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2 to 17-204: 완전복귀

완전복귀
1966.12.18 (일), 한국 전본부교회

17-162
완전복귀
완전복귀는 이 땅 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희망하는 것입니다. 또 이 땅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바라 나오신 소망입니다.

17-162
하나님의 구원섭리
오늘날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각자가 스스로를 완전복귀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타락하여 사탄편으로 떨어져 사탄의 종도 못 되었던 인간을 긍휼히 보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기대를 세우게 해서 하늘편의 종의 종 입장으로 세운 후에, 거기에서 충성하는 자를 종의 입장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종의 입장에서 다시 양자의 입장을 거쳐 직계 아들에 접붙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접붙인다는 것은 곧 바꿔친다는 것을 말하는데, 양자가 직계 자녀의 입장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차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장자의 입장에서 사탄의 권한을 심판하고 나서야 비로소 장자의 입장으로 바꿔쳐지게 됩니다. 이렇게 접붙이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처음 출발의 형태를 보면, 사탄세계가 먼저 출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먼저 난 장자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이 세계 인류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이 아담의 자손 전부는 예수님의 형님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어떤 형님이냐 하면 양자 입장의 형님입니다. 이것을 볼 때 역사 이래 이 천지간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직계 아들의 책임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입니다.

그렇지만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을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둘째 아담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는 그것을 모릅니다. 원래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담은 우리 인류의 타락한 조상이 아닙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목적을 완성했다면, 그때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모든 권한과 하늘 전체이념을 중심삼고 하늘 가계(家系)의 가법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이 천지가 천리에 맞게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깨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통하여 뜻을 이루시고자 했던 그 소망의 날을 잃어버렸고, 소망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사탄으로 말미암은 악한 세계, 즉 하나님이 세우려고 하셨던 세계의 반대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를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이 세우시려던 세계로 복귀해 나오시는데, 이것이 구원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일시에 전부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악의 패거리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형태를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냥 빼앗아 올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엉클어진 곡절이 많고, 그 곡절마다 맺힌 사연이 많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로 풀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엉클어진 명주실 같은 것을 풀 때 끄트머리에서 마구 잡아당기면 어떻게 됩니까?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더 엉클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엉클어진 역사를 가진 이 세계와 천주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맺힌 곡절을 반대로 풀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풀어 가려니 세상이 가는 길과 그 보조를 못 맞추게 됩니다. 세상은 전부가 자기 만족과 행락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세상이 가는 반대의 행로를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이 바로 구원섭리입니다.

구원섭리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민족은 그 민족마다 문화적인 배경, 역사적인 배경, 전통적인 배경, 환경적인 배경이 각기 다르니 만큼 하늘은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내용으로 오랜 역사노정을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17-164
엉클어진 역사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수많은 민족을 대신한 애국자, 사상적인 지도자, 종교적인 지도자를 택해 세우시고, 이들을 내몰아서 엉클어진 역사를 풀어 나오셨습니다. 이것을 풀어 나가는 데는 개인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의 순으로 풀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정상적인 코스로 섭리해 나오면서 역사적인 종말시대를 맞이하여, 아담 이후 4천년의 역사가 지난 후에 비로소 그 총괄적인 책임자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땅 위에 엉클어진 것을 풀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 12)”고 하시고, 자기의 소신과 내면적인 모든 사연을 이 땅 위의 그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하고 그냥 가슴에 묻어둔 채 가셔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맺혀진 세계를 풀지 않고는 구원섭리의 목적, 즉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메시아는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왜 다시 와야 하는가를 알겠지요?

오늘날 20세기 문명을 자랑하는 현재의 세계를 바라볼 때에, 얼마나 엉클어져 있습니까? 미. 소가 다투면서 국제적인 문제를 풀려고 자기들 나름대로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고 주장해 나오지만 그것 가지고는 풀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나타난 결과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이 땅위의 인간들을 통하여서 되어진 것 같지만, 그 내용에 들어가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과 사탄이 그 배후에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영계와 육계가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배후에서 맺혀진 것이 복잡한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를 풀려면 그것을 전부 들추어 가지고 그 원인까지 해결지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하는 것이 현하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파, 혹은 교파들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자기들의 사명 분야로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곳이냐? 바로 이것을 풀자는 곳입니다. 이것을 풀지 않고서는 복귀를 못 합니다. 이것을 푸는 데는 어떻게 풀것이냐? 완전복귀를 하려면 완전히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17-165
맺힌 것을 풀기 위해 오신 예수님
우리들의 대외적인 관계에 있어서 개인끼리 맺힌 감정이 있으면, 개인끼리 만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했으면 그 사람을 붙들고 주먹질을 하든 어떻게 하든 둘이 만나서 이마를 맞대고 풀어야 합니다. 서로 만나가지고 풀어야 합니다. 또 가정에 맺힌 것이 있으면 가정 전체가 회합해서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안 그래요? 가정에 맺힌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 혼자서는 풀 수 없습니다. ‘나는 뭐 집안의 장자니 내 말대로만 해야 돼’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아들이 있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맺힌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가정이 합해서 풀어야 합니다. 또 민족에게 맺힌 것이 있으면 민족이 합해서 풀어야 하고, 국가에 맺힌 것이 있으면 국가가 합해서 풀어야 하며, 세계에 맺힌 것이 있으면 세계가 합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알겠지요? 「예」 이렇게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능치 못하실 일이 없고 마음대로 하실 수 있을 것이니, 세계적으로 맺힌 것을 예수님 혼자 오셔서 풀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천만에, 그것은 이치에 벗어나는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시는 분이 세계에 맺힌 곡절을 풀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을 풀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만들어 놓은 터전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풀지 못했으니 그 원인적인 책임은 사상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지도해 온 유대교단에 있고, 그 결과적인 책임은 유대 나라에 있습니다.

악한 세계에 있어서 수많은 인류가 악한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국가적인 기대를 갖추고 있으니, 이 국가적인 기대를 풀기 위해서는 여기에 대할 수 있는 한 민족을 중심삼고 내적으로는 사상적인 터전을 갖추고 외적으로는 국가적 형태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로 탄생은 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 맺힌 모든 것을 푸는 데 있어서 개인적으로 만나서 풀 수 있는 자격은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가정적으로 만나서 풀 수 있는 터전이 없었고, 교단적으로 만나서 풀 수 있는 터전이 없었고, 민족과 국가를 대하여 풀 수 있는 터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터전을 갖지 못한 예수님의 입장에서 세계의 맺힌 것을 풀고자 하는 소망과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세계에 맺혀 있는 모든 인연을 풀어서 평탄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요, 또한 인류의 행로를 개척하여 만민을 완전복귀시키고 완전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협조하지 않아 이루지 못했는데, 그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협조했어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수님에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첫째는 유대교에 있었고, 둘째는 이스라엘 나라에 있었으며, 세째는 로마 제국에 있었던 것입니다.

17-166
불신당하신 예수님의 심정과 그 한
요즘 믿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하나님,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희 가정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민족과 세계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그러한 기도는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왔다 갔던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습니까?

수천년 동안 계속 그렇게 기도를 했을 텐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루어 주시지 못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세계를 용서하시려면 하나님이 세계를 대하실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가정을 용서하시려면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 앞에 초청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하려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느냐?

예수님은 사탄의 3대 시험에서 승리했지만 사탄의 침범권내에서 침범을 받고 영적으로만 부활되어 그 권한으로 아버지 앞에 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 한계는 사탄세계의 범위, 즉 사망권으로부터 영적으로만 부활할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들을 완전복귀시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명도 그 분야밖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밖의 것은 예수님이 다시 와서 이루어야 합니다.

자기 개인적으로 승리하지 못하고서는 가정의 무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고, 가정적인 승리를 결정짓지 못하고서는 종족의 무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으며, 종족적인 승리를 결정짓지 못하고서는 민족의 무대에 나아갈 수 없으며, 민족적인 승리를 결정짓지 못하고서는 국가의 무대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또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의 무대에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가야 할 절대적인 천명을 받은 예수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길을 가지 못하고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예수님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예수님은 갈래야 갈 곳이 없었습니다. 몰리고 쫓기면서도 하늘의 뜻을 마음에 품고 복귀섭리를 이루어야 할 책임을 지고 가야 했던 예수님,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길에도 몸 둘 곳이 없어서 갈릴리 해변가 혹은 겟세마네 동산의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며 사정하시던 그 심정이 얼마나 적적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는 엉터리들이라면 반성해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를 믿고 신부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랑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도 모르고, 또 오신다면 말을 타고 오시는지, 구름을 타고 오시는지, 땅 속으로부터 오시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우리 신랑은 구름 타고 오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신랑이 오면 내가 무엇을 대접할 것인가도 생각하고, 또 신부로서 그를 맞이할 수 있는 승리의 개인이 되어 공동목적을 위해 그와 같이 갈 수 있는 준비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도 안 해 놓고 그저 나 좋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쉴 새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은 참다운 개인을 대할래야 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이스라엘 나라를 지배하고, 로마제국을 지배하고, 세계를 맨손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비난과 비소에 자기 몸을 움츠려야 했고, 로마의 창칼에 쓰러져야 했습니다. 나라로부터 몰렸고, 교회로부터 몰렸고, 자기의 가족에게서까지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제자들에게서까지도 불신을 당했으니, 갈 곳이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딱하고 원통한 사정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서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믿어서 그것이 통한다면 좋겠지만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통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비난받고 손가락질 받을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17-168
뿌린 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혁명의 기치를 드높이 들고 삼천리 반도를 넘어서 세계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쇠망치로 안 되면 그 이상의 망치를 들고서라도, 검으로 잘라서 잘라지지 않으면 그 이상의 검을 만들어서라도, 칠 것은 치고 자를 것은 잘라야 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나선 무리, 즉 완전복귀를 목표로 하고 나선 무리가 통일교인들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나아가려는데 가정이 원수거든 가정을 밟고 넘어서야 하고, 국가가 원수거든 국가를 밟고 넘어서야 됩니다. 어느누구라도 이 복귀의 뜻에 상대적인 입장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그에 응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신의와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선생님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산상의 그 어려운 죽음의 고빗길을 걸으면서도 참고 복귀해 나가고자 하는 그런 열의를 가진 메시아를 존경하지,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런 메시아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메시아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메시아는 지나가는 메시아로서 다시 올 메시아가 못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할 통일의 무리들입니다.

예수님이 완전구원해야 할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도들이 필요했습니다. 어부나 세리였던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보면 너무도 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가끔 그들을 영적으로 만나보았지만 12사도들이 너무도 못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 버렸지……. 그러한 입장에 있던 예수님을 도리어 강도가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정성들이며 수고 하였지만, 제자들이 불신함으로 인해 죽음길을 가게 되었을 때, 난데없이 오른편 강도 한 사람이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죽음길에서 구원의 은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죽음길에서 구원의 은사를 찾아가는 것이요, 잘 믿는다는 사람들은 죽음길을 택해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구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려했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개인을 만나지 못한 예수님은 그러한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소망 앞에 나타나서 그와 상봉하여 그를 하늘과 더불어 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야 할 모든 나라와 세계의 이념은 바라다 보이는 수평선 아래의 어둠 속으로 삼켜져 버렸습니다. 사탄이 이 세계에서 예수님을 쫓아내고 이 세계를 지금까지 지배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것을 다시 한번 수습해야 합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한 죄를 탕감하고 그에 보응하기 위해서 가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억울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개인의 화살과 총칼이 억울하게 그들에게 내려지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화살이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죽인 죄 때문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뿌린 것은 끝날이 되면 모두 거두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이 제2차 세계대전 때 6백만 명이나 학살당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보응입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유대 민족’ 하면 아이들까지도 싫어합니다. 유대 민족은 만민을 위하여 오신 메시아를 불신했기 때문에, 선한 사람을 박대했고 세계적인 의인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세계 만민들로부터 응당히 보응을 받아야 됩니다. 어디까지나 그 기준에 맞는 탕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을 복귀하여 완전구원을 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렇다면 개인을 복귀해서 무엇을 하시려 했느냐? 개인을 복귀해서 가정을 창건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던 것인데, 가정을 창건하지 못하고 ‘다시 오마’ 라는 약속만 남기고 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계 가운데에서 하나의 신부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선은 신부를 온전하게 길러 줄 수 있는 그런 완전한 남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원리를 들으면 이해될 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담과 해와를 타락시켰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그 반대의 경로를 거쳐야 합니다. 천사장이 해와를 유인하여 타락시켰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신부를 보호하고 길러서, 예수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적 인격을 갖춘 신부로 단장시켜서 예수님 앞에 나타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2천년의 기나긴 역사를 두고 인간들로 하여금 많은 피를 흘리게 하면서 복귀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17-170
탕감의 원칙
지금은 예수님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온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로 반분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실 나라는 옛날 로마제국 하에 있던 유대 나라와 같은 형태를 갖춘 나라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가에는 절대로 안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탕감복귀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어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무엇을 해 놓아야 되느냐? 하나님은 주님이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완전복귀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복귀의 일을 할 수 있는 터전을 지금까지 만들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땅 위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민주주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외적으로는 민주주의요, 내적으로는 기독교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열된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적인 종말형은 하나로 통일해야 됩니다. 요즘 보게 되면 바티칸 궁전을 중심삼고 통일운동이니 뭣이니 하면서 교파와 종파를 넘어서 통일시키고자 하는 기운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섭리상으로 보면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이렇게 외적 기준과 내적 기준이 준비되었으니, 세계적인 이념을 향하여 가야 할 메시아가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시는 그분을 위해 6천년 동안 수많은 제물을 희생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제물, 가정적인 제물, 민족적인 제물, 국가적인 제물 등 수천만의 제물을 희생하며 탕감시켜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형태를 갖추었지만, 오늘날 세계는 대원수인 사탄의 유물사관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공산주의 세계와 유심사관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민주주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지금까지의 인간들은 그것을 몰랐지만 뜻을 성취하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고충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세계적인 모든 실정을 놓고 볼 때, 과연 이 민주주의가 오시는 주님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또 수많은 교파로 분열된 기독교와 수많은 종교가 주님이 오실 때, 하나같이 환영할 수 있는 신앙의 터전을 갖추고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형태가 세계적인 형태로 컸을 뿐이지 옛날과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교파 가운데에 진정한 12사도와 같은 입장에서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나서는 교파가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아닌 딴 종교 중에서 오른편 강도와 같은 입장에서 충성을 다짐하고 나서는 종파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만이 예수님을 맞이하고, 기독교만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을 수 있는 종교라고 자처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태어났을 때 맨 먼저 누가 알고 찾아가서 경배드렸습니까? 동방박사입니다. 동방박사는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점장이입니다. 그는 유대교인도 아닙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기독교인들이 제일 모른다는 겁니다. 이방종교들은 시대에 대한 운세나 천운에 대한 것을 감각할 줄을 아는데, 기독교인들은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멍청히 잠만 자고 있습니다. 어제도 그날 같고, 그날도 어제 같아서 전부가 해 나는 날만 있는 줄 알고 있지, 벼락치는 날도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느땐가 갑자기 태풍이 불어와서 자기의 집이며 자기의 살림살이를 송두리채 다 쓸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어느때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끝날에는 지혜 있는 자만이 살 수 있으니 밀실에 들어가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17-172
완전복귀는 개인으로부터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뭘 하기 위해서 나왔습니까? 이 나라와 세계를 결속시키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 문제를 걸어 놓고 일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 널려 있는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이 문을 열어 놓고 통일교인과 만나 대화만 한다면, 3년 내에 그들을 결속시킬 자신이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라 해도 한번만 때리면 갈라져 나갑니다. 이 나라와 세계의 민주주의가 문만 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싸움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노정은 옛날 예수님이 공생애노정에서 민족을 대신해 싸우던 그때의 노정과는 다릅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민족적인 시대였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시대입니다. 또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어떤 곳에도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념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처럼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이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이라 해도 잘못하였을 때는 원칙에 입각하여 비판을 하면 꼼짝 못하는 시대로 들어 왔다는 겁니다. 누가 새로운 종교를 만들든, 무슨 일을 하든, 옛날과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실 주님이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세계가 한꺼번에 뒤집혀져서 모두가 그 앞에 굴복할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오시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그렇게 오시면 되겠어요? 그렇게 오신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이나 기다리셨겠습니까 ?

완전복귀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개인을 완전히 복귀하지 못하면 가정을 완전복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종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고, 종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민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고, 민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국가를 완전복귀하지 못하고, 국가를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세계를 완전복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오셔서 될 것같으면, 뭐하러 6천년이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아마도 그렇게 오시려고 한다면 벌써 오셨을 것입니다.

17-173
완전복귀는 개인으로부터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뭘 하기 위해서 나왔습니까? 이 나라와 세계를 결속시키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 문제를 걸어 놓고 일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 널려 있는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이 문을 열어 놓고 통일교인과 만나 대화만 한다면, 3년 내에 그들을 결속시킬 자신이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라 해도 한번만 때리면 갈라져 나갑니다. 이 나라와 세계의 민주주의가 문만 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싸움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노정은 옛날 예수님이 공생애노정에서 민족을 대신해 싸우던 그때의 노정과는 다릅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민족적인 시대였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시대입니다. 또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어떤 곳에도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념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처럼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이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이라 해도 잘못하였을 때는 원칙에 입각하여 비판을 하면 꼼짝 못하는 시대로 들어 왔다는 겁니다. 누가 새로운 종교를 만들든, 무슨 일을 하든, 옛날과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실 주님이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세계가 한꺼번에 뒤집혀져서 모두가 그 앞에 굴복할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오시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그렇게 오시면 되겠어요? 그렇게 오신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이나 기다리셨겠습니까 ?

완전복귀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개인을 완전히 복귀하지 못하면 가정을 완전복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종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고, 종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민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고, 민족을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국가를 완전복귀하지 못하고, 국가를 완전복귀하지 못하면 세계를 완전복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오셔서 될 것같으면, 뭐하러 6천년이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아마도 그렇게 오시려고 한다면 벌써 오셨을 것입니다.

17-174
통일교회의 책임
하나님의 구원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기도를 해도, 그저 내 아들딸 잘되게 해달라고 하고 우리 집 잘되게 해달라고 하는데, 전부다 그렇게만 기도하면 하나님은 거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있는 복을 몽땅 빼앗아 버리고 억울함과 헐벗음과 굶주림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되겠어요? 그러기 보다는 ‘하나님, 제 복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할 때 하나님은 ‘오냐, 네 복은 내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복은 아버지의 것이자 아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입장에서 이 영원한 세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내정적인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를 통한 개인, 메시아를 통한 가정, 메시아를 통한 종족, 메시아를 통한 민족, 메시아를 통한 이스라엘을 찾아 세계적인 다리를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깨졌습니다. 소망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창건해서 세계를 향하여 활보해 나가야 했던 그 기준이 사망의 세계로 뒷걸음질쳐 갔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한 무리로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의 사무친 마음이 풀리게 되는 그때까지 해방과 독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지지리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그나마 오늘날까지 남아진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옛날에는 예수님의 원수였고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했지만, 이제 세계적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세계적인 천의의 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예증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이해하겠습니까? 「예」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책임이 지대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완전복귀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완전복귀를 하려면 완전복귀의 역사적인 책임자로 다시 오셔야 했었습니다. 그 시대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충신이나 열녀 혹은 하늘나라의 공신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적인 공적을 쌓아야 했고 역사적으로 증거될 수 있는 밑천과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올바르게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메시아라고 믿습니까? ‘그야 뭐 목사한테 들은 얘기이고 성경에 그렇게 나왔으니 그렇게 믿고 있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만유의 주입니까?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은 어떻게 보면 아주 독단적인 말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공자와 석가와 다른 게 무엇입니까? 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얼마나 자만심이 많습니까? 그들은 이방민족은 아무도 구원 못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17-176
타락인간의 처량함과 하나님의 책망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타락인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왈카닥 붙잡고 역사노정 위에 역사적인 혈통을 중심삼은 탕감의 법도를 어김없이 세워 나왔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생을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타락에 대해서 알지요? 아줌마들 타락한 것 알지요? 「예」 얼마만큼 압니까? 손가락 끝에 가시가 박힌 것만큼이나 알아요? 여러분, 손가락 끝에 가시가 박히면 얼마나 아픕니까? 누구에게나 손가락을 내밀며 도와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가시를 빼주게 되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지요? 그래, 타락에 대해서 그만큼이나 알아요? 그 가시가 박혀 아픈 것만큼이나 알았어요? 남자들은 통이 크니까 손끝에 조그만 가시가 들어 갔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요? 안 그래요?

여러분은 타락한 후손이라는 것이 틀림없지요?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타락의 후손들 참 처량하다! 그렇다면 타락한 후손을 보고 하나님이 책망해야 되겠습니까, 잘했다고 칭찬해야 되겠습니까? 책망은 얼마만큼이나 해야 되겠습니까? 눈을 한번 흘기는 것으로, 아니면 주먹으로 한번 치는 것으로 되겠습니까? 여기에 오늘 처음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타락한 후손들로 인해 쌓인 역사적인 곡절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인간이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심정에 못질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먼지와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을 한꺼번에 들어서 태평양 바다에 던져 버려도 시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표현을 하면 그런 하나님도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눈을 치뜨고 두리번거리며 나쁜 말을 좀 하면, 여기에 처음 오신 분들은 밖에 나가서 오늘 통일교회에 갔더니 젊은 사람이 욕도 대단히 잘하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매맞고 억울하게 살아왔으니 잘 왔다’고 칭찬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는 벌로 청산하고 선은 칭찬하여 세워주는 것이 천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영계의 대심판 법정으로 출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언젠가는 대심판 법정에 출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그 법정을 관리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판사가 있어야 되고, 검사가 있어야 되고, 변호사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판사는 누구이며, 검사는 누구이고, 변호사는 누구이겠습니까? 판사는 하나님이요, 검사는 사탄이며, 변호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변호사 밖에 못 됩니다.

17-177
예수님의 피에 접붙여야 할 인간들
검사는 논고하기를, ‘이들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혈통적인 관계에 있는 고로 하나님 앞으로 복귀될 수 없는 근본적인 내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또 노아 때 범죄한 사실,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한 사실,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하고 모세 자신이 혈기를 부린 사실 등, 근 4천년 동안 지지리 하늘을 배신했던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죄상과 오늘날 제2이스라엘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서 이러한 죄목은 천지의 공법 몇 조에 의해서 걸린다고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호사가 이 일에 대하여 변호를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비교해 보았을 때 그래도 좋은 것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야지, 나쁜 것이 더 많으면 변호할 용기가 나겠습니까? 그래, 여러분은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의 법정에 섰을 때, ‘하나님, 나는 이러 이러한 좋은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천지의 공법 앞에 나서게 되었을 때, 변호사이신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기 때문에 틀림없이 어떠한 특권이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로만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뿌린 것은 내용을 지니고 뿌렸습니다. 그러니 그 피에 접붙여야 합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어간 것도 내용을 지니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피에 접붙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사를 개의치 않았고, 하늘의 공법, 공리를 세우기 위해서 죽음길을 자처해 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업숙한 차원의 내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천군천사의 옹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여러분이 그러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자리에서 예수를 믿었다가는……. 그래, 선생님의 말이 틀렸어요?

예수님의 그 피가 어떤 피입니까? 이 문제는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 남편과 아내의 피가 서로 같습니까? 다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붉은 색깔은 같을지 모르지만, 내용면에서 성분을 전문적으로 분석해 보면 둘 다 피는 피지만 다른 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접붙여야 되느냐? 하늘의 피에 접붙여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피에 접붙였기 때문에 그 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초월할 수 있었고, 또 그 공적으로 인하여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피에 접붙이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의 은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피는 어떠한 피냐? 원한에 사무친 피요, 억울하고 불쌍하고 원통한 사연이 담겨진 피입니다. 그러한 핏자국을 중심삼고 예수님 앞에 기도하면, 예수님은 ‘아!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요’라고 할 것입니다.

2천년 전에 가신 예수님 앞에서 ‘당신은 이러한 심정을 갖고 싸워 오셨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심정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맺힌 한을 누가 풀어 드려야 합니까? 그들에게 복수하실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옵니까? 저는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의 한을 알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하면, ‘야 야 그만둬라, 그만두어’ 하고 말리실 것입니다. 그럴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교역자가 있습니까?

17-179
통일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권
통일교회는 위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위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역사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간 예수님을 동조하여 오늘날의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 골고다 산정을 행보하여 넘는 대열을 우리가 갖추어 책임지고 나아갈 수 있다는 이 사실, 이것이 우리들만이 가진 엄숙한 특권이라고 선생님은 자부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심정이 살아 있는 인류가 있는 한, 그러한 의리가 서 있는 한, 통일의 깃발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뜻은 발전하리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그곳에 나를 보내 주세요’ 하면서 약속해 보았습니까?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면 모두 엉터리입니다. 엉터리예요. 엉터리의 형은 무엇입니까? 엉터리보다 더 나쁜 것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를 일컬어 사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사탄의 괴수가 되었구만? 좋다는 것입니다. 감투는 같은 감투를 썼는지 모르지만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벗어버리면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무엇을 했다고 합니까? 가장(假裝)했다고 합니까? 위장(僞裝)했다고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오해를 받아도 재미가 납니다. 여러분들도 재미가 납니까? 재미가 나요, 안 나요? 재미나지 않는 사람들은 수준 이하에 속하는 패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몽둥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여러분들에게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외국에서 목적을 세워 놓고 일을 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데리고 옛날에 했던 일을 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학교 선생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장난꾸러기 애들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비행기, 자동차, 탱크가 좋으니 그것을 사 달라고 합니다.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사 준다고 해도 싫다면서 그것만 사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입니다. 자기 나이에 맞는 장난감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선생님은 여러분을 데리고 그런 장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당당히 세계에 나서서 호령할 수 있는 한 인격자가 되어, 하나님의 중대한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하나님이 천년 만년 믿을 수 있고, 또한 ‘네가 가는 길에 내가 함께 하겠다. 너는 내가 갈 길을 대신 가고 있다’라고 만세에 칭찬할 수 있는 그런 사나이가 되길 바라고 있는데, 잘못하면 호랑이 새끼는 못 되고 삵괭이나 고양이 새끼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전체가 다 긍정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답은 하기 싫어하면서도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말하고 싶어합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을 하면, ‘아이쿠 저런 말씀을 거북하게 왜 하실까? ‘ 그럴지 모르지만 그게 재미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그것이 하나님도 맥을 못 쓰게 만들고 사탄도 맥을 못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17-180
장자를 쳐서 차자 앞에 굴복시키시는 하나님
여러분들이 완전복귀하기 위해서는 아까 말했던 그 피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피를 중심삼고 역사해 나오십니다. 조금 전에 선생님이 예수님은 우리들과 핏줄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거기에 대해서 얘기해 주겠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 보면 아실 겁니다. 복귀역사이니만큼, 먼저 낳았던 자식은 사탄의 새끼입니다. 세계 인류는 전부다 사탄의 새끼로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난 아들이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는 장자를 쳐서 차자 앞에 굴복시키는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도 원리를 통해서 다 알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도 그렇고, 에서와 야곱도 그렇고, 베레스와 세라도 그렇고, 요셉과 그의 열한 형제도 그러하며, 이스라엘 민족과 세계의 국가도 그렇고, 온 세계 인류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장자를 쳐서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쳤던 것을 심판하여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천도가 거꿀잡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이 먼저 나와야 할 것인데 동생이 형을 타고 앉아 먼저 나오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야곱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할 때 그들의 머리에 손을 엇갈리게 해서 축복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형은 왼손으로 동생을 오른손으로 거꾸로 축복을 해주신 것입니다. 천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난세는 전부다 한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불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다. 인간을 쇠에 비유하면, 쇠는 쇠인데 별의별 것이 다 섞여서 순수하지 않은 잡탕 쇠입니다. 그래서 끝날에 심판이 와야 한다는 거예요. 잡탕이 되어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아들의 피와 살을 접붙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지 아니한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고 했지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았다는 조건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으로부터 가짜가 진짜 되었다는 영수증을 받아야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이 영수증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영수증을 써 주는데 있어서 그와 같아야 영수증을 써 줍니다. 예수님의 영수증을 받으려면 예수님의 사정과 그의 뜻에 하나 되고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수증을 받으면 예수님이 주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님이나 오빠가 되고 우리는 그의 동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고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자의 입장에서 혈통을 바꾸어서 복귀된 아들이요, 예수님은 본연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예수님의 다른 점입니다.

인간들을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닦아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복귀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보니 이미 사탄세계의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복귀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어머니 뱃속으로 찾아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합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요 3:1~10) 가운데 나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 3:4)’하고 중생에 대해서 물어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시고 나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17-182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전부가 원수의 핏줄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역적의 팻말을 든 사탄의 핏줄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섭섭하지요?

옛날 우리 나라에서는 원수의 집안은 어떻게 했습니까? 7족까지 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원수의 핏줄을 타고 났으니 4차, 5차에 걸쳐 육신이 찢겨서 독수리 밥이 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렇게 되지 않았으므로 여러분은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 피를 빼내서 없애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금식을 해라, 온유겸손해라’ 하는 등의 자기 육신을 치는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인간이 본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높고 넓은 천지처럼 높고 넓은 기준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러한 기준을 부여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본능의 욕구라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조상이 타락하여 강도의 입장, 배신자의 입장, 역적의 입장에서 태어난 우리지만, 인간 창조시에 본심은 천륜을 향하여 작용하게 한 그것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의 제일로 높아지고 싶어하고 커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에서는 ‘교만하지 말라, 온유겸손하라. 자신의 몸을 쳐라’고 가르칩니다. 또, 내 몸에 있는 사탄의 정욕을 버리고, 혈기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금식을 해서 사탄의 핏줄을 전부 끊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에 갈 때, 일주일 이상 하늘을 위한 금식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저나라에 가서 입적을 못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6천년 복귀역사노정에서 수고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서 금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7일 금식기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을 고생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앞에 육신을 쳤다는 조건을 세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쳐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이 원수의 몸, 이놈의 고깃덩이야! 그 속에 사탄의 피가 준동하고 있구나’ 하면서 칼로 찔러야 할 것을 고맙게도 예수님께서 대신 찔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습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탄세계 앞에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머리를 쳐서 그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의 정복자요, 민족 앞에 나가면 민족의 정복자요, 세계 앞으로 나가면 세계의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모든 피살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피살인 포도주와 떡을 성만찬에서 잘먹더니 배신하여 일전 한푼도 안 되게 그저 싸구려 피살로 팔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체(聖體)를 범한 죄는 천법에 의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17-183
새시대의 역군은 고생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알고 성경을 보면 ‘아! 그렇구나’ 할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이 나오는데, 여러분은 가인입니까? 아벨입니까? 아벨 하면 기분 좋아하고 가인 하면…. 여러분은 좋은 것만 다 좋아하지요? 그런데 좋게 되는 것이 간단하지 않아요. 좋은건 좋지만 좋게 될 때까지의 과정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좋은 것으로 시작하여서는 좋은 것이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좋은 것으로 시작하여 좋은 것으로 나올텐데, 타락했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시작해서는 좋은 것이 나오는 법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가 좋은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쁜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럼 얼마만큼 나쁜 데에서 출발해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이구! 난 개인적인 사정이 나쁜 자리에서…’하면 안 됩니다. 세계적인 사정에 휩쓸리고 천륜의 사정에 휩쓸려서 제일 나쁜 자리에서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이 나팔통의 모양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곳과 좋은 곳이 쫙 벌어져 있는 데 제일 나쁜 곳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좋은 곳과 가장 가깝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상은 이 통처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한 점, 즉 아담 해와로부터 출발해서 지금은 이렇게 벌어진 것입니다. 벌어진 곳에서 그대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 아담 해와의 처음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는 데 있어서 죽는 고비가 많아도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한꺼번에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세계사적인 고난과 죽음의 길로 여지없이 몰아넣는 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과정은 어느누구 할 것 없이 전부다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왔다 간 성인들도 이 땅에서 그 일대에 고이 모심받고,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이든 출세시키려면 들이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세계를 대해 소망하는 사람보다 더 큰 소망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 주셨다는 것을 느껴야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새시대의 역군으로 출발할 수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17-185
통일교회는 고생하는 교회
통일교회 선생님은 인류 복귀에 바쁩니다. 삼천만 민족이 나를 배반하고, 수많은 교단들이 나를 내몰고, 나에게 제일 나쁜 명패를 박아 놓아도,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선생님도 하나님과 더 깊게 인연맺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해 나온 것입니다. 그 모든 노정이 끝나는 날에 흑암천지가 오는 것이 아니라, 광명의 새아침이 밝아 그 빛으로 말미암아 천지와 함께 환영받게 될, 그런 날이 올 것을 믿고 참고 나왔더니, 과연 선생님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방법은 선생님의 머리로 생각해서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천법에 의거해서, 또는 그 범위에 부합될 수 있는 원칙에 의해서 여러분을 지도해 나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선생님은 그저 고생만 하라고 하셔. 우리 선생님은 무자비하고 이러이러하셔’ 하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수고와 공로가 크다고 말하면 좀 시원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기뻐할지 모르지만, 심정적으로 하늘 앞에 들어가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면, 자기가 짊어진 십자가는 언제 벗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받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전부다 여러분들이 잘못해서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용서받되, 용서받은 입장으로 하늘땅이 공인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즉 선생님이 욕을 먹고 배척을 받으며 원통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여잡고 눈물어린 길을 걸어갔으면 여러분도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여잡고 선생님이 가는 노정을 생각하면서 눈물로써 자기의 죄를 회개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고생하는 교회입니다. 언제나 최고의 고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비는 1960년대입니다. 그 고개를 박차 버리고 저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7년노정에서 마지막 6년 고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고비를 넘게 되면 이 민족, 대한민국의 미래의 운명이 훤하게 밝아오는 때가 됩니다. 이 민족이 어려운 산정을 넘어 발전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하늘의 수고가 얼마나 크신가를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인보다 아벨을 더 좋아하지요? 여러분이 안타까와서 캄캄한 밤중에 ‘아버지’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될 때 뭘 보게 됩니까? ‘별’을 보게 됩니다. 밤중에 땅을 바라보면 캄캄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 별이있구나’ 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하늘을 바라보고 그러한 기도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아벨 되기 원해요? 가인 되기 인해요? 「아벨요」 그럼, 얼마나 큰 아벨이 될 것입니까? 아벨도 개인적인 아벨, 가정적인 아벨, 민족적인 아벨, 세계적인 아벨, 천주적인 아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아벨의 뿌리는 못 되더라도 아벨의 가지, 아벨의 이파리라도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아벨의 벌레 먹은 이파리라도 되어야 합니다. 벌레가 먹었어도 죽지 않아야 합니다. 나뭇잎을 가만히 보면 한쪽을 벌레가 갉아 먹었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름 절기가 되면 푸르게 잘 크더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여러분은 벌레 먹은 아벨의 이파리가 되겠어요? 싱싱한 아벨의 이파리가 되겠어요? 어느 아벨 되겠어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좋은 것이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17-186
아벨의 천지를 만들기 위해 오신 예수님
여러분은 벌레 먹은 이파리 같은 아벨이에요? 뭐예요? 여러분 자신의 양심을 펼쳐 보면 자신은 잘 알 것입니다. ‘아, 나는 몇 점짜리이구나……’ 그런데 자기가 빵점짜리임에도 불구하고 ‘야, 너 빵점 맞았구나! 빵점!’ 하고 남들 앞에 공포하면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사실은 사실로 공포하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타락성 근성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이 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악한 사람인가요? 악한 사람은 아니지요? 선생님은 아벨의 이파리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뿌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뿌리가 되어 열매를 맺게 해서 그 열매가 떨어져서 온 천지를 덮을 수 있는 그러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갈망할 것입니다.

아벨 역사는 아벨이 뿌리기 시작했으니 아벨이 거두어야 되고, 가인 역사는 가인이 뿌리기 시작했으니 가인이 거두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 세계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사적인 책임을 지고 아벨의 천지로 만들기 위해서 아벨의 열매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세계적인 아벨의 입장으로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고, 가인의 입장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악한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면 천하는 평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싸움을 하고 있고, 싸움으로 말미암아 가정도 부패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민주주의가 그런 상태입니다. 상원의원 하원의원, 야당 여당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세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는 몸뚱이와 같고, 하나는 마음과 같아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는 인간으로 인해서 빚어졌기 때문에 결과적인 세계도 필연적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인간이 이 진리로써 뒤넘이치는 날, 세계는 고생과 신음, 탄식과 불행을 벗어난 세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몸이 원하는 대로 말고, 마음이 원하는 기준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거기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더우기 민주주의나 유물주의 개인주의사상이 팽창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서 사상적으로 몸이 마음을 유린하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잘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벗겨 보아야 합니다. 즉 죽었는가 살았는가 감정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해야 하느냐? 바로 통일교회가 해야 합니다. 그것을 감정할 책임이 통일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 그 말이 나온 것을 보면 때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긴 죽었습니다. 사탄세계에서 슬퍼하시던 하나님은 죽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부활할 때는 기뻐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탕감복귀의 원칙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17-188
복중복귀
지금까지 형제끼리 서로 싸워 왔습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몰아넣는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은 동생한테 굴복을 해야 하고 동생에게 축복을 상속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역리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급시대에도 장자를 쳤던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의 역사는 차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개인적인 섭리기대를 세웠고, 쌍동이인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섭리기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쌍동이 형제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은 뱃속에서도 싸웠고 나와서도 서로 싸웠습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은 따로따로 나왔는데 태어난 후에 싸웠고, 에서와 야곱은 한 뱃속에서 한 핏줄을 받은 쌍동이로 뱃속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이렇게 하여 점점 핏줄을 따라 뱃속을 통해서 복귀해 가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켰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즉 그것은 혈통적인 내용에 있어서 사탄이 침범할 수 있었던 길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점점 복중을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유다는 누구냐면, 야곱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베레스와 세라는 야곱의 손자입니다. 유다와 그의 며느리인 다말을 통하여 쌍동이로 태어난 베레스와 세라 두 형제는 복중에서 나올 때 바꿔치기 하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터전을 결정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가 복중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걱정하는 리브가에게 하나님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 23)”고 하셨습니다.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나게 될 때에도 동생인 베레스가 형인 세라를 밀치고 먼저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복귀의 역사가 복중에서 벌어져서, 복중에서 동생 베레스가 승리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복중에 들어가서 참소할 수 있는 혈통적인 인연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복중은 불가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중을 통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베레스의 승리의 전통을 이어받아 하늘의 법도에 따른 천륜의 인연을 배경삼고 태어난 후손들이 역사를 이끌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적인 대표로 요셉을 세워서 그를 통하여 승리했다는 조건을 재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사상의 딴 성현들과 다르게 메시아가 될 수 있었던 요건 중의 한 가지는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혈통을 바로잡은 그런 역사적인 터전 위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내적으로 예수님을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꾸로 복귀해 나오십니다. 즉 외적인 것으로부터 섭리를 시작하여 점점 내적으로 들어가 복중에서 승리의 결정을 지어 놓은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기준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사탄과 싸워 사탄을 굴복시켰다는 조건으로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천사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권한을 가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에서를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승리의 민족을 통하여 복중에서부터 혈통적으로 동생이 형을 굴복시켜 나왔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이 섭리의 출발을 할 수 있었고 그 후손의 장손들이 책임을 지고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핏줄기를 정화시키고 탕감해야 할 내용을 모두 탕감한 승리의 복귀의 터전을 통하여서 나오신 분은 한분밖에 없었으니, 그분이 이와 같은 터전 위에서 섭리적인 책임을 지고 요셉 가정을 통하여서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다른 성현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요?

17-190
제2의 아담인 예수님
그러면 그렇게 태어난 예수님은 어떠한 예수님이냐?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창조를 하셨습니다. 5일 동안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6일째 되는 날에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그 아담과 같은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2의 아담, 즉 후아담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창조하였으니, 이 후아담을 중심삼아서 후해와를 세워야 했었는데 세우지 못했습니다. 해와는 누가 세워야 하느냐? 아담이 세워야 합니다.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해와를 아담이 찾아 세워야 합니다. 탕감원칙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며 왜 오셨느냐? 인류의 참부모요. 참아버지의 사명으로 오신 분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인류의 참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해와는 참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 축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준비하신 터전 위에 예수님을 참아버지의 사명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섭리적인 역사를 상속받아서 아담적인 자리로 들어가서 사탄의 참소를 받았던 해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키고, 그 사회의 모든 조건을 빼앗아 해와 앞에 서 있는 사탄 전체를 굴복시켜야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주장한 것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계에서 뭘 찾는 운동을 했느냐? 해와 찾는 운동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맨 나중을 보게 되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누구를 말하는가? 어머니, 어머니를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은 누가 먼저 했습니까? 어머니(해와)가 먼저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를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먼저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뿌리를 심은 사람이 어머니 입장인 해와이기 때문에 성신이 와서 대신령역사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탕감의 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신을 받지 않으면 중생이 안 됩니다. 어머니의 복중을 통하지 않고서는 태어날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리하여 성신으로부터 감동을 받아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흠모하는 사랑으로 취해 내 몸이 있는지 없는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러한 자리에서 부활된 증거를 받지 않고서는 천국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입니다. 알고 보면 간단한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 말로는 뭐가 어떻고 중생은 뭐 어떻고 하지만 모두가 엉터리입니다.

17-191
신랑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냐? 민족보다는 종족이요, 종족보다는 가정이요, 가정보다 더 필요했던 것은 상대적인 신부, 즉 해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신부보다 더 먼저 찾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사탄의 3대 시험(마 4:1~11)에서 사탄하고 싸운 것은 자기 자신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을 찾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가정을 찾아야 했습니다. 가정을 찾으려니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예수님이 자신의 그러한 사연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의 역사노정을 두고 전세계로 하여금 신부 단장을 시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거기에서 우주사적인 하나의 어머니를 선택해서 신부로 맞음으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로 복귀시켜서 천국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하게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혈통적인 입장에서 그러한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에수님을 ‘구주로, 메시아로 완전히 모셨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과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기독교는 예수님과 한몸이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다. 한몸이 뭡니까? 타락 전, 그러니까 이성을 모르는 입장, 다시 말하면 아담 속에 있는 아들딸의 씨와 같은 입장을 말합니다. 그러한 입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만민들은 참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 태어났으니 헛되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접붙인 입장에서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부부를 이루었을 때 성신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짓된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참된 사랑을 통하여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서 2천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예수님을 믿다가 영계에 간 사람들은, 아직까지 결혼하지 못한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는 애기씨와 같은 입장이므로 천국에 갈 수가 없어서 낙원으로 가서 예수님의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천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부가 나와야 됩니다. 신부의 인연을 거쳐서, 다시 말하면 신부와 인연을 맺지 못하면 하늘나라를 대하여 자기 나라라 할 수 없고 천국에 대하여 자기의 생활적인 이상세계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완성한 입장이므로 결혼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완성한 남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6~5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그것이 무슨 뜻이냐? 예수님과 한몸이 되어 예수님의 몸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슬퍼할 때 슬픈 감정을 받아야 되고 기뻐할 때 기쁜 감정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일심동체가 되어 ‘그의 사정이 내 사정이요, 그의 요구가 내 요구요, 그가 싸움하는 목적이 내 목적이다’ 하고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신부를 맞으러 오시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절대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고생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럼 여러분 주님 맞이할 자신이 있습니까?

17-193
하늘편 가정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오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는 데는 세계적인 예수님으로 오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화려하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처량하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부를 맞이해서 가정을 편성하고,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하고, 국가를 편성하고, 세계를 편성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세계적인 환경을 내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영적(靈的)으로는 죽었기 때문에 육신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다시 영(靈)을 주입시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 세상에도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하고 내적 기준을 결정지어 놓은 이념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은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오시는 주님 앞에서는 무엇인지 모르게 끌리게 되고, 밤이나 낮이나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만 오시는 주님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참어머니의 복중을 통해 태어났다는 조건이 세워지기 때문에 이렇게 하기 위한 작전으로 1960년부터 7년노정을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편 가정이 나오기 전에는 사탄편적인 가정을 하늘편 가정으로 접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늘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 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한다고 비웃지만, 합동결혼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접붙일 수 있는 내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족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추고 국가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는 날, 세계는 하나님 앞에 무조건 용서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한 복귀의 길이 얼마나 감격적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 복귀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순간은 우주적인 생명이 호흡하는 시간입니다. 그 호흡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질식할 수도 있고 소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운명을 분별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 통일의 용사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러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저 껄렁껄렁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기에 처음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평하지 마십시오. 통일교회는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다릅니다.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도 다르고, 형태적으로도 다릅니다. 기성교회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7-194
참감람나무의 꽃눈
우리가 가을이 오기도 전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찬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몰아치는 설한풍을 받고 서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가운데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모든 외적인 난국을 물리치고 승리적인 생명으로 회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외부의 폭풍과 싸우면서 길을 닦았던 모든 것은 희생하는 봄 절기 같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함인데, 여러분, 그러한 가지가 되고 줄기가 되었습니까?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 있지 않다면 문제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회생춘(回生春)한 가지에 접붙임을 하여 정상적으로 잎이 나고 꽃이 필 때까지를 몇 년 잡느냐? 우리의 노정으로 볼 때 3년은 걸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감람나무를 잘라 내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이고자 할 때 돌감람나무의 어느 부분을 잘라야 됩니까? 나무의 밑둥치를 잘라야 됩니다. 그 덩치가 세계보다 큰 나무라 해도 미련없이 잘라서 아궁이의 불 속으로 던져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돌감람나무는 참감람나무의 새로운 가지를 곱게 접붙여 가지고, 새로운 생명관, 새로운 생활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 새로운 사랑관을 받아야 됩니다.

접붙이는 데 있어서, 우리가 잘 보이지도 않는 참감람나무의 꽃눈 하나 접붙여 가지고서 돌감람나무 전체를 잘라 내고 참감람나무로 바꾸려고 하니까 세상 사람들은 ‘저 미친 녀석들, 정신없는 녀석들……’ 하면서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러한 비난, 그러한 핍박을 많이 받습니다.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는 외적으로 볼 때 나무는 똑같지만 내적인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돌감람나무를 다 잘라서 불살라 버리고 그 뿌리에다 참감람나무의 내적인 내용을 꼼꼼히 싸매서 내 생명 아끼듯이 해 가지고 참다운 진액으로 새순을 다시 자라게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전체를 묻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의 생명을 위해 자기 일대에 있어 지금까지 아무리 큰 잎사귀였다 해도 그것을 묻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자기 생명보다 자기 개체보다 자기 일족보다 더 존중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통일교회 가는 길을 따라 가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일을 가지고 선생님이 하나님과 문답한 적이 있습니다. ‘너는 그일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아이구 우리 부모님, 아이구! 우리 친척, 아이구 우리 아들딸…….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문제가 되어도 이 길을 가겠느냐? ‘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이러한 대답을 했습니다. 완전복귀는 문제가 없다고 선생님은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17-195
우리의 혈족을 먼저 제물삼아야 한다
선생님이 앞으로 여러분에게 통일교회가 어떤 노정을 나갈 것인지 세부 세칙을 상세히 설명해 주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얘기를 다 해주려면 아직은 좀 때가 이릅니다. 선생님이 지금 이런 얘기 하면, 세상 사람들이 눈이 뒤집혀 가지고 통일교회는 뭐 어떻구 어떻구 할지 모르나 그러한 어려운 모든 핍박을 이겨 나가게 되면 여러분 자신의 개인 완전복귀는 못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세계에 어떠한 사람이 나타나야 되느냐? 개인을 완전히 복귀한 메시아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야 합니다. 메시아는 개인 완성은 물론 가정을 완성해야 합니다. 가정을 완성하려면 종적인 역사의 더럽혀진 모든 것을 탕감하고 해원하여 질서를 바로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가정복귀의 기준을 세워서 종족과 친척을 거느려야 됩니다.

야곱의 70가족, 모세 때에 70장로, 예수 때에 70문도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새로운 이스라엘 창건의 기준을 중심삼고 그런 층의 가정적인 기대를 세워서 종족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그 종족이 합하여서 선을 중심하고 악을 굴복시켜 거기서부터 새로운 민족을 창건해야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를 창건해야 됩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창건해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통일교회의 무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에게도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배척해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혹은 별의별 욕을 다 듣고 사랑하는 그 누구도 뿌리치고 가야만 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이런 길을 가라고 내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탕감복귀를 통해서 개인 가정 종족을 중심삼고 복귀의 노정을 넘어갈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가정에 들어가 부모님을 전도할 때입니다. 선생님에게도 하나님을 잘 믿는 형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형님은 내가 누군지를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아버지에게도 이런 모든 얘기를 한마디도 못해 주었습니다. 자기의 혈족을 중심하고 먼저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혈족을 먼저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아들딸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물이 될 리 만무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딸, 사랑하는 백성, 사랑하는 민족을 쳐서 그들을 제물삼아 이 세계를 구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따르는 우리들도 우리의 혈족을 먼저 쳐 가지고 세계적인 제물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아량이 있어야 공의의 천지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17-197
여러분은 선생님의 동조자가 되어야 한다
선생님이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 식구가 아무리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나의 부모님이 하신 만큼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더 사랑해요? 자기 처자를 사랑하는 것만큼도 사랑하지 못한다 이거예요.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 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너더댓명 몫이 됩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공의와 천륜만이 남아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천년 만년 심판의 기준이 될 천법, 즉 만민을 위한 공의의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나깨나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 여러분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인가? 그런 공의와 공법 앞에서 승리할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같이 가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욕망입니다. 좋은 욕망입니까, 나쁜 욕망입니까? 「좋은 욕망입니다」 여러분들은 좋을지 몰라도 선생님은 죽을 지경입니다. 왜? 가야 할 앞길을 바라보기에도 바쁘고, 또 갈길은 세계적인데 여러분들을 위해 뒤를 돌아보아야 하니…. 선생님이 오라 해도 오지는 못하고 지쳐서 쓰러지고 죽어가고…. 선생님께 ‘선생님 빨리 가세요. 저희는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선생님의 갈 길은 바쁘시니 빨리 가십시오’라고 해야 할텐데 그렇게 하기는 커녕 ‘아이고! 저 살려 주십시오’라고 신음하며 아우성만 치니 선생님 가는 길에 지장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무리입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묻고 싶어요. 또 앞으로도 묻고 싶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는 사나이는 안 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길을 가는 선생님 앞에 여러분은 동조자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반대자가 될 것입니까? 동조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동조자가 되는 것이 간단한 것입니까?

선생님은 때때로 ‘나 혼자 남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내 갈 길 내가 가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협회장이나 그 누구한테도 절대로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하늘의 섭리를 선생님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자녀로서 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으니 그 책임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선생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다른 사람들을 세워서라도, 아니면 선생님의 자녀들을 세워서라도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다하여 승리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생각 저 생각 하느라 머리가 아주 복잡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정이 순탄하지 못하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하는 일에 동조하고 그 분위기에 화합하여 호흡의 일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뜻적으로 볼 때, 또 운세적으로 볼 때 복귀의 사명을 간접적으로 방조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일은 끝까지 해야 합니다.

17-198
완전복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역사의 한을 풀어 나가야 할 엄숙한 과제를 책임지고 미래의 복귀된 세계를 보여 주자는 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요전에 외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의 갈 길이 저렇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늘 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까딱 잘못하면 몇천 년 몇만 년 동안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솟구칠 날을 잃어버리고 한 순간의 고빗길에서 뒤넘이쳐지게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나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겠는가를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길을 가려면 여러분이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나 깨나 다짐하고 다짐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껄렁껄렁하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복귀되는 시기가 되면, 여러분들도 한번 확 불어 보면, 여러분들이 하늘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늘을 위해서 얼마나 맹세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말이 되며는 그때부터 선생님이 모든 사항을 세밀히 가르쳐 줄까 해요.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는 여러분에게 그 일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선생님이 먼저 하지 않고는 가르쳐 주질 않았어요. 선생님이 먼저 하고 나서, 선생님이 했으니 여러분들도 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때려서라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한테 맞아도 꼼짝 못하게 되어 있어요. ‘이녀석’ 하고 욕을 퍼부어도 선생님한테는 꼼짝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욕하고 때리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길을 닦아 놓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복귀의 길을 닦아 가자는데 못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끌고서라도 가야 합니다. 거꾸로라도 끌고 가야 하고, 말의 뒷다리에 매서라도 끌고 가야 합니다. 기진맥진하여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가다보면 참아버지와 참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는 본향 땅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러분을 때려 쳐서라도 참사람을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악이 선을 쳐서 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죄였지만, 선이 채찍을 들어 악을 쳐서 선을 만들 때는 선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철학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쳐야 되겠어요? 괜찮겠어요? 「예」 여러분들을 쳐도 괜찮겠어요? 「예」

선생님이 이 길을 가는 데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선생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생명을 걸고 찾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완전복귀했으면 좋겠지요? 완전복귀…. 그러려면 단단히 각오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요즈음 바쁩니다.

17-199
새출발을 하자
옛날과 같이 여러분들을 이끌어서는 안 되겠어요. 아주 호되게 이끌어야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젊은 아가씨로 보기로 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나 아저씨들도 젊은 총각으로 보기로 했어요. 선생님의 생각이 어때요? 좋지요? 김장로 좋아요? 「예」 하루에 백리라도 뛰어라 이것입니다. 왜, 그것은 싫어요? 일등으로 못 뛰더라도 뛰라는 것입니다. 어떤 선수가 올림픽 대회의 어떤 경기에 출전해서 그 선수가 꼴찌를 했어도 출전했기 때문에 올림픽 선수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를 들어 올림픽 대회에서 어느 코스를 뛸 적에 10년을 걸려 뛰고 있어도 그것은 뛰고 있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보면 시간이 됐다고 그 경기를 폐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0년이 걸려도 10년을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적인 폐회 규칙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사람이 결승점까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원칙적인 폐회 규약이기 때문에 10년이 걸려도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렇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즉, 뛰라는 것입니다. 10년 걸려서 뛰면 하나님은 10년을 기다려 줍니다. 그 사람이 10년 동안 뛰고 있으면 그는 10년 동안 올림픽 선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꼴찌지만 어떻든간에 뛰어서 결승점까지 가면 되는 것입니다. 열 번 넘어지고 열 번 뒤로 왔다갔다 하든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가게 되면 그만큼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박대하는 것이 실례예요, 실례 아니예요? 똑똑히 생각해 보세요. 실례예요, 실례 아니예요? 「실례 아닙니다」 그래요, 실례가 아닙니다. 초창기에 ‘뜻 앞에서 잘 뛰겠다’고 다짐하던 생각 안 나요? 그때가 좋았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발이 부르트고, 쫓겨 다니던 그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느때가 제일 좋으냐? 선수가 되어 뛸 때가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탈 때가 좋지요?

선생님이 늘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 사명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죽는 날까지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안 따라 오겠다고 하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단련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단련받기 싫은 사람은 미리 협회원서를 빼 가지고 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자던 잠을 깨고, 숙였던 머리를 뒤치고, 감추었던 모습을 드러내고, 한 일주일쯤 금식을 하고 새출발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

선생님이 여러분을 보면 딱할 때가 많습니다. 틀림없이 이렇게 가야 할텐데 그렇게 가지 못할 사정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사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을 당연지사라 생각합니다. 그만한 사정도 없다는 사람은 진짜 거짓이며 이단입니다. 여러분도 우리가 했던 일의 결과를 보아 나쁜 길로 오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 겁니다.

17-201
한 세계는 내려가고 한 세계는 올라온다
해를 보면 그 해가 어떻습니까? 올라가는 해는 더디고 내려가는 해는 빠릅니까?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똑같습니다. 그렇지만 한 세계는 내려가고 한 세계는 올라오는 것입니다.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밤을 거치지만, 그 해가 완전히 진 것이 아닙니다. 그 해는 지구의 반대편을 비치고 있는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내몰고 전부다 어둠의 세계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광명한 천주의 세계를 바라보고 대낮을 맞이하여 산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나간다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활보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돈을 못 모으고 있지만 앞으로 제일 많이 모을 겁니다. 두고 보세요. 이병철씨보다 더 많은 돈을 모으고 말 겁니다. 대한민국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아니면 세계의 거부들을 우리 뜻안에 들어오게 하든지…….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는 지금 보리밥도 없어서, 강원도 어디에서는 하루에 12원을 가지고 살고 있는 식구도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뜻을 위한다면 이 12원도 많다는 것입니다. 아예 하루를 금식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어디에 있어요?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는 줄 압니까? 우리 그물 안에는 세계의 어떠한 사람도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념적인 면에서 20세기 후반을 전성시대라 한다면, 선생님보다 더 높고 큰 이념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높고 낮은 데에 있어서는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인류를 한꺼번에 내몰 수만 있다면 세계 인류를 모두 그 그물에 몰아 다 걸리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는 비참해집니다.

좀 있다가 선생님이 자동차 한 대 사려고 합니다. 미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링컨 콘티넨탈을 사오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좋겠지요? 선생님이 그것을 타고 다니며 일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 해도 선생님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감옥 생활에서부터 이 길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러니 우리 식구들은 저 뒤에서 따라오는 꽁지니까 대가리만 따라오면 됩니다. 오다 보면 대가리는 낮이 되어 있어도 꽁지는 밤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꽁지는 몸뚱이에 달려만 있으면 언젠가는 낮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남은 굶는 데 나만 잘먹겠다고 그러지 않습니다. 지금은 잘먹을래야 잘먹을 수도 없지만 말이에요. 선생님은 지나온 30평생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고,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천만사가 다 그리웠습니다. 그리워하는 데는 가짜로 그리워한 것이 아니라 참되게 그리워했기 때문에 그 그리움이 선생님과 인연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그리움의 목적이 어느 한 날 기필코 세상에 공개되고 말 것입니다.

17-202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는 선생님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어느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선생님이 명령하는 대로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몰고 나가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중심이 어디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어떻게 만드는지 여러분 잘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원을 목적하시기 때문에 중심을 잡아서 못을 하나 박고 거기에 실을 묶어서 돌리면 굉장합니다. 그 실이 길면 길수록 세계 전체가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바로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을 위해 죽겠다는 사람, 비참한 생활을 하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비참의 과정을 거쳐 올라가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인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통일교인 중에서 잘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못사는 사람 중에 이것을 원망하고 왔다갔다 하며 환경에 지배받아 돌아서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좋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몰락하는 사람들이 남겨 놓은 좋은 자리를 그냥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부다 반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그저 몰림을 받으면서도 고개를 수그리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모르면 안 됩니다. 모든 만민들은 거의가 일시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여자들은 추울 때는 그저 온돌방을 찾고 마루바닥이나 돌짝밭 같은 것은 뭐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탕감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은 돌감람나무가 되고 반은 참감람나무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또 3분의 2는 돌감람나무가 되고, 3분의 1은 참감람나무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적으로 완전히 청산해야 하며 그것도 부족하면 자기 몸이 제물되어야 합니다. 그래도 부족함을 느껴야 할 것이 본래 정상적인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의 자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몹쓸 선생님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원수같이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등을 쳐먹지 않습니다. 절대로 빚을 지지 않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지만 선생님은 그 사람들에게도 빚을 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물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러는 것은 그 내면적으로 무엇인가를 다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리 자기가 그 무엇을 가졌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이면에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빚을 갚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갈 길은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를 하고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17-204
기 도
아버님, 존엄하신 아버님의 존전에 엎드려 기도할 적마다 기뻐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민망스럽고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아버님, 넓고 넓은 이 천지 가운데 저희 한국 백성보다 못한 민족이 없지만 아버님은 이 민족을 택하시었고, 수많은 인류 가운데 저희들보다 못한 자가 없지만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찾아오셨사옵니다. 철없이 굴고 있는 저희들을 백번 천번 보호하시면서 아껴 주신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아버지께서는 이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을 무조건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무지하고 철부지한 것들을 찾아 오셔서 감당하기 어려운 천지의 복의 이념을 저희들에게 부여하셨고, 남이 꿈도 꾸지 못하는 거룩한 은사의 터전 위에서 무한히 샘솟는 심정으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한 날을 갖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이 모두가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임을 느끼옵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어떻게 길러서 아버지 명령을 받드는 기수가 되게 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또한 찬서리 몰아치는 그 서글픈 지난날에도 참으시면서 복귀의 길을 닦기 위해 가셨던 당신의 길이 어떠하였겠는가를 생각할 때에 천만번 불초했던 과거를 다시 한번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당신이 넘으시었던 최후의 승리의 기준까지 쫓김받으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 무리를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세우시옵소서 .

자기의 모습을 굽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채찍질할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크나큰 뜻에 사무쳐 오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때에 저희들은 천만번 아버지 앞에 감사 또 감사, 찬송 또 찬송을 영광된 아버지 앞에 돌릴 길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때가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몸에는 역사적인 모든 더러운 누더기 옷을 많이 입었었고, 저희 마음은 하나님이 깃들 수 없는 치졸한 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에 따라 저희들은 어린 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고 어머니의 젖을 그리워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생명수를 그리워할 수 있는 본연의 자녀의 자리를 저희들은 찾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나라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망명자들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한 굶주린 공적인 거지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새로운 고향, 본향의 땅을 찾아 세우는 참된 것인 줄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은 잃어버린 본연의 가정과 본향 땅을 찾아 사탄에게 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탄이 틈타지 아니 할 천적인 복의 기관인 우리의 모든 상속권을 보태어 역사적인 원수요, 시대적인 원수요, 미래적인 원수인 사탄을 대하여 어떠한 어려움과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저희들은 복수하여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저희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여 충효를 다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망 가운데서 태어난 자식을 보고 탄식하면서 생명의 인연을 찾아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오니 이들이 흩어지지 말게 하시옵고,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 앞에 보람된 결과로써 수합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은 천만번 저희들을 부르고 있사옵고, 이 시간도 저희들이 가야 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가야 할 그 방향이 천태 만상이기에 찬서리길과 험한 바닷길도 걸어야 되겠으며, 혹은 원수가 방해하는 험난한 길도 거쳐가야 할, 인생살이에서 체험해 보지 못한 곡절이 있는 고빗길을 가라고 명령하시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고, 천만번 십자가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명령하심에 감사하면서 그 길을 고이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를 불렀던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생사를 걸어 놓고 담판 기도를 올리던 그분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골고다 산정에 승리의 팻말을 꽂고, 세상을 돌이켜 아버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시킬 수 있는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아버지, 이 백성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교단과 수많은 종교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남이 모르는 가운데에서 당신이 임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참다운 당신의 숨은 자녀들을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에,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한 곳으로 모으시어서 당신이 소망하시던 통일의 나라, 통일의 세계를 이룰 수 있도록, 그 길을 재촉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6년은 이제 기울어 가고 있사오니, 오늘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새해에는 7년노정과 더불어 빛이 될 수 있게 하옵시고, 힘찬 노력을 하여 안식의 세계에서 주인이 되겠다고 스스로 몸부림치고 아버지 앞으로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세계 만방에 널려져서 이곳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수많은 통일가의 형제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소망의 나라를 어서 속히 이루고 그들이 희망하는 세계를 복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역사적인 원수를 갚고, 시대적인 원수를 갚고, 미래적인 원수를 갚고, 온 인류의 원수를 갚아서 아버지 앞에 승리의 개가를 올리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 세계를 이룩하는 그들이 연약하거든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지쳐 있거든 강한 다리와 강한 무릎을 주시어서 적진을 향하여 달려가려는 마음이 용솟음쳐서 아버지 대신 달려가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날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우리를 부르고 있사오니,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참고 나가도록 역사하여 주시고, 그 싸움에서 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목적을 향하여 똑바로 정진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랍니다.

7년노정이 기울어져 가려 하는 이때에 있어서 당신이 이 민족과 이 세계의 새로운 역사를 창건함에 있어서 저희들을 부르시는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모든 것들을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고, 이 민족 앞에 새로운 본연의 터전을 만들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시간 말씀한 내용을 통하여 각자의 마음에 새로운 무엇을 결심하게 하시옵고, 인생이 귀결지어야 할 것들을 귀결시키겠다고 마음에 새롭게 결심하고 다짐하면서 스스로 생활을 개척해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아버님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