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38: 역사적인 골고다의 길

역사적인 골고다의 길
1964.08.18 (화), 한국 구진봉 성지(서울 북악산)

14-138
역사적 골고다의 길
[말씀 요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천주에는 과거와 현재를 두고 슬픔이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은 역사 이후 이 슬픔을 풀기 위해서 무한한 고초를 겪어 오셨다.

한 개체의 생명은 무한히 귀한 것이다. 이 생명의 귀중함은 천적 생활과정을 통하여서만 드러난다. 우리는 하루의 생활 속에서 참다운 나의 가치를 나타나게 할 수도 있고 또 그와 반대되는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참되고 가치있는 승리적 가치권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선의 가치를 여러분이 지니게 될 때 슬픔과 사망의 조건들은 여러분 곁을 지나갈 것이다.

아담 해와의 슬픔이 전체의 슬픔으로 남아진 것과 같이, 여러분의 기쁨이나 실수나 슬픈 것도 전체의 것이 된다. 하루의 실수를 일년에 회복할 수 있느냐 하면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선행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참된 만족은 오지 않는다. 그 선행이 개인에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서 우주와 천주까지 넘어설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질 때 참다운 만족이 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노아와 아브라함을 찾아 나온 것은 전체의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개인적인 슬픔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개인적인 제물의 길을 찾아가서 제물의 자리에 섰을 때, 비로소 하나님도 그 개인을 불러 제물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같이 수고하셨던 것이다.

노아가정의 실수는 한 사람의 잘못에 그치지 아니했고, 아브라함의 실수 역시 개인의 실수에 머문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실수와 잘못이 첩첩이 쌓이고 겹쳐서 실체의 제물로 예수님이 고난의 노정을 걷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슬픔을 더욱 가중시키게 되었다. 복귀의 길은 때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 간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침내 독생자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살해하는 사람들 앞에 서러움을 나타내지는 아니하셨으나 그 마음은 한없이 슬펐던 것이다.

복귀도상에 선 한국의 삼천만 민중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사탄편인 바로의 무리 앞에서 몰아내던 것과 같은 비참한 노정을 걸어야 한다. 이러한 자리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이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이 길은 곧 세계사적인 골고다의 길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는가? 예수께서 완전한 남성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완전한 여성이 나타날 수 없다. 예수가 완전한 남성으로 나타나도 사탄이 참소조건을 내세울 수 없을 때에 비로소 완전한 여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재림주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으로서 인류를 신부로 세워 그들로 하여금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게 하고 승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려하시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가 두 갈래로 갈라지니 한국도 이처럼 갈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제까지 반복되는 역사를 거쳐오면서 3수와 4수를 중심으로 분별해 왔다. 가인과 아벨이 갈라진 것같이 우리 교회도 갈라질지 모른다. 우리의 그룹이 둘로 갈라진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겠는가?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천륜의 원칙을 세우는 때가 와야 한다. 성경에는 맹세하지 말라고 했으나 우리는 맹세의 생활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심판은 말씀과 심정과 인격의 세 가지 과정을 거쳐서 하게 된다. 언제 하늘을 위하여 피골이 상접하도록 눈물을 흘려 본 일이 있는가? 말씀을 이루기 위한, 심정을 맺기 위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중심이 선생님이요, 선생님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큰 역사(役事)가 있을 때는 대이동이 벌어진다. 넘어가는 해를 따라가면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거꾸로 찾아가야 한다.

좀더 있어 보라! 더욱 큰 싸움판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 통일된 모습으로서 하나님을 찾아 세계무대를 향해 가야 한다.

여러분의 잘못이 후손에 이어지면 더 복귀하기 힘들어진다. 여러분은 완성을 이룰 수 있는 시기에 처해 있으므로 잘하면 완성을 하게 되는데, 만일 실족하게 되면 여러분의 후손들은 또 다시 소생 장성 완성의 길을 거쳐야 하니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시던 것과 같은 사랑을 받아 보았는가? 여러분은 시대적인 혜택으로 복된 자리에 있다. 아담 해와는 만물의 날, 자녀의 날, 부모의 날을 갖지 못하였으나 여러분은 그러한 모든 것을 가졌으니 복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아담 해와와 똑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복귀도상에 있는 그것이 복된 것이다.

이때는 하나님의 품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양자에서 참자녀로 바뀌어지는 때이니, 곧 골고다 산정을 넘어가는 때이다. 예수님은 3일을 거쳐 부활하여 하늘로 갔으나, 우리는 4수를 복귀하여 땅에서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뿌리는 밖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하루에 적어도 세 사람에게 전도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못했을 때는 세시간 이상 기도라도 해야 한다. 환경이 자기를 억제할 때에는 그 환경을 정복하겠다는 기도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민족을 살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