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7 to 14-201: 본향을 찾아 세우자

본향을 찾아 세우자
1964.10.07 (수), 한국 수원교회

14-197
본향을 찾아 세우자
[말씀 요지]

인간들에게는 본향 땅이 없기 때문에 참다운 형제, 참다운 가정,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가 없었고 기쁜 날이 없었다. 여러분은 모두가 본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그 본향을 찾기 위함이다.

14-197
양심의 최고 소망과 목적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선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악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실토하는 것이다. 이 땅은 선을 위해서 우리의 조상들이 피눈물을 흘린 땅이니 축복받아야 할 땅이다.

개척은 남이 손대지 않은 것을 새로이 시작하여 닦아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개척은 혼자서는 못 한다. 하나로 뭉쳐서 이 지구성(地球星)을 우리가 개척해야 한다. 뭉치려면 내용과 목적이 같아야 한다.

본시 인간의 심성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향하여 줄달음질 친다. 이 노래에 '정든 고향'이라 함은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깃들어 있는 곳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아버님이 가려 주신 땅이니 무한히 귀한 것이다.

현세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인간이 그러하고 여러분도 그러하다. 마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을 항해 가고 있지만 몸은 이에 따라가지 못한다. 마음과 양심이 공통으로 일해서 한 일은 누구나가 공인한다. 양심은 처참한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네 것을 더 주라’고 명령한다. 양심의 명령은 끝이 없다. 좋은 일을 하고 또 해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더 큰 일을 하라고 몸을 향해 호소한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당장 저녁거리가 없어도 집을 팔아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심은 또 무엇인가? 천지를 품고 불쌍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라고 하는 것이다. 양심은 하나님도 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장 좋은 곳에 모시고 싶어하는 것이 양심이다. 또한 양심은 하나님이 만민에게 몽땅 주는 것을 보고서야 잠잘 수 있다.

양심 있는 사람일수록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좋은 것이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다. 양심가는 하나님까지 주려고 한다. 양심의 제1조는 하나님의 소망과 사정과 사랑을 이어받는 일이다.

양심은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사랑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인하여 지옥의 맨 밑창까지 떨어졌다. 조상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30억 인류 전체가 양심을 이어받게 돼 있었으나, 타락했기에 지옥의 맨밑창까지 떨어진 것이다.

물이 틈만 있으면 새어 나가는 것과 같이 양심도 그렇다. 양심은 끝없이 주라고 한다. 주라는 것은 곧 인연을 맺으라는 것이다. 주는 자는 주체요, 받는 자는 대상이다.

양심의 최고 소망과 목적은 하나님의 소망의 세계를 이어받는 것이다. 인간 개체개체는 종말기에 있어서 하나님을 갖기를 소원한다. 양심은 천하를 통하고 그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런 양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신다.

양심의 목적은 행복을 주관하시는 주인공을 만나는 것이다. 그분을 만나지 않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양심은 그분이 소원하시고 성사하시고자 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 그분은 자유와 행복과 이상의 주인이시며 참사람이기 때문이다.

참사람이란 하늘땅보다 더 큰 것이 뭉쳐서 압축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연코 참이 폭발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땐 거짓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도(道)는 양심의 직단(直短) 거리를 축소한 것이다. 도는 큰 것일수록 하나님을 잘 소개한다.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쳐 주는 종교요, 도주(道主) 중의 최고의 도주는 가장 바른 신앙을 제시해 주는 자이다. 또한 형제의 정을 이끌어 바로 소개해 나가는 것이 참의 도이다.

기독교가 그런 점에서 볼 때, 양심의 거리에 제일 가깝고 그 모두를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종교 중의 최고라 할 수 있다.

14-199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런데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느냐? 양심이 요구하는 곳, 즉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나아가서 세계적인 양심의 승리자가 남아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양심이 바라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하나님을 인류 앞에 몽땅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메시아다. 그런데 그분 앞에 방해가 많았기에 그분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적인 유랑의 길을 걸어 나오신 것이다.

마음이 원하는 세계를 침범받지 않고 유랑의 길을 간 자가 야곱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란 승리의 명사를 얻었고 승리한 개인과 승리한 가정을 찾을 수 있었으니, 승리한 자식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을 번식해 나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공세에 하나님이 함께하려 하시었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손길을 거두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협조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죽였기에 하나님의 섭리는 이 나라를 떠나 이방에서 횡적으로 그 토대를 이루어 나왔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교다.

방랑하는 나그네의 길을 가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승리한 개인, 가정, 민족이 나올 때 이를 환영해 줄 나라가 어디 있는가? 가는 곳마다 원수다. 예수님이 양심의 승리자로서 모든 것을 주기 위해서 찾아 왔으나 민족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민족이 원수였다. 그래서 기독교가 더욱 극단의 길을 걸어 나온 것이다.

살아 생전에 로마를 정복하고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을 세워야 할 분이 예수님이었다. 그것이 이루어졌으면, 기독교는 2천년의 역사 속에서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역사적인 위인은 믿을 수 있었으되 현실로 등극한 메시아를 보지 못한 이스라엘이 원망스럽다.

통일교회는 몰림받고 뜻을 못 이룬 슬픈 예수님을 믿는 눈물의 교회이다. 십자가는 죄인의 형틀이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당시 메시아를 맞기 위해 방 한 칸, 밥 한 술, 옷 한 벌 준비한 사람이 있었는가?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황태자로서의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4천년 고난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그들을 선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소망은 자신을 잘 믿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천당이 아니다. 천당은 나중에 가는 곳이다. 하나님의 소망은 천주복귀다.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바라는 충신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한이 남아 있거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퍼부어 주십시오. 지치지 말고 죽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2천년 전 메시아가 오신 뜻은 로마를 중심삼아 세계를 통일하여 뜻 앞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그 한 날을 맞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유랑의 민족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양심의 목적이 해원되는 그날이 속히 와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룬 곳에 오게 된다. 하나님이 비참한 곳을 찾아오시겠는 가?

과학과 종교가 상관이 없다고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끝날이 온다. 끝날에는 산양과 면양을 갈라 놓는다. 면양은 주인을 알고 산양은 주인을 모른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 최고의 사탄이다.

소망하는 나라와 본향은 유랑하는 사람의 목적지다. 어느 곳에 정착하여 근거지를 삼을 것인가? 하나님의 본향 땅과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깃발을 높이 들고 나아가자. 그 일을 한국에서부터 하자는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다.

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이 일치하는 곳에 있다. 그곳이 어디겠느냐? 교파가 아니라 참사람이 있는 곳이다. 지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각각의 교파가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누가 제일이냐가 문제이다. 끝날에 있어서 제일인 하나님의 옥새를 쥐고 계신 분이 주인이다.

궁궐이나 초막이나 어디든지 예수님을 모신 곳이 천국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황태자로서, 단장되고 꽃향기 드높은, 만세에 빛날 그곳을 찾아 오신다. 예수님은 죽어서 메시아가 되었는가? 살아 있을 때는 메시아가 아니었던가 ?

개인적인 대표, 가정적인 대표, 민족적인 대표가 유랑했고 세계적인 대표가 유랑했다. 예수님이 유랑했기에 끝날에 복귀의 사명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도 유랑하게 된다.

14-201
하나님의 조국을 창건하자
한국 땅을 세계에서 가장 선한 곳으로 만들자. 통일교인들은 유랑의 무리이다. 민족적인 방랑의 시대가 지금인 것이다. 방랑인들이 정착할 곳은 소망의 본향 땅이다.

방랑자들은 먹고 자고 입는 것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이 망하지 않고 하나 둘 모여들어 수가 많아지게 되면 예수님과 하나님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시지 않겠는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런 충성을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나라의 명승지를 기쁜 얼굴로 가 보지 못했는데 어찌 원수의 나라 명승지를 가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애국심이다.

통일교인들은 맨발 벗고 나서서 조국을 창건해야 한다. 먹고 남은 것을 가지고 이 나라를 살릴 수 있겠는가? 언제 먹고, 입고, 타고 다니는 데에 정신을 쓸 수 있겠는가? 맨발로 맨손으로 개척해 나가자. 이러한 일을 하는 곳이 통일교회이다.

사나이로서 태어나 할 일이 많은데 무슨 말이 많을 수 있느냐? 통일교인들은 실용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는 충성하고 세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 주는 데는 진정으로 주어야 세계가 구원될 수 있다.

하나님은 참된 인간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다. 핍박받고 눈물 흘리는 스승의 뒤를 따르려면 같이 통곡해야 하며 굶주리거나 감옥 생활을 하는 스승을 따르려면 같이 고생해야 한다.

하나님이 4천년간 소망을 걸어 놓고 이스라엘 나라에 뜻을 이루려 하셨으나 못 이루셨으니 예수님은 서글픈 입장에서 지금까지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그 원통하고 분한 사정을 붙들고, 저들이 몰라서 그러하오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가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이방 민족을 붙들고 섭리해 오셨다. 도인들은 전세계에 이스라엘의 60만을 상징한 수만큼 널려 있다. 그들은 모두 통일교회의 예비역이다.

목숨을 걸어 놓고 신앙길을 가려면 세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탄의 시험, 선지자들의 시험, 천사의 시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무사통과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원리의 모든 내용을 알았으니 세상 사람들에게 안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안 가르쳐 주면 여러분들의 후손이 불행해진다.

예수님을 죽이기는 사탄이 하였고 살리기는 하나님이 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깊은 내용을 알고 믿어야 하는데, 오늘의 기독교는 그런 깊은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고 믿고 있으므로 맹탕이다.

하나님을 잘 믿고 모실 수 있을 때까지 유랑하자.

사람들도 자기를 환영하고 사랑하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주님도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을 위해 정성들이는 곳으로 오시고 싶어하신다. 예수님이 골고다의 길을 가셨기에 기독교는 예수님의 승리적 골고다를 터 삼아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것이 기독교 역사다.

오늘날 세계적인 골고다를 교단적으로 넘자는 곳이 통일교회이다.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 기필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자.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참이라고 한다면 자기를 위해 치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방법은 보다 큰 것을 위해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판별하면 된다.

이 땅 위에 참되게 남아지는 최후의 유랑 민족은 세계를 위해서 주고 주고 또 주고 싶어하는 민족이다. 한국의 통일교인은 만민이 바라는 본향 땅을 찾아 주기 위해서 유랑하는 민족이다.

세계 인류를 위해 심정으로 주고 행동으로 주어라. 작정한 목표와 내용에 일치되어 소망을 이룩하는 그날까지 죽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나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