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축복가정의 위치와 사명

축복가정의 위치와 사명
1967.12.26 (화), 한국 대전교회

19-70
축복가정의 위치와 사명
[말씀 요지]

축복은 하나님의 소원이자 예수님과 성신의 소원이다. 이 소원이 이루어져야 새역사가 열린다. 축복은 이 전체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고로 축복가정은 이러한 소원을 이루는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못 이룬 소원을 책임지고 이뤄 드려야 한다.

축복을 이룰 때까지 아담, 예수, 재림주의 3대에 걸친 한을 풀어야 한다. 예수님이 세우지 못했던 외적 기반을 세우는 것이 바로 7년노정이다.

선생님의 성혼식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결혼식보다도 성대하게 해야 하는데, 고난 중에 했기 때문에 성대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 성대하게 해야 할 조건이 남아 있다.

식구들은 자기를 중심한 3대 중 외적으로 가장 결혼을 잘한 입장에 서야 한다. 그래야 사탄 앞에 조건을 세울 수 있다. 그래서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내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제물적인 조건을 세워야 한다.

예수님이 12제자를 찾아 세우지 못한 것을 탕감하는 탕감기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12사람과 3수에 해당하는 제물적인 조건으로 3만원을 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조건을 세운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축복은 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축복하는 것이다. 36가정은 조상의 입장이고, 72가정은 36가정 앞에 가인, 아벨을 복귀한 형이다. 즉 36조상 앞의 이 72가정은 가인 아벨이 일시에 탕감복귀된 형이다. 124가정은 전세계 120국가를 대표한 형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찾았으나 하나님이 거하실 땅이 없어 1965년에 세계에 120개의 정지를 택정한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성지에서 기도할 때는 36가정과 72가정과 124가정을 대표하고, 하늘을 대표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천사가 협조할 것이다.

통일교인은 천사장인 사탄을, 선영(善靈)은 지상 인간을 복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천사의 역사(役事)로 내적 기준을 세우게 되면 사탄세계는 물러갈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지상에는 통일의 운세가 벌어질 것이다. 영적 승리의 결과에 따라 내적 승리의 기반이 잡혀지는 것이다.

아벨의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가 가인의 입장에 있는 기성교회를 구해야 한다. 야곱이 물질로 에서를 구한 것과 같이, 물질을 통해서 초교파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축복가정이 전통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지시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 1차 7년노정이 끝나기 전에 제2차 배치를 하여 이 기간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으로 세워야 한다.

과거에는 가정으로부터 떠났었지만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124가정으로 하나님 앞에 세계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종족 편성에 가담해야 한다.

33가정도 3가정을 세운 후에 세운 것이다.

아담형 가정(36가정 중에서)의 축복으로 영계 전체가 횡적인 연결을 지을 수 있다.

선생님이 3가정 축복 전에는 성진, 희진과 함께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 3가정이 아버지와 일치되는 기준을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진과 희진을 하늘 앞에 찾아올 수 있었다.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3자녀와 12가정을 찾아 세워야 한다. 선생님이 이미 이런 기대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과 통곡으로 종적인 조건을 세웠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하나 되어 횡적인 조건을 찾아 세울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개인이 아무리 완전하게 완성되었다고 해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또 아무리 효자라도 나라에 충성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선생님과 하나됨으로써 그 조건을 세운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각자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의 정성을 하나님 앞에 통고하여 그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지어 주는 사명을 하지 못하면 심정의 빚을 지게 된다.

가정과 식구의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있어서도, 누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통곡을 할 만큼 고생한 식구를 먼저 세워야 한다.

죽을 때 눈물 흘릴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혜진 아기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잃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했고, 아직 죽음을 면할 만큼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