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3 to 18-282: 심정의 경계

심정의 경계
1967.06.12 (월), 일본 동경교회

18-263
심정의 경계
[말씀 요지]

세계는 지금 대단히 곤란한 시기에 봉착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고 있는 정점에서 어떻게 우리 통일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진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18-263
인간의 이상을 이루려면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진로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경제적 문제도 있을 것이고, 국가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주의(主義) 즉, 이념 문제인 것이다.

많은 문제가 있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된 인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참된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심정(心情)이다.

만약 여기에 참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참으로 세계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심정이다.

참된 인간이 되려면 사랑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랑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 문제로 귀결되어야만 한다.

사랑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자유자재로 잡기도 하고 버릴 수도 있는, 그렇게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와 반대되는 입장에 섰을 때 사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서로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게 되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 문제는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같이 그 문제를 의논해서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자기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다. 거기에는 부모로서의 독특한 사랑과 절대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은 어떠한 법칙 아래서 절대적인 권한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 자신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도 부모 자신의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사랑의 주인은 누구일 것이냐?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것도 아니요, 자식을 사랑하는 그 부모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랑은 인간 자신에게 출발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파고 들면 그 사랑의 출발점은 결국 하나님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사랑이 만약 아담의 것이거나 천사장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해서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내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솔직한 입장에서 받아들인다면 우리 인류사회는 사랑에 굶주린 입장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결과의 세계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국가적으로 행복을 구하거나, 또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번영을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회를 성스러운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랑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세계의 모든 나라와 만민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류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기 위해 한 사람을 세우셔서 하늘과 지상과 관계를 맺게 하시고 평화의 기점을 조성하시려 하신다. 이것이 복귀섭리역사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그 부의 정점에 서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사랑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면 참다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근본문제는 사랑문제인 것이다.

18-265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섭리는 한 아들과 딸을 만나 사랑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소망의 때를 찾아 나오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한 세계, 즉 지상천국을 이루는 데 있어서 아무리 외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만족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과 인간이 상통할 수 있는 한 점, 즉 같이 만날 수 있는 기반을 이 지상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견고하게 안착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바라고 해오신 섭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 가정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 많은 고난을 주셨다. 이 민족이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게 하면서 이끌어 나오시며 그 터위에다 4천년만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시봉할 수 있는 경지에 서 있었더라면 하나님이 바라신 사랑의 결실을 맺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 사랑의 결실을 이 지상에 맺지 못하였다. 진정한 사랑의 기점이 지상에 자리 잡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신부의 입장에 세워 놓고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하는 역사를 계속해 나오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타락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원리에 입각하여 본성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부모 되시는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복귀의 노정을 통하여서 주인이 없고 종이 주인의 입장에 있는 종의 종에서, 주인이 있는 종의 입장과 양자의 입장을 거치게 하시며 참자녀의 자리로 나아가게 섭리해 나오셨다.

인간은 참자녀로서 책임을 완수하여서 승리함으로써 하나님과 참자녀가 상봉할 수 있는 한 기점을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참다운 심정의 인연을 찾아 그 누구도 위로해 드리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고충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께서 타락 이전에 지니신 심정이 자녀의 위로로 말미암아 복귀되었다고 하는 그러한 기점이 세워지지 않는 한 완전한 심정복귀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복귀의 기점이 조성된 연후에야 비로소 참부모가 나타나게 된다.

원리에는 소생기로부터 장성기, 그리고 완성기까지 가는 길이 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재림주님은 무엇을 하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쓰라린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 있는 아픔을 없애지 않으면 참다운 자녀로 설 수 없다. 그리고 참다운 자녀로 설 수 없게 되면 지상에 참다운 부모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다운 자녀가 되라고 말하고 있다. 더 한층 높여서 참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라고 한다. 그러려면 6천년 섭리역사를 탕감해야 한다.

탕감조건을 세우고 사탄과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하여, 사탄으로부터 단 하나의 참소도 받지 않는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참부모의 자리에 결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이러한 입장에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섭리하여 오셨다. 그리고 지상에서도 우리의 선조들과 성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또는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여 왔으며 혹자는 희생을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고찰한다면 통일교회는 평면적인 입장에 있는 교회가 아니다. 통일교회는 주체적 입장, 하나님의 심정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출발점이 다른 종교와 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통일교회가 현재 이 기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그 배후에는 그 누구도 모르고, 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길을 더듬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6천년의 종적역사를 평면적인 시간권내에서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사탄이 반대해서 이긴 셈이었다. 그리고 사탄은 섭리의 중심 가정을 공격해서 가정적 섭리를 흐트러 버렸던 때도 있었다. 또한 민족적 섭리나 국가적 섭리를 전부 침범해 버렸던 기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역사를 탕감해야 하는 재림주님에게도 사탄은 세계의 모든 사탄세력을 총동원하여 공격해 오는 것이다.

재림주님은 6천년간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해 나왔던 사탄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림주님 홀로 전세계에 있는 사탄들과 대결해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 승리하려면 진리와 실체, 그리고 심정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사탄이 말로 침범했고, 실체를 침범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도 아담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재림주님 홀로 사탄과 투쟁해야만 된다. 사탄도 하나님의 원칙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기준을 세워서 탕감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이기에 오늘날까지 발전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인의 승리를 기준으로 해서 가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가정적인 승리를 기준으로 해서 민족적인 승리, 국가적인 승리, 그리고 세계적인 승리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최후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심정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 하는 데 심정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탕감을 할 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천사장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께 충실한 종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물을 창조하셨던 6일간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던 그 이상의 마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탄의 참소를 받게 된다. 재림주님은 그러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사탄과 대결해야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대결은 쉽다. 그러나 가정적인 대결은 더 어렵다. 그리고 가정보다 민족, 민족보다 국가, 국가보다 세계가 더욱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한국에서 오늘날까지 박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더욱 박해를 받고 또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전민족이 반대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탄세계를 완전히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민족이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입장으로 몰아 세우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들은 오늘날까지 개척의 길을 걸어 나왔다. 그동안의 노정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길이었다. 어떤 사람은 남편한테 몰리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맞기도 했고, 또는 수족이 부러지는 등 비참한 일을 겪어 나왔다.

한 주권에 한해서만 반대당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3개의 주권을 거치면서 박해를 받아야 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3주권이 교대해 나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자유당 정권, 다음에는 민주당 정권, 그리고 현재에는 공화당 정권, 이러한 정권들과 우리는 싸워 나온 것이다. 복귀를 하려면 완전한 탕감조건을 세우고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지방에 나가 전도를 하면서 고생이 많았으리라 생각되지만, 복귀의 목적을 완수하려면 높은 자리에서는 안 된다. 복귀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해 나가야만 한다. 물론 우리들이 최고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하의 자리에서부터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면 패자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고 있는 복귀의 길이 거기에서부터 열려져 나왔던 것이다.

18-268
복귀, 그 험난한 고개를 넘어가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기독교인들도 오늘날까지 역사과정을 통과하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세계적인 탕감의 인연을 가지고서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왔던 것이다. 그것이 2천년이 지나서야 기독교가 예수님의 이념으로 민주주의를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금년부터는 우리 통일교회는 민족과 국가의 탕감과정을 통과해서 다시 세계적인 탕감과정을 통과해야 된다. 만일 한국에서 이 기준을 완전히 탕감하게 되면 어떠한 조건이 있다 할지라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탕감기준이 국가적인 기준에서 세워진다면 3년쯤 지나가면 세계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한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것이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같이 수고하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슬픈 심정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피어린 싸움의 절정에 서서 슬픈 심정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하나님의 심정이 매우 슬프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 거기에 참혹한 흔적이 남아져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어떠한 지방에 전도를 나가서 그 지방으로부터 쫓김을 당하는 경우에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에서 기도를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할 대상이 없으시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 보다도 역사적으로 더욱 비참한 입장에 계신다. 그리고 현실적인 슬픔을 지니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자녀들에 대하여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시기 위해 위로도 해주시고, 혹은 지도도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입장에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몸을 바쳐서라도 하나님 앞에 승리의 일점(一點)을 더하겠다고 하는 입장에서 기도를 올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책임지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용이한 길을 걸어오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있는 그 장소까지 오시려면 많은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같은 비참한 입장에 서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은 직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활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내 자신이 희생하는 입장이나, 상심한 입장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참된 마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시인 하시게 되고 또 동정하시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정으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본을 복귀하려는 우리 앞에서 수많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느냐? 이것은 한 방편이 될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으로 타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할 것인가? 심정과 몸과 말씀이 삼위일체가 되어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는 물질적인 조건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참자녀의 입장인 장성기 완성급 이상의 기준에 서야 한다. 그러한 신념과 신앙심을 가진 자녀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다운 심정을 지닌 참다운 실재, 즉 하나님의 참다운 자녀로서 책임을 진실하게 완수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실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탕감기준을 전체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 탕감의 중심인물로서 일본 복귀를 위해서 탕감조건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종교단체라고 해서 종교의 기준을 중심으로 한 탕감조건만 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 전체를 복귀하려면 참다운 신앙심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에서 자유 의지에 의한 책임을 지고 일해야 한다. 즉, 이와 같은 입장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해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 부문에서 이러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18-270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는 방법
그러면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최초의 조건이 무엇을 것인가? 물질적인 조건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물질적인 문제를 부정하고 출발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부정하고 출발한다. 여러분은 타락한 인간이기에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부정하라는 기준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을 때까지 부정하라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그 기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구세주나 또는 대표적인 지도자들을 세워서 그들이 세운 탕감조건을 타락한 인간들에게 연결시켜 나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가정섭리의 중심인물인 야곱으로부터 시작해서 민족의 중심 지도자인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계속 그 대표적인 기준이 연결되어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권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신앙인으로서 타락한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그러한 입장에서, 그 주체적인 대표자가 세운 탕감조건 위에 서게 되면 탕감의 인연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기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탕감했다는 기준에 설 수 없게 된다. 즉 가정부터 종족, 민족, 국가적인 과정을 통과하려면 일정한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간에서 승리한다면, 승리한 그 심정 기준을 세계에 퍼져 있는 통일식구들이 참다운 신앙심으로 연결해 나가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각자가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는 다 하더라도 복귀의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적인 한 곳에서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고난을 겪고 사탄쪽에서 공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탕감조건까지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식구들은 항상 긴박한 정세 속에서 오늘날까지 복귀의 길을 걸어나온 것이다.

한국 민족이 이것을 모른다 할지라도 복귀하기 위해 어떠한 단계를 통과하여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모르고서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복귀의 권내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할 때 앞으로도 또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들의 수가 많아져서 전 국가적인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단지 수적·양적인 문제만을 중심해서는 완전한 승리를 할 수 없기 대문에 질적으로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싸워 나왔던 것이다.

18-271
탕감복귀 노정에서의 선생님의 전법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때로는 슬픈 입장에, 때로는 한탄하는 입장에,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입장에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에게 위로를 구하거나 구원을 요구하는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부여받았지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그것을 내버리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천리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의 한계에 들어가게 되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기도도 할 수 없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모든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시면서도 어떻게 손을 대실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에게 사탄의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별권내에 머물고 있는 단계에서는 심정만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된 후에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그때에는 심정을 중심하고 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까지 나가는 데는 지혜를 가지고 사탄의 유혹을 분별해 나가야 한다. 인간이 사탄을 분별해야 하는 권내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도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체험에 의해서 사탄에게 대응할 수 있는 전법을 써야 한다. 즉 이러한 방법을 모든 방면에 활용하면서 환경을 분별하고 사탄을 내쫓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러한 전법으로 싸움을 하고 있다. 탕감복귀노정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다. 오직 홀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오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절대복종만 하면 모든 것이 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던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해와가 아담에게 완전히 주관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전방에서 싸우는 것은 아담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30억의 인류를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놓은 장본인은 사탄이지만 천사장으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사탄이 되게 한 사람은 해와가 아니라 아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최후의 결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최후의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인 것이다.

선생님은 항상 그 어떠한 쓰라린 입장에 서게 되거나 그 어떠한 괴로움의 극치에 빠진다 하더라도, 나보다 더 괴로와하시고 쓰린 마음을 지니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 다. 이러한 심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간다.

선생님에게 있어서 40여 년의 고생은 한정된 고생이다. 그러나 6천년간 이어진 하나님의 고생은 우리 인간들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러한 고생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백번 천번 죽어도 하나님의 심정 앞에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세계적인 탕감의 길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 괴로운 일, 견딜 수 없는 쓰라린 일을 당하는 입장에 서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항상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더듬어 보면 괴로운 심정을 안고 계시며, 기쁨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가 하는 것이 우리 통일식구들의 중대한 책임인 것이다.

18-273
표준으로 삼아야 할 심정기준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싸워서 승리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돌려 드려야 한다. 승리는 결코 우리들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에서 백까지 아니 천에 이르기까지 승리의 결정적인 동기는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눈물겨운 길을 통과하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노정을 통과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돌려드렸던 것이다. 만약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부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탄과 싸우고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승리하고 나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진격하여 싸움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 복귀의 과정에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순간의 고통은 누구든지 참을 수 있지만, 타락 이후 오늘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고통은 참을 수 있는 그러한 고통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참아나오고 계신다. 하나님에게 타락 이후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떠했습니까 하고 질문하면 인내라고 답변하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있다면 어떠한 고통의 길, 아무리 어려운 복귀의 노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책임지고 갈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한다.

한 나라의 복귀에 대한 책임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전체 인류를 책임지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이것이 복귀노정을 안 통일교회 식구들의 심정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세에 있어서 지금까지 고생해 나오신 하나님 심정 앞에 일대(一代)에 지상천국을 완성해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지상과 천상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지상 해방운동을 호소하면서 영계로 간 모든 영인들이 해방을 얻을 수 있는 기쁨의 한 날을 이루어 놓아야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들의 소망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우리들 일대에 성공한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대에 이 기준을 세우기를 바라고 계신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1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완전한 탕감기준을 완수했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나 1대 2대 3대로 조건을 세워서 복귀의 노정을 연장시켜 나가는 문제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선생님의 책임은 중대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그러한 문제를 염려하면서 일어나고, 하루를 생활하는 모든 활동에 있어서도 그러한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다. 여러분들도 역시 그러한 심정의 기준이 없어서는 안 된다. 꿈속에서도 그런 심정을 갖기를 바란다.

천주 가운데에서 제일 불쌍한 분이 누구일까?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위로해 드리는 사람은 온 인류 가운데 선생님 혼자뿐이다. 이러한 입장에 홀로 서 있는 슬픔을 여러분은 모른다. 누가 선생님의 슬픈 이 마음의 밑창을 건드린다면 한꺼번에 울음이 터질 것이다. 이런 심정을 중심으로 한 생활을 계속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귀노정의 탕감조건하에 있는 선생님의 입장이라 하겠다.

18-275
일본을 복귀하기 위한 마음가짐
여기에 있는 동경지구 식구들을 움직여서 어떻게 일본을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들 앞에 고난의 길이 계속될 것이다. 누구나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가 맡은 분야의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나설 때에 일본 복귀의 시간은 단축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거기에 비례되는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 현대 청년들의 취향에 따라 일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은 어떠한 환경이라도 극복하고 참다운 탕감의 길을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

일본에 있어서도 청소년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기 민족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풍조에 젖어 있다. 이런 젊은이들을 어떻게 해서 복귀시킬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즉 그 방편으로 세워진 것이 민주주의이다. 재림주님이 오셔서 세계의 주권을 하나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민주주의를 허락하셨다.

지난번 선생님이 서양에 갔을 때, 그곳의 청년들을 지도하려면 많은 희생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깊이 느낀 바 있었다. 그러한 점을 두고 본다면 서양보다는 동양의 복귀가 빠를 것이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나라보다는 처참한 나라가 더욱 빠르다. 그 이유는 그들은 심정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운 입장에서 슬픈 일들을 심각하게 느끼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일대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은 중대한 것이다. 동양을 움직여서 서양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하간 일본의 복귀를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여러분 1대의 시대권내에서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더욱더 희생을 해야만 된다. 개인적 희생도 희생이지만, 통일교회적인 희생이 필요하다.

복귀는 안정된 입장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제물을 드리는 입장에서는 맞아야 되고, 피를 보아야 한다. 맞고 맞아도 참고 견디는 자리에서 남아져야 탕감조건이 세워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맞고 맞으면서 기다리는 전법을 쓰신다. 따라서 우리 식구들이 선의 입장에 서서 일본 전체로부터 몰림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일본 전체가 하나 되어서 한꺼번에 몰려와도 우리 통일교회가 그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는 다면, 거기에서부터 일본 복귀의 출발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전국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은 선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선한 입장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와하면서 선한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길을 가다가 괴로울 때가 있으면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라. 여러분들이 맞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도 함께 맞으시고, 여러분들이 눈물짓는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도 같이 고민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이끌고 구원의 단계로 인도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해 위로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보다 더 쓰라린 입장에 계시면서도 여러분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괴로운 입장에 있어도 괴롭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노방전도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나 혼자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러분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심정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전 일본 국토를 하나의 제단으로 생각하고 그 최정점에 서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자리에서 ‘모든 사탄들아! 올 테면 와라!’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전도해야 한다. 그러한 용기와 경험이 필요하다.

타락권내에 있는 우리들은 누구든지 7년간의 고생을 해야 한다.

기독교인 가운데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7세기 권내에 재림의 기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7천년간, 지상에서는 7백년간,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7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 사람이 이 길을 가려면 70년간을 독신으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참다운 종교, 고급 종교는 독신생활을 주장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70년간의 독신 생활이 지나게 되면 모두 늙어 버리기 때문에, 그때 결혼을 하면 쓸모가 없게 되므로 70년을 7년으로 줄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7년간은 봉사해야 된다. 통일교회는 타종교로부터 얻어맞아야 하며, 7년 동안은 전체의 밑창에서 전체를 우러러보면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277
아벨의 신앙 자세와 복귀하시는 하나님의 전법
이 7년간은 아벨로서의 위치를 결정하는 기간이다. 아벨이 아벨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로 인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해야 된다. 그러면 7년 동안에 아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 아벨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면 가인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나님의 입장이 그렇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아벨이기 때문에 그 아벨이 가인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인을 구원하려면 아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의 기준까지 가인에게 주며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인 복귀가 가능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아벨의 입장에 섰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에게 굴복하라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세우신 이유는 가인을 구원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을 가인에게 송두리째 주는 동시에, 자기의 사랑까지도 보태서 주어야 한다. 이것이 본래의 아벨의 입장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입장을 기준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복귀해 나오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귀한 자식과 종을 사탄편에 보내어 몰리고 쫓기며 희생당하게 하면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가인편 인간이 희생을 당할 때 아벨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기의 사랑까지도 같이 합하여 희생하게 되면, 여기에 참가하고 관계되었던 모든 가인권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부터 복귀의 길은 열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당하고 희생이 된 아벨을 조건삼아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하는 자를 치는 역사이다. 하나님편에서 보면 타락한 인간은 사탄의 자식이요, 원수의 자식인 것이다. 이들은 심판받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탄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구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 타인의 아들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자식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 넣어 희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제물삼아 즉,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세 사람 이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희생시켜 나간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법을 알고 있는 선생님으로서는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절대적인 아벨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로마 병사를 위해서 기도했었고,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는 입장에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다는 그 기준을 사탄편에서도 가인편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있었다. 사탄은 부활권내에 대해서는 참소할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게 될 때, 어떠한 사람이 통일교회의 형제이며 식구일 것인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자기 혼자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사람이 일본의 아벨이다. 그리고 얻어맞고 빼앗기는 것이 나의 생활이라고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본의 복귀는 빨라진다.

선은 빼앗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면 빼앗길수록 번영하고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악은 그렇지 않다. 선과는 정반대이다.

선한 하나님 앞에 아벨의 입장에서 얻어맞고 빼앗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다.

이 길을 가다가 죽었는데도 지상의 사람들이 그 입장을 몰라준다면 천상의 천사들이 그 입장을 지켜 줄 것이며, 하늘의 모든 영인들이 그날을 축복해 줄 것이다. 지상에서 축복해 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천상에서 축복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편이 지상에서 번영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선의 희생자들을 중심으로 복귀의 길은 넓어지는 것이다.

18-279
하나님께서 비참한 자리로 내모는 이유
하나님의 심정은 지상의 재림주를 중심으로 하여 어느 한 점에서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기쁨의 심정권에서의 일체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슬픔의 심정권에서 일체가 되지 않는 한 기쁨의 심정권에서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심정 문제를 운운하는 데 거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의 경계를 중심으로 해서 슬픔의 심정과 기쁨의 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님의 심정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은 슬픔의 심정뿐이었다. 기쁨의 심정은 아직도 요원한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슬픔과 괴로움의 심정으로 위로하기 보다는 기쁨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위로하길 원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이며,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면 이 길의 경계선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전인류가 경계선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낙원에 가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한 국가를 빨리 복귀해야 한다. 수많은 나라들이 손에 손을 잡고 민족을 초월하고 민족 감정을 초월하여 천적 감정으로 엮여져 일체가 되어야 한다. 어느 나라가 앞장서서 세계적 복귀의 문제를 책임질 것인가? 다른 나라보다 우리 나라가 앞장 서야겠다고 싸우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신다. 나라들끼리 하나님을 위하여 서로 봉사하겠다는 입장에서 다투는 것을 환영하신다.

우리들은 무엇을 원해야 되는가? 최고의 나라가 아니면 최하의 나라가 되기를 원해야 한다. 중간의 나라는 필요치 않다. 최고와 최하의 두 극을 돌리면 원이 그려지게 된다. 그러면 이와 같이 비참한 최하의 나라는 몇개국이 필요한가? 3개국이 필요하다. 또 상급의 나라는 4개국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 합하면 7개국이 된다. 이 7수만 섭리권내에 들어오게 된다면 세계는 복귀될 수 있다.

자녀를 많이 가진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를 대하는 마음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맏아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잘 구비되어 있는데, 막내 아들은 불구자라고 할 때에 심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모의 마음이 어느 편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불쌍한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갈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신의 입장에 세워 나오셨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이 행복의 근원이 되어 나왔던 것이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역사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구자와 같은 생활을 해왔다. 왜 그랬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참다운 심정을 제물로 바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그런 입장에 세우셨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 어린 마음의 표현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순교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항상 맞고, 항상 쫓기는 불구자와 같은 생활을 해온 것과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비참한 입장에 서 왔던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그러한 입장에 세우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심정적으로 선생님은 우리 교회의 식구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

18-280
순교자의 정신으로 충성을 다하라
그러나 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더욱 범위를 넓혀서 세계적인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은 절름발이와 같은 불구의 입장에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심정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 서서 개인 가정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복귀노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권내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오랜 역사를 두고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고생시키셨다. 기나긴 세월을 두고 고생한 그 슬픔의 심정을 하나님과 함께 체험해 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권내에 맨 처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까지의 기독교는 비참한 종교였다. 또한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통과해 왔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일치단결해서 일본복귀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불구자와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1억의 일본 국민이 어리석게 보일는지 모르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 그러한 과정을 거듭 거듭 계속해서 최후까지 뚫고 나가라! 거기에는 세계적, 우주적인 행복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약한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려 해도 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안 이상 이 길을 팽개치고 아무리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설혹 다른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한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깨끗하게 일직선으로 가야 된다. 부모가 반대할 때도 있을 것이요, 친구들이 욕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또 선생님들이 비판하고, 혹은 사회적으로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족이 없어져 둥그런 몸뚱이만 남는다 하더라도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부모님을 위한 효도의 제일인자가 된다면 그는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선생님도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나온 것이다. 선생님은 앞으로 계속 갈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들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나아갈 때 만약 맞아서 병신이 된다면, 그것은 행복의 상징이 된다. 자기의 몸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은 영원한 빛의 세계에서 빛의 근원이 되고, 찬미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러한 일들을 언제나 생각하고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감옥에 들어가서 맞고 또 맞아 피를 통하는 입장에서도 ‘아! 이제는 때가 가까와지고 있다. 만일 여기에서 실패를 한다면 귀중한 역사를 잃어버리고 만다. 선한 조상들의 공적이 날아가 버리고 만다. 민족적인 기반이 허물어지고 만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

이와 같이 긴장된 처지에 놓여진다 하더라도 그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法)에 철저하자는 신념을 가지고 역사상에 있었던 인물 이상의 입장에서 나아간다면 그후에는 승리가 결정된다. 선생님이 이러한 신념을 가진 후에는 아무리 죽고자 하고, 또한 죽을 자리에 뛰어들어가 보았지만 그곳은 평화의 자리가 되곤 했다.

그러므로 복귀노정을 완전히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곱 번 이상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또 이 길을 가야 한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알고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가야 한다.

오랫동안 고생하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중대한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에 몸을 던져서 죽어버리고 말자! 폭발해 버리고 말자! 이러한 각오를 갖는 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멋진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최후를 마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훌륭한 곳에 가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누가 제일 먼저 순교자가 될 것인가? 여러분들은 세계복귀를 위해서 세계적인 선의 싸움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어느 때 공격을 당해 가지고 생각지 않는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제1대의 순교자가 된다.

18-282
하나님의 심정을 이 땅 위에 심기 위해 책임을 다하라
‘스데반’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모험성이 있고 좀 모자란 듯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걸 때는 멋지게 결정하고 나서는 기질이 있었다. 이러한 기질이 순교자로서의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으로써 그는 기독교에서 제1대의 순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스데반은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하나님은 슬픈 심정으로 역사과정을 통과하고 계시지만 아직도 기쁨의 심정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이 심정권을 형성시킬 것인가? 우리들의 어린 몸을 바쳐서라도 이 길을 개척해야만 된다. 고생과 희생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선 우리들이라면 괴롭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 우리들 이상으로 쓰라린 입장에 계시면서도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지 않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은 더욱 더 쓰라린 것이다.

아직도 세계 만민이 죄악 가운데 허덕이고 있다. 그들은 우리들의 구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죽음의 경계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은 불행한 입장에 있는 것이요, 우리들은 행복한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을 생각하며 자기의 쓰라림을 잊고, 만민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생명을 걸고 나가야 한다. 자기의 희생을 기쁘게 생각하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입장과 같은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고생의 입장, 쓰라린 입장에 동참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 서야 하나님의 심정이 여러분들로 인해 이 땅에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입장, 이러한 권내에서부터 천국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위로해 주시듯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세계 만민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만민의 축복이 여러분들의 손으로부터 시작되고, 만민의 행복과 지상천국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위해서 슬픔의 심정으로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러한 입장에서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만민을 위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짐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