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 to 16-140: 심판의 목적

심판의 목적
1966.01.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16-99
심판의 목적
고린도전서 13:1­13

[기 도(Ⅰ)]

1966년, 새해의 첫 성일을 맞이하는 이 시간이옵니다. 아버님이시여 ! 한 많은 역사의 슬픔을 거두시옵고, 이 한시간 저희들이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생각을 갖고 있사오니 새로이 분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이 성일을 기준으로 하여 이 해의 52주의 성일이 다 거룩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해를 보내면서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과 하나 되어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을 대하며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삼천리 강산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이 시간 이곳을 마음으로 그리며 아버님 앞에 간곡히 경배드리는 이 시간인 줄 알고 있사오니, 이 외로운 무리들을, 아버님,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정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는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아버님의 사정에 그들을 연결시켜 주시옵고, 아버님의 심정이 아니면 다시 소망을 갖고 움직여 나갈 수 없는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아버님의 심정에 그들을 연결시켜 주시어서 남아진 소망의 뜻을 대하여 또다시 충성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을 위하여 충성한다고 하면서 걸어온 지난날의 발걸음이 어찌 아버지 앞에 완전하다고 할 수 있사오리까? 당신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녀들이 자유롭지 못한 자리, 구속되는 자리, 핍박받는 자리, 혹은 억울한 자리에 처하여 있사오면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권고와 새로운 약속을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수많은 민족을 기억하여 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더우기 이 한민족은 불쌍한 민족이오니 이 시간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 황폐한 삼천리 반도를 당신이 어루만져 주시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도록 천적인 권내로 몰아넣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은 아버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의 나라요, 새로운 뜻을 대하여 아벨의 제단을 갖추어야 할 나라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이 나라에 대한 아버님의 바라심이요, 아버지에 대한 이 나라의 본분이요, 이 땅과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선령들에 대한 본분인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긍휼의 사랑을 베푸시사 이 민족과 이 나라가 아버님 뜻 앞에 합당한 민족이 되어 소망의 제3이스라엘로서 천국을 건설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나라가 세운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리를 만국이 본을 받아 아버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아버님께서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는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뭇 자녀들은 그러한 것을 마음 깊이 느끼며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보호하시고 키워 주시사 최후의 싸움에 승리하여 아버님의 영광의 존전에 참석할 수 있는 이 백성과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한국을 통하여 이루어질 세계적인 새로운 역사가 온 인류에게 미쳐지게 해주시옵고, 동시에 인류가 소망해 온 목적을 달성하고 아버님께서 소망해 오신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백성이 책임을 다하여 인류의 갈 길을 열 수 있게 해주시옵고, 그러한 이 나라 이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의 인간은 물론이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도 땅을 중심삼고 재림 부활하여 자기들의 해원성사를 고대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그들의 소원을 들으시옵고, 이 지구성(地球星)이 그들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협조 아래 아버님의 영광된 세계를 이룬 그 자리, 가인 아벨 전체가 하나 되는 그 자리에 아버님을 모셔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온 천지가 아버님의 사랑과 행복 가운데 살 수 있게 해주시고, 평화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러한 나라, 그러한 천주를 이루어 드릴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 첫 성일,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이 모든 말씀 주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6-101
기 도(Ⅱ)
만우주를 지으신 아버님이시여! 당신의 영광을 모든 만물과 나눌 수 있는 그 한 날을 당신은 얼마나 간곡히 소원하셨던가를 이 시간 저희들이 마음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아버지 품에 기르셔서 영원한 사랑의 생활을 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복지를 건설하려 하셨고, 자라나는 아담 해와를 통하여 기쁨을 누리려 하셨던 아버지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옵니다. 그런 간곡한 소망을 가지셨던 아버님께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시고 슬픔의 한 날을 맞이하게 됐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이 땅에는 나라들도 많사옵고 민족들도 많사옵니다. 그들은 지난날 각각 역사를 달리했고, 현실 생활환경을 달리하고 소망도 달리하고 있사옵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본래 경륜하신 뜻과 상반된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에, 역사가 다른 것이 아버님의 한이옵고, 환경이 다른 것이 아버님의 한이오며, 소망이 다른 것이 아버님의 한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 이것이 타락의 보응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과거가 아버지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되고, 현재가 아버지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되고, 미래가 아버지의 이념과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온데, 오늘날 인류는 하나의 인연을 갖지 못하고, 하나의 생활적인 환경과 하나의 이념적인 터전을 갖지 못하고 비참한 현실에 처해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혼란된 자리에서, 방향이 뒤바뀐 자리에서, 자기 위치가 서로 상충되는 그런 자리에서 살고 있는 30억 인류의 신음 소리와 처절한 울부짖음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마음으로 듣게 해주시옵고, 아버님의 심정과 더불어 생각할 줄 알고, 아버님의 심정을 느끼며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966년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새로운 해를 맞아 자기를 중심하고 새로운 약속을 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하는 사람은 많사오나 아버님의 사정을 염려하고, 아버님을 중심삼은 소망을 갖고, 아버님을 중심삼은 목표를 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지극히 적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이 땅의 수많은 민족은 아버님을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사오나 그 운명을 망각하고 있사옵고, 아버님을 시봉하는 은사의 터전을 다져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반하고 저버리는 자리에 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복을 가져다 주려 하시는데, 그 복을 마다하고 당신의 참된 이상과 참된 이념의 세계를 거부하는 인간들을 바라보게 될 때 저주하는 마음으로 심판하여 이 땅 전체를 파멸시키고 없애 버려도 시원치 않을 분한 마음이 들 것이오나, 아버님께서는 사랑의 인연, 부모의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끝까지 구원하시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진정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이 인류가 복된 소망을 갖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사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교단이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고 있사오나, 당신이 가셔야 할 그 슬픈 길을 놓고, 인류가 받아야 할 처참한 심판의 서러움을 놓고 아버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눈물짓는 무리가 많지 않은 것을 아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이 불쌍한 무리는 서러움의 길을 연하여 나왔사옵니다. 당신이 분부하시는 명령을 안고 이날까지 싸워 나오며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오늘 이 자리에 남아진 당신의 아들딸들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해에 저희들이 복을 받으려 하기 전에 현실에 남아져 있는 지난날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불쌍한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수많은 교단을 대신하여, 수많은 믿는 신도들을 대신하여 눈물로써 아버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의 상한 손길을 붙들고 당신의 사정을 위하여 염려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고, 당신의 초초한 모습과 당신의 처절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내 아버지라고 달려들어 목을 껴안고 통곡할 줄 아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내 마음을 가졌을진대 스스로 죄인인 것을 직고하여 아버지의 긍휼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눈물로 속죄받으며 가야 할 인생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 아버님께서 그러하옵기에 그 아들딸인 저희들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난해에도 그랬사옵고, 지지난해에도 저희들을 그런 자리에 몰아 넣으셨사오나 그래도 오늘날까지 참아 나오며 남아진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단발을 하고, 새로운 투지를 가지고 하늘의 무기를 갖추어 아버님의 명령을 받들어 달려나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버님 ! 저희들은 따라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앞에, 민족 앞에, 인류 앞에 선발대로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많은 날들을 슬픔 가운데 애쓰신 것이 한이었사옵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배반한 역적의 무리가 된 것이 한이었사오니, 이 한 많은 날과 한 많은 사연들을 짊어진 하늘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저희들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그 짐을 책임지고 맡아 이 온 우주 만물을 위하여 하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스스로 즐거워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 저희들은 지난날의 모든 것을 직고해 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의 터 위에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흠모의 정만이 저희들의 마음에 채워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어떤 사정을 갖고 계시든,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시든 그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당신을 정성들여 모셔 드릴 수 있는 참효자 참효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새해를 맞이하여 이 서울 본부를 향하여 외로운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에게 소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이 소원하는 소망의 날을, 아버지여, 연장시키지 마시옵소서. 이 민족의 슬픔을 느끼게 하시옵고, 이 민족의 죄악사를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그들이 되게 하시오며, 아버님의 직접적인 주관 아래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참고 나오며 호소하는 내용을 당신이 귀 기울이실 줄 알고 있사오며, 저희들이 외롭고 비참할 때 당신이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핍박당하고 몰리는 자리에 같이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있사옵니다. 그러하신 아버님, 저희들의 사정 사정을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까지 저희들이 얼마나 당신을 슬프게 했는지 말로 할 수 없사옵니다. 이 한 해만은 그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 아버님 앞에 온갖 정성을 다 묶어 바치고, 겸손히 엎드려 아버님을 부를 수 있으며, 아버님 품에 안겨 한없이 흐느낄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이 시간 각자가 지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까지 찾아오신 아버님께서는 딴 사람의 아버님이 아니셨사옵니다. 내 아버님이요, 우리들의 아버님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 아버님과 인연을 맺어야 할 복귀의 운명의 도상에 서 있는 이 슬픈 자식들을 다시 당신의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 벽두 첫 성일을 맞이하여 이들 앞에 섰사오나 무슨 말을 전하오리까?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이 가운데 창조의 능력과 더불어 나타나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저희들의 심정 심정을 연결지어서 하나의 제물로 바쳐지는 이 제단이 되고, 민족을 대신하여 속죄의 분향을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민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대신하여 눈물지을 수 있게 해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오셔서 아픈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승리가 이 한 해에 저희들과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과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고, 인류와 뭇 영인들과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6-105
말 씀
이번에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한 내용들을 중심하고 이 시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6-105
악한 세상 악한 인간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여러분은 선한 세계라고 생각합니까, 악한 세계라고 생각합니까? 선한 세계예요, 악한 세계예요? 어느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선하지 못하고 악하다고 할 것입니다. 비단 한국 사람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에게 물어 보아도 같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선한 사람이 많습니까, 악한 사람이 많습니까? 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선한 사람보다도 악한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역시 선한 부분보다도 악한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내가 될 때까지 유린되어 온 과거나 유린되어 있는 현재를 볼 때, 악의 인연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갖지 못하고 있고, 그런 생활 무대를 갖지 못하고 있고, 미래의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은 비참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성인 현철들 혹은 수많은 도주들이 바라던 소원은 무엇이었던고? 그들 모두는 이 세계가 선의 세계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염려했고, 악한 세상을 선한 세상으로 만들지 못함을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내 자신이 모두가 악하다고 하는 환경에 사로잡혀 있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세계가 악한 사회와 세계가 되어 있는 사실은 어찌된 연고인고?

수많은 사람들이 선을 바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세계는 악한 세계입니다. 악한 이 세계를 선의 세계로 만드는 것은 오늘날 인류가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전에 평화가 올 수 없습니다. 악을 제거해 버리기 전에는 새로운 천국과 새로운 이념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진정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너만은 이 악한 세상에서 참된 사람이 되라’고 호소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양심을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개척해 나아가야 할 자신을 두고 볼 때, 하루의 생활이 그러하고, 일년의 생활이 그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을 중심삼고 내 자신이 승리했다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도리어 선한 환경이 아닌 악한 환경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나의 비참함과 이 세계의 비참함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6-106
악한 세상을 책임져 오신 하나님
세상에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세계를 호령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 역시 악한 환경에 사로잡혀 살고 간 사람임에 틀림없고, 현재 제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꿈을 갖고, 미래를 갖고, 세계를 호령한다 하더라도 역시 이 세계가 선한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그냥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셔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선의 목적을 세우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세상을 그냥 그대로 두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세계를 선의 세계로 돌리려는 싸움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섭리역사 과정에 그 싸움의 실증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선민사상이 나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의 이 땅, 악한 이 세상을 가로막고 참된 개인을 세우고, 참된 가정을 세우고, 참된 종족을 세우고, 참된 민족을 세워 새로운 섭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이 악한 세상에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역사 과정에 있었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선민사상이 역사상에 나타난 것을 보아서 ‘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민사상은 역사 이후에 생겨날 것이 아니라, 본래 역사 이전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악한 인간이 되고 악한 세계가 된 후에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선한 기준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야 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악한 기준에 속해 있던 사람은 선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민사상은 역사 이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선한 하나님이요,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역사 이후에 선민사상을 두었다면 그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선민사상은 역사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선민사상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선민사상에 의한 하나의 완성된 선민의 실체는 타락한 세계를 중심삼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설정하신 창조의 목적을 완성한 자리에 있는 참된 사람, 즉 하나님이 영원히 취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대하실 수 있는 참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참된 사람에 대한 기준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악이 이루어진 이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되기 이전부터, 악이 출발하기 이전부터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한 세계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고, 악이 점령하고 있는 세상인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선한 사람을 길러 낼 것이냐? 이 천지를 창조한 주인이 있다면 이것은 그분에게 중대한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길러 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하여 섭리해 나오신 방향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사람을 길러 내는 방편으로 세우신 것이 무엇이냐? 종교입니다 종교. 아시겠어요?

그래서 타락한 그날로부터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했지만 인간의 본심 깊은 곳에는 종교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바탕, 즉 신앙을 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악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인간에게 선민의 기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목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성은 언제나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향하는 선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16-108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온 인류 역사
여러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두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만약 두 분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창조목적이 하나만 되겠어요? 두 분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창조목적도 두 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이 두 개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점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분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분의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분의 하나님이 지으신 온 피조 만물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한 분의 하나님께서 하나의 창조목적을 세우셨고, 하나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의 재료로서 모든 존재물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물로 하여금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지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한 분의 하나님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온 천지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이 역사가 아무리 소용돌이치고 밀치고 넘어지며 나가더라도 이 역사는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이 완성되었더라면 선한 세계로 출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선한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선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보아 이 세상이 선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악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천지 만물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면 선과 악이 병존하고 있고, 서로 다른 목적을 지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한 부분을 제거해 버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제거당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이 아니라 악입니다. 과거의 악을 제거하고, 현재의 악을 제거하고, 이 지구상에서 악을 영원히 추방할 수 있는 한 날이 와야만 됩니다. 이렇게 하늘과 땅에 하늘의 주권을 세워서 완전히 악을 제거시켜 버리는 날이 바로 심판의 목적을 완성하는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섭리해 오신 인류역사를 보게 될 때, 악은 분산되어 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악은 통일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악은 분산되는 것입니다. 부딪치고 갈라지고 또 갈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조상으로 출발했는데 오늘날은 어찌하여 수많은 민족이 생기고 각각 다른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국가로 갈라져 있는고? 이것은 인간이 악으로 출발한 결과입니다. 서로 부딪치고 나서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고, 이렇게 배수로 갈라져 수많은 종족을 형성해 왔던 것입니다.

악은 통합될 수 없는 것이요, 악은 분립되는 것이요, 분립의 결과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의 공법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선과 악의 투쟁사입니다. 이 악은 그냥 제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딪쳐야 합니다. 선과 악이 부딪치면 악이 선보다 먼저 망합니다. 조금 선한 것은 조금 악한 것보다도 조금 나중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더 악한 것이 먼저 망하고 덜 악한 것이 나중에 망하는 것입니다.

16-110
인류 역사는 선과 악의 투쟁사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여기 똑같은 사과가 두 개 있습니다. 둘 다 맛이 있어 보이고 보기만 해도 탐스럽습니다. 그런데 한쪽 사과 꼭지에 조그만 파리똥이 하나묻어 있다고 합시다. 그래도 물론 그 두 개를 다 가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둘 중에 하나만 가져야 한다고 할 때 어느 것을 가지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느 것을 가지려 하겠습니까? 파리똥이 묻은 사과를 가지려고 할까요? 묻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할까요? 물어 볼 것도 없이 묻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이건 삼척동자에게 묻더라도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전부가 다 좋은 것을 택할 것입니다. 그건 부정 못 하지요?

한 가지 예를 더 들겠습니다. 어떤 동네에 짓궂은 나쁜 사람이 괜히 얌전히 지나가는 아이를 건드려 가지고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대다수의 동네 사람들은 싸움을 건 그 나쁜 녀석을 외면해 버리고 매맞는 아이의 편이 될 것입니다. 억울하게 매맞는 아이의 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에 나쁜 편은 고립되는 것이요. 좋은 편은 후원자가 생겨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을 못 합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볼 때, 이 천지를 주관하시는 대주재, 절대적인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더 악한 녀석하고 덜 악한 녀석이 싸운다면 하나님이 어느 편이 되시겠어요? 하나님은 덜 악한 편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편이 망하겠습니까, 안 망하겠습니까? 망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반드시 부딪쳐야 됩니다. 부딪치지 않고는 판결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수많은 전쟁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으로 분립되어 부딪쳐 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선한 민족을 찾아 세워 나오신 것입니다. 조금 선한 계통이 남아져 나오고, 그 계통을 통해서 역사가 이어져 나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시대입니까? 수많은 국가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여 하나의 이념권내로 점점 흘러 들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민족의 사상이나 국가의 전통이나 관습이나 문화를 넘어서 세계적인 사상과 전통과 문화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현재 목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민족이 점점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나의 기준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싸움이 있었는데 항상 악이 위에 있었고, 선이 아래에 있었습니다. 악은 먼저 출발하였기에 위에서 세상을 마음대로 지배해 나왔고, 선은 나중에 출발했기 때문에 아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은 점점 높은 자리로 올라왔고 악은 점점 내려왔습니다. 이제 악은 멸망하여 영원히 아래로 내려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즉 선과 악의 교차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차 시기가 창조주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출발시기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선과 악이 싸워 왔는데 무엇이 남아지겠습니까? 선이 남아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싸우고 있는데, 어느 주의가 남아질 것이냐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민주주의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의이고,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유물주의입니다. 이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16-111
악을 이기는 비결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안 계신다는 사람과 계신다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더 선한 사람입니까? 계신다고 하는 사람이 더 선한 사람입니다. 엄연히 계시는 데도 안 계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날도둑 아니면 뭔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의 종말기에 어떤 편이 승리할 것이냐? 하나님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섭리하시고, 세계를 하나의 목적을 향해 끌고 나가신다 할진대 반드시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협조를 받는 편이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편을 협조하실까요? 조금 선한 편을 협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은 다 나쁘나 그 가운데에서 언제나 조금 더 선한 편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진다는 결론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1차대전도 먼저 일으킨 나라가 졌고, 2차대전도 먼저 일으킨 나라가 졌으며 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언제나 전반전, 중반전까지는 악이 우세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건 원리에서 소생, 장성권은 사탄이 침범했으나 완성권만은 사탄이 침범하지 못 했다고 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초반전, 중반전까지는 언제나 악이 우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반전 막바지 단계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뒤집어 졌습니다.

이것은 지나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악은 끝까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나면 악은 몽땅 양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은 끝까지 참을 수 없으나 선은 끝까지 참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개 보면 끝까지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혈기가 많은 사람, 교만심이 많은 사람,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참는 사람은 큰 목적을 가지는 사람, 그 목적을 위하여 소망을 크게 가지는 사람입니다. 즉 목적의 기준을 내일에 두지 앉고 먼 미래에 두는 사람일수록 끝까지 참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악은 자기를 중심삼는 것이며, 선은 절대자이신 창조주에 대해 상대적인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목적을 바라보고 큰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느니만큼, 작은 목적에 지배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악은 가는 데마다 부딪칩니다. 그러나 악은 인내하지 못합니다. 악은 교묘하게 운행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런고로 문제는 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의 고향, 악이 태어난 곳은 어디인가? 악의 근거지는 어디이며 악의 본향 땅은 어디인가? 악의 고향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 땅도 아닙니다. 어떤 간판을 붙인 단체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과 가정입니다. 세계는 수많은 종족과 민족과 나라가 합하여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고향은 이러한 가정, 종족, 국가,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악의 고향은 어디이냐?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악의 본향, 악의 근거지는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우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인간이 타락한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타락은 무슨 타락이야? 타락하는 것 보았느냐? 그것은 겁장이들이나 약자들이 믿는 것이야’라고 비웃습니다. 인생의 낙오자들이 가는 곳이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만부당한 생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타락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타락했어요, 안 했어요? 타락하는 것 봤어요, 못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타락한 것을 알아요?

16-113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본심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창조를 받은 모든 존재물은 이 목적을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모든 만물이 태양을 향하여 숨길을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초목은 물론이요, 모든 동물들도 그렇다는 겁니다. 밤잠이 너무나 지루하고 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가운 햇님, 어서 올라 오소’ 하면서 자기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동원해서 아침 해를 반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이 태양을 그리워하는 것은 태양이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우주의 중심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인간에게 그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본심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없다면 만물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야, 아무개야 하나님께로 가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나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세계로 갈 수 있다’ 라고 자신할 수 있어요? 천만의 말씀이로소이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미안합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분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목적이 하나예요, 둘이에요? 똑똑히 말해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의 목적도 하나예요?

1966년 새해 벽두에 여러분은 ‘나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갑니다. 그 목적은 내가 나면서 목적하던 것입니다. 나는 이 목적을 위해 죽을 때까지 갑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과거의 하나님이 따로 계시고, 현재의 하나님이 따로 계시고. 미래의 하나님이 따로 계십니까?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직선적이십니다.

여러분. 세상에도 곧은 사람, 혹은 똑바른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사람이 곧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까? 그것은 천리 법도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똑바로예요? 결국 결론을 내리면 우리는 두 목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목적 가운데 한 목적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마음이 가는 목적과 몸이 가는 목적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하지요? 똑똑한 사람이라면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이러하기 때문에 좋든 싫든 부정하지 못합니다.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우리는 두 목적 가운데 있되 어느 하나를 완전히 선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고 돌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대목적을 세우셨다면 이러한 사람들이 그 목적 세계에 필요한 사람들입니까, 쓸데없는 사람들입니까? 어떠한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들은 쓸데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쓸데없는 사람들이 가서 모이는 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이 바로 지옥입니다.

인간 쓰레기들을 모아 보류시키는 곳이 지옥입니다. 죄인들이 바로 쓰레기통 직행감이라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선생님도 이런 말하기 거북합니다.

여러분, 어떤 돈 많은 부자 양반이 수천만 원을 들여 집을 짓는 데 쓰레기통을 먼저 마련하고 집을 짓습니까?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하다보니 찌꺼기들이 나오고 그 찌꺼기들을 모아 놓으려니 쓰레기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쓰레기통과 같은 지옥을 먼저 만들어 놓고 천지를 창조하셨겠습니까? 이건 당치 않은 말입니다. 지옥은 타락의 보응으로 생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니 구세주니 하는 분이 오셔야 하는 것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니 종교니 하는 것도 본래는 필요없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간 생활에는 하등 필요없던 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16-115
두 목적을 가지면 제거당한다
여러분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두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두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대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타락했다 이겁니다.

본래는 선만을 위하여, 하나의 목적만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인생 앞에 어떻게 악이 침범해 들어왔느냐?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한 중의 한이요, 역사의 한이요, 세계의 한이요, 우주의 한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악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악이 왕성한데 선의 목적이 이루어집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가 바로 두 목적을 가진 사람을 하나의 목적만을 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두 목적을 갖고 있으니 이랬다 저랬다하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렇습니까? 두 목적을 가진 사람은 이랬다 저랬다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을 좋아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두 목적을 갖고 있으니 이랬다 저랬다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이랬다 저랬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제거당해야 됩니다.

천주는 이랬다 저랬다하는 존재, 두 목적을 향해 나가는 존재를 위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지으신 피조세계이기에, 그 피조세계는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지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천리 법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랬다 저랬다 할 때에는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랬다 저랬다하지 않는 자리, 하나의 목적을 향하는 자리에서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두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상하고 구상하는 세계는 이랬다 저랬다하는 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두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백 퍼센트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끊어야 되겠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하나의 창조목적을 위하여, 즉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대로 따라가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은 두 목적을 갖고 이랬다 저랬다하고 있으니 바로잡아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냥 두면 본심이 지향하는 대로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 가운데 하나를 때려잡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을 때려잡아야 되겠어요? 바로 몸입니다.

때려잡자는 데는 전쟁에서처럼 포를 쏘아서 때려잡자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포는 한 방만 맞으면 그만입니다. 두 목적을 가진 인간들에게 한 목적을 갖게 하는 것은 강제로 때리고 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나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를 포로로 잡아 주십시오’ 하며 천리의 공법 앞에 나타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작전이 제일 힘들고 제일 어렵고 제일 지긋지긋한 작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목적의 세계를 정비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그 수고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기쁘신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쁘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한테 무슨 부족함이 있겠느냐? 천지 만물이 그분을 위해 생겨났는데 무슨 슬픔이 있겠느냐?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왜 해요? 쓸데없이 기도는 왜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기를 바라시고 여러분을 지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의 사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대해 주시면서 고통을 느끼십니다. 그러니 슬프신 하나님이란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6-117
종교의 가르침은 육적세계를 부정하라는 것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실 것이냐? 인간들이 칠 팔십년 동안 신음하고 고생하는 것을 하나님의 슬픔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인류를 자녀로 복귀하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하나님, 하나의 목적세계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과 인간 중에 누가 더 비참합니까? 하나님이 더 비참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아! 이런 사정을 갖고 계신 분이구나, 그러셨어야만 했구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몸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힘든 것입니다 이 힘든 분야를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 종교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때려잡는데 누가 책임져요? 처음 온 사람들도 똑똑히 들으세요, 종교가 책임져야 합니다.

종교는 마루가 되는 가르침입니다. 어느누구도 이 가르침을 모르고서는 천법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어떠한 가르침인가? 몸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가르침입니까? 아닙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이 몸을 때려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심을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종교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종교는 무엇이냐? 바로 이 몸을 때려잡고 양심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양심을 해방시키고 몸뚱이를 구속하자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에 배고플 때 밥을 한 그릇만 먹지 말고 세 그릇씩 먹어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까? 이 천하에 대해 교만해라, 혈기를 부려라, 자기 주장해라, 네 마음대로 해라, 인륜 도덕이고 뭐고 없다고 하는 종교의 가르침이 있습니까 ?

이 몸은 이밥에 고기국을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 몸은 좋은 자리에 가도 더 좋은 자리에 가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니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구원해야 되는데 어떻게 구원해야 될까요? 이것을 포로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종교의 가르침의 출발은 육적 생활, 육적사회 육적세계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육적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종교의 가르침은 출발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을 완전히 포로로 잡아서 양심을 완전히 해방해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결국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그것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나라의 대통령도 종교가 필요해요, 안 해요? 미국 대통령도 종교가 필요해요, 안 해요? 누구에게나 종교는 필요합니다. 종교는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6-118
바른 종교 생활
그리면 종교는 무엇을 지향해 나가는가? 그것은 천지창조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천륜의 도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섭리해 나오시니 그 방향을 향해 가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통일교를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가 왜 필요한지를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바로 육적 생활의 전체를 부정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교도 그러하고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전반적으로 부정하라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성경 말씀도 그런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이 그냥 그대로는 하나로 합해질 수 없습니다. 완전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개조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자라는 곡식이 여름 때쯤 딱 부러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르는 동시에 죽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곡식에게는 때 아닌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으로 끝장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타락에 관한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무엇과 같으냐? 그것은 봄절기, 여름 절기를 정상적으로 맞지 못하고 절기 도중에 때 아닌 가을 절기를 맞이한 것과 같습니다.

우주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지극히 큰 것까지 모두 관계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된 것도 여러 공식과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에 의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오늘날과 같은 문명세계를 이룩해낼 수 있었습니다.

과학 문명의 세계를 앞당기게 한 것은 법칙을 중심한 하나의 공식이었습니다. 공식은 전체의 분야에 얼마나 적용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서 채택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맹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공식적인 법도를 통해서 섭리하시기 때문에 그 공식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법도를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요, 이런 공식적인 법도가 들어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통일교회 교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복귀섭리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교리 중 제일 중요한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생활은 무엇이냐? 본연의 기준을 다시 세워 나가는 생활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여름 절기에 때 아닌 가을 절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 20세기 문명은 온대 문명이요, 가을 절기의 문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고대 문명은 열대 문명이였습니다. 지금은 가을 절기의 문명 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다 가을 절기에 속하여있지만 제대로 그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16-120
어떻게 해야 참감람나무가 되는가
열매는 만민이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민이 고대하고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이 땅 위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점점 가까이 오므로 그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로서 이 땅에 오시는 분이 우주를 대표해서 오시는, 기독교가 말하는 재림주이십니다. 그분은 우주의 중심존재이십니다.

오늘날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하고 제아무리 종교의 도를 세워 놓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본래 이상하던 완전무결한 하나의 완성한 인간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직까지 그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러한 완성한 인간이 찾아지면 그로 말미암아 완전한 부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전한 부부를 통하여, 완전한 가정이 이루어지게 되고, 또 그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한 종족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사상에 있는 접붙이는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접은 어떻게 붙여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참감람나무요, 너희는 돌감람나무’ 라 하셨는데, 접붙일 때는 참감람나무를 자릅니까, 돌감람나무를 자릅니까? 돌감람나무를 자릅니다. 완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돌감람나무의 밑둥치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 옆가지를 자르는 것이 아닙니다. 옆가지가 하나도 날 수 없게끔 밑둥치를 잘라야 합니다.

덩치 큰, 수백 년 수천 년 묵은 돌감람나무를 자르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미친사람아, 왜 그 큰 걸 자르는 거야? 하고 나무랄 것입니다. 참감람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할 때는 돌감람나무나 똑같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뭘 그렇게 믿는다고 부산스럽게 야단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적인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완전히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자를려면 밑까지 뚝 잘라야 됩니다.

잘라 놓고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참감람나무 가지를 하나 빌려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접붙여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참감람나무를 빌려 접붙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참감람나무씨로서 출발할 수 있는 선의 자식이 되지 못하고, 악의 자식, 즉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돌감람나무로 태어난 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들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본래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는 인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시는 참감람나무의 길을 따라가야 되며, 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상속받아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이 참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롬8:15)을 보면 직접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다리를 놓아 양자의 입장에서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자는 혈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선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몽땅 잘라 가지고 선한 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 앞에 재림 사상, 메시아 사상, 즉 이 만민을 구할 수 있는 구주 사상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16-121
부모 처자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그러면 그 구주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참감람나무로 와서 돌감람나무인 이 세계의 30억 인류를 몽땅 잘라 버리고 접붙여 주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악에서 출발하였던 인간이 악을 심판해 버리고 선에서 출발했다는 조건을 갖추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양자의 도리를 다하고 직계의 아들딸들이 됐다는 자리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의 목적입니다. 그럼 여러분들, 잘라야겠어요, 안 잘라야겠어요? 자르려면 어디를 잘라야 되겠습니까? 다리만 자르면 되겠습니까? 다리만 자르면 죽지 않습니다. 목을 잘라야 됩니다. 그래야 죽습니다.

사람들은 먹기 위해서 놀아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먹고 좋은 것을 입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합동결혼식을 많이 시켜봤지만 이 처녀 총각들 가만히 보면 얼굴만 보려고 합니다. 얼굴만 보고 다른 것은 안 보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디를 잘라야 되겠어요? 목을 잘라야 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몽땅 쳐버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의 머리를 갖다가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이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이 되는 것입니다. 즉 돌감람나무에다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면 순이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리 가면 순도 이리 가고, 예수님이 저리 가면 순도 저리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움직이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향해서 방향을 정하여 갈 수 있는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두 목적의 인간이 되지 않고 하나의 목적 기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천륜의 법도를 인간들이 자연적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임을 여러분은 잘 알았을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목 잘랐어요? 못 잘랐죠? 그래서 여러분은 이것을 자르는 일을 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감람나무로서 인간에게 접붙여 주기 위해 오시는 그분을 맞이해서 우리는 무엇을 받아야 될 것인가? 신랑되시는 그분 앞에 우리는 신부입니다. 그 신랑에게서 생명의 새 순을 받고 사랑의 새 순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새 세계로의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섭리적인 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체적으로 본 섭리의 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잘났다고 거드럭거리며 으시대고 다니면 한 대 맞게 되어 있습니다. 또 눈을 부릅뜨고 이 세계를 내 세계로 만들겠다고 하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0세기의 문명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넘어가야만 하는, 가을 절기를 맞은 앙상한 돌감람나무와 같습니다. 이 나무는 다시 봄절기를 맞이해서 오시는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받아 접붙여짐으로써 거기서부터는 새로운 절기로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타락한 인간 세계에 메시아 사상이 필요합니까, 안 합니까? 필요하지 않으면 그만두어도 됩니다. 필요합니까, 안 합니까? 얼마나 필요합니까? 부모 처자 이상 필요하냐 이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 :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돌감람나무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그 이상의 정성을 가지고 참감람나무를 모시고 사랑하지 못하는 한 접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 : 36)” 한 내용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몽땅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도 모른다, 남편도 모른다, 아들딸도 모른다, 세상도 모른다, 살림살이도 모른다 하며 전부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남편들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왜 이렇게 됐느냐고 하면서 핍박하고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집안이 망하는 것입니다. 사탄 세상 집안은 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아하,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구나!’ 하고 이해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기준인 천륜에 의해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할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6-123
누가 이단인가
여러분은 접붙여졌습니까? 접붙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생활관으론 안 됩니다. 오시는 메시아의 생활관으로 바꾸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왔다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하여 무엇으로 오셨느냐? 그분은 참감람나무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돌감람나무들에게 접붙여 주려고 했는데, 그 참감람나무를 잘라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잘 돌아가셨지요? 잘 돌아가셨지요? 예수님이 잘 돌아가셨어요? 역사노정에 있어서 슬픈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참감람나무로 오셨던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비통하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서러움이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정도 모르고 기독교인들은 ‘아, 우리 주님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간들을 참감람나무로 만들기 위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참감람나무로 오셔야 하며 영적으로 오셔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반드시 사람으로 오셔야만 됩니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공상이요, 상상인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알아 보아도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해 나오면서 얼마나 많이 알아 보았겠습니까? 통일교회의 문 선생을 잡아 죽이려고 세계가 얼마나 핍박했는지 모릅니다. 누구는 욕먹고 싶어 이 일을 했겠습니까? 누구만큼 못나서 이 일을 했겠습니까? 알고 또 알아보니 이것은 틀림없는 원칙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십니까? 수증기를 타고 오신다는 말입니까? 거룩하겠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사회를 미혹하고 실제 땅 위에 새 세계가 이룩되는 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허황된 사실, 허황된 말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천당 간다’는 말로 욕심부리게 하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로 공갈 협박을 해가지고 기독교가 지금까지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믿으면 천당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 이것은 반 공갈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어 참과 거짓이 분명히 밝혀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자체는 사회로부터 비판받아야 하고, 진리로부터도 비판받아야 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교회의 목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우습게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진리의 분야에서 훨씬 앞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차원 높은 진리로 해명하여 세계를 인도할 수 있는 종교의 이념이 나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주님은 숟가락 들고 젓가락 들고 오셔야 됩니다. 즉 사람으로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또 통일교회가 이단입니까? 두고 보자 이겁니다. 기성교인들은 우리보고 가지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끝이 다른 것이 이단이 아닙니까?

16-125
하나님께서 선민을 기르시는 방법
이제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이냐? 한편은 철회해 버리고, 한편은 선택해야 됩니다. 이러기 위해서 선민을 불러야 됩니다. 하나님이 선민을 부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시느냐? 악한 세상에 숨겨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빼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도 불러내신 것입니다.

참이 참되기 위해서는 거짓된 세상에서 참으로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도 ‘옳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참입니다’ 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참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참이 참으로 결실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선민을 불러내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고생하는 자리, 언제나 맞는 자리, 언제나 비참한 환경,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 나는 싫어’ 하고 후퇴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 가지고 선민을 빼내는 것입니다. 그냥 빼내면 되겠습니까? 모두가 손을 저으며 ‘아이고 난 싫어’ 하는 자리에서 빼낼 수 있어야 됩니다. 완전 부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 놓고 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선민권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노아로 하여금 인간 세상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120년 동안 아라랏산에다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 참 근사한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핏 생각해 보면 미치광이 중에도 미치광이 같은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빨리 세상과 절연하고, 빨리 세상을 부정하고, 빨리 세상과 떨어지게 하기 위해 그런 자리에 몰아넣으시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믿고 따랐고, 최후에는 십자가를 짐으로 승리하셨기 때문에 메시아가 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부정하는 자리에 세우시는 것이 하늘의 선민을 선택하기 위한 방법인 것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을 때 미친 짓 한다고, 미친 영감이라고 소문이 나고 핍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가까운 친척이 반대했을 것이고, 점점 확대되어 사돈의 8촌까지 반대했을 것이고 나중에는 전체가 조롱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민족이 잘려 나가고, 종족이 잘려나가고, 먼 친척들이 잘려 나가고, 사촌 삼촌까지 잘려 나가고, 그래서 결국 줄일래야 줄일 수 없는 무리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 무리가 바로 자기 식구들입니다.

노아의 부인도 얼마나 반대했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노아는 부인으로부터 많은 반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에는 없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앞에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16-126
하나님께 제일 가까운 종교
이제까지의 역사를 보면 악이 선을 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선도 악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악이 선을 쳤기 때문에 반대로 선이 들고 일어나 악을 쳤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공의의 법도입니다.

노아는 만민이 반대하고 조롱하고 핍박하는 입장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노아의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자리까지 끌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의 여덟 식구만은 쫓아낼 수 없는 인연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때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즉 선이 맞았기 때문에 세 배까지 탕감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이 선을 침범했을 때는 반대로 선이 탕감을 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은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노아가 하늘편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로소 심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서 선민사상을 지니고 온 이스라엘 민족사를 살펴볼 때, 아브라함도 고향을 떠나 유랑민이 되었고, 이삭도 제물 되었고, 야곱도 하란으로 도망을 가서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애급에 가서 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까지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탕감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선민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전세계가 반대하더라도 하늘만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사적인 종말기에 선민권을 완전히 세울 수 있는 어떠한 이념을 갖고 나오는 종교 단체가 있다 할진대, 그 종교단체는 이 세계가 쌍수를 들어 반대하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종교 단체가 통일교회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이 사람도 지금까지 40여년간 반대받고 감옥에 잡혀 들어가고 쫓겨다니는 입장에 섰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의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고 하는 때가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기성교인들은 통일교인들을 제일 미워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내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지요? 하나님을 믿으면 식구가 되고 형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열 형제가 팔아먹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한집안 식구나 마찬가지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단들이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죽을 자리에 내몰고 있습니다.

반대를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고, 반대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사탄편에 가까이 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붙들고 오늘날까지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기성교회의 목사나 기성교회의 신자들을 원수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흉년이 들어 굶주리게 되자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 있는 요셉에게 찾아가 그 무릎 앞에 엎드려 식량을 구하여 요셉과 하나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점점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에 메마른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이는 교역자로부터 신도 전체가 가을 나뭇가지에 잎이 떨어지듯 떨어져 나가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심령의 흉년이 든 것을 자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흉년 과정에서도, 동삼삭(冬三朔)을 지내는 과정에서도 그것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완전한 씨, 즉 완전한 진리를 가진 종교가 나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동삼삭을 지내고 나면 반드시 봄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의 씨를 가진 종교는 때가 되면 천지 조화의 법도에 따라 양지를 맞아 새로운 생명체로 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16-128
통일교인의 사명
끝날에는 시련의 폭풍이 불어올 것입니다. 외적인 시련보다 더 강한 영적인 시련의 폭풍이 불어옵니다. 그러므로 그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참된 진리를 주장하는 종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따라오는 이때에, 새로운 봄을 맞이하여 새로운 싹으로 출발할 수 있는 하나의 천적인 기반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망하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봄을 맞이하게 하시기 위해서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교회가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통일교회(統一敎會)의 ‘통’ 자는 거느릴 통(統)자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휩쓸고 들어오는 사망의 물결을 밀어내고, 생명의 힘으로 모든 동삼삭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봄을 맞아 결코 침범당하지 않는, 천리를 대표한 하나의 핵심적인 교단으로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인의 사명인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요셉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제들을 용서하고 환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던 자들이 통일교회에 와서 그 무엇을 나누어 달라고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어야 합니다. 요셉이 원수와 같은 형제들을 칼로 복수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용서해 준 것처럼 한 아버지의 같은 아들딸이요, 같은 혈족임에 틀림없는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천지의 대주재되시는 하나님은 공의의 법도를 중심삼고 천지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악한 사탄도 부모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을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셉은 부모를 중심삼은 같은 형제들이요, 부모가 사랑하는 형제들이기에 그들을 칠 수 없다는 심정 기준을 가지고 부모 편에서 그들을 대해 주었기 때문에 효자 중의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통일교회는 그러한 아량을 가지고 기성교회를 위해 주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기성교회의 어떤 목사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들이 우리 통일교회로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한 날이 올 것입니다.

역사의 목적은 외적인 발전이요, 종교의 목적은 내적인 발전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하나님이 발전시켜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외적으로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살림살이의 발판을 닦아 나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16-129
통일교회 출현의 필연성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창조하셨느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주관주로 세워진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만물을 잃어버렸으니, 인간은 하나님 앞에 배반자의 위치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가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외적인 기준을 다시 세워 나오는 섭리를 해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섭리해 오신 정치, 경제, 문화를 중심삼은 사회의 발전이며, 역사의 발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인간들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적이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통일된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외적인 기준을 닦아 나오셨고, 이제 세계적인 통일형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내적으로 종교의 이념을 통하여 내적인 기준을 닦아 오셨습니다. 종교는 외적인 것을 제거해 버리고, 이 세상과 접촉하지 않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로 통일되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흡수되고 통합되어져야 합니다.

오늘날은 기독교를 중심한 4대 종교권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외적인 면에서 점점 통일되어 가므로 내적인 면에서도 통일될 수 있는 기대(基臺)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이던 것이 타락하여 둘이 되었으니 다시 하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한 분의 하나님께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시어 출발했는데, 인간이 타락하여 두 목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발전을 거쳐 가지고 본래의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선민의 인연을 통해서 선민권을 이루어 하나로 통일시켜 가지고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으로 출발하는 역사가 되지 못했으니, 악한 사람을 심판해 가지고 완전한 사람을 다시 출발시키고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천주(天宙)를 출발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만물을 먼저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섭리부터 해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비해서 내적으로 종교를 발전시켜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정치 세계는 싸우면 싸울수록 망했지만, 종교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양심이 이랬다 저랬다합니까? 양심은 언제나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천륜의 방향을 따라 내적 분야를 책임지고 나오기 때문에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역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변하는 역사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해 발전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된 것이 오늘날의 현세입니다. 하나의 목적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이때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내적으로 통일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모든 것을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시대는 통일교회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인 시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통일 종교인 통일교회가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 꼭 이 땅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16-131
종교의 이념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때가 와야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세계를 대신하여 통일의 기원을 마련하여 통일된 인간으로 완성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새시대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하는 세계입니다. 이것이 섭리의 개관인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몸과 마음이 싸우고 하나 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와 과학은 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날에 가서는 완전히 합해야 됩니다. 그러나 과학이 중심이 아니라 종교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역시 외적인 몸이 중심이 아니라 내적인 양심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도리를 세워 나오는 종교의 이념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때가 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기에 이의 없지요?

그와 같은 세계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세계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세계이니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정성 들여 만든 물건이 원하는 대로 다 되었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고, 또 그 물건이 그 나라의 대표적인 걸작이라면 세계에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목적을 이루는 데서부터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남자와 여자의 목적을 이루는 데서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도 인간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은 몸이 악한 행동을 할 때 ‘야, 잘한다 잘한다’고 합니까? 안 합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언제나 ‘선해라, 인간의 도리를 지켜서 행동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양심이 원하는 대로 하면 마음은 어떨까요? 마음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왜 좋습니까? 좋은 보따리가 툭 튀어나와서 그렇습니까? 또, 양심이 원하는 대로 안 하면 괴로워요, 즐거워요? 괴롭지요? 그것은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민을 대하여 구원섭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대로 하면 왜 좋으냐? 그것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따라가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우주의 운세는 어디로 향하여 움직이느냐? 큰 것 작은 것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천운에 의해 일어난 그 모든 사연도 알고 보면 그 목적을 협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석 주위에 쇠붙이가 있으면 자석은 쇠붙이를 끌어당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리의 공법이 있으면 모든 것은 그것을 향해 움직여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이러한 방향을 떠난 입장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목적이 이루어지면 마음이 기쁩니까, 괴롭습니까?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할 때에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 일이 되면 기분이 좋지요? 왜 기분이 좋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이 원하는 가치에 접근하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점점 더 가까이 갈수록, 여러분들은 그 목적 기준에 해당하는 마음의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16-132
심판과 우주의 공법
하늘의 운세는 천륜의 대목적을 향하여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양심도 하늘의 운세와 접붙일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천륜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열이면 열만큼의 목적을 갖추어 나가야 하는 인생의 목적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 열의 기준에서 아홉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일이 실패하게 되면 마음이 섭섭합니까, 섭섭하지 않습니까? 섭섭한 것은 자연적인 법도에 의해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우주의 목적권내에서 완전 후퇴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가 없어지면 이 우주의 공법은 파멸하는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이 모두 어디에서 판단되느냐? 인간의 양심 작용에 의해 선의 목적관을 중심삼고 그 가치 기준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에 동참할 수 있는 양이 커질 때는 마음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참했던 그 선의 자리에서 후퇴할 때에 그 양이 크면 클수록 마음의 고통은 큰 것입니다. 여러분, 병이 생기면 왜 아픕니까? 병이 생기면 왜 아파요? 아픔을 지닌 보따리가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까?

여기서 우주의 표준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주는 완전을 중심삼고 주고받는 법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안 된 그 자체는 우주의 공리에 불합격한 자입니다. 불합격자는 공리의 법도에 의해 제거 당해야 됩니다. 제거당할 수 있는 분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주의 힘이 그것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병이 생기면 아픕니까, 안 아픕니까?

이것을 볼 때에, 자연적으로 끝날이 되면 이 세계는 하나의 통일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하면서 절망 상태에서 낙심하면 안 됩니다. 이 우주는 완전히 하나의 목적에 부합될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양심대로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양심대로 하는 것은 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선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목적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세계에 가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최고 목적은 무엇이냐?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소원은 무엇이냐? …….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 : 13)”는 이 말씀은 참으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여기에 대한 완전한 내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한 것은 우주가 보호하고 육성합니다. 자유와 해방과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정성이 같이하기 때문에 인력(引力)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6-134
세상 법과 천법
여러분, 양심이 작용을 하게 된 때에 무섭습니까, 무섭지 않습니까?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은 이 우주가 보호 육성하고 자유와 평화가 깃들어 있고 생명과 권세가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천지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습니까? 선하게 될 때에는 대통령이 무섭지 않습니다. 어떠한 육법전서가 적용된다 하더라도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형법이 많다 하더라도 그 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법은 양심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 법은 선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의 권한은 누구만이 주관할 수 있느냐? 그것은 절대자이신 선의 주인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쁜 것이 선을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국가 법을 가만히 보세요. 무엇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무엇을 하게 되면 형법 몇 조에는 콩밥, 몇 항에는 몇 년 징역 하면서 벌을 내리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무엇입니까? 선은 자유와 해방이 깃들어 있고 우주가 보호 육성하는 것이며 세계와 더불어 권한과 권세가 함께하는 것이지만, 악은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우주의 공의 앞에 제재를 받아야 되고, 국가의 제재를 받아야 되고, 전체 사회의 제도 앞에 제재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악을 환영하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주에서는 악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법은 제재의 법도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가만히 보십시오. 마음이 좋은 할아버지가 있을 때 상금을 주라고 법에 되어 있습니까? 타락한 세상에는 선에 대한 보상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없어야 됩니다. 만약 있으면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집니다.

최후에 공의에 의하여 심판 받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악의 법을 치워 버리고 선의 법을 세우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선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악한 세상에서 배척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더라도 선한 법과 가치를 중심삼고 일을 해야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선의 복지에서 천법, 즉 천적인 헌법을 중심삼고 선에 대한 보상을 정한 법이 생겨날 것입니다. 천리의 공의에 따라서 그런 법이 나와야 할 세계가 바로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때에 여러분들은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양심이 있습니다. 그들도 이와 같은 근본적인 법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앞으로 선한 법을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선한 사람들이 다 한데 모여 국제적인 법을 만들어 선한 사람,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개인별로 선정해서 상금을 주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6-135
선악의 기준을 확실히 알아야
선은 보호 육성하고 자유와 해방이 깃들어 있으며 진리가 영원히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희망이 깃들게 하고 천국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하나님과 동석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 분야가 있는 것입니다.

악은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제재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악은 없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악에는 평화와는 반대로 불안과 공포가 있는 것이며, 생명 대신 사망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지하실이나 천 길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고 해서 마음이 편합니까? 악이 만일에 선을 침범했다가는 선에게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선은 악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래도 믿어야 되고 저래도 믿어야 되는 것이 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악은 언제나 선에게 두들겨 맞습니다. 만일에 악이 선을 쳤을 때는 몇 천만 배의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됩니다. 천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한 것도 악이 선을 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하여 없어진 것입니다. 유대인이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한 것은 예수님을 죽인 죄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고통을 받는 것은 전부 다 악이 선을 친데 대한 보상입니다. 그 보상의 대가를 결정하는 공판날이 바로 대심판의 날입니다. 어서 이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싫습니까? 선생님이 욕을 많이 먹고 있기 때문에 심판을 적당히 했으면 어떻겠느냐고 하면 여러분은 아마 싫다고 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이 함께할 수 있는 권내로 발전시켜 나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기독성도들이 학살을 당해 나왔습니까? 죽고 죽고 또 죽으면서 악의 대가를 치르면서 오늘날까지 복귀하여 나온 것입니다.

선한 자리에서 악을 치면 결과는 악이 아니고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자를 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 악을 용서없이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악이 망할 때마다 그만큼 여러분들은 선의 공적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악이 세계를 망하게하기 때문에 악을 친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세계사적인 승리의 상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선악에 대한 기준을 확실히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제재를 받고 있습니까? 그것은 안 좋은 일입니다. 제재를 받는 다는 것은 ‘너는 망하는 길로 들어간다’ 하는 경고를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먹여 살리는 데 돈이 그렇게 귀합니까? 자기 생명과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해도 아들딸과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귀한 아들딸을 대우주의 목적 앞에 지극히 깨끗한 선물로 바쳐야 합니다. 깨끗이 정성들여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도둑질해서 먹여 살려요? 그것은 사랑의 법도를 유린한 것입니다. 목적의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법도를 유린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성들여 깨끗이 키워야 할 자녀를 뇌물을 받아 가지고 키워요? 나중에 그 후손은 부모를 원망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정성이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키우고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도가 있기 때문에 우주는 그러한 무리들이 남아질 수 있는 역사 세계로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16-137
선의 방향과 악의 방향
종교가 지향하는 선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 바로 사탄 앞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악과 선의 방향은 어떻게 틀리느냐? 선은 언제나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 서는 것이며, 악은 자기를 중심삼고 주체적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무엇이냐? 나를 희생시켜서 전체 목적 앞에 플러스되게 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러면 악은 무엇이냐? 전체를 나에게 끌어당기게 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몸은 전부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고 마음은 전부 몸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은 천지간에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사상은 종말에는 다 처량한 운명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처자도, 부모도, 종족도, 국가도 다 잃어버리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 하나를 중심해서 나아가는 것은 끝날에 다 정비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으로 볼 때 악은 반발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항상 이 악에 대해 말할 수 없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선은 항상 악을 배척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여러분은 악과 선의 방향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불쌍한 사람을 보면 ‘야, 아무개야! 너 이 사람 동정해야지’하고 마음이 명령하지요? 그렇게 하라 그래요, 하지 말라 그래요? 그렇게 하라고 하지요? 이런 불쌍한 사람, 혹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마음은 도와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루에 한 열 사람쯤 도와줬다고 해서 양심이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 쉬도록 해라’ 그럽니까? 양심이 그럽니까, 안 그럽니까? 양심은 그러지 않습니다. 양심은 고집이 셉니다. 대한민국 삼천만 민중 앞에 좋은 일 했다고 양심이 쉬라고 그래요? 그러지 않는다 이겁니다. 양심은 더 나아가 30억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30억 세계 인류를 위해 좋은 일 했다고 양심이 쉬라고 합니까? 양심은 또 하라고 명령합니다.

인간은 이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몇천년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갈 길은 먼데 몸이 처하고 있는 곳이 선의 자리와는 한없이 먼 거리에 있으니 양심이 쉬어 가라고 명령하겠어요? 명령하겠느냐 말입니다. 양심은 본연의 가치, 본연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그곳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계속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가 현실에 머물러 양심이 갈 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자꾸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6-138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자
본래 인간이 이 우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온 우주를 품어야합니다.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인연을 맺지 않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천만 민족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양심은 이 우주의 대목적을 달성할 인연을 중심삼고 있기 때문에 몸을 자꾸 몰아치는 것입니다. 몸은 양심을 따라 한국과 세계를 거쳐서 하늘땅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목적점에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 몸이 그 목적점에 도달했다고 양심이 ‘이제 됐다, 그만 쉬도록 해라’ 그럴 것 같습니까? 양심은 또 목적을 세워 놓고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점령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점령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들 합니다. 땅보다도 넓고 하늘보다도 높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모르는 말입니다. 사람의 욕심의 끝이 되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 목적하는 바가 우주의 목적 기준에 서야 되고 우주의 목적을 달성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양심은 하나님을 점령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점령하면 양심이 ‘이젠 정말 됐다. 쉬어라’ 하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는 하나님 가슴속에 있는 사랑을 점령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자집의 사위가 되려면 부자집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되는데, 그 방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 할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몽땅 점령하기만 하면 그 부자집 아가씨는 자기 색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가씨의 재산도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양심은 명령합니다. 이 우주의 목적을 점령했다고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점령하고서 쉬는 것이 아니라, 최후에는 하나의 목적을 찬성하여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가슴속에 묻혀 있는 사랑을 점령하라고 명령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주의 새로운 이상세계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목적의 세계와 하나님과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해야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해서 여러분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꼭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양심이 고맙습니까, 고맙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에게는 잃어버린 이것을 필시 찾아야 할 행로가 있기에 칠, 팔십 년의 일생은 너무 짧은 것입니다. 40년, 70년, 100년을 사는 인생 행로를 거쳐서는, 정상적인 생활 터전을 가지고는 갈래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무시하고 독재를 해서라도 한 달에 10년, 일년에 100년만큼의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자리로 내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는 먼 곳에 떨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을 쉴새 없이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교는 그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라, 새로운 목적을 가져라, 새로운 천국을 향해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으되 그 중에 제일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천지의 법도가 나와서 이 세상을 바로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잘못 돌아가는 이 세상을 바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16-140
통일교회가 내세우는 4대 목표
그리하여 정상적인 본연의 법도를 따라 새로운 천지의 운세가 이 지구성(地球星)에 깃들게 되는 그 때가 바로 주님이 오시는 때입니다. 주님을 맞이하여 목적의 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 평화의 노래로 행복을 만우주 앞에 드높이 자랑할 수 있는 그 생활이 바로 천국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의 목적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느냐? 선과 악의 세상 속에서 악을 제거하고 선을 증진시켜서 하나의 목적이 완결될 수 있는 그 기준에 가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외적 세계의 목적도 이것이요, 내적세계의 목적도 이것입니다. 외적, 내적 소원도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체가 하나의 공동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기준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의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것을 통감하는 우주사적인 승리의 인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양심이 몸 앞에 제재받던 그 제재권을 벗어나서 양심이 몸을 절대적으로 주관하는 인간이 나와야 합니다. 이런 인간이 승리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천국의 왕자와 왕녀의 가치로서 이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인은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 우주의 목적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목적을 찾아가려면 방향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알겠어요? 방향이 다르면 못 가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하여 따라 나선 사람들은 방향이 같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같은 방향을 향하여 나가야 됩니다. 방향이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정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봄 절기에 계시는데 가을 절기에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길을 가고 계시는데 쉬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사정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심정을 일치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시는데 기뻐해서야 되겠습니까? 심정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적을 중심삼고 나오시기 때문에 과거의 하나님, 현재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방향이, 사정이,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하나님의 목적, 방향, 사정, 심정을 알고 미래의 하나님의 목적, 방향, 사정,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 통과하면 인간은 자동적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섭리적인 면에서 과거의 하나님, 현재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과 사정과 심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은 이념의 완성을 말하고 방향은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목적과 방향은 서로 일치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정은 생활을 말하는 것이며, 심정은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통일교회는 이 4대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념통일, 행동통일, 생활통일, 심정통일 이 네 가지만 잘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것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필수 요건이 어떤 것이라구요? 바로 이념통일, 행동통일. 생활통일, 심정통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수 요건입니다. 그 동안 여러분은 멋모르고 이념통일, 행동통일, 생활통일, 심정통일을 외치고 나왔지요? 이 4대 요건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알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