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61 to 17-299: 기억하자 시의시대

기억하자 시의시대
1967.02.15 (수), 한국 전본부교회

17-261
기억하자 시의시대
통일교회는 재판(再版)입니다. 우리는 초판이 아니라 재판입니다. 망가져 있던 것은 두드려 부셔서 다시 만들듯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때 자기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원래의 위치로 복귀될 수 없는 것입니다.

17-261
통일교회는 재판(再版)
장자요 초판인 사탄편은 망했지만, 차자요 재판인 하늘편은 망하지 않고 승리합니다. 우리 교회는 초판 소속입니까, 재판 소속입니까? 초판은 이미 사탄들이 다 점령해 버렸습니다. 초판에 소속한 사람이 많았지만 전부 깨져 나갔습니다. 초판의 사명을 상속받은 사람들이 재판에 소속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7년노정의 혜택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선배들이 수고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사탄 세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에 기인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아가씨들은 시집을 가게 될 때 초판에 가나요, 재판에 가나요? 여기 김동원씨 어디 있어요? (김동원씨를 향해) ‘동원씨는 그때 장가를 가기를 잘했나, 못했나? ‘ 못했다고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잘한 모양이구만? 만일 잘못했다고 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려면 어떻게 회개해야 되느냐? ‘나는 다시는 장가를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빨리 용서받는 회개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욕을 먹더라도 첫번에 먹고, 매를 맞더라도 첫번에 맞아야 합니다. 얻어 맞고 나면 탕감됩니다. 그러나 탕감조건으로 한 인물 앞에 같은 것을 두 번 제시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3제물 헌제의 실수를 청산짓기 위해서 십 배 이상의 수고의 노정을 거처야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은 단 한번밖에 세울 수 없습니다. 중요한 탕감의 사명을 맡기기 위해 세웠던 사람이 실패하면 그 사람을 다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밖에 없는 탕감시대가 지나가기 전에 탕감조건을 제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살아왔던 공적이 날아갑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공적이 고스란히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을 새워 가면서 씨름할 때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급한 인류의 대사이기에 ‘오늘 저녁은 졌으니 내일 저녁에 다시 합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했다가는 몇 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런 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262
긴박하고 중요한 7년노정
복귀의 역사는 6천년 동안 흘러 왔기 때문에 한 사람이 6천년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60년 동안 뜻을 품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일생에 있어서 6년도 아니고, 자그만치 60년 동안 번민하며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간에 세우지 못하면 120년 동안에 다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나 모세는 예수님을 위한 탕감 노정(4천년)을 걸었기에 40수의 탕감노정을 걸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7년노정이 얼마나 긴박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7년 초판 싸움에 도전하여서 하나님께 맹세하고, 민족적인 탕감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제단 위에 스스로 올리어 제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여러분을 제물로 삼아 민족적 제사를 드려보겠다고 하는, 한번밖에 없는 이 7년 기간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시집을 가고 장가를 들고 나서 이런 싸움터에 나가게 되면 지장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7년노정을 마치고 나서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시집가고 장가든 사람들은 전부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집가고 장가든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지금까지 시집가고 장가든 사람들은 역사적인 탕감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가씨들은 7년노 정을 다 마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한국이 환영할 수 있는 시대만 되면 여러분은 일등 신랑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민족 복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7년노정을 걸어 왔습니다. 사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의 내적인 기준이 아벨적인 입장이요. 외적인 기준이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즉, 가인 아벨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내적 기준은 사상적인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상적인 면에서 이 나라의 모든 권력자나 어떠한 단체를 능가할 수 있는 기준, 즉 천적인 기준에 서 있습니다. 이리하여 삼천만 민족이 하나 되어서 세계적인 복귀노정을 출발하게 되면 제2의 초판이 아니라 재판이 되는 것입니다.

초판에서 승리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과 재판에서 승리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 초판에서 승리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초판에 승리한 사람들은 재판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으며, 그들이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만다는 것입니다. 초판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지만, 합격한 사람은 재판 삼판에도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1차전, 2차전, 3차전으로 연장시켜 나오는 복귀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1차에 승리하면 제2차에 나갈 수 있고, 제2차에 승리하면 제3차에 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제1차의 싸움에서 국가적인 기준의 승리를 했다면, 국가적인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서도 국가적인 기준의 중요한 책임을 짊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책임을 다시 연장시켜 나가지 않고는 세계적인 책임을 하는 입장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통일교회 간부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36가정이 한국을 위주로 한 초판 싸움에서 책임을 다했다 하더라도 또다시 세계 무대로 출전해야 합니다. 36가정은 출전의 책임자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출전을 안 했을 때는 하나님께서는 가지 않는다고 책망하시지도 않고 책임추궁도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세계적인 출동에 의해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 그 자리에는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머물 수 없다. 선생님을 따라 재판 종판까지 따라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차피 고생을 해야 됩니다. 고생을 할 때 선생님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고생하게 되면, 선생님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7년노정의 초판 싸움에 가담하여 참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책임을 다하고 눈물 흘리고 피땀 흘렸던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17-264
세계로 확산되는 통일교회의 이념
말씀이 언제부터 나왔습니까? 선생님이 열여섯 살 때부터 나왔습니다.

상식이나 수학 문제를 푸는 공식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로 말하면 무슨 멋을 내겠다는 그런 멋을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요, 남자로 말하면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자기 처소 가운데서 기억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을 책임진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그 책임을 중심삼고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이 세상에는 4대 성인, 즉 예수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인을 추모하다 보니 그 성인이 난 배후의 환경과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성인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 나라를 가 보았습니다. 베들레헴에도 가 보았고 예루살렘에도 가 보았지만,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라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반 사막지대에 밭이 조금 있을 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나귀와 낙타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리고 감람나무도 많았습니다. 그곳의 기후가 열대성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땅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이 이스라엘을 온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순례하는 것을 일생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왜 그러냐? 그곳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위대한 것은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나라가 중흥되고 중국 문화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왕실에서 왕자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고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만방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살 길을 개척해 주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추모함과 동시에, 그가 태어난 나라까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는 잊을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을 기다리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그 업적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 업적을 생각하다 보면 그 업적을 이루기까지 연유된 환경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성인이 태어난 그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성인이 태어난 나라는 피폐하고 황폐한 땅일지라도 그 땅을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상의 어느 한 시대에서 한 나라의 주권자, 즉 자기 나라의 문화와 권세를 자랑하던 주권자들은 역사에 한 페이지만 남긴 채 다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연륜을 거쳐 사상적인 기반을 닦아서 세계적인 문화를 이룬, 인격적인 소양을 갖춘 그러한 성인이 있다 할진대 그 성인이 태어난 인도면 인도, 이스라엘이면 이스라엘 혹은 희랍이면 희랍, 그러한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비록 망했더라도 그나라에 그 성인이 남긴 흔적을 더듬어 보고 싶고, 그 성인이 살던 당시의 모습을 상기하고 싶고,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적인 감정을 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통일교회의 이념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가운데 필시 한번밖에는 생겨날수 없습니다. 한번밖에…….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은 대외적인 관계로 볼 때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한때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입니까? 오늘날 한민족의 실상은 너무나 처참합니다. 말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민족인데 세계의 여러 민족으로부터 동정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새로운 세계를 세워 갈 수 있는 문화적인 터전과 사상적인 기틀이 통일교회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세계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전념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처해 있는 이 불행한 자리가 역사적인 행복을 위해 투쟁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념을 예수님이 세운 기준 이상의 것으로 생각합니까, 석가모니가 세운 기준 이상의 것으로 생각합니까? 혹은 소크라테스나 공자가 세운 기준 이상의 것으로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그들이 세운 기준 이상의 기준을 세우게 된다면 그들보다 더 높고 귀한 가치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는 선생님이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찾아온 것 같지만, 오늘 이 땅에 서서 세계의 역사를 뒤돌아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제창하는 이념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로 될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17-266
이 민족의 역사적 배경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종착점이 되어야 할 자리에 여러분은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엄청난 자리인가, 여기에 서 있는 여러분 각자의 개체가 얼마나 근실하고 존귀한 존재인가를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 박물관에 들러서 예수님이 당시에 사용했거나 가지고 계시던 어떤 유물이 있는지 물어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쓰시던 유물, 즉 조그만 젓가락 쪼가리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미국의 돈을 다 주고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 전체를 주고도 살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지녔거나 입으셨던 옷이 남아 있다면, 그 옷은 무한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문화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대표될 수 있는 가치일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지나면서 그로 인하여 미쳐진 영향을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런 가치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침식을 같이하고, 행동을 같이하고, 그와 더불어 수양해 나가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가치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후손 앞에 부끄러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지나고 난 후에 그 가치를 느끼는 것보다도, 역사를 이끌어 온 실적을 보고 그 인격을 존중하는 것보다도, 그 당시에 가치를 알 수 있는 소성(素性)과 그럴 수 있는 바탕을 지녀야 합니다. 그분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에 있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존재라고 높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모실 수 있고, 그분의 일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나간 예전의 자기 자신을 회고해 봅시다. 선생님이나 여러분 모두는 지금까지 비참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삼천리 방방곡곡, 이 강산의 역사적 배경을 바라보면 우리 민족은 비참한 민족이었습니다. 역사 이래 다른 민족들로부터 압제를 당하고 수모를 당하고 그들로부터 쫓김받아오던 민족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헤아려 볼 때 이 땅은 역사적인 사연과 역사적인 원한이 맺혀 있는 땅이요, 이 민족은 역사적인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입니다.

여러분은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지요? 그런데 비참하고 역사적인 서러움이 깃들어 있는 고향 산천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거기에는 충신 열사들이 비참하게 흘린 피와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들의 슬픔을 해원성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 보았느냐? 그런 마음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로하여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민족은 국운이 비운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민족을 통하여 전인류를 복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할진대 삼천만 배달민족은 하나님의 섭리 앞에 충성을 다하는 봉사자가 되고, 봉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두고 볼 때 이것이 우리 선조들의 한이 되었고, 직접적으로 복귀섭리를 주관해 나온 하나님 앞에는 서글픔을 남긴 이 강산 이 민족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7-168
사람들이 성인과 함께 유물 유적을 추모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수많은 민족을 제쳐놓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아 오셨다는 사실에 삼천만의 이 민족은 감사하고 찬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배달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난 여러분이 민족을 대신하여 이 민족의 모든 실수를 책임지겠다고 나서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봤느냐는 것입니다.

이 팔도강산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어떠한 군 면 리의 민가든 상가든 어떠한 집을 찾아 들어갈 때, 그 배후에 맺혀진 사연이라는 것은 선생님이 위에서 말했듯이 간단한 사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정의 한 닻을 내려놓고 섭리의 출발을 했다면 거기에는 역사적인 곡절이 사무쳐 있고, 역사적인 사연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를 상속받을 수 없었고, 이것을 책임지고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공적인 책임을 질 수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어찌하여 위인이나 성인을 후손들은 추모해야 되느냐?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들인 역사적인 모든 사연이 얽혀 있고, 선의 사연과 곡절이 그 속에 엉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러한 터전을 통하여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향하는 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록 타락의 후손들일망정 인심은 천심과 통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을 추모하고 성인이 걸었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요,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인들이 이 뜻을 얼마나 염원해 나왔으며 현재 처해진 입장에서 이 뜻을 중심삼고 얼마나 수고했느냐? 내적인 체휼을 하면서 내가 이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 자각한 바가 있느냐?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서울은 선생님이 학창시절부터 눈물을 많이 흘린 곳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삼천리 팔도강산의 명승지를 찾아 다니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각도의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면서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적마다 하나님의 괴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풀어 드리기 위해 달리는 차바퀴를 재촉하며 눈물어린 신념을 가지고 어려운 식구들을 찾아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전국의 마을마을은 핍박받는 아들딸, 핍박받는 대원들을 남겨 놓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 역사적인 사연이 깃든 그러한 마을 마을입니다.

17-169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이 흘린 피 땀의 가치
7년노정에서 통일교회의 청년 남녀들, 즉 나이 어린 20대, 10대 청소년들이 눈물어린 결의를 하고, 집에서 쫓겨나고 형제들에게 몰림받아 가면서도 외로운 전도의 행로를 떠나 환영하지 않는 마을에 들어가,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비참한 자리에서 뜻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몸부림쳤던 그런 마을 마을을 여러분은 얼마나 생각해 보았습니까?

7년노정 동안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통일교회의 청년 남녀들이 찾아 갔고, 그들은 비장한 마음과 눈물어린 심정을 갖고, 맺혀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한과 시대적인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나는 역사를 대신하여 이 시대의 탕감의 역군으로 왔다’라고 생각하고 원수시하는 그들을 위하여 밤을 지새워 가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버지를 부르던 그 기도의 음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편안하게 웃고 사는 그 마을의 환경 속에는 우리의 선조들이 눈물로써 기도하던 그 음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라져 갔지만 절박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여잡고 호소하고 기도하던 내적인 심정의 기도는 하나님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반대하고 한을 심어준 원수를 굴복시켜 하나님께 승리를 안겨 드리고, 또한 우리의 한도 풀 수 있는 그 한 날이 언제 오느냐 하면서 그 한 날이 오기를 천만번 기도하며 몸부림친 사실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천리 반도를 바라볼 때, 옛날 우리 선조들이 금수강산이라고 자랑하였던 그 명사의 인연이 여기서부터 맺어졌다는 것을 여러분 생각해 봤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정성을 다하고 눈물을 흘리고 피와 땀을 흘리며 자기의 생명을 걸어 놓고 담판을 하며 호소했던 그야말로 금수강산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선조들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 나라를 찬양하고 이 민족을 찬양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배달민족, 대한의 아들딸이 살고 있는 이 삼천리 반도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흘린 눈물과 정성어린 피 땀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천적인 심정의 기반과 가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해야만 합니다.

정성어린 제물과 같은 입장에서 제단 앞에 서야 할 여러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제단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자가 됐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옛날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아니라 현재 통일교회와 같은 환경 가운데 오신다면 우리를 붙들고 통곡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시며 이 민족의 내면에 얼크러져 있는 사연을 보면 이 민족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통곡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렇게 엇갈린 사연이 삼천리 반도 위에 주체로 선 통일의 청년 남녀들의 피 땀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민족의 눈물의 인연을 파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피끓는 수많은 청년 남녀들의 눈물이 얼크러져 있고, 역사적인 한을 밟고 넘어서겠다고 통곡하신 선조들의 눈물 자국이 얼크러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복귀섭리의 역사적 노정을 걸어 오신 하나님의 눈물이 숨어 있고,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스승의 눈물이 섞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엄청난 사실 앞에 머리 숙여 진실된 자세를 갖춰 가지고, 자기 스스로 행동을 자제하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 몸부림친 사실이 있습니까?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7-271
새로운 결의를 하고 나서야 할 우리
여러분은 역사적으로 얼크러진 사연 앞에 나서기에 너무나 초라하고, 너무나 미비하고, 너무나 미급한 자신인 것을 깨달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자연을 바라보고 혹은 명산을 바라볼 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다시 한번 고취시켜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괭이 자루를 잡고, 땅을 파 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심정으로 땅 위에 있는 모든 만물을 거느림으로써 주인의 할 일을 다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이것을 거론해 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식구들을 키워 나가고 거느리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예수님을 대신한 입장에 서서 간곡한 심정으로 몸부림치며 얽힌 사연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천적인 승리를 가져 오겠다는 다짐과 결의 밑에서 인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통일의 역군인 여러분들은 알고 보면 엄청난 인연 가운데 얼크러져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뜻을 따라가는 과정에서는 모릅니다. 그러나 뜻앞에서 일단 떨어져 보면 알게 됩니다. 이 자리가 얼마나 귀하고 복된 자리인가를 떨어져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떨어지고 나서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나고 나서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뜻앞에 처해 있을 때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요, 그런 사람은 지도자가 되고 책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방 교회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여러분들, 지방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과거에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면에서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이 요구하는 본의에 입각해서 그 사연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을 건널 때도, 옛날처럼 무심히 보고 건너던 그런 여러분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돈을 버는 일도, 지금까지의 김아무개면 김아무개로서의 일생을 걸어 놓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산 고개를 넘나들지라도, 지금까지 그 산 고개를 넘나들던 김아무개로서 넘나들어서는 안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요, 길을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을 깨나 잠을 자나, 억울해하고 기뻐하고 서러워하는 모든 일체의 행동 전체를 그런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언제 여러분이 시대적인 책임자로서 이런 역사적인 인연을 생각해 보았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여 올바른 관계 속에서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천적인 탕감역사를 하겠다는 새로운 결의를 가지고 삼천리 반도 전역을 향하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입장에 있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새로운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17-272
후손들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제 여러분이 책임진 지역이나 마을로 갈 때에는 옛날과 같은 마음으로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강토를 위해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한 그 터전을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찾아냈을 때, 그들은 그 땅을 거룩한 땅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그 땅을 찾을 수 있도록 역사적인 눈물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가겠다고 생명을 걸고 뒤넘이치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후손들이 그 땅을 찾아 들어갔을 때 ‘우리의 선조들이 과거에 이렇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선조들로서 후손들이 추종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겠다고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일시에 왔다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사를 걸고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책임을 짊어진 하늘의 용사다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자기의 책임진 임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그 마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마을은 내가 알고 있던 그러한 마을이 아니요,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대해 오던 마을이 아니고, 사연과 곡절이 얼크러져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대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그 역사적인 위업을 상속받아 더욱 위대해질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야 그 역사적인 인연이 발전했다고 할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나오던 모든 환경을 일신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진 자로서 새로운 길로 가야 될 때가 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내일 본부교회를 떠나 차를 타고 지방으로 돌아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떠날 것이냐?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왔다 가는 여러분이 되어선 안되겠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아 불편하다고 느끼고 뺑소니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 자리를 빨리 떠나십시오. 협소한 자리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으니 무리인 줄 알아요. 그러나 우리만이 이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더더욱 잘 아십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은 비웃을는지 몰라도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께 ‘우리 교회를 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젯밤에도 저 문 뒤에서 밀고 당기면서 서로 들어오려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것을 처량하게 바라보지 말고,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한때는 이러한 일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까? ‘라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참석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사람이 있어야 앞으로 세상을 탕감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실된 재산이요, 탕감복귀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17-273
새롭게 인식해야 할 때
이것은 미국 땅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집회에 대한 규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규정 인원 이하의 참석은 허락하지만 규정보다 한 사람만 더 참석해도 법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규정 인원보다 더 많이 참석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럴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이 불행의 요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속 사정에 깊이 들어갈 수 있고, 우리 교회를 지어 주고 싶은 하나님의 심정적인 기준을 우리에게 연결시킬 수 있는 혜택과 은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여러분들이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이제 본부교회를 오고 가는 것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습관적으로 왔다 가서는 안 됩니다. 행사가 있으니 왔다 가고, 일요일이니까 왔다 가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오고 가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의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특정한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특정한 사람은 내적인 요건이 다르고 외적인 요건도 다릅니다. 그의 지닌 바의 가치도 다르고,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사상적 기준도 다릅니다. 사상적 기준이 다르니 만큼 정신적 기준도 다른 것이요, 정신적 기준이 다르니 행동 기준도 다른 것입니다.

본부교회의 문을 열고 수많은 통일교인들이 드나들었지만 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떨리는 손으로 이 문을 당기면서 ‘아버지, 그리워하던 본부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라고 통곡하는 식구를 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만나 보기를 심히 고대해 왔지만 아직까지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본부교회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될 때, ‘제 가슴에 못을 박았으면 박았지 이러한 모습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겠습니다. 하늘의 정성어린 터전이 어찌하여 이렇게 초라합니까? 제 일대에 이 초라함을 웅장함으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라고 충성을 다짐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7년노정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는 중입니다. 지금은 선생님의 나이가 47세를 지나서 48세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이때에 통일교회 교인인 여러분들은 지금까지의 생각을 뒤집어 버리고 다시 한번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즉, 본부교회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고, 스승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해야 되겠어요. 지구장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되겠고, 지역장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권사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되겠고, 식구에 대해서도 습관적인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기억하고 알았던 것들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백 퍼센트 이 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을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기준에 완전히 도달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젊은 통일교회 신도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얼마나 고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기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낙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7-275
원칙적인 기도
봄이 되면 여러분의 집 치마 끝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서 둥지를 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리하여 얼마 후에는 알을 낳게 되고, 한 40일 정도면 그 새끼들이 날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둥지에서 자랄 때는 좁은 데에서 시달려야 하지만 일단 성숙하여 날게 될 때는 천하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철새보다도 멀리 날수 있어 한꺼번에 강남까지 달려갈 수 있는 멋진 제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고되게 연단을 받고 시련을 받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시련의 실전장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이중 삼중의 시련을 겪어서 새로운 신념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제비같이 새로운 천국을 향하여 날아갈 줄 아는 여러분이 되면, 지금 이 터전이 얼마나 복된 보금자리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먹는 것은 일생의 무엇보다도 더 귀한 것이요, 여기서 자고 입는 것은 어느것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새시대에는 새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지방에 있는 식구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언제나 원칙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아무 지역 아무 곳에서 오늘 밤 기도합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는 자기 소속을 밝혀야 합니다. 본부교회의 남방이면 남방, 정남방이면 정남방에서 본부교회에 대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아무 지구의 아무 지역의 아무 곳에 있는 누구라고 밝혀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역사적인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현재 거느리고 있는 식구들, 즉 자기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인연되어 있는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그들에게 빛을 주고 그들을 위해서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한 힘이 제게는 부족하오니 힘을 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는 통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기도, 중요한 해결을 위한 기도일수록 본부교회에서 정성들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방법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부교회가 걸어 온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인연, 역사적인 배후를 더듬어서 눈물어린 심정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본부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보다 더 충성하는 자리에서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부교회에서 하는 일을 여기에서도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보면 움직이는 것 또한 그럴 것입니다.

17-276
주류에 속한 우리의 책임
통일교회 교인들은 임지를 위해서 뛰어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한 지방을 책임지고 활동하는 데 있어서 좋은 일이 생겼걸랑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신이 좋다고 그 자리에서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일을 기뻐하시옵소서. 본부에서 생긴 이 일을 기뻐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다음에 자신이 소속된 지구장이라든가 지역장에게 보고한 후에, 자신이 기뻐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가는 길에는 막히는 법이 없습니다. 통일의 운세가 발전적인 역사의 운세라 할진댄, 그 운세가 남아 있는 한 그 사람이 가는 노정에는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습니다. 막혔던 일이 도리어 선으로써 유익을 가져오게 되지, 악으로써 그 사람을 결박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소속하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편에 소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편 가운데도 주류가 있고 지류가 있는데,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주류에 소속해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류에 속한 여러분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이 봄이 되면 잎이 돋아나야 됩니다.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하여지고 꽃이 피어야 될 것이요, 가을이 되면 결실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나무가 지닌 영양을 때맞추어 받아 함께 자라야 됩니다. 잎이 자라면 가지도 자라고, 줄기도 자라고, 뿌리도 자라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무가 지닌 본질입니다. 즉 통일교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여러분도 발전해야 됩니다.

국가적인 터전을 통하여 발전하는 것이나 부락적인 터전을 통하여 발전하는 것은 범위는 작을망정 그 형태는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곳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니, 스스로 부족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사방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즉, 지구의 동반구냐 서반구냐, 적도 이북이냐 이남이냐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위치는 상하와 전후 좌우의 관계가 결정된 후에 명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해 있는 천적인 위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사방의 도수에 입각해서 가치를 세우고 위치를 결정지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상황에 부합될 수 있고, 정자세를 갖출 수 있지, 그렇지 못하게 되면 부정자세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역사의 흐름에 밀려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세상이 발전하는 그 궤도를 따라가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번에 왔다가 돌아가는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가를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고, 복귀섭리의 노정을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고, 스승을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고, 지구장 지역장을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고, 통일교회 정신을 지녀야 발전한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상하 관계에서 스스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17-278
번식의 원칙
상이 있어야 하가 있는 것이요, 전이 있어야 후가 있는 것입니다. 하상(下上)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자신으로부터 아래를 생각하는데, 이것은 하상이에요. 자기로부터 생각하게 되면 아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이 먼저이기 때문에 먼저 상을 존중해야 됩니다. 서로 좋아서 합한 둘보다도 상을 더 좋아하면 더 빨리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상이 되고 인간은 하가 되는 것입니다.

상하의 종적인 관계에서는 번식이 안 됩니다.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분립 작용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횡선상에 있어야 합니다. 횡선상에 있으면 번식은 자동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장과 구역장의 관계처럼 종적인 관계에서는 번식이 안 됩니다. 그러나 서로 하나 되어 지역장이면 지역장을 중심삼고 구역장이 행동을 같이하게 될 때에는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왜 하느냐? 번식하기 위해서입니다. 번식은 종적인 관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횡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 되어 서로 주고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교회장을 중심삼고 교인들과 횡적인 입장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면에서 발전되는 것입니다. 지역장을 중심삼고 교회장들이 하나 되라고 한 것은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발전시키자는 것이요, 지구장을 중심삼고 지역장들이 하나 되라는 것도 더욱 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 발전, 즉 번식시키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충성을 다짐할 때는 거기에서 수십 배의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때는 컸다 작았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컸다 작았다 하는 것이니 각 지방에 떨어져서 활동하는 개인이라 하더라도 본부에서 온 소식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에 서야 합니다. 체내에서 느껴진 모든 감각이 신경을 통해 세포까지 일시에 미쳐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모든 식구들도 본부 소식에 대해 동시에 동감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상적인 생명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본부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지만 신경계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처럼 종적인 기준에서만 관계맺어 나가면 일시적으로는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계속 느끼지는 못합니다. 우리 몸의 뼈의 조직을 두고 볼 때 그것은 질서있게 종횡으로 연결지어져 있습니다.

17-279
‘기억하자, 다시 한번 기억하자’
근간에 본부를 왔다 가는 여러분이 마음에 품고 가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기억하자,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습관적인 감정을 얼마나 초월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교회를 대하는 데 있어서, 지구를 대하고, 지역을 대하고, 각 개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여러분이 취하던 입장을 다시 한번 혁신해야 됩니다. 새로운 입장에서 인식을 하기 전에는 발전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창조력이 발생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4단계 배가 운동, 이것은 금년에 우리들이 내세운 4대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초과 달성하기 위해 이상을 크게 갖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생을 피해 가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그래서 작년에 어려웠다면 금년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금년 목표를 앞에 둔 여러분은 이것을 더욱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심정적인 내적 기대를 조성하고, 4단계 배가 운동, 혹은 경제복귀하기 위한 활동을 완수하여 이 모든 것을 성취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지구장을 통하여 들은 인식 갖고는 안 되겠어요. 철두철미하게 기억된 인식이 여러분의 사지 백체를 움직이고 폭발시킬 수 있는 행동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이 폭발시킬 수 있는 힘의 양이 작년보다 못하게 된다면 7년노정에 있어서 낙오자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다시 한번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던 지구장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되고 지역장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치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심정이 지치는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하는 사람이 가는 길을 막는 법이 없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나서는 사람을 하나님은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성을 다했다면 낙망이 되고 지쳐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길에서 지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망하고 마는 것은 바로 타락한 후손임을 자증하는 것입니다. 자기로부터 출발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과 같은 것이 된다면 복귀는 자동적으로 되게요?

지금까지 쌓아 온 죄악의 역사를 탕감한다는 이 엄청난 말씀을 여러분은 들었을 텐데, 탕감복귀를 위한 최일선에 서서 하나님을 붙들고 몸부림쳐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면 도를 책임진 지구장, 군이면 군을 책임진 지역장, 면이면 면을 책임진 교회장을 중심삼고 진정으로 탕감 복귀를 위한 최일선에 서서 사탄과 부딪쳐 봤느냐는 것입니다.

17-280
어려움에 부딪칠 때 상기해야 할 것들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내온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식되고 기억된 것을 쇄신하고 새로운 기억과 인식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달려 가야 합니다. 이러한 결의와 신념을 가진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상기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어려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비소를 받으면서도 까뀌를 붙들고 나무를 깎아 방주를 짓던 모습을 회상해야 합니다. 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3대를 거치며 천적인 인연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찾으시던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애쓴 노고를 여러분은 망각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노아가 걸은 120년이 얼마나 어려웠던 기간이었습니까?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 앞에 서지 못하고 수많은 민족에게 학대를 받고 세계적으로 배척받는 민족이 된 것도 예수를 모시지 못한 우(愚)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어린 기도를 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정을 오르면서도, 자기 일신이 찢어지고 망하는 것을 개의치 아니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과 더불어 결의하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철석같은 내적 결의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어느 한때에 여러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와 같이 ‘나의 아버지여!’ 하고 울면서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비난과 비소와 조롱과 채찍질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면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여 나아가던 예수의 입장에 서 보았습니까? 또 우리 선조들의 모든 과거의 인연을 다시 회상해 보았습니까? 그 역사적인 사연들이 오늘 여러분 앞에 다시 재현되고 여러분에 의해 탕감되어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여러분을 그런 조건 앞에 내세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노아 아브라함 모세처럼 하나님의 설움과 슬픔을 헤아리고, 역사적인 선조들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자신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짓게 될 때 값없는 눈물이 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에 팔려 가는 싸구려가 되지 말라는 것이요, 한 사람의 말에 자기의 생명길을 저버리는 값싼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 올지라도 여러분들은 꿋꿋이 설 수 있고, 원수가 몰려와도 그 원수를 무찌를 수 있는 무기가 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되었지, 밀려오는 폭풍과 어지러운 환경 가운데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17-282
하나님과 선조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노정에서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어린 기도를 하고, 골고다를 향해 가던 심정을 생활 속에서 얼마나 체휼해 봤습니까? 노아가 120년 동안 참아 나오던 그 노정을 여러분은 얼마나 걸어 봤습니까? 모세가 자기의 영광을 팽개쳐 버리고, 조국인 이스라엘에 대한 애국정신에 불타서 죽음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뜻만을 향하여 나아가던 그 노정을 얼마나 걸어 봤습니까? 여러분들은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각자가 되겠다고 하며 나서야 됩니다. 모든 선조들을 그런 자리에서 위로해 주어야 하는 여러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나면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조들을 보게 될 때도 여러분은 지칠 수 없습니다. 그래야만 지난날 선조들이 실수한 것을 복귀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라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해 놓은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없어서 비참하고,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아들딸을 잃어버리셨을 때의 서러운 심정과,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6천년 동안이나 걸어오신 외로운 발걸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역사노정에서 슬픔과 저주와 처참한 환경에 부딪쳐 나오시면서도 어느 한 날도 우리를 불효자로 생각하시지 않고 오히려 우리들을 구해 주시려고 섭리해 나오고 계십니다. 새로운 소망의 천국을 꿈꾸며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의 입장에 입각하여서 생각하고 그 분이 하시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역사적인 선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실지로 느낀다면 낙망하고 지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확실히 인식되지 않으면 기도해요, 기도.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실 때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서 창조하셨겠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아담 해와는 타락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아담 해와가 타락하자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졌을 때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그러한 자리에 섰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노아를 중심삼고 노아의 입장에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이면 아브라함, 모세면 모세의 입장에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면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예수를 알아보아야 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처량한 세례 요한의 입장이 되어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3년 공생애노정을 가면서 허덕이던 예수의 입장에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배반한 민족을 전부 수습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꾸며 놓고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책임을 짊어진 예수의 입장에서 기도해 보라는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타락한 수많은 세계의 인류를 복귀시켜야 할 책임을 짊어진 예수의 입장에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또 지금까지 여러분이 본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17-283
경제복귀를 강조해 온 이유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의 조그만 마을, 군, 도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서는 안 됩니다. 현재 한국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데에도 복잡한 사연이 많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엄청난 세계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염려하고 기도하며 나가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벌어지는 고통거리는 고통거리로 삼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나 피끓는 20대 청년 남녀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만약 이러한 환경에서 여러분들에게 총칼을 들고 나서라 할 때 참소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후의 백병전에서 총칼을 뺏고 혈투전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자기 개체만을 사랑하기에 허덕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지구장, 지역장들이 갖지 못한 환영의 한 때, 더욱이 이 강토 이 지역에 와서 천대받고 환영받지 못한 선조들을 대신하여 여러분이 환영받게 될 때에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꿈속에서라도 나타나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내가 받지 않겠으니 당신이 받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내적인 심정적 기준을 갖고서 좋아해야지, 그렇지 못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나가게 될 때는 단발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단발을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소화시킬 수 있는 관점에서 그것을 대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을 부여안고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대하지 못했던 이상과 노아가 풀지 못한 한, 우리의 선조들이 대하지 못한 환경을 하나님을 거쳐 억대의 선조들 앞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나는 종의 종이기에 환영을 받기에 부족하다는 태도를 가지고 대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심정적인 기준에서 낙오되거나 사탄에게 절대로 끌려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게 될 때 십중팔구 끌러다니게 됩니다.

경제복귀를 강조하고 나오는 이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지금까지 생활한 모든 배후를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이 지친다면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지역장들이 과거에는 천원을 구하는 것을 하늘의 별을 따는 것같이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만원도 우습게 생각하고, 십만원도 우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업을 통해서 경제복귀를 강조해 온 것은 그것이 여러분에게 생명의 터전이 되고, 하나님의 발판이 되어 심정을 돋우는 데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심정을 팔아먹는 하나의 재료로 이용하게끔 된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생각할 때 심정적인 내적 기대의 조성을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7-285
우리의 보금자리
하나님을 대신하고 민족을 위하여 나선 여러분이 반공강의를 하는 것은 몇몇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귀도상서 공산주의는 필연코 쳐부셔야 할 사탄의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하는 민족을 세우시려고 애쓰기 때문에 민족 전체가 환영하는 그날이 오기 전에는 여러분이 환영받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민족이 환영할 때 여러분이 앞에 서는 것보다 선조로 왔다 간 모든 의인들을 앞에 세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하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환영받는 그 자리에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과정적인 현상입니다. 아직까지 여러분에게는 넘어가야 할 고개가 많이 남아 있고 달려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요건이 있어도 그것을 기어코 넘어가겠다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 온 전통을 여지없이 팔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7년노정의 싸움에서 세워 온 공로 중의 제일은 바로 전통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팔아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잠바를 입고 나가서 일했습니다. 누더기 옷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는 입장에서 입었어요. 그렇지만 대사에는 환경적인 요건을 갖추어야 되겠고, 대외적인 위신도 세워야 되겠기에 이제는 양복을 입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위신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는 옛날의 그 모습을 갖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그러한 모습을 갖추는 것을 섭섭해 하거나 싫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공장이 발전되는 것은 공장장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시내에 나갈 때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갑니다. 공장으로 돌아오면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도 입고 나갔던 새옷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싫어한다면 그는 공장장이 될 수 없습니다. 즉 다시 돌아와서 그 기름 묻은 옷을 입기 싫어하고 기계를 만지기 싫어하게 되면, 그는 자기가 닦아 놓은 터전을 상실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 같은 위치에 있기가 쉬워요. 그런데 여러분이 비참한 환경에 처하게 되어 눈물 흘리며 유리고객하게 될 때, 같은 길을 걸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공장에 갈 때 될 수 있으면 양복을 입고 가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마음으로 결심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같이 일하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여러분을 길러 줄 보금자리는 어디냐? 환영받는 자리가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천국이나 궁전처럼 만민이 우러러보는 자리나 쉴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이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그런 자리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싸워 승리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보금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는 위로를 크게 여겨야지, 세상에서 보내 주는 위로를 좋아하면 나라를 팔아먹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17-286
경제복귀를 위해서 정성을 다하라
금년에는 경제적 기반 확립을 위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나가니 기성교인들이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장사한다. 비종교 단체다’ 라고 하는데, 그것에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경제복귀하는 데 있어서 호화찬란한 자리에서 하는 것을 선생님은 원치 않습니다. 환영받는 자리에서 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습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 합니다.

민족이 전부 환영했더라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삼천만 민족이 서로 위할 수 있는 그런 통일의 민족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자리에서 그것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적은 탕감이 됩니다. 어려운 자리에서도 그것을 규합하여 거둔다면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하나의 물건을 팔기 위하여 들이는 정성은 어떤 상인보다 더 진지해야 합니다. 다른 장사꾼보다 몇 배의 심정적인 기준을 갖게 되면 더 비싼 물건도 머리 숙이고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소비자의 수가 금년에 얼마나 더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보통 정성 가지고는 안 돼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기의 책임진 분야로 돌아 가서 만사에 대해 기도 드리며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뜻을 이루는 거예요.

지역장들이 모인 데서 지구장이 큰소리치면 기분 나빠합니다. 기분 나빠할 수 있는 간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어요? 그러나 기분 나빠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망하는 자리가 아니요, 잘만 이겨낸다면 여러분이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돌아가게 되면 그냥 그대로 나갈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전후 좌우를 알고 하나님을 중심삼아서 지금까지의 자기 자세를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입장에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17-287
하늘의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 시의시대가 무엇입니까? 「모심의 생활을 하는 시대입니다. 」

여러분, 지금은 시위시대예요, 시의시대예요? 그런데 요즘 시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의인지 시위인지 괜히 알쏭달쏭해 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시의시대, 즉 모심의 생활에 있어서 정확한 중심을 두고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법도가 있습니다. 그 법도를 어길 때에는 하나님은 무척 노여워하시는 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의 말 한마디에 따라 가슴에 못이 박혔다, 빠졌다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노여움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도 선생님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옷을 입을 때도 잘입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옷을 잘입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그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양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바를 입고 나왔을 것입니다.

면에서 칭찬받기 위해 생활하는 사람은 잘할 때는 칭찬을 받겠지만 거기에서 한번 실수하는 날에는 아주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면에서 칭찬받고서 군에서도 칭찬받겠다고 열심히 충성하면 살 길이 남게 됩니다. 그러나 군에서도 칭찬을 받겠다고 눈이 벌개져서 돌아다니다가 한번 실수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을 잊어 버리고 도를 위한 목표를 정하고 나가게 될 때는 군에서 실수하더라도 또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해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떠한 대통령이 해주는 칭찬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체험만이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못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만 칭찬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계의 30억 인류가 칭찬한다 해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영인들이 환영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고맙다고 칭찬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먼 기준입니다.

내가 3년 동안 수고하고 고생했으니 반드시 칭찬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동안 수고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3년을 수고했더라도 아직까지 수고한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더 충성하겠다고 다짐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수고의 값이 점점 더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게 되어 맨 끝에는 크나큰 칭찬, 즉 세계적인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7-288
선생님이 걸어온 길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지역장을 시키고, 또 여러분들에게 한국을 책임지라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전부다 아프리카, 남미, 구라파등 세계의 오대양 육대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을 봐도 전부 다 일본을 떠나서 세계 복귀를 위해 힘쓰고 있는데, 한국의 통일교회 청년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있긴 뭐 있어! 그럴려면 여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고생해 놓고 칭찬받겠다는 입장에 서면 그 여건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중심삼고 면을 통해서 군을, 군을 통해서 도를 움직이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또 도를 통해서 이 나라를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걸어 왔습니다.

선생님은 조그만 토담집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오늘은 무슨 반찬을 먹었으니 내일은 또 어떤 것을 먹어야 할까 하는 그런 걱정 속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비록 옷은 남루하고 밥은 굶는 처지에 있었지만 생각만큼은 이 세계를 정복하고 하늘나라를 꼭 이루겠다고 했고, 그럴 수 있다고 큰소리를 꽝꽝 쳤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지방에 가서 단간방 또는 동네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 방, 즉 나이가 많아 죽게 된 사람이 들어가 살다가 숨진 그런 땅에서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터를 남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운다면 하늘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부락 하나만을 중심삼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칭찬받은 것을 전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점심 한 끼니를 대접하면 그 길손이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기분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아이쿠 나 억울해서 못살겠네’ 하면서 자기 가슴에 맺힌 감정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극복하고 뜻을 위해 죽겠다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무슨 일에든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지만 뜻 앞에 조건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조건에 걸리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눈앞에 있는 것은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건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누군 뭐 어떻고, 누군 뭐 어떻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욕심이 많습니다. 아무리 없을망정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없고, 무엇이 없고 하는 것도 다 시련 무대에서 하나님이 나를 교훈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요, 나를 교육시키기 위한 교재로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참회하여 그 환경에서 여러분들은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17-290
모심과 축복
여러분 시의가 무엇입니까? 모시는 거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얼마만큼 모셔 봤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디에서든지 배고플 때나 혹은 몹시 어려울 때에 도움을 받게 되면 큰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학창시절, 어려웠을 때 도와 준 사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7년 동안 선생님이 조건만 세우면 그때는 전부다 갚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복귀의 길을 걸어오면서 서러움을 당하는 환경에 있을 때 선생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즉 선생님이 신세진 것을 다 갚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왜 안 갚았느냐? 그것은 지금 갚으면 작은 갚음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한 가지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올 때에 선생님에게 도움을 준 평안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뼈에 사무치게 고마와하고 있고,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7년노정이 끝나고 신세를 갚을 수 있는 때가 오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집은 못 지어 주더라도 그에게 집을 지어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앞으로 융숭히 대접하여 본때를 보여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다 마음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느 한때 식구들에게 와 가지고, ‘당신네 선생이 어려울 때에 내가 협조를 했으니 여러분들이 나를 도와 주시오’ 하는 것을 선생님이 보았을 때 무척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박복한 사람이로구만, 조금만 더 참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신 자로서 여러분이 기쁠 때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해 드렸습니까? 여러분들이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고마움 이상으로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것을 먹을 때나 입을 때, 그리고 슬플 때나 어려울 때에도 항상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사연들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서 출세하려면 지방 교회 교회장의 마음을 점령하여 그 교회장의 마음에 남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동네면 동네 가운데서 먼저 남아질 수 있는 사람, 교회장의 축복을 옮겨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지역장의 마음에 남아지고, 지구장의 마음에 남아지고, 더 나아가서는 협회장의 마음에 남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의 마음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17-291
7년노정은 모심의 생활에 대한 준비과정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웃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지려면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것 하나라도 있으면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에게 충만해야 됩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물건을 갖고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웃사람이 슬플 때 같이 슬퍼할 수 있고, 기쁠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슬퍼할때 하나님도 슬퍼하시고, 그가 기뻐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지구장을 대하고, 지역장을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시는 데 있어서는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이 되었다 할진대는 누구든지 7년노정을 다 거쳐야 합니다. 즉 7년노정은 모심의 생활에 대한 준비의 과정으로서 타락한 인간들에게 절대적인 과정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7년노정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다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7년노정이 뭐야? 다 그저 그렇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으로 말하면 두사람이 살면 네 사람이 사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즉 부모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만 모셔 가지고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 아들까지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부모만 모셔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아들까지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의 모든 정성을 그 앞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인 면에서는 두 사람이 살지만 내적인 면에서는 자그마치 네 사람, 다섯 사람의 생활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데는 3년을 모셔야 됩니다. 왜 3년이냐? 3수 과정을 한꺼번에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가정을 중심삼고 살게 될 때에는, 선생님이 언제 어느때고 예고없이 여러분이 사는 집을 방문하더라도 선생님이 잘 수 있는 방이 있어야 됩니다. 방이 없으면 자리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정성들인 곳이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를 중심삼고 단간방이라도 언제나 정성들인 한곳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날이 오면 옷을 입어도 준비된 옷을 입고, 신발을 신어도 준비된 신발을 신고 깨끗하게 해 가지고 모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더라도 한 번 더 쓸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천번 만번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해 봤습니까? 그렇게 해 봤어요? 살아 있는 교회가 되려면 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아버님이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심정의 촛불을 켜 놓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17-293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져라
요즈음 지역장들을 보게 되면 껄렁껄렁한 지역장들이 많습니다. 총 팔러 다니다 보니 예배 드리는 날이 됐는데도 예배는 식구들끼리 보고 있고 자기는 그날도 모르는 지역장들이 많습니다. 제사는 누가 관리하느냐? 제사장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제사는 객이 관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방에서도 공적인 회합 자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못 합니다. 알겠어요, 지역장들? 구역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날 예배 때에는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고, 또한 성지에 찾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찾아드는 사람이 없을망정 하나님이 그 부락을 굽어살피고 거기에 동역할 수 있는 심정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혼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그 자리는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니 절대로 외롭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3년 이상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 동네에서 찾는 자가 없다면 그 동네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손톱을 깎는 그 시간에도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그때 그 시간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떻게 효도를 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아버님을 모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님을 어느 강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들이 두메산골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찾아와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되고, 또 식구 중에 누가 아픈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와 제일 가까운 식구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또 선생님을 맞이했으면, 지구장을 맞이했으면, 지역장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리움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리워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누구를 그리워하든 항상 그리움에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밤 12시만 되면 ‘야야! 자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밤과 낮이 없습니다. 심정의 인연을 안고 나올 때는 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반대받고 핍박받는 말을 듣게 되면 그 사람보다 더 분해하고 가슴 아파하고, 칭찬받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을 지역장이나 지구장에게 보고해 가지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부 보고해 가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심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워하는 마음, 즉 본부를 그리워하고, 지구를 그리워하고, 지역을 그리워하고, 교회를 그리워하고, 식구를 그리워하고, 형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은 절대로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반드시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 밑에서 교회를 세워야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전부다 냉랭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움의 기반이 돼 있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사진이라도 보면서 혼잣말로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없이 엮어진 사연은 더 멋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님이 그동안 흘렸던 그 눈물이 하나의 감정으로 녹아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 봤어요?

그 흘리는 눈물 가운데서 하늘과 통할 수 있는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부를 때에 그 음성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식구들이 어려운 모습을 볼 때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동네에 전도대원들이 왔으면 ‘그들이 내 일을 대신하기 위해서 왔으니 그들에게 가 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7-294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거지 사촌이 되라
효자는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여 책임진 입장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여 책임지는 것도 물론이지만, 그 주위에 정성의 손을 뻗쳐야 할 곳이 있으면 그곳에 가 보고 싶어하고, 또 그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그곳 식구들과 같이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선생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 그리운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시의(侍義)의 생활권을 이탈한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같은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의 신부인 신앙의 형제들을 사랑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빨리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심정이 일치되면 완전한 심정의 대상자가 나와 가지고, 신랑 신부의 흠모의 심정을 연하여서 종적으로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면 횡적으로 동지, 혹은 식구, 혹은 동포의 관계를 맺어 번식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음식을 많이 먹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음식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보다 더 충성스런 자리에 있었던 선지선열들이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하나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리운 마음이 있어요? 지구장이 그립고, 지역장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까? 또 선생님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예」 가끔 있겠지. 여러분들이 핍박받고 억울할 때는 ‘선생님! 선생님을 사랑하는 만큼 저를 사랑해 주십시오’ 하지만 자기가 조금만 편안하고 기쁘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맞고 서러운 입장에 들어갈 때는 선생님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환경이 점점 좋아져서 통일교회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때가 바로 통일교회 신자들 앞에는 위기의 비상시대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우선 주머니에 돈이 좀 있으면 기도할 마음도 안 생긴다 이겁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전부 다 거지 사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집을 버리고 산중 수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문을 들어갈 때까지는 거지 모양으로 들어갈 수 있으나 천국 생활을 할 때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가려서 가야 합니다.

그 대신 심정만은 언제나 한결 같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심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런 분야에서는 도의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종적 관계에 있어서 하늘적인 기준을 세우고 종횡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입니다. 우좌 후전 하상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상 후전 우좌 그렇게 되어 있어요? 「상하 전후 좌우로 되어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영양은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17-296
승리하는 생활
선생님은 정성들이는 식구들이나 가정들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고생한 식구를 보면 그 식구가 고생했다는 것을 선생님은 대번에 압니다.

정성들인 곳은 함부로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선배들이 하늘을 향해 정성들인 터전에서 잘못하면 영계에 가서 전부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역적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계에서 7대가 걸리게 됩니다. 선생님이 딱 점만 쳐 놓으면 그들은 저 세상에 가서 걸리는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어요? 악한 세계가 망하게 될 때는 그들이 제일 먼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시의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첫마디 말을 하늘 앞에 바치고, 집을 나설 때도 첫걸음을 오른발로 내디디며 하늘 앞에 바쳐야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의 생활은 시의의 생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칙적인 기준에서 생활적인 태도를 취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자! 이제 그만하고 오늘 기억하자는 것을 잊지 않았겠지요? 「예」

이제 여러분은 스스로 전도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 자세 가지고 되겠습니까? 더구나 여자들도 전도를 나가야 됩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여자라도 석 달 이상 전도를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여자들은 앞으로 시집갈 나이가 되어도 시집 안 보내려고 합니다. 그것은 탕감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또 장가들지 않은 청년들을 뭐라고 하지요? 총각이라고 합니다. 총각이라면 통일교회에 와서 여자들을 데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체험을 해 보아야 됩니다. 즉, 영적인 감을 통하여 상대방이 어떠한 감을 가지고 오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영계를 통하여 예언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실수합니다. 그러므로 그걸 잘 판정해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 가르쳐 준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다 소화시켜 정상적인 생을 추구하기에 맞게끔 위치를 바꿔 가지고 처리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빵꾸(punk)가 나는 것입니다.

17-297
하나님 앞에 충성한 선생님
선생님은 그런 것을 체휼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을때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휴! 저렇게 까마득한 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나’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려면 천만 가지의 사연을 가지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내로 태어났으니 망하더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을 걸어 놓고 일을 하다가 멋지게 망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그래야 사내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백 퍼센트 배척하더라도 그것은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백 퍼센트 배척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천번 만번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수시하면서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허허 웃고 ‘그쯤 해 가지고는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야, 이녀석 봐라, 천만 사람 이상의 기백을 가지고 있구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걸 생각하고 결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사랑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선생님은 천만한 고비에 이르면 틀림없이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등뼈가 튀어나오고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죽게 되더라도 마음에 가진 결심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고문을 많이 당했습니다. 온 사지에 전부다 죽은 피가 돌 만큼, 또 피가 몇 사발 쏟아질 만큼 매도 많이 맞아 봤습니다.

17-298
때를 잃지 말라
왜정시대에는 군화 발에 배를 얻어맞는 고문도 당했습니다. 두 녀석은 좌우에서 손을 잡고, 또 두 녀석은 위에서 밟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뱃가죽이 어떻게 되겠어요? 미어지나요? 터지나요? 그래서 변소에 가서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 보세요. 그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야! 멋지다는 것입니다. (웃음)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웃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안 그렇겠어요? 그러고도 나갈 때는 그들에게 친절하게 하고 나와야 됩니다. 한 대여섯 시간 동안 심하게 고문을 받고는 기절하여 벌렁 나가 쓰러질 때 그때 오히려 그에게 동정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근성이 진짜입니다. 아! 그때 그 아무개는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나는 것입니다. 향락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절대 통하지가 않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아버지와 살던 그때가 그립더라는 것입니다. 매를 맞아 가지고 피를 토하고, 살이 뜨거워지는 그러한 자리에서도 ‘이 피는 역사를 배반했던 선조의 피다. 나는 아직까지 갈 길이 남아 있으니 짊어질 십자가가 있거든 더 지워 달라’고 하는 기도를 한 나예요. 이 얼마나 사나이다운 기도입니까?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노정을 걸어왔습니다.

참고 나가지만 어느 한 날 갚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참으시옵소서. 한민족을 심판하시려면 최후의 심판을 하시기 전에 저에게 통고하고 심판하십시오. 또한 세계를 심판하시려면 최후에 저에게 통고하고 심판하십시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팔자타령이나 하고 신세타령이나 하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멋진 사나이에요? 역사시대에 한번 나타났다가 영계에 가더라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한번밖에 없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포착해야 합니다.

17-299
기 도
아버님, 1967년 2월 15일 저녁을 맞이하였나이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7년 고빗길의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천만 가지의 사정을 품고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옵니다.

여기에 머무는 시간 동안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고, 권고하여 주신 은사를 진정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지난날의 한을 남길 수 있는 모든 여건들을 망각하게 해주시고, 새로운 소망의 심정으로 대치하게 하시옵고, 아버님의 장중에 붙들림을 당하여 거룩한 동산을 향해 아버님의 명령을 따라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님, 저에게 있어서는 이제 48년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날이오니, 이 한 해에 남긴 바의 사명을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게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요구하시는 책임 앞에 미진한 자리를 남겨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기 위하여,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남한 각지에서 몰려온 자녀들의 마음 위에 새로이 맞이하는 이날부터 당신의 뜻하시는 섭리의 뜻 앞에 새로운 마음 충효의 심정을 더할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남기신 복귀의 터전 앞에 몸부림치면서 아버지의 염려를 풀어 보겠다고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죽으나 사나 전체를 개의치 아니하고 주장할 수 있는, 충정의 도리를 갖추겠다고 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진실로 바라옵나이다.

아버지여,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뭇 자녀들이 남한 각지에 널려 있사오니, 이 시간 어떠한 사정이 임하여 있더라도 당신의 일률적인 은사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이 시간 머리 숙여 기도하는 자녀가 있거들랑 당신의 각별한 은사의 자리에 처하게 하시옵소서.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을 그 마음 몸에 더더욱 지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0개국의 120개 성지를 중심삼고 매일 그 어떤 성지의 일각을 책임지고 기도하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곳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자녀들이 있사올진대는, 아버지여, 긍휼의 마음으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땅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있는 스승을 마음으로 동경하는 그 마음이 거리가 멀면 멀수록 가중된 심정이 넘쳐 흐를 줄 알고 있사오니, 외로울 때 더욱 외로운 눈물을, 슬플 때 더욱 가슴 맺히는 슬픔을 가지고 아버지를 부르는 곳곳마다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더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의 인류가 외면해 온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 앞에 탕감함과 동시에 저희들이 그들 앞에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며,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영적으로라도 나눠줄 줄 아는 조국 강토를 지키는 참자녀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 이제 새로운 결의와 더불어 싸움터를 향하여 나가겠습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 못한 저희들에게 다시 만날 때는 부끄러운 자세로 상봉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 자랑스럽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일생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자세를 갖춰 가지고 아버지 심중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은 남들이 바라는 여건을 다 갖출 수 없는 자리에서는 가능하고, 남들이 원하는 여건을 다 지닐 수 있는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세상이 바라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당신이 요구하시는 그 하나의 귀한 것을 갖추기 위하여 충성하고,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희생을 각오하고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돌아가는 당신의 아들딸 앞에 권고한 말씀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더욱 새로운 입장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과 이 시대가 절박하게 추구하는 각자의 태도를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생활터전을 혁신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뜻을 대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심정을 다듬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지금까지 아무 사고없이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오가는 절차 전부가 아버지의 뜻 앞에 보탬이 되고, 특별히 이번 기간이 저희들이 움직이는 행로에 있어서 빛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7년도를 중심삼고 계획하는 저희들의 4대 조건이 자나깨나 일편단심 그 마음에 심어지게 하여 주시옵고, 그 뜻을 따라 간곡한 행보를 갖추어 가는 각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남한 땅에 있는 동포들을 복귀할 뿐만 아니라 북한 땅에 있는 동포들까지도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복지의 터전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새로운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남한 땅을 대하여 때가 이르기 전에 책임을 완수하고, 북한 땅을 향하여 총진군하고 총진격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반도를 새로운 이념권내에 몰아넣기 위한 역사의 운세가 이 통일교회에 감돌고 있사오니 저희가 이것을 다 감당하여 세계 인류를 몰아넣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고 선한 세계를 동원하여 지상에 뜻을 대할 수 있는 후손들을 몰아넣게 하여 주시옵고, 앞으로 서양까지도 아버지 품에 품길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의 세계가 어서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무한히 소망하고 무한히 기도한 모든 요건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실질적인 결과를 갖추게 해주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조건들이 어서 속히 이 천지간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기쁜 모습을 대할 수 있고, 영광된 승리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친히 모시고 살 수 있는 그 나라 그 세계가 어서 속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각자 각자의 계획이 아버지께서 뜻하신 뜻과 일치하고, 천적이고 일률적인 은사와 더불어 일치하여 승리의 결정이 내려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의 은사를 감사드리면서 이 모든 전부를 아버님 앞에 맡겼사오니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간절히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