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 to 18-91: 전성시대

전성시대
1967.05.21 (일), 한국 전본부교회

18-52
전성시대
전성시대, 이거 좋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성시대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이 전성시대라는 말을 온 피조만물을 지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못난 사람도 좋아하고, 잘난 사람도 좋아하고,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좋아하는데, 사람을 지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도 틀림없이 좋아하실 것입니다.

18-52
누구나 바라는 전성시대
전성시대란 어떠한 때를 말합니까? 글자 그대로 보면 ‘온전 전(全)’자에 ‘성할 성(盛)’ 자로 ‘온전히 성한 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번창하여 그것이 사회화되고, 국가화되고, 세계화되는 때가 전성시대인 것입니다.

본래 땅 위에서 인간이 맞이해야 할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기쁨일 것이냐? 간단히 생각하면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느끼는 기쁨일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전성시대를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도 인간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최고의 전성시대를 틀림없이 바라셨을 것입니다.

높은 분일수록 기쁜 날을 맞이하면 지극히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 저 말단에 있는 사람, 그리고 빈민굴에 사는 사람까지도 같이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악한 독재자라 하더라도 자기에게 기쁨이 있다면 그 나라 전체가 기뻐해 주는 동시에 원수들까지도 함께 기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원수를 무자비하고 비참하게 학살하던 군주라도 승리의 날을 맞이하였을 때에는 그 국가의 백성은 물론이요, 그 주권과 대립하여 싸우던 원수 국가의 백성까지도 기뻐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포악한 독재자라 해도 그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사실이 그렇게 된다면 그 군주는 승리 중의 대승리를 한 것입니다.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면, 그야말로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승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한쪽이 일어서면 다른 한쪽은 기울어지는 일이 벌어져 왔습니다. 국가 대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도 언제나 서로 부딪치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작은 데서부터 큰 데로, 국가로부터 세계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승리해서 전성시대를 맞이하는 때를 가진 편이 있는 가 하면 반대로 패배하여 서러워하는 편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 승리한 편의 반대적인 입장인 서러운 편이 언제나 승리한 편을 환영하고 그 편을 앙망하고 따라가려 하는 일은 역사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인간이 구상하는 최고의 기쁨이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그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계적이지, 국경을 넘은 세계적인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해 나왔던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촌은 아버지를 중심하고 보면 아주 가까운 형제요, 할아버지 중심삼고 봐도 한 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3대내에 있는 형제끼리도 어떤 사람이 조금만 잘 되면 입을 일그립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요, 본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주권자든지 자기에게 영광이 있으면 원수 국가까지도 함께 기뻐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권 국가의 주권자가 바라는 소원 기준과 일대일의 생활환경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소원 기준이 서로 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권자는 원수까지도 그의 기쁨을 찬양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잘 되면 기뻐해야 할 텐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이상하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국(一國)을 책임진 주권자의 사정과 개인의 사정은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8-56
국운과 천운
그러면 일국을 대신하여 국가의 운세를 이끌어 가는 책임자의 입장에 선 사람은 어찌하여 자기 개인의 입장과 사정이 다른 입장에서 소망을 두지 않으면 안 되느냐? 그것은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적인 방향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그런 환경을 많이 가지고 한때 큰 영광을 누리더라도 그 영광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이 나가는 기준과 역사를 대표해서 국가가 나아가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일국을 다스리며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한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 국가의 운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연령이 있고 사람의 생리에 맞는 생활 형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도 연령이 있습니다. 국가는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생리적인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크다 뿐이지 개인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가와 개인이 다른 점은 무엇이냐? 개인은 국가를 따라가면 되지만 국가는 개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들의 감정이나 사적인 명령은 언제나 사소한 분야에서 서로 상충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를 지도하는 주권자의 입장에서 바라는 소원이라는 것은 개인의 그것과 다른 일면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개인의 입장과 다른 국가의 입장이 무엇이냐? 국가는 천운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형성하여 발전하는 것은 그 나라만을 위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편성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가는 세계 편성의 이념을 향한 또 하나의 소망을 갖지 않으면 안 되며, 또 국가는 현실적인 입장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국운 이상의 천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천운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만일 오늘날 전성국가를 이루어서 영광을 누리고 향락을 누릴 수 있는 국가와 민족을 거느린 군주가 있다면 그 군주의 뜻을 천운이 따라가느냐? 아닙니다. 주권자나 독재자나 아무리 권위를 자랑하더라도 그 역시 국운은 다스릴 수 있으되 천운은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천운을 따라가야 합니다.

천운이 가는 길은 원수까지도 포섭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주권자들이 자기의 기쁨을 원수 국가의 사람들까지 찬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천운의 연결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18-57
내적 전성시대와 외적 전성시대가 상응해야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전성시대에는 외적 전성시대와 내적 전성시대가 있어야 됩니다.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몸이 있는 동시에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하나입니까? 하나 같아 보일 뿐이지 하나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김 아무개라는 사람을 놓고 말한다면, 김 아무개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보면 김 아무개의 사지 백체가 곧 김 아무개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 그의 마음이 몸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김 아무개가 그 동네에서 욕심장이요,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그러한 김 아무개한테 ‘당신 이런 사람이지? ‘ 하면 그의 마음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살인강도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살인강도의 반열에 동참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고통을 느낍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그 반열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라는 사람을 두고 볼 때 몸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이 좋아하는 것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즉, 몸의 전성시대와 마음의 전성시대가 상응해야 할 텐데 상반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어서 잘 알 것입니다. 몸의 전성시대와 마음의 전성시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마음과 몸이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상하신 대로 실체를 갖추어서 만우주 앞에 버젓이 나타날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사람은 마음과 몸이 설 수 있는 자리를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모든 환경이 그 사람의 박자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동쪽으로 가려 하고 몸은 서쪽으로 가려 합니다. 이상하지요? 마음이 지향하는 것과 몸이 지향하는 것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 목적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그 목적에 부합되고 일치되는 생리적인 현상이 작용하여 나타나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마음과 몸의 자리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인데, 마음도 나요 몸도 나 같은데 실제로 몸이 내 몸이고 마음이 내 마음이냐 할 때, 자신도 그것을 모릅니다. 원래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서 뗄래야 뗄 수 없고, 하나님도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을 갖추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처하는 자리와 몸이 처하는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인생의 최고 이상적인 전성시대가 올 것이냐? 절대로 오지 않는 다고 결론을 내려도 무난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토피아적 이념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겠다고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마음과 몸이 처하는 자리가 다른 입장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코가 찌그러진 사람이라 해서 전성시대를 요구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코가 찌그러진 사람도 역시 전성시대를 요구합니다. 불구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구자인 것까지도 찬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도 더 전성시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과 몸이 분립된 입장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몸을 쳐서 마음을 끌든 마음을 쳐서 몸을 끌든 둘 중에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몸을 쳐서 마음 안에 기를 수는 있지만 마음을 쳐서 몸 안에 기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양심생활을 해서 잘 알 것입니다. 몸에 조금만 치우쳐도 마음은 거부합니다. 그건 누가 그러라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이 가슴에서는 두 세계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세계가 싸우고 있는 이 가슴에 38선을 제거해 버리고 평안함을 얻어 천지에 자랑할 수 있는 태평왕국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세계통일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천국 건설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에 있는 천국을 어떻게 현실에 이루어 놓을 것인가. 몸을 통해서 현현시켜야 합니다. 이상은 반드시 몸을 통하여 실천해서 실현시켜야 합니다. 사회화되고 대중화되고 보편타당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18-59
진짜 사람의 역할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사람은 누구나 두 갈래 길에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불구자나, 세상에 인간이란 인간은 전부 두 갈래 길에 있습니다. 과거의 성인 현철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그 무엇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갈래 길을 어떻게 해결지을 것인가? 개인으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데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는 문제가 외적인 싸움을 통하여 세계를 수습하는 일보다도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육적인 전성시대와 영적인 전성시대, 몸적인 전성시대와 마음적인 전성시대가 완전히 하나만 되면 태평왕국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사는 사람이나, 태어나는 사람이나, 국가 형태나, 자연 세계나,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들 전부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들은 모두 마음과 몸의 두 갈래 길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물론자들은 마음도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음이 언제나 주체성을 갖고 환경을 주관해야 되는 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의 전성시대와 마음의 전성시대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가망성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있는 것 가지고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것입니다.

역사상의 싸움은 씨족시대부터 종족시대를 거쳐 민족시대로 발전해 오는 데 있어서 어떠한 경제적인 문제가 동기가 되어 싸운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이 있기 전에 몸과 마음의 싸움이 먼저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적인 싸움의 평정은 일시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몸과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한 싸움은 역사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의 공자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고 석가도 그랬으며 이 시대에 어떠한 도인이 나온다 해도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싸움의 방법과 양상은 언제나 몸과 마음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은 새로운 제3의 환경으로 넘어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사람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며 탄식한 것입니다.

이 싸움의 역사는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말하는 이상적인 공산세계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역시 몸과 마음의 싸움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냐? 외적인 환경을 평정하는 것은 간접적인 문제이며, 직접적으로 평정시켜야 할 것은 자아를 중심삼은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근본 문제인 것입니다.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이 내적인 싸움이고 동기이며 세상의 싸움은 외적인 싸움이요,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싸움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그 결과를 타진해 가지고 세상을 수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조이상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계획하신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는 몸과 마음의 전성시대가 일치화된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전성시기를 어느때에 일치화시킬 것인가? 이 몸과 마음의 전성시기는 역사시대, 종말시대 혹은 끝날의 어느 한 때에 가서 일치화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가짜 사람 가지고는 안됩니다. 진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짜냐? 진짜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는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역사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 최고의 이상적인 인격자가 나타나서 전성시대를 이루었다면 그 전성시대는 절대 변하면 안 됩니다. 외적인 환경의 차이는 있을망정 내적인 차이는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환경은 높고 낮은 차이가 있지만 마음의 차이는 없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마음이나 국왕의 마음이 같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급적인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본심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있는 지 없는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시대의 요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18-61
천운에 의한 전성시대를 맞이해야
인간세계를 수습하여 세계 만민이 하나 되어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루기 위한 것이 오늘날 점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가는 현시대의 요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나타날수록 세계의 통일은 쉬워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가지고 될 것 같습니까?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안 된단 말입니다. 강제적인 통일로써는 하나의 세계가 구성될 수 없고, 영원한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될 수 있는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면 거기에 배치되는 또 하나의 형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변증법을 예로 들어 보면 변증법에서는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에 의하여 서로 반대하여 투쟁하므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라는 것은 벌써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반대라는 것은 두 개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두 개념은 투쟁을 하지만 통일은 되지 않습니다. 상반되는 것입니다. 플러스끼리는 서로 밀어내지요. 이별하려고 합니다. 서로 갈라지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을 외적인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제도화시켜서 끌고 나오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최고의 권한 이상으로 올라가면서도 자기 한계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불안한 세계입니다.

인간 세계에는 인륜과 천륜이 있고 국운과 세계운이 있습니다. 국운을 중심삼고 세계운을 움직이려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미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약소 민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구원하는 데는 그들의 재산 가운데 제일 깊이 간직한 금고를 털어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전성시대를 좋아했지요. 선생님도 전성시대를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좋아합니까?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더 좋아하면 이 전성시대를 여러분에게 양보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보다 덜 좋아하기 때문에 싫어도 선생님이 지니고 있어야 됩니다.

역사상에 전성시대를 좋아한 훌륭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전성시대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에 전성시대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종이 되더라도 기왕이면 그 동네에서 유명한 부자의 종이 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왕지사 종이 되려면 일등 가는 부자집의 종이 되고 싶지 않겠어요? 또 그 동네에 부자가 둘이 있는 데 한 사람은 착하고 한 사람은 악하다고 할 때, 여러분이 만약 종이 된다면 어떤 집의 종이 되고 싶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큰 것을 좋아하고, 더 높은 것을 좋아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맨 꼴찌를 좋아하는 분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세계를 통일시켜서 세계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온 우주가 전부 하나 되어 인간이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기뻐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셔다가 함께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좋은 소식이 있으면, 한국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이 있다면 신문 기자들이 와서 세계적으로 보도할 것입니다. 관심이 있는 한 누구든지 같이 기뻐하라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하나 되어 전성시대를 맞는 다면 인간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모셔다가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대통령의 훈시를 직접 듣는 것이 좋아요? 대리 훈시를 듣는 것이 좋아요? 모두 대리 훈시는 싫어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계의 모둔 국가가 하나 되어서 역사에 없는 찬란한 전성시대를 맞이했을 때에 우주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안다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이 어서 오십시오 할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하나님 오지 마십시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둑놈입니다. 왜? 세계를 통일하여 전성시대를 이루는 데는 국가의 운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천운을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운을 누가 움직이느냐?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천운을 타서 전성시대를 맞이했으면 그 움직이신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 놓고 좋아해야 질서가 잡히는 것입니다.

18-63
종교의 가르침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몸과 마음의 장벽을 제거해야 됩니다. 이것을 무너뜨려 버리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무엇이냐? 일반 역사관을 위주로 해서 인륜 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사회제도에 일치될 수 있지만 한 국가의 주권을 위주로 한 교육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세계를 초월하여 천운과 일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인간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역사과정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의 지성인들과 청춘 남녀들이 싫어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의 종자가 무슨 종자입니까? 마루 종(宗)자입니다. 마루는 어디를 말합니까? 맨 꼭대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의 가르침은 가르침 중에서도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낙제생들입니다. 이런 인간은 무엇이냐 하면, 동물처럼 그저 먹고 마시며 생명을 경시하는 동물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종교는 두 세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가 하느냐? 사람이 하는데, 그 맨 꼭대기는 언제나 하나님이 지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의 맨 꼭대기에 계시는 신 앞에 심부름꾼과 같은 역할을 할 예언자가 나와야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인간 사이에 중간 다리를 놓아서 그 연락을 담당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데, 그 사람이 바로 예언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예언자가 많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몸이 원하는 대로 먹고 즐기고 춤추라고 가르칩니까? 시대가 갈수록 젊은이들을 가르치기가 어렵게 되어 갑니다. 선생님도 돈이 있으면 서울만한 광장을 사서 삼천리 반도에 있는 청춘 남녀들을 전부 모아 놓고 한바탕 트위스트 춤을 추게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춤추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술을 먹는 데도 한도가 있습니다. 자기 주량을 가늠하지 못하고 계속 먹게 되면 통배가 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위가 뚫려서 죽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적인 전성시대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춤추고 놀고 싶은 것을 막는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강제로 한 3년 춤을 추게 하면 싫증이 나서 안 추게될 것입니다. 그런 작전이 있어요.

18-64
선은 영원, 악은 순간과 보조를 맞추는 것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이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역사가 길기 때문에 끝이 늦게 나지만 나쁜 일일수록 끝이 빨리 나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영원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요, 악한 것은 순간과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망하는 행락은 일시에 취하는 것이요 흥하는 행락은 영원에 취하는 것이니, 영원에 취할 수 있는 행락의 터전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마음의 친구, 마음의 주님, 마음의 스승, 마음의 대왕, 마음의 나라, 마음의 사람, 마음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그러한 이념을 표방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대답들은 잘 하는군요. 얼마나 좋아요? 굉장히 좋지요? 종교는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서 ‘아! 좋은 길로 갈 수 있어서 좋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느냐? 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더라도 일등할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언제나 세계 챔피언일 것이다 하면 맞는 말입니까? 챔피언은 챔피언인데 무슨 챔피언이냐? 마음 세계의 챔피언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갈래갈래 갈라진 마음들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갈라진 마음들을 수습하는 방법이 어찌나 치밀하고 권위가 있고 능동적인지 사탄까지도 그 권내에 들어가면 살지 못하고 뛰쳐나갈 만큼 챔피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도의 챔피언이 인간세계와 종교세계를 관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종교를 정면적으로 반대해 가지고는 세계가 하나될 수 없고, 세계를 하나의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세계의 3분의 2가 종교권내에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전부 적화하겠다고 하지만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마음을 빼 버릴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론이나 변증법을 통하여 마음을 뺄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란 것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챔피언이라고요? 「마음의 챔피언입니다」 예수님은 공자, 석가, 마호메트, 소크라테스와 같은 그 어떤 성현이나 철학가도 하지 못한 것을 수습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방법과 법도를 갖춘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천운과 박자가 척척 들어맞습니다. 그 시대권내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들어맞는 다는 것입니다.

응원을 할 때에 이왕이면 챔피언을 응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3회전까지 경기를 하고 나면 4회전부터는 승세에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지는 사람을 응원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지고 있을 때 선생님은 참 기분이 나쁩니다. 첫번엔 졌지만 두번째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번째는 자기 혼자서 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부터 이기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은 것이지 싸우다 지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상에 없는 그런 챔피언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러니 그분이 싸움터에 나가 싸울 때에 거기에 동조하고 몸부림치며 같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모진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남들의 구경거리로 싸운 것이 아니라 목을 내놓고 싸워 나왔습니다. 싸움 중에 가장 무자비한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역사 중에 기독교사에는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피를 뿌려 가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 싸움은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될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 싸움은 칼과 창을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다른 싸움과는 작전이 조금 다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어떤 절대적인 주체를 세워서 그 주체 앞에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하나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완전한 주체 앞에 완전한 대상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주장해 나왔던 것입니다.

18-66
정성과 은혜
지금까지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과 몸이 싸워 나오는 데 그 비율이 서로 비등비등했습니다. 그 비율이 10대 8정도였습니다. 몸이 대하고 있는 환경은 세계 전체와 접해져 있지만 마음이 대해야 할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타락한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몸은 시시각각으로 환경에 점령되어 버렸지만 마음은 한 길을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는 나타나는 결과를 단속해 나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마음에 공포가 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일을 행하게 되면 이제까지 쌓아 온 것이 무너집니다. 이것을 볼 때 마음은 육신의 행동을 맨 처음부터, 초반부터 간섭하지만 종반에 가서는 육신에게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비율로 보면 10대 8정도이지만 환경 때문에 마음이 몸에 언제나 밀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종교를 세워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이냐? 외적인 환경에 대비되는 은사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들여야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운을 좌우하는 군주가 정성들이는 이상의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하게 되면 크고 위대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의 눈은 그 힘에 의해서 육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투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실체의 이념권을 인간에게 인연맺어 주시기 위하여 종교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극시켜서 그러한 권내로 가게끔 하는 욕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초현실적인 선에 연결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에게는 순교가 벌어지고 목이 잘린다 해도 좋다고 하며 신앙길을 가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초현실적인 감정을 실질적으로 광범위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들이 사선을 넘으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천만한 힘을 팔천만한 힘으로 증대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모시고 힘을 증대시켜서 몸을 치라는 것입니다.

싸우는 데는 힘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종교는 세상에서의 몸의 욕망과 사회 요구에 의한 모든 일체를 막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전체를 부정하고 나선 종교라야만 순수한 종교요, 이상적인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버려야 합니다. 먹는 것도 버리고, 자는 것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정욕, 식욕, 수면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좋아하는 것을 다 버리라는 거예요. 사람은 본래 먹고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좋아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육신을 통해서 사망의 행로가 되었으니 이것을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몸에 폭탄을 터뜨리라는 것입니다. 원자탄을 터뜨리라는 것입니다. 옥살박살시켜 전부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몸은 높임받기를 좋아하고 편안한 자리를 좋아합니다. 또한 울뚝불뚝한 것은 싫어하고 포동포동하고, 매끈매끈하고, 폭신폭신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 몸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투실투실한 것, 울뚝불뚝한 것, 딱딱한 것 등, 몸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몸은 높아지기를 좋아하고 남의 돈을 뺏어다가라도 잘 먹으면 좋아합니다. 남이야 어찌 되든 잘 살면 좋아해요. 그러니 그러한 근성을 전부 때려 부숴야 합니다. 높아지기를 좋아하는 몸을 낮추어라, 온유겸손하라, 희생봉사하라는 것입니다.

18-68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이 몸과 마음 중에 하나는 처단해야 합니다. 둘 다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처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먼저 생겼습니까, 몸이 먼저 생겼습니까? 생명은 몸부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뿌리는 몸에 의거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진짜 곧은 뿌리는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주체되는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 가운데서도 조금 더 깊은 뿌리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가 두 개 있는 데 진짜 원뿌리는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뿌리를 다 뽑아버리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조금 덜 깊은 몸의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종교일수록 몸을 치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독신생활을 많이 하지요. 사회와 만민을 위해서 희생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성의 웃돌이 되지 말고 맨 아래의 고임돌이 되어라’ ‘기둥 중에서도 정문 기둥이 되지 말고 울타리 기둥이 되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전부 몸이 원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타락한 몸과 마음을 둘 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몸이 좋아하는 것의 반대편으로 모는 것입니다. 그래야 몸이 원하는 것이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제일 고차적인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몸이 원하는 편과 반대편으로 제일 잘 모는 종교입니다. 모든 것을 꺼려하는 종교는 최하의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잘 몰아요, 못 몰아요? 잘 몬다고요? 선생님은 못 몬다고 생각하는 데요? 하나님이 야 잘한다, 참 잘한다고 하실 수 있는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 그럴 자신 있어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지요? 믿는다고 했는데 길이 쉬운 길이겠습니까? 세상과 반대되고 상충되는 길입니다? 환영받는 길이라면 가짜입니다. 반대받는 길이 진짜입니다. 여러분은 가짜가 되고 싶어요, 진짜가 되고 싶어요? 물어볼 것도 없이 모두 진짜가 되고 싶을 것입니다. 물어보나 마나 진짜가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가 되는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진짜와 가짜는 무엇으로 구별하느냐? 용광로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금과 쇠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용광로에 넣어 봐야 됩니다. 그리하여 달구어 봐야 합니다. 금은 천도 만도로 달구어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쇠는 달구면 달굴수록 증발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용광로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을 구별해야 됩니다. 사탄의 소굴이 되어 있는 몸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용광로에 집어 넣어야 합니다. 용광로는 자기가 존재하겠다고 바라는 욕구에 부합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용광로가 바로 종교인 것입니다. 참된 종교가 바로 용광로입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흔적없이 다 물이 되어 날아가 버리는 것은 버리고 거기에서 순금과 같이 남아지는 것을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본색과 모양이 변치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인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냐? 사망의 골짜기, 즉 몸을 죽일 수 있는 길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살아나는 것이요, 자신의 몸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죽는 다는 것입니다. 상반된 말씀입니다. 인간은 마음과 몸 둘 중의 하나를 처단해야 할 비운에 처해 있는데, 우리는 몸을 처단해야 됩니다.

18-70
국운을 초월하지 못했던 이제까지의 종교
죽는 데도 단계가 많습니다. 몸을 죽이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목을 잘라 죽이면 좋겠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피를 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자라서 오늘날의 내가 되었으니까 한꺼번에 죽이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피를 빼고 뼈와 살을 말리는 기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몸을 죽이기 위해서 종교는 금식을 주장하고 고행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리석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운이 그런 길로 내몰기 때문에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호화찬란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눈으로는 웃고 춤추는 것이나 꽃동산처럼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눈으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라, 귀로는 좋은 퉁소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느누구도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들어라, 세상의 가장 비참한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먹는 것은 제일 나쁜 것을 먹되 그것도 얻어먹으라고 가르칩니다. 얻어먹는 데도 선량한 부자집 할아버지가 주는 밥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간신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도망다니는 사람에게 얻어먹으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 앞에 가서 밥 한술 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귀한 손님 오셨군요, 안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겠어요? 야 이 녀석아 귀찮다 하며 코피가 나도록 때릴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얻어먹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아 올라가야 합니다. 진짜 최고의 종교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가 세계복지화운동을 재창하여야 할 현시점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운동을 하는 종교 단체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종교를 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 단체나 종단을 중심삼은 사회복지화운동은 했지만 국가를 넘어서 세계 주권과 세계 통치권을 가지고는 한번도 그런 운동을 못 했습니다. 어떠한 종교의 전성시기가 있었다 해도 교단을 위주로 한 전성시기였지, 교단과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교운과 국운과 천운이 삼위일체된 운세권내에서 전성시대를 맞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국운을 초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독교회는 한때,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구라파 일대에서 전성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늘땅이 요구하는 기준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지 못했고, 그럴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영원한 전성시대로 연결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18-71
영원한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몸과 마음의 전성시대를 동시에 이루어야 할 텐데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니, 하나님은 둘 중에 몸을 쳐서 마음의 전성시대를 이루자는 작전을 쓰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한 사람의 역사를 발전시켜 놓은 것이 세계사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내적인 면을 책임져 나온 것이 종교요, 외적인 면을 책임져 나온 것이 사회제도와 과학입니다. 오늘날 20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역사 가운데에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몸을 쳐서 굴복시키지 못하면 마음의 전성시대는 올 수 없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이상하신 것과 반대로 움직여 나왔습니다. 외적 세상은 몸을 위주로 한 세상이고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대륙 문명시대로부터 도서 문명시대를 거쳐 반도 문명시대로 넘어갔다가 다시 도서 문명시대를 거쳐서 대륙 문명시대로 돌아오면서 저마다 전성시대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망하기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전성시대를 바라시고 사람들도 전성시대를 바라는 데 왜 망하느냐? 그것은 내, 외가 일치되어서 내적 기준을 중심으로 한 전성시대를 이룬 것이 아니라 외적인 몸을 중심한 전성시대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외적인 전성시대를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세계통일화운동입니다. 그러므로 각 민족을 하나의 문화권내에 흡수해서 하나의 문화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발전과정의 단계를 거쳐 오면서 특수한 민족 앞에 전성기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 민족에게 다른 민족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사상적인 기반이 있으면 다른 민족까지 흡수시켜 나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반이 없을 때는 그때까지의 전성시대를 망하게 하고 새로운 도주라든가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게 하신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하나의 세계 문화권을 형성해 나가면서 내적으로는 사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면 일시에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내적인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사적인 발전과정이 필요합니다.

내적 기준이 완성되어 외적 기준을 정복하는 순간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과정을 거쳐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외적 문화 세계와 같이 내적인 세계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때에 내적 기준만 완결되면 순식간에 외적 사회를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외적 세계를 오늘과 같이 발전시켜 나온 것도 끝날에 가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돕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적 전성시대와 외적 전성시대 간에는 언제나 상충이 벌어집니다. 마음은 몸을 치려 하고 몸은 마음을 치려 합니다. 외적 문화는 언제나 내적 종교를 반대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때에 전성시대가 오면 그때에는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주의로부터 주권이 나와 가지고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행락을 누리게 되면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족속이나 자기 클럽을 위주로 해서 전체를 전부 묶어 버립니다. 그런 주의 주권 국가는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개인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클럽, 자기 종족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천운과 더불어 하나님의 이념과 일치화될 수 있는 주의 주권국가가 전성시대를 맞이한다면 역사와 시대를 중심삼고 세계의 역사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세움을 받았지만 그 책임을 못 했습니다. 그러한 자리를 못잡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즉, 완전한 사람을 중심삼고 완전한 땅과 완전한 주권이 삼위일체가 되어 천운과 일치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새로운 문화세계를 이루고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다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18-73
누가 역사를 이끌어 가느냐
천운에 가까운 이념을 중심삼고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온 교단은 자기 교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종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민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니라,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끝날에 세계 만민을 위하는 성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종교의 이념은 오래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개 종파, 일개 군주, 일개 종족, 일개 민족을 중심삼은 종교는 어느 한 시대에 일시적인 명목을 갖추어서 전성시대를 맞이한다고 해도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발전한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상에 수많은 국가들이 전성시대를 거쳐 갔지만 그 국가들은 천운과 인연맺지 못하고 국운의 인연을 가지고 전성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가 기울어져 가기 시작하면 그 나라의 내적 기준을 계승할 수 있는 제2의 존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전성시대가 기울어져 가게 될 때부터 새로운 종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교는 사선권(死線圈)에서 그 나라의 주권자 앞에 언제나 핍박을 받고 몰리지만 그런 자리에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언제나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전성권내에서 내적인 제 2단계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는 사람은 사선권내에서부터 준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적인 제 2의 출발자로서의 준비를 해 나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회로부터 몰리고 쫓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누가 이끌어 가느냐? 몰리고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단계를 거쳐 발전해 나갑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여기에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는 민족은 세계평화주의를 내세우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 민족을 위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을 위주로 세계 평등화운동에 공헌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역사를 발전시켜 나오는 데 공헌한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세계 만민의 평등화운동, 세계 만민의 형제운동, 세계 만민의 대가족운동 등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왔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공세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가인과 아벨의 싸움입니다. 장자가 언제나 차자를 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치는 날에는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치면 칠수록 빨리 망하여 상대편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2의 단계로 연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전성시대에 싸움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천운의 뜻을 인계받을 수 있는 시대적인 지도자들이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부 그 시대의 주권자들로부터 몰리고 쫓김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이와 같은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아벨이 죽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에 불림받은 지도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려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전성시대가 되면 내적인 전성시대로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외적인 전성시대가 기울어지면 그것을 비료로 삼아 내적인 전성시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외적인 전성시대의 망함이 내적인 전성시대 발전의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패했던 환경이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일치단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저기압과 고기압의 큰 차이에 의해서 태풍이 일어나는 것같이 새로운 이념이 세계사적인 출발의 동기가 되어 새로운 역사적 혁명이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그 시대의 내적인 전성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대에도 외적인 전성시대였으니 사회환경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환경 이상 올라갈 수 있는 내적인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8-75
하나님이 외적인 전성시대를 치시는 이유
하나님은 내적인 전성시대를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절대 외적인 전성시대를 주지 않으십니다. 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외적인 전성시대를 치는 것은 내적인 전성시대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내적인 전성시대의 지도자들은 환경적으로 핍박당하고 몰리는 것입니다. 석가도 그랬고, 공자도 그랬고, 마호메트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느냐? 외적인 몰림에 비례하여 내적으로 공고한 뿌리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육신의 기준보다 마음의 기준이 높은 것처럼, 외적인 기준보다도 내적인 기준이 높기 때문에 몸적인 외적 기준을 쳐서 내적인 기준에 흡수시켜 나가자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모든 민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를 놓고 볼 때, 기독교는 언제까지나 몰릴 것이냐? 언제나 외적인 전성시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를 통해서 내적인 전성시대를 이루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세계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기 교파를 중심삼고 국가적 종족적 가정적으로는 전성할 수 있었지만,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고 천운과 더불어 세계를 표준으로 한 전성시대는 아직까지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성기가 온다고 약속한 날이 끝날입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기독교가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이 시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세기말적인 부패시대가 도래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패하는 동기가 무엇이냐? 첫째는 하늘을 모르는 것이요, 둘째는 땅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모르는 것, 즉 하나님과 사람을 모르는 것이 부패의 원인인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부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늘을 몰라보고, 땅을 몰라보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사람을 몰라보는 것입니다. 타락은 하늘땅을 몰라보고 사람을 몰라보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인간 위주한 사랑을 한 데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든지 음란이 팽창한 사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금 민주사회에서 선진국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 국가의 미래에 국운을 책임질 청년들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 미국의 장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향락주의로 흘러가는 비운에 사로잡혀 몰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늘이 무엇인지 모르고, 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삼은 사랑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청년들이 향락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머지않아 이 나라는 망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계속 그러면 망한다는 거예요. 우리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맨 처음에 하늘을 옳게 알고, 땅을 옳게 알고, 하나님과 사람을 옳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 바로 알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악을 행하라고 해도 못 하고, 사람을 참으로 아는 사람이 그릇된 길을 갈 리 없고, 하늘땅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천주법도에 어긋날 일을 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알고 인간의 사랑이 아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그 시대가 되기 전에는 태평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세기말적인 현단계에 있어서 세계 앞에 어떠한 입장에 놓여 있느냐? 환영받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금까지의 문명을 발전시켜 외적 기준을 소화할 수 있는 테두리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민주세계를 위주로 종교의 교파가 이루어지고 자연적인 환경을 거쳐 종교가 환영받을 수 있는 권내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주사회로부터 환영받는 그 단계에서 안식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현재의 전성시대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적 기준, 즉 내적 기준을 세계적인 입장으로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외적인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서 백 퍼센트 이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 기반을 상실해 버린다면 기독교는 세상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를 비롯한 오늘날의 종교는 비상시에 처해 있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이 사회에서 백 퍼센트 환영받는 자리에서가 아니라 몰림받는 입장에서 새로운 무엇을 갖고 새로운 세계의 창건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 운동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만일 기독교가 세속화된다면 이 기독교는 외적인 세계에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18-77
핍박받을 때도 내적 전성기를 이루겠다는 각오를 했다
오시는 주님이 이 세계에 천국을 건설할 분이라 할진대 오늘날 세계에 있는 기독교가 주님을 맞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면 새로운 종교를 중심삼은 제 3차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제도나 교파적인 제도와 형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사회적인 모든 것을 교회적인 입장에서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사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나라가 해방을 맞아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즈음에 삼천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해방이 왔다고 손을 들어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역사가 이렇게 움직여 나오니 통일교회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일본이 전성시대를 누릴 때 한국은 비참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세계적인 내적 전성시기를 출발시키기 위해 기반을 닦고 있을 때 외적 전성시대에 있던 일본 독재자들은 그들의 목을 잘랐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나왔던 기독교는 해방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제2차 출발을 하여 이 민족 앞에 찾아온 국운을 세계 운세로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출발을 해 놓고도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사회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미국의 풍조와 사조에 빨려들어 갔습니다. 자본주의의 그늘에 전부 파묻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개인 위주한 교파와 교권주의, 개인 위주한 교회로 나가다 보니 다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회와 더불어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교파 앞에 환영받는 내가 될 것이냐? 이 나라와 민족 앞에 환영받을 수 있는 통일교회를 만들 것이냐? 통일교회가 역사 앞에 서기 위해서는 교파 앞에 반대받아야 합니다. 민족 앞에 반대받아야 합니다. 시련 도상에서 부대껴야 합니다. 그들 앞에 환영받게 되면 새로운 것을 창건할 수 없고, 제 2의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통일교회가 몰리고 쫓기고 핍박받는 사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때에는 몰리고 쫓겼지만 그 가운데에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그 기반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지금은 핍박을 받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맞으면서도 찬란한 내적인 전성기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의 내적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사적인 모든 고초를 극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몰려오는 풍파와 닥쳐오는 시련과 탄식과 절망을 극복할 때 우리는 성공을 기약할 수 있고 승리를 다짐할 수 있으며 어떠한 환난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몰리고 쫓기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갖고, 쇠고랑을 찬 영어의 몸이 되어서도 희망을 갖고 내일을 바라보며 승리의 모습이 부럽지 않다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위환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련을 통해서 환경에 동화될 것이냐, 환경을 동화시킬 것이냐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간 투쟁 역사를 거쳐오고 있고 여러분은 7년노정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서 지난날을 회고해 볼 때 서러운 일도 있었지만 일면 통쾌하고 반갑고 기쁜 일도 많았습니다.

18-79
희망에 벅차야 할 통일교인들
우리의 재산은 지금까지 찾아 놓은 통일교회의 교인들이요, 지금까지 시련을 극복해 나온 수많은 사연들입니다. 이 재산이 세계에 퍼져 뭇사람들의 가슴에 새로이 심겨지는 날, 죽었던 생명들이 부활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언제나 여러분에게 전통을 존중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어떠한 귀한 가치보다도 전통을 존중시해야 합니다. 그 전통은 외적 전성시대에 박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적 전성시대를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새로운 사회를 재결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 뜻과 아버지의 뜻이 다르면, 내 뜻은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되고 아버지의 뜻은 천륜과 접촉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사회와 접촉하는 길과 천륜과 접촉하는 두 길이 있는 데 어떤 길을 따라갈 것이냐? 천륜과 접촉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합니다. 부패한 사회환경에서 환영받는 것보다도 제 2의 새로운 부흥과 새로운 출발을 바라보며 내적 전성기를 다짐해 가며 천륜과 접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싸움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환경이 제시하는 문제가 크면 클수록, 그 내용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핍박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핍박 앞에 스스로 후퇴하고 좌절당하는 약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상에 배반자가 되는 것이요, 천주의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파들을 수습해서 새로운 역사시대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외적으로나 또는 세계 정세로 볼 때 우리 통일교회와 기독교가 바로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들이 외적인 전성시대에서 내적인 전성시대의 기준을 세워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에 있어서의 전성시대는 어느 때냐? 지금까지 사회를 중심삼고 살았던 때가 여러분의 전성시대였습니다. 통일교회 들어오기 전 시대가 여러분의 전성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서 행락을 추구하고 거기에서 인생의 승리를 추구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통일교회에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러나 통일교회에서 들어온 그날부터 자신의 사회적인 기반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 사회적인 환경이 높고 클수록 그 크기에 비례하여 당해야 하는 시련과 고통도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극복해야 됩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7년노정을 가고 있는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습니까? 사회 환경을 타개하고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벅찬 희망이 가슴에 사무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고생을 하니까 옛날에는 고기 뼈다귀국도 먹었는데 이건 뭐야 40년 동안 메추라기와 만나만 먹어야 하다니 하며 애급 궁중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모세를 원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이요, 본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옛날이 좋았는데 하지는 않습니까?

세계적인 외적 전성시대는 망해야 합니다. 참이 나타나고 참의 기준이 세워지면 그것은 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리요, 천리입니다. 망하지 않으면 망하게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아는 사람들은 그 외적인 환경을 저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버리고 나와서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절대적인 마음을 중심삼고 내적 기준을 다시 세워서 제 2의 나를 주관하고 제 2의 나를 지배할 수 있는 제 2의 인격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망각해 버리고 옛날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제 2의 내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언젠가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미국이 현재는 세계 국가 앞에 전성시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국이 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을 위주로 하는 미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의 약소국가, 불쌍한 국가를 위하는 미국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그들의 국민들을 동원하여 세계의 못사는 민족을 자신들의 동생같이, 형님같이 대해 주며 잘살게 해주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18-81
기필코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올 것인데
그러면 통일교회의 전성시대는 어느 때일 것이냐?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있을 것이어늘 그 때가 어느 때일 것이냐? 전성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 전성의 때가 오면 세계가 움직일 것입니다. 세계가 움직일 그 때가 오면 통일교회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 선생님은 그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국대로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오게 되면 한국을 움직일 수 있는 통일신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내적 전성시대를 책임질 수 있는 통일신도들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에 통일교회를 위주로 한 전성시대가 오게 되면 한민족은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내적인 전성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주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민족들을 구하기 위해 어느 민족도 하지 못하는 일을 선두에 서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충성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새세계를 건설할 것이냐? 아닙니다. 반드시 통일교회에 충성했던 사람을 최일선에 내세워서 세계를 위해 고생시킬 것입니다.

만약 한국 민족이 이 책임을 못하게 되면 그런 사명을 할 수 있는 통일교회 이념을 갖춘 제 2의 민족이 나와야 합니다. 일본도 좋고 미국도 좋고 독일도 좋습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공산주의라도 그런 이념을 가지고 나오면 좋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세계적인 입장에서 그 이념을 자기 이념과 같이 형성해서 영화를 누릴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이 나라가 우리 뜻 앞에 가까와 오고 환경이 우리 앞에 복을 가지고 올지라도 기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일에 갈 길이 있나니 내일의 소망을 다짐하고 내일 넘어야 할 그 고개를 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련을 넘기 위한 연단의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모든 싸움은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싸우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그때를 맞이하기 위해 삼천리 반도 이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보다도 민족을 초월하여 힘차고 늠름하게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의기양양한 청년 남녀들이 많이 않으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못 됩니다. 이렇게 하는 민족이 통일교회와 동역자가 되어 세계적인 주도권을 장악한 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느냐? 또한 선생님은 여러분이 어떠한 입장에 서기를 기대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행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계무대를 향하여 온갖 시련과 고통을 무릅쓰고, 새로운 세계의 창건을 위하여 모진 풍상을 홀로 맡으며 책임져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통일교회의 운세는 세계적인 운세와 더불어 세계를 지도하고 지배할 수 있을 것이로되 만약 그러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염려됩니다. 가정 생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만족만 추구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영광 가운데 도취해 가지고는 내일에 넘어가야 할 고개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내적으로 더욱 다짐하고 결의하고 안팎의 모든 것을 정비하여 총진격을 해야 할 때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방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온 역사시대를 종합한 세계사적인 전성시대인 20세기의 전성시대를 지킬 수 있는 내적 전성시대의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그는 세계적인 통일왕국의 대표자가 될 것이요, 그러한 단체가 있다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단체가 될 것이요, 그러한 민족과 국가가 있다면 세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민족이나 국가가 있다면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주도적인 책임을 맡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아프리카의 흑암지에 찬란히 휘날릴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을 꽂고 하나님 앞에 개가를 불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한국, 아시아 등 비참한 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최후의 승리를 결정짓고 하나님 앞에 찬송드릴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겠다고 몸부림치는 민족이 되면 틀림없이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은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충분한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청년 남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18-83
하나님의 사상과 전통을 상속받아 실천하면
선생님은 멀지 않아서 외국에 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민족적인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년간 천신만고 수고의 길을 개의치 않고 걸어왔기에 이 민족 앞에 우리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런 강력한 힘을 국가에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활동해 온 내용을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이 여기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환영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마를 맞대고 웃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만났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대전쟁 마당에서 승리할 그 날을 위하여 만났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총칼을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해오신 작전법, 즉 전통과 사상을 상속받아서 실전 무대에서 그것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실된 것을 만존재 앞에 보여 주고 만민과 만존재물들이 그 승리의 권한 앞에 머리 숙이고 들어와서 모든 것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안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날이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이 완결되는 날이요, 만민이 평등한 세계를 맞이하여 안식할 수 있는 지상천국의 이념이 확정되는 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가야 되겠습니다. 여기 젊은이들, 갈 거야, 안 갈 거야? 「가겠습니다」 누가 총칼을 빼들고 위협해도 가야 합니다. 그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날을 위해서 싸우고, 그날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가는 것도 그날에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요, 내가 싸우는 것도 그날을 위한 승리의 표적을 세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40개국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이 뭐냐 하면,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지금 세계의 경제권을 전부 장악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술 분야가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본래 산업혁명은 영국을 중심삼고 일어났는데 미국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경제발전을 이룩했느냐?

미국의 인종은 종합 인종입니다. 수많은 민족이 종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대개 어떠한 사람들이 모이느냐? 전에 그들이 살던 나라와 민족 앞에 환영받던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닙니다. 모두 반대받는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민족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나라만을 중심삼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덩치가 크고 배포가 크다는 것입니다. 색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주권 국가 앞에 배반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퓨리터니즘을 중심삼고 자유신앙을 부르짖으며 규합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상적 기준이 같고 생활적 기준이 같아진 것입니다. 거기에 강력하고 울뚝불뚝한 성격까지 합해져서 덩치가 커지니 그 앞에서 작은 것은 모두 깨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기반을 넓혀 나갔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본국에서 몰리고 쫓김을 받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기반이 없었지요. 때문에 미국에 가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가지고 본국에 돌아가서 그들의 종족 앞에 환영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경제적 기반을 세워 가지고 발전한 것이 미국입니다.

18-85
세계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나가라
오늘날의 세계를 볼 때, 서양 사람, 동양 사람,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전부다 사상적으로 다릅니다. 사상이 같으면 목적관이 같아지고, 심정적으로 하나 됩니다. 또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게 되면, 생활 감정이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사상이 같고 목적이 같으면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은 반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앞으로 국제결혼을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몰리고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혼혈아들입니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몰리고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혼혈인 국가를 만들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중심삼고 아시아 일대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21년 동안 한국 민족에게 쫓김받으며 싸우느라 청춘시대를 다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습니다. 춤을 춰도 누구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내가 놀았다면 누구보다 잘 놀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도 놀아보지 못하고 요모양 요꼴이 되었으니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분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적으로 보면 멋집니다. 분함보다 멋지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이 일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 식구들을 뒤엎을 것입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대학을 왜 들어갑니까? 밥벌이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통일교회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대학을 가더라도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미국 갔다 오면 12개국에 선교사를 내보낼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재산만 팔은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잘살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민족을 잘살게 하고, 세계를 잘살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공적인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법입니다. 그러니 그러지 않은 모든 것은 공법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여러분들을 내보낼 곳이 없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환영받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이제까지 반대받고 다녔는 데 여러분들이 나가서 환영받고 다니니까 기분이 나쁩니다. 정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기분 나빠요. (웃음) 왜? 선생님이 기분 나빠 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것 아닌가? 욕먹던 통일교회 선생님이 기분 좋아하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럴까 봐서 조금 기분 나빠 하는 것입니다. (웃음)

이제는 제 2의 출전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은 아시아 대륙에 파병된 군대입니다. 전번에 선생님이 아시아의 남방국들을 순방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더위였습니다. 더운 데서 선교가 제일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인도 캘커타에 가서 한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온도가 41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잠을 잤습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면 병이 난다고 하지만 병은 무슨 병이에요. 선풍기 아래서 낮잠이라도 자고 나면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야! 여기에서 전도하려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거기에 갈 사람이 있습니까?

애급에서는 호텔에서 나와 가지고 조금만 돌아다녀도 땀이 납니다. 시간이 바쁘다고 해서 뛰어가게 되면 그곳 사람들이 말립니다. 뛰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사병이 나고 무슨 병이 나고 야단인데 뛰어다니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경험하고 알려주는 데 뛸 수 있어요?

아시아에서 어디에 사람이 더 많은가 생각해 볼 때, 극동지방보다 열대지방에 더 많습니다. 중국에도 전인구의 절반이 더운 지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비율로 볼 때 아시아에서도 북쪽보다 남쪽에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때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인들의 무덤을 전부 남방에다 만들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잘 생각했습니까, 못 생각했습니까? 이거 여지껏 헛 얘기 했나 보군. 못 알아 듣는 것을 보니. 잘 생각했어요, 못 생각했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선생님보다도 더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남방 어느 큰 섬에 통일교인들을 비행기로 모두 옮겨 거기에서 살게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을 처음 갔을 때 미국인들은 선생님이 그들의 생활양식에 며칠만에 동화되는 가 지켜보자는 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주의’로 말하면 세계주의자인데 미국을 동화시켜야지 미국에 동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웃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 시간 이후부터 그들이 선생님 앞에 굴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18-87
심정은 어디나 통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같습니다. 심정적인 것은 같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 그들은 나보다 더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그리고 한국의 통일교회 식구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보다도 더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지방을 순회할 때 통일교회 여자들이 선생님을 붙들고 입맞추자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젊은이들은 막 붙들어 잡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서양 풍속이지 결코 하늘의 법도는 아니니 절대 안 된다는 한계를 지어 놓고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에게는 미국식 인사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도 선생님이 떠날 때에 배웅을 하기 위해서 비행장에 나오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선생님이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국 식구들의 얼굴을 보면 점점 침울해 집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비행기에 올라서면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비행기 타러 나가려고 모두에게 인사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다가 선생님이 가는 것도 못 보고는 또 못 보았다고 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울면 창피하다고 울지 않습니다. 부자지간에 창피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 세계순회 때는 일곱 번째 나라에 도착하니 한 아주머니가 머리를 풀고 나와서 선생님한테 누구든지 맨 먼저 키스를 한번 하면 역사에 남는다며 그렇게 하라고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다고 하면서 키스를 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 어디를 사랑하느냐? 손끝을 사랑하느냐, 전체를 사랑하느냐고 했더니 전체를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곳도 사랑하느냐고 하니 그것도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뺨을 제일 사랑하는 데, 여자가 내 뺨을 건드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서양의 남편들은 이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과 다른 것입니다. 부인은 동양의 선생님과 키스하기를 바라고 뒤따라 다니는 데도 그런 부인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생활감정이 동양과 그렇게 다릅니다.

그러면 심정의 기준이 무엇이냐. 남방 나라, 또는 어떤 나라라 하더라도 여러분이 심정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높은 데로 올라가게 되면 낮은 데로 내려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수도물이 흐르는 원리를 알 것입니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은 낮은 데로 흘러서 고이게 마련입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연결만 되면 물은 흘러와서 가득 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심정의 파이프만 하나님과 연결시켜 놓으십시오. 심정의 파이프만 하나님과 연결시켜 놓으면 가지 말라고 해도 안 갈 수 없고, 넘지 말라고 해도 안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을 계승시켜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심정만 제대로 전해 주면, 주지 말라고 해도 제일 좋은 집까지도 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집을 가지고 있다가도 내가 필요하니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심정이 열대지방의 40도가 넘는 온도보다 낮을 것이냐 높을 것이냐? 심정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높습니다. 열대지방에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국 사람 이상으로 선생님의 말씀에 취하는 사람이 발견되는 날에는 45도 50도를 넘는 곳에서라도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위를 느끼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도수가 높아서 40도 45도까지도 넘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백 퍼센트 합격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운 것도, 밥 먹는 것도 추운 것도 모두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신앙의 열도가 강한 사람이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남자가 열도에 강합니까? 여자가 열도에 강합니까? 여자가 열도에는 강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려고 합니다. 만약 인도로 보내려면 사탄세계에 여자만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잘 훈련된 인도 사람과 결혼시켜서 보낼 것입니다. 세계 사람이면 아무나 미국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인도로 선교를 보낼 여자들을 미국 통일교회에 있는 인도 사람과 결혼을 시켜서 인도로 귀국시킬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우리 나라를 위하고, 아시아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이 훨씬 값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18-89
영원한 전성시대를 위해 정성들이자
선생님은 한국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한국을 사랑하는 것같이 여러분도 한국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한국을 더 사랑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더 사랑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도 혼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사랑하면 더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한국을 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사랑합니까? 세계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조건이 뭐가 있느냐고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말로만 사랑해요? 조건뿐만이 아니라 사실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못하는 일까지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주인은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누구보다도 더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후보자는 누구냐? 한국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미국 땅에 사람이 정착하기 전부터 미국 땅을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주인은 누구냐? 한국 땅에 배달민족을 세우시기 전부터 한국 땅을 사랑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제일 어려울 때도 변치 않고 사랑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아들딸이 된다면 미국 땅도 내 땅이요, 한국 땅도 내 땅이요, 세계 땅도 내 땅이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를 사랑해요? 세계를 사랑한다면 조건은 세워야 합니다. 세계를 위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 아들은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지 않은 것이 인연될 수 없고, 인연 되어지지 않은 것이 성사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들인 사람이 환영받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은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선생님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성시대를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불교나 유교는 물론, 모든 종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도의 기준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한때 종교가 일국의 주권을 중심삼고 천하를 호령하는 시대를 맞이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도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전성시대 앞에 어떤 방법으로 투쟁을 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인 기준을 세워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창건할 수 있는 내적인 전성 기반을 마련하여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전성시대를 이룰 수 있는 세계를 창건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대를 이루어 놓지 않으면 평화의 왕국은 절대로 도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바라보고 그런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이념을 중심삼고 나가기 때문에 내적인 전성기반 위에 외적인 전성기준을 일체화시켜서 하나님과 일체화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국의 승리, 만천하의 승리, 최후의 승리의 종착점에서 하나님 앞에 승리를 돌려 드리고 하나님을 영원히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가야만 비로소 해원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역사상의 수많은 전성시대는 흥망의 노정을 거쳐왔지만 그때부터는 영원한 전성시대 즉, 영원한 태평왕국, 지상천국, 천년왕국이 건설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였고, 그 세계를 창건하기 위해서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8-91
기 도
저희들 인생에 있어서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겠사옵니까? 아버지가 없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들이 인생노정에서 아버지를 발견한 기쁨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사옵나이까? 백만장자가 된다 해도 이 기쁨에 비할 수 없고, 억천만세를 통치할 수 있고, 만국에 호령할 수 있는 명장이 되더라도 이 기쁨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고귀한 인생의 가치와 무한히 참되고 선한 모습을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아버님이 누구시며 아버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이시여! 통일의 제단을 이끌어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지금까지 아버님은 수많은 역경 가운데서 저희들을 훈련시켜 나오셨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생사를 걸어 놓고 혈혈단신으로 투쟁하다 최후의 신음을 하는 그 마당에 있어서도 아버님께서는 이 세상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늘날까지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 개척해 나오셨으며, 저희들을 광명한 세계로 인도해 주셨사옵니다. 그 은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아뢸 수 없나이다. 두 손을 합하여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숙여 감사드리오나 억천만 번 감사를 드려도 아버님의 은사에 보답할 수 없는 황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 남모르게 저희들을 대신하여 수고하신 노고가 얼마나 크시옵니까? 세상에서는 잘산다고 좋아하는 이 판국에 저희들은 몰리고 쫓기는 눈물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사옵니다. 슬픔과 더불어 남모르는 울음길을 걸어가며 외로움과 한숨과 더불어 아버지를 불러야 할 사연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세상에서 즐겁다고 행락을 노래하는 그들은 꿈조차 꾸지 못할 생활이옵니다. 이것들로 하여금 영원한 세계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것이 아버님의 은사요, 사랑인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넘었던 외로운 골까지가 다시 그립사옵니다. 싸움의 터에서 ‘내가 있나니 너는 낙망하지 말라’고 분부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그립사옵고, 아버지의 그 품이 그립나이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기에 만사를 잊어버리고 달려가는 그런 마음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사실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의 역군들이 가는 발걸음이 여기에서 정지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역사의 부름 앞에 순응하여야 되겠사옵니다.

시대의 역경을 거슬러 올라가 하늘의 정병으로서 이 시대를 창건하고, 이 시대의 악을 토벌하여 승리의 방패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들 앞에 놓여져 있사오니, 이 사명 앞에 충성을 다할 수 있고, 충절을 다할 수 있는 아버님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삼천리 반도를 기억하여 주시옵고, 삼천만 민족의 운명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과정에서 슬펐던 민족이요, 싸움터에서 밟힌 흔적을 가진 외로운 민족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정과 일치된 마음을 갖고 있는 이 민족을 찾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안식하실 수 있는 한 날과 환희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일의 깃발을 들고 결의하고 나선 저희들이 어느 한때 아버님을 편안히 모신 날이 있었습니까?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중심삼고 아버지를 모신다고 하면서도 저희들은 이제껏 아버지를 모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앞에 놓고 아버지를 헐뜯고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가시밭길로 만들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새로운 계기로 삼으시옵고,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새로운 신념을 이들의 마음에 깊이 주입시켜 주시옵소서. 생명이 약동할 수 있는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그 자신이 갈 방향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결정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지에 널려 이날을 기억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또한 아버지의 뜻을 알고 통일교회를 따라 나오면서 새로운 이상세계와 새로운 복지역사를 개척해 가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지켜 주시옵고, 가다가 지쳐서 주저하거나 쓰러진 자들이 있사옵니까? 다시 한번 불러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 형제들을 통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어 내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하시옵고,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시어서 실체 세계와 힘을 합하여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아버지, 길을 열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온 세계에 널려져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품어 주시옵고, 남아진 세계의 싸움터를 지킬 수 있는 하늘의 용장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싸움터에서도 강하고 담대하여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하늘의 용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아버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앞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통일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시옵고, 아버님이 분부하고 싶은 모든 것을 분부하시옵소서. 저희들을 직접적으로 지도하시고 저희들에게 직접적으로 훈시하시어서 목적지까지 무난히 갈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은사와 승리가 저희들의 움직임마다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