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48 to 14-151: 그 나라를 위하자

그 나라를 위하자
1964.09.23 (수), 한국 전본부교회

14-148
그 나라를 위하자
마태복음 6 : 27―

[말씀 요지]

이 땅에는 타락주권의 나라는 많지만 하나님이 소망하신 그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 역사를 통하여 시대를 움직여 나오셨다.

하나님은 하나의 개체를 통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다 주관하시고자 하는 소망으로 아담을 지었고, 완성을 향하여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에서 시작된 역사는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이것을 수습하고 연결시켜 나오는 것이 구원섭리역사이다.

14-148
그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아담은 모든 인간의 조상이기 때문에 아담 개인을 잃어버림은 전체를 잃어버림과 같은 것이다. 이를 다시 불러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세워질 그 한 분은 종족과 민족과 나라를 포기하고 잊어버릴 줄 아는,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라야 한다.

노아는 민족적인 환경에 처해 있었어도 거기에 속하기를 원치 않았고, 나라에 속해 있었으나 그 나라에 구애되지 않고 자기의 소망의 나라를 찾아 나갔다. 소망의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그는 갖은 시련과 역경을 거쳐 나가야 했다. 노아는 친척도 민족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 나갔던 사람이다.

노아에게 바랐던 하나님의 소망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개인적 환경을 굴복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춘하추동 하루도 빠짐없이 120년의 시련 과정을 넘는 그 고충이 어떠했겠는가? 가정이 그를 버렸으나 노아는 그 어떠한 화살도 다 맞아가며 120년을 뚫고 나갔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전에 먹고 마신다면, 그러한 것은 후에 다 탕감해야 된다는 원칙을 노아는 알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세워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하였다. 하란이 자기들이 가서 살아야 할 곳인 줄도 모르고 다만 믿고 순종하는 마음 갖고 그곳을 향하여 갔다. 바로에게 끌리어 가게 된 사라도 아브라함을 원망하지 않았다. 소망의 나라를 향해 가는 그들의 마음은 아무리 모진 핍박이 몰아쳐도 변함이 없었다.

야곱은 자기에게 내린 축복에는 소망의 나라와 민족이 약속되어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아무도 그의 강한 신념을 꺾을 수 없었다.

이렇게 뜻은 개인, 가정, 종족으로 넓혀져 우리의 선지들은 점차 세계적인 소망을 걸고 나갔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불신과 핍박으로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고 영육 아우른 소망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늘땅의 모든 장벽을 허물고 하나로 통일해 나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다.

이 땅을 중심하여 구성된 이념 국가는 망해도 천륜이 요구하는 이념국가는 기어코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담을 중심하고 바라시던 하나님의 소망은 아담 개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중심한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메시아가 그토록 이루려고 목적했던 나라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깨어졌을 때 이스라엘도 망했다. 다시 오시는 재림주님은 아담을 완성시키고 메시아(예수님)의 사명을 완성시킬 책임이 있다. 그는 아담을 완성시켜 아담을 중심한 종족, 국가, 세계를 완성시킬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질 때까지 제2의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하여 싸웠다. 예수님은 자기의 역사적인 사명을 인계시키기 위하여 12제자와 70문도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세계적인 이념을 가졌으면서도 그 나라가 원수의 나라였기 때문에 할 말을 다 못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기반이 없었으므로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14-150
예수님과 그 나라
땅에 불이 붙었으면 좋을 뻔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불이 붙지 않았다는 실패를 자인하는 서글픈 말씀이다. 결국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영적 구원의 소망만을 남기고 갔다. 이것이 아담 이후 두번째의 역사적 슬픔인 것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제2의 이스라엘을 세워 개인을 찾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적 기대를 세워 나오셨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이 과정을 거치기 위한 싸움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국 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천국을 이루는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은 모르고 있다. 책임지지 않고 편안히 가는 천국만 바라고 있을 뿐, 책임지고 이루어야 할 천국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통일의 역군들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 봉기하고 나섰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소망하신 제3의 이스라엘을 찾아 세워 나오시는 것이 오늘날의 섭리역사이다. 제3의 천국이념을 펼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되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애절한 심정을 토로하신 것이다.

나라가 없어 가지고는 고향이 있어도 진정한 고향이라 할 수 없고, 고향(연고지)이 없는 종족이 있을 수 없다. 비록 이스라엘이 배반했어도, 따르던 12제자와 사도들을 중심으로 재차 수습하여 섭리해 나오셨다면, 예수님은 돌아가시지 않았다.

지금 이 땅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으나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역사는 아담이 완성되어서 출발해야 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창조본연의 역사인데, 아담의 실수로 말미암아 슬픔의 역사로 출발되어졌다. 하나님은 이 슬픔을 청산하려고 하신다. 이것은 인간이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이 슬픈 역사를 청산하는 데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수 사탄을 완전 굴복시켜야 가능하다. 이 일을 원리를 아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해내야 된다.

우리에게 솟구치는 하나의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망의 가정과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가정과 나라를 얼마나 싫어했고, 그런 소망의 가정과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사람들은 ‘하나님, 저희 가정과 나라를 구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풍파에도 휩쓸리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제3 이스라엘을 창건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고 그 책임의 범위에 비례하여 시련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기독교 교직자들이 핍박해 왔지만 선생님은 마지막 한 날이 오기까지 묵묵히 참아왔다. 아까운 청춘을 바쳐가면서 묵묵히 참고 비장한 기도로써 그들을 대해 나왔다. 오늘날 선생님은 정성을 들이다가 영계에 간 영인들의 편이 아니고,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의 편이다. 원수의 세계에서 몰림을 받는 한이 있어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에 힘써 온 스승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된다.

소망의 천국이 없고 그 나라가 없는데 그 가정과 그 부모가 있을 수 없다. ‘너를 통하여 아담 개인을 찾고,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찾겠노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찾아오실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 앞에 실적 없는 내용만을 돌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14-151
우리의 사명
이제 뜻은 뜻대로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시는 메시아를 중심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강한 신념에 불탔던들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통일의 식구들은 그 나라를 세우는 것이 곧 나의 책임이라는 각오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통일교회 식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과연 6천년 동안 찾아온 역사적인 소망이 ‘나’인가, 하늘이 부르고 있었던 세기말적인 시대의 소망이 ‘나’인가, 암흑의 세계에 불을 비춰줄 자가 ‘나’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관 미만이요 여섯자 미만의 ‘나’이지만 내 등에 하나님과 복귀역사를 업고 나가야 한다.

사람이 백만 명, 천만 명 있으면 무엇하나!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더 귀하다. 하나님은 그러한 한 사람을 부르고 있나니 그러한 내가 되어 있느냐?

선생님은 역사적인 모든 곡절을 탕감하는 의식을 했다. 하나 되기 위한 마지막 의식도 끝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으로 되게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노아가 40일 홍수심판 후 땅으로 내려서던 승리의 쾌감, 아브라함이 이삭헌제에 승리한 쾌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오던 승리의 쾌감,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승리의 쾌감, 그 모든 것을 여러분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선생님은 이번 수련생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라고. 여러분이 어떠한 자리에 섰고 어떠한 무리를 대하고 있느냐에 따라 하늘의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바이다. 선생님은 수십년간 이 길을 걸어왔지만 그러한 염려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많은 피눈물을 흘려 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피땀을 뿌려나온 모든 것을 수습할 때가 됐다.

복수의 일념을 가지고 가야 한다. 먹는 것보다, 입는 것보다 먼저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 우리 대원들은 사회의 말단 사람들을 상대로 피눈물을 흘려왔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터전으로 중류와 상류로 연결시켜야 한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하여 나섰으니 영계를 동원하소서. 아버지여, 같이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뭏든 여러분은 연기만 내는 봉화불이 되지 말고 잘 비추고 잘 타는 봉화불이 되어야 한다.

‘눈물 흘리던 선조여, 선지선열들이여, 나를 협조하시오! 나와 함께하시오!’ 하고 외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정성과 덕성과 진실된 심정을 밑감으로 낚자는 것이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45년 동안을 거쳐오면서 원수가 많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나라와 그 의만을 추구했다. 그것이 선생님의 생애였다. 이제 하늘땅은 우리들로 말미암아 움직여 나갈 것이다.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세운 교회가 아니라 여러분이 창건한 교회로 말미암아 움직여 나가야 한다. 정성과 뜻을 가지고 선생님을 대신하여 삼천리 강산을 순회하기 바란다. 이 땅에 죽지 않는 씨를 심어 놓고 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아가기 바란다.

우리의 사명은 엄숙하다. 6개월의 6수로써 6천년의 역사를 탕감하는 뜻에서 내가 복귀의 한 고개를 넘는다는 엄숙한 사명을 가지고 힘써 일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