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7 to 17-325: 복귀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

복귀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
1967.04.10 (월), 한국 전본부교회

17-307
복귀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
오늘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 마음속 깊이 기념하고, 정성을 모아서 지켜야 할 날 중의 한 날입니다.

17-307
역사적인 탕감을 위해 태어난 우리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고 하늘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의 인연은 스스로 원해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뜻, 이 교회와 관계를 맺고 이런 자리에까지 나온 데에는 물론 여러분 자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의 공적과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해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탕감을 치르는 엄숙한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위해 세계적인 탕감을 이루어 놓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 4천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예수님을 보내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려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가정을 이루게 하여서 만민 복귀를 완결지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 나왔고, 하나님도 그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한 나라가 이 지상에 나타나기를 소망하면서 지금까지 수난의 노정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에 세계적인 사명을 인계해 가지고, 그 기독교를 통하여 그러한 사명을 전개시키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그 시대에 예수님이 이뤘어야 했으나 못 이루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선생님이 한국이면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결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완결시키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오늘까지 있었던 역사시대의 모든 사연을 재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탕감시켜 놓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민족과 일체를 이루는 조건을 세우지 못하고 죽어갔던 그 사실을 오늘날에 재현시켜서 이 민족을 중심삼고 다시 탕감하는 노정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가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4천년간의 종적인 섭리역사를 횡적으로 재현시켜 탕감 복귀해야 하고, 예수님 이후 2천년간의 복귀노정에 남아진 것, 즉 기독교가 그 동안 많은 민족이나 국가들에 복음을 전하며 탕감해 나왔으나 남아진 것을 오늘날 우리가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는 어떠한 환경에서 되어지느냐? 하나님과 사탄이 맞부딪치는 그러한 곳이 아니고는 탕감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 아벨 시대나 노아 시대나 아브라함 시대나 모세 시대나 예수님 시대를 보더라도 언제나 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을 중심삼아서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했다는 것입니다. 재물이면 재물, 사람이면 사람, 가정이면 가정 등 어떠한 사명을 짊어진 중심존재를 놓고, 어떤 조건을 걸어 가지고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여 승리냐 패배냐를 가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개해 나온 복귀역사를 개관해 보면,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까지는 상징적, 형상적 탕감시대로서 어떠한 조건을 세우게 되면 탕감할 수 있는 시대였지만, 최후의 실체적 탕감시대에 있어서는 한 국가면 국가, 한 민족이면 민족이라는 실체를 걸어 놓고 일대일의 기준에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그러한 기준에서 승패를 결정하지 않고는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찾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이러한 사정이 있는 연고로, 만일에 한국이 그러한 사명을 짊어졌다면 한국은 세계면 세계를 건 크나큰 시련에 부딪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한국에서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판문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양대 진영이 서로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이 사실이 바로 하늘세계와 사탄세계가 서로 싸우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적으로는 이렇게 한국을 걸어 놓고 대결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역사적인 사실과 시대적인 사실과 미래적인 사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과 사탄이 최후의 대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는 이러한 양면적인 관계를 가지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외적 기준이나 내적 기준에는 상대적인 데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외적 기준으로 보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결하고 있고, 내적 기준으로 보면 기독교와 우리 통일교회가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선생님이 하나 되어 새로운 내적인 기준을 세워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외적 세계의 기준이 내적 세계 기준에 맞지 않고, 여러분과 선생님이 나가는 기준에도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탕감되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연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17-309
예수님의 사명
그러면 완전한 탕감조건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면 선생님,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되어진 사실들이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가정과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들이 교회면 교회,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모순과 상충이 없이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이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탕감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해 나왔던 것입니다. 내적인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나면 외적인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기 때문에, 플러스적인 완전한 기준을 세워 놓고서 여기에 마이너스적인 기준, 즉 탕감의 기준을 수습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탕감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탕감역사를 할 때, 언제나 그 사실을 만민 앞에 선포하고 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사정은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까지 연결돼 나가야 합니다. 그럴 일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환경적인 터전을 개척하기가 심히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고충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또 실체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통해서도 그 사실을 발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래 탕감조건은 누가 세워야 되느냐? 가인과 아벨이 세워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담이 타락한 것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아담은 아무리 부모의 입장에 세워졌다 하더라도 가인과 아벨이 자녀의 입장에서 탕감복귀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 위에서 부모의 입장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즉, 가인과 아벨이 탕감조건을 세워 이것을 부모와 연결시켜야 부모의 입장이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 아벨의 투쟁 이래 지금까지 가인적인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과 아벨적인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 사이에 투쟁이 계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이러한 사명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아벨 중의 아벨의 사명을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실패한 기준을 아벨의 입장에서 사탄과 대결하여 그것을 빼앗아 와야 했고, 노아 가정에서 노아가 실패한 것을 노아의 입장에서 사탄과 대결하여 그것을 빼앗아 와야 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와야 했고,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과 대결하여 패배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해야 할 것 전부를 예수님 당대에 탕감복귀하기 전에는 가인과 아벨이 세우지 못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의 목적은 역사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예수님 자신이 싸워 승리하여 그것을 탕감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가인과 아벨이 탕감 복귀하지 못 했던 것을 예수님이 아벨적인 기준을 상속받아 가지고 탕감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17-311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그러면 예수님이 그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했어야 되느냐? 내적으로 부모의 입장을 복귀하고 역사적으로 부모가 잃어버렸던 것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찾아 세워 놓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터전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예수님은 영적으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 시대에 잃어버렸던 터전을 성신과 더불어 영적으로 다시 찾아 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예수님 앞에 실체 성신이 상대가 되어 가지고 그 일을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다시 예수님과 성신이 세계사적인 가인과 아벨을 세워 가지고 부모의 입장을 세워 나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적 기준을 중심삼고 그 악에 세울 수 있는 가인과 아벨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지금 세계는 가인적인 개인 가정 국가 세계와 아벨적인 개인 가정 국가 세계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으로 그렇게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가지고 양대 세력이 지금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세계가 성립될 수 있는 기반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상속받고 그것을 다리 놓기 위해서 기독교가 지금까지 내적 기준을 책임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시면 무엇을 하실 것이냐? 오시는 주님은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을 수습하여 지금까지 종적으로 탕감하여 온 6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육으로 세계적인 기준을 세워야 했는데, 영적으로만 세계적인 기준을 세웠지 육적인 기준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는 세계적인 기준을 세웠지만 육적으로는 민족 적인 기준도 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민족적인 기준도 세우지 못하셨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기독교인들과 하나 되어 그러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제1이스라엘, 즉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는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던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모심으로써 그것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은 교회와 하나가 되어야 하고, 나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예수님 당시보다 이중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와 하나 되어 가지고 나라를 수습해서 세계로 넘어가야 할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독교와 유대교가 갈라졌습니다.

만약 한국에 그것이 재현되는 판국이 조성되면, 거기에 오시는 주님은 기독교와 하나 되어서 국가적인 기준까지 올라가야 유대 나라의 기준을 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주님과 기독교가 하나 되었더라도 유대 나라의 입장에 있는 한국이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뜻과 연결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을 볼 때에, 이중 삼중의 사명을 짊어지고 걸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예수님 당시에 세워야 했던 역사적인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또 예수님이 신부를 세우지 못했던 기준을 세워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일을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 민족에게 불신을 당하고 쫓겨남으로 말미암아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는 영적인 탕감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이방으로 옮겨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내에 있어서도 기독교를 중심삼고 섭리하던 뜻이 그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방민족에 해당하는 불신자들을 통하여 재차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반이 무슨 기반이냐?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이 잃어버렸던 기반인데, 이것을 재차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제1차 7년노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면 21년노정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21년노정 중 14년까지는 무엇을 하는 때였느냐? 이 기간은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잃어버린 부모의 기준을 결정짓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바로 야곱의 21년노정 중 14년에 해당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하자면 지상에서 새로운 출발의 한 기점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아벨의 입장에서 과거의 선조들이 실패했던 모든 사실들을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실체적 기준 앞에 이것을 연결시키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 아벨을 중심삼고, 새 노아 가정을 중심삼아서 상하를 연결시키는 일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를 뒤집는 일이 벌어지고 세계를 뒤집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당대에 가정을 편성하고 종족을 편성해야 했던 그 모든 사연의 노정을 다시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960년도를 중심삼고 부모의 날을 선포한 이후에 7년노정을 거쳐 오는 동안, 이러한 기반을 안팎으로 닦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준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17-313
한 방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
뜻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님을 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기준, 즉 예수님 시대와 같은 환경이 이제 우리 앞에 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초교파 운동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여기에서 우리는 양면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복귀를 위해 충성했듯이, 초교파 운동에도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나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 혼자 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가는 데에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자녀가 있어야 되며, 그 자녀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하나 되는 동시에 또 여러분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36가정이나 72가정이나 124가정을 가만 보면 절구가 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한데 얽힌 세포처럼 여기에 자기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이 생명길도 모든 것과 그 생활 기준이 돌아가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이때를 기해서 무엇을 하시느냐? 하나님의 뜻에는 몇몇 사람의 사정보다도 전체의 사정이 달려 있기 때문에, 민족을 돌이키고 세계를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한방향으로 돌려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바퀴씩 돌면 돌수록 점점 더 커져 가지고 한 곳으로 뭉쳐야 할 것인데, 그렇게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영계에서는 이 문제를 제일 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이 완전히 하나로 어우러져 전부가 돌아가게 되면 저 세상도 우리를 중심삼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운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여러분의 꼬리를 물고 자꾸만 한 곳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전부다 제멋대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한곳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다 해주기를 바라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귀를 하던 때와 같고 야곱이 하란 땅에서 자기 고향으로 복귀하던 때와 같은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의 모든 것을 모아 그 목적 앞에, 즉 하나님 뜻 앞에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다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데는 하나님이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길에 있어서는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7년 고비를 넘지 않으면 상당한 지장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공산당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민주세계가 문제가 아니며, 나라가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7-315
이 세계를 복귀하려면
세계 복귀를 위해서는 참부모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어머니와 하나 되어야 하고, 아버지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모자협조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무얼 해야 되느냐? 자식을 위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하나가 되어 가지고 다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축복가정, 즉 36가정과 72가정과 124가정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축복가정이 하나가 되어야 통일교회가 비로소 하나 됩니다. 축복가정과 통일교회가 하나 되고서야 이 민족이 하나 되고, 이 민족이 하나 되고서야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본, 미국, 독일이 하나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4개 국가를 중심삼고 주로 기도를 합니다.

과거에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탕감복귀를 하려면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제일 미워하는 사람, 제일 사랑하는 나라와 제일 미워하는 나라를 하늘 앞에 서로 상대적인 입장에 새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늘땅을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을 중심삼고는 일본, 미국을 중심삼고는 독일이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아담형 국가이고, 일본은 해와형 국가입니다. 또 미국은 천사장형 국가이고, 독일은 사탄형 국가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하나 되면 이 네 나라를 복귀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네 나라가 하나 되면 세계가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영계와 육계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되느냐? 거꾸로 말한다면, 천주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이 네 나라가 제물 되어야 합니다. 또 이 네 나라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제물되어야 하며, 한국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먼저 제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은 민족 복귀를 위해서 통일교인들이 제물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인들이 제물이 되기 전에 축복가정들이 먼저 제물 되어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이 고생함으로 인하여 축복가정을 중심삼은 축복권이 민족적으로 펼쳐지게 되면, 즉 탕감조건을 민족적으로 세우게 되면 한국은 복귀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가정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서기 위해서는, 즉 선생님이 완전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필요하고, 어머니가 서기 위해서는 자녀들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서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이 서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모든 것을 탕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관계가 전부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거꾸로 기도해야 합니다. ‘참부모와 참자녀를 통하여, 축복가정을 통하여, 통일교회 식구들을 통하여, 한국을 통하여, 일본 미국 독일을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천주를 복귀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 탕감해 나가는 것이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7년노정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내적인 기준을 결정지어 가지고 외적으로 한 방향을 향해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운세가 돌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전적으로 역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316
7년노정을 보내는 우리의 입장
오늘 이 부모의 날은 제1차 7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마지막날 입니다. 그러면 1차 7년노정에 선생님은 무엇을 해 나왔느냐?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고 종족적인 기준을 세워 나오면서, 교회를 통해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나왔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준은 예수님 당시에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재탕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7년노정에는 이것을 맞추기 위해서 애써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공산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맹렬히 승공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앞으로 교회활동도 활발히 전개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야곱이 하란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때 자기의 모든 것을 에서한테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21년 동안 수고한 결과로 얻어진 제물을 몽땅 에서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야곱이 에서에게 바랬던 것은, 야곱 자신이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사실을 공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만일 그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세계 앞에 이스라엘 나라를 주었을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기의 모든 권한과 재물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어 주어서 그것을 갖게 해 가지고 세계를 굴복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경제적인 생활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고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순간과 같이 이스라엘로 결정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숨가쁜 순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중대한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런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대한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교회와 하나 되고, 민족과 하나 되어 가지고 나라를 복귀한다면, 거기에 쓰여진 모든 것도 그 사람과 더불어 복귀된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 역사적인 싸움에서 우리가 사명을 다하여 승리하게 된다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극히 심각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가정이 중심이 되어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뜻으로 보면, 과거에는 아벨을 세워 가지고 그를 제물로 삼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단 이 기준만 세우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아벨을 세워서 탕감시키는 것이 아니고, 가인을 세워서 탕감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해서 아벨의 터전을 대신 지켜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복귀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아벨이 안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아벨이 해방되어야 되고, 가인이 아벨의 싸움을 책임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아벨 가정이 승리해서 가인을 세워 놓았다면, 그 가인은 모든 가정 앞에 아벨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아벨의 입장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안식을 취하고, 그 대신 가인적인 사람들이 하늘의 아벨의 입장을 상속받아 가지고 사탄세계의 가인들을 또다시 굴복시켜 나가야 합니다. 가인들을 굴복시킨 사람들, 즉 아벨의 입장을 상속받은 사람들은 가인적 입장이 아닌 하늘의 아벨적 입장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안식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고, 자기들의 입장은 새로운 대신자들에게 물려주면서 탕감복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7년노정에서 죽고 사는 문제를 걸어 놓고 승리했기 때문에, 이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식들이나 어머니가 무엇을 부탁해도 거기에 응할 수 없었던 것은 식구보다 뜻을 더욱 중심삼고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중심삼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기간까지는 제물과정을 거쳐 나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벨이 본연의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그 주위에 아벨적인 책임을 해주는 사람이 많아야 본연의 아벨이 될 수 있지, 그렇지 못할 때는 결코 본연의 아벨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7년노정에서의 나의 정상적인 기준은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것을 대신 책임져 나가야 합니다.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점점 외적인 환경을 정복해 가지고 내적인 천국 건설을 위한 기준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역사시대의 종적인 싸움이 횡적으로 전개 되기 때문에 치열한 싸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17-318
반성해야 할 중심식구들
그러면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살아온 생애는 여러분들의 것입니까? 어때요? 그런데 요즈즘 가만히 보면 사무실이든 공장이든 선생님이 전체를 책임지고 나가니까, 선생님에게 빚을 떠맡기려고 하고 자기들은 빚을 맡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큽니다. 지금 선생님이 왜 고통받는 줄 알아요? 식구들이 모두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지을 것이냐 하는 것이 지금 선생님이 골치를 앓고 있는 문제입니다. 공장은 빚을 지건 말건 자기 생활만 풍족하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자기들이 빚을 지고 생활하는 것은 모르지만 선생님이 경영하는 공장이 빚을 지고, 통일교회가 빚을 지면 되겠어요? 그런데 자기들은 빚을 안 지고 생활을 하겠다는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끌어 잡아당기면 되겠습니까? 자기들이 오히려 남의 짐을 덜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이것을 망각하고 도리어 짐을 지운다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생활 자세와 심적 태도가 바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코 선생님이 짐을 지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천적으로 볼 때 그런 것은 앞으로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지금이 무서운 때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식구들이 해야 할 것은 선생님의 기준까지 뜻을 대해서 하나님 앞에 책임지고 몸부림치며 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이 앞으로 하여야 할 책임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이 참 무섭다는 것입니다. 즉, 책임 못 하면 여러분이 전부 걸리고 또한 선조들까지 전부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예수님 한 분 잘못 모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가 전부 걸려들었고, 그나라가 깨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책임 수행 여하에 따라서 여러분의 선조가 좌우되고, 여러분의 후대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세상이 어떻게 되어지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나머지 7년노정 동안 그런 면에 대해 좀더 알아야 되겠습니다.

3위기대면 3위기대간에 일년이 지나도 편지를 하나, 만나길 하나,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한 식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외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3위기대간에 서로 연락하고 만나야 합니다. 또 36가정도 그래요. 이런 자리에나 참석하는 것이 36가정입니까? 책임 못 하면 무섭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36가정들은 일치 단결해 가지고, 자기들이 가진 것이 없으면 없는 마음으로라도 하나 되어 뜻을 대해 정성을 들이고, 선생님 가정의 울타리가 되고, 72가정과 124가정을 수습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한 책임이 자기들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그저 어느때고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믿어지지 않거든 영통하는 사람한테 가서 물어 보세요. 지금 때가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의 제일 큰 고충이 무엇인가 하면, 식구들이 그러한 천적인 내정을 망각해 버리고, 천정(天情)을 마구 밟고 넘어서려는 것을 어떻게 지도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지난 어머님의 생일이 7년노정 중의 마지막 생일이어서, 어머님에게 기념되는 것을 하나 사 주려고 했다가 손이 안 나가서 말았습니다. 협회 부장들에게 와이샤쓰와 넥타이를 사 주느라고 어머님에게 기념품을 사 줄려고 가지고 나갔던 돈을 다 써 버렸습니다. 사실 그것은 선생님이 할 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이 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더라도 원칙적인 기준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선생님을 중심삼고 나가지만 여러분은 선생님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선생님의 내용을 모른다는 거예요.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무턱대고 세상적으로 비판했다가는 영계에 가서 단단히 혼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왔지만 누구만큼 사회를 모르거나, 누구만큼 인류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의 고충을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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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
여러분의 앞길에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충의 길이 몇 고비나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길을 가기도 벅차고 힘들고 바쁜데, 여러분이 알아서 해야 할 것까지도 일일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입장에 서 있으니 이중 삼중으로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전 며칠간은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 것 다 좋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자신으로서는 괜찮지만 하나님이 염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그 길이 엉켜지고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이번 7년노정이 끝나면 가정을 재편성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선생님한테 “기도해 보니 영계에서 36가정, 72가정, 124가정들을 전부다 재편성하라고 하니 이것이 웬 말입니까? “라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실제 생활무대를 중심삼고, 또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된 입장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합당한 길을 가고 있는가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러한 상태로 가다가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런 상태여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 가정이 가정적 기준에서 아벨적 책임을 다했으면, 그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가정적 기준에서 아벨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천국을 목표로 하고 뻗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이 닦여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싸움이요, 언제나 수라장입니다. 또 언제든지 사방으로 사탄이 왕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자리를 잡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교회와 민족적인 기준을 수습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입장을 대신해서 일반 사람들, 즉 불신자들을 통해 사상적인 분야에서 민족적인 기준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것이 개척되면 앞으로 이 기준을 중심으로 교회권도 자연히 부활되어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움직이는 이것은 몇 사람 안 되는 통일교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정성껏 교회 통합운동을 전개하고, 국민운동을 전개하여 가지고 북한 공산당에 대비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지 못해 준비가 안 되었을 때에는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만, 정성을 다들여 가지고도 준비가 안 되었을 때에는 우리에게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정성을 안 들여서 망하면 다시 설 길이 없지만, 정성을 다 들여 가지고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설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의 날에 대한 의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래 이 부모의 날은 심정부활의 날과 실체부활의 날을 선포해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부활의 과정을 살펴보면 심정부활, 실체부활, 만물부활 이렇게 되어 나갑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고, 심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꾸로 심정부활, 실체부활, 만물부활을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선생님 자신이 형극의 길을 걸어오며 탕감해 온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서 축복된 부모의 날을 설정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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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노정의 의의
그러면 부모의 날을 설정한 후의 지금까지의 7년노정은 무엇이냐? 또 하나님은 6천년 동안 무엇을 하셨으며, 하나님의 한결같은 역사적인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머니 한 분을 찾는 것입니다. 아담을 보내서, 즉 아담을 재창조한 후에 그를 통해서 어머니 한 분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창조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한 후에 아담을 위주로 해와를 만들었기 때문에, 재창조에 있어서도 아담을 보내서 그를 통해 해와를 찾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를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7년노정 동안 어머님이 사탄세계의 참소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러면 어머님 자신이 절대로 사탄과 직접적인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에게 절대 순종해야 하고 절대 복종해야 하며, 언제나 선생님 뒤에 그림자와 같이 따라다녀야 합니다. 제멋대로 왔다갔다 하다가는 사탄의 침범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7년 기간은 또 어떤 기간이냐? 6천년에서 7천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탕감하는 기간으로서, 아담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해와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아담의 입장을 복귀하고, 사탄을 굴복시키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7년 기간은 이런 것을 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 기준을 세워 놓은 다음에는 어머니를 세워 심령적인 기준을 연결시켜 가지고, 타락한 부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여 참부모의 토대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가서 일할 때에는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심정을 갖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복중시대부터 모든 탕감복귀의 프로그램을 정하시고 그에 맞추어 역사해 나오셨는데, 여러분도 하나님과 같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것에 대해 세밀하게 다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3년노정을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이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어머니가 순산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낳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해와 한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비참하고 억울한, 그리고 복잡한 곡절을 겪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원혼들을 구원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구원해 주려면 전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전부다 수습해 가는 것이 어머니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승리의 기준, 즉 승리의 조건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축복의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3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해와는 남편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을 잃어버렸고,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신랑 되신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오시는 재림주를 잘 받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성도들은 결국 한사람의 신랑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을 맞는다는 것이 주먹구구식으로 해서 됩니까? 배후의 모든 조건이 전부 맞아야 합니다.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대하는 데에도 사방을 갖춰 가지고 대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 마음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가만히 보면 전부 가정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을 중심하고, 또 어머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아도 전부 오빠가 없든가, 혹은 독신이든가, 부모가 없든가, 무엇인가 하나씩 구멍이 뚫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그렇게 되어야 반대하더라도 전부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어머님을 택해 세웠습니다.

성신을 훼방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거스린 것은 용서받을 수 있으되, 성신을 거스린 것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왜그러느냐? 성신은 땅을 대표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완전한 가정을 갖추어서 천국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정이 반대하게 되면 그들 모두가 악으로 맺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놓기 위해서는 가정적으로 구멍이 뚫어져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구들을 보면 부모가 없든가 오빠가 없든가, 그렇지요? 그것이 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들어 가서는 탕감적인 내용이 맞아 떨어져야 됩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세심하게 역사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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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복귀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선생님은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 왔는데, 이것이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이 환경을 마련해 놓은 터전 위에서 해 나왔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러한 환경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30여 년을 총각으로 지내면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또 환경도 갖추어지지 못했기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부모의 도리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자식이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부모의 도리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성진이가 간섭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성진이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행동해야 합니다. 즉 부모가 하는 일을 따라가야 자식이지, 부모가 하는 일을 자식이 간섭하면 자식의 자리에 세워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간섭할 것 같으면 복귀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왔겠습니까? 복귀역사를 마음대로 다 했지요. 이것은 선생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어려운 곡절의 사연을 거쳐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 알아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일은 누구도 모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특별한 일에 있어서는 사명적인 심부름이나 할 뿐입니다. 그 전후 관계의 모든 것을 알고 나서 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잘못한 것은 그 책임이 부모에서 끝나야 하는 것이지, 자식에게까지 이것을 관계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대답하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다고 해서 되겠어요? 그래서 탕감이 될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진이도 지금은 거기에 대해서 모르지만, 아버지에 대해 진짜 알게 되면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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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다짐
우리가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하늘의 기반을 닦아 이만큼 뜻을 펼쳐 나왔다는 사실은 우주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주사적으로 귀결지으려면, 이러한 지대한 과제 앞에 만인은 무조건 복종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세상에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열만큼 있으면 배후의 심정적인 사연은 그 이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은 누구보다도 지극히 서러운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저주를 하려면 누구 못지 않게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저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제부터라도 다른 것을 하라면 하려고 이미 각오한 몸입니다. 선생님은 함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철저한 사람입니다. 뜻 때문이라면 선생님 자신은 죽을 각오를 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살아나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충성하다가 죽으면 하나님이 후계자를 세우든가 해서 뜻을 이루겠지 하는 마음으로 최후의 길을 다지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런 마음을 갖고 했습니다.

어차피 이 길을 거쳐야 하는데, 이 길을 거쳐 나오는 데는 평지를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의 울타리에서부터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의 울타리 안에서부터 마음을 다해 남자와 여자들의 사정을 잘 알아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증거를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이 다음에 영계에 가 보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아직 세 고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나가나, 자나깨나 하늘땅을 연결시키고 이 세계를 연결시켜야 할 복잡한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여기에서는 자식이 암만 효도한다 해도 그 효자를 바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충신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충신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그 고비에서는 충신과 효자의 도움 없이 단지 홀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인류의 부모가 저끄러뜨린 죄를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부모의 자리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사명과 책임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백일하에 나타나 가지고 만국을 호령해야 할 입장임을 알지만, 이 세계는 사탄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추운 철장 같은 그늘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하나님을 모시고 백일청천하에서 호령할 수 있는 그런 내적 기준을 어떻게 세워 놓고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잘살고 어떻고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통해서 바라는 소원은, 앞으로 직계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갈 길이 바쁜 것이지, 반대받고 핍박받고 어떻고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선생님을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바보 천치가 아닙니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세요. 어떠한 수단 방법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수행해 나가는 이 일이 세계사적인 내용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은 무엇을 느껴야 되느냐?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찾아 나오시던 그 부모가 지닐 수 있는 위치, 또 부모가 탕감해야 할 부모로서의 그 위치를 대신 세워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부모의 위치를 세우기 위해 탕감해 나오던 그 내적 기준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은 심정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말할 수 없이 빚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적 기준을 자기 자신이 갖춤으로써 하늘 뜻이 더욱 다져진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 각자가 땅에서 이에 보답하겠다고 노력할 때 하늘의 운세가 열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세상에서 살 때나, 뜻 안에 들어와서 살 때가 다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러한 7년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이런 사연을 여러분이 다시 한번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날을 세우기를 얼마나 고대했고, 이날을 세워서 부모의 위신과 부모의 책임을 세우기 위한 노정을 지금도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이 어떠한 책임을 해야 하느냐? 아벨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 가정은 가인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가정이 자리를 잡으면, 여러분 가정은 아벨적 입장에서 탕감할 수 있는 이런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것이 선생님처럼 하루아침에 전부다 되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영계와 육계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조를 중심삼고 볼 때는 연결시켜졌지만, 즉 종적으로는 그런 조건이 되었지만 횡적으로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이 문제에 관해서 선생님이 지금 상당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민족이 제물과정을 넘어서야 되는데, 그러려면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선두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만민이 해방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최고의 목표를 세워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나갈 수 있기를 다짐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