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7 to 16-199: 소망의 부모의 날

소망의 부모의 날
1966.03.22 (화), 한국 전본부교회

16-177
소망의 부모의 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1960년 3월을 중심으로 우리는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날을 정했는데 그날이 바로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은 하늘땅이 기뻐하는 가운데서 맞이해야 합니다.

16-177
타락으로 잃어버린 날들
우리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이미 부모의 날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와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날을 기준으로 하여 참부모로 말미암은 자녀를 갖게 된 후에야 자녀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날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날들을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간 조상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던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천지창조의 목적을 완성한 하나님으로서 기뻐할 수 있는 날과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것이 타락이지만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또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소망하신 모든 날들을 다 잃어버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신 날 중에는 피조세계에 부모가 있는 날, 그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이 있는 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가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날들을 맞이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인류역사는 타락의 역사로 엮어져 내려왔고, 악한 세계, 악한 나라, 악한 민족, 악한 종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하나님이 소망하신 창조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같은 악한 것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누구냐? 바로 사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탄세계를 다시 하나님편으로 찾아 세워야만합니다.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세계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한 세계를 끌어올리기 위한 싸움을 해야 되는데, 사탄이 악한 세계를 이루어 나온 것과 반대로 선한 세계를 찾아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의 역사 속에서 3단계를 거쳐서 구원하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의 시대인 구약시대와 양자의 시대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성약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성약시대에는 자녀가 나타나 부모의 자리를 마련하여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러한 복귀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16-178
부모로서의 구주
2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최고 목적은 종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자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목적으로 오셨던가? 피조만물을 구하기 위한 최고의 목적을 갖고, 구주로서 부모의 심정을 갖고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으면 먼저 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물에 빠졌는데 어느 부모가 종을 시켜서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라고 하겠습니까? 만일 그런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참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또 자기의 막내 아들이 물에 빠졌는데 그의 형을 시켜서 동생이 물에 빠졌으니 건져 내라고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 역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부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물에 빠진 상태와 같은 이 타락한 인류에게는 어떠한 구주가 필요한가? 부모로서의 구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타락한 인류를 사랑하신다면 어떠한 입장에서 그들을 구하고 싶으실 것인가 !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에서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메시아를 세워서 구원섭리를 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출발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부모의 입장이었습니다.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대리하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부모의 입장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위한 참된 시조, 참된 부모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참된 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거짓된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은 참부모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는 것입니다.

16-179
먼저 신부를 찾아야 했던 예수님
이처럼 다른 혈육으로 태어난 사람들, 즉 참부모의 혈육을 통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직계의 자녀로 세우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해야 할 혈통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혈통과 인연 되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정성을 들인다 하더라도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나가면 참다운 아들딸이 아닌 양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러운 사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는 양자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렇게라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 땅에 오셨다 가셨지만 오늘날 수많은 인류가 구원을 받을 때는 그 최고의 기준이 양자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란 무엇이냐? 양자는 핏줄이 다른 자식입니다.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거짓부모와 인연을 맺었으니 밑둥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진짜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타락 이후 4천년 역사가 지난뒤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중생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없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오셔서 무엇을 하셔야 했느냐?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셔야 했느냐? 참부모가 되어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12제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신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 1차, 제2차, 제3차의 노정을 걸었지만 예수님은 신부를 찾지 못했기에 할 수 없이 자식 입장에 세운 것이 12사도 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류를 다시 낳기 위해 예수님은 신부를 반드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성신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 3:4)”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하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을 중심하고 인류는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사탄이 다 빼앗아 갔으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혈연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서 심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천륜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칙적인 기반, 즉 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했던 것입니다. 부모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12제자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꾸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몇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아담 대신 온 후아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인 후해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부모의 자리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하겠으니 하나님을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181
신부의 사명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남자를 대신하여 신랑으로 오셨기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이 뜻을 몰랐기 때문에 협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요셉 가정에서 이것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은 참부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 가정은 하나님이 4천년의 역사를 두고 섭리하신 끝에 자신의 가정을 축복하였다는 사실을 알아 가지고 시대적인 총책임을 지고서 그 책임을 완수해야만 되었습니다. 또 그러한 요셉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 차례나 그의 부모를 추궁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알지 못하는 부모는 끝내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집으로부터 배반당하고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예수님은 다시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마저 예수님을 불신하자 예수님은 요셉 가정과 유대 나라에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그들에게 몰리고 쫓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신부를 찾아 참다운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세상과 하나님 앞에 부모의 날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에 따라 부모는 꼭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예수님이 총각된 신랑의 입장에서 처녀의 입장에 있는 신부를 찾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탕감복귀노정에서 이루어야 할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이루지 못한 입장에서 오셨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 넘어서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승리의 기반을 갖추려니 해와로 말미암아 타락했던 반대의 경로를 거쳐서 먼저 죄를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신랑방을 준비해야 했고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금식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인류를 살리는 것이 소망이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재림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느냐? 제자들을 만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부가 오늘날 전인류를 대신하여 신부된 입장에서 신랑이 오기를 고대하여 준비해 온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에 대한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 역사는 2천년이 연장되어 다시금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노정 역시 세계적인 신부의 터전을 준비해 나가는 노정이기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후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성신도 이 땅위에 와서 신부의 체(體)를 쓰지 못했습니다. 영계에 가 보면 성신은 어머니 신(神)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실체를 갖추면 신부는 천도의 모든 내용을 알고, 즉 진리 가운데 신부의 자격을 완수해 가지고 신부로서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며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을 준비하고, 한 국가를 준비하고 세계를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가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에 들어와서 여성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 악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타락의 후손이기 때문에 어머니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참여성이 나와야만 합니다.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런 대표적인 존재가 나올 수 있는 때가 가까와지는 것이므로 세계적인 여성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뺨을 갈기는 경우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여자가 남자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기는 타락한 것을 여자가 복귀할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종말인 지금, 여자는 천적인 해와를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혜택권에 있는 것입니다.

16-183
부모의 날은 인류가 소망하는 날
오늘날 여성들이 해방과 더불어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러한 때에 참다운 어머니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를 땅 위에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류는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 때문에 땅 위에 신부가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자녀가 있을 수 없고, 자녀가 없으면 가정이 있을 수 없고, 가정이 없으면 종족이, 종족이 없으면 민족이, 민족이 없으면 국가가, 국가가 없으면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모셔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지으신 바의 세계와 만민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아담 가정에서도 못 하고 요셉 가정에서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다시 수습해서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을 통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하는데 이 세계는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각각 두 가지의 이념으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땅 위에 메시아를 위한 모든 것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남자된 예수님, 신랑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도 사랑할 수 있겠어요? 남자들에게 어떻게 신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랑 신부의 인연을 거쳐서 만민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구원섭리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나 주님 앞에 신부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 전부가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라톤에 나가는 사람들 전부가 일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일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만 마지막에 일등으로 꼴인한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같이 신부 될 수 있는 허락은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못 받으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부로 택정을 받아야 비로소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수많은 신부 후보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을 찾아오시느냐? 오시는 주님을 모시는 사람을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무엇입니까? 나는 신부라는 말이 기분 나쁩니다. 신부라는 말은 타락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생겼어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신부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며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기 위해서, 인류를 사망에서 구해 주기 위해서 인류의 어머니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셔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 사랑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신부와 인연을 맺어야 할 신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6천년을 지나 다시 찾아야 할 날이 무슨 날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성사하시는 날이며, 인류가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찾는 날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모를 찾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부터 인류는 하늘의 법도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떠한 비참한 운명하에서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그 나라의 운명을 타개하여 다시 국권을 세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인류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되는 날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피조만물이 고대하는 날은 없었습니다. 인류가 참부모를 맞는 날, 이날이 바로 피조만물이 고대하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타락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원히 불행한 자리에서 신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행복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소망 중에 최고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부모의 날을 맞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찾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어린양 잔치를 할 날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모의 날은 전인류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할 여러분은 언제 세계 인류를 위해 민족을 위해 제물이 되어 보았으며, 언제 하늘을 위해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여러분 전부가 나하나 잘되고 편안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 잘되기 위해 연보를 하고, 내 아들딸 잘살게 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185
참부모가 필요한 타락 인간
지금 이 세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민을 해방시키고 만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땅이 바라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기독교가 퍼져 있는데 그들이 소망하는 날은 무슨 날인가? 어린양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그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부모의 날입니다. 이미 다 컸다 하더라도 다시 태어나 부모를 맞이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날을 맞지 못한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 앞에 양자로밖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아버지로, 아버지의 사명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종과 민족은 많은 명절들을 맞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모의 날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을 중심하고 이땅 위에서, 우리 한국에서 부모의 날이 설정되었습니다. 이날은 한국이 해방되던 그날보다도,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날보다도 더 기쁜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부모의 날이 몰리고 쫓김받는 통일교회의 무리들로 인해 세워진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날이 없고서는 천주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이날이 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없습니다. 이날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사탄세계인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의 발판을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날을 결정하는 날도 이날이요, 성도들이 해방될 수 있는 날도 바로 이날입니다. 천주간에 소원과 이념이 하나 되는 날도 이날이요, 천지가 개벽하는 날도 이날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오늘날 이 땅에 참부모가 계신다면 그 부모는 어느 개인을 위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 부모로 말미암아 모든 가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 부모로 말미암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모의 날과의 인연으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부모를 몽땅 차지한 사람은 전세계를 차지한 사람과 같으며. 어떠한 국가의 주권자같이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은 천지가 찬양하고 기념해야 할 날인 동시에 만민이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인 것입니다.

16-186
사랑으로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진다
참부모로 말미암아 아담과 해와가 소망하였던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요, 부모의 날을 계기로 타락한 세계가 없어지고,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역적인 사탄이 차지한 세계적인 판도를 빼앗아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빼앗기 위한 싸움을 책임지고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이것을 위해 종교인들은 도를 닦아 나왔고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

이 땅 위에 인류의 아버지로 오셨던 메시아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했으니 다시 인류의 아버지가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종교인들은 기도를 해야 했고 도를 닦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인류의 아버지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중의 권세를 잡고있는 사탄과 대결하여 세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천지간에 선악의 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종말기인 지금 40년, 혹은 120년을 중심하고 환난과 기근, 그리고 파란곡절이 전세계에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끝날이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전인류가 개인주의화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망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래 가지고 점점 물질주의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을 중심삼고 물질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세계적인 국가의 권한과 위신을 갖고, 언제까지나 세계를 호령하고 그 권세를 자랑할 줄 알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흐름이 1960년을 기점으로 해서 주의(主義)를 중심한 형태에서 국가를 중심한 형태를 갖추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국가적인 공산주의와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과 중공이 싸우게 된 것입니다.

원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의 주권이, 영원무궁한 하늘의 주권이 세워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하여 전체가 하나로 화하고 동하여 돌아가는 세계가 이루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거꾸로 사탄을 중심한 주권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편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편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거꾸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연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환경,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서도 하나님을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는 피눈물나는 반대를 받고 쫓김을 받아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복귀의 길을 가는 우리도 개인적으로 맞고, 민족적으로 맞고, 세계적으로 맞아 가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16-188
참부모를 중심삼은 선의 생활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섰지만, 나는 어떠한 폭풍우가 불어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세계적인 신념을 세워야 합니다. 즉 개인을 복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모든 것, 즉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 전체를 하나님편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곱 가정이 하늘땅의 모든 복을 찾아올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던 심정으로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그리워하던 심정으로 아무리 시련과 고통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독교가 지난날 아무리 대외적인 것을 갖추어 가지고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터전을 닦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양자로서의 터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양자 가지고 만족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인류는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입장에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것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형제들끼리 이 땅에서 하나 되어 모든 것을 갖추어 나가야만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한 많은 역사의 모든 것을 청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맞는 기쁨을 오색인종이 찬양하고 그 마음이 사랑으로 터져 나와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고통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땅이 있다면 그 땅은 세계를 구해 낼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들이 나타나서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아 빚어진 한 많은 사연을 풀어 버리고 사탄권을 없애고 선의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가 통일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언어와 생활이 통일되어야 하며 문화 역시 통일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하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념, 하나의 생활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생활이 시작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통일된 생활을 해본 시대가 없었고 민족이 없었으니, 오늘날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터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16-18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날, 인류가 기뻐해야 될 날
성가 ‘하늘의 용사’ 4절에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라고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방에 있는 한국은 침략적인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유린하는 문화를 지닌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참부모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보호하고 침략자를 없애는 참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원래 그러한 법도를 세워서 인류 앞에 공헌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제가 형제를 품고, 형제가 형제를 대신하며, 친구를 위하여 죽음의 길로 나설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겠다는 박애 정신으로 세계 인류와 친할 수 있는 마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활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부모가 나와야만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도 태어나는 한 날이 있듯이 이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한 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날을 위해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부모의 날, 이 명사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날을 맞기까지 말할 수 없는 눈물어린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민을 품어 줄 수 있는 부모이지만 그런 부모의 날을 맞지 못해 역사적인 한이 맺혔으니 그날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길에서 ‘소망의 그날이 어서 오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사실상 피눈물나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아바 아버지여 ! 그날이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적인 사탄을 없애 버리고 역사적인 원수를 갚아 선의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그날을 그처럼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 소망의 한 날이 부모의 날인 것입니다. 그날은 하나님이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시는 날이요, 인류가 말할 수 없이 기뻐해야 될 날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슬픔을 체휼하지 않고는 기쁨을 체휼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역경의 길로 몰고 나오셨던 것입니다. 눈물과 고통의 길로 인도하셨으며 산골짜기로, 혹은 험산준령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러한 길을 마다 했던 무리들은 전부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고이고이 받들고 걸어 나가며 본향의 땅을 찾아가는 사람, 이 길이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생활한 사람은 하나님이 이끄셨습니다.

이러한 길을 십년을 걸었으면 그 십년이라는 세월은 한 많은 십년이요, 역사적인 해원과 더불어 동정할 수 있는 십년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를 뿌리신 것과 같은 십년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한 많은 사망길을 헤치고 나와 오늘 이날을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하고 인류가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찾아가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두고 가야 할 것입니다.

본래는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사랑을 품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입지조건과 환경이 좋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와 인연을 맺은, 천천만대 영원한 법도를 갖춘 그러한 나라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터전이요, 영생의 터전입니다. 그곳에서 맺은 인연은 태어나서부터 죽어서까지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참부모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대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법도도, 하늘의 터전도 참부모가 없이는 세울 수 없습니다. 죽어서도 참부모가 없이는 하늘의 법도를 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인류는 참부모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참부모를 통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독교도 그러하고, 불교도 그러합니다. 유교 역시 참부모를 찾아가야 할 복귀의 운세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그러한 하나의 목적 기준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6-191
효자가 되려면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 다르냐? 살아 있다는 것은 햇빛을 받고 그 햇빛을 통하여 자라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가까와질수록 마음이 기쁘면 산 사람이요, 심정적인 기준이 말라 비틀어지고 자유가 구속된 것과 같이 괴로운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인연을 가진 부모일수록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식들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아침이 된 줄을 모르고 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를 위해 오늘 이 한 날을 맞이한 선한 여러분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소망이 이루어질 시간이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울어 가는 해를 따라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녘을 향하여 새날을 맞이할 수 있는 , 떠오르는 햇빛을 첫번째로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떠오르는 해를 따라서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통일교인인 것입니다.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효자가 되려면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가르침을 받아서 알고 있는지, 참으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나와서 효자 효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오줌 누고 똥 누고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깨물고 빨고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왔습니다.

이 세상에 최고의 철학이 있다면 부모 철학일 것입니다. 부모 철학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전부 다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배를 통해 태어났지만 양자 양녀들입니다. 그러니 그 부모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부모가 되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만으로서는 절대로 하늘의 자녀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자녀를 두기 위해서는 분명히 하늘의 부모가 먼저 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맏아들이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이었던 가인이 천도를 배반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배반했던 가인의 노정을 거꾸로 밟아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까지 여러분들은 전부 다 애기입니다. 애기예요. 그러니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무엇이 어떻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애기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여 다시 나와야 됩니다.

애기의 씨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있지요? 아버지에게는 뼛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고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애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뼛속과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가 재미있습니다.

16-192
가인 아벨을 중심한 탕감복귀노정
가인과 아벨은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쌍태로 있을 때부터 싸웠습니다. 베레스도 세라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부터 사탄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편 인물이 먼저 나왔던 것처럼 공산주의가 먼저 나왔습니다. 먼저 나와야 쫓겨들어가지요. 그래야 하나님편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는 어머니인 마리아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탄의 간섭을 받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부터 싸워 가지고 자라나는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하지 않아야 메시아가 될 수 있습니다. 메시아에게는 역사적인 터전이 있고, 또 복중에서 자라나는 심령 기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원래 애기 때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메시아는 탕감노정을 걷게 되는데 먼저 법도대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여러분들도 탕감노정을 걷기 위해서는 그와 마찬가지로 법도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부모를 만나 가지고 어린애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법도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을 다 찾지 못했으니 복중의 아들을 제물로 삼아 그 아들을 아벨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가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1960년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해 나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한 형제가 보리밥을 먹으면 나머지 형제들도 보리밥을 먹어야 하고, 한 형제가 고생을 하면 나머지 형제들 모두가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날을 기준으로 타락된 경로와 반대되는 경로를 거쳐 탕감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가 이 길을 가야만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한 탕감복귀노정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종교인인 우리는 여기에서 세계적인 기반을 이루기 위한,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민족의 핍박을 받고 인류의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세계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으며, 여기에 동참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언제 부모를 세워 공경해 보았습니까? 언제 사랑하는 부모를 가져 보았습니까?

가인과 아벨의 탕감복귀에서 먼저 나온 것이 가인이요, 나중에 나온 것이 아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법도대로 아벨을 통해서 장자의 기업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 앞에 먼저 나온 애기의 입장에서 나중에 나오는 애기 앞에 천하의 모든 것을 대표한 충성을 바쳐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야만 탕감복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는 탕감 법칙대로 먼저 나온 사탄편인 가인을 하늘편인 아벨 앞에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또한 타락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나중에 나온 애기를 사랑하고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부모를 모실 수가 있습니다.

축복가정들은 앞으로 주님의 아들딸을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합니다. 그들을 모실 수 있는 기준이 세워져야만 예수님의 한을 여러분들이 탕감복귀로 해원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6-194
천주가 화합하는 부모의 날이 되어야
먼저 나온 제1이스라엘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갔고 제 2 이스라엘이 그 탕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에 의하면 여러분은 제 2 이스라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제2이스라엘의 출발기준 위에 서서 메시아를 모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한 많은 한국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도 복귀역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자리에서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삼천만이 반대해도 그것을 뚫고 20년 전부터 이 길을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나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천륜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 교회가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기초를 닦는 역군입니다. 천적인 사명을 완결하기 위한 투사들인 것입니다.

부모의 날은 어떠해야 되는가? 부모의 날은 통일교회만을 위한 날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을 위한 부모의 날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한 부모의 날? 그것으로도 그 뜻을 다할 수 없습니다. 천상천하, 온천주가 화합할 수 있는 한 날로서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원수들이 남아 있으니 그들을 전부 다 무너뜨리기 위한 탕감 계획이 먼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부모의 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부모의 날을 발전시켜서 종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나왔던 것이고, 종족적인 부모의 날을 발전시켜서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국가적인 부모의 날로, 국가적인 부모의 날을 세계적인 부모의 날로,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천주적인 부모의 날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싸움이 아직도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7년 고비를 중심하고 가야 할 길, 즉 세계 무대로 향한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국가적인 공산주의로, 국가적인 공산주의가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떨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것이 자꾸 갈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인형과 아벨형 국가로 나뉘었는 데 앞으로는 가인형인 공산주의끼리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편에서는 절대적인 개인주의가 벌어지게 되고, 하나님편에서는 세계주의를 부르짖게 되어 결국은 하나로 결속하게 될 것입니다.

즉, 이렇게 세워진 하늘편의 세계에서는 이 세계는 내 세계요, 이 땅의 나라는 내 나라요. 이 인류는 내 인류라고 하며 전체의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주의의 세계가 가까와 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래야만 사탄에게 잃어버린 것을 반대의 경로를 밟아서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이루게 된 개인에서부터 종족 민족 세계까지 순서를 거꾸로 해서 찾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세계적인 것을 준비해서 사탄세계와 싸워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이러한 것이 출발 되었느냐? 196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중공과 소련이 분립하기 시작하여 세계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이념은 공산주의 이념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이 이념적인 세계의 승패를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을 중심삼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복귀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민족적인 것을 국가적인 것으로서 완결짓는 단계까지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삼천만 민족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때입니다. 시대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해야 하는 때입니다.

16-196
참다운 하나의 인간으로 서려면
혼란한 시대에 처한 세상 사람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흑암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혼란기를 당할 때에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이들을 이끌어 뭉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으로 이들을 이끌어 뭉치게 할 수 있느냐? 기독교적인 것으로 해야만 됩니다. 서구의 생활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신들이 없구만.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지금 그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통일교회를 그리워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선생님은 언제나 먼저 준비해 나갑니다. 이제는 식구를 다스릴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옛날에 나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알고, 부모의 소원을 알고, 부모의 날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 이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또한 이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해 왔습니다. 인간이 이런데 하나님은 이날을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이날을 맞이한 승리한 아들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까지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사탄의 사랑 때문에 빚어진 것이기에 하나님도 사탄의 사랑이 있는 자리에서는 움직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그것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는 통일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하며 자기네들 마음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우리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길을 가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딛고 넘어간 셈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사실은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낳았습니까? 이것을 세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도(道)가 무엇 때문이 생겨났으며, 통일교회가 왜 생겨났는 지를 확실히 이해해야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여 최후에 가서 하나님이 맞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찌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 6)”고 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미암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그것은 문을 통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문을 통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문을 통해야 되고, 어머니의 문을 통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형제들의 문을 통해야만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형제까지 잃어버리게 되었기에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부모를 찾아야 되고, 아벨을 찾아야 됩니다. 어떠한 아벨을 찾아야 되느냐? 가인에게 매맞아 죽은 아벨은 안 됩니다. 살아서 사탄과 싸워 승리한 아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 가정의 아들로서 설 수 있는 것이며, 그래야만 악과 선을 심판할때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여 심판의 권한을 갖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부모를 찾았습니까?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섰습니까?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가 여러분들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여러분들이 참된 자신을 찾아세울 수 있습니다.

16-198
축복의 의미
축복권내에 들어가 있는 축복가정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통일교회의 축복을 받아야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종적인 인연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맨 처음에 그런 부모를 거치고 그 다음에는 부모가 사랑하는 식구를 거쳐야만 됩니다. 앞으로 때가 오면 모든 것이 원리원칙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능력을 알아야 됩니다. 형제들을 알기 전에 부모를 알아야 됩니다. 그런 다음 동생을 사랑해야 됩니다. 동생은 아벨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모든 아벨적인 사람들을 기쁨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형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어려운 모든 것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 부모에 대한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불원간 이에 대한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원리원칙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볼 때에 오늘날 이 세계는 단순한 세계가 아닙니다. 이 세계는 복귀해야 될 세계인 것입니다. 원래는 하늘 부모로부터 인연이 맺어져 가지고 시작된 문화세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사탄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으로 첫출발하여 세계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이 창조본연의 역사였는 데 그것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탕감복귀노정에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7년노정을 걸어가면서 심정을 가지고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가운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고, 기쁨을 느끼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날은 자녀가 태어날 날을 하늘땅 앞에 공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로서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심정적인 인연에 의해 복귀의 노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부모를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선 다음에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축복을 받는 자녀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날은 참으로 의의가 깊은 날입니다. 부모의 날이 세워짐으로써 자녀의 날이 있게 되고, 자녀의 날이 있음으로써 만물의 날이 있게 됩니다. 부모의 날을 기준으로 하여 3대 날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16-199
하나님의 날까지 찾아 세우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슨 날이 있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날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했으니 이젠 하나님의 날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부모의 날과 더불어 하나님의 날은 그때부터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모두 하나님의 심정을 부모의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네 것이자 내것이다’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에서는 ‘네 것이자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것이자 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 되어서 아담으로부터 부모의 날이 세워졌더라면 그날이야말로 천하가 기뻐할 날이요, 온천하만상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부모의 날과 만물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영광스러운 하늘의 날들을 가질 수 없게 되고만 것입니다.

이제 천상천하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합니다. 한 많은 역사의 끈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출발할 수 있는 그날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쌍수를 들어 ‘내 것이 네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권내로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의 책임을 누가 질것이냐?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이 져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이냐? 따뜻한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피와 땀과 눈물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우리들은 앞으로 일년간 더 싸웁시다. 일년간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편만해 있는 악의 세력을 제거하기에 전력을 다합시다. 오늘 이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하나님이 영원히 축복할 수 있는 천상천하의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합시다.

그래야만 전체의 뜻이 이루어져서 하나님께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고, 또 그 영광을 여러분이 상속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