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8 to 16-345: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자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자
1966.10.14 (금), 한국 광릉(경기도 남양주군)

16-338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자
하나님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자리는 현재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생활 환경이 아닙니다. 어려운 역경을 뚫고 나서야 하나님의 은사가 같이할 것입니다. 역경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16-338
어떤 마음으로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할 것인가
통일교인들은 사방에 둘러싸인 높고 낮은 곳들을 고르게 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참소망의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천상천국이 비어 있었던 것은 땅에 하나님의 참소망의 자녀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천국은 만인이 머물고 싶어하는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조상이 타락한 그 순간부터 이 땅 위에는 사랑하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천국은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천지는 하나님의 슬픔의 대상이 되었고,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을 갈라 세우는 역사를 오늘날까지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서 빨리 뜻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뜻이 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면서도 이루기 위한 책임을 지는 자가 없습니다. 뜻이 빨리 이루어지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효과적인 승리의 결과를 가져 오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비상한 작전을 써서 공세를 취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6천년 간이나 싸움을 계속하셨고, 이 시간도 싸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뜻은 하나님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이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슬픔의 역사는 6천년이나 그대로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통일교회의 이념이 천주적인 이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념을 이루기 위해 정성들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상대적인 입장에서 정성들인 어떠한 실적을 가진 이가 있습니까?

물론 뜻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뜻이 이루어지려면 거기에 합당한 나의 실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오히려 하나님에 반역자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민 앞에 자극제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뜻은 왜 이루어져야 하느냐? 뜻이 이루어지면 내가 좋게 된다는 생각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반역자입니다. 또 미국 사람 이상으로 물질적으로도 행복하게 된다는 등의 생각을 가진 자들도 하늘의 반역자란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면 하나님 아버지가 안식하시게 된다는 관점에서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는 날 나는 이러한 예복을 갖추고, 이러한 모습으로 동침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예복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한이 있는 그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두렵다. 지도자로서 할 바를 다 못한 것이 있을까봐 두렵다’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다했는가를 더욱 더욱 생각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참아오신 그 아버지 앞에 그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는 천신만고하여 찾아오신 그 아버지를 돌려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사방으로 널려져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하늘이여! 어서 오소서’ 하다가 다시 하나님을 돌려보내는 우리들이 될까봐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처참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서 뜻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아버지가 당하고 있는 처참한 십자가를 벗겨 드리기 위해서 뜻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냐? 이처럼 바라는 그 마음을 분석해 보면 사탄편인지 하나님편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아버지를 모셔 안식시켜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있습니까?

‘ 하나님이여 ! 이런 것을 이루어 주옵소서’라고만 기도하는 자는 하늘의 사명을 모르는 반역자들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평지에서 모셔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아직 싸움터에 계시니 우리도 그 고지를 사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할 일이 더욱 긴박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6-340
자신이 통일되어야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 불안과 초조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정을 두고 보아도 언제 하나님을 배반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까?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는 식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나는 완전한 승리와 평화의 기점(基點)을 잡고 산다고 자처할 수 있습니까? 내가 사는 자리에서 과연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평지를 이 지구상에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그 평지는 험산준령을 넘어선 후에야 이르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은 하나님이 걸어오신 탕감노정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시키기 위한 무리인데 통일되어 있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들, 통일되어 있어요? 먼저 내 자신이 통일되어 있어야 합니다. 통일되어 있지 않은 내 자신을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통일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통일하려면 갈라진 심정을 한데 얽어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길도 가라 하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통일된 무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리를 못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4천년 역사를 두고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의 모델로 하여 본받도록하기 위해 역사를 해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중심삼아서 통일된 것이 없으니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극히 기뻐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지극히 어려운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태산준령을 넘고 다시 평지까지 가야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통일되기 위한 우주사적인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을 들어오기만 하면 여기에서 다 통일되는 것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된 심정과 이념을 세워 가지고 고난의 길을 넘음으로써 심정의 인연이 골수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청파동을 중심삼고 하는 것은 다 지나가는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통일이라는 사상 밑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은 선생님과 더불어 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과 더불어 통일해야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가정적으로, 모세는 민족적으로, 예수는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중심해서 통일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통일하는 데는 국가적인 기준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늘과 땅과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같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가정적인 어려움, 그 어떤 어려움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원하다 쓰러지면 하나님은 그를 천주적인 위치에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덮어 놓고 좋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인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빨리 오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시집 갈 나이의 처녀는 준비를 하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차는 것이 화인 것입니다.

16-342
끝까지 변하지 않는 통일의 무리가 되라
오늘은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온 날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감옥에 들어가던 날 팔에 쇠고랑을 차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유관순이나 안중근 의사는 민족이 사랑할 수 있는 딱지가 붙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민족의 정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자리에서보다는 반대받고 핍박받는 죽음의 자리에 내몰아도 내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충효의 아들을 하나님은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효 중의 효요, 충 중의 충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33년 생애보다 죽음직전의 3시간이 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극이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 갈 때 신중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평시에 나를 위로하는 자보다 내가 죽음길에 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나타나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낸 사람들은 많았으나 지금까지 남은 사람은 적으니 지금에 와서 그들은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만은 남았습니다.

그 사람이 책임을 못 할 때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식구들을 지방으로 내보내 고생시키는 것은 이 시대를 하나님께 기억시키기 위함이요, 하늘과 땅이 공인할 수 있는 자격을 빨리 갖추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7년노정에서 지쳐 돌아온 자에게는 선생님은 관심이 적습니다. 여기에 오면서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통일교회에도 봄절기가 있는 동시에 여름, 가을 절기가 있겠구나. 지금은 겨울 절기가 오는 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욕하고 싶고, 나무라고 싶은 것은 그래도 지금은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곧 겨울 절기가 될 것입니다. 들려오는 것은 차가운 바람소리뿐인 모진 겨울철이 되면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 잎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잎들이 떨어질 때 그 비참함은 어떠할 것인가? 최후에 남아질 나무는 어떠한 나무일 것이냐? 춘하추동 사철이 변할지라도 통일의 무리는 변할 줄 모르는 사철나무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봄이 되면 어느 나무든지 자기의 모습을 자랑할 수 있으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도 남아질 수 있는 나무는 몇 안 됩니다. 통일의 무리는 사시 청청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불어도 그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접을 붙이려면 가지에 붙이지 말고 줄기 중턱에 붙여야 합니다. 지금은 새벽입니다. 그런데 다들 졸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예수님의 열처녀의 비유를 배웁시다. 축복가정들이 지쳐 떨어지는 모습은 참지 못할 일입니다. 7년노정의 7년을 못 참아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통일되는 무리가 아닙니다. 통일시키는 무리입니다. 우리는 밀가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은 평지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골짜기를 거쳐서 평지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음의 골짜기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로 이루어지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343
선생님의 재산
선생님은 20년이나 이 길을 걸어왔으나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부르는 아버지와 내가 부르는 아버지와는 심정적인 인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분하고 원통한 자리, 감옥까지 수고의 길을 더듬어 찾아오신 아버지와의 인연이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원수가 사과하러 면회 왔던 일이 있었습니다. 만나 주느냐 안 만나 주느냐 하는 것은 하나의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죽여 버렸으면 싶은 사람, 식구가 될 사람 등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나는 배반의 무리들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맺고 싶어하시지 않으니 나도 그런 심정으로 반겨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해야 할 효성의 도리는 원수 앞에서도 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있을 때는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어떤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나를 돌려 눕히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옛날 나를 찾아주시던 하나님이 지금도 중요한 일을 위해 기도할 때면 언제나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재산은 바로 이것입니다.

환경을 피하지 말고 그 환경을 소화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은 흥남감옥에서 해마다 모범노동자 상을 받았습니다. 노동자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고 어떻게 하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일터에 나가기 전 한데서 두 시간씩이나 신검(身檢)을 받을 때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당했습니다. 차라리 일터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감옥이 얼마나 좋은 곳이고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누구도 꺾을 수 없는 확고한 자리에 세우시기 위해서 나를 감옥에 넣어서 작전상 시련시킨 것입니다.

과거에 고생하던 기준이 있기에 현재의 생활에서 고생이 있어도 그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참아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옥같은 데서는 바늘이 몇 푼 안 하는 것이지만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전기줄 같은 것을 얻으면 그것을 유리 조각으로 갈아서 바늘을 만들던 일이 눈 앞에 선합니다. 지금도 반찬이 없으면 그때 맨밥을 먹던 일을 생각합니다. 그때는 냉수 맛도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냉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바늘 하나를 3년 만에 얻을 정도로 물질적인 궁함도 컸지만 감옥에서는 배고픈 것이 제일 궁한 것이었습니다. 금식을 해보았으면 다 알겠지만 감방에서는 이웃에서 무슨 음식을 하고 있는 지 다 알아 맞출 수 있습니다. 그 냄새 한번 맡으면 십리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킨 것을 생각하여 내가 여러분들을 훈련시켜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부모에게 만일 그 자녀들이 무엇을 달라고 할 때 그것을 못 주는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선생님은 고생의 노정을 밟아왔기 때문에 어떤 일도 다 좋은 것입니다. 가치없이 고생한 것은 소용이 없지만 크나큰 뜻을 품고 한 고생의 경력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재산입니다.

16-345
우리는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자
선생님은 설교를 위하여 준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산체험으로 사실을 말할 때는 모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 뜻을 위해 고생한 것에 대하여 내가 왜 그랬던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주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고생했으면 민족이 남아 있는 한 그 고생의 기준도 살아 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함도 아니요, 국가를 위함도 아니요, 나 하나를 위한 행동일 경우에는 지칠 때는 수습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방을 돌아보아도 새로운 자극이 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리 죽음의 길이라 하더라도 통일의 제단은 한데 묶여져서 제물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를 위한 통일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국가와 민족을 위한 통일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시켜야 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통일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여러분 자신이 통일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먼저 통일이 되어 가지고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를 향해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분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끌려가지 말고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찾은 자리가 참된 평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맞이하여 맹세를 합시다. 우리는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자이며, 통일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용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제 2차로 기성교회를 부활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이 기성교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제일 불쌍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죽음길에 팔아 먹은 열 형제를 용서한 요셉과 같은 입장에서 기독교인을 전도하여 그들의 문을 열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원리연구회를 중심하여 대학가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길을 열기 위하여 많은 돈도 아끼지 않고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아까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