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2 to 18-219: 만물의 날

만물의 날
1967.06.08 (목), 한국 전본부교회

18-192
만물의 날
[기 도]

영원하신 경륜의 뜻으로 이 땅 위에 기념할 수 있는 한 날로 이날을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만 4년 전에 이날을 아버지 앞에 책정해 드렸사옵니다. 이날이 나오기까지에는 역사 과정을 더듬어 오시는 아버지의 수고가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민족의 배후에 서려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통분해야 할 엄청난 역사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아울러 이러한 슬픈 역사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가인과 아벨의 싸움이 시작된 그 날부터, 사망의 터전이 자리잡은 그 시간부터 아직까지 그 사망의 세계는 옮겨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러한 환경의 굴레를 벗지 못한 가운데에서 아버님의 투쟁의 역사가 엮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현재 저희들이 느끼고 있나이다.

이제 탄식의 조건이 남아 있다 할진대 그 조건을 풀어야 되겠사옵고, 저희가 해야 할 노고가 남아 있다 할진대 그것은 잘못된 이 터전을 정비하고 청산지어야 할 노고임을 다시 한번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선한 자리에서 승리해야 했습니다. 하오나 저희가 처한 환경은 아직까지 슬픔과 고통으로 휩싸인 환경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선을 추구하는 역사적인 저희의 선조들과 선지선열들이 선을 세우기 위하여 선두에서 싸워 나온 때가 그립사옵나이다.

슬픔의 역사는 선(善)을 기본으로 하여 고빗길을 연이어 나오면서 지금까지 일어났다가 다시 슬픔에 부딪쳐 쓰러지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또 부딪치는 역사로 연하며 내려왔사옵고, 이 슬픔의 장벽이 현세의 목전에 나타나 세계적인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이 장벽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개인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뜻 있는 몇몇 동지 가지고도 안 되겠사옵니다. 그러하기에 아버지께서는 개인을 불러 모아 가정을 이루게 하였고, 가정을 불러 모아 종족을 이루게 하였고, 종족을 불러모아 민족을 편성하게 하였고, 민족을 불러모아 국가 편성을 하게 하였사옵니다. 국가를 이루어도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행군해 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었사옵나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뜻하신 목적대로 죄악을 청산짓고 당신의 일을 책임질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해야겠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슬픔의 역사가 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세계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얼마나 있나이까?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오늘 통일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부르고 있사옵고,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과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내적 인연과 외적 인연을 갖추고 있사옵나이까. 뜻 앞에 심정이 일치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아라는 것을 저희들은 명백히 발견하게 되옵니다.

내적 기준의 결함, 외적 기준의 결함, 뜻을 대하는 행위의 결합된 모습이 아버지를 부를 때, 그 음성을 듣는 아버지께서 ‘과연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하며 기쁘게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 어서 오라고 할 수 있는 저희들의 입장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겠사옵니다. 도리어 저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른 음성이 아버지의 귀에 거슬리고, 또한 저희들이 아버지의 면전에서 박대받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자리에 서 있을 때가 많았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슬픈 노정을 보고도 저희들은 슬퍼할 줄 몰랐고,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을 알고도 몸부림칠 줄도 모르는 저희 자신이었사옵나이다.

하오니 이제 하늘과 땅의 인간이 나아가는 방향이 이렇게도 대치된다는 사실과, 내적 사정이 상충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르면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복을 빌고 아버지를 위하여 복을 받는다는 그 자리가 저희들은 기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지 못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 기쁜 자리에서 기쁘다는 표시를 하지 않으시고, 기쁘지 않은 자리에서도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진정으로 아는 아들딸들이 이 자리에 얼마나 되옵니까?

각자의 심정을 통하여 다시 한번 반문하고 아버지 앞에 다시금 새로운 자세를 갖추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긍휼의 조건과 긍휼의 태도를 가졌다고 아버지께서 기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줄 아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당신은 괴로우면서도 저희의 요구에 답을 하시어 어느 한때에 복 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날들을 연결하시어 6천년 동안 서러운 역사를 대하시는 아버님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심하였으며 아버님의 그 심정에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게 일그러지고 맺혀 있는 심정적인 한을 벗겨줄 자 누가 있나이까? 참다운 효자가 아니면 안 될 것이요, 참다운 효녀가 아니면 안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가정을 중심삼은 효자 가지고도 안 되겠사옵고, 종족을 중심삼은 효자 가지고도 안 되겠사옵고, 민족을 대신한 효자 가지고도 안 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를 대신하고 하늘땅을 대신하여 사탄 앞에 나타내어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가 되지 않고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사무쳐 있고 감추어진 그 심정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엄청난 내적인 고충을 짊어진 입장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한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만물의 날이라고 저희들이 기념하는 날이옵니다. (이후는 녹음되지 않음)

18-195
말 씀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심정적인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담 해와도 자유의 동산에서 추방을 당할 때 내적으로 슬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충격은 슬픈 감정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민망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와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의분심에 불타고 당신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한스러운 마음을 중심삼은 심정적인 충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날,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역사 과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시대마다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조들은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자기 시대의 책임을 후대에 남겨 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하나님은 역사를 끌고 나오셨고 우리 선조들은 그 역사를 따라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18-195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섭리
그렇지만 어느 한때가 되면 역사적인 사명을 책임진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여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세울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았다 할지라도 야곱이 자유롭게 출발할 수 있는 입장에서 불리움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원수들을 물리쳐야 할 크나큰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개를 넘는 데에는 야곱을 중심삼은 야곱 가정과 야곱 종족,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가 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 고개를 무난히 넘어서 평지에 도달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한 이스라엘 민족으로 남아졌을 것이었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축복권내에는 섰다 할지라도 수많은 이민족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끌리면서 하나님 앞에 변변히 책임 한번 못하고 후퇴했던 사실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도 완전한 승리의 터전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 땅에 나타났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안팎에서 전부다 승리한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찾지 못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민족을 찾지 못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세울 수 있는 주권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아직까지도 승리의 날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의 과정에서 한때에는 올라섰다가 어느 한때에는 내려가고, 또 어느 한때는 사탄을 쳤다가 어느 한때는 사탄에게 맞기도 하면서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그 형(型)을 넓혀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형을 넓혀서 가정형으로, 가정형을 넓혀서 종족형으로, 종족형을 탕감하여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적인 시대에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대신한 전세계의 기독교나 혹은 민주세계나 아벨적인 입장에 섰느냐? ‘……’ 아벨적인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이 가야 할 고개가 남아 있으니 그것은 이스라엘을 대신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넘어야 할 외적 고개입니다. 그 고개가 바로 공산당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 세계는 이 고개를 무난히 넘어 자유의 세계, 평화의 세계에 당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적인 터전을 닦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섭리를 하는 사람이 하다가 못 했을 때에는 후보자를 세워서 가정적인 섭리를 첨부시켰고, 가정적인 섭리를 못 했을 때에는 다시 후보자를 세워 종족적인 섭리를 첨부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적인 섭리, 세계적인 섭리까지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때에 가서 안팎으로 완전한 승리가 결정지어지겠는가? 2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아벨적인 내적 승리의 기준을 닦아 역사 앞에 책임을 다하여 외적으로 공고한 터전을 만들어 놓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유대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그 주위에 있는 이방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만 예수님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18-197
이스라엘의 내·외적 사명
그러나 예수님이 이와 같은 고개를 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세계적인 형까지 벌어져 나왔지만 내적으로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를 해결지을 수 있는 승리의 발판을 이루지 못하고 소망으로 남긴 채, 역사는 지금까지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해서는 ,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족, 종족이면 종족으로 편성되는 시대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 범위가 점점 넓어져 나왔지만 우리의 선조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탕감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 한번도 안팎으로 승리한 입장이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의 통일교회는 이스라엘이 못 넘은 세계적인 기준까지 넘어 가지고 승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사명을 다하기를 요구하고 계시며, 이스라엘의 승리자가 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자리는 개인적인 판단의 기준은 물론이요, 가정적인 종족적인, 민족적인, 세계적인 판단의 기준이 한 울타리 안에서 모두 벌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누가 걸어야 합니까? 가정적인 탕감노정, 종족적인 탕감노정, 민족적인 탕감노정을 누가 걸어야 합니까? 역사는 오늘날까지 옛날 이스라엘 시대의 상황을 되풀이하면서 내적인 이스라엘의 기준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기준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못 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승리의 기준을 아직까지 갖추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내적 이스라엘권이 해결짓지 못한 역사적인 사명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아담이 잘못한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노아, 아브라함, 모세가 잘못한 것도 내가 책임져야 하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에 걸쳐 선지선열들이 잘못한 것까지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 앞에 서 있는 여러분은 자신의 갈 길이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어느 한때 내가 은혜를 받고 또 내 마음속으로 천국으로 일면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확대하여 동지를 모아서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과 부탁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처해있는 입장과 선생님이 처해 있는 입장에서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의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노정을 걸으려면 역대의 선조들이 해결짓지 못한 내적인 이스라엘권을 확정시켜야 할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적인 이스라엘권을 확정지으려 하면 외적인 사탄세계에서 그것을 반대하려는 징조가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안팎으로 하나 되어 그 세력을 한꺼번에 물리치며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노정을 가는 인간의 사명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내적 사명과 외적 사명이 서로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팎의 사명을 통일할 수 있는 때입니다. 내적인 사명은 영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하고, 외적인 사명을 하려면 선조들이 지금까지 저끄러뜨린 것들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들이 알아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외적인 기준을 개인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세계적으로 승리했다고 하는 기준이 세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7년노정이라는 기간을 세워 나아가고 있는 데, 여러분이 완수해야 할 사명이 어느 기준까지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림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권을 다시 조성해야 할 것이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중대한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새로운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인 이스라엘권을 세계적으로 이루기 위해 내적인 이스라엘을 상속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다가 이스라엘 민족 및 유대 교단과 하나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과 한국의 교계(敎界)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을 탕감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18-199
역사 과정에 있어서 비참했던 일
선생님은 원래 한국 교계를 중심삼고 출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단의 반박과 민족의 반박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길을 걸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맨 밑에서부터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다시 더듬어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완전한 진리의 터전을 닦아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가 걸어온 노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통일교회가 역사 과정을 탕감해 나오는 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접붙이기 위해서는 처음에 만물을 조건삼아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조건삼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재림이상이 이루어지면 재림주님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조건삼아 가지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것은 말할 수 없이 탄식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제물로 놓이게 된 만물은 더 큰 탄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만물 자체로 보면 타락권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탄식할 일이지만 인간을 참되게 끌어서 해방의 한 날을 맞기 위하여 제물적인 입장에서 희생되어온 것 또한 탄식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해방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물된 만물이 탄식하는 기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물된 만물과 일치되어 제물 없이도 살 수 있고, 또 제물 없이도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만물은 인간의 뒤에 가고 인간은 만물 앞에 내세워져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자리에서 양자를 거쳐 아들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락하지 않은 아들이 나타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을 중심삼고 그 뒤에 있는 만물과 함께 해방권을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교단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만물이 제물의 기준에 세워진 것 역시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한 일들이 만물에게 탄식을 더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제물시대를 지났기에 유대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이 제물 대신 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었더라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제물은 만물이 되어야 했지만, 그 당시 제물의 실체형을 갖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요, 유대 교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던 것은 유대교단이었습니다.

제물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 앞에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제물이 되지 않고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제물이 된 것은 결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억울하고 비통하고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 스스로가 타락해서 그처럼 슬픈 자리에 떨어진 것이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타의에 의해서 슬픈 자리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으로 보면, 아담과 해와가 스스로 타락해서 죽음의 자리에 하나님의 심정으로 보면, 아담과 해와가 스스로 타락해서 죽음의 자리에 나간 것보다도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된 사실이 하나님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유구한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심정에 있는 가장 큰 못 자국은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 과정에서 비참한 일 중의 제일 첫번째는 아담 해와의 타락이었으며 두번째는 예수님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세계를 대표한 입장이었고 유대교는 세계의 종교를 대표한 입장이었습니다. 동시에 유대교는 내적인 것을 대표했고 이스라엘 민족은 외적인 것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안팎의 것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또다시 어둠의 길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는 영적 사망과 육적 사망의 두 골짜기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기독교가 영적인 골짜기를 차지하기 위해서 육적인 골짜기를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골짜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육적인 골짜기를 타개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육적인 골고다 노정에서 영적인 골고다 노정으로 가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육적인 골고다 노정과 영적인 골고다 노정을 다 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길에 나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슬픔의 기로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길을 걸어 나오기 보다는 좋든지 싫든지간에 죽음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때에 이러한 한을 풀 것이냐? 이 한을 풀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가슴속에 남겨진 못 자국을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슬픔과 눈물로 엉클어진 그 한의 근본을 해원성사하지 못하면 사탄은 ‘하나님이여, 아직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라고 참소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앞에 세우고 제물을 동원하여 땅 위에 영육을 통할 수 있는 주관권을 세워 행사하여야 할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이 고스란히 남아져 재림의 한 날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가는 끝날의 노정에는 탄식이 그들 앞에 놓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18-201
통일교회의 사명과 책임
그러면 끝날의 이 탄식을 누가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선민을 대신하여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 남모르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효도하는 우리들이 이 일을 상속받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교회를 통일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메시아와 같은 사명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된 기준을 갖추어 비로소 승리를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완전한 승리의 기준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어려운 고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판국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 민족을 제물로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을 세계적인 제물로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유대교단이 하지 못한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유대교단은 이스라엘 민족을 제물로 바쳐 가지고서 역사시대의 인연을 닦아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 터전을 닦기 위해서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국가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유대교단은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예수님 앞에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즉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어 예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 민족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모든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가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사상을 자랑하는데, 그 이스라엘 국가는 어디 갔습니까? 교회도 나라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2천년 전에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한 것을 놓고 예수님이 골고다의 산상에서 슬퍼하셨던 것 이상으로 슬픈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살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제2이스라엘 민족을 상속받아 나가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독교가 세계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이 되었습니까? 세계적인 이스라엘 나라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이스라엘, 즉 기독교가 한 나라 앞에 서서 그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세계적인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느냐? 세계적 이스라엘의 형태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릴 수 있는 무리가 어디에 있느냐? 오늘날의 기독교가 유대교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있으니, 이 교회를 수습하여 세계적인 유대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교회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이 바로 그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수습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아버지의 심정과 일치시킬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세계적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유대교를 표방할 수 없는 기독교는 2천년 전 그 시대를 대표한 예수를 맞아들이지 못했던 유대교와 같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은 예수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민족은 그런 이스라엘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날을 마음속으로 불러왔던 것이요, 그러한 입장에서 내일을 위한 생활의 무대를 개척해 나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늘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싸우는 투사라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 나라를 일으키지 못하면 교단이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에 유대교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라의 터전이 있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기반을 쌓지 않으면 기독교는 망합니다.

하나님은 발전적인 섭리를 해 나오시기 때문에 교회도 발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하는 목적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 것이냐? 세계와 국가의 가인적인 기준을 아벨적인 기준에다 연결시키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전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세계적인 기준과 교단적인 기준이 확고하게 세워져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예수님은 사탄이 예수님을 쳤기에 꺾여 나갔으니 오늘날의 통일교인들은 사탄이 제아무리 쳐도 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18-204
우리는 어떠한 위치에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또 세계적인 국가의 통일을 위하여 우리들은 온갖 충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떠한 교회도 바치지 못했던 정성과 충성을 우리들이 바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제물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제물 되기 위해서 나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떠한 위치에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한 가정을 복귀시키기 위한 제물이 될 것이 아니라,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어서 하늘땅을 통합할 수 있는 그런 제단에 올라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통일교회 교인들은 만민이 고대하는 제물의 자리에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물의 자리에 나가되 죽지 않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교가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크나큰 못 자국을 남겨 맺혀진 그 한을 풀지 않고서는 하늘과 땅을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복귀를 위해서는 원래 만물의 제물시대, 자녀의 제물시대, 부모의 제물시대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배반한 이후로 단 한번도 부모의 입장에서 제물을 드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앞에 부모의 날이 세워지게 되었으니, 부모를 통할 자녀의 날이 나와야 하고, 만물의 날이 나와야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심정을 해원성사하고 부모의 심정, 자녀의 심정, 만물의 심정을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담은 타락했지만 우리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조건을 세워 탄식권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러한 날들을 정할 때에 거꾸로 부모의 날을 먼저 정하고, 그리고 나서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정했던 것입니다.

18-205
‘만물의 날’의 의의
그러면 만물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만물을 해원성사시키는 날입니다. 그런데 만물을 해원성사시킬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은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해와의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만물의 날을 기념할 수 있는 완전한 자격자가 되어 있습니까? 그저 여러분들은 막연하게 부모의 날, 자녀 날, 만물의 날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날을 맞기까지에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피어린 투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은 본래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해서 주관을 받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이 없다면 자녀의 날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녀가 참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만 나오듯이 만물의 날도 참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자는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느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 이상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만 이룩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인연된 자리에 태어나고 보니 우리들은 원치 않았던 사탄의 주관권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여기에 참부모님을 중심삼고 참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의 가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았던 사랑의 가치보다도 더욱 큰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참부모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출발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해 있느냐? 우리는 죽어도 하나님과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는 내 생명의 전부요, 소망의 전체요, 내 운명의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이라고 자기 부모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부모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앞으로 오시게 되는 주님은 참부모의 자리에 있게 되니, 그 부모와 자녀와의 사이를 어떠한 고통이나 위협이나 협박의 총칼을 가지고서도 갈라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갈라져 타락했지만 여기 이 자리는 갈라질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복귀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뼈와 살이 일체를 이루어 천주를 사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만물의 날을 맞이할 수 있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3단계 성장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처럼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도 3단계를 거칩니다. 만물이 소생이고, 자녀가 장성이고, 부모가 완성입니다. 이것이 역사시대의 제물의 역사입니다. 구약시대 때의 제물, 신약시대 때의 제물, 성약시대 때의 제물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땅 위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만물의 날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의 날로 인하여 만물세계가 해원이 되었고, 자녀의 날로 인하여 역사적인 해원이 한국을 중심삼고 벌어졌습니다. 또 부모의 날로 인하여 역사적인 해원이 한국을 중심삼고 벌어졌기에 지구상에서 사탄이 하나님 세력을 몰아낼 수 없는 공고한 터전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지상섭리의 출발을 공고하게 다져 가지고 사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커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하늘편의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커가는 것입니다. 하늘편의 힘과 기준이 크게 되면 하늘편이 승리하고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3년에 만물의 날을 책정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민족은 옛날의 외적인 이스라엘 입장이요, 우리 교회는 유대교를 대신한 입장인 것입니다. 또 이 기준은 제물을 대신한 것이니 세계 만민 모두에게 들어맞을 수 있는 탕감기준을 우리 교회가 세워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발전하여 평면적인 발전을 전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노정을 걸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물건 일체, 즉 집과 자기의 세간 전체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도 세계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런 것들을 갖춘 입장에 설 때 탕감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녀의 날, 부모의 날을 세웠고 이제 만물의 날을 세우는 것입니다.

18-207
만물의 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그러면 이런 숱한 날들 중에 최고의 기준이 되는 날은 어느 날이냐? 그날은 예수의 한이 풀리는 날이요,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날을 축하하려면 축하의 예물을 갖추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의 각 국가들, 혹은 통일교회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관점에서 이날을 축하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날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교를 제물삼아서 넘어갔어야 할 섭리를 해원성사하여 승리의 기반을 닦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이날을 맞이했어요? 뭐 그런 날이려니 했지요? 뭐 틀림없이 사탄이 어쩔 수 없는 그런 기준이 있기는 있겠지 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만물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녀의 날이 없이는 이날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이 나오기까지, 또 자녀의 날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핍박이 있었는 지 모릅니다.

36가정을 택할 때 그 부모들한테 선생님이 의논했나요? 남의 자식들을 데려다가 의논도 않고 청첩장도 내지 않고 전부 선생님 마음대로 결혼을 시켰으니 욕뿐만 아니라 몽둥이 찜질까지 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 같았으면 옷을 찢기고 칼을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게, 깜짝하는 사이에 후다닥 해치웠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넓고 얕은 강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강 넓이를 한꺼번에 좁히면 그 깊이는 수십 길이 되지만 그 넓이는 좁혀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뛰어넘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자식들을 전부 끌어다가 하나님의 자식으로 만들어 결혼을 시켰습니다. 하늘의 우주적인 운세를 가지고 복귀노정을 완결하는 데 누구한테 의논해야 합니까? 축복해 주는 데 누구한테 의논해서 합니까?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36가정은 무엇이냐 하면 조상들입니다. 조상이 되는 사랑을 이루는 데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한테 의논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의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2가정은 자녀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 만물의 날을 찾아 세우기까지 선생님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부다 하나님의 것이요, 또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자녀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사탄의 참소조건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통해서 만물의 날을 찾아 나왔지만, 과연 이 만물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얼마나 정성을 들여 봤습니까?

18-208
축복가정의 섭리적 의의
이러한 종적인 역사적인 인연을 전부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탕감할 수 있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를 전부다 종횡의 관계로 결정지어 놓으면 거기에서 기본단위인 가정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부모, 자녀, 만물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정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 그래서 축복이 귀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축복이 귀해요? 안 귀해요? 모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하늘의 제단이 가정인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자녀를 갖추어서, 자기의 전 소유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임할 때,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총합한 횡적인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축복가정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역시 이러한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기준을 이루어 놓았으면 여러분들은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밟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인 종적 인연을 넘어섰다는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축복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그 기준을 통과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만물, 자녀, 부모의 순으로 된 시대였어요. 그러나 지금 시대는 거꾸로 부모, 자녀, 만물의 순으로 된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범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축복이 귀하다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축복받은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그러면 여러분은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이런 천법에 적응하는 생활을 했습니까?

통일교회 7년노정을 기준으로 해서 죄목을 따지자면 한 사람도 남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을 다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소생, 장성의 단계를 넘어 완성의 단계로 나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종(縱)으로 된 몇천 년 역사를 한꺼번에 횡(橫)으로 넘어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즉 6천년 역사를 전부 한꺼번에 넘어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침범권내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사탄권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해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리를 대신하는 자리를 부여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의 것이자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체는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자녀의 것이 된 후에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그 법도가 땅 위에 남아 있고 인간 생활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보고 자식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사방(四方)을 가릴 줄 알고, 위도 아래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고로 인간이 만물을 주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까지 사랑해야만 자기 생이 자기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받더라도 줄 수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받을 수는 있어도 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받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주고 받고 해야만 되는가! 그것은 창조원리에서 밝혔듯이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주고 받으면 마음이 왜 좋으냐? 우주의 힘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같이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 개척하러 나가면 거기에 누가 따라가느냐? 그곳엔 혼자 가더라도 자기 아들딸이 따라다니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가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혼자 가더라도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간다고 할 때 아담 해와만 가는 것입니까? 실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자녀도 타락했고, 만물도 타락권내에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조건에 걸려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민이 타락권내에서 허덕여야 했고, 만물이 타락권내에서 허덕여야 했던 것입니다.

18-210
천지 법도
복귀한 가정이 아버지 앞에 가는 데는 무엇이 먼저 가겠습니까? 무엇이 먼저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에 무엇부터 먼저 지었겠습니까? 만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역사에 먼저 만물이 나타나야 합니다. 천지의 법도를 재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아까와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아까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을 막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고생하는 공적인 길에 내세우기를 주저하는 것은 자기 갈 길을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갈 길을 찾아가려니 예수를 공적인 길에 내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물질에 대해서 초월하지 못한 사람은 도의 세계에서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 것이라는 물질은 다 버리고, 처자도 다 버려 두고서 뜻을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만물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으면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고 아들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는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만물이 먼저 나타나야 하느냐?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짓기 전에 만물을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 제물로써의 만물이 먼저고 그 다음에 자녀와 부모입니다. 복귀는 거꿀잡이로 해 나오는 것이기에 만물, 자식, 부모의 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질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앞으로 이런 원칙에 따라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탄세계의 소유물을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할 것인가? 만물이 사탄의 소유가 되고 싶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의 소유가 되고 싶겠는가? 만물은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인류의 참부모의 품에 안기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권내에 복귀의 인물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만물을 제물삼아 낙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이것을 해야 할 선지자요, 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사람들이 있습니까?

통일교인은 앞으로 이 모든 기반을 넓혀서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단계로까지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몸으로 우리의 무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축복을 받아서 축복가정의 기준에서 이런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기간만 지나면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할 것입니다. 고로 지금 복귀 과정에 있어서는 뜻을 위해 몸부림치고 자기의 아들딸이고 재산이고, 무엇이든지 전부 하나님 앞에 남모르게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만물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한 말을 개인적으로, 종족적으로, 단체적으로, 세계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우가 그렇지 않습니까? 아들이 죽는 판에 물건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자식이 죽을 때에는 부모도 죽을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천지 법도가 그런 것입니다.

18-212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살라
오늘날까지 선생님이 한 일은 원리를 지상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종적인 역사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하여 선악을 분립해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역사적인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축복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기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복가정은 우주적인 가정이요, 종횡의 역사를 총합한 가정이기 때문에 전체가 일치단결하여 하나님의 자식된 도리로서 사탄세계를 완전히 넘어뜨려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은 7년노정 기간에 6천년의 역사를 복귀하여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21년노정 중에서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전부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이 지나가면 선생님의 집도 사야 합니다.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부자가 안 되려고 해도 부자가 될 것입니다.

요즘 영통인들이 기도하면 영인들이 통일교인들을 자꾸 못살게 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은 헐벗고, 못 먹고, 못 입고, 쫓김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있을 곳이 없어도 낙심하지 말고 나아갑시다. 우리들은 천하만민 앞에 원리를 선포해야 할 귀한 존재들입니다. 알겠습니까? 거기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축복가정이 나온 것입니다. 세계를 축소한 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벌어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가정이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자리는 위로는 선조들이 바라보는 자리요, 앞으로는 후손들의 소원을 이루어 놓는 자리인 것입니다. 위로는 공경해야 하고 아래로는 사랑해야 합니다. 영계에 있는 선조들 대신 탕감해야 하고, 또 자기 후손들 대신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자기 아들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천대만대 후손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하는 역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천국 가야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려면 천국을 땅 위에 이루어 놓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천국에 가면 천국은 누가 이루어 놓습니까? 하나님이 이루어 주기를 바랍니까? 역사적인 가치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조를 모시고 후대를 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조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고, 후대의 소원을 성사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통일교인들이 바라는 이상은 우리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나라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소망에 찬 의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생각으로 이상향을 그리고 생활로 의의 법도를 세우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나라가 있어요? 없으니 그 나라를 찾아 이루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나라는 무슨 나라냐? 이상의 나라, 통일의 나라인 것입니다. 만민이 갈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 나라를 이루는 데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가정도 협조하고, 종족도, 민족도, 세계도 다 협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을 통일할 수 있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 뜻을 위해서 나가서 전도를 해야지! 세계가 복귀되어야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생활을 그렇게 못 해서 되겠습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그 가정을 책임지고, 직장에 나가면 그 직장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의를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고, 물질을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의 공동목표를 위하는 것이 그 가정에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내 자신이 어느 때든지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뜻은 안다고 하지만 생활은 엉망진창입니다. 그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는, 뜻을 떠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데,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기에 보조를 못 맞추고 있습니다. 보조를 못 맞추다 보니 하나님과의 간격이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18-214
가정천국을 이루자
그러면 이 간격을 어떻게 하여 메울 것이냐?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보조를 맞춰야 되고, 보조를 맞추려면 비약해야 합니다. 또한 비약하려면 탕감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때가 되면 통일교회에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여러분이 지금 출발 명령을 받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념은 가정의 이상을 연결지어 나아가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탕감조건을 세우며 전체를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운 것을 터로 하여 구현될 것입니다.

가정의 재산과 자녀와 부모를 위하는 것보다 인류를 위하여 복귀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가정을 돌볼 때도 뜻을 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곧 생활 자체가 하나님 앞에, 전체 운세에 흡수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의 결과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천적인 실체는 횡적으로 볼 때에 탕감역사에 동참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천운을 따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종적으로 비약해야 합니다. 탕감역사를 하려면 제물을 그 조건으로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생활은 생활대로 뜻은 뜻대로, 이렇게 생활해서야 되겠습니까? 특히 축복가정은 책임졌다는 기준을 가지고 세상의 어떠한 가정보다도 특별한 기준을 갖고 하늘의 뜻을 세계화해야만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까? 전도나 직접적인 활동을 못 하겠으면 간접적인 생활 양식을 갖추어서 사탄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책임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재차 탕감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세운 사람에게는 전도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전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딸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아들딸의 문제보다도 전체 목적을 두고 볼 때 막연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숨을 쉬는 것도 그렇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기도를 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면을 전체적인 목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천운을 따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이 기준만 인식하면 됩니다.

가정에서 할 것 다하고, 욕심 낼 것 다 내고, 자기 할 것 다하고, 뜻이니 뭐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철두철미한 자리에서 국가적인, 세계적인 일을 해 나가야 앞으로 천국이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여러분의 생활 터전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국을 이루어 주어도 자기 스스로 천국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어 줄까요, 이루어 나가겠어요?

아무리 세상이 불화하더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천국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뜻을 중심삼고서 우리는 마음천국 개인천국 가정천국을 지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가정천국을 이루지 못하셨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천국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천국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느냐? 민족을 대신한 축복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 역사적인 제물이 되어 탕감하면 그 탕감했다는 조건을 만민 앞에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이렇게 중대한 길임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소망에 넘치는 가정천국을 이루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날이 어떤 날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예」

역사적인 면에서 만물의 날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서, 섭리적인 중심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18-216
기 도(Ⅰ)
아버지! 아무리 동분서주한다 할지라도 저희의 갈 길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곳을 향하여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사옵나이다.

탕감복귀노정을 가면서 저희들은 낙망할 때가 많았사오나, 낙망하지 않고 참아 나오게 해주신 아버지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수많은 민족을 세워 놓고 오늘날 한민족을 세우신 아버지시여! 지금까지 싸워 나온 역사 과정에서 한도 많고 깊은 사연도 많았지만, 오늘의 저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시려는 아버지임을 알 때 그 배후에는 무언가 서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 자신들의 고달픔과 저희 자신들의 어려웠던 모든 사실을 생각하다가도 아버님을 대하게 되면 그러한 것들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몇천 번 맞아도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뼈살에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몰리는 고빗길에 있을 때에 아버지를 저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이 그러한 자리에서 도움을 요구할 때에 마음대로 돌아설 수도 없는 입장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저희들은 아버지에 대하여 돌이키는 한때가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런 때가 없었다는 것 또한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한번 돌아서는 날은 천지가 파괴되는 날이요, 인류의 모든 소망이 전면적으로 무너지는 날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6천여 년 기나긴 세월을 지내 오면서 저희 선조들이 아버지 앞에 얼마나 간구(懇求)했으며, 저희들 또한 자진하여 아버지 앞에 모인 때가 얼마나 되옵니까?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돌아설 수 없기에 참고 또 참았으며, 믿고 나왔던 자식들이 모욕을 퍼붓는 자리에서도 혀를 깨물고 마음을 억누르며 참아야 했던 아버지의 사연을 대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할 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 것이며, 사랑하는 딸이라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런 무리들이 합하여 한 종족을 이룩하게 되면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종족이요, 그런 종족들이 합하여 한 민족을 이루게 되면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민족이요, 그런 민족이 국가 형태를 갖추어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될 때 아버님은 그 국가를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 모인 통일의 자녀들 중에는 이런 길을 가는 데에 아버지 앞에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니 실지로 행하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고, 저희들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할 외적인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을 알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개를 넘어 승리하게 되면 아버지를 땅 위에 모심으로써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되어,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세계가 된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이 모르는 탕감복귀의 노정을 걷고 있는 저희들이 옛날에는 아버지 앞에 충성하기를 원했으나 어떻게 충성해야 할 줄을 몰랐고, 어느 한 날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했으나 그 자리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리를 찾았사옵고, 아버지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 위에 서 있사옵니다. 여기에 모든 피와 살을 뿌려 생사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승리하는 한 날을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나갈 줄 아는 하늘의 용자의 모습을 갖춘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만물의 날을 기하여 저희들이 가야 할 새로운 환경을 마련했사옵나이다. 저희들이 막연히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앞에 작정된 행로를 밟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을 가는 저희 자녀가 가야 할 길임을 알았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가야 할 길이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것을 알았사옵고, 그 길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축복가정이 중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러니 축복가정을 중심삼아 해원성사의 한 날을 맞아야 되겠사옵니다. 천추의 한을 풀 수 있는 하나의 가정 단위를 아버지 앞에 이루어 드리겠다고 하는 거룩한 자녀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사랑의 가정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는 저희들이 평탄한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각자 맡겨진 책임을 다하며,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며, 부족한 자신을 책(責)하면서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리 반도에서 이 시간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그때까지 보호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과 저희들이 바라는 이념의 세계가 어서 속히 온 천지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들 각자가 탕감적인 제물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지금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할지라도 충성을 다하여 언젠가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겨진 시간을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8-219
기 도(Ⅱ)
아버님의 창조이상, 높으신 그 이상이 인간과 일체를 이루어 억만년 선한 세계를 이루어 나갈 것이었사오나, 우리 인류시조의 한 날의 실수로 인해 그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옵니다. 창조의 이상을 유린한 인류 시조의 죄상을 저희들은 낱낱이 폭로해 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그 후손된 저희들은 아버님 앞에 저끄러진 역사적인 그 죄상을 참소하고, 다시 한번 인간시조를 참소해야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을 이 시대와 역사적인 모든 죄상을 결박해서 제거시킬 수 있는 모습들로 삼아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했으며,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수없이 명령하였사오나 그러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던 저희 선조들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오늘의 이 시점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것을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된 모습으로 세워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간 모든 역사시대의 서러움이 저희 인간 세상에서는 사라진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계 전체의 수많은 영인들과 역사 과정에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가슴 가운데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에 슬픔이 남아지는 한 영계에도 땅과 인연된 고난이 남아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일대에 모든 것을 제거시켜야겠사옵니다. 이와 동시에 역사적으로 한 맺힌 모든 것을 뽑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후손으로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아서 이와 같은 사명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며 죽음의 길을 자처해 나간 사람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었사옵니까?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마지 못해 간 사람은 있었사오나 자기 스스로 자처해서 이런 길을 가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통일의 자녀들의 마음과 몸을 다시 한번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내심에서부터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폭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셔서, 아버지의 소원성취를 위한 노정을 스스로 걸어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고 또 아버지를 섬기는 생활을 하였더라도, 진정으로 아버지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자체가 못 되었사옵니다. 아울러 아버지께서 세우신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회개하오니, 저희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충고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땅 위에서 어느누구도 지키지 못했던 거룩한 만물의 날을 저희들은 지키고 있사옵니다.

이날이 오기까지 역사노정에서 아버님께서는 슬픔의 길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나이다. 탕감의 길을 가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 나오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또한 핍박의 길을 개의치 않고 탕감의 고개를 넘기 위해 몸부림치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저희들이 먼저 보답해 드릴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아버지의 권고와 부름에 응해 나선 형제들이오니 과거 잘못된 선조들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있는 형제들을 아버지 앞에 세우심과 동시에 민족 앞에 내세울 수 있게 하여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마음이 어떤 자리를 넘어가게 되는가를 다시 한번 회상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앞에 참된 모습이 기준을 갖지 못하였다 할진대 아버지께서 명령하시어 저희의 죄악의 심보를 굴복시켜 주시는 이 시간이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마음과 몸이 합하여서 회개할 수 있는 심적 동기를 일으키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자체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아버지여! 이날을 거듭 축복하여 주실 줄 믿나이다. 또한 이날을 사모하고 이날을 위해 정성들이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의 외로운 자리에서 이날을 추앙하고 본부를 사모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당신을 위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는 자리에서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이날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아버지여, 그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의 호소함과 그들의 정성들임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잘 알고 있사오니, 그 결과가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직접 나타나지 않는 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현존하심과 아버지의 임재하심을 이민족에게 실제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현재 그 뒤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지친 발걸음을 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참을 수 있는 한 기간을 세워 놓고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한과 분을 풀 수 있는 저희들로 인도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타락으로 인연된 그 모든 것을 붙들고 탄원하며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그들의 갈 길을 평탄케 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환경적인 모든 전부를, 아버지, 죄로부터 막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승리할 수 있는 터전에 동참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 과정에서 저희의 선조들이 남긴 죄악의 요소가 오늘에 미쳐져 있다는 사실을 오늘의 저희들이 알고, 그것들을 제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대신한 승리의 모습을 갖추고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짓기 위해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시대적인 사명을 간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옵고, 이 나라를 위해 눈물어린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그들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7년노정에 있어서의 마지막 만물의 날을 보내게 되오니, 이날 저희들이 보내는 모든 전체가 아버지 앞에 기쁨의 조건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책임분담을 스스로 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일을 위하여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날도 영광 되게 하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