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4: 아버지란 어떠한 아버지인가

아버지란 어떠한 아버지인가
1964.10.25 (일), 한국 구진봉 성지(서울 북악산)

14-204
아버지란 어떠한 아버지인가
[말씀 요지]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 목적하셨던 소망의 날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타락한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은 그 소망의 날을 소원하면 소원할수록 더욱 큰 것이다.

타락의 장본인이 인간인 연고로 인간은 그 고통과 슬픔을 마땅히 당해야 할 것이로되, 하나님은 그로 인해 인간이 당한 몇 갑절의 슬픔의 길을 걸으며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오셨다.

인간 전체가 이 전체적인 한을 풀지 않으면 하나님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간 대신 해방의 길을 개척해 나오셨다. 우리 대신 일선에서 싸움을 맡아 오신 것이다.

복귀도상에서의 싸움은 승리하는 것으로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승리는 개인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에까지 연하여져야 한다.

6천년의 역사는 잃어버린 아담가정 하나를 찾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는 가인과 아벨의 두 세계로 갈라져 있다. 하나님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둘로 갈라 놓고 섭리하고자 하신다. 이 두 세계를 일치시키는 기준을 확정짓기 위해 오신 분이 메시아였다.

인간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가인편의 3분의 2는 사탄 편에 속해 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세계형은 사탄편적 세계와 가인편적 세계, 아벨편적 세계의 세가지 형이 있다.

아벨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오신 분이 메시아이다.

가인의 세계가 끝날 때가 되었으니 가인적인 편을 대표하여 제단을 만들어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여기에 가인편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아벨적인 제단이 나와야 한다.

아벨의 입장에서 오늘에서 내일로, 이달에서 내달로, 금년에서 내년으로 제단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생겨진 무리가 바로 통일의 무리이다. 그러니 가인적 세계와 아벨적 세계를 수습하여 하늘편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한 나라를 찾고 계신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통치하려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은 산 제물로서 하나님의 이상을 이 땅 위에 이루셨을 것이다.

메시아는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할 분이요,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승리해야 할 분이다.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승리하였다면 그 개인에게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고, 가정적인 승리를 선포하였다면 그 가정에 사탄이 침범하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이 승리적인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몰림을 받은 것은 그가 설 수 있는 가인적인 제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반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따라가다가는 그들처럼 유리고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기독교의 운명이다.

가인의 제물을 받아 수습해야 하는 것이 아벨이며, 아벨이 수습한 그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신다.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아벨이 다시 와야 한다. 가인적인 제단은 있으나 아직까지 아벨적인 제단이 없기 때문에 이 제단을 쌓기 위해 다시 와야 한다.

가인이 제물 실수한 것을 세계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가인적인 대표자가 와야 한다.

때는 되었으니 아벨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부활을 부르짖고 나와야 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승리한 아벨을 부르고 있다.

세상에서 영광과 영화를 개인의 것으로 누리는 자는 망한다. 그 영광과 영화는 개인 것이 아니라 하늘 것이니 하늘 것으로 돌리지 않으면 망한다.

역사는 아벨적인 승리의 부활체, 즉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승리의 부활체를 부르고 있다. 그분이 메시아이다.

오시는 주님은 역사적인 슬픔의 대왕이며 공의의 심판주다. 불의를 심판하고 선을 옹호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심판할 수 있는 아벨을 부르고 계신다. 그것은 가인을 심판하여 죄를 탕감하게 하고 해방시켜 주기 위함이다.

여기에 있는 이 스승이 죽더라도 이 스승이 이루려 했던 뜻은 남아져야 한다. 우리가 죽더라도 이 뜻은 남아져야 한다.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삼천만이 희생되어도 하나님은 크게 개의하시지 않는다.

너와 나는 원수다 그러나 이념을 중심삼고는 동지다.

잠자리에 들 적마다 여러분은 ‘이 손길이 삼천만과 연하고 30억 인류와 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신념에 잠겨야 한다. 그러한 자리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

우리 자신을 폭발시키자. 히말라야산맥의 에베레스트산 보다 더 높은 탑을 세우자. 우리가 잠잠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한을 푸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순식간에 해치우자.

오늘날 민주세계도 공산세계도 기울어져 가고 있다. 하나님은 가인을 구속(救贖)시켜 줄 아벨을 찾고 계신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선민사상을 넘어 천민사상을 가져야 한다. 선민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민족이나 천민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메시아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민족이다. 또한 선민은 사탄의 주권이 남아 있는 민족이나 천민은 사탄을 굴복시켜 가인을 구속시킬 수 있는 민족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원수를 갚을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6천년의 역사적인 한을 풀기 위하여 한반도에 뿌리를 박고 대해(大海)를 헤쳐가려 하신다. 삼천만 민족을 이끌고 나에게 줄을 매어 망망한 대해에 나가 ‘폭풍아, 불어 보아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라고 할 수 있는 신념에 불타 있어야 한다.

축복가정은 가정의 부모로서 그칠 것이 아니라 최하 종족과 민족의 부모는 되어야 한다. 신념을 갖고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면 화를 받는다. 예수님은 이념으로써 하늘과 땅을 품었다.

선이란 나를 잊어버리고 더 큰 것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를 잊어버리고 자기 가정을 사랑하면 사회의 심판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위정자가 나라보다 자기 가정을 더 사랑하면 나라의 심판을 받게 된다. 책임진 사람은 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생님은 멀지 않아 이 나라를 떠날 지 모른다. 과거에 일본에 갈 때 선생님은 ‘내 조국아, 사랑하는 삼천만 민족아 갔다 오마’ 하며 광복의 한을 품고 울었다.

나는 아직까지 나를 낳아준 부모를 한 번도 사랑해 보지 못했다. 여러분들에게 역사적인 유업을 상속해 주려니 여러분들이 고생을 해야 되는 것이다.

복귀시대는 성도의 시대라 했다. 그러나 잠자코 있는 여러분들을 믿고 맡겼다가는 하늘이 망하겠으니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잠을 자고 있어도 뜻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때는 왔나니 우리는 힘써 일해야 한다.

40년을 넘어 7년 고비를 바라보고 나가는 이 마당에 있어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뜻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은 잔칫날에 떡 먹을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일꾼을, 잔치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신다.

추워지면 나뭇잎은 다 떨어진다. 통일교회는 나무의 가지가 되자. 기성 교회는 서리를 맞고 떨어질 나뭇잎이다.

하나님은 땅을 책임질 사람을 부르고 있나니, 우리는 구하는 무리가 되든지 제물이 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하나님은 6천년 싸움의 마지막인 이때에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아버지 앞에 어떠하였나? 어떠한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은 이중 어디에라도 속해야 한다. 우리는 책임진 자리에서 하늘을 믿고 나가야 된다. 앞으로 오실 그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이며, 후손에게는 무엇을 남길 것이냐? 그럴 무엇이 없으면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이다. 충신을 찾기 위해 6천년간을 수고해 오신분이다. 오늘의 통일교회는 불쌍하다. 이 불쌍함이 불쌍함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불쌍하지 않다.

우리는 이 민족과 이 세계를 품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한다. 우리는 전진하는 아버지를 뒤에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며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 제가 맡은 전선은 이상없습니다. 안심하시옵소서’ 해야 한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역사적인 책임을 진 내 뒤를 따라오시며 위로 받으시게 될 때 천국은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늘의 효자이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민족이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당하자. 동조 동화(同調同和)하여 나가자.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어떠한 입장에서 모실 것인가? 아버지께서 내 뒤를 따라오시며 눈물 지으실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한때다. 백년을 산다 해도 3만 6천 5백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는 동안 하나님이 남기신 심정의 터전 앞에 보답하는 우리가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