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80 to 13-321: 참부모와 참자녀가 가야 할 길

참부모와 참자녀가 가야 할 길
1964.04.12 (일), 한국 대구교회

13-280
참부모와 참자녀가 가야 할 길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은 다섯 번째 맞이하는 부모의 날입니다.

부모의 날의 이념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념 가운데 중심이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 만물을 주관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목적도 바로 참부모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13-280
부모의 날과 하나님의 섭리
원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려면 부모의 날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날은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는 기쁨의 날인 것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부모의 날을 하늘도 잃어버렸고 땅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래 계획하셨던 바를 이루시기 위하여, 부모의 날을 찾으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경륜 해 나오신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하려면 먼저 참부모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 참부모는 역사를 심판하고, 현재를 주관하고, 미래를 개척하셔야 할 중심존재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선망해 온 것도 참부모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나셔야 할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만물을 대신하여 사탄세계와 싸워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을 수습하고,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을 괴멸시키셔야 하며, 영계와도 대결하여 수많은 영인들까지 주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를 구축해야 할 분입니다. 참부모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복귀하시기 위해, 만물로부터 인간, 하늘까지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지금까지 참부모를 보낼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복귀원리를 통하여 참부모가 나타나시기 위해서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어야 하고, 참다운 아들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참다운 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귀역사노정을 보면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서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자녀의 시대를 거쳐 부모의 시대까지 복귀해 나오는 동안 영계에 있는 영인들도 협조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배웠습니다.

외적으로 한 국가의 기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발판을 갖추어지기 전에는 참부모가 이 땅에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아브라함을 거치는 2천년의 섭리역사 기간이 있은 후 야곱으로 하여금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형성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까지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 오면서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사탄과 대결하여 이겨야 하고,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하고, 직계 아들딸의 입장에서도 하나님 대신 사탄세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부모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역사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의 입장을 복귀하고, 양자의 입장을 복귀한 터전 위에서 직계 아들딸의 입장을 복귀하여, 즉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은 후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시려는 것이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이었습니다.

13-282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하신 종의 기반이 무너졌고, 양자의 기반도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종의 입장에서 싸워 승리하시고, 양자의 입장에서 싸워 승리하셔서 직계 아들의 입장으로 나아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입장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양자의 입장과 직계 아들의 입장을 거친 후, 이스라엘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놓고 가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었습니다. 또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하셔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전체적인 기준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영계를 중심하고 참부모의 인연을 개척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개인적인 자리, 가정적인 자리, 민족, 국가적인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늘 뜻을 대하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를 세워서 지금까지 돌아 돌아 나왔다는 것을 뜻을 안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적인 시대를 맞이하여 하늘은 기필코 약속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끝날이 되면 신랑 되시는 주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를 택하셔서 참다운 승리의 기반을 닦으실 것입니다. 참부모의 자리는 본연의 창조목적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닦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간 싸워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복귀섭리역사는 이 참부모를 찾기 위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참부모는 6천년 섭리사 전체를 대신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참부모를 찾지 못한 것이 인류의 전체의 슬픔을 대신하고, 전체의 고통을 대신하고, 전체의 비애를 대신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역사는 무슨 역사냐 하면, 참부모 복귀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부모를 복귀하지 않고는 참다운 자녀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세우기 전에 참다운 가정과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처음으로 참부모의 영광으로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참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즉 참부모는 역사적인 결실체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역사적인 결실체로 서시기 위해서는 일면적인 승리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사명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명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육적으로는 아들의 입장을 복귀하는 노정을 거쳐 나가야 했고, 영적으로는 부모의 입장을 복귀하는 노정을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양면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여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기점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기점은 개인적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고, 가정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고,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고, 국가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영적 육적으로 참부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13-283
예수님의 영적 기반을 상속받아야 할 다시 오시는 주님
본래 참부모는 창조원리로 보면, 영적 육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참부모가 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도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영적인 부모의 입장을 복귀해야 되고, 육적인 부모의 입장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래서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영계에 가셔서 무엇을 하셨느냐 하면,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영계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고, 유린당하지 않는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영적인 사회 국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영계에서 섭리해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부 영적 부모와 인연을 맺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모든 축복을 상속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이 영계에서 닦아 놓으신 영적으로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적인 기반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거치지 않고는 참부모의 인연을 이 땅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영적인 상속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주님에게 영적인 기반을 상속하시게 될 때 거기에 하나 되면 지상에서 상속의 기준이 닦여질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이런 기준을 세워 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승리의 터전이 오시는 참부모 앞에 고스란히 옮겨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다시 오시는 참부모는 재차 영적 상속의 기준을 복귀하고, 육적 상속의 기준을 복귀하는 투쟁역사를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섭리하신 것은 오시는 참부모의 터전을 마련하고 당대에 승리의 기반을 닦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땅 위에 있는 성도들이 영적 부모의 명령에 일치 단결하여 따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명령에 보조를 맞추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예수께서 닦아 놓은 영적 기반을 다시 오시는 주님께 상속하는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참부모가 되실 분은 다시 영적인 세계에서 개인적인 시험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시험을 당해야 합니다. 그 시험을 이기지 않고는, 내적 승리의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지상에 실체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울 수 없기에 내적인 싸움을 해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원리란 무엇이냐? 영적인 세계에서의 싸움, 즉 내적 십자가의 고비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또, 역사적으로 저끄러졌던 모든 슬픈 일들을 복귀하게 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영적인 기준에서의 승리를 지상에 연결시킬 수 있는 실체가 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2천년 전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출발하려 하셨던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참부모를 중심하여 영적인 세계와 실체세계에서 싸움을 전개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지상에서 그런 싸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3-285
오실 참부모가 거쳐야 할 시련
참부모는 두 분이 있어야 됩니다. 두 분이 없으면 참부모의 기준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웠다 하다도 지상에 실체의 참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실체세계에서 승리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계에서 승리의 조건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지상에 참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 영적 세계의 발판에 해당되는 발판을 이 지상에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참부모는 이것을 위해 생명을 바쳐, 땅과 하늘을 대신하여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기간이 40년 기간이란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40년 기간에 오시는 참부모는 어떤 싸움을 거쳐야 하느냐? 우선 영계에서 영적인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상에서 실체적인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중심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영육 합하여 참부모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6천년 섭리역사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에 부모의 날을 설정했는데, 그 날은 어떤 날이냐? 영육 합하여 참다운 승리의 기점을 잡은 날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출발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하루에 지나지 않고, 그날의 인연은 부분적인 인연에 지나기 않지만 이 인연은 천주사적인 인연을 거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날을 기점으로 하여 영계와 육계에서 동시에 계획을 실천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영계와 호응할 수 있는 기반, 비로소 하나님이 싸우실 수 있는 터전이 닦여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의 기반이 닦여졌기 때문에 여기에 일치되는 가정적 기반, 종족적 기반, 민족적 기반, 국가적 기반, 세계적 기반만 닦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로 전체적인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시고 낙원에 가셔서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수습하여 영적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승리의 판도를 지상에 닦을 수 있는 때가 언제냐 하면, 4년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4년노정 동안에 영계와 육계가 일치하여 승리의 기점을 세우는 날에는 온 세계가 인류가 낙원 이상의 영계로 행군할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오시는 참부모는 개인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단계에서 세계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되고, 가정적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단계에서 세계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되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십자가를 져야 하는 단계에서도 세계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13-286
3년·4년·40년노정의 의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야곱은 에서와의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귀의 조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라반의 집에 가서 하늘이 협조하는 가운데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가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후 야곱의 후손은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 사탄세계인 애급으로 들어갔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하늘의 협조로 구출돼 나와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가나안 7족을 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귀노정 40년을 거쳐 나가면서 비로소 사탄세계에 대해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40년 광야노정 이전에는 3일노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3일노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가나안 복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또다시 40수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복귀섭리가 이런 노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생님도 40년 노정을 거친 후 3년노정을 걸어야 하고, 4년노정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3년노정을 걸었고, 또다시 4년노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3년노정과 4년노정을 합하면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복귀역사를 종결짓고 하늘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원래는 33세부터 7년노정을 걸어서 하나님이 바라는 부모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서부터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워 40세에 모든 것을 종결짓고 하늘의 뜻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사명이었으나 예수님이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 뜻은 그대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참부모가 내적 외적 싸움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기에 40년 준비기간, 혹은 투쟁기간을 거쳐 가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그 40년 기간이 준비기간이나 내적으로는 투쟁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영적으로 승리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비로소 지상에 영육을 합한 실체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참부모가 중심이 되어 가는 3년노정을 거치고, 만물복귀의 기간 즉, 사방성을 갖추기 위한 4년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노정으로서 탕감복귀를 종결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찾기까지의 역사노정을 놓고 보면, 3년노정, 4년노정, 40년노정은 짧은 노정이지만,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전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요, 역사적인 분함을 총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요, 역사적인 십자가를 전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슬픔과 고통과 분함에도 굴복당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참부모의 날, 참무모의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참부모의 인연을 대신하여 뜻을 책임지고 받들어 나오는 우리 통일교회는 그래서 이런 시련을 자초해서 당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탄세계와 분별된 자신을 세우고, 참부모가 승리의 한 본보기를 취해 사탄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참자녀의 기준을 세워 놓지 않고는, 종족 민족 국가 기준을 세워 놓지 않고는 참부모에 대한 본연의 뜻을 지상에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나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여러분은 참부모의 개인적 대신자요, 가정적 대신자요, 민족적 대신자요, 국가적인 대신자들입니다. 이런 부모의 대신자로서 지금까지 남한 각지에 나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무대를 향해 나가 책임지고 싸워야 하는 것이 여러분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영계와 육계의 슬픔이 무엇이뇨? 본래는 참부모가 이 땅에 나타나면 그날부터 하늘 땅이 평화를 노래해야 되고, 온 천주가 행복권내에 들어가야 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지상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은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나가는 도상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40년노정을 지나고 3년노정을 지나 가나안 7족을 대할 수 있는 4년노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나안 7족을 대신한 한민족을 어떻게 복귀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13-288
부모복귀의 어려움
한국복귀를 중심삼고 가는 여러분은 개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인만이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복귀를 중심삼고 가는 여러분은 참부모를 대신해서 가는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족적 민족적, 혹은 국가적인 참부모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르게 참부모를 대신해서 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는 세계적인 영적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는 참부모의 승리의 기준이 세워졌기에 지상에 참부모의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여러분이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할 참부모의 책임을 대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면에서 설명하면 여러분이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준을 향하여 간다면,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으로 천주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주님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영적으로 개척하고, 실체적으로 승리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복귀의 어려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늘과 땅과 인간을 돌아보게 될 때, 하늘이 어느 한때 승리의 참부모를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땅이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 도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만 모시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참부모를 모신 다음에는 참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 준비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참부모 앞에 참자녀로 서기 위해서는 자녀의 개인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가정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종족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국가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복귀노정과 자녀의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인 복귀노정을 완결하여, 부모와 자녀가 일체가 되어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비로소 민족복귀를 종결짓고 세계적인 무대를 향해 새로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하늘의 6천년 복귀역사를 보면, 6천년 복귀역사는 부모복귀역사인 동시에 자녀복귀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을 건설했으면 그 승리를 본받아 자녀도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을 건설해야 되겠고, 부모가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조성했으면 그 승리를 본받아 자녀도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조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으면 자녀도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의 승리의 터전과 자녀의 승리의 터전이 일치해야 비로소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 국가적인 복귀의 기준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3년노정을 걸어 나오면서 정한 표준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복귀의 길을 가자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은 자녀의 입장에 서 있지만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념을 중심하고 통일교회를 볼 때, 축복받은 가정들은 하늘의 종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요, 축복가정을 중심으로 전체 식구들은 하늘의 민족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삼천만 민족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민족기준 뿐만 아니라 종족기준, 가정기준, 개인기준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적인 기준이 횡적으로 전개된 입장에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여러분을 보면 아직도 출발할 당시의 모양이요, 여러분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방식도 출발할 당시의 그 방식입니다.

13-290
통일교회의 사명
여러분 자신은 올바른 승리의 터전을 닦지 못한 개인이지만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참부모와 일치된 조건만 세우면 개인적 승리, 가정적 승리, 종족적 승리, 민족적 승리, 국가적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간이 7년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면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는 첫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만물을 주관하고, 하늘의 가정을 세워 하늘 땅을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주권을 세우고, 하나의 백성을 세우고, 하나의 영토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영세 무궁토록 안식하실 수 있고, 거기서부터 심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게 될 때, 예수님은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보내진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반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으로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모시는 입장에 있었느냐?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영계와 실체세계를 대표하는 중심이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과 하나된 입장에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고, 참부모의 인연을 찾아 세워야 비로소 세계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며, 통일교회에 입교한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 있느냐? 선생님을 중심한 이 통일교회에 불려온 여러분은 서러운 6천년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실체적으로 전개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무슨 결심을 해야 할 것이냐? 우리가 가야 할 목표는 어디이냐? 세계적인 기반 위에 참부모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참부모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아직까지 슬픔과 고통과 눈물이 남아 있는데, 이것들을 우리가 하루 빨리 청산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맡고 있는 책임이요,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 가야 할 길을 나섰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 나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도 그래야 하고 몸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13-291
참부모에 대한 참된 모심
이제 우리가 품어야 할 소망이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시는 참부모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것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모시는 데는 승리의 터전이 이루어진 후에, 만민이 우러러보고 만민이 공경하게 된 자리에서 모시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선조들은 한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진정으로 모시는 것은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자리에서 모시려고 하기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모시는 참효자 참효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참효자 참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 낙망할 수 있는 자리, 비참하여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늘이여, 나를 인도하시는 하늘이여, 참부모님은 예수님보다도 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니, 부모를 모시는 나로서는 어떤 가중된 십자가를 지게 되더라도 당연합니다. 나는 그것을 찬양하오니 하늘은 나로 말미암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미쳐지는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하늘 앞에 짊어지우지 말고 스스로 탕감하고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기준에서 개인적이 부모의 승리의 인연에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이 마련된 그 사람들이 축복을 받아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 것인데, 그들이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닦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들이 아무리 가정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어느 한때 그들이 참부모를 모셔 보았느냐 할 때 모셔 보지 못했다면 역사적인 한이요, 하늘의 한이요, 천주의 한이요, 인류의 한이 되는 연고로 가정적으로 부모를 모시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거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후회하고 슬퍼할 일이 있더라도, 그 슬픔을 하늘로 돌려버리는 부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아직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시고, 참부모가 아직까지 더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지고 있는 이 십자가는 응당 져야 할 것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슬픈 자리에서 부모를 모시고, 어려운 자리에서 부모를 모시더라도 부모를 박대하고, 부모를 슬프게 해드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적으로 부모를 모신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통일교회는 축복가정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있습니다. 왜 축복가정들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놓았느냐?

13-293
축복가정들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보낸 이유
하늘은 삼천만 민족과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섭리하시고, 참부모는 이 삼천만 민족 삼천리 반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는 참부모님을 삼천리 반도가, 모든 마을 마을이, 골짝 골짝이, 산과 들은 물론이요 전부가 모시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를 모시는 것이 역사적인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탕감기준을 세우고 가정적인 탕감기준을 세워 참부모의 대신자로서, 그 마을과 부락이 후회없이 모시고 싶어할 수 있는 참부모님의 실체 대신자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신 참부모는 물론 중심의 자리에 계셔서 영적으로 전부와 관계를 맺으시지만 실체는 하나이시기에 전체를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실체를 대신하여 만민을 대하는 입장에 세워진 것이 축복가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에게는 이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적인 십자가는 지방에 널려 있는, 참자녀의 입장에 있는 축복가정들이 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전체가 하나의 종족적인 발판, 민족적인 발판이 되어야만 하늘의 역사는 이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늘 앞에 감사함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감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종족을 대표해서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를 대표해서, 더 나아가서는 삼천만 민족을 대표하고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그 가치를 잊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참부모가 지상에서 해야 할 책임을 상속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왜 그것을 상속받아야 되느냐? 축복가정들이 민족복귀의 과정을 거쳐 나가고 있다면 참부모는 세계적인 복귀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한 단계 앞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복귀의 승리적 기준이 세워지지 않으면 참부모는 세계적이 노정을 갈 수 없으므로 참부모님이 세계적인 노정을 가시게 하기 위해 민족복귀의 책임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죽기까지, 이 민족의 한이 제거될 때까지 민족복귀의 책임을 지고 가야 됩니다.

오시는 참부모는 슬픈 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눈물로 찾아갈 것이요, 피땀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참부모의 대신 실체가 되어서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참부모 대신 사탄세계로부터 얻어맞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원수를 굴복시키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민족에 대한 통일교회 교인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고개만 넘어가면 됩니다. 오실 예수님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4천년 동안 준비시키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이 민족이 문제입니다. 책임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 민족이 문제입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문제가 아니요, 오늘 국내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문제가 아니요, 30억 인류가 문제가 아니요, 삼천만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보면, 전세계에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것이 복잡하게 내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하여 바로 세우는 날에는 이것은 세계사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은 이 땅의 어떠한 지도자로 인해서는 살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은 참다운 아들딸이 아니면, 더 큰 자로 세우려는 하늘 뜻을 대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이 민족의 살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3-294
천주적인 부모의 날이 되어야
우리가 지금 개인적인 생활을 무시하고 가정적인 생활을 무시하고, 사회생활을 무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전부 이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이 민족을 찾으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 민족으로 하여금 승리의 참부모를 모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로부터 참소받지 아니하고, 하늘을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하여 국가기준 위에서 만천주 앞에 효자 효녀로서 자유천지를 이루어 참부모를 참다이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슬픈 자리에서 모셨고, 고통의 자리에서 모셨지만, 이제부터는 기쁨의 자리에서, 자유로운 자리에서 모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함께하실 수 있어야만, 우리가 기뻐하면 하나님이 `오냐, 네 기쁨이 내 기쁨이다’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온 인류가 `당신들의 감사는 우리의 감사입니다’라고 하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온 정성을 다하여 전도하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한국을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투쟁하는 목적은 겹겹이 한국을 포위 공격(선교)하려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부모의 날인데, 이 부모의 날을 여러분이 진정으로 여러분 자신의 부모의 날로 세워야 되고, 여러분 가정의 부모의 날로 세워야 되고, 사회의 부모의 날로 세워야 되고, 국가의 부모의 날로 세워야만 세계의 부모의 날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계의 부모의 날로 세워 가지고 천주의 부모의 날로 세워야 원래 하나님이 참부모를 세우시려던 창조이념이 완결되는 것이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날을 세우지 못했던 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온 천상 천하에 부모의 날을 세워야만 복귀의 한이 완전히 해원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웠지만 개인적인 부모의 날로부터 가정적인 부모의 날, 민족 국가 세계 천주적인 부모의 날로 세워져 있지 못하고 자녀의 날도 그렇습니다. 만물의 날 역시 그러한데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이 세계성을 지니고, 승리했다는 기준 앞에 주관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야 비로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목적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 비로소 부모의 날이 인간의 부모의 날이 되는 동시에 하늘의 부모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도 인간의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이 되는 동시에 하늘의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비로소 하늘로부터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이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우고, 가정적인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우고, 민족 국가적인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한 국가의 기준에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설정해야만 이 날들이 그 국가의 중심 날이 되고 세계적인 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4년노정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귀중하냐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전도 나가 있을 때, 언제 농사짓는 농민들을 위해 참부모의 대신 입장에서 땅을 갈고 농사를 지어 주었습니까? 언제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며 길을 걸어 보았으며, 언제 부모를 모시고 이 마을 집집, 저 고을 집집, 이 들, 저 산천을 돌아보았습니까?

13-296
하나님과 참부모는 우리보다 앞서 가신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방에 나가서 참부모의 기반을 닦아야 하겠습니다. 참부모는 하늘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부모보다 먼저 참부모의 갈 길을 닦으시고, 참부모는 여러분이 갈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부모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시는 참부모보다 한 단계 앞서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보게 될 때 복귀기대섭리시대, 복귀섭리시대, 복귀섭리완성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참부모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또 참부모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후손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준도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천주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서면 참부모는 세계적인 기준을 넘어서고, 하나님은 천주사적인 기준을 넘어서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위주해서 온 인류가 천주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두 단계 떨어져 있습니다. 두 단계 떨어져 있는 여러분은 그래서 낙망하고 지치는 입장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나를 위해 참부모가 가시고, 그 참부모 앞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수고와 참부모의 수고는 어떠한 것으로도,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수고입니다. 그런 빚을 지고 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참부모가 상속받고, 참부모의 뜻은 여러분이 상속받아 가지고 그 전통적인 사상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전통적인 사상은 무엇이냐? 인간이 원수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이 원수 사탄의 혈통을 제거한 후, 하나님을 중심하고 참부모를 중심한 혈통적인 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심정적인 일치를 기반으로 해서 하늘의 혈통을 받아 하나님을 뿌리로 하는 나무의 하나의 가지가 되고 잎이 되고, 하나님 대신 실체가 되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지상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귀의 역사가 추진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복귀역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사명을 못 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이 땅을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전세계적으로 시대적인 혜택권내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전세계가 한 시대권내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개인적인 시대는 지나갔고, 가정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종족 민족 국가적인 시대도 지나가는 때가 되었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이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에 소생기준은 자동적으로 수습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의 인연 앞에 화할 수 있는 모심의 생활과 참부모의 심정일치, 생활일치, 행동일치, 목표일치를 이루어 나가게 되면,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인적인 시대를 넘고, 가정적인 시대를 넘고, 종족 민족 국가적인 시대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광야노정을 걷고, 요단강을 건넜더라도 가나안 7족과 싸우는 도상에서 쓰러지면, 그것은 승리의 죽음이 못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7족을 굴복시켜 놓고, 거기에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 놓아야 하나님 앞에 세움 받을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원에 머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치더라도 이 기준을 넘어서 지치면 됩니다. 낙망하더라도 이 기준을 넘어서 낙망하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넘어가는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민족을 향하여 넘어가고, 국가를 향하여 넘어가는 시대에 처해 있기 대문에 이 4년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기간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고한 자체가 열매맺을 수 있는 기간이요, 6천년 역사의 전체가 열매맺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까지 선생님이 싸워 나오던 전체가 열매맺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이 기간을 보내야 하겠는가? 나를 대신하여 이 민족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겠느냐? 여러분은 이 민족의 슬픔을 행해야 합니다. 이 민족 가운데 어느 누가 당했던 슬픔보다, 어떤 선조가 당했던 슬픔보다 더한 슬픔과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의 환난, 즉 개인적인 환난, 가정적인 환난, 사회적인 환난, 국가적인 환난 전부를 우리가 책임져야 됩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일념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받아들이고 저것은 버려야 되겠다는, 선을 위해서는 본이 되고 악은 심판하겠다는 신념이 여러분의 생활에서 철두철미해야 되겠습니다.

13-298
민족의 환난을 책임져야 할 통일식구들
만일 여러분의 전도 임지에 선한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은 그 선한 사람편에 서야 합니다. 또 억울한 입장에 있는 사람, 슬픈 사정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과 같이 눈물을 흘려 주어야 되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고통에 동참할 줄 알아야 됩니다.

아직 통일교회 무리 가운데 뜻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섭리의 뜻 앞에 접붙임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한국의 비참한 사회상을 주시하며 가야 됩니다. 그런데 내 한 몸으로는 전체를 대신할 수 없으니, 사회의 비참한 모양이 통일교회의 생활 무대에 나타냐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그들 대신 책임을 지고 비참한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일치 단결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노소를 막론하고 다른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같은 길을 가야 합니다.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도 그와 같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 일선에 서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적으로 일선에 나가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든가, 외적으로 나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도와주든가 해야 합니다. 즉, 일선에 나가 싸우는 아벨적인 식구들에 대해 가인적인 입장에 서서 그들을 모시든가, 기도로 영적인 면에서 힘을 플러스시키든가, 외적인 면에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든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데, 지금 침체 상태에 머물러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우리가 이와 같이 합동으로 집회를 하는 목적은 앞으로 해야 할 공격을 놓고 여러분을 훈련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신앙의 도성에서 활동함으로 말미암아 세계 전도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굶주려 있을지라도 세계 인류를 위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슬픈 입장에 있더라도 이 민족을 위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체적으로 줄 수 없다면 영적으로라도 그들이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적으로도 즉 실체적으로도 줄 수 없고, 내적으로도 즉 영적으로도 줄 수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든지 외적으로든지 줄 수 있어야만 여러분은 이 운세권 내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슬픈 생활환경 가운데 놓여 있더라도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지역에 고생하는 우리 축복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개인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민족을 대신한 가정입니다. 고생하는 개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은 민족을 대신해서 고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더라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탄편, 악한 편에 재물을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 먼저 주고 나서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생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생활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원칙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선두에서 십자가를 지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이상 고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이상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삼천만 민족을 바라볼 때, 그들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산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즐거운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이 볼 때에는 외적인 면에서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고, 내적으로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외적으로도 불우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고, 내적으로도 불우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추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줄 수 있고 땅을 대신하여 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할 기간이 이 4년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손에 손을 잡고 일치단결하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13-300
탕감의 길은 주면서 가는 길
앞으로 지역장들이나 지구장들은 자기들의 지역내에 전체를 대표하여 모범적으로 수고한 식구가 있는데, 그 사람을 또 굶기고 고생시키면 지역이나 지구의 발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방의 지역이나 지구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지역의 책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책임자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그 책임자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열심히 일하는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래야 우리 뜻이 점점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구장이 책임을 다 했다 해서 지구장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지구장을 칭찬받게끔 한 식구들을 칭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책임자들은 자기들을 협조한 식구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심정적인 면에서 빚을 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고생하는 식구들이 있으면, 밥을 먹을 때에도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과 더불어 수저를 들고 눈물과 더불어 밥을 넘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여, 그들을 보살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와야 합니다, 이런 심정이 결여되면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역장은 내내 고생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우리가 삼천만 민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민족 가운데 비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술의 밥을 먹으면서도, 한 술의 국을 마시면서도 `이 민족 가운데는 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하늘이여, 그들에게 주시옵소서. 이 우주의 모든 것은 당신 것이오니 주시옵소서’라고 간곡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고 싶은 간곡한 마음이 이 민족의 끄트머리까지 뻗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해야 할 여러분이 받기 위해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여지껏 하나님의 뜻을 따라나온 식구들 가운데 가만히 보게 되면 자기를 위주하여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식구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자리를 잡으시기 전에는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기에 아직까지 정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출발하여 가정을 이끌어야 하고, 가정을 이끌어서 종족을 수습하고, 종족을 수습하고 난 후 민족을 세우고, 민족을 세우고 나서 국가 세계 천주적인 고개까지 넘어가야 합니다. 가더라도 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주기 위해 가야 합니다. 주면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이요, 탕감의 길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외로운 신세에 처하더라도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민족으로부터 몰리고, 눈물 어린 생활환경에 처하더라도, 한을 품고 감람산 기슭을 걸으면서도 민족에게 주어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도망을 가면서도 주면서 도망가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을 책임진 하늘의 대표자가 가져야 될 자세라는 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든 것을 느끼면, 그 힘든 것은 나로 인하여 힘든 것이 아니고, 이 민족을 대신하여 힘든 것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 민족이 처참한 길을 걸어왔는데, 나도 그런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내가 고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슬픔과 한과 고난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민족적으로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민족을 위해 가는 것은 세계를 위함이요, 세계를 위해 가는 것은 천주를 위함이니 이것을 다 하기 전에는 죽어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참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계 복귀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2천년 동안 성신과 함께 싸워 나왔고, 하나님과 그 뜻을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됩니다.

주는 데는 어떻게 주어야 할 것이냐? 선생님은 과거에 그런 일을 많이 했어요. 나와 인연된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그들을 역사적인 소망의 대표로 세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싸움이 벌어지게 될 때에도 그들을 위해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 먼저 그 마을 사람들과 내적인 면에서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내적인 일치란 심정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생활통일, 이념통일의 기준을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13-302
참부모를 모시려면
여러분은 현실적인 무대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된 거기에 몸이 굴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생 장성 완성의 3점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갈 뿐만 아니라 이 민족을 그렇게 이끌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 그 마음에 대한 책임을 졌으면 거기에서 끝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높여서 그 면을 책임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면을 책임졌으면 군을 끌고 넘어가야 되고, 군을 책임 졌으면 도를 끌고 넘어가야 되고, 도를 책임졌으면 국가를 끌고 넘어가야 됩니다. 한 단계 앞놓아나가야 됩니다. 싸움의 무대는 개인적인 싸움의 무대로되 마음과 신념은 국가를 중심삼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영적으로라도 하늘의 앞길을 준비하는 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준비한 터전 위에 상대적인 조건이라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발전하고 안 하는 것은 여러분 자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싸움을 할 때에는 가정을 생각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을 할 때에는 종족을, 종족적인 싸움을 할 때에는 민족을 이렇게 국가, 세계적인 싸움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싸움을 앞놓아나가는 사람, 한 단계 앞선 싸움의 무대를 생각하며 준비하는 사람은 절대 지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타락한 이 세계를 복귀하는 책임을 지고 오신 참부모는 참부모님의 인연을 넓히기 위해 개인적인 십자가를 지면서도 가정적이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또, 개인적인 십자가와 가정적이 십자가를 지고 찾아오는 자녀들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참부모는 참다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어야 되느냐? 심정을 주어야 되고, 피살을 주어야 되고, 사탄 앞에 승리할 수 있는 실체를 만들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서 자녀의 심정을 완전히 갖지 못하고 자녀의 혈통을 갖지 못하고, 사탄 앞에 승리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있으므로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로부터 신세를 져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역사적인 한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픈 일은 나를 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와 더불어 슬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 민족의 처참함은 나를 빼 놓은 처참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나는 한국의 실정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이 나라와 이 민족에 대한 책임보다도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의 전체적인 책임을 어떻게 지고 넘어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나라의 주권은 흘러가도 복귀섭리는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참부모를 모셔야 할 여러분은 내가 어느 때에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아들이라고 하는 공인을 하늘로부터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귀원리를 배운 것은 그저 입으로 말하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담 가정에 대한 복귀원리를 들을 때 남자는 `나는 아담의 책임을 져야 될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죄를 때려잡아야 할 아담의 입장에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또, `나는 해와 대신 이 세상의 죄악의 씨를 뽑아버려야 할 입장에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여러분은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감돌던 하늘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사탄의 침범 조건을 내 생활무대에서 제거시켜 버리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늘은 이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복귀섭리의 인물들과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아담 가정의 타락은 내 타락이요, 아벨이 제물을 드린 것도 내가 드렸어야 할 것이요, 노아가 수고한 120년 노정도 내가 가야 했던 노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그것을 탕감복귀했다는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민족의 복귀노정을 대신 걸어간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느냐? 모세 대신 입장에 서야 합니다. 언제든지 나는 모세 대신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 대신 입장이니 모세 대신 슬픔을 당해야 합니다.

13-305
책임자의 고생을 책임지겠다고 해야
책임자가 슬픔을 먼저 당하면 그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민족이 되려면 책임자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알고 책임자보다 먼저 당하려고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삼천만의 슬픔을 이 민족의 책임자에게 돌리지 않고 이것을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이 민족이 흥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망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슬픈 일을 전부 모세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모셔야 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모셔야 되느냐? 탕감하는 자리에서 모셔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벨의 기준이 성립되었으면 가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쳐야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통일교회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을 고생시키면 안 된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갈길은 거기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마지막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고생을 책임지고, 인류의 고생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염려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낙망시키지 않았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대번에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복귀도상에 서 있는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절개가 무엇이냐? 나는 슬퍼도 하나님을 슬프게 해 드리지 않겠다, 나는 삼천만으로부터 매를 맞고 죽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입장에 서시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절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그런 제자를 두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복귀의 책임을 짊어지고 나섰으니, 세계 앞에 나선 내 자신의 입장이 비록 초라하더라도 세계적인 인격을 세우기 위해 싸워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슬픈 일에 부딪치더라도 그것을 자기 혼자 처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가 이 일을 당하시면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모셔 놓고, 아버지와 의논해 보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아버지께서 지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서 해결하고, 절대적으로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활무대를 수습하고, 환경을 수습해 나감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사회적인 시대,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시대를 거치면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꾸준히 자기의 갈 길을 걸어가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룰 때까지 꾸준히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옛날 개인적인 시대에는 고생하면서 기뻐하더니 가정적인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렇지 않아 큰일입니다. 옛날에 지방에 한 두 식구 널려 있을 때는 피땀을 흘리며 어려움을 개의치 않고 마음이 간절하더니 수가 많아지니 그렇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수가 많아질수록 심정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보고도 또 보고 싶어하고, 소식을 듣고도 또 듣고 싶어하고 그 식구가 잘되는 소식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참된 식구의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지구를 도별로 편성해 놓고 보니 식구들이 도주의가 되었어요. 식구들이 자기 지구가 속해 있는 교회의 식구들의 소식은 궁금해 하는데 다른 지구의 식구들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지구를 넘어서 다른 지구의 식구들을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다른 지구 식구들의 사정을 염려해야 되고, 전세계 통일교회 식구들의 움직임을 궁금해 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왜 필요하냐? 그것은 이런 생각을 가져야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뚝 떨어져서 전세계 식구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새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는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어느 단체면 그 단체의 모든 요원이 그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전반적인 활동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그 단체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13-307
복귀섭리에서 심정일치의 중요성
모세를 중심하여 바로 궁중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행동을 알고 싶어하고 그 행동을 본받으려고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바로 궁중을 빠져 나올 때도 모세의 행동이 그들의 행동에 반영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모세가 슬퍼하면 같이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나와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지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민족의 책임자인 모세를 12지파의 대표자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모세가 한 지파의 지도자 이하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은 옛날에 전국에 널려 있으면서 고립되고 외로울 때 식구들을 그리워하던 심정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을 어떻게 하든 더 보고 싶어하고, 도저히 시간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같이 있고 싶어하고 내가 갖고 있는 무엇이라도 보태주고 싶어하고, 자기와 인연을 맺고 싶어하고, 서로 흠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결여되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늘은 발전해 나가는데 그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자신이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이런 관점에서 일체화한 모양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하늘의 전체적인 운세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 운세가 외국 식구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큰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큰 가지일수록, 줄기에 가까운 가지일수록 줄기를 흠모하고 줄기와 하나 되려고 해야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니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 있는 식구들이 외국 식구들 이상 선생님이 가는 일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궁금증이 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4년노정 가운데 일년이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3년 안에 우리가 목표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되겠는데, 문제는 초창기의 그 심정을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서울에 있지만 지방 식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뜻을 대하던 그 마음, 하늘의 충신이 되고, 열녀가 되고, 효자 효녀가 되겠다고 결의하던 그 마음을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지방 식구들에게 가 있습니다. 지구의 식구들보다도 지역의 식구들에게 가 있습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그래요. 이들이 서로 인연되었고, 서로 짝이 되었으면 뜻을 위해 일체가 되어 싸워야 합니다. 하늘의 더 큰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을 위해 충성을 다한 사람 중에 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전통을 이어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통일 민족, 하나의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고,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수를 무찌르는 책임을 완수해야 할 중대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6천년 복귀섭리역사는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역사입니다. 부모를 복귀하여 자녀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입니다. 그러한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는 부모와 자녀가 같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적인 7단계의 십자가 노정을 걷고 있으니 자녀인 여러분도 그런 7단계의 십자가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기간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을 망정, 앞에 가고 뒤를 따라가는 차이는 있을 망정 탕감조건의 내용은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슬퍼할 때 자식이 슬퍼하지 않으면 불효가 되는 것이요,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자식이 기뻐하면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노정을 걷고 계시니 선생님도 그렇고, 여러분도 죽든지 살든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민족 기준을 세우고, 유대교와 전세계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교단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승리의 부모의 날을 설정해서 세계적인 승리의 부모의 날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부모의 날로 세우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안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3-309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람
하나님이 천태만상의 노정을 걸으시며 지금까지 고대하고 그리신 부모, 개인적인 부모, 가정적인 부모, 종족적인 부모, 민족 국가 세계적인 부모의 기반이 닦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밑창에서부터 닦아 올라와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늘도 고생하고 오시는 부모도 밑창에서부터 고생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적인 기준 위에 올라섰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국가적인 기준을 세우는 때에 들어섰기 때문에 악의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비판하고, 명령하고, 하나님이 계획하는 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탄세계를 밀어 부치면 사탄세계가 밀릴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부모복귀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해 하나님이 수고하셨는데 하나님의 수고가 끝이 났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부모복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던 하늘의 수고가 끝이 났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국가적인 부모복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수고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내적인 고통을 개인적인 복귀노정을 개척하실 때나 국가적인 복귀노정을 개척하실 때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인적인 승리의 발판을 닦기 위해 수고하셨지만 지금은 민족적인 승리의 발판을 닦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민족적인 승리의 발판이 닦여지면 세계적인 승리를 위해 싸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만큼 수고해 가지고 열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늘이 요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점점 출발 당시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 부모가 하늘의 아들딸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이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몸들입니다. 본래 자녀는 부모를 업고 가든가, 모시고 가든가 해야 합니다. 효자라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원리를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늘 땅 앞에 사탄은 어떤 존재이며, 여러분의 갈 길은 어디이며, 속죄의 길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부모를 모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적인 복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실제로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어떤 슬픔과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작은 조건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쁨의 조건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커져서 가정적인 기쁨의 터전이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기쁨의 터전이 되어야 비로소 지상에 천국의 기반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부모님이 자녀를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신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부모를 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신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책임을 맡기느냐? 타락을 인간이 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고통을 대신 책임져야 합니다. 민족이면 민족적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실체로 책임져 가지고 하늘이 맡긴 바의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기간에 마음에 불을 다시 붙여 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심정을 저끄러 놓고, 원한을 남겼으니, 수천년 동안 하나님을 슬프게 했으니 우리가 이것을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주권을 복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념을 통일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물질복귀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것을 책임져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개체 개체를 부르고 있습니다. 가정적인 복귀의 기준에서 여러분을 부르고 있느냐? 혹은 종족 민족 국가 기준에서 여러분을 부르고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적인 기준에서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그곳까지 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3년노정 끝에 최후의 십자가의 고개를 두려워했다면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출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민족도 이 기준을 향해 나가는데 있어서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싸워 나가서 승리의 기반을 닦으면, 하늘이 닦은 영적 기준 앞에 일치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죽든 살든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싸워 나가면 천주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한 각지와 전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 식구들을 일심동체가 되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외적으로 서기 전에 내적으로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복잡한 사건이 생기면 생길수록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복잡한 문제에 엉키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이 세계는 자꾸 내려가고 하늘은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갖고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계적인 부모의 날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부모의 날을 기억하고 이 자리를 찾아온 여러분은 하늘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이 민족을 대표한 여러분이 되고, 길이 길이 남아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13-312
기 도
아버님이 고대하시던 영광의 터전은 슬픔도 없고, 탄식도 없고, 원한도 없는,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인연이 스며 있는 곳이었음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역사적인 소원이요, 창조이념의 중심인 참부모를 우리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게 된 그날부터 우리는 고아가 되었고, 원수의 품에 안겨 신음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역사노정을 거쳐 오시면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부모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고, 6천년를 다리 놓아 천주사적인 종말기를 마련해 놓으시고, 재차 평면적으로 개인적인 승리의 실체 부모의 가치, 가정적인 승리의 실체 부모의 가치,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승리의 실체 부모의 가치까지 찾아 세우기 위해 복귀의 한 서린 노정을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아버님이 수고하셨고, 오실 참부모가 개척자의 입장에서 한 많은 생애를 보낸 것을 알았사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위하여 투쟁할 수 있는 현실 무대를 마련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니다.

어느 한 때 저희들이 하늘 부모를 모신 개인적인 면모와 가정적인 면모를 갖추어 놓았으며, 하늘의 한을 지니고 살았습니까? 그렇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고아가 된 저희들, 잃어버린 아들딸을 책임지고 찾아나오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께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기반을 미리 마련해 주신 것은 부모를 위한 기반이었고, 아들딸을 살리시기 위한 기반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이 기반 앞에 백 번, 천 번 죽어도 감사해야 할 저희들인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남은 역사를 책임져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저희의 앞 길을 가시면서 개척자의 수고를 하셔서 이 땅에 참부모를 저희들 앞에 세워 주신 것을 황공하게 생각하옵나이다.

아버님께서 고통을 넘겨 주신 것은 저희들 인간 세상을 대표한 기준에 연결시켜 주시기 위한 것이요, 참부모의 고통을 저희 앞에 넘겨 주신 것은 저희를 덮고 있는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서를 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언제 저희가 무릎을 꿇고 개인적인 부모를 모셨으며, 가정적인 부모를 모셨으며, 종족적인 부모를 모셨으며, 민족적인 부모를 모셨습니까? 또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참다운 자신이 되었습니까? 그러한 자신이 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면서 오늘이라도 그 한을 복귀하는 길, 눈물의 길, 원수세계를 향해 가는 길을 저희가 책임지게 해 주시고,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을 개방하고 국가적인 십자가의 길을 개척하여 부모가 오실 길을 마련하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서 이날을 축하하는 수많은 아들딸이 있사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무리요, 슬픈 무리오니, 아버지, 복 빌어 주시옵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한 많은 역사의 흐름이 종결되지 아니하였기에 다시 아버님의 뜻을 세우기 위한 세계적인 종말기가 있게 된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아버님의 마음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피땀 흘리고, 세계를 탕감하기 위한 엄숙한 실체제물의 사명을 완결짓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맨 밑창의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소식 듣고 찾아 왔사오니, 이 대구 도성을 중심삼고 싸우는 이 싸움으로 잃어버린 이스라엘 도성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을 이 민족 앞에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옛날에 배반하고 반대했던 모든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실체를 중심삼고 복귀하는 조건을, 오늘 이 시대에 이 도성을 중심삼고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곳에 하늘의 역사가 없이도 뜻을 배반하는 입장에 선 자들을 영적으로 굴복하여 심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뭇 생명을 대표해서 이 도성에 보내졌사오니 예수님이 세워 놓으신 영적인 승리의 기대를 상속받아 민족적인 승리의 기준,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이스라엘의 권한을 세울 수 있고, 이 나라를 만국 앞에 제사장 국가로 세울 수 있게 해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남아진 길은 기쁨으로 가오니 아버님이여 염려 마시옵소서. 이제 십자가를 저희가 책임지고, 세계를 사탄에게서 빼앗기 위해 충성하고, 아버님께서 기쁨으로 저희의 뒤를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이 시간 모든 영계와 지상에서 참을 바라는 선한 백성들이 뜻을 위한 하늘의 백성이 되어 협조할 것을 선포하오니, 하늘과 땅이 공인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승리의 영광과 찬송과 행복과 사랑을 중심삼은 평화의 세계가 저희들을 통하여,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날이 어서 빨리 와서 온 천주적인 승리의 날을 복귀하고, 천주적인 아버님의 날을 복귀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날은 만민이 기념해야 할 날입니다. 하오니 만민이 기념하는 날로 세우겠다고 다짐하는 하늘의 용사들로서 이날을 기념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