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01 to 14-105: 자연과 민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자연과 민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964.06.20 (토), 한국 동구릉(경기도 구리)

14-101
자연과 민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말씀 요지]

선생님은 어렸을 때 아름다운 새를 보면 그 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 새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디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까는지? 이러한 것을 며칠이 걸리더라도 샅샅이 뒤져 기어이 알아 내고야 말았다. 또한 풀도 수백 종류를 채집하여 어떤 것이 독초이고 어떤 것이 약초인가, 또 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열심히 연구하였다.

14-101
자연의 가치를 아는 사람
선생님은 자연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지으셨을까 하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도토리 나무나 여러 가지 풀잎을 보며 이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고 생각하노라면 이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가 한이 없었다.

여러분이 돌 하나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선생님은 뱀도 수없이 많이 잡아 보았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그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내용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이 갖는, 그 본연의 가치만 알아도 말할 수 없는 복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연이 나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자연을 볼 줄 모르는 것이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알면 바람 소리도 훌륭한 음악으로 들린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의 몸과 제일 가까운 것이 자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식하는 자연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한다.

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높은 것을 추앙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 석가, 예수님은 모두 산을 사랑한 분들이었다.

선생님은 명승지에 가게 되면, 그것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운세와 연결되게 한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초창기에는 산으로 많이 돌아다녔다.

한 나라의 산과 땅과 물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물은 어디에 가서 마셔도 옥수(玉水)이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복귀를 먼저 이루어 놓아야 한다. 우리는 외국에 나가기 전에 우리 나라의 자연을 깊이 사랑해 주어야 하겠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몸도 사랑할 줄 안다. 또 자기의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하늘도 칠 수가 없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자기가 태어난 이 땅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자연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실정은 불안에 가득차 있다. 이러한 환경은 누구나 다 싫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대단한 결의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놓아야 할 사람들이다. 기성 세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리고 애기들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금은 청년들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청년들은, 우리나라의 실정을 바라보면서 근심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입장에서 타락한 인간들을 볼 때에, 이들을 몽땅 없애 버리든가 아니면 물 속에 푹 넣었다 꺼내어 재창조를 해야 한다. 그냥 두면 아무것도 안 된다. 여하간 끝장이 나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로 지은 인간을 죽일 수 없는 입장이시다. 따라서 재창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수술을 하는 경우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외과 의사의 입장에 계시는 것이다.

14-103
민족의 책임을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자
지금 화농처가 커져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환자와 같은 나라가 있는데 이것이 한국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세번 이상 ‘죽겠다’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은 잘못된 말이다. 말이라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섭리역사상 혁명의 터는 불쌍한 자리로부터 닦아 나왔다. 눈물을 흘려서 안 되면 땀을 흘리고, 땀을 흘려서 안되면 피를 흘리며 나왔다. 눈물, 땀, 피 이것이 혁명의 순서였던 것이다.

어떠한 혁명의 시대가 되면 상류 계급은 도피처를 찾는데 반하여 하류 계급은 자기들의 것을 세우려고 한다. 여기에서 무엇인가 세우려 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그 나라는 흥하게 될 것이다.

개인이 패가망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3대 이상이 걸린다. 그러니 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고생을 시켜도 좀더 고생해야 되겠다는 사상의 소유자라야만 이 나라를 지도해 나갈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일으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악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더욱 사랑하신다. 애기 때부터 정성을 들여 길러 줄 수 있는 어버이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을 위하는 충신이 필요하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이러한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끌고 나왔다.

우리는 중 이상을 바라보고 나가되 중 이하를 알고 그들에게서 환영을 받아야 한다. 축복가정이 고생하는 것도 이러한 뜻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 불쌍해 보이면 삼천만의 자식 또한 불쌍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땅의 밑창을 보아 오셨기에 복귀역사가 있게 된 것이다. 천지의 운세는 올라가다가는 내려온다. 그리고는 다시 반동을 일으켜 더 높이 뛰어오른다.

전인류의 30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고기압은 저기압을 향하여 움직이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 나라는 저기압의 자리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사방에서 이 한국을 원조해야 된다. 한국은 도와야 할 곳이다. 지금은 이 나라를 위하여 다른 나라가 제물 이상의 생명을 바쳐야 할 때인데, 그러한 나라가 없으니 우리 민족이 이것을 해내야 되겠다.

우리는 이 민족에게 사상과 이념을 심어 주고 거기에 실천력까지 심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길러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해야 된다. 그래서 부모의 인정을 받고 형제의 공인을 받고 자녀들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 주는 데는 눈물과 피와 땀으로 주어야 한다.

이 민족 전체가 책임을 못 하면 소수의 무리라도 해야 한다. 이 소수의 무리가 책임을 해내면 이 민족 전체가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민족 전체가 자기들이 책임하지 못한 과거를 뉘우치게 될 때 그 소수의 무리를 추앙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떠한 것이냐? 여러분은 기관차가 되겠는가? 객차가 되겠는가? 물론 기관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객차의 꽁무니에 붙어서 바퀴를 거꾸로 굴리면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힘이 없으면 빈 바퀴라도 굴리며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 우리가 기관차를 끌고 가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힘을 가진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는 충동이 백 퍼센트 사무쳐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힘에 부딪치려는 동적인 충동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지금은 출세하지 않은 사람들이 편안한 때이다.

무엇이 되었든간에 동기부터 탈선해 가지고는 그 과정과 결과가 올바를 수 없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다 좋아야 한다. 아무리 잘 자란 풀포기라 하더라도 가을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그것은 열매를 맺은 가냘픈 풀포기보다 못한 것이다.

여기에 70세 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면, 그는 어린애에서부터 70세가 된 지금까지 일정한 방향으로 인생행로를 걸어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정한 곳에 매여서 가야 한다. 하나님을 중심한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찾을 때까지 그렇게 가야만 한다. 선생님은 지금도 젊었을 때에 하나님을 대하던 그 순수한 마음, 그 자세로 가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

14-105
3점을 유지하라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3점을 두고 직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해치는 악의 세계를 뚫는 송곳이 되어야 한다.

복귀의 길에는 에누리라는 것이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는 혼자서 왔지만, 갈 때는 혼자서 못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만 한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배반한 제자들을 찾아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강도 한 명만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슬픔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우리는 자신을 정비해야 한다.

우리는 나 하나를 시초로 해서, 30억의 전인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년 동안에 삼천만이라는 인구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떠나간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백년을 걸려 구원할 수 있는 것을 10년으로 단축한다면 우리는 이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계급을 초월해야 한다. 그리하여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겠다. 사람은 다 동등하다. 남을 차별하면 어느 한 때에 자기도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기가 번 돈을 그 나라 사람들에게 주었다면 그 나라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 볼 것이다.

세계의 모든 인류는 아담 한 사람을 복귀하기 위한 자료이다. 따라서 6천년의 역사는 아담 복귀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혈선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금년과 명년이 고비이다. 이제 3년노정이 끝났으니 남은 4년노정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쉰다.

지금은 조상들이 이 민족 복귀를 위하여 협조하는 때이다. 민족을 찾는 데는 어디까지나 넓게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사회를 찾아야 한다. 먼저 사회를 찾고 그 다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민족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 사회의 동향을 잘 파악해서 우리의 목적을 위하여 수습해 나가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