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2: 축복가정의 책임

축복가정의 책임
1967.06.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18-182
축복가정의 책임
[말씀 요지]

‘하루 이틀만 걷고 말 길도 아닌데 뭐 그렇게 충성을 하는 가’라고 말함으로 말미암아 충성된 길을 못 가게 했다면, 그 조건은 저 나라에 가서 천추만대에 한이 될 것이다.

충신 효자는 국운(國運)을 타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뜻을 위하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한다.

아벨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인을 복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부모를 복귀시킬 수 있다. 신앙길에서는 형제, 종족, 민족이 가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가인을 복귀시키지 않고는 자기의 부모를 복귀시킬 수 없다. 그래서 선생님도 선생님의 부모를 전도하지 못했다.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식구들을 거느리고 부모를 모셔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화목치 못하는 사람은 효자가 될 수 없다.

선생님은 본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만을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쁜 것도 좋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간 동안에 효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효자의 길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장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대신 형제들을 잘 품어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 5:9)”했다.

총각 처녀 때 충신 되는 것과 결혼한 후에 충신되는 것, 그리고 자녀를 낳은 후에 충신 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결혼한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충신이 될 수 없다. 아담 해와의 입장을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미혼자로서 충신되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총각 처녀들을 자기 몸이나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피땀을 흘리지 말라. 오직 뜻만을 위해서 3년 이상을 진정으로 충성을 다해 보라.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러면 참으로 충성할 수 있는 훌륭한 자녀를 낳을 수 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봄날을 모른다. 봄을 감상하는 일보다도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그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외국에 선교사를 많이 보낸 나라는 망하는 않는다. 남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 나라의 국비를 쓰는 것은 선 중의 선이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많은 식구들이 외국에 나가 선교사로서 몸부림치게 되면 세계의 운세가 한국으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선생님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12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열두 사람의 마음과 열두 나라의 마음을 맞추어야 한다. 그 중에는 원수도 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짧은 기간 동안 할 일을 다해야 한다.

가장 많이 반대하던 사람이 복귀되면 그 가정을 복귀시키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나 국가 내에서 가장 많이 반대하던 사람이 복귀되면 그 사회와 국가를 복귀시키는 것은 용이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반대하던 사람들이 복귀되어야 한다.

내가 몇마디 말만 해 주었더라면 영계에서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구가 몇몇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까지 때가 안 되어 말해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 일을 다하고 나면 아무런 공포도 오지 않는다.

선생님은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탕감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들 앞에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그들이 예복을 갖추는 것이다.

이제 선생님은 누구라도 축복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것은 선생님의 특권이다. 여기에는 사탄도 참소하지 못한다.

책임을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뜻에 절대 순종하면 된다.

자기 대신 죽음의 자리에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믿음의 자녀요, 누구든지 이런 믿음의 자녀를 3명 이상 세워야 원칙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물의 골짜기는 눈물로, 피의 골짜기는 피로 덮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축복은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축복가정들이 축복받은 후 거짓노릇을 하면서라도 3년 이상만 뜻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더라면 이 나라는 벌써 복귀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3년 이상 충성한 사람에게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는다.

자기의 갈 길을 다 가지 못한 채 네 활개를 펴고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선생님은 감옥에서도 편히 잠 한번 자보지 못했다. 형무소의 죄인들 앞에 내 몸의 다리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내보이지 않았다.

뜻을 위하는 자리에서 죽어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그렇게 되면 섭리역사도 단축된다.

하나님을 사모하기를 아픈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사모하고 생각하면 병도 낫는다.

선생님이 인사를 받지 않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함이다.

7년 고비를 넘는 이 기간에 있어서 특히 40세 이상 되는 사람들은 눈물로 정성을 들여야 한다.

선생님의 공적인 생애는 26세에서부터 21년 기간이다. 이 노정이 만약 40년이 걸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지상생활은 영계에서의 생활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마치 영계를 위한 생산 공장과도 같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