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31 to 17-340: 파란 중첩의 뜻길

파란 중첩의 뜻길
1967.04.30 (일), 한국 태릉(서울)

17-331
파란중첩(波瀾重疊)의 뜻길
[말씀 요지]

선생님은 그 동안 큰 사명을 지고 노심초사해 왔다. 우리 뜻의 목적은 어떤 국한된 시대와 환경에 영향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영원히 공헌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을 진 선생님은 심각하다. 잘못하면 역사적인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럭 저럭 지낼 수 있겠지만, 영계에 가서는 심판을 피할 수 없고 어차피 판정을 받아야 한다.

17-331
여러분을 고생시켜 나온 이유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천적인 법도와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실로 중대하다. 선생님이 생애를 바쳐 투쟁해 나온 이 뜻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영계는 바라고 있다. 누구나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듯이, 선생님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소망의 세계가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중점적으로 전도해야 할 대상은 실권을 쥐고 있는 권력층의 사람들이다. 선생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해 왔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서구 문명국보다 불리한 여건 하에 놓여 있다. 특히 지난 40여 년 동안에는 이 나라를 불리하게 만드는 일들이 이 나라의 역사를 점철해 왔다. 중일전쟁을 비롯해서 대동아전쟁, 해방 후의 정치적 혼란, 6. 25의 참극 등 비참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어 나왔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생활한 40대 이상의 장년층은 누구보다도 시대적인 고충을 많이 겪었다.

뜻을 빨리 세우기 위해서, 첫째는 국가권력층을 이념적으로 설득시켜야 하고, 둘째는 종교계의 허다한 난제를 빨리 해결하여 그들을 통일된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세째로는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라는 세계적인 사조를 극복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기독교 문화권으로써 공산주의를 극복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체계적인 이론의 확립이 요청된다. 이러한 세가지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러면 이 중에서 어느 것을 주로 해야 되느냐? 첫번째와 세번째 것은 상대적이고 세상적인 것이지만, 두번째 문제는 내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어떠한 각도에서 어떻게 사회활동, 국가활동을 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섭리적인 면에서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먼저 공격을 당한 다음에 사탄세계를 정복하는 전법을 써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 때 몰리고 쫓긴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 선생님이 옳았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모든 환경은 선생님에게 완전히 점령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들은 개인을 중심으로 살지만,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활동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동안 닦은 실력과 쌓아올린 실적으로 상부 권력층을 이해시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되었다. 언제든지 하늘의 일은 그 시대를 움직이는 권력 기관의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 고비만 넘기면 80퍼센트 정도 이룬 셈이 된다.

5. 16혁명도 처음에는 몇 명이 시작했다. 어떠한 큰일이라도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한 두 사람이 시작한다.

우리의 입장을 중심삼고 본다면, 철저하게 우리 이념으로 무장된 학사 출신 7천 명만 있으면 한국을 움직일 수 있다. 지난 21년간의 수고는 어떤 일면에서는 대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생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 방법 외에는 길이 없었다. 그렇게 싸워서 거둔 내용이 공인받게 될 때, 즉 삼천만 민족이 알아볼 때 그 배후에는 크나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실제로 역사를 움직이신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인을 고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끌고 나온 결과는, 즉 교회를 중심삼고 한 것은 사회를 중심삼고 거두어 질 것이다. 이 일을 하려면 단순한 사회인으로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핵심요원인 신앙자가 필요하다. 그 보급로는 일찍부터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셨다. 이런 준비를 통해 우리는 외적인 기준을 잡고 내적인 기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17-333
선생님과 심정의 동반자가 되라
이제는 어떠한 교회에서 아무리 반대를 한다 해도 그들 뜻대로 안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부흥회를 열어 그들이 통일교회를 잘못 알았다고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현 사회에 천적인 인연의 환경을 넓히는 것이다. 이 활동을 촉진시키려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선생님과 여러분은 인연이 있다. 그러나 인연만 가지고는 안 된다.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연이 짙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관심이 있다 해도 손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반드시 이익이 있어야 한다. 일시적인 이익이 아니라 십년, 백년, 그후까지 계속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익의 내용이 이념적이어야 한다. 통일교회에는 그런 이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굶으면서도 논밭을 매고, 똥통을 메며 낮은 자리에서부터 인연을 맺어 왔다.

어떤 사람이 발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주위에서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로 관심을 갖느냐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주의와 관심이 사라지면 조만간 그는 꺾여 나가고 어느새 관심을 받는 제 2의 인물이 등장한다. ‘복음신보’가 우리를 때리는 것도 일종의 관심의 표시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아이쿠’ ‘아이쿠’ 하면서 한바퀴 돌고 나서 보면 어느 사이에 그들의 자리는 빼앗기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맞아도 걱정 안 한다.

한편 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령한 사람도 필요하다. 산중에 있는 여러 신령한 사람들을 통합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누구나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 한번 은혜를 받으면 그 이후에 심령이 더 클클해진다. 그들이 우리 식구가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중간적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지팡이 삼아 다리를 건너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 혼자만 뛰고 여러분은 구경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른 때는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결승점에서만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김 일이 어제 프로 레스링대회에서 세계 선수권을 획득했는데, 그는 첫회에서는 지고 2, 3회에서 이겼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식이기 때문에 나는 그 과정을 매우 의미있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1회에서 세부득(勢不得) 이라 졌다. 그러나 2회에서 싸워 이겼고, 이제 3회에서만 싸워 이기면 결정적으로 세계적인 기반 위에 올라서게 된다.

처음에 김 일이 박치기를 하지 않자 관중들은 안타까와하며 흥분해서 해라, 해라 하고 소리쳤다. 이렇듯 마치 자기가 싸우는 것처럼 관중들은 응원했다. 심정적으로 그와 동일선상에 있어야 그가 승리하면 그의 승리권내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더욱 마음졸여 가며 얻은 승리라면, 그 승리는 큰 의미의 승리가 될 수 있다. 선생님은 지금 마지막 판국에 임해서 치느냐 안 치느냐로 심각한데, ‘선생님이 왜 그럴까’ 하고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면 안 된다.

17-334
승패의 분수령
여러분보다 뒤에 온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더 관심을 갖고 인연을 맺으면 여러분이 받은 복을 그들에게 몽땅 빼앗기게 된다. 자웅을 결정하는 심각한 판국에서는 관심이 얼마나 있고, 인연을 맺느냐 안 맺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승패란 싸우는 곳에만 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 끝에 승패가 결정된다.

이런 기준에 입각해 볼 때 선생님은 나만 남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없이는 승리를 했다 해도 그것을 민족과 세계에 나누어 줄 수 있는 승리가 못 된다. 그러므로 외적인 활동이 필요함과 동시에 내적으로 신령한 사람들의 결집과 활동이 필요하다.

또 우리의 활동에는 필연적으로 경제 문제가 따른다. 그래서 4대 활동 목표 가운데 ‘경제기반 완성’의 항목이 들어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통일은 인연에서 시작 된다. 그러면 인연은 어떻게 맺어 지느냐? 관심이 있는 데서 인연이 생긴다.

소중한 때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가? ‘이념은 좋은데 움직이기가 힘들다. 선생님의 방법이 싫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승리하려면 둘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 완전 통일, 완전 승리를 목적하는 것이 복귀섭리이다. 선생님 혼자서만 수고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도 같이 보조를 맞춤으로써 각자 각자의 위치가 결정된다. 그렇지 앉으면 복귀역사가 끝난 후에 후회가 많을 것이다.

뜻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통일 교회의 승리가 결정되고, 개인이 통일교회와 어느 정도 인연을 맺었는가 하는 것이 개인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야곱의 14년노정은 가정생활의 기준이 되었다. 우리도 14년이 지나면 생활의 평형기준이 이룩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교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었나 하는 것이 복귀의 관건이 된다. 복귀의 움직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가짜다. 이런 사람이 책임자가 되면 깨진다. 그러므로 교회의 움직임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 승자로 결정되느냐, 패자로 결정되느냐 하는 분수령이 된다.

17-335
아벨이 되는 내적인 기준
우리는 외적으로는 대외 활동을 중심삼고, 내적으로는 은혜받은 사람들이 결속하여 뜻의 성취를 촉진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여 한국 교회를 구하는 봉화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신령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완전히 무시되어 왔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원래 천사장이 타락의 시초였다. 따라서 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천사세계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협조해야 모두 복귀되고 해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영계가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타락성 근성은 타락된 인간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된다.

예수님 때에 탕감복귀의 중심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유대 민족과 유대 국가에 있었다. 그때 유대 민족은 내적인 사명을 했어야 하고, 유대 국가는 외적인 세계복귀의 사명을 했어야 한다.

우리가 신령한 체험을 한 사람들을 대할 때, 즉 그들이 찾아와서 보고할 때 마음으로 무조건 순종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선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비추어 비판해야 한다. 그때 비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 원리다.

선생님도 혼자서는 못 한다. 잘못 하면 큰일난다. 세계적인 상황과 영계의 프로그램에 맞추어 결정해 나간다. 영통인들을 받아들여 가인이냐 아벨이냐를 분석해야 한다. ‘너는 이러이러하니까 아벨이다. 가인이다. ‘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러이러하니까 아벨이다. 가인이다’하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도 이 내용을 분별하기 전에는 절대 심판할 수 없다. 이것은 세상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통일교인들은 무조건 ‘우리가 아벨이다’고 하기 쉽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영계를 중심삼고 자기들이 아벨이라고 하기 쉽다.

그러면 실제로 아벨이 되는 내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늘 앞에 제물이 된 후, 아벨의 입장이 결정된 자리에서 가인에게 명령을 하면 된다. 그래서 안 들으면 쳐야한다. 그래서 깨져 나가면 그 사람의 복을 모두 여러분이 인계받을 수 있다. 뜻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보다 자신이 위에 설 수 있도록 하라! 그리하여 아벨로서 뜻앞에 제물이 되면 가인은 어쩔 수 없이 여러분을 통해서만 뜻 길을 갈 수있게 된다.

17-336
구원을 받는 길
선생님은 지금도 그런 기준에서 하늘의 일을 해 나가고 있다. 신령역사를 받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증거하는데, 선생님은 그들이 하늘에 대하여 정성들인 것을 봐서 대해 주는 것이다. 그들에 대해 일정한 공식을 적용해서 하늘의 법도대로 어떤 단호한 결정을 내려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1965년부터 기성교회에 다시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동안에는 통일교회를 반대하므로 은혜를 잃었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21년 기간이 되었기 때문에 기성교회도 재봉춘(再逢春)하는 입장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벨의 제단이 결정되면 가인의 제단도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들에게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기운이 돌았지만, 이제는 우리를 환영하는 기운이 돌 때가 되었다. 그들이 넘어 오기는 해야 하나 실제 사정으로는 쉽게 넘어올 수 없으니, 우리가 다리를 놔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중간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식구들은, 특히 오래된 식구들은 당초 들어올 때 느꼈던 기쁨과 은혜를 많이 잃어 가고 있다. 처음 들어올 때 기뻐하던 심정을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보낸 제자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다. 그들이 예수님과 같이 죽었다가 함께 부활했다면 얼마나 기쁜 구원이었겠는가? 여러분은 이런 것을 몰랐던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누가 핍박을 해도 충전된 기세로 나아가던 사람이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지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심정이 떨어져 나간다는 증거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올 때 기뻐하던 마음이 얼마의 시련을 겪었다고 무디어진다면 교회와 관계가 멀어진다.

그래도 여러분이 죽지 않고 이렇게 남아진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여러분이 처음 들어올 때의 마음으로 뜻을 대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운 상태로 대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계에 들어갈 때 땅에서 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저 나라에 가서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런 자세로는 만민을 구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반성해야 한다.

내가 어느 만큼 하늘을 사랑하느냐 ? 주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느 만큼 사랑하느냐? 주를 반대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느냐? 하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악한 사람도 구원할 수 있다.

우선 선생님이 사랑하는 식구를 사랑할 수 있어야 반대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기준이 떨어지면 복귀될 수 없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말아야 한다. 생명의 요건과 영양소를 받기 위해서 언제나 심정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과거의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은 선조의 재산을 탕진해 버린 것과 같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이 민족과 세계, 종국에는 사탄세계까지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상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도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입장에 서면 언제나 아벨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 있다.

17-338
뜻을 중심한 가인과 아벨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리, 즉 가인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한다. 만일 아벨의 입장에 있다면 남들이 피하는 것, 어려운 것을 다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초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대신 풀어야 하며 바깥의 어려움도 도맡아야 한다. 따라서 아벨의 입장에 있는 우리들은 식구를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관념적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사랑하여 만사에 자신을 가지고 나가야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 서게 된다.

개인을 거쳐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는 모든 복귀섭리역사의 성취에는 이 공식이 적용된다. 하나의 확대는 전체가 된다. 결국 온 인류는 한 형제자매인 것이다. 따라서 식구를 대할 때 누구나 형님 누나로 대해야 된다.

그리고, 나가 싸울 때는 부모의 자격으로 싸워야 한다. 즉 싸우는 상대가 원수라 할지라도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자기 자식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표어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이다. 그래야만 완전히 복귀된다. 이러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최고 교육지침이다.

앞으로 있을 제2차 7년노정에 대비하여 새로운 결의를 해야겠다. 각인의 처세관, 생활관 그 밖의 어떤 것이라도 원칙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식구들을 볼 때 여기에 합당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선생님이 인간적인 감정으로 한다면, 뜻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한 칼에 쳐서 그 피를 들이마셔도 오히려 부족할 정도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뜻에 대해 현재의 통일교인보다 3배 이상 기뻐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책임 못한 사람은 반대자처림 선생님을 가슴 아프게는 안했다 할지라도 역사의 결과를 놓고 따진다면 조금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

과거에 뜻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3배 이상 기뻐하면 뜻을 받아들이면 용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하게 된다. 선생님도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해 줄 것이냐에 관하여 몇 해 동안 생각해 봤다.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죄를 지은 후에 용서받은 자의 감사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감사해 하는 것보다 몇천 배 더 귀한 것이다. 그들이 일반 사람보다 몇천 배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하나님이기에 전체를 복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그 부분은 복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심정을 가진 통일교회이어야 사탄의 입장인 공산세계까지 복귀할 수 있다. 이렇게 대하시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때가 많다.

선생님이 누구를 용서해 줄 때 여러분들이 그러시면 절대 안 됩니다 라고 해서는 안 된다. 궁극에는 극악의 원수도 용서할 수 있는 심정, 이것이야말로 사탄세계까지 탕감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된다. 선생님이 만일 이것을 몰랐다면 복귀역사를 못 했을 것이다. 이러한 심정을 통해서만 전체를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기준을 통해 외적, 즉 사회적 완성기준까지 복귀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인편뿐만 아니라 사탄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벨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과거에 관계 당국이 우리를 얼마나 못살게 했나?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쌓아 놓은 실적과 공적을 직접 목격함으로 우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퍽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원컨데 아벨의 사명을 다하라! 그리고 처음 교회에 들어왔을때 느낀 기쁨을 그대로 간직하여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생명의 불을 지펴라! 이제 계절적으로 보나 섭리적으로 보나 봄이 되었으니 다시 뭉쳐 재출발해야 되겠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저 나라에 가서는 안 된다.

상하 관계에 있어 가인 아벨이 되어 있느냐, 전후 관계에 있어서 누가 주인이냐, 선생님 가정을 중심한 좌우 관계에 있어서도 누가 중심이냐 하는 것을 바로 알고 각자 합당한 입장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인간관계와 하늘땅의 총합적 관계에서도 반드시 누가 가인이고 아벨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떤 특정한 일을 중심삼고는 평소의 아벨이 가인이 될 수도 있다. 즉 이 관계는 때에 따라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이것을 몰랐다면 벌써 깨졌을 것이다.

17-340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들은 개인적인 승리뿐만 아니고 세계적인 승리라는 목적을 두고 일해야 한다. 아벨의 위치를 지키는 것도 자체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목적에 부응해서 선 사람은 스스로 망하겠다고 해도 망하지 않는다. 망하면 천도가 깨지기 때문이다.

이런 법도대로 해야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밤낮 가해오는 사탄의 침범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몇 해도 못 가서 지쳐 태풍만 불어오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중심삼고 이념 본위의 인격관을 확립해야 한다.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리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리고, 만물의 한을 해원해야 하는 사명이 내 어깨에 달렸는데, 언제 쉬고 뭐하고 할 새가 있겠는가? 여러분은 절대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않도록 힘쓰기 바란다. 예를 들어 쌀은 어떠한 종자이건 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쌀 중에서도 종자가 문제 될 때가 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쌀은 선생님식으로 만들어진 종자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거지에게나 나누어 주는 데 쓰이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어떻게 쓰이든지 간에 어느 것이나 다 필요하기는 하다.

누구든지 그냥 떨어졌다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식구들의 가지에 재차 접붙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떠한 풍랑과 조소와 어려움이 닥쳐와도 꿈쩍도 안 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아는 것 만큼 뜻의 가치를 아는가? 가만히 보면 얼빠진 젊은 사람들이 많아 한심하다. 이왕지사 뜻길에 나섰으면 부끄러운 걸음을 걸어서는 안 된다. 오늘까지의 발걸음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일부터는 새로운 걸음을 걸어야 된다. 그러므로 제2차 7년노정은 올바르게 걸어가야 한다.

선생님은 좋아서 감옥에 끌려간 것이 아니다. 여러분을 살려 주기 위해서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기성 권력층의 반대는 하늘의 뜻을 펴는 데 지장이 많았다. 선생님은 27세부터 14년 걸려 1960년에 와서 가정적 기대를 이루었다. 그후 7년을 더 걸어 지금 21년의 기간이 끝나려는 시점에 있다.

해방 직후에도 상부와 연락하여 뜻을 성취시키려 했는데, 일부 측근 목사가 반대하여 깨졌다. 그때 뜻을 이루었다면 공산당이 저렇게 세계적으로 번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후 3정권을 거쳐 나왔다. 이 정권은 아담형, 장 정권은 해와형, 박 정권은 천사장형이다. 이제 와서 박정권이 통일교회를 협조한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복귀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초 해와가 천사장의 꼬임에 넘어가서 졌지만 이제는 하나님편에서 천사장을 말(言語)로써 이겨야 한다. 즉 이념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이 우리의 반공할동에 승공이란 명사를 인정한 것은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겨루어 이김으로써 이스라엘이 된 것과 비슷한 사례다. 이런 점으로 보아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승리의 팻말은 이미 꽂혔다고 본다.

이제 종적인 승리의 기준은 되었으니, 이것을 기반으로 횡적으로도 승리 해야 할 조직이 필요하다. 기성교회만 가지고는 안된다. 세계를 통일의 이념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불가불 철학적, 즉 학문적이고 사상적인 토대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상을 중심으로 학계와 관련지어 전개하고 있는 것이 반공운동이요.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 대외 전도활동이요, 학생을 중심으로 펴고 있는 것이 교내(校內)의 원리연구회 운동이다.

우리는 모든 기성 기관을 발판으로 얼마간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학술적 사상적인 면에서 한국에서 터를 잡고, 세계의 정상을 점령해야 한다. 반공도, 학문도, 신앙도, 애국도 통일교회가 제일이라고 할수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사탄에 대하여 공격작전, 포위작전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각계 각층을 대표한 많은 유력인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현실적인 정치적 욕망을 가진 것이 아니니, 남들이 추측하는 대로 대통령 같은 것이 되겠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는 사탄을 굴복시키고 그의 활동을 저지시킴으로써 세계적인 천국 건설의 대목적을 성취하려 할 뿐이다.

이것을 위하여 현실적인 악조건의 환경을 개척하고, 기성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섭리의 내용을 깨달아 합당한 길을 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유물 공산주의 사상을 완전히 극복해야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