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75 to 15-280: 조국

조국
1965.10.30 (토), 한국 대구교회

15-275
조국
[말씀 요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가 결코 아니다. 우리의 개체를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의 방향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도 못하고, 반발하고 싸우고 있다. 이것은 우리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가 다 그렇다. 과거가 그러했고, 현재가 그렇고, 또한 미래가 그렇다. 이러한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가 행복할 리가 없다. 모든 것이 모순 상충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타락했기 때문이다.

15-275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 인류도 하나의 이념권내에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이 세계를 맞이해 나가 싸우면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그런 대로 발전해 나왔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은 우리가 원치 않는 세상이요 죄악의 세상이니, 어느 한 때 이것을 청산짓고, 개체와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평화와 자유와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도 타락한 이 세상은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우주를 하나님 중심한 세계로 돌이켜 놓기 위해 구원섭리해 나오신 것이다.

구원의 대상이 되는 세계가 어디냐? 이 땅이다. 이 땅은 죄악의 땅이므로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이념과 목적과 방향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 청산해야 되고 대심판을 거쳐야 된다. 그래서 노아 때에 대심판을 단행하셨다. 그러나 함의 실수로 인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였지만 해결짓지 못한 채 아직까지 사망권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참다운 개인, 가정, 국가, 세계, 천주는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비원리권인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권내에 처해 있으므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사탄 세계에서 양심적인 사람을 빼앗아 사탄과 관계 없다는 조건을 세워서, 국경을 넘게 하여 선민으로 세워 나오신다.

끝날의 심판까지 역사의 배후에서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役事)하여 오시는 것이다.

15-276
재림주님의 사명
타락한 세계를 청산짓기 위하여 심판주, 주권의 대표자,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다. 그분은 타락한 개인을 복귀시켜 참다운 개인, 가정, 국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탄은 국가적인 기준을 갖고 하늘에 대항하므로 그분도 하늘 주권을 찾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하늘편인 참다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주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일찌기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서 이스라엘 영토의 창건을 약속하셨고, 메시아인 예수를 군왕으로 삼아 수많은 국가를 점령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중심한 선의 나라,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본보기 노정을 걸었던 야곱처럼 시련과 고생을 시켜 먼저 맞게 해가지고 이루어 나와야 한다. 즉 전체가 다 반대하고 전민족 전국가가 미워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인간 세계에서 백 퍼센트 반대받는 입장에 세워 가지고 거기에서 순종의 노아를 맞이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한꺼번에 심판해 버리기 위해서다. 노아는 핍박의 자리에서도 일편단심 불변의 믿음을 세워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 있는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노아의 믿음을 기준으로 하여 일시에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한 인류를 일시에 심판하셔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러분의 선조들은 즉석에서 축복받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이 고향 친족을 버리고 떠나게 될 때 그 길이 절망의 길이라면 절망의 길이요, 낙망의 길이라면 낙망의 길이었다. 그렇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던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모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의 비참함과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로 왕의 병정들을 때려 죽이고 바로 궁중을 도망쳐 나왔다. 외롭고 황막한 광야생활 가운데에서 양떼들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생각하고 그 양들을 사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선조들은 그러한 시대에 그처럼 고통을 받고 배척을 받는 자리에서 새로운 섭리를 출발한 기대를 세워 나갔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족과 교단 전부가 반대하는 자리에서 천적인 책임을 지고 고생을 하면서, 일편단심 불변의 신앙 기준을 세워 제2의 이스라엘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악한 세계에서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먼저 맞고 빼앗아 온다’ 이것이 하늘의 전법이다. 선조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다는 신념이 있었다.

예수님의 조국, 모세의 조국, 야곱의 조국, 아브라함의 조국, 그 조국이 어디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조국이 어디냐? 하나님은 백성과 그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주권이 없음을 한탄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면 세계의 통일은 일시에 이루어진다.

6천년의 긴 역사는 천적 주권(天的主權)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이다.

예수님이 사명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는 예수님 이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하고 발전해 나오고 있다. 목적하는 그 나라가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준비단계에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미국도 청산지어야 한다. 중심이 될 나라가 나오기 전에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먼저 개인을 찾아오신다.

아담이 타락해서 그때의 소망적인 아담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하나님까지 잃어버렸다. 예수님은 이것을 찾기 위하여 4천년간 준비하여 나온 제단 위에 오셨으나, 예수님은 그 제단과 나라와 민족이 반대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그 기준을 이루려고 찾아오는 때가 끝날인 것이다. 그분이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소망을 갖고 오신다. 그러기에 ‘신랑이여 오소서!’ 하며 기독교인들은 주의 지상재림을 고대하고 있다. 창세 이후의 참다운 개인, 남성의 표본적 존재가 바로 다시 찾아오시는 재림주님이시다.

15-278
하나님이 소망하는 조국
이분의 사명은 개인적인 기준을 이룬 후에 해와를 찾아 가정적인 터전을 조상하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편성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어린양 잔치를 소망하고 있지만, 이 어린양 잔치는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하는 잔치가 아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가정적 기준을 잃어버렸으니, 이제 대표적으로 완성한 아담이 완성한 해와를 찾아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어린양 잔치다.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서 구원이 열린다. 타락한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낳았으니, 돌감람나무를 잘라 참감람나무로 접붙여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참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천국이란 무엇이냐? 극락 또는 천당 간다고 하지만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자기 부모와 형제가 다같이 가야 하는 곳이 천국이다. 천국을 이루려면 국가가 있어야 한다. 즉 조국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국 광복의 날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 조국을 창건하기 위해서 오셨고, 선지선열들도 그 조국 건설의 역군들이었다. 천국을 창건하기 위하여 완성된 남성이 와야 한다. 하늘땅이 공인하는 남성이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번식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 가인과 아벨을 기준으로 탕감하고 접붙여서 이 세계를 하나님 주관의 조국으로 창건해야 한다. 선지선열들이 이것을 바라고 나왔지만, 소망하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이어지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가던 길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이 부정하는 길을 가야 하고, 세상과는 반대로 희생과 봉사를 하면서 가야 된다. 그리고 금식해야 된다. 지금은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한 끝날의 때가 되었으니,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해야 한다. 이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자기 구원만 바라고 있으니 안 된다. 하나님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바라보고 나오시므로, 종교권을 동원하여서 천국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이자 목적이다.

참다운 가정은 어디냐? 참다운 부부, 참다운 자녀가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민권 이스라엘을 창건해야만 한다.

우리가 말하는 식구란 무엇이냐? 형제지인연을 갖춘 후 부모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그러한 하나님의 식구가 없었다. 예수님도 제자는 있었으나 식구는 없었다.

야곱의 12아들이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서로 사랑하였듯이, 우리들도 한 부모를 모시고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72종족과 친적을 찾아 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서 구원하신 것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보다 더 큰 조국창건을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정, 종족, 민족의 편성의 핵심적인 단위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살았을텐데 그렇지 못했으니, 세상을 박차고 하나님의 품으로 찾아 나아가야 한다. 여러분들 가슴속에는 조국광복을 위한 마음이 갖추어져 있는가?

개인이 안식하려면 가정적인 터전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적인 십자가를 탕감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 종족을 울타리 삼아 그 터전 위에 평화의 자리를 잡고 나서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안식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큰 환경을 수습하여야 하고 고생을 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 되게 하고, 가정을 통하여 주님을 위한 제물이 되고, 제단을 쌓아야 한다. 개척자적인 기반을 닦아야 천국의 문이 열린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가정과 종족이 천국의 백성이 되어야만 비로소 불변의 하늘 백성이 될 수 있다.

모세가 민족과 하나 되어야 할텐데 하나 되지 못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 입성을 허락할 수 없었다. 자신을 생각하기 전에 민족과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 종족 가정 개인은 다 민족과 국가 속에 있는 것이다. 민족과 국가만 찾아 세우면 다한 것이 된다. 신부를 맞아 가정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15-280
조국창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종의 종된 자리에서 종으로, 종의 자리에서 양자로,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의 자리로 승격되어 예수님을 중심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편성해 나갔더라면 40년 이내에 로마를 정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예수님은 영계에서 소망의 기준을 놓고 이스라엘을 재편성하여 나오신 것이다. 그러니 모두 화합의 신앙으로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 데 각자로 분열되니 다 망한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내 조국을 내 마음에 새기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 조국을 어떻게 편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3년간 한민족을 위하여 싸워 나왔다. 내 개인만이 아니라, 한 단계 앞서 조국이 복받을 수 있도록 고생해야 한다. 하나님이 영광의 날을 맞기 전에는 예수님도 영계에서 기도해야 한다.

조국이 어디냐? 미국도 한국도 아니다. 어떠한 곳이든 가정의 편성, 종족의 편성, 민족의 편성이 이루어진 조국 땅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수많은 국가를 밟아 오시면서 이 땅에 이루어질 하늘나라를 소망하시며 찾아 나오셨다. 하늘의 충신 열녀가 어디 있는가 하고 찾아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하늘을 중심한 국가와 민족, 가정을 재편성하여야 한다. 조국 광복의 해방의 날을 위하여 부름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국창건이 종교인의 사명인데도 나 하나 구원받고자 하는 못된 욕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자랑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날이 없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움직이실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신다. 예수님도 나라를 세우려고 오셨었다. 조국이 없으면 불쌍하다. 조국이 없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비참했다. 심판하려면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불변의 기준에 서야 그 기준을 터로 해서 심판한다. 조국은 최후의 소망이다. 조국 안에는 민족도, 종족도, 가정도, 개인도 다 포함된다.

이 삼천리가 조국이 되었느냐?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청산해야 한다. 하나님이 바라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바라시는 조국을 창건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일편단심 수고해야 한다.

선이란 무엇이냐? 가정을 위하여 개인이 희생하고, 종족을 위하여 가정을 희생하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종족이 희생하는 것이 선이다. 조국광복을 위해 모두가 희생하여 조국광복이 이루어지면 모두가 애국충신이 된다. 국가적 기준 앞에 충성하여 국가 기준을 세우면 가정, 종족의 기반을 닦았다는 공인을 받게 된다. 도(道)의 기준은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과정의 모든 것은 인정받는다.

통일교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여기서 내 뜻은 세상의 뜻이고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다. 통일교인인 여러분은 무엇을 하였는가? 충신의 도리를 세우고, 또 그 실적을 가지고 나왔는가? 효자의 도리를 다하고, 그 실적을 가지고 나와서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적인 투쟁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물의 사명을 갖고 오셨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투쟁을 해 가면서 민족적인 터전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 메시아와 상대적인 가치를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가 세계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지도를 받는 여러분은 민족적인 길을 닦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복의 길을 바라면서 죽어 갔다. 언제 되어도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죽어 갔다.

통일교인은 개인에서 민족, 국가 기준에까지 닦아 나왔다. 이제는 전세계 인류와 모든 국가를 동원해야 한다. 우리는 조국광복, 자유, 평등, 행복의 날을 찾아가야 한다. 그 길이 어렵더라도 가야만 한다. 그것은 선생님이 바라보는 관이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이다. 예수님은 이 기준을 바라보고 가시다 돌아가셨다. 우리는 조국 광복의 과정에 있어서 고생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 땅의 인류는 통일교인을 앞세우고 가야 한다. 통일교인이 아니면 아니 된다 할 때가 와도 3년은 수고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것을 상속받을 때까지 전통을 세우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탕감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는 조국창건이라는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예수님의 조국, 성신의 조국, 선지선열의 조국, 하나님의 조국, 그 조국을 이루지 못한 한을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면목이 서지 않는다.

오늘의 좋은 것과 기쁨은 내일을 위한 힘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뜻을 위하여 선생님은 모든 것을 버렸다. 뜻만을 위해야 했다. ‘하나님이여 당신이 아시오니…’ 이렇게 여러분은 기도할 수 있겠는가?

아벨 제단을 편성하기 위하여 국가적인 제단을 건설해야 한다. 가인의 제단도 인정해야 한다. 옛날의 가인은 아벨을 죽였지만 끝날에는 협조해야 한다. 우리는 아벨적인 민족적 제단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다. 우리는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제단을 쌓으면서 불변의 원칙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면 된다.

경북은 신앙의 중심 도(道)이다. 이 경북을 중심으로 하여 지대한 공헌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이 민족을 중심하여 세계는 살아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