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4 to 19-167: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
1968.01.01 (월), 한국 전본부교회

19-124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
[기 도]

아버님, 기나긴 역사노정 위에 소망의 한때를 세우시어서 전체의 탕감복귀를 권고하시고 요구하시던 아버지의 섭리의 뜻이 이 한국 강토와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외로운 모습들을 불러 모으시사 21년 역로의 길로 몰아 넣으셨던 아버지이셨사옵고, 7년노정을 중심삼고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준비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사명과 아버지의 역할을 완수하시기 위해 지금까지 숱한 곡절과 숱한 사연을 남기신 것을 아옵니다.

1967년을 보내면서, 아버지의 수고를 다시 한번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면서, 아버지, 이 시간 21년노정과 7년노정을, 지나간 과거시절을 다시 회상하면서 1968년, 제2차 7년노정의 첫해를 맞이하게 되었나이다.

새로운 섭리의 뜻이……. 아버지여, 저희들을 향하여 역사적인 고빗길을 더듬어 오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이제 저희들이 힘찬 모습을 하여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제 새로운 7년노정에서 민족적인 운명의 판가리를 지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세계적인 사명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요구가 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불초한 모습들이 아버지 앞에 사명을 완수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슬픔만이 앞섭니다. 동시에 아버지 앞에 다시 수고의 길을 가 주시기를 바라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나 이미 떠난 걸음이기에, 원수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에, 승리의 기치를 드높이 들어 아버지의 영광의 길 위에 찬양을 드리는 승리의 아들 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은 금년을 맞이하여 또 다시 마음으로 새로운 결심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앞에 참다이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하며 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대신하여 저희들이 충성을 다하지 못하여 후회되는 것이 있사올진대, 다시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을 부여안고. 삼천리 반도 위에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하늘의 용자의 모습을 갖추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 그 가운데 심판장이 되시는데, 얼마나 오른팔을 들어 우리가 승리했다고 선포하시고 싶어하시고, 우리가 찬양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얼마나 마음으로 고대하시고 계신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새벽, 이제 새로 오는 1968년의 새 아침이 시작되었사오니, 이날부터 아버님의 소원이 풀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해원성사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이 해가 되고, 7년노정이 새로이 출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이 쌍수 합장하여 이곳을 향해 아버지를 부르고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소원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그들의 염원이 당신의 염원과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또다시 당신으로 하여금 뜻하신 바의 결정적인 판결을 내리게 해드릴 수 있는 이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얼마나 면목없는 지희들의 모습이었사옵나이까? 하오나 아버지의 수고의 행로 앞에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수고시키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게 해주시고, 모든 것을 희생시켜 달음질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 이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 ……. 이 시간 멀리서 이곳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는 무리도 있사옵니다.

외로운 역사의 길을 더듬어 오면서, 남이 모르는 핍박의 도상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늘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오던 당신의 아들딸에게 새해를 맞이하고 한해를 보내는 이 자리이오니,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어떤 민족이든, 아버지, 직접 주관해 주시어서 하늘의 승리의 권한을 나타내 주시옵고, 살아 계신 아버지의 존엄한 위신을 나타내시옵소서. 아버지의 아들딸 된 증거로 그들을 직접 도우시어서 이제부터 이 7년 동안에 당신의 승리의 판도가 온 세계적으로 널리 확대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의 승리의 인연이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모든 환경과 그들과 인연된 전민족들 위에 친히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옛날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시절부터 잃어버린 하늘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명상을 하였사오며, 얼마나 정성을 드렸사오며, 얼마나 기도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소망의 한때를 저희들이 맞이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억천만 성도들이 고대하던 사명의 터전이 오늘날 저희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분담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최고의 보람있는 자아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해주시고, 이제 금후에 저희의 사명분야에 있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새벽에 아버지,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을 해원성사시켜 주시옵고,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뭇선지선열들이 이 땅 위의 후손들에게 직접적으로 역사할 수 있는 선조의 인연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삼천만 민족을 복귀하고 전체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서 세계를 복귀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민족 가운데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가운데 아직까지 뜻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들 앞에 광명의 횃불을 들어 가지고 새로운 시대의 사명자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 날 이 시간부터 아버지, 허락하신 새로운 약속의 세계를 향하여 제 2차의 새로운 각오로 이 길을 출발하고자 하오니 아버지, 힘껏 사랑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은혜의 손길로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결정을 볼 수 있는 이번 제2차 노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 전체를 맡기었사오니, 새해에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통일의 족속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세우신 당신의 축복가정에서 태어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 앞에 이 후대에 생명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해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의 일을 처리하시옵고, 하늘과 땅을 결속시킬 수 있는 모습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 모아 기도하는 전체 식구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삼천만이 거국적으로 아버지 뜻 앞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날부터 이제 1968년을 시작하오니 이 노정에서, 아버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슬픔 많았던 과거의 역사를 씻어 버리고 기쁨의 해로서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무리들이 새로운 힘을 받고, 생명의 인연을 두터이 느끼면서 아버지의 아들딸 된 것을 감사히 여길 줄 아는 승리의 1968년이 되게 허락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 새벽, 아버지, 허락하신 약속과 더불어 저희들이 새로운 결의를 하고, 다짐하였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겨 주신 승리의 터전을 향하여 저희들은 소망을 갖고 달려가기를 약속하오니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새해 벽두에 참부모의 성호를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19-128
말 씀
제 1차 7년노정이 끝나면 제2차 7년노정을 다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누차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까지 고대해 오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피어린 투쟁을 해 온 제 1차7년노정과는 달리 시대적인 차이에 의해, 사명적인 분담에 있어서 현격하게 다른 양상을 띠는 제 2차 7년노정을 출발하는 때입니다.

19-128
제1차 7년노정에 대한 회한(悔恨)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이미 뜻을 안 사람들입니다. 뜻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고 투쟁의 노정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이 해에도 하나님의 피와 살의 인연을 가져서 이 시대적인 사명을 책임지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자체들인 것을 더욱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과거지사를 거울삼아 뜻 앞에 있어서 새롭게 결의를 하는 마음이 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이 7년노정에 6천년 죄악의 역사를 종결지으시려던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2천년 전 예수님 이후 기독교가 피어린 순교의 제단을 쌓으며 남아진 섭리의 인연을 종결짓기에 수고해 나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물론이거니와 자고로 뜻을 위해 이 땅에 왔다가 한 때의 한을 남긴 채 사탄세계를 마음으로만 디디고 뜻을 세워 맹세하면서 희생의 자리, 혹은 죽음의 자리로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 7년 대환난을 최후의 결정적인 시기로 소망해 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의 요구는 한 시대와 한 기점에 집중되어 사탄과 하나님과의 판가리 싸움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러면 이 싸움을 종결시킬 사명을 책임지고 나와야 할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이 땅 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삼천만 민족 전부도 아닙니다. 그들이 누구라는 것은 세계 인류도 모르고 있고 이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민족 가운데에서 몰리고 쫓김을 받던 통일의 무리가 이런 중차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에 지금까지 우리와 더불어 험로를 개척하시고 동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우리만이 지닌 특권이요,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이것을 느낄 수 있는 보람 있는 기간이 7년노정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7년노정이었기에 선생님은 여러분 각자 각자가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충효의 도리를 세울 때, 영광된 승리의 자리, 혹은 호화스러운 자리에서 충효의 도리를 세우자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피와 눈물과 죽음이 교차되는 자리, 어느누구도 원치 않는 최후의 고빗길에서 7년노정을 가자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눈물이 나오면 더 처참한 눈물을 흘리겠다고 각오하고, 죽음길에 처하게 되면 어느누구도 품지 못했던 역사적인 한을 품자고 각오하면서 7년을 더듬어 나온 것입니다. 그 길을 회고해 보니 눈물어린 사연이 많았습니다.

남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길을 우리는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한 서러움보다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며 안팎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서러움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지난날 책임 다하지 못한 우리의 입장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가를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서럽게 했던 사실로 말미암아 이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인도되어 간 것도 아니요, 또한 이 세계가 하늘권내로 들어가게 된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가다듬고 이 민족과 세계 인류 앞에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다시 하나님을 모셔들여 수고의 길을 재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억울하고 분한 사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수고의 길도 지루한 길이었지만 오늘날 이 7년노정의 뒤넘이치는 탕감의 고빗길에서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수고로움이 더 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우기 제 1차 7년노정으로써 섭리를 종결짓지 못하고 민족적인 한을 지닌 채 다시 제 2차 7년노정을 걷게 된 사실을 우리들은 엄숙한 심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새해에는 자기가 하지 못한 책임을 다시 한번 정비하고 새롭게 시작되는 제 2차 7년노정에서는 아버지 앞에 보람 있는 제물을 바치겠다고 심중에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19-130
제1차 7년노정의 의의(意義)
지난 제 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21년노정의 종국을 마련하기 위해서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지난 7년노정에서 여러분들은 개인으로 참가했었지만, 세계사적인 의의로 본다면 이는 역사적인 수많은 인간들을 대표해서 참석했던 것입니다. 그 기간내에서 여러분들이 들인 정성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천추만대에 땅의 인연으로 남아질 것이며, 천상에 가서는 수많은 선한 영들이 찬사를 바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기간은 지구상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몇 분 전에 지나간 1967년으로 마감을 지었다는 사실을 생각 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뜻을 위하여 참다운 심정으로 온갖 지성을 다해야만 합니다.

역사가 지니고 있는 한을 알게 되면 통분할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지나간 시대의 사연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역사의 한을 풀기 위해 삼천리 반도에서 통일의 기치를 들고 나온 우리들은 지금까지 핍박과 비난의 화살을 받으며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몰리고 쫓김을 받더라도 자신을 내적으로 성장시킴과 동시에 외적으로 정비하는 데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대한의 삼천리 반도 그 어디에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 어떠한 총칼로도 막을 수 없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다는 결심이 천적인 기준에서 볼 때 이런 엄청난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아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지난날의 힘들었던 그 길도 보람을 가지고 감당했지만 이제는 남아 있는 내적인 분야를 위해서 민족 전체를 걸어 놓고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을 정비하여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해야 하는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이요, 여러분들이 이 사명을 완수하도록 시키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선생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금년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길을 가야 되겠느냐? 이것이 새해 벽두부터 전국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에게 권고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인 것입니다. 금년에는 평화를 선도하는 전면적인 공세를 취하자, 즉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제 1차 7년노정에 있어서 1차년도의 표어는 ‘생애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자’ 였습니다. 2차년도에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였고, 3차년도는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였으며 그 다음의 4차년도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였습니다.

이러한 표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그 내용이 어떤 내용입니까?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인간은 사탄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탕감의 인연을 갖추어 사탄세계 앞에 분별되는 입장에 서서 역사적인 모든 죄악을 탕감복귀하여 승리 하자는 것, 즉 개인복귀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소망입니다. 개인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녀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모습을 이 땅 위에 실천하여 실체적으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에서부터 국가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승리적인 주관권을 갖추어서 승리적인 주관자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7년간의 목적이었습니다.

19-132
전면적 진격을 위한 준비
금년은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활동해야 되겠습니다. 이때에 문제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 전체 식구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활동하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활동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내적 정비를 공고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활동할 때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목표를 스스로 달성할 수 있도록 내적인 모든 사연을 정비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전면적인 진격을 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전반적인 분야에 내적인 정비를 빨리 서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내적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앙을 중심삼고 볼 때 말씀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실체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하며, 심정을 중심삼고도 뭇사람의 생명을 책임져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번식을 일으킬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뜻을 중심삼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내적 정비를 해야 합니다. 완전히 갖추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리 말씀을 공부해야 됩니다. 물론 지난 7년노정에 있어서 정상적인 길을 밟아온 통일교회 식구라면 원리시험에 합격했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무조건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말씀을 통하여 주체성을 갖춘 실체, 즉 말씀의 주체가 되어 창조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원리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심정적 기준이나 인격적 기준을 찾지 못하고 말씀으로만 일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면 그 말씀을 자기의 말씀으로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리를 말하되 그 원리가 어떠한 스승이 가르쳐 준 원리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뼈와 살을 통하여 생명의 인연을 갖춘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 본연의 주체성을 갖고 말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그 말씀으로 인연되어진 사람들이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중심삼은 실체적인 인격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탄과 대결하여 승리해야 됩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실체적인 인격을 갖춘 후에 남은 문제는 무엇이냐?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을 어디에서 굴복시킬 것인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나 자기가 활동하는 직장에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최고의 사망이 깃드는 자리에서 사탄과 판가리 싸움을 하여 굴복시켜야만 됩니다. 그것도 개인에게 참소하는 사탄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참소하는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개인적인 입장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남긴 한을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국가적 기준에 있는 사탄과 대결하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적 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를 대신하는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고의 국가적인 시련도상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나오면서 국가적으로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교계에서는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까지 핍박을 받지 않고는 국가적으로 승리한 인격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에 많은 시련이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진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하는 데에는 진리와 일체화되어 말씀을 해야 됩니다. 말씀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탄도 ‘옳소이다’ 하고 공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실증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134
내적 정비를 하라
그러면 실증적인 조건을 지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침범은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는 데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켜 심판할 수 있는 제일의 기준은 하나님의 심정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정을 다시 유발시키는 데에서 승리의 터전이 마련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는 말씀 심판, 인격 심판, 심정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과 인격과 심정이 심판의 기준인데, 그 기준이 어느 단계여야 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 단계의 기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말씀을 다시 찾았다는 자리에서 승리의 기치를 가지고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씀과 실체를 이루었다고 하는 자리에도 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았다고 하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단계보다 더 차원 높은 단계에서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완성시대의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완성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왔습니다. 완성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사탄이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던 그 기준을 청산할 수 없기에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 인류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그런 자리에 나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가 나가자는 것입니다.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말씀은 특권적인 말씀입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을 통한 실천은 특권적인 실천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맺어진 심정의 인연은 역사상에 없었던, 천지를 연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심정기준보다 높은 심정에서 새로운 세계가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이 목표하고 나가는 기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각자는 내적 정비를 완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완결된 결과의 자리에 서게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래는 이러한 자리에 입각해서 오늘부터 총진군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적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는 아무리 진군한다 하더라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으며, 또 패자의 서러움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쉬지 않고 활동하려면 이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내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9-135
목표 의식을 확립하라
그 다음에는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적 정비가 아무리 완결되었다 하더라도 목표 없이 갈팡질팡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뚜렷한 목표를 세워 그 목표가 지향하는 길이 어떻고 또 목표가 이루어지면 그것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1968년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면적인 전진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중심삼고 진격해야 합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목표는 교계가 될지도 모릅니다. 통일교회는 일반 기성교회를 통해서 넘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독교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대한민국, 배달민족 전체를 하나님 앞에 복귀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우리에게 짊어지워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먹고 자고 활동한다는 목표의식이 철두철미하게 확립되어 있어야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목표의식을 철두철미하게 가지고 정성들이며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기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노력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내적 정비를 더욱 공고히 한 후에 정성들이며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넘어 갈보리 산상을 향해 가시던 행로를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 :39)”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과 같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이 여러분의 내심 앞에 확립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예수님의 심정을 부여안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 나라와 유대교단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사랑하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 가정을 잊을 수 없었고, 자기를 따르던 수많은 군중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생각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목표를 수행하면 제아무리 원수들이 핍박을 하고 제아무리 어려운 길에 부딪치더라도 여러분들은 그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부터는 우리들이 가야 할 분야가 달라졌습니다. 국가적인 사명도 감당해야 되고, 종족적인 사명도 감당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을 복귀시키는 일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산치하의 북한이 남침의 기회를 엿보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팎으로 모든 정세에 입각해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섭리와 결부시켜 이것을 탕감시켜 놓고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세부적인 문제는 차후에 따로 지시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복귀시키느냐 하는 목표를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유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응시하면서 원수들이 출몰하는 근거지를 기필코 파헤쳐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하는 작전과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 가며 맞고 빼앗아 오고 밟히면서 빼앗는 것이 우리의 작전과 방법입니다. 그 작전 결과 우리는 패자의 서러운 자리를 모면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것을 실천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 체험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작전을 쉬지 말고 전개해야 합니다. 시간을 다투어 가며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 분야가 얼마나 많은지 몸이 백만 천만이 있어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투철한 목적의식을 갖고 총진군할 것을 여러분들이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가실 때에 지녔던 그 간곡한 심정을 반드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밟고 넘어가기를 결의하던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목표의식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19-137
패자의 서러움을 미리 느껴라
만일 우리가 실패하는 날에는, 즉 목적 달성을 하지 못하는 날에는 패자의 서러움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부를 수행한다는 목적을 향해 가다가 중도에서 깨져 패자가 되어 서러움을 당하는 것보다는 미리 패자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리 패자의 서러움을 느껴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3년 공생애노정의 마지막 순간에 겟세마네 동산, 최후의 한의 기도를 드리는 자리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느끼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패한 후의 결과적인 입장에서 느끼지 말고 그 자리에 가기 전에 미리 느껴 보자는 것입니다.

패했을 때의 그 서러움이 어떻겠습니까? 패자의 입장을 예측해 봅시다. 우선 패하여 서러운 자리에 서게 되면 원수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이때의 원수는 이 시대에만 있는 원수가 아니라 역사를 유린해 온 하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요, 예수와 성신의 원수입니다.

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 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칼을 뽑고 일어난 무리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왕 칼을 뽑은 바에는 원수들을 전멸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승자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임에도 불구하고 패자의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 시간에 느껴야 합니다. 승자의 영광에 도취하는 자리를 떠나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원수요 천지의 원수를 격퇴시키기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식구들은 식구들 간에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간격을 두고 그를 비판하고 심판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아직 승리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영광의 자리, 승리의 자리에 가기까지는 아직 고난의 고개를 더 넘어야 됩니다.

만일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해와가 타락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더라면 타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과가 이토록 참혹하고 비참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 2차 7년노정의 벽두인 1968년의 연초에 서 있는 우리들도 패자의 서러움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목표의식을 확립하고 승리의 목적을 공고히 해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패자의 서러움을 상상해 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리란 것을 알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6천년의 한에 사무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으며 또 그들의 후손이 이렇듯 수천년을 걸어 놓고 조상을 원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예측한다면 천만 번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타락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서 승리의 어떤 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기뻐할 것만이 아니라,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쓰라린 역경 중에 있어서도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자극제로서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고생하여 세운 가정이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무너졌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지 않은 작은 실수 하나가 예수를 십자가에 내놓아 팔게 된 동기가 되고,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동기가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

이렇듯 역사상의 과거와 현재를 걸어 놓고 저울추와 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상상하여 그런 비참한 자리에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하여서 오늘 하루도 승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동지들의 대열에 보조를 맞추어야합니다.

19-139
비참한 과정 끝에 오는 성공
목적의식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되면 그 자리에서 무한한 기쁨과 통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승리의 꿈을 꾸고는 있지만 그것이 쉽게 사회에 나타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쉽게 지치고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패자의 서러움을 체험하는 입장에서 승리의 결판장을 바라보는 하늘의 용사가 되기를 다짐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출발할 때 그런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섭리 앞에 있어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최후의 담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교회의 간판 밑에서 쓰러질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천지의 그 무엇보다도 비참한 것입니다. 그 자리는 육천년의 슬픔이 한순간에 재폭발할 수 있는 자리요, 예수와 성신, 그리고 이후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흘린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또한 역사의 고빗길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한 미덕과 선의 목적을 지향해 나오는 가운데 있어서 거둔 실적 전부가 파탄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가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한 자리이겠습니까?

영광된 자리에 있을 자신보다도 이 비참한 자리에 있을 자신이 몇 천만배 더 두렵고, 지긋지긋하고 떨린다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은 어떠한 치열한 투쟁과 어떤 원수의 화살이 닥친다 할 때 그것을 절대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기준을 가지고 그 비참한 심정 이상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어려운 환경을 개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손발이 천개 만개가 있더라도 부족할 형편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전체를 안고 나아가 승리의 결과를 다짐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상심할 것이 아니라 패배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그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오늘, 신년 벽두에 여러분은 승리에 대한 찬란한 희망에 잠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이 시간에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전체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거기에 따르는 수고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가령 인공위성을 발사한다 해도 그것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겠습니까? 그때에는 영광도 그 무엇도 없습니다. 성공의 한 때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힘들고 비참한 과정을 극복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고비를 넘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목적이 성사되면 그 기쁨은 천하에서 달리 맛볼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인도 그런 고비를 넘어 맡겨진 사명을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19-141
반대받으면서도 많은 일을 해 온 우리
이제 1968년부터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것을 전부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한 사명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명도 해야 됩니다. 오늘의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에 선생님은 자유당의 핍박을 받으면서 일본과 미국에 선교사를 내보내야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정부가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핍박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보내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일본에 보내는 선교사를 밀선에 태워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법에 위반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기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선교사를 보낼 때는 자유당을 이용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오늘날 이와 같은 승리의 터전은 절대 마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1963년도 말기에도 문교부와 싸웠습니다. 그때 정부에 종교 단체 등록을 신청했었는데 통일교회의 등록허가 신청을 문교부에서 각하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불과 일주일만에 뒤집어엎었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알아요? 그때 이미 일본에서는 종교법인 인가를 받아냈고, 미국에서도 이미 등록을 마쳤고, 독일에서도 이미 등록을 한 뒤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문교부에 알려진 것입니다. 또 그때 우리는 그야말로 이민족을 대신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지방에서 계몽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실적 앞에는 큰소리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승공활동이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비웃음을 받았습니까? 반공연맹이 있는데 통일교회가 무슨 승공활동이냐고 비웃었습니다. 세계의 절반을 삼킨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벌거숭이 몸을 해 가지고 무얼 하겠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어리석긴 누가 어리석은가 두고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만 2년도 안 되어 경찰국장이 우리를 찾아오고, 도지사가 공문을 보내어 우리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금후에 있어서도 선생님은 작전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곳에 보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사람은 어느누구나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고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욕망과 욕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과 사명을 누구나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19-142
승리의 비결
그러면 책임을 지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생명과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겠다는 엄청난 해결점이 생기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 공장에서도 일을 그냥 맡겨 두었더니 본래 생산고의 3분의 1밖에 생산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상적으로 단결하기를 호소하고 내 몰았더니 일주일도 안 되어 3배로 생산이 증가되었습니다. 이렇듯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자기들이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입장에 봉착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큰일난 듯 일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기가 무엇을 하든 패자의 서러움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민족적이면 민족적으로 책임지어 줄 수 있는, 자기를 증거해 줄 수 있는 동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판도를 걸어 놓은 싸움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일수록 그에게는 자기를 증거해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동맹국을 필요로 하는 것도 패자의 서러움이 어떻다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출발 당시부터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기에 에덴에서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가 그런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또 다시 그런 실수를 범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패자의 서러움이 평상시에 우리에게 겨냥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 다 정복하고 나서 승리의 길로 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작전인 동시에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계획했던 모든 것이 실패하게 되어 패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큰 소망을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가 가는 길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전진에 비례해서 승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각오 밑에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필코 승리하게 됩니다. 진격을 위해서는 죽든지 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기필코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이 한번 이기면 나는 두번 이기고 남이 한 시간 자면 나는 반시간 자고, 남이 한끼 먹으면 나는 반끼 먹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자본을 많이 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치 입학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같이 시간 싸움, 정신 싸움, 노력 싸움이 중요한 것입니다. 낙방한 사람들은 남보다 잠을 더 잤거나, 더 먹었거나 아뭏든 남보다 한 가지라도 더 편하게 지낸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은 요즘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일어나 공장으로 갑니다. 공장에 가는 데에도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먼저 갑니다.

19-143
최대한 인내하고 나서 기도하라
이제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여러분들을 그냥 편안하게 놓아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후려갈겨서라도 내몰 생각입니다. 선생님에게는 나이 많은 사람이고, 양반이고, 고관이고, 상관없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쉴 시간이 없습니다. 뛸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뭐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가 여러분들을 승리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전도 나가라는 명령을 하게 되면 하루 아침에 모두 시내(市內)로 나가게 되는데 그거 왜 갑니까? 목적이 있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승리로 나타나지 않을 때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만사에 한번 손을 대면 반드시 선한 결과나 악한 결과, 이 둘 중의 하나로 결정됩니다.

이제 1968년을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표어는 ‘전면적인 전진’ 흑은 ‘전면적인 진격의 해’입니다. 진격이라는 말은 실감이 나는 단어입니다. 전쟁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말입니다. 진격하는 데에는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 둘 중에 하나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의 결과를 놓고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겠어요? 승리해야 되겠습니까, 패배해야 되겠습니까?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승리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렇지만 세상에는 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결과는 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을 세워서 총진격해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3천만 민족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합니다. 3천만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밟아서라도 깨울 수 있는 끈질긴 인내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한꺼번에 다 데리고 갈 수 없으니 잠자는 시간에라도 끌고 가자는 것입니다. 내 힘이 부족하니 ‘하나님이여 도와 주소서, 영계여 도와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개인의 목적을 위한다거나 자신의 아들딸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들딸이 망나니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 자기를 위하거나 자기 가정 이나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정성으로 민족과 세계 만민을 위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내용을 다 알고 있기에 그런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19-145
천운을 탈 수 있는 자리
그러면 적은 수로써 수많은 적을 대하여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비상 작전을 써야 합니다 기습 작전을 하든가 유도 작전을 하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측면 작전을 하려면 힘이 세어야 됩니다. 그런데 내 힘이 부족하니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될 때 그 기도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고난중에 전화위복을 얻는 길입니다.

맞고난 후에 승리한 자는 승리한 후에 때릴 자가 없습니다. 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맞지 않고 승리한 자는 승리한 후에 또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좋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먼저 승리만을 요구하지 맞고 난 후에 승리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귀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맞은 다음에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쓰십니다.

힘의 비중에 있어서 그들과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어디서 보충할 것이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통일교회는 천운을 타고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의 국운이 제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의 운세가 몰아치면 그 앞에 깔리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운세가 제아무리 힘이 크다 하더라도 천운이 몰아치게 되면 세계의 운세 역시 밀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세를 대신하고 승리를 위해 천운을 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천운을 타려면 먼저 천운이 가는 길이 어떠한 곳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곳은 만민이 좋아하는 곳, 즐기고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전부가 싫어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일이든 항상 감사하고 책임을 수행하면서 영광을 하나님 앞에 돌리고 자기 스스로 감사할 수 있는 자리이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사람이 천운을 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꼭 승리해야 합니다.

19-146
원수를 알고 진격해야
제 1차 7년노정 첫해의 표어는 생애 중 최고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생애 중 최고의 실적을 만들자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무엇보다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7년노정의 이 표어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언제나 영속적인 표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년에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전체 요원이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활동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들의 내적 정비가 필요하고, 목적 의식이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패자의 결과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승리를 다짐할 줄 아는 것이 활동하는 데 있어서 절대 요건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요건 중 첫째는 활동이요, 그 다음에는 적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활동하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반대하는 무리가 생겨나는데, 그 반대하는 무리의 실체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활동하는 데는 두 종류의 적이 있습니다.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이 있습니다. 이 두 적은 항상 우리를 향하여 공동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루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을 알고, 보이는 적을 가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면적인 진격을 한다고 해도 적을 알지 못하면 습격당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날뛰다가는 들이맞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원리 말씀을 듣고 말씀이 어떻다고 하면서 은혜를 보따리째 풀어 놓고 함부로 얘기하는데 그러다가는 오히려 걸려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걸려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까지도 걸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그 사람도 죽고 선생님도 죽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적이 무엇이고 원수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저 철부지처럼 날뛰어서는 안 되겠어요.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19-147
어떤 진격작전을 택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
진격 작전에서는 수비를 하느냐 공격을 하느냐의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환경에 따라서 원수를 가려 작전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즉 저 사람은 저러니 이렇게 수비해야 되겠다든가, 혹은 이 사람은 이러니 그렇게 공격을 해야겠다든가 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먹혀 올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정없이 직사포를 쏘는 것입니다. 일단 공세를 취하면 한치도 용서가 없어야 합니다.

원수 중에는 지구(地區)면 지구에 대한 원수가 있는 것이요, 지역(地域)이면 지역의 원수, 교회(敎會)면 교회의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인이면 교인의 원수가 있고, 몸뚱이면 몸뚱이의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터에 나가는 여러분은 원수를 가려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패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원수를 가려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통일교회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와 대적할 때는 간접 작전으로 할 것인가, 직접 작전으로 할 것인가, 또는 포위 작전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우회 작전으로 할 것인가 하는 이 문제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문제는 원수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라면 어떤 원수이냐? 그 원수는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녹여 먹던 원수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 원수의 지혜가 얼마나 능수능란하냐면,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6천년 동안이나 못살게 한 그런 원수입니다. 그러면 그 원수가 누구냐? 사탄입니다. 사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사탄의 종족은 30억 인류의 떨거지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탄에게 진격 작전을 어떻게 펼 것인가? 이것은 선생님이 먼저 시작할 것이니 여러분들도 따라 나와 어떻게 해서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인 것입니다.

19-148
삼위기대를 편성해서 합동으로 전진하라
여러분은 현재 처해 있는 자리에서 원수를 가려내야 하고, 다음에는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낮인지 밤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사가 같이하는 자리인가 은사가 떠난 자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격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협조하는 무대를 갖추어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공격하지 말고 지원병을 모집하여 함께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환경이 낮인지 밤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능력으로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탱할 수 없기에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삼위기대의 법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고로 삼위기대를 갖추어 가지고 합동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혼자서 전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전진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합동작전을 하면서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기대를 편성해서 전진하는 작전으로 전면적인 진격활동을 전개하려는 것이 금년에 있어서의 선생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일할 분야는 상당히 많습니다. 초교파 운동으로부터 반공 강의, 원리연구회 활동, 그리고 경제사업과 문화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개별적인 지시는 차후에 따로 시달하겠지만 이것들을 중심삼고 전면적인 진격활동을 전개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1968년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제2차 7년노정의 첫해를 빛내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자세한 활동지침은 따로 지시할 것이지만 전면적인 진격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1968년을 승리의 해로서, 제 2차 7년노정의 첫해를 빛나는 해로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활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내적 정비, 둘째로 목표 의식 확립, 세째로 패자의 결과를 체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생각지도 않으면서 일만 하면 전부다 성공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쉽사리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해 놓고서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원수를 가려내서 싸워야 합니다. 사탄이 어느 때에 공격해 올지 모르니 밤이나 낮이나 원수를 가려내는 데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원수를 향하여 진격하는 데 있어서 자기 혼자 독단으로 진격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여러분의 환경을 잘 살핀 후에 동지와 협력하여 진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리라고 봅니다.

19-149
7년 대환난과 같은 제1차 7년노정
그러면 이제 제 1차 7년노정과 금년에 출발하게 되는 제 2차 7년노정의 성격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년 1967년은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21년노정이 종결되는 해이자 여러분에게는 제 1차 7년노정이 끝나는 해였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제 1차 7년노정과 제 2차 7年 노정의 성격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때에 관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7년노정은 역사적인 탕감을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세 때부터 40고개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넘어야 했습니다. 성경상에는 3년공생애노정을 걸었다고 되어 있지만 원래 가정적으로 시작한 것은 27세부터 입니다. 27세부터 33세까지의 7년 동안이 제 1차 7년노정이요, 34세부터 40세까지가 제2차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제2차 7년노정은 야곱이 하란에 가서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21년노정이 예수님이 가셔야 했던 노정이었습니다. 그 노정이 통일교회에서는 제 3차 7년노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을 성경상에서 보면 7년대환난과 같은 시기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7년대환난을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끝날에는 믿음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으니 그것은 천지개벽이 되어서 다 잡아 죽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기독교인이 세계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7년대환난을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핍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핍박은 공산당들이 하는 핍박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럼 7년대환난이란 무엇이냐? 오시는 그분이 받는 환난입니다. 타락한 죄를 지은 자식들이 받는 것이 무슨 대환난입니까? 대(大)자가 붙어 있는 환난은 주인공 되시는 그분이 핍박받고 고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섭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땅 위에 오셔서 고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7년노정 기간에 7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됩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6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엉클어진 모든 사연을 휘감아서 일시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원리를 배웠을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는 내용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탕감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힘든 것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탕감복귀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큰 탕감은 하기가 지긋지긋하지만 작은 탕감은 살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4천년 만에 보내셨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오랜 역사를 거쳐서 오신 분입니다. 태어나기야 어머니 뱃속을 통해서 10개월 만에 태어나겠지만, 땅 위에 오시기 위해서 4천년 전부터 준비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인연을 지니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4천년 역사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0세 때에 예수님이 그런 역사적인 탕감을 했어야 했는데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그것을 하지 못했으므로 우리가 7년노정에서 그것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40일 복귀란 말을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40세 고비를 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에게 40대 고개를 바라보고 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탕감노정이 남아 있기에 다시 오시는 주님도 7년대환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19-151
아들에게 배신당한 하나님
그러면 핍박은 누구한테 받는 것인가? 남한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핍박이란 자기 집안 식구에게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분하고 원통한 것은 무엇이냐?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서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한테 당한 분함과 원통함은 천년 만년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얼마나 가까왔습니까? 피가 통하고 뼈와 살이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울면 아들도 울고, 아버지가 웃으면 아들도 웃는 공동 운명의 관계였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같이 겪고, 부활의 은사도 같이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가까운 사이였는데 아들이 바로 아버지를 배반한 것입니다. 또한 천사장,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충신이 군왕을 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역사의 출발입니다. 인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때문에 끝날이 되면, 참길로 복귀하는 길에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참길이라면, 아버지가 교회에 나오면 어머니가 치고, 어머니가 나오면 아버지가 치고, 자식이 나오면 어머니가 치고, 어머니가 나오면 자식이 치는 역사가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아니고는 진짜 참길을 찾아가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나가면 가정이 파괴된다는 소문이 나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아버지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였습니다. 형제들도 나를 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쁜 의미에서 선생님을 쳤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누가 좋은 사람이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좋은 의미에서 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탕감원칙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슴이 터지고 복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픈 사연이 왜 벌어지느냐 하면, 인간이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는 사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할 사람에게 무엇을 갖다 주느냐? 핍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가정에서 세 사람 이상의 제일 가까운 사람 한테 핍박을 받게 합니다. 종적인 소생, 장성, 완성의 3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해 가정에서 세 사람에게 핍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형님 누나까지도 까닭없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19-152
기백과 배포를 가진 사람이 되라
복귀역사는 차자를 중심삼고 하기 때문에 원래 세 사람이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한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형님이 있으니 차자를 중심삼고 보면 세 사람에게 반대받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하여 친척들이 반대합니다. 그러나 친척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이 친척이 아니면 못살 바가 아니니 새로운 친척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민족을 창건하기 위해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배포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민족이 조금 반대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밀려나면 민족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민족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이 민족을 더 훌륭한 민족으로 만들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상이 그러했고 선생님의 사상이 또한 그렇습니다.

통일교회를 놓고 한때 세상이 얼마나 떠들고 난리를 쳤습니까?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밥을 잘 먹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보리밥이든 무슨 밥이든 주는 대로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단지 하나의 걱정은 내가 잘못함으로 인하여 탕감의 길에 마이너스 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지 다른 것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기획과에 있던 녀석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 선생님이 들어가니까 막 삿대질을 하면서 ‘뭐 네가 통일교 문아무개라구 뭐 이 녀석’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40일 후에 두고 보자 이 자식아’ 하고 톡 쏘아 주며 ‘이 자식 너 뭘 해 먹던 자식이냐?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어어’ 하길래 어어가 뭐야 이 녀석아, 죄인들 등이나 쳐먹고 사는 나쁜 녀석아’ 하고 다시 한번 호통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지나다니면서도 선생님을 본척만척하더니 시간이 얼마만큼 지나서는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소장까지 선생님을 만나자고 했어요. 간수들이 ‘선생님, 뭐 불편한 것 없습니까?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사다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떡을 사 달라면 떡을 사다 주고, 무슨 연락을 해 달라면 연락을 해 주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좋아서 하겠다는 것이니 죄가 아닌 것입니다. (웃음)

천하가 제아무리 반대하고 세상이 제아무리 드세다 해도 그 천하와 세상을 녹여낼 수 있고 삼킬 수 있는 기백이 있으면 그는 영웅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마태 26 :39)”하고 마지막 기도하신 것을 생각해 보면, 그처럼 심각한 자리에서 그처럼 멋진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를 걸고 넘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탕감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장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쳤기 때문에, 그것이 탕감 복귀되기 위해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여러분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한 것입니다. 그 원수를 갚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껍데기를 벗겨 복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땅 위에서 승리의 왕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가정에서 불의의 심정을 통한 것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대해서도, 종족에 대해서도, 민족에 대해서도, 그리고 국가와 세계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을 동원해서 뜻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겠다고 하며 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늘의 왕자의 모습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통일 교회의 문선생은 바로 그런 결심으로 생활해 온 사람입니다.

19-154
선생님의 심정세계
이제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심정을 시험하고 저울질하는 것에는 문제없습니다. 또한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것까지도 문제없습니다. 한때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한 40일간 문선생을 집어치우려고 데모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 같은 사실인데 잘 들어 두십시오. 12사도와 예수님까지도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영계를 망치는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망치기는 누가 망친다고, 자기들이 망치고 있으면서……. 그래서 누가 참인가 거짓인가를 밝히는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40일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판결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참인지 싸워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판결을 짓기 위해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선생님은 결코 패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니까 영계도 양보하지 않고 선생님도 양보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천년 만년 싸움이 계속될 것 같아 하나님께서 판결을 내려야 된다는 입장에까지 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리의 공법에 의해서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누가 이겨야 되겠어요? 여러분은 누가 이겼으면 좋겠습니까? 그 싸움에서 선생님이 이겼습니다. 틀림없이 이겼기 때문에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도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영계도 선생님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영계를 통일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지상의 통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를 것입니다. 세상에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볼 때는 어수룩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아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 엉클어져 있는 심정적인 떨거지를 무자비하게 잘라 버리고 침을 뱉을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을 치고 출발한 악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악으로 엉클어진 이 세상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탕감복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19-155
탕감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한국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을 두고 보면 부정부패하는 일들이 많은데 통일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돈으로 통하는 데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수고한다고 돈 따위를 갖다 주면 선생님은 그것을 전부 돌려 보냅니다, 선거 때에 통일교회를 이용하겠다고 돈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우표값을 제한 나머지는 반송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념적으로, 교회적으로, 통일교회는 뛰어난 종교입니다. 종교적으로 통일교회, 사상적으로 통일사상, 이념적으로는 통일이념, 또한 공산주의와 유심사관을 통합할 수 있는 통일사관, 무엇으로 보나 우리가 훨씬 높은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7년노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년노정을 안 가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종적인 6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시키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6천년 역사의 사연이 대한민국 역사에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부정부패의 사연도 다 들어옵니다.

이 나라는 탕감의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부패했다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패한 일면도 때에 따라서는 유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역사의 복잡한 모든 것을 이 대한민국을 통해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악한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선한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치는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은 6천년 역사를 총탕감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담 가정으로부터 지금까지 6천년 복귀역사 과정에서 비참했던 사실, 즉 하나님이 사탄과 대결하면서 제물을 세웠지만 실패했던 모든 사연들을 실체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일대(一代)에서 그 모든 것들을 세워 승리했다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평면도상의 어느 한 면에 그 조건을 갖다 맞추지 않으면 전체의 탕감기준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전 7년노정의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옛날 아담이 타락하기 직전의 심정세계를 왕래해야 합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섰을 때, 민족의 배반에 몸부림치던 사연의 자리도 통과해야 됩니다. 그런 심정의 자리를 중심삼고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의 선조들이 거쳐왔던 모든 심정세계를 전부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쉬운 일 같습니까? 여러분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할 때 동정 한번 해 주었어요? 잘 입고 잘 먹고 다 제멋대로들 살았다는 거예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뭐 선생님이 고맙다고? 여러분 생각해 봐요. 만약 선생님이 안 왔다면 어떻게 할 뻔했어요? 하나님께 큰일 날 것 아닙니까? 더우기나 지금은 6천년 역사노정에서 심정적으로 뒤엉킨 사연을 전부 풀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의 하나님이시요, 현재의 하나님이시요, 미래의 하나님이십니다.

19-157
통일교회의 기반과 원천
여러분들 중에 처음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좋아서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까? 대개가 저기 문밖에서 삐죽이 얼굴만 내밀고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들어오려면 빨리 들어올 것이지 목만 쑥 내밀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은 한 시간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난다는 것입니다. 눈에서 불이 나게 죄어 놓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말씀이 좋기는 참 좋습니다. 무엇을 하던 사람이건, 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건 전부 끌어다가 말씀을 하면 죄다 고개를 숙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바로합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들어 보면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가도 결국에는 옳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처음엔 다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싸움의 하나님이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어 있나 생각해 보십시오. 들어오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좀더 깊은 사실을 말해 주고 싶지만 사실을 말해 주면 다 도망갈까봐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도망가더라도 선생님은 상관없지만 여러분들이 불쌍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7년노정은 역사노정의 모든 것을 탕감하는 기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눈물로써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가슴 막히는 탄식의 심정으로 세계를 회개시켜야 합니다.

이 민족을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가 어떻다 하더라도 이 나라를 위해 선생님 이상 눈물 흘리고 이 나라를 선생님 이상 사랑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세계를 두고도 선생님 이상 눈물 흘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선생님을 보고 싶어해 보았습니까? 어떤 할머니가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눈물 흘리다가 까무러쳤었다는데 그 할머니가 언제 이런 것을 배웠겠습니까? 선생님이 시켰습니까?

그렇게 해도 하나님께 진 빚을 다 못 갚습니다. 죽을 때까지 갚아도 그 빚은 다 못 갚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립고 선생님이 그리워 눈물을 흘려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이 그리워 눈을 뜨고 햇빛을 못 볼 만큼 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이단이고 선생님이 이단의 괴수라고 야단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겠습니까? 천법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문선생이 있어서 통일교회의 동기와 원천이 되었고, 통일교회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세상에 어떤 권력을 잡은 사람이라도 통일교회에 와서 선생님을 만나 보고 싶어합니다. 선생님의 자리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어느 누구더러 대신하라고 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선생님이나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웃음)

6천년 동안이나 서러웠던 하나님의 심정을 집중시켜 탕감계획에 의해 한꺼번에 눈물로써 홀딱 뒤집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 역사입니다. 이 탕감복귀 역사를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7년 동안 전개해 나온 것입니다.

19-158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이 되는 부자관계
그러면 이 기간에 있어서 결국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수습하여 복귀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는데, 그 사명을 이 땅 위에서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부터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 이후 연장된 2천년을 포함하여 6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생전에 소원하던 기준으로 완전히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장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기성교회 사람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바로 장가를 가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왜 장가를 가야 되느냐? 인류의 출발이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되어졌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아직껏 참된 조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참된 조상이 될 사람을 성혼시켜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 혈통의 가계를 만드는 것이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핏줄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땅에 사는 사람이 아무리 잘 믿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왜 하셨고 아담과 해와를 왜 지으셨겠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지으셨느냐 하면 좋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좋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아담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무형의 아버지가 되고, 아담은 유형의 아버지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고로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실체를 필요로 하셨느냐? 당신이 지으신 실체세계는 무형으로는 주관할 수 없기에 실체를 쓴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의 하나님으로 만드신 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일체가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어야 할 아담이 빵꾸를 냈으니 그것을 때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실례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마 좋아할 것입니다. 빵꾸라는 말을 쓰는 것이 실감이 나기 때문입니다. 사고니 뭐니 하는 표현보다는 빵꾸가 속된말 같지만 자주 쓰이고 실감이 나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빵꾸가 난 것을 때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으로 때워야 되겠습니까? 타락 하기 전의 아담 같은 사람으로 때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이 빵꾸낸 자리를 때우면 타락하기 전의 아담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장가를 갈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아담이 장가를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담이 장가 가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해와도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하나 되면 해와가 누구의 아내이겠습니까?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실체이므로 결국 해와는 하나님의 외적인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혈통적으로 한 몸인 아담이 해와와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번식했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탄이 어떻게 채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선생님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해 보니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즉 부자의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과의 관계인 줄 알겠지만,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자 하나님의 딸인데 그 해와를 사탄이 겁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에게 간부(姦夫)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성교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인 아담을 쫓아내고 그의 아내 해와를 타락하게 한 간부(姦夫)의 자식들입니다. 모두가 간부의 족속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존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 하면 섭섭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기도해 보면 알 것입니다. 그래 간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기분 나빠야 합니다. 몸 안에 간부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칼로 찔러서라도 그 피를 빼내야 됩니다. 그래서 금식도 시키고, 고생도 시키고, 희생을 시키면서 들이 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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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의 인물
여러분은 잘못 태어난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 머루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르려면 어디를 잘라야 되겠습니까? 밑둥을 완전히 잘라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한 사람은 어디를 잘라야 밑둥을 자르는 것이 되겠습니까? 발 밑을 잘라야 될까요, 목을 잘라야 될까요? 목을 잘라야 합니다. (웃음)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천번 만번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기가 무섭게 싸움을 합니다.

교회란 이런 식으로 죄 지은 후에 회개하는 회개당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많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왜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한번 지은 죄는 용서하지 못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또 사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회개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회개했을 것입니다. 천번 만번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리의 공법을 파탄시킨 죄는 용서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죄가 용서된다면 우주의 사랑의 법도는 근본적으로 파탄되고 사랑을 위하여 창조된 이 세계는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자체까지 침해했는데 그것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재차 수정해서, 복귀의 역사를 거쳐 타락하지 않았다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기준에 의해 사탄을 추방하고 제 2의 이상적인 인물을 찾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는 데 6천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인물을 찾아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타락한 아담 해와를 제쳐 놓고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다시 찾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을 해 온 것이 6천년 역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장가를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

고장난 것은 원상태로 수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도 새 세상 되기를 원하고, 나라도 새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민족도 새 민족이 되기를 원하고, 사람도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아들도 새 아들이 되기를 원하고 딸도 새 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새 아들인 예수님이 오셨으니 새 딸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딸을 찾던 도중에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새 딸을 찾기가 왜 힘드느냐? 하나님은 아담을 본따서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해와 때문에 아담이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해와를 다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만들어지는 해와는 예수님께 절대 복종하고, 예수님과 심정적인 면에서나 모든면에서 일치되어, 그 이념이 내 이념이요 그 뜻이 내 뜻이요, 그 사정이 내 사정이라고 하며 모실 수 있는 신부가 등장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 그런 여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주의 소망인 어머니 한 분을 찾아 세우기 위한 예수님의 노정에는 십자가도 많고 핍박도 많았습니다.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이 벌판에서 저 벌판으로 몰리고 도망다니며 핍박받던 처량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다윗 종족의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뜻을 세우려 한 예수님이 가정에서 뜻을 세우지 못함으로 출가해서 3년 공생애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과 동생과 4촌, 8촌 등 친척들 중에서 12제자, 70장로, 120문도가 나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문중 전부가 반대했고, 이종 사촌형인 세례 요한까지도 반대했습니다.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했다는 세례 요한이 그 꼴이었으니 될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하여 예수님은 1차, 2차 노정을 실패로 끝냈습니다. 그래서 제 3차 노정에서 예수님은 어부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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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신부
그 모두가 신부 하나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30여세 총각이 신부 얻기가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모든 조건이 맞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은 부모 형제는 물론 3대권내의 선조들 모두다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4촌, 8촌까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어느 한 조건이라도 안 맞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간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가정의 족보를 들추어 보았을 때, 그 가정에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터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4천년 얽힌 역사를 풀어 낼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출가해서 불쌍한 어부들을 제자로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서러운 자리에 있었던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소망하던 신랑의 자리에 나가는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을 남기신 것입니다, 때문에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삼고 신부 한 사람을 택하기 위해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남자도 신부, 여자도 신부라 하는데 그런 신부가 어디에 있어요? 남자는 신부 되겠다고 하지만 남자는 종밖에 안 됩니다. 신부는 해와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는 지금까지 여자들이 탕감해 나온 것입니다.

은혜도 땐 처음에는 선지자 안나 같은 할머니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이 먼저 은혜를 받습니다. 다음에는 아주머니들이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는 처녀들이 은혜를 받는 때가 옵니다. 그렇게 중년시대를 지나서 처녀시대로 들어올 때에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1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70년 역사권내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등 얼마나 처량한 입장이었습니까? 이 해방권내에서 통일교회가 나오게 되므로 여자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부를 찾는 것이 일대(一代)에 이루어야 할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명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 2이스라엘 권내에 있는 세계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제일 잘 믿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특등 신부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신부를 찾아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의 2천년 역사인 것입니다. 신부를 찾음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조상이 나오고, 참조상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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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바라는 어린양 잔치
본래 에덴 동산에서 참조상인 참부모가 생겨났어야 되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6천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재림시대를 중심삼고 참조상을 찾아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 앞에 승리한 하나의 남자가 생겨나서 하나의 해와를 재창조한 기준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6천년 전에 참인류의 조상의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기준을 복귀한 것입니다. 수많은 타락의 자식들이 번식된 6천년만에야 거꿀잡이로 참부모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참부모의 배를 거쳐 나와 거듭나야 되겠기에 기독교인들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참부모를 잃은 고아들입니다. 고아들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인류를 고아들(요 14 : 18)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니 제아무리 잘 믿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다운 아들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버리고 참감람나무 순을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들이 참감람나무가 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하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바라는 것은 참부모이고, 예수와 성신이 바라는 것은 어린양 잔치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럼 사랑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의 중심은 신랑 신부입니다. 즉, 어린양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잔치는 신랑 신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중심은 참아버지 참어머니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주의 입장이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으로 보내면 종만큼 사랑하십니다. 또, 양자 혹은 성신을 시켜서 구주를 보냈으면 양자나 성신만큼 사랑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로 계시는 하나님 대신자로서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아버지이고 성신은 참어머니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아담 대신의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책임을 하고 승리한 이스라엘권을 세워야 하기에 해와 대신의 성신은 죄를 씻는 역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와가 죄를 지었으므로 어머니 신인 성신은 이 땅 위의 죄 씻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신을 받으면, 즉 어머니의 신이 임하게 되면 아버지 신을 흠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신이 임하면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모하게 되므로 사랑의 힘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 더 커지기에 새로운 부활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중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생명을 낳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자녀들과 참가정, 참가정을 중심삼고 참종족. 참종족을 중심삼고 제 3의 이스라엘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 종족을 중심삼고 출발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개인 가정 종족을 찾아 세워 민족적인 승리의 터전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패한 기준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승리의 터전이 마련되고, 그 터전 위에서 어린양 잔치를 함으로써 제 3이스라엘의 편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제 1차 7년노정 중에 36가정 결혼식, 72가정 결혼식, 124가정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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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일
제 1차 7년노정은 하늘땅 전체를 중심삼고 전체의 사명을 짊어진 선생님이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의 21년노정 중의 마지막 노정입니다. 예수님이 다윗 종족, 즉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없이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탕감복귀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통일교회는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를 하여 통일종족을 편성하려는 것입니다.

통일종족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앞에 민족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제1차 7년노정을 설정하고 활동해 나왔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에서는 통일교회의 가는 길을 막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권한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시대권을 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운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1차 7년노정을 감으로 말미암아 민족적 탕감조건을 세워, 예수님의 소원이었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 2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으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어야 합니다. 민족을 구하기보다도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 1차7년노정에서 국가적인 기반을 닦은 후에, 제 2차 7년 노정에서는 종족적인 메시아의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성완성 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예수님이 다윗 종족의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유대 나라를 복귀해야 할 사면을 짊어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명을 상속받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 참부모의 인연을 갖추던 종족적인 조상의 자리를 탕감 복귀해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서 또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7년노정에서는 민족을 위해 충성하던 그 이상의 충성으로 자기의 부모 형제, 친척을 전부다 복귀시켜야 합니다. 즉, 종족 전체를 하나님 앞에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복귀섭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조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종족을 복귀시킴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종족적인 부모의 사명을 완수하게 되고, 영계의 선한 성도들로 여러분과 더불어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한 선조들이 지상에 무수히 재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오기 때문에, 악한 사탄세계는 점점 사라지고 통일의 운세가 새로운 세계로 점점 넘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적으로 볼 때 1974년까지 우리의 움직임 여하에 따라서 급진적인 발전을 볼 것이 예상됩니다.

제 1차 7년노정과 제 2차 7년노정의 성격이 이와 같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은 기성교회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의 21년노정은 야곱이 하란 땅을 버리고 자기 고향 땅 가나안을 찾아오던 때와 같은 때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야곱이 시련을 거쳐 하늘의 축복의 터전을 닦은 후에 고향을 찾아가 형님을 맞이한 것처럼, 통일교회도 기성교회와 다시 상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여러 행사를 많이 할 것입니다. 민족과 만나야 하는 이 길, 특히 청년들과 많이 만나야 하는 이 길을 중심삼고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 금년 표어는 ‘전면적 진격’입니다. 진격보다는 전진이라고 합시다. 진격이라면 너무 과격한 것 같지요? 그러니 ‘전면적인 전진’이라고 합니다.

이 ‘전면적 전진’이라는 표어 아래 활동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내적 정비, 둘째는 목표의식의 확립, 셋째는 패자의 결과를 체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상의 세 가지를 갖춰 기필코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내용을 정비하여 전진하는 데 있어서 무모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를 헤아려 알고 작전하는 데 밤이나 낮이나 그 환경을 가려서 하면 필시 승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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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지금으로부터 수십여 년 전, 철모르는 어린 것을 불러 놓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던 그때가 어제 같사옵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고비를 넘긴 오늘, 옛날을 뉘우치며 생애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만일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희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님이 안 계시다면 저희들은 이와 같은 장소에 올 수도 없었습니다.

아버님을 알았기 때문에, 또 아버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저희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저희의 사명이 역사 속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런 절박한 책임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시련의 복귀의 길을 개척해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희들을 이끌어 주신 아버님의 노고를 생각할 때 황공하고 민망할 뿐이옵니다.

지금쯤은 언론을 통해 세계 인류를 모아 놓고 아버님의 참된 사정을 전해 주고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수의 무리를 모아 놓고 아버님의 애절한 사정을 전하게 된 것을 아버님 앞에 지극히 면목없게 생각하옵니다.

저희들에게는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또 다시 이 길을 앞장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싸움의 길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도 아는 바이옵고, 아버님께서도 아시는 바이옵니다.

아버님, 아버님도 저희를 필요로 하시고, 저희들 또한 아버님을 필요로 하고 있사옵니다. 모진 시련 가운데서 연단받으며 참아 나온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몸 마음 다 바쳐서 남기신 복귀의 길로 직행하기를 원하오니, 저희들이 영광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아버지의 기쁨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통일의 자녀들이 가는 길 앞에는 과거와 같이 모진 시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 앞에 깊이 인연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리는 옛날과 같은 자리임을 아옵니다. 이제 그런 자리는 없을 것이오니, 아버지, 차후로도 이 사람들을 사랑하실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시옵소서.

작은 조건을 통해 큰 것을 탕감하게 하신 아버지, 탕감의 원리를 아시고 그 법도를 저희에게 적용하시는 아버지시여, 작은 수고로써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저희들을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새벽에 전국에 널리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전세계에 널리어서 이곳에 있는 스승을 그리워하며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심정적인 빚을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활을 통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무엇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 생활 가운데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1968년을 기꺼이 맞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의 몸 마음을 다 제물로 드리겠사오니 아버지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쏘아 놓은 포탄과 같이 적진 앞에서 폭파됨으로써 저희의 사명이 끝나는 줄로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체가 대포가 되지 않고 포탄에 되어서 적진을 박멸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의 표어를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로 했사오니 아버지, 세운 목표를 중심삼고 통일이 자녀들이 일치 단결하여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없이 맹세하고 다짐해 나갈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목표를 향해 나가는 길을 직접 지도해 주시옵고, 싸워 나가는 길 앞에 당신의 보호와 사랑의 손길이 일층 더 하시어서 두터운 심정의 인연이 맺어지게 그들을 양육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의 영광을 가져 가지고 그것을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리고, 또다시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길을 소망으로 삼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모습들을 친히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장래에 대한 문제도 친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시어서 승리의 자리, 기쁜 그 세계에서 아버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현세에서 저희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중심 삼고 새로운 각오를 했사오니 친히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것이 아버지의 영광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