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0 to 18-179: 탕감이 가는 길

탕감이 가는 길
1967.06.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18-140
탕감이 가는 길
이 자리는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판가리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자리에서 복귀섭리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세상에 퍼져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반대받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반대를 받긴 받았지만 그것은 세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반대하라고 하면서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반대받는 입장에서 이루어진 실적은 참것으로 천국 창고에 쌓여지게 되는 데, 이것을 꺼내어 만민에게 나누어 줄 때 그것은 만민이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받을 수 있는 귀한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18-140
탕감복귀의 뜻
여러분들은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작은 조건을 통하여 큰 것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백 사람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한 사람이 그 백 사람을 대신하여 사탄에게 맞는 자리에 있어도 불평 불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마음으로는 천국을 소유하고 그 자리를 감당해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선한 한 사람이 맞은 대가로 백 사람의 죄가 탕감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추위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천국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죽어도 하늘이요, 살아도 하늘이요, 태어난 것도 하늘 때문이요, 사는 것도 하늘 때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출발하여 하늘의 과정을 거쳐서 하늘로 종착점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그런 자리를 감당해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백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인간 백 사람의 대표로 한 사람을 세워서, 그가 백 사람 대신 맞아 백 사람이 맞을 것을 용서받아 가지고 악한 자리에서 선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탕감복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탕감복귀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여기에 있는 참다운 사람 서너명만을 중심하고 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이의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런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일본에 간다고 하면 지방에서는 밤새도록 기다리며 전화니 무엇이니 해가지고 ‘내가 그 은사를 천번 만번 갚을테니 그저 편지 한번만 해주소’ 하고 부탁들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지방에서부터 그런 연락이 옵니다. 이것은 본부에서도 모르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번 기간이 어떤 기간입니까? 탕감복귀의 기간입니다. 또한 이번 기간은 전도기간이기도 합니다. 전도기간으로 출발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선생님이 세계 40개국을 중심삼고 그 3배인 120개 이상의 성지를 택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땅과 인연을 맺어야 할 관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탕감복귀를 위해 3년간 많은 생각을 해왔고,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인류 역사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좋은 세계가 이루어져도 그것이 영속되지 못하고 어느 기간이 지나면 나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탕감하는 데 있어선 반드시 들이맞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어떤 중요한 일이나 중대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면 그것을 앞에 놓고 정성을 들입니다. 또 자기가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도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백일기도니 무슨 기도니 하며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더우기 종교를 믿는 신앙자들은 열심히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성은 왜 들이느냐? 그것은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18-142
정성과 탕감
여러분이 앞으로 해야 할 중대사가 사탄에게 침범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혹은 택함받은 사람이 버림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모든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탕감을 달게 받겠다는 입장에서 모든 악의 요소를 탕감지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제대로 하면서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성이란 먹을 것 다 먹고, 잠잘 것 다 자고, 입을 것 다 입는 그런 자리에서는 절대로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중대사를 앞에 놓고는 반드시 하나님과 자신과 담판짓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리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리지 않거든 내가 솔선해서라도 미리 맞는 것입니다. 맞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상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해오신 복귀섭리의 법칙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이 기간을 특별한 기간으로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성지도 일정한 기간 내에 순방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외는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공장에도 여러번 들르지만 그런 때에도 마음으로는 우리가 가는 길을 위해서 선생님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외국 식구들은 우리 나라에 대해서 크나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 본부교회 식구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까지 생각하느냐 하면, 선생님은 층계를 구름 타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선생님은 밥을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 하면 화장실도 안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뜻을 알고 나서는 최고의 기준으로 한국과 선생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보면 낯이 간지럽습니다.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는 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낯이 간지럽고 마음이 간지럽다는 것입니다. 어디,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들 이상으로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현금이나 예물을 드릴 때에도 몇십 번씩 기도하고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성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때 그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그 정성들인 예물에게 심판당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군왕도 자기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즉 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또 그 군왕을 따르던 동료들도 그 사람을 반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렇게 정성들이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 있어서 틈틈이 성지를 돌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과거에 하나님이 선생님을 대해 나오던 모든 것을 돌아보면서 반성할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사정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협조해 주신 그 은사를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여 있는 수많은 식구들이 자라나온 과정은 천태만상입니다. 출발에서부터 앞으로 천국문에 연결될 때까지 모두가 다른 길을 갑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심정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협조해 주신 심정의 인연을 그들에게 연결시켜 가지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기간에 성지를 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특별히 집회하는 것도 역시 그 취지에서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할 때 옛날의 통일교회 식구라는 기분으로 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기분으로 여러분을 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 기간 동안 어떻게 해야 여러분과 더불어 하나님이 내려 주신 새로운 사명과 목적을 중심삼고, 새로운 심정과 새로운 도의의 법도를 토의하면서 서로 하나 되어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심정을 유발시키겠느냐 하는 것이 이번에 선생님이 생각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간에 여러분이 통일교회 초창기 때부터 들어와서 하나님을 믿고 모시고 나오면서 생활했던 전반적인 상황을 전부 발표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신앙 고백이라든가 간증을 통해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많은 사연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이냐? 그것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복귀노정에 있어서 기필코 그러한 사연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복귀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 그 사람은 몰랐지만 하나님이 공식적으로 그런 책임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그들 앞에 그런 사연들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런 사연들로 말미암아 탕감역사가 발전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8-144
일본 식구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선생님이 지금 제일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심정이 일본 식구들의 간절한 심정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외로운 자리에서 허덕이면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점령하고 저나라의 천군천사 앞에서도 그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높은 심정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을 긍휼의 마음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저 뭐 어떻구 어떻구하면서 오가는 손님같이, 습관적으로 집회에 참석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조건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또 한국 사람 앞에 일본 사람은 민족적인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뜻을 대하여 나서는 그 발걸음이 언제든지 그들보다 우세한 기준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요, 그들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욕망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보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심적 기준과 모든 것을 탕감해 나오는 그들의 심적 기준을 비교해 볼 때 여기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대학 가는 것을 제재해야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이 있다면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명을 듣게 되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새로운 희망을 일본 식구들에게 넘겨 주고 자랑하고 보여줄 수 있는 심적 기준이 되어있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가장 큰 염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사람들한테 사탄 노릇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늘이 바라볼 때, 심정을 다하여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 한국 식구들이 일본 식구들에게 져서야 되겠어요? 또 가만히 앉아서 ‘지지 않겠다. 나는 천국을 이루겠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니 꼭 해낼 수 있다’고 말만 해서 됩니까?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해낼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자신 있습니다」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보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 세계 순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 하나님 앞에 공중을 받았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마중 나오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요전번에 해외에 갔다 올 때에 약 천여 명의 식구들이 비행장 구석 구석에 모여 가지고 선생님이 온다 하니까 뭐 고개를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했는데, 다음에는 그것 좀 단속해 달라고 내게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곤란한 점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돌아오는 길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기도를 하려고 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기분이 조금 상했었습니다. 마중을 나왔으면 조용히 비행장 한쪽에 서서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이번 특별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좀 섭섭하긴 하겠지만 선생님의 사정을 보아서라도 요전에 명단을 적어 냈던 확실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참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라는 명사가 왜 중요하느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탕감복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연의 길을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찾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길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어느 사람은 모두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했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반드시 조건을 세워 놓고 가야 합니다. 탕감길을 가기 위해서는 조건이라는 다리를 세워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18-146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중심-하나님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소망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바라는 소망인 것입니다. 또한 본연의 창조 이상세계를 부여해 주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던 하나님의 소망도 역시 인간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하는 자리가 영원한 본연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셔야 하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서 내려와야 되고,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는 그냥 올라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계약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기 위해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도 여기에는 반드시 계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약은 누구하고 하느냐? 또한 계약하는 데는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 계약하는 데는 반드시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반드시 복귀되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본연의 세계로부터 떨어졌으니 탕감복귀하여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데는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탕감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이 무엇이냐? 계약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혼자서만 ‘내가 여기에다가 하나의 조건을 세웠으니 여러분들이 천년 동안 여기에 있으면 모두 천국 갑니다’하게 되면 그것이 탕감조건으로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근본 중심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을 타락시킨 사탄과 타락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타락된 사람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타락된 사람은 탕감조건을 세울 자격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계시고 사탄도 있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높이로 말하면 하나님이 보좌에서부터 지옥의 맨 밑창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과정을 다시 복귀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얼마나 멀고, 복귀의 고개가 얼마나 험하냐 하면 그것은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는 곤욕스럽기 그지없는 험산 준령과 같습니다. 높기로 말한다면 히말라야의 산이 문제가 아니고 깊이로 말한다면 태평양의 해저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분수령이 있고 한 없이 깊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 누가 감히 넘을 수 없고, 파고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의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추측할 수 있느냐? 광대 무변한 온 천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찾지 않으면 그들이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들이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하나님의 본래의 마음이 발동할 수 없고, 그 본래의 마음이 발동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본래의 이상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본연의 기준에까지 올라올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렸느냐? 지금까지 성경상에 나타난 역사를 두고 볼 때에 6천년이나 되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을 복귀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깊이 떨어진 인간입니까?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6천년이나 걸려서 찾아오셨지만 아직까지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찾지 못하셨느냐?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구원섭리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렇게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왜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억울하게 몰리고 쫓기는 자리에 처해 있어도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고, 또한 죽음의 길에서도 갈급한 심정으로 감사해 하던 그들을 왜 동정하지 못하셨는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탕감조건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건은 사탄으로부터도 공인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받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도, 타락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공인을 받지 않고는 이 조건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18-148
탕감의 방법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탕감조건이라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이라는 말을 막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데, 사실을 분석해서 탕감조건이란 무엇을 말하며, 또 그것은 어느 때에 성립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탕감조건을 세운다 해서 그것이 꼭 성립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탕감조건을 절대 못 세웁니다. 여러분, 그런 말을 듣고보니 큰일 났지요? 그렇게 하면 복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인간 사이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으면 구원을 받아요? 못 받아요? 「못 받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어요?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탕감조건을 어떻게 세워야 하느냐?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접붙여야 됩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자리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으로부터 먼 거리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종의 종의 자리에도 서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사탄의 지배하에서 억천만세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비참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을 하나님이 탕감복귀해 나오려니 복귀역사과정이 오래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두 시간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천지창조의 원리법도에 의해서 다시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종도 못 되는 자리까지 떨어졌습니다. 본래 인간은 무엇으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본래는 애기로 태어나서 성장과정을 거쳐서 장성하게 되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 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사람을 지었느냐? 상대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사랑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적인 위치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기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하나님의 몸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몸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애기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에 아들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과 일체되는 자리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하나 된 후에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번식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녀 역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18-149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했다면
만일 아담 해와가 완성했더라면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이 완성해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갔다면, 즉 남자 여자로서 완전히 성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우주와 모체적인 결합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가지고 이 우주, 천지 창조권내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비로소 하나의 출발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 본래 출발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되었어야 할 인간들이 타락했던 것입니다. 본래는 이 출발의 원점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되어서, 인간의 모든 생애가 출발되어야 하고 거기에서 족속이 생겨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출발 시기를 사탄이 겁탈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서운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선악과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대답합니다. ‘그것을 내가 아나,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거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나? 선악과는 그냥 선악과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말이야 얼마나 간단하고 좋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짓궂은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선악과를 지어 놓고 따먹게 해서 자기 아들딸을 망하게 하는 그런 하나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를 보고 사교니 이단이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다. 이 세계 인류는 원래 본연의 핏줄을 통하여 나왔어야 했는데 불륜의 사랑으로 인하여 사탄 마귀의 핏줄을 통해서 번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구의 족속입니까? 사탄의 족속입니다. 세계에서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전부다 사탄의 족속입니다.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탄의 새끼들인 것입니다. 새끼가 무엇입니까?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아들딸입니까? 타락했으니 누구의 아들딸이겠습니까? 사탄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에게 사탄의 아들딸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요? 그런데 그 말을 진짜로 기분 나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요즈음 아가씨 아주머니들 뭐 자기 얼굴에다가 분 바르고 뭐 바르고 하는 데 무엇 때문에 화장을 합니까? 사탄의 새끼 잘났다고 자랑하기 위해서입니까? 웃을 일이 아닙니다.

18-150
종교인은 탕감을 위해 몸을 쳐 왔다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참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늘의 참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핏줄 속에 흐르는 사탄의 피를 풀어 깨칠 수 없고 점령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는 진리를 중심삼고 ‘싸워라. 밀어라. 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면으로 싸워 나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몸뚱이를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놈의 고깃덩이, 이놈의 몸뚱이를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피를 빼라, 금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원수입니다. 이 육신은 자꾸 편해지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것은 쉽고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즉 타락하기는 쉽다는 말입니다. 타락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수많은 성현들을 동원해서 교육을 시켜 왔어도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들도 타락하려고만 하면 타락의 급행열차 일등석을 탈 수 있는 소질이 농후합니다. 왜냐? 타락의 대왕인 사탄의 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놈의 고깃덩어리…. 그거 사실이에요, 아니예요? 참이에요, 거짓이에요? 선생님이 괜히 하는 말입니까? 이 고깃덩어리들, 굴러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때려잡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언제나 넘어갈 것인가? 이것을 정복하여 천상세계 앞에 주장하고, 역사상의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하고 후세의 만민들과 온 세계를 향해서 이 승리를 자랑할 수 있는 , 천지가 나를 환영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겠는가? 여러분들은 이런 승리의 참다운 인생이 되고 싶어서 몸부림쳐 본 일이 있습니까? 그저 감투같은 것 하나 쓰고서 끄덕끄덕하며 ‘이럴까 저럴까? ‘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힘만으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자기 힘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기에 비상대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과 맺은 혈통의 인연, 육의 모든 악의 조건을 어떻게 추방할 것인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투쟁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그냥은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부 다 후려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 가?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일은 뼈속을 파고들어가고, 눈물의 원천으로 들어가고, 땀의 원천으로 들어가고, 피의 원천으로 들어가야 되는 일입니다. 사랑의 눈물 골짜기를 파고들어가야 되고, 땀의 골짜기를 파고들어가야 되고, 피의 골짜기를 파고들어가야 되는 일입니다. 쓰고 있는 모든 가면을 벗겨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통곡을 해야 됩니다. 눈물을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럽고 서럽고 서럽구나! 어찌하여 이 몸은 원수의 피살을 받고 있는가!’ 그런 자신이 충성길을 가기 위해 하늘과 인연을 맺고 나서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조여 오고 배가 꿈적거리는 분통함과 원통함으로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통곡할 수 있는 내가 못 된다 할 때는 단칼에 쳐서 분개심을 폭발시키게 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폭발시켜서 산산조각을 내어 날려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기의 모든 원한과 감정을 초월한 자리에서 결사적으로 하늘을 부여안고 몸부림치지 않고는 그것을 절대로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량하고 딱하고 한스러운 인생행로였기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가 6천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좋은 것은 무조건 먹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몸뚱이를 분석해 보면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완전히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때는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의 가슴속에 맺혔던, 뼛골 속에 사무친 하나님의 서러움의 흔적을 전부다 뽑아버려야 합니다. 한 맺힌 원수의 핏줄기를 전부 다 뽑아버리고 아버지의 피살을 받아 ‘아버지여, 내가 왔사옵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효도할 수 있는 참다운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나섰사오니 오늘부터 안식하시옵소서. 당신의 가슴과 뼛골 속에 맺힌 한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지구상에 그런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는 하나님은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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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조건을 세우는 자리는 피눈물을 흘리는 자리
여러분들은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려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소원인 것입니다. 인류를 부여안고 눈물을 뿌려야 됩니다. 눈물을 뿌리는 데는 그냥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심정과 본연의 동산을 잃어버린 그 처참한 정경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소망 가운데 이들이 다시 한번 해방받아야 할 그 길 앞에는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태산준령으로 가로 막혀 있으니, 이것을 넘어가자 하며 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길을 개척하는 입장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려도 끝이 나지 않거든 내 생명을 산산조각 내어 하나님 앞에 바치고라도 가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몸으로 살아드릴 수 없는 부정의 씨앗이기에 죽을 때는 하나의 동정이라도 남기고 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돼야만 도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부름받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입장에서 이 땅 위에 왔다 가신 것입니다.

탕감조건은 자기 스스로 세울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사탄과 참다운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는 아직까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오기 위한 준비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탕감역사는 단계를 두고 맨 밑창에서부터 시작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의 중심사명은 무엇이겠는가? 사탄과 인연되어진 전세계를 대해 중심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는 데에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싶은 것 대신 뜻을 놓고 통곡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가야 됩니다. 보고 싶어도 그래야 합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자리를 통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만사를 전부 잃어버린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섰을 때와 마찬가지의 무가치한 입장에서 하나님이 동정해 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려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그런 자리를 지켜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그냥 놀음놀이로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정을 통하고 인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과 사탄이 좋아하는 사람, 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까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세워진다고 했습니다. 사랑에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탄이 지극히 사랑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일 사탄이 좋아하는 사람이 사탄세계를 본질적으로 좋아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사탄세계에서 충성을 하지만 그 충성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편에 있는 사람이로되 하늘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탄세계로부터 빼내 오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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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조건을 살아서 세우는 사람과 죽어서 세우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설명한다면, 여기에 박이면 박, 김이면 김, 어떤 사람이 있는 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탄세계로부터 빼내어 사랑할 때까지는 그 사람이 전부를 탕감받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 사탄아, 내가 그를 사랑해도 되지? ‘ 하면 ‘글쎄요’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충성하고 밤이나 낮이나 만민을 위해 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혹은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복귀시키기 위해서 일하고, 모든 행복의 여건을 중심삼고 만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탄아, 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지? ‘하면 ‘글쎄요. 지내 보아야 알지요’라고 대번에 그런다는 것입니다. 지내보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싸워 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말일 네가 알아 보아서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하면, ‘그러면 인정하지요’ 이런 식으로 진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다! 그러면 알아봐라. 해봐라’하게 되면 그때부터 사탄이 시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인류가 당해 오던 모든 시련 고통을 그 사람, 즉, 대표급에서 수고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부 옮겨다가 들이 퍼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편안하겠어요? 그저 복받고 편안하게 살겠느냐 말입니다.

만일에 사탄이 ‘하나님, 그 사람 손을 베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래, 그러면 그 손을 잘라 봐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손까지 자를 수 있겠습니까? 또 그 사람이 많은 재산을 사랑하는 것을 사탄이 시험해서 모든 재산을 홀랑 벗겨가 버린다 할 때 ‘아이고 하나님 난 싫습니다’ 하게 된다면 탕감이 되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만일 사탄이 벌거숭이를 만들어 놓겠다고 할 때, 더우기 밀실에서 벗기는 것도 아니고 종로 네거리에서 벗긴다고 할 때, ‘아이고, 그것만은 안 되겠습니다. ‘나 원 참 하나님도 사정을 좀 알아주셔야지요. 이건 너무 합니다’라고 불평을 하거나 거부해서는 탕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로 네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보다 몇백 배 더 번창한 뉴욕의 한복판에서 벗겨 놓는 다 하더라도 ‘벗기려면 벗겨라’ 하면서 그것을 넘어 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다리가 어정어정대고 있으니 그 놈의 다리를 잘라 버려야 되겠다 할 때는 , 하늘을 대하여 어물거리고 있어서 아주 귀찮으니까 잘라 버려 주십시요 하며 두말없이 내놓아야 합니다. 목을 자르겠다 해도 좋게 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그것을 잘라 내면 어떻게 되느냐? 죽는 것입니다. 죽는 거예요.

사람은 죽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도 있고, 살아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죽어서 세운 사람이 있고, 살아서 세운 사람도 있습니다. 충성이 천상에까지 사무치게 하고 반대하던 사탄까지고 눈물 흘리게 만들면 사탄이 못 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본래는 천성의 인연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자기가 한 일을 뉘우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살아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사탄으로 하여금 스스로 회개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지 못하는 사람은 탕감복귀노정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가인과 아벨의 제단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깊이 사랑하시는 아들을 중심삼고 이러한 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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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에 사탄의 시험이 뒤따르는 이유
아벨은 죽어서도 하늘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의 피가 호소했던 것입니다. 아벨은 죽어서 탕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중심인물이 죽으면 대신자를 세워 나오십니다. 그렇게 해야만 탕감을 해서 가인세계를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또 하나님은 아벨을 통하여 세운 전통으로 1600년을 내려 오면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받들어 나갈 수 있는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지만,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들인지라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때, 즉 절기로 말하면 봄절기를 통해서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봄절기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 시대가 돌아가는 데는 봄절기도 있고 여름절기도 있고 가을절기도 있으며 겨울절기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네 절기 중 봄절기만을 통해서 역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옛날 아벨이 정성들이던 그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계대를 이어 노아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때의 세상은 이미 타락에 빠져서 땅 위에서의 천정(天情)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하나님 앞에 나선 것입니다.

아벨이 피뿌린 그 정성을 이 땅 위의 인류가 계승받아야 할 터인데 천정의 인연을 맺을 수 없었기에 노아는 악한 사탄 세계를 단념하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노아는 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천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노아만이 오직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벨의 핏줄을 통해서만이 탕감의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에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기 전에도 많은 탕감을 받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120년에 걸쳐서 조건물을 세워 놓자 사탄의 공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놈 잘하는 구나. 얼마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 보자. 네가 120년 동안 배를 짓게 되는 가 어디 보자’ 하고 사탄이 시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배를 강가에다 짓는 다면 모르지만 산중에 짓는 다니 이것은 근본적으로 틀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반대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절대 정상적으로 봐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노아가 배를 지으러 갈 때 ‘오늘 점심을 먹고 산보 좀 하다가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산에 올라가겠습니까? 아닙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배를 지으러 산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120년 동안에 배를 지으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지만 120년의 그 기간을 단축시켜야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전심전력을 다했던 노아였습니다. 그렇게 천성의 절개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선 이론부터가 추상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은 강이나 바다에 고이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물이 고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욕을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동네의 부인들이 욕을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내가 그것을 보았더라도 면상에 대고 욕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떠했겠습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와같은 처지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정상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노아 할아버지를 반대할 수밖에 별도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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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사랑하는 인물을 빼내어 복귀의 인물로 세우시는 하나님
만일에 극성스럽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 노아 할아버지를 120년 동안 일하는 장소까지 쫓아다니면서 끈질기게 반대하겠다’고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반대해서 노아 할아버지가 넘어가면 너를 노아 대신 세워 주겠다’하나님이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하나님 앞에 충성하던 그 충성보다도 130년 150년 그 이상 걸리더라도 노아를 반대하여 기어이 꺽어 놓고야 말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노아가 실수해서 넘어가는 날에는 하나님은 그 사람을 빼내서 노아대신 그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를 제일 마지막까지 반대하는 목사를 찾아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일교회 문 선생이나 통일교회 식구들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사람들을 전부다 한데에 묶어버리고도 또 통일교회 사람들을 찾아 세계를 둘러보며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잔인무도하게 통일교회 사람들을 숙청해 버리고도 자기가 한 일이 정당한 일인 동시에 하늘을 위한 일이며, 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뽑아다가 통일교회로 탕감복귀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것 멋지지요? 앞으로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구요.

그 목적 기준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데에 있고 세계 인류를 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빼내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은 전부다 사탄편 대표자였는데, 하나님이 빼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들의 심정과 소원으로 볼 때 미래에는 기필코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빼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탕감의 제물로 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 중 이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가 제일 사랑하는 자식을 빼내다가 하늘편의 충신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 이상의 복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사탄이 복수를 하려 해도 자기 아들을 죽이지 못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복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세상이 무너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런 전법을 쓰시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를 완전히 해방시킨다 해도 자식이 부모에게 원수를 갚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원수를 갚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갚을 수 있으려면 인간이 복귀되어야 합니다. 사탄의 자식을 빼내서 충신으로 만들었을 때 사탄이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자리에서 원수를 갚지 못하면 지금까지 닦아 온 터전을 다 버리고 후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노아에게 어느누구를 앞세워서라도 반대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이 한참 공모를 꾸미고 있는 데 하나님편으로 노아가 등장했으니 사탄이 밤잠을 잘 수 있겠어요? 저주심에 불타서 죽을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그저 아무데서나 때려 죽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120년 동안 그런 역사를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 할아버지는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워질수록 하나님을 붙들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 사탄은 하늘편의 아들딸들을 끌어다가 제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부인을 동원하고 아들을 동원해서 반대하게끔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편과 사탄편이 서로 빼앗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노아도 함 때문에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언제나 아들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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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참고 견디면
노아 할아버지는 핍박이 심하고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앞에 자식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환경의 비정함을 느끼고, 서러움을 당했으나 그런 때일수록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갔기에 그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120년 동안을 지내 온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노아 한 사람을 놓고 사탄세계는 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로 반대했지만,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운 그 기준에서 노아는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 기준은 천주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세운 것이요, 우주의 정의의 인간으로 세운 것이요, 참의 승리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기준에 반대되는 모든 원수의 요소들을 청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끝까지 맞고 나면 멋진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맞았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깜박깜박하는 눈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 마음이 답답해진다구.

아브라함도 노아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상 장수의 아들 아브라함은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똑똑하고 사랑스런 그 아들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망하던 세계는 그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원수의 아들이긴 했지만 생각하는 것이 그 아버지와는 달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정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이스라엘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빼앗아 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라날 때는 그의 환경과 친척이 내편인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것이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우기 자기 나라와 종족을 이탈하고 자기 부모를 반대하고 나선 아브라함이 갈 수 있는 집이 어디 있으며, 친척이 어디 있으며, 나라와 세계가 어디에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에 갔을 때는 바로 왕이 그의 부인을 빼앗으려고 했고, 어디를 가든지 몰림받는 집시의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몰림받는 행로에서도 아브라함은 자기 부모와 친척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잘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부르고 있고, 승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고, 행복의 터전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집시의 행로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직 하나님 앞에 바랐던 것은 소망의 천국으로 가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앞에 닥쳤던 쓰라린 고통과 어려운 환경은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을 불러낸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입장을 탄식했을 것이나 아브라함은 그런 입장에서도 하나님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모셔 나왔기 때문에 그의 앞길에는 행복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자기 민족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종족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민족적인 시련을 받아야 할 시대를 넘어서서 다른 민족이 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까지는 자기 친족 자기 종족이 쳤지만 아브라함 시대에 와서는 이방 민족들에까지 넘어간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그렇게 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3개 이상의 이방 민족에게 몰림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세 때 와서는 민족적인 탕감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을 걸어 놓고 종족적인 탕감과 민족적인 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가는 길에 수많은 민족이 반기를 들고 참소를 하며 가는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가 인도해 가는 길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협조했더라면 그들이 광명한 천지를 맞이했을 것인데, 불평 불만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치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먼저 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 일파는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재차 그들에게 다가온 민족적인 시련을 달갑게 맞이하면서, 가나안 7족이 던지는 원수의 창끝도 감사히 받으면서 하늘 뜻과 더불어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나선 그 걸음 앞에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민족적인 탕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18-161
탕감길을 제대로 가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
하나님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사람들을 중심삼고 그 시대 시대마다 탕감적인 사명을 연결시켜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종족 시대, 민족 시대, 선민 시대를 거쳐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가지고 예수님 때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듯 그 판도가 점점 넓어지다 보면 국가 시대를 넘어서 세계 시대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민족 편성을 이루어서 하나의 법치국가, 주권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세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국가의 세력이 모든 원수 국가를 능가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중심삼고 모든 원수세계를 청산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인 것입니다.

거기까지 하나님의 세력을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시련을 거쳐서 가나안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복지가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의 동산이요, 환난이 없는 세계요, 하나님이 자기들의 소원을 모두 이루어 주시는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탕감복귀의 원칙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창건이념을 전세계에 심어 주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그 세계로부터 먼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2천년 전에 맞아야 했던 것을 못 맞고 나왔기 때문에 이 시대에 와서 다시 맞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잘 맞아서 옛날의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서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워서 하나님을 모셨던 당시는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침략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하여 밤이나 낮이나 일편단심으로 국가와 세계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 앞에 충성하고 세계적인 기반을 대신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민족적인 기반을 닦았던들,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땅 위의 모든 인류를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를 모셔 가지고, 만왕의 왕이 다스리는 주권국가를 이루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탕감의 노정을 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탕감을 하기 위해 세계적인 시련과 세계적인 압박을 달갑게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자세를 갖춘 터 위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 것이냐?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자세만 갖추었더라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예수님은 총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단결시켜 로마에 반기를 들고 나서게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로마로부터 압제를 받던 모든 연방국가들이 여기에 동조할 것이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로마는 거기에 완전히 말려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럴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자신들에게 그러한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무엇을 해야 했느냐?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탕감해야 할 것을 대신 탕감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인류로부터 핍박받는 자리에서 승리의 여건을 마련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함께 세계적으로 핍박을 받는 자리에 섰더라면 하나님이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 앞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일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그런 핍박받는 도상 위에서 무엇을 해야 했느냐 하면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넘어가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민족에게 몰려서 오히려 자기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를 넘지 못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인계할 수 있는 기반조차도 조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 땅이 얼마나 몸부림치며 서러워했을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8-163
탕감의 길에는 지름길과 고른 길이 없다
예수는 원래 죽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서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의 가정, 사회,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과 세계를 대표하여 탕감해 나갔어야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인데 몰림받아 죽음으로써 영적 구원의 터전만을 마련해야 했으니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겠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데에는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선민권을 찾아서 오실 터인즉, 기독교중의 기독교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 전체가 오시는 메시아를 환영하여 사탄편에 있는 공산주의를 무난히 돌파해서 그들을 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를 하는 것이 현대가 안고 있는 고민이요, 오시는 주님이 넘어야 할 최대의 고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신자들은 그런 것을 꿈도 안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메시아를 몰아내어 다시 잡아 죽이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복이 있어서 그런지 화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과 기독교로부터 시련과 핍박을 받고 있고, 환난 고통을 당하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와 하나 되고,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와 하나 되었더라면 한국의 현실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 문제는 벌써 선생님이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배반하는 자리에 섰고 기성교회가 배반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핍박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갖은 모략을 다해서 통일교회를 핍박하고 선생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 나오시는 하늘 뜻 앞에 선생님이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면 그들한테 걸려 들었겠지만, 천번 만번이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탕감노정을 걸어갔기에 그들에게 걸려 들지 않은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해야 했던 일이 뭣이냐? 그것은 전통을 세우는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참소하는 조건에 걸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떻게 해서 탕감의 고비를 넘어갈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선생님의 생활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생활 가운데에는 나그네와 같은 행로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둠을 재촉하는 석양 빛을 받으며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은 길도 많이 걸어왔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처자를 남겨 두고 저는 가야 합니다. 안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기도하던 때를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하면 충성의 길이요, 잘못하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기로에서, 하나님을 맞이할 때까지 나는 처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7년대환난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는 각오로 떠났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지고 어떤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민족을 찾아 나가는 길은 이 이상의 길이 없다는 각오로 나왔던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피맺힌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각오가 없으면 참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자기 처자, 자기 집안을 붙들고 눈물 흘리지 말고, 찾아야 할 미래의 크나큰 세계를 붙들고 눈물 흘려야 됩니다.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길을 가는 나그네 행로에는 지름길이 없고, 고른 길이 없습니다. 피 땀을 흘리며 찾아가야 할 곤고한 길인 것입니다. 나그네의 행로를 걷는 , 하늘길을 찾아 나가는 청년의 모습은 몰리고 쫓기는 한 마리의 양과 마찬가지입니다. 찾아가는 그 길에서 흘리는 눈물은 나의 눈물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인 것입니다.

18-165
탕감노정에서 필요한 것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머리를 깎이울 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손에 끌려와 강제로 머리를 깍이는 것이라고…. 그때 선생님의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모릅니다.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내가 원하던 행복을 버리면서, 더우기 원수 앞에서 머리를 깎이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복귀의 사연을 엮어가는 노정에서는 그 모든 역경이 한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낼 때는 한스러웠지만 지내고 보니 그것이 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쓰러지는 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매를 맞는 것은 나를 위해 맞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맞는 것이요, 내가 흘리는 눈물은 이 민족의 아픔을 대신한 탕감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잡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까지 이 탕감노정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나홀로 이 길을 넘어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복귀의 길을 나선 그 발걸음 앞에 떨어지는 눈물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길을 염려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죽음길을 염려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배반하여 천상에서 받아야 할 최후의 심판을 염려한 눈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보니까,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까지 올라가던 도중에 쓰러졌다는 곳에 팻말이 박아져 있었습니다. 열 두 번이나 넘어졌다는 그곳을 바라보며 ‘이런 탕감길을 거쳐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암흑과 같은 2천년 전에 새로운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사막과 광야 같은 이 한복판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애달프셨습니까? 그러나 크고 부유한 많은 민족을 다 제쳐 놓고 이렇게 지지리도 보잘것없고, 지지리 메마른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오신 것은 민족복귀의 한을 하루라도 빨리 풀고자 했던 아버지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이 품었던 사연을 깊이 위로해 드리는 기도를 하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자리에서 사탄은 마음 졸이고 하나님은 위로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슬퍼서 울고 하나님은 기뻐서 우실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통곡하셨고, 사탄도 아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배신하여 쫓겨났기 때문에 눈물 흘렸고 아담 역시 타락으로 인해 눈물 흘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눈물을 흘렸고, 사탄도 눈물 흘렸고, 아담도 눈물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고개길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을 눈물 흘리게 하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눈물 흘려야 됩니다. 내 눈물이 하나님을 울리고 사탄까지도 울릴 수 있는 눈물이 안 되어 가지고는 그것을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노정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세계의 크나큰 문제를 걸어 놓고, 천적인 사명을 짊어 지고 나온 이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운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동정받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따르기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그 누구에게도 동정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탄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도 동정을 구할 수 없습니다. 동정을 구한다면 내 자신의 지혜에 동정을 구하고, 눈물과 피땀과 정성이 어린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에게 동정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한스러운 길을 가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도 그래야 될 것이고 내일도 그래야 될 것이고, 또한 이 민족을 넘어 세계복귀노정에 있어서도 그런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8-167
진정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선생님이 외국에 간다고 하니까 어떤 식구가 어쩌면 이번이 선생님을 마지막 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눈물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잘못 갔다가는 돌아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배반자의 낙인이 찍혀 가지고 가게 된다면 이 민족은 정녕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무리 반대받고 쫓김받고 아무리 억울한 자리에서 간다 해도 돌아올 길이 있지만, 이 민족은 돌아올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민족을 위하여 울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스승을 다시 만나지 못할까봐 염려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 있어야 합니다. 진정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자기 일신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세우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동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잘했더라도 남이 잘못한 것을 대신해서 맞으려 해야 하며, 민족이 잘못하면 민족을 대신해서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비참한 자리에 서는 것은 세계 인류의 한을 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한 날의 시련을 다시 한번 내 앞에 펴 달라고 팔을 벌려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가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싸웠을 때 그 마음이 피로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찌하랴! 또 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겠다’고 다짐하며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가야 할 행로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는 데에 있어서 이런 길을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러분은 진정 통일교회를 사랑했습니까? 진정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사랑한다면 먼저 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진정 이 세계를 사랑합니까? 그저 막연하게 울타리만을 보고서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일시에 지나가는 행락객은 될지언정 주인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그들을 수습해 주고 그들을 품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민족과 세계를 사랑해 보았습니까? 참다운 조건을 세워 하나님도 긍정하는 자리에서 탕감해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내 일신에서 탕감의 조건을 남기고 가야겠다고 몸부림쳐 보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세워 타락의 인연을 벗어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 꼭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내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졸이고 사탄도 마음 졸일 수 있는 그런 입장에 나가 가지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타락의 인연을 벗어버리고 하늘 땅과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사탄의 공격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탕감의 행로에 승리의 팻말을 꽂고 돌아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그것이 결정적인 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정녕 그런 행로를 거쳐 왔느냐고 질문당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이냐?

한 많은 역사의 노정을 누가 갈 것이냐? 나라를 위한 그 길은 통일의 역군들이 가야 되고 인류를 위한 그 길은 삼천만 민족과 대한민국이 가야 됩니다. 최후의 시련의 행로를 넘기 위한 복귀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세계를 통일할 용사들의 노정인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그냥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는 길에는 조건을 세워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길을 가셨고 스승이 그런 길을 갔거늘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절대적인 원리를 찾아 놓고 미래의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승리자의 모습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18-169
탕감의 길에는 지극한 그리움이 필요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을 찾아 나왔는데 여러분은 가정과 자식이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까? 자식이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을 탕감해 놓지 않으면 자식으로부터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넘어서서 친족 전체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도록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정, 종족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이 민족을 찾아 나올 수 있도록 탕감조건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림으로써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짐을 지고 가는 데 있어서도 우리들만이 복을 받고 사랑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감으로 많은 무리를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우고, 그 사람이 미래에까지 미쳐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길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천적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이런 환경, 이런 사연, 이런 사정이 있으니 하나님이 공인하실 수 있는 조건이 되겠지’ 하며 안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부모 처자를 바라보게 될 때 눈물 흘리면 그리움으로 인해 한이 맺힐 만큼 그리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종족을 향하여 한이 맺힐 만큼 그리워해 봤어요? 탕감의 길을 가는 데는 그리운 마음이 앞서야 됩니다. 자기의 존재 의식을 넘어설 만큼 그리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움이 앞서 사선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야 할 여러분에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심각한 말씀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이 시점에서 새로이 각성하기를 바라서입니다. 탕감노정은 피와 땀과 눈물로 엮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어떤 나그네를 위해서, 개천가에 던져버릴 그런 말이 아닙니다.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통해서 이러한 이념을 찾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가지고 민족복귀와 세계복귀의 선봉에 서자는 것이 우리의 사상입니다.

오늘 왜 이런 말씀을 하느냐면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후의 일각을 참고 넘어가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있지만, 한순간을 참지 못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맺힌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면 선생님은 고생하라는 말씀밖에는 안 하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탕감법칙을 중심삼고 분석해 볼 때 탕감의 길을 결론짓는 기점이 어디냐? 그 자리는 세계적인 자리입니다. 유대민족처럼 이 길을 걷기 싫어하는 민족은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탕감의 길을 피해 가는 민족과 국가는 망합니다.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갈 길이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4천년의 피나는 역사노정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의 고빗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 앞에 몰리는 슬픔보다도 자기 자체에서 일어나는 슬픔이 더 억울했다는 사실을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외부로부터 핍박받는 것보다도 내부에서 하늘을 등한시하고 하늘 앞에 무감각한 상태가 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원수가 누구냐? 민족이 아닌 여러분들 자신이 원수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귀의 대열은 점점 치열한 싸움의 무대로 전개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음이 먼데도 불구하고 가야 할 발걸음을 묶어 놓고 환경을 도피하려는 사람이 누구냐? 먼저 들어온 사람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망하더라도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족은 망하더라도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가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복귀의 뜻이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숱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탕감노정을 걸어갔던 우리 선조들은 비참한 죽음의 길에서도 역경을 참아내며 하나님을 위하여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더더욱 그러한 역사의 과정을 되살려, 내 움직이는 손길이 어디 가서 묻힐 것이며, 내 몸이 어디 가서 쓰러질 것이냐를 다시금 깨닫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승리의 탕감조건을 세운 용사라는 팻말을 들고 쉴 새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 용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 그렇게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18-171
통일교회의 책임
탕감해서 가는 길은 조건은 제시하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이 민족을 하나님 앞에 소개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는 탕감의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해방을 소망하는 자 있거든 자기 친척과 자기의 종족을 붙들고, 친구를 붙들고 나라를 사랑하는 길, 나라를 구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됩니다. 눈물과 피땀을 흘려서라도 그들에게 보여 줘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준 교훈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며칠 동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해도 자그마치 3년은 걸려야 됩니다. 3년 이상 준비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은 참아라, 3년 동안은 죽도록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3년을 못 참겠습니까? 30년도 개의치 않고 가야 됩니다.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탕감이 가는 길’에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또는 타락의 인연을 받지 않은 즉, 탕감복귀한 사람이 아니고는 완결지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자리와 그런 때를 맞이할 수 있겠느냐? 여러분은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으로부터 승리했다는 터전을 남겨 놓기 전에는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입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를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책임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권내에서는 몸과 마음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가정권내에는 식구가 해방을 받는 것이요, 종족권내에서는 각 가정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민족권내에서는 각 종족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국가권내에서는 수많은 민족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세계권내에는 수많은 국가가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6천년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의 기틀을 마련해서 하나의 기준이 되는 중심이 와 가지고 한의 행로였던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를 위해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이 사명을 짊어지고 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책임이요,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오늘도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한국 민족을 위해 눈물 흘렸던 그 이상의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인류를 대신해서 눈물 흘리는 내가 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얼굴 모습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사상도 다른 미국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이 한국을 위해 눈물 흘렸던 그 이상의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민족과 사회와 역사의 배경이 다르더라도 국경을 초월한 동족의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이 세계를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민족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마음을 어떻게 유발시킬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전도하지 못해 몸부림치던 그때보다 환경이 자유스러운 이때에 민족을 구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그 마음이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8-173
한민족의 사명
여러분은 스스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의 등을 타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등을 타고 가라, 내가 심천(深川)에 놓인 다리가 되어 줄 테니 타고 가라는 것입니다. 어깨를 밟고, 머리까지 밟고 가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닦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싫습니까? 그것조차도 싫다고 하면 망해야 합니다.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시대, 6천년 역사의 종적인 한을 횡적인 기준에서 탕감 할 수 있는 복된 시대를 맞이하고도 그 시대를 모두 놓쳐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7년 행로가 서러우면 이 민족이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말뿐이 아닙니다. 7년, 7년 하는 것이 말뿐이 아니란 말입니다. 서러운 눈물이 앞서는 이 해를 보내 버리고, 이제는 제물적인 탕감조건을 제시해 놓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만약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사람, 하나님께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모두 어느만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모두들 욕심은 크지만 욕심대로 될 수는 없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3배 이상 수고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주는 복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복을 감당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이 수고한 것의 3배 이상 수고한 기준 위에서 받은 복이 아니면 그 복을 전통으로 후손 앞에 남겨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3배 이상의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하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요즈음 통일교인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또, 뜻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하는 데, 그것은 복받는 사람이란 뜻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탕감의 조건을 세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냐? 민족의 대열 앞에 탕감조건을 세워, 수천만대의 후손들과 혹은 선조들이 여러분에게 머리 숙일 수 있는 민족적인 승리자로 만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외국에 선교사를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천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탕감이 가는 길’, 거기에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한국 백성을 믿고 찾아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믿고 찾아온 그 뜻을 세계에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연결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민족보다도 한국 사람이 세계에 많이 가서 하늘의 깃발을 꽂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한국에 내려진 복을 그대로 지탱할 수 있고 다른 민족에게까지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조건을 갖고 가야 됩니다. 최봉춘씨도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을 한국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외국으로 선교를 나가게 될 때 거기에서 자기의 부인이나 자기의 자식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가는 참소조건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내 자식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부인이나 자식이 그리워 자꾸 편지하게 되면 집에 있는 그 부인과 자식에게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나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원수가 공격해 오는 비상사태를 맞이했으면 그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싸우는 장수와 마찬가지로 그 싸움을 다 끝낸 후에야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시점인지를 정확히 알고 ‘탕감이 가는 길’에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이번 세계 순회를 떠나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심각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그런 심각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마음만 앞서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모양이지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사랑해 주는 것이 좋겠어요, 사랑을 안 해 주는 것이 좋겠어요? 「사랑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18-175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
선생님과 여러분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같은 길을 가야 됩니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인연이 있어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과 여러분은 이 인연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들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7년노정이 끝나면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넘어가야 합니다. 7년노정에서 탕감해야 할 기준을 중심삼고 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제2차 7년노정을 세워 놓고 다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요전에 선생님이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여러분은 자기 식구든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부모든지 한 사람이 열두 사람을 걸어 놓고 정성들이고 인연을 맺어 그들 앞에 아벨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탕감길에서 조건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여러분 스스로 세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즉 선생님이 간 길이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식구들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기준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앙노정에 있어서는 말씀으로 인해 사망의 세계로부터 부활되어 나와야 합니다. 그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던 자식이 소생할 때와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며, 내 가치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고 내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슬픔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를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 생명이 고귀하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마 16:26)”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요? 「예」

여러분들은 조건을 세울 자격자가 되어 있습니까? 정말 자격자가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지 못합니다」 언제 여러분이 사탄으로부터 찬사받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았고, 언제 여러분이 사탄을 지극히 감동시킬 수 있는 일을 해 보았노?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사 탕감의 길을 개척해 놓고 그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때까지 따라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것이요, 원리의 길을 밟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탕감복귀의 길을 나올 때 선생님의 일생은 찾아 나오는 노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미 찾아 놓은 길을 따라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못 하겠어요? 따라오지도 못 하겠어요?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타락권을 벗어난 기준을 세운 사람이 아니면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18-176
탕감이 이루어지는 자리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과 사탄 앞에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는 , 즉 사탄세상은 내려가고 하늘세계는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꿀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내려가려고 하면 할수록 올라오는 운세를 타고 올라오게 됩니다. 탕감은 편안한 자리, 높은 자리,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서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이는 예수님이 태어났던 말구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갔던 그 골고다 산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사를 판결짓는 자리, 사망과 부활이, 생명과 사망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탕감은 그런 자리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탕감을 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들에게는 선생님이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선생님께 복종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탕감조건을 이끌고 나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땅이 공인하고 사탄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기뻐서 눈물짓고, 사탄은 슬퍼서 눈물 흘리며, 여러분은 기뻐서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만 거기에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승리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제시해 주느냐? 여러분의 심정적인 조건을 유발시켜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마지막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유발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진리도 유발시키고 그 진리를 통해서 인격 혁명을 일으키지만, 거기에는 심정을 유발시켜야 할 주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따라가야 됩니다. 아벨이 지시하는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아벨이 죽으면 죽고 아벨이 살면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아벨적인 기준으로 모시고 아벨을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나와야 됩니다. 이 길이 최후의 길이기 때문에 사망 선까지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인류 역사노정에 있어서 이런 길을 제시한 곳은 통일교회 뿐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러한 심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조건을 세워서 넘어가게 되면 최후의 고개길을 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가 마지막 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소원이 풀려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것이요, 사탄이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것이요, 우리들 자신도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 이와 같은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곳 밖에 없으니, 그곳이 바로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느껴집니까? 「예」

18-178
탕감조건은 혼자 세워야 한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는 둘이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다 해서 남편을 옆에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나 아내도 데려갈 수 없습니다. 전후관계는 용허(容許) 되지만 좌우관계는 용허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예」 둘이 서게 되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둘이 설 수 없습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주체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부모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또 아내는 남편을 모시기를 하나님같이 모셔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가는 길을 절대 복종해서 따라가야 전후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따라갈 때는 울고 불고 하면서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서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어디에 가더라도 선생님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서 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빨리 오면 좋겠어요? 「빨리 오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강조한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은 여러분이 돈을 모으고 잘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전통이냐? 탕감노정에 있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전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뜻 앞에 있어서 그러한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선생님이 출발한 후에 더욱더 많은 기도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날 막연하게 살아온 생활을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사랑 하듯이 자기의 부모를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옛날의 신앙 동지들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누룩과 같은 작용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 세계 앞에 나가게 되면 세계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18-179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967년 6월 4일, 6월에 있어서 첫주일을 맞이하는 날이옵니다. 이 해 전반기의 마지막 달을 맞게 되었사옵니다. 허구한 날 슬픔이 엇갈리는 속에서도 아버님의 사연을 깊이깊이 느낄 수 있는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아버님을 위하고 아버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사연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얼마나 믿으셨사오며, 저희들을 불러 놓고 확인하고 싶으신 내용과 동정하고 싶으신 사연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또한 저희들로 하여금 승리의 영광을 갖추어 주기를 얼마나 바라셨사옵니까?

너무나 초라하고, 보기에 너무나 미비하여 감히 아버지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몸들인 것을 아옵니다. 몸을 감싸기에도 부끄러운 자신들이요, 입을 열어 아버지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자신들인 것을 스스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이 자체가 타락의 여운을 지니고 있는 어리석고 패악무도한 자신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어엿이 나설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에 급급함을 금할 바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가 목을 놓아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효자 효녀의 마음을 갖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나라를 해원성사하기 위해서, 충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몸이 찢기고, 화살을 맞아 죽어가더라도 아버지를 위해 몸부림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한 충효의 길이 저희의 앞에 남아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저희들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날을 당신이 기억해 주시옵소서. 탕감노정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 조건은 저희 스스로 세울 수 없기에 아버지께서 친히 희생하셔서 역사를 연결시키셨고, 시대에 얽매인 죄악을 풀어 나가기 위해 탕감의 제물로 선조들을 세우신 것을 아옵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 와서 한숨으로 살다가 한숨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그러한 운명의 길을 상속받아 그와 같은 환경을 혁신하고 개척하는 지침돌이 되어야 할 저희 통일의 역군들이 지금 어떤 과정에 처하여 있는 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기준 가운데 어느 기준에 처해 있는 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 앞에 부복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스승이 가고 오는 길을 염려하여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 아버지여,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괴로울 때 당신이 위로해 주시던 마음을 그들에게도 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정으로 맺어진 사람들도 서로 만나고 싶어하거늘 천정으로 얽혀진 사람들이 어찌 만나고 싶지 않겠사옵니까? 하지만 자유스럽게 만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니, 다시 만나기를 그리워하고 서로 사정을 염려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오면 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제가 이들의 동정을 받고 신세를 지며, 아버지의 동정과 책망을 받는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서러운 조건을 남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을 아버지는 아실 것이옵니다. 다시 만날 그 시간을 고대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릴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오직 이들이 아버지의 유업과 아버지의 사랑의 기준을 영원히 이 민족 앞에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의의 터전을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이다.

부르고 그리워하는 모든 것이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사오니 이 모두가 땅에 떨어지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기간 동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죽든지 살든지 당신이 머무는 길 앞에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이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에게 전한 말씀이 이들에게 새롭게 기억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보고 싶거든 이 스승을 만나는 것보다도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기 생활권내에서 탕감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남이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노력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남들이 편안히 지내더라도 그 안식의 조건을 밟고 넘어서기 위해 쉬지 않고 싸워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전체의 날에도 길이 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