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9: 우주의 근본과 인간의 가치

우주의 근본과 인간의 가치
1965.10.07 (목), 일본 동경교회

15-159
우주의 근본과 인간의 가치
교양강좌? 옛날로 하자면 수신(修身)의 시간이군.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할까?

문:천주의 크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자기의 마음을 크게 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웃음)

문: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창조원리를 찾으셨는지요?

그런 것은 묻는게 아니야.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약간 약해지는데. 그것보다 먼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는가 하는 거지. 하나님이 계시고부터 창조원리가 시작된 것이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실까? 안 하실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진지해진다. 하나님이 계신가 하고 생각하던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진지해진다.

하나님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머니로부터 왔다. 그럼 어머니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까? 인간의 시초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정말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까? 수많은 인종이 살고 있는데 나는 어느 계통일까?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로 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은 모두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맺는 데는 어떤 관계 아래서 맺는가? 역사적 관계일까, 시대적 관계일까, 미래의 관계일가, 무슨 관계일 것인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 관계는 무엇을 중심으로 하여 무엇을 키 포인트로 하고 있을까. 그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을 알면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알게 된다. 또한 관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자체는 뭘까? 하나님의 희망은 뭘까?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까? 우리 생활처럼 하나님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정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계의 심정은 무엇을 중심한 것일까?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들이 문제된다. 이 희망이나 심정 등의 문제를 모두 총합해 결론을 내리면 ‘인간’이라는 것이 된다.

그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엇으로 인하여 연결되는 것일까? 그것은 심정기준을 통과해 가지 않으면 모른다. 깊숙한 곳에 들어가 기도해 보라. 기도하며 물어보라. 우주의 근본은 무엇인가? 부자이다. 부모와 자식. 최초의 기준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부자관계라 한다. 천적 심정, 천적 혈통을 중심삼은 부자관계가 우주의 근본이다.

그러면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가 진짜 부모인가? 어떠한 논법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그 심정권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문제는 심정이 아니면 모른다. ‘하나님 아버지!’ 하고 외치면 우주의 모든 것이 거기에 모인다. ‘아버지’‘아버지’ 이 말은 전체에 대한 하나의 정의이다. 모든 것의 표상의 중심어로서 느껴져 온다. 그런 입장에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어떠한 생각이 솟아나도 하나님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도 자신에 대해 ‘그렇다’라고 하신다. 거기에 이르러 의심할 수 없는 부자관계를 맺어간다.

그러므로 우주의 근본은 부자이다. 만물은 자녀를 위한 정원이다.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창조원리가 자연히 나오게 된다. ‘나의 마음과 몸은 이러한 관계로 되어 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사위기대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창조원리를 자연히 깨닫게 된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우고 있는데, 여러분이 말로만 듣는 그 원리는 선생님이 수많은 발자취를 더듬어 가며 싸워 온, 그 싸움 뒤에 얻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담 가정으로 말하자면 선생님을 중심으로 해와가 타락한 그 이상의 단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해와가 잘못한 것을 바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참기쁨의 기준을 우리에게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심정으로 탕감기준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상의 심정권에 있어서 하나님의 깊은 내심권(內心圈)에까지 들어가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해 주실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선생님은 그 길의 개척자요, 선각자이다. 지금까지 선생님 혼자서 그 일을 해 왔다. 그것은 멋진 것이다. 수천년의 역사를 짊어지고, 잘못 맺어진 것을 모두 풀고 하나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것은 세계적인 공헌이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성공을 한 셈이다. 영계로부터 승리의 기준을 세워 지상과 연결시킨 것이다.

문:선생님은 언제부터 하나님을 생각하셨습니까?

어렸을 때부터다. 선생님은 어린시절부터 달랐다. 신비하고 소박한 곳 무엇인가에 끌려 사람보다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를 쭉 지내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듣고 그들과 얘기해 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환경은 좋지 않다고 느껴져 왔다. 저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마음이 좋을 것이다고 생각해 말을 들어 보면, 그의 심정이 반향되어 온다. 그 깊이에 따라 그 사람이 선한 입장에 서서 말하고 있는지 악한 입장에서 말하는지를 느낀다. 어릴 때에도 어린이와 친구가 되는 것이 싫었다. 왠지 마음이 쏠리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에 대해 지성을 다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옆에라도 앉아 있거나, 그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되었다.

산 같은 곳에 가더라도 좋은 곳이 있고 나쁜 곳이 있다. 그것을 알게 된다. ‘이리로 가면 가장자리일 것이다’ 하고 가면 틀림없이 가장자리가 된다. ‘아아! 내일은 비가 오겠구나’ 하고 느끼면 정말 비가 온다. 다른 사람과 촉각 등의 감각작용이 좀 다르다. 가족 중에 병이 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징후를 느낀다. 인간은 그런 재미있는 기관을 갖고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필요없는 것을 생각하여 그것을 머리에 가득 넣고 살아가니까 그런 기능이 모두 막혀 버렸다. 끊임없이 수양해 가면 예민해진다. 머리가 맑아진다. 어떤 때에는 먼 곳에서 손님이 오는 것도 영파로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상당한 기도를 했다. 수고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몇 년이 지났으니까 나는 버젓한 통일교회 청년이다’고 생각하는가?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통일교회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 선생님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온 기분이다. 그러므로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끌어안고 친근한 기분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야기할 것은 많이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하루종일, 밤새도록 얘기해도 싫증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다. 자신이 실지로 한 경험담을 선생님은 잘 들어 준다. 나이 든 할머니와 이마를 맞대고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선생님 생애의 사명이 그것뿐인 것처럼 듣곤 해요. 그럴 때는 ‘아아! 그랬었느냐’고 하나님도 그러신다.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여러분, 부모가 그렇지요? 아들이 자라서 점점 멀어져 가도, 아무리 성장해도 부모는 그 아들과 심정이 일치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것이다. 멀어져 갈 때 쓸쓸하게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도 그렇다. ‘그대들 어디서 일하고 왔어? 전도나가서 좋은 일 있었나? ’‘예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일을 하고 왔습니다.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쓸쓸합니다. 저는 외롭습니다. 하나님, 외롭습니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 하나님은 위로해 주신다. 여러분! 그런 기도를 하나요? ‘아버님 적적하셨지요? ’라고 하는 그런 기도는 실로 대면해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왠지 먼 것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선생님은 때때로 어린이처럼 기도한다. 뒹굴면서 노래도 하고 어느 때는 춤도 추면서 ‘아버님! 이렇게 하는 것 나쁘지 않아요? ’ 하면서 말이다. 기도는 노래로 하는 것이 가장 감동적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선택해 거기에 가사를 붙여 기도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이 감동한다. 자기가 노래부르고 있다는 것을 잊고 남의 노래를 듣는 것과 같은 경지에 들어간다.

경험도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곳에 최고의 경험이 있다. 자식이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춤을 춘다. 이것은 아이가 부모로부터 최고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얘기할 수 없는 아이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최고의 경험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은 성격상 한번 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다. 나는 한다고 하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모든 것이 안 되더라도 최후까지 밀고 나간다. 착수만 하면 그것과 하나가 되어 버린다.

선생님의 설명만 가지고는 선생님이 가는 길을 알 수 없다. ‘글쎄 그런 일이 정말일까? ’ 하며 그것이 믿어지지 않거든 목숨을 걸고 기도해 보세요. ‘아버지 저 죽습니다’ 하면 처음에는 ‘죽어라 죽어’ 합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죽고 싶다고 기도하면 선생님이 어떤 일을 해 왔는가를 보여 준다.

선생님은 그런 식으로 이 길을 개척해 나왔다. 영적세계의 수많은 자들이 동원되어 선생님을 반대해 왔다. 최후의 승리는 씨름처럼 일대일로 싸워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실력을 가지고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보조를 받아 이겼을 경우 사탄이 참소한다. 그러니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은 거기에서 승리를 결정했으므로 수많은 영통인들은 선생님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기준으로 증명할까? 동기가 기준이 된다.

문:혹시 괜찮으시다면 선생님의 성장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상세하게 설명하면 여러분의 탕감조건이 커진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조금밖에 기록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탕감조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생애도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듣고 싶은가? 그럼 전세계의 탕감의 책임을 지겠는 가. 자신도 없으면서 그렇게 방대한 것을 질문하니, 원.

선생님은 많은 고생을 했어요. 인간의 체력으로 견딜 수 없는 고생을 어떤 사람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느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고생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사귀어 보아도 선생님을 알 수 없다. 어느 때는 무섭고 어느 때는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어디에 가나 알 수 없다. 선생님은 항상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렇다고 환경에 반(反)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자연히 끓어오르는 것 같이 하는 것이다.

문:복귀원리와 일본 역사, 그리고 직접 원리에 나오지 않은 서양 역사를 어떻게 연결시키면 좋겠습니까?

그것은 입장이 다르다. 각 나라의 역사는 탕감원리의 일부를 담당하여 발전해 간다. 그러나 전부 하나의 목적권을 보충하는 역사적 사명을 각 민족의 역사가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나라의 역사는 모든 나라의 역사를 배경으로 갖고 있다. 사탄세계에서도 원리형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가며 원리로 된다. 그러므로 방향 전환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역사관을 만들고 있으면서 그 배경에는 일부 섭리의 인연도 남아 있다. 그러기에 그 배경으로 세계적 운세와 연결할 수가 있다. 전체적인 섭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현세의 위치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없다.

문:그 연결의 관계에서 이스라엘 역사, 기독교 역사, 일본 역사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습니까?

직계와 방계의 입장에 있어서 모두 관계가 있다. 세계적 유행은 왜 일어나느냐 하면, 방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직계의 입장에 있는 사람과 연결되기 위하여서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의 세계역사는 인류가 왕래하면 할수록 좋은 것을 중심삼고 통합된다. 나쁜 것은 도태되고 좋은 것은 남는다. 그리하여 하나의 선하고 좋은 세계관이 자연적으로 남아 모든 것이 거기에 통합되어 궤도에 오르게 된다. 좋은 일은 남는다.

문:그러면 일본 민족이 거쳐온 복귀노정, 예를 들면, 제2차 대전 때의 국가적 위치와 관계도 민족적인 복귀원리로 해명되고, 또 어째서 일본이 그와 같은 입장이 되었는 가 하는 의문의 해결점이 있겠군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왔지만, 어떤 나라는 3백년의 섭리, 혹은 5백년의 섭리로 그 기간이 전부 다르다. 시대적으로 목적기준을 향하여 발전해 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탕감조건에 따라서도 연한(年限)이 좌우된다. 또 그 민족이 하늘이 전체적 섭리를 진행하는 그 위에서 어떤 탕감조건을 남겨 왔는가에 따라서는 좌우된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는 국가적 중심인물이라든가 영웅이 나타난다. 각 나라마다 그 기간이 있다. 그런 영웅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통합시키고 절대적인 진보를 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일본에 국가적 영웅도 나타나고 동양적 영웅도 나오는 것이다. 복귀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지금 여러분도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에 탕감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여러 민족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시키고있다.

문:선생님! 동양의 석가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이제 알고 있어요. 그동안에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라고 하면 마음속에서 ‘뭐야? ’ 한다. 들어보면 자기 마음속에서 양심과 자신이 말하고 있다. ‘자네 이렇게 해서는 안 돼’라고 하는 것도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석가도 그런 경지에 들어갔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한 것은 거기에 있다. 자신도 모르게 말한 것이 자기가 말한 것처럼 느껴진다.

영인체 속에 하나님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그렇게 의식이 작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영적경험을 한 사람이 많이 있다. 양심이 계속 설교하는 것이다. 현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노이로제 현상 같은 것도 모두 영적 현상이다.

지금부터 한 시간 전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지만 지금 이 시간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관할권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쪽의 요구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하늘 아버지가 사랑의 아버지라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만 그것을 깊이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늘 아버지와 선생님이 어느 때는 서로 부둥켜 안고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심정권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다. 설명하려 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가까와지면 그 사람의 힘은 무한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선생님을 사랑하시는가? 이것은 하나님과 선생님밖에 모른다. 그 경지에 들어가면 취해 버린다. 이때 취하는 것은 술 먹고 취하는 것과 다르다.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마치 처녀가 사랑할 때와 같은 마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사춘기 때의 기분이다. 희망에 불타는 그런 기분이다. 그러한 기분이 없으면 마음이 늙어 버린다. 선생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전차를 타고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안다.

어느 곳을 쭉 통과해 보면 그 감도의 차이에서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안다. 나라도 돌아보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안다. 인간은 실로 미묘하게 되어 있다.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세계를 쭉 돌아보아 그런 것을 알고 있으므로 여러 가지 계획하는 것이다.

문:약육강식이라는 현상과 사랑의 관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어린이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념을 확실히 아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메우는 데에는 시간이 요구된다.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벌레를 천 마리 잡아죽여서 단축한다고 하더라도 죄가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단축할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한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 목적을 빨리 이룰 수 있고 또 그러한 기준을 세울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신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다.

문:모든 동물의 살해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다만 어떠한 존재물도 이중목적을 갖고 있다. 식물도 그 자체의 목적을 갖는 동시에 전우주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식물이라는 개체로서는 동물에게 먹히지 않고 열매를 맺는 평범한 단계를 밟는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목적완수를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목적도 이중목적이지요? 자기 혼자 기뻐하는 것만으로는 나라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나라의 목적과 일치해 그것을 완성시키면 개인의 목적은 자연히 완성한 단계에 들어간다.

문:동물과 동물 사이에 있어서는요?

동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원칙은 똑같이 만들어졌다. 맹수의 어금니(齒)를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먹지 않고 어떻게 해? 그 입으로 풀을 먹겠나?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이 희생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문:그러면 상극관계라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과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사람이 쌀을 먹는 것도 죄다. 그러니 입을 봉해 버려야 한다. 풀은 모든 생물 중에서 한 단계 낮은 생물이다. 동물은 움직이는데 식물은 못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도 자르면 물이 나온다. 눈물처럼. 한 단계 낮은 식물 가운데 벼가 있는데, 그것도 생명령을 갖고 있다.

문:그럼 높은 것은 낮은 것을 잡아먹어도 괜찮은 것인가요?

높은 것은 낮은 것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토대로 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낮은 것은 높은 것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고 건설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청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산에 데리고 간다. 노루 등을 잡는다. 정말로 귀엽지. 선생님은 그런 것을 보면 끌어안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청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즉 노루 한 마리를 희생시켜 청년들이 그것에 의해 절대적인 용기를 얻고 천지심정을 체득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창조된 것은 영원성과 유일성과 보편성을 갖는다고 하는데 형태가 있는 것은 반드시 붕괴되지 않습니까. 그것과 유일성, 영원성과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것은 원소에 따라 다르다. 원소를 중심으로 해서 보는 경우는 유일하고, 보편적이다. 그것은 원소에 의해 결정된다. 지구에는 어떠한 원소가 주원소로 되어 있는가. 그것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 것이다.

문:형태가 있는 것의 영원성과 그 기준은요?

그 본성이 문제다. 나무라면 나무, 포플러라면 포플러를 중심으로 영원성을 갖고 있다.

문:현상세계의 것이 무형의 것으로 변합니까?

원소는 개체로 되어 있다. 원소 자체가 하나님의 무형성상(無形性相)의 기준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역행성(逆行性)은 가지고 있지만 거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긴 거리를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볼 때에는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긴 거리를 갖고 연결되어 있다.

문:현상세계에는 무형과 유형이 있습니다만, 유형의 것이 다시 무형의 것으로 변화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원소가 없어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논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우주가 모두 없어져 버린다는 결론이 된다. 원소는 원소로서 영원한 존재로 남아진다. 하나의 원소가 그 자체로서 원소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형이신 하나님의 힘이 중심이 되어 한개의 원소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는 모르지만 제한된 힘이 들어 있다. 모든 원소가 시간성을 갖고 만들어져서 힘을 가하면 방향성이 틀리게 된다. 힘의 방향과 양의 차이에서 그 원소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문:전도하러 가서 질문받게 되는 것인데요. 우주에는 태양계와 같은 것이 많이 있는 데 거기에는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아아! 없어. 그것은 멀지 않아 증명된다. 화성에는 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없다. 이 지구는 미묘하게 되어 있어 기압이 있다. 이 기압권내에 있어야만 생물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의 신비다. 이 기압이 강하거나 약하면 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

문:인간이 우주에서 최고의 존재라고 하는 근거는 어디서 증명하면 될까요?

하나님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만 자연히 그것을 얘기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심정에 일치되면 내가 북쪽으로 가면 모든 것이 북쪽으로 향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이렇게 있어도 영계는 지상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모두 지상을 향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이룰 수 있는 기준, 그것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만물의 영장의 권한이 있는 것이다. 밝은 빛과 어둠이 있다면 어디로 향할까? 밝은 쪽으로 향한다. 이것은 자연현상이다. 하나님의 심정이란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문:태양계에 변화가 일어나 인류가 위기에 당면하는 일은 없겠습니까?

지금부터 5년 전인가, 어느 과학자가 혜성이 나타나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가 전부 파괴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러나 지구는 그러한 존재물이 오면 반발력, 즉 밀어내는 힘이 있다. 여러분도 위험한 일을 당하면 자신도 모르게 반동력을 내지요? 정면 충돌해서 세계가 없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지구가 같은 운동을 계속하는 이상 그 열도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혈액이 36,7도를 유지하는 것은 혈액순환이 같은 속도로 되기 때문이다. 지구의 공전하는 속도가 변하지 않으면 지구의 열도 변하지 않는다. 태양도 도는 것이라면 그 속도가 변하는 만큼 태양열도 변해 간다.

문:지구가 조금 경사졌습니다만, 이것은 태양과 지구와의 존재유지상 필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전체적인 영향에 따라 그렇게 되어 있다. 자기 개체로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지구에 태풍이 분다든가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 자체의 작용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인력(引力)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타를 작성해 보면 그것이 통계적으로 일치한다.

문:이 우주에 생명체가 있는 천체는 달리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시다. 이 우주에 지구 이상의 위성이 있다면 하나님은 거기에서 창조목적을 완수하신다. 영계에 가서 어떤 천사들을 보면 사람과 같다. 그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화성에서 왔다’, 혹은 ‘목성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면 화성에도 사람이 살다가 죽어 여기에 왔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영계에서는 전우주가 우리의 활동무대이다. 태양에도 갈 수 있다. 아무리 태양 속으로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만우주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몇 천억 광년이라는 긴, 방대한 우주라 할지라도 영들은 한순간에 전우주를 다니며 활약할 수 있기 때문에 빛 같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인체를 만들어 주신 것은 그러한 목적 때문이다. 영인체는 벽이 있어도 살짝 통과할 수 있고 아무런 불편이 없는 것이다.

문:선생님은 태양계 가운데에서 어느 별이 마음이 끌리십니까?

선생님은 태양이다. (웃음) 태양 빛이다.

문:하나님께 미를 드려야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합니까?

자신이 언제나 상대적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관념이 항상 자기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늘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무용수가 춤을 추듯이 항상 예술의 미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 자체가 항상 상대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서 미남 미녀가 결정되어 간다. 예를 들면 사랑은 동적이고 미는 정적이다. 정과 동이 있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문:우주의 축소체가 인간이라는데, 그러면 인간의 육체와 영인체를 연구하면 온 천주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대응 관계이다. 실체와 형상과 상징의 기준이라도 대응할 수있다. 인간은 소우주이지 우주의 실체는 아니다. 소우주의 성상적인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인간과 우주는 대응해야 할 기준을 갖고 있다.

문:전우주의 힘을 자신의 영혼 가운데로 결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힘이 모이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지? 전체의 힘이 여러분에게 모아져도 곤란하다. 그것이 온 우주를 끌고 여러분에게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인간 전부를 힘으로 끌고 움직이는 것보다 심정적으로 끌면 무엇이든지 한마디로 백 퍼센트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소중하다. 물리적으로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그러한 동기적인 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100의 힘의 주체적 요소를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은 전우주의 모든 힘을 끌어들이는 플러스적 주체를 결정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작용 자체에 명령하는 위치에 설 수는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하나님의 심정기준에 서면 명령하는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과 만물이고 우리는 견학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 대신 천주를 지시할 수 있는 심정기준이 서면 그를 중심으로 이 태양계가 바꾸어지고 또 거기서부터 돌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만유원력의 모든 기준의 중심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귀한 것은 아니예요. 우주를 만든 의지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의식관점 앞에 작용할 수 있는 상대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고귀하다. 작용할 수 있는 기준에 서면, 그분이 나를 주관하여 목적관념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게 되면 평화의 요소만이 나와 관계를 맺는다.

영계를 통해 보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면 천주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 돌고 있는 지구에게 ‘반대로 돌아라!’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된다. 무슨 뜻이냐면 심정권을 가지고 모든 목적기준을 상대물에게 적응시켜야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허락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동쪽으로 갈 목적관념을 갖고 나아가도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에게 서쪽의 기준에 서서 작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원리적으로 운행하니까 무질서란 있을 수 없다. 심정권을 갖고 명령해야 변하는 것이다. 심정으로써만이 우주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점성술가들은 ‘오오 내가 명령하면 태양계가 정말 반대로 되어진다’라고 생각한다. 영계와 통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많이 있다. 자기가 명령하면 세계가 하룻밤 사이에 바뀐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어느 결정된 한계내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영의 힘을 빌어서 이쪽 바위에서 몇십리나 되는 산봉우리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려면 그만한 탕감조건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몇백년에 한번쯤 일시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허락할 때가 있는데, 그때에도 탕감조건을 치러야만 가능하다. 비원리적인 활동을 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탕감을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영능자가 기적을 행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반드시 큰 보상을 해야한다.

문:불교에서 예를 들면, 불구로서 태어났다든가 하는 것은 양친에게도 원인이 있겠지만, 자기 자신의 과거에 의한 결과라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다.

문:윤회설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태어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원인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 재림부활을 위해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전체 목적을 위해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문:그럼 그와 같은 상태로 나타난 현상 자체에 그 사람 자신의 책임은 전연 없는 것일까요?

책임은 있다. 그러니까 태어나는 데에는 책임을 갖고 태어나는데 과거의 기준과 현재의 그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조들의 공적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된다. 그것이 많고 적음에 따라 현재의 과정에 작용한다. 그래서 태어나는 사람은 그 동기를 갖고 있다. 그 동기를 상속받는 것이다. 좋은 씨를 갖고 태어나면 좋은 결과로 되지만, 나쁜 씨라면 나쁜 결과를 맺는 것이다.

문:태어난 그 자신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만약에 어떤 사람은 쌀이고, 어떤 사람은 조이며, 어떤 사람은 옥수수라 하자.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소질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완성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 빨리 그 완전한 기준에 올라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모두 천성의 소질에 적응하여 조직의 중심으로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어째서 자기 자신이 그러한 부모 밑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째서 타락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문제는 없다. 타락이 없었다며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다.

문:로고스와의 대응성은 어떻습니까?

실체로 되어 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은 어째서 최고의 자리에서 축복받으며 태어나지 않고 보통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는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보통이 없으면 최고도 있을 수 없다. 밑에서 최고의 기준을 보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최고는 책임이 무겁다. 고생이 많다. 움직여야 하는 범위도 넓다. 그리고 그것을 완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높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은 아니다. 위치라고 하는 것은 문제삼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기준에 있어서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천성을 어떻게 해서 백 퍼센트의 기준까지 도달시키느냐가 문제이지, 출발의 기준에 대해 우리가 말할 필요는 없다.

인격의 가치를 완성한다고 하는 것에 있어서 모두 평등한 위치에 서 있다. 사람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모두 큰 사람뿐이라면 아름답지 않다. 그들 모두가 합해서 인간미의 맛을 낸다. 천차만별로 태어나게 하는 결정권은 역시 하나님께 있다.

문:유형인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태어나기 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을 갖고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개체는 전연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태어난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 형태가 있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로고스는 아담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만들고 나니 로고스의 실체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실체에 로고스가 작용하여 재창조의 행정(行程)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문:로고스로서의 자기는, 체내에 있는 것이 전부입니까.

로고스는 아담을 창조할 때의 구상, 즉 생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문:창조된 이후 자손의 로고스는요?

전부 로고스 자체로 되어 있다. 실체로 되어 있으므로 가지처럼 번식한다. 자손은 실체의 가지이다.

문:그렇다면, 불구의 어린이가 태어나는 것도 전체적, 개체적인 이중목적의 탕감전에 의해 발생한 것이군요. 그러면 그러한 문제를 현세에서 빨리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세주를 보내셨던 것이고, 또 각 시대 시대마다 인류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사람들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빨리 연결되라는 것이다. 연결되면 어떻게 되지? 자기 자신은 부모와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 본래의 인연과 연결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고하여도 구원받을 수 없었던 곳을 잘라 버리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에 이어지는 관계를 맺는다. 모든 종교를 바로잡고, 그런 인연을 연결해 최후의 기준까지 계속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뭐라 하셨는가.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를 말하시며 그것을 잘라버리고 접붙여야 한다고 하셨다.

문 :기적에 대한 문제입니다만, 원리에서 벗어난 기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는 데는 영인체를 다시 불어넣으면 살아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부패해 버리면 안 된다. 살이 없어지면 안 된다. 3일간이라든가 죽은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에 영을 불러 들이면 소생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번 영을 불렀으면 그것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보상한다든지, 아니면 그것에 따라 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세 사람, 네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영적 가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으면 천법에 걸린다. 그러므로 기적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런 일도 있다구요. 평양에 어느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영계로부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통일교회에 들어왔다. 그 할머니는 많은 기적을 행했다. 환자들을 고치고 서지 못하는 사람을 서게 했다. 이 소문이 평양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1년, 2년, 수년이 지나 어느 단계에 들어서자 하나님은 ‘그런 기도는 이제 그만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후 어느날 한 여자분이 찾아왔다. 유복한 집안의 독자를 둔 어머니였다. 그 아들이 지금 폐병에 걸려 시간을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무슨 일이라도 다하겠으니 아무쪼록 이 아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히 부탁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어보니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고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백일 기도를 했다. 몸을 청결히 하고 성수를 떠 놓고 기도했다. 99일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백일째 되는 날 새벽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정말로 그 아이를 살리고 싶은가? ’ 하는 것이었다. ‘예, 아무쪼록 고쳐 주십시오’ 했다. 그랬더니 다시 ‘그러면 내가 하는 일에 불평하지 않겠는가? ’‘예’ 하고 대답하니 컵에 담아져 있던 물이 솟기 시작했다. 물이 솟아 올랐다. 그러더니 ‘이 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 아들에게 가지고 가 먹여라. 그러면 걷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명령을 받고 그 물을 가지고 가 먹였다. 그때가 새벽 3시쯤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일어나니 자신의 장남이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 배가 아파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 30분도 안 되어 죽어 버렸다. 그때, 할머니는 자기 아들이 그 청년을 대신해 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할머니는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할머니에게 미리 알려주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아들을 그 청년 대신 데려간다는 사실을. 그 할머니가 정신이 반쯤 나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때 어느 십자로에서 뚜렷하게 자기 아들이 앞에 나타나서 ‘어머니 어디 가세요. 어머니는 그 청년을 위해 기도해 주고 제가 대신 희생되었다고 하시고는 왜 정신을 흐트러 뜨리고 계십니까? 저는 지상에서 아무리 인간으로서 선한 일을 하고 하늘을 위해 봉사했다 할지라도 도저히 갈 수 없는, 아주 좋은 곳에 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좋은 곳에 갔느냐 하면 자기가 가야 할 곳과 청년이 가야 할 곳을 합한 곳에 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목적을 완성한 곳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매일 울기만 하니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보다 더 큰 십자가는 없어요.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그렇게 응석받이로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아! 내가 잘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들이 다시 말하길 ‘어머니가 살린 그 청년을 나 이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영계에서 발전하는데 커다란 지장을 가져올 것이니 그를 나보다 더 사랑하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천적 사명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갖고 기도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특별한 기적을 행하려면 특별한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도 흔히 당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을 용서해 주고 싶지만 천법 앞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데 그래도 인정으로써 용서해 주면 걸린다. 그런 일이 있다.

문:선생님 마태복음 19장 30절에 있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의 뜻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사람이 있다. 지금 기독교가 그렇게 되어 있다. 유명한 목사들이 먼저 된 사람이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먼저 들어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귀찮은 자이다. 여러분은 수련을 받음과 동시에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문:우리에게는 하나님도 사탄도 간섭할 수 없는 자유가 있다고 하는 데요. 그렇다면 어떤 때에 우리들은 자기의식권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필연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지요?

자기의식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편을 중심삼은 자기의식과 육심을 중심삼은 자기의식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육심을 중심할 때는 결연히 자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삼은 자기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지켜야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문:본심과 일치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입니까?

그렇다 양심은 변한다. 본심은 변하지 않지만 양심은 여러 가지의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문:본심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까?

기도 말이에요? 육심에 제재를 가하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기도는 타락한 인간의 책임이며 타락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필요없다.

자, 12시가 되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얘기했더니 혀가 무거워진 느낌이다. 여러분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으면 선생님은 옛날로 돌아간다. 정신이 핑 돈다.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선생님은 심각해지기 때문에 여러분의 얼굴이 저 멀리 가버린다. 그러니 멀리 간 실체를 끌고 와서 정상으로 보아야 하므로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 놓고는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때가 왔으니까 제한하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어떤 사람은 여기를 보고 있어도 정신은 나가 있다. 머리가 이러한 실체로 보인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그런 사람에게 얘기를 하는 것은 겨울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입을 다물고 있다.

전반적으로 각 나라를 볼 때에 뭐니뭐니해도 미국의 국민성이, 선의 기준이 높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수많은 선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축복을 받은 것이다.

노래나 한곡 부를까? 전체적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데에는 노래하는 것이 좋다. (고추 잠자리를 전원이 합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