 때 그 남편과 아내는 하나인 것입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가 서로 좋은 것은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만의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좋은 것이다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으셨기에 인간이 상대적인 입장에서 중심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자리에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이루었다면 하나님과 인간은 둘이 아니라 우리라는 입장에서 공동적인 사랑의 가치를 느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에 선 조상이 있었느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서 완전히 하나되어 그 사랑 가운데서 하나 된 감정과 심정을 가지고 만물만상을 대해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 되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입니다. 땅 위에 있어서 비참하다면 이 이상 비참한 일이 없고, 불쌍하다면 이 이상 불쌍한 일이 없고, 억울하다면 이 이상 억울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이와 같은 결과가 되었느냐 하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 세계에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사랑을 논의하고 행복을 노래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의 기원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완전한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0-14
종교생활의 중심
완전한 사랑의 기준이 아직까지 천지간에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기원을 이룰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참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한 남성과 한 여성, 하나님께서 붙들고 사랑하실 수 있는,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인류의 참다운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기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인류의 시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 기준, 인류 시조로 나타나야 할 분야와 올라가야 할 과정을 남겨 놓고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역사 노정에 비통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타락한 인간들이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본연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본연의 사람은 누구냐? 성경상으로 보면 인간의 종지조상인 아담 해와입니다. 그 선조로부터 타락했기 때문에 본래의 기준을 찾으려면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되돌아가지 않고, ‘역사는 발전하였으니 발전한 이 세계에서 찾겠다’고 하는 것은 꿈일 뿐입니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절대로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의 중심은 무엇이냐? 정성을 들이는 것이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비는 거예요. 그러면 기도하고 비는 기준이 뭐냐? 사람들은 대개 ‘우리나라 잘 되게 해 주옵소서’ 합니다. 현재 빌고 있는 것이 참되지 못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아니 가실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아니 계실래야 아니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활을 통해서 볼 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없는 여건을 가지고 인류가 출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퍼하실 여건을 가지고 인류가 출발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은 죄악의 역사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벌어지고 잎이 나서 6천년 동안 고목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고목에 매달린 잎사귀들입니다. 그러면 그 고목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나무인가? 아닙니다. 그 나무 전체가 그 자리에서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꿈꾸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열매를 고대한다 해도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역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역사의 결과권내에 있는 이 세상은 청산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 때에 제거되어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우리 조상들이 도달하지 못한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무엇이냐고 생각해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이냐? 사람이 사람이지 하면 간단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몸뚱이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몸뚱이는 무엇이냐? 몸뚱이는 모든 원소를 규합하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무엇이냐? 불교에서는 마음의 근본을 알기 위해서 무아경에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사실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버리면 새로운 경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자꾸 들어가서 수천대 선조들의 가슴 가슴의 심정을 통하고, 인류의 시조인 종주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 뒷골 목까지 파고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뒷골목에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자기 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인정에서 출발하는 종교는 망국 종교입니다. 요즈음 일부 젊은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떠들며 그곳을 천국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과는 절대 관계가 없는 곳입니다. 인간이 최고 행복의 터전으로 찾고 있는 자리와 절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리를 박차고 마음 뒷골목을 찾아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형님 누나 다 버리고 혼자라도 들어가자는 것이요, ‘지금의 나에게는 조상도 없고 형제도 없다’ 하는 마음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태초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던 인간 시조의 기준을 회상하고, 하나의 남성으로 태어났던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했던 본연의 기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여성이면 여성으로서도 본연의 기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타락의 침범을 받지 않은 자녀의 도리를 탕감복귀하는 것이 인간들이 찾아야 할 제일의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야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연, 새로운 사랑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한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타락한 인류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인간 조상이 타락하는 것을 누가 봤습니까? 아무도 못 보았어요. 그렇지만 안 봤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낳은 것을 보지 못했어도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죄악 세계를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아무리 행복하다고 하는 자리에 나가서 엎치고 뒹굴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리에 있으며 기뻐하고 좋아하지만 나중에는 세계에서 일등 가는 가난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끼의 밥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수성찬을 마련해 먹어 보라고 하면 놀라서 도망을 갈 것입니다.

20-16
의인의 기준
그러면 세상에서 무엇을 가져야 행복하고 만족하다 할 것인가? 먹는 것을 가지고 만족할 것인가?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뭘 가지고 만족 하느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억천년이 지나도 사랑에 젖어 거기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간 본래의 기원에 어긋난 사랑의 기준을 타파해 버리고, 천주사(天宙史)의 새로운 기원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타락이란 무엇인가. 일반 기독교에서는 인류 시조가 에덴 동산에서 과일을 따먹은 것이 타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안한 생활에서, 편안한 수작을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면 선악과지, 복숭아 다 뭐다 또는 둥글한 것 같기도 하고, 뭐 동글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것 따져 가지고 돼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보지도 않고, 먹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괴상하고 망상적인 이야기만 하면서 결사적으로 과일이라고 합니다. 서울에 갔는데 ‘서울 가니까 이렇더라’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요, 확실한 기점을 알아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기점이 없습니다. 기점이 없으니 목적이 불투명하고, 목적이 불투명하니 타락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수리적인 법도를 통해서 생명의 길로 복귀시켜야 하는 것이니, 이 작용을 하는 사랑은 타락된 세계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그런 세계와 그런 도(道)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타락한 것을 섭섭하게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악과 싸워야 합니다. 싸움을 하면 한편은 이기고 한편은 망하게 되는 것처럼 어느 한때 선과 악은 부딪쳐서 하나가 깨져야 됩니다. 이처럼 싸우는 것이 개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도 싸워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안 싸울 수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합한 것이 국가가 되었습니다. 국가가 합하려니 안 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 전체가 싸우는 세계가 된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일정한 법이 없으면 제멋대로 하게 되는 것이니 개인의 마음의 원수를 잡아 말려야 됩니다. 싸움을 끝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보다 좋은 것이 필요합니다.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싸움은 끝나는 것입니다. 원수의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몸의 힘보다도 더 좋은 것, 마음의 힘보다도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싸움은 끝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중심한 소원성취 목적성취까지도 제재를 받아야만 합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부자라 해도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 닦는 사람들은 전부다 뒤넘이치는 고비를 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 많습니다. 지식에 대한 애착심, 물질에 대한 애착심, 명예에 대한 애착심이 많아요. 그런 건 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종말시대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바로 여러분이 제일 애착심을 갖고 있는 그것을 분리하기 위해 싸우는 일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을 못 따라가게 하는 것이므로 여러분의 생활적인 터전에서 그것들을 분리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확고부동한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싸우는 것을 분쇄하고 통합할 수 있는 세계적인 사상이 있어야 되고,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달라질 수 있고 세상 일을 다 잊어버리고 좋아할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아직까지 이 땅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런 사상이 많은 나온 것 같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란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제 아무리 사랑해도 입체적인 사랑은 못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한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자기도 부정한 것이니 예수님도 의인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하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입체적인 사랑권을 차지할 수 있는 중앙선을 확보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0-18
입체적인 하나님의 사랑
원리강의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에서 나타난다고 하죠?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혼자서 사랑이 됩니까? 상대성을 부정해서는 사랑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나님의 가슴에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피조만물에 나타납니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자식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있는 곳에는 아내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남편이 입은 옷에서도 아내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요즈음엔 여자들이 참 편합니다. 옷을 만드는 데도 재봉틀을 사용하고 남의 힘을 빌립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를 봐도 그저 저고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한 바늘 한 바늘 온 정성을 쏟습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인 것입니다. 가슴으로부터의 사랑은 그만두고라도 생활에서 사랑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식을 보아 부모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남편의 옷 끝을 보아 아내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나타난 사실을 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까? 알고 보니 전부 다 싸움을 하고 복잡해져 있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입체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 중에 누가 나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통일교회 갔다가 벼락 맞았으니 ‘통일교회는 나쁘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벼락을 맞았다면 벼락을 맞은 까닭이 있는 것이요,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벌을 받는 것은 동기가 벌을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가 무엇일 것이냐? 수천대 선조로부터 쌓은 죄가 연결되어 그것이 뭉치고 뭉쳐서 터지고 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생을 70년이나 80년만을 놓고 따지다 보니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천년을 잼대로 재 보면 다 공평합니다. 선을 쌓으면 올라가고 죄를 쌓으면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 누구는 복 받았어’ 하지만 복을 받아도 잘못 받으면 망합니다. 복이 가는 길을 붙들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복이 가면 꽁지만 붙들어도 그건 내 복이 되고 복의 머리를 타고 가면 부러울 게 없습니다. 복을 받는 것은 선조들이 고생을 하고 선행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별 것 아닙니다. 선조의 공로가 없으면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파산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운세는 천운에 보조를 맞추며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국운이 훌륭하다고 세계에 자랑하더라도 천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남김없이 파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물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세계에는 자식을 모르는 어미가 있고, 어미를 모르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 어미에 그 자식입니다. 그런 자식이 어떻게 어머니를 아껴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이렇게 다 글러 먹었다는 것입니다. 형제가 서로를 파면시키지 못해서 안달하는 세상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까지 왔습니다. 끝날이 온 것입니다. 귀찮은 세상이라면 어서 끝날이 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끝날에 바꿔치기를 못 하면 망합니다. 예를 들어서 ‘난 한식밖에 먹을 줄 몰라. 양식은 절대 먹을 수 없어’ 했는데 한식이 다 없어졌다 이거예요. 그러면 양식을 먹을 줄 모르니 굶을 수밖에요. 끝날에는 바꿔쳐야 합니다. 소화불량이 생기지 않게 바꿔쳐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먹으면 소화를 못 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돌바위를 삼키더라도 와작와작 씹어서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이라도 먹어서 영양소를 만들 수 있는 소화력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선생님도 일본에 가서는 일본 음식을 먹고, 미국 가서는 미국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고추장을 보고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흉한 고추장이지만 선생님은 그 고추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또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른 음식을 다 제쳐놓고 김치를 먹었습니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것이 대개 비슷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하고 이 닦고 회사에 출근하고, 점심 먹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고, 아들딸과 부인을 데리고 살고 합니다. 별 것 없습니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추장과 김치는 밤이 되어도 먹고 싶고, 낮이 되어도 먹고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바꿔치기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김치를 먹고 바지 저고리를 입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날에는 바꿔치기를 해야 합니다. 사상을 바꿔치고 몸뚱이를 바꿔치고 종교를 바꿔쳐야 하는 것입니다.

20-21
사랑의 어머니
이 세상의 제일 중심과제가 무엇이냐? 옛날에는 의식주였습니다. 의식주가 중심이었어요. 그러면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인간이 의식주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참으로 처량합니다. 몇 푼 짜리, 몇 백원 짜리 판자집을 위해 태어났다면 기가 막힌 일이요, 난리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 때문에 태어났습니까? 사람은 사람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사람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지, 오늘날 같이 깨지고 못된 사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사람, 참된 사람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디에 있고, 참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비유하건대, 아기에게 제일의 참이 무엇입니까? 아기에게 있어 제일의 참은 어머니의 젖꼭지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아기에게 그 이상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면 인간의 시조가 처음에 출발할 때의 참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머니의 젖꼭지 같은 무엇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나, 없나 하는데, 여러분은 마음을 보았습니까? 마음이 둥글어요, 넓적해요? 마음이 붉어요, 노래요? 보지 못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사랑.

그러면, 사랑의 기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랑은 여자에게서부터 출발했을까요? 남자에게서부터 출발했을까요? 이런 것 연구해 보았습니까? 내가 남자인데, 사랑이 여자에게서부터 출발했다면 남자의 체면이 깎이기 때문에 사랑은 남자에게서 출발해야 된다고 하면 사랑이 싸울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느냐? 사랑은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인 없이는 결과가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여기 모인 처녀 총각들도 20세기 자유의 바람에 날려 풀어져 가지고 뒤흔들고 야단하며 스스로가 자신의 소유자인 줄 알고 있지만, 천지에 모든 생명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더 큰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어머니가 무엇이냐? 사랑은 영원한 것이요, 천리의 법도를 어기고 나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법도를 취하지 않고 나온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개인을 중심으로 사랑이 나온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누나와 동생이 서로 싸우다가도 엄마 아빠만 보면 평화로워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계에도 사랑의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의 사랑을 보거나, 우주간의 사랑을 보아도, 사랑의 어머니가 없습니다. 원래는 있었는데 인간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랑이란 명사가 여러분의 마음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 한계선은 기가 막힙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인간의 사랑은 타락했음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팻말을 내걸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했을 때 이처럼이 뭐냐? 서로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할 때 이 독생자란 하나의 사람으로만 봐 가지고는 안 됩니다. 독생자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독생자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이퀄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지만 하나님 이퀄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중심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할 때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 모르게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사랑의 뿌리인데 이파리인 여러분이 그 뿌리 모르게 사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포플러 잎사귀가 `난 뿌리가 귀찮아, 줄기도 귀찮아’ 한다면 존재할 수 있겠어요? 뿌리가 있어야 줄기도 잎사귀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풍이 불어온다고 서쪽으로 날아가 보고 싶다고 한다면 팔자 다 된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있어야, 악착같이 잎사귀를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잎사귀가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악착같이 붙잡는 뿌리의 힘보다 더한 힘이 우주에 또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지독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주관합니다. 뿌리가 없는 사랑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류는 뿌리 없는 사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뿌리 없이 흔들려 돌아갑니다. 큰 길도 아니고 벼랑처럼 아슬아슬한 길을 걸어가는데, 여기서는 한 발자국 떼는 것이 바로 죄가 됩니다. 인간 세상에는 사랑의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동기가 아니 나왔기 때문에 개인의 심정 기반이 틀어졌고, 개인의 심정 기반이 틀어졌기 때문에 가정 기반이 틀어졌으며, 틀어진 가정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사회 역시 그 기반이 틀어졌고, 그러한 사회에서 연결된 국가의 기반이 틀어졌고, 그러한 국가로 이루어진 세계의 모든 것이 틀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틀어진 기반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서 인류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재현시켜야 합니다. 안 되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재현시켜야 하는 것이요, 국가가 망하고 세계가 망한다 해도 재현시켜야 합니다.

20-23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그래서 지상에 심판이란 명사가 나온 것입니다. 이 심판의 관문을 거쳐야 됩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걱정이 남아 있고, 가정에 고통이 남아 있고, 사회에 고통이 남아 있고, 국가에 고통이 남아 있고, 세계에 고통이 남아 있으니, 이 심판의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이냐?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면에서 변호하겠다’고 변호사의 책임을 짊어진 패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누구냐 하면 지금까지 왔다간 교주들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예수님을 신랑이라 했으며, 세상 사람들을 신부라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는 과정에서 사랑을 중심하고 파헤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안 될 수 없었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공판정에 나가서 ‘내 아내가 제일 잘났습니다’라고 변호할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우리 아들딸이 제일 잘났습니다’라고 변호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으로서 세계 만민을 변호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길 바라셨습니다. 또 그 주인공이 공판정에 나가서 상충되는 입장에 있는 세계 앞에 변호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에 종족, 민족, 국가, 세계 만민을 대신해서 변호할 변호사의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 나라가 세워지면 세계 인류는 모두 선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를 중심삼고 다스리는 모든 것이 선민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총결판짓기 위해서 오신 분이 주님, 즉 구세주입니다. 구세주는 우리를 개인 심판의 공판정에서 변호의 책임을 지고 뽑아내는 것입니다.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공판정에서 뽑아내는 것입니다. 뽑아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망의 자리까지 나는 가겠다’할 수 있는 가정이 있으면 개선가를 부르며 복귀된 사랑의 본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독교인들에게는 세계를 부흥시켜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광야의 목자를 대신하여 정성의 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악의 혈통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생명을 내걸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비워 참다운 사랑만이 있게 해야 합니다. 참다운 사랑을 헤쳐 보면 그 사랑 가운데 내가 있고,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도 계십니다. 또한 아내도 있고, 아들 딸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사랑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 뿌리로 땅 위에 싹을 나게 하는 가정이 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부터 사랑이 싹터 오르면 인류 조상의 문화가 창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쓰여지는 언어는 세계의 언어가 됩니다. 현재 쓰여지고 있는 언어는 무엇이 고간에 다 필요 없습니다. 영어가 심판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이왕지사 자식이 되려면 사랑의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고 그 부모가 쓰는 말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민족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중심삼은 문화가 발달될 것입니다. 그 문화는 세계적인 문화가 될 것이요, 다른 문화는 그 땅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의 문화는 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인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루기 위해 나온 것이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종교마다 재림사상이 없는 종교가 없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사랑의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르기를 만민을 고아라고 했습니다. 고아가 귀족이 사는 궁전이라고 해서 가 보니 그것이 바로 원수들이 사는 소굴이요, 좋은 것을 먹고 있는 줄 알았더니 독약이 섞인 마약을 먹고 있었고, 좋다고 춤추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칼날 위에서 춤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한문으로 믿음이라는 글자를 써 보면 신(信)자입니다. 여기에서 사람 인(人)자를 떼어 내면 말씀 언(言)자만 남습니다. 믿음이란 결국 사람의 말을 뜻합니다. 이때 말이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가 없으면 말이 나오지 않으므로 말을 할 때는 벌써 상대적 기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관계가 맺어지려면 믿음(信)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근본이 어디서 나왔느냐? 사랑으로 빚어진 인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연은 자기 멋대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인연이 맺어질 힘의 여건이 있었고 목적하는 바의 기준이 서로 부합될 수 있었기 때문에 맺어진 것입니다.

20-25
사랑의 세계
우리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찾는 것입니까? 진리를 찾는 것입니까? 참다운 진리체를 찾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과 참다운 진리가 하나 되면 소망은 이루어지는 것이요, 믿음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지요. 이 사랑의 고개를 잘 돌파해야 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하였으니, 모든 것은 이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류가 소망하는 것은 참된 진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인생관, 참된 세계관, 참된 우주관을 형성하여 그것을 중심삼고 땅 위에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 사상이 바로 메시아 사싱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노정입니다. 그 진리는 참된 개인이 살 수 있는 길, 참된 가정이 살 수 있는 길, 참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길, 참된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길, 참된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으로부터 세계까지의 초점이 전부다 일치되어야 세계완성, 국가완성, 종족완성, 가정완성, 개인완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맞아 떨어질 수 있는 핵이 되는 말씀, 즉 진리를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니, 그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참된 사랑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데 있어서 진리를 알지 못했기에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참된 우주관을 찾아 가지고 참된 인생을 가르쳐 주기 위해 출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여받아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상천국을 이루는 방편입니다.

오시는 주님에게는 본래의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참된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에 의해서 벌어지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요,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사랑, 이념, 인격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개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땅 끝 어디에 있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 한 시간 사는 것을 천년사에 자랑할 수 있고, 하루 사는 것을 만년 역사에 자랑할 수 있게끔 인생의 고귀한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이 참된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참된 사랑을 느껴 봤어요? 참된 사랑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참된 사랑은 세포가 팽창하는 기운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마치 화창한 봄날에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황홀한 세계인 것이요 모든 세포가 춤추는 듯한 기분이 되는 세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영원한 진액을 하나님으로부터 보충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급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리에서 살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아무리 욕하고 핍박해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죽어도 갈 것입니다. 가다가 다리가 잘려 나가도, 목뼈가 부러져도 그까짓 것쯤은 참고 갈 수 있습니다. 구정물에 들어가 춤을 추라고 해도 할 수가 있습니다.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을 내가 다 먹고 욕보따리를 다 짊어지더라도 괜찮습니다. 욕은 영양분이 없어서 배는 부르지 않지만 욕도 영양분으로 소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20-27
선생님은 언제나 혼자
통일교회를 핍박하는 간판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국제공산당’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왜정 때에 왜놈들한테도 당했고 이북에서 공산당한테도 당했습니다. 요전에 어디서는 통일교회가 조총련이라고도 했습니다. 기가 막히지만 ‘내 말 없이 다 짊어지마. 나 하나 욕먹어서 대한민국이 복받으면 되는 것 내가 견디마’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때려 죽여 보라는 것입니다. 뒤끝이 어떤가?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선생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설령 남편은 빼앗겨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슨 요술을 부린다면서 별의별 욕을 합니다. 한번은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해서 이북에 넘어갔는데 그만 내가 잡혀 들어갔습니다. 내가 뭐 이남에서 왔다고 해서 이승만의 앞잡이라나요?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근거를 못 잡았어요. 그러니까 박수무당이니 사회를 문란케 한다느니 하고 잡아 거두었습니다. 선생님은 매도 참 많이 맞았습니다. 고문도 많이 당했고 천대도 많이 받았습니다. 요즈음은 몸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런 길을 걸어나온 사람입니다. 아주 극적인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을 소망에 찬 내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귀한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왜정 때는 얼마나 맞았는지 몇 시간씩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채찍에는 굴복 안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본 황실에 충성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반발했지만, 내가 20년만에 다시 가서 일본 청년들을 다 모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요구해도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통일교회는 욕을 먹는 바람에 자꾸만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욕을 안 먹고 다 좋다고 그랬으면 얼마나 크게 되었겠습니까?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잘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지나온 사연을 드라마로 엮어 방송국을 통해서 사흘만 말하게 되면 아무리 목석 같은 사람도 다 통곡할 것입니다. 양심은 양심을 통해서, 인연은 인연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천품이 좋은 사람은 느낄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뜻을 알게 되면 이상해집니다. 세상적인 공부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관심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뜻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국내에선 아무도 만나지 않지만 외국 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만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1953년에 한국 휴전시킨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한 시간 이상 토의를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게 되면 또 만날지 모릅니다. 오지 말라고 공갈 협박한다고 해서 안 가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때요? 「가겠습니다」 대답은 시원스럽게 하지만 대답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친구 한 명 없이 혼자였습니다. 이북에 갔을 때도 상대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지금도 혼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은근히 따르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가 잘 되겠다는 속셈을 차리기 위한 것이지 선생님을 위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자기들이 먼저입니다.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고 야단합니다. 축복이 있을 때 ‘선생님, 우리 아들은 3년 됐는데 축복을 안해 주시면 됩니까? 우리 아들은 3년 됐는데 왜 빼 놓으십니까?’ 하는 것은 누굴 위해 믿는 것입니까? 선생님을 위해 믿는 것이 아니요, 자기들을 위해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혼자다 이거예요.

20-29
참된 사랑
참이라는 것은 참된 사람이 오지 않고는 세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참자체는 거짓과 근본부터 다릅니다. 참은 거짓 사람을 원치 않으며, 또한 거짓 사람에게는 참사랑을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제일 참된 것을 취급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빗나간 길을 바로잡자는 것이요, 참사랑의 뿌리를 한번 잡아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일반 교회와 다른 점이 많습니다. 통일교회에는 전기장치가 되어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기는 전기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전기이지요. 전기불도 전등도 갓도 애자도 눈에 보이지만 정작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전기에 사람이 달라붙게 되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전기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움직이고, 생각하며 책을 보아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논리가 서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론을 적용시켜서 과학 문명을 발전시켜 나왔는데 마찬가지로 영계가 인정하는 사랑의 이론이 있다면 사랑도 인간이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란 인간 두뇌로써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슨 관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다 초월하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는 참된 사랑을 세울 수 없습니다. 끝날에는 타락한 세계의 사랑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심판이란 지금까지의 악한 세상의 뿌리를 뽑고, 줄기를 잘라 버리고 본연의 사랑을 접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접붙이기 위해서는 잘라 버려야 하겠지요? 그런 대심판의 때가 되었기 때문에 가정의 모든 법도가 깨져 나갑니다. 세계적으로 다 깨져 나갑니다. 타락세계의 인간들은 자식을 아나, 부모를 아나, 사회를 아나, 나라를 아나, 모두가 나, 나, 나밖에 모르니 각성해야 됩니다.

미국은 큰일났습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줄 알았더니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서로서로가 분리되어 망해간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는 망합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그냥 있으면 민족도 망하는 것이요, 사회가 어떻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은 천도에도 없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 사상으로 말미암은 것이 미국의 혼란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돌려 놓을 것이냐? 이러한 것을 바로잡고 고쳐 나가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랑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니 청산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에게는 사랑의 관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설명이 필요합니까? 이론이 필요한가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이론적으로 하나요? 사랑에는 이론과 설명이 통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무엇인데 그것 때문에 죽고 살고 합니까? 그것은 논리와 이론이 쓸데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며, 그 사랑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나님 자신에게만 나타나서는 인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천년 왕국도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의 맨 처음 조상인 아담 해와에게 나타날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저녁 때가 되었다고 잠을 자는 것입니까? 때가 되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보따리 싸들고 가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랑은 그런 것일 것입니다.

20-31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나타난다
타락한 세상의 사람들도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는 자식의 얼굴에 뭐가 더럽게 묻어 있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양치질도 하지 않는 채로 있어도 그저 사랑스러워서 덥석 안아 입을 맞춥니다. 어머니들은 애기가 젖을 빨때 피가 나도록 빨아 먹어도 젖을 빠는 것을 보면 재미가 나는 것입니다. 자기 살을 빼앗아 가고 진액을 뽑아가는데도 그저 기분 좋아합니다. 그저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내려다 봅니다. 밤에 자다가 우유를 달라고 하면 먼저 맛을 한번 보고 줍니다. 아주머니들,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런 어머니가 가짜 어머니입니다.

짖궂은 녀석이 밖에 나가 싸우고는 울고불고 야단 법석을 떨고 집에 돌아오면 부모의 마음은 무척 아픕니다. 이건 왜 그러느냐? 결과적인 사람의 생리가 자식을 그렇듯 사랑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선생도 통일교인들이 욕을 먹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부모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처녀 총각에게 그 부모가 ‘너 다시는 사랑하지 말라’고 하며 반대하면 ‘옳소이다’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합니다. ‘아이구 이 땅에서 못 살면 후세에서 같이 살자’ 하며 죽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의 무질서한 인격입니다. 인간들은 질서의 법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한 혁명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사탄세계의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이 나오면 사탄세계의 사랑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가서는 안 된다고 암만 울면서 말려도 더 큰 사랑이 있으면 아내는 그리로 가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때려도 가고, 아내가 아무리 당신 없이는 못 산다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맛본 사람은 그곳을 떠나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못 사는 겁니다. 통일교회가 욕먹는 동기가 이런 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입니까? 선입니까? 여러분, 맛있는 것을 한번 먹어 보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것을 먹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전 잘하지요? (웃음)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그런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남편 아내 할 것 없이 모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통일교회에 갔다면 아내도 얼른 따라 나와 무릎 꿇고 앉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상에 없었던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과 접붙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본 받아라.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거짓 사랑보다도, 작은 사랑보다도 참사랑, 큰사랑이 나타나면 그 사랑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사랑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남자에게 먼저 나타나겠습니까, 여자에게 먼저 나타나겠습니까? 어디서 먼저 나타나야 됩니까? 여자들은 여자에게 먼저 나타나야 된다고 하고 남자들은 남자에게 먼저 나타나냐 된다고 하며 서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니 이걸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누구를 먼저 지으셨습니까? 아담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아담하기 때문에 아담입니다. (웃음)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노라리가락으로 놀아 먹자고 지으셨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 얼굴의 이목구비는 참 조화 있게 지어졌습니다. 사람의 감정이 모두 그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얼굴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웃는 것도 좋고 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기쁜 것과 슬픈 것은 다릅니다. 기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사람이 슬픔을 주관하고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바뀌는 것입니다.

슬픈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통입니다. 고통을 주관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돈을 주관해야 합니다. 돈을 종이 쪽지로 생각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슬플 때 눈물이 납니까? 안 납니까? 「납니다」 응, 모두 나 닮았구먼. (웃음)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20-33
청산해야 할 종의 사랑
우리 통일교회 교인에게 좋은 교훈이 있는데 그것이 탕감이라는 것입니다. ‘탕감’이라는 이 두 글자만으로 감투를 쓰고 내가 죽게 되더라도 인류를 위해서 탕감조건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 한이 되겠습니까? 통일교회의 탕감의 원리가 얼마나 위대합니까? 이래도 통일교회가 이단입니까? 몰림받고 쫓겨나는 발걸음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창조하는 것이 탕감복귀입니다. 욕을 먹고 쫓겨나는 자리에서도 내가 이 길을 감으로써 만민이 탕감받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소생될 수 있는 길은 고통과 공포의 길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희열을 느끼고 소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소망이 있기에 조금 고생스럽고 슬픈 일이 있어도 극복해야 합니다. 모든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소망을 찾아 나가면서 인류에게 복을 주기 위해,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사연의 흐름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1시간 45분 동안 말씀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건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얘기를 했어도 길고 지루하다고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나타난다고 했습니까?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했지요.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사랑의 순서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의 사랑, 다음에는 부부의 사랑, 다음으로 자녀의 사랑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이것이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플러스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이 형제의 사랑입니다. 형제의 사랑이 나와 그 가치를 더하니 지금부터 사랑이 기약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역사가 출발한 그때부터 참다운 부모의 사랑, 참다운 부부의 사랑, 참다운 자녀의 사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타락한 사랑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최상급의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할 것인데 불구하고,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종인 천사장의 사랑을 중심하고 출발했습니다. 종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의 사랑을 받겠습니까? 주인의 사랑을 받겠습니까? 주인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종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덜 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청산해야 되겠습니까, 붙들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인류의 시조를 유인해 가지고 사랑의 법도를 침범했습니다. 그러한 6천년 동안의 한 많은 타락의 인연을 떼어 버리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암흑천지의 혼돈 가운데로 처형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는데 무엇 때문에 치지 못하고 남겨 두셨느냐? 거기에는 공의의 하나님께 인간 스스로가 법도에 의해서 타락의 껍질을 한 꺼풀, 두 꺼풀 벗고 나서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게 하고픈 부모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종의 종의 입장으로 타락되었기에 본연의 자리를 찾으려면 하나님 편의 참다운 종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선생님이 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하나님의 참다운 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참다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종인 천사장의 자식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시 사랑 관계를 맺어 가지고 천상의 종의 대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양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자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자와 직계 자녀는 무엇이 다릅니까? 핏줄이 다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양자밖에 못 됩니다.

양자란 원래 직계 아들이 없든가, 아들이 있지만 불량배가 되었다든가, 부모를 배반했다든가 하는 경우에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계의 자녀가 없기 때문에 양자가 필요하고 양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의 자식을 믿을 수는 없지만 아들이 없고 딸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종의 자식이라도 데려와야 하는 것이요, 양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했습니다. 양자의 이름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양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가 따로 있고, 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20-35
통일교회가 가르치는 것
본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로 지음받았는데, 그들은 종에게 끌려가서 죄를 지어 종의 피를 받고 종의 새끼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망할 수밖에 없는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몰리고 쫓기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기성교인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그들만 못해서가 아닙니다. 또, 일부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벌거벗고 춤을 춘다고 하는데 모르는 소리 작작하라고 하십시오. 잠꼬대 같은 헛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렇게 껄렁껄렁한 사내가 아닙니다. 그런 소리 듣고 무너질 것 같으면 벌써 보따리 쌌을 겁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보여도 고등학교 때 씨름해서 일등했습니다. 그들에게 복수하라면 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들이쳐서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못하느냐? 우리에게는 세계 복귀라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기점에서 나는 지금까지 참아 왔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간에 버젓이 왔다갔다하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선생님 말고는 세상의 누구도 못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 때문에 아들을 잃어버렸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딸이 타락하여 종의 자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종의 자식을 데려다가 키우셔야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탄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이걸 알아야 하나님의 직계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시다고 하면서 눈물 흘리지만, 복 받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본연의 아들딸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6천년의 인류역사를 대속해야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을 세우기 위해 종의 자식을 가르치고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도리어 ‘하나님 복 주소서’ 합니다. 복받기 전에 복을 돌려 드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세계는 기원이 달라지는 것이요, 다음에는 여러분이 달라지는 것이니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하나님더러 복을 달라고요? 불효했던 것을 회개하고 아버지의 마음속에 사무쳐 있는 깊은 한을 풀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채찍을 맞고 만민 앞에 버려지고 만민 앞에 걸인이 되더라도 가야 할 것이 효자의 도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옳습니까? 복이 필요하다고 무조건 ‘아이구 나한테 복 주소서’ 해야 됩니까? 그러면 모두가 도둑들이요, 모두가 가인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종의 새끼가 되어 가지고 부모더러 자기의 분깃을 달라는 것입니다. 앉을 자리, 설 자리를 제대로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천상 세계의 대왕께서 어찌하여 아들딸을 다 잃어버리시고, 아들딸을 찾기 위해 종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것입니까? 인간이 종의 종으로 끌려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번번이 비소하며 침 뱉고, 번번이 패가망신시키는 것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데려가면 하나님께서 데려오고, 데려가면 또 데려오고 하는 6천년 엉클어진 사연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종의 종으로 인연이 거듭되었으니 이것을 청산하고 양자의 인연으로 아들의 인연으로 끌어올려서 천지의 위업을 일시에 상속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엄청난 내심을 누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20-36
하나님의 적자(嫡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종적인 사랑과 양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가졌지만, 적자를 사랑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적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위의 만민 가운데 세우기 위해서 한 분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독생자 예수님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직계 아들로 처음 나왔으니 하나님의 독생자인 것입니다. 4천년 만에 처음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예수님이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예수님의 인연을 중심삼고 돌감람나무인 인간들은 자신들의 모든 가지를 끊어내고 참감람나무인 예수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온 천지가 그 한 분을 고대하며 얼마나 많은 역사과정을 거쳐 나왔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핍박을 받으셨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비통한 일입니까? 그런 아들을 잡아죽였으니 인간들은 돌감람나무인 채 그냥 그대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다시 오시려면 통일이라는 명사를 가지고 와야 예수님의 그 사정과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우리의 사정이 맞게 됩니다. 그래야 이치에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셔서 결혼을 해야 됩니다.

영적인 세계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세계는 육적인 세계의 뿌리인 것입니다.

참감람나무 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계 만민이 그분으로부터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양자의 자리, 적자의 자리까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어 그 생명의 말씀을 체질화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근본은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자가 되기 위한 순수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닙니까? 아담 해와는 부모의 법도를 배반한 불량배가 되었으므로 추방당하고 죽어 버린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대상이 죽어 버렸으니 다시 찾아야 되겠기에 충성과 효도를 하는 아들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14:36)”라고 기도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하여 막혔던 천도가 다시 회생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선조들이 반대하여 가지 못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아들을 원수들의 손길에 의해 묻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은 예수를 부활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사탄은 참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이나 양자들이 갈 수 없는 본연의 아들의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20세기 후반기에 있는, 지금까지 갈 길을 못 찾고 도탄 중에 빠져 있는 세계를 구원할 주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로 구원을 얻으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위해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울고 계십니다. 이런 사정과 뜻을 알았다면 자신의 슬픈 일로 가슴을 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며 슬픈 일도 기쁨으로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주사에 새로운 봄동산을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천당에 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항상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이제 그들이 천국에 간다고 좋아하지만 영계에 가서 아무리 우리를 만나려 해도 만나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통일교인들이 안 보이니까 전부 다 지옥에 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들이 지옥 웃 뚜껑에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웃음) 그러니 만날래야 만날 수 없지요. 기가 막힙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올릴 수 있는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통해서 세계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을 가지십시오.

20-38
만인에게 필요한 어린양 잔칫날
여러분이 아담 해와보다 더 하나님 앞에 효자 효녀가 되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아담 해와가 효자 효녀가 되고자 했던 그 선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을 넘는 데 있어서 처녀 총각이 먼저겠습니까, 부부(夫婦)가 먼저겠습니까? 지상에서 결혼하여 부부로서 아무리 깨가 쏟아지게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영계에 가게 되면 ‘불합격’입니다. 차라리 같이 안 살았던 것만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복귀섭리를 가르쳐 주니 고맙습니까? 안 고맙습니까? 「고맙습니다」

통일교인들, 혼자서 하나님을 믿으면 좋겠군요.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 생활을 합니다. 수녀니 신부니 비구승이니….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영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종지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결혼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적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과거에 지은 죄를 전부 다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에, 돌아온 탕자의 비유처럼 다시 돌아온 직계 아들의 입장이 되어 과거의 모든 죄를 사할 때 하나님께서 ‘오냐, 내 아들아 잔치를 벌여주마’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는 온 인류가 새 옷을 갈아 입고 신랑 신부가 되어 잔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 잔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부터 인간의 종지조상을 위하여 어린양 잔칫날을 받아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린양 잔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직계 아들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어린양 잔치를 하겠다고, 신랑을 맞겠다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꿀잡이가 된 것입니다. 거꿀잡이.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참부모를 잃어버려 직계의 자녀가 못 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가 이 땅에 출현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사상입니다.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이 신랑으로 오셔서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6천년 전 에덴 동산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식을 하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져 버렸으니, 천신만고해서라도 그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6천년 사연을 다 청산하고 이 땅에서 비로소 혼인날을 맞이하는 그날이 바로 어린양 잔칫날, 즉, 주님이 재림한 날인 것입니다. 그 날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없어야 되겠습니다? 「있어야 되겠습니다」

어린양 잔칫날은, 흑인에게도 필요하고, 백인에게도 필요하고, 한국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온 인류에게 다 필요한 날이요, 영계의 영인들에게까지도 필요한 날입니다. 영인들도 끝날에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니 그들에게도 어린양 잔칫날은 필요한 것입니다. 천국은 아버지가 자기 처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늘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국 사랑의 뿌리는 무엇인가? 내가 있기 전에 누구의 사랑이 있어야 하느냐? 부모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앞으로 내가 있으려면 부부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의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3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 3대 사랑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관을 초월할 수 있는 영원한 실존적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대 사랑이 결합하게 될 때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하면 행복도 완전한 것이요, 이것이 결여되면 불행이 깃드는 것입니다. 어머니 없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어머니가 없는 만큼 불행한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없는데 행복합니까? 아버지 없는 사람은 아버지 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부러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도 부러운 게 없어야 합니다. 부러운 것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없고, 어머니가 없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배포가 크고 큰소리쳐도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아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부부끼리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훌쩍 가게 되면 부인은 눈물을 흘립니다. 남자가 없어도 안 되고 여자가 없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20-40
수리로 본 사랑의 법도
다음에, 부부끼리 아무리 정이 있게 산다 하더라도 아들딸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합니까? 「불행합니다」 아들만 필요합니까? 아들딸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부모한테 아들딸 둘 밖에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두고 볼 때에 그에게는 누나가 필요하고 또 형이 필요하지요? 또 딸에게는 오빠가 필요하고 언니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남동생과 누이 동생이 필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되고, 누나가 있어야 되고, 남동생 누이 동생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여동생, 남동생, 누나, 오빠 다 갖추어져 완전히 하나 되는 가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씨족과 민족과 국가의 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중심하고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님, 그 다음엔 남동생, 여동생, 거기다 나까지 합하면 몇 명입니까? 「7명입니다」 그래서 7수가 완성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성이란 사랑을 두고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찌하여 7수가 완성수냐? 무엇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가 7수를 중심삼고 완성되었느냐? 그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3수는 하늘 수요, 4수는 땅 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3수는 아버지, 어머니, 나 해서 3수입니다. 그러면 4수는 무엇을 말하느냐? 위의 3수에 동생들까지 합한 것이 4수입니다.

이 땅 위에 역사가 벌어진 이후에 어느 누가 부모를 중심삼은 참다운 사랑, 부부를 중심삼은 참다운 사랑, 형제를 중심삼은 참다운 사랑을 해보았습니까? 참다운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 사이에 상충이 벌어졌기 때문에 아직까지 참다운 형제의 사랑도 이 땅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출발된 역사이기에 하나님은 파탄된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다시 하나로 만들기 위한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파탄된 형제의 인연이 세계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입니다. 맏아들은 가인이요, 작은 아들은 아벨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내적인 사정을 두고 싸웠던 것이 역사적인 인연이 되어 세계적으로 나타난 것이 공산국가와 민주국가입니다. 여기서 공산국가는 하늘 앞에 반대만 하는 가인적 입장이요, 민주국가는 하늘을 위해서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버리는 아벨적 입장입니다.

그러면, 아벨적 입장에 있는 미국은 누구를 위해서 희생해야 되느냐? 자기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 나라의 국력을 키우는 것보다도 외국 원조에 힘쓰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원조를 삭감한다면, 두고 보십시오.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만을 위하는 미국을 사랑하시지 않으며, 세계를 위하는 미국을 사랑하시나니 천륜을 배반한 국권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상에 길이길이 남아질 수 있는 국권은 천륜을 따라 온갖 정성을 다하는 국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라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미래의 통일천국은 어떤 것이어야 되느냐? 천륜의 법도를 따라 수립된 세계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가고, 가정은 어떻게 가고, 종족은 어떻게 가고, 민족은 어떻게 가고, 국가는 어떻게 갈 것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갖추어야 할 것이 일곱 가지라고 했지요? 7수가 완성수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성부 성자 성인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 해와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늘땅을 대신한 것입니다. 성부는 상하, 즉 종적인 인연을 말하는 것이요, 여러분들은 중심으로 볼 때 형과 누나는 동서를 말하고 남동생과 여동생은 남북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완성되면 입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모든 법칙도 수리를 떠난 공식법도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에 근원된 창조원리적인 개념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도가 자리를 잡게 될 때 평화의 기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위기대를 이루는 것이요, 사위기대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 그리고 그 자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녀가 싸우면 사위기대는 파탄됩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안 되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