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47 to 13-277: 부모의 마음

부모의 마음
1964.04.12 (일), 한국 대구교회

13-247
부모의 마음
부모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가 갖기보다는 앞으로 자기를 대신할 수 있고, 자기가 맡길 수 있고, 자기가 믿을 수 있고,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에게 상속해 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가 있다 할진대, 그 군주 역시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합니다. 귀한 것이 있으면 그 귀한 것을 자기 개인만의 것으로 하지 않고 나라 전체의 것으로 하고 싶어하는 것이 진정한 군주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13-247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본연의 마음
이렇게 볼 때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귀하고 좋은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하지 않고 전체의 것으로 하며, 또한 그 가치를 전체의 가치로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분은 어떠한 분이냐?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이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 주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참으로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천리의 원칙이며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행불행은 어떻게 갈라지느냐? 마음대로 주고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라집니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받을 대상이 없고,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줄 주체가 없을 때는 불행한 것입니다. 주는 데는 자기의 제일 귀한 것을 서슴치 않고 줄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인간 본연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 온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주는 데는 어떠한 환경의 제재나 시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 중에서도 성인현철이나 도(道)의 지도자에게 그렇게 주었느냐?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을 인간 세상에 주었을 때 인간 세상에서는 그것을 무한한 가치의 것으로 받아 하나님 앞에 공을 돌려 드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세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지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러한 사람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시며 참되게 하늘땅의 귀한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은 개인적으로도 주고 싶고 가정적으로도 주고 싶고, 혹은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적으로까지 주고 싶을 것이며 나아가 내적인 심정에서 나오는 사랑까지도 다 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계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느 한 때도 그런 참된 심정을 개인과 가정 혹은 민족, 국가, 세계, 천주에게 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원수와 대적하여 싸움의 노정을 개척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노아를 중심으로 역사한 섭리의 배후를 보더라도 노아에게 주고 싶어하신 하나님은 1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두고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120년 동안 수고하지 않고는 하나님도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이 지켜진 기반 위에 2차 3차로 점점 범위를 넓혀 세계적인 무대로 전개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노아를 택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첫째 목적은 달성했지만 제2차 3차의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못하였기에, 노아 가정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아직까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설 수 있는 발판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13-249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 강림 목적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야 행복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인가? 당신의 가장 귀한 것을 사랑하는 개인이나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혹은 주권자라면 주권자, 백성이면 백성에게 고스란히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안심하고 기쁘게 주고받을 수 있는 한 날을 갖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복귀섭리가 끝나지 않은 실정으로 미루어 볼 때에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참되게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하십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시려는 소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런 자리를 갖지 못한 하나님은 주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슬픔과 고통을 크게 느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과정에서 개인을 통하여 천주에까지 주어야 할 하나님은 주기 위한 이 거리를 단축시키고자 하십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주고 싶을 때에도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고자 하십니다. 명령을 하고 가르침을 받는 자리에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심정이 통하는 자리, 하나님의 영광과 만우주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주고받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세워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역사노정에서 세워졌던 수많은 도(道) 중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도(道)도 있었을 것이며, 혹은 하나님의 사명을 대신 책임질 수 있는 선봉적인 역할을 한 도(道)도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이념을 대신하여 각 분야에서 천태만으로 나타난 도(道)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도 중에 하나님과 직계 혈통적인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도를 세워야 할 주인공이 바로 독생자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천적인 도의 길을 닦아 나온 수많은 도 중에서 예수님이 갖고 나온 도의 사명은 무엇이냐? 다른 도는 자기 해당 분야의 사명만을 갖고 나왔으나 예수님은 타락하여 사탄과 혈통적인 인연을 맺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인류를 복귀시켜야할 사명을 갖고 왔던 것입니다. 사탄과의 혈통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전개시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복귀시켜야 하는 사명, 즉 인류를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아들딸로 세우는 사명을 갖고 오셨습니다. 어느 도에서도,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심정적인 문제, 사랑의 문제를 갖고 이 땅 위에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도, 천국의 이념을 소개할 수 있는 도 등 여러분야에서 각 사명을 짊어진 도가 있었지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만민은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은 만민을 대하여 아들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논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하나님은 기독교를 통하여서 인간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셨느냐 하면, 인류를 참된 아들딸로 찾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에 세워 주는 선물을 주려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러한 선물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들 가운데도 효자가 있을 것이고 불효자도 있을 것입니다. 불효자는 구원섭리가 있으나 없으나, 이 땅 위에서 메시아가 죽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워 준 공로와 하등의 인연도 없는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이러한 불효의 자리를 타파해 버리고 모두 효자 효녀의 자리로 복귀시키기 위한 것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던 목적이요, 또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던 목적인 것입니다.

13-251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했더라면
그러면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살다간 모든 역사적인 선조들과 기독교 신자들을 볼 때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다운 세계적인 대표자, 온 천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승리적인 자격자, 하나님이 참된 선물을 줄 수 있는 아들딸, 하나님의 참된 유업을 받아 천지간에 설 수 있는 아들딸은 어떠한 사람이겠는가? 어떤 사람이 과연 참된 아들딸이 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됩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에 야곱은 원수의 편에 선 에서를 굴복시켜서 이스라엘이란 명분을 세웠습니다. 또 하란 땅, 즉 원수의 품에서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을 닦음으로 야곱 가정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승리한 야곱 가정은 민족적인 승리를 향하여 전진해야 하므로 애급에 입성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민족을 형성하여 400년 동안 고역살이를 한 후 하나님이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였고 원수를 굴복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는데, 그 걸음이 가나안 복귀노정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적인 기반을 세우는 데에는 승리하였지만 국가적인 주권을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애급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가나안 7족과 싸워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망하는 무리는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를 근본적으로 소탕하여 주관자의 권위를 갖게 될 때 하나님은 국가적인 귀한 복을 그들에게 주려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의 사명은 예수님을 위주로 하여 세계적인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슬퍼하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도 슬퍼해야 하고, 예수님이 외로와하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도 외로와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어 행동과 생활을 같이하면서 세계적인 원수의 무대, 즉 로마 제국을 향하여 공격전을 펼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만일 그때에 그런 기반이 닦여졌더라면 기독교가 400년 동안이나 박해를 받는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살아 있었다면 로마 제국을 굴복시키는 데 그렇게 오랜 기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역사적인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만민을 통치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으며, 이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주셨으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당당하다는 신념을 갖고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하여 세계적인 무대로 전진하였다면, 세계적인 승리는 벌써 오래전에 거두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후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13-252
이 시대의 기독교인의 사명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도 승리하고, 가정적으로도 승리하고, 민족적으로도 승리하고, 국가적으로도 승리한 터전 위에 메시아를 보내어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런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시 개인적인 시대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시대를 거쳐야 했습니다. 즉, 종적인 이스라엘의 4천년 역사를 재차 횡적인 역사로 전개시켜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2 이스라엘은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에서부터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 종족적인 십자가의 길,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 국가적인 십자가의 길, 세계적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싸움에 승리하여 가정을 위해 싸우겠다는 신념을 가진 자라야 개인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또한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싸움에 승리하여 세계를 위하여 싸우겠다는 신념을 가진 자라야 국가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로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원칙에서 볼 때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악의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악의 세상을 지배햐야 합니다. 현실에서 부딪치는 고통과 곤고와 비참이 제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원통하고 분한 사실이 제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자기를 지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시대를 수습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를 넘어 다가올 새시대의 복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세계적인 환난 도상에서 자기의 일신을 수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수습하고 종족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고 국가를 수습하여 세계적인 시련의 고비를 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그런 신념을 가지고 단결하여 생활적인 무대와 환경적인 무대를 책임지고 청산지을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무리 주고 싶은 복이 있다 할지라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을 찾을 것이냐? 전세계에 널려 있는 많은 기독교회 가운데서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할 수 있는 교회를 찾을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가정으로 등장할 수 있는 가정을 찾을 것입니다. 즉 현실의 고난의 노정, 십자가의 노정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심판하고 청산지을 수 있는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하나의 국가가 나왔다면 그 국가의 백성은 어떠한 전통적인 면모를 갖추어야 되느냐? 그 나라의 백성이라면 최고의 사람이든 최하의 사람이든, 모두가 현세에서 최악의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세계를 심판하고 새로운 이념의 세계인 천국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럴 수 없는 사람을 불러다 축복해 주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승리의 아들딸로 세워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주고자 하여 약속을 하셨지만 역사상에는 그 약속을 실천하여 승리의 기반을 닦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종족이나 민족, 혹은 국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대하시는 것은 그러한 국가의 이념을 통하여 세계적인 복을 만민에게 속히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섭리해 오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요, 서글픈 사정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3-254
이 세계를 대하는 하나님의 갈급한 심정
하나님이 어느 한 때 우주사적인 참소를 벗어난 자리에서 `너희들은 내가 영원무궁토록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내 아들딸이니 이것도 저것도 다 너희 것이다. 이 전체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천세 만세 행복을 누릴지어다’ 하고 개인을 세워 축복해 보았으며, 가정을 세워 축복해 보았으며, 종족, 민족, 국가를 세워 축복해 보았습니까? 아직까지는 그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하느냐? 이 30억 인류를 한데 몰아 빨리 환난의 세계를 박차고, 자유로운 기반 위에서 새로운 천국을 향하여 행진할 수 있는 움직임을 지구상에 나타나게 하고, 천국을 건설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20세기에 사탄을 중심하고 살아온 인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리에서 산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어떠한 자리에서 모셔야 될 것이냐? 역사적인 사탄의 입장보다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의 입장보다 더 귀하고 훌륭한 기반 위에서 모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하겠다는 신념에 불탄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어치피 지나가야 할 시대이니 그렇게 제한된 환경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보다 30억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이념의 세계를 건설하게 해야 됩니다. 20세기 문명을 넘어설 수 있는 지금이 자리에서 `통일교인 중에 하나님이 주고 싶은 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 천세 만세 우리 후손들 앞에 하나님의 유업으로 고스란히 상속시켜 줄 수 있는 자리가 그립다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장이라도, 이 세계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이념의 세계로 가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승리로써 지금까지 소망하시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당신이 계획하신 천세만세 영원무궁한 창조이상세계를 건설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급한 심정에 사무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나 깨나 내가 가야 할 곳이 그런 세계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13-255
종적인 탕감역사를 해결해야 할 우리
하나님은 지금부터 2천년 전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과 사상적인 중심인 유대교단이 못 했던 책임을 하기 위해 다시 세계적인 기준에서 기독교를 제2 이스라엘로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또 유대교의 사명을 못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로 하여금 그 사명을 다시 상속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민주주의 권내의 사람들을 수습하여 오시는 주님을 편안한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본연의 목적이며 인간이 해야 할 본연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나 깨나 그 이념에 사무쳐서 `내게 부딪치는 환난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당하던 400년 고역에 비할소냐’라고 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큰 세계적인 시대에 왔으니 그들보다 큰 환난이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은 반대로 조그마한 환난을 통해서 큰 고개를 넘었다는 조건을 만들어 주시니 무한히 감사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적이 심정을 모르는 것을 한으로 생각한다 할진대 애급고역 400년을 거친 이스라엘 민족이, 혹은 로마 박해 400년을 거친 기독교인들이 무지무지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피땀을 흘려가며 전통을 유린당하지 않고 세워 나온 그 역사적인 심정을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 할진대 여러분은 그때 그 환경, 그러한 자리에서 그런 핍박을 받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심정의 동반자가 되어 세계적인 입장에서 역사적인 심정을 제기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환난 속에서 선한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 왔고 유린을 당해 왔던 역사적인 모든 환경과 핍박의 도상에 자신이 서지 못할까봐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지에서 당할 시련이 애급에서의 시련보다 크다 할지라도 가나안 땅에 가야 하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가져야 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도 아무리 역사적인 환난, 시대적인 환난이 크다 할지라도 이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몇백 년 몇천 년에 걸쳐 시련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계사적인 시련 도상에 세워 놓고 그 기간을 단축시켜 일시에 총탕감하시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은 닦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십자가의 고개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도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이 승리의 기반은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적이 승리의 기반은 닦았다 하더라도 종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못 넘으며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은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 하더라도 민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또 넘어야만 되고, 민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었다 하더라도 국가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또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국가적인 십자가 뒤에는 세계적인 십자가가 남아 있으니 이 또한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넘어야 할 엄청나고 무지무지한 십자가의 모든 고개를 단축시켜 한꺼번에 탕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종적으로 탕감하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이나 종적인 탕감역사를 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해결해야 되느냐? 우리가 해야 합니다. 바로 이 종적이 역사를 탕감해야 할 기간이 우리 통일교회의 3년 기간이요, 4년 기간입니다.

13-25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세우신 이유
이런 것을 알고 이 3년, 4년 기간이 아무리 어려운 핍박의 노정이요, 비참한 노정이라 할지라도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당하던 곤고에 비할소냐, 옛날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에서 당하던 그 고통에 비할소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개척의 노정에서 피의 제단을 꾸며 나오면서도 하늘의 전통을 세우고 하늘 향한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 일신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소망의 천국을 바라보면서도 언제 이루어 질지도, 또 가는 길도 모르면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탕감의 노정을 압축시켜 일시에 횡적으로 전개하여 탕감시키고자 하십니다. 아직까지 어느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가치적인 내용을 이루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여러분을 세우셨으니,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오늘 이 뜻 앞에 세움을 받은 여러분이기에 여러분 중 어느 한 사람도 노아와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아브라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와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전세계에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오늘 우리들이 지닌 이 이념을 지녔느냐 하면 못 지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와 영계의 수많은 영인은 물론 지상에 있는 수많은 도인들과 모든 교파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도인들과 모든 교파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선물을 주기 위해 우리를 불러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 세우셨으니 이제 우리는 받아야 되겠습니다. 받는 데는 큰 것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큰 것을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큰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이 비참한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좌우로 분립되어 투쟁하고 혼란된 가운데 처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엄청난 일입니다. 어떻게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수습할 수 있는 길을 찾겠느냐 할 때 깜깜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지나 승리의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그때만 되면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종족, 국가, 세계의 갈 길이 뚜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때에 우리들은 소망의 천국 세계에서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심정 앞에 참다운 효자 효녀로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앞에 놓고 당신의 모든 것을 상속하시는 그 시간에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은 `천세 만세 무궁하소서’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천사 세계의 천사장은 물론이요, 존재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도 이 세계를 유린해 나오던 사탄도 다 그렇게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증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비록 사탄이 원칙적인 기준을 무한히 침범해 나왔지만, 우리는 그것을 원수의 입장에서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13-258
축복의 땅에 가서 살 수 있으려면
하나님 앞에 사탄은 역사적인 모든 면에서 원수의 입장으로 반기를 들고 따라 나왔지만 하나님은 그 위신과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천륜의 도리를 통하여 수습하면서 승리의 기반을 넓혀 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 역시 원수들을 대하여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수습할 수 있는 전통적인 이념을 가진 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이 축복한 세계에 들어가 살 수 있는 백성이 못 되는 것이고, 축복받을 수 있는 가정이 못 되는 것입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개인이 못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원수를 위해 복을 빌었던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보면 사탄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원수지만 역사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심정에 입각해서 보면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역사적인 심정에 입각해서 보면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은 아들로서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그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개인적인 공인을 받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이 공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예수님 앞에 개인적으로 핍박하던 사탄이 굴복하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핍박하던 사탄이 굴복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영적 천국 건설의 문이 개방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이 세계는 예수님의 이념을 통하여 수습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 우리의 입장이 이러하니 우리는 어디로 가야 될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지금 당장 세계로 나아가서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고 싶어도 단번에 세계적인 무대로 나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가정을 찾아가야 됩니다. 아들딸의 입장에서 부모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찾고 부모를 찾은 다음에는 민족이 살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고향땅을 버리고서라도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이 살 수 있는 축복의 땅을 향하여 가야 했듯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을 향하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적인 이스라엘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주권, 하나의 백성, 하나의 국토가 있다 할진대 개인은 형제와 더불어, 형제는 부모와 더불어, 부모는 종족과 더불어, 종족은 민족과 더불어, 민족은 국가와 더불어 가야 합니다. 그러한 나라가 있다 할진대, 그 나라의 주권은 세계의 주권을 대신한 주권이요, 그 나라의 백성은 세계의 만백성을 대신한 선민이요, 그 나라의 영토는 세계의 영토를 대신한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민은 모든 결정을 그 나라를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나라는 자연히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속히 그런 나라에 가고 싶다, 속히 그런 길을 개척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데는 개인으로는 못 갑니다. 반드시 형제를 찾아서 부모를 모시고 가야 합니다. 부모 앞에 효도하고 형제끼리 서로 위하는 입장에 서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민족 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가정보다도 소망의 민족을 더 그리워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것을 위해서라면 형제의 우애라도 넘어설 수 있다는 심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종족적, 민족적인 권내에 들어갈 수 있으며, 거기에서 다시 하나의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3-260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노아의 믿음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걷고 있는 길이 탕감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걷는 이 길을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도 과거에 하나님의 섭리를 대해 나오는 데에 있어서 그 섭리를 알지 못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선생님이 미래의 섭리를 전개시켜야 할 책임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인도하는 대로 그저 따라오면 됩니다.

아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분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중심의 자리에서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무한히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되 거짓이 아니라 참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참을 주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줄 것이냐? 태평 왕궁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줄 것이냐?

참의 가치는 평범한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금이 어째서 귀합니까? 그것은 금이 어떠한 작용을 받더라도 변치 않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도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의 조건을 통과해야 참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복귀 도상에 있는 타락한 인간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어느면에서는 사탄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이 세계사는 개인을 연마시켜 세계적인 승리의 발판을 갖추게 함으로써 세계에서 제일 귀한 선물을 주고자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이 세계사의 요구요, 섭리의 요구라 할진대, 역사적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계사의 문제가 여러분 하나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죽거나 망하는 등의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사탄은 나를 쓰러뜨려 이 자리를 삼켜 버리려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내 몸뚱이는 쓰러질지언정 내 이념은 일보도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사적인 시험을 받아 십자가상에서 그 육신이 쓰러졌지만 사정과 심정에서는 일보 전진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아의 아들딸의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노아가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그렇게 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향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신세가 되었구나. 참으로 적막강산이구나’ 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 노아가 슬퍼했다고 하면 거기에는 세계사적인 슬픔이 내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에게는 생활면으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년 동안 자기 신세야 어떻게 되건 그것을 개의치 않고 소망의 일념은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 하셨으니 10년간 짓고나서는 10년 소망이 이루어졌구나 했고, 20년, 30년, 100년간 짓고나서는 20년, 30년 100년 소망이 이루어졌구나 했고, 120년간 짓고 나서는 120년 소망이 이루어졌구나 한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가치적인 이념이 있었기에 그 환경을 억누르고 승리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120년 동안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시대에서 통하지도 않는 탕감복귀노정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6천년 이상 걸린 복귀의 노정을 가자 할 때 여러분은 거기에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 신세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 6천년 전의 아벨 하나만을 붙들고 끝까지 나왔다면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세워 놓은 중심인물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때마다 다른 인물로 대치시켜 나왔습니다. 그랬으니 오늘날 여러분도 있을 수 있는것입니다.

13-262
천국에 들어가려면
복귀의 길은 가다가 떨어지면 누구든 대신 갈 수 있는 길이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을 가는 데 있어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좋아합니다. 왜?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으려는 심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인지 물인지 모르고 따라 갑니다. 그런데 가다가 지치게 되면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만약 여러분이 6천년 전부터 하나님의 복귀의 길을 따라나왔다면 지금 하나님께 걱정 안 끼쳐 드리며 따라나왔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가만히 보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되었다면 역적이란 명패를 이마에 붙이고, 가슴에 붙이고, 발끝에 붙였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패들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마음을 한번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과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어떻습니까? 여러분끼리 마음보를 한번 잘라 가지고 서로를 비판해 보십시오. 그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거룩거룩하다 하며 홀딱 반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의 마음을 붙들고 섭리해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어쩌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세상에서도 백만장자가 잘살다가 뒤집어지는 운세를 맞아 밥을 굶게 되었다면 그 아들딸이 `우리아버지 어쩌다 이렇게 되셨노’ 하며 통곡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이러하시다는 것을 생각할때‥.

여러분은 본향의 길을 따라가는 나라가 있다 할진대 그 나라를 따라가 세계를 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국 못 갑니다. 예수님이 가는 나라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무슨 장로교니 무슨 감리교니 하는 어떤 교들의 이념을 가지고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가는 그 내용의 참뜻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천주적으로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왜 예수가 못 오시는 것입니까? 아직까지 이 땅에는 세계적으로 갈 수 있는 기독교의 발판이 세워져 있기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주여! 오셔서 저희를 승리하에 해주시옵소서’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느냐? 천국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지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본래부터 천국 가는 길은 있었으나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없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그것은 개인적인 십자가 도상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십자가 도상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의 사탄을 굴복시켜 승리의 기반을 세운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그러한 승리의 기반을 세우지 못 하였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에서 기도하는 입장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263
통일교회가 서 있는 위치
그러면 재림이상은 무엇이냐? 개인적인 환경에서부터 개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환난에 빠져 있는 세상을 도피해서 산중수도하며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산중수도는 하되, 지옥의 맨밑창에서부터 개척하여 기필코 지상지옥의 항복을 받아서 천상지옥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이 무엇입니까? 지옥은 우리가 원치 않는 곳입니다. 나쁜 곳입니다. 지긋지긋하고 비참한 형편없는 곳입니다.

아직까지 천국에 들어간 개인이 없었기에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가정도 없고 영원무궁토록 하늘의 주권을 세워 살 수 있는 종족, 민족, 국가도 없습니다. 이러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편성하되 지상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져야만 천상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에 이를 편성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오시는 그분은 개인적인 십자가를 지고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되고,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되고, 종족적인, 민족적인, 국가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각 단계 단계의 골고다를 넘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한 단계를 넘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승리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종족, 민족, 국가적으로 넘어야 할 더 큰 시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느냐? 우리는 아직까지 세계적인 골고다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권내에 있는 우리는 민족적, 종족적, 국가적, 나아가 세계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십자가,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모든 환난과 사탄의 개입이 통일교회를 거쳐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그런 가운데서도 남는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면, 민족적인 과정을 거쳐 나가는 이때에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생한 모든 사람들을 아벨로 모시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앞으로 한국 사람이 전부다 뜻 앞에 서서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는다면, 모든 이방 사람들은 시대적으로 그 혜택을 받아 점점 그 뜻을 알게 되므로 한국 백성을 아벨같이 모시며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행군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한민국, 이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나가는 아벨의 주권, 아벨의 땅, 아벨의 백성을 어떻게 만드느냐? 그것을 만들려면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시련에 한번 부딪쳐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사회적으로 볼 때 공산과 민주가 대결하는 와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아벨 편으로 세우기 위해서 대한민국에 이런 역사적인 비참한 환경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를 수습하고 우리를 구해 줄 자는 누구인가? 옛날 애급에서 핍박받던 이스라엘 60만 민중을 구해 줄 자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에게 핍박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그런 환경에 서면 설수록 `아버지여, 우리 선조의 죄를 용납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십자가의 길이 자기 선조들의 죄악의 보응이고, 민족적인 탕감인 동시에 세계적인 탕감인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니까 그래도 좀 낫습니다.

기도를 해도 진실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그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한번만이라도 `우리의 이 모든 고통으로 세계적인 환난을 대신하게 해주시어서 세계사적인 탕감의 조건으로 세우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였다면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3-265
한민족에게 시련을 주신 뜻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모든 죄악을 탕감하기 위한 민족적인 시련을 어떻게 넘어가야 하느냐? `이 민족은 새세계를 위하여, 새로운 이념의 천국을 위하여 선한 혈족으로 세움을 받았사오니 이 민족을 희생시켜 역사적인 죄악을 탕감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꼭 그래야만 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세계의 인류 중 어느 누구도 아닌, 어떤 종족도 아닌 이 삼천만 민족에게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동안의 시련과정을 두어 연단시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뇨? 일면으로만 보면 비참하지만 다른 면으로 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무한한 축복을 주시려고 세계적인 제단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을 위해 연단시켰음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상복을 입고 복귀의 사명을 다하는 제사장들이 되든가 혹은 제관(祭官)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과거를 회개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니, 여러분은 민족이 시련의 길을 걸을 때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민족적인 시련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개인을 위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님께는 이 민족을 세우셔서 하고자 하는 뜻이 있는 줄 아오니 그 책임을 저희에게 맡기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왼손으로는 과거를 회개하고 오른손으로는 시대를 수습하려는 제물이옵니다. 두 갈래로 가르더라도 사탄이 취할 수 있는 제물이 아니옵니다. 가르더라도 한 쪽은 역사적인 제물이고 한쪽은 시대적인 제물이오니, 하늘이여, 받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이 취할 수 없어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 앞에 세계적인 시련이 부과되는 이때 우리는 어떠한 자리로 나가야 되느냐? 하나님이 거리 거리에 있는 모든 참상(慘狀)을 바라보시면 낙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운명 속에서 이 민족이 살 길은 하나님을 붙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절박한 상황에서, 소망이 없는 환경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 호소가 민족의 죄악사를 탕감하고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었기에, 가나안 땅을 향한 광야노정을 출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266
깨어 있어야 할 우리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그 시대의 시련과 같은 시련이 거쳐갑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굴복되어서도 안 되고 불평해서도 안 됩니다. 통일교인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울분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정의에 입각하여 싸우고 정의에 입각하여 살아가되 이러 생활을 침범받게 될 때는 불의의 악당을 굴복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 민족에게 시련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삼면으로 공산권의 포위를 당하고 있습니다. 옛날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 개인을 중심삼고 사방으로 사탄이 진을 치더니, 오늘날엔 국가적인 이념을 가지고 나서는 이 택한 국가를 중심으로 원수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중공이 그러하고 소련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또 중공이 유엔에 기입하려 하니 장차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냐?

여기에서 우리들은 죽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박차고, 이스라엘 국가를 드높이고 천국이념을 찬양하며 나설 수 있는 용사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 민족 앞에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천적인 자녀를 세워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원수를 굴복시키는 것이 우리의 어려움입니다. 현재 이 세계에 가하고 있는 원수의 공격에 지지 말고 오히려 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 편 가인과 하늘 편 가인을 한꺼번에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점점 긴박한 생활 환경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모든 것을 한번 휩쓸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억천만 대를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영과 육을 합하여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날에는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길을 걸어 나왔으니 복이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삼천만 민족이 하늘의 백성으로서 하늘 보화의 전체를 받을수 있는 때가 오나니, 이 때를 바라보고 나가는 우리로서는 한 고비만 잘넘기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아담 가정의 입장에서 걸어 나왔고, 노아 가정의 입장에서 걸어 나왔고, 혹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가정의 입장에서 걸어 나왔고,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비록 몸은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있으나 마음 세계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앞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야곱이 21년간 하란에서 처참한 생활을 하면서 축복의 땅 가나안을 그리던 심정보다 더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해 나오면서 가졌던 심정보다 더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지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역사상의 어떤 선조들에게도 심령적인 기준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 그들 앞에 서서 늠름히 호령할 자신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지고 잃어버린 천지를 찾겠다고 나설 때 겁내지 말고 그것을 다 포괄하여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반이 잡히게 되면 그 다음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젊은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이리 가도 고생 길, 저리 가도 고생 길입니다. 집에 가서 살면 고생을 더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의 그 길고 지긋지긋한 길을 어떻게 가나’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하나님을 등지고 가게 되면 몇십 배 몇백 배 더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 대구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인데 나간다고 편해질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개인으로서 이 길을 가려면 지금보다 더 어렵습니다. 지금은 중심이 있으니 그 주위에서 돌면 되지만, 중심에서 멀어지면 한 바퀴를 돌려 해도 그만큼 거리가 먼 것입니다.

13-268
심정의 세계를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정의 세계를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이며, 통일교회에서도 심정복귀를 여러분에게 가르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개인이 감당하겠습니까? 중심에서 탕감하면 한바퀴 도는 것은 간단합니다. 중심에 가까우면 도는지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역사를 해나오시는 데 있어 초점을 맞추어 나오십니다. 개인적인 초점, 가정적인 초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초점을 맞추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수직선에 세울 때자기가 그 중심과 가까운 곳에 서면 설수록 자기의 인생길은 간단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고행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 저집에는 자가용도 있고, 아들딸도 다 훌륭하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이 사는데 우리 집은 왜 이리 고생만 하나’ 하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공평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깔을 보면 마치 단추 같습니다. 눈깔이라 한다고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볼 줄 모르면 눈이 아니고 눈깔입니다.

하나님은 몇백 년 몇천 년을 두고 섭리하십니다. 그렇게 스케일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겨우 십 년 이십 년을 놓고도 불평을 합니까?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공평한 분입니다. 공평해요. 지금 잘 사는 사람들은 옛날 선조들이 못살았기 때문이고 지금 못사는 사람들은 옛날 선조들이 잘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내려가는 운세에 태어났으니 못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빨리 내려가야 복을 빨리 받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인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이냐? 천운을 받들기 이해 통일교인들을 몇십 년이고 몇백 년이고 고생시킬 것입니다. 맨 밑창에 들여보내 철저히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지긋지긋해도 고생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려가는 운세에서 올라가는 운세로 바뀝니다. 탕감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아들딸, 혹은 새로운 종교를 세워서 고생을 시켰습니다. 몇천 년 몇만 년간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단축시키려면 세계가 돌밭길을 거쳐야 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대표자를 보내어 대신 그 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모든 위인들은 혼란한 시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것은 내리막길을 단축시켜서 올라가는 운세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작전을 할 때에도 공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13-269
민족과 후손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그래도 팔자가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다 뜻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무엇이 있었기에 여기에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선조의 공적을 얘기하지요? 선조의 공적으로 시대적인 혜택권내에 들어왔다고 말입니다. 이건 뭘 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수백여의 종족의 후손을 지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했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다 함께 제물이 될 수는 없지만, 각 민족을 대신해서 몇백 명을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어둠의 골짜기인 이 지옥에 뚜껑을 덮어 영원히 막아야 합니다. 천만인에게 식구의 자격과 천적이 가치를 부여해 한 덩어리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거 안 하겠습니까? 이것을 안 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도적들입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은 해골곳과 같은 골짜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생명과 기름과 생명수를 부어 부활권을 만들기 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느낍니까?

한국이 어찌하여 역사적인 와중에 처해 있는가? 어찌하여 이렇게 비참한가? 헌 옷을 벗기 전에는 새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벗는 데에는 하늘 나라에서 벗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세상에서 입은 옷이니 악한 세상에서 새것으로 갈아 입고 새로운 천지로 행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적인 길을 닦아 나오게 되면, 이 민족은 세계에 빛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말없이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없이 미래의 도성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를 피하게 되면 우리의 선조는 탄식하게 되고 이 삼천만 민족과 우리의 후손은 몇십 배 몇백 배 더 고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울더라도 절대 혼자서는 울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정이 그리워 눈물을 흘렸고, 민족이 그리워 눈물 흘렸고, 세계가 그리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신 예수님이셨으니 얼마나 비참한 신세였습니까? 어찌하여 메시아의 신세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4천년간 수고한 기반 위에서 예수님이 취할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예수의 심정을 호소하고, 잃어버린 천국을 찾기 위해 호소하며 이런 예수의 심정을 호소하고, 잃어버린 천국을 찾기 위해 호소하며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식구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런 식구를 아벨로 모시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적 십자가의 길을 개척하면서 가야 되는 하나의 선민을 대하여 나오시기에 그 선민에게서 절대로 떠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선민인 우리는 묵묵히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그리운 고향이 있다 해도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한 사정이 놓여 있기 때문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다 가서는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지긋지긋한 비참상을 모두 청산하고 죄악된 십자가의 시련노정을 영원히 이 민족 앞에서 사리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을 위하여 우리는 끝까지 나아가야만 합니다.

13-271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우리가 세계적인 입장에 서서 눈물지으면 세계가 눈물짓는 것이요, 기뻐하면 세계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 저주하면 세계도 저주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야 됩니다.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공분심에 불탄다면 무엇을 복귀시키지 못 하겠습니까? 내가 망하나 네가 망하나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심정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때에 가정에게 상을 줄 것이며, 어떠한 때에 종족에게 상을 줄 것이며, 어떠한 때에 민족에게 상을 줄 것인가? 그때는 세계적인 환난 도상에서 승리하는 때, 즉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을 하나님 것으로 갖고 나가게 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국가를 드러내어 수많은 국가가 찬양하게 하고, 그 민족을 드러내어 수많은 민족이 찬양하게 하고, 그 가정을 드러내어 수많은 가정이 찬양하게 하고, 그 개인을 드러내어 30억 인류가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자주 말하지만 선생님은 축복가정을 앞세웁니다. 그런데 축복가정들이 고생하지 않고 하늘땅을 위해 눈물짓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눈물 없이 사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끝날에는 알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역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먹는 것 때문에 울어서는 아니 됩니다.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원수와 대결하고 있는 우리는 원수의 기반을 점령하라는 특별 명령을 받은 책임자로서 그 책임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눈물지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져야 하는 데 어떻게 진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는 표어로 출발한 4년 노정 가운데 1년을 아무것도 못한 채 보냈습니다. 이제 남은 3년 기간 내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민족이 당해야 할 시련의 고비는 다 지나갔으니, 우리는 이제부터 `대한민국 삼천만 민중이여, 평화의 노래를 부를지어다! 세계 만민이여, 우리들의 수고를 찬양할지어다! 우리들이 걸은 십자가의 길을 찬양할지어다! 너희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갔으니, 이제 우리들이 비참했던 것을 생각하고 너희들은 가슴을 치고 우리들이 억울했던 것을 생각하고 통곡할지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한국의 과거의 서러움을 세계가 느끼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과거의 억울함과 분함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지금 눈물지을 수 있는 무리가 이시대에 없다면 회개도 할 수 없으며 발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비참한 곳으로 몰아넣으셔서 비참한 역사를 엮으시려는 것입니다. 한국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보다 더 비참하였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고객이 되었던 것과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결코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애급 땅을 그리워하는 무리들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날 내 집에서 먹을 것 잘 먹고 입을 것 잘 입던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망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우리를 따라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삽니다. 여기서 누가 협조한다 하더라도 신세지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삼천만 민족이 비참한 길을 갈 수 있게 몰아낼 수 있겠느냐?’라고 할 때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와라. 이 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이다’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개인적으로 승리하게 되면 어느 한 때에 개인적이 복을 받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승리하게 되면 어느 한 때에 가정적인 복을 받는 것입니다.

개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가정을 찾기 위함이요, 가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종족을 찾기 위함이요,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함이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함이요, 국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찾기 전에 반드시 국가적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한 나라에 아무리 백전백승하는 장군이 있다 할지라도 그 국가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마지막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는 신념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신념이 없으면 세계적인 싸움에서 실패할 것입니다. 아무리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민족과 세계를 위해 최선을 다한 후에 쓰러지겠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무대를 찾기 위한 결의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13-273
가치는 목적관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나님은 손을 벌리며 6천년 동안이나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딸은 어디 갔느냐? 축복을 받아 이루어야 할 가정은 어디 갔으며, 종족은 어디 갔으며, 그 나라와 주권자, 혹은 그 세계는 어디 갔느냐?’ 고하루도 아닌 6천년 동안이나 부르며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이신 처참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수심에 잠기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여러분이 바라볼진대, 이런저런 처소와 환경을 잊어버리고 죽든 살든 그 음성을 놓칠세라 몸부림치며 갈 줄 아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갈 길이 밝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기서 낙망할 수 없으며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를 향해 나갈 때,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해도 선생님은 책임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만세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통일의 무리를 그리워합니다. 또한 만민이 받을 수 있는 복을 이 민족이 받기를 고대하고, 모든 주권자가 받을 복을 이 민족의 주권자가 받을 수 있는 그한 날을 고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효자가 갈 길이요, 하나님을 모시는 충신 열녀가 세워야 할 도리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있게 되는 내일의 기쁨과 상을 만민의 것으로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내가 받은 이것이 만민의 것으로 남아지게 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귀하고 복된 것을 만민에게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개인적 십자가, 가정적 십자가는 물론 지금까지 역사적인 십자가를 수도 없이 지고 나오셨습니다. 이것을 알았기에 선생님도 받은 복이 있다 할진대 만민에게 그 복을 주지 않으면 몸살이 날 정도입니다. 하루라도 전도 안 하면 살지를 못 합니다. 여러분도 민족을 위한 생각을 하든가, 공적인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지 자기를 중심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가치는 목적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또 왜 죽느냐? 그것은 어떠한 남편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요, 어떠한 아내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아내가 되든 남편이 되든 그 목적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목적이 같아야 그 가치도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같은 가치관으로써 결합된 이상상대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과 가정이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런 여러분인데 여러분이 언제 개인적으로 이 삼천만 민중을 위하여 주겠으며, 언제 30억 인류를 위해 주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날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언제 삼천만 민족을 위해 주어 보았으며, 30억 인류를 위해 주어 보았습니까? 하늘땅을 위해 주고 하나님을 위해 주어 본 적이 있습니까? 주겠다고 안타까워하며 몸부림은 쳤지만 주어 보지도 못했고 받아 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13-274
책임진 자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렇게 주고 싶어하고 받고 싶어하는 간곡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향한 충효의 도리를 닦아 큰 자리에 설 준비를 하려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희생이 뒤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과 희생에 비례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모든 것이 뒷받침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 가운데서 몇 해 후에 남아질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이 길을 많은 사람이 따라왔다가 떠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계속 갑니다. 외적인 시련도 찾아왔었고, 인간적인 시련도 찾아왔었고, 개인적인 욕망도 찾아왔었지만 선생님은 그것들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은 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적인 시련에 점령 당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하나님이 남기신 그 뜻을 따라, 하나님이 머무르실 수 있는 보금자리를 향하여 내 몸과 마음은 달려갑니다. 여러분들 중에 지금 그렇게 못한 사람이 있다면, 역사적인 슬픈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로하고 내가 죽기 전까지는 이런 책임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며 마음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이라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저주받을 대한민국, 망할 이 땅일지라도 `네가 있는 땅이니, 네가 눈물짓는 곳이니‥.’ 하시며 축복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족이 남아지고 인류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인심이 천심을 통하는 이러한 인연을 갖고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 나타나는 개인이 있으면 그 개인은 만민의 추앙을 받을 것이요, 그러한 가정, 민족, 국가가 있으면 세계 모든 국가의 추앙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중심의 자리가 잡혀지니 그때야 세계가 자리를 잡고 제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노정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하늘 편 아벨을 편성하는 일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이것이 커지는 날에는 이 나라가 살 것이요, 이 세계가 살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기서 무엇이든 신나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고 싶어하시는 소망을 가지고 찾아오신 하나님을 여러분이 섭섭하게 해드리고 되돌려 보내 드리지 말고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나때문에 안심하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명령은 열이었지만 열다섯만큼 행동하고 책임지려 한다면 다섯만큼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같이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이 삼천만 민족이 못 하겠다는 것을 대신 책임지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지겠다는 책임에 비례하여 하늘이 동정해 주신다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13-276
받은 복은 만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하시는 복을 받았을 때는 만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받은 복을 나누어 주지 마십시오. 길을 닦아 놓기 전에 복을 나누어 주면 길을 닦을래야 닦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복을 나누어 줄 수 없는 이유를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말겠어요?

예수님도, 하나님이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4천년 동안 준비한 터전 위에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하나님이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40년 동안 닦은 터전 위에 나타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터전에는 6천년의 역사적인 모든 배경이, 심정적인 모든 인연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누어 줄 수 있는 기반이 준비되었으니, 나누어 주기 위한 대표자로 등장해야 할 여러분은 이 역사적인 기반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누어 주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준비한 이 기간에 잘 받아 잘 돌려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앞으로의 시대에 있어서 복을 받아 나누어 줄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즉,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소망의 상속을 바라고 행동으로는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개인을 통하여 가정을, 또 가정을 통하여 어떠한 면이면 면, 지역이면 지역을 위하여 주어야 합니다. 자기 고향과 자기 부모를 위해 주고 거기에서 높임을 받아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이 왔었지만 모두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만큼은 이 엄숙한 책임을 완수하여서 하나님의 승리의 아들딸로서, 세계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복의 기관으로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그렇게 해보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13-277
기 도
아버님은 사랑의 아버님이요, 참다운 아버님이요, 의의 아버님이신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 아버님이 저희를 찾아오시는 것은 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참다이 주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길을 6천년이나 닦아 나오신 아버지이시니 저희들, 그런 아버지를 앞에 세워 놓고 따라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시려고 하는 예물을 저희들이 받아 나누어 주는 무리가 되겠다고 하는 간곡한 심정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이 염려해 주시고 근심해 주실 수 있는, 참을 책임진 아들딸이 되게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이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이 삼천리 반도를 대신하여 눈물지으며 외로운 길을 참아 나왔사옵니다. 그런 서글픈 길에서 숱한 핍박과 조롱을 받는 자리에서 저희들이 아버지 부르기를 몇백만 번 몇천만 번 하였습니까? 저희가 사무친 심정으로 아버지를 부를 적마다 아버지도 눈물지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아버지께서 눈물지으시는 자리에 동참한 이 아들딸들을 후대에 기뻐할 수 있는 세계적인 승리의 자리에까지 동참시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길을 가는 앞길에는 수많은 원수들이 있사옵니다. 영적인 원수들도 수없이 많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대하여 가는 이 길에 영육으로 원수들이 반대의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본받아 가겠다고 하는 신념과 결의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제거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까지 저희를 세워 인도하실 때의 원칙이 그러하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나님이 먼저 슬픔을 넘고 나서 그 슬픔을 저희에게 주신 것을 알았사옵고, 하나님이 먼저 고통의 자리를 넘고 나서 저희에게 고통당하라 하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한민족을 중심삼은 통일의 제단이 이 민족 앞에 나타났사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환경을 갖추어 수많은 도성 앞에 우리의 모든 이념을 버젓이 외칠 수 있는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옵니다. 그와 같은 이치대로 오늘 자유롭게 가슴을 내밀고, 얼굴을 들고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면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말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있기까지는 하나님의 6천년의 수고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역사적인 거룩한 성터 위에서 하나님과 행보를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된 일이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오니 아버지 앞에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움직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부르짖는 이 음성이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부르짖던 그 음성을 대신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을 등에 지고, 역사를 등에 지고, 소망의 천국을 등에 지고, 참세계를 가슴에 안고, 화살과 핍박과 폭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돌진하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 사랑하면서 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도성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영계에서도 저희와 보조를 맞추려 하고 있사오니, 이 도성의 만민도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 앞에 모일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도성에서 벌어진 싸움이 삼천만 민중을 부여잡고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세계사적인 새로운 기점을 제시하고도 남음이 있게 해주시고, 그날이 부모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십자가의 행로에서 부모를 모시는 것을, 이러한 곳에서 부모의 날을 맞는 것은 저희들은 원치 않사옵니다. 그러나 남겨진 뜻을 성취하기 위한 저희의 책임을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나만 참다운 부모의 날을 기념해야 할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아들딸로 서기 위하여 걸어간다는 것을 마음과 몸으로 체휼하면서 이번 기간을 지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이번 기간을 위해서 기도한 당신의 모든 아들딸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통일의 용사들이 세계 각국에 널려 있사옵니다. 그들 또한 이런 움직임을 다 알고 있사옵기에 그들이 기도하는 전부도 아버님의 뜻을 위한 것이고, 아버님이 남길 수 있는 영원한 축복의 터전을 위한 것이옵니다. 그러한 것을 위하여 염려하고 있는 그들 위에 축복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절차와 행동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위신과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자를 지켜 사탄세계와 분별하는 조건을 스스로 아버지 앞에 세울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사랑하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