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48 to 16-173: 복지는 부른다

복지는 부른다
1966.03.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16-148
복지는 부른다
마태복음 21:1-11

[기 도(Ⅰ)]

영원의 아버님, 당신의 거룩하심과 지존하심이 영원무궁토록 만민과 만우주와 더불어 찬양받게 하시옵소서,

오늘 1966년 3월 13일, 성일을 맞이하여 흩어졌던 자녀들이 아버지의 존전에 모였사오니, 모자라는 저희의 모습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고, 부족한 자체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넓고 크신 심정으로 저희들을 어루만지사 분부하시고 권고하시고 운행하시어서 다시 펴시고 싶은 본연의 뜻을 이 자리에 나타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당신의 영원한 뜻 앞에 배치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저희들 그것을 자각하면서 이 시간 존귀하시고 엄숙하신 당신의 생명을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약한 자신들을 당신 앞에 맡기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쓰실 부분이 있으면 가꾸어 아버지의 존전에 헌납하게 하시옵고, 합당치 못한 부분이 있거든 제거시키시옵고, 원치 않는 부분이 있거든 마감하시어서 아버지의 뜻 앞에 합당한 내용의 개체만이 남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의 몸을 저희 자신의 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아직까지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몸을 갖추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저희들 자신을 내세워 주장하면서도 본의의 나와 하나 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자비의 아버지께서 다시 한번 펼쳐 주시는 재창조의 손길이 저희의 사정과 환경 가운데 나타나시사, 아버지께서 소망하시고 그리워하시던 본의의 자세를 갖춘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외로이 무릎을 꿇고 당신 앞에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소원이 당신의 뜻과 일치하고 그들의 싸움의 목표가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한 당신의 목표와 일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린 모습들을 몰아내시어 가라고 명령하시던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저희들은 알았사옵고, 아버지의 서러움과 고통스러운 사정을 저희들은 배웠사옵니다.

그러나 배운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저희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저희들은 남모르는 외로운 길을 자진해서 걷고 있사오니 이 발걸음을 거룩하다 하여 주시옵고, 그 움직이는 모습들을 아버지의 자랑으로 세우시어서 만세의 한(恨)인 원수의 도성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정병이 되게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내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이 한 많은 마음으로 당신 앞에 애절하게 하소연할 때에는 당신도 마음졸이시며 그들과 더불어 운행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품은 뜻이 당신의 뜻과 일치될 때는 그들을 눈물로 품어 주시옵고 동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의 소원이 당신의 소원에서 벗어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뜻이 당신의 거룩한 뜻을 밟고 올라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소원과 뜻을 대하는 데에 규범이 되고, 뜻의 성사를 위하여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효자의 도리를 다하며 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당신 앞에 새로운 약속을 전개시킬 수 있는 날로 세워 주시옵고, 당신의 자녀들이 자랑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날로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눈물지으며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거든 그 민족을 긍휼히 보시옵고, 그들이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거든 인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소망의 세계를 위하여 아버지 앞에 사정하던 그 사정을 아버지의 사정으로 대치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이 한 많은 역사를 제거시키시어서 소망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무리로서 기억해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부족한 소수의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맡은 바의 귀중한 책임을 다할 것을 마음으로 결의하였사오니 분부하신 역사적인 사명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당신의 인자하신 사랑 앞에 저희들은 몸둘 바를 알지 못하와 부족한 자신들을 책하며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이런 저희들을 당신의 품에 품으시어 당신의 울타리로 모으시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저 그냥 모인 이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해외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눈물지으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뜻을 알게 된 연고로 당신의 일을 위하여 남모르는 곡절 속에서 하늘의 한을 염려하고, 하늘이 남기신 복귀의 터전을 상속하고자 하는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의 소원은 어떠한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역사적인 하늘의 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대신하여 나아가고 있사오니 이들을 기억하시어서,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께서 직접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많은 민족을 아버지 앞에 돌려 세워 하나 되게 함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만방에 떨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과 악을 판결짓는 최후의 싸움터에서 승리하여 기쁨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선민을 대신한 하늘 종족의 대열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까지 그들이 흘리는 눈물, 그들이 지키고 있는 성지 성지를,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0여개 국가에 널려 있는 120개의 성지 위에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의 무리를 세우시어서, 이 땅 위에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하나의 심판대를 밝히게 하시옵고, 선과 악의 인연을 갈라서 악을 심판하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이 땅 위 온 천주에 나타내 주시옵고, 세계 만민이 가슴 가슴에서, 생활무대에서 당신의 뜻을 접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이들을 당신의 장중에 장악하시옵고, 그 마음이 당신 앞에 합당치 못한 것이 있다 할진대 모두 제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을 위하여 충절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사실을 스스로 유린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시고, 스스로 맹세한 바를 책임 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 시간 마음의 가책을 받아 통회의 심정으로 다시금 당신의 손길을 붙들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기억하시어 거룩한 날로 세우시옵고, 이날을 택하시어서 비열한 무리들을 책하시어 악은 악대로 처단할 수 있는 최후의 날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들의 발걸음이 당신의 뜻을 위하여 가는 발걸음이 되고, 뜻 앞에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는 발걸음이 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의 부족을 스스로 반성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한 사명을 지니고있음을 절감하면서 아버지 앞에 새로이 맹세하는 그들이 되도록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짧은 한 시간을 당신이 분부하신 뜻을 따라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고, 이 전부가 당신의 뜻 이외의 것은 나타나지 말게 하시옵고, 오직 당신의 뜻대로만 이루시옵소서.

각자의 몸과 마음을 일체화시키고 전체의 분위기를 완전히 사로잡아 아버님의 영광된 존전에 바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모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땅 위의 온 만민과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이 바라보는 소망의 한 터전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만세에 공히 칭찬받을 수 있는 영광의 보좌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세에 당신이 소원하시던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할 그때까지 저희들의 배후에서 동조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6-152
기 도(Ⅱ)
역사는 돌고 돌아 한 많은 역사로 연속되어 나온 슬픔의 역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인간 조상의 한 날의 실수가 이렇듯 한 많은 역사의 고빗길을 만들어 놓는 엄청난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망의 물결에 사로잡힌 세계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것을 통탄하지않을 수 없사옵니다.

오늘 생명을 가진 저희들에게는 이 엄청난 슬픔의 역사를 청산짓기 위하여 생명의 방패를 들고 나서야 할 역사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하고 다짐할 줄 아는 소수의 무리로 저희들이 남아진 것을 생각할 때, 본연의 심정으로 슬픈 마음을 가다듬어 아버지 앞에 감사의 일념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흩어진 수많은 인류를 수습하시기 위하여 혼란된 환경을 제거하시면서, 하늘을 배반한 무리들을 몰고 몰아 당신이 뜻하신 본연의 동산으로 이끄시기 위한 당신의 크신 노고를 이 시간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당신이 흘리신 눈물과 당신의 가슴 아팠던 억울한 사실들을 상속받을 수 있는 당신의 적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와 역사의 증언자들을 대표하여 나타났던 수많은 종교인들은 당신이 영광의 아버지임을 알았사옵고, 생명의 주체요 권위의 전체를 대신한 아버지임은 알았사오나,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슬픔의 곡절은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역사상 문화의 유적을 남긴 종교는 많았사오나 당신의 심정과 뼛골에 사무쳐 흐르는 슬픈 역사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종교가 그 문화의 원천이 되어 왔다는 것을 알수록 더 슬프기만 하옵니다. 당신의 한 많았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없었고, 당신께 충성을 다짐하고 효성을 다짐하며 하늘을 위하겠다고 울부짖고 나서는 무리가 없었던 것을 회상하게 될 때,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지치고 찢기고 상처받은 무리지만 당신을 위하여 그 마음 골짜기에 흐르는 슬픔의 흔적을 보았사옵고 당신이 흘렸던 눈물자국을 보았사옵니다. 죽음의 골짜기에 내몰고 채찍질하는 무리들을 가로막고 역사적인 원수와 대결하여 싸우기 위한 하늘의 선봉자로 불리움 받은 저희 자체들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당신의 애절하신 마음에 접하지 못한 것이 한이었사옵고, 당신의 탄식하시는 마음에 접하지 못한 것이 한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이 없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었사옵고, 사람이 없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다만 당신의 애절한 심정의 인연을 갖춘 자가 없었기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사오니, 이것을 느낄 줄 아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여기 아버지의 존전에 부복한 자녀들이 있사온데, 이들이 당신의 명령하시는 대로 새로운 하늘의 종족으로 나설 수 있는 각오를 갖기 위해서는 당신의 슬픔의 역사를 독차지하여 상속받으려는 새로운 각오와 결의가 없으면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폭발되는 감정과 충격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누구셨사옵니까? 억만세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저희들의 아버지인 것을 몰랐사옵니다. 당신의 슬픔이 무엇이었사옵니까? 자식을 잃어버리고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 당신의 슬픔이었음을 저희들은 몰랐사옵니다. 하오나 이제 당신의 애절하신 분부의 일념을 따라서 이 자리에 부복하였사오매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역사적인 한이 남아 있는 한 당신의 한도 남아 있사옵고, 역사적인 슬픔이 남아 있는 한 당신의 슬픔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고, 당신 앞에 제단을 쌓는 것을 이 삼천만 민족과 세계의 민족에게 계대(繼代)해야 하는 ,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나와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오늘까지 누구를 위하여 살아 왔사옵니까? 또한 무엇을 바라보고 나가고 있사옵니까? 하늘이 남기신 역사의 전체적인 운명을 책임져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사옵고 그 사명을 하겠다고 각오하고 맹세하고 나선 저희들의 걸음이었사오니, 주저하거나 도중에서 포기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인 악과 대결해서 결코 패하여 무릎을 꿇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도 수많은 민족을 대표하여 아버님의 제단에 부복한 외로운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우기 삼천리 방방곡곡의 외로운 몰림길에서도 오히려 하늘과 인류를 염려하며 민족의 한식을 대신하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오늘도 이곳을 추앙하며 눈물짓고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님의 슬픈 역사의 인연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 앞에 남겨진 슬픈 인연과 슬픈 역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이 길에서도 피하거나 이 길을 피해 가는 배은망덕한 자녀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효자의 도리를 배우고 충신의 절개를 배울 줄 아는 참다운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이 저희만의 것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민족을 대신하여 새로운 폭탄을 던져 생명의 원천을 이룰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새생명의 역군이 되어 민족의 황폐한 땅을 밟고 일어나 아버지 앞에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아버지의 영광의 은사를 찬양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외로운 역사로 눈물의 골짜기를 면치 못했던 분과 한을 품은 민족이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을 갖지 못하여 방황하고 몰리고 쫓김받고 밟힌 민족으로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위해서 각자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역사를 수습하고 세계관을 정립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역군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통일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다짐이 오늘의 다짐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겠사옵고, 그 사정이 오늘의 사정으로만 묻혀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그 사정과 한을 영광과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당신도 스스로 하실 수 없는 한 많은 곡절의 구렁텅이를 제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 이 제단을 지켜 주시옵고, 이곳에 당신께서 분부하시고자 하는 새로운 약속의 인연을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을 아버님께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제 새로운 약속을 다짐하면서 이 1966년, 7년 노정을 마무리하는 운명의 고빗길에서 달음질쳐야 하는 저희들 앞에 엄숙한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벌써 3월의 중반을 지나고 있사온데도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저희 자신을 한탄할 줄 아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흩어진 마음과 몸을 수습하고 흐트러진 제단을 수습하여 당신의 싸움터, 당신의 골고다 길에서 피어린 투쟁의 노정에서 승리하여 부활의 영광을 차지함으로써 아버님의 이름으로 그 위업을 그대로 상속받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전체를 긍휼히 보시옵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6-155
기 도(Ⅲ)
아버지, 이 시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명령하시는 아버님의 그 음성을 듣고 생명과 모든 전체를 당신의 존전에 드리겠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자녀가 이 시간, 한 두 사람이라도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흩어진 역사의 슬픔을 홀로 체휼하여 탕감함으로써 당신의 마음 앞에 한 순간이라도 위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기억하시고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적으로 보면 의지할 데 없고 찾아올 자 없는 불쌍한 모습들이지만 한 많은 아버님 앞에 심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저희들 마음으로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제단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님께서 동정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제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숨기고 계셨던 그 심정을 터뜨려 놓고 눈물과 더불어 사정하지 않으면 안 될 이 모임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그러한 자리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러한 자리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도 그러한 자리를 원하며 찾아갈 줄 아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마음이 그러하고 전하는 자의 마음이 그러하고, 받는 자의 마음 또한 그러하거든, 아버지께서 이 가운데에 좌정하시어 이들의 생명과 마음과 몸이 화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간곡한 사정과 동정의 깊은 인연을 맺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들이 눈물로써 새로운 맹세를 할 수 있는 역사가 여기서부터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뭐라고 드릴 말씀 없사오나 이 시간 아버님의 안타까운 사정과 서글픈 심정을 솔직히 전할 수 있게 하시옵고, 아버님이 저희들에게 연결시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모든 사정을 연결시켜 주시어서, 이 시간 두터운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이 시간, 외로운 곳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날이 하늘 보좌로부터 천천만 성도들과 역사상의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까지 고대하던 하루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시간이라도 저희의 몸과 마음을 거두어 아버지 앞에 정성을 다하여 저희들의 생애에 기억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안식일에 하늘의 복을 받아 만민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저희들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곳을 위하여 눈물 어린 사정과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있사올진데 그들에게 빚지는 본부의 식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그들이 진 빚을 덜어 줄 줄 아는, 본연의 책임을 다 할줄 아는 떳떳한 본부의 식구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 자리가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이 시간에도 이곳을 위해 애절하게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그 음성들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되게 하시옵시고, 아버지 앞에는 대상으로, 이 곳을 위해 지방에서 기도하는 식구들 앞에는 주체로서 그들을 긍휼히 여겨 동정을 베풀어 달라고 몸부림치며 호소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전체를 아버님이 뜻하신 대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주님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6-157
말 씀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복지는 부른다’입니다.

16-157
복지-하나님과 인간이 소망하는 땅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던 본연의 목적이 무엇이냐? 당연히 복지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역사 이래 뜻을 품고 와서 이 땅 위에 흔적을 남기고 간 수많은 선지 선열, 위인 열사들도 모두 이 복지를 찾아 나가는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 왔다 갔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문화와 역사가 그러한 성인 현철들의 공적을 터전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문화권내의 사회에서 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사회, 국가, 세계가 지향해 나가는 그 전체적인 목표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 역시 복지를 향하여 나간다고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 큰 나라나 작은 나라 또는 당대에 권위를 자랑하는 선진국이나 패망하여 처량한 국운을 가진 후진국 모두가 도달하고자 몸부림치는 그 목적은 복지를 찾는데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숱한 역사의 고빗길에서 숱한 인류가 복지를 찾아가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전인류가 공히 소망하는 복지를 찾았다거나 혹은 그 곳에서 살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커녕 복지를 건설하기 위한 구호를 세계적으로 들고 나선 무리조차도 없었습니다. 또, 이 세상에 복지가 이루어지고 그래서 그곳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그날이 온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어떠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복지로 가는 길이며, 우리의 생과 사의 문제와 현실과 미래의 문제를 어떠한 인연으로 복지와 연결짓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땅과 인간 조상을 지어 놓고 바라시던 엄숙한 소망과 이념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 역시 복지를 이루어 놓고 사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복지의 이념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가지셨던 이념이요, 창세 당시에 이루시려던 이념이었습니다. 또한 타락 이후 역사를 통하여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한 이념이었습니다.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복지를 이루기 위하여 인간은 얼마나 공을 세웠으며, 하나님은 얼마나 애쓰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 보아야 합니다.

16-158
타락으로 복지를 잃어버린 인간
하나님은 아담을 지어 놓고 소망하시기를 온 지구성(地球星)이 하늘과 합하여져 하나님이 안 계실래야 안계실 수 없고. 악이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 없는 영원한 복지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복지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과정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서러운 한 날을 만들었으며, 그 이후 이 세계는 본래 지향하던 본연의 세계와는 반대되는 곳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복지를 잃어버린 장본인은 누구였던가? 바로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해와였습니다. 그들이 타락한 연고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복지를 다시 찾기 위해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입장으로 어떻게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담이 복지를 잃어버린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대행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신하며 복지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만우주를 품을 수 있는 심정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타락이란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법도를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잃어버리고, 그 법도를 지키고 따르며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 법도를 중심삼고 하나님 대신 만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주인공이 되지못한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16-159
복지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복지의 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복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죽어 갔고, 역사는 지금까지 피어린 투쟁의 역사로 전개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담은 복지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행복을 노래하며 하나님과 같이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세계를 다스려야 할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그날부터 그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몸부림치며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소망의 마음을 갖고 뜻을 성취한 행복한 자리에선 아담을 불렀어야 할 하나님이 뜻을 성취하지 못한 슬픈 자리에서 아담을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시던 그날은 아담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날은 복지를 잃어버린 날이요, 자신의 인격이 파탄된 날이요, 천지의 운세가 거꾸로 되어 버린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통한 심정으로 그날을 맞이하여 부르짖던 한마디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날부터 하나님은 잃어버린 복지를 다시 찾기 위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지라는 이름을 미래에 남겨두시고, 그 복지를 이루기 위한 역사적인 노정을 더듬어 오며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하던 슬픈 날, 하나님은 그 한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한마디로 부르짖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복지를 잃어버린 슬픔에서 비롯된 탄식이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천륜을 배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는 아담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어찌 슬프지않고 탄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슬픔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이후 6천년 동안 슬픔과 더불어 복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간곡한 마음으로 달려 나오셨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복지를 이루기 위한 부르짖음 앞에 하나 되지 못해 함께 그 길을 찾아 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분통함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16-160
사명을 망각한 아브라함
복귀의 길을 걸어 나오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세우시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는 그 음성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그 옛날 아담 때 사무쳤던 한의 마음을 품고 그때 잃어버렸던 복지를 다시 찾으려는 울부짖음이요, 동시에 새로운 복지의 주인을 다시 부르시는 음성이었고, 복지의 가정과 복지의 민족과 복지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음성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짊어진 아브라함 자신은 하나님의 그 음성이 복지를 소망하는 부르짖음이요, 역사의 비참상을 해원성사해 달라는 부르짖음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에 제물을 올려 놓는 순간은 복지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약속의 순간이요, 역사적인 한을 풀 수 있는 결판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자신이 짊어져야 할 하늘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 채, 자기의 입장만을 중심삼고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쪼개지 않고 드린 것이 또다시 하나님의 슬픔을 자아내는 동기가 되었으며, 후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동이 터오는 복지를 주관할 수 있는 새로운 선지와 선조로 현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복지를 부르짖고 애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타난 아브라함은 그러한 것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자세와 인격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한이었던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적인 책임과 시대를 심판할 수 있는 공의의 법도를 세워야 할 책임과 미래의 소원의 세계를 이룩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작다고 쪼개지 않은 제물이 역사노정을 저끄러뜨리는 기원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담으로 인해 맺힌 한이 아브라함을 통해 해원되는 한 날을 바라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지만, 또다시 슬픈 마음으로 아브라함을 불러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대신 그의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다시 분부하셨습니다. 이렇게 한스러운 아버지의 사정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16-161
애급에서 고역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곡절의 노정을 다시 걷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애급 고역 400년이라는 한 많은 슬픔의 고빗길을 걸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세운 자, 즉 시대를 책임지고 시대적인 섭리를 책임져 나가야 할 자의 실수는 개인의 실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역사의 전반적인 문제와 시대 전체. 그리고 미래의 모든 문제가 개재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 자신도 몰랐고, 이스라엘 민족도 몰랐습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담당한 하늘의 의용군으로서, 하늘의 정병으로서, 하늘의 투사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4천년 전, 애급은 문화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런 애급에 들어가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 동안 고역 생활을 했는데, 그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바라셨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저 종살이나 하고 벽돌이나 굽는 고역꾼에서 끝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사무치는 한이 크면 클수록, 분함이 크면 클수록 그와 비례하여 원수의 도성을 짓밟겠다는 새로운 결의를 하는 그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망각한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채찍을 들어 자기들을 호령하는 애급 관원이 있거든 ‘언젠가는 우리가 채찍을 들고 너희를 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너희들의 문화를 세계에 자랑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문화를 밟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우리가 창건하겠다’ 하는 정기를 갖추고, 최대의 내적 기반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스라엘 복지, 가나안 복지가 그들을 맞이하여 다시는 역사상에 한을 남기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개인이 실수한 것을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탕감하여 역사적인 원수의 도성을 밟고 올라설 수 있게 사상적으로 강한 신념을 갖고 나서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연신을 숭배하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 이념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애급의 문화를 밟고 올라서서, 유대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건할 수 있는 정신적인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유리고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소원은 단지 애급 땅을 피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자는 것에서 끝나 버렸던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는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급의 고역을 마다하고 도망치고자 하는 무리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급의 고역을 복수할 수 있고 원수의 문화권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민족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도 사망의 고빗길이 다가올 때 그것을 박차고 나설 수 있는 용기에 불타 올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한을 품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창건을 위한 용자(勇者)로서 용단하고 나서서,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분부하시는 그 곳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신념의 뒷받침이 희박한 민족에게는 처참함과 비참함과 분열과 파괴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400년 동안 고역살이를 시킨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애급 문화 이상의 문화를 창건하게 하기 위함이요, 애급 민족 이상의 권한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본연의 뜻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었으니 곁길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6-163
이스라엘 민족은 새로운 문화와 선민권을 창건해야 했는데
이 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민족은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세워져 엄숙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창건의 대표자로서의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자기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세계에 널려져 있는 이방 나라의 권한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더 큰 권한을 갖춘 민족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시의 로마 문화 이상의 문화를 만들어 내어 그 전통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는 또 흩어진 민족을 수습하여 단결시켜서 원수를 쳐부수고,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선민권을 창건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의분심에 불타고 역사적인 한을 탕감하겠다는 결의에 북받쳐 울어야 했는데, 사울과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걸음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본의에서 틀어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한 많은 역사를 남기는 슬픔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다윗 역시 왕위에 올랐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왕위를 기반으로 하여 로마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민족을 창건하고 민족 문화를 이룩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방 나라를 정복하게 될 때는 그 나라의 문화까지 여지없이 잘라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를 밟고 올라서서 억천만 세대에 한을 맺게 한 원수들 앞에서 진리의 칼을 휘두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나서야 했던 것이 사울의 책임이요, 다윗의 책임이요, 솥로몬의 책임이었으나 그들은 그 책임을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역사에 찬양할 수 있게 한 인물로 솔로몬을 자랑하지만 솔로몬은 그 시대권내에서의 솔로몬이지, 그 시대를 넘어서서 찬양 받을 수 있는 솔로몬은 아닌 것입니다.

복지가 부르는 사람, 복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그 시대에서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역사를 밟고 올라서서 그 위에 새로운 문화를 창건해 가지고 온 인류에게 그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자고 당당히 명령할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솔로몬의 책임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제사 드리는 성전을 짓고 그 성전 안에서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모아 놓고 자기의 왕권을 자랑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솔로몬의 권위는 지금까지 만방의 수많은 민족들이 세운 모든 문화의 흔적을 여지없이 쳐버리고 깨뜨려서, 타락된 종족의 인연을 통하여 이루어진 모든 문화를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것을 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을 통하여 이루려던 하나님의 뜻은 그러한 소망을 품고 가는 무리들을 향하여 다시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천년의 역사노정을 거쳐 오시면서 선지선열을 통하여 혹은 예언자를 통하여 권고하여 오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민족적인 사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계가 순순히 이스라엘 민족 앞에 항복할 줄 알아요? 그들에게는 복지를 향하여 가야 할 사명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길 앞에 반대되는 것이 있거든 그것을 치면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16-164
새로운 문화와 복지의 세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복지를 찾기 위한 한을 풀기 위함이요, 복지에서 살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함이요, 복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찬양받지 못한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군중에게 몰리는 등, 억울한 자리에 들어가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것을 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골고다 산정까지의 고난이 당연한 것처럼 믿고 있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예수님이라면 선생님은 필요없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를 창건할 수 있는 예수님, 원수의 문화를 제거하고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해야 할 예수님이 되었어야 했는데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그러한 예수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 기독교인들이 400년 동안 로마에 박해를 당하였으며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과 신앙의 조상들이 처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늘이 지향하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피와 땀과 눈물로 일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죽음 길에서도 ‘하나님이시여, 복지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복지의 주인공이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하고 애절하게 절규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한의 울부짖음을 계속 연결시켜 하늘의 제단이 쓰러질 때마다 다시 기대를 세워 수습하며 나온 기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오늘날 20세기 기독교 문화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역사는 끝날 것인가? 아닙니다. 아직까지 기독교 사상을 중심한 민주주의는 복지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산주의도 아직까지 그 사상을 중심삼은 복지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인류가 바라는 복지는 현재의 민주주의 문화나 공산주의 문화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복지를 이룰 것인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만 합니다. 선생님은 지난 번 미국에 갔을 때 민주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이룩된 오늘날의 미국 문화를 둘러보면서 ‘전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중심본부가 바로 이곳이구나. 앞으로 창건할 새로운 문화세계는 이곳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세계여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왜 자랑하는 가? 이는 흘러가는 한 시대의 자랑거리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의 팻말도, 하나의 탑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복지의 문화를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6-166
말씀의 팻말이 되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목적을 중심삼고 해야 할 일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가 아무리 반대하고 핍박하더라도 ‘때릴 테면 때려라. 채찍이 부족할 때까지 때려라 그러나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하며 나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모든 죄악의 고빗길, 더 나아가 골고다의 산정까지도 쳐부수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상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과 진리에 입각하여 그 진리를 대신하는 인격적인 대변자로서 선악을 판가리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참사람, 참자녀, 참가정, 참사랑을 창건해야 할 엄숙한 사명을 자각하고 책임을 지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몰리고 쫓기더라도 확고한 철칙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영어의 몸이 되어 쇠사슬에 얽매어 있으면 안 됩니다. 설사 얽매어있더라도 언젠가는 자동적으로 끊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알지 못하면 미래에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자세와 신념을 가지고 사탄의 계교와 소원, 또 목적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3대 시험을 받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 천하의 모든 영광을 갖다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소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까짓 것에 안식의 꿈을 꾸겠느냐’ 하며 고난 가운데서도 그 이상을 지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늠름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3대 시험에서 승리하였던 것이요, 십자가의 산정에서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어려운 핍박의 화살이 빗발치고, 아무리 포악한 로마병정의 마수가 자기의 생명을 옭아맨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 때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것을 밟고 넘어 설 수 있는 신념이 있었기에 세계의 운세를 탕감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그 소망의 일념이 남아져 있기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창건해야 할 문화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소원하던 문화의 세계, 즉 복지는 어떤 세계일 것인가? 그 세계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까지 우리를 대신해서 어떠한 개인이나 교회, 주의나 교단, 나라 등을 불러 왔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에도 복지는 옆을 따라보면서 불러야 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할 때에도 팔을 벌려 쌍수를 들고 ‘오냐, 반기고 싶었던 민족아! 하면서 정면에서 환영하지 못하고 옆으로 바라보며 맞아야 했습니다. 그 각도가 크면 클수록 환영하기가 더 어려웠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가만히 보면 현실적인 환경에 자기의 터전을 닦아서 거기에 안식하려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기는 혼자만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는 아브라함도,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님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비록 비참하나 한민족으로 태어난 우리가 이 삼천리 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터전을 닦게 된다면 결코 미국이나 소련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옛날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참다운 진리의 말씀을 다시 찾은, 만세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리와 이념을 찾은 입장입니다.

우리는 이제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념을 대신하여 말씀을 지키고 재무장하여 말씀의 팻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완결된 하나의 장벽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장벽을 모두 파괴시키고 만다는 신념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뜻적인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광야에서의 생활이 곤고하고 어렵게 되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애급 땅을 그리워 했습니다. 꿈에서도 생각해서는 안 될 그 애급 땅을 그리워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넘어서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16-168
통일문화권을 창건해야 할 우리
20세기 후반에 접어든 오늘 우리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신문화 세계를 창건해야 됩니다. 이제 통일이 됩니다. 곧 만민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통일교회가 창건한 문화권내가 아니면 만인류는 살 곳이 없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하는 것이 통일용사들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복지가 소원하는 방향이요, 복지가 부르는 사람이요, 복지가 부르는 민족이요, 복지가 찾는 국가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복지의 세계가 이루어지려면 얼마나 더 가야 될 것인가? 현 20세기의 시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돌아보면 노아가 자기 당대에 축복을 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 길을 가고, 죽는 자리에 처하더라도 억천만세에 죽지 않고 참아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다면 하나님이 심판했겠습니까 ? 아브라함도,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소망이 자기들 당대에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역사시대를 지나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끝난 후에야 복지가 온다는 것을 몰랐던 그들은 그 시대권내에서 복지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의 사상과 이념을 능가하여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들이 맞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무엇 하려고 나왔습니까? 여러분들은 결코 믿고 천당 가기 위해서 온 무리가 아닙니다. 몰림뱅이의 걸음을 자초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선 여러분입니다. 하루 하루의 생활 목적을 중심삼고 하루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자리를 안식의 터전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국내에 이루어 놓은 기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결코 미국이나 소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어떤문화나 사상도 선생님에게는 별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선생님과 연결시킬 것이 하나도 없는 혈혈 단신이기에 내 손으로 안식의 터전을 만들고. 내 힘으로 이 일을 개척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어떠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담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다가 타락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복을 꿈꾸다가 망했고. 이스라엘 민족도 자기의 민족적인 복을 꿈꾸다가 망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이 세계에서 기독교만을 중심삼고 꿈을 꾸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그 위에서 복지를 찾아 출발해 나갈 수 있는 어떠한 분화구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게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이라는 명사 그대로 이 세계가 통일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끝날입니다.

16-169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골고다 길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들이 자고 있는 그 자리가 복지의 부르짖음 앞에 배반되는 자리가 아니며,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복지의 울부짖음 앞에 배반되는 발걸음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단히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최후의 골고다 길이 어디냐? 여러분들의 직장도 아니고 가정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지난 역사시대의 그 기준을 중심삼고 걸어야 할 운명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옛날 제사를 지내던 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은 입장에서 사라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를 밟고 넘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시선이 다른 무엇을 향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것도 여러분이 살아가는 것도 오직 최고의 그 한 목적만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패배하여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면 ‘비틀거리려면 빨리 망해라’ ‘만약 내가 그런 입장에 처하면 자지 않고 복수하기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자신을 자각하고 스스로 충동을 일으키고 자신을 자극시키며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묵으려고 그러지요? 그런 사람이 진정한 통일교인이에요? 여러분들은 오늘은 어디로 나갈 것이며,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태평양을 가로막자’고 얘기했지요? 그런 말을 한 것도 다 한 목적에 대한 일념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따라오기를 십여 년 아니 반 평생, 그동안 시련과 곡절로 지내왔는데 그 말로가 비참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탄식하고 자기 자식을 중심삼고 탄식하는 그런 무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원하고 계시는데 자탄하는 자리에 있다면 망해야 합니다. 만약 망하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때려서라도 망하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각오와 기준을 가지고 가야 할 사람들이 통일의 역군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6-170
복지는 부르고 있다
전도를 하러 다니면서 분한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럴 때마다 여러분은 ‘몇 년만 두고 보자. 그래도 안 되면 몇십 년, 몇백 년후에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철저한 사상으로 무장하여 역사와 시대가 바라는 바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자기 중심삼고 이러쿵저러쿵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부 회색분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두 역적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복지는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6천년 전부터 아담이 이루지 못한 복지를 이룰 인간을 찾아 세우셨지만 아직 인간들은 그 복지를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이런 복귀의 길을 걸어 나왔지만 이룩하지 못하였고, 수많은 성인 현철들도 이 목적을 향하여 몸부림치며 나왔지만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이 목표를 향하여 새로운 문화세계를 소망하였지만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어차피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일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타락한 세상은 이대로 연속되어 나가게 되고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새로운 세계는 결국 이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세계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안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망의 고개를 넘고 넘으며 가야 합니다. 넘어가야 할 그 골짜기는 골고다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싸워서 승리한 후 다시 한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시 넘어가려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승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시 수습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위해 여러분은 먼저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잃어버렸고 영적인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심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이념은 세계의 그 무엇이 끌어가려고 해도 끌고 갈 수가 없는 이념입니다. 사탄이 꾀고 농락하더라도 거기에 끌려갈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이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분명히 사탄과 악에 대하여서는 단호했던 것입니다.

16-171
복지는 진리와 인격과 심정으로 이루어진다
여러분은 그런 이념으로 무장된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진리를 찾기 위하여 역사상 수많은 민족들이 죽어갔고 수많은 열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찾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해 보았습니까? 여러분들은 얼마만큼 고역의 노정을 자초해서 가 보았습니까?

진리의 방패를 들고 가는 길에 세계적인 십자가가 가로막더라도 박차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헝클어져 있는 모든 사상들을 전부 다 치워 버리고, 사회적인 부패를 청산하고 사탄이 세워 놓은 악의 도성을 모두 무찔러 버리고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중심삼은 진리를 가지고 사탄과 대결하여 거짓된 말씀을 때려부수고 사탄의 영혼까지도 굴복시킬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탄에게 끌려갔던 인간은 그런 인격을 갖추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인격을 갖춘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심정을 갖추어야 합니다. 심정을 갖춘 기반 위에 비로소 아브라함이 안식할 수 있고, 모세가 안식할 수 있으며,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세계 만민까지도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심정이 뒷받침된 사람은 만민을 대신하여 영적인 부모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으며 그렇게 부모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부모의 심정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16-172
통일교회가 넘어야 할 시련
사랑하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결점이 있더라도 그 결점을 먼저 들춰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좋은 점만 닮기를 바랍니다. 자식의 악한 면을 보고 뺨을 때렸을지라도 동정하고 후회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 때의 악한 여건을 기준으로 해서 때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닮은 작은 부분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악한 면보다 크게 보려는 기준을 중심삼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죄 많은 인류를 찾아오시는 데는 하나님의 본성을 기준으로 하여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닮은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수많은 악성보다도 크게 평가하여 그것을 붙들고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민족적인 사명과 세계적인 사명을 가지고 부모의 심정으로 가야 할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민족을 바라볼 때 그 민족이 잃어버린 부모를 찾기 위해 울부짖는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나라를 볼 때에도 부모를 잃어버린 나라요. 세계를 볼 때에도 부모를 잃어버린 세계로 볼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잃어버린 하늘과의 인연을 다시 맺기 위한 마음으로 새로운 터전을 향하여 나설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피와 땀과 눈물로써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자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넘어야 할 시련이 있으니 그것은 세계의 어떤 주의나 사상이 못 넘는 고빗길, 민주세계나 공산세계가 못 넘는 고빗길입니다. 그들이 못 가는 길을 우리가 가고, 그들이 못 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서 있는 자리는 안식의 터전이 아닙니다. 복지로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가야 할 운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안식의 터전을 바라보고 이 세계를 넘고 넘어 새로운 문화 세계를 창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전통과 기준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지가 부르는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이요, 복지가 부르는 가정과 민족과 교단이 될 수 없는 것이요, 복지가 부르는 백성과 국가와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이 목적을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여서 싸워 주시기 바랍니다.

16-173
기 도
아버님, 한국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이 이 나라의 운명이었기에 출발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지향하시는 최고의 골고다 길을 걸어온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 고구려를 중심삼고 이 민족 앞에 승리의 판도를 허락하셨사온데 이 민족이 책임을 다했다면 오늘날 서글픈 운명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민족이 소원하던 때마다, 이 민족이 일깨워질 수 있는 때마다 거꾸러지는 역사로 이어져 내려온 이 민족사를 생각할 때, 8. 15 해방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저희들 자신을 완전히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권내까지 들어왔다고 생각되옵니다.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소망이 없고, 이 민족을 세우는 출발의 기원이 아버지로부터가 아니라 할진대, 이민족에 있어서 하나님은 없었을 것이며 이 민족은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민족에게 나라를 잃어버리게 하셨고, 의도 잃어버리게 하셨으며, 또한 이 민족을 삼팔선으로 여지없이 갈라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저희들에게 모든 것을 완전히 찾게 하기 위한 당신의 뜻이었음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섭리의 손길이 배후에 어려 있음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다시한번 저희들이 자세를 가다듬어 아버지 앞에 속죄의 제단을 쌓고 선조들의 모든 죄를 용서받아서 이 시대 앞에 새로운 정장을 하고 나설 수 있게 하시옵고, 복지가 부르는 이 시대의 용사로서 나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심정으로나마 애착심조차 갖지 못하였고, 자신들의 생활과 생명에 대해서까지도 애착심을 잃어버린 민족이 된 것은 더더욱 큰 것을 주기 위한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사옵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밟는 더할 수 없이 비참한 자리에까지 들어가게 하신 것도 지고한 당신의 생명의 권한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숨은 아버지의 손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저희들이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요, 눈물의 고빗길이라 하더라도 저희들은 이스라엘의 한을 풀기 위해 소망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용전분투하며 갈 줄 아는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옵소서.

기독교가 이루어 놓은 민주세계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볼 때, 저희들은 이 세계를 밟고 올라서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아버지의 슬픔의 골짜기의 깊은 맛을 알고 아버지의 애절한 곡절의 마음을 느껴서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붙들고 사정하시고 통곡하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최고의 자리를 상속받을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에 섰다는 것을 배워서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배운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이 시간 그것을 사실로 알고 실제로 부딪쳐서 아버지 앞에 상속받을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지는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목전에서 부르짖어 왔사옵고, 이 시간에도 저희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며 부르짖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참된모습, 참된 나라, 참된 세계의 터전을 잡으려면 당신의 소원을 중심삼고 결사의 각오로 분투해야 되겠사옵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통일용사가 해야 할 도리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안식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머물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흘러 가던 물이 한 자리에 있으면 썩거나 증발해 버리옵니다. 오직 앞길을 재촉하여 흘러가는 물줄기만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사오니 지금까지 책임을 완수하며 흘러나온 물과 같은 당신의 자녀들이 끝까지 이 길을 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모든 만상 위에 나타나야 할 시련으로 알고, 교단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으로 알고 그것을 달게 받아넘길 수 있는 승리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창건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복지 문화를 이들이 창건하여 후대에 전통으로 남겨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참다운 조상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발걸음이 넘어야 할 산의 중턱에서 멎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넘고 넘고 또 넘어서 대로를 향하여 달음질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1966년도 벌써 4분의 1이 지나가고 있사오니 이 해에 아버님께서 분부하신 것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몸부림쳐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을 위해 아버지 앞에 제물되어 스스로에게 명령하고 분부하고 채찍질하여 나갈 줄 아는 자녀가 되고, 스스로 십자가를 자청하고 아버지 앞에 부족함을 직고하면서, 내일의 소망의 큰 십자가를 내가 먼저 지겠다고 앞을 다투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지의 터전을 상속해주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소원대로 저희들이 그것을 상속받아서 아버지께서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드리고, 만세의 당신의 자녀들이 안식의 복지라고 영원무궁토록 찬양할 수 있는 복지를 만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고, 이 자리에 왔던 뭇 생명들이 당신의 뜻과 인연맺어 복귀의 한을 푸는 데에 동조하여 아버지의 뜻앞에 공헌하는 뭇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