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4 to 18-336: 만민지원 통일세계

만민지원 통일세계
1967.08.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18-314
만민지원 통일세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새로 온 분들을 위해서 잠깐 동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통일교회에 새로 들어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종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뭏든 이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역사 과정이 어떠하였고, 또 이제부터는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통일교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하고 명백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목표 앞에 철저히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18-314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가가 문제
이 시간 말씀드릴 제목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입니다.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라는 것은 과거의 사람은 물론 현재의 사람, 또 미래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천추만대에 이르도록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추만대의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런 중에 ‘통일’이라는 간판을 들고 나온 통일교회가 이 한국에서 생겨났으니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은 과거에도 모두가 바라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수많은 군왕들은 약소민족을 흡수해서 하나의 통일된 왕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들의 판도를 확장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보아 과거나 현재의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이나 예전부터 통일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도 역시 통일을 원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원하고 있는 통일을 어떻게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무엇이 제일 가깝겠습니까? 나라가 가까와요? 나라도 가깝기는 하지만 제일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제일 가까우냐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제일 가깝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사이가 제일 가깝다고도 합니다. 물론 부부 사이도 가깝고 부모와 자식 사이도 가깝지만 그런 사이보다 더 가까운 것은 바로 자기자신입니다.

때문에 제일 가까운 것이 누구냐 할 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자기 자신이 제일 가깝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라는 존재가 제일 가까운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모 때문에 서럽다, 형제 때문에 서럽다, 혹은 자식 때문에 서럽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서럽다는 말도 결국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좋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여건을 통해야 그런 결과가 나오겠지만, 결국 그것도 자신의 관념에서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도, 제일 서러운 것도, 제일 좋은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18-316
우주통일 바라기 전에 자아통일 완성해야
지금도 세계 만민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은 이 통일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서 세계를 지도하는 최선봉에 선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를 비롯한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고, 천주가 통일된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통일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통일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즉, 외적 세계가 통일이 되어서 행복의 꿈나라에 잠길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세계가 전개된다 할지라도 그 세계가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성공을 해야지, 성공을 하면 이렇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 성공이 자기만을 중심삼고, 오직 자기 기준에서 이루어진 성공이라면 그 사람은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세계를 통일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를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되지 못하는 한, 그 통일은 불행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도 단지 이 세계만을 중심삼고 통일하려 한다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도 완전히 통일된 주체로 계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의 변천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시대의 존망에도 영향받지 않는 확고부동한 통일의 주체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완전히 이루어진 통일세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도 그러하시거늘 자녀로 지음받은 인간도 역시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싸우며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더라도 이 민족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일기준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그 구성된 모임 자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실체로 규합될 수 있는 통일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그러하듯이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통일을 바라기 전에 자아통일을 완성해야 하며, 우주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해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교회 자체가 통일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선 여러분 자신이 통일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18-317
좋은 방향으로 통일시키려면
사람을 가만히 보면 참으로 이상한 존재입니다. 한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한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극에서 극으로 연락할 수 있고, 극에서 극을 뒤넘이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통일하는 데는 나쁜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과 좋은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 두 가지의 방향이 있습니다. 나쁜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는 연구도 필요없고, 생각도 필요없고, 궁리도 할 필요가 업습니다. 그 통일은 급속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는 많은 연구와 생각과 궁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있느냐? 절대로 혼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반드시 몸과 더불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없는 자리에는 마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없을 때는 마음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불행하지만 할 수 없이 영계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은 몸과 완전히 하나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각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과는 서로 친구가 될까요? 싸움패가 될까요? 만약 친구가 되지 못하고 싸움패가 된다면, 어느 것이 싸움의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싸우게 되면 언제든지 몸이 마음에게 먼저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만히 있는데 몸이 마음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남자의 몸이든, 여자의 몸이든 그 몸은 마음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한 개체에 있어서 마음과 몸의 통일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마음아, 몸아, 너희들 통일해라’ 명령한다고 해서 마음과 몸이 통일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8-318
완전구원을 위해 썩은 부분은 베어 버려야
하나님이 인간을 왜 구원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만민을 전부 분열시켜서 이 세상을 싸움터로 만들려고 구원하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통일되어서 서로 좋아하고, 서로가 하나의 목적 아래 화동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세계를 구상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만민구원을 목적으로 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평화를 고대하고 계신다 하더라도, 언제나 말썽만 피우는 말썽꾸러기 이 몸을 그대로 놔둔 채 통일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만민이 바라고 소망하는 이상세계, 통일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먼저 통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그대로 있어서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외과 의사가 병이 나서 썩어 들어가는 환자의 다리를 놓고 수술은 하지 않고 ‘이 다리가 수십년 동안 이만큼 자라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 불쌍하구나 지금까지의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손대면 안 되지’ 하고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그냥 놔둔다면 그 환자의 생명까지 잃게 되고 맙니다.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데 그냥 두었다가는 몸뚱이마저 썩어 버리겠다’ 하면서 환자가 아무리 아파하더라도 무자비하게 병든 다리를 자를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입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 이 둘 중에 하나는 싸움패입니다. 여러분, 싸움패 좋아합니까? 싸움패라면 누구나 기분 나빠합니다. 싸움을 하지 않는 평화주의를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몸 가운데에는 싸움패적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이 있게 된 원인은 타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개체를 두고 보더라도 선과 악의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가 내 몸 안에 있습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반하여 악을 지향하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짓지 못하면 수만년 역사 가운데 원수의 괴물인 몸은 언제나 그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이시라면 비수를 가지고 인간의 썩은 부분을 베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훌륭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하나님을 바랍니까? ‘몸아, 죄많은 세상에서 이 만큼이라도 남아지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했느냐. 공로가 많았다’ 하고 등을 두드려 주는 하나님을 바랍니까? 아니면 무자비하게 이몸을 처치하는 하나님을 바랍니까? 어떠한 하나님이 좋을 것 같습니까?

이 몸을 단번에 해치우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몸은 타락세계와 연락할 수 있는 안테나입니다. 또한 이 몸은 인간세계의 죄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몹시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 사람은 속죄해야 합니다. 속죄의 역사가 지상에서 벌어지게 되면 통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몸을 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두 목적을 지닌 사람을 지었다면 그 하나님은 논리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목적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두 개의 목적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개의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는 존재할 수가 없고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명동에도 가고 종로에도 가겠다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갖게 된다면, 한 몸이 두 곳을 동시에 갈 수 없기에 먼저 두 목적이 서로 싸움을 해야 됩니다. 이기 가라, 저리 가라고 하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어찌하여 인생 행로를 고해(苦海)라고 하느냐? 두 목적세계의 기로에 서서 어느 한 곳을 결정지어서 가야 할 숙명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민거리를 타개하기 위한 싸움이 남아졌기 때문에 인생 행로는 고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 개의 목적 중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목적에 완결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본래에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기에 두 목적에 이끌려 살다가 보면 어느덧 백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평화를 가질 수 없고 행복이 깃들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해일 뿐만 아니라 고통과 비애, 그리고 비참과 탄식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지상의 인간에 대한 처리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8-320
참종교는 만민에게 필요한 것
그 처리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돈과 권세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지상에 종교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라는 것은 만민에게 필요한 것이냐? 아니면, 어떤 특수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냐?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늙어 죽게 되었을 때 교회에 찾아가서 그저 예수님 믿다가 천당 가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천당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통일된 하나님으로서 수천년을 이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의 요소와 일치될 수 없는 사람은 통일된 세계인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으로는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없는 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 세계의 상도(傷悼)를 해결짓고 인간을 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세워 놓은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떠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냐? 오늘날의 대학교수들, 혹은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종교란 약자가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을 본질적인 입장에서 분석해 보면 그들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들은 대부분 통일의 요건을 반대하는 악당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세계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는 특별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에게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죽었을 뿐입니다. 또 미래의 사람들도 알아야 하며 그들에게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어떠한 것인가? 여러 사람 가운데 나쁜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그 나쁜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 종교인가? 아니면 좋은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 종교인가? 어떠한 사람을 키워야 될 것인가? 종교의 가르침은 좋은 사람의 양심을 키워 주고, 사람 속에 있는 나쁜 요소, 즉 악을 굴복시키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원수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그러면 고차적인 종교란 어떠한 것이냐? 세상과 타협하는 종교는 시시한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결국 망하고 맙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의 고빗길을 모조리 청산할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선에 가까이 접하는 고차적인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육신을 부정하고, 생활을 부정하고, 악의 세상을 부정하고 나서야 됩니다. 외적인 전체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 참된 종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도 섬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육정을 따라가는 생활에서 벗어나 독신생활을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세계에 종교라는 것이 나와서 육신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절대적인 선을 세울 수 있는 어떠한 주인이 인류역사의 종말에 나타나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는 선한 세계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에는 재림사상이 있으며, 천국을 동경하는 이상세계와의 접경을 지어 놓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육신을 완전히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입장에서 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세워지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룬다고 한다면, 그 세계가 바로 지상천국이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 세계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의 모든 전쟁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과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육신을 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이 인류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육신은 원수의 모태요, 죄악의 근본 뿌리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이렇듯 몸을 치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의 근본이기에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통하여 처참하게 몸을 치셨던 것입니다. 몸은 높아지기를 원하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데, 종교는 몸에게 복종하고 순종해라, 죽어서 제물되라고 가르칩니다. 전부 반대로 가르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을 침으로써 세계적인 밧줄을 타고 나가기 위함입니다.

18-322
무한히 큰 인간의 마음
여러분은 마음이 좋은 것임을 알지요? 마음이 선을 지향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갑에 돈이 백원 있는데 불쌍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러면 마음은 ‘야 그 돈을 불쌍한 사람한테 줘라’ 하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너는 속에 내의라도 입었으니까 그 웃도리도 벗어 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마음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 좋은 사람이 삼천만 동포에게 각각 이천만원씩 나눠 주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야, 이제 너 그만큼 했으면 네 할 도리는 다했으니 이제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마음이 그래요? 천만에. ‘야 이녀석아, 한국을 구했으면 일본이 있지 않니? 아시아가 있지 않니? 30억 인류가 있지 않니? ‘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계에 가서까지도 그렇게 하라고 마음은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마음은 나를 위해서든 독재자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놈의 마음을 따라가다가는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 안 해 봤습니까? 여러분, 마음이 나와 제일 가까운 것을 보면 좋긴 좋은데, 이 옴을 따라가다가는 다 가지고 못해서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마음이 하나님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마음이 말하기를 세계를 전부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편안히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지구보다 더 큰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보다 더 큰 우주가 있고, 이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 하나님을 점령해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도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마음도 하나의 결과인데 마음이 활동할 수 있는 동기가 없어 가지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18-323
사랑과 수수작용
오늘날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를 막론하고 과학자들은 이 우주, 이 자연이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물질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물질은 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힘은 그 자체만으로서는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힘도 주고받는 작용을 하지 않으면 상대적인 기준이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에서 작용하고 발생되는 힘도 사지백체에서 주고받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그것에 비례해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주고받는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고 받는 작용을 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혼자서는 절대 주고받는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고받는 작용을 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상대입니다. 이것은 모든 존재 양상의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주고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서부터 먼저 주고 받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상대적 요건을 갖추어서 서로 주고받아야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남자는 여자가 필요없다고 하고, 여자는 남자가 필요없다고 한다면 백년도 못 가서 세계는 다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즉 주고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며 가정을 이루어 왔던 것입니다. 때문에 사랑이란 주고받는 작용을 일으키는 힘을 말합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작용의 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힘의 모체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작용이 있어야 되고 주고받는 작용이 있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즉, 상대요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맨 처음 출발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또한 지금까지 발전해온 것의 출발은 무엇인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모순에 의한 투쟁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가 성립되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즉 상대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데서 우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어떤 사람이 명동에 가려고 하는데, 상대적인 목적이 없이 간다면 그 걸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간다, 온다 하는 작용도 반드시 상대적인 요건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절대로 작용이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용이 벌어지지 않으면 힘이 나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근본도 역시 상대적인 요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적인 요건은 마이너스(-), 즉 손해보는 일에 작용을 하겠느냐, 이익보는 일에 작용을 하겠느냐? 만약에 어디에 갈 때 손해보기 위해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플러스(+), 즉 이익이 되는 요건이 있을 때에 가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데에는 손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물질의 구성 요소인 원소들의 작용을 살펴봐도, 두 원소가 합하려면 합하기 전보다 더 나은 요건이 있어야만 서로 화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에게 도움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지 않고는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18-325
수수작용의 동기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모순 대립되어 서로 작용한다고 하는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명동 거리를 오가는 청년 남녀들이 괜히 오가는 것 같지만 자신들에게는 플러스(+)가 되는 요건이 있기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단돈 100원이라도 플러스(+)시키기 위해서 왔다 갔다하는 것이지, 손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감각이 이러할진대 만물도 이 법도의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을 발견하기 위하여 기쁨과 행복의 내용을 풀어 놓은 것입니다. 손해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힘이 나오기 위해서도 상대적인 요건이 필요한데, 그 상대적인 요건은 반드시 플러스(+) 될 수 있는 데서만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보면 마음이 자꾸 욕심을 부리는 데 그것이 손해보는 요건을 위해서 그러겠습니까? 아니면 이익되는 요건을 찾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러겠습니까? 그것은 이익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기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온다’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천지원칙적으로 플러스(+)작용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철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양심은 어찌하여 나라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지를 넘어 창조주까지도 넘고 또 넘어가는 작용을 하려고 하느냐? 이것은 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점령해서 기뻐할 때에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것도 사람 그 자체보다는 그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속에 숨어 있는 사랑까지 점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최고 높이 올라가서 머무를 수 있는 궁극적인 안식처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고서는 인생의 행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18-326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해야 세계통일이 가능
이렇게 엄청난 사람의 마음을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를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게 될 때에 비로소 마음이 그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점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아가씨라도, 한 나라의 총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나이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아가씨는 그 나라에서 첫째 가는 여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아가씨라도 그 아가씨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 아가씨를 국민학교 졸업생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부인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가씨가 대통령의 사랑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대통령과 동반적인 가치를 지니고 그 자리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권위와 권한을 갖게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당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본질적인 터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가 흘러 왔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내용을 보다 철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고차적인 종교요, 세계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비교해 볼 때 기독교가 그런 내용을 가장 많이 품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가르칩니다. 또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들은 신부라고 가르칩니다. 신랑 신부가 된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세우려 했던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하나님이 세운 세계적인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기독교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믿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악한 마음을 빼 버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안 믿어도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팽개친 인간이기에 그 사랑을 다시 찾지 않으면 사람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계심을 밝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통일교회를 세워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세계의 판도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사랑을 빼 놓고 이상과 행복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그런 사람들은 전부다 망할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망할 무리입니다. 만약 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망하게 해야 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사랑을 무시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적인 모든 정적(情的)인 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부정되지 않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 만복의 근원이요, 모든 힘의 총괄적인 중심의 모체요, 절대적인 통일의 실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통일세계에 가담할 수 있고, 통일세계의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거기까지 이른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런데 마음은 어찌하여 현실을 부정하느냐? 부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찾기 위해 현실을 폭군과 같이 때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던 것 이상의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현실을 부정하고 몸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희망봉의 표준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세계통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들을 빼 놓고는 통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바탕을 증거할 수 있는 점령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18-328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는 방법
사람의 마음과 몸을 통일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번째는 이 몸을 옥살박살내서 점령하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몸을 치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설사났을 때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서 먹이면 잘 낫습니다. 그렇지만 개구리를 잡아 죽여 놓고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몸을 주관하는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마음은 허풍선같이 한번도 몸과 대등하게 싸워 보지 못하고 번번히 져 왔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에다 주사를 놔서 힘을 한 2-3배쯤 늘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면 몸을 끌고 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열심히 잡아끌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튜브에다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이 마음에도 힘을 강하게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이 강하게 되겠지요? 그런 다음에 이 마음과 몸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정 없이 몸을 때려서 점령하는 방법과 마음에 힘을 가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배, 몇백배, 몇천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통일을 향해서 올라가는 승강기이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이 없이는 하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사랑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힘이 개체를 위하는 힘보다 강할수록 더 이상적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완전히 하나로 얽어매는 그것은 사랑의 밧줄입니다. 쇠로 만든 줄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끊어지지만 사랑의 밧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는 밥으로도 돈으로도 얽어맬 수 없습니다. 오직, 부자 관계의 사랑으로만 얽어맬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 하나 되는 것도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간에도 사랑이요, 한 가정을 중심삼고 친척간에 하나 되는 데도 사랑이요, 종족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한 나라, 혹은 세계를 하나 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 되게 하는 것도 오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 전체를 통일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완전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사랑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18-329
사랑으로만 완전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슬퍼하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셨겠습니까? 아니면 기뻐하기 위해서 창조하셨겠습니까? 플러스(+)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플러스(+)되면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의 대상에게 사랑이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일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만국을 소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요, 만국을 소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요, 만국을 품고 영원히 끌고 가더라도 더 끌어 주었으면 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면 할수록 기쁨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어느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이러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르쳐 주는 진리로 말미암아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사랑이 있으되 내게는 필요없는 사랑입니다.

나를 보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모르면 그 사랑은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도 또 듣고 싶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시조가 때 아닌 때에 사랑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주고, 그 사랑을 소유하여 자신이 그 사랑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만일 통일교회가 그런 내용을 갖고 있지도 못하면서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였다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란 사람은 사기꾼인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끌고 가는 것이고 나로 말미암아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사방에서 전부다 몰려듭니다. 천하일색의 미인이 있으면 천하의 모든 남성이 관심을 갖고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한번 들어오면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관계를 맺은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맺는 사랑의 인연은 본성의 인간이 그리워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전부다 지상에서 녹아 없어질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면 지상에서 아무리 금실이 좋던 부부도 남이 되고 맙니다. 틀림없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결합해서 출발한 부부라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18-331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히 일체된 부부가 들어가는 곳이요, 그 일체된 부부에 의해 태어난 자녀들,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체가 된 가정 종족 민족을 전부다 거느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정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에 머물러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부부가 아니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상대적 이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전부다 들어가야 되고, 자기 종족과 나라가 전부다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전부다 천국 가는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문이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문이 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국문을 열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지만 땅 위에서 그 상대적인 실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에 플러스(+) 될 수 있는 상대적인 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면서 천국문이 열릴 그날을 고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재림하는 날에 만민 중에서 하나의 신부를 택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진짜 이단입니다. 언젠가는 한번 걸려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안 오면 선생님이 오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어차피 걸려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 중에도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은 통일교회를 반대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기 계신 아주머니도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회개하고 전도 나갔다 왔군요. 통일교회가 인정이 많고 배포가 크니까 그것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지금 날씨가 덥기도 하고 점심 시간이 지나서 배도 고플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침도 못 먹었습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금식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루든 이틀이든 입을 다물고 있어 보십시오. 약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무슨 힘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에다 펌프질을 강하게 해서 몸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한 힘을 길러서 이미 태어난 사람들을 통일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서만 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진리는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그 사랑을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만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8-332
만민이 원하는 심정세계를 건설해야 할 통일교회
이 장소가 지금의 5분의 1쯤만 되면 어떨까요? 그러면 전부다 대여섯시간을 서서 예배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진짜 통일교인이라면 그냥 서서라도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 자리에 엄청나게 찾아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면 자기 집은 이웃집 같아지고, 이 땀내나는 교회가 자기 집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웃집에 가서 살겠습니까? 자기 집에서 살겠습니까? 모두가 이웃집인 통일교회에 와서 살겠다고 하니 선생님이 욕을 많이 먹게 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통일교인에 대해 기도만 해주면 강렬한 힘이 발동합니다.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던 모든 것을 쳐부수라고 명령하면서 가르쳐 나온 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심정적인 차원의 세계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하게 되면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호령이나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와 와 본 사람들은 분위기가 너무 자유스러워서 위가 아래 같기도 하고 아래가 위 같기도 할 때가 있어서 곤란하다고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은 누가 선생님인지 잘 모르고 대개 협회장을 선생님으로 압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이렇게 나왔으니 알아보지만 저 구석에 앉아 있었다면 새로 온 사람들은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통일교회 분위기는 참 자유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그야말로 해원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해방이요, 나라에 있어서도 해방입니다. 약소민족 국가인 대한민국에 태어난 똑똑한 사람들, 얼마나 이 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했습니까? 그러나 그 한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천하통일을 한 명장이라도 발 끝에 굴러다니는 조약돌 같아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그저 감투나 씌어 놓고 춤이나 추려고 그러신 것 같습니까?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서 개척하고 건설한 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선생님이 진실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누가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역사적인 산 증거가 태산같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믿는다고 욕을 먹더라도 겁내지 마십시오. 욕은 들어왔다가 돌아 나가기 때문에 걱정없습니다. 욕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욕을 좀 먹고 나서야 기분이 좋지 칭찬받고 나서면 문제가 됩니다. 남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해놓고 나서 큰소리치는 것이 사나이의 기질에 맞지 처음부터 순종만하는 것은 사나이의 기질에 맞지도 않고 재미도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길은 문선생의 기질에 꼭 맞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물질 천국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믿는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물질 천국이 최고의 목표가 아님을 압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의 이론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요, 가정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구하는 이상(理想) 앞에서 천하가 울 때가 있으니, 그때를 위하여 충효의 절개를 천세만세에 기릴 수 있는 자체로서 나서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입니다. 때문에 통일교인의 가치는 세상적인 성공과 희망과 행복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은 나의 몸 마음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를 나오면 남처럼 멀게 지내던 사람도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부모가 아닌 부모님을 모시고 서로 다른 형제와 서로 다른 나라와 서로 다른 민족이 더 강하게 규합 될 수 있는 고차적인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곳을 ‘만민지원 통일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이러한 소망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18-334
하늘 용사의 사명
통일교회는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가르쳐 줍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현실을 알 수 없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을 모르고는 오늘의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용사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숨어 있는 희노애락을 찾아서 현실에 표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인류에게 달려가겠다고 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통일의 절대 요건이란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한 때는 세상 사람들의 핍박이 벌어지는 것이고, 우리들은 이것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난과 비소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더 가게 되면 잘못된 모든 사실들을 대중 매체를 통하여 선포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울 중앙 방송국을 사지 못하면 그보다 더 큰 방송국을 새로 세울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사흘만 맡겨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처럼 엄청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하늘의 용사가 되고 하늘의 전령이 되어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나가야 합니다. 승리가 깃드는 그 나라에 가서 머무르고 승리가 깃드는 그 세계에서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용사들은 싸움의 행로가 아무리 길고, 행군이 지루하다 하더라도 그 길에서 낙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의 숙원을 풀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소신은 여러분을 앞에 세워 놓고 혼줄을 내어 때려서라도 그 세계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안 가려고 하면 목을 매서라도 끌고가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따라갈 자신이 있습니까?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지금은 잘 모르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걱정이 많은 길입니다. 편안히 잠잘 날이 없고, 편안하게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힘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퍼부을 기력이 남았으면 계속해서 전진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에 지루한 사람 있습니까? 지루하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열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열 사람을 위해서 선생님은 말씀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단순한 의식혁명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받은 심정적인 내용을 고차원의 사랑의 세계로 회오리 바람과 같이 옮기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에는 쉴 사이가 없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은 그 누구에게 대신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세계의 어떤 유명한 박사라도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일꾼으로 쓰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외국 갔다 와서 김포 비행장에 내려서 한국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파 속으로 울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한국을 바라보며 울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에 이 뜻을 이 민족과 세계 앞에 세워야겠다는 계획이 그대로 되었다면 지금 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오십이 가까와 오는 지금 또 다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학창시절에 세웠던 계획대로 되었다면 아마 이렇듯 황폐한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통일교회를 몰라보니 선생님의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국에 통일교회가 없었다면 한국의 앞날은 단 하루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동양에서 통일교회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일본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공산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현재 통일교회에 속한 여러분에게는 이 민족을 살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개척자의 사명을 견지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하루 하루를 정리하면서 내일의 승리를 위해 달려갈 것을 맹세해 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사랑의 세계와 선의 세계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어려움과 악을 점령하는 하늘 용사의 책임을 다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18-336
기 도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내 나라 내 땅을 밟고 서서 눈물어린 식구들을 바라볼 때에, 가슴에 어리는 한 줄기의 슬픈 사정을 어이할 수 없음을 아버지께서는 잘 아시옵니다.

저희의 심정이 이러할진대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시옵니까? 오늘의 내 슬픔을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부끄러운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자비와 동정의 아버지를 다시 한번 그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많은 사람이 부르던 아버지의 이름이 오늘날 통일교회에 의하여 증명되고,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천추의 한의 곡절 가운데 저희를 대하여 소망의 심정을 갖고 계시는 아버님께 저희들이 슬픔의 충격을 남길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의 수십 평생의 행로가 싸움의 길이었고, 슬픈 십자가의 곡절 가운데 몸부림치는 길이었사오나, 저희들의 행로보다 천만 배 이상 고난의 가시밭길을 아버지께서 걸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슬펐던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오니 이 마음들을, 아버지, 귀엽게 보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 이 시간 뭇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이들의 마음이 누구를 동경하오리까? 누구를 위하여 부복한 몸이 되오리까? 또한 이들의 생명은 누구를 위한 생명이 되오리까? 모두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한 것임은 내정적인 민족이고, 아버님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의 사랑에 화합할 수 있는 이 민족이옵니다. 그리하여 상대적인 실적을 갖추어 아버님을 위로할 수 있는 효자의 모습이 되는 것이 저희에게 문제의 초점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면 아버지는 우리와 같이 계실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세상을 대하여 탄식하기 전에 내 자신을 놓고 탄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심정과 사랑이 솟구쳐 오고 폭발되어 오는 그 힘에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을 만들어야겠사옵니다. 민족을 넘고 바다를 건너 이 지구성을 돌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될 때라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아버님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아버지의 자녀들이 있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는 아버지의 채찍이 필요하고 슬프고도 강한 아버지의 권고와 지도가 있어야 할 것도 느끼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게 되오니, 그 일을 저희들 각자가 대신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삼천만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어린 자녀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박대받으며 뿌린 피눈물의 자국이 사탄에게 저주의 터전으로 점령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그 터전 위에 아버지께서 호명하실 수 있는 후세들을 세우시어서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하고 거룩한 지성소를 갖추어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것이 소원이기에 오늘도 그것을 위하고, 내일도 그것을 위하며 여생의 전부도 그것을 위하여 바쳐져야겠사옵니다. 하오니 죽더라도 바쳐진 그 자리에서 죽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문제는 자기가 염려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오니 남겨진 뜻을 위하는 염려만이 저희의 전부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자녀들 가운데 스승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자녀들이 있사올진대는 그 어린 심정으로 한 세계를 그리워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치의 내용이 얼마나 굉장하고 놀라운 것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돌아가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 반도 곳곳에서 외로운 눈물과 더불어 아버님의 심정을 붙들고 불쌍한 사탄세계를 향하여 선전포고하고 나서는 외로운 무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흘리는 땀자국과 눈물자국과 핏자국을 아버지께서 영원히 점령하시어 거기에 좌정하시옵소서.

승리의 팻말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그 가운데 영원히 이어받을 수 있는 선한 민족의 후손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이라도 남겨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본에 남기고 돌아온 뭇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바람이 불어오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지께서 그 가운데 완전히 주인이 되시옵고, 아버님의 손길과 뜻으로 그들을 품으시어서 상처받을 자리를 모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본향의 스승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자녀들을 아버님께서 직접적으로 위로하여 주시옵고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민족적인 감정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천정적(天情的)인 내용을 중심삼고 소망의 세계를 위하여 단결하여야 할 것을 아옵니다. 이렇듯 아버님을 위하는 모습이옵기에 그곳에 친히 좌정하시어서 오늘의 주인이 되시옵고, 이 해의 주인이 되시옵고, 저희들 생애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친히 주관하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형제들을 기억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오늘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전체가 아버님이 경륜하시는 뜻을 이루고 승리의 개가를 울려 만민평등의 세계 앞에 제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더더욱 간절히 바라면서, 이 모든 말씀의 참부모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