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 to 17-68: 새로운 7년노정을 맞을 준비

새로운 7년노정을 맞을 준비
1966.11.06 (일), 한국 전본부교회

17-07
새로운 7년노정을 맞을 준비
[기 도]

이날은 1966년 11월 6일, 이달 들어 첫번째로 맞이하는 안식일, 아버지가 소망하는 새로운 날이옵니다. 아버지, 역사의 슬픔을 책임질 사람이 없사옵니다. 그 슬픔은 하늘의 슬픔이 아니라 땅의 슬픔인데도 땅 위의 인간들은 그 슬픔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기에 아버님만이 책임지셔야 했습니다. 또 악을 대하여 싸워야 할 무리가 땅의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싸움을 아버지 홀로 책임져 오신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제, 아버지의 그 슬픔을 대신할 수 있고, 아버지가 싸워 나오시던 그싸움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고, 당신의 심정이 얼마나 애달프고 처량한가를 생각하게 될 때, 마음 졸이면서 아버지를 부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자인하게 하시고, 하루를 일년으로, 일년을 10년 혹은 일생으로 생각하면서, 그 싸움앞에 맹세의 실체로 나타나야 할 무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든 통일의 역군들인 것을 자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비참한 길을 찾아나섰고, 슬픈 길을 따라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러하시기에, 아버지의 심정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천륜의 인연을 가진 무리로서 아버지의 가신 곳을 따라가기 위해서, 아버지가 계신 곳에 살기 위해 아버지의 사정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란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가 바라시는 이념의 터전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그것이 천륜의 원칙인 줄 알고 있사오니, 이 길을 가려 하는 저희들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역사노정의 비참한 와중에서도 스스로 탄식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뿐만 아니라 역사가 생긴 이래 줄곧 아버지는 그러한 아버지이셨던 것을 저희들은 잘 아옵니다. 지난날 그런 사정에 처하셨어도 슬픈 마음을 억제하시던 아버지의 그 사정을 놓고 통탄할 줄 아는 한 개체, 그 심정을 알아 주지 못하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소원의 한 개체를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의 아픈 사정을 생각할 적마다, 이제 저희들은 그런 사정 앞에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서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모임을 이루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저희의 팔이 힘을 다하여 그 책임을 위해 노력해야 되겠사옵고, 저희의 발이 모든 기운을 다하여 움직여야 되겠사옵고, 저희의 모든 정성을 다바쳐야 되겠사오며, 저희의 몸이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 앞에 실체적인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십자가의 길이 아직까지 저희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새로운 안식일을 맞아 이 한달을 아버지 앞에 맡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또 몸부림쳐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슬픈 길에 있어서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습니다. 절망의 첨단에서도 하늘을 향하여 정진하고 아버지의 심정을 사모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당신과 저희의 인연은 끊을 수 없고, 또 그 누구의 사정이 아무리 딱하다 하더라도 당신의 사정을 능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의 생활에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 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만족과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부를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흩어졌던 당신의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또한 이 자리에는 오지 못하였으나 이 청파동 교회를 사모하는 사람들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모하고, 진심으로 흠모하고, 이곳이 아주 귀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앞에 오늘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말씀으로서 그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자극을 일으키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악한 세상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의 원천을 폭발시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먼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르거나 먼 자리에서 아버지와 의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사상이요, 통일교회의 절개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라 부를 때 그 아버지는 저희 마음 가운데서 대답하시는 아버지였고, 저희 생활에 방패가 되시며 또한 충고해 주시는 아버지인 것을 깨달을 줄 아는 자식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저희가 그러한 것을 망각하는 자리에 있거든, 이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마음을 졸여 가면서 다시 한번 회개하고, 불효자의 그 모습을 다시 한번 아버지 앞에 폭로시키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역사의 흐름이 저희들로 인해 곡절의 인연을 맺게 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아버님으로 하여금 기쁨의 씨를 뿌릴 수 있는 한 터전으로 삼아 주신 아버지의 노고 앞에 이 시간 다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작정하고 나선 7년노정 중 6년이 지나고 7년 고비를 맞이할 날이 목전에 다가왔사옵니다. 이런 위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때, 저희의 이 자체로서는 아버지 앞에 설 수도 없고, 그 무엇을 거두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시어 저희의 마음과 몸과 생활에서 친구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날들도 기쁨과 더불어 저희의 생활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심정 생활에 있어서 아버지와 더불어 동거할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의 터전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만만세의 영광이 아버지와 더불어 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7-09
말 씀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7년노정을 각오하고 나섰을 때의 우리의 입장과 오늘 이 6년노정을 지낸 현단계의 우리의 입장을 비교해 보면,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여러분 자신의 신앙생활을 통해서나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실을 보아서 잘 체험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지금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지중하며,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가를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제1차 7년노정이 끝난 후에는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해야 한다는 것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17-10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일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 세워 나온 이 7년노정을 통해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느냐 못 되느냐, 효자 효녀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을 통일신도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다 아는 사실입니다. 효자나 충신은 즐기며 사는 뭇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입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명칭입니다. 즉, 평범한 환경에서는 참다운 충신과 참다운 효자가 나올 수 없으며, 지극히 어렵고 비참한 환경에서만이 그 이름이 크게 빛나고 역사에 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날의 역사를 미루어 보아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7년노정을 걸어감에 있어서 여러분 모두는 오로지 본향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요, 본향의 부모를 모셔야 할 것입니다. 또 본향의 부모를 모신 자로서 본향의 나라를 창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절감하면서 가야 할 노정이 7년노정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국가를 잃어버렸고, 억천만세를 지내더라도 유린당할 수 없고 침범받을 수 없는 참다운 본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 본향의 세계를 사탄에게 유린당했는데 이 본향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 역사인 것입니다. 그 역사과정에서 우리 선조들은 슬픔의 곡절 가운데, 혹은 통곡과 절망 가운데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알고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슬픔을 안고 타락의 후예로 태어난 우리는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이 시대에 있어서 이 악한 세상을 그냥 그대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이어나온 후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통일신도들이 얼마나 지난날의 역사를 대신하는 자리에 섰고, 시대를 책임진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맹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처해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통일교회, 여러분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 혹은 우리 교회라 하고 우리 식구라 하고 있는 그 교회와 그 식구가 지금 이 땅에서 백 퍼센트 이상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느냐 할 때, 또 그런 명사요 그런 입장이냐 할 때, 그렇다고 하기에는 하나님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고, 선생님 자신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그렇다고 긍정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환경 가운데 모든 나쁜 여건을 제거시켜 버리고, 일편단심 마음을 가다듬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시대적인 요구요, 이 민족 앞에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17-11
다시 통일의 무리를 내세워야 할 하나님의 사정
1966년을 다시 한번 회고하여 볼 때, 이미 열 달이라는 기간이 지나갔습니다. 이 해에 우리는 4단계 배가운동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섰었습니다. 그 목표했던 우리의 계획은 무난히 돌파되리라 봅니다. 어떤 지역장과 지구장은 여기에 대해 너무 자신을 갖고 있고, 거두어지는 협회원의 수가 많은 것을 염려하는 무리도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수고하고 여러분들이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시대에 접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6년 동안의 우리의 수고가 얼마나 컸으며, 우리의 노고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보답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느냐는 것을 염려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까지의 우리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어떠한 개인이 일조일석에 패가망신하는 자리에 들어갔을 때, 이것을 재건하고 회복하기 위해서도 십년 혹은 생애를 거쳐도 안 되는 것을 보는데, 이 엄청난 역사적인 목적, 즉 섭리의 크나큰 문제를 걸어 놓고 볼 때, 우리들이 실천해 나왔다는 수고와 노고는 지극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적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오직 하늘만을 위하여 충성을 해야 되겠고, 하늘을 위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린 사실, 자기 홀로 정성들인 것이 아니라,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을 부여안고,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호소하고 눈물을 흘리고 또한 핍박과 조롱받은 사실들은 씨가 되어, 그 뿌렸던 본인들은 사라졌을망정 그 결실은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수확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즉, 환경이 우리들을 맞이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뿌려 놓았으면 뿌린 그것을 우리 스스로 가꾸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가꾸어 왔느냐 할 때,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자타를 막론하고 책임을 못한 것입니다. 이만한 결과, 이만한 환경의 변천, 이만한 세계 정세를 만들어 나왔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들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책임지셨습니다. 그야 말로 95퍼센트의 책임을 완결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종말시대에 하나님은 전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하신 역사 이상 절박한 책임감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노정의 95퍼센트, 즉 하나님이 책임져야 할 백 퍼센트의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을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삼천만이 하나님을 맞이해서 따로 여러분을 부르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 이 민족 가운데서 다시 누구를 불러 세워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입을 수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책임을 질 수있는 사람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림에 절고, 피에 절어 하나님의 심정에 동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데, 이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4년 이상의 연한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면서도 수고한 무리들을 뒤에 세워 놓고, 다시 몰려드는 삼천만 민족 가운데서 그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책임자를 선발해야 하는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알아야 됩니다. 즉, 여러분의 고생의 상처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상처 입은 여러분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삼천만 민족을 향하여 외치는 무리로 다시 뒤를 돌아보고 상처 입은 아들딸, 즉 수고한 통일의 무리들을 내세워야 하는 하나님의 절박한 심정을 여러분들은 느끼고 알아야 합니다.

17-13
가장 귀한 내 자신
세상에서 지극히 귀한 것이 무엇이냐? 금은 보화도 아니요, 세상의 명예나 권세도 아닙니다. 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건 자기 자신,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귀하다는 보장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할 때는 답변을 못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갖추어야 할 바는 갖추지 못하고도 마음으로는 만천하 앞에 자신을 최고의 가치적 존재로 인정시키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관념을 넘어서 가장 귀한 내 자신을 남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느냐 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으면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의 아들딸로 태어난 여러분은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천운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 앞에 보조를 맞추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명을 짊어지고 여러분이 선두에 서서 7년노정을 달음질쳐 온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민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세계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 어떠한 상대적 존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주체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내 자신이 무한히 귀하고, 내 자신이 무한히 보배로운 것이기에 내 개체는 보배로와져야 합니다. 내 개체가 보배로와지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환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금은 보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주인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만민이 그 가치를 인정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을 흠모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귀한 내 자신을 두고 다시 한번 여러분들이 생각하지 앉으면 안 될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성인군자 혹은 위대한 선조들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선각자로 서야 할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만민이 공통으로 느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자체를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17-14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 자신들은 얼마만한 가치의 내용을 지닌 나냐?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이 우주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보화가 되고, 진정한 보물이 되었다면, 그 보물은 하나님도 그리워할 것이요, 왔다 가신 예수님도 그리워할 것이요,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천천만 성도, 역대에 제아무리 스스로를 세워 가지고 만역사 가운데 있어서 그 전통적인 사상을 남긴 그 누가 있다 하더라도 그도 역시 그리워할 것입니다.

지난날 뿐만 아니라 현세의 이 만민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 가치를 동경할 것입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는 보화가 자기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 심각히 생각했습니다. 그는 시대를 잃어버리고 자기가 있는 지상 위의 생활에서 전부다 배반당하는 자리에 섰어도, 무엇을 줌심삼고, 즉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참을 수 있었는고? 그는 누구보다도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자기가 역사시대 앞에 지극히 귀한 보화,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어떤 이념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나를 숭앙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무엇을 갖추었으므로, 그 무엇이 공격하더라도 공격당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보배로운 그 가치를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는 자리에서도 자기 자체를 부정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 볼 때, 과연 내 자신은 귀한 존재냐?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냐 할 때, 여러분 얼마나 귀해요? 한 사나이면 사나이를 두고 볼 때, 그 전후좌후에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고, 친척이 있습니다. 친척을 연결시켜 민족과 국가, 국가를 연결시켜 세계 가운데 동참하게 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생활해 온 사람들은, 예를 들어 가정을 책임진 사람들은 가정으로서는 가치의 존재가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사회 앞에서는 가치의 존재가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 시대 앞에서는 가치의 존재가 못 되었다는 거예요. 그 세계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의 존재도 못 되었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했느냐? 그 시대에 있어서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 앞에서는 가치적인 존재가 못 되었고, 그 사회와 그 시대에서는 다 부정당했지만, 후대로부터는 환영받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그것은 그때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가 참되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정당했다고 하는 것은 긍정받을 수 있는 인연을 내포한 부정입니다. 그러니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부정한 것은 자연히 흘러가고, 참의 가치만 남아지는 것입니다. 한 시대에 부정을 당했던 예수님은 역사시대를 다시 점령할 수 있는 인연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17-15
참다운 가치는 무엇이냐?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해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뭘 하겠습니까? 자기 전문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졌다고 자랑하는데 그래서 뭐 하겠습니까? 그 분야에서는 만민으로부터 영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사방팔방에서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외적인 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선생님은 과거에 이러한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참다운 가치, 만민의 심정과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참다운 가치는 무엇이냐? 참다운 보화라는 것은 구경만 하고 바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인이 그 속에 들어가 그 보화를 뒤집어쓰고, 그 보화 가운데 잠겨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보물이 뭐냐? 이 보물은 이 세상의 외적인, 물질적인 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도의 길이라는 것은 사랑을 표준삼고 맞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실정을 가만히 바라보면 과연 여기에서 그러한 나의 가치를 세울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면 이 세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 시대는 최선의 자리에서 공의의 법도를 가지고 정의의 공판정에서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절대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악이 만연하여 선을 사로 잡고 있는 시대요,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농락하는 이런 시대요, 우리가 백퍼센트 참다운 가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좋은 세상이냐, 나쁜 세상이냐 할 때 나쁜 세상입니다. 또 기쁜 세상이냐, 슬픈 세상이냐 할 때 슬픈 세상입니다. 또 행복한 세상이냐, 불행한 세상이냐 할 때 불행한 세상입니다. 불평불만이 가득찬 세상이지 감사와 만족과 행복 가운데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전부다 반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듯 절망적인 현실에 반대되는 입장에서 이것을 점령할 수 있는 책임적인 권한을 이 지상에서 무엇으로 보충할 것이냐? 지금까지의 윤리, 도덕, 국가의 헌법, 어떤 국가의 체제를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역사의 변천과 더불어 새로운 목적을 향해 역사는 발전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것을 정복하고, 무엇으로 이것을 점령할 것이냐?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격퇴시키고 박멸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지녀야 할 참된 본성, 보화 중에 보화인 그 자체를 지니고 있다면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불행의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자기의 본성의 가치를 잃어버렸고, 하나밖에 없는 참다운 귀한 본성의 자기 인격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보충하여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살펴보면 대개의 종교가 메시아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17-17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
그러면 메시아란 어떠한 분이냐? 인간의 무한한 가치, 무한한 보화를 지닐 수 있는 그런 인격을 재현시켜 가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하늘땅을 주관하고,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비준과 측량의 위치를 재선정하고 나서 인간 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갖고 오는 것은 기쁜 것, 좋은 것,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슬픈 것, 나쁜 것, 불행한 것만이 있습니다. 좋은 것, 기쁜 것, 행복한 것, 감사하는 것, 만족한 것은 하늘의 것이고, 나쁜 것, 슬픈 것, 불행한 것, 불평 불만하는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내 자신이 지금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탄이 침범하는 거예요. 이런 자리에서 항상 주의하지 않고는 하늘 편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스스로 보화의 자기 자신을 찾는 것보다도, 보화 자체에 침범해 들어오는 사탄에 대한 방위태세에 급급해야 하는 자기 자신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선 이 환경적인 방위를 하라, 사회 생활을 잘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남들과 같이 잘 먹고, 잘 살면서 활동해라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여건을 중심삼고 생활하면 전부다 사탄세계에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위의 입장을 먼저 취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탄세계에서 좋아하는 것은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불행의 주인공이요, 불만의 왕자요, 불평의 대표자요, 나쁜 것의 주인이요, 슬픈 것의 주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타락이 본래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불평불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평불만, 불행해짐으로 나쁜 것이 되었고, 슬퍼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인간을 침범해 들어오는 공식 경로입니다. 불평불만은 불행과 통하고, 불행은 슬픔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도는 이것을 밟아 치울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17-18
종교의 본질은 감사하는 것
3. 1운동 때 이북 정주에서 피해가 상당히 큰 만세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때 주모자 되는 한 사람을 일본 관원들이 잡아다가 고문을 했는 데, 그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죽어도 만세, 살아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빨리 죽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심하게 매를 맞고 고문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어도 만세, 살아도 만세를 부르니 고문을 해도 헛수고라고 하면서 풀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본질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을 방위하기 위한 제일 중요하고 긴급한 요건을 들라 하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자리를 무난히 합격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메시아의 명칭을 안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부활의 권한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얻고 난 그때부터는 좋은 것, 기쁜 세계, 새로운 역사적인 소원의 한 날, 새 아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어떠했느냐? 불행한 자중의 대표자요, 불만하려면 누구보다도 불만할 수 있는 사람이요, 불평하려면 누구보다도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나쁘다고 말한다면 누구보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요, 슬프다면 누구보다도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극복이라는 말이 성립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무한한 보배의 나를 찾고 싶은 여러분은 그런 보화의 가치가 인정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정되는 입장에 서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늘편과 사탄편의 완충지대와 같은 곳에서 있는 여러분은 사방을 밀어제낄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권한을 갖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타락한 인생입니다. 이것을 밀어제껴야 합니다.

그 경계선에서는 어떠한 조건 앞에서도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행복에 관계되는 것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떤 병신이든 세상의 낙오자든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그 누구도 불행과 관계되는 것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 죄악 세상에 있는 나를 이동시키지 못하게 하는가? 그것은 불평 불만입니다. 이런 불행의 여건이 이 사회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망의 세계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정복해야 할 하나의 필수적인 싸움터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인들은 싸워 나온 것입니다.

싸움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밝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 승리하여 승리의 왕자라고 자신하고 나서지 못했기 때문에, 이 악한 세상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념적인 생활 체제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 악의 역사를 연속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17-19
참식구의 표준
여러분,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을 식구라고 부르는 데, 그 명칭이 얼마나 귀한 명칭입니까? 선생님이 예전에도 말했지만 식구란 어떠한 것입니까? 누구를 두고 식구라는 말을 세웠느냐? 이것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한 말이 아닙니다. 만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천상천하에 유일한 가치요, 무한한 보배의 실체로 오셨던 하나님의 독생자, 즉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다면 그분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승리의 길이 나타난다면 그분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며, 천지의 출발 기준이 나타난다면 그것도 역시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타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그 무엇도 나타날 수 없을 정도로 그분은 절대적인 분입니다.

그분을 중심삼아야 식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식구라는 말은 현재의 통일교회의 교인들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가치적인 인연, 그 인격적인 것을 중심삼고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은 예수의 부모요, 비슷한 사람들은 예수의 형님 혹은 동생들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가치, 무한한 보화의 위치에 선 예수님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당시에 있어서 그의 동생을 사랑할 수 있었느냐?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 슬픔은 천주의 슬픔입니다. 부자지간에 마음을 통할 수 있었던들, 사정을 통할 수 있었던들, 소원과 목적이 일치되었던들…….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예수님에게는 불행이었습니다. 그 불행에 사로잡히고 그 불평에 정복되면 예수님은…….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넘어섰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형제가 되고, 부모가 되고, 친척의 입장에 섰어야 비로소 예수님 앞에서 식구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를 두고 볼 때, 오늘 여러분이 그와 같은 자리에 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참다운 가치는 예수님과 같은 가치의 입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17-20
사탄의 침범을 안 받으려면 첫째 불평 말아야
여러분은 이제부터 사탄을 연상해보세요. 누가 사탄이 어떤 존재냐고 물으면, 그저 사탄은 사탄이라고 대답하고, 그리고 사탄을 봤냐고 물으면, 있기는 있는데 잘 모르겠소라고 하는 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탄이 우리에게 어떻게 침범해 들어오느냐? 사탄이 침범해 들어오는 작전법은 무엇이냐? 하늘 뜻에 대해 불평하는 마음을 가질 때 사탄의 화살이 여러분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불평 많이 하지요? 눈을 까딱까딱 하고, 뚱딴지 같은 말을 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가치는 자기 스스로 닦아 나가는 것이 긴급합니다. 세상이 뭐 어떻고 저떻고 하는 데, 물론 그것도 염려해야 하지만, 그보다도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방어하고, 거기에서 승리한 후에 세상 구제의 방침을 세워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경계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 보았자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승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첫째 불평을 하지 않아야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제일 첫째 요인이 무엇입니까? 사탄이 그들에게 무엇을 가지고 유혹을 했습니까? 불평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이거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 하더냐? ‘ 하는 불평의 씨를 뿌렸습니다. 아담 해와는 불평의 화살에 침범당한 것입니다.

한국의 현재 실정을 보면 전부 가난하고 전부 생활이 어렵습니다. 그것은 천운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입니다. 배를 퉁퉁 내밀고 배짱구를 치고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부정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원한 장래에 망해요. 박살날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당이 한국에서 큰 방망이를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하나님의 사랑과 천륜의 법도를 세운 대표적인 기준을 보여 주기 위한 자리에 서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실정에 있어서 잘 살고, 배를 내밀고 만족하게 사는 사람들은 전부 비정상적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정상적이냐? 못 먹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오늘을 살았으면 내일 걱정이 가득 차야 합니다. 그것이 지극히 불행한 운명이니만큼 그것을 극복하게 되면 지극히 행복해집니다.

17-21
인정많은 한민족
선생님은 예루살렘에 갔을 때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반은 사막지대입니다. 낙타같은 것을 볼 때, 저 큰 체격에 배가 부르게 먹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풀이 없는 반 사막지대였습니다. 그것을 볼때 한국은 복지 중의 복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의 포도 넝쿨은 한아름도 채 안 됩니다. 낮에는 태양열에 3분의 1이 말라버립니다. 그 잎이 너무 시들시들해져서 포도 넝쿨인지 무슨 넝쿨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전부다 다른 넝쿨 같습니다. 그런데 낮에 뜨거운 만큼 밤과 새벽에는 이슬이 많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 이슬로 식물들이 다시 생기를 되찾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땅, 유대 땅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처럼 유대 백성들도 새벽을 기다리고, 그 새벽 고요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절규의 기도를 했던 민족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또 그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뭐가 있습니다. 감동 같은 것이……. 감동해서 부르는 노래가 최고의 절규이고, 심령이 담긴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걸 생각할 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부유한 나라가 되지 않았는데 청년들이나 아주머니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세계 어느 민족보다 잘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더욱이 영국 같은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3분의 2 이상이 상류층의 옷을 입고 다닙니다. 길거리에시 잘 입고 다니는 아주머니 뒤를 따라가 보면 거적대기로 엮은 형편없는 집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현실적인 환경으로 보면 도저히 즐길 수 없는데도 고차적이고, 여유있는 생활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이것이 우리 민족에 대한 수수께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천년 동안 못살고 그랬으면 짜부라지고 꼬부라졌을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국에는 국민이 서로서로 동정해 주고 인정이 남아 있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인정이 있습니다. 미국 같은 데 가보면 부자지간에도 아버지의 것이 따로 있고 아들의 것이 따로 있습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 식사를 하더라도 아버지의 점심 값은 아버지가 내고, 아들의 점심 값은 아들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건달 중에서도 상건달이면서도 식당에 가게 되면 큰소리를 치면서 자기가 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일망정 그렇게 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이것을 보고 선생님은 한민족은 품위가 있고 여유가 있는 민족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현시점에서 선생님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좀더 고생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하면 삼천만 민족이 선생님을 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욕을 많이 먹었으니 더 욕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삼천만 민족으로부터 말라 죽을만큼 욕을 먹었어도 선생님은 거기서 끈기있게 남아졌습니다. 지금 하늘은 세계 사람들이 전부 도망치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남아, 세계 만민이 가질 수 없는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적진을 함락시키기 위해 싸움터를 향하여 나설 수 있는 용장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을 고생으로 연단하고, 시달림으로 연단하고, 굶주림으로 연단시켜서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살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단된 그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공세를 취하면 함락하지 못할 곳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선생님은 한국의 맹호부대와 청룡부대를 좋아합니다. 이 맹호부대, 청룡부대의 군인들은 베트남에 가서 한 사람이 베트콩 열 여섯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죽는다는 생각도 안한다는 것입니다.

17-23
가장 어려운 자리로 찾아가야 할 우리
아주머니들을 가만히 보면 대개 사탄편에 가깝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들으면 섭섭할 겁니다. 요전에 라디오에서 바가지를 긁는 것이 좋으니 안좋으니 하면서 바가지 타령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들을 때 여자들이 사탄의 끄나불 중에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집안이 잘되고 안 되는 것은 여자에게 달려 있다고 합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입도 통일되어야 하고, 귀도 통일되어야 하고, 눈도 통일되어야 하고 모든 게 다 통일되어야 합니다.

불평하는 자는 사탄의 제1족속입니다. 이렇게 해야 실감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상적인 말을 골라서 하는 겁니다. 불평하는 자는 무엇이라구요? 사탄의 제1족속, 불만하는 자는 제2족속이고, 불행한 자는 제3족속입니다. 불평, 불만, 불행, 이것을 다 사탄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 앞에는 기쁨과, 좋음과, 만족과,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 악한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 악을 밟고 선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어디에 보낼 것이냐? 지극히 어려운 곳에 보냅니다. 만일 하나님이 메시아를 로마의 왕자로 보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일시에 세계를 정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새로운 역사에 박차를 가하여 새천지를 창건해야 할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보낼 수 없습니다. 메시아는 악을 무찌르고, 악의 여건을 소화시키고,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면 출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메시아를 제일 어려운 곳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구유에서부터 출발했고 피난살이에서부터 출발했던 것입니다. 피난을 가서도 창칼이 넘나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생사의 기로에서 사망의 권세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왕자로 등장할 수 있는 날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하나님은 지극히 오랜 세월을 준비했습니다. 그런 날을 고대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지만 그 소원이 슬픔으로 끝나 버렸고, 역사가 비참하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갈 것이냐? 콧노래를 부르고 장단에 맞추어 춤추는 곳으로? 그래요?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 만족, 감사가 있는 곳 좋은 곳, 기쁜곳? 혹은 청춘 시대에 마음대로 사는 것이 천국의 향락이 아니겠느냐 하는데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가르쳐야 되겠어요? 여기 젊은 사나이들 어때요? 그래야 되겠어요?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에서는 그런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 무리가 역사를 창조할 수 없고, 새로운 시대를 창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어려운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를 찾아갈 때는 불행한 마음으로,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행복한 마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가는 것입니다.

적군을 점령하게 될 때, 예를 들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싸워서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점령하게 될 때, 외적으로는 점령했더라도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이념으로 행복의 요건을 제시하고 공산주의의 결점과 공산주의가 인류의 적이라는 것을 절감케 해야만이 완전하게 점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25
예수님이 출발하신 자리
예수님이 이러한 세계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승리해야 되었겠습니까? 행복을, 감사의 조건을 누렸어야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회적인 환경이 어떠했습니까? 그때의 예수님의 입장에 들어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국가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비운이 깃든 패망 국가, 즉 로마의 식민지로 되어 있는 국가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유대교는 새로운 이념을 품을 수 없는 종교였습니다. 그때의 교단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의논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온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풍조를 바라보게 될 때, 사회환경에 있어서 천만사가 불평의 요건이었고, 불행의 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몸부림을 쳤던고? 하늘을 부여잡고 역사 전시대의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깃들어 있는 행복의 요건을 찾기에 급급하였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30년 준비기간의 명상과 기도의 생활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추구했던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자리는 보기도 싫어했고, 호강하는 환경을 떠나서 고요한 곳에 들어가 깊은 사색을 하며 본연의 이념을 찾기 위해서 애썼던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도 그 마음에 느낀 것은 어떠한 환경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쓰러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한 폭풍우가 아무리 휘몰아쳐 와도 그 폭풍우를 소화시킬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예수님은 철저히 각오를 했던 것입니다. 그 결의한 바가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시대를 뚫고 나갈 수 있고, 사악한 악의 요건을 밀어치울 수 있는 내적인 결의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메시아의 이름을 동반시켜 악한 사회에 내세우셨던 것입니다.

공적 3년노정을 출발할 수 있었던 동기가 호강스러운 여건하에서 결의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여건하에서 결의된 것입니다. 즉 어떤 풍상이 휘몰아쳐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내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것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자리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독생자라는 이름과 더불어 내세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야말로 밤이나 낮이나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악한 세상에 대비하여 예수님을 하늘편의 대표적인 입장에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17-26
메시아가 아닐 수 없는 예수님
선생님은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신 기도를 선생님은 기독교에서 해석하는 그런 뜻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것은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가는 십자가의 길을 수많은 인간이 따라올 때에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을 절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예수님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걸 발견하고 나서야 그러면 그렇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예수님은 메시아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앉아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다 이루었다’라고 기도하신 것은 무슨 기도인가? 세계를 정복했다는 기도이겠습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평의 여건, 불만의 여건, 슬픔의 여건이 예수님을 휘몰아 치더라도 원수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며, 저들의 죄를 용납해 주시옵소서라고 한 그때에 완전히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자리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비로소 천지가 생겨난 후 만천하 앞에 처음 나타난 메시아가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경지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덮어 놓고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인간적으로 보면 보통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역사적인 배경도 갖추었지만 그 보다는 예수님 자신이 내적인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조건을 갖추고 나서 3년 공생애노정을 걸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은 무엇을 한 노정입니까? 그것은 모병운동을 한 노정입니다. 모병운동. 그것은 악의 무리를 격퇴시키기 위한 운동입니다. 생명을 결단해 가지고 악의 무리를 전부다 정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슨 종교냐? 투쟁의 종교입니다. 투쟁이 끝난 다음에 사랑을 세우는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되신 예수님이 오시더라도 처음부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이 끝나 가지고 신랑이 된 다음에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이루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끝날에 있어서 메시아, 즉 신랑되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무리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그것은 성경 말씀을 완성한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17-27
불평과 불신의 결과는 불행
그러면 성경 말씀을 완성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최고의 경지는 어떤 경지인가? 죽음에 임해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는 왜 필요한가? 사탄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탄을 완전히 정복하려면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에 걸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불평할 수 있는 최상의 자리, 불만할 수 있는 최상의 자리, 불행한 최상의 자리에서도 사탄 앞에 아무런 조건을 잡히지 않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아무런 조건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과 완전히 무관한 입장에 서신 것입니다.

몇 해 동안 선생님이 여러분을 개척 활동을 보내 놓고 배포들을 가만히 보니 불평에 잠겨 있고, 불만하는 자리에 속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처녀들은 ‘내 나이 서른 살이 가까와 오는데 행복이 무엇이냐? ‘라고 하지요? 노처녀를 중매해 준다고 하면 홀아비도 깜짝 놀란다는 거예요. 노처녀 앞에 총각이 나타날 리는 만무하지요.

통일교회 여자들 그런 것 듣게 되면 ‘아이고 7년노정을 어떻게 참나? ‘ 그럽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내보내면 ‘전도를 어떻게 하나? 7년이고, 70년이고 알게 뭐냐’ 하다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하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행을 느껴서 다 떠나는 겁니다. 통일교회를 믿다가 멀어진 사람들을 두고 보십시오. 통일교회를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점점 불행 가운데로 떨어집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마음으로 아무리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일들마다 장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통일교회에 다니면 부모나 아들딸로부터 미움을 받고 혹은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으면서도 좋아합니다. 반대 받으면서도 좋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형제지간에도 동생이 통일교회를 다니면 형은 동생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길가에서 동생을 만날 경우 동생이 이쪽으로 가면 형은 저쪽으로 동생을 피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선생님을 보면 피해 갑니다. 그렇게 미워하는 거예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게 좋다는 겁니다. 까닭없이 미워하니 까닭없이 좋을 수도 있어서…….

선생님의 지금 모습을 보면 체격이 좋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때 가만히 생각하면, 선생님은 원수들의 발길에 목도 밟혀 봤고, 머리도 밟혀 봤습니다. 손이나 발도 밟혀 봤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불평을 안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불평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불평하지 않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원수를 갚기 전에는 딴것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원수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기가 뻗쳐 오릅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매우 급해서 불의를 보면 도저히 참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더벅머리 나이 많은 총각 녀석들이 어린애들을 자기들의 꼬마로 만들어 가지고 이용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배가 아파 잠을 못 잤습니다. 지금도 그렇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몰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걸려드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선생님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통일교회 들어온 것 감사해요, 안 해요? 「감사 해요」 얼마나 감사하는 고? 감사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요. 머리끝만큼? 머리끝만큼 감사하는 것도 감사하는 것이고, 사돈의 팔촌 생각하는 것만큼 감사하는 것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감사해요? 그 감사하는 것만큼 자기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죽고 사는 문제도 얼마만큼 감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몸이 원수입니다. 그러니 이 몸은 백번 천번 죽어 마땅한 거예요. 눈이 잘못하면 그 눈을 자기 손으로 빼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7-29
너는 오늘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효자 효녀는 부모의 그늘진 자리에 들어가 시중을 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항상 어렵고 힘든 일이 떠나질 않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났지만 세계의 어느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에 나가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미국이나 세계 천지를 돌아다니며 좋은 것들을 많이 보았는데, 뉴욕 같은 데 가서는 옛날에 로마가 불타듯이 불에 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당들은 그 바람에 다 죽어버릴 것 아닙니까? 뉴욕에는 102층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서 있는 데 이것은 20세기 문화의 최고의 전당과 같이 숭배하는 곳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곳을 볼 때 불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폭발이 벌어져서 하늘의 용사의 창끝 앞에 흉악한 죄악사가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의 칼 앞에, 정의의 힘 앞에 세례를 받아 보라는 겁니다. 이것이 죄입니까?

모스크바의 공산당들이 자랑하며 내려오던 모든 문명을 전부다 폭탄 장치해 깨쳐버리게 될 때, 훗날 인류들은 찬양할 것입니다. 사망과, 죄악과, 원수의 발자취는 후손들은 그 모양도 흉내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집에 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오는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세계적 기준에 걸맞는 간판이 필요한 때가 되었는데 왜 교회 하나 근사하게 짓지 않느냐고 합니다. 교회를 지으려면 최고로 근사하게 지어야 합니다. 망하려면 아예 망해 죽든가 아니면 완전히 흥해 가지고 천년 만년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주의는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옥에 가서 통일하든가, 천상에 가서 통일을 하든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옥도 사탄편이 통일하면 안 되지만, 하나님편 입장에서 통일하게 되면 그 지옥도 하나님편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요즈음 낚시질을 다니는 데 고기를 잡으려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낚시질을 가면 고기값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듭니다. 선생님은 낚시질을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이제 제2차 7년노정에 임함에 앞서 지난날을 회상해 봅니다. 너는 이렇게 뜻을 위해서 나왔고, 이런 학교를 다니면서 이렇게 했고, 뭐 이러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또 감옥을 거치고, 몰림을 받으면서 통일교회를 이끌어 왔는 데 오늘의 너는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그 시간까지 자화자찬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이 높여주는 자리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파고다 공원에 제자들을 내보내어 8년 동안 전도를 시키면서도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그림자도 얼씬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들이 수고의 댓가로 먼저 영광의 자리에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수고했으니 영광의 자리도 그들이 먼저 동참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이 해주어도 좋겠지만 그들 스스로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정세계의 인연입니다. 그 세계에서는 형님이 동생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17-31
점점 올라가고 있는 통일교회
요즈음에 선생님이 지구장들의 보고를 들은 바에 의하면 지구장들이 이제는 도의 인기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지사가 표창을 주려고 하고, 내무부 장관이 표창을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념적으로 보아서 우리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어디를 잠깐만이라도 나서게 되면, 통일교회 문교주가 어디에 간다라고 전화를 하면서까지 감시를 하던 각 경찰국 정보과가 이제는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는 단계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에서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들은 점점 급변하는 세계 정세하에 있어서, 더구나 반공체제를 강화해야 할 국가적인 위기에 봉착한 이런 시점에서 자기들의 생명과 재산이 아까운 줄 알고 까딱 잘못하면 자기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종족, 친족까지 죽음을 당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북은 지금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휴전선에서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런 단계에 들어오니 경찰국장이나 정보과장이 통일교회 간부들이 회의하는 데 와서 인연을 맺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나 경상북도가 지금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밑에서부터 점점 올라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뿌리는 세계를 다 삼켜도 순은 아주 조그만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추운 동삼삭에 잘못 나오다가는 추위에 얼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봄철만 맞이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동삼삭과 같은 7년노정을 거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맞고, 욕을 먹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의 말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아벨적인 책임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점점 가까와져 오고 있습니다. 각도로 말하면 지금 45도를 지났다는 것입니다. 45도를 넘었으니 60도, 70도, 80도를 거쳐 90도까지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가면 딴 곳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옳지 않은 것을 다 정비해야 합니다. 요즈음 통일교회 지구장, 지역장들의 보고를 듣게 되면 상당한 반응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계획했던 것이 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7-32
통일교회 신자라면 선생님과 같이 뜻길을 가야
신문사 기자들이 각 기관에 들어가 취재활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 전도사들도 기관에 출동해 가지고 귀한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씀에 의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젊은 청년들 알겠습니까? 「예」

선생님의 내력을 이야기하자면 사연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낙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낙망하지 않았고, 비굴해질 수 있는 자리에서도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은 평양에서 겪었던 일이 생생합니다. 평양에서 쇠고랑을 차고 형무소로 가면서 식구들에게 잘 있으라며 손짓하던 그때의 일이 언제나 잊혀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형무소에 들어갈 때 낙망과 절망하는 가운데 들어갔지만, 선생님은 오히려 희망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터져 나가는 날에 대한민국에 새로운 소망이 싹틀 것이며, 이것을 터뜨리는 사명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은사가 한국 민족에게, 팔도강산에 깃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북한은 시련의 땅이고 남한은 소망의 땅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옥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생님이 배고플 때 사람들을 동원하여 밥을 가져다 먹게 해 주셨고, 말을 하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이 따르는 역사적인 산 실증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선생님은 항상 자신만만했습니다.

통일교회의 신자라면 모두다 그러한 입장에서 선생님과 같이 뜻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사명을 완수하고, 사탄편을 점령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뜻을 따라가는 입장에 있고, 천상의 모든 성도들도 이 뜻을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성을 갖고 능동적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기쁘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기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것을 체험해 보았나요? 못 해보았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희망에 벅차서 들어왔지요? 그런데 역사의 흐름 가운데 핀셋 끝도 닿을락 말락하는 초점상에 선 것과 같은 운세라면 운세, 인연이라면 인연 가운데 서 있는 자기를 볼 때, 이것이 거짓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산 증거를 하늘이 제시해 주셨기 때문에 인정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덮어 놓고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매를 맞고, 쫓겨나고,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에 상처를 입고서도 통일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재산을 어디에 소모했습니까? 그러한 가치를, 그러한 원천을 어디서 상실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그것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여러분의 깊은 심정에 항상 감돌며 깃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 스스로 어떠한 환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시련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17-33
참아 나오신 하나님인 것을 알면
성경을 보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책임지고 많은 수난과 역경을 겪어 나오면서도 하나님과의 처음 사랑을 잃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고, 내 생명이 천만번 찢겨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보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생각하면 하늘 뜻을 반대하는 삼천만 민족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참아 나오신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며 선생님도 참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아들을 위해서는 모든 사랑을 언제든지 주고 싶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들, 즉 인간이 통곡하기 전에 먼저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아들을 위하는 것, 인간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 그런 하나님 앞에 자기의 불평, 불만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부다 껍데기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선생님은 3년노정을 선포하면서 될 수 있으면 선생님이 설교를 안 하려고 했습니다. 대중 앞에 나타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가기를 바랬습니다. 물론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도를 했으면 그렇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되고, 내려왔으면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녕 되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들이쳐서라도 다시 끌고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그게 좋아요?

옛날에는 불우한 환경이었기에 참고 나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참지 않으면 옛날에는 그것이 사탄의 참소의 조건이 되고, 전부 원수의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회환경이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 문제시되던 그 이상도 사실 그대로 적용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선생님이 감아쥐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어요.

그래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편의 생명체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생명체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되어야 합니다. 기계 공장에서 어떤 기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양산체제에 들어가기 전에 그 기계가 발휘해야 할 성능의 배, 혹은 3배 이상 작동해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그러지고 찌그러 지게되면 다시 용광로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사람 그 자체를 어떻게 시험하느냐? 통일교회 교인들 사이에서는 시험이 안 되는 겁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좋은데 그 누가 보기 싫어서 통일교회 못 간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주 물러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전체 앞에 누를 끼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물러가지 않을 때는 선생님이 쫓아낼 때가 옵니다.

17-35
전통을 존중시해야 할 통일교인
그러면 어디에서 시험하느냐? 사탄세계에서 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세계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탄세계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사탄세계에 나섰는 데 아군이 없습니다. 홀로 나섰습니다. 그야말로 홀로 복귀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것은 개인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민족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천주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홀로 가야 하는 선생님의 행로에는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생사를 같이 나눌 수 있는 동지도 필요하고 나를 위해서 희생하고 말이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아무리 잘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외로운 자리에서 하나의 친구와 하나의 동지를 요구할 때에, 먼 거리에서라도 부름에 대답할 수 있는 무리는 통일교회 무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자기 스스로 부족했다는 것을 느낄 줄 안다면 뜻을 위한 길을 나섰는 데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청파동 교회가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보고 싶은 곳이라는 것은 떠나 봐야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설명을 듣는 것보다도 실지로 해 보아야 실감이 나는 겁니다. 설명을 들으면 인식할 수는 있으되 행동하기는 힘듭니다. 행동하여 느껴지는 자극은 설명을 들어 느껴지는 자극보다 큰자극이 됨으로 말미암아 제2출발의 발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식구 한 두 사람을 만나면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형제와 같이 여기고 밤을 새워 가면서 속삭이던 그런 내정적인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이 변하여 외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오늘을 보게 되면 이는 지극히 불행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전통을 존중하고 천적인 자세를 갖추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왔다는 사람들이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보다 말을 더 안 듣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앞에 정성을 다하는 식구가 있으면 무섭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모든 비밀을 직고한다고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그가 그렇게 문의해 올 때 선생님이 진정한 스승으로서 지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냐 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만나서 말씀드리겠다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선생님은 제일 무서워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런데 요즈음 통일교회 교인들 보면 뻔뻔스러운 사람이 많습니다. 한 집에서 살고, 한 상에서 밥을 먹으면서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이 반찬은 내가 갖다 먹어야 돼’하면서 끌어다가 먹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17-36
복귀의 길을 원만히 가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연을 거쳐가야 할 복귀노정은 만민이 공히 가야 할 노정입니다. 그 노정을 거쳐가는 데에는 여러분 혼자는 갈 수 없습니다. 거지 같은 동료들도 필요한 것이요, 병신같은 동료들도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병신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갖춘 온전한 사람, 즉 정상적인 사람은 안 됩니다. 병신의 나라는 병신이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비참한 세계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비참, 비참, 비참한 과정을 통과해 가지고 그 세계를 요리해야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비참한 과정을 통과하고서야 정상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참소의 조건과 탕감의 조건이 감도는 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정상적일 수 없습니다. 또한 참소를 받아야 하고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그런 자리를 닦고 환경을 갖춘 입장의 자리에 서지 못하면 하늘이 쳐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밀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지도자들, 혹은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진 지도자들이 잘못하게 될 때 역사적인 비판을 받는 것은 정상적인 법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가야 할 복귀의 길에 힘이 들고 불행의 여건이 많아도 낙망하지 말고 그 길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을 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알겠어요?

불평, 불만, 불행, 나쁜 것, 슬픈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 뭐 가상적이라 해도 좋습니다. 선도 가상적이라 해도 좋다는 것이에요. 어쨋든 그것은 진보적인 표준이라는 겁니다. 그 표준을 향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이나 인류가 좋아할 수 있는 목적이라면 그 목적 앞에서는 불평, 불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어떤 책임자가 불만의 대상이 되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반성하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예수도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을 구해 줄 수 있는 메시아가 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왔지만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심정적인 기준을 갖고 오신 예수님 앞에 완전이 정복당하여야 되고, 완전히 치료받아야 했습니다. 그 원칙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여러분은 스스로의 마음을 단장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불평과 불만과 슬픔이 사탄으로부터 싹터 나오는 것이냐, 즉 사탄의 단체, 더 나아가서는 사탄세계를 위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뜻을 더 염려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냐……?

예수님도 그 사회에 대해서 불평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위선자들에 대해서 책망을 하는 것이 나오는 데, 이것은 불평 중의 불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한 입장과 우리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편의 입장에서 불평하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심정적으로 누구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공인받을 수 있는 천적인 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 불평을 가끔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은 스스로 해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 불평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고서 불평을 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천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천하가 그 무어라 해도 선생님은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복귀섭리를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어떠한 욕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했고, 여러분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고, 또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누구한테도 빚졌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안 되고 이상한 것이 있으면 해부해서 잘라버릴 것은 잘라버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도 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런 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제재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조건이 성립됩니다.

여러분은 우선 여러분 자체를 방지해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개체 개체가 신앙생활을 하며 찾아가야 할 복귀의 길은 멉니다. 길이 멀어요. 그러므로 복귀가 일대에 끝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복귀의 길에서는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하며, 각자가 메시아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여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승리는 무슨 승리 ? 만국을 대표할 수 있는 승리라야 됩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만국을 대표할 수 있는 승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리를 상속받을 수 있는 그 기준을 세울 것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17-38
탕감과 자기 반성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행복합니까? 행복해요? 행복은 시간권내에 포위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어떠한 권한에 팔려가는 것도 아니요, 어떤 제재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근본 문제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만족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누가 간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제일의 문제는 자아를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쁨을 돌려 드리고, 좋은 것을 돌려 드리고, 감사와 행복과 만족을 돌려 드리고, 스스로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하여 불평 불만과 대결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자신이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가 된 방어의 핵심체가 되어 침범당하지 않을 입장에 서 가지고 밀어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한국의 불행 불평 불안과 대결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제거하기 전에 먼저 불평 불만을 하는 자들로부터 우리가 불평 불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의 불평 불만을 들어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먼저 맞아왔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에서 선은 먼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써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자고로 성인군자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먼저 맞았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그들이 맞은 것 이상, 그들이 빼앗겼던 것 이상 그들의 가치가 빛났습니다. 채찍이 크고 억울함이 많으면 그만큼 큰 승리를 거두는 깃입니다. 이와 같이 채찍을 맞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승리를 거두는 데 큰 공헌을 하게 되고, 승리의 모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딪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역사적인 열매라고 말합니다. 역사적인 열매, 그러나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생각, 지금까지의 생활, 지금까지의 그 모양 그대로 역사적인 열매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을 보면 전부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던 자들이 어떻게 역사적인 열매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한 마디만 해도 그저 바가지를 긁습니다. 그러면서도 복받을 생각을 합니다.

역사적인 열매가 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그런 일상적인 생각의 수준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중심삼고 과거 현재를 탕감해야 합니다. 그것을 탕감해야 개성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먼저 물과 흙과 공기와 같은 모든 원소를 지어 놓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처럼 바탕이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바탕이 정상적이 아니면 정상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조로부터 흘러 내려온 죄와 자기가 지은 죄를 솔직히 전부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데는 그 기간이 있습니다. 6개월에 되지 않으면 3년 혹은 7년에 해야 합니다. 7년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21년 돌고비를 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축복해 주면 축복을 받아 가지고 지지리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탕감복귀노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탕감해 놓아야 자기 시대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17-40
하나님주의
여자들은 남편이 단 한마디만 해도 짜증을 부립니다. 그래 가지고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자기의 아들딸 전부가 풍족하게 먹고 쓰고 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분한 것은 자기 아들딸이 뭐가 깨지거나 터지든가 해야 풀립니다. 그래야 마음을 바꾸고 돌아섭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자들은 전부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나, 나, 나, 나, 남편도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고, 그 어머니와 아버지도 자기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그렇게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전에 부인 식구들을 수택리에 데려다가 신앙지도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애도 아닌 그들에게 기합을 주었습니다. 만약 기합을 줬다 해서 남편들이 몽둥이를 들고 항의할 것 같았으면 기합을 안주었을 겁니다. 말을 해도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을 보면 선생님은 비린내가 나고 역겨움이 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10년 아니라 몇 십년을 하나님 믿어도 헛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래요?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잘 되어야 남도 잘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좋아하실 것 같아요? 하나님은 나는 못 되더라도 남은 잘 되어야 한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는 못 되더라도 세계는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주의입니다.

사탄편과 천주주의 사상의 분기점, 분수령의 그 한 초점이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하느냐 남을 위주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나를 위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세계관을 가진 편이고 천주주의는 세계에 자기를 포함시키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보다는 식구를, 식구보다는 민족, 국가,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세상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세상을 위해 나가서 봉사하고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는 선생님이 잔인하지요? 이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를 희생시켜서 가정을 위해야 하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사회를 위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라는 단체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위해야 하고, 나라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위해야 합니다. 또 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천주를 위하여, 천주를 희생시켜서라도 하나님을 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작은 것을 희생시켜서 더 큰 것을 위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의 공고한 터전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7-41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이름은 거룩하다
여러분은 교회생활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등에는 모든 것이 짊어지워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등에 짊어지워져 있고, 그 다음에는 교회가 짊어지워져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이 짊어지워져 있고, 세계가 짊어지워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실감해 보았습니까?

선생님이 이번에 40개국을 죽 돌아다니면서 제일 실감한 것이 그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지만 세계를 위해서도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한 나라를 찾아가면 그 나라의 사람들은 선생님을 대한민국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몇달 며칠, 몇시간이 가느냐? 그것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본 사람을 어떻게 느낄 것인가? 선생님이 일본에 가면서 제일 염려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나는 한국 사람이고, 너희들은 일본 사람이라는 감정을 가지면 그들도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세계주의를 주장해도 세계주의에 대해 실감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뭐 어떻게 부딪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원칙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일본에 가나, 미국에 가나, 어디를 가나 다른 나라라는 관념에서 벗어 나야 됩니다. 또 그곳의 어느 집에 들어가더라도 다른 집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이걸 볼 때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이름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나라에 대한 관념이 박힌 사람들은 자기들의 관념을 시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디에 가나 고충을 느낍니다.

애급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원수입니다. 거기 가면 이스라엘과는 확실히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천상천국을 논의하고, 천국 가기 위해 준비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애급 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급 민족은 지상을 최고로 생각을 하고 죽어서도 지상에서 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도시라고도 하는 공동묘지에 가 보면 세상에서 백만장자로 살던 사람의 무덤은 굉장합니다. 땅속으로 20길, 30길 깊이 파고 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예 집을 짓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민족과는 반대가 아니겠어요? 그곳에 가 보면 그런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17-42
어떻게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킬 것인가
내가 세계를 돌아보며 또 느낀 것은 사탄이 한국에 집중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총본부는 선생님의 말씀과 같이 틀림없이 한국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옛날 한국에서 처음 뜻을 출발할 때에는 합당치 않은 데 가서 밥 한술만 먹어도 설사가 나고, 물만 먹어도 설사가 나고, 딴 곳에서 잠을 자도 수많은 악영(惡靈)들과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그랬는데 외국에 나가 보니 어떤 곳을 가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때는 세계적인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 그런 감정이 필요합니다.

요전에 말레이지아 사람인 커팔 씽(Kirpal Singh)씨가 선생님을 만나러 왔었습니다. 말레이지아에서 일부러 선생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그 사람과 선생님은 국제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킬 것인가? 또, 심정교류의 터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본의 총각 처녀들을 한국 사람과 국제결혼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의 테두리 내에서 꼬부리고 앉아 있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념권내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원하십니다. 공산주의의 여자들은 노동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그들의 최고 희망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지방으로 개척을 나가서 못 먹고, 못 입으며 고생을 하는 사람의 손을 보면 보기에 안 좋습니다. 얼어 터지고 엉망입니다. 찬방에서 자고, 찬물로 밥을 해먹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신수가 좋지 않고 막혀 버린 것같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막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통일교회의 운명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 문제를 중심삼고 좋고 나쁘고, 행복과 불행을 논의할 그런 단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43
통일교회가 가는 길
세상은 전부 자기를 중심하고 행복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불행을 자초하며 민족의 불행을 막기 위해 나서야 되고, 민족의 불행을 자초하며 세계의 불행을 막기 위해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각오 밑에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반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무리 힘들고 고생되더라도 이 길을 가다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최고의 기준까지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2차 7년노정을 가야겠습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여러분은 다시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려면 어떤 자리에 들어가야 되느냐? 옛날의 마음을 다시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있을 때 식구가 그리워서 하루종일 문밖을 내다보면서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탕감적인 기준에 있어서 하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충천했지만 이제는 핍박이 아닌 환영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사무치지 않으면 불합격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내가 참소할 때는 저들이 하늘 앞에 감사하고 열성을 부리더니 이제 자기의 때를 맞이하니 감사하지 않는 구나’ 하며 조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는 이 길을 개척하고 통일의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움의 노정을 닦아 나왔지만, 앞으로는 만민이 원하고, 만민이 다 환영하고, 혹은 삼천만 민족, 삼천리 반도가 우리를 그리워하는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시대에 가서 탕감시대에 충성하던 것처럼 어떻게 충성할 것이냐 하는 것을 제일 걱정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당하고 생사의 기로에서도 하늘 앞에 절개를 지키겠다고 몸부림쳤는 데, 그런 충성의 마음을 평화시대, 자유로운 환경에서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흐르고, 기뻐하고 환영하는 그런 환경에서도 과연 하늘 앞에 뼛골에 사무치는 효성의 인연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선생님의 걱정입니다. 다른 것이 걱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버지여, 제게 과거의 그런 십자가보다 더 크나큰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과거에 핍박의 화살이 선생님을 겨누었던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의 절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나를 환영하는 통일교회 신도들 앞에, 삼천만 민족 앞에, 세계 앞에서도 내가 몸부림치며 헤쳐나갈 수 있는 하나의 십자가가 있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머지 않아 그런 시대가 올 것을 선생님은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고생되는 일도 불행의 여건으로 생각지 않고 도리어 멋지게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 하나의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슬펐던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효자요, 기쁜 시대가 와도 아버지 앞에 가까울 수 있는 효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한번 이날을 기준삼아 여러분의 현재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응시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궁핍한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내 모든 전체를 흘러가는 물결따라 천만사에 함께 흘려 보내자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삼천만 민족이 걸어와야 할 길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어떠한 계급의 사람이라도 따라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17-45
승리자가 되어야 할 우리
요즈음 세상을 가만 보면 이병철씨가 뭐 이러쿵저러쿵하더니 한비사건(韓肥書件)에 걸려 가지고 허덕이는 걸 볼 때 세상이 다 전시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승리자가 되면 기쁨도 내 것이요, 좋은 것도 내 것이요, 감사도 내 것이요, 만족도 내 것이요, 행복도 내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이 누구의 것이에요? 만족이 누구의 것이에요? 감사가 누구의 것이에요? 좋은 것, 기쁜 것이 누구의 것이에요? 이런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왜 우리들은 그렇게 좋아했느냐?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해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이념의 동산에서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복귀해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 생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좋으면 무엇을 가지고 좋아요? 여러분은 지금 내 울타리 안에서 억지로 좋아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 제한권내에서 감사해야 하는 승리자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에서 감사할 수 있는 승리자가 있다면 우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좋고, 감사하고,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나가는 도상에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여건을 갖춘 승리자가 되면 이 승리자하고는 그 어떠한 것과 바꿀 수 있느냐?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승리자, 이 둘을 같이 가지면 가졌지 어느 한 편만 가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는 승리자가 되면 하나님 앞에 하나밖에 없는 보화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요건이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누가 차지하느냐? 만민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했더라면 그런 승리자의 요건을 완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갖고 왔다가 이루지 못하고 갔으니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와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그러한 행복의 요건을 중심삼고 자기만을 위할 것이 아니라 만민 앞에 나눠 주어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세계 인류에게 이러한 요건들을 나눠 주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요건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세계의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새로운 목적을 위해서 사탄세계에 서로 나가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사는 그런 요건을 중심삼고는 갈 수 없습니다.

단체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먹고 입고 자는 것이 문제는 되지만 그런 것은 간단히 초월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전체 앞에 내놓고, 옷을 입어도 자신은 나쁜 것을 입고, 잠을 잘 때도 제일 나쁜 자리에서 자고,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오래 안 가서 그 사람은 상좌에 올라가게 됩니다. 설령 외적인 면에서는 상좌에 못 올라갈지라도 내적인 면에서는 전부 상대방의 기준을 정복해 가지고 주인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17-46
공분심을 회복하자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 대중에게 주자는 것입니다. 안 갖겠다고 하더라도 주자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로 안 가겠다고, 절대로 싫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데려다가 밥 한 그릇이라도 주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전부다 자기주의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사탄을 닮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도 내 것, 무엇도 내 것, 전부다 자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결국에는 사탄세계, 사망세계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받는, 즉 역사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심판을 받는 운명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밥을 먹거나, 자나깨나, 오나가나, 어디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관념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어 가지고 사탄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나서지 않으면 여러분의 갈 길은 막힙니다.

17-47
원리적인 공세법
그러면 여러분은 현재의 심정을 각자가 분석해 보십시오. 분석해 보면 상습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나가더라도 ‘그저 그렇고 그런 거지, 뭐 신비로울게 있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전부다 마음에 갈급함을 느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맨 처음에 전도를 나갈 때에는 어땠습니까? ‘아버지, 내 실력이 이렇고 이렇습니다. 한두번 원리를 듣고서 어떻게 사람들을 하나님 편에 세울 수 있겠습니까? ‘ 하며 얼마나 조심스러웠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습니까? 이런 마음을 가졌을 때는 하나님이 같이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지방에서 통일교회가 발전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거기에서 봉사한 사람, 혹은 공헌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난 사람입니다. 전부다 애달픈 심정으로 밤이나 낮이나 공분심을 가지고서 봉사했고 공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여러분은 그것을 거의다 잃어버렸으므로 이것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큰 부자가 망하더라도 3년은 먹을 밑천이 있다는 말과 같이 여러분이 아주 큰 은혜를 받아 그 은혜가 아직 조금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밑천을 까먹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하면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 데 지금은 붙들고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이번에 노친네들도 전부 지방에 내보냈는데, 여기 석온씨에게 선생님이 집에 가 있으라고 했더니 자기 집이 없으니까 사위 집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위 집에 있으면서 ‘내가 뭘 해야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하니 사위 집에 있는 것이 편한 것이 아니라 지옥과 같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마다 ‘본부에 계시는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겠나’ (폭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평소에도 이 사람이 이층에 올라오면서도 ‘얼마나 선생님이 나를 보고 싶어하시겠나’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는 누가 점령할 수 없는 그의 철학입니다. 석온씨의 얼굴을 보면, 오가리 모양으로 오글쪼글해져서 아주 서푼짜리 같습니다. 그렇게 생긴 것을 평안도에서는 ‘박주 할머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석온씨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게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도 언제든지 선생님을 따라다니려 하고, 선생님이 있는데 오면 멀리 앉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선생님 코 앞에 앉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선생님이 석온씨에게 “이거 기분 나쁘게 언제나 앞에 와 앉으려고 그래? 생긴 것도 지지리 못생겨 가지고” 그랬더니 이 말이 큰 충격이었던지 사흘 동안 금식을 하면서 담판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왜 저를 이렇게 못 생기게 했습니까? 내 마음은 선생님께 이 얼굴을 보이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이런 얼굴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참기가 힘들었겠습니까? 이런 얼굴을 왜 만들었습니까? ‘ 하고 항의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잘생겨도 내 형상, 못생겨도 내 형상이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선생님에게 와서 ‘잘생겨도 하나님 형상, 못생겨도 하나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 앞에 선생님이 꼼짝없이 당했습니나. 이런 원리적인 공세법 앞에서는 선생님도 꼼짝 못 하는 것입니다.

원리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되어 있으니 잘생겨도 하나님 형상, 못생겨도 하나님 형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생겼다고 보기 싫어한다면 하나님의 반역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꼼짝을 못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못생긴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하고 선생님이 나가다가 쓱 보니 미안해서 후닥닥 숨은 사람도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내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민경식씨 왔어요? 민경식씨?’ 「대전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민경식씨만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통일교회가 여자들 때문에 말썽이 나고 해서 본부교회에 와서 자는 여자들이 있으면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을 내쫓는데 민경식씨는 이쪽 문으로 내쫓으면 저쪽문으로 들어오고, 대문 밖으로 내쫓으면 밤 12시가 넘어서 담을 넘어 들어와 가지고 문이 가까운 구석에서 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나오면 도망 가기 쉽거든요. 마루 구석에 엎드려 가지고 하룻밤을 자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 마주 앉으면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안 해줄래야 안 해줄 수 없습니다.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 해도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통일교회 무리 가운데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심히도 어렵습니다. 이른 봄에 태양 볕이 내리쬐면 쌓였던 눈이 녹아지는 그런 기분을 여러분은 알겠습니까?

아무리 어떻게 하더라도 변함이 없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옆에 가서 붙들고 함께 살자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민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전체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런 마음이 점점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17-49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 보아야
선생님은‘아버지’하고 한마디만 하면 벌써 거기에서 하나님의 곡절과 엉클어진 인연을 느낄 수 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아니면 장사꾼의 마음으로 그것을 다 팔아먹었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몰아 가지고 다시 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지금 선생님은 느낍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 그러한 것을 바꿔쳐야 되겠습니다. 다시 여러분의 심정에 불을 붙이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제일 고민거리입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그러한 환경에 다시 설 수 있는 마음의 바탕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상의 것을 가진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안되며, 뜻 앞에 있어서는 세상의 것을 가지고 만족해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가지고 만족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 뜻 앞에 있어서는 그런 것을 가지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참다못해서 폭발이 되어 터져 나가야 예전의 상태로 회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도 없는 사람은 회복하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시련이 제일 많았습니다. 뜻이 있는 최전방에서, 가장 정성을 들이며 나아가야 할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은 마음을 쏙 빼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내가 왜 여기 앉아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선생님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은 사실대로 흘러가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남아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할 때 선생님은 가장 몸부림쳤습니다.

어떤 때는 감옥에서 간수들이 선생님에게 욕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엎드려서 기도를 일곱 시간, 여덟 시간 했습니다. 남의 마음을 복귀시키는 방법은 단 한가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시련을 받으면서도 불평 불만을 하지 않고 오히려 탕감복귀를 하시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탕감역사를 세워서 나아가야 할 당신의 입장이 얼마나 급하십니까? ‘ 하며 하나님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이 하나님의 가슴에 와 박힌다는 것입니다.

고생을 해보면 하나님의 심정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옥중에 있는 나같은 사람을 다시 몰아내야 할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그 처량함에 대해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이럴 때 실감이 납니다. 이래 가지고 회생(同生)되는 것입니다. 회생의 길은 자신으로부터는 회생할 도리가 없으니, 하나님으로부터 회생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붙들고 심정적인 감동을 어떻게 폭발시키느냐 하는 내 스스로의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새로운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울었고, 감옥에서 불쌍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아직까지 남아 있으니 세계적인 것을 품고 나가고자 할 때 ‘아버지’ 하면 통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실감적으로 체휼해 보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그럴 수 있는 재료가 없습니다. 재료가 있어요? 40일 전도하러 나갔다가도 욕먹기 싫어서 도망쳐 나오고, 또 배탈이 나서 병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전도지를 뛰쳐나와요? 모진 매를 맞고 찬바람을 맞아 가면서 눈위에 맨발로 쫓겨다닐지라도 이런 모든 것이 천륜을 회생(回生)시키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17-51
복귀의 길을 가야 할 우리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선생님은 더운 밥을 밥상에 올려놓고 먹을 때마다 옛날에 감옥에 있을 때 일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지방에 전도 보내 욕을 먹게 하고, 때로는 선생님이 책망도 하며, 스승의 입장에서 여러분을 모진 핍박을 받는 개척의 자리로 냉정하게 내몰았던 것은 그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고, 자아를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을 두고 볼 때 뜻을 대신하여 그럴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지고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 여러분은 다시 한번 회생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이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부가 걸리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예수님이 팔려 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동참하지 못했으니, 예수님의 사정을 물랐던 베드로 혹은 12사도들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40여 평생을 몸부림치며 탕감복귀노정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복귀의 길을 가야 됩니다. 아담 가정을 복귀하고, 노아 가정을 복귀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가정을 복귀하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이념의 세계까지 복귀해야 됩니다. 이 길은 먼 길입니다. 6천년 기나긴 세월을 가지고도 해결되지 않았던 이 역사적인 문제를 부여안고 가는 길입니다. 아담 가정을 대신해서 가야 되고, 노아 가정을 대신해서 가야 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가정을 대신해서 가야 되고, 모세와 예수님을 대신해서 가야 됩니다. 대신하여 가는 데는 타락한 아담보다 더 나아야 됩니다. 노아보다도 아브라함보다도 더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의 소망이 완결되는 날이 끝날이니 메시아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끝날의 시대적인 환경권내에 처해 있는 우리는 예수님보다 나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반대하는 민족을 바라보고 눈물을 머금고 기도하는 입장에 서 있었지만 우리는 기뻐하는 민족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입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보다 더 나아야 됩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적으로 예수님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즉 국가에서 헌법으로 언론이나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의 환경보다 지금의 환경을 낫게 만들어 준 이유를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17-52
만민을 사랑하라
세계를 배후에 놓고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하는 효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세계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해야 하나님의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대한민국만 위하는 사람을 효자라고 하며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적 기준에서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하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청년은 세계를 활보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조 앞에 우리의 손짓 발짓이 동기가 되어서 세계가 문제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요즈음 점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전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연구합니다. 이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세계 만민이 이것을 얼마나 고대했으며,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것을 얼마나 고대했겠습니까? 오늘날 이와 같은 무리, 이와 같은 족속, 이와 같은 혈족을 세워 가지고 만민 앞에 추앙을 받고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때를 하나님은 얼마나 바라셨겠습니까? 그런 자리에서 우리집, 우리 본향, 우리 나라, 우리 세계가 지극히 아름답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 효성을 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걸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보다 나은 환경을 갖춘 우리는 예수님이 다하지 못한 말을 할 수 있고, 예수님이 맛보지 못했던 것을 맛볼 수 있고, 예수님이 입지 못했던 것을 입을 수 있고, 예수님이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외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여러분은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원리를 배워서 알겠지만 4천년 만에 오신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믿고 따라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귀의 노정을 다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례 요한이 잘못한 것, 모세가 잘못한 것, 아브라함이 잘못한 것, 노아가 잘못한 것, 아담이 잘못한 것을 청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다 청산해 놓고 아담 본연의 기준까지 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기준에 이르기까지 복귀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길을 가는 데는 세상이 우리를 용납하고, 세상이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언제나 공격을 받고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환경을 벗어나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도 안 됩니다. 진실된 심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시느냐? ‘나를 사랑하기 전에 하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합격된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또 불평불만을 다 늘어놓고서 ‘하나님 !’ 하면 하나님은 ‘난 네가 싫어’라고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자는 세계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만민을 찾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축복받은 이스라엘을 중심하고 세계뿐만 아니라 천주까지 복귀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원수들까지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 만민을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우셨기에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남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17-54
복귀의 공식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탄을 굴복시킨 후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최후의 목표는 사탄을 굴복시켜 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은 사탄과 싸우는 탕감권내에서 사랑한 것이지 사탄을 굴복시킨 자리에서 진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이기면 가정이 남고, 가정이 이기면 민족이 남고, 민족이 이기면 국가, 국가가 이기면 세계가 남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지방에 내려가 7년노정에 몸바쳐 일하고, 희생을 다하여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 ‘너는 대한의 아들딸이야. 대한민국을 위해서 정성을 다했으니 거기서 쉬어라’ 하실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또 내쫓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7년노정이 끝나면 하나님은 또 나를 몰아 어디로 보내실 것이냐? 아마 미국 같은 데 보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한국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으니 앞으로 그곳에서 싸우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지극히 가까운 제자들은 어디로 보낼 것이냐? 세계 각국으로 보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 각국에 하나님의 전통과 사상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그대로 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개인이 아닌 한국의 운세를 어떻게 몰아갈 것이냐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여러분은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을 중심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남편을 사랑하라고, 그것이 복귀의 공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정에 얽매여 살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의 형식이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마음의 어떠한 폭발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천적인 선물이 필요합니다. 그 천적인 선물, 마음에 폭발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고 자극시킬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에 그 동기와 원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람 만사람이 전부다 다르지 않고 같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감정은 같습니다.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은 형제의 심정은 같습니다. 같은 목적을 향하여 나가는 그 모습, 모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변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시대성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러분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직까지 여러분은 복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지해 있거나 후퇴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건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역사적인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가운데 노아가 있어야 되겠고, 아브라함이 있어야 되겠고, 모세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전체가 모세가 되기를 원하고, 여러분 전체가 예수님 대신자 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한 사람도 대신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되어 봤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하고 내몰았을 때, 아브라함이 가정을 버리고 정든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노아에게 120년 기나긴 세월을 두고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인간적인 범위에서 인정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범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에 순종하면서 120년간 절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고이 품으면서 싸워 나왔던 노아였습니다. 모세와 예수님도 그러한 입장에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때요?

17-56
재정비해야 할 현재의 실정
여러분은 노아나 아브라함, 혹은 역사시대의 그 어느누구라도 여러분의 그 심정기준 앞에서는 머리 숙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 봤습니까? 그렇게 되어야 할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쩨쩨하게 되어 버렸습니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안 만들었어요.

통일교회가 지향해 나가는 이념은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허물을 벗겨 버리고 다시 한번 불을 질러야 하는데, 이것을 선생님이 해야 할 것이냐? 아니면 여러분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할 것이냐? 하나님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제2차 7년노정을 개척하여 나가기 위해서는 3년, 4년의 단계를 거쳐 넘어가야 합니다. 세계사적인 운세에서는 2차가 언제나 생사를 결정하는 판결을 지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2수를 중심삼고 판결지어야하니 제2차 7년노정에 민족적인 운명을 걸어 놓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작전을 세워야 하는 데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의논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의 현재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1966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다가오는 12일에 있을 자녀의 날은 1차 7년노정에 있어서 마지막 자녀의 날입니다. 이걸 생각할때 하나님 앞에 그 자녀의 책임을 다하여 진정으로 아버지를 봉양할 수 있는 효자가 어디 있습니까? 통일의 식구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가 거기에서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고, 하나님이 참다운 아들딸이라고 칭찬할 수 있는 무리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상례적인, 습관적인 형태는 갖추었을는 지는 모르지만, 참다운 심정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는 올 수 없는 이 7년노정은 다 흘러가 버렸습니다.

제1차 7년노정에 있어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냐? 지치고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그냥 넘어갈 것이냐? 아니면 무엇을 가지고 넘어갈 것이냐?

6수는 사탄세계의 수입니다. 숫자적으로 말하면 1966년과 제1차 7년노정의 6년째, 이렇게 6수가 세 개로 채워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만 볼수 없습니다. 이 사탄수의 대표적인 수를 영광의 수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냐? 어떤 때는 선생님이 자녀의 날을 세운것에 대해서 서글프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제1차 7년노정이 지나는 이 마당에서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그 인연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재정비하지 않고서는 재출발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실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뼈살에 사무치도록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러분의 힘으로는 해결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끌어 폭발적인 체험의 과정을 통해야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뼈에 사무친 것이 너무나 진해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고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는 너무나 엄연한 사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어둘 수 없는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모든 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여안고 눈물 흘리며 가야할 남은 길 앞에 지난날의 모든 조건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정비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이 될 것 같아요? 이것을 다시 한번 정비 하도록 해야 합니다. 7년노정은 선생님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선생님에게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40여 년 살아온 생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원수들을 사랑한 생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까지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원수를 갚아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에 대비하여 나타나야 할 선생님의 인격은 어떠해야 하느냐? 이것이 복잡한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삼천리 반도에 살고 있는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남한 각지에 있는 명승지를 찾아가 ‘아버지여, 이 강산 이 민족에게 하나님의 인연을 맺어 주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이런 길을 선생님이 계획을 했으니 이것이 1차에 안되면 2차에, 2차에 안 되면 3차까지 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루어야 합니다 만일 3차까지 해서 안 되면 전부다 죽는 것입니다. 1차, 2차, 3차에서도 안 되면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과 전부다 한 구덩이에서 죽든가 멸하든가 할 각오입니다.

선생님이 쫓김받던 서러운 때에, 홀로 삼천만 민족과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면서 눈물지으며 아버지 앞에 기도한 것이 불원한 장래에 이루어지면 그날에 다시 한번 이 명승지를 찾아오겠다고 하나님 앞에 기도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과 같이 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그저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하는 식입니다.

17-58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복귀의 길에서는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 가정에서는 아담이 되어서 아담이 서러워했던 심정을 느끼고, 또 아담을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에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면서 몸부림쳤던 형용할 수 없는 애달픈 그 심정을 여러분이 체험하고, 또 아담을 쫓아내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 아담의 입장을 복귀해 들어가고, 더 나아가시는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복귀해 들어가야 합니다.

아담의 처량한 심정을 체휼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요, 아담을 내쫓았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로되, 이것이 안 되거든 세상의 핍박을 가지고라도 심정세계와 인연맺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이불을 덮고 자는 데서는 불가능합니다. 찬서리가 내리는 자리, 처량한 자리, 부대끼는 자리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복귀의 철학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조롱하던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던 자리에서 ‘아버지! 당신의 억울함이 얼마나 크셨습니까? ‘ 하고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며 아버지를 불렀던 그 시간과 그때를 선생님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그런 인연이 연결되어 후손들에게 남아질 것을 생각할 때,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원수를 굴복시켜 승리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아버지의 안식처를 마련하고 그 아버지를 모시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심정적인 면에서 아직까지 미달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담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아담의 발자취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노아는 120년을 정성들였지만 자식을 잘못 가져 천추의 한을 남겼습니다. 1, 600년을 공들인 천적인 공(功)이 일시에 무너질 줄 꿈엔들 생각했겠어요? 그때 노아의 심정과, 그런 자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편안히 살고 있는 자리에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학생시대에 자취생활을 했는데 불도 안 땐 냉방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또 더운물보다는 찬물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심정의 인연만을 그리면서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땅으로 가겠다고 나섰다면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노아 역시 마찬가지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야 할 입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전에 그 일을 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야곱, 모세, 전부다 하나님이 쫓아내서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체험시켜 가지고 복귀의 심정을 닦아 나왔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역시 애급에서 쫓아내 가지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다들 시킴받는 자리에서 모든 일을 해 나왔습니다.

17-60
복귀의 길은 우리가 어차피 가야 할 길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민족적인 이동을 시켜 가지고 하는 것을 원하시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삼천만 민족이 천륜의 뜻을 받들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대신하여 여러분이 자진해서 대이동을 해야 합니다.

‘나는 그 민족을 대표하여 그 나라 사람이 되겠다. 그 강토에 뼈를 묻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런 면에서 볼 때 전부다 불합격자입니다, 불합격자.

여러분은 아담보다도 나아야 되고, 노아보다도 나아야 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또 모세보다도 나아야 되고, 세례 요한 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6천년 수고하여 거둔 열매가 역사시대에 깎여 뭉그러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은 새시대에 있어서 책임을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어떠한 자리에 있어서도 밀려나지 않는 그런 가치로 인정받아야 됩니다. 그런 가치로 인정받게 하려니 하나님은 통일교회의 7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사탄을 총규합해 일시에 친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효성과 충성의 인연을 가지고 나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제멋대로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효성과 충성을 다하기 위해 몸부림쳐 나왔습니다. 심정의 자리에서 절대 빚지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자숙하면서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 면에서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더 생각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민족을 대표하고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갈 길 앞에는 연단과 시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복귀의 길은 여러분이 어차피 가야 될 길입니다. 아담 대신, 노아 대신 여러분이 가야 합니다. 승리한 아담의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모든 탕감의 조건 앞에서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해방을 받는 동시에 절대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기준까지 넘어서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승리의 자리에 갈 수 없습니다.

복귀는 심정을 중심삼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통일 교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물론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복귀의 길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17-61
복귀노정에서는 사탄세계를 먼저 사랑해야
아담이 실수했던 이 인연을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복귀해 나왔으나 전부다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이것을 어떻게 복귀할 것인가?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라고 해서 집안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는 것도 자식을 기르는 것도 전부다 내일의 민족을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7년노정이 끝나게 되면 그때 선생님은 교회를 새로 마련하여 이 교회에서 이사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떤 계통적인 인연을 결정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7년이란 기간을 두고 분명히 자리를 잡아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리를 잡으면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도 그때 원칙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때까지는 동정심도 없는 사람이고, 무자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까지도 옥중 문전에서 쫓아 버린 사람입니다. 감옥에 있는 자식을 대해 눈물 흘린 어머니를 냉대한 사람이에요. 세상적으로 보면 선생님은 불효자입니다. 이 땅에 아무개의 아들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 아들을 어머니는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기준 앞에 너무나 초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렇게 한것은 어머니의 아들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 쫓아버린 것입니다.

선생님의 처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자식을 남의 손을 거쳐서 기른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돈이 없어서 그랬겠어요? 하나님의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자기 것을 먼저 사랑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사탄세계를 사랑하고 나서야 자기 것을 사랑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처자를 버려서라도 세상의 악한 원수의 새끼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자기 자식을 사랑해야 사탄이 참소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천국을 꿈꾸시는 하나님께서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천국을 만들려니 그런 일을 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지상천국 이념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원리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리에 부합될 때까지, 제2차 7년노정에서도 합격되지 못하면 3차까지 연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그 아들딸이 가야 할 길을 모세와 야곱을 통하여 보여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여러분이 갈 길을 닦아주면서 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7년노정은 선생님의 생활이 어떻다는 것과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대하여 나온 그 모든 내적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 주고, 후대 만민이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적인 요소요, 형상적인 요소요, 실체적인 요소입니다. 상징 형상 실체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징 형상 실체가 한 몸을 이루어 가지고 역사적인 전철을 붙안고 뒤넘이치는 이 길을 개척해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법도적인 조건을 만세에 수많은 타락권내의 후손들 앞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입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를 가졌다고 해서 적용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축복가정에 대해서 축복은 해줬지만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매해 36가정 총회를 열어서 이런 것을 다 수습해 가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망각한 자식들에게 깨우쳐 주려고 합니다.

17-63
내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
축복가정들은 원리적인 숫자의 터전을 중심삼아 선생님이 없더라도 앞으로 통일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록(生命錄)에 기록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그런 걸 반영시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지상에 있어서 내 생애의 노정 위에 싸움의 결실로써 아버지 앞에 드리오니 나를 이겨서라도 이들을 넘겨 주시옵소서’ 하고 보고드리는 것입니다. 복귀의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하나님 앞에 제시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때가 다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부터 갈 길이 대단히 바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기보다는 눈물이 앞서야 되겠고, 옷을 입기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수치를 회개하는 것이 앞서야 합니다. 그래서 역사시대를 지나 부활의 실체로서 아버지 앞에 승리의 제사장으로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번제는 무엇으로 드려야 되느냐? 송아지가 아니요, 자식이 아니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제물로 드리려 하였는데 하나님이 원통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의 자식을 통해서 복귀섭리역사를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을 통해서 복귀섭리역사를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귀역사를 하지 못하신 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또 아담에게 있어서도 아담 자신을 통해서 복귀역사를 못하신 것이 한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자식을 통해서 복귀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자기의 자식이나 송아지를 세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투쟁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귀의 고개를 못 넘는 거예요. 아시겠죠? 「예」 죽더라도 그걸 모른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내 자신이 생명을 다해야 됩니다. 맞아도 내가 맞고, 천대받아도 내가 받고, 감옥에 가도 내가 가야 됩니다. 슬픈 일은 모두 내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 번제의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후대의 후손들이 그의 조상을 번제드리지 못한 것이 타락이 아닙니다. 아담이 번제의 실체가 되어 승리의 왕자가 못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래서 슬프게도 양새끼가 죽어가고 자식들이 죽어갔습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후대의 후손들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그래야 됩니다.

내 자신이 7년노정에서 가야 할 길, 내가 그 심정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책임을 내 스스로 지고 가야 합니다. 편하고 좋은 환경을 바랄 것이 아니라 눈물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이 세계에서 그런 길을 걸어가야만 복귀의 길을 완전히 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이 세상을 정복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을 자신있게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 손들어 봐요? 내리세요.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삼천만 민족의 재산으로 기부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17-64
제2차 7년노정을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가정은 여러분의 가족만을 위하는 가정이 아니라 삼천만 민중을 위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몸이 아니요,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번제에 올라가야 할 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물질에 대한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랬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제물의 과정을 볼 때 하나님은 만물을 제일 먼저 쳤고, 그 다음에는 자식을 쳤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당사자를 쳤습니다. 이것이 오늘 통일교회에 직결되어서 일시에 탕감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상징제물인 만물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모든 전부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내 자식들을 희생의 자리까지 내세워 못 먹고 떨고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권고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사탄세계에 보내어 죽음의 길로 내몰아 원수의 창칼에 피를 흘리게 하면서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복귀노정을 가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까지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7년노정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똥구루마를 끌라고 하면 끌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물의 길을 가야 되고, 속죄의 길을 가야 됩니다. 이 길은 그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야 됩니다. 재림주님도 가야 되는 길입니다. 사탄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길을 가는 곳입니다. 나 하나 잘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라만 살리고 나라만을 잘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가 잘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를 통하여 세계를 통일시키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이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는 것을 기뻐하고 있지만 선생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굴복된 민족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 이 사회를 살리고자 하고 있는 데, 이 사회로부터 먼저 빚을 져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빚을 지워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상징, 형상, 실체제물을 드렸습니까? 지금까지는 상징, 형상 제물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을 위주로 해서 되어져 왔기 때문에 세계가 선생님을 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삼천만 민족이 죽을 때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만민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 철칙입니다. 예수님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 :35)”고 하였듯이 천지는 다 없어질지언정 이 말만은 남아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제자들을 축복해 거기에 대한 법궤를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몸뚱이만 갖다 놓고 불만 사르면 됩니다. 누가 불살라야 되느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여러분의 자식들이 불살라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를 구하기 위해서 자식이 희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다 거꿀잡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돌아설 때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경배해야 되고, 아버지가 자식에게 경배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섭리적으로 자식이 제물의 입장에 섰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 앞에 아벨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원칙을 세워 나가야 할 길에서 뭐 이렇고 저렇고 변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얼마 후면 1967년이 됩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여러분 마음대로 선생님의 집에 못 들어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마음대로 못 들어오는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출발할 때 마음으로 결의한 가운데 아버지 앞에 손들고 맹세한 것으로 압니다. ‘내가 통일교회 들어와서 뭘 했나’ 하고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17-66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할 제2차 7년노정
이 7년노정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을 위해서 싸워 왔지만 그때에는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이래서 선생님은 명년 3월이 다가기 전에 일본, 미국을 다녀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일본 식구나 미국 식구들을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7년노정의 혜택권내에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어떻게 혜택권내에 들어오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인 문답을 하여 그 사람들의 심정을 분석해 가지고 특권을 주기 위한 준비를 선생님이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한국의 사나이와 아낙네들이 세계만방에 흩어져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뜻을 펼쳐 나가기를 원합니다. 한국 사람들을 선교사로 세계에 내보낼 수 있다면 선생님은 기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선교사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몇명 있어요?

선생님은 세계 40개국에 120개 성지를 택하였습니다. 성지를 택한 그 40나라를 대표하여 국가적인 기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야 하는데 누구를 보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은 그런 것도 다 결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선교사로 가서 전도를 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지 노릇을 하더라도 그 나라 그 민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렸다는 그 재료만 남기라는 것입니다. 말을 못하면 벙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말을 해서 뭘 합니까? 말 몰라서 전도 못 하겠습니까? 벙어리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 그 민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의 있는 정성을 다하고, 벙어리 노릇을 하면서라도 울며불며 몸부림치는 그것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야 심정적인 주체성을 갖춘 민족이 될 수 있지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해봐요. 여기 협회장부터……. 모르지 누가 갈는지.

17-67
복귀의 길을 책임지고 가라
선생님은 뜻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것은 문선생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고 해도 그까짓 것은 바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부모를 제물로 바치라는 하늘의 명령이 있으면 그것이 원리원칙에 입각한 만인류와 역사시대 앞에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하늘의 뜻이라면 부모도 제물로 바칠 수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한 스승이 자리를 잡고 출발한 통일교회입니다. 그 전통과 인연은 역사시대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총동원해 가지고 전부다 외국에 선교사로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이 이 민족을 대신해서 여러분을 역군으로 내세워야 할 거기에는 또다시 비참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 참석한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서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는 각오 밑에서 오늘 저녁부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7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0일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무엇을 놓고 기도하라고 했어요? 선생님의 옥중 기도를 가지고 기도하라고 그랬지요?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습니까?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동지가 되어 주길 바라는 뜻에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동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마디 부탁하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비참한 고빗길이 남아 있으니 여러분은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변함없는 자세를 지니고 복귀의 길을 책임지고 가 주길 부탁합니다. 더도 말고 김씨면 김씨 문중에 있어서 그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집안에서 그런 책임을 할 수 있는 각자가 되고 어디서나 민족 앞에 있어서는 부끄럽지 않은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17-68
기 도
내 아버님! 제가 부르는 아버지는 너무나도 불쌍하였던 것을 저는 아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해야 할 그 아버지의 요건이 인간이 타락할 수 있는 기준에서 바라봄에 있어서 당신이 주시는 하나의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몸부림을 치다가 몸부림으로 사라지다 가는 아버지 앞에 탄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아버님, 대다수의 인간들은 아버님이 영광의 옷을 입고 만세를 통치하고 만영광에 사로잡혀서 만민을 사랑한다고 선포하시는 줄 알고 그런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고, 그런 아버지를 붙안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인간들의 욕망이었습니다. 하오나 통일교회 교인들이 붙들고 있는 그 아버지는 죽음의 자리 가운데서 밤이나 낮이나 소망의 미래를 바라보며 이를 갈아 가면서 참아 나오시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억울함과 수많은 고난길에서 혹은 가시밭길에서 상처를 받으신 그손길을 붙들고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고 싶어하는 것이 통일의 신도들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한 많은 이 복귀의 길, 억만금으로 갚을 수 없고, 그 어떤 말로서도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인 서러운 사정이 있기 때문에 아버님께서 잊어버리고 말겠다는 그 마음 앞에 천만번 회개해야 할 불효의 모습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0년에 출발한 이 7년노정을 앞에 놓고, 7년 고비를 넘어서는 때가 가까와짐에 따라 이제 저희들은 과거를 걸어 놓고 회개하고,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정비하여 자기가 처해 있는 제단이 성지의 한 지성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의 그 누가 뭐라해도 자기 체면과 위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님의 가정의 법도가 구김살을 당하고, 아버지 뜻 앞에 이 모든 전부가 구름이 끼게 될 때에는 내 몸이 찢기고 내 체신이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하면서 그곳으로 응당 가야 할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무리를 아버님께서는 통일의 무리 가운데 찾아 세우려고 얼마나 더듬어 오셨던가를 망각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0년대를 중심삼은 이 7년 고빗길에서 사탄이 움직이던 공산주의가 이제는 석양과 같이 기울어 분열되고 파괴되는 단계에 들어가는 역사적인 한 전환시기가 저희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7년노정이 끝남과 더불어 이 세계의 변천이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결정적인 표준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당신의 서운함도 있었겠지만, 당신을 향하여 책임진 저희의 마음을 아버지 아시옵고, 이 고비를 넘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일을 위하여 당신도 수고하셨고, 저도 몸부림쳤사옵니다. 저를 불러 명령하시고 바라셨던 소원이 이제 목전에 다가온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다시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천명에 책임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불의가 동참할 수 없는 완전한 선 자체로서 시작하여 선 자체로서 결실될 수 있도록, 당신이 소원하시는 복지가 저희의 문전에 다가오는 것을 마련할 수 있는 각자가 될 수 있도록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의 갈 길을 맡기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이제 11월을 맞이 하였사오니, 이 달도 아버지 뜻 가운데 있게 하시고, 저희들이 이 민족 앞에 해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 당신의 수고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옵고,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나님 앞에 대립하여 서는 자는 하나님이 채찍을 가하시고, 눈물로써 허리를 굽히고 통곡하면서 심정의 빚진 것을 갚을 도리가 없어서 민족 앞에 있어서 혹은 만민 앞에 있어서 탕감의 조건으로 자기 스스로를 제물삼기 위하여 나서는 자들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같이할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그런 사랑의 손길을 같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이 해에 아버지 앞에 복된 내용을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아버지 앞에 저희들이 결심한 모든 새로운 것이 저희의 마음에 새로운 폭발적 인연으로 남아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남아진 복귀의 뜻 앞에 그 무엇을 남길 수 있도록 저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방에 널려 삭막한 광야에서 복음의 횃불을 들고 싸우고 있는 무리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들의 외로움을 동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제가 어려운 때 아버지께서 보호해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의 무리들이 6년 동안 싸울 때에 주위의 모든 환경을 배척하게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들 부디 지치지 말도록 아버지 보호하여 주시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여 아버지의 축복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을 아버지 부디 지치지 말게 하시옵고, 그들이 주저하지 말고 최후의 목적지인 원수의 적진을 향하여 돌격해 나가는 행진 노정에 있어서 아버지의 서러움을 더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모든 전체를 당신이 뜻하신 대로 이끄시옵고, 경륜하신 뜻대로 정하고 보답할 수 있게끔 마음에 힘과 환경의 모든 여건을 아버지 분별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