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3 to 19-309: 본향의 나라

본향의 나라
1968.03.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19-273
본향의 나라
마태복음 17:10-13

[기 도(Ⅰ)]

아버님이여! 오늘 거룩한 날을 맞이하여 아버님의 존전에 부족한 모습들이 부복하였사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진실된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시고, 그와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을 중심삼고 영원한 인생으로 출발케 하시려는 당신의 간곡한 소원을 자기 자신과 일체화시키지 아니하면,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전체에 맺힌 복귀의 한을 풀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기쁨의 자리이거나 슬픔의 자리이거나, 자리를 개의치 마시옵고 아버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는 본향을 저희들에게 찾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부족한 모습들이 아버님 앞에 정성들인 것이 아버님이 소망하고 찾아나오신 그 기준에는 절대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님 앞에 힘이 되어 드리기 위하여 능동체가 아닌 피동체의 모습이 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그 무엇을 가지고도 아버님을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말미암음 전체는 없어지고 온전히 아버님의 전지전능하신 그 힘에 지배받음으로써, 아버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새로운 모습으로 지음받는 그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3월 10일, 이달 들어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금년에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출발하였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여러가지 사정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처한 입장이 아버지를 따라가는 자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나, 저희 자체를 무시하고 저희 자체의 환경을 타파할 줄 모르는 불초하고, 미력한 자식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맞아 전국 각처에 모여 아버님 앞에 경배드리는 수많은 형제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또한 수많은 백성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특히 외로운 통일교회의 무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여기저기 널려서 이 시간 이곳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아버님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땅 위에 그 무엇을 갖지 못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을 갖도록 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을 통하여서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이 땅 위에 완전히 이루어 놓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첫 시간에서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아버님만이 직접 주관하시는 가운데 온전히 이 시간을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저희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서 아버님의 거룩한 존전에 전체를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친히 받아 주시옵길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275
기 도(Ⅱ)
저희에게는 아버지와 더불어 살고, 아버지와 더불어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이 맺어져 있었던 것을 다시 한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와 같은 인연 가운데서 빚어진 저희 한 개체는 하늘을 대신한 마음과 땅을 대신한 몸이 일체가 되어 마음의 기쁨이 하늘의 기쁨이요, 몸의 기쁨이 땅의 기쁨이 되어야 할 것을 아옵니다. 아담 해와가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된 완전한 사람이 되었던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본성의 사람만이 존속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본성의 사람만이 통할 수 있는 본성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되어야 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님, 저희의 마음과 몸이 이렇게도 상처를 입고, 아버지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이것이 타락의 보응인 것을 저희들이 절절히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탄식하신 말씀처럼 저희 자체를 두고 볼 때도 그와 같은 싸움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사오며, 앞으로의 역사과정에도 연결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의 질식된 환경을 통탄할 줄 아는 참다운 사람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땅 위에서 외적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환경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내 마음과 몸이 투쟁하고 상충하는 한, 저희는 행복의 여건, 평화의 여건, 자유의 여건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저희는 참다운 자녀가 되기를 바라고 있사오며, 아버님의 인연으로 세워질 수 있는 참다운 행복과 참다운 평화를 바라고 있사온데, 아직까지 아버님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 이 슬픈 사실을 아버님,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생의 목표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가는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아버님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녹음이 중단됐음)

19-276
말 씀
‘본향의 나라’ 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본향의 나라란 다시 말하면 복귀해야 할 나라입니다.

19-276
본향의 세계를 소망해 온 인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의 모든 희망이 이루어진 행복한 세계가 아닙니다. 자타를 막론하고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런 세계에 살고 있고, 가정이 그러하고, 민족 국가 세계가 그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소망하며 찾아 나왔던 세계가 이와 같은 세계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더 높고 귀한 소망의 나라일 것이냐? 그리고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어떠한 이상적인 나라가 있을 것이냐?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어 왔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기에 인간 자체의 능력으로서는 본심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심이 바라고 있는 그 나라를 ‘내가 만들겠다. 어떻게든지 내가 이루겠다’ 하는 마음보다도 그러한 나라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런 나라를 확고히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라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이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본향의 나라, 즉 이상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힘뿐만 아니라 배후에 어떠한 절대적인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이 세상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슬픔의 세상이요, 고통의 세상이요, 비탄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을 심판해 버리고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본향, 즉 새로운 이상세계로 가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들도 그러한 이상의 나라를 흠모하는 중심사상을 세워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필코 본향의 나라, 본향의 땅을 찾아야 되겠고, 본향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온 인류의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9-278
현실을 부정하는 종교
오늘날 이 세계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본향의 사람이 아니요,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역시 본향의 국가가 아닙니다. 하나의 이상세계를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현시대를 보아서도 지금의 세계는 본향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자인하면 할수록 이러한 환경 전체를 환영해야 할 것이냐, 배척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의 나라와 세계가 우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본향의 여건을 갖춘 나라가 아니요, 그 세계가 아닐진대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보류시킬 것이냐, 환영할 것이냐, 아니면 배척할 것이냐? 우리가 이런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차적인 종교는 현세와 타협하는 것을 부정해 왔고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즉, 현세계에 목적을 두는 것을 용허(容許)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개인을 중심삼고 자의에 의해서 생활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역사상에 아무리 훌륭한 세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도 역시 그러했고, 또한 앞으로 아무리 훌륭하고 고차적인 세계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 세계는 본향의 나라를 고대하는 사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환경이요, 사회요, 국가요, 세계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환영도 할 수 없고 처단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인 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할것없이 타락권내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요, 또 더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비탄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슬픔과 고통이 연속되어 사망과 파괴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종말을 맞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를 거쳐 오면서 그 무엇인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이 세상이 파괴될 끝날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또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그 절대자는 절대자의 본의에 화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바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절대자도 이 땅 위에 끝날이 온다는 사실을 예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끝날이 온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하게 되고 말한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운명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19-279
왜 이 세계를 청산지어야 하는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천년 만년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생활이 행복의 기원이 되고, 행복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태어나기를 불행한 자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불행한 환경을 거쳐 불행의 종말을 맞아야 할 인생인 것입니다. 본심이 고대하는 본향의 가정, 본향의 사회,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들이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욕망하는 그 모든 것은, 현재 처하고 있는 생활환경을 토대로 해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처리해야 되겠습니다. 쳐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깨끗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처리해야 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타파해 버리고 처리해야 합니다. 만약 이 세계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 활동이나 세계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아무리 이것을 처리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고 처리하게 되면 그것은 완전한 처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인간들은 자기들 나름으로는 아무리 잘 처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본향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격의 기대, 가정의 기대, 또한 사회의 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만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 것’이라고 자칭하는 ‘나’가 되어야 자주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주권을 가져야 나를 주관하고 나를 심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여러분 자신인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19-280
역사는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스스로를 동기로 하여 출발되었다면 주체성을 가진 나는 자동적으로 거기에 대한 결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태어 났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생한 지 10년 혹은 50년, 아니 90년이 되어 죽을 운명에 놓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마음을 주관할 수 있고, 승리의 팻말을 들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출생한 그 당시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동하고 내가 주관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기반에서 우리의 본심이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나와 상관이 없는 가운데서 흘러 내려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그 무엇이 동기가 되어서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나는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상의 입장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좌우할 수 있는 어떠한 생명의 근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체가 거기에서 흘러 내려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는 자체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 세상을 처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본심의 기준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 처리되지 않았다면 처리된 그 문제가 또다시 부정의 인연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현재의 인간으로서는 이 세계의 그 무엇을 부정할 수 있고 처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강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이나 새로운 세계를 보장하는 절대적 기준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새로운 이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의 주류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행을 당하였고 또한 망해 왔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인간 자체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서 야기된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거할 수도 없고 방어할 수도 없는 운명의 길 가운데서 인간은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탄 가운데서 인간이 방향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그 방향이 애매하여 암중모색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개 속의 허공을 뚫고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다’ 하면서 생애의 모든 정력을 다 바쳤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가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큰 뜻을 품고 세계와 인류의 장래를 염려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 역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19-281
과거에도 이상을 찾아 허덕인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또”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 12-13)” 하시며 탄식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 배후에는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것보다도 내적인 이면에 깊은 그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악과 악한 세상을 처단할 수 있는 동기요, 기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마음속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습니까?

불행의 요건은 자기가 치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험난한 모든 환경이 자기를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통일교인들은 이것을 뚫고 나가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이 아무리 평화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지만 인간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는 세계적인 평화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만약에 가능하다면 지금보다도 옛날의 많은 도인들이 정성들인 것으로 이미 그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서 실존주의,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그 이상을 탐구하겠다고 허덕이는 판국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와는 달리 과거의 도인들은 심산유곡에 들어가 ‘마음이란 무엇이냐? 마음의 욕구, 마음의 본향이 어디일 것이냐? 그 마음이 찾아 세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서 내적인 내용을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인격 기준을 찾아 세워서 그 인격이 기뻐할 수 있는 선의 세계인 인류의 지상천국을 이루려 했습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정성들이고 기도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땅을 정비하고 이 세계를 해결지을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한 것을 볼 때에 주님이 와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느냐? 여러분은 우리 인생이 소망하는 유토피아, 즉 본향의 나라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19-282
몸 마음이 하나 되어야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하고 갈라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몸과 내적인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과 몸이 통일되어 있느냐 했을 때에 이 몸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곧바로 가기를 바라는데 몸은 반대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마음이 비뚤어졌다’고 말할 때에 마음이 비뚤어진 것을 보았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그 행동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도 역시 행동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은 사람은 통일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곧은 직선이 되려면 두 점이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즉, 마음과 몸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선은 반드시 한 점에서 또 다른 한 점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만 가지고 안 됩니다. 마음이 비뚤어졌다는 것은 그 직선에서 한 점이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몸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을 하나로 합하여 서로를 받들 수 있는 이상(理想)의 인격, 이상의 중심, 그 이상의 양심을 중심하고 일체화된 이상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체화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자리에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임재하고 싶은 사랑이 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기 자신을 내버릴 정도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종교나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마음을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태양계가 어떠한 원칙에 따라 끝없이 도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일체를 이루어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 자연법도의 힘에 일치되는 것보다도 더 고차적인 일체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냐?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구조를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신비경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달했다고 큰소리쳐도 아직까지 사람의 눈에 대한 것 하나도 완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천 년 몇만 년에 걸쳐서 연구해야 할 분야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서 영원히 변치않는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몸으로써 화해진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그 사람 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이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인륜 도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또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부터 폭발되어 흘러 나오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형성되어진 가정관,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 우주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는 상대적인 어떤 세계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도 자체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도피해서 본연의 세계, 즉 마음의 세계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절대 부정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부정의 한계선에 하늘땅을 걸어 놓고 부정할 수 있는 확실한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을 구하는 종교가 되려면 대한민국을 흥하게 하든가, 망하게 하든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인간이 본향을 찾아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인격을 이루었다면, 그 인격은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진 인격권내에 지배받는 인격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지배한 수 있는 인격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기준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본연의 가정 종족 민족을 세울 수 없습니다.

19-284
본심의 기준과 본향
자기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자인해야 합니다. 고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 마음과 몸이 화합하지 못하는 한 그 집안은 망하고 비참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화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재미나게 살고 평온하고 뭐 어떻다고 할지라도 그런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서 그때마다 그 마음 기준이 깨지게 됩니까? 몇십 번을 그러했더라도 심정 기준은 깨지지 않습니다. 작용을 못할 뿐이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의 회수에 비례하여 가중되는 내적 고충을 극복할 수 없어 몸부림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계의 어떤 고난보다도. 어떤 환난 보다도 그 무슨 전쟁의 피해보다도 내 몸과 마음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해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패전으로 인한 산더미 같은 슬픔의 패잔물이 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과의 싸움에서 마음이 번번히 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은 일년, 아니 일생 동안을 잊지 않고 ‘몇십 년 전에 여기서 내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었지’ 하며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의 싸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패한 것은 잊어버리고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 해도 그 자체는 패잔병의 팻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마음과 몸이 싸워 마음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언제나 몸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변함 없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인 것입니다.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과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세계 인류와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또한 땅을 사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갖고 있습니까?

본심 자체를 분석해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본심은 아무리 없애려고 애를 써도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상세계, 즉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추구하며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심작용은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간판만을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확실히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19-286
물질주의로는 행복의 세계 이룰 수 없어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마음의 만족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몸의 만족을 위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몸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의 행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즉, 몸을 위주한 외적 세계를 중심삼고는 자기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나 권력, 그 무엇을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몸이 ‘야, 마음아 이만하면 됐지 ? 무엇으로 보더라도 네가 좋아할 수 있잖느냐?고 하면 그 마음이 ‘그래. 네 말이 옳다!’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럴 때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편하게 쉬려고 하면 마음은 몸에게 ‘그렇게 하면 너는 망한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그 돈을 내 것으로 삼지 말고 세계의 것으로, 하늘땅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마음을 중심삼아야 하는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지도 않는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 현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부 물질문명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고 훌륭한 이 마음을 눈에 보이는 돈 때문에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마음이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대치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마음의 자리가 어디냐? 본래의 자리가 어디냐? 그러한 자리를 중심삼고 출발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느냐? 그러한 개인으로 말미암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새로이 이 천지간에 다시 한번 싹트지 않고는 이 세계를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19-287
마음의 종교시대
그래서 결론은 여러분 자신들이 현재 소망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절대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한번은 거부당하고 제거 당해야 할 운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번은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한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에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싸움은 대동아 전쟁보다 더 위급하고, 핵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쟁은 휴전이라도 있지만 여기에는 휴전도 없고 종전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 땅 위에 존속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의 마음 바탕에는 휴전도 없이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었으니 더 싸우게 되었고, 이러한 민족과 민족이 합해졌으니 더 싸우게 되었고, 국가와 국가가 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 날 전쟁이 그치는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싸움의 근거지는 어디냐? 몸과 마음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움의 근거지가 됨으로 인하여 개인 가정 종족 국가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종국에는 이 외적 세계를 청산해야 됩니다.

그러면 나 하나를 중심삼고 통일될 수 있는 절대적인 안식처가 어디냐? 예수님도 그것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이요, 하나님도 그것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 기점을 찾아야만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 수많은 종교인들도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로 고심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인류가 찾아가야 할 최고의 기준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에 의해서 통일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의에 의해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힘에 의해서 통일될 수 있는 것인가? ‘자유’ 하게 되면 미국입니다. 그 미국 헌법에 있는 평화 행복 평등의 주체적인 내용을 이용하여 통일시킬 수 있다면 이것을 어떠한 종교가 받들 것이냐? 세계보다 우주보다 더 귀하게 받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남도 믿지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종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전에 먼저 마음을 믿는 마음의 종교시대가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더라도 인륜 도덕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언제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일을 행하여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 무엇도 무섭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한 세계의 폭군 앞에 가더라도 당당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주장해 온 인륜 도덕 등 모든 가르침은 마음의 종교시대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망해 들어가는 이 몸뚱이, 고집통이인 이 몸뚱이를 때려잡고 악의 요소를 전부다 추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중심삼고 아무리 가르쳐 줘도 안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상대책과 비상작전이 이 우주상에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그 비상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동기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영원불변한 어떠한 힘의 존재가 동기가 되든지 해야 됩니다.

그러한 동기가 인류 역사상에 침투해 들어온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가 고마운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사실이 그렇다면 고마운 것이지요 !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서라도 절대적이고 폭발적인 분화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좋아서 한꺼번에 전부다 몰려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길을 모색하고 개척해 주는 운동이 이 지구상에 벌어지지 않으면 타락한 이 세상은 망합니다. 하지만 망해서는 안 된다는 창조주의 욕구와 인간 본성의 욕구가 일치되는 자리를 모색하는 길이 있으니 그 길이 바로 종교의 길입니다. 종교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19-289
잘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살고 있다면 문제
그러면 종교가 어떠한 힘을 가져야 되느냐? 이 세계의 환경을 점차적으로 부정하는 힘을 가져야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어느 한 순간에 한꺼번에 청산지을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에 몇천 년 동안 얼어붙은 얼음덩어리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따뜻한 봄날을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지내온 역사상에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보다도 급진적이고 폭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내 자신은 무척 고대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그리 되면 그만이지’ 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책임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의 앞길을 생각해 봅시다. 배는 엔진이 돌아가고 스쿠루우가 작동하면 가게 되는데, 그 배를 운전하는 항해사는 그저 키만 잡고 가기만 하면 됩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스쿠루우가 돌아가듯이 그저 밥먹고 일어나서 회사와 가정을 왔다갔다하면서 그럭저럭 방향도 잡지 못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까? 그러다가 목적지인 항구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목적지에 어떻게 내리겠습니까? 그 이상의 위기일발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길을 가다가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 “어디 가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가긴 어딜가. 내 아들네 집에 가지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가시면 무엇을 하십니까?”하고 다시 물으니 “주는 밥과 반찬도 먹고 어쩌다 닭 잡아 주면 닭도 맛있게 먹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러면 먹고 나서 무엇을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먹고 나면 별것 없지” 이런 식의 대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가게의 장부를 정리할 때에도 수입이 얼마이고 지출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결산을 합니다. 이렇게 장부를 정리하는 데에도 수지결산을 철저히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합니까? 일생 동안 산 것을 수지결산을 해보았습니까?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적자라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살려고 허덕이는 것은 적자 인생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절대성을 중심삼고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흑자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해 주기 위한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 종교는 점진적이 아니고 폭발적이고, 순간적으로 딱 떼어버릴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 종교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이해가 됩니까? 그러한 종교가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약 2천년이 되었고, 불교 역사는 2천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2천년을 산 사람이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역사적인 종교를 세워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본향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강원도 인제를 가 보면 보기에는 5분거리도 안 될 것 같이 가깝게 보이는 거리지만 막상 걷다 보면 20리도 더 되는 길이 많습니다. ‘차를 타고도 넘을 수 없는 길을 왜 내가 걷는다고 했던가’ 하면서 걷다 보면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됩니다. 여러분도 가다 보면 그러한 날이 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에 여러분은 돌아가는 길을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직행하는 길을 원하겠습니까? 여기에 헬리콥터가 필요하고, 로케트 같은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비상 대책을 취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이 지구상에는 그런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19-291
인간이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본연의 사랑
그러면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하느냐? 마음에서부터 뜯어고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보따리 안에는 내 마음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본 복귀란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근본된 인생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그것은 사랑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동기로부터 본연의 사랑의 기준을 복귀하자는 것이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류들이 소망하던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어디서부터 시정해 갈 것이냐? 아무리 자기가 일평생 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했다고 해도 본연의 사랑을 중심하지 않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또 그런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연의 사랑의 기준에 의하여 부부를 이루어 자식을 낳아야 모든 것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륜 대도를 펼 수 있는 법도의 세계, 질서의 세계에서 운행되는 모든 궤도를 주관하는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한 인간 본연의 가치 기준에 서서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인류의 시조도 좋아하는, 행복의 꽃이 피는 봄날을 맞이하여 그 환희의 천지를 한꺼번에 품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본연의 사랑이 기원이 되고 중심이 되어 새로이 태어난 본연의 아들딸들은 그 본성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사무쳐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제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으로부터 통일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인간들에게 막연하게 ‘하나님은 사랑이라’ 고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넘어야 할 고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테마를 걸어 놓고 그 방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한 방법을 쓰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유치원생보다 못한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 대학원에서 하는 교수법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본향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종교가 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 사랑의 본향의 터전을 다시 찾아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가르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의 마음이 하나 될 때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어 영원까지 골고루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빼놓을 수 없고 분립시킬 수 없는 힘의 모색권내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이 하나 되어 일치화할 수 있고,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의 근원되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된 부부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이 있다면 그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님이고 예수님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적인 가정에 있어서 예수님은 형이고 우리는 동생으로서 형제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개인의 기준과 가정의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것은 우주적인 복입니다.

19-292
본연의 사랑으로만 세계 통일이 가능
오늘날 기독교가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우리 인생은 본심이 추구하는 본향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알려 주는 내용을 들고 나온 기독교가 자동적으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로써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 이 세계를 주도하려면 민주세계의 사상보다 차원 높은 그 무엇을 가지고 주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하느냐? 개인적인 권위나 힘이 아니요, 이 땅의 인간들이 세운 기준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으로써 주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 세상은 본연의 사랑의 보따리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었다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그 무슨 문제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타락한 세상은 죽고 망하고 못산다는 세상입니다. 남녀의 사랑을 보더라도 부모가 반대하면 ‘나 죽소’ 하면서 결국은 짝자꿍해서 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과 하나 될 수 있는 자체의 시발점이 이 땅 위에 출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것이 종교에 있어서의 의문점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만이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형제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마음 세계에 대한 것을, 유교는 인륜 도덕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기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의 법도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요즘 노래를 보나, 영화를 보나 사랑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는 형태는 갖추었지만 본래의 사랑의 내용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향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본연의 사랑이 출발이 안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연의 사랑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있는 사랑을 아무리 억천만금을 주고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즉,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것을 몇천 개를 준다 해도 그 사랑과는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을 알고 보아야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세계에 본향에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설계자, 기술자가 되는 그 한 분이 이 땅위에 온다면 만우주의 인간들은 모두 그분을 붙들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통일되지 말래도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무엇으로 통일하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청산지어야 할 타락한 세계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사람들이 일생 동안 즐기고 같이하지만 영원한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부를 이루어 아무리 부모 모시고 천년 만년 잘살자고 꿈꾸고 노래 했다 하더라도 죽으면 다 천리 만리 헤어지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인간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천도에 의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랑권내에서 사랑의 목적을 중심삼고, 원칙적인 자리에 선 부부가 되어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왜 갈라져야 됩니까? 본향을 찾아가야 할 인간이 하나님과 갈라섰으니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행복을 붙들고 천년 만년 살고자 해도 며칠 지나면 ‘아이고 난 왜 이래……’ 그렇게 됩니다. 이러한 불행의 상태가 횡적으로 전개되어 세계화된 것이 오늘날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해야 됩니다. 세상 것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아이고 암흑의 천지가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보고 따라가야 됩니다.

19-294
새로운 사랑의 역사가 벌어져야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피를 많이 흘렸고 어떤 종교 보다도 순교의 길을 많이 갔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본향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입니다. 거꾸로 서도 바로 선 것 같은 그 세상에서는 부닥쳐도 좋으니, 빨리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이 세상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것을 선생님은 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반대하고 핍박해도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 온 사람 중에 나를 환영한 사람이 있습니까? 요즈음 전부다 문선생이 뭐 어떻다고 흉보고 하지만 애당초 근본적으로 통일교회는 반대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대표적인 탕감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과 악의 싸움을 종결지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옥중에서 고문을 당할때, ‘그 몽둥이가 하나 부러져서는 안 된다. 둘, 셋, 넷 자꾸 부러져야 한다’ 하면서 극복했습니다. 역사의 선열들도 이러한 고난의 길에서 승리의 팻말을 들고 선두에 서서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올바른 중생의 궤도를 달릴 수 있는 출발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따라 나선 사람들은 자기는 팔자가 고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랑의 보따리는 무슨 보따리이겠습니까? 본향의 나라에 가서 그 보따리를 풀어 보면 이상적인 남편이 튀어나오고 이상적인 아내가 튀어나옵니다. 또한 이상적인 가정이 튀어나오는 복주머니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은 일등 복귀입니다. 그래서 개인도 일등, 가정도 일등, 종족도 일등, 민족도 일등, 국가도 일등, 세계도 일등이라는 것입니다. 전부다 일등이면 서로 높고 낮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형제도 가정도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적인 기반을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 보물 단지인 보따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맛을 알고 나면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대하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요, 반대하는 아내, 친척, 선생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학교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자동적으로 내 마음에서 불덩이가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의 화산대를 만들어 가지고 생동하는 생명을 내뿜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면 거기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도 이 사랑에 불붙으시면 폭발적인 충동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가 이 지구성에 벌어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랑을 종교의 교리에 적용하게 하고 그런 관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를 자기의 생활무대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개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를 틀림없이 뜻 앞에 세우겠다는 설계도를 지니고 다니는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에 여기에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본향의 나라’를 연결해 주는 다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사는 것보다 본향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더 원할 것입니다. 나 자신도 통일교회 선생님이지만 여기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19-296
본향의 나라는 한정된 나라가 아니다
‘본향의 나라’, 그 나라는 어떠한 곳에 한정된 나라가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헤어져 있어도 사랑할 수 있고,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어디 가서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본향의 나라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제약이 많습니다. 사탄을 때려잡는 과정에 있어서는 짐이 커서는 안됩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갈 때에 솜 보따리를 자기 키보다 더 길게 해 가지고 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미련한 바보 천치입니다. 그럴 때에는 팬티 바람으로 솜 보따리를 뭉쳐 가지고 건너가야 합니다. (웃음) 남들이 보면 미친 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편히 갈 수 있는 비행기, 자동차를 다 두고 저게 무슨 짓이냐? 부모들은 집안 망신시킨다고 난리를 칠 것입니다. 남편들이 땅을 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럴 때 건너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책임자이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국경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얼마전 싱가포르에 갔을 때, 거기의 일류 호텔에 들어가니 그 호텔 주인부터 종업원들까지 귀한 손님이 왔다고 서비스가 대단했습니다. 그곳의 과일 중에서 제일 맛있고 흥미있는 것이 바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바나나’ 라고 하지만 거기에서는 ‘빨다 내버린 나’라고 합니다. (웃음) 종류도 많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온도에 따라서 각각 틀리는데 어떤 것은 껍질은 두꺼운데 알맹이는 아주 작은 것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바나나 얘기 들으니 한번 실컷 먹어 보았으면 할 것입니다. 나와 비슷한 이웃 사촌들인데…. 선생님도 그 심정 이해합니다.

워싱턴에 가서 아침 먹고 런던에 가서 점심 먹고 또 싱가포르에서 저녁을 먹고 한국에 돌아와서 잠을 잘 수 있는 세계가 된다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나는 좋은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웃음) 자 그럼 내가 좋고 여러분도 좋은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무리 천번 만번 물어 봐도 ‘좋지’ 라고 대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이 땅의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각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문화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본향의 나라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국경을 폐쇄해 놓고 살아온 민족들이 쌍수를 들어 본향의 나라를 환영하는 그 한 때를 중심삼고 국가에 힘을 작용시킬 수 있는 이런 세계가 와야 합니다.

어떠한 나라에 있어서 외국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고 해서 그 나라가 망할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에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와 있습니다. 구보끼씨 어디 있어요? 구보끼씨 ! 한국에 대한 느낌이 좋은지, 싫은지 어디 말해 봐요? 「좋습니다」 구보끼씨는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매일 서울 뒷골목만 찾아 다니며 보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귀한 것이 있는지 매일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지만 서울 뒷골목은 지저분합니다. 아무것도 구경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들이 자기 나라에 가서 악선전하겠습니까? 이들은 오히려 한국을 두둔하고, 한국을 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19-297
본향의 나라를 위주로 생활해야
선생님은 비록 욕을 먹고 살았지만 내 민족 앞에 나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있는 저 사람들은 선생님이 죽으라고 명령 한마디만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백병전이라면 일본 사람들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력으로는 통일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을 통일시키려면 사랑의 힘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사랑의 근본을 중심삼은 행복의 요건을 알고 위할 때는 만민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본향의 나라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위주로 할 것이냐,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위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생활을 해야 됩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해왔습니까?

여러분이 집에 가게 되면 통일교회 다닌다고 남편이 험악한 모습으로 대합니다. 기막힐 노릇입니다. 못된 짓 하러 다닌다고 난리칠 것입니다. 처음 본 얼굴도 아닌데 그렇게 좋던 영감이 악마의 얼굴로 변하여 폭군도 비교 못할 정도로 변해서 핍박하는데 그 영감더러 사랑해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할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더 흉한 얼굴이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내가 못할 것이 어디 있어 ?’ 하면서 통일교회 다닌다고 가정 파괴하고 나왔지요? 그래 선생님이 저 가정 파괴하라’고 설교 하고 다녔습니까? 자기들이 그랬지요.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선생님을 가정 파괴자라고 몰고 있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반대하는 어떠한 것들이 있다 할 때, 그것은 서로 상반된 두 개의 모습이기 때문에 별개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반대 요건 가운데서 상대적인 요건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느냐? 서로 반발하는 플러스와 플러스가 합하는 세상의 이치가 어디에 있느냐 ?

어떠한 것이 모순이 된다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두 개의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통일된 하나의 개념으로 규합할 것이냐? 서로 투쟁하여 한쪽이 손해보면서 합쳐진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변증법이 적용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19-299
이중목적적인 삶
태양계도 태양 혼자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적 입장에 있는 태양과 상대적 입장에 있는 행성들이 방대한 우주권내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법도권내에서는 손해가 나면서도 서로 합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여기가 손해나는 곳이라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이중의 이익을 보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을 파괴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정해지면 목적관은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 목적은 둘을 합한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합하는 것은 서로 모순 대립하여 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 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이념의 근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변증법만 뒤집어 놓으면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이나 경제이론등 마르크스의 모든 이론은 전부다 뒤집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몸의 목적과 마음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큰목적이요, 어느 것을 더 빨리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의 목적을 먼저 이루어야 됩니다.

개인의 작은 목적과 큰 목적이 있을 때 작은 것을 버리고 보다 큰 목적을 추구하면 여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발생하여 작은 목적에도 이익이 되고 보다 큰 목적 또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목적세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목적세계에서 목적세계로 바뀌는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파괴적인 투쟁의 역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은 언젠가는 뒤집어지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전체를 위한 목적과 자기 개체를 위한 목적, 즉 이중목적의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국가의 목적이 전세계 국가를 전부 정복하여 경제적으로 약탈하고 노예화시키려는, 즉 제국주의적인 것이라면 세계적인 운세권에서 그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세계의 강대국들이 이 이치를 저버리면 천신만고 수백년 동안에 이룩한 그들의 부강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이중목적의 세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본연의 천도를 세워 세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목적은 희생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우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나 개인이 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도 앞으로 역사과정에서 남아지려면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19-300
더 큰 것을 위해 희생해야
오늘날 미국은 민주세계에 있어서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20세기 이후에까지 계속 이어 나가려면 세계를 위해 국가를 희생하는, 즉 자기 나라의 주권을 넘어서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기울어지게 됩니다.

개인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가정이 망하는 운세에 있으면 그 가정의 운 앞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요, 가정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종족이 전부다 몰리고 쫓김을 받게 되면 그 가정의 운도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국가의 운이 흔들리면 종족의 운도 깨어져 나가는 것이요, 국가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세계의 운세가 몰아닥치면 국가의 운도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도 천지의 운이 세워지게 되면 다 천지의 운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 가정의 운도 지나가고, 종족, 민족의 운도 지나가는 그때에는 개인에서부터 민족까지 한꺼번에 복귀해 나가야 합니다. 개인을 찾아 가정을 찾고, 가정을 찾아 종족을 찾고, 종족을 찾아 민족을 찾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목적지에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민족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개인에게 세계관과 우주관이 없을 때는 막히게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 세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할 때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8단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화충대(和沖帶)를 짜 가지고 네가 아니면 내가 안 되고 내가 아니면 네가 안 된다는, 둘이 하나될 수 있는 경지에서 우주적인 승리의 왕자의 권한을 들고 나오지 앉는 한, 그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역사시대를 심판할 수 없습니다. 역사 시대를 심판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의 운은 가정의 운을 위하여, 가정의 운은 종족의 운을 위하여 희생당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은 가정 앞에 흡수되고 가정은 종족 앞에, 종족은 민족 앞에. 민족은 국가 앞에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 국가가 개별적으로 세계 앞에 서면 영원히 존속할 수 없지만 세계를 위한 국가와 민족이 되면 영원히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운이 끝나면 그들의 존재 가치는 없어집니다. 세계의 운이 끝나는 그 자리에서 천주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개인 복귀의 목적은 내 개인이 잘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갑시다’ 하고 외치고 다닙니다. 그러나 천당은 그렇게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은밀한 곳에서 세워집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민족의 내적 심정을 울릴 수 있고, 천주의 내정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애정을 가진 그 효자 효녀는 깊은 비운이 감도는 자리에서도 그 비운의 주인공이 된 왕이면 왕, 부모면 부모의 마음을 풀어 드리고 그 배후의 전부를 혼자 막아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충효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혼자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당은 커녕 지당도 못 갑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지금까지 욕먹고 핍박받아 온 것이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총칼을 가지고 복수해서는 안 됩니다.

19-301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희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지연되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 승리를 거두어 세계 무대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복귀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죄인 중의 가장 큰 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언제나 그런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광명한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 광명한 빛을 갖추어 본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지녀야 합니다. 봄빛이 찾아오면 그 봄빛을 백방으로 흡수할 수 있는 생명의 자주성, 생명의 흡수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봄철보다도 먼저 꽃을 피울 수 있는 봄철의 왕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운세가 왔으면 그 운세를 가지고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즉, 대한민국을 위한 아시아가 아니라 아시아를 위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의 국가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아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의 입장에 서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됩니다. 일본도 그래서 망했던 것입니다.

삼팔선 이북에서 한때 잘살던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한푼 두푼 모아서 자신의 아들딸과 자손만대에 영화를 누리기 위해 살았지만 나라가 어려운데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국운이 어지러우니 남하하여 피난생활을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유엔이 창설되어 세계를 위한 공동적인 목표를 중심삼고 큰 목적을 달성하고 행복한 세계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내심의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 하늘과 더불어 그 무엇인지 모르는 사정에 합할 수 있는 기반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선시켜 통일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한시대를 수습해나가는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민족 앞에 신앙생활을 제일 잘한다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냐? 교회의 마룻바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자기의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내 자신이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내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가정이 서게 되면 가정은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국가는 시계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란 표어를 내걸고 나라를 찾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전부다 복귀하자는 뜻에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나할것없이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자유의 천지, 자유의 천국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동산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 8단계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희생시키고라도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하고 전부다 깨어져 나갔던 사람들이 이것을 다시 부정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본연의 사랑으로 만들어 세우는 때가 와야 됩니다. 그때가 안 오면 이 세상은 천국을 찾아가는 노정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19-303
상대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이 창조의 원칙
앞으로는 통일사상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통일교회가 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일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몰리고 쫓김받는 자리에서도,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빌어먹는 자리에서도 남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들은 개인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가정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종족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국가의 운세를 따라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천륜의 운세와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선진국가의 일등국민이라도 천륜의 운세를 역행할 때에는 망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외국 사람들은 잘 울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보니 더 잘 우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시에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그날 온다는 소식만 듣고 비행장에 나와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지쳐 몸이 달았는지 선생님이 도착하여 비행장에 천천히 나타나니 나온 사람들 중에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지만, 같은 통일교인이 되고 보니 웃는 것도 모두 같고 우는 것도 모두 같았습니다. 웃을 때 이빨이 보이고, 울 때 눈물 흘리는 것도 여러분과 같았습니다. 여러분과 별 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웃는 것과 우는 것은 사촌지간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상응작용·상극작용이 있습니다. 상응작용이 되려면 서로 일치해야 됩니다.

이 세계에서는 상대를 위하는 것이 창조의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싫다고 하는 것은 악입니다. 이것을 이루어야 영존할 수 있는 기원이 생깁니다. 우주의 보상 원칙에 의한 존속의 기원이 생겨나기 때문에 온 우주 앞에 인간으로서 원리원칙에 합격되고 생활에 적용시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너도 나와 같이 되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곧 선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하고 상대를 결정해야만 영육이 합해지는 것입니다.

나무도 상대적 환경이 갖추어져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순의 투쟁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모두 상대를 위하는 세계를 찾는 과정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운세를 따라 가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의 운을 따라서 심정세계, 즉 창조이상세계를 말하고 있으니 기막힐 정도로 좋다고 할 것입니다. ‘좋다’ 라고 하는 그 말의 조상이 무엇입니까? 엄마가 있어서 ‘좋다’,엄마가 없어 ‘나쁘다’,애인이 있어서 ‘좋다’, 애인이 없어 ‘나쁘다’,아들이 있어서 ‘좋다’,딸이 있어서 ‘좋다’, 아들딸 중 하나만 있으면 ‘조금 섭섭하지만 좋다’. (웃음) 그 ‘좋다’는 것의 뿌리가 무엇이길래 보기 싫고 만지기 싫은 것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애기 엄마들이 애기가 똥을 싸서 냄새가 지독히 나는 것을 더러운 줄도 모르고 치웁니다. 여기에 무엇이 있어서 그러합니까? 지독한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잘못하면 죽을 사(死)자에 서방 랑(郞)자의 사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웃음)

19-305
행복한 가정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겠습니까? 사랑의 보금자리가 없어지게 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그 집에 울타리가 되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위로는 하늘을 대표한 부모를 모시고, 횡으로는 가정을 대표한 남남끼리 모여 사는 그 인연의 사랑을 부부로 묶어 이 부부들이 천륜의 법도를 받들며 그 계대를 이으면서 사는 가정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도 갈라져 나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느냐?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어 영원히 갈라지면 이것 이상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서 갈라지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자꾸자꾸 갈라지는 것이 불행입니다. 아버지가 먼 곳에 가시는데 어머니가 좋다고 춤추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좋아서 신이 나는 자식도 없습니다. 죽어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좋아할 수 있습니까? 장가가는 날, 시집가는 날이 나빠요, 좋아요? 갈라지는 일이 벌어지는데 좋습니까 ?

인생세계의 인연을 맺고자 하면 남자와 여자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가야 됩니다. 한 사람만 잘 한다고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남자 여자의 힘이 합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중앙으로 돌진해야 됩니다. 중앙을 향해 돌진하는 힘은 사랑의 힘입니다. 상대가 나타나게 되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하는 것 가운데에는 중심을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즉, 거기에는 평면적인 모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심과 연결된 힘이 없는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자동 파괴만을 일으킬 뿐입니다. 빨리 돌수록 위험천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만 결정되면, 빨리 돌면 돌수록 거기에는 천지의 조화가 벌어집니다. 지구가 얼마나 빨리 돕니까? 하루에 자그만치 한 바퀴를 거뜬히 돌아 버립니다. 여러분의 다리 갖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근원을 결정할 수 있는 그 기준을 세우고 돌면 돌수록 춘하추동의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자가 시집가면 갈라지고 남자가 장가가면 갈라지는데 그것은 결국 무엇하는 것이냐? 천지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넓고 넓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중심을 중심삼고 정착하는 것은 무엇이 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잘하면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가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한국의 민법은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하고 이족 결혼을 장려하는데, 이것은 통일을 사모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했습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그랬습니까?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에 귀결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주사적인 남자의 대표자와 여자의 대표자는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그 본연의 인연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천주상에 이루어 놓아야 그 세계로부터 행복의 터전이 벌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이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랑 신부 독자적인 구원관의 위치를 결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방적인 본성에 하나님도 끌어들이고, 인륜도 끌어들이고, 과거, 현재, 미래의 소망을 끌어들여, 여기에 부부의 이념을 중심 삼고 통일의 기준을 세우려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의 각도가 직선상에서 90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90도가 360도로 되게 되면 원만히 갖추어져 있는 평등,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19-307
천정을 위시한 믿음과 실천을 통해 인격을 세우자
통일교회는 왜 합동결혼식을 하느냐? 여기에 대한 얘기를 다하게 되면 할머니들은 뼈가 녹아날 것입니다. ‘내가 다시 회춘할 수 있으면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할 것인데……’ 남이 욕하든 말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쁠 때는 좋아하고 웃습니다. 그러나 너무 기쁠 때는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통일의 권내의 선두에서 모든 인류를 규합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 인류역사에 드러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만 이 천지간에 행복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소망의 개인과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이 종족을 이루어 종족으로부터 민족, 민족으로부터 국가, 국가로부터 세계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즉 이 지구를 뒤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 나라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의 운세를 따라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생님은 그냥 가만히 두고 봅니다. 그들보다 선생님이 못나지 않았고, 힘을 겨루어도 이길 수 있고, 이론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즉,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선생님은 현재의 교회 지도자들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길을 가는 아줌마에게 가는 곳을 미리 알고 ‘아줌마, 어디 가고 있지요? 하면 놀라면서 그렇다고 합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무엇이 있습니다.

20세기의 말기에 있어서 영계를 통하는 사람 중에서 꼽는 한 인물이 있다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입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면 사실인지 아닌지 간절히 기도해서 알아 보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도인과 수많은 영통인들도 전부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라고 하는 팻말을 목에다 걸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 아십니까, 우리 선생님이 어떤 분입니까? 하고 생년월일과 이름만 말해 보세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이런 것을 다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주름잡고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는 그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에서 큰소리치다 보니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나 망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정을 바라 가지고 지상에서 지정의의 법을 찾고, 천정을 위시한 믿음과 실천을 세워서 인격의 도리를 수습하자는 것이 통일원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쳐 주면 누구든지 그렇게 안 될 수 없습니다.

19-308
참된 농부는 봄이 되면 씨를 뿌릴 줄 알아야
그러면 이 엄청난 사실을 중심삼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본향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본향의 나라를 원할 것입니다. 인류가 원하는 본향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본향의 개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개인과 더불어 가정이 일치되어서 종족은 이래야 된다, 국가는 이래야 된다, 세계는 이래야 된다, 하늘땅은 이래야 된다, 하늘의 사랑의 법도는 이래야 된다는 논리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논리 위에서는 아무리 무식한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을 가지고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열매를 맺는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혁명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지구성을 갈라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많아질 때에 본향의 세계가 창건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세계에 가고 싶거든 여러분이 진정 자기를 돌보아 가지고 현재의 자기 자체와 자기 입장을 유지해서 새로운 수습 방법을 찾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미 내가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본향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할머니든지. 청년이든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천하만민이 원하는 소망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자유의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내 자체에 속한 것이 귀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봄철이 찾아오면 농부는 씨앗을 뿌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귀한 볍씨를 뿌려야 됩니다. 뿌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모르는 농부 입니다. 그리고 제철에 씨를 뿌릴 줄 모르는 사람은 농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데 있어 벅찬 소망을 갖고 미래의 열매에 대해 축복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신록의 계절인 여름을 맞아 현실의 모든 전통을 뛰어넘어 새 농토에 씨앗을 뿌릴 수 있게 수호해 주자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출발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서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싸워 나가는 통일의 정병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려운 상황하에서 출발을 했으니 부디 목적한 결과가 거룩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향하시고 인류가 소망하는 심정의 세계까지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한 본향의 땅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뜻 앞에 용진할 수 있는 정예부대가 되어 주기를 부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9-309
기 도
아버님! 한 많은 역사의 슬프고 서글픈 고빗길에서 불초한 모습들을 수습하여 천륜과 경륜으로 섭리하시고 의논하시던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을, 눈물없이는 대할 수 없는 과거지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옵니다. 어려운 고빗길에서 낙망할까봐 염려하시며 마음 졸이시는 아버지 앞에 감응할 길이 없사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낙심하지 말라고 분부 하시던 아버님의 그 음성 앞에서 출발했던 21년 노정 중 7년노정을 보내고, 1968년 3월 10일이란 거룩한 날을 맞이하였사옵나이다.

이날을 기하여 통일의 역군들이 천지의 운을 따라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저희들이 처한 자리가 너무나 비참하고, 너무나 비굴했던 자리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고 뉘우치게 하시옵소서. 이 우주가 절규하고 하늘이 분통해 하신 다는 것을 느끼면서 서로서로 교차되고 규합되고 서로 하나 되어, 통일의 본향땅을 흠모하시는 아버지의 소원을 해원해 드려야 할 것이 저희 부족한 육척 미만의 이 한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잃어버린 고향을 쌍수를 들어 부모 품에 돌려 드려야 할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주의 운세가 나를 불러 일깨워 주었지만 그것을 잃어버렸사옵고 많은 한의 날들을 보냈사옵니다. 저희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였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였고, 마음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였던 과거지사를 진정으로 뉘우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자녀들은 모두다 본향의 나라를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본향의 나라를 찾아가는 이 길이 이렇게 어려운 길일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아버님, 한 많은 탄식의 세계 위에서 이 원한의 터전을 밟고, 이것을 박차고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유도탄같이 날아갈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폭탄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의 폭발력과 추진력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이 길을 막고 반대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가야 할 발걸음이 바쁘고 바쁘기 때문에 쉴래야 쉴 수 없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통일의 자녀들인 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들의 앞길을 평탄케 해주시옵고, 가는 길 앞에 한 고비 한 고비의 싸움을 다짐하게 하시옵소서 올라갔다가 부디 전체가 떨어지지 않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숱한 역사과정에서 슬픔의 가슴을 억눌러 가면서 참아 나온 이들을 기억하시옵고, 이들의 얼굴에 수심과 낙망과 패자의 빛이 어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러한 과거를 지녔지만 소망에 넘치고 희열에 넘치어서 내일의 희망 가운데 벅찬 가슴을 안고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68년을 중심삼고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 밑에서 저희들의 생애와 실생활을 아버님께 다 바치고자 하오니, 아버님, 친히 허락하여 주시옵고 통찰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상세계에서 탈선되지 않는 입장에서 보고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에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일년의 생활의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생애노정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어서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허락하시려는 행복의 터전인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수 있는 건국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여 아버님을 모셔 놓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 위에 평화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녀들의 행복의 노정 위에 아버지의 가호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충성과 희생을 각오하고 나가는 데 있어서 아버님의 동정의 심정이 언제나 이들의 생활 가운데 넘쳐 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 세계 인류를 책임지겠다고 맹세한 이들의 마음을 거룩하다 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아버님께서 동반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