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0 to 17-156: 7년노정이 왜 필요한가

7년노정이 왜 필요한가
1966.12.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17-110
7년노정이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 우주 단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는 안식하시겠다는 구상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천지 창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7-110
천운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7수를 중심삼고 천지 창조의 여러 단계를 완성하려 하셨으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6천년의 성경 역사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종결시키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때든지 특별한 섭리과정을 새로이 정비하여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몇 년이 됐습니까? 만 21년 됐지요? 21년은 섭리상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21년이 지났기 때문에 국운이 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국제적인 모든 문제가 한국에서 벌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머리만 잘 쓰면 세계적인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천운이 돌아가는 데는 자기 멋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월성신, 춘하추동도 전부다 천리법도를 따라 돌아갑니다. 원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궤도를 따라서 그 순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법도에 의해서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의 일생을 보면 유아시대로 부터 소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넘어갑니다.

어제에 살던 나도, 오늘에 사는 나도, 내일에 살 나도 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무슨 차이나 간격 혹은 무슨 단계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모르지만 일생을 중심삼고 보면, 어떤 사람은 소년시대가 봄절기와 같은 운세에 처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소년시대에 부모의 혜택을 받든가, 특별한 환경의 혜택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청년시대에 봄절기로 출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요, 장년기나 노년기에 봄절기로 출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때는 다르지만 사람마다 봄절기와 같은 운세를 비롯하여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운세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한 계통으로 돌아가면 평등할텐데, 이것이 엇바뀌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춘하추동으로 돌아가는 데, 어떤 사람은 동추하춘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올라가는데, 어떤 사람은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것은 선악의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서 생애의 양상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분의 조상들 중에는 선한 조상도 있을 것이며 악한 조상도 있을 것입니다. 그 차이가 천태만상인데,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선은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요, 악은 내려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일에 대하여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올라가요 내려 가요? 좋을 때는 어떻습니까?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천지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대개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만 내려다 보고 다닙니다. 그러니 쪼그라드는 것입니다.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서 합니까? 발발기면서 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일이 있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어때요? 팔이 내려갑니까, 올라 갑니까? 올라가는 것입니다. 입이 벌어져서 동네방네 소문이 난다는 것입니다. 잠시 그러다 마는 것이 아니라 좋으면 손도 발도 계속 올라가는 것이요. 나쁘면 계속 내려가는 것입니다. 또한 선은 풀리는 것이요, 악은 묶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의 이치이기 때문에 역사는 그 궤도를 벗어나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상태가 360도 각도에서 45도, 혹은 90도로 벌어져 입체적인 형태를 갖추어서 부딪치고 부서지고 다시 만나고 하면서 천태만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임니다.

이 운행권내에 들어가서 자기의 입장을 자로 재어 그것만 들여다 보고 이 세상은 불공평한 세상이요, 악한 세상이요, 못 살 세상이라고 단언하고는 자기의 일생을 무의미하게 포기해 버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우주의 법칙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17-112
우주적인 인연 가운데 있는 인간
하루에도 춘하추동이 있습니다. 아침 낮 저녁 밤, 이것이 바로 춘하추동인 것입니다. 천지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일년 사계절 동안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법도에 따라 거기에 존속하는 모든 것은 그 혜택권내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올라가는 운세에 있는가, 내려가는 운세에 있는가를 보고, 조상의 공적을 타고났는가, 못 타고났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보다 3배, 혹은 그 이상을 수고하고 더 열심히 정성을 들여도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려갈 운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 내려가고 나서야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정성을 들이면 빨리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사람이 정성을 들이면 거기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정성을 들이면 급살맞는 일이 벌어지든가, 자기 아들이 죽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짐으로 해서 탕감이 빨리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운세에 있는 사람이 정성을 들이면 그 배가 되는 속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인데, 하나님을 사랑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하나님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를 점령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우주적인 인연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에 있어서 인간을 구원한다면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그냥 그대로 잡아당겨서는 구원이 안 됩니다. ‘너희들 지금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전부다 나를 잡아’ 하며 잡아당긴다면 어찌할 수도 없는 떨거지들이 딸려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들을 빼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다리부터, 어떤 사람은 머리부터, 어떤 사람은 옆구리부터 빼내야 하는 등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왜 빼내야 하느냐? 여러분 각자는 역사적인 배경이 다 달라서, 그것이 현생활무대에 전개되어 나타나는 현상도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일생에 각각 다른 곡절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복귀섭리를 한꺼번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역사 가운데에 어떠한 한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 복귀섭리 역사를 해 나오십니다. 복귀섭리를 하는 데에는 개인복귀섭리에서부터 가정복귀섭리, 종족복귀섭리, 민족복귀섭리, 국가복귀섭리, 세계복귀섭리, 천주복귀섭리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에게까지도 복귀섭리과정을 거쳤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말 처음 듣지요? 하나님에게까지도 복귀섭리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구원섭리가 끝나는 날까지, 즉 인류가 완전히 복귀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편할 수도 없고 기뻐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마음이 춤출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까지도 복귀섭리과정을 거쳤다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7-113
얽혔던 역사를 풀어야 한다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이날도 내 날이요, 오는 날도 내 날이요, 이 세계도 내 세계라고 하면서 영원무궁토록 기뻐하며 춤출 수 있는 그날이 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이 아무리 독소(毒素) 가운데 잠겨 있었더라도 그 독이 다 풀어져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우주는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 날, 하나님이 웃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 과정 속에서 시련과 도탄 가운데서 신음하는 이 인류를 붙안고 뒤넘이쳐 나오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심의 하나님이요, 근심의 하나님이요, 걱정의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께 우리의 사연을 호소한다 해도 그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해방권내로 옮겨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정성과 우리의 정성을 모으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해방을 맞자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지나 앞으로 창건할 천국에 대한 이념을 바라보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 천국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섭리의 목적이 되고, 타락한 인류가 지향하는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정성을 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성들이는 법도를 알아야 합니다. 삼강오륜이 기록된 유교 경전에 잘 쓰여 있습니다. 그런 사상도 다 정성 들이는 법도를 알려 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도 그 방향으로 섭리를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최고로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최고로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귀섭리의 과정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타락권인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그 소원이 무엇이냐?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벗어나는 데는 그냥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까지 얽혀 있는 역사를 모두 풀고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도 거기에 있고,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도 거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3분의 2가 역사서입니다. 왜그러냐? 그것은 얽혀 있는 역사를 풀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푸는 데는 개인적으로 풀어야 되고, 가정적으로 풀어야 되고, 종족적으로 풀어야 되고, 민족적으로 풀어야 되고, 국가적으로 풀어야 되고, 세계적으로 풀어야 되고, 천주적으로 풀어야 됩니다. 나아가 하늘땅이 함께 풀어야 됩니다. 그것을 다 푼 후에는 심정의 세계에까지 들어가서 해방의 원천을 만들어 놓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 도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사랑을 갖고 왔습니까? 심정의 세계를 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도리를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개인적인 심정의 터전을 어떻게 닦으며, 가정적인 심정의 터전을 어떻게 닦으며,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심정의 터전과 하나님에 대한 심정의 터전을 어떻게 닦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감추어져 있는 심정의 세계를 갖고 이 땅에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17-115
아리랑 고개는 탕감의 고개
젊은이들을 가만히 보면, 얼굴이 붉으스름해 가지고 높은 산도 한걸음에 뛰어 넘을 수 있을 것같은 열망에 벅차 있습니다. 그러면 눈 앞에 보이는 그 산만 넘을 것이냐? 모르는 사람은 저 산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산을 넘고 나면 또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을 넘어도 또 다른 산이 있고 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꼭대기에 다 올라갔다고 거기서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면 평지로 다시 내려와, 세계의 산맥을 향해 호령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잠을 자야 합니다.

잠은 꼭대기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맨 밑 평지에 내려와서 자야만, 그 사람은 모든 산정을 승리적으로 넘은 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산을 오르고 넘어서 골짜기에 있더라도 그 산을 주름잡고, 세계의 모든 산에 호령하더라도 ‘당신 앞에는 할말이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낮은 골짜기에 있더라도 세계의 모든 산을 정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갔다고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꼭대기에서 내려오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 말을 하느냐? 복귀섭리도 이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을 보게 될 때, 자기 나름대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한 고개만 넘으려 합니다. 그러나 간신히 그 고개를 넘더라도 그곳이 태평왕국의 성문을 앞에 두고 안식하고 환영할 수 있는 터전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 고개를 넘고 나면 또 다른 고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개가 지금까지 넘던 고개보다 좀 낮으면 문제가 안 될 텐데, 올려다 보면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고개, 두 고개, 세 고개를 넘었다면 그 다음엔 몇 고개나 남아 있을 것 같습니까?

한국 민요 중에 아리랑 노래가 유명하지요. 선생님이 아리랑 해설가는 아니지만 노래가 끝나는 부분에 사랑동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민요를 잘 모른다고 할 거예요.

삼천만 민족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개가 무엇입니까? 고개를 잘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개는 열 두 고개인데, 여러분은 열 두 고개를 넘었습니까? 넘지 못했으면 아리랑 고개나 불러요. 여러분은 아리랑 고개를 몇 고개나 넘었습니까? 아리랑 고개가 꼬불꼬불하다고 아리랑 고개입니까? 그것은 아리랑 고비이지, 아리랑 고개가 아닙니다. 그럼 넘어가는 데, 내려가면서 넘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삼천만 민중이 이 고개를 아직 못 넘어 봤다고 생각합니다. 몇백만이 수없이 불렀는지 모르지만, 거기를 완전히 넘어 본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넘어 봤습니다. 그것이 실례가 됩니까? 앞으로 그럴 수가 있다는 한국의 민요와 창은 참 잘 지어졌습니다.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보면, 복귀섭리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 예화(例話)가 잘 표현 되어 있습니다.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리고, 심청이가 부모를 모신 그 효성 얼마나 갸륵합니까? 이와 같이 앞으로 올 본연의 세계에서는 주님을 그렇게 맞이해야 하고, 참부모님을 그렇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하여 넘어왔으니, 넘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타락되어 그렇지만, 본래 인간은 산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덴 동산은 평지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수평세계의 불기둥과 같은 높은 산야의 꼭대기에 아담 해와를 지어 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바른쪽의 선한 곳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그들은 창조하지도 않은 무원리권내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처음 산정에서 출발할 때 잘 넘어갔으면 순리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했을 텐데, 처음에 잘못 넘어갔기 때문에 역리적으로 수고의 노정을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7-117
봄절기를 펴기 위해 오신 예수님
과거에 왔다 갔던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 역대의 수많은 조상들, 또한 세례요한이나 예수님, 그리고 수많은 기독교 순교자들도 이 고개를 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아직까지 그 절정에서 해방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냐? 주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그럼, 주님이 오실 때 어디로 오신다고 했습니까? 기독교인들은 감람산 꼭대기에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일 교회 식구들 중에 어떤 사람이 ‘주님이 어디로 오십니까? ‘하고 물어 보니까 ‘산으로 온다’고 대답하기에, 감람산이요, 백두산이요, 히말라야의 산이요, 금강산이요, 무슨 산이요? 하고 물으니 ‘부산으로 오신다’고 하더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도인이나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산과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내려올 때는 좋아서 내려올 지 모르지만, 올라갈 때는 지팡이를 짚고 생명을 걸고 올라가야 됩니다. 이런 천리적인 노정을 거쳐가야 할 길이 있기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시리라고 믿고 바라는 주님도 산꼭대기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실 때에는 어디로 오실 것인가? 평화와 해방의 노래가 울려올 수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날을 흠모하여 역사적인 곡절과 역사적인 탕감을 참고 견디며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개마루에 점점 더 가까이 올라가는 때가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주님을 맞은 사람들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고, 주님을 못맞은 사람들은 지옥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리랑 고개가 몇 고개입니까? 열 두 고개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리랑은 정말 잘 지어졌습니다.

일년에 열 두 고개를 넘으려면 한 달에 한고개씩 넘어야 됩니다. 일년이 회생춘(回生春)하기 위해서는 열 두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도 회생춘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세계에 새로운 봄절기를 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열 두 달의 모든 절기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인간 대표형인 12사도를 품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반대할 때는, 그들의 마음을 맞춰서 넘어섰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예수님께서 종노릇을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긴 이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예수님이 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없고, 탕감의 고개고개를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12제자인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역시 12진주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12진주문을 수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12사도를 찾아 세워, 중앙에 앉아 나를 모시라고 명령할 수 있는 위치를 결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17-118
기독교인이 넘어야 할 고개
종적으로는 그렇게 나오지만 횡적으로는 7단계를 거쳐 나와야 됩니다. 복귀노정을 보면, 예수님 이후에 7단계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래서 7년기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어떤 고개를 넘어가야 하느냐? 사랑의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좋은 것으로 나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고 대했다면 이 세상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합니다. 엇갈리고 올라가고 내려갈 때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모든 일에 대해서 공평히 대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절반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절반은 낮이고 절반은 밤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섞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선한 권내에서의 지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낮은 하나님이 지배하고 밤은 사탄이 지배하기 때문에, 밤을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기준에 세우기 위해서 성도들이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 청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정비를 하기 위해서 종교를 중심삼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려가면서 동원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오면서 성경으로 보아 6천년 동안 역사가 진행되어 나왔습니다.

복귀과정에서 하나님에 의해 세움받은 인간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복귀의 선까지 올라서는 데는 역사의 시발로부터 그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그와 더불어 사악한 인류가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외적인 역사부터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으나, 이제는 내적인 역사도 복귀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즉 안팎이 서로 대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좌익과 우익, 적과 백이 상대적인 세계가 되어 있는데, 끝날에 가면 정리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백(白)은 안전을 표시하는 것이고, 적(赤)은 위험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좌(左)는 그른 것을 표시하는 것이요. 우(右)는 옳은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천륜의 공법을 대하고 있는 존재세계의 모든 것들의 본심은 천법을 유린하고서는 본연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면 직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좌익· 적색주의· 흑색주의라는 이름을 갖고 나온 것은 그 이름 자체가 사실을 직고하는 표시체로써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실체 앞에 있어서도 이것들은 하나의 대상이 되어 민주세계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좌 우가 상응적인 좌 우가 아니라, 상극적인 좌 우로 되어 있습니다. 상응이 생기고 난 후에 상극은 벌어질 수 있으나, 상극이 생긴 후에 상응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천지 우주가 창조되던 당시부터 상응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상극도 존할 수 있으나, 만약 상극이 먼저 있었다면 상응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근본이 파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에 있어서 상응이 있으면 상극은 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방이 붙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 있어 가지고 -가 있으면 서로 붙을 수 있으나, 어느 한 쪽을 빼면 자기들끼리는 상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상응으로 출발했던 것이 아니고 상극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즉 상극적인 씨를 뿌렸기 때문에 상극적인 결과를 거두는 것이 자연적인 이치요, 역사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천리법도를 순리적인 법도로 맞을 수 있는 본성을 갖기 위해서 상응적인 자아를 완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상극하느냐, 상응하느냐? 상극일 때는 상응은 그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응으로부터 출발하면 상극은 존재할 수 있으나 상극으로부터 출발하면 상응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념과 행동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상극적인 사람의 종말은 파탄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서 생활철학으로 적용하면 인생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 원칙을 자기 생활에 응용해서 천륜에 맞춰 나가는 사람은 결코 천륜의 반역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천륜 앞에 순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17-120
상극을 피하고 상응 상화(相應相和)하라
도는 무엇이냐? 마음과 몸이 상응하는 것입니다. 선은 무엇이냐? 나를 중심삼고 이웃과 더불어 상응하는 것입니다. 평화와 평등은 모든 인류가 바라는 공동목표입니다. 그 세계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상응 상합(相應相令)할 수 있는 도와 진리로부터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진리는 무엇이냐? 하늘과 땅이 상응할 수 있고, 상하 고저 전후 좌우를 막론하고 입체적인 세계에 머무는 어떠한 존재와도 상응할 수 있는 원동력과 내용이 갖춰진 세계관과 인생관과 생활관을 가질 수 있는 주의만이 인류 세계의 종말에 남을 수 있는 절대적인 진리일 것입니다. 역사는 상응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고 상극으로부터 출발했으니, 이 역사는 파탄과 비애로 막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상응의 이념을 가지고 인류를 부르고 있는 하나의 절대자가 없다면, 인류 역사는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교의 이념을 인간이 알건 모르건 관계없이 이상의 한 날을 작정하시고, 메시아를 새로운 우주적인 상응의 주체로서 우리에게 보내시어,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 등 그 모든것을 능가할 상응적인 인생관, 상응적인 세계관, 상응적인 생활관을 새로이 세워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험난한 상극세계의 기원에서부터 역사 종말시대에 이르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출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사탄과 하늘과의 두 경계선에서 내가 하늘편인가, 사탄편인가는 무엇으로 결정짓느냐? 결정지을 수 있는 원칙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내게 상응할 수 있는 요소는 몇 퍼센트이고, 상극적인 요소는 몇 퍼센트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상응보다 상극이 1퍼센트라도 더 앞서 있거든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입이 그러면 입을 꼬매고, 다리가 그러면 다리를 자르고, 눈이 그러면 눈을 빼고, 손이 그러면 손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사람이 많은 어떠한 장소에 갔었습니다. 선생님 앞쪽에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사방으로 나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옆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보는데도 염치 좋게 머리를 긁는 데……, 정말 굉장하더군요. 그 손이 무엇하는 손이예요? 손가락을 보니 고양이 발톱 같아 가지고 가슴이 섬뜩했습니다. 여자들 손이 더 그래요. 조금 전에도 핏줄 얘기를 했지만, 독사의 핏줄을 타고나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돼먹지 않은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런 패들을 잡아 가지고 그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체내에 상응과 상극 중에서 어느 요소가 많으냐 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가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감정을 참지 못해서 난리를 치지만 그럴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새로운 무엇을 생각하는 뭔가 다른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복받기를 바라거든 상화상응(相和相應)할 수 있는 본질적인 요소를 갖춰 가지고 기도를 해주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고 못 가는 것은 자신의 생활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내것으로 하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 왔다고 전부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본질에 있어서 그런 요소가 얼마만큼 있느냐, 여러분의 선한 중량이 얼마만한 가치를 지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종교의 길을 가면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내것만 하나님이 좋아할것 같아요?

우리는 상극이 되었으니, 본래의 상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두 손의 등이 붙어 있다면 이 손이 상응이겠습니까, 상극이겠습니까? 서로 붙어 있으니 떼어 놓아야 합니다. 상응이 되려면 붙어있는 것을 꺾든가 부러뜨리든가 해서라도 떼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잘못 달라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도 달라붙었고, 가정도 달라붙었고, 사회도 달라붙었고, 민족, 국가, 세계, 그리고 그 문화와 전통까지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럼 누가 떼어야 합니까? 여러분들이 다 떼어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바란 것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백 퍼센트를 넘어 120퍼센트도 넘게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기의 소유를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하게 되면, 사탄권내의 사랑 이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데 있어서의 동기가 됩니다.

17-122
사탄권내를 벗어나려면
하나님은 최고의 것을 대하여 왔습니다. 상응은 최하에서는 없습니다. 최고의 기준에서부터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상응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자신부터 상응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최하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멸망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으니 사탄의 아들딸입니다. 그런데 사탄한테 아들딸 취급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다. 사람의 본성에는 사랑의 맛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사탄이 인간들을 아들딸로 취급하여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은 선의 자극을 촉구하는 것으로 나타나 그 사랑이 하나님에게로 빨리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랑하면 할수록 사탄을 멀리 하고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혈통적 관계에서는 타락한 인간의 아비의 입장에 있지만,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강제와 강탈 위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박탈해야 합니다. 사람은 선을 좋아하고, 사랑을 좋아하며, 평화의 안식처를 좋아합니다. 안식하는 것은 보금자리와 같이 포근한 자리로써 봄과 같은 곳입니다. 천지가 화합하는 그런 자리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사랑만 해주면, 사람은 사탄의 품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사탄에게 자식 취급도 못받고, 사탄의 종의 자식 취급도 못 받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어느 한 날 사탄 앞에 종으로 취급받아도 기쁠 텐테, 어느한 날 사탄의 양자로 취급받는 것이 소망중의 소망일 텐테, 어느 한 날 사탄의 자식으로 사랑을 못 받은 것이 한(恨)이라면 한일 텐데……. 악한 원수의 품에서 그런 정(情)도 못 받고, 그러한 사랑의 이념도 체험하지 못한 인간 앞에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처음부터 자녀의 사랑을 해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의 취급도 못 받는 인간을 종의 종 자리에서 하늘과 인연을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이 버린 것을 하나님이 취해다 종의 종의 자리로 인연을 맺어준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종의 종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이 은사야 말로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화입니다. 비록 종의 종이지만 여기에서 연단해서 사탄도 공인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탄도 ‘옳습니다. 그는 내가 아무리 분석하고 시험해 봐도 틀림없이 하나님의 종의 종 자리에서는 제일 가는 존재입니다’라고 공인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중심삼고 종의 단계로 올려서 종의 민족을 편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노아 때부터 이렇게 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종들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하여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전세계의 양심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대표적인 사람을 하나님이 공인하여 양자의 자리에 세웠을 때, 사탄도 ‘옳소이다. 그는 하나님의 양자가 응당히 될 수 있는 자격을 안팎으로 갖추었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종 중에서 양자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공인하는 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17-124
영육 합한 실체로 공인을 받아야
그 다음에는 양자의 인연을 중심하고 세운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를 보내셨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그 예수를 맞아서 하나 되었으면 자녀로서 접붙여지는 직계의 인연을 갖추었을 것인데, 예수를 몰라 보았기 때문에 양자의 인연을 신약복음이 대신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접붙이려고 해도 본 줄기가 없습니다. 본바탕 즉, 참감람나무가 없는데, 돌감람나무에 어떻게 접붙일 수 있겠습니까? 봄절기가 와야만 합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역사시대에 수많은 인류와 더불어 비참한 운명을 개척하며 참감람나무를 찾아 나오는 역사를 거친 것입니다. 참감람나무는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이 오면 그분의 진액을 받고 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 가지에 자신을 접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라서 접붙였다는 것을 사탄이 보게 될 때,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이 탕감조건을 제시했다가 사탄에게 걸려 넘어져서 지금까지 맺혀있는 역사적인 조건이 그 자리에서 전부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좋은 옥토, 포근한 보금자리와 같은 터전 위에서가 아니고 돌작밭과 같은 곳에서 접붙임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내용이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없는 본질과 본성의 내용을 갖춘 것으로, 새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증명서를 사탄에게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해주실 것 같으면 6천년 전에 다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 형무소에서 나오려면 판사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해 주느냐? 사탄, 사탄이 해준다는 것입니다. 공판정에서는 검사가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정에서 검사의 공인을 받지 않으면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공인을 받지 않으면, 즉 판사의 정당한 판결을 받았더라도 하나님은 ‘넌 내 아들이다. 내가 살려주마’라고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탄의 공인을 받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공인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사탄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가르쳐 주는 교회냐? 사탄에게 공인을 받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탄에게서 공인을 받되 영적으로만 공인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영육을 합한 실체로 공인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난 가운데 피땀을 흘리며 제단을 이끌어서 피어린 역경의 노정을 걸어온 기독교 역사가, 오늘날 영적 기준밖에 이루지 못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영육을 한꺼번에 완성할 수 있는 그런 천륜의 길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길을 가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끼리 밀고 나가도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아무리 잘났고, 뭐했다 하는 사람이라도 다 우스워 보입니다.

17-125
새로운 신랑 신부가 되어야
역사적인 배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섭리의 목적이 영육을 완성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이러한 특권적인 혜택과 역사적인 새로운 환경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손을 들고 나가 싸우다 매를 맞고 통곡하는 일이 있더라도 영육을 완성하는 일에, 사나이로 태어났다면 한번 해볼만한 일입니다. 여자로 태어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집을 못 가는 한이 있어도 해볼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통일교회 아가씨들이나 총각들을 보면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들로 생각이 듭니다.

종이나 양자로서는 새로운 천지의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출발을 무엇으로부터 시작했느냐? 악한 아들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즉 가인으로 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역사가 잘못된 아들로부터 출발한 것은 천리법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참부모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되기 전에 부부, 부부가 되기 전에 신랑 신부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비운은 신랑 신부에서부터 깃들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가 바라는 최후의 목적은 신랑 신부입니다. 우리는 신랑 신부의 이름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랑 신부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신랑 신부 이름을 결정해 가지고, 부부가 되고, 이어서 부모가 되어 새로운 부모로서 출발을 해야만 새 천지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아담 해와가 선한 신랑 신부로서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부부의 인연을 통해서 부모의 인연까지 나가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전부 깨어져 나갔습니다. 이래서 구원섭리는 자식인 가인 아벨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맞아야 할 역사의 출발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생애에 있어서 이런 비운의 역사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원통한 것입니다. 참지 못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조상 앞에 항의하고 원망해야 할 일입니다.

이로 인하여 역사적인 한을 품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역사의 한을 풀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 한은 우리 부모의 한이요, 우리 형제들의 한이요, 우리 민족의 한이요, 우리 나라의 한이요, 우리 세계의 한입니다.

아담해와의 한 날 한 실수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가 깨져 나갔고, 부모의 인연이 깨져 나갔고, 참다운 자녀,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 참다운 하늘땅이 깨져 나갔습니다.

우리는 이 비운의 역사를 짊어지고, 이 원한을 어떻게 풀 것인가? 복수 즉, 탕감함으로써 풀어야겠습니다. 탕감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내가 먼저 총칼을 들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모진 폭풍우여, 나에게 몰아쳐라, 모든 어려움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대결하여 결판을 내리라’ 이러한 결의를 갖고 나서서 역사를 심판하고 새 시대를 창건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다운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 역사의 인연에 되는 대로 끌려가면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교인 가운데 많습니다.

통일교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어 나온 것이 그러한 무리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신랑 신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되고 순수한, 순정에 불타는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약혼단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는 내 남편이요, 그녀는 내 아내라고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부부는 과거의 역사를 심판하고, 새로운 조상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엄숙히 출발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습니다.

17-127
새 역사는 참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도 그 길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것도 그 날을 찾기 위함이셨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새로운 기반을 닦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로 인해 새로운 자녀,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가 편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다시 와서 섭리해야 할 소망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날이 한꺼번에 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길을 전부 수습해야 되고, 종의 길을 수습해야 되고, 양자의 길을 수습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아들의 길을 수습해야 됩니다. 그러나 6천년 역사과정에서 모두 저끄러졌으니, 오시는 주님은 이것을 일대에 걸어서 역사적인 6천년사를 수습했다는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 참다운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이 땅 위에 참부모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 신랑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오십니다’라고 말하는 도둑놈들입니다. 그런 신앙 하려고 했으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런 길을 걸어 나왔겠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기도를 했습니다. 눈물 흘리는데 있어서도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고, 회개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했습니다. 또한 열의를 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의 열의를 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사람들이 반대하는 길을 왜 가느냐? 이 길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들춰보고 맞춰봐도 틀림없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정비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언제 한번 만나 보려고 합니다. 그때는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공갈 협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사람, 천리 공법 앞에 완전히 순응하고 상응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역사적인 소원이요,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도를 닦아 나온 사람들의 소원입니다. 양심의 기준을 중심삼고 투쟁하면서도 승리의 한날을 갖지 못한 것이 역사적인 한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때려 몰아서라도 여러분을 그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 앞에 공헌하는 것이요, 현시대 앞에 승리의 권한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천번 만번이라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유교 학당이나, 산중에서 도닦는 사람들이 정도령을 기다리며 선천시대니 후천시대니 하면서, 새로운 천지 부모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데, 천지 부모가 무엇입니까? 바로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느냐? 새로운 부모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천지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없습니다.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당신은 천지 부모요’ 라고 공인을 받은 참의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천지개벽은 되지 않습니다. 천지개벽이 되어야 거기에서부터 역사의 출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심정을 중심삼고 자라난 아들딸들이,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아담과 해와에 대하여 소망하셨던 그 심정을 지니고 일체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 대해 소망하셨던 것을 대신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아담 해와 대신 그러한 자녀들을 불러서 ‘만세의 축복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 심정의 혈통이 너희와 더불어 길이 같이 할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참부모가 이 땅 위에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신비의 신령세계에 들어가서 기도해 보니까 울려나오는 말씀이 ‘우주의 중심은 부자의 관계’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부자 관계는 모두가 사탄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애비 애미인 것입니다.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버지 어머니란 말을 두고 애비 애미라고 했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아버지 어머니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가 언제든지 농락할 수 있는 그런 애미 애비입니다.

17-129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가지려면
본래 부자라는 말은 본연의 아버지와 아들딸을 말합니다. 그러한 부자가 없으면 그 나라도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민은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 세계의 선진국가들이 추구해 나가고 있는 그런 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아무리 거적대기를 쓰고, 누더기 보따리를 짊어지고, 무늬가 바랜 해어진 옷을 입었을망정, 또한 천길 만길 구덩이에서 기진하다 나왔을망정, 타락한 인간은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배워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심정의 도리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에 접붙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 새끼로 태어났는데, 앞으로 심정에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버지 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자녀를 기르는 그 자리에서 접붙이면 안 됩니다. 아들딸을 낳기 전에 아버지가 장가가기 전에, 즉 어머니를 맞이하기 전에 아버지 뱃속에 씨로 있는 그때부터 심정에 접붙여야 합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승리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에요. 그런 것 아시겠어요? 여러분들은 껄렁패들입니다. 껄렁패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갔더니,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사람을 대단히 무시한다고 할지 몰라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천리 공법을 중심삼고 볼 때, 잘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껄렁패인 것입니다. 그 나라의 사회 제도를 모르고, 사회 풍조를 모르고, 상하 전후 관계의 모든 사실을 헤아리지 못하면 껄렁패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심정을 접붙여야 하느냐 하면, 아버지 뱃속에서부터 접붙여 가지고 아버지와 같이 살았다는 조건을 세운 다음, 어머니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 자라면서 아빠 엄마를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는 친척과 더불어 사랑의 인연을 맺고, 친척을 중심삼은 종족과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맺고, 그 종족은 민족과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맺고, 그 민족은 국가와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맺고, 그 국가는 세계와 더불어 심정적인 인연을 맺고, 그 세계는 하늘땅과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맺고, 그 하늘과 땅을 통해 하나님까지 심정의 인연을 맺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하지, 자기 자신만을 중심삼고 심정의 인연을 맺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타락한 세계를 복귀해 나온 하나님 앞에, 천주적인 인연을 중심하고 눈물지으며 몸부림치고 피땀 흘리며 생명을 걸고 뒤넘이쳐 나온, 갈보리 산상과 겟세마네 동산을 넘나들 수 있는 권한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부활의 권한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결정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여러분처럼 자기를 중심삼은 기도는 안 했다는 것입니다.

17-130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
주기도문의 맨 처음이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지요? 맨 처음에 아버지를 붙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붙들고 그 나라를 붙들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려와서 그 나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어느 민족보다도 세계를 위해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목적하는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려 세계가 하나 되면 그 범위 내에 있는 그 나라는 그저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맨 꼭대기에 가나 맨 아래 자리에 가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한다면 이런 사람을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요즈음 통일교인들을 가만히 보면 눈꼴사나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건질 수도 없는 패들이 많아요. 몇 사람이나 남아 있나 선생님이 한번 잡아채 볼 것입니다.

선생님이 통일교회 선생님으로서 바라는 최고의 남자와 여자의 표본이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모이게 하고 훈련시키고 하는 것은 그 표본에 접근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틀림없이 원본에 맞는 사본 같아서, 천륜의 공법 앞에 이것을 제시했을 때, 그것에 부합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공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동시에 사탄에게도 공인을 받아야만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놓인 인생행로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7년노정을 넘어가기 힘들지요?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의 인연을 거치고, 그 종을 통해 양자의 인연을 거쳐서 직계 자녀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중심삼고 복귀해야 하느냐?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되느냐? 예수님이 제자가 없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믿지 못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예요. 열 두 제자가 없어서 돌아가신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해서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유대교단이 불신해서 돌아가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돌아가셨느냐? 출발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어요. 즉, 예수가 신랑이라면 신부가 있어야 할 텐데 신부가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요. 없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물어 보세요. 안 가르쳐 주면 목을 붙안고서라도 물어보세요. 통일교회 문선생님 말이 틀렸나, 선생님은 다 알아보고 얘기합니다.

그런 것은 알지 못하면서 대학 교수나 학박사들은 세계적인 문제를 새로이 발견했다 하여 논문을 써서 제출하느니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볼 때 이것은 국민학교 정도의 수준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그런 일만 계속하면 역사적인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별수 없어요. 선생님은 자신을 가졌기 때문에 갖은 시련과 풍파를 잘 이겨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 민족은 교단적인 환영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종족적인 환영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국가적인 환영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승리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세우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섭리사에 한을 남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메시아가 오시기를 수천년 동안 고대하더니, 오신 메시아를 못박아요? 예수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감춰놓은 예물을 다 털어내서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받들어야 할 민족적인 사명과 책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몰아내고 핍박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대민족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서 2천년간 나라없는 민족이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히틀러에 의해 6백만 명이나 학살되었던 것입니다. 탕감법칙에 의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17-132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
예수님이 무엇을 하기 위해 남자로 왔겠습니까?

타락한 인간들은 자꾸 사탄의 자식을 번식해 놓고 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연장됩니다. 한사람 구하는데도 6천년이 걸렸는데, 이많은 사람들을 구하려면 수억만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독신생활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탄자식을 낳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다운 부모가 아직까지 아들딸을 못 낳아 봤는데, 결혼생활조차 못해 봤는데, 비원리적인 종족으로 태어난 무리들이 어떻게 부부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이 천륜의 법도입니다. 고차원적인 종교일수록 독신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치에 맞잖아요. 하나님의 자녀가 자식을 못 낳아 봤는데, 타락한 후손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어요.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그 자식들은 전부다 사탄의 자녀들입니다.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 열사라도 천륜의 법도로 볼 때, 그들은 전부다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상세계의 꿈을 가슴에 품고 새롭게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으로 안팎이 하나 되어 로마에 대항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예수님이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면 서로 가고, 바다로 들어가면 바다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 내가 죽고, 예수님이 슬퍼하기 전에 우리가 슬퍼하고, 예수님이 망하기 전에 내가 망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이 되었더라면 로마는 순식간에 정복되었을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역사적인 선물을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터진 위에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들은 그 선물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므로 수천년간 역경 속에서 역리적인 노정을 탕감하며 나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는 원칙인 것입니다. 이 원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마음속에 칼을 꽂고 항서를 써 바쳐야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도 사탄과의 싸움에서 영육 안팎으로 뒤넘이치면서 지금까지 기반을 닦아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뜻이 이루어질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념이 세계를 제패할 것을 선생님은 자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신생님이 바라보는 견지에서 통일교회 식구들, 특히 청년 남녀들이 갖추고 있는 기준이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에 얼마나 부합되느냐?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기에 제재를 가하고 모험을 해서라도 선생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안팎으로 갖춰질 수 있는 한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예」

17-133
7년노정과 21년노정
선생님이 해방 직후에 7년노정을 출발했을 때, 그 7년노정을 중심삼고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니 심각했습니다. 잘하면 이 나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요, 잘못하면 함께 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을 믿을 때가 올 것입니다. ‘아, 그렇 구나!’ 할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문선생을 몰아내려고 한국이 고민할 때가 올 것입니다. 7년노정 중에 기독교가 선생님과 하나 되었으면, 이승만 박사가 선생님과 손을 잡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7년노정 만으로도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에 있는 공산당들 다 없어지고, 이 세계에 있는 공산당들도 벌써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선생님과 이승만 박사가 손을 잡았더라면, 그것은 문제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훤히 알고 작전하는 것입니다.

극동에 있어서 일본이 저렇게 부흥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모든 자원과 부귀영화를 한국으로 가져올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작전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자원과 부귀영화는 일본 사람들이 가질 것이 아닙니다. 일본은 해와 국가, 즉 신부의 입장에 있는 국가요, 한국은 아담 국가, 즉 신랑의 입장에 있는 국가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7년노정 중에 무엇을 해야 했느냐? 가정적인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소원이요, 인류의 소원이요, 모든 도인들의 최고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래야 했듯이, 선생님도 하늘땅이 공인할 수 있는 부모의 출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출발은 이 나라 이 민족이 독립하는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 미국의 모든 자원을 우리 한국에 가져와서 삼천만을 고이 먹이고 입히는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복된 일이 아닙니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칙적인 기준만은 흘러갈 수 없습니다. 즉, 부모라는 조상의 기준은 흘러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처음 타락 전의 에덴 동산을 이 한국 땅에 새로이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편안한 자리에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안한 자리는 맨 나중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6천년 복귀역사를 통해 가장 참된 가정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맨 처음 에덴 동산에서 이루려 하셨던 그러한 부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교단을 위해, 종족을 위해, 민족을 위해, 누구보다도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7년노정 중에 이러한 기준이 세워져서 이대(梨大)교수와 기성교단이 하나 되었더라면, 미국은 벌써 내 계획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존슨이나 브레즈네프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선생님 계획대로 춤출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7년노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21년노정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21년노정에는 무엇을 하느냐? 재차 하는 것입니다. 재차……. 7년노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7년노정을 못 걸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과 같이, 선생님은 감옥에서부터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12제자를 잃어버렸으니, 이것과 마찬가지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영계를 동원하여 선생님의 제자를 만들기 위한 열 두 사람 이상의 사람을 선생님에게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말하지 않고도 그러한 사람들을 다 건졌습니다. 원수인 공산당원까지도 건졌습니다. 이래 가지고 선생님은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1960년까지는 무엇을 했느냐? 야곱노정과 같은 14년노정을 걸어 나왔습니다. 여러분에게는 7년노정이지만 선생님에게는 21년노정입니다. 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우리는 이 민족과 상봉할 운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반 3년노정 중에는 내적으로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시고, 후반 4년노정 중에는 외적으로 사회적인 기준을 세우시면서 7년노정을 맞춰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선생님은 가정적인 대표, 민족적인 대표, 세계적인 대표를 찾았다는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만물의 날을 설정하고, 그 터전 위에 세계적으로 성지를 책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문제가 있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든 간에 선생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볼 때, 이념적인 기준에 있어서 가인적인 이 민족이 아벨적인 우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와 있습니다. 관계 공무원들이 전부다 우리의 이념을 공인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때는 바야흐로 무르익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21년노정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 가정적인 기준과 복귀의 조건을 세워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종족을 편성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생님의 21년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요즈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성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운동을 펴고자 합니다. 야곱이 에서 앞에 가서 탕감복귀했던 것과 같은 조건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선생님을 반대하고 핍박했지만, 선생님만이라도 천리공법 앞에 걸리지 않고 뜻을 세우기 위해, 세계 교회를 위해서 지금 어떤 사람을 내세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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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노정은 자녀를 결정짓는 기간
선생님은 민족을 대해, 기성교회를 대해 책임을 다했습니다.

선생님이 우선 돕는 데 있어서 자녀들부터 도와서는 안 됩니다. 지역본부에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자금이 필요하면 공장에 문의하여, 구해서, 기성교회에 대해 야곱과 같은 조건을 세우고자 합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뜻이 이뤄집니다. 되지 않는다면 우리 원리가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식구들을 냅다 몰았는데 상대해 줄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 통일의 역군들 수고했다고 해서 식구들에게 생활기반을 닦아 줄 수는 없습니다. 식구들의 생활 기반보다는 교회가 문제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먼저 교회를 찾아야 됩니다. 국가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남한 각지에서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아벨적인 제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천 개의 교회를 세우려는 목표를 정하고 지금 비상작전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내적으로 외적으로 연장되기 때문에, 단 한푼이라도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전부가 이런 활동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구! 선생님은 왜 이런 일을 하시나’ 하는데 그런 사람은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7년노정은 무엇을 하는 기간이냐?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에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0세부터 공생애노정을 출발할 때, 요셉 가정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내적으로 예수님을 잘 받들었더라면, 예수님은 가정적으로 뜻을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은 어부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이종사촌으로서 형님뻘이 됩니다. 세례 요한과의 관계도 가정에서 이루어야 했는데, 가정에서 알지 못하여 뜻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을 가정에서 말할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가정을 통해서 출발했다면 세상도 모르게 뜻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요셉 족속을 중심삼고 사도들을 모아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종족을 편성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찌꺼기 같은 거지 떼거리를 모아서 사도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닌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아이구 사도여!’하며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생각하면 복통이 터져요. 베드로가 뭐고, 사도 요한이 뭡니까? 곡절이 그렇게 되어 있는 데…….

우리 식구들 중에 예수님과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만일 부인들이 통한다면 예수 오빠라고 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이해하지만 기성교회에서는 꿈도 못 꾸어 볼 것입니다. 예수 오빠라고 말하면 ‘아이구, 우리 주님은 온 우주의 구세주인데 예수 오빠라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니, 예수님과 우리는 한 형제이지 다를 것이 뭐 있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오빠 안될 수 없고, 형이 안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갖고 있어요, 안 갖고 있어요? 갖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기성교회 하나님은 의붓 하나님, 즉 양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 내 하나님이십니다. 내 하나님! 여러분에게도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7년노정은 뭘하는 기간이냐? 하나님의 아들딸을 결정짓는 기간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인 문제를 걸어 놓고 탕감해야 되고, 여러분들은 개인적인 문제를 걸어 놓고 탕감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선생님이 종적인 기준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횡적으로 붙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업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랑이 아닙니다. 기도해 보세요.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에게 빚을 많이 졌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충성해도 갚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십시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마디라도 입만 벙긋하면 아무리 시시한 사람이라도 귀를 쫑긋합니다. 선생님 말씀 한마디가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할수도 있습니다.

천륜은 용서가 없습니다. 그리고 공평합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여러분들이 긍정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기적입니다. 20세기의 기적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뜻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부모도 버리고, 처자도 버리고, 일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완전히 버리고 나니까 하나님의 은사가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완전히 버린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은사를 주시려고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신데, 그것을 못 보고 있습니다. 그저 바늘구멍만 좋다고 들여다 본다면 뒤집어질 것입니다.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7년노정은 뭘하는 기간이라구요? (남자들을 보시며) ‘하나님의 아들을 결정하는 기간입니다. ‘ 뭘하는 기간이라고요? (여자들을 보시며) ‘하나 님의 딸을 결정하는 기간입니다. ‘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이 결정되었다 하는 날에는 여러분 앞에 옛날 사도들이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가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마디 더 하고 싶은데 진짜 이단이라 할까봐 말 못 해요. 사도들이 여러분에게도 경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입을 쩍 다시는 거요? 좋아서 그럽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럽니까? 지금 좋아해서 무엇합니까? 남들은 다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서 구경하고 있는데, 혼자 미국가는 비행기표 들고서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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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성격과 풍부한 소질
7년 기간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기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21년동안 안중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나깨나, 먹으나, 눈만 뜨면 뜻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애기들을 사랑하는 것도, 가정을 거느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 때문인 것입니다. 그 뜻에 어긋나는 때는 선생님하고 원수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걸어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7년노정이 끝나면 선생님의 21년노정도 끝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21년노정에 동참하는 기간은 이번 한번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선생님 모습을 후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름이 자꾸 높아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주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습니다. 감옥에 집어넣고 죽으라고 꺼꾸로 세워 놓아도 안 죽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선생님 앞에 서면 선생님은 제일 싫어합니다. 어느 누가 역사 시대에 충성을 다했다 해도 선생님 앞에 서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한번 붙드는 날에는 ‘너 죽지 않으면 나 죽는 다’는 마음으로 일에 전념합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 선생님이 유순해 보일 때도 있겠지만, 눈도 조그맣고 코도 이렇고, 말도 빠른 사람치고 만만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아마 선생님이 이 길에 들어서지 않고 무엇을 해도 누구한테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장(長)이 안되고는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운동을 해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못하는 것도 3년 이내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또한 머리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소질은 그저 백과사전형으로 타고 났습니다. 이와 같이 선생님은 소질이 풍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로 태어나 몸도 이만하면 괜찮지요? 지금까지 복귀노정을 걸어오면서 남자로서 멋을 한번 제대로 못 내봤습니다. 종로나 명동에 가면 옷은 어느 것이 잘 맞고, 넥타이는 어느 것이 멋있고, 핀은 어느 것이 어울린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선생님은 안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선생님이 하는 대로 유행이 될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렇게 못해보고 죽으면 한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 귀물이 있으면 죽기 전에 하루라도 그것을 입고 달고 해서, 그것이 세상에서 최고로 유행했다는 조건을 세워 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귀물을 달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는 금반지도 다이아 반지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 둘 선물이 들어오면 보관해 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선생님이 이 땅위에서 그 한을 벗고 가지 않으면 후에 여러분들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살아 생전 여러분에게 신세지는 그런 조건을 남기지 않고 가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 노릇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어머니에 대해서 애기했듯이, 남의 부모 노릇하기 힘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하여 자식들에게 더러운 피와 악을 유전으로 남겨 놓고, 하늘 앞에 서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남의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여러분의 스승 노릇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욕을 하고, 뭘 해도 양심에 가책을 안 받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디를 가더라도,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선생님은 양심에 가책을 안 받습니다. 그 문제만은 자신합니다. 아버지 앞에 나서도 자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을 시킬 때도 내가 먼저 하고 시킵니다. 선생님은 양심에 가책을 받을 일은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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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노정 기간 중의 일들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있어서 7년노정은 선생님이 민족의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아벨적인 노정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이 동으로 가면 동으로 따라가고, 서로 가면 서로 따라가서, 여러분은 이파리가 되든 가지가 되든, 떨어지지 말고 부러지지 말아야 됩니다. 지금은 말랐을망정 부러지지 않는 가지와 떨어지지 않는 잎사귀의 입장에 세워 놓기 위한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7년노정 기간에 될 수 있으면 여러분 전체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이 기간에는 세계적인 사탄이 총집중해서 공격합니다. 그때가 1960년도 부터입니다. 그때는 대한민국 사람 전부가 반대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잡아 넣겠다고 14명인가, 15명씩 행렬을 지어 법원에 투서를 했습니다. 이렇게 전체가 반대하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합동결혼식 거행 때 식장이 수라장이 되어 경찰들이 와서 싸움을 말렸습니다. 대문을 걸고 밖에서는 아우성을 치고 난리였지만, 안에서는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런 결혼식은 역사이래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3년 동안 이 일을 하고 나니 꿈 같기만 했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누구만큼 계산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밑지는 장사는 절대로 안 합니다.

7년노정을 출발 할 때 ‘7년 후에는 이러이러한 때가 온다’ 하던 선생님의 말씀을 여러분들 믿었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완전히 자리잡아서 우리 뜻대로만 할 수 있게 되면, 공산당은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몇 년 이내로 김일성 그녀석을 ‘이 자식아’하면서 굴복시킬 수 있다고 봐요, 몇 년 이내 인지는 말 안 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겠습니까? 통일천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다짐해야 합니다. 중공하고 소련하고 갈라진다고 했지요? 다 맞았잖아요? 민주 세력도 둘이 되고 공산 세력도 둘이 되어 4대 세력으로 될 것입니다. 그때가 우리 때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통일천하라! 즉 통일 운세권내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때요, 7년노정이 잘 맞아 들어가지요? 실례지만 허리춤이 내려가서 추스려야겠습니다. 구미(歐美)나라에 가서 이렇게 말하면 큰일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미국에 가서 실례를 했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데서 한바탕 얘기하는데 자꾸만 허리춤이 내려 가더라고요. 그래서,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이게 내려 갔어요, 안 내려 갔어요? ‘ 하니까, 내려 갔다고 해요. 또 말하기 거북하지만 ‘올려야되겠습니까, 올리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 하고 물으니 ‘아! 그것을 올려야 됩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어떻게 했겠어요? ‘ 별수 있나요. 추스려 올려야지요. 그래서 허리춤을 추스려 올렸습니다. 미국의 전통을 깼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이말을 왜 하느냐면, 여러분들의 생각이 저 문틈 밖으로 빠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 이야기했어도 서론도 아직 안 끝났어요. 그러니까 갈사람은 어서 가요.

7년노정에 여러분들을 선생님이 왜 동원시켰느냐?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의 증명서를 받아야 된다고요? 검사의 증명서, 즉 사탄의 증명서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기 위해서 하란 땅에 들어가야 했고,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바로의 궁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도 사탄의 참소를 방지하기 위해 왕궁에서 태어나지 못하시고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때 벌써 80퍼센트는 탕감했다는 것입니다.

17-142
7년노정이 끝나면
하나님이 나그네와 같은 처지에서 섭리하신 것은 인간이 나그네의 행로와 같은 처지에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실의 실체를 대신하여 책임을 져야 할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도 복귀섭리에 큰 의의가 됩니다. 하나님의 제일 큰 축복을 받은 다윗의 후손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교단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못하면 제일 끝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이 끝나면 선생님은 가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선생님 가정은 지금까지 어느 기준을 중심삼고 그 울타리 안에서만 돌아다녔지,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들도 자리를 못잡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도 자리를 잡으면 안 됩니다. 자리를 잡고 살면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생활이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에서 대환란이라는 것을 우리의 40수 노정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섭리노정에는 어느 시대나 10고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끝날에 심판을 하기 위해서 7년 대환란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가야 할 노정 중에서 7년을 남겼기 때문에 끝날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7년을 남겨 놓았으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걸 상속받아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결정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했고, 유대교단이 책임을 못 했고, 거기에 속한 족장·사도들이 책임을 못 했고, 세 제자마저 책임을 못 했습니다. 또한 이 땅 위에서 신부인 한 어머니를 모셔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슴에 한이 사무친 것입니다. 원수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한이 아닙니다. 찾아야 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핍박받은 것이 한이요, 사랑하는 세 제자를 비롯한 열두 제자에게 배척받는 것이 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악당의 괴수인 우편 강도가 예수님을 인정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이방인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이 이방민족을 통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강도 한 사람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했느냐? 이스라엘의 모든 죄상과 악을 전부다 뒤집어 씌웠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뒤집어 쓰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그런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3년노정을 출발하여 전도를 나갔을 때, 나가는 곳곳마다 배척을 받았습니다. 배척 안 하던가요? 배척받을 때, 그것은 개개인의 배척이 아니었습니다. 민족 정기가 희미하고, 수많은 교회의 운세가 흔들리게 되어 있고, 우리 또한 가는 길이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배척하고, 교회가 배척하고, 만민이 배척하는 등 전부 배척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려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 사정으로 우리가 찾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는 성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고, 성지를 책정하여 그 성지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보다 복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것 생각해 보았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뭇가지와 풀포기를 붙들고 밤을 새워 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하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던 그 간곡한 심정과,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젖어 들어오는 애절한 마음에 가슴 태우던 그 심정을 누가 알았겠느냐는 것입니다.

17-143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을 해원 성사하자
여러분들이 이 민족을 책임지고, 세계의 운명을 책임지고,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 이 민족을 살려 주시옵소서. 새로운 제3이스라엘 민족인 한국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배반하고 핍박하는 것은 2천년 전의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했던 그런 심각한 자리와, ‘할 수만 있다면 이 민족을 살려 주시옵소서’라고 애원했던 예수님의 최후의 애절한 호소가 하나님 앞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렇게 호소한 것은 누구 때문이었습니까? 민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나 하나 살기 위한 것보다도 민족을 위하여 ‘아버지여! 할수만 있다면 이 민족을 사해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가야할 십자가의 길을 피할 수 있게, 여러분들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붙들고 통곡을 하면서 제사장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심정으로 하늘 앞에 ‘나를 내보내소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7년노정 중 6년이 끝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느 정도까지 충성을 해야 하느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아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산정으로 올라갈 때,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생사의 교차로에서 죽음을 맞아 나설 때, 예수님 앞에 나아가 ‘내가 그 죽음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하며 나설 수 있는 결의를 지금 여러분들이 가져야만, 실체를 쓴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 시켰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민족적인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곳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런 곳으로 가봐라! 하나님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을 그런 입장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쓰러지려는 찰나에 ‘아버지여! 한을 푸시옵소서. 이것을 제가 극복하겠습니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그러한 호소는 못하고 자탄하며 자기의 입장만 생각하고 미래의 갈 길을 염려하면서 몸부림치는,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한을 남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명령한 선생님이 잘못했느냐? 물론 명령을 한 선생님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잘못이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 노정에서 가다가 지쳐서 자기 개인의 내일을 꿈꾸고 염려하는 그런 무리가 되어,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칼에 쳐버릴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이냐? ‘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17-145
하나님의 아들딸로 결정되려면
7년노정이 끝나면 선생님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텐데, 그때가 되면 여러분은 그 부끄러움을 어디 가서 피할 것입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을 무엇으로 결정할 것이냐?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길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며 사망선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악당의 무리 앞에 자기의 몸을 성큼 던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반대로 열 두 사도는 자기 일신을 위해 스스로 도피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7년노정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내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 가정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내 종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뜻과 중심 앞에서는 모진 형극의 길이라도 달갑게 가겠다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서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 고난의 노정은 다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공장에 매일같이 다니면서 가만히 보니,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해서 노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세례 요한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세례 요한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면 선생님이 그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빚을 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쓰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벌어서 쓸 것입니다.

선생님이 계획하고 나오는 것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군을 할 때에 눈물을 흘려 가면서도 ‘하나님이여 이 민족과 같이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마음의 동지와 행로에 의지가 되는 그러한 사람이 없더라도 혼자 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위해서는 그런 노정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사랑하는 식구들을 고생시키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도망가는 제자들이 되지 말고 겟세마네 동산을 지키고 골고다의 산정을 지켜서, 생사를 같이할 수있는 제자가 되라고 여러분들을 내보낸 것입니다. 그랬더니 영적 사탄이 거세게 공격했습니다. 그때 일하다가 지친 식구들은 전부다 휩쓸어 버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직까지 선생님이 가정에 대한 결정을 안 내렸고, 7년노정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무서운 분입니다.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봤습니까? 비난과 조소를 받으며 골고다 산정을 가보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한이 무엇인지 압니까? 세 제자를 잃어버리고 열 두 제자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제자들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신부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신부의 자격을 갖춰 가지고 신랑인 예수님 앞에 가야 할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갖추지 않고는 신랑을 못 찾아가는 깃입니다.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려는 자리에서 12제자가 배신했고, 70문도가 배신했고, 이스라엘 전민족이 배신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세 제자처럼 죽음이 무섭다고 뒤로 도망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죽음을 넘어서서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겠다고 나서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 사람만이 아니라 열 두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해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탕감기금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은 가룟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의 몸을 팔았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전부다 그 조건을 걸어놓고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그 타락권을 벗어났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축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7년노정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결정하는 기간인데, 무엇으로 결정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해주는 것으로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못했고, 교회를 위해 충성을 못했고, 민족을 위해 충성을 못했으니, 우리가 나라를 위해 정성을 들이고, 교회를 위해 정성을 들이고, 민족을 위해 정성을 들여서 예수님의 한을 총괄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17-147
7년노정은 민족을 위한 것
선생님을 따라 이 7년노정 기간에 활동한 사람들은 대우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 노정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언젠가는 이 7년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7년노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7년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들어와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가 들어와도 그렇습니다. 7년노정은 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차 7년노정이 끝나면 2차 7년노정을 가야합니다. 원래는 7년노정을 출발할 때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아버지! 나는 이 복귀노정을 갑니다’ 라고 선서하고 가야 합니다. 그러고 난 뒤부터 7년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절대적으로 종의 종 입장입니다. 종의 종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먼저 나온 사람들을 전부 다 업고 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살아있는 사람이 되려면 뼈가 문드러져도 업고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 삼천만 민족이 이어나갈 전통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지시해서 7년노정을 가게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들어와도 미국 대통령이 들어와도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종의 종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변소 청소를 시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탕감이 빠르게 됩니다. 한꺼번에 7년노정을 총탕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반대의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겨울에는 모시옷을 입고, 여름에는 솜옷을 입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매일같이 굶겨 가지고 내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정하게 하면 할수록 그 사람에 있어서는 자체 탕감이 빨리 됩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이 어떻게 대해 주셨든 이 길을 뚫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맛보게 하여 어쩔 수 없게 해놓고 거꾸로 냅다 몰아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당당하게 지옥의 밑창에라도 가서 그곳을 점령하여, 그자리에 출구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은사를 주시기 전에 반드시 탕감의 침(針)을 주십니다. 6천년의 복귀역사가 그랬습니다. 7년노정 동안 통일의 역군들이 일을 잘하면 한국에 크나큰 서광이 비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하면 선생님으로서 실망이 대단히 큽니다.

7년노정에 있어서 자기가 입은 옷이 자기 옷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걸리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사는 집이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밥이 있으면 그 밥을 자기 혼자 먹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두형님을 모셔 놓고 그 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생, 장성, 완성급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두 형님을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더라도 새옷을 두 형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이 30이 넘도록 내 손으로 옷 한벌 못사입었습니다. 복귀섭리로 볼 때 삼단계의 세번째이기 때문에 형님들이 입던 옷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옷을 입기 위해 고물 상에 가서 사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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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자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옷을 세겹 입을 수 없습니다. 소생 장성 완성의 삼단계가 있기 때문에, 세 겹을 입게 되면 이 삼단계의 법도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세 겹을 못 입었어요. 입을 것이 있으면 남을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가르쳐 주면 여러분은 땅을 칠 것입니다. 7년노정이 끝난 후에 선생님이 가르쳐 줄 만한 식구들에게는 그런 법도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기성교회에서 많은 비판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머리로 생각하는 그런 권내에서 좌우되고 결정될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비판과 분석을 천번 만번도 더 해봤습니다. 그렇게 알고 6년노정을 마치고 7년노정의 고비를 넘어서야 합니다.

선생님이 빚을 지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탄 세계에 빚을 지고 넘어가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빚을 졌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에게 후원을 잘했더라면 선생님이 빚을 졌겠어요? 선생님이 사탄세계에 빚지는 날에는 문제가 큽니다. 이것을 어떻게 탕감할 것입니까? 원래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것을 전부 부담해서 여러분 각자가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설명 더 안 해도 알겠지요?

선생님의 가정에 대한 십자가는 지금 거의 넘어서는 단계입니다. 금년 양력 12월까지, 늦어도 음력 12월까지는 해를 넘기지 말고 선생님이 진 빚을 완전히 청산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빚을 3억 정도 졌습니다. 우리 통일교인 한 사람 앞에 한 50만원 이상씩 배당해서 부담시키면 도망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 50만원씩 탕감하겠습니까? 불평 않겠어요?

원래는 사업하는 것이 선생님의 주목적이 아니지만, 환경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선생님이 사업을 안할 수가 없어서 금년에는 비상작전을 썼습니다. 돈 한 푼 없이도 큰 공장 지어서 잘 운영해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사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역사상에 선생님이 처음일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 말만 잘 들었더라면 그 공장이 목표의 100~150퍼센트를 초과 달성했을 텐데, 말을 잘 안 들었기 때문에 70~80퍼센트밖에 안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안팎으로 조건에 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의 빚을 갚는 데 동원될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7년노정이 일년밖에 안 남은 때이니만큼 여러분에게 전부다 배당을 했습니다.

만일 집을 팔든지 하는 문제가 생기면 저 백사장에 가서 천막을 치고 자면 되지 않겠어요? 선생님이 그런 생활 안 해본 줄 아세요? 다 해봤습니다. 이불 한 채 갖다가 너댓 사람이 아주 다정스럽게 자니, 참 좋더구만. 자다 보면 다리가 입에 척 걸쳐 있어도 차버리는 사람 없고, 입으로 발가락이 들어가면 그것을 젖인 줄 알고 빠는 사람도 있어요. 정이 들면 그래도 좋다는 겁니다. 집이 있는 사람은 부부끼리 한 번 싸우면 침대를 둘을 놓느니, 방을 따로 쓰느니 하면서 말도 안 하지만, 천막에서 한 이불 덮고 자면 매일 싸워도 매일 합하게 됩니다.

17-150
열심히 하자
우리 통일교회를 판다고 가정해 봅시다. 교회를 팔아서 통일교회가 다 없어졌다고 소문 한 번 내보자는 것입니다. ‘아 청파동 통일교회가 큰 일이 나서 교회를 팔았대요’ 그러면 청파동 하면 통일교회를 생각하고 ‘에구’하던 기성교인들이 좋다고 얼마나 춤을 추겠어요. 춤추는 것 보면 좋습니까? 나쁘지요? 그렇다면 못 팝니다. 그래요. 교회는 못 파는 것입니다. 거지가 되어도….

그러면 무엇을 팔지요? 선생님 양복을 팔까요? 지금 갖다 팔면 십만원씩은 줄 것입니다. 일본에 가면 일본에서 해주고, 미국에 가면 미국에서 해주고, 독일에 가면 독일에서 해줘서 선생님은 양복이 많습니다. 이것을 팔까요? 양복은 많지만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공식석상에 그런 양복을 입고 나타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탕감복귀시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옷도 팔아야 되겠지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책임지겠다고요? 통일 교회가 이런 점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신세지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선생님이 하시는 일에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여러분의 돈을 다시 돌려줄 것입니다. 선생님도 비상작전을 쓸 것입니다. 빚은 선생님이 가만히 있어도 갚게 될 것입니다. 내용적으로는 빚을 안 졌습니다.

들어올 것이 다 들어오면 금년에 공장을 움직이고도 남을 수 있는 재산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빚을 갚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자금이 들어오지 않아서 돌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 시일이 바빠요. 시일이 바쁘니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지구장들이 완전히 결의를 했어요. 12월말까지 만약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하는 날에는 축복가정들은 천벌을 받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전부 다 동원해서 얼마 안 되는 빚을 다 갚아야 하겠는데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그래도 공장이 커서 물건을 만들고 있으니까, 여러분이 판매 요원으로 총동원해서 그 물건을 팔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팔지 못하고 다시 가져올 사람들은 처음부터 안 시키겠습니다. 그럴 사람은 가담하지 말아요. 못 해도 3년 고비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뜻을 좀 알고, 일을 놓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원리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만 가담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가담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왜 관계없는 사람을 시키겠습니까? 스스로, 괜찮다는 사람에 한해서만 가담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7년노정의 의의를 알겠지요? 모두가 넘어가야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과거를 생각할 때 옛날에 잘먹고 누구에게 환영받던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지지리도 억울하던 것을 생각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무개야 내가 있다. 세상이야 어떻든 내가 알아주니 걱정 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투쟁과정을 거쳐야 할 사명이 있었기에 그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길은 결코 쉽고 편한 자리에서는 갈 수 없습니다.

17-151
나라를 위하는 길
우리도 이러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 실력과 배경으로 자기들을 위해 살고, 자기들을 위해 사회에 생애를 바쳐 어떠한 결실을 맺었다 할 때, 우리는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기준 위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교인입니다. 알았어요, 젊은이들?

우리는 세계 국가를 대신해서 공산국가와 싸우는 데 희생되는 무리가 되기를 지망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반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공만 하면 뭘 합니까? 그러나 반공을 하지 않고는 승공이 나오지 않기에 반공을 한 다음 더 준비를 해 가지고 승공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공산당에 대해 공세를 취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이것을 위한 거국적인 단체를 조직하려고 계획하여 80퍼센트 정도 진척됐는데,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반대를 받게 되어서 지금까지 연기해 나오고 있습니다.

어렵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 단계를 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한국을 움직이고 더 나아가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를 움직여야 합니다.

아시아에 반공연맹이 있지요? 이것을 중심삼고 세계의 자유를 우리에게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지방관리에서부터 고급 관리까지 전부다 민주주의를 옹호할 수 있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시 노력하게 되면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중심삼고 워싱턴에 세계적인 반공단체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반공에 관한 다른 모든 단체를 전부 흡수하여 새로운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시켜서 반공 지도요원을 양성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없어요? 이런 경우 공산당인들은 노리쇠를 걸고 총 끝을 들이대면서 ‘예스까, 노우까? 하고 물어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산당원들은 지금까지 이중간첩으로 넘어왔던 사람들을 살려 준 적이 없습니다. 간첩으로서 2차, 3차까지 왔다간 사람들은 모두 죽이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첩보기관에서 비밀활동을 하는 요원들은 모두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을 대해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밥 잘먹고, 잠 잘자고, 치마 두르고, 양산 쓰고 싸우면 될 것 같습니까? 머리는 길어가지고…….

여러분 앞으로 머리 깎아요. 깎을래요, 안 깎을래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살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 사람 통일교 들어 가더니 달라졌구만’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딸이 전부다 희생됩니다. 선생님이 농담하는 것 아닙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싫어한다 해도 앞으로는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 도래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들에게 만나자고 하지 않아도 그들이 웃으며 찾아올 것입니다. 앞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공명정대하게 상대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우리의 적수가 안 될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어떠한 작전을 해서 물적자원을 색출해 내느냐 하면, 미국의 상·하의원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해방을 전후한 때부터 그날까지 통일교회의 책임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앞서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런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17-153
허리띠를 졸라매고
여러분은 편안히 잠자고 먹고 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4단계 배가운동이 필요합니다. 우리편의 사람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오해를 받든 어떻든 직행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과거에 활동했던 것을 다 씻어 버리고 이 7년노정이 끝나면 진짜 대공문제를 중심삼고 단체활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가 됐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단체 구성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분야에 기독교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기성교회와 같은 수의 교인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는 긴박한 국가문제라든가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지구장 부인들은 모두 애기를 둘, 셋씩 낳고 사는데, 애기는 전부다 남편에게 맡기게 하고 전도를 위해 전국 어디에 파송할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어떠한 비상한 대책을 세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크나큰 판국을 수습하기 위한 많은 인재인 것입니다. 수련과정을 통하여 철두철미한 사상으로 무장이 되어 힘과 패기를 갖춘 사나이와 아낙네를 하나님은 필요로 하시는데, 사실상 현재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우리가 갖고 있는 인적 자원은 극히 적습니다.

하나님은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흡수해서 책임을 지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당장 우리 이념권내에서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선택해서 제1차적인 책임부서에 다시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선생님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보따리를 둘러메야 하겠습니다. 여자들은 머리에 인다고 하겠지만 피난을 가는 게 아닙니다. 애기 보따리, 남편 보따리를 둘러메고 제2의 행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곳에 가서 그 사람들을 전부다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례입니까? 남자들, 생각해 보십시오. 실례 입니까, 아닙니까? 젊은사람들 어떻게 생각해요?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모두 생명을 내놓을 만큼 좋습니까?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껄렁껄렁한 자세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베베가 한국을 다녀갔지요? 이름이 아베베지 반벙어리는 아닙니다. 여러분, 아베베 봤습니까, 모두 봤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날 바쁜 날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잘 뛰나 일부러 가 봤습니다. 거무튀튀한 사람이더군요. 아프리카에 가면 그런 사람 많아요. 한 사나이가 달리기를 잘해서 세계에 이름이 나니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아는 사람은 세계에 없지요? 여러분, 아베베가 유명합니까, 문선생이 유명합니까? 누가 유명합니까? 외적으로는 그가 유명하지만 내적으로는 선생님이 유명합니다. 영계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모르는 영들이 없습니다. 영계에서 그런 자들을 선생님에 비한다면 피라미 새끼도 안되는 것입니다.

17-154
지금은 자극이 필요하다
앞으로 통일교회 청년들이 선생님이 말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깃발을 들고 어떠한 나라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을 때 그 나라의 국민들이 와서 살려 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면 여러분 좋겠지요?

옛날에 선생님이 싸울 때 웬만큼 맞아서 터진 것은 종이도 안 붙였습니다. 여기에 지금도 흉터가 있습니다. 학생 시절 여름에 친구하고 한강변에 가서 수면에 돌을 던져 튕기는 놀이는 하는데 친구는 여남은 곳이나 튕기면서 나갔습니다. 그것도 멋지게 하려면 여러 조건이 잘 맞아야 합니다. 돌도 잘생겨야 하고, 던지기도 아주 잘 던져야 합니다. 각도를 조금만 잘못 맞추어도 빵 하고 한 번도 안 튕기며 물 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또한 각도도 잘 맞추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잘 던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각도를 맞추어 가지고 던지다가 손 끝이 바위에 맞았어요. 이러니 물장난치게 됐습니까? 기분이 나빠서 피가 흐르는 손 끝을 한강물에다 자꾸 자꾸 한 40분쯤 씻어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있으니까 입술이 부르튼 것처럼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와이샤쓰를 찢어 가지고 자꾸 찍어 냈습니다. 여름이라 세 시간 내지 네 시간 지나니까 말라붙더니 며칠 후엔 다 나았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허리 부러진 호랑이입니다. 그렇지요? 가만히 앉아서 시켜 먹고 있거든요. 선생님이 무슨 대회를 해도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다 한 후에 나와 가지고 웃사람으로서 큰소리만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하니 사람들이 왈, 허리 부러진 호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모험을 아주 좋아합니다. 선생님처럼 이렇게 눈이 작은 사람이 겁이 없습니다. 대개 눈 큰 사람이 겁이 많다고 말하지요?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여자들은 예뻐 보이기 위해서 작은 눈을 고치느니 하면서 법석을 떨고, 어떤 이는 눈이 작다고 좌절하기도 하는데, 눈이 작은 사람이 모험을 좋아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편안히 앉아서 쉬는 걸 싫어합니다.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자극을 받기 위해 굉장한 일을 하든가, 침을 한 대 맞든가 합니다. 원래 선생님이 그런 선조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는 자극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바다로 가고 산에도 가고 해서 스스로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종교 책임자만 아니라면 대로 복판에 가서 한바탕 싸움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금방 이길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나쁜 의미의 자극말고 선한 의미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꼴찌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치도 싫어합니다. 20여 년 전 한국의 실정을 보면 공산주의자든가 민주주의자든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지, 회색분자들은 이리 저리 몰려 다 죽었습니다.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든가 아니면 통일교회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의를 하고 똑바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가는 데는 제일 빠른 길로 가야 하겠는데 그 길이 어느 길이겠습니까? 그 길은 김일성이 사는 주택이나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한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혼자는 안 됩니다. 동지가 필요합니다.

지금 뜻적으로 볼 때 우리의 제일 큰 원수가 공산당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대해 총칼을 가지고 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해야 됩니다. 고생해야 합니다. 수고를 해 가지고 세계적인 이념으로 고생했다는 전통을 세우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나,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는 실제 행동에 있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공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만 그들이 우리를 환영합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통일교회가 핍박받는 자리에서 움직여 나왔지만, 대중이 환영할 수 있는 몇 개의 조건을 세워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인들은 공산당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고생을 더해야 합니다.

17-156
기 도
흘러가는 역사의 와중에서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의 뜻을 따라가겠다고 할 수 있는 참다운 책임자가 없었던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핍박의 화살 가운데서도 당신의 사랑하던, 당신의 심정의 깊은 뜻을 논의하던 기독교 신자들이 얼마나 고귀했던가 하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 이 땅 위에 왔다가는 기필코 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공동노정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하나님을 찾아가게 될 때에 스스로 취해갈 수 있는 선을 갖지 못하는, 혹은 명예밖에 갖고 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남이 가지지 못한 보물을 갖기 위해서는 남이 거치지 않은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됨을 아옵니다. 눈물과 고충을 거치지 않고는 자기 기준을 높일 수 없음이 사회생활이나 피조세계의 인연을 통해 사실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공인하고 있사옵니다.

저희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역사의 전체를 대표하고 천주적인 가치를 대표하여 남아질 수 있는 보화로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함으로 청사에 빛날 수 있는 거룩한 효자의 이름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그것이 지극히 귀하고 가치있는 일인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기 위해서는 비장한 마음과 피어린 투쟁과 피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을 들인 것은 귀한 가치로써 받아질 수 있으되 공들이지 않은 것은 귀한 가치로써 받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통일의 무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고맙사옵니다.

한때 저희들은 삼천만 민족의 화살을 받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채찍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저희들에게 세상을 나쁘게 하는 무리라고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하면서 좁은 길로 몰아넣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당한 것이 원통하고 분한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아버지의 노고에 보답해 드리지는 못하고 천륜을 대신한 고귀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밟았사오니, 이 민족이 죄없이 당하시던 아버지의 그 일들이 저희에게는 참지 못할 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길이길이 참으시고 오늘날 저희들에게 명령하여 저희들을 배반하는 무리 앞에 새로운 봉화를 밝히게 하시고, 어둠길에서 헤매는 그들 앞에 당신의 사랑하는 사자를 보내셨사오니, 그런 당신의 사랑 앞에 저희들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욕을 먹고 매를 맞은 사람의 상처를 아버지의 손길 대신 어루만져 주고, 먹을 것이 없는 원수의 자식을 아버지 대신 먹여 주는 참다운 사람을 아버님께서 찾고 계신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의 무리들은 그러한 뜻을 따라 차가운 시대의 뒷골목을 밟아가며 남모르는 눈물의 길을 자처하고 나섰던 옛날의 고빗길이 있었음을 오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저희들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그 마음에 감격이 어리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살릴 수 있는 심정을 가질 수 있는 자신임을 아오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의 귀한 섭리에 남겨짐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가슴 가운데는 나무도 풀도 없습니다. 공허한 것 중의 공허한 것이요, 빈 것 중의 빈 것이요, 마른 것 중의 마른 것이옵니다. 그러나 한가지 갖고 있는 것이 있사오니, 그것은 ‘아버지’하고 부르고 싶은 마음,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 아버지를 모시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만은 하늘과 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 최후까지 그 전체의 가치가 되겠다는 마음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불쌍한 민족을 바라볼 때, 그냥 바라보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동맥에서 흘러나온 피가 저희들을 동하게 하여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고, 감정을 주관하여 그들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간곡한 자세를 가진 모습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그러한 모습들을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모습들을 품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재촉해야 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패망의 길에 있는 나를 품어 줄 수 있는 그런 주인과 그런 부모와 그런 책임자를 고대하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지금까지 패망의 길에서 낙오된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타락한 인류의 역사였사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가 가는 길이었음을 저희들이 알게 될때 그 뒤안길에서 친구가 되고, 상처 입은 발걸음을 저희들이 바로 고쳐 주어 하나의 패를 남길 수 있는 자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속된 것인가를 절절이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와 살고 있는 현시대의 내 자신을 놓고 볼 때, 이 손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내 심정은 무엇을 위해 허덕이고 있으며, 몸과 얼굴은 무엇을 향하여 나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민족이 부르고 있는 참다운 모습을 대신하기 전에, 과거를 비판하고 현실을 통탄할 줄 아는 참다운 하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을 알아, 저희들이 그런 아들딸이 되겠다고 얼마나 얼마나 다짐하고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 앞에 맹세했사옵니까? 그러나 저희의 가슴에는 찬바람이 감돌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사라져 버려 사탄세계에 처해 있는 처량한 모습이 되었으니, 하늘의 슬픔과 땅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 것이며, 하늘땅을 품고 싸워 나오신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터지게 아팠겠습니까? 저희들 이것을 망각하는 우매한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러한 길을 갈 적마다 당신 앞에서 한 많은 아버지의 역사노정에서 위로의 동참자가 되지 못하였던 지난날을 간절히 뉘우쳐야 되겠사옵니다. 통일의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그러한 자녀의 모습이 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라 부를 면목이 없사오니 이를 용납해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한 많은 역사노정에 있어 어느 곳에도 찾는 자가 없어 저희들을 찾아오셨으며, 남아진 어떠한 민족이 없어서 이 민족을 찾아오셨습니까?

상처받은 발걸음을 멈추어야 할 가엾은 아버지 앞에서 쓰러져가고 흩어져가는 외로운 민족이 있었사오니, 그 민족이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 눈물을 흘리시며 바라보아야 했던 그 상심이 얼마나 크겠사옵니까? 어린 것을 사랑해야 할 아버지의 마음, 이 민족의 처량한 모습을 보시고도 백번 천번 참아 오신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나이다.

저희는 그 아버지의 피와 땀을 받고 난 아들딸이옵고, 그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무리들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 이 민족이 사경에서 허덕이는 것을 바라볼 때 밤을 새워 지치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의 갈 길을 외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것도 각오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그 누가 뭐라고 하여도, 비록 저희가 초라한 모습으로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고, 그 길에서 낙망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염려하면서 남한 각지를 바라보시며 고뇌하시는 아버지의 그 일념을 저희도 함께 하게 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의 그 수고를 알아 아버지를 모셔 드릴 수 있는 저희가 되지 못할 때는 저희를 사랑하지 마옵소서. 다만 아버지께서 저희를 세워 칭찬하실 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녀의 날을 보내고 12월을 맞이하여 둘째 번 주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이 해도 이젠 20일 밖에 남지 않았사오니 지난 일들을 고스란히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할 이 때, 과거를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좀더 아버지 앞에서 고뇌하며 마음졸이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재창조의 부름을 그리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한날을 위해 오늘도 곤경에서 과거에도 해산의 수고와 피나는 운동이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줄 아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해 놓고 ‘아버지, 영광받으시옵소서’할때 아버지께서는 대성통곡하실 것입니다. 그날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날을 향해 달음질치겠다는 저희들의 이 결의가 변치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민족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옛날에는 받고 의지하던 민족이었지만 이제는 주고 지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사오니, 이 책임을 지고 세계 만방에 흩어져야 하는 민족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들에게는 환경적인 지도와 생활적인 지도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서 이날을 기념하며 예배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으나, 스승을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들을 헛된 자리에 두지 마옵시고 그들의 마음이 충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천적인 인연이 감돌고, 생명이 싹틀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내 아버님,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모든 전체를 당신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싸움길로 향하기 위해 저희들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며, 다시 만날때 하늘 앞에 드릴 귀한 선물을 남기겠다고 노력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은 은사의 노정도 당신의 뜻 가운데로 승리의 한날을 택할 수 있는 노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