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9: 아벨적인 생활철학

아벨적인 생활철학
1964.09, 한국 전본부교회

14-159
아벨적인 생활철학
[말씀 요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정성의 표시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그 정성의 표시가 적더라도 흠이 없는 것을 원하신다.

특별지구를 세운 것은 정성의 상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마음을 놓고 쉴 곳이 어디겠느냐? 선생님이 환영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축복가정을 배치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마음 놓고 자리를 펼 수 있는 곳이 어디겠느냐? 선생님이 제3의 행동을 일으킬 때 누구의 집을 찾아가서 착수할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간절히 체휼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선생님께 정성들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잊을 수 없다. 늘 염려하고 궁금하게 여긴다.

모두가 어려운 자리에 있다.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의 말로는 쓸쓸하다.

통일교회가 자신과 더불어 자기의 집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하늘땅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다. 그 다음은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고, 또 참부모, 참자녀, 축복가정, 국가, 세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지금의 기도는 어느 때의 기도보다도 착잡한 운세를 몰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걱정하여 주는 것은 하나님의 염려를 통고해 주기 위함이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그 고비를 넘으면 재생의 길이 열린다. 책망을 듣게 되면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인격의 완성자가 되려면, 참부모님을 모시는 개인이 되어야 하고 참자녀를 앞세우는 가인이 되어야 하며, 참된 국가를 세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자신이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밤을 새우며 말할 수 있는 심정의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 세계는 무한한 자극의 세계이므로 자신의 세포까지 자극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님에게도 뜻 안에서 선생님에게 충고할 수 있는 아내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순간을 아쉬워하는 심정을 잃으면 모든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순간을 아쉬워하는 그런 경지에 참이 있다.

4년노정의 승리자가 되려면 심정으로 승리를 하고, 인격으로 승리를 하고, 진리로 승리를 하고, 행동으로 승리를 해야 한다.

선생님의 명령을 여러분이 실천하지 않을 때는 말씀을 한 선생님이 책임지고 탕감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노정을 겸손히 받아들인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그 점이 주님다왔던 것이다.

선생님은 삼척동자의 충고도 겸손히 받아들였고 영통인들에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어도 보았다.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지도자보다는 하늘땅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심정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때를 지나 놓고 후회하면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누구든지 그냥 살수는 있다. 그러나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가 문제이다. 개인적인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 국가적인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 아니면 천주적인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아벨은 가인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가인은 아벨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지구장을 중심삼고 세 가인의 가정이 있느냐? 자기를 중심삼은 세 가인이 있느냐? 가인이 지쳤다고 하면 그것은 몰라서 그런 것이니 알려 주어야 한다. 복귀의 길은 혼자서 가는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지친 자의 수습이 필요치 않다. 지난날의 신앙은 아벨을 따라가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모시고 가야 한다. 아벨을 섬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직접 전도를 하지 못했으면 나로 인하여 신앙을 갖는 심정적인 가인이라도 세워야 한다.

가인보다 못한 자가 아벨이 될 수 있느냐?

아벨은 가인에게 주어야 한다. 무엇을 주겠느냐?

이제 다시 기도의 정성을 들여야 할 때가 왔다. 이번 부흥회 기간에는 각오들을 단단히 해야 한다. 기도를 하면 자기의 의식을 잃을 정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심정세계를 접할 때는 눈물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생활의 천국을 이룬 사람이어야 실제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천국은 가인적인 가정을 통하고 아벨적인 참자녀와 참가정을 이룰 때 비로소 되어지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천국에서 누울 자리도 있고, 설 자리도 있으며, 일할 자리도 있어야만 여러분과 천국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먹고 입는 문제가 어렵다고 해서 해야 할 사명을 잃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돈으로 팔겠느냐? 그럴 작정이냐?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땅을 주고도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이제부터는, 본부에서 여러 가지 식을 마쳤으니 심정적인 기준만 가지고 일을 하면 실적을 거두게 된다. 선생님이 하는 일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아라. 몇 년 몇십 년후에 되어질 일을 여러분이 알 수 있겠느냐? 복잡한 영적인 환경을 수습하여 오늘날 이렇게 이루어 놓기까지 얼마나 수고 하였는지 여러분들이 아느냐?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는 일이라면 누가 무슨 일을 하든지 선생님은 받아들였다. 선생님은 이제 책임을 다했다. 내가 이제 어디에 머무르겠느냐? 그곳은 심정의 자리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선생님이 품었던 심정을 이 세상에 다 남겨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선생님의 슬픔이다. 역사적인 슬픔의 한을 놓고 선생님과 같이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이 세계가 얼마나 후회할 것인지 여러분은 아느냐 ?

이 산천이 선생님의 고생을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기쁨의 날을 보지 못한다면 이 산천도 기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명승고적을 찾아 다니며 다 축복해 주었으니 이제는 그곳의 산천초목도 한이 없을 것이다.

6천년 역사를 놓고 보면 자기의 생애는 하나의 점과 같다. 이러한 한 순간에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라.

어떠한 일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심정으로 가르쳐야 한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지역과 교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식구들이 선생님의 기준을 이루어 주지 못하면 선생님이 그 짐을 홀로 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