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9 to 16-212: 탕감복귀와 가정의 책임

탕감복귀와 가정의 책임
1966.06.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16-209
탕감복귀와 가정의 책임
[말씀 요지]

본래는 인간세계에 복귀나 탕감이라는 명사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 조상이 그릇된 길을 갔기 때문에 복귀나 탕감이라는 명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복귀라는 명사에는 참의 기준을 추구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16-209
탕감복귀는 최하의 기준에서부터
인간들은 마음을 발판으로 해서 올라간다. 즉, 종의 종의 시대를 거쳐서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 참자녀의 시대로 복귀해 나가는 것이다. 이 각 시대를 복귀하는 데는 언제나 하나의 기준, 즉 한 중심을 결정해 놓고 복귀해 넘어가게 된다.

종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참다운 종의 기준을 세워 놓고 새로운 역사노정을 출발해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참다운 양자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참다운 자녀의 기준에 연결해야 했던 것이다. 참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양자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연결해야 하고, 양자가 되기 위해서는 종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연결해야 한다. 예수 시대의 증거자인 목자 안나와 시몬은 모두 종의 기준에서 증거하고 나타났던 사람들이다.

양자시대의 출발자인 세례 요한은 뜻을 대해서는 종의 입장이었고, 모시는 입장에서는 양자의 입장이었다. 그러한 그가 종의 사명은 했으나 양자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서 양자의 기준과 직계 자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고생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40일 금식에 성공함으로써 양자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고, 하늘과 땅, 종횡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와 일치하여 종의 종, 종, 양자, 자녀의 기준을 세우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한 싸움을 인계받은 것뿐이다. 이렇게 예수님 홀로 환경과 싸웠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종의 종의 기준으로부터 직계 자녀의 기준까지 세우기 위해 이끌어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다.

우리 자신이 7년노정을 통해 이 기준을 횡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각 기준에서 이러한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우려고 최하의 기준에서부터 더듬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환경을 복귀해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입장을 알고 환경을 복귀해야 한다. 명령을 받고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각자가 알아서 책임져 나가야 한다. 이것을 하는 노정이 7년노정이다. 이 노정에서 우리는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전통을 세우지않으면 안된다.

16-210
탕감복귀의 과정
우리들뿐만 아니라 역대의 선지자들도 종의 종의 입장에서 활동을 했던 것이다. 우리의 이념을 중심하고 하늘의 뜻을 이룬 최후의 인연, 심판 할 수 있는 최후의 인연을 세우려면 국가적인 환경을 가지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심정에 있어서 과거 선지자들의 기준을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계의 자녀로 설 수 있는 시대권을 조성하기 위하여 먼저 이 민족은 양자의 입장에서 그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민족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 해도 자녀의 기준만 완전히 세우면 양자의 입장에는 자동적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7년노정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이런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 각급 기준을 대표하여 단 한 사람씩만이라도 사명을 다하여 참다운 기준을 세우고, 그 참다운 기준을 연결시키면 복귀의 노정이 성취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7년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그 마지막 일년을 앞에 놓고 있는 우리는 각자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반성해야 되겠다.

우리 식구들이 그동안 겪어 온 슬픔과 어려움을 단순한 과거사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오늘을 중심삼고 그 인연을 해원해 드려야 한다. 먼저는 역사적인 슬픔을 해원하고, 그 다음엔 내 자신의 슬픔을 풀어야 한다. 그리하여 종의 종, 종, 양자, 참다운 아들의 기준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것이 복귀의 전체적인 뜻인 것이다. 아들이 넘어가면 양자가 넘어가고, 양자가 넘어가면 종이 넘어가고, 종이 넘어가면 종의 종이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받고 직접적인 행동을 받아 가지고 말씀을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기준을 세우기까지는 아직 기간이 남아 있다. 민족적으로 사명을 못 할 경우에는 통일교인이라도 그 양자의 기준을 책임져야 한다. 선생님은 부모의 기준과 자녀의 기준과 양자의 기준을 함께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양자의 기준은 뜻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오늘날의 한국사람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은 여러분이 양자의 기준이라도 세워야 한다. 즉 세례 요한의 실수를 회복하겠다고 몸부림쳐야 할 것이 현 단계에 있어서의 여러분들의 사명인 것이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기준만 세워서는 안 된다. 전체적인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이다.

36가정은 선조의 자리에 결정된 것이다. 거기에는 아담격 가정이 있고, 노아격 가정이 있으며, 세계적인 기준으로서의 야곱격 가정이 있는 것이다. 그 중심가정형을 여러분이 결정해야 한다. 각급 가정들 가운데 그런 가정형이 있느냐? 누가 그런 가정형을 이루려고 노력했느냐? 민족적, 종족적, 가정적인 기준을 각각 책임질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게 될 때는 문제가 크다.

선생님이 아담격 가정을 고생시키려는 것은 노아격 가정이나 야곱격 가정이 자기도 모르게 타고 넘어가고, 다른 가정들도 그 가정을 타고 넘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남한 각지에 임지를 맡겨서 파견했던 것이다.

피땀을 흘려 싸울 가정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 중에 노아 가정이나 야곱 가정 같은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 가정이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여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여러분이 못 하면 선생님이라도 해야 한다.

16-212
선생님이 세계를 책임지면 축복가정은 국가라도 책임져야
여러분은 가정적인 입장을 대신하고, 종족적인 입장을 대신하고, 국가적인 입장을 대신하고, 세계적인 입장을 대신하여 책임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세계를 책임지면 여러분은 국가라도 책임져야 한다.

부모의 날이 나오지 않으면 자녀의 날이 나올 수 없다. 자녀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부모에게 어떠한 조건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되고, 만물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어떠한 조건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모든 기준을 아울러 책임져 나온 것이다.

선생님이 종의 입장에서 걸을 때는 종의 종의 입장을 책임지는 자가 나와야하고, 선생님이 양자의 입장에서 걸을 때는 종의 입장을 책임지는 자가 나와야 하고, 선생님이 아들의 입장에서 걸을 때는 양자의 입장을 책임지는 자가 나와야 한다.

선생님은 1960년 만 40세를 기준으로 하여 그때부터 승리의 조건을 세우면서 나왔다. 선생님이 움직이는데 여러분 가정 전체가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담격 가정 가운데는 가인과 같은 가정이 있어서는 안 되고, 노아격 가정 가운데는 함과 같은 가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야곱격가정들은 모두 에서와 같이 뜻을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은 소망의 십자가, 사정의 십자가, 심정의 십자가 노정을 걸어야한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던 예수와는 다르다.

여러분 각 가정들이 책임 노정을 못 걸으면 선생님이 닦아 놓은 기준을 다시 상속받아야 한다.

선생님이 요즘 매일 공장에 나가는 것은, 지금은 만물복귀, 국가복귀를 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은 여러분 전체가 해야 할 일인데 여러분들이 못 하니까 선생님이 하는 것이다.

공장을 짓기 위한 헌금을 하는 것은 조건을 중심삼고 끈이라도 달아 놓자는 것이다. 물질적 기준, 생활적 기준을 공적으로 세워야 한다.

축복가정들이 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 여러분들은 중심을 기준삼고 가야 하기 때문에 중심에 접할 줄 아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