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 to 17-105: 원수에 대한 우리의 자세

원수에 대한 우리의 자세
1966.12.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17-89
원수에 대한 우리의 자세
오늘은 1966년 12월 4일, 이 해의 마지막 달에 첫번째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뜻을 놓고 볼 때,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생명을 걸고 맹세를 했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뜻을 위해 가겠다고 달음질쳐 나왔습니다. 그런 날들이 어언간 6년이나 흘러갔습니다.

17-89
선을 세우는 원칙
그간 여러분들에게는 누구에게 터놓고 말할 수도 없는 사연이 있었고, 누구하고도 통할 수 없는 비장한 사정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남겨진 복귀의 뜻을 이루기 위해 협조하고 이 민족을 위한 섭리를 이루어 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맹세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이 길을 우리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민족 앞에 할 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30억 인류를 대하더라도 할 말이 많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까지 가더라도 우리는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 뜻길을 개척해 나오는 동안 우리를 원수로 대적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런 기반을 닦고 한국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개척하는 현단계에서까지 그런 사람들을 원수로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분하다고 해서 그 분함을 풀고야 말겠다는 입장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한 해가 지나가는 그 해의 마지막 날에는 지나간 일년을 회고해 보기 마련입니다. 그런 때는 대개 사람들은 우선 기뻤던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느 달, 어느때에 잊을 수 없는 기쁨이 있었고, 그 기쁨은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는가를 생각하며, 그 일에 연유된 사람을 그 기쁨에 동참시키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같이 느끼는 마음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기쁜 일 그 자체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일에 동참했던 사람을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누구나 다같이 슬픈 일이 있을 때면 그 슬픔이 크면 클수록 그 슬픔을 제거하고 싶은 것입니다.

좋은 것은 자랑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제거하려 하는 것이 선을 세워 나가는 역사과정에 필연적인 원칙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참다운 선을 세워 나가는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현 사회제도를 통해서도 어느 역사적인 사회환경을 넘어서라도 이 원칙은 공통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개인적인 생활이나 가정적인 생활, 단체적인 생활이나 이념을 중심삼고 민족을 대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세계무대를 향하여 나가려 할 때 거기에는 수많은 원수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는 인생에 있어서 제일 비참하고 누구나 가장 싫어하는 최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비난받고 비소받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일시에 폭발하려고 할 때에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자극이 되기도 했었고 슬픔의 표상이 되어 오기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원수를 천지간에서 완전히 제거시켜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원리입니다. 부모의 원수가 있으면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하고, 종족의 원수가 있으면 종족의 원수를 갚아야 하고, 민족의 원수가 있으면 민족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또 세계를 좀먹는 원수가 있다면 그 원수도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 타오르는 공분의 심정 앞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이나 사회인, 지위의 상하고저를 막론하고 위치나 행동에 상관없이 이 천리는 역사를 지배해 나왔고 판단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슬프고 외롭고 억울해도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이 법도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보류된 법이라는 것을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욕하고 싫고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자기 마음 전부를 풀어놓고 대항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는 것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의 공통된 처지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사회에서 자기가 처할 수 있는 위치가 떨어지고, 혹은 박탈당하고 추방당하더라도 거기에서 칼을 뽑아 원수를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몰릴 때에도 묵묵히 몰려야 하고 또 민족이 배반하는 자리에서도 묵묵히 가야 했습니다. 역사시대의 흐름에 밀려나는 환경에 부딪히면 말없이 밀려나야 했습니다. 이런 숱한 슬픔의 역사노정을 더듬어 나온 것이 종교인들의 길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7-91
묵묵히 가야 할 도의 길
여러분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할 줄 압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하시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간곡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용을 몰라 이렇게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민족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요, 민족의 배역자(背逆者)들 편이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륜의 법도를 밝히지 못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로마 병정들이 창 끝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그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때가 오기까지 그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알면서도 참고 당해야만 했던 예수님의 서러움을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1960년을 중심삼고 7년노정을 선포했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는 시련 기간이었습니다. 그때 사방에서 몰려오는 사회의 비난과 더불어 휘몰아치는 폭풍의 시련에 휘말려서 한낱 소망의 일념도 찾을 수 없는 환경에 부딪혔을 때도 선생님은 민중을 대항해 싸우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의 웃는 모습을 가져라. 어떠한 박대를 받아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을 가져라. 슬퍼도 슬프지 않은 모습을 가져라. 억울해도 그 억울함을 잊을 수 있는 모습을 가져라. 분통하고 분통하거든 태어난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각오를 하고 참으라’고 하나님은 권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회고해 볼 때 하나님은 오늘날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7-92
원수를 굴복시키려면
선생님이 만약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원수를 갚는다면 일격에 쳐버릴 사람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원수 갚을 날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의 날을 바라보고 오래 참고 나가시기 때문에 우리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이렇게 어려웠던 사실을 볼 때 형제지간이나 친척이나 우리와 상대되는 사회단체, 국가, 대 세계를 앞에 놓고 우리의 분에 사무쳤던 감정을 일시에 전부다 풀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심정을 회고해 보면,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가인 아벨을 두고 볼때 가인은 아벨 앞에 원수였습니다. 노아 가정을 두고 보면 노아 가정 외에는 전부가 노아 가정 앞에 원수였습니다. 아브라함 시대 역시 아브라함 한 사람 외에는 전부가 원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애급 노정을 거쳐오는 데에도 4백 여 년간 원수의 나라에서 신음하며 고역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지금까지 2천년 섭리의 뜻을 세워 나왔다고 하지만 그것도 역시 원수의 세계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원수의 세계에 들어가 원수를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남아 있기에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 원수는 개인적인 원수가 아닙니다. 일개 유대 국가의 국가적인 원수도 아닙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의 어떤 한쪽의 원수도 아닙니다. 이 원수는 세계를 망치고 천지를 망치는 대원수입니다. 이 원수를 세계적인 무대에 올려놓고 갚을 그날을 바라보고 나오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이 이루어질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뜻, 만민이 추구하는 뜻, 천지가 공히 바라는 그 뜻을 속히 이루어야 한다고 여러분이 마음으로 다짐하지만 그 뜻을 이루는 데는 여러분 개체만을 중심삼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통일교회 한 단체만을 중심삼고도 불가능한 것이요. 한국 민족만을 중심삼고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아시아 열국을 규합해 가지고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온 세계를 규합하고 하늘에 있는 영계를 일치시킬 수 있는 엄청난 문제를 해결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적인 원수, 세계적인 원수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데 총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굴복 시켜야 합니다. 이 엄청난 책임을 바라보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인을 내몰아 오신 것입니다.

17-93
백 퍼센트 희생하라
개인을 제물로 희생시킨 것은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그것은 개인의 원수를 갚기 위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희생시켜서 민족의 갈 길을 열어 놓기 위한 것입니다. 즉 개인의 희생을 통하여 그 민족의 갈길을 열어 놓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희생시키는 것은 그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의 갈 길을 열어 놓자는 것이고,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은 세계의 갈길을 열어 놓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귀섭리를 이렇게 해나오시기 때문에 하늘의 주관권내에 있어서 승리권을 갖고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은 비참해야만 된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세워서 그 개인이 승리적인 기준에 섰다고 해서 승리적인 기준에 서지 못한 전체를 그로 말미암아 심판해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한 사람을 희생시켜 백배 천배의 소득을 거두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이 희생하라. 고이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미련없이 백 퍼센트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밀알처럼 백 퍼센트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개개인을 찾아오실 때 개인을 찾아 승리자의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면 그 개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을 따라온 원수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없앨 줄 알아요? 사탄을 남겨 놓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원수보다도 더 큰 원수인 가정적인 원수가 남아 있고, 가정적인 원수보다 더 큰 원수인 민족적인 원수가 남아 있고, 민족적인 원수보다 더 큰 국가적인 원수가 남아 있고, 국가적인 원수보다 더 큰 세계적인 원수가 남아 있고, 그리고 또 세계적인 원수보다도 더 큰 하늘땅을 망쳐 놓은 대원수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원수를 개인이 제아무리 잘 갚았다 하더라도 민족적인 원수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원수를 제아무리 잘 갚았다 하더라도 국가를 배신하여 나타난 원수는 막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민족이 승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기의 권한과 개선가를 온세계 앞에 우렁차게 불렀다 하더라도 민족적인 승리만으로는 영원한 승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승리를 넘으면 국가적인 원수가 남아 있고, 국가적인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국가적인 승리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원수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하늘땅을 한에 사무치게 했던 원수, 온 우주의 권세를 갖고 있는 악한 괴수인 원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아무리 그 이하의 원수를 갚았다 하더라도, 그 원수를 갚지 않고선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원수를 갚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정적인 원수를 갚아야 할 시대에 있어서 승리하지 못하면 첫 칼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적인 원수를 갚았다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가 민족적인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터에서 패자가 되는 날에는 먼저 맞게 되는 것입니다. 맞는 날에는 하나마나 한 것입니다. 거기에 관계된 모든 존재는 피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민족의 원수를 갚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국가적인 원수와 싸워서 승리의 권한을 못 세우고, 선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에는 만민으로부터 반대받고 맞게 되는 것입니다.

17-95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성했나
이러한 천륜의 법도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아라! 참아라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희생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참고, 손발에 피가 흐르고 쓰러져 가는 최후의 운명의 순간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슬픔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어려움이요,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의 죽음을 환영하실 리 만무하거늘, 하나님은 어찌하여 참으라고만 하셨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뜻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때에 세계적인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독교를 앞에 세워 기적적인 발전을 하며 밤낮없이 달려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 나오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수많은 애혼(哀魂)들이 미래의 승리의 나라, 승리의 세계를 불러왔습니다. 하늘땅이 고이 깃들 수 있고 안식할 수 있는 평화의 왕국을 위해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느 한 날 그런 날을 맞은 조국에서 살아 봤습니까? 기독교는 언제 그런 세계를 가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습니까? 또 어느한 날 그런 세계를 보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최후의 큰 싸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는 전부다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최후의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해 역사의 곡절의 인연은 지금까지 동서남북, 사방 팔방으로 몰리고 부딪치면서 얼마나 부대끼며 돌아왔던가!

이러한 관점에서 고요히 자기 자신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내가 하나님 앞에 불림받아 6천년 동안 죽지 않고 개인적인 투쟁시기로부터 가정 민족 국가 세계적인 투쟁시대까지 살아 가지고 섭리의 뜻을 대했다고 한다면, 내 한 개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성한 존재가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오늘은 믿다가 내일은 배신하기 쉬운 무리들을 이리 끌고 저리 몰며, 기독교를 중심삼은 새로운 세계 형태를 갖추도록 하시기 위해 여러분이 상상할 수도 없는 피의 희생을 치뤄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발달된 문명으로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에 사는 것이 자신의 공로로, 혹은 자기 몇 대 선조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배후에 수많은 고빗길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보기에는 각각 다르고 사분오열된 입장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시는 하늘이 있었기에 어떤 개인이나 어떤 민족이든 그런 자리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언제까지나 그런 자리에 설 수 없고, 그 민족이 언제까지나 그런 자리의 영광을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러한 자리에 처하게 된 역사적인 사실을 망각하게 될 때는 최후의 심판의 날이 그들을 부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7-96
참음의 고빗길을 넘어야 할 통일교인들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출발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될 것이라는 걸 각오했습니다. 개인적인 생활에서의 원수는 견디기 쉽습니다. 개인적인 자리에서 나타난 원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온 인류의 운명과 천주의 운명을 짊어지고 세계의 최첨단에 서서 그 자리에 나타나는 원수를 갚는 책임은 누가 할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야 할 분은 오직 이 천지를 지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뿐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사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면 메시아는 어떠해야 되느냐? 한 많은 역사의 고빗길에서 참을 줄 알아야 됩니다. 또 한 많은 역사의 신음에 스스로 동참할 줄 알아야 되고, 한 많은 비운의 자리에도 스스로 나갈 수 있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인격 자리를 거쳐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할진대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절대 영광 가운데 오시지 못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오신다면 가짜 메시아입니다. 오시는 메시아는 역사적인 비운에 부딪쳐도 역사적인 흐름에서 사라지지 않고 역사를 밟고 올라서서 당당히 세계적인 원수와 대결하여 승리할 수 있는 책임자가 아니면 안 됩니다.

오늘 선생님이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일본에 우리 식구들이 많은데 식구들 중에 한국 교포들과 일본 사람 사이에 역사상의 감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아직까지 노랑이면 노랑물이, 파랑이면 파랑 물이 빠지지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파랑물 노랑물은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 이 노랑은 내 것이고 저 파랑은 당신 것이라는 사상을 어떻게 없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이 갚아야 할 원수는 일본이나 한국 등 일개 국가를 상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원수를 치기 위해서는 세계 전체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따르는 모든 신자들에 대해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 :5)”고 하셨습니다. 즉, 한 지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지체가 어떤 개인이 즐거워할 수 있는 환경에 사로잡힌 지체가 아니라, 세계와 하나님이 즐거워할 수 있는 지체로서 설 수 있기를 하나님은 소망해 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교회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예요. 아무리 일본이 스스로 세계적인 원수를 친다 해도 세계적인 원수는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7-97
원수의 마음을 풀어야 한다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후의 한 날을 위해 참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신의 생명과 바꾸는 고빗길이 있다 할지라도 참고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는 그 자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소망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전체의 책임을 망각해 버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뜻을 고이 지니고 묵묵히 생각하며 그 뜻을 세우는 자리로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한 날을 위해서 불리운 몸들입니다. 1966년 12월, 이제는 때가 왔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끼리 맺힌 사연이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매를 맞아도 같이 맞아야 되는 같은 종자로서 우리는 시련도 같이 당하고 고역도 같이 당해야 할 무리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가 화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을 중심하고 형성되어 온 이 땅의 개인이면 개인, 식구면 식구의 맺힌 것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맺혀 있는 것을 터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터뜨리느냐? 이것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나 하나를 기준하여 나 하나의 승리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가족과 친지를 규합해야 합니다. 민족적인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종족을 규합해야 하며, 국가적인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민족을 규합해야 합니다. 또 세계적인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국가를 규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도 세계적인 종교가 빨리 나타나야 합니다.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자신만을 중요시하는 종교는 발전이 없습니다. 유난히 핍박을 많이 받으면서도 그 개인과 전체가 서로 협조해서 싸워 나가는 종교가 발전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의 일대를 돌아다니며 전도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그를 불러 세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문제를 중심삼고 원수를 갚아서는 안 됩니다. 풀어야 합니다. 우리끼리 문제가 있다면 우리끼리 풀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원수시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데 그들은 원수로 대하고 있습니다. 벽돌담이건 콘크리트담이건 전부다 헐어 버려야 합니다. 오늘의 통일교회 교인들 몽땅 데려가려면 데려가고 그 대신 마음의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원수처럼 대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승리하든 시일이 가면 원수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원수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을 풀어야 합니다. 원수를 품고 가는 사람은 광명한 낮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주인이 되나 보십시오. 끝날에는 보따리를 바꿔 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있을 최후의 한 날, 즉 세계적인 원수, 천주사적인 원수를 갚아야 할 그날을 위해서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패의 소굴, 배신자의 소굴을 향하여 우리는 각 분야에서 준비하고 가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참고 가야만 합니다. 이런 길이 정상적으로 하늘이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희생되어 더 큰것을 위해서 희생하고, 더 큰 것을 위해 봉사하고, 더 큰 것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선생님에 대해 ‘아! 그 통일교회에 가면 고생만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고생하는 사람은 천치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망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충성한다면 망해야 됩니다. 교회만을 위해 충성한다면 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를 위한 역사입니까?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역사입니다. 통일교회도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교회를 위하는 것보다도 하늘땅을 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는 하늘땅이 세워지는 때, 심판받을 때가 오면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원수들을 용서하신 것도 그 원수가 고와서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원수가 앞으로 올 것을 아시고 이것을 초점으로 해결짓기 위한 그날, 하늘이 바라시는 그날을 위해 묵묵히 마음을 다짐하고 원수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17-99
기쁜 날을 맞이하지 못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직까지 기쁜 날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지만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기쁜 날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왜 그랬느냐? 역사과정에서 개인이 민족을 이끌어 민족적으로 승리를 가져 왔을 때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역사를 일관하여 천지를 움직이고 하늘땅을 중심으로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런 기쁨이 못됐기 때문에 그 기쁨은 한때의 기쁨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쁨은 흘러가는 기쁨, 내일에는 슬플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세우셨으나 그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아를 세우시고 기뻐하셨지만 그도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기뻐하셨지만 그도 실패하였고, 다시 모세를 세우셨으나 그도 역시 실패하였기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마저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무결하게 기쁜 날을 맞이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물론 개인 개인을 구원해서 기쁨을 가지시기도 하셨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기쁨은 맞이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개인을 중심삼고 온 정력을 기울이면 하나님은 그 개인에게 축복하시며, 가정을 중심삼고 정력을 기울이면 그 가정에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통일교회를 위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위하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 나를 위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위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다리를 놓아 올라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그 최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원수를 갚아 승리하지 못하면 메시아는 탄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본래 원수세계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는가? 원수를 전부다 소탕하고 평화의 왕국을 만들어 놓아야 메시아가 태어나는 것이 천리 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때까지 하나님은 싸우셔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싸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갈 길을 대신해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개인이 모여서 단체를 이루면, 가정을 넘은 종족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통일 종족입니다. 개인의 입장보다 가정의 입장보다 더 높은 종족적인 인연을 갖추고 나온 것이 통일교단인 것입니다. 이것을 꺾으려 할 때는 개인적인 심판 조건에 걸리는 것이요, 가정적인 심판 조건에 걸리는 것이요, 종족적인 심판 조건에도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 혹은 종교인들에게 끝날까지 참고 견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대심판날이 닥쳤을 때 어떤 조건에도 걸리지 않는 승리의 권한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승리의 권한을 가져야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자유 평등한 자리에서 우리 인간과 화답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대심판날을 세워 나오신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17-101
자기를 중심삼은 무리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자기를 중심삼은 무리가 있다면 뜻 앞에 큰 원수입니다. 이들은 개 돼지보다 못한 사탄 새끼들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모여서 무슨 기도를 하고, 뭐 몰려다니고, 당치 않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부다 어떻게 되나 보자는 것입니다. 그건 시대적인 운세가 다…….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확실히. 신앙의 본질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여 놓고 타인을 대하는 것은 천륜의 법도가 아니예요. 통일교인들은 생명을 걸고 이런 것을 배격해야 합니다. 그런 무리들은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무대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데 지대한 내면적인 원수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나라 앞에 자기 하나를 주장해 나오고 있습니다. 본연의 나라 앞에 저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본연의 나라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들을 원수로 여기는 자가 사탄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는 아예 접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갈길이 더 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침에 교당을 나설 때 민족을 바라보며 염려하고, 민족의 문제를 넘어서서 세계의 문제를 바라보며 염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빨리 최후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의 세계가 되는 거예요.

하나의 세계로 규합하기 위해서는 주의나 사상의 투쟁을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투쟁의 과정을 거치는데는 수많은 개인과 종족 민족 국가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하나로 규합하여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승리의 권한을 갖지 못한 종교는 역사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에 그 종교가 가장 철두철미하다고 여기는 교리가 자극받는 그러한 종교로는 최후 심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대원수를 갚을 수 있는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는 교차되어야 하고 사정은 부대끼게 되는 것이요 수많은 사상과 교리는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거치고 몰리고 몰려도 몰린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몰린 사람을 동정하고 몰리는 환경을 원수로 갚겠다고 하며, 그들의 살 길을 마련해 주겠다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마지막까지 남아지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17-102
책임자가 되려면 희생해야
통일교인들은 서로 만나면 6천년 만에 만난 사이이니, 시시한 이야기나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나면 우리 교회를 위한 이야기, 민족을 위한 이야기, 세계 인류를 위한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만나기만 하면 ‘잘먹고 잘살고 뭐 어떻다느니, 뭐가 섭섭하다느니, 뭐가 좋다느니’ 하며 말이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좋고 나쁜 것은 자기 일개인을 중심삼고 가릴 것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더 큰 가정을 중심삼고 좋고 나쁜 것을 가리고, 그보다 더 큰 종족 민족 국가 세계 하늘땅을 중심삼고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아벨은 무엇을 바랐겠습니까? 하나님의 소망을 바랐던 것입니다. 노아는 무엇을 바랐겠습니까? 자기 가정을 바랐겠어요? 자기 친척을 바랐겠어요? 자기 민족을 바랐겠어요? 민족을 넘어 더 높은 한 시대에 나타날 세계적인 인물을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고 축복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당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벌써 마음으로는 세계를 점령한 것 같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상을 중심삼고 과감하게 그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기로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기에 그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지도할 수 있는 민족적인 책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 앞에 나타나는 시련을 극복할 수 있고, 원수를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교인인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할 때,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뜻, 우리 교회, 우리 민족, 이 세계를 위한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이 민족을 구하고 이 세계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시련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개인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물론 여러분의 후손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운명의 길에 들어서서 가는 것이 오늘날 종교의 길이요, 종교 가운데서도 핍박받고 나오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사소한 문제라도 다 풀고 넘어가야 합니다. 금년에는 다 풀고 넘어가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풀 게 있으면 다 풀어야 해요. 그가 통일교회를 믿던 믿지 않던 그와 풀어야 할 것이 있으면 다 풀어야 합니다. 종교면 종교끼리도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편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무대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원칙에 입각하여 작전을 변경시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7-103
통일교인이 가야 할 길
제아무리 큰 무대라도 그 무대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자리 잡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무대에서 더 큰 무대를 뛰어넘어 가겠다는 사상만 갖고 나가면 아무리 큰 심판날이 오더라도 그를 심판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맞이하는 그날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뜻 앞에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다 풀어 버려야 합니다. 또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도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서로 만나서 자기 얘기나 하고……. 자기 중심삼고 있는 것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 스스로 나를 통일교회 선생으로 모셔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영계를 통해서 다 가르쳐 주었으니 모셨지요.

자기가 자기를 세울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주인이 세워 주어야지, 자기를 세워 달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으로부터 세움받기 위해서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증거, 가정적인 증거, 종족적인 증거를 받아서 나가야 됩니다.

이 증거를 받으려면 원수로부터 도망해서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우는 게 아닙니다. 원수가 공인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자연굴복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서야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7년간을 우리는 이 민족을 걸어 놓고 싸워 나왔지만, 1966년을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아직도 우리들이 표준했던 그 기준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민족을 바라보며 싸우는 것은 세계적인 사탄을 한걸음이라도 따라가 대결하여 판결짓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 먹고, 그날을 위해 움직이고, 그날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 그날이 오기까지는 지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출발 당시부터, 감옥엘 가든 어디에 몰리든 살아 숨만 쉰다면 그것을 위하여 숨을 쉬고,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위해 죽는다는 생각으로 이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천상이나 지상, 어느때 어떤 곳에서라도 그것을 위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가야합니다.

그래야만 갚고 싶었던 원수를 한꺼번에 다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륜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시키기 위해 이 원리가 나온 것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런저런 세계사적인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좋은 곳이 아니고 제일 슬픈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좋은 곳은 하늘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슬픈 곳을 통하여 넘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곳은 모두 사탄이 지배합니다. 반면에 슬픈 곳은 사탄이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제일 슬픈 자리를 되찾아 나왔습니다.

요즘 통일교인들을 전부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하여 고생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자리에까지 나가야 하느냐 하면, 저 아프리카까지도 자진해서 나가야 합니다. 세계의 터전이요, 그리하여 세계의 뿌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7년노정의 마지막 길을 넘어가는 이때에 다시 한번 새로이 결의하고 재정비하여 나아가길 부탁합니다. 아시겠지요? 「예」

17-105
기 도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기필코 공중 권세를 잡아 온 천지를 삼켜버린 대원수를 이 온 천지간에서 추방해야 할 그날을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가시는 길이 어찌 내 개인이 가는 걸음걸이와 같을수 있겠사옵니까? 또한 아버지의 내정(內情)이 어찌 내 개인적인 내정과 통할 수 있다고 느끼겠사옵니까?

한많은 곡절과 슬픔 가운데서도 참아 나오신 우리 아버님! 그 아버님을 바라볼 수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달음질쳤던 어리석은 과거의 날들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달 첫 주일을 맞이하여 통일교회 신도들이 다시 한번 결속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세계를 심판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야 할 크나 큰 사명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가야 할 방향과 개인적으로 취해야 할 생활태도를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그러한 날을 얼마나 고대해 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통일의 무리를 여기까지 몰아내기 위하여 당신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제 앞으로 가야 할 저희들의 행로에는 갖은 시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이 이렇듯 곡절 가운데서 참으신 심정을 저희들이 더듬을 적마다, 아버지를 부여안고 몸부림쳐도 걷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 흘리며 아버지를 부르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시여 !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들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오늘도 남한 각지에 널리어 한 날의 승리를 기약하고 나가는 그들 위에 힘이 되시옵고 방패가 되시옵소서. 세계에 널리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무리가 있사올진대, 그 무리가 하늘이 소원하시는 곳을 위하여 가는 무리가 되어 당신 앞에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여 분향할 수 있는 제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의 사연을 통할 수 있는 뭇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세우신 무리를 따라 원수를 굴복시켜, 승리의 왕자 왕녀로서 축복을 받아 자랑할 수 있는 자녀를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 잊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통일의 제단이 비록 지극히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는 곳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삼고는 피해 갈 수 없고 갈릴 수 없는 인연이 이곳에 깃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벌거숭이일망정 이 땅 위의 배척하는 무리에 의해 쓰러지더라도 당신의 이념과 심정과 사랑만을 부여안고 뒤넘이치는 곳이 되면 이곳은 기필코 당신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인 줄 알고 있사오니, 이 인연을 따라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한 사람도 낙오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지에 널리어서 저희들이 표방하고 나선 시기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혹자는 뜻을 위해 혹자는 원수의 첨단에 서서 새로운 방향으로 싸우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전개하는 싸움터가 아버지 앞에 영웅의 법칙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이 세워 놓으신 뜻 앞에 당신이 가려서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6년 이 해의 마지막 날까지 저희들이 계획했던 전부가 아버지 뜻과 더불어 일치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소망의 한 날 앞에 제물적인 조건을 바쳐 아버지를 위안해 드릴 수 있는 계획과 저희들의 움직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지구상에서 원수를 처단한다는 크나큰 뜻을 중심삼고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곳으로 달음질치는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곳을 위해 기도하고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민족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인연을 그들의 생활 가운데에 나타내 주시옵고,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는 그들에게 심정적인 뒷받침이 되시어서 하늘이 그 인연을 통하여 찾아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의 모든 것을 친히 맡아 주관하시옵고 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제가 원하는 기준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여기에 모인 자녀들 그 기준에 갈 때까지 낙오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험산준령을 달리는 고빗길에 있더라도 줄을 내리시어 그 길을 무난히 돌파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스스로 믿고 갈 수 없는 길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하늘과 더불어 의논하고 앞뒤를 살피면서 가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숨은 가운데 당신과 의논하고 당신께서 분부하신 깊은 자리를 가진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사오니 그런 자리에 찾아오셔서 인연맺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 일본 미국 독일 이 4개국을 위주한 40개국과 120개 성지를 책정한 인연이 그 나라의 선교국의 인연과 통하여, 땅 위의 인연을 통일시키고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갖추어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곳으로 몰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에 원하는 전부를 아버지께서 친히 맡으시옵고 이 해를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분별된 이 해와 이 기간을 바쳐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