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 참사람

참사람
1967.11.05 (일), 한국 전본부교회

19-18
참사람
[말씀 요지]

선생님의 생활은 절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다. 막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뜻길을 출발하려면 아예 각오를 달리해야 한다.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한다. 결심은 좋지만 그 결심이 실패로 끝날 때에는 그 결심이 나를 구속한다. 실패를 하지 않으려면 나 외(外)의 어떠한 힘이 보강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이 길을 출발한 지 몇 년이 되었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동안 내가 이 길에 도움을 주었느냐 아니면 빚을 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아주 짧은 시각이라도 선생님에게는 모두 심각한 시각이다. 어느 순간 죽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아주 짧은 한 순간이 내가 생명을 얻고, 또 내가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기점이니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공기, 음식 모두가 우리들의 생명에 절대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자주 맹세하고 결의한다. 그러나 가다가 번번히 흔들리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의 길에 맹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선열들이 나라를 사랑했던 것만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영계, 지상, 그리고 후손 앞에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합이 맞아야 한다. 3점이 결합되어야 면적이 생긴다. 2점으로는 선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허리띠를 매려면 단단히 매어라. 한번 해보자 하고 막연하게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절대 못 한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그리워해 보았는가?

원리와 통일교회와 여러분이 각각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가 형제라면 원리와 통일교회는 큰 형이고 여러분은 귀여운 동생이다.

말씀을 듣는 것도 좋지만 명령에 따라 뛸 줄도 알아야 한다. 탕감하려면 남을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탕감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 없이 일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동생들을 돌보고 모든 가업을 책임질 수 있어야 참된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또한 얼마나 사랑하셨겠는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시는 정도는 인간들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여러분은 아담 해와 이상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적자(嫡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아담 해와가 완성한 후에 들어가서 누릴 수 있는 소망의 경지, 즉 사랑의 창고가 없었다.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다.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 바지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천만 번인지 모른다.

감옥에서 사형수도 많이 보았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산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그들에게 3일간 기한을 주고 그 동안 회개하면 부활할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심각해지겠는가? 사형수들에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들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살려만 준다면, 컵에 물을 가득담아 이마에 얹고 서울을 일주하라 해도 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인데 못 할 것이 있겠는가?

야곱이 얍복강에, 저 천사와 씨름할 때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천사가 일대의 심정으로 싸웠다면 야곱은 천년의 심정으로 싸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승리할 수 있었다. 패자는 외적인 것에 더욱 치중하는 자이고, 승자는 내적인 것에 더욱 치중하는 자다. 내적 기준이 더 높은 사람이 승리한다.

오늘의 통일교회는 세상과는 사연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다. 고난의 역사 속에 맺어진 것이 통일교회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것과 다르다. 선생님이 인류를 사랑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다르다 또한 선생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끈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질기고 굳세어야 되며 강해야 된다. 또한 자신이 있어야 된다. 자신이 있으려면 사상이 있어야 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통해야 한다.

7년노정이 끝날 때가 되었다. 이제는 선생님이 친히 나설 수 없는 때가 되었다. 그래서 식구들을 내세워서 해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다시 예배 인도하면 좋겠는가? 여러분을 대할 때 마음을 터놓고 사연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마라톤 선수 아베베가 뛰는 것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그에게는 남이 모르는 고충과 수고가 많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는 40세도 아직 안 되었다고 해서 죽으려면 아직 멀었다, 혹은 공동 묘지와는 아직 인연이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 당장이라도 돌아다니다가 죽을지 누가 아는가? 심각한 문제다.

박달나무 방망이로 맞더라도 천국 보내 준다면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천국에 가면 그 자리를 자랑할 것이다.

참사람이 되라. 참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소원이 없다. 참사람은 소원이 없을 만큼 충족된 사람이다.

선생님은 ‘통일’이라는 말을 점령했다고 생각한다. 통일이라는 명패를 달고 세상의 욕을 가장 많이 먹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서 있다.

참 가운데 진짜 참은 하나밖에 없다. 진짜를 닮지 않으면 모두 가짜이기 때문에. 세계 만민은 참을 따르고 본받아야 한다. 참사람이 되려면 남자 혼자서는 안 된다. 참남자가 되려면 참여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에 ‘어린양 잔치’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남자와 참여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결합되는 행사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못한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요건이 있어야 한다. 희로애락 모두가 혼자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하나님도 혼자서는 외롭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실 수밖에 없는 절대적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야’하면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상대적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천지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고로 재림의 한 날을 고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이요, 아픔이다. 남편이 없으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적인 원리원칙에 어긋나고, 우주공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편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고통이다. 모든 상대적인 요건에 부합될수록 행복한 것이다. 아무리 간절해도 간단하면 재미가 없다.

창조목적은 4위기대를 완성해야 이루어진다. 첫째는 개성완성이요, 둘째는 상대기대 완성이다. 몸과 마음의 싸움을 확대한 것이 세계대전이다.

인간에겐 정적 분야(사랑-가정)와 사명적 분야(일)가 있다. 이 두 가지를 다 못 가졌을 때, 그는 존재세계에서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아담 해와의 3대상목적적인 결실체, 즉 자녀를 못가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한 입장이 못 되었다.

원리를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적용시켜야 한다. 모든 존재는 주고받는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체조직으로부터 지구 태양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고받는 작용을 하고, 또 그 원칙에 의해 원형운동을 한다.

선은 어떤 것이냐? 보다 큰 것을 위하는 것이 선이다. 통일교회 전체를 희생시켜서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면 그것이 바로 선이다. 또한 민족과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위한다면 선이다. 그렇게 하여 세계가 잘될 때, 그 민족은 중심 민족이 되고 중심 국가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 하면 안 된다. 안하면 때려서라도 하게 해야 한다.

일본 통일교회도 한국 통일교회와 똑같이 일해야 한다. 거리에서 노숙하며 얻어먹더라도 일본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이 산다.

통일교회는 세계를 살리겠다고 외쳐야 한다. 그러기에 납작해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올라가고, 반대하던 자들이 도리어 납작해지는 것이다.

사위기대 기반 위에서 하는 일은 망하는 일이 없다. 여러분들이 만들지 않으면 선생님이 만든다. 우리는 주일에도 뜻을 위해 싸워야 하며, 개척자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 길을 가다가 참된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게 여겨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 역적이 된다.

여러분을 수고시켜서 선생님이 잘 살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무덤에 후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참사람이 되어야 한다.

전도하면 기쁘다. 반면에 전도하지 않으면 기쁨이 오지 않는다. 선생님도 이 일을 안 하면 괴롭기 때문에 한다. 전도를 하면 욕먹고 나서도 기쁘다.

참은 하나님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참된 사람은 3대상목적을 세우고 사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