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15 to 13-326: 우리의 갈 길과 책임

우리의 갈 길과 책임
1964.04.14 (화), 한국 대구교회

13-315
우리의 갈 길과 책임
여러분들이 3년노정을 최선을 다하여 걸은 결과로 우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어느 단계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315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이 가시는 길
이제 우리는 3년노정을 마치고, 4년노정을 걷는 도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4년노정을 마치게 되면, 그때에는 부모님상을 주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복귀섭리 도상에 현저한 공적을 쌓은 사람에게 그러한 상을 주어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4년노정을 걷는 동안 뜻 대해,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표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많아서 이번에 수상자를 결정하는 데 상당히 고충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앞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더욱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상장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가 있는 힘을 다해서 충성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지나가도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충성한 것은 저나라에 가서 재산이 되느니만큼, 상을 받은 사람이나 안 받은 사람이나 더욱 힘써 나가 주기를 부탁합니다.

더우기 이번에 상을 받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모범적으로 활동하여, 우리 통일교회가 나가는 도상에 전통적인 기준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의 갈 길과 책임’이라는 내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도(道)를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애의 노정을 걸어가고 있지만 자기들이 가야 할 참된 목적과 방향이 어디인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회환경과 생활환경 속에서 도의 길을 찾아 나섰다고 하는 사람들도 역시 자기들은 제대로 간다고 하지만, 천륜이 바라고 인류역사가 바라는 최후의 목적점에 방향을 맞추어서 가고 있느냐 할 때, 그들 역시 참다운 방향과 목적을 알지 못한 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역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기를 원했던 그 목적점과 그 방향에 맞추어서 갈 수 있는 시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행복하다고 느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알고 있습니다. 이 방향은 여러분 각자가 가는 방향인 동시에 우리가 가는 방향이요, 이 민족과 세계 인류가 가는 방향이요, 온 땅과 하늘이 가는 방향이요, 천륜을 세우신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3-316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투쟁이 있다
이 방향에서 어긋나거나 이 방향을 잃어버리게 될 때에는 자기 개인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또 자기 자신이 파탄되는 것은 물론이요, 천주사적인 풍파가 일어나고, 방금 말한 것과 같이 전체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가는 길, 즉 우리가 가는 길은 역사를 대신한 길이요, 우리가 바라보고 나가는 방향은 역사의 흐름과 일치된 방향이며 동시에 그것을 수습해 나가는 길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목적을 향하여 우리의 전 생애 노정을 걸어 놓고 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로부터 출발하여 그 목적점까지 가는 길은 개인은 물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전체가 동원되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이런 방향을 향해 가는 도상에서 평탄함이 거의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이 방향에 맞추어 목적점까지 나아가는 데에는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투쟁, 가정적인 투쟁, 국가적인 투쟁, 세계적인 투쟁, 천주적인 투쟁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방향을 올바로 세워 나가야 할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도 아니요, 과거에 왔다 갔던 어느 성현이나 현철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어떤 한나라에 속한 공회의 지도자들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방황하고 있는 사회인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옳은 길을 간다고 애쓰고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핍박받고 몰림받고 쫓기는, 어려운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통일역군들의 어깨에 짊어지워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이 방향을 향해 가는 데는 반드시 투쟁이라는 두 글자를 생활의 목표로 하기 전에는 이 길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혹, 개인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였다고 해서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더 나아가서는 천주의 해원을 완성하여 아버지 앞에 드릴 때까지, 승리할 때까지 그 싸움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를 거듭하여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그때까지, 하나님이 온 천하를 향하여 승리자라고 선포할 때까지 그 투쟁은 종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세계적인 목적지로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언제나 세계적인 투쟁의 용사로서 나서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이 길을 돌파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가는 길에는 투쟁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투쟁의 한 목표를 향햐여 나아갈 때 승리라는 영광된 결과를 자기만의 것으로 삼고 가다가는 여러분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승리하였다고 해서 한 개인의 입장에서만 기뻐하다가는 앞으로 가정적으로 가야 할 투쟁의 노정에서 갈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넘어 천주사적인 투쟁을 거쳐 나가야 하느니만큼 자기가 현실적으로 어떤 실적을 거두었다 하여 거기서 기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3-318
상을 주는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오늘의 내가 개인적으로 승리한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적인 투쟁을 자극시키기 위한 계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2의 투쟁을 할 수 있는 자신을 확고히 세우지 않고는 아무리 기뻐했던 그 기쁨도 여러분과는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상을 받았다고 해서 여기서 기뻐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3년노정에 있어서 `내가 기억되었다’ 하는 조건입니다. 또 앞으로의 갈 길을 위한 하나의 권고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이것을 남은 4년노정, 전 민족적인 노정을 개척하는 데 싸움의 방패와 무기로 삼아 더 분발할 수 있는 힘을 내적으로 다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을 받았다고 기뻐했던 그것이 과거와 미래에 기여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상을 주는 목적은 어디 있느냐? 지난날이 기억될 수 있기 위해서 상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지난날에 대한 기억이 미래에 기여하게 하기 위하여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상을 받은 사람들은 민족적인 사명을 완결짓는 데 더욱 희생적이 노력을 경주하여 전체 앞에 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두에 서서 인류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우리 민족의 갈 길을 열어 주고, 인류가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자극적이요, 승리적인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을 받은 것이 큰 의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도리어 슬픔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그러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권고함과 도움을 받아서 애급을 떠나오게 될 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크나큰 기쁨이요, 소망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였을 때, 그것을 앞으로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다짐으로 알고 출발하였던 들 그들이 광야노정에서 쓰러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짐해야 할 자기 자신들을 망각해 버리고, 그것이 자신들이 머물 소망의 목적점인 줄로 알았습니다. 또, 지금까지 찾아온 방향의 목적점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오는 더 큰 싸움의 책임을 회피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 7족과 대결해 나가도록 이스라엘 민족을 내몰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고객하다가 망하였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 오고 승리가 오게 될 때에 그 승리가 어떠한 승리인가, 즉 가정적인가, 국가적인가 혹은 세계적인 것인가 하는 그 승리의 한계를 똑똑히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갈 길과 목적점이 어떠한 곳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기쁨이나 어떤 깨달음이 있으면 자신을 독촉하여 그것들을 미래에 시련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수습하여 놓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야 할 방향을 찾아 목적점까지 가기 위해서, 우리 통일교회가 국가적인 승리를 거쳐 세계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왜 투쟁을 해야 하느냐? 이는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유린해 왔고 지금 이 시대를 유린하고 있는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원수를 정복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13-319
우리가 투쟁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방향을 맞추어 목적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기준에서 세계사적인 원수와 투쟁하여 완전히 굴복시키고 세계사적인 기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적점까지 가는 과정에서 원수를 제거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천국을 재창건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 간 후에도, 목적점까지 돌파하여 승리하고 난후에도 우리에게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천지가 사탄에게 유린당해 왔고 사탄에 의해 조직되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제거해 버리고, 새로운 천주의 이념에 규합될 수 있게 천지를 재창건하는 일입니다. 그런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점에 이를 때까지의 투쟁기간은 원수로 말미암아 있게 된 기간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 특히 도의 길을 간 사람들이 슬픔의 길을 간 것이요, 지금 하늘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슬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슬픔의 길은 눈물의 길이요, 피땀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니 희생을 당하더라도, 죽음을 당하더라도, 형극의 사선을 밟고 넘어서라도 가야 할 비참한 노정이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목적하는 어느 한 때를 정하여 제거해 버리고 과거에 선조들이 수고한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 천지를 재창건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섭리역사의 목적지점에 거의 다 왔으니 이제부터 하늘땅이 공인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무와 사명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수고가 많았고 공적이 많았다 하여도 그것들은 사탄과 대결하여 투쟁하던 시대에 있어서의 공적이요, 지나가는 도상에서와 심판권내에서 이루어진 공적입니다. 타락한 입장, 즉 원치 아니한 권내에서의 공적이지 원하는 권내에서의 공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건하려는 새로운 천주의 이념세계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수를 무너뜨리던 그 이상의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사탄세계를 굴복시키던 이상 정성을 다하고 피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민족을 위한 새로운 의무와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시급히 하여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서 속히 이러한 목적을 향하여 나가려는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원수를 타파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목적하고 인류가 목적하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참다운 결의와 정성, 하나님 앞에 책임과 의무를 완수할 수 있는 그날을 그리워하는 마음, 어떠한 시련이 부딪쳐 오더라도 그 시련을 넘고넘어 가고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인생으로서 가야 할 길을 완전히 갈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그런 고개를 올라오는 길이었다면 앞으로의 길은 그 고개를 넘어 평탄한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13-321
3배 이상의 수고를 해야 할 우리
그러면 평탄한 세계에 가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이냐? 우선 비로소 내가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바라고 천주가 바라던 내가 된 후에 비로소 나를 중심삼은 가정이 시작되는 것이요, 본향이 시작되는 것이요, 우리의 국가가 시작되는, 거기에서 비로소 우리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것이요

이것이 오늘날 과거에 수많은 인간들이 가야 했던 인생의 목적점인 동시에, 현재 수많은 인생들이 바라는 인생의 목적점인 것을 알고 또 그것이 우리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빨리 끝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통일을 해서 내 고향 땅에서 부모를 모시고 참다운 효자 효녀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내가 흘리는 땀은 슬픔의 땀이 아니요 영원무궁토록 기쁨을 촉구할 수 있는 땀입니다. 내가 한 모든 수고는 슬픔의 수고가 아니라 행복을 촉구할 수 있으며, 만우주가 환희로, 영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수고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행로를 가는데 있어서, 또 우리의 책임과 의무에 있어서 이러한 자신이 되고, 이러한 가정, 이러한 사회, 이러한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수많은 인류가 바라던 책임과 의무를 감당했다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섭리하여 나오시는가?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의 길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도인들을 세워서 이 무지한 인간들을 도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영인들을 동원해 나오고 계십니다. 또 도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를 믿고 간 영인들과 , 지상에서 도를 추모하는 도인들이 하나 되어 수고하고 있습니다. 도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의 길을 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정확하게 그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향을 알지 못하고 몰려만 가고 있는 도인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느냐? 참다운 하나의 도의 길을 마련해 놓고 그들을 어느 한 때에 그 도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섭리를 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천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도를 수습하는 수고를 하시면서 새로운 도의 세계, 즉 인간들이 바라던 소망의 세계가 출발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들은 `역사적인 열매’라고 자칭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열매인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해야 되느냐? 믿지 않는 사람을 열매맺게 해야 되겠고, 믿는 사람들을 열매맺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천국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준비가 완결되었다는 입장에 서서 결실적인 존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사적인 책임을 지고 나가는 입장에 있다 할진대, 통일교회와 통일교인들은 어떠한 입장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느냐? 일대(一代) 뿐만 아니라 삼대(三代)까지 연하여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의 문을 두드리면 될 것이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때를 맞이하여 새로운 도의 길을 찾아 새로운 천주를 건설하는 책임을 하면 될 것이지만, 오늘날의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것들을 전부다 한꺼번에 해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어야 되고,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간 종교인들과도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추구하는 이념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이끌고 본연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3배 이상의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 사람들이 슬픈 자리에서 인생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 볼 때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러한 수고와 고통과 비참의 길을 가거든, 나는 아는 자리에 있으니 내 갈 길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여러분이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배 이상의 수고를 하여 책임을 지고 가야 할 길이니, 어느 한 때 쉴 새가 없고, 어느 한 순간이라도 희생하지 않고는 갈 수 없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온유하고 겸손하게 `내 멍에가 무겁지 않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3-323
3배 이상의 책임을 완수하려면
사랑을 위주로 하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간곡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참다운 부모의 마음인데, 자식들이 짊어진 짐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가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것이요, 더 간절한 마음이 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받아야 할 입장에 계시지만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불쌍한 사정을 느끼는 그 마음에서 더 큰 사랑의 힘이 폭발되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한한 짐을 지고 가면서도 오늘날까지 이 고통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3배 이상의 책임을 해야 될 것인데, 어떻게 이 길을 가야 될 것인가? 이 길은 자기 사정을 보다가는 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입장에 서야 하느냐? 자기의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비참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기준에서 나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어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보다 3배 이상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통일교인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넘어가는 사람들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시련자로 알아야 됩니다. 탕감복귀섭리를 위한 준비기반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반의 노정을 가야 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저와 나를 비교해서 저는 비참한데 나는 그렇지 않다. 혹은 나는 비참한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다른 어떤 사람을 자기와 비교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어려운 시련과정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나님은 자녀의 입장에 있는 불쌍한 인간들이 크나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크나큰 고통 길에 서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는 비록 타락의 후손일망정 하나님은 원칙적이시요,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계시기에, 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계시기에 그가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사랑을 마이너스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고통이 심하고 그가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더욱 애절하게 더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의 마음도 그렇거든 본연의 하나님의 마음은 그 이상입니다.

그가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주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마음을 갖고 주고 싶은 마음에 허덕여 나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6천년 동안 고난의 노정을 걸어 오시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수고해 나오셨지만, 당신이 잘하여 책임을 다 했다는 인식을 갖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받으려 하고 자기 중심삼고 인연을 맺으려고 하기 때문에 지치고 막막하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인간이, 축복을 받고 행복을 누려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던고? 소망의 길, 승리의 인생길을 가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패배의 길,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고? 인간들이 그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애절한 마음을 갖고 마음 속에서 긍휼의 심정이 솟구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가 가는 길이 고생의 길일지라도 그는 거기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감사하는 생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가기 전에는 여러분은 지금 3배 이상의 책임을 짊어진 이러한 도상에 있어서 지치기 쉽고, 뒤를 돌아보기 쉽다는 것을 이 시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이 길을 틀림없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오관이 요구하는 것과 감정까지도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시적인 곡절의 흐름이 폭풍우같이 몰아치더라도 그것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신념이 서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위험과 공포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없을 때에도 그런 신념은 서 있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서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몇 백만 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군이 큰 싸움을 준비할 때 그 마음에 이미 적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에 차 있지 않으면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6천년 역사를 유린해 온 대원수 사탄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민족, 국가적인 시대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이렇게 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우리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13-325
하나님에 대한 참된 모심
우리는 지금까지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 왔습니다. 나는 타락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나입니다. 우리 가정도 타락한 세상에 있는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본향 땅에서 사는 것, 본향 땅에서 부모를 모시는 것, 본향 땅에서 형제와 더불어 사는 것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본향 땅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모시는 데는 어떻게 모실 것이냐? 홀아비로 모실 것이냐? 지금까지 살아오던 그런 비참한 환경에서 모실 것이냐? 지금까지 나를 찾아 오기 위해 수고하신 아버님인데 또다시 내가 시중을 받는 입장에서 모실 것이냐, 내가 시중을 해 드리는 입장에서 모실 것이냐? 어느 자리에서 모실 것이냐…. 내가 시중을 받는 자리에서 모셔서는 안 됩니다.

내적인 면에서는 모든 시중을 하나님께 들어드리고 이념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중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적인 모든 것을 수습해서 하나님 앞에 잘 돌려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붙들려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적으로 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수습해야 됩니다. 개인을 그 이념에 맞게끔 수습하고, 가정을 그 이념에 맞게끔 수습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그 이념에 맞게끔 수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림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우리들 서로간에 식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로 식구라 부르고 있지만 현재의 처한 자리는 식구라는 명사를 지니고 살 수 있는 발판이 못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향 땅을 찾아가야 하고 본향의 나라와 본향의 세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무엇을 할 것이냐? 그곳에서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돼야 합니다. 아무리 지금 효도를 하고 충성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때 가서 효자 효녀와 충신 열녀의 명분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 세월아 어서 지나가라. 지긋 지긋한 고생 길아 어서 지나가라’고 하면서 가야 하겠습니다. 내 개인에게 부딪쳐 오는 고생 길은 내 개인에게서 한번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또 `원수의 깃발을 들고 나오는 사탄아! 내 가정에 부딪쳐 오는 시련이 지나가면 너는 마지막이다. 우리 종족 앞에 시련을 주던 사탄아! 네가 주는 시련이 우리 종족을 지나가게 될 때 너는 마지막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민족과 국가에 부딪쳐오는 사탄에 의한 모든 고통도 우리를 지나가면 마지막이요, 아무리 치열한 고통이 있고 아무리 비참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소망하고, 내 가정이 소망하고, 내 종족, 국가, 세계가 소망하는 그 소망의 마지막 점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기뻐하며 즐길 것입니다. 새로운 천지에 들어가서 지상에 천국을 창건하여 수억만 인류와 함께 살 것입니다.

13-326
최후의 싸움을 위해 준비하라
그러면 역사적인 한을 해원하고 개인적인 승리, 가정적인 승리 혹은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승리를 해 놓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지상천국을 창건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문명사회 이상의 아름다운 지상천국을 건설하여 우리 후손들이 찬양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 가야 할 길이요, 마지막으로 남아진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리워해야 합니다. 청춘의 사랑 같은 것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세계적인 복귀의 기준을 세워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던 이상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사는 지상천국을 창건하는 역군이 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때에 지금의 굶주림보다도 더한 굶주림이 있더라도, 소망의 나라를 건설하는 창건의 역군으로서 싸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도상에서 개인적인 슬픔에 부딪히게 될 때에도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 일할 수 있는 참다운 내 자체를 세우기 위하여 준비한다는 신념을 갖고 나아간다면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점에 도달하기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지금부터 준비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민족 복귀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4년노정을 걸어가게 됩니다. 만일에 이 4년노정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면 우리 민족 삼천만 민중을 거느려서 복귀 건설에 참여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고생하고 시련받던 그 이상의 고통이 오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 그 싸움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공적으로 나서는 것을 영광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탕감의 노정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3년 노정을 지나면서 여러분들은 불쌍한 이 민족을 대신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또다시 넘어지면서라도 달려가야 합니다. 선의 세계를 건설하는 역군으로서 준비하고 연단하는 시련 도상에서 사탄세계로부터 참소받지 않는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연단받는 과정에서 세운 전통을 새로운 천국이념의 세계에서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전통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고, 인생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늘 앞에 충성하기를 바라고, 하늘이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기를 바라면 바랄수록 고통이 뒤따르고 시련이 뒤따르더라도 그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미래에 만인류가 내 가치를 찬양하고 만우주가 감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행복의 조건을 내가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단단히 준비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