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4 to 14-194: 하늘의 용사

하늘의 용사
1964.10.03 (토), 한국 대구교회

14-164
하늘의 용사
우리 통일교인들은 서로 식구라고 말하지요? 식구(食口)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한문을 풀어서 말하면 ‘밥 먹는 입’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식구란 같이 밥 먹는 형제요, 같이 밥 먹는 가족입니다. 모두 어머니 아버지요, 형제라는 거예요.

14-164
대구에서의 감회
그러면 통일교회 선생님 입장에서 얘기하는 데, 우리 식구들이 살 수 있는 만세의 낙토는 어디입니까? 살아 보니 어때요? 한국이 만세의 낙토 같습니까? 한국이 아니더라도 만세의 낙토는 어디엔가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만세의 낙토가 있으면 좋겠지요? 「예」 그런데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만들어야 됩니다」 만든다구요? 누가 만듭니까? 「우리가요」 다들 자신 있습니까? 「예」 그것은 덮어놓고 고생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만들 것이냐? ‘아름다운 산과 바다야!'거 좋지요. 한국 산천은 아름답습니다. 세계를 돌아봐도 한국만큼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나라도 드뭅니다. 어딜 가도 그림 같아요. ‘아름다운 산과 바다야! 정든 고향아’ 여러분, 정든 고향 있습니까? 「예」 그래요? 파리가 윙윙대고 냄새가 나고 그러지요? 아가씨들이 보면 다 도망갈 거예요. 그런데 그 고향이 정이 들었습니까? 농사꾼은 그 집에 정이 들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쭉 순회를 하다가 대구에 척 오게 되면 아주 인상이 다릅니다. 전라도를 가는 것과 경상도를 가는 것은 아주 느낌이 달라요. 그런데 경상도 중에서도 대구는 제일 인상에 남은 도시입니다. 도시로 말하면 경상도에서 대구가 몇 번째 도시지요? 두번째이지요? 그런데 선생님 생각으로는 첫번째 도시 같습니다. 좋아서 그렇습니다. 대구를 선생님은 좋아합니다.

‘대구’ 하면, 선생님의 뇌리에서 아주 잊혀질 수 없는 곳입니다. 대구를 생각할 적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생각이 간절합니다. 선생님이 아주 대단한 마음을 갖고, 복장을 쥐어 박으며 기도하고 결의하고 맹세하던 시절이 생각나 감회가 깊습니다. 언제든지 ‘대구’ 하게 되면 ‘여기서 한번 멋지게 싸워 가지고 하나님의 한 때를 이루어 드리자’ 하던 것이 생각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 좋아요? 「예」

그러니 여기 살고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도 한번씩 고생을 실컷 해봐야 됩니다. 대구를 대표해서, 나아가 경상북도를 대표해서 뜻 앞에 충신의 도리를 세우겠다고 하는 통일교회 신자라 할진대, 경상북도를 책임지고 찾겠다고 하는 통일교회 신자라 할진대는 전부 다 나가야 됩니다. 나가서 무슨 활동을 하느냐? 거꾸로 쳐박아 놓고 유도 같은 걸로 날려 보고 싶습니다. 왜? 앞으로 대구를 우리 뜻 가운데로 끌어 오려면 대구전체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거 혼자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젊은 사나이들,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을 동원해서 내가 기술을 부려 보려고 합니다. 명령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선생님의 과거에 분했던 마음에 비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분했던 선생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자신을 가진 사나이와 아낙네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대구에 오면서 무슨 말을 해줄까를 생각했습니다. 좋은 말을 할까, 씁쓸한 말을 할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씁쓸한 말을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그럴 수 있어요? 나쁜 말은 싫어하는데 말예요. 섭섭한 마음을 눌러 놓고 여러분을 위해서 좋은 말을 해줘야지요. 그러니 얼마나 처량합니까? 이럴 때는 ‘아!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심정을 지니셨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들도 그렇잖아요? 자기 자식이 잘못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정이 들었기 때문에 자기 분풀이를 하지 못하고 좋은 말을 하지요. 여러분도 이런 것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대구에 와서는 한마디로 욕을 하려고 딱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욕을 듣겠습니까? 들을 거예요? 여기 대구의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그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번에 1차, 2차, 3차에 걸쳐 부흥회를 했지요? 또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경북지구 본부가 제일 초라하지만, 앞으로 어느 교회보다도 더 큰 통일교회를 여기 대구에 짓겠습니다. 경북지구 양반들, 영광이지요? 「예」

대구 사람들은 뼈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몰랑몰랑해요. 그렇다고 대구 사람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뼈 없는 사람들 같은게 대구 사람들이예요. 그렇지요? 경북 사람들은 신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 충북에서부터 경남을 거쳐 대구에 척 들어오니 골목에서부터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렇지만 참았지요. 그래서 대구에 와서는 마음놓고 못 다니겠어요.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앉을 때도 가만히 앉아야 될 거예요. 왜 ? 덩치가 큰 사람이 한번 깔고 앉으면 남아나지 못할 테니까요.

14-166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분, 우리 교회 지구 중에서 여기 대구지구 본부가 제일 초라합니다. 그러면 여기 초라한 본부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초라합니까? 끌끌합니까? 말할 수 없지요. 끌끌하다고 했다가는 한마디 들을테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앞으로는 경북지구, 즉 대구교회가 제일 클 거예요. 이런 생각들 합니까? 이런 생각을 해요? 안 해요? 대답을 해요. 안 하더라도 선생님이 물으면 ‘예’ 하고 대답을 할 줄 알아야지요. 어때요.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합니다」 언제요? 언제 할 겁니까? 마음으로만 하고 있다고요? 그러면 안 됩니다. 실제로 해야지요?

우지 본부교회에 가면 훌륭하지요? 본부교회 가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본부교회는 훌륭하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훌륭한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서울에 가면 말입니다. 근처에 코딱지 같은 작은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다 언제 내가 돈을 몇천 억을 뿌려 가지고 한꺼번에 전부 집을 짓게 하고 싶습니다. 돈이 생기면 눈을 꼭 감고 그 일부터 하고 싶어요. 지금은 아주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큰집을 원치 않습니다. 그만하면 됐어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집보다는 사람입니다. 사람,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을 위해 악과 투쟁할 수 있는 사람, 뜻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경북지구 본부는 초라하지만 경상북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서울 사람들이 경상북도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보리문둥이라구요 ?

가만 보면 정치한다는 경상도 사람들은 문전까지 가서 싸움을 합니다. 한바탕 싸우다가도 문전에 가서는 단결해야 할 텐데 뿔뿔이 흩어져서 논단 말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십시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은 문전에서 사바사바 해서 들어간 다음에 싸웁니다. 그것이 경상도 사람과 다른 전라도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복귀노정에서는 경상도인들의 기질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원수들과 싸울 때는 작전계획을 세워 가지고 총공세를 취해야 되기 때문에 단결해야 됩니다. 단결해야 돼요. 사람이 단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어떤 나라의 임금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수많은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어요? 그러니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를 살리는 데도 집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현재 한국이 망해 간다며 야단났다고 하는데, 그것은 한국에 좋은 집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학·박사가 없어서 한국이 이 꼴이 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있긴 있는데 단결을 못해서 문제입니다. 나이 많은 양반들은 수염을 떡 쥐고 ‘어! 너희들이 뭘 아느냐?’우리의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 노인을 위해서 뭘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해야지!’ 하고, 또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는 세대 차이가 난다고 야단들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해요.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 놓고 그것을 위해 오직 소망을 갖고, 하나의 운동을 전개하면서 그 목표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전부다 쳐부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우리 경상북도 식구 여러분, 집이 크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집이 작다고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본부교회가 크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집이 아닙니다. 집보다는 사람을 요구하고, 집을 치장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치장하는 것도 겉보다는 속을 치장해야지요. 그래 가지고 ‘어느 누구도 나의 속을 빼앗아갈 수 없다. 하나님도 못 빼앗아 간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잘난 사람이라 해도 그 속을 빼앗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한번 마음으로 결정을 하든가 맹세를 해서 마음문을 딱 잠가 놓으면 누구도 열 수 없는 사람, 내가 잠갔으니 나만이 열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합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대구에 와서 여러분을 쭈욱 돌아보았는데 말예요. 나는 많은 사람보다도 젊은 사람들을 볼 때에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제1세대는 지나가고 제2세대가 온다고 얘기한 것 생각나지요? 지금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님들이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이마가 까지고 머리털이 다 빠지도록, 반백이 되도록 통일교회를 반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들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이 가진 확고한 신념입니다.

제1세는 광야에 쓰러져 독수리 밥이 될지라도 제2세에게는 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반대하는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님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런 생각에 반대할 자신이 있거들랑 나오십시오. 한번 대결해 봅시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신념은 하나님도 못 빼앗아 갑니다. 누가 반대를 하고, 뭐 나라의 힘을 동원해서 반대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봅시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제2세들의 교회입니다. 어딜 가도 끄떡없어야 합니다. 한번 팍 차도 굴러가기만 할 뿐 변해서는 안 됩니다. 굴러가도 흩어져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똘똘 뭉쳐 불어나면서 굴러가야 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공도 툭 차면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이 좋지요. 선생님이 가끔 통일교회 청춘 남녀들을 차 버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젊은 녀석들을 한번씩 냅다 차 볼거란 말입니다.

14-169
질기고 적극적인 사람
그러면 바위 덩어리에 부딪칠 것입니다. 거기에서 정말 단단한 사람은 큰 바위에 부딪쳐서 피가 나도 그 자체는 깨지지 않고, 오히려 바위 조각을 묻혀 가지고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내가 이 경북에 왔으니, 여러분을 바위가 있는 곳으로 냅다 차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때요? 내가 발로 펑 차면 머리도 깨지고 몸뚱이도 깨져 가지고 그냥 그대로 일자로 펑 떨어질 것입니까? 그래도 끄떡없어야 합니다. 그런 용사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이 무엇입니까? 통일이지요? 통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위에 만물상과 같은 미를 갖추어서 빛을 발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빛나야 됩니다. 강하게 빛나야 됩니다. 강한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질겨야 됩니다. 이러한 개인이 필요한 동시에 이러한 무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엮고 저렇게 엮어 놓아도 자유로이 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뻣뻣해 가지고 탁 때리면 딱 부러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능글능글해 가지고 요렇게 엮어도 저렇게 엮어도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때 나는 청춘 남녀들을 데리고 바다에 나갑니다. 바다에 가면 고기들이 많지요. 휭 날으는 고기도 있고 뜨는 고기도 있어요. 그런 고기들을 잡아야 되겠는데 어떻게 잡을 것이냐? 매일 낚시질해서 잡을 것인가 아니면 손바닥만한 그물을 던져 가지고 잡을 것인가? 저기 미국의 알라스카나 일본 같은 데, 혹은 저 태평양에 그물을 던져 가지고 거기 있는 고기 전체를 건져 내기 위해 그 그물을 잡아 다닐 때 나는 거기서 줄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평양에 원자폭탄을 하나 꽝 터뜨려 가지고 거기 있는 고기 전부를 뜨게 해서 고기 사태를 일으키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 흔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세계를 흔들어 보자는 거예요. 극동에서도 한국은 아주 형편없는 나라입니다. 삼천리 강토니, 백의민족이니, 금수강산이니 하지만 처량한 나라예요. 하지만 처량한 나라에서 처량하게 자랐지만, 처량한 내용이 아닌 빛나는 내용을 가지고 세계를 요리하려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지요?

백의민족이 세계 앞에 꽝 부딪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일년 전만 해도 우리 민족이 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세계 120개 국가가 전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데, 그런 수많은 국가와 부딪치면 최후로 남아지는 무리가 어떤 무리이겠습니까? 통일교회 무리입니다. 통일교회의 무리가 최후까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미안하지요? 몇 명 안 되는 통일교회 무리가 수많은 국가와 대결해서 남아진다고 하니 미안하지 않아요? 왜 대답을 안 합니까? 앞으로 선생님이 물으면 입 딱 다물고 대답하지 않기로 결의했어요?

통일교회는 질기고 적극적인 사람들의 교회입니다. 돈 한푼 없지만 ‘뭐하자’고 하면 다 합니다. 돈을 벌자 하면 무섭게 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를 구하는데는 돈 가지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아주 무서운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그 외 어떤 사조가 휩쓸려 들어와도 분별해서 심판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물론 나이 많은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머리가 반백이 된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이 많으신 분들 섭섭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도 나이 많은 축에 가깝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보다 젊은이, 젊은 청년들, 정열과 기백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단결된 국가라 할진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 경상북도 사람들, 그런 축에 가담할 용의가 있습니까? 대답한 사람 손을 들어 봐요. 어유! 자 내려요.

14-171
우리는 하늘의 용사
그러면 아까 부른 노래 ‘하늘의 용사’를 4절만 부릅시다. (노래 부름) 어디로 용진해요? 어떠한 세계요? 본향의 세계, 그 세계가 어디예요?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가 뭡니까? 현재 여러분의 입장이 찬란합니까? 온 누리는 뭡니까?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들어갑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온 누리에 속합니다. 온 인류는 뭡니까? 형제라구요? 형제라면 그것도 큰일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형제가 몇이냐고 물어보니깐 ‘많습니다. 동생들이 많아 가지고 자꾸 뜯어 가니 걱정입니다. 장가도 보내야 되고 세간도 마련해 주어야 되는데 죽을 지경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에게 온 인류가 형제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온 인류가 진짜 형제가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 사람에게 형제가 필요하겠습니까? 이런 것 생각해 봤습니까?

여러분! 그런 형제가 필요합니까? 진짜 필요해요? 얼만큼? 온 누리 만큼이라구요? 그래요. 필요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얼만큼 필요하냐? 생명을 바칠 만큼 필요합니다. 왜? 그 사람들이 아니면, 그 형제들이 아니면 크나큰 선의 일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의 일족이란 한 사람 가지고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 가지고도 안 됩니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할 것 없이 노랗고 빨갛고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모두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전부가 섞여서 형제가 돼야 해요.

그러면 형제가 무엇입니까? 얼굴이 비슷하면 형제입니까? 밥을 같이 먹으면 형제입니까? 쌍둥이같이 옷을 똑같이 입으면 형제입니까? 아닙니다. 핏줄이 같아야 형제입니다. 그 다음엔 부모가 같아야 합니다. 물론 부모가 있어야 핏줄이 생기겠지요? 형제가 되기 위한 제일 요건이 뭐냐하면 부모가 같은 것입니다. 부모가 같아야 형제예요. 이복형제도 있긴 있지요? 그리고 의형제도 있지요? 그렇지만 어떤 형제가 되어야 합니까? 동복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어때요. 동복형제가 될 자신 있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 앞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세계, 온 누리에 찬란히 빛날 새로운 문화세계의 중심이 무엇이냐? 참부모,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선의 부모는 길이 받들어 모셔아 됩니다. 받드는 데는 범위가 넓습니다. 그러니 전체적인 측면에서 받들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의 세계의 주인공으로 태어나서, 하나의 가정의 아들이 되든가 딸이 되든가 해 가지고 세계를 마음대로 주관하며 천하를 주름잡고 살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세계를 다시 복귀하자는 거지요. ‘정녕코 이루리라’ 무슨 세계? 둘의 세계? 아닙니다.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는 무슨 세계인가? 통일된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볼 때, 밤이나 낮이나, 한국에서 문선생 혼자 허덕이니 문선생은 사람이 아닌 줄 알지만,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잘못 안 것입니다. 나는 기성교회 목사들을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고 봐라 고인 물은 언젠가 썩는다. 어차피 시대의 사조는 우리 말씀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해서 길러온 사람이라도 하루 아침에 돌아올 것이다’ 하며 자신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 주장하는 구교의 신앙관과, 신교의 신앙관, 그리고 학박사들이 주장하는 신앙관, 또 무슨 교회, 무슨 교회에서 주장하는 신앙관은 우리 통일의 이념, 우리 통일교회의 신앙관과 부딪쳐서 흡수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두고 보면 압니다.

여러분 연날려 봤습니까? 연을 날릴 때 연줄에다가 사기 가루를 싹 발라 가지고 날리면 바람에 기분 좋게 날지요. 그런데 옆에서 시시한 연이 날고 있어 봐요. 쓱 대면 여지없이 휙 잘려 나갑니다. 그래야 합니다. 우리 통일의 무리에게 연결되어 있는 하늘나라의 닻줄과 기성교회의 닻줄과 어디 한번 부딪쳐 보자 이겁니다. 어느 편이 끊겨 나가나. 정의에 입각한 선의 줄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통일세계지요? 통일세계입니다. 통일된 그 세계에는 하나님도 그 속에 들어가 계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좀 나오시라고 해도 ‘가만있어라. 그럴 사정이 있다’ 하시며 안 나오십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참부모로 오시는 주님, 재림 이상을 갖고 오시는 주님도 ‘나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해도 보나마나 안 나오실 것입니다.

14-173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우리 통일교회의 이상한 것이 그것입니다. 통일교회 맛을 안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턱 들어선 날로부터 나가려 하질 않습니다. 벌이 꿀맛을 알면 말입니다. 거기에 머리를 박고 뒤꽁무니를 까불까불하며 계속 붙어 있습니다. 벌이 꿀맛을 한번 보고 거기에 붙어 있으면 핀셋으로 꽁지를 딱 집어서 잡아당겨 봅니다. 그러면 몸뚱이가 딱 떨어지지요. 그래도 안 나오거든요. 선생님은 벌을 많이 관찰해 보아서 그런 것을 잘 압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래야 됩니다. 한번 맛을 들이면 누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오는 거지요. 내가 오늘 대구에 왔지만 누가 오라고 해서 왔습니까? 오라고 해서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판단에 의해서 왜 가는가 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다녀야지요. 한번 맛을 들였다 하면 누가 ‘오라, 가라’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우리 교회에 못 들어오게 핍박을 해볼 생각입니다. ‘너 통일교회 다닐래 ?’ 하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이념적인 형제, 하늘을 위주로 한 형제가 되어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형제들은 타락한 형제들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아 핏줄을 더럽힌 형제예요. 그런데 참다운 하늘의 인연을 중심삼고 형제된 무리와 세상의 무리가 부딪치면 어느 쪽이 끊겨야 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세상의 형제, 즉 자기 혈육, 친척이라는 형제의 인연이 끊어져야 됩니다. 세상의 인연, 그보다 강한 무엇이 있어야 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운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 활동력을 갖추지 않고 그런 힘이 없이 통일이 될 것 같습니까? 안 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런 힘을 다 갖춘 사람들입니까? 갖추기 위해서 모여 온 거지요.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라 했는데 이거 누가 이루겠다고 했습니까?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이거 남이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우리의 정신을 통하여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이래야 맞지요.

그래 가지고 그런 무리들이 형제가 되어서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해야 됩니다. 뭐가 자랑이냐? 천하의 만민이 하지 못한 일,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소망적인 일을 우리가 처리하고 요리하여 만민의 한과 만우주의 한을 풀어 주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신납니까? 그러니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하는 거지요. 용사입니다. 용사, 용사란 무수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기백과 용기와 연단된 장비를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우리는 통일세계를 향해 힘차게 용진하는 통일의 용사다 이겁니다. 이렇게 용진해 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자 그럼 이제 됐어요. 한번 더 불러 봅시다. 하늘의 용사 4절 시작! (노래부름)

방금 부른 노래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용사입니다.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의 충신이 되려면 군왕의 심정을 알아야 되고, 부모 앞에 효자가 되려면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을 알아야 되듯이,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전의 심정과 창조 당시의 심정, 또한 창조 이후 인간이 타락할 때의 슬픈 심정과 그 슬픈 심정을 품으시고 복귀역사를 엮어 나오시는 복귀의 심정, 그리고 복귀된 이후의 세계를 소망하시는 그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천당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믿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까? 나라를 저버리고 세계를 저버린 가운데서 믿을 것인가?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 이겁니다. 이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그저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요? 염불하는 것도 믿는 것입니까?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고 하면 대답 못하고 낑낑거립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의 뒷골목까지, 하나님의 소원 끄트머리까지 믿어야 됩니다. 믿음이란 그저 할 수 없이 하는 놀음이 아니예요. 얼마나 처량합니까? 자기 아들딸들 보고 ‘내가 네 아버지이니 믿어라’ 하는 것 봤습니까? 불량배에게 ‘내가 정녕 네 아버지니 나를 믿어라’ 한다고 해서 그 불량배가 믿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자기 아들딸들보고 나를 믿으라고, 믿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이니 얼마나 처량해요.

14-175
천국은 심정의 세계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데는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개인을 대하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고, 가정을 대하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하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고, 사탄을 대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지, 또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지 알고 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누가 그걸 알았습니까?

예수 믿고 천국 간다고요? 그럴 것 같으면 아주 하늘 보좌까지 가서 호령하지 왜 그러고 있어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영계에 가보니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지상에서 잘 믿었다는 한국 목사들을 영계에 가서 일부러 만나 보려고 했으나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알아보니 먼 곳에 가 있었습니다. 천국 가려면 가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입교한 여러분들은 기성교인들이 천국 가는 길이라고 믿고 나가는 그런 길을 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그렇게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영계를 샅샅이 뒤져봐도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우리는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부터 알아야 합니다. 풀 한 포기에서부터 만물을 지으시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겠습니까? 피조물 하나하나를 지으실 때마다 그 정성 위에 소생하는 만물을 보시고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그 심정,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신학서적을 찾아보십시오. 이런 내용이 있는지. 세계의 신학서적을 전부다 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는지 알게 뭡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선언하시기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땅에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하셨습니다. 또 ‘내가 마땅히 받을 세례가 있나니 그 세례를 받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왜 답답하셨겠습니까? 유대 민족이 틀렸기 때문에 그것을 시정하거나, 혹은 뿌리째 청산해 버려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갖은 수모를 받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을 세워야 합니다.

자유당 때부터 지금까지 3정권을 거쳐오면서 통일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하지만 통일교회는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 서서 말하는 이 선생님은 30억 인류가 대들어도 못 당할 사람입니다. 아무리 뭐 어떻고 어떻다는 사람이라도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논리적인 이론을 들어 결론을 내려서 추궁을 해도 내가 ‘아 그렇습니다’ 할 수 있는 이념은 없습니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물음에 대답할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배포를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 길에서는 이러한 배포가 필요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길고 크고 깊습니다. 창세전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세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세 이후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얼마나 큰 못을 박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셨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또 복귀노정을 걸어오시면서 얼마나 애절한 심정을 갖고 찾아오시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귀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당신의 아들딸들을 처참한 죽음의 고비로 물아 넣으시면서, 참고 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했겠는가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최후의 하나의 중심존재를 통하여 이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한을 해원해 드려야만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온종일 들여다 보십시오. 이러한 내용이 있나. 하나님의 심정이 있나 보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잖아요.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심정이란 인류가 공히 바라는 소망의 심정이요, 만민이 인연 맺지 않으면 안 될 심정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오시는 심정입니다. 그 영역에 있어서는 천지를 전부다 포괄할 수도 있고 전체를 감싸고도 남을 수 있는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로 이 심정을 통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자라서 인격을 완성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갔더라면, 인격을 완성한 자로서 성숙한 단계로 들어갔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해 주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심정을 상속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천적인 부부를 만들어서 혈통적인 가정을 만들려고 하신 것입니다.

원래 아담 해와는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서 심정의 기반 위에 인류의 참시조가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손만대 후손들이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러한 심정의 터전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이 왈 타락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심정을 닮을 수 있는 인격을 잃어버렸고, 인격 위에 세워져야 할 말씀의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4-177
심판의 3대 요건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심정과 인격과 말씀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 믿었는가 하는 것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심정의 중심이 있습니다. 하늘땅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세워야 할 단 하나의 심정의 중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가 될 수 있는 인격의 중심이 있습니다. 또 이 인격과 심정과 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대신 말할 수 있는 말씀의 중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심판의 3대 요건입니다.

그 중에서도 말씀심판이 제일 먼저 벌어집니다.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는 말씀심판이 먼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사조는 무엇을 찾아 나가는가? 진리의 세계를 찾아 나갑니다. 문화와 더불어 발전해 나가는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가는 가? 하나의 문화세계를 향할 수 있는 이념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사조는 사상과 주의를 통해 나왔지만, 만민이 하나 될 수 있고 만민이 화할 수 있는 하나의 말씀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막다른 골목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에 하늘땅을 대표해서, 공산주의자들도 녹여내고 민주주의자들도 녹여내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 세계에 하나의 말씀이 나와서 지금까지의 진리를 심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심판이 있기 전에 진리심판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수많은 교파와 교단이 있는데, 그들은 각기 ‘우리 교회를 다녀라, 우리 교파를 믿어라. 우리 교단을 믿어야 천당 간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장담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아직까지 인간 세상에는 참된 진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고 세계사조의 주의나 사상을 초월하여 전체를 화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전체를 통일시킬 수 있는 진리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교파, 지금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앙관념, 지금 사람들이 주장하는 주의나 사상의 체계를 가지고는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없는 것이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다시 와야 됩니다. 예수가 다시 와야 되는 거예요. 다 이루었으면 무엇하러 다시 오겠습니까?

앞으로 세계적인 진리심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혹은 여호와의 증인 등 수백 개의 교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통일교회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요. 그러면 이중 어느 것이 참일 것인가? 참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기성교회의 목사들 가운데에는 비밀리에 통일교회를 연구해 가지고 나보고 만나자고 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나보면 자기들의 신앙이 잘못된 것을 아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장로들은 목사들이 통일교회 믿는다고 큰일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말씀을 조금만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화젯거리가 되어서 자연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연구하면 걸려들고, 걸려들면 모두다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몇몇 사람은 내가 알아요. 언제든지 만나보자 이겁니다. 역사의 흐름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14-179
확실한 신념 위의 원리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역사 가운데 먼저는 진리심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리와 화합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주의 사상이라는 것이 나와서, 오늘날 세계의 사조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는 국가와 민족관념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또 일국의 전통 같은 것도 초월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 사회제도 앞에 머리를 돌리는 오늘의 기독교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다 때려 부숴야 됩니다. 썩은 것을 알고 근본적인 수정을 해야 됩니다. 이제 전부다 불살라 봐서 타는 것은 버리고, 남은 것은 다시 가꾸어서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최후까지 남아질 것은 진리입니다.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진리가 있어야 됩니다. 진리 가운데에서도 세상의 주의 사상을 전부 규합해 가지고 하나의 진리로 남아질 수 있는 참된 진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교회입니다만, 나는 교회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 교회라는 간판을 붙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인들이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처량한 줄을 여러분 기도할 때 느낍니까? 진정한 교역자라면 이러한 것을 잘 느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의 젊은 남녀가 알아야 할 것은 진리에 입각한 새로운 세계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세계에 부합될 수 있는 내적 인격이 진리의 터전 위에 소생되지 않으면 시대의 사조에 쫓겨나갈 것입니다. 진리심판이 있고,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중심삼은 인격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진리와 인격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통과해야 되는데, 그것이 심정심판입니다. 끝날에는 이와 같이 진리 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참다운 말씀, 마태복음을 비롯한 4복음서에 있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지 못한 참다운 말씀, 마음속에 품고서도 사탄세계의 원수들 앞에 말할 수 없었던, 그러한 말씀이 없습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 살았고 이것을 위해 죽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참다운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의 제물로 죽어가서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고 한 것은 바울의 주장이지 예수님의 주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울이 주장한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앞에 참다운 인격자요 만인류 앞에 참다운 인격자로서, 자기가 출발할 때의 사정과 마음속에 품은 내용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참다운 신앙의 아들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고 싶어했던 참다운 말씀이 어디 있느냐? 성경에도 없습니다. 묵시록 14장의 14만 4천 무리라는 말을 보십시오. 얼마나 애매합니까? 첫째 부활이란 말은 또 얼마나 애매합니까? 이걸 믿고 어떻게 첫째 부활에 참석하겠습니까? 시험 출제관은 이렇게 출제했는데 답은 저렇게 써넣었다면 시험에 패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애를 통하여 하고 싶었던 참다운 진리의 말씀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 땅에서 그 말씀과 일체된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그런 생활을 하지 못하고, 즉 그렇게 다 살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의 심정을 땅에 심어 놓지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름 타고 와서 될 것 같습니까? 구름 타고 와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망한 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구름 타고 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교라고요? 언젠가는 그 사람들이 사교도로 취급당할 때가 옵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2천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다 부정하느냐? 아닙니다. 알아봐서 사실이 아닌 것만 부정합니다. 영계에 들어가서 샅샅이 뒤져 보아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도 그 내용을 가지고 세계를 대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말씀은 ‘그럴 것이다’가 아닙니다. ‘그렇다’입니다. 진리가 ‘그럴 것이다’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물리나 화학공식에서도 ‘그럴 것이다’ 하는 말은 없잖아요.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증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나와야 됩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입니다. ‘그럴 것이다’ 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심정이란 것도 막연한 심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심정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격도 구체적인 인격입니다. 막연한 인격이 아니예요. 말씀도 막연한 말씀이 아니라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이 구체적인 심정과 인격과 말씀은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이 현실세계에 부합되고, 이 현실세계에서 영원한 위치를 결정지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만 합니다.

14-181
영원히 주고받는 본성의 인연
우리 통일교회의 성가 가운데 ‘하늘의 용사’가 그런 내용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첫째가 심정입니다. 1절을 한번 읽어 봅시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입니다. 진리의 인연으로 세계가 살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생명의 원천인 사랑에 의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죽고 산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길잡이입니다. 실체와 관계를 맺기 위한 다리와 마찬가지요. 심정을 전달하기 위한 중간 형태입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할 때의 심정은 무슨 심정?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이 심정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타락한 이 세계를 대하여 한을 품고 탕감복귀해야 할 한의 심정이 아니라, 해원하고자 하는 심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6천년 동안 맺히고 맺혔던 그 모든 한을 해원해 드리고, 충효의 아들딸로 나타나 ‘아버지여! 당신께서 과거에 이런 곡절을 거쳐 오셨다는 것을 오늘 저희들이 마음으로 알았사옵니다. 과거 저희의 선조들은 저끄러진 이 역사노정에서 당신의 고충과 한을 풀어 드리고, 당신의 뜻을 받아 성사시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사옵니다. 그러한 모든 심정을 오늘 저희가 전부 해원성사해 드리겠사옵니다. 이것이 당신의 심정이 아니옵니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해윈의 심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하나님의 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한은 당신께서 참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개인을 찾지 못한 것이요, 가정을 찾지 못한 것이요,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입니까? 다 망해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첫째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찾고자 하신 개체가 한의 조건으로 걸려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생긴 모든 한의 조건을 제가 풀겠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개체로서의 해원성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해원성사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해원성사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이 부르는 이런 성가는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그 다음에 ‘하나로 묶어 주신’이지요? 하나로 묶어 주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 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권력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으로 볼 적에 세계는 하나입니다.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이것이 본래의 우리의 인연입니다. 타락한 이 세계의 인연은 우리의 인연이 아닙니다. 하나로 묶어 주신 이 한 심정이 본래의 인연입니다.

그 다음에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이지요? 본성의 인연에 의해 하나로 묶어짐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주고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일시적으로 주고받아 가지고는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뭐 어떻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히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왜? 타락한 세계에서의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성의 심정을 중심삼고 영원히 주고받는 거기에 비로소 우리의 본향이 벌어집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행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14-182
우리는 행복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명사가 있습니다. 좋은 명사, 나쁜 명사가 많이 있어요. 그 가운데 나쁜 명사는 내게 필요없습니다. 미안하지만 나쁜 명사는 내게 필요없어요. 하늘땅에서, 세계에서 제일 좋은 명사는 모두 내 것입니다. 내가 욕심이 좀 많습니다. 이거 미안합니다만 나는 ‘행복이란 말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선생이 무척 독선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행복이란 명사는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이란 명사, 뭐 세상에 좋다는 명사는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도 그것은 다 깨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 사람들이 선진국가라고 자랑을 해도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다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행복은 보관되어 있는 연고로 그들은 관리인들에 불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계에서 최고의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입장에 있으니 만큼, 별의별 사람들이 다 조롱하는 데 들어가서도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선생님을 따르는 통일교인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봅니다. 보기에는 처량하고 비참하지만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심정이 하늘 땅과 더불어 운행하고, 하늘땅은 우리의 심정과 더불어 운행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가치를 백 퍼센트 이상 높여서 스스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이런 행복과, 이런 만족과, 이런 이념과, 이런 신념을 누가 지배할 것이냐?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학박사들이라고 해도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배할 수 있습니다. 어때요? 그럴 것 같아요?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되어 있거든요. 잘났든 못났든 통일교회 선생님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에 수많은 사람이 살지만 통일교회 선생님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왜? 심정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즈음 여러분 점심 먹습니까? 못 먹습니까? 「먹습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옷도 누더기만 입고 감옥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아주 취미처럼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질서정연하게 잘 합니다. 경력이 많거든요. 또 감옥에서 최고형을 받은 자, 혹은 별의별 범죄자들과 어깨를 같이하고 생활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검소합니다. 그들에게 한번 얘기했다 하면 잘하지요. ‘당신은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살았구먼 그래’ 하고 시작하면 얘기를 잘 들어요.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통일교회가 출발할 때도 목사가 들어오면 문전에서 ‘당신은 이런 저런 사람 이구나’하고 한바탕 냅다 때리고 야단을 치곤 했습니다.

통일교회 맨 처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도받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들어오면 전부다 자기들이 가던 길을 바꿔 가지고 전도를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도를 나가다가 길에서 발이 붙어 ‘여기 아무 교회 아무개 장로가 있으니 가서 전도해라’ 하는 계시를 받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심판하게 되어 있어요.

지금 현세에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통일교회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한국 백성이 통일교회를 모르면 안 됩니다. 요전에 부산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일본 같은 나라도 앞으로 통일교회 이념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일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이념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벌써 상류계급 사람들은 선생님과 연락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통일교회를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못나고 어리석은 비난 기세에 사라질 통일교회라면 문선생은 벌써 보따리를 싸둘러 메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미국에는 명년까지 50개 주에 통일교회가 들어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바쁩니다. 이번에 순회하는 것도 사실은 시간이 없는데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14-184
무량의 심정 속에 계신 하나님
세상에서는 통일교회가 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호출을 받고 법정에 다닐 때, 미국에 전도사를 파견했고. 일본에 전도사를 파견했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10년 후에는 너희들을 추월한다. 그러니 무슨 작전을 써서라도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였습니다. 나는 갇혀 있지만 우리의 뜻은 한국을 투망질한다는 것입니다. 투망질이 뭔지 압니까? 포위 작전을 한다 이겁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내가 내 나라를 파괴시키는 공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민족을 세계 앞에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민족으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세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암흑가의 괴수들이 전부다 내 손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착착 진행되는 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이제는 폭력 조직과 손을 잡았다고 욕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를 잡아다가 요리해서 회개시켜 가지고 하늘의 선각자로 세울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모릅니다. 몰라요. 오늘 통일교회가 이만한 기반을 닦기까지의 복잡함은 지금 대한민국 행정부의 복잡한 정도가 아닙니다. 사방에서 사회단체들이 나 하나를 낚아채서 잡아치우려 했지만 나는 안 걸렸습니다. 여러분, 이제 조금만 더 일본이라든가 각국 나라에 기반을 닦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큰 포부를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대구에 와서 여러분을 보게 될 때, 앞으로 큰 무대를 앞에 놓고 세계를 주름잡을 시대는 찾아오고 있는데, 오늘날 눈이 똑바로 박히고 사상이 올바른 사내녀석들과 아가씨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나는 그런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시련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게 해놓고 죽을 지경까지 들여보내십니다. 그렇게 매정한 분이에요. 동정이 뭡니까? 매정하십니다. 피를 토하고 쓰러져도 몰라라 하고 발길로 차버리십니다. 그렇지만 나는 천정을 알았기에 그것을 참고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은 맨 끝에 가서 통곡을 하십니다. ‘네가 어떻게 할 때 내가 이렇게 대했고, 네가 어떻게 할 때 내가 이렇게 대했다’ 하시며 통곡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대하시느냐? 이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를 핍박하고 반대하는 것을 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원수시하지 않습니다. 몰라서 그런 것이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기성교인이라면 나도 그렇게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거기서 그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할 때의 교세 이상의 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을 찬양하고 밀어주겠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반대받은 후에도 반대받을 때 이상의 교세를 갖지 못할 때는 저주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교라 하고 이단자라 하는 소리를 들었으면, 그때보다 더 발전하고 그 이상 잘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꺾여 나가게 됩니다. 이런 것은 지금 할 얘기가 아니지만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14-186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1절은 심정을 중심삼고 나가야 된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 2절로 가서 봅시다. 뭐가 나옵니까?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무한한 인격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격이 무한한 인격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무한한 인격입니다. 수많은 권세자들과 수많은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의 인격을 침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역사의 도상에서 그들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지배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의 인격은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영윈한 인격입니다.

그러면 이 무한한 인격은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이냐? 예수님 자신을 위주로 해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심정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인격이기 때문에 무한한 인격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한한 인격입니다. 유한한 인격은 나도 싫습니다. 오늘 좋다가 내일 나쁜 것은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들이 옳습니다. 선생님이 한번 믿어 주면 그대로 합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반대하고 비판해도 그대로 해요. 이상하지요. 선생님이 믿어 줬던 사람은 끝까지 기도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기도하면 영계에서 선생님을 따라가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반대하고 기도하면 영계에서도 ‘됐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끊어 버려라’ 하면 좋겠는데, 반대하고 진정으로 기도해 보면 ‘이 못된 것아, 내가 그만큼 가르쳐 줬는데 모르느냐? 반대와 체면을 무릅쓰고 찾아가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그들이 철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또 반대하던 사람들이 길가다가 나를 보면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가지고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몸둘 바를 몰라해요.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정도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가끔 그런 구경을 합니다. 한번 믿어 주면, 세 번 이상 하늘이 처리하기 전에 먼저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신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번 믿어 줬으면, 더구나 이념을 중심삼고 맹세를 했으면 그 이념이 망하든가 흥하든가 끝장이 난 후에 판단을 해야지, 그 전에 판단을 하면 선조의 공적을 전부다 홀딱 빼앗기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할 때의 무한한 인격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히 그 무엇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뭡니까?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지요. 그런 인격은 온 만물이 추구하는 소망의 등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생명이 솟구치는’ 것이지요? 그런 인격을 갖추었으면 그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생명이 약동하는 그 자체가 본래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지으신 본연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곧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 비로소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소망하시던 가치적인 존재가 되어서, 만세에 꽃 향기를 피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인격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런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14-187
국가를 위한 제물의 길
그 다음 3절은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우리가 지금 움직여 나가는 것은 세상의 움직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안 주면 일을 못 한다. 월급을 받지 않으면 이 몸뚱이가 하루도 움직일 수 없다. 보수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월급 받습니까? 월급을 주긴 뭘 줍니까? 한푼도 안 주고 도리어 바치라고 합니다.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렇죠? 여러분, 어때요? 돈주지 않아도 일하지요? 돈이 없어도 일하지요? 여자들도 그렇지요? 이거 얼마나 처량합니까? 여러분을 놓고 가만히 생각할 때에는 깨깨 고생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민족을 대표해서 제물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자유당 때, 이승만 박사가 통일교회 문선생 말 한마디만 들었더라면 오늘날 이 나라가 이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이기붕이 절대 죽지 않습니다. 박마리아가 절대로 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그런데 이박사가 반대를 해서 나라를 망친 것입니다. 그때 내 말만 들었으면 공산당은 벌써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이 그런 것입니다. 만약 그때 이 민족과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이단시하지 않고 손만 잡았더라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준에 올라섰을 것입니다. 또 기성교회 목사들도 세계 120개국을 비행기 타고 왕래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이 길을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귀원리에서 배웠지요? 40년이면 어떠한 기준에 올라간다는 것이 원리적으로 딱 나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북에 간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싸워야 될 입장이 되었을 때 야곱이 어디로 갔습니까? 원수의 세계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이북에 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남 땅으로 내려오는데, 선생님은 이북에 올라가서 공작을 해 가지고 다시 이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영광의 길이 변하여 십자가의 길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나를 환영했다면 오늘날 기성교회가 절대 이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기성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벌써 미국 백악관의 행정부는 우리 손에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통하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인들이 고생하는 것입니다. 민족이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영광의 출발을 하지 못하고 길이 막혀 옥중에서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일대에 3국가의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 나라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였습니다. 일본에 가서 지하운동의 선봉이 되어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북한의 황해도에 있을 때에는 밀사로서 연락하는 일을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누구보다 강한 애국심을 갖고 일한 사람입니다. 일본에 가 있을 때에도 명승지를 한번 찾아가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헐벗고 못 먹으면서도 고학생들을 찾아 다니면서 그들을 위해서 갖은 고생을 다했습니다. 왜? 한국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백성을 선생님이 저주하려면 얼마든지 저주할 수 있습니다. 서러움이 있다 해도 선생님이 당한 서러움 이상의 서러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핍박을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어떻게 좌우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민족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두고 보십시오. 3·8선이 해결 안 되고 있잖아요. 트루만이 북진파의 영웅이라고 하던 맥아더의 말을 들었으면 1950년 9월에 끝났을 것인데, 맥아더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1953년 7월에 끝이 났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역사가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것입니다. 이런 한 많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되 아는 사람은 피가 끓는 것입니다.

14-189
하나님의 전술전략
이제 한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심각하게 기도하고 기도한 사람이 통일교회 선생님입니다.

1962년에 소련이 쿠바를 군사기지로 하기 위해 카리브 해역에 군함을 보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 봉쇄령을 내리고 ‘쳐라! 이때에 쳐야만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다’고 했습니다. 그거 참 잘한 일입니다. 미국에 들어가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이만큼 발전하기까지는 고충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움직여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도가 어떻게 나왔는가, 천지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어떻게 하여야 천지운세에 박자를 잘 맞추어서 필요할 사람을 필요한 곳에 배치할까, 어떻게 제물적인 과정을 거쳐 나갈 것인가 하는 남모르는 곡절과 싸움의 노정을 거쳐서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그냥 생각하면 탕감할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과거에 한민족이 하늘 앞에 책임 못한 것을 탕감복귀해서 하나님의 한을 해원시켜 드려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해서 예수님이 고생을 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선두에 내세워 가지고 사탄세계로 몰아넣으십니다. 그리하여 맞게 해서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교회는 삼천만 민족에게 얻어맞고 있는 것입니다. 한참 반대할 때에 선생님은 석달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 데, 출옥한 뒤에 사람을 보내서 형무소의 간수나 죄수들에게 문선생이 어떠했느냐고 물어 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허 말도 말라구,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고 하더랍니다. 또 ‘그 사람 한번 만나고 싶지 않소?'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내젓더랍니다. 그때 선생님이 미군 잠바에 물들인 작업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머리는 덥수룩해 있었으니 그들이 알게 뭡니까? 아주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그만 국민학생에게 ‘너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아니? 보긴 보았니?'하면 봤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이런다는 것입니다.

선전 잘 해준 거지요. 그렇지요? 선전 잘 해준 거예요. 그렇지만 그러한 자리에서 좋다고 하는 날에는 통일교회에 싸움이 없어집니다. 좋다고 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화가 도리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통일교회가 좋다 하는 운세에 올라갑니다. 기성교회는 점점 떨어져 내려가고 통일교회는 점점 올라갑니다. 앞으로는 기성교회 목사, 장로의 제일 사랑하는 효자 효녀들을 데려다가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가르쳐서 전도 전선에 내보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스물 다섯살 이하 손들어 보세요. 예, 내리세요. 통일교회의 교인 평균 연령이 22세입니다. 이들에게 불을 붙여야 되겠습니다. 비운에 처해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우리가 구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자나 깨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고 비밀리에 일하고 있다고들 합니다만, 선생님은 한국 대통령 같은 것은 원치 않습니다. 세계를 요리할 것입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나 소련의 흐루시초프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뭘 압니까?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해야 된다고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다.

14-191
거룩한 희생의 대가
여러분,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들어 보세요? 통일교회 원리 말씀은 오늘날까지의 역사상에 있었던 서적에서 나온 말씀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도 없고, 도서관의 수만 권의 책을 다 뒤져도 없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단독 출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짜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만약 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기도해 보십시오.

세계에는 수많은 교회, 수많은 교파, 수많은 영통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다 영적으로 선생님의 제자 입장입니다. 전부 종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엄청납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은 잘 모릅니다. 그들한테 비판받고 그들한테 나가자빠질 원리가 아닙니다. 이 통일교회 원리를 찾아 놓은 이 선생이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아십니까?

엄청난 내용을 가지고 엄청난 싸움, 엄청난 혈투전을 거쳐서 오늘날 이땅 위에 ‘통일’이란 간판을 세우고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기독교를 모르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를 대하여 그들에게서 통일이란 명사가 나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통일이란 명사가 나오기를 그렇게 요구했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한 기준을 붙들고 또 나갈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영계를 배후로 하고 나가서, 나중에는 그 영계를 요리할 수 있는 진리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귀의 길에 참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움직임은 참이 아니면 안 됩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한 나라를 그런 입장에 세우면 세계는 문제없이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셨습니다. 만우주를 창조한 창조주로되 창조주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없는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기 위하여 종의 몸을 쓰고 나오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기 위해 눈물을 흘리시고 한 나라, 거룩한 땅을 찾기 위해 피땀을 흘려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또 제물적인 입장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길을 걸어 나오셨으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입장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인들은 ‘자진해서 고생의 길을 가자. 눈물의 길을 가자. 피땀의 길을 가자’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되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흘리고, 땀을 흘리되 삼천만 민족 나아가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흘려야 합니다. 피를 토하고 피를 뽑아 가지고라도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전도대원들 가운데에는 피를 팔아 가지고 전도하러 나간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선생님 마음이 어떠했을 것 같아요?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선생님도 위로부터 큰 사명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그런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여러분도 응당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걸음을 걸어 나올 때, 하나님께서 협조해 주시고 붙들어 주셨듯이, 선생님도 그런 마음을 갖고 여러분을 하나님과 인연지어 주고 싶습니다. 이런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심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맺어진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속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영광을 갖추어서 하늘땅에 승리한 모습으로 나타날 한 날을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1년, 2년, 10년, 나아가서 생애 전체를 바쳐 나가자는 것이 ‘통일용사’의 길입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 선생님이라고 하는 입장에 있지만, 편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좋은 집을 사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앉습니다. 나라를 갖지 못한 백성은 불쌍한 백성이요, 그 가운데서도 자기의 민족, 자기의 종족, 자기의 가정을 갖지 못한 사람은 더욱 불쌍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현재 그러한 과정에 있습니다. 이 나라를 대신하여야 할 큰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볼 때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앞장세워 어려운 길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목적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이 피를 뿌리고 땀 흘린 것을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쓴다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피는 하나님 앞에 거룩히 바쳐져 만민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재료가 됩니다. 그 피가 희생의 피로서 뿌려졌다가 다시 소생하는 날, 만민이 그 앞에 머리 숙일 수 있는 한 날이 오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또 그 소망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그런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14-193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3절을 보면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가 나오지요?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악에게 점령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워서 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그 참의 실체를 키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뭡니까?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지요? 우리가 세워야 할 참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는 것은 결국 영원한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천추만대의 후손들이 길이 찬양할 수 있는 복지를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야말로 영원히 함께 할 변하지 않는 가치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하나 둘 합해 가지고 점점 커져서 마침내 하나의 참된 진리의 푯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가 비로소 길이길이 빛날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할 것입니다. 여기서 양양이란 한없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날을 한없이 곱게 단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적인 감정을, 생활적인 내용을 단장한다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 다같이 한번 노래해 봅시다.

14-194
기 도
아버지! 당신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이 땅의 만민을 복귀하고자 하시는 당신은 얼마나 비장한 사정이 많았사옵니까? 아버님 ! 뜻을 알고 난 뒤 당신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처량하고 애달픈 심정이 어리면서도 그 말씀대로 아버지 앞에 충성의 도리를 세우는 자가 이땅 위에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당신께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아버님이시여 !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불쌍한 통일의 무리를 지켜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이 따라가는 이 길, 남들이 배척을 하고 남들이 아니라 하는 이 길은 눈물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요, 죽음을 각오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임을 아옵니다. 뒤늦게나마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나오게 된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할 때, 일면으로는 슬프고 억울하오나, 당신의 심정과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진실로 감사하옵니다.

오늘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이 여기에 몰려왔사오니 이들이 이번에 모인 것이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내리신 복귀의 이념 앞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고, 모든 정성을 다 기울여 저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바칠 것을 각오한 몸들이오니, 뜻하신 바가 있사올진대는 저희들에게 명령하여 주시기를 마음 몸 다 굽혀 바라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아실 것이옵니다.

경상북도 전체를 아버지의 장중에 복귀시켜 드려야 할 책임이 보잘것 없는 저희에게 맡겨진 것을 아옵니다. 이 벅찬 사명을 짊어진 저희들은 아버지를 대할 적마다 오늘도 내일도 황공함을 느낄 수밖에 없사옵니다. 당신이 이미 이런 짐을 지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당신의 사랑과 당신이 주신 은사를 생각할 적마다 오늘의 내가 있음을 감사하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환경에서 아버지를 기억하고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뿌릴 수 있는 자녀를 허락하여 주신 것, 진실로 감사하옵니다. 이 나라 한국 땅을 누가 사랑하고, 이 세계의 모든 인류를 누가 사랑할 것이냐고 당신께서 물으실 때, 저희들이 먼저 대답하고 나서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이미 마음으로 다짐한지 오래 이옵나이다. 저희들이 다짐한 모든 것이 일편단심 변할 줄 모르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마지막 시기는 급변하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때에 역사적인 인연으로 저희가 모여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때문에 오늘은 이겨야 할 것이요, 내일은 개척해야 할 것이오니, 오늘의 승리와 내일의 개척을 맹세할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환난 중에서도 이 몸을 지켜 주신 나의 아버지시여 ! 어려운 가운데서 분부하시고, 절망 도상에서도 내가 있으니 또 가라고 명령하시던 아버지가 계신 것을 저는 확실히 아옵나이다. 이제 아버지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아버지의 분부대로 따라 나와 모진 환경도 이미 거쳐 나왔사오나, 아버지의 경영하시는 뜻은 오묘하고 아버지의 섭리는 기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아버지시여 ! 어려움이 닥쳐올때 그 배후에는 당신께서 늘 선물을 갖고 오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맞는 자를 사랑하시고 핍박을 참고 이기는 자를 축복해 주시는 것을 알았사오니, 오늘의 식구들이 마음을 다해 당신을 바라보는 그 지성을, 아버지, 기억하시옵고 이들을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눈물어린 이들의 행로가 아버지의 심정의 동산에 꽃을 피우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십자가 노정에서 승리의 방패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 기간은 아버지 앞에 맹세한 기간으로서, 이제 통일의 역군들은 처처에 널려서 아버지의 말씀과 아버지의 새 생명의 역사를 이룰 것이오니, 아버지시여 ! 이 민족 앞에 새로운 광명한 빛을 비춰 주시옵소서. 흑암권세에 사로잡힌 수많은 젊은 남녀들에게 불을 붙여줄 도화선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이번 기회에 전능하신 능력으로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가야 할 복귀의 도상에 섰사오니 죽어도 가야 되겠고, 살아도 가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아버님만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혹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증거할 수 있고, 당신으로부터 증거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시여 !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경북지구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더욱이 대구 도성에 크신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일체의 오고 가는 일이 나를 위한 것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아버지를 위한 것이요,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세우기 위함이며, 아버지의 뜻을 위한 것이오니 아버지께서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것으로 시작하였사오니 아버지의 것으로 열매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영계의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이 환희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이 기간에 만난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하는 동시에, 저희가 하나 되게 해주신 것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옵나이다. 더욱이 살고 죽는 것도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감사해야 할 저희들, 이미 생명을 걸고 각오한 몸들이오니 오늘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전체가 당신께서 경륜하신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모든 시간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승리의 한 시간을 갖도록 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수많은 통일의 용사들이 이 시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은 은사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