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4 to 16-269: 복귀역사와 만물의 날

복귀역사와 만물의 날
1966.06.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16-214
복귀역사와 만물의 날
고린도전서 15:20-58

[기 도(Ⅰ)]

아버님, 천지 만물을 지으시던 당신의 심정을 오늘 이 시간 감히 헤아려 보옵니다. 만물의 중심이요 행복과 희락의 중심인 심정을 터전으로 한 가정의 인연이 온 우주 앞에 맺어져야 하는 것이 창조 본의의 소망이요, 목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이 땅은 당신의 소원과 당신의 사정과 또한 당신의 심정을 중심으로 일체가 되지못한 채 타락의 역사를 거듭해 왔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적인 모든 부족함을 다시 한번 회개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사망 세계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채 내일의 소망을 위해 싸움의 길로 달려가야 할 수많은 인간들을, 아버지,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또한 현세를 박차고 아버지께서 이루시려던 창조이상의 땅인 본향 땅을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는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책임지고 역사해 나오시며 역경 중에 역경을 거쳐오시는 아버지의 가슴엔 한이 많다는 것을, 아버지,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의 심정과 이상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영원한 이념과 심정을 찬양하고 노래 불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던 슬픈 과거를 더듬어 볼 때, 당신의 심정이 얼마나 슬펐던가를 느끼면서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이며 무릎을 꿇고 속죄의 제단을 쌓아야 할 저희들인 것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 앞에 승리의 제단을 갖추어 놓고 제사장의 사명을 다하는 자녀들이 없는 현실을 바라보시는 당신은 저희들만이라도 하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심복들이 되어 주기를 염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아버님, 생명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여 죽는 한이 있어도 아버님의 한과 슬픔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아버님의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겠다고 아버님 앞에 쌍수를 들어 맹세한 저희들이었사오나, 실적을 갖추어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효성과 충성을 다하지 못한 불효하고 불충한 저희들임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이여,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저희들로 하여금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신 그날까지 자기의 직책과 사명을 다할 줄 아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기나긴 역사노정 가운데 수많은 날들이 흘러 왔지만 그 어느 한 날 당신이 기뻐할 수 있었사옵니까? 이러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 이땅 위에 참다운 부모의 날을 찾아 세우셨으며, 또한 참다운 만물의 날을 찾아 세우셨사옵니다. 아버님, 오늘이 바로 당신이 수고하여 찾으신 만물의 날이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수고해 나오신 섭리를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오늘 이날을 맞이하고 보니 감개무량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사옵나이다.

오늘은 아버님께서 이날을 만물의 날로 책정한 그날로부터 4년째를 맞는 역사적인 날이옵니다. 흘러간 노정 가운데 슬픔과 서러움의 비참한 역경을 걸어 나왔사오나, 당신의 크신 섭리의 뜻 앞에 오로지 필승의 한 날을 약속하면서 준비해 온 날들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지난날의 역경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오늘날의 크나큰 감사의 조건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천번 만번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저희들임을 깨닫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사방에 흩어졌던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 청파동 교회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주관하시어 이날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날로 말미암아 새로운 심정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로 말미암아 아버님께서 닦아 오신 축복의 날을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처에 널려 있는 수많은 통일의 무리들이 이날을 위해 무릎 꿇고 정성들여 경배하고 있사오니, 그러한 자녀들이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세계 만방에서 당신의 이름을 붙들고 경배드리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이 엄청난 우주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남이 모르는 외로운 길에서 개척자의 서러움을 부둥켜안고 원하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남이 모르는 가운데 개척자의 길을 가는 역경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셨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의 사정과 통할 수 있는 자를 세우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세계사적인 책임을 완결하게 하시고, 승리의 약속을 이루고 아버님의 뜻을 대신하여 승리의 방패를 세우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일꾼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제 1교회, 제 2교회, 제 3교회가 새로운 임지를 책임지고 서울 장안을 향하여 진군의 행보를 맞추어 나갈 때이오니, 이들 위에 아버님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한 날을 위해 영원한 승리의 방패를 들고 대제사장의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희들에게 엄청난 책임과 사명이 지워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나아가면서 정성을 다해 아버지 앞에 보답해야 할 시간과, 이 민족을 위해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목전에 다가온 것을 바라보면서 감사한 마음과 감격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새롭게 다짐하고 맹세할 수 있는 저희가 되도록 하여 주시옵고, 그 맹세한 것을 실천하여 실적을 만민 앞에 선물로 나누어 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도 이날을 소망하면서 탕감받을 수 있는 표본적인 한 날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오늘 저희들 한 자체를 세워 놓고 영계와 육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생사의 판결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그런 중대한 책임이 저희들에게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여기에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지금도 이 시간을 위하여 도처에서 흠모의 심정을 갖고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품어 보호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길을 가는 자녀들의 모든 사정을 친히 통찰하시옵소서.

기쁨과 영광의 한 날인 오늘, 흡족한 은혜로 채워 주시옵기를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6-217
기 도(Ⅱ)
아버님, 당신의 심중에 기억될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이 땅 어느 곳에 있었습니까? 이 땅이 효성을 다한 효행의 터전이 되지 못하였사옵기에 아버지를 모셔 놓고 효도를 다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역경의 노정을 거쳐 왔음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심중으로 이 땅 위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을 몰아내고 자유의 천지,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당신은 저희들의 아버지요, 저희들은 당신의 참다운 사랑에 엉킨 자녀이옵니다’ 하면서 당신의 영광을 만세에 칭송하며 노래 부를 수 있는 자녀를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니까 ?

그러한 인류의 선조가 나타나지 않았사옵고, 참다운 효자를 갖지 못하셨사옵고, 기뻐하며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갖지 못한 것이 역사적인 한이요, 시대적인 곡절로 남아졌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 아직까지도 그 효성의 터전 위에 태어난 참다운 자녀가 없었사옵고, 그런 자녀들로 이루어진 민족이 나타나지 않았사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민권을 갖추게 하신 목적도 그때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회고해 볼 때, 인류 조상의 한 날의 실수가 억천만세에 한이 되었사옵고, 이렇게 얼크러진 슬픔이 땅뿐만 아니라 하늘에까지 사무쳐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한의 곡절을 넘어서야 할 운명의 길을 다 가지 못한 인생들에게 다시 한번 긍휼의 손길을 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여 걸어가시던 초초한 모습의 예수님은 자기의 슬픔과 서러움을 가슴에 품기보다는 아버지의 서러움과 슬픔을 품고 가셨다는 것을 아옵니다. 장차 이와 같은 운명에 봉착하여 유리고객할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노정을 걸어가던 예수님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던가를 저희들이 회상하게 될 때, 오늘날은 세계적인 골고다를 찾아가는 성도와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가는 참다운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아옵니다.

예수님이 역경 가운데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하신 것과 같은 기도마저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눈물 아니고는 아버지를 대하지 않는, 효성과 지성을 다하는 충효의 자녀를 만나지 못하였던 아버지의 서러운 심정 앞에, 그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 남겨진 십자가의 길,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당신의 적자(嫡子)가 이 땅 위에 많이 나타나기를 나는 이날까지 고대해 나왔습니다.

아버지여, 그와 같은 자녀가 있사옵거든 당신의 사랑으로 품으시옵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3일후 무덤에서 부할시키심으로써 새로운 역사적인 터전을 마련하게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자리에서 눈물 흘리고 지성을 드리는 그들의 무릎과 눈물자국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세계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당신의 눈물길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으며, 그 누가 당신의 손길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던 것이 하늘의 한이요, 하늘의 서러움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몰리고 쫓김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의 최첨단에 서서 남이 알지 못하는 외로운 길을 거쳐가야 하는 것이 하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하였던 길을 걸으신 당신을 따라가는 저희의 발걸음도 응당 그러해야 될 것을 알고있사옵니다. 그 길을 따라가는 통일의 자녀를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 주시는 그 배후에는 말할 수 없는 눈물과 피어린 투쟁의 인연이 얼크러져있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민족은 거부하고 세계 인류는 반대할지라도 심정으로만은 천리의 원칙, 천리의 운세와 더불어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한결같이 나갈 것을 다짐했사옵니다. 쓰라리면 쓰라릴수록,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가슴을 부둥켜 안고 아버지를 불렀던 그때의 사정이 기필코 이 민족 앞에 나타나기를 당신은 얼마나 소원하셨사옵니까? 이 세계 인류의 심정을 움직여 아버지 앞에 부복시키는 것이 최고의 방편임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까지 참아 나온 당신의 자녀들의 발걸음을 거룩다 하시옵고, 그들의 생활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시사 민족이 바라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만민이 그리워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7년노정을 아버지 앞에서 선포했을 때는 암담했사옵니다. 갈길을 분간할 수 없는 흑암 가운데서 7년노정을 선포하고 나선 걸음, 벅찬심정을 가지고 아버지께 충성하고 효성하는 것만이 저희의 할 일이라고 다짐했던 그 발걸음은 이미 역사의 발걸음으로 지나가 버리고 오늘의 입장에서 그날을 추억하게 되었사옵니다. 이날도 그날의 깊은 인상과 깊은 심정의 충격을 다시 한번 저희 각자의 마음에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년노정을 지나면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설정하였고, 만물의 날까지 선포하였습니다. 슬프고 쓰라린 노정을 통해 이와 같은 날들을 세우신 것을 아버지는 보시고 괴로워하셨는데 이 민족은 몰랐었사옵고, 30억인류는 사망 가운데 잠들어 있었사옵니다.

아버님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 태산준령을 넘고 형극의 길을 넘으면서도 이 민족의 갈길을 개척하는데 있어서는 저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민족이 인정해야 할 단계에 들어오게 되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크신 수고에 연유한 것이었음에 저희들은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 서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불러 모았사옵니다. 이제 저희 제 1, 제 2, 제 3교회가 새로이 싸움의 대열을 갖추어서 원수의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저희 각자의 두 어깨에 짊어지워져 있음을 아오매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새로운 역사적인 한 면을 출발하고자 하오니 가는 발걸음이 돌아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라보는 저희의 시선은 목표를 넘게 해주시고, 원수의 심장을 밟고 넘어서 아버님 앞에 승리의 개가를 불러 드릴 수 있을 때까지 죽을래야 죽을 수 없고, 쓰러질레야 쓰러질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싸울 줄 아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여,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대의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걸어갔던 그 길이 저희들이 가야 한 길이요,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던 그 자리가 저희들이 상속받을 싸움터인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환난이나 곤경 가운데 처할지라도 강하고 담대하게 원수와 대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각오를 두터이 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심장에서 고동치는 피가 동맥을 통하여 정맥으로 흐르는 한, 그 피가 그치지 않는 한 아버지 앞에 충효를 다 할 것을 다짐하고 저희의 정성을 다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원수를 향하여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승리를 결정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만 4년째 만물의 날을 맞이하였사오나 그 무엇을 아버지 앞에 드릴 것이 없사옵니다. 만물 복귀를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남기신 십자가의 고난길을 저희가 대신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걸으셨던 눈물의 길, 피의 길, 땀의 길을 저희들은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면서 걸어왔나이다. 저희들은 민족의 서러움을 대신 슬퍼하였사옵고, 민족의 어려움을 대신 통곡했사옵고, 죽음의 교차로에서도 아버지라 부르며 몸부림 쳤사옵니다. 이 무리들을, 아버님,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 모인 무리들의 연약한 무릎들을 강하다 하시옵고, 부족한 몸들을 부족다 마시옵고 사랑의 심정으로 품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그 사람들 앞에 얼굴 돌리지 마시옵고, 심정적으로 저들을 포옹하시어서 남아진 골고다의 노정을 책임질 수 있는 일선장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7년노정을 바라보고 나가면서 모진 환경에서 투쟁하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날을 위하여 본부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무리들이 있사옵거든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민족적인 서러움과 민족적인 죄악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 전체가 구원되어 아버지 앞에 쌍수를 들고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어서 속히 이 민족 앞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거룩한 날이라고 하며 당신의 성호를 찬양하는 수많은 교단 위에도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도 당신을 모시는 양떼를 따라 천성을 향하여 고이 따라가는 무리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이 한 날, 전체의 섭리적인 프로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성취되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6-221
말 씀
여러분들이 아는 바와 같이 오늘은 만물의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우리는 만물의 날을 설정했으며, 이날을 설정하고 나서 전국에 성지를 택정했습니다.

16-221
십자가로 출발한 기독교
타락의 한을 풀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실수한 것을 그들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복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 말미암아 제 2차 타락이라는 슬픈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대신해서 노아 가정의 여덟식구를 택하시어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전체의 섭리를 복귀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차자인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또다시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을 거쳐 예수님 때까지 4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조상이 실수하여 4천년 동안 연장돼 온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완결해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횡적으로 세워 놓고 역사적인 탕감과 더불어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위해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노정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적인 역사의 기준을 탕감할 수 있는 민족적인 횡적 터전, 실체적인 환경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제 2차적인 섭리노정으로 출발해야했던 것이 신약(복음)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부터 예수님 당시까지의 4천년 종적 역사를 민족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으로 역사적인 전체의 과오를 탕감하려 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신약의 복음을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하지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출발하는 그날부터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되었느냐?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세계적인 제 2이스라엘을 편성해 가지고 그들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즉, 망한 제 1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영적 제 2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이어온 기독교 역사의 첫출발을 어떻게 했어야 했느냐? 하나님의 아들을 모신 영광 가운데서 출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영광 가운데 오신 메시아를 십자가의 길로 몰아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리에 나가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는 가장 어두운 흑암 세계의 자리에서부터 역사시대를 재편성하는 노정을 거슬러 올라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생명을 건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역사적인 노정 위에서 희생을 당하면서 무엇을 했느냐? 제 1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맞이하여 그 시대에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제 1이스라엘의 실수를 재차 수습해 나오면서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들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영과 육을 중심삼은 완전한 입장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즉 육적 기준을 제외한 영적 기준만을 중심하고 제 2이스라엘권을 이루었기 때문에 육적 기준까지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육적 기준을 이루는 날이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이 한 날을 소망하고 나온 기독교인들은 제 2이스라엘의 영적 기준 위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 제 3이스라엘의 세계적인 선민권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16-223
실체적인 이스라엘의 기준을 세우려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승리했느냐? 야곱이 승리했습니다. 야곱이 누구와 싸워 승리했느냐? 천사와 싸워 승리했습니다.

야곱이 21년노정을 마치고 자기 고향 땅을 찾아갈 때 얍복강가에서 최후의 결판을 짓는 싸움을 했습니다. 그 싸움은 비록 야곱이라는 한 개인의 싸움이었지만 야곱은 그때 당시의 수많은 인류를 대신한 개인이었습니다. 야곱 가정 또한 수많은 종족과 민족을 대신한 가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그것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세계로부터 지배를 당해 온 것을 거꾸로 주관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적인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승패를 결판짓는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천사로부터 받아내야 할 축복은 무엇이냐? 천사세계의 권한을 모두 다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지상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대신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 자신도 확실히 몰랐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심정과 본심을 통하여 인연되어 있기에 나를 축복해 주지 않고는 가지 못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이 생명을 내놓고 대들었기 때문에 천사가 패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승리한 영광의 자리에 야곱을 내세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천사 앞에 영적인 승리의 터전을 갖춘 후 야곱은 고향 땅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때 야곱의 입장은 야곱과 그의 처자가 나타나면 원수같이 생각하고 죽이려 하는 에서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완전 승리를 거두지 못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본심을 통하여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는 야곱에게 영적 기준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영적 승리의 기준을 토대로 하여 실체적으로 싸워 이겨야 할 실체가 누구냐? 그 실체의 대신자가 바로 에서입니다. 비록 그는 혈통적으로 볼 때 야곱의 형님이지만, 섭리적으로 야곱과 에서는 하늘과 땅을 대신한 존재입니다. 에서는 땅과 사탄을 대신한 존재이고, 야곱은 하늘과 하나님을 대신한 존재 였습니다.

그러면 타락이란 무엇인가? 천사가 아담과 해와를 주관한 것이 타락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과 가정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님인 에서가 야곱을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고 약속한 영적인 축복이 비로소 실체를 중심삼고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의 기준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에서가 야곱에게 굴복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구원섭리노정에서 인간을 마음대로 주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도 주관하지 못했고, 육적으로도 주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적인 승리를 세운 터 위에 육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워 그 기준 위에서 인간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이 주관하시던 창조 당시에 있어서는 타락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타락을 벗어난 자리, 즉 타락과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야곱이 승리한 터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출발된 것입니다.

그러면 민족적인 기준을 세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이스라엘 족속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나님의 섭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축복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영광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개척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16-225
이스라엘 민족이 가야 할 길
그러면 개척해야 할 그 땅은 어디냐? 바로 이 지구입니다. 개척자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최후의 승리 기준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쉬운 자리에서 개척해 가지고는 개척자로서 승리의 기준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상상할 수 없는 곤경지대로 내몬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애급고역의 노정을 거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데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은 사탄으로부터 전부 다 환영을 받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식입니다.

선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나서게 될 때에 만일 사탄이 그를 환영하게 되면 오히려 사탄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180도 다른 방향을 갖추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선한 사람을 사탄이 환영하는 날에는 선이 번식되어 악의 세계를 전부 다 파탄시키기 때문에, 악의 괴수인 사탄은 갖은 반대 여건을 내세워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을 몰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떻게 몰아치느냐?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몰아칩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몰아칩니다. 더 나아가서는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몰아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어느 시대에서나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인적, 가정적, 민족적, 혹은 국가적, 세계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면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은 2천년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맞으면서 피의 제단을 쌓아 나왔고, 전통적인 사상을 연결시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성교회 교인들은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는 망상적인 신앙을 하면서 마치 천국에 들어간 듯이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 사상은 어떠한 사상이냐? 죽음의 제단을 새로운 제단으로 연결시켜 나온 부활의 사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부활의 사상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16-226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긴 야곱과 그렇지 않은 에서
아담 가정에서부터 아벨이 맞아 죽음으로써 피 흘리는 역사가 출발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피의 고개를 넘어가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구세주의 사명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시기 때문에 그 섭리의 전법은 여러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입니다. 그 전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탄세계에 들어가서 사탄의 소굴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야곱도 자신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 승리를 거둔 것을 보고 그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나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야곱이 간교한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리를 배워서도 알고 있겠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의 생활은 오직 그것을 위한 생활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기 조상의 인연이 자기까지 이어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기조상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누구보다도 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심정기준에 있어서는 하나님도 야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이 축복받은 이상의 심정을 가져야 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상속받는 그 사람과 그 민족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실제로 나타내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나깨나 축복이라는 관념 속에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도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을 갖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내적인 심정기준이 야곱에게 있었기 때문에 장자권을 빼앗는 것이 문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축복받은 자기 선조들에 대한 가치를 누구보다도 크게 생각했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가치 또한 누구보다도 크게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던 것을 생각하면서 축복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할 것이다’라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적인 이스라엘로 축복받기를 누구보다도 갈망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심정으로 떡과 팥죽을 형 에서에게 주고 대신 장자의 축복을 이삭에게서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은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야곱의 말을 농담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축복받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도 공인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의 인연이 여기에서 비로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16-227
야곱의 소망–하나님의 축복을 성사시키는 것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준 것을 중요시했지만, 야곱은 그 축복을 이루는 것을 중요시하고 또한 그것을 소망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축복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야곱은 축복을 성사시키는 데에 소망의 관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축복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축복을 성사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성사시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축복받은 이스라엘 백성만 살아나는 것으로도 안 됩니다. 개인적인 터전을 세울 것을 재촉해야되고,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터전을 세울 것을 재촉해야 되고, 하늘과 땅에 근본적인 터전을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고 계시는 승리의 기준인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혼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란 칭호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야곱 가정이 하나 되어서 얻은 결과입니다. 승패는 개인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6-228
복귀섭리에 있어서의 승리의 결정
아담 가정에 있어서도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것을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으로 그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는 가정적인 타락의 씨를 뿌렸고, 가인과 아벨은 가정적인 타락의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두 세계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는 두 갈래로 갈라져 나왔던 것입니다. 어떠한 민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정(正)이 나오면 반드시 반(反)이 나오고, 선이 나오면 반드시 악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형태로 갖추어 나온 것이 민주주의요, 공산주의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도 제각기 두 갈래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네 가지 형태를 갖추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최후의 심판 시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사실을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국가 형태가 원리에서 말하는 모든 사실들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의 가정적인 싸움의 기준이 모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하나님 앞에 세움받은 자리에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개인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되고, 가정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했느냐? 야곱은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정적인 십자가까지 짊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혼자 승리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합니다. 가정의 십자가까지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아야 비로소 승리의 터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의 승리의 터전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족속들은 어떻게 해야했느냐? 야곱이 가정적인 책임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이스라엘 족속들은 씨족, 종족의 자리까지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합니다. 그렇게 하면 친척권내에 머물러 있는 사탄의 참소조건을 야곱 가성을 중심삼고 칠 수가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이 완전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정 전체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탄세계를 공격할 수 있는 터전 위에 서야 합니다. 또 가정적인 승리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가정 그 자체로는 안 됩니다. 가정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지 못합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수의 세계의 가정에 가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라반의 집에 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세계에서 싸워서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승리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십자가를 전부 탕감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종족으로부터 받는 화살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종족적 승리의 터전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야곱 가정이 이렇게 했으면 종족권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승리를 완결하고 민족적인 승리의 터전을 개척하기 위해 야곱 가정의 70인은 애급 땅에 들어가서 갖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비록 외국에서 시련을 당하였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일개 국가 뿐만아니라 뜻적으로 세계를 대표한 민족인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를 대표한 이스라엘 민족은 밟히고 찢기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충효를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섭리권을 상실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인연을 붙들고 나가면 오히려 그들을 치던 무리가 깨어지고 새로운 세계로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승리의 터전을 갖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민족적인 침범을 받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새로운 시련과 고난을 딛고 출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돌아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민족적인 터전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혼란된 환경을 극복하고 나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 후에 아무리 강한 로마 제국이라 하더라도 하늘편으로 인도해야 했던 것입니다.

16-230
세계적 승리의 기반을 세우기 위해 오신 예수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했더라면 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세계적인 시련을 넘어서서 메시아와 더불어 세계적인 주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적인 시련을 맞아 책임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까지 승리한 역사적인 터전을 인계받아야 했지만,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예수님을 반대했기 때문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까지 하나님 앞에 세운 역사적인 승리의 기준이 전부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개인의 승리, 가정의 승리, 민족의 승리, 국가의 승리 기준까지 다시 수습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시대를 거쳐 비로소 메시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찾아 나가야 할 곳은 세계적인 중심의 자리입니다. 메시아가 그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시련 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완전한 준비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또한 국가적인 기반을 닦고 국가의 대표적 지도자인 세례 요한과 하나가 되어 메시아를 맞아 일체를 이루어 세계적인 시련과 고통을 참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시련과 고통을 넘어가게 되면 로마 제국이 아무리 세계의 강국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배후에 계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로마 제국의 세력은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만 물리쳤더라면 그때부터 세계는 하나님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는 제2차적인 섭리가 2천년동안이나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끝날은 어떠한 시대인가 하면, 역사적인 모든 전체가 탕감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혼란한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종교,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이 혼란 속에 휩쓸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었다, 주님이 오신다, 우리 집단을 통해야 되고 우리가 아니면 구원을 못 받는 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겉으로 보기에 평면적인 한 시대에 벌어지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을 보면 역사적이고 전체적인 것이 얽혀져 있는 현실입니다. 현실이 이러한 세계적인 와중속에 있기 때문에 혼미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는 종교의 목적이 희미해지는 때요, 철학의 목적도 희미해지는 때입니다. 또한 가정의 목적이 희미해지는 때요, 민족의 목적도 희미해지는 때요, 국가의 목적도 희미해지는 때입니다. 목적을 지향하는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제 2의 세계로의 출발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그런 세계가 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16-231
완전 승리하려면 말씀과 실체가 일체가 되어야
그러면 왜 그러한 세계가 재차 요구되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재차 그러한 세계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사탄 주권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 주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주의인 동시에 아들주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버지주의와 아들주의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의가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종의 주의도 시작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에서까지 추방당하고 쫓김받는 무리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주인을 잃어버렸고, 종도 못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어느 단계까지 떨어졌느냐 하면 종의 종 단계에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종의 종이란 무엇이냐? 사탄이 하나님의 종인데 그 사탄의 종이 되었으니 종의 종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자리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만 중심삼아 가지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일체된 실체를 갖추지 않고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싸울 때에 말씀 자체는 선전밖에 못 됩니다. 선전만 가지고는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며, 승리의 결말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흔히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그저 믿고 천당가도록 지은 것입니까?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고 천국을 이루고 살 때에 하나님이 내려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에 예루살렘 성이 어디에서 어디로 온다고 했습니까? 올라간다고 했나요? 내려 온다고 했나요?

죽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네가 잘 믿는다’고 공인하십니까? 그래 가지고 모든 민족과 전세계 인류가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안 믿으면 지옥가고 믿으면 천당간다’고 모든 민족과 전세계 인류에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지옥을 가보고 천당을 가 보았나요? 그러한 가르침과 믿음은 공갈이요, 협박인 것입니다.

끝날에는 이러한 것이 끝나게 됩니다. 타락이란 무엇이냐? 흑암의 끝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낙망의 끝이 아닌 소망의 끝을 본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시작한 역사의 경로를 안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창조 이상으로 세웠던 소망의 끝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역사적인 운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살아야 할 때가 기필코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16세기에 인문주의, 문예부흥을 중심하고 인본주의 사상이 최고도로 발달한 사조가 오늘날에 와서 하나님까지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니 ‘종교’니 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추방하는 운동을 전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대주의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통일교회는 사탄세계의 쫓김을 받아 왔습니다. 전인류가 하나님을 싫어하고, 종교를 싫어하는 때가 오면 그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운동이 새시대의 새종교 운동입니다. 철학과 과학과 우리의 생활환경이 그러한 기준에서 하나님을 실증할 수 있는 종교관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끝날이 오면 안 믿는 사람은 물론 못 가겠지만, 믿는 사람들은 전부 천당에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간다고 되어 있지요?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된다면 사탄세계는 추방되어야 합니다.

사탄이나 우리들이나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아세요? 사탄은 하나님에게 ‘하나님, 이제 나를 인류의 조상으로 대치해 주면 이 우주를 전부 하나님 앞에 바치고 내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리 법도가 그렇게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처럼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모르면서 그저 믿고 천당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이 아무리 알아 보고 또 알아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6-233
종말의 현상과 바른 신앙생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막연히 그럴 것이다가 아닙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은 왔다갔다합니까? 그런 마음 가짐으로 뜻길을 가겠습니까?

역사 시대의 종말에는 모든 것이 다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믿던 종교도, 내가 좋아하던 사상도, 공산주의까지도 희미해져 가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이제부터는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됩니다. 곧 구라파의 공산주의 위성국가들을 보십시오. 이제 루마니아도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변천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주의 형태로 갖추어지게 될 때에는 국가적인 민주주의도 민족적인 민주주의로 변천되는 것입니다.

끝날에 문을 개방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주의도 아니요, 사상도 아니요, 또한 인간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문을 개방하기 위해서 오시는 주님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아무리 충성을 다하여도 개방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천리 법도의 모든 뜻을 받들어 이 문을 개방할 수 있는 주인이 와야 하는 것이 메시아 대망 사상입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오실 때 어떻게 오시겠습니까? 구름을 타고 오십니까? 만약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은 이미 이 죄악의 세상을 전부 다 멸해 버렸을 것입니다. 또한 불 구덩이에 한꺼번에 쳐넣어 버린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6천년간이나 인류역사를 이끌어 왔겠습니까?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절대로 구름 타고 오시지 않습니다. 똑똑한 청년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거룩하게 왕림하시게 되어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난다고 믿어집니까? 그렇게 기록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다는 것입니까?

예를 들자면, 통일교회 사람들은 인공위성을 타고 달나라로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기성교회 사람들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곳으로 피난 가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나라에 가서 사는 시대가 옵니다. 미국에는 케이프 케네디 우주센터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케이프 통일교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달나라에 가는 로케트를 쏘아 봅시다. 달나라에 가서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땅 구덩이나 파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그런 망상적인 신앙을 가지고는 시대에 맞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역사를 넘어 시대를 주관할 수 있고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원수가 혼비백산하며 도망갈 수 있는 실력과 실권을 갖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아니고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장가 가고 싶은 대로 장가 가고, 시집 가고 싶은 대로 시집 가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나서 그제야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종말시대에는 이러한 복잡한 환경이 벌어집니다. 신앙계에서도 그렇고, 사상계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러한 환경이 벌어집니다. 유교사상의 삼강오륜을 내세우며 부모 앞에 효도의 도리를 다하라고 하지만 그 도리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어디 있으며, 부부가 어디 있으며, 형제가 어디 있습니까? ‘어이쿠, 이나 몰라라’ 이렇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스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6-235
암담한 세계 가운데 통일교회가 왜 나왔는가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이런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어떠한 표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암담한 것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암담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세계의 인류가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갈 길이 없다고 하면서 손을 들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를 살려 주십시오. 나를 죽여 주십시오’ 하며 통곡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눈물로써 뿌려 놓았으니 눈물로써 거두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의 타락 인간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슬픔으로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하고, 시대적인 곡절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곡절을 풀겠다고 하면서 책임지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통곡하지만 우리는 이 세계를 중심삼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그 어떠한 소망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자보다는 하나의 공적인 뜻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될 때 아담 해와는 서글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마음을 베푸셔서 후손된 우리를 타락하지 않은 입장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한 날을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추방당한 인간은 역사적으로 자랑할 수 없는 대악당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는 이러한 인간을 복귀해야 할 심정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거쳐 지금까지 참아 오시면서 구원섭리를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현재의 심정의 인연이 아닌 역사적인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호소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이러한 사명을 세계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하여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에 동참하겠습니까? 선생님은 옛날의 아담과는 다릅니다. 또한 모세와도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 역사적인 심정과 시대적인 심정, 나아가 미래적인 소망의 심정을 중심삼고 이룰 지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만 긍휼의 조건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암담한 세계 가운데 통일교회가 왜 나왔느냐? 이러한 때에 세계를 통일하자고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은 어디서부터 하느냐? 복귀섭리의 원칙이 그러하듯이 하나에서부터 출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나타났으니 어떠한 길로 가야 하느냐? 역사적으로 걸어 나왔던 그 길을 되풀이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30억 인류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창을 들고, 총을 들고 나서더라도 선생님은 결코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싸우다가 넘어져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선생님은 승리합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 만물의 날 행사에 여러분이 참석하여 준 것은 고맙지만, 여기 모인 여러분한테 좀 섭섭한 점이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뜻은 악한 사람도 복귀하여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지독히 반대하는 자의 사촌 팔촌들이었습니다. 만일 반대하는 자들을 일대 일로써 청산한다면 여러분들도 여기에 감히 앉아 있을 수 없으며 앉으라고 자리를 비워 주어도 못 앉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감히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요셉을 생각합니다. 요셉이 야곱의 열 아들인 그의 형들한테 몰리게 될 때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애급의 대상들에게 팔리어 갈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물 없는 우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리에서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30세에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형들이 살려 달라고 할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

16-237
통일교회가 걸어 온 길
선생님은 바티칸 궁전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2천년 역사에 6억 이상의 교인을 가진 교회가 여기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염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없이 분열된 교파와 교단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로 통일해 놓을 것이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곳은 구라파 문명의 총본산지이며 또한 집결지입니다. 구라파 문명의 진수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니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참과 거짓이 부딪치면 거짓이 깨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7년노정을 중심삼고 지방에 가서 참혹하리만큼 부딪쳐 왔습니다. 피어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피어린 투쟁의 경륜이 깃들어 있으니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하나님의 승리의 방패를 꽂아야겠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싸워 나온 역사는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역사였습니다. 뼛골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역사입니다. 여러분을 지도해 나오는 스승에게는 가슴에 사무치는 한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천번 만번 사무쳤지만, 복귀섭리의 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복귀의 운세를 맞이하기 위하여 민족의 서러움과 한을 품고 모진 풍상을 극복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와야만 합니다. 만민족이 비로소 우리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하여 참고 나아갑시다. 이제까지 역사적인 서러움의 고빗길을 감돌아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즈음 들어온 통일교회의 청년 남녀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식구를 위하여 백 리가 되는 길을 찾아가서 만나, 둘이 붙들고 통곡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몇십리밖에 있는 식구들을 만나고 떠나올 때, 섭섭해서 따라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또 따라 나왔다가 다시 헤어졌다가 만나기를 세 번, 네 번 이상, 그랬던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기에는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혈연의 인연 즉, 사탄세계에서의 인연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부모 아닌 부모요, 형제 아닌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님만이 기뻐하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오면서 우리는 몰림받는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에도 지금까지 걸어 나왔던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시대의 한 때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그것이 딱 들어 맞았습니다. 북한에 들어가서 기도하던 그 내용이 들어 맞았다는 것입니다. 남한에 와서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담판 기도를 하던 그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시는 것은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죽으라고 몰아낸 것도 아니며, 더 큰 유혹과 풍파로부터 소망의 한 때를 맞이하게 함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사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어떠한 한 때를 위해 지나온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아담 이후 예수님 한 분을 찾기까지 기다려야 했던 곡절많은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며, 참고 견디게 하여 보다 큰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통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을 걸으면서 우리의 원수인 공산당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가 배척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성사가 얼마나 늦어졌습니까? 요즈음에 와서야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나라 뿐만 아니라 아시아가 사는데 있어서도 우리의 이념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16-239
영계를 주관할 수 있어야
환난시에는 사탄이 벌여 놓은 모든 것이 전부 다 넘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하는 것이 전부 넘어집니다. 아담 해와가 잘났다고 하다가 타락했지요? 잘났다고 하는 것이 타락성근성입니다. 사탄은 자기 제일주의, 개인 제일주의인 것입니다. 부모, 형제, 이 모든 것이 다 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인 혼란이 있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영적인 혼란입니다.

어느 한 장로가 통일교회를 비난한 사실이 있지요? 선생님은 그들처럼, 누구를 이단이라고 해보지 않았으며, 또 누구를 죽으라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나 죽으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런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러나 죽으라고 기도한 사람들이 쓰러지면 쓰러졌지 선생님은 괜찮았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에도 선생님을 감옥에 잡아 넣은 목사들은 전부 다 목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이 죽으라고 기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무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렁텅이에 있다가 남한에 왔을 때에도 민족 앞에 수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원리를 하루빨리 모든 사람에게 전파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95퍼센트의 탕감은 했지만 여러분이 해야 할 5퍼센트의 탕감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외적인 혼란도 혼란이지만 제일 큰 혼란은 영적인 혼란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영적인 승리의 터 위에 육적인 승리를 결정지어 ‘이스라엘’이란 칭호를 받아 승리자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세계 무대에 있어서도 영적인 세계를 먼저 주관하고 나서 육적인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승리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람도 어떠한 사탄편 사상에 물들 수 있는 암적인 그 무엇이 있다면 절대로 천국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산주의가 세뇌교육을 해도 통일교회 이념을 갖춘 사람을 세뇌시키지는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고서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상으로 우리를 물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1966년부터 신령역사가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왜 영적 세계에 혼란이 벌어지는 가를 이미 얘기했지요? 요즈음 기성교회에 영적으로 혼란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요?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면서 신령역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적 세계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16-240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전진하라
하나님이 보우하사 하나님의 권위와 가치를 지니고 하나님의 전권, 전능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다면 얼마나 늠름하고 멋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 신령협회에 들어와서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틀려먹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보따리 싸들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왕자,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왕자, 미래를 통하여 책임질 수 있는 왕자를 구하십니다. 따라서 이러한 왕자를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필요하고, 종족이 필요하고, 민족이 필요하고, 국가가 필요하고, 또한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소망과 같이하여 최후의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거기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몰라서 그렇지만 한 번 죽어서 영계에 가 보십시오. 통일교회가 진짠가 아닌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아무개 목사, 아무개 박사가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는데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부딪쳐서 누가 부서지는가 봅시다. 우리는 무난히 뚫고 나갈 것입니다.

선생님은 전세계를 다니면서 그러한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난관이라도 제압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신념과 자신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자신이 있습니까?

라디오를 들을 때 밤보다 새벽이나 낮에 잡음이 많지요? 잡음이 아주 많이 날 때 잡음 소리를 들으면 참 재미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혼란된 세상에서 우리는 맨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수 있는 자녀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말을 들을 용의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확실히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이곳은 엄청난 곳입니다. 그렇지 않는 것은 선생님의 생리에 맞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째째한 것을 싫어합니다.

통일교회는 총본부입니다. 이곳을 중심삼고 잘못된 것을 전부 다 청산지어야 합니다.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의 본 처소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타락은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 처소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확실하니 여러분들은 자기의 처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16-241
한국 사람들의 몰이해와 반대에 쓰러지지 않는다
역사는 나선형을 그리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즉, 동시성으로 전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형이 가정형, 민족형으로 커지더라도 하나의 원천을 중심삼고 전개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는 옛날의 로마시대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시대권내로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미국은 세계적인 로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섭리의 뜻이 이루어지고 통일교회가 이런 중대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졌다 할진대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세계를 정복했던 로마, 예수님을 죽인 원수의 나라 로마를 굴복시켜 탕감복귀할 수 있는 신념과 기백을 가지고 세계를 통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이처럼 움직인다면 몇 해 후에는 통일교회판이 될텐데, 혹 문선생이 대통령을 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섭섭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는게 문제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세계를 구하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번에 미국에 갔을 때 선생님은 아이젠하워 전대통령에게 3대조건을 실천하라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 그리고 사상적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5분간의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분이 더 지났습니다. 가겠다고 하니까 그는 아쉬워하면서 이층으로 다시 데리고 가 자기의 생활관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일생 일대에 잊지 못할 기념품을 주었습니다. 또한 처칠, 스탈린과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했다는 것 등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미국을 제 1 비행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제 1 비행장! 통일교회에서 한 청년이 나타나 가지고 전세계에 어떤 말을 했을 때 사실이 그렇다 하고 공감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태리, 미국, 불란서에서 축전이 왔습니다 외국에서 무엇 때문에 축전을 보내겠습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통일교회를 뭐 같이 알고 욕을 하며 야단들입니다. 이런일을 생각하면서 선생님은 혼자 마음속으로 웃었습니다.

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통인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그들에게 세계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고 서너 번 질문을 했으나 그들은 대답을 못하고 쩔쩔맸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국과 구라파 일대에서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에 대한 소문이 크게 났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소문이 났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 목사들을 두고 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나 벌을 받나 말입니다.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대신하여 선생님이 나선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곳곳에다 선생님의 사진이 든 전단지를 뿌릴 것입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많을 것입니다.

성경에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눈이 있는 자는 볼지어다.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귀가 있고, 눈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까?

통일교회는 참으로 이상한 곳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묘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얼마나 배척당하고, 핍박받고, 욕을 먹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도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염려하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나는 옛날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과 다릅니다’ 하며 속으로 다짐하면서 참아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를 구해 주십시오’ 하는 시시하고 사나이답지 않은 나약한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위한 기도 이외의 딴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대와 소망을 걸고 있는데 영어의 몸이 되었다고 울상을 해가지고 살려 달라고 기도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사나이답지 않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도 왜놈들한테 몰렸고, 북한에서도 공산당한테 몰렸고, 민주세계에서도 몰렸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몰림을 받더라도 세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무리 핍박하고 몰아치더라도 갈 것입니다. 결국은 힘센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1세기나 2세기의 권세를 갖고 핍박하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1천 세기, 아니 모든 역사를 걸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16-243
최선을 다한 지난날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망하는 줄 알았는 데 안 망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절대 안 망합니다. 망해요, 안 망해요? 안 망합니다. 선생님의 목을 잘라 버린다 해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수님과 같은 패자의 서러움을 남기지 않고, 기어코 승리의 팻말을 박아 놓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40평생을 두고 낮잠을 모르고 지네 오다가 요즈음에 와서야 비로소 조금 잡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 데 어떻게 낮잠을 자겠느냐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수많은 신자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 못할 하나님의 심정, 6천년의 한으로 인하여 가슴 속에 박혀 있는 못을 뽑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신령한 영통인들이 한국은 주님이 오시는 나라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시느냐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한국이 뭐 어떻게 되고 하면 뭘 합니까? 만일에 그들이 그냥 그대로 나가다가 영계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참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구석에서 불쑥 나와서 또 무엇을 증거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재미난 일들과 더불어 우리는 욕을 먹으면서도 재미있게 지내왔습니다. 그때는 새벽 두 시 전에는 잠을 자본 적이 없었으며, 하루의 평균수면 시간은 두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드렸습니다. 잠을 못 자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핍박받고, 쫓기고, 매를 맞아 가면서도 살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감자 두 개를 들고서 선생님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사람, 머리를 다쳐서 선생님을 찾는 사람…, 이렇듯 통일교회 선생님은 말할 수 없이 처량한 인간 박람회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누가 따라오라고 강요했습니까? 자기가 오고 싶어서 왔지요. 홀려서 왔다고요? 홀리긴 누가 홀렸습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한테 홀렸지요. 선생님이 무슨 요술을 한다고요? 요술은 무슨 요술입니까? 천술(天術)을 합니다. 천술을. 그래도 그 때가 가장 좋은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피를 토해서 마루 바닥에 다섯 손가락의 인을 찍어 두고싶습니다. 이 손은 옛날에 누구와 다투면서 커다란 상처가 날 때에도 최후의 승리로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왔던 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살려 주셨고, 또 나에게 소망을 걸고 계시다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게 ‘죽음을 몇천 번이라도 각오하고 나섰으니 염려 마시옵소서’ 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쫓겨 다닐 때도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밥을 달라고 하면 밥을 주었습니다. 그때에 기성교회의 목사 열 댓 명에게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기억이 아주 새롭습니다. 북한의 흥남 감옥에 있었을 때, 어떤 목사가 그의 사위와 함께 반동분자로 몰려서 들어왔었습니다. 그때 사위가 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목사라는 사람은 약이 있으면서도 주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 말을 하지 않고도 제자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세상 천지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선생님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하늘 뜻을 향해 가는데 있어서는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자신과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출발한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반대해 보십시오. 자기집 안에서 야단들 하지 말고 통일교회가 힘을 못 쓰도록 나서서 다시 한번 반대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반대를 하겠어요? 그들이 하는 대로 그냥 두겠습니다. 그대신 그들의 교단을 나에게 일주일만 맡겨 달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되는지 안 되는지 말입니다.

두려워서,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이니까 가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나니까 가지 말라 이겁니다.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인데 가지 말라니요. 여러분이 여기에 오니까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났습니까?

여러분은 역사는 흘러가도 나는 남아 있다는 신념으로 대우주를 향하여 활보해 나아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신념을 갖고 나아가는 데 감히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라도 거짓인지 사실인지 알아 보세요. 이것을 알기 전에는 반대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16-245
용서가 없는 원리
통일교회는 잠든 세상에서 깨어나 이 세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어디서나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편지 한 장이면 구라파, 그리고 세계 어디라도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나라를 움직이는 위정자들도 마음대로 만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그래서 선생님의 사상을 주입시켜 주면 좋겠지요? 「예」

가을이 되어 곡식들이 익을 때가 가까와지면 태풍이 자주 불어옵니다. 왜 그러는지 압니까? 그것은, 잘 익지 않은 것은 다 꺾어지고 쓰러져 버리라고 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원리법도를 중심삼은 탕감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원리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들어와도 이 공식을 거쳐야 합니다. 역대에 수많은 의인들도 이 공식대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에다 둘을 더하면 셋이라는 이 법도를 수정하려면 역사 속의 모든 학문적인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 전체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민족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지금이나 천년 후에나 천리의 공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공식을 세우기 위해 이제까지 잘못된 것을 갈라 놓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복귀노정에 있어서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됩니다. 이 공식적인 절차는 죽어간 선조들도,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후손들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공식에는 용서가 없으며 그것이 곧 올바른 법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통일교회에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계에서 박장로, 나장로, 무슨 장로, 모두 다 대중을 향해 선전을 하고 있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왜 안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도 된다는 거예요. 새끼를 많이 쳐 놓았으니까. (웃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 제자들한테 전도당해서 나자빠지는 꼴을 좀 보고 싶습니다.

요즈음 파고다 공원에 전도다니는 식구들에게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키가 큰가 작은가, 나이는 젊은가 하는 것을 묻는 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젊었어요. 20대 청년이지요? (웃음) 그러면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몇 대입니까? 40대, 60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모두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 혼자 남아질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통일교회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웃음) 성경 말씀을 들고 와서 무어라 하는 데도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되며, 하나님의 인격과 심정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충신과 열녀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역사적인 이념과 시대적, 사회적인 모든 풍습이 필요할진대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천륜을 통해서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렇게 하여야만 된다고 시정하고 가르쳐 주는 , 과거의 그 무엇보다도 몇만 배나 가치 있는 것이 통일교회에 있기 때문에 눈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통일교회에 오지 말래도 앞을 다투어 들어와야 합니다. 이렇게 일단 들어오면 나가라고 몽둥이로 때려도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면 이런 처량한 교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만일에 선생님에게 고생에 대한 논문을 쓰라고 하면 노벨상을 타고도 남을 것입니다.

16-247
종교의 가르침-나를 완전히 부정하라
여러분 ! 이 만물의 날이 나올 때까지 어떤 노정을 거쳤는지 아십니까?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벗어나는 노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계는 무엇이냐? 이 세계는 타락권내에 있기 때문이 하나님의 창조목적 세계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접붙이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는 참감람나무요, 너희는 돌감람나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의 가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예수님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접붙여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접붙이려면 참감람나무를 잘라야 됩니까?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됩니까?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하는데 성경에는 참감람나무를 잘랐습니다. 그러게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저 좋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린 것도 일리가 있긴 있지만 그렇게 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제 거꾸로 돌감람나무인 여러분이 잘려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어떻게 잘라야 되겠습니까? 발목을 잘라야 합니까? 나무를 자르는 데는 밑을 자르는 것처럼. 사람은 목이 잘려져야 합니다. 목을 자르면 죽게 되지만 죽지 않으면 부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어떠한 심판을 하시려고 하는가? 완전 심판을 하시려고 합니다. 100퍼센트 이상 150퍼센트까지 완전 심판하시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타락한 세상의 모든 것을 축출해 버리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

인간은 하나님을 기쁨과 영광 가운데로 모셔야 했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서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섭리의 인연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문화세계를 이룩하려고 하십니다. 이러한 세계를 위해서 대심판의 역사를 벌이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교육이나 주의, 사상,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완전 부정해야 합니다. 만약 100퍼센트를 부정해야 되는데 98퍼센트까지만 부정하게 되면 2퍼센트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완전 부정한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은 인간적인 소망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노아도 그랬습니다. 그는 배를 만들었는데 강가에서 만들지 않고 산에다 그것도 120년 동안 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이후 400년을 지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고향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 땅에서 그때까지 재미있게 살던 친척, 종족을 모두 버리고 행랑 보따리를 싸서 그 곳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애급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부인을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야 하는 입장에까지 처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심정의 생활에 있어서 최후의 처량한 자리, 부정의 자리에까지 나갔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사 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러한 하나님을 믿었겠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바로 궁중에 갈 때 도중에서 하나님이 죽이려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부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부정시키고 사탄을 분립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리의 공법. 이러한 법도로 완전 부정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통일교회의 선포이기 이전에 예수님의 선포라는 것입니다. 또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어머니에게는 딸이,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가 원수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십자가란 무엇이냐? 아버지가 잘했다고 해도 그 아들이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이어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에도 용서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완전 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16-249
천정(天情)은 새로운 문화 세계의 기준
타락한 인간에게는 한이 맺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의 줄거리는 인륜 도덕의 기준을 중심삼은 것이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情)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인정을 중심삼고, 인륜도덕을 기준으로 창조된 문화세계를 넘어 천주(天宙)를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의 세계를 창조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정(人情)을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에서 천정(天情)을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현실 부정을 더 심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 형제, 처자를 버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셔서 새로운 가정을 편성해야 합니다.

완전 부정을 하기 전에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세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잘라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인정을 도말(塗抹)시키고 천정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대하는 기준이 있는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그 자체 속에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하나님만을 인간의 주관주(主管主)로 모실 수 있는 것을 확실히 밝히지 못하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들의 가정을 파괴하라고 시켰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파괴하는 입장에서 나왔지! 싫으면 안 나오고 좋으면 나오는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오게 되면 3일이 못 가서 천리 만리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된 가정을 내가 부정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부정하고 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때를 준비해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만 때가 되어도 자기 스스로 부정하지 못할 때는 하나님이 그런 자리로 내세웁니다. 그렇게 되면 내적으로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16-250
천정을 중심한 가정
이제 종교는 생활적인 종교로 전향해야 합니다.

사탄은 이 천지를 유린하고, 이 세계를 유린하고, 하나님을 6천년 간이나 괴롭혀 왔습니다. 천리 법도의 원칙으로 볼 때 사탄은 하나님 앞에 원수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적인 원수입니다. 이 원수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는 기준을 갖춘 인격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예수님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 앞에 굴복당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민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복귀섭리의 기준이 전부가 심정적인 가정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가정을 중심삼고 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신랑으로 이 땅 위에서 신부를 맞아 장가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죽어 보세요. 참말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하나님의 주관하에 결혼한 후, 부부를 이루어 하나님을 중심한 직계 자녀를 탄생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던 길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심정 일체된 인간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남달리 심정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심정세계의 골수를 갖춘 것입니다.

천정을 중심삼은 천륜의 법도로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 나가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단위가 가정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가정을 중심삼은 새로운 부모의 기준과 부부의 기준과 자녀의 기준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천정을 중심한 대표적인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 종교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신랑 신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랑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같은 생활권내에 있어야 효자, 충신, 열녀가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가 개인적으로 탕감복귀를 해서 천지의 법도를 대신한 부부가 되면 하나님께서 ‘너는 내 살 중의 살이요, 아들 중의 아들이요, 효자 중의 효자, 충신 중의 충신이다’라고 하실 수 있는 그런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국을 대표하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자격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신랑의 인연을 가지고 오셨던 것입니다.

16-251
통일교회와 심정주의
예수님이 신랑 신부의 기준으로 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섬길 수 있는 효자와 충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골수입니다.

여러분은 어린양 잔치를 무엇으로 알고 있습니까? 어린양 잔치는 타락하지 않고 맞이하여야 할 참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함으로써 6천년 전에 이루어야 할 인류의 소원인 참부모를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면 본향 땅은 어디겠습니까? 그곳은 한국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을 중심삼은 어떤 단체로 말미암아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라는 이름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거느릴 통(統)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주를 치리(治理)하는 데 있어서 그 모든 세부조직을 구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 민족과 교파를 대신하여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많이 봐놓아야 합니다. 지금 나장노, 박장노, 재건교회, 고려파 등이 있지만 앞으로는 얼마 가지 않을 것입니다. 맨 나중에 남는 것은 통일교회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얼마나 좋겠어요. 그 기분 알지요?

이제 불원한 장래에 인류를 통일의 세계, 영원무궁한 안식의 복지에 안착시킬 수 있는 근거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곳은 어디냐? 심정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아버지는 자식이 없으면 못 살고, 아내는 남편이 없으면 못 사는 세계입니다. 앞으로 올 세계는 이러한 진실의 세계입니다.

세상의 ‘주의’라는 것은 양심 기준에 있어서 의식 혁명의 단계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숙명적으로 승리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앞으로는 인류의 심정을 혁명하여 천도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역사관이 나와야 합니다. 이 역사관을 기준으로 새로운 인생관과 세계관을 창건할 수 있는 심정적인 주의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의는 무슨 주의이냐? 그것은 심정적인 인생관, 심정적인 세계관, 심정적인 우주관을 중심한 것이요. 또한 역사가 기대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바로 이런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6-252
진리· 인격·심정
그러면 이런 기준을 대하는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진리심판을 거쳐야 합니다. 단지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리의 합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즉 진리가 완전하지 않고는 그 실체가 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진리가 불완전하면 실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완전한 자리에 입각하지 않고는 완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천지가 바라는 완전한 진리가 나와야만 합니다. 진리 심판의 때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한 인격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인격자를 찾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무엇을 찾아 나와야 되느냐? 인격자를 낳을 수 있는 한 민족을 중심삼고 진리를 찾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하겠기에 절망 속에 있을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참다운 진리를 가지고 새로운 천지에 들어갈 수 있는 진리의 개방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낙망과 절망에 부딪쳐 있는 환경을 정비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기준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하면서 진리를 찾아나온 것입니다. 완전한 진리가 나올 때에 비로소 세계는 완전히 통일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통하고 나서는 인격을 완성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심정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심정을 통해서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창조 당시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심정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창조당시의 하나님의 심정과 인간 타락 이후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으며,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어떤 심정을 가지고 계시는 가 하는 역사적인 심정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기는 믿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시대적인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며 섭리해 나오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의 곡절은 시대를 통하고, 시대적인 곡절은 미래를 통하여 연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위로하고 시대적인 심정을 위로하여 온유겸손하게 미래적인 심정을 깨달을 수 있어야만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타락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자리, 하나님이 인간을 인정할 수 없는 자리에 처한 상태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끝날이 되면 진리의 심판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진짜가 나오기 전에 가짜들이 많이 나옵니다.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는 가짜가 먼저 나와 진짜처럼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가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업신여김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즈음 영적 세계에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들은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오시며 또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아들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만 아시고 아들은 모르니까 그 아들은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으려면 아버지의 논이 어디에 있고 밭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아야만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6-254
진리에 입각하되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
광명한 천지 앞에 새로운 자손으로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백퍼센트 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기성교회에 포를 쏘면 그 목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싸움을 하려면 공포탄을 많이 쏘아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실탄 천 발을 쏘게 되면 맞아 죽는 사람은 열명도 안 되지만 그래도 많이 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포탄을 많이 쐈습니다. 앞으로는 정식의 포를 쏘려고 선생님은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심판시대가 오게 됩니다. 그때에는 진리에 입각하되 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말만 가지고 우려 먹는 사람이 많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노동자, 지게꾼, 거지, 별의별 일들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들과 잠도 같이 자 봤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의 처량한 사정을 보고 통곡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 심정세계와 인연 맺고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를 갖춘 다음 참다운 지도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지방 교회를 순회하게 될 때 우리 통일교인들이 너무나 비참한 자리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아버지, 저들과 같이 하옵소서! 제가 이런 환경을 거쳐 올 때 당신이 나와 더불어 같이 하셨고, 제가 아버님을 대신하여 이런 자리에 섰을 때 갈 길이 남아있다고 권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인연을 저들에게도 맺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비참한 그 자리가 비참 그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비참한 자리에서도 선을 중심삼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악한 세계를 근본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왕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진 풍랑이 몰아치는 곳으로 여러분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될 이 스승의 입장을 여러분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안다면 세상의 어떤 귀한 소망의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버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할 수 있는 자리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16-255
하나님과의 심정적 인연의 가치
선생님은 제2의 인간이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전권을 얻고 나서 이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아버님 !’ 할 때에는 하나님도 통곡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권고하시고 통곡하시던 사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리고 쫓기는 생활 끝에 철창에 갇힌 영어의 몸이 되어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같이 하셨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제자를 만들어 주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모시면서 오늘날까지 천신만고를 극복하며 하나님 앞에 일편단심 충효의 도리를 다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길을 가는 데 충성을 다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이 이상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면에 넘쳐 흐르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길이 없습니다.

지금 어느 누가 선생님 앞에 나타나서 이러한 슬픔의 곡절을 얘기한다면 선생님은 첫 마디에 통곡할 것입니다. 그런 사연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영계에 간 선지자들도 많이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끄심은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일 귀하고 제일 큰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통해 한국에서 ‘무엇’이 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직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여 책임을 다해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마음 외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싫어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오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 앞에 강조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삼천만 민족이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통곡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길을 종결지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은 하늘땅을 위해 가슴을 치면서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운명의 순간을 앞에 두고 “아바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 14 :36)”라고 기도했던 것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했던 예수님이 간곡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런 마음을 갖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되는 것이 오늘날의 교역자들이요, 섭리역사를 책임진 사람들이요, 또한 하나님의 심정을 잃어버린 빚을 책임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으로 서러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심중에 모시고 슬프신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여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낙망하고 탄식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만민과 더불어 천주의 전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한을 붙들고 위로해 드리며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심판대신 축복해 주고 싶다 할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남아지는 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진 환경과 역경에 시달려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나만 남았나이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가져야만 비로소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에 인연되어 있으면 아무리 강한 삭풍이나 폭풍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이런 생명력을 가진 심정의 유대를 감히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16-257
생명력과 심정의 인연
춘삼월 호시절이 오게 되면 새로운 천지에 생명의 씨를 뿌리며 새롭게 발전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얼음이 꽁꽁 어는 동삼삭을 지내고 봄날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생명의 씨를 흡족히 가지기 위해 하나님의 심정과 접붙이는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역사적인 동참자가 되어야 합니다. 죽어 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얼굴을 돌리시며 세 시간 동안이나 하늘을 캄캄하게 하셨던 심정의 배후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게 위로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예수를 대신한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죽은 예수님 말고 죽지 않고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은 피어린 역사노정을 거쳐왔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길 앞에서도 ‘오! 아버지여……’ 하고 부르짖으며 그날이, 그 시간이, 그때가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조들이 생명을 내던지며 갔던 그러한 전통적인 인연을 상속받아야 하며 과거에 서러웠던 선지 선열들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길을 걸어 갈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애달픈 곡절이 많았던가 하는 심정을 느끼며 ‘아버지, 그들의 한을 나를 통하여 풀게 하여 주시옵고, 그때의 슬펐던 마음을 오늘날 이같이 활동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258
다른 사람을 천국에 가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
시대적인 환경을 개척하여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무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믿고 천당가겠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 천당 가는 것이 목적입니까?

우리는 천국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슬픈 역사가 인간으로 말미암았으니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국에 보내 달라고 아우성 친다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인간은 지상에서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천국 생활을 이 땅에서 맛보고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타나야만 합니다. 이 부모는 타락권내에 머물러 있지 않는 부모이기 때문에 사탄이 침범할래야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권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이 세계가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굴복시킬 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인 것입니다. 사탄은 이 참부모를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을 거쳐 새로운 광명의 태양을 맞이하기 위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태양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인류의 태양은 ‘인류의 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인류의 고향인 본향 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참된 고향이 있습니까? 타락한 부모를 통한 혈통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고향은 진정한 고향이 아닙니다. 이것은 원래 없어야 할 고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부모가 있더라도 부모를 부정하고, 사회 환경을 부정하고,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양심의 자극과 욕망이 자신을 굴복시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런 본심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모를 찾고 본향을 찾아가려면, 참부모가 있어야 하고 그 참부모를 중심삼은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16-259
만물의 날이 세워지기까지의 처량함을 알아야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세상에 없는 날들을 정했습니다. 통일교회에서 기념하는 4대 명절은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큰 명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절입니다.

인간들이 제일 바라는 날은 무슨 날이냐? 그것은 부모의 날입니다. 즉 부모를 가질 수 있는 그날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복귀하는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신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날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이 세상에서 완전히 탕감복귀된 후에 자녀의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이 결정된 후에 만물의 날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참석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만물의 날’이 어떻게 나왔느냐?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뿌린 죄의 씨앗이 그들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로 거두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죄의 씨를 뿌린 부모가 복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사적인 부모복귀 기대를 중심삼고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녀의 기준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결정된 후에 비로소 만물의 날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만물은 지극히 불쌍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망 가운데 지어졌던 만물이었고, 하나님이 온갖 정성을 다 들여 지은 만물이었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은 인간을 대신한 속죄의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슬프게 희생을 당해야 했습니다. 사람을 죽여서 제사드릴 수 없기 때문에 만물을 제물삼아 희생적인 제사를 드려왔다는 것입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만물도 서럽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이 땅에서 많은 피를 흘리고 간 것은 더욱 서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수천년 동안 해오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어느 누구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곡절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역대의 수많은 성현 열사들이 피의 제단을 연하여 나왔습니다. 또한 본래의 창조이념을 중심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생각해서도 안 되고, 보아서도 안 될, 처량한 길을 걸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희생의 자리를 모면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한 번의 희생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복귀섭리의 책임을 짊어지고 왔던 이 땅 위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은 여기 저기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갔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를 여러분이 대할 때마다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피땀을 흘리면서 제물, 혹은 영어의 몸이 되어 몰리고 쫓기며, 피를 토하며 죽은 처참한 운명의 길을 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죽음의 고비를 넘어가야 했다는 이 서러운 사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천지간에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영적인 이스라엘을 형성해 나온 기독교인들에게 지금까지 어느 한 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땅이 있었습니까? 인간은 살 수 있는 땅이 있고 집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한 내 땅이요 내 집이라고 하실 수 있는 땅과 집이 있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유랑객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이곳에서 몰리면 저곳으로, 저곳에서 몰리면 이곳으로 피난 가야 할 유랑객 신세를 모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족속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주귄에 시달리면서도 선주권의 한 날을 세우시기 위하여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셨습니다. 그 한 날의 대표자를 맞이하기 위해 쌍수합장하고 고대하면서 처량한 피땀의 제단을 쌓아 선주권의 본향 땅을 찾아 나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을 찾아세우기까지 그 배후의 처량함과 비참함과 죽음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심판 역사를 통해 원수들을 처단하여 죄악 역사를 수습함으로써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리는 책임을 다하는 하늘의 왕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윈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께 ‘아버지, 내 일평생의 고생은 남아지지 않고 지나갈 것이지만, 일편단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충성하고자 하는 붉은 정열만은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위해서는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가겠나이다’ 하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한 개인을 중심삼고 기도하고 한 가정, 한 종족, 한 민족, 한 국가를 중심삼고 기도하여 억천만세토록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식의 터전을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국가적으로 마련하여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개인복귀의 기준을 찾는 동시에 하나님이 허락하실 수 있는 만물복귀의 터전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16-261
합동결혼식과 성지의 의의
우리는 1960년도에 1차 7년노정을 출발하였습니다. 이 노정에서 참아들딸이 나오기 전에는 참부모의 날, 참자녀의 날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을 먼저 세웠습니다. 그리고 3년노정을 거친후 만물의 날을 택정한 것입니다. 이날을 정한지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이러한 날들을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30억 인류도 모르고 있었지만, 앞으로 세계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역사적인 한 날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까지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해서 문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되면 다른 것은 자랑할 것이 없어도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조건이 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하나의 이념으로 통일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은 후 새로운 조상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해 나온 것입니다. 또한 성지를 택하여 기도할 수 있는 땅을 정해 놓았습니다. 몰리고 쫓길 때 기도하러 갈 곳이 없었던 우리에게 이제는 하나님 앞에 사정할 수 있는 성지를 택정한 것이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승리의 팻말을 꽂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 해에 선생님이 세계를 순방하면서 40개국에 120개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많은 경비를 쓰면서 여러 나라에 성지를 택정하여 그곳의 돌과 흙을 한국에 가지고 온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일을 하느냐? 천지 운세에 박자를 맞추고 하나님의 섭리의 프로에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40개국의 120개 성지는 하나님의 선민권을 지켜줄 수 있는 땅입니다. 이 땅을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지키지 못하더라도 영계의 영인들이 지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수 있는 팻말을 박고 싸울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민족복귀 운동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기점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천지 운세가 최후의 운명을 결정지어야 할 시대권내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다 듣고 보았지요?

통일교회가 나온 것은 인간이 죽기 전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효자와 열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데 있습니다.

선생님이 삼천만 민족 앞에 몰리고 쫓김을 받더라도 대한민국이 살 수 있고 세계가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결국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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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지난번 우리의 강의를 듣고는 무척 좋아하던 사람들도 그 전에는 통일교회를 무척 원수시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인간적인 감정으로 대하자면, 어느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복수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무골충이 아닙니다. 그러나 허리 부러진 호랑이와 같은 입장에서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복수를 한다고 해서 선생님의 한이 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게 맺힌 한을 해원성사하여 세계적인 복귀의 한 날을 결정짓기 위한 싸움의 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와 처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부모를 배척했습니다. 처자까지도 배척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친척도 친구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과 충신열녀들을 모아 타락한 세계를 복귀해야 할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제물로 세우지 아니하시고 하늘편인 아벨을 제물로 희생시켜 나올 수밖에 없는 원칙을 선생님이 알았기에, 뜻을 위해 나설 때 육신의 부모를 배척했고, 형제가 찾아와도 만나지 않고 도망다닌 사람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아벨 편의 사람들을 희생시켜 나오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자기와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이므로 가까운 사랑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인간들을 살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부모님에게 손수건 한 장, 신발 한 켤레도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는 불효 자식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부모님 앞에 불효할 망정 하나님 앞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불효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결심으로 모든 것을 주관해 나왔기 때문에 그 결의가 성사되는 그날까지 안식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의를 가진 선생님을 중심한 통일교회는 몰리고 쫓기는 자리에서도 뿌리를 박았고, 뽑으려 해도 뽑히지 않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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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식구들을 고생시키는 이유
선생님이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이 이 세계의 통일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을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보다는 이 세계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하늘 용사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제 1차적인 목적입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영구불변의 효자 효녀, 충신 열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못한 것이 타락한 세계의 운명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알기에 불가피하게 여러분들을 내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스승이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십자가의 길로 내몰겠습니까? 보내 놓고는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각 교회를 순회할 때, 식구들이 나를 보면서 눈물 흘리던 장면이 지금도 가슴에 사무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부모 형제에게 쫓김받으면서도 선생님을 믿고 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에게 ‘몰리고 쫓기는 신세지만 고생의 흔적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이니, 당장에 실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몇 해만 참으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통곡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마음을 억제했습니다.

이러한 슬픔의 노정을 가면서 우리는 인류 복귀를 위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정했습니다. 이러한 날을 맞이함으로써 세계는 새로운 운세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십자가를 중심삼고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대신 석방된 바라바는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는 종말시대이기 때문에 예수님 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하여 볼 때, 오른편 강도는 민주주의를 상징하고 왼편 강도는 ‘하나님이 어디 있어? ‘ 하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인류역사가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심각한 대립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는 하나님이 있다 하는 입장이요, 왼편 강도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면 바라바는 어떤 입장이냐? 바라바는 회회교권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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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의 세계 창건의 동지가 되자
이제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회회교를 중심한 아랍권이 각각 하나로 통일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의 재림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을 중심한 새로운 천주주의 시대가 나올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 주의가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주의입니다. 피흘리는 붉은 십자가의 자리를 밟고, 피흘리지 않고 승리의 팻말을 세울 수 있는 , 흰 십자가를 들고 나오는 주의입니다. 갖은 고초와 사무치는 서러움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승리의 팻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우리가 피와 땀을 흘리며 몸부림치던 것은 천주에 길이 빛날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서럽고 원통하였던 십자가의 인연을 승리의 팻말로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앞으로 공산세계가 어디 있으며, 민주세계가 어디 있었습니까? 또한 회회교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통일주의만 있을 것입니다. 통일주의를 세우기 위한 창건 동지가 바로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우리들은 재건의 동지가 아니라 ‘창건 동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삼천리 반도 한국전역을 순회하면서 식구들에게 강물의 물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끝없이 전진해 달라고 호소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세우겠다는 소망의 인연을 가지고 죽음의 길을 자청하고 나선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모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통일교회가 정말 처량하지요? 선생님이 당장에 몇천만 원짜리 교회를 지으려면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삼천만 민족의 정성을 모아서 지을 수 있는 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대받고 쫓김받는 자리에서도 역사의 흐름을 다시 가름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봅시다. 이러한 신념을 갖게 해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하고, 형제 자매를 위하고, 만물을 위하는 기준에서 만물과 참다운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부모 앞에 참다운 형이 되고 참다운 동생이 될 수 있는 입장에서 형제간에 화목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싸움으로 인해서 인류의 역사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서로 화합하여 한 형제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하나님의 소망권내로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한 조건을 제물로 세울 수 있는 날이 바로 만물의 날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명을 다시 한번 결의하기 위해서 이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제 1교회, 제 2교회, 제 3교회에서 빠진 사람 없이 다 모였지요? 다른날 같으면 조금 늦게 오던 사람들도 오늘은 제시간에 오려고 애를 많이 썼을 것입니다. 이제는 좀더 열심히 하지 않고 좀더 열심히 정성들이지 않으면 한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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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일도 조금만 더 참고 나가면
앞으로 서울에 있는 큰 교회를 갈라서 40개 정도의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40개 교회에서 120개 교회로, 그 다음에는 360개 교회로 늘릴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기성교회를 완전히 포위할 것입니다. 두고보세요. ‘아이쿠! 통일교회가 이렇게 된 줄 몰랐구나’ 하며 놀랄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담 밖에서 반대했는데 이제는 문을 닫고 반대해야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다가 보니 누구만 남았겠습니까? 자기의 아들과 딸들은 전부 통일교회에 들어가고 혼자만 남을 것입니다. 기성교회에는 목사만 남는다는 말입니다. (웃음). 똑똑한 사람들은 전부 다 통일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통일교회 청년들 모두 20대라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기성교인들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 10년 지나 봐야 뭘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엉뚱한 일들을 하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선화 어린이 무용단만 해도 기성교회에서 얼마나 반대했습니까? 그런데 미국 순회공연 후에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지에서 공연을 할 때 서로 구경하겠다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던 것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잘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다가 안 되는 일도 조금만 더 참고 나가면 됩니다. 고생이 되더라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

이제 여러분들은 타락세계의 습성에 젖은 눈, 코, 입, 귀를 복귀해야 됩니다. 눈, 코. 입, 귀를 재창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눈 통일, 귀 통일, 입 통일 등 육신을 통일하고, 그 다음에 행동 통일, 심정통일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진정한 통일의 성도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인 천사장의 유린으로 인간이 그의 종이 되었으니, 결국 인간은 종의 종이 된 입장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먼저 종의 종된 기준을 벗어나야 하고, 그 다음 종의 기준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종의 기준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주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고 종처럼 그 대가만을 받고 일하는 입장을 말합니다. 이러한 종의 입장에서 양자의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종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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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오늘 어떤 자리에 있느냐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종으로서 충성을 다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한 후에는 양자의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양자의 자리를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양자의 기준을 다 세웠다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양자는 상속을 받을 수는 있으나 혈통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양자의 자격으로는 낙원급 영계밖에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의 기준을 넘어서기 위해서 직계의 아들딸로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을 접붙여 주기 위한 참감람나무로 오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접붙임의 역사를 하시는 참감람나무로 오셔서 세계적인 대표형으로 12제자를 택하여 형제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의 침범을 막는 울타리가 되고 사탄의 도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형제들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 형제들을 중심삼고 부모의 자리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부모의 자리에서 아들과 딸들을 재축복하여 하나님 앞에 세우게 되면 새로운 이스라엘의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역사의 원칙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시대적으로 볼 때 어떠한 때인가? 세계는 이미 제 3이스라엘을 맞이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핍박당하신 시대적인 억울함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박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로 인하여 죽음의 길을 걸었지만 다시 부활하시어 영적인 기준을 복귀한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외적으로는 교계에 몰리고 쫓기며 말할 수 없는 고생과 죽음의 길을 거쳐 가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원리로 본 역사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느 자리에 있느냐? 종의 종 자리에 있느냐, 종의 자리에 있느냐, 양자의 자리에 있느냐, 아들의 자리에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축복가정으로서 하늘 나라에서 조상의 자리에 있느냐? 여러분들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 세계 기준을 완전히 넘어서야만 만민의 목적을 달성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들은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1단계로 국가적인 책임을, 제 2단계로 세계적인 책임을, 제 3단계로 천주적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싸워 나갈 것을 여러분은 오늘 다시 한번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싸움터로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겠습니다」 가겠다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여러분들의 맹세와 함께 지금도 전세계에 있는 통일의 식구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하십시오. 오늘 이날을 감사한 마음으로 맞아 줄 것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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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이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기를 바라고 계신 줄 아옵니다. 이제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이루어야 할 저희들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날까지 당신이 발 붙일 수 있는 땅이 이 천지에 어디 있었습니까? 그러한 족속이 있었으며, 그러한 나라가 있었으며, 그러한 세계가 있었사옵니까? 아버님은 언제나 이방인이셨습니다. 동풍이 불어 오면 서쪽으로 몰려야 했고, 북풍이 불어 오면 남쪽으로 몰려야 하는 이런 유랑의 생활을 6천년이나 계속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 인류 시조가 한 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아버님께 곡절의 역사를 거쳐 오시게 했음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타락한 역사를 재창조, 재편성해야 할 참된 이념을 바라보는 통일교회가 있사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선조들의 그 모든 실수가 역사의 노정 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고, 슬프고 한 많았던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다시는 그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뼛골에 사무치도록 체험을 했사옵니다.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충성과 효성의 길만이 저희들의 생애 최상의 목적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님 앞에서 충효를 다짐하는 이런 자리를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아는 아버님의 역군들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따라오던 사탄도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고 작별을 고하게 하시옵소서. 앞으로 저희가 넘어야 할 태산준령을 기쁨으로 넘어갈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거룩한 이날이 이 나라, 이 땅 위에 세워진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날이 나오기까지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수고하셨으며, 탄식했던 만물은 또 얼마나 고대했던가를 알고 있사오니, 이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지구상에서 세계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그날을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날을 위하여 여기에 참석한 모든 아들과 딸들의 심정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지금까지 이들이 가졌던 어떠한 관념이나 주의, 사상 등 모든 내용과 기준을 전부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의 심정을 중심삼고 재창조의 생활 토대를 학보할 수 있고, 그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이 되게 하시고, 기념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 민족적인 노정이 아직도 남아 있사오니 저희들의 발걸음을 재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그날을 위해 다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탕감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충정을 다할 수 있는 때는 있었으나, 하늘땅이 진정으로 환영할 수 있는 승리의 날, 효성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였사오니, 아버님, 이제 그날을 맞이하게 하기 위하여 남은 여생은 물론 남은 정력을 다하여 충성과 효성을 할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과 딸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이 시간 쌍수를 들어 아버님 앞에 맹세한 것이 헛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인류와 이 나라와 이 민족, 그리고 수많은 제단 위에 새로운 약속과 특별한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