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2: 평양노정

평양노정
1968.02.08 (목), 한국 전본부교회

19-262
평양노정
[말씀 요지]

1960년에서 1963년까지는 외적으로 가정과 종족을 찾아 세우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124쌍까지 축복을 완료한 것이다. 그 이후는 선생님의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는 기간이었다.

1968년 2윌 8일을 기해 지난 40일간의 활동에 의해 선생님의 가정이 어떤 매듭을 짓고 나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선생님만이 아는 것이다.

이번 수련회에는 말씀에 대한 기준 향상과, 기구 개편을 위한 준비라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다.

식구들의 지적 수준의 저하를 볼 때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

6월 1일부터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아벨은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북은 이길 자신이 있을 때 남한을 치려 할 것이다. 한국은 축복가정을 중심하고 이것을 영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북에서 치려는 힘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려는 힘이 더 클 때, 이북은 칠 힘을 잃는다.

이제 중·소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미·중공이 가까워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이 곤경에 빠지게 된다.

철산의 새주파(김성도)와 허호빈의 복중교는 예수님의 뜻을 알았다. 그래서 복중교에서는 예수께서 33세 때까지 고난받은 것을 탕감하기 위하여, 재림주님이 오시면 매일 새옷을 세 번 갈아 입을 수 있는 많은 양의 옷을 준비했다. 그때가 일제 말기였다. 그들은 일본이 망할 그 시일, 시간까지 알았다.

이용도 목사가 여자(유명화)를 주(主)라고 한 후 이단으로 몰렸다. 이용도의 뜻을 김백문이 이었다.

선생님은 1945년 10월 김백문을 만났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백문씨보다 문선생을 따르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라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 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은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축복을 했는데,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다. 그리고 선생님께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봉 후 21개월만에…….

그뒤 선생님은 성진과 그의 어머니를 남겨 놓고 서울을 떠나 1946년 6월 6일 이북의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하는 인물을 찾았다.

이번에는 김백문이 축복한 터전 위에 하나님의 부인이라 하는 여인에게도 축복을 받아야 했다. 그 부인이 박○○ 할머니였다. 그 남편은 한씨 성을 가진 지방의 유력자였다. 선생님은 당시 박씨 할머니를 어머니 이상으로 모시는 입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10남매가 있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동생의 입장에 섰다.

이때 박씨 할머니는 선생님을 처음에는 종으로 증거하다가 그 다음에는 양자, 예수님의 동생으로 증거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즉 하나님의 실체이니 자기 남편이라고 증거했다.

이때부터 선생님은 주관성을 바로잡고 박씨 할머니에게 섬기라고 명령 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할머니에게 경배할 것을 명령했다. 이때 갑자기 위치가 바꿔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그 할머니는 40일간을 영 육 아우른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선생님을 하나님의 역적이라고까지 말하였다. 박씨 할머니가 선생님을 반대하므로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우게 되었다. 해와는 재창조할 수 있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함으로 인해 평양에서 1948년 2월 22일에 입감되어 옥중에서 2년 8개월간 있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사명을 못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옥중에는 라헬의 입장인 김OO씨가 같이 입옥(入獄)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만났다.

김○○는 라헬의 입장, 박씨 할머니는 레아의 입장이며, 또한 나○○ 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이 세 부인이 선생님을 협조해야 했다.

선생님이 옥중에서 출감한 후는 실체로 부활한 입장과 같으므로 원리를 그대로 발표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국가로부터 핍박을 당한 것같이 선생님도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다.

김OO는 선생님과 같이 옥에 들어갔었으나, 재림주가 옥에 갇힐 수 있는가 하는 시험에 걸려 떨어졌다. 선생님이 영안으로 볼 때, 그녀의 영인체가 ‘육신이 가니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하면서 눈물 흘리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딸, 누이, 어머니 이 3대의 심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할머니로부터 20대 연령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다 복귀해야 한다.

옥세현 할머니는 이북에서 연결짓는 사명을 했다. 원래는 옥세현 할머니 가정이 중심이 되어야 했으나, 남편의 반대로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득삼씨가 그 사명을 이어 받았다.

선생님은 3시대의 여성을 복귀하는 기준을 세워야 되므로, 심정의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야 했다. 외적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박씨 할머니는 영계의 역사를 실체로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전부 재림하여 역사했다. 천사장의 실체 역사와 같은 역사도 하였다.

원산의 백남주씨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씨(정장로 모친)를 맨발로 걸어가서 만났고, 김성도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을 해주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 사명자였다. 그 뒤로 그 뜻이 이용도, 김백문에게로 옮겨졌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이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장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을 다 찢어버린 날이었다. 이것을 찢은 후, 선생님은 책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다. 이 날이 없이는 평양에 갈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