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30 to 14-345: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
1965.01.28 (목), 일본 동경교회

14-330
하나님의 목적
우리들이 이 지상에 태어난 그날부터, 자기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들 자신에게 목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면 민족, 혹은 인류면 인류,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가 없다. 창조되어진 사람이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도 목적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14-330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적
그 목적이란 창조이상의 목적이며, 만물이 최고로 소원하는 목적이며, 또 인간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최상의 목적임이 틀림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목적,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을 중심으로 한 목적, 민족, 국가, 혹은 세계 전체에 있어서는 그 각각의 목적이 있음이 틀림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개인에 있어서, 혹은 역사상의 현자, 예언자,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속 깊이 원하였던 그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실은 아직까지 역사상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은 여러가지 환경에 싸여있지만 그 목적의 세계에서 생활한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셈이다. 인간이 그와 같은 입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을 중심으로 하고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도 그 목적하는 땅, 혹은 세계를 성취하여 영광의 보좌에 계신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하나의 목적을 중심하고 살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에, 선한 인간에 있어서도 자기의 자녀를 대하여서나 아랫 사람을 대하여 선한 목적에 맞추어 살도록 가르쳐 왔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원해 오고 현자들이 소일해 온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목적하는 세계에 대한 소원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인간 자신도 목적하는 바의 소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목적하는 바의 소원이 이루어진 개인과 가정과 혹은 씨족, 민족, 국가, 세계를 기다리는 하나님은 탕감복귀원리를 통하여 복귀라고 하는 비참한 역사의 노정을 걷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들은 절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목적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 책임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개개인에게도 있다.

인간이 그러한 책임이 있는 위치에 서 있으면, 인간을 위하여 지어진 만물도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늘도 땅도 하나님도 우리들 모든 인간이 합체화하여 하나가 되어서 이 소원하는 목적의 세계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이 당면한 중대 문제인 것이다.

무엇이든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우리들을 대해서 그 자신은 참아버지로 우리들은 참자녀로 서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살과 피가, 즉 혈통이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 심정을 중심으로 혈통적인 일체화를 이룰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타락의 근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우리들은 무엇인지 모르게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기로서는 밝힐 수 없는 무엇인가가 어떤 커다란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우리들을 자극하고 혹은 우리들을 유도하는 것을 자주 체험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된 인연을 타락으로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1의 조건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한 혈통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14-332
인류 공통의 소원
참된 인연을 맺는 것은 개인의 소원이요,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도 귀한 소원이요, 통일교회의 형제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소원인 것이다. 그러기에 목적을 사랑하고 목적의 세계를 마음 깊이 흠모한다고 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 자신의 내심에 있어서도 육신에 있어서도 참된 인연에 대해서 아무리 사탄의 힘이 셀지라도 이것을 복귀하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믿는다. 나는 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하는 내 일신의 모든 것을 사탄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 불변한 인연, 절대적인 인연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이 목적의 세계를 만들 때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인연을 기준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그 목적이 남아 있고, 그 인연이 남아 있으므로 참된 인연을 흠모하여 진리의 길을 혹은 신앙의 길을 찾아가는 자는 언젠가는 천주의 큰 원인에 들어가 목적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자연의 법칙과 같아서 언젠가는 그 인연된 목적의 땅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서 하나의 세계를 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이 천주를 창조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인연이라 하는 것도 절대적인 목적을 떠받치는 인연이므로 그 인연을 흠모하는 자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절대적인 목적의 길에 세워진다고 하는 기준이 있으니까 그것을 역사를 통하여 연결짓기 위해서 종교라는 이름 밑에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시면서 인연을 중심으로 하고 우리들을 인도해 온 것이다. 그 까닭으로 그 목적관념을 충실하게 하여 완성케 하기 위해서는 불변한 하나님의 관념에 인간이 서는 것이 중대한 요건인 것이다.

또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서 태어난 사람에게 있어서 누가 부정할지라도 부정되지 않는 부자(父子)의 인연이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자식으로서 태어났으면 거기에는 형제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종적으로는 부모가 있고 횡적으로는 형제가 있다. 생활을 무대로 한 환경에 있어서 부모를 중심으로 한 형제관계를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는 그 인간만이 아니고 횡적관계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 목적을 이루는 곳까지 가려면 자기 개인에 있어서도 그 인연과 관계를 맺고 생활환경 위에 서서 소원이라고 하는 것을 두 요건(인연과 관계) 이외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 가운데 인연과 관계와 소원을 가지고 횡적으로 움직이는 상태에서, 혹은 수수작용을 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목적하는 어떤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으로 하나님은 목적의 세계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변함없는 인연과 변함없는 관계와 변함없는 소원을 가지고 우리들 인류를 찾아오시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4-333
독립성·융합성·통일성과 하나님
어떤 일개인에 대해서 ‘당신은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대체로 사람들은 누구라도 심정의 문제를 원한다고 할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에는 심정을 기준으로 하여 환경이라고 하는 무대에서 관계를 맺는 일, 즉 생활무대에 있어서 사정 문제를 원한다고 할 것이다. 또 그 다음에는 소원, 혹은 희망을 원한다고 할 것이다.

그것들을 다시 더욱 분석해 들어가면 독립성이 있고 융합성이 있고 통일성이 있다. 자기 일개인을 귀한 곳에 세우려는 독립성, 이것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하면, 심정관계, 다시 말하면 인간의 관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이상을 대표한 인간이 절대적인 대상의 위치에 있는 자기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느끼는 것이 이른바 독립성이다. 이 독립성은 종적으로는 독립성을 가지고 횡적으로는 융합하는 것이다.

어떤 완전하고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흠모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속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즉, 완전한 이념, 완전한 관계, 완전한 소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그 모든 요건을 완전히 우리 개인의 심정에 있어서, 혹은 사정에 있어서, 혹은 소원에 있어서, 혹은 희망에 있어서 이것을 체험한다면, 자연과 절대적인 독립성, 절대적인 융합성, 절대적인 통일성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하나님의 목적은 한가지요 그 인연도 한가지요 그 관계도 한가지요 그 소원도 한가지다. 그 기대 위에서 시작된 우리들 인간의 시조가 불변하는 인연을 중심으로 한 불변의 심정과 불변의 사정과 불변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불변한 독립성, 불변한 융합성, 불변한 통일성을 어느 것 하나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어떠한 곳에 있어서도 주장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인연도, 관계도, 소원도, 심정도, 사정도, 혹은 희망도 우리가 주장하는 독립성도, 융합성도, 통일성도 다 불완전한 위치에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 까닭으로 하나님 자신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독립성, 절대적인 융합성, 절대적인 통일성에 의해서 하나의 목적은 달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 중심의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심정에 있어서도 사정에 있어서도 소원에 있어서도 하나님 자신의 요건 전부를 만물 전부와 함께 가질 것이었으나 우리들은 타락의 자손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심정, 사정, 소원, 우리의 생활, 시대, 환경, 세계를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이 지금 함께 생활하고 있는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들이 맺고 있는 사정이라든가 심정이라든가 혹은 소원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참된 것이 아니다. 더럽혀진 것이다. 그것은 종말에 있어서 심판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인연 관계 소원에 있어서 타락의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이고 아무리 독립성을 주장하고, 융합성 통일성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탄세계에 있어서의 성격인 것이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속성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의 선조 혹은 예언자, 현자, 의인들이 이 세상에 와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선의 길을 더듬어 선의 생애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되고 인류 공동의 선한 평화의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주장하였지만, 근본적인 출발기원을 바로잡고 그 근원의 잘못된 것을 고쳐야 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한 시대의 현상이 조금쯤 선에 향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과거의 선조였던 것이다.

14-335
하나님이 바라시는 종교인
하나님은 그와 같은 것을 원하고 계셨는가? 더욱 더욱 선한 근원의 목적을 지지할 수 있는 선한 인연이라든가 관계라든가 소원을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찾아 나오셨다. 그리고 선한 하나님의 인연에 설수 있는 사람을 세워서 선한 관계를 만들고, 선한 소원을 통한 목적의 세계, 목적관념을 세우려고 하시는 간절한 마음을 지금까지 품고 오셨지만, 우리 조상은 그것을 전연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목적의 불변한 기준을 인간에 의해서 세우려고 해왔던 것이다. 그 속에서 역사과정에 있어서 인류사회를 하나님의 수고를 터로 한 비참한 길을 거치시면서 정화하여 오셨다고 하는 그 노고에 있어서 하나님이 지킬 수 있는 인간의 깊은 면도 있으나, 그러한 면만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다. 그 인간을 중심한 생활무대의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선한 인연의 한 점을 더듬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 혹은 세계에 대해서 선한 관계를 맺어야 할 사명을 가진 것이 역사적 현자, 성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그들은 사회에 있어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또 현실의 생활무대에 있어서 선한 목적을 달할 수 있는 강렬한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종교관은 다 사회를 도피하고 산이나 혹은 인간이 없는 곳을 찾아서 은둔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러한 생활태도에서는 이 전체적 목적의 중심인 창조이상의 목적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이 모이는 생활환경 가운데에서 자기의 행동에 의해서 소원을 이루고 그리고 목적관념을 자기의 생활기준의 가치로 세워 가지고 불변한 승리자로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종교인이고 하나님이 지상에 보내신 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점에 있어서 그것을 이루고 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 까닭으로 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고, 얼마나 수고를 해오셨던가? 그 까닭에 세계의 종말의 첨단에서 우리들은 죄악의 홍수에 둘러싸여 흐르고 있는 세계의 운세를 가로막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목적을 중심으로 한 선한 인간을 찾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고 그 인연을 중심으로 한 선한 관계를 만들고, 이러한 악도 이를 쳐부술 수 없는 소원과 목적을 가지고 생활권내에 돌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지금까지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찾아오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여기에 있어서 하나님은 현세에서 승리할 수 있는 종교인, 즉 타락생활 가운데서 싸워 승리를 얻음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목적을 이 생활무대에 끌어들여 하나님 자신의 융합성과 독립성과 통일성을 대신하여 세울 수 있는 일개인을 아직도 구하고 계신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까닭으로 이 현세는 참된 인연과 참된 관계와 참된 소원의 곳에 서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을 마음 가운데에 확실히 분별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참된 관계를 자기를 중심으로 하고 맺어, 참된 소원을 자기에 의해서 세계가 목적하는 방향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는 것이다. 이러한 불변한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소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이 언제라도 중심의 힘으로 나를 자극한다고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한 체험을 하는 생활무대에 있어서 횡적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거기에서 참된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다. 체험하여 보면 거기에 전혀 알지 못했던 깊은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더듬을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막연한 지상천국, 막연한 영적 천국을 가르쳐 왔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영적 천국이 아니고 현세 생활에 따르는 천국인 것이다. 그 천국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원을 맞추는 입장에 선 자기의 가치가 하나님 앞에 대상의 가치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소원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자기 자신에서 체험할 수 있다.

14-337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의 생활
이것이 6천년 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해 나온 참자녀인 것이다. 그와 같이 생각하면 현세에 있어서 주위를 볼 때에 하나님이 즐기실 환경은 아닌 것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바라고 계시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때가 오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거니와 지금은 참된 소원에 반발하고 정면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에 하나님을 종(縱)으로 한 생활무대를 만들려고 한다면, 외적으로는 선한 하나님의 힘에 의한 용기를 가지고 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용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그 범위가 적으면 적을수록 외적 고통이나 외적 반발력은 반비례하여 증대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생활을 유지해 가는 데는 그 외적인 모든 조건을 버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람이 생활의 내용을 바로하고 환경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입장에 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영원히 모실 수 있다는 입장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선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외적인 악조건과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면, 그 생활권내에 있어서 한 때는 하나님 자신에게 접할 수가 있지만, 생활권내 모든 것에 하나님이 관여하실 수는 없다. 하루의 생활권내에는 하나님이 접하실 수가 있지만 수십 년의 생애에는 관여하실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고민이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의 고민인 것이다. 생애에 하나님이 관여하실 수 있다고 하는 환경을 부를 수가 없어서 아직까지 악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이러한 관계를 초월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부터 또 도망쳐 가서도 안 된다. 어떻게 하여도 우리들의 힘을 합하여서 이 관계를, 이 판도를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당면한 책임인 것이다.

자기의 가정 혹은 씨족, 민족, 혹은 국민에 대해서 자유스럽지 못한 환경 가운데서 구원받는 판도에 서 있는 신자라는 것은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체험하고 또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충효의 길을 걷고 우리들의 후손에게 그것을 유업으로 남겨 준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그러한 괴로운 관계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14-338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지금까지도 그러한 입장에서 자녀를 울린 역사가 반복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현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모든 조건과 책임을 가지고, 이른바 95%의 책임을 가지고 지상을 행복의 세계로 인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환경을 만들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자녀의 수를 늘이고, 그런 자리에 서서 하나님이 행하시면 거기에 복종하는 무리를 만들어 가자는 섭리를 해오셨다.

그것은 중심적인 부분으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외적인 부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복귀노정을 보더라도 구약시대에는 외적으로 제물을 하나님 앞에 세워 인간을 거기에 접하게 한다고 하는 조건을 터로 하여 기나긴 4천년의 역사를 지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고부터는 이 외적 조건을 터로하여 내적 조건을 세워 하나님에게 바치고자 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제1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참이신 예수님 앞에 내적 외적인 조건을 세워 바치는 것같이 복종하지 않았던 까닭에 예수님은 괴로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외적 조건을 세워 가지고 개척하면서 싸워 오셨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에 있어서는 2대 진영으로 갈라져 그 중심으로서 두사상이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이르는 관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목적의 세계가 우리 자녀에게 걸려 있다고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2대 진영이 세계적으로 구원받아 목적의 세계에 멀지 않아 다다른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한 세계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쓰라린 가시밭 길을 더듬어 오셨다고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은 2천년 전 그 시대에 있어서 예수님을 통해서 유대교 신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합체화하고 예수님을 내외 함께 하나님에게 바치는 입장에 서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외적인 사탄세계에 대해서 여하한 고통이 있고 비참한 자리에 서더라도, 그것을 타고 넘는 심정을 가지고 지상의 소원이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대로 본래의 인간과의 관계와 소원을 통한 입장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섰더라면 그때부터 예수님은 이상권내에 들어가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적 환경을 지켜 주는 참된 한 사람이, 참된 하나의 가정이, 참된 하나의 민족과 국민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적인 제2의 문제를 수습하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외적 책임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싸웠고 그리고 승리의 깃점을 세운 것이 영적 구원이었다.

14-339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사람
여기까지 제2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는 외적 환경이 주어져서 내적 환경을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으로 터전을 정비해 가지고 거기에 기반을 만들게 되었었다. 거기에 약속한 재림주를 맞으려는 내적 기반이 있었으면 하나님은 거기서 그 한 일을 중심으로 하고 세계적 승리의 천국 혹은 승리의 목적의 세계를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영적섭리를 통해서 해오신 바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세에 있어서 10억에 가까운 수많은 크리스찬이 있으나 내외 아울러 승리의 기반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절대적 목적을 향한 그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에 부합하는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참된 크리스찬이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하고 계시는 사람이 없는 이 세계에 있어서 정말 하나님의 참아들로서 서려면, 현세에 있어서는 우주적인 십자가를 앞에 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인류 전부가 하나님의 심정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개인 혹은 가정 혹은 단체를 맞을 것 같으면 문제없지만, 역으로 반발하고 배반한다고 하는 입장에 설 것 같으면 지금 하나의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세의 모든 것이 우리들을 대적하는 최후의 사탄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형제들은 1억의 백성을 사랑하고 일본 땅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 심정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관계를 사랑하고 그 인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일본을 맡길 수 있는 참된 개인은 누구일 것인가? 문제는 그것이다. 그 가정은 어디에 있는가? 또 그 단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러한 중대한 요건을 앞에 하고 모인 것이 우리 통일교회다.

심장의 고동은 시간을 틀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 혜택에 대해서 우리들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은 활동한다. 우리들은 미래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참된 소원이고 참된 움직임인 것이다. 참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억의 운명을 담당한 일본의 형제들은 이러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겁낼 것은 없는 것이다. 달리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이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인연 자체가, 관계 자체가, 소원 자체가,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세계적 혁명이라고 하는 명제가 말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교의 개혁은 있었고, 정치의 개혁은 있었고, 혹은 어떤 사정을 전환시킬 수 있는 혁명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혁명을 하고 어떠한 변화를 초래했다 하더라도 그 권내의 변화, 그 권내의 개혁, 그 권내를 바로잡는데 그쳤었다. 그 권내를 초월하는 혁명이 어디에 있었던가.

세계적 변화를 초래하고 하나님 자신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상에서 찾으시려는 그 중심에 서서, 그 혁명과 그 변혁을 지도할 수 있는 그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이 지상에 있었던가? 아직까지 없었다.

하나님은 한 때에 있어서, 하나의 환경에 있어서, 이른바 하나의 지점에 있어서 승리한 한 사람을 세워서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전체의 심정을 지고 세계적인 혁명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구해 나오신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진리의 세계는 생사의 세계인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떠한 방법을 통하여 그 장면 장면의 입장을 타고 넘게 하려고 하신다. 만일 인류가 그것을 넘을 수가 없으면 그 환경을 파괴하고 전인류를 파괴하고 있는 관계를 타개해 나오신 것이다.

그러나 참의 세계에 대한 승리자가 지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목적으로 하는 이상천국은 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듣게 될 때, 그 목적을 실현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용이한 것이 아니다. 어떤 때 선생님은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 ‘선한 하나님의 목적, 선한 하나님의 인격, 그 목적에 합당한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무대로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삼고 만물을 대하고 있는 참된 하나님의 구하시는 창조본연의 사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과거에 있었습니까? 현재에 있습니까? ‘ ‘없다’ ‘미래에 있겠습니까?'’나는 모른다……’

하나님 자신도 모르신다. 그것은 책임분담의 5%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비참한 복귀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여하한 권력을 가지고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사정에 관해서 하나님이 아무리 눈물을 흘리셔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중대한 기준을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이 타락론에 의해서 배운 바 대로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인간이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이니까 그 신이 하려고만 든다면 못하실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는 많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 슬픔의 경지에 빠뜨려진 순간의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표현해 낼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그 슬픔의 경지, 그 비참한 경지, 그러한 경지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경지를 넘지 않으면 이 생사의 국경이라고 할까, 아니면 성벽이라 할까 그것을 넘을 수가 없다.

14-342
선생님의 소원과 일본 식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애를 통하여 싸워 온 것은 개인적인 성벽과 가정적인 성벽과 민족과 국가적인 성벽, 그리고 세계의 성벽, 이것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생애의 목적으로 하고 싸우고 있는 중인 것이다.

지금 선생님은 45세를 넘기고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청년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 통일교회의 멤버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1억을 대신하여 거기에 반비례하는 고통의 길을 걷는다. 십자가는 여러분들의 어깨에 지워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입장인 것이다.

선생님은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여러분의 수고를 칭찬하고 그리고 눈물로써 훌륭하다고 하고 싶지만 아직은 안 된다. 선생님으로서 한마디 하라고 한다면, 싸워서 지쳐 있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길은 세계적인 성벽을 쌓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피와 살로 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 대해서 말하거니와 십자가를 지라. 죽는 자리에 나아가라. 하나님이 투지의 심정을 가진 용사를 보내어 때리고 또 때려도 끝나지 않을 사탄세계인 것이다. 그 정도의 심정이 없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이 적지에 좋은 것을 남기고 가겠는가?

6천년의 원수인 것이다. 인류의 원수인 사탄을 이 힘을 준 손을 가지고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우리들이 싸워온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절대의 충효성, 우리들이 남긴 공적에 대해서 만물 혹은 모든 물건이 그것을 공인하고 있다. 그 공인의 가치는 어떠한 사탄이라도 참소할 수 없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싸운다고 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일본에 그러한 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일본을 버릴지라도 그 한 사람을 택하겠다고 하실 것이다. 세계에 그러한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세계를 버리고서라도 그 한 사람을 택하시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서 선생님은 미국으로 가지만, 이 일본 땅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선생님은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심정에 합당한 참을 가진 이 선생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맞이하는 심정을 하나님이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아직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십자가의 길을 남기고 있다. 이 십자가의 길에 있어서 형제들이 맞이하는 마음은 쇠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세계, 희망의 하나의 목적의 세계, 하나님께서 이상하시는 목적의 땅을 건설하기까지 눈물로써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는데는 탕감도 있으리라. 가시밭길도 있으리라. 혹은 벼랑길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한 개의 포탄으로서 적중에 돌입해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간 뒤에 누가 이 심정을 이어서 해 줄 것인가고 묻는 하나님을 자극시킬 수 있는 용맹심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인생 노정에 있어서 승리자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에 부응하고 있는가, 그 한가운데 서 있는가, 그 목적을 향한 전생활인가. 자기 자신을 분석할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소원의 세계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밖에 없는 것이다. 의미 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희망, 하나님에 대한 사정과 심정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독립성과 융합성 통일성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되면 그 사람은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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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 가까운 사람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들에게 말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가지고 있는 것은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것이다. 깊은 심정에 접할수록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부족인 것이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찾아진 한 사람 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살고 있는 형제들인 것이다. 이것은 천주의 천운의 모든 책임을 연하여 맺어진 인연이고, 관계이고, 희망의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자기 이상으로 형제의 가치를 인정하고, 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은 하나님에게 가까운 사람이다. 개인의 감정으로 그는 이렇다 저렇다, 저 형제의 성질은 이렇다, 그러니까 그와는 하등의 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는 등의 말을 해서는 못 쓴다. 30억의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고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하고 이 지상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행동한 그 일 자체가 귀한 것이다. 그 운명이 귀하고, 그 관계가 귀하고, 그 미래에의 마음이 귀하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결점이나 부족함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소원에 대해서 눈물 흘렸다고 한다면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형제 가운데 하늘에 대해서 자기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조건없이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생활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인간이 귀한 것이다. 우리들의 관계가 귀한 것이다. 우리들의 소원이 귀한 것이다. 그것 자체가 귀하다는 것이다. 그 인간이 개인보다도 가정에 대해서, 가정보다도 민족에 대해서, 더 범위를 넓히면 넓힐수록 그 가치는 귀한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희망, 끊임없는 관계, 끊임없는 목적을 가진 생활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 무조건 섬기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어떠한 심판이나 어떠한 죄악의 세계, 어떠한 하나님의 성별의 때가 오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 하나님 자신이 그러한 생활을 하고 계신다.

우리들 자신은 죄의 자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을 부르시어 바로잡고 우리가 그 죄보다도 더 큰 목적관념을 가지고 대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제까지의 섭리노정 가운데 하나님 자신의 생활태도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여기에서 며칠이나 묵게 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일본을 떠난 뒤에도 여러분이 일체가 되기를 바란다. 귀한 인연에 의해서 이 일본 땅에 출생하여 우리들의 하나님이 인정한 선한 혈통을 통해서 우리들은 생명을 받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계신 위치에서 목적과 희망과 소원을 가지고 이 지상에 출생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선조에게 무엇인가 기여하는 것이고, 또 우리들이 신앙하는 곳에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의 결점을 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 더욱 큰 인연, 관계, 그리고 소원, 목적관 밑에 귀한 걸음을 옮기면서 일본 땅의 개척을 위해 선두에 서서 낙심함이 없이, 피로함을 모르고,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생각지 않고 세계를 구하는 역사적이고 천주적인 그 혁명의 일원으로서 선 자에게는 이러한 십자가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진실인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의 길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되면 일본의 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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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복귀의 용사가 되라
이제 결론을 말하자. 목적을 앞에 하고 세계의 맨 끝을 넘어가는 천주복귀의 용사로서 천주복귀의 결의를 하나님 앞에 바치고 천지창조의 때 이상의 가치 있는 자로서 ‘네가 사랑하는 자녀요 사랑하는 충신이다’라고 모든 천주 만물 앞에 세워 하나님이 찬미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천주복귀라고 하는 것을 참말로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천주복귀의 천이란 어떠한 천(天), 주란 어떠한 주(宙), 복귀란 어떠한 복귀, 우리의 그 의식에 있어 느낄 수 있는 복귀관념일 것인가? 대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일 때문에 지구는 이러한 행정(行程)을 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번 명령을 떨구면 무한히 공전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하나님은 절대적인 신이신 것이다.

이 무한한 대우주를 마음 가운데 생각해 볼 때, 1초간에 30만km의 속도로 달리는 빛이 일년 동안 가는 그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1광년이라고 한다. 그렇게 빠른 빛이 60억년 이상의 세월을 걸려서도 아직 지상에 닿지 않은 빛이 있을 정도로 우주는 광대한 것이다. 그 무한한 우주를 생각해 보자. 그 우주는 형언할 수 없이 큰 것이다. 모든 것이 인연의 밑에서 무한한 관계를 가지고 어떤 끊을 수 없는 희망 가운데서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현재는 물론, 과거는 물론, 이 대우주를 움직이는 하나님 자체를 생각할 때, 참으로 참으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어서 아버지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정말로 눈물을 가지고 부를 때에 ‘오, 아무개여! 나는 너의 참아버지다. 참어버이다’라고 말하고, 자기를 안아 주실 참아버지가 있다면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그 이상의 영광, 그 이상의 안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분을 우리는 아버지라 하고 그분으로부터 우리들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