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7 to 12-65: 민족복귀의 역군이 되라

민족복귀의 역군이 되라
1963.10.16 (수), 한국 대구교회

13-17
민족복귀의 역군이 되라
통일교인들은 자기네 교회를 다니면 잘살게 해준다는 말에 속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도둑의 심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집이 망했다가 재기하는 데도 5년은 걸려야 어느 정도 기준이 잡히는데 한 나라를, 그것도 한국같이 엉망진창인 나라, 형편없는 나라,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나라를 몇 개월 동안에 살린다구요? 절대로 안 됩니다.

13-17
민족구원과 그 기간
한 가정이 기울어져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기울어진 한 국가를 바로잡는 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더우기나 우리는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천주를 구한다는 어마어마한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 할진대 우리들이 기울어진 이 우주의 살림살이를 다시 일으키고, 이 세계를 본연의 세계로 돌이키는 데 3년 가지고 될 것 같습니까? 만일 3년 가지고 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진짜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럼 7년 가지고 될 것이냐? 7년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시며 수고하셨지만 아직까지 바로잡지 못하셨는데, 미약한 우리 인간들이 7년 동안에 그것을 바로잡고 본연의 이상기준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만두고 이 대한민국을 놓고 볼 때, 대한민국을 세계의 어느 선진국에 지지 않는, 모든 면에서 선두가 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삼천만 민중이 단결해도 적어도 40년은 걸려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큰 빌딩 하나를 짓는 데도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립니까? 그러니 40년은 걸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차를 타고 오면서 이집트의 피라밋에 관한 얘기를 하였습니다. 피라밋 알지요? 그 높이가 약 150미터인데 여기에는 수십명이 달라붙어도 옮길 수 없는 큰 돌이 약 200만 개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기 위하여 동원된 인원이 약 10만 명이며, 이 인원이 40년을 일해 피라밋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를 완전한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는,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수 있고 역사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주권국가로 세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걸려야 될 것이냐? 40년 가지고 될 것 같습니까? 40년 이상 열심히 해야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삼천만 민족을 대하여 몽둥이를 들고 `너희들 고생하라. 못 먹고, 못 살고, 죽음의 자리에서도 참고 나가라’고 할 때에 모두가 `예’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지도자가 나와야 이 민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생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목적은 세상 사람들의 목적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목적지를 향하여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행군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서 있기 때문에 그 노정에는 곡절이 많습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선두에 선 사람이 먼저 맞게 됩니다. 모든 곡절과 난관은 반드시 그를 거쳐서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따라가는 여러분보다 지도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더 어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나선 목적은 무엇이냐? 통일교회라는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간판을 하루 아침에 떼어버릴 때가 올지 모릅니다. 우리가 목적하는 것은 삼천리 반도에,세계 만방에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우고 이 민족을 선한 국민, 역사적인 민족으로 만들고 삼천리 강토를 역사적인 삼천리 강토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두에 서서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선두에 선 사람은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지도자는 모든 난관을 먼저 당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민족의 모든 어려운 일과 풍파를 먼저 당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민족 앞에 지도자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13-19
우리가 고생해 온 목적
여러분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선생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런 고생길을 걷게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남들은 편안한 자리에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이때에 편안한 보금자리를 박차고 처참하고 외롭고 슬프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길을 찾아 나서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선각자의 길, 지도자의 길을 가서 민족 전체가 그 용기와 정신을 본받아 그렇게 가게 하자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처음엔 한 사람이, 그 다음엔 두 사람이, 그 다음엔 세 사람이 이렇게 해서 삼천만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결심을 부모로부터 어린 자식까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고 젖을 먹이면서도 자기의 어려움을 잊고 이 민족의 승리의 한 때를 바라면서 기도할 수 있게까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나선 것입니다.

3년 기간을 지나 지금까지 나왔지만 이 3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도 역시 3년으로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선두에 서서 더 달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면 이제는 최고의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선두에 서서 달릴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원수가 앞을 막더라도 이것을 무찌르고 가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하나님 품으로 복귀해 드리고, 악한 세계를 선한 세계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기필코 투쟁의 역사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붙들고 `소원이 무어냐’고 물어 보면 대부분이 `나는 어려운 집에서 태어났으니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권세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권세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남과 같이 공부를 못 했으니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지금 몇 달 만에 처음 만났는데 여러분들 중에는 선생님께서 뭐 먹을 거나 한 짐 지어다 주지 않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말씀보다도 빵이나 줬으며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선생님은 빵보따리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빵을 주기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을 졸리게 하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럼 뭘 주기 위해서 왔느냐? 선생님에게도 여기에 온 목적이 있듯이 여러분에게도 여기에 온 목적이 있습니다. 이 두 목적이 합해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반드시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이나 여러분은 목적이 있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는 나 하나를 놓고 수백 명이 모였는데, 나와 여러분은 일종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서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여러분이 `옳습니다’ 하고 인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끌어올리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을 보다 나아지게 만들려면 보태 주어야 되는데 보태 주는 데는 어떻게 보태 주어야 되느냐? 전부다 뿌리를 뽑고 가지를 자르고 난 다음에 새로운 무엇을 보태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여러분의 인격을 무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보다 더 나을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선생님인데 오자마자 저렇게 심한 말씀만 하실까. 말씀하실 것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우리 인격을 무시하는 말씀만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아까 한 말이 거짓말인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시간 동안 잘 들어주길 바랍니다. 내가 보따리 싸 가지고 가든지 여러분들이 고개를 숙이든지 해야 되겠습니다.

13-21
사람들이 추구해 온 것과 현재 필요한 것
자 이제 되돌아가서 아까 얘기를 해야 되겠습니다. 저 처녀 보고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봤었지요? 요즘 젊은 사람을 붙들고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한국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어 보고 싶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엔 될 수 있다면 내가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즉 대통령이 되어 이 나라의 권세를 한 손아귀에 넣고 삼천만 민족을 지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엔 무엇을 원하느냐 하면, 세계의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고 온천지가 우러러 볼 수 있는 무불능통한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목적으로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돈과 권세와 학식입니다. 종합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구하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하고 긴급한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사람들은 돈이라고 말합니다. 경제기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권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 주권을 쥐어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문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민도를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돈 가지고 그 나라를 영원히 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권세를 가지고 그 나라를 영원히 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 지식을 가지고 그 나라를 영원히 구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높은 학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묶을 수 있고, 민족정기를 만들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는 한, 그 지식은 어느 한 때에 도움이 될는지 모르나, 문화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 분야에 도움이 될는지 모르나, 새로운 세계의 영원한 기반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전인류가 바라는 것은 돈과 권력, 그리고 지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 20세기의 문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미국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은 만국이 부러워하는 경제기반을 갖고 있고, 만국이 추앙하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만국이 따라갈 수 없는 문명국가, 즉 선진국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진정으로 민주 진영을 살릴 수 있는 입장에 있느냐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입장에 섰느냐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세계의 사조를 꾸며 나가고 있지만, 이 두 주의가 인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수습하고, 흐트러진 인류의 양심을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관을 갖추어서 천지에 변치 않는 기반을 닦아 놓을 수 있겠느냐 할 때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소련은 국제 공산당의 위신을 박차 버리고 민족주의적 공산당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이 때에 있어서 생각을 올바로 하는 청년 남녀들이 지녀야 할 욕망은 무엇일 것이냐? 돈도 아닙니다. 권세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암만 물고 뜯고 해봐야 그런 것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엇이 필요하냐? 돈 있는 사람을 무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요, 권세를 잡은 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이 시대에 있어서는 네가 나에게 호령하지만 10년, 수십 년 후에는 내가 필시 너를 항복 시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식이나 권세는 갖추지 못했지만 가장 위대하고 역사적인 진리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하늘과 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왔다 할진대 그 무리는 기필코 세계적인 사건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어떠한 힘으로도 밀어내지 못합니다. 어떠한 사람도 그들이 서 있는 자리를 옮겨 놓을 수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천하를 대신한 진리를 중심삼아 남이 알지 못하는 양심세계의 근원을 파악하고, 양심적인 생활과 사정을 포섭하여 묶어 치울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역사상 모든 인간들이 그를 숭배할 것입니다. 이 땅에 왔다 간 성인 현철들도 그 앞에는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요, 이 시대의 만민들도 그 앞에는 자동적으로 굴복이라는 명사를 세워 놓고 말없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13-23
재물과 권세와 지식은 어차피 지나가는 것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떠한 길을 가야 되느냐? 또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어떠한 길을 가야 되겠느냐? 인생이 인생다우려면 어떠한 길을 가야 되느냐? 물질을 얻기 위해 자기의 인격을 파는 사람이 되지 말고, 물질을 얻기 위해 자기의 지식을 파는 사람이 되지 말고, 권세 때문에 자기의 인격을 팔거나 자기가 존중하던 진리를 파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인격이나 자식을 팔 수 없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단 하나 천지의 대도이다, 천지의 대도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사망권으로 들어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고, 혼란한 사회의 모든 제도를 수습하고, 사회의 전통을 수습하여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통일 이념은 무엇을 표준하고 출발하였던고? 인간이 바라는 세속적인 욕망을 표준하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밟고 올라서서 출발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백만장자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부러워하지 않고, 권세를 가지고 호령하는 것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어떠한 주의 사상과 지식을 갖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그 위에 올라가 청산지어져야 할 역사의 운명을 헤아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필시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떤 미련과 애착과 소망과 사정과 심정을 둘 수 없는 것입니다.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그 위에서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무슨 지식? 보이는 세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육신을 중심삼고 안일의 처소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추구하는 권위는 무슨 권위? 세속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그 양심과 그 인격을 온 피조만물이 추앙하게 할 수 있는 권위입니다. 또 우리가 원하는 물질은 어떤 물질?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그대로 있는, 순결하고 추함이 없는, 정의에 입각한 물질입니다.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하여 움직이는 사람이나 단체, 어떠한 주의나 사상이 나오지 않는 한 이 세계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파괴되고 붕괴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40평생 생명을 걸고 싸워 나온 목적이 무엇이뇨? 선생님은 돈을 원치 않았습니다. 무엇을 원했느냐? 참다운 사람을 원하였습니다. 어떤 참사람이냐? 일시적인 욕망을 단칼에 잘라 버리고 오른팔로 재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비참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이 선생님은 비참하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만민이 바라보고 조롱하고 저주하고 비난하는 그런 자리에서도 선생님은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세속적인 어떠한 환경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은 어차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자기들의 경제력을 세계 만방에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그들의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미국이 민주주의의 주권을 중심삼고 세계를 호령한다 할지라도 그 권세는 미국 자체의 권세가 아닙니다. 천지를 호령할 수 있고, 천지를 수습할 수 있는 문화 민족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문화와 지식의 기반을 그 민족 자체의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종말에 남아질 수 있는 경제력, 역사의 종말에 남아질 수 있는 권세, 역사의 종말에 남아질 수 있는 지식, 즉 역사에 매장되어 버리는 것말고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존속할 수 있는 경제력,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남을 수 있는 권위,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남을 수 있는 지식은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그 모두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또 하늘에 공명되는 자신의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쉴새없이 선이 아니면 몸이 지향해 나가는 방향을 거부하며 지금까지 참소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길이 하늘을 동경하고 하늘을 위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에게 주고 싶어하고, 권세가 있으면 있을수록 만민의 것으로 돌리고 싶어하고, 천하를 주고도 갚을 수 없는 참다운 지식의 원천을 알았다 할진대 천하의 것으로 돌리고 싶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사람이 가져야 할 욕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하므로 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13-25
정의는 남고 불의는 쓰러지니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 앞에 서서 하는 말씀은 문선생의 말씀이 아닙니다. 엄연히 역사와 더불어 남아져 왔고, 현실을 수습하고 역사를 이끌어 나갈 천륜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통일의 무리들을 남아질 수 있는 천륜의 길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냐, 어떻게 남아질 수 있는 인격체로 세울 수 있겠느냐, 어떻게 영원무궁한 터전 위에 안식의 보금자리를 잡게 할 것이냐, 양심이 바라고 심정의 세계가 바라는, 만민이 그 진리 앞에 천만번 종이 되어도 감사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진리를 남겨줄 수 있겠느냐를 항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어디로 내몰아야 되겠느냐? 이런 길로 내몰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을 걸어 놓고 투쟁해 나왔습니다. 내 몸의 피가 마르지 않고 신경이 끊어지지 않는 한 내가 바라보는 것,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있고 찾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알고 있지 않고 찾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안위의 환경이라고 자랑하는 그런 자리를 원치 않습니다. 권세를 가지고 호령하는 자리도 원치 않습니다. 방향도 다르고, 표준도 다른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보자 이겁니다. 정의는 남는 것이요, 불의는 쓰러지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지닌 가지의 잎은 남습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끊어진 가지의 잎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영원무궁토록 돌고 도는 것입니다. 지금 이때는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방향으로 내모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 방향에 부합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인격만 갖추게 되면 역사는 지나가고 세상의 모든 문화와 권세와 경제력은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그가 바라고 세우려 하는 기준은 분명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요, 천륜입니다.

통일교회의 무리들을 모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한 길로 내몰려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바라는 경제관이나 권위의 기준은 세상의 것과는 다릅니다. 하늘땅이 찾아 세우려는 최고의 지식기준과 최고의 진리기준도 세상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도 그런 입장에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리에서 참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 망해 들어가는 이 사회, 이 사조, 붕괴해 들어가는 이 혼란의 와중에서, 희희낙락하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참다운 사람인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울고, 이세상을 바라보고 적개심을 품고, 이 시대는 망하여야 된다, 망하지 않으면 내 손을 대서라도 망하게 만들겠다는 사람, 정의에 입각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다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느냐? 이 땅 위에서 제일 비참한 자리에 서야 합니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기가 가진 그것으로 자기의 입장을 세워 나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진정 돈의 가치를 압니까? 진정 권세의 가치를 압니까? 진정 지식의 가치를 압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그 가치를 백퍼센트 보호해 줄 수 있고, 백퍼센트 지켜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은 세상으로부터 오느냐? 아닙니다. 그럼 내 앞으로 오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선은 뒤에서부터 수습해 옵니다. 그러기에 선한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때 그 중심인 천운을 붙들고 돌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잡지 못하다면, 그것이 180도를 지나 돌아갈 때에는 그 축(중심)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 자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진국에는 돈이 많은데 그 돈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권세는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식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냐? 만민의 아버지입니다. 그런고로 그 아버지의 인격, 경제, 권세, 진리는 모두 만민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 와서 민주주의가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은 백성의 것, 즉 만민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이 주권을 좌우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권이 백성에게 있다고 하지만 실상 그 주권은 재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배가 부르지만 혼자만 잘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 나누어 줘야 됩니다. 천리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에 원조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것입니다. 어떠한 학식도 선진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것입니다.

13-27
주더라도 부모의 심정으로 눈물흘리며 주어야
이제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자국의 경제력을 풀어서 제일 못사는 나라를 찾아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주어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입장에 서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 있어서도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권세의 자리에서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반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눈물을 흘려야 되느냐? 받는 사람이 먼저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먼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주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비참하고 흉악한 자리에 있으면 그 자식을 찾아갈 생각만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천지의 대도가 그렇다 할진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가진 사람이 형이요, 창고지기인 것입니다. 그러니 다 나누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는 데는 어떻게 주어야 되느냐? 눈물로써 주어야 됩니다. 비웃으며 주다가는 망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가끔 원조를 하고 있는데 권세를 가지고 하게 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대한민국도 그렇습니다. 미국을 대하여 `너희들 원조했다고 뻐기는데 언제 한번 너희들이 얻어 먹어 봐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눈물로 주어야 합니다. 눈물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서로는 형제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돈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누차 깨달았기 때문에 주고 싶어서 눈물을 지을 수 있고 눈물 흘리며 진정으로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인격을 갖추는 것이 세상적인 돈보다도, 세상적인 권세보다도 더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자리에서 천지의 운세를 기막히게 돌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민족이 되지 않으면 그 민족은 멀지 않아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불행해도 주자는 것입니다. 주더라도 눈물로 주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자란다면, 피로 주자는 것입니다. 눈물과 땀과 피로 주자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의 인간 가운데 누구를 찾아오고 누구를 변명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이라면 그런 사람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을 바라볼 때 가진 자, 권세를 가지고 호령하는 자, 무엇을 안다는 자는 있어도, 진정 눈물로 나누어 주고 싶어하고, 눈물로 품어 주고 싶어하고, 눈물로 도와주고 싶어하고, 눈물로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하늘이 슬퍼하고 역사가 슬퍼하고 시대가 슬퍼하는 것은 무엇이냐? 돈이 없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없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권세가 없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가 발달이 안 되어서, 혹은 지식이 없어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진정으로 나누어 줄 줄 모르고, 세도를 가진 사람이 진정으로 보호해 줄 줄 모르고, 알고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가르쳐 주지 못해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부패하고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상을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민주주의 이념을 넘어 세계주의 이념을 가지고, 미국이 주지 못한 민족이 있다면 내가 먼저 주자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빵 한조각을 주더라도 심혈을 기울이고 정신을 기울여 뼈가 녹아나는 자리에서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빵 한 조각을 주는 사정을 알게 될 때 그 민족은 빵 한 조각을 받고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지니고 불쌍한 민족을 위해 천리길을 멀다 않고 왔다는 것을, 지역과 거리를 초월하여 심정어린 발걸음으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가져오던 빵 조각을 잃어버렸을 망정, 오다가 지쳐 쓰러져 통곡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역사는 그를 높이 세우는 것이고, 그 자리는 후대에 전통적인 민족성과 새로운 이념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의 법도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3-29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여, 내게 돈을 주지 마십시오’ 했습니다. 내가 돈을 번다면 어느누구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벌 수 있습니다. 돈도 필요하지만 돈을 정복하는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서 `제발 이것도 그와 같이 써 주십시오’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통일식구들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훌륭한 것입니다.

지방에 순회 나가 보면 우리 식구들의 생활이 비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 가나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입을 것 입지 못하고 고생하는 식구들이 있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구들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선생님입니다. 뼈가 울 정도로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세상의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적인 인격에서 그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주고 싶어야 합니다. 주고 싶어 애달파하면 아낙네들이나 아저씨들은 반응하지 않더라도 필시 반응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나니 그들이 누구냐? 어린이들입니다. 천륜을 따라 순진하게 자라는 어린이들은 필시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면서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하고,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남과 같이 편안한 자리에 눕히지 못했습니다. 모두 내 책임입니다. 그러나 책임질래야 책임질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한 사람한 사람을 붙들고 위로해 주고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연단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 도상을 향하여 가려는 예수님 앞에 베드로가 나타나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할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원수와 같이 대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자기와 뜻을 염려하는 베드로에게 준 최후의 선물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오늘 이와 같은 자리에서도 천추에 남을 수 있는 제자로 만들려 하고있고, 십자가를 넘어 만민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인격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여기에서 쓰러지고 여기에서 후퇴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제자입니까? 역사를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예수님은 가슴이 떨리고 신경이 폭발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그 길을 가면서 입을 열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고 가시는 예수님의 입에서 `사탄아!’ 하는 말이 웬말입니까? 그것은 그를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계 만민을 위하고, 후손들을 위하고 천륜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는데, 그가 주기 위하여 가는 스승의 길을 막는 입장에 섰으니 사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삼천리 반도 사방팔방에는 우리의 땀방울이 젖어 있고, 우리의 눈물이 젖어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에서 하늘의 사무친 원한이 쌓여 있습니다. `아! 너 산아, 그리고 물아, 우리의 한을 풀어다오. 만 겨례에게 주고 싶은 이 마음을 알아 어서 속히 자유스런 환경에서 줄 수 있게 하여 다오’라고 하는 사람, 만민이 그 앞에 다 머리를 숙이고 숭고한 그의 피값을 찬양하고, 숭고한 그의 참뜻을 찬양하고, 숭고한 그의 심정을 찬양하는 사람, 받기에 황공하여 그 앞에 만민이 머리를 들 수 없어하는 인격자가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여 `야! 쉬어라!’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그 마음을 누르고 더욱더 채찍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통일교회의 위치요, 현재 우리가 재결의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굶으며 살아도 나보다 더 굶는 사람이 삼천만 민족 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죽지 않는 한 혀를 깨물면서 기도하고, 그들의 서글픔을 하늘 앞에 호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기가 힘들다고 쓰러져 낙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마지막까지 선의 길을 찾아가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13-31
우리가 갖고 있는 재물, 권세, 학식은 천주의 것
여러분은 사탄이 저끄러 놓은 혼란된 인생노정을 가다가 지쳐 쓰러져 낙망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 해도 내가 가지 않으면 천만, 이천만이 희생되니 이것을 염려하면서 그들을 위해 눈물짓고 그들의 어려움을 한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은 진정 가고 싶은 길이요, 우리들이 찾아 이루어야 할 나라는 영원히 영원히 살고 싶은 나라입니다.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재물은 천주의 것인 동시에 내 것이요, 이 시대의 것인 동시에 과거의 것이며, 동시에 미래의 것이라고 보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울 때에 천지가 같이 울 수 있고 우리가 기뻐할 때에 천지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권위와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이 현세에서 찾아야 할 최고의 욕망이요, 소망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여러분,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통일교인들은 원리를 배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어느 정도 불쌍하신지 여러분은 압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분이 입을 열어 불쌍한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정신의 한계내에서 했던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슬퍼했던 것만큼 밖에 하나님의 슬픔을 모릅니다. 여러분의 한계내에서밖에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슬픈 아버지를 얼마나 위로해 드리는 자리에 서 보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불쌍한 아버지란 어디에다 기준을 두고 한 말입니까? 남의 일이 아닙니다.

복귀섭리의 길은 원통한 길이요, 한스러운 길이요, 불쌍한 길입니다. 더구나 선을 찾아 나가는 자에겐 희생의 길입니다. 이러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하여 하늘은 먼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습니까? 이제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고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을 헤아려 볼 때에 얼마나 불쌍한 하나님이신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쌍한 하나님, 그 하나님의 불쌍함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뜻을 품고 만민을 구하기 위해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의 슬픔은 얼마만한 것이겠습니까? 억울한 예수요, 불쌍한 예수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불쌍했는지 압니까? 그 예수를 따르던 성도들도 불쌍한 길을 갔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것을 여러분들이 상기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통일교회의 관계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생각하며 가야 되겠습니다.

6천년 역사를 보게 될 때에 2천년 동안의 복귀기대섭리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을 잃어버린 슬픔의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복귀의 한을 풀겠다고 노아를 찾아 세우고, 아브라함을 찾아 세우기 위해 나섰던 하나님의 그 발걸음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신이 나고 의기가 양양했겠습니까? 깨져 버린 아담 해와 대신 긴 역사를 거쳐 노아를 찾아 세우시던 아버지의 그 발걸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가고 싶었겠습니까? 가기 싫었고 지긋지긋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과 첫 대면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직접 말씀을 못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상징과 비유로, 몸을 감추고 얼굴을 가리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나왔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보았습니까?

하나님은 노아를 세워 놓고 120년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좋아서 120년을 기다렸겠습니까? 아담 해와로 인해 생겼던 그 슬픈 곡절이 또다시 생겨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의 실수로 인하여 한스러운 심정을 천추만대의 후손에게 남기게 되었는데, 그것을 수습하기 위하여 찾아가는 처량한 발걸음 앞에 노아가 또다시 한을 남기게 된다면 인간들은 더 큰 한의 보따리를 짊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배반과 실패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두고 봐 가면서 섭리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을 거쳐 야곱까지 2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왔으니 그 심정이 어떻했겠습니까? 그러한 탕감복귀섭리시대를 거쳐서 예수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런 예수가 저끄러진 역사를 세계적으로 수습하기 위한 노정을 걷게 될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13-33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은 예수가 책임을 다하여 그 한을 땅에서 풀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또 다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2천년 탕감복귀연장시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했던 하나님이었으니 그 발걸음이 편했겠습니까?

우리의 선조들은 어찌하여 사탄의 수중에서 희생되었던고? 하나님은 마음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해 6천년 동안 탕감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완전탕감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다시 재림이란 명사를 세워 완전 탕감의 한 날을 바라며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아담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하나님의 슬픔과 십자가상의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던 하나님의 슬픔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고, 만민 앞에 제단을 쌓고 죄인같이 붉은 옷을 입고 하늘 앞에 속죄의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자식도 처량하지만 그런 길로 내몰아야만 하는 아버지의 심정도 처량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따르는 여러분의 입장이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가야 할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국에 남아 있는 골고다의 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길을 넘어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가야 하고, 세계적이 골고다의 길을 넘어 천주적이 골고다의 길을 향해 행군해야 할 여러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크나큰 책임이 맡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지탱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신세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모든 개인 사정을 천번 아니, 만번이라도 봐주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할 적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들어주고 싶었겠습니까? 자식이 기도하기 전에 들어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지만 아버지는 외면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운명하기 직전에 한에 사무친 목소리로 크게 소리질러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슬픈 인생을 살아왔고, 제아무리 자기의 생명이 유린당하는 환난도상에서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인류를 몰살시키고 뼈까지 전부 불사르고 그 재마저 날려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곡절의 심정을 억누르고 지금까지 인간을 대해 오셨습니다.

인간들은 천차만별의 행로를 거쳐 왔지만 하나님은 복귀의 한 날을 바라보시며 개인적인 시대를 거치고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를 거쳐 수고의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인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오신 아버지 앞에 진짜 아들딸입니까? 선생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눈물짓고, 겟세마네 동산과 감람산을 찾아가던 예수의 심정을 더듬어 그의 슬픈 심정을 알고 나서는, 이렇게 불쌍한 주님을 위로해 드리지 못한 자신이 한스러웠습니다. 그 당시에 그 분을 모시고 내가 한번 살아 봤으면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영광의 그 세계를 꿈꾸며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고, 그 아담 해와가 어서 자라기를 바라셨던 것처럼, 아버지의 미의 대상실체가 되어서 천지가 우러러보고, 만우주가 찬양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그 사랑의 품에 안기어 사랑받을 수 있고, 그 아버지의 사랑의 품이 좋아서 눈물지을 수 있는 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13-35
탕감은 고생의 자리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걸어오신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 메우기 전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연고로 하나님께서 무지한 인간을 용서해 주는 법도로 세운 것이 탕감입니다. 그러기에 일대에 조건을 세워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의 조건은 어떠한 자리에서 세우느냐? 편안한 자리에서는 세울 수 없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세우는 탕감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즐거워하며 입을 벌리는 큰 웃음을 웃는, 만족에 취하여 춤을 추는 그러한 자리에서 탕감이란 명사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리에서 세워야 하느냐?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흐르고, 땀과 피가 흐르는 자리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로 뒤넘이쳐 마음이자 몸이요, 몸이자 마음이 되어 안타까움에 사무쳐 통곡으로도 할 수 없고, 죽음으로도 할 수 없는 애달픈 자리에서 비로소 세워질 수 있는 것이 탕감이란 명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생활적으로 보면 불쌍합니다. 지도하는 선생님이 온다고 해서 마중나오는 거 나는 싫어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비참 그 자체이며 불쌍함 그 자체입니다.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괴로운 눈물 그 자체입니다. 하늘 앞에 나선 예수는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보는 그 자체로 눈물이요, 보는 그 자체로 통곡이요, 보는 그 자체로 원통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있더라도 삼천리 반도 곳곳에서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위하여 충효를 다하겠다고 맹세하는 무리가 나타나기를 선생님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태중에도 있지 않을 때에 선생님은 이런 맹세를 했고, 여러분들이 꿈에도 이런 길을 갈 생각을 하지 않을 때에 선생님은 이미 이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눈물이 많다면 삼천만 민족이 어느누구 못지 않게 눈물이 많습니다. 나에게 누가 나타나서 한마디만 하면 억제할 수 없는 통곡이 벌어질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선생님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쌍하냐?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천지가 제 아무리 넓다 해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었는데,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선생님은 우주적인 복귀, 천주적인 복귀의 이념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바쁜데 현실에 처해 있는 통일교회 무리를 바라보면, 개인복귀 사정도 나는 몰라, 가정복귀 사정도 나는 몰라, 민족이 어떻게 되든 세계가 어떻게 되든 나는 몰라라 하며 가다가 먼 산 바라보며 낙망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닦아 나온 터전 위에 세우려는 통일교회 교인들의 모습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고 한 것처럼 나는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그 심정이 어느 정도냐? 집에 있어도 밖에 나가도 선생님은 몸 둘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릎을 꿇으면 통곡밖에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대적인 사명을 하고 있다고 하는 현하의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걸음이요, 해야 할 생활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에게는 공통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놓고? 영광을 놓고 공통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요, 천지의 승리의 한 날을 놓고 공통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의 한 날이야 아무 때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 공통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은 편안한 자리에서 세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이 어찌하여 허덕이고 있으며 어찌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란한 환경 속에 있느냐? 그것은 탕감의 수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지은 죄와 이 시대의 인간들이 지은 죄를 하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탕감의 수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원래 기성교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으나 그들은 책임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이러한 사명을 재촉하기 위해 온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그러니 나를 따르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고생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 민족이 편안해질 때까지 고생해야 합니다.

13-37
하나되어야 탕감이 된다
하나님은 이 민족이 개인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고 나아가 천주적인 탕감조건까지 세워주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세계를 구하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책임을 부여받았고,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할진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 심정을 걸어 놓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주적인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어 놓을 수 있는 탕감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마음과 오른편 강도의 마음이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자신을 알아보고 그 고통을 주는 그 강도를 강도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하나가 된 것과 같이 그 강도를 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들이 구원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몸을 쓰고 있을 때 베드로보다도 먼저 낙원에 갈 수 있고, 베드로보다도 먼저 천국에 갈 수 있는 승낙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오른편 강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베드로보다 오른편 강도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은 어떠한 입장에서 세울 수 있느냐? 슬픔도 함께하고, 기쁨도 함께하고, 어려움도 함께 당하는 자리에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슬퍼하고, 하나는 기뻐하는 입장에서는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도 여러분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선생님의 슬픔이요, 여러분의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은 선생님의 어려움인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에게 그런 어려운 환경으로 가라고 한다면 전부다 달려들어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로 가라고 명령한 스승을 오히려 눈물로써 사모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데에서, 이렇게 둘이 하나된 심정적 인연이 기반이 되어 탕감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탕감시대에는 내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싸워 나왔지만, 가정적인 탕감시대에는 부부가 서로 그의 마음이자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자 그의 마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심정이 통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가정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격을 이미 상실한 가정입니다.

지금은 통일교회가 개인적인 탕감노정, 가정적인 탕감노정, 민족적인 탕감노정을 거쳐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해야 할 과도기입니다. 이런 때에 한국과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탕감무대를 향하여 넘어가는 이 순간에는 한국에 있는 선생님이 굶주리면 그들도 굶주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회개 기도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식구들이 고생하면 그들도 고생해야 하고, 한국 식구들이 슬퍼하면 그들도 슬퍼해야 합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교인들이 슬퍼하면 그들도 슬퍼해야 하고, 한국 식구들이 국가를 위하여 싸우는 자리에 서면 그들도 같은 심정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탕감을 통일제단이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런 것을 모르기에, 이 길을 닦아 놓는 것은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이 3년 기간은 선생님이 이런 책임을 하는 기간입니다. 이 3년이란 기간은 사탄분별 기간입니다. 3수와 4수는 사탄을 분별하는 수입니다. 7수를 유린당한 것이 천지의 한입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아들딸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3수는 아들딸을 찾기 위한 탕감수요, 4수는 만물을 찾기 위한 탕감수입니다. 그러기에 이 3년 기간은 선생님이 생명을 걸고 세계에 널려 있는 사탄들과, 천상천하에 널려 있는 수많은 악령들과, 세계에 있는 인류와 대결하는 기간입니다.

개인적인 탕감노정에서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거쳐 나가려면 반드시 개인의 역사적인 인연을 탕감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적인 탕감의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천국은 가정을 갖추고 가는 곳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를 갖추어 가는 곳입니다. 부모는 지옥 가고 아들과 딸은 천국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모와 아들딸이 함께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서 기도하는 것도 가정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날 재림의 한 날을 세워 놓고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된 신랑 신부가 만나서 하늘가정을 꾸미기 위한 잔치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갖춘 자격자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천리입니다.

13-39
세계 복귀의 기반을 닦은 통일교회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 땅 위에서 모진 바람에 휩쓸리면서도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몇 천만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원수를 만나는 고비고비마다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 내가 죽으면 안 된다. 내가 죽으면 이 뜻을 누가 세울 것이냐?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사지가 잘리는 병신이 되어 누워 사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죽어서는 안 되겠다’고 얼마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어려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선생님입니다. 기반을 닦기 전에 이름이 날까 봐 두렵습니다. 왜? 그런 경우에는 사탄의 공격이 있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죽지 않고 40고개를 넘어갈 날을 고대하며 세월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말없이 바랐습니다. 아브라함이 복귀의 기준을 세운 이후의 4천년 역사를 끝날에 40수를 세워서 넘어가야 함을 알고 40고개가 어서 넘어가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입니다. `청춘아 어서 가라. 세월아 어서 가라. 내게 있는 모든 보화를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와야 할 40고개에서 나는 패자가 되지 않고 승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지나온 것입니다. 또 그것은 선생님의 숙원이었습니다. 천주 앞에 일신을 세워 놓고 죽지 않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 40고개를 맞이하기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들은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전부 동원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러한 길을 가는 데는 친구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도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뒤넘이치는 싸움을 생명을 걸고 싸워서, 1960년에 성혼식을 하고 그때부터 3년 기간을 출발한 것입니다. 그 기간은 자녀를 복귀하는 기간입니다.

하나의 중심이 서기 위해서는 상하 전후 좌우의 입체적인 관계가 완결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정적인 기반을 세워 놓고 역사적인 탕감을 하기 위한 복귀노정을 3년 동안이나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끝나는 때가 되었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겠느냐? 개인적, 가정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으로 뻗어 나갔어야 할 탕감의 운세가 개인에서부터 뻗어나가지 못하였던 것을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책임을 지고 뻗어나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개인적인 그 은사가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까지 넘어서 돌아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만일 죽는다 해도 이 뜻은 영계가 수습해 줍니다. 과거에 영계에서 사탄과 싸워 사탄을 굴복시켰으므로 이제는 이 세상의 인간만 복귀하면 되는 것입니다. 뻗어나가는 운세 가운데에서 영계가 협조하면 손해지만 돌아오는 운세에서 협조하면 이익입니다. 열 번 협조하면 열 번 다 하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나안 복귀의 기준을 세우고, 천상 천하에 상대적인 이념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각 국가에 대표영(代表靈)을 세워 그 국가의 문을 개방했기 때문에 세계 만민들은 통일교회의 운세권내로 들어오지 않으면 망합니다.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전도를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전도될 때가 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움직이기만하면 식구들이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인들은 참 적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기성교회에서 잘 믿던 목사 장로들은 들어오기 힘듭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선생님을 원수시하던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의 아들딸들은 전부다 통일교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딸들이 자기들의 부모가 반대한 역사를 알면 부모의 무덤을 파게 될 것입니다. 땅이 탄식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땅도 그런 시체는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도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하고 상대적인 기준을 세워서 일체가 된 후에 탕감노정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전도를 했습니까? 전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땀을 뿌리며 하늘과 땅을 위해 걸었다는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3년 기간이 지난 지금은 헝클어진 역사가 어느 정도 청산되었음을 봅니다.

13-41
한민족의 위치
그러면, 이제 한민족은 어떻게 되느냐? 한민족은 어떠한 시대권내로 들어가느냐? 복귀섭리 역사를 볼 때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과 그 이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수고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꾸며 나왔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사명을 완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한민족이 그 사명을 상속받아 가지고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한국은 어떠한 권내에 있느냐? 전세계 기독교가 제2이스라엘의 입장이라면 한국은 제2이스라엘을 지도할 수 있는 택함받은 천민(天民)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백성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제2이스라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런 시대적 혜택권내에 우리가 들어왔기 때문에 공이 있는 영인들만이 지상에 재림하여 후손들에게 협조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인데 한국은 예외입니다. 오늘 지상에 있는 한국 백성들은 제2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혜택권내에 제2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 땅에 내려와 협조하듯이, 한국 백성들에게는 조상들이 내려와 협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서는 조상들이 직접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움직이는 후손들을 협조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예수님과 성신이 협조하였지만 이제는 선한 조상들이 자기의 후손들에게 협조할 것입니다. 이런 때에 통일교회에 안 가면 어떻게 되나 두고 보십시오. 조상들이 통일교회에 가라고 들이몰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고생스럽겠지만 4년만 참고 견디길 바랍니다. 4년은 탕감기간이니 통일교인들은 고생해야 됩니다.

이번에 우리가 남군 북군으로 나누어 전국적으로 특별 부흥회를 실시하였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그런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나라가 어느 때에 자리잡을 것이냐? 하늘이 세우려는 이념이 자리를 잡은 후에라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못 잡습니다. 천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리잡기 전에는 이 나라도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민족 앞에 있기에, 이 민족의 정신을 지도하고 있는 수많은 종교가 하나님 뜻 앞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 민족도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물어뜯고 할 것입니다. 이제 금년이 지나면 흉년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풍년이 들 것입니다.

지금은 통일교회 선생님도 고생하고 통일교회 식구들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생하면 하나님도 고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민족적인 탕감기준을 세워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고생하는 심정과 삼천만 민중이 고생하는 심정이 상대기준이 조성되어야만 민족적인 탕감기준이 세워져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3년 동안 싸워 나온 목적은 무엇이냐? 교회적인 탕감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성교회가 선생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성교회를 떼어 버리고 기성교회를 대신할 수 있는 통일교회를 세워 싸워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래야 했느냐? 예수님 당시에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하고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이었고 그 선민을 움직여 나가는 정신적인 근원지는 유대교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실정이 그때와 비슷합니다. 끝날에 있어 로마 제국과 같은 것이 미국입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아성입니다. 그리고 이름만 달랐지 경제적, 사상적인 면에서 식민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한국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단체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 정신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움직이면 민주주의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13-43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둔다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는 어떠한 양상을 보이고 있느냐? 옛날 예수님 당시와 같이 세계적인 끝날의 양상을 재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 지금의 민주주의 세계는 그때의 이스라엘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며, 지금의 기독교는 그때의 유대교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오셨느냐?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오신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이스라엘 민족을 장중에 넣고, 유대교를 발판으로 하여 전세계를 통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가 서야 할 무대, 하늘이 준비했던 터전이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갔습니까? 반대하고 나가 자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고이고이 길러 놓은 유대교단은 어디로 갔느냐? 예수를 팔아먹는 데 선봉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활동무대를 모두 잃어버린 예수님이었습니다. 세워 놓은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갔으며, 세워놓은 유대교단은 어디로 갔느냐? 그들에게 몰리어 이슬과 같이 사라진 예수님이었습니다. 민족의 반역자라는 명패를 달고 고아처럼 골고다로 걸어간 예수님이었습니다.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가신 주님은 십자가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환란의 고비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범위만 넓을 뿐이지 민족과 환경은 그때와 같은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새로운 이념을 품고 그 기반을 닦기 위해 나타나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제2이스라엘의 입장에 있는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을 유대교인의 입장에 세워 놓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민주세계를 통일하고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주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못 했으니 그가 다시 와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수님은 어떻고 돌아가셨느냐? 민족의 반역자요 이단의 괴수로 몰려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역사를 상속받고 역사의 계대(繼代)를 천륜 앞에 세워 놓기 위하여 새로운 뜻을 품고 나온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민족에게 몰리고 수많은 교단에 몰리더라도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갔던 예수님과 같은 신세만은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지도해 나온 골자입니다. 예수님은 쫓기다 죽었지만 우리 통일교인들은 쫓기더라도 죽지를 말자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부모를 모시는 효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유대교단의 책임이요, 하늘을 대신하여 지도자로 오신 예수님 앞에 충신의 도리를 세워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인들은 오시는 주님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야 했고, 이스라엘 민족은 충신들이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효자 효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 4천년 동안 수고한 하나님의 역사는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선민인 이스라엘을 찾아 오시고, 이스라엘을 세워 충신의 절개를 남기려 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효자와 충신들이 배반하니 피할 곳은 어디뇨? 없는 것입니다. 죽을 곳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편히 쉬라고 놓아 둘 것 같습니까? 그러니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잃어버리고 교단을 잃어버려, 충신도 간 데 없고 효자도 효녀도 다 사라져 버린 그때에, 원수가 대들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할 수 없이 십자가에 돌아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을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사적인 견지에서 볼 때 좌우의 사조가 한국을 중심삼고 기묘하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판문점(板門店), 생각해 보십시오. 참 재미있는 명사입니다. 이런 것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거 생각해 보았어요? 지각이 있는 사람은 생각 좀 해보십시오. 괜히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판문점은 우리 민족만의 문제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사조로 인해 생기게 된 것입니다.

후르시쵸프가 유엔 단상에서 신발을 벗고 야단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1957년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중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우리의 역사에 보조를 맞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다면 내가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13-45
참제자가 되려면
지금은 선생님이 이래야 되겠다 하면 여러분은 그냥 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안 들으면 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줄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구나. 당연하구나’ 할때까지 설명해 주어야 하니 죽을 지경입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까? 지금은 민족복귀시대로 넘어가야 하는 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나 `이제 나 압니다’ 하고 자신있게 대답을 해도 사탄이 와서 호령을 하면 여러분은 꼼짝 못합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사탄이 와서 선생님보다 더 큰소리로 호령하면 넘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오늘 이곳에 처음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 온 사람에게는 선생님이 인사를 하자마자, 나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반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그건 모두 선생님의 제자니까 그러는 겁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진짜를 얘기하고 진짜를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뼈를 부수고 이빨을 부러뜨려 놓고도 가서 그저 코를 골며 편안히 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진짜 제자입니다. 이 손가락 하나를 놓고도 기분 나쁜 얘기를 하면 세상 사람들은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통일교인들은 다릅니다. 욕을 해도 잘받아들입니다. 실제 그렇습니까? 사실 내가 언제 욕이나 해 봤나? 그렇지 않았지 뭐. 그러니 오늘 욕 좀 해봅시다.

여기에 모인 무리들은 다 살살이패야. 20대입니다. 할머니들은 조금 있다가 가는 것입니다. 보따리 싸 가지고 문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살림살이는 이 젊은 사람들이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옛날에 다 살림살이를 해보지 않았어요? 돌고 도는 겁니다. 그러니까 섭섭할 것 없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선생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눈들을 보면 전부다 살살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교인의 평균 연령이 23세입니다. 그것도 채 못 될 거야. 참 원리적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부모들이 제발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해도 안 듣는 것입니다. 그것은 차원이 다른 심정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의 길은 어머니 아버지가 가는 길과 다르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한다고 `아! 이렇게 가는 것이 원칙인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선생님이 기분 좋게 칭찬하는 것처럼 말을 했는데 으례 그러려니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이 중요하고 시급해서 그런 것이지 길을 닦아 놓고는 다시 부모와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세계에서 살아난 다음에 줄을 던져서 부모를 구해야 됩니다. 그 줄을 아주 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거 알지요?

젊은 사람들에게 얘기하려니 선생님이 젊어져야 됩니다. 원래는 대구에 처음으로 왔으니 말 한마디 할 때도 의젓하게 `대구에 계시는 식구님들. 먼 거리에서 오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걸어오신 분들도 계시다는데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지금 4시가 다 되었는데 점심은 잡수셨습니까?’ 하며 인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선생님의 생리에 맞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세 마디씩 해야 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바쁩니다. 선생님은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오늘은 여기 있지만 아침이 오면 또 금방 가야할 지 모릅니다.

오늘 여기에 처음 오신 나이 많은 분들은 선생님이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입장이라 해도, 그런 선생님으로 아시지 마시고 우리 아들과 연령이 비슷하니 친구가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반말하더라도 귀에 거슬리게 듣지 마십시오. 알겠습니까?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나이 많은 사람이 없는 모양이지요? 그럼 좋아요.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책임을 지고 있으면 어떤 사람과도 친구가 되어야 하니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말도 하게 됩니다.

또 여러분 졸지 마십시오. 졸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까? 약속을 안하겠다면 얘기 안 할 것입니다.

13-47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선생님
한국은 동서문화가 교류되는 첨단지역이요, 사상적인 접선지역이요, 새로운 이상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출발기점입니다. 재건을 부르짖는 시대는 지나가고 통일신도가 창건을 부르짖는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창건이란 명사는 제물 없이는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원리강의하는 사람 대답해 봐요. 창건이란 명사를 세울려면 제물 없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하지요. 그러기에 할 수 없이 여러분들을 사정없이 내모는 것입니다. 재건이란 있는 것을 다시 수습하는 것이요, 창건이란 없었던 것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손이 동기가 되고 내 뼈살이 원동력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건의 사명을 짊어진 우리 통일식구들이 앉아서 `창건! 거룩! 할렐루야! 아멘!’ 만 외쳐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더라도 죽으면 안 됩니다.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더라도 땅을 붙안고 움직이고, 민족을 붙안고 움직이고, 세계를 붙안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짊어진 통일식구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루도 편안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눈만 감으면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안 자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일하다가 잠깐 자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정신을 집중하는 도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다가는 볼장 다 보는 겁니다.

여러분보다도 선생님이 사실은 더 불쌍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불쌍하게 보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은 20대지요? 선생님이 20대였을 때는 아주 불쌍했었습니다.

복귀의 길을 찾아 놓기 위해 하늘의 복귀기대 섭리시대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에게는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기 위한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천지의 도수를 맞춰서 하늘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여 지상에 발판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생애노정에도 이러한 길을 닦기 위한 시대, 즉 통일교회 준비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은 누구도 잘 모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선생님만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압니까? 선생님이 이러한 길을 찾기 위해서 어떠한 고민을 하고, 영계와 어떠한 싸움을 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계를 통일하기 전에 지상 통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창창한 무한대의 영계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의 감투끈을 전부다 잘라내어 항복을 받고, 이러한 통일이념을 갖고 나왔는지 여러분, 알고 있습니까? 영계가 통일되지 않으면 지상 통일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영통하는 사람들, 또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목탁을 두드리며 도를 닦는 스님들한테 가서 물어 보십시오. 내가 누군지. 대번에 증거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압니까? 그렇게 증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영인들은 전부다 통일교회 문 선생을 알아봅니다. 그런데 이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여러분의 눈동자를 보면 모두 정신이 없어요. 그래도 죽는 자리에선 소망을 가져요? 영계에 가면 선생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거 믿어져요? `저런 엉터리 같으니.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엉터리 자식…!’ 여러분 그래요? 그러나 `엉터리’라고 한 것이 `진터리’가 되면 됩니다.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은 모두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로챌 자는 없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의인(義印)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의인을 받고 와야 된다는 겁니다. 승리의 권한을 갖고 나오지 않으면 세계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습니까? 통일이라는 명사는 누구나 다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그런 것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안 그렇습니다. 믿어지지 않거든 40일 동안 죽기를 각오하고 금식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통일교회 문 선생이 이단이라고 소문났는데 사실 그렇습니까?’ 하며 생명을 걸어 놓고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13-49
반대받았으나 승리한 통일교회
이 길은, 6천년 동안 계대를 이어 여러분을 있게 한 선조들을 전부다 부활시켜 한꺼번에 제물로 바쳐 드려도 여러분은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갈수록 힘든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고통받고, 예수님과 성신이 걸려들어 오금을 못 펴는 함정이 몇천만 개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러한 함정을 어떻게 넘어갔느냐? 선생님에게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태어날 적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척 보면 압니다. 옮고 그른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뒤에 서야 될 것인지 앞에 서야 될 것인지를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싸움을 하면서도 패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영계에서 승리했습니다. 이걸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도인들은 앞으로 선생님께 와서 배워야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천만 민중이 반대하고, 세계 30억 인류가 반대한다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영계에 있는 수천억 영인들은 전부다 선생님의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하진 않습니다.

자녀를 가르치는 데는 원수를 굴복시킬 때 쓰던 비법을 쓰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옛날에 썼던 그런 비법을 쓰면 여기에는 한 사람도 들어와 앉아 있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기도해 보면 여기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더기 패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비법도 가끔 썼지만 지금은 안 씁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데는 비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정상적인 입장에서 교육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사탄까지 골려 먹던 선생님인데 그런 비법을 모르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아무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다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한국에서 태어났습니까? 여러분을 만나려고 태어났습니까?

영계에서 승리하여 영계에 발판을 구축했으면 그 다음에는 지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얼마만큼 승리했는지 여러분은 압니까? 선생님의 제1차 계획은 승리적으로 완성했습니다. 6천년 역사의 모든 것을 걸어 놓고, 선생님의 일대에서 해야 할 제1차 사명은 이 3년 기간에 승리적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좀 전의 얘기로 되돌아가 보면, 세계에서 판문점이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역사적인 모든 운세가 상봉하는 곳이요, 촛점이 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중심하여 모든 것이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중심이 없이 돌다가는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한국을 중심으로 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심을 붙들고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돌리면 돌릴수록 중심에 화할 수 있는 것만 남아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생 동안 한국에서는 자유당, 민주당, 공화당과 대치해 왔고, 세계적으로는 일제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와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일대에서 개인적인 탕감복귀, 가정적인 탕감복귀, 종족적인 탕감복귀, 민족적인 탕감복귀의 기대를 쌓았습니다. 아울러 국가적인 탕감복귀의 기대까지 쌓아야 세계적인 운세가 한국을 향하여 돌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위치를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한국은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은 유대교의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진리를 갖고 나온 집단이 있다면 내몰려야 됩니다. 로마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배경으로 나선 예수는 내몰렸습니다. 결국 그들의 반대를 받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천만 민중이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반대를 해도 죽지 않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원리의 프로에 맞추어 기반을 닦으며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만일 유대교를 발판으로 할 수 있었다면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있는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것과 같이 처량한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지금 모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전부 이방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들어온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전부 이방인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유대교를 믿었어요? 알았어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제일 신분이 낮은 어부였어요. 그런 사람이 무슨 유대교를 믿었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유대교와 대결할 수 있는 신약의 복음을 세워 책임을 하려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는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망하지 않고 기성교회를 인도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알겠어요?

13-51
부모를 죽인 죄인인 인류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제3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아 충효의 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대교의 입장으로 복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전에 등록증이 나온 것입니다. 로마 제국과 같은 미국에도 등록이 되었고 유대나라와 같은 한국에도 등록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무대를 닦아 놓았으니 이제부터는 우리를 추방할 자 없고, 죽일래야 죽일 수 없습니다.

유대교에게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상적인 면을 담당하고,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가는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는 유대교와 같은 입장인 기성교회가 한국 민족에게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방향을 가르쳐 주는 책임을 우리 통일교회가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교단적인 사명만을 해야 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민족적인 사명을 해야 할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3년 동안에 하늘을 알고 충성한 사람들에게 복이 있느냐? 그것은 3년 기간이 효자, 효녀로 인정받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요, 축복의 내용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3년기간에 충성하면 하늘의 아들과 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굴하지 않고 절개를 세워 하늘을 대하여 충성하고 부모를 대하여 효성하는 도리를 세워 놓아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노래 부르고 춤 추는 자리에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상에서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셨으니 다시 십자가로 오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고향을 등지고, 부모를 등지고, 형제를 등지고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와 같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식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의 30억 인류, 또 지금까지 왔다 갔던 선조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죄인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면 살인강도 죄입니다. 의붓자식이나 종을 죽인 살인강도가 아닙니다. 죄 중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죽인 살인강도입니다. 얼마나 큰 죄인지를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를 죽였어요, 안 죽였어요?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으니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게 무슨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으로 보내신 예수님은 우리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 죄인입니다. 그 입으로 무엇을 먹고 그 몸뚱이를 좋게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한 죄인들만 사는 이세상에서 제일이 되어 무엇하겠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참혹한 명사를 쓰더라도 참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들이 지은 죄값으로 본다면 배를 찢어 죽이고 한꺼번에 수천 명을 독수리 밥이 되게 하여 없애버려도 시원치 않을 악당들입니다.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십시오. 이런 말 듣기 싫어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라구요.

원리를 배우고 보니 우리는 참 아버지를 죽인 자식입니다. 그렇지요? 부모를 죽인 죄인이예요. 살인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한 부모를 죽인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죄인인데 집을 짓고 편안히 살려고 그래요? 일제시대에 죄가 없는 데도 선생님은 감옥살이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오뉴월 삼복 더위에도 꿇어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만 잠을 자면 대꼬챙이로 찌르고,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건 약과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을 원칙적으로 다스리려면 그렇게 다스려도 하늘의 법도에 걸리지 않습니다. 원칙에 걸리지 않습니다. 다 변명할 수 있습니다. 조건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맞고 또 맞아서 만민의 속죄의 제물로 사라진다 할지라도 한이 없다’ 하는 생각을 갖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는 것입니다.

13-53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
여러분들은 추우면 또 끼어 입으려고 하지요? 여러분들은 북풍한설에 얼어죽고, 벼락을 마아 죽어도 마땅한 죄인들인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죄인인 것을 느껴야 하는 우리입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자식을 낳아 안고 다닙니까? 옛날에는 한 나라의 왕을 죽여도 8족을 멸하고 9족을 멸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벌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라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회개해야 됩니다.

죽어 마땅한 이런 자식들을 구하기 위하여 하늘은 특사를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이라는 명사, 용사라는 명사만 듣고 죽어도 한이 없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고 죽어도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아버지가 또 옵니까? 살아서 또 옵니까? 또 오란 말입니까? 기성교회 목사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합니다. 오면 또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런 사정을 알기나 하고 `오, 주여’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목사들 개개인을 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들을 용서해 주고, 구원해 주겠다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발걸음, 다시 찾아와야 할 입장에 선 부모의 그 사정이 얼마나 딱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부모를 죽인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나에게 그러한 피가 흐른다면 칼로 찢어 가지고 그 피를 전부다 뽑아버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고생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리라도 하나 잘라 병신이 되어 그 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간다면 면목이라도 세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길이 구원받는 길이요, 이런 길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기성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오, 주여! 남의 집 아들딸은 다 죽더라도 우리집 아들딸은 죽지 말게 해 주십시오. 세계는 망해도 우리 나라는 잘되게 해 주십시오’ 합니다. 말은 청산유수야. 떡에 기름을 바르면 매끄럽게 잘 빠지는 것과 같이 기도가 줄줄 나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가야 하느냐? 부모를 죽인 죄의 한을 풀기 위한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십자가의 길을 가다가 죽었으니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을 풀 도리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죽인 후에 그분이 부모인 줄 알게 될 때는 그 무덤을 파 가지고 시체를 붙들고 울고 울어도 한이 없는 것이요, 일생을 십자가의 형틀을 거꾸로 달려 보낸다 해도 지은 죄의 한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무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끝날의 인생들 앞에는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인들은 그런 인생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으로 왔던 예수님은 어떠한 입장에서 죽었는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죄인의 멍에를 씌워 부모를 죽인 그 자식들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눈물과 피와 땀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용서해 주기 위한 터를 닦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는 길은 부모이신 예수께서 가셨던 골고다의 길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밭길과 같은 골고다의 길을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죄인의 입장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반을 쌓아 놓고 갔습니다. 원래 그런 용서법은 없습니다. 천도에도 부모를 죽인 죄를 용서해 주는 법은 없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아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며 죽음과 바꾸어 그러한 도리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구원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무엇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해서 살아야 할 것이냐?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을 목표로 살아야 합니다. `종의 몸’이라고 하는 것도 과분한 말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몸’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죄없이도 그 길을 갔는데 아버지를 죽인 죄인인 우리는 백 번 천 번이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13-55
교단과 민족적인 사명을 완결해야 할 4년노정
죽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무덤 길을 가셨으니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가야 합니다. 이 길은 타락의 후손들에게는 운명길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린 것은 누구 때문이뇨? 눈물은 인류를 위해서, 피는 하늘을 위해서, 땀은 땅을 위해서 흘린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걸어 놓고 한꺼번에 심정적인 실체 기준을 마련한 것입니다. 심정적인 탕감을 하기 위해 불효자의 입장에 놓여 있는 인류를 대신하여 용서의 기준을 세워 놓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살인 괴수와 같은 우리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선생님이 아는 기독교 교리의 골수는 이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자기의 죄를 인식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주를 구하기 위하여 온 예수님은 천지에 한 분밖에 없는 내 아버지인데 내가 그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인식을 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구원받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여 보았습니까? 회개도 못한 자는 지지리 고생해야 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선생님, 왜 그런 말씀하십니까?’ 하고 항의할 내용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별 수없이 다 걸려 있습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본받아 가야 하느냐? 아버지이신 예수님의 본을 받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래서 이 3년 동안을 여러분은 아들의 입장에서 선생님과 같이 고생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는 배반함으로 갈라졌지만 우리는 같은 입장에 서서 이런 고비를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인, 즉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 팔려 십자가의 길을 갔지만 우리는 민족을 안고, 세계를 안고 골고다까지 갑시다. 죽지 말고 갑시다. 죽지 않고 골고다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옵시다. 예수님의 부활로 세계적인 복음의 문을 열렸듯이, 통일교회가 죽지 않고 민족을 넘어 현대의 로마 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때는 세계적인 기반을 본격적으로 닦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부터 4년 동안은 결단적인 사명을 완결하고 민족적인 사명을 완결해야 되는 때입니다. 편안하게 있으려면 여기 뭐 하러 왔습니까? 집에 있지. 원래 선생님은 이 땅에 와서 사명을 할 때 7년 동안에 모든 것을 완결지으려 했습니다. 7년 동안에…

그 때에 내가 기성교회와 하나되고 이박사와 손을 잡았으면 공산당은 벌써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다 없애버렸을 것입니다. 원래는 원수들을 때려 눕히고 원수의 등골을 타고 한국에 복을 갔다 주려고 했었습니다. 종들을 시켜서 복을 실어다 주려고 했는데 주인인 이 한국사람들이 막은 것입니다. 복을 가지고 한국에 오긴 왔는데 그 복을 받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동란으로 한국 사람은 비참해지고 우리의 원수인 일본은 흥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한국이 통일교회의 이념을 받아들였다면 싸움은 만주 벌판에서 다 끝내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을 다 한국으로 왔을 것입니다.

7년 동안에 하려던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21년으로 연장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4년이 마지막 끝나는 때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압니까? 이 멍충이들. 왜 4년이 필요한 것인가? 왜 가야 되는 것인가? 가기 싫으면 그만두십시오. 21년간이 뭐가 멀어요? 210년이라고 가야지요. 안 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안 가더라도 선생님은 갑니다.

이제부터 선생님은 민족주의자입니다. 여러분들만 위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이제 곧 미국에 가게 될지 모릅니다. 요즘도 미국식구들은 선생님 오시라고 야단입니다. 일본 식구들도 `선생님, 다음 달에 잠깐이라도 오십시오’라고들 합니다.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미국 식구들이 3년 전부터 오라고 했고 패스포트도 나왔으니 외무부에 가서 보고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장시킨 것은 불쌍한 여러분 때문인 것입니다. 불쌍한 한국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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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복귀를 재결의해야 할 때
한국 정부를 보면 자유당 정부는 아담형이요, 민주당 정부는 해와형입니다. 따라서 민주당의 박순천여사가 큰소리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알면 참 재미 있습니다. 이박사가 당선될 때 왜 두 후보가 쓰러졌는지 여러분 압니까? 선생님은 누구보다 생각을 많아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것을 자세히 해명해 줄 때가 올 것입니다. 이번의 공화당 정부는 천사장형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되지 못함으로 천사장격인 공화당 정부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을 선생님은 지금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4년 동안 허리를 졸라매라는 것입니다. 사상적인 무장이 필요한 때가 필연적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공산당이 옆에서 노리고 있기 때문에 시급히 이념적이 무장, 사상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통일교회 교인들을 사회 전체가 공인할 수 있는 환경을 빨리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그러니 축복받은 가정들은 이 때에 나가 죽으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원래는 전체를 순회하려고 했어요. 남몰래 그 동안 일 안 하고 있던 축복받은 가정들을 찾아 가서 일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고생하라는 겁니다. 개인적인 제물노정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또, 가정적인 제물노정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가정적인 복귀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을 복귀해야 여러분의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내몰아 가지고 수고하게 하면 그들이 눈물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회로 오게 해야 합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가정적인 기준도 중요하지만 종족적인 기준과 민족적인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타락의 능선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재결의 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 지 알겠습니까? 이제 우리들은 모든 힘을 다해서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전력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백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없었고, 당신이 임재 할 수 있는 땅이 없었고, 당신이 통치할 수 있는 주권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문 선생님이 한국에서 대통령 되려고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인간 개조를 시키려고 그러는 겁니다. 선생님에게는 내적 사람을 살려 주는 것이 1차적인 일입니다. 외적 사람을 살려 주는 것이 2차적인 일입니다.

통일교인은 내적 사람을 대표하고 세상 사람은 외적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원수의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하나되게 하기 위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따라와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3년 동안만 하라는 대로 해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했는데 망한다면 선생님의 목에 칼을 꽂으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제2차 승리의 기반을 닦고 제3차 승리의 기반을 닦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기반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세계에 발판을 닦아서 세계복귀 운동을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할 수 있습니까?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게 되면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모두 맡기고 뒤로 물러서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은 뭐 어떻고 어떻다 하는 별의별 소문이 났지요?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이 대구 모래사장 같은 데서 간판 붙이고 부흥회를 한다면 별의별 사람들이 몰릴 것입니다.

이젠 그만큼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미 때가 지나갔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선생님의 뒤를 따라오겠습니까? 이제 4년기간만 지나가면 여러분에게 전도하라고 명령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59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기 위한 믿음의 세 자녀
앞으로 이 원리를 세계의 사람들이 다 알 것인데, 그때는 전부다 한국에 와서 일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또 앞으로는 한국 사람 전부가 통일교회에 다니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는 통일교회에서 전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아들딸로 전부 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알았지요? 조금만 더 있으면 전도할래야 할 수도 없게 됩니다. 지역은 조금밖에 없는데 저마다 먼저 가겠다고 싸움을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 일 시키려고 선생님이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런 선생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도 안 하면 외국 사람들이 기를 쓰고 전도하러 올 것입니다. 와서 여러분들이 덮고 자던 짚단 하나라도 몇 천만원씩 주고 사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모는 겁니다. 이번에도 전부다 고정 배치하려고 합니다. 지구장들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렇수록 더 연장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책임 못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바꾸는 것입니다. 바꾸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종씨들, 김해 김가니 밀양 박가니 하는 성씨들, 뭐 많지요.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성씨들이 있는데 이들이 전부다 서로 전도 나가겠다고 할 텐데, 앞으로는 전도 나갈 땅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 나가려고 해도 나갈 땅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평양에 굴을 뚫어 미국 땅까지 터널을 만들어서라도 미국에 들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나중에 일이 없으면 그 노릇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 7년 동안은 고생해야 합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끝날에는 7년 대환난이 있게 되는데 하늘의 부모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7년 대환난이 못 되고, 땅에 대하여 충성할 수 있는 7년 대환난이 된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목사, 장로들, 하늘의 원수가 된 그런 사람들은 7년대환란기간에 어디로 가게 되는 지 아십니까? 하지 말라고 해도 자진해서 땀을 흘리며 지긋지긋한 고생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7년 대환난이 다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7년 대환난, 가정적인 7년 대환난, 국가적인 7년 대환난, 세계적인 7년 대환난, 천주적인 7년 대환난을 넘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전체를 탕감할 수 있는 일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개인적인 7년대환난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것을 넘기 위해서는 최하 3명은 전도해야 됩니다. 최초의 가정은 노아의 가정이 아니라 아담 가정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세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3명을 전도하라는 겁니다. 원래는 12아들을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노아 가정을 복귀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최소한 세 아들만이라도 찾아 세워야 합니다. 복귀해야 할 열두아들 70문도, 120문도가 남아 있는데, 선생님은 3년 동안 이것들을 탕감복귀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을 다해서 축복해 준 줄 압니까? 통일교회를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는것입니다. 상관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리가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예로 들어 말하더라도 그 자리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아무개 장관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책임 못하면 전부다 밀어제칠 수 있는 겁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라도 갈아 치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해 줄 때는 제일 먼저 너희들이 실수할 때는 너희들이 책임을 지겠느냐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건적인 축복입니다. 왜 조건적인 축복이냐? 여러분들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한다면 아직까지는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축복은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굴복시킨 사람들에게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러한 기준까지 나가지 못했으니 할 수 없이 조건적인 축복을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앞으로 한번 더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13-61
경상도를 책임지고 민족을 책임지는 실체가 되라
그렇기 때문에 기합을 주려는 것입니다. 기합을 주어도 좋습니까? 어떻게 주면 좋겠습니까? 강제로 기합을 줄까요?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까? 선생님은 본래 독재를 쓰지 않지만 사탄을 대해서는 절대적인 독재를 씁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대해서는 독재 안 합니다. 자녀에게 독재를 한다면 사탄이 붙어 있을 때에만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 그건 뭐 얘기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 전부다 젊은 사람들만 있지요? 손 한 번 내 보십시오. 주먹을 한 번 보자. 주먹을 쥐어 봐요. 옛날에 선생님은 기도할 때에는 너무 쥐어 가지고 나중에 펴면 손이 아팠어요. 얼마나 힘을 줬으면 그랬겠어요. 땀이 나도 꽉 쥐고 맹세를 했던 것입니다. 세게 한번 쥐어 보십시오. 이렇게 허리띠를 하나 더 졸라매고 가자는 것입니다. 어디로? 골고다로 가자는 것입니다. 어느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 천주적인 골고다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까지 복귀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여러분은 사는 동안에 선조 세 사람 이상을 해방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왜 그러느냐? 아담, 예수, 오시는 주님, 이렇게 3대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죽어 보면 통일교 선생님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알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 앞에는 천국문이 모두 열려 있지만 지금 말하는 원리적인 책임을 못할 때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 아들딸을 찾아서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 제3이스라엘의 책임을 완결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3이스라엘의 자손이 되려면 세 아들딸과 열두 아들딸, 70명, 120명까지 찾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먼저 가정을 가져야 됩니다. 가정을 가지려면 먼저 아담가정 노아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백성이 못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들은 전부다 고생해야 됩니다. 1차에 안 되면 다시 2차로 해야 합니다. 다시 되돌아가야 합니다. 축복받은 가정들 알았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학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시시한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게 알고 우리는 모두 허리띠를 졸라 매고 천주적인 골고다로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경상북도의 경상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까? 경상도가 좋은 데요, 나쁜 데요? 여러분은 전도 나갔다가 누가 `통일교회 좋습니까?’ 하면 `예, 좋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좋은지 몰라요. 경상도 사람들 대답해 보십시오. 경 자가 무슨 경 자입니까? 경사로울 경(慶)자지요? 상 자는? 오히려 상(尙)자이지요? 또 무슨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높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겁니다. 경상도에 와서 오늘 하나 배웠습니다. 오히려 상 자에는 `높인다’는 뜻, 즉 승천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경상도! 이름은 좋습니다. 이름은 좋은데 실체가 나쁘면 되겠습니까? 실체가 사기꾼이거나 사고대장이면 되겠습니까? 이름은 좋습니다. 이름은 좋은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좋다구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보여줄 것이냐? 대구 사람에게? 여러분들의 부모와 형제들 앞에? 만일 보여주려면 영광 가운데서 만국을 대하여 호령하시는 하나님 앞에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슬픔의 하나님이 아닌 호령하시는 하나님 앞에 보여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표준은 그것입니다.

경상도가 참 좋습니다. 내가 여기 와서 모듬매를 맞을까봐 여러분에게 아첨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름은 좋은 이름인데 이름만 좋지 말란 말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때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때가 아닙니다. 그런 때는 지나갔습니다. 지금 때는 이름구원시대가 아닙니다. 실체구원시대입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모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란 말은 천 개 만 개 있습니다. 그러나 실체는 하나뿐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하늘나라에는 예수님의 실체를 타고 가야지, 이름을 타고 가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혼자라도 경상도의 나쁜 것을 전부다 책임지고 좋은 경상도라고 변명할 수 있는 실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경상도를 넘어 삼천리 반도까지 책임질 수 있는 실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13-63
무엇을 하더라도 결사적으로 하라
이제 앞으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밀선에 태워 중공에도 보내려고 합니다. 버젓이 여행권을 내 가지고야 어느 누가 못 가겠습니까? 그건 동네에서 제일 천대받는 거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밀선을 타고 공산권에도 가서 선교해야 합니다. 지금 선생님은 그런 것을 교섭 중입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 하면 골고다까지 가야 합니다. 세계적인 골고다. 천주적인 골고다까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에게 명령했다면 못 가겠다고 했겠어요? 선생님은 군대에 가서 싸움을 못해 본 것이 한입니다. 사내로 태어나서 한 번 싸워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원수를 대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과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자로 태어나서 군대생활을 한 번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못 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앞으로 전국의 20대 청년들을 데려다가 당수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자기가 손기술이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올바른 정신무장을 한 사람을 만들어서 한 면에 서너 사람을 파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껄렁한 패들을 전부다 꼼짝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 부모들이 좋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도 옛날에는 당신의 아들보다 더 했습니다. 이 주먹을 보십시오. 몸을 보나, 눈을 보나, 어디를 보더라도 순하게 생기지 않고 울뚝불뚝하게 생겼습니다. 당신 아들처럼 살던 내가 통일교회 때문에 이렇게 변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실제로 그 실적을 보여주면 `아! 외모는 저렇게 생겼지만 저런 아들딸을 가진 부모는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당신의 아들딸이 동네에서 깡패라고 손가락질받고 비난받고 있는데 그런 아들딸을 나와 같은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까?’ 하면 `아이고 상감마마 어서 해주십시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제 앞으로 도장을 만들어서 그 안에 전부다 잡아다 놓고, 당수가 몇단씩 되는 사범들을 시켜서 몸이 늘어지도록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고되게 훈련시킬 겁니다. 자기들이 기술이 부족하면 배워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게 배우는 입장에 있으면 졸병입니다. 이들에게 원리무장을 시켜 사탄 세계를 무찌르는 선발대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사들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이제 통일교회에는 당수파들이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하게 한 후에 발길로 차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후에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은 열심히 심신 단련을 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뚱뚱한가 홀쭉한가? 「뚱뚱합니다」 뭐가 뚱뚱해? 옷을 뚱뚱하게 입어서 그렇지. 선생님이 이렇게 뚱뚱하지만 빠를 때는 아주 빠릅니다. 육상을 해도 3등 밖으로 밀려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했습니다. 그 이하로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다고 작정한 것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름에는 중학시절에 전교에서 왕이었습니다. 동네에서도 씨름을 해서 한 번이라도 지면 나무를 붙잡고 밤새껏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 사람에게 항복받기 전에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사나이가 그런 사람한테 지면 그런 사람의 종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밤낮을 가지리 않고 연습하고, 자면서도 이길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동네에서는 아주 이름이 났었습니다. 운동도 못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육상에서도 등수 안에 못들은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등수 안에 들어가지 못할 입장이라면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손을 대는 날에는 몸뚱이가 갈갈이 찢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끔 강원도에 가서 사냥도 합니다. 이번에는 30년 동안 사냥한 명사수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그 사람이 빨리 가면 나도 빨리 따라가고, 그 사람이 천천히 가면 나도 천천히 따라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아! 서울에서 오신 그분’ 하고 탄복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며칠 동안 혼내줄려고 했는데 계산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꼴찌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을 안 댔으면 몰라도 일단 댄 날에는 결사적이어야 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나는 승리하지 않고 못 견딘다. 너희들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악착같은 신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13-65
새로운 문화세계와 지식세계를 창조해야 할 우리
여러분은 어디에 가더라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직장에 가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취직시킬 곳이 있으면 취직시켜 주려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러분의 상사들을 만나서 `그 사람 월급 조금 주어도 타당하냐?’ 했을 때, `처음에는 월급을 많이 주었는데 한 두달 있어 보니 월급을 줄여야겠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나이가 한 번 한다고 마음 먹으면 죽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어디로 나갈 것이냐? 세계적인 골고다를 향하여 힘차게 나가야 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힘차게 나가지 않으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몽둥이로 쳐서라도 가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천히 가기를 바라겠습니까, 빨리 가기를 바라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을 복귀하고 세계를 복귀해야 하니 얼마나 조급하겠습니까?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바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뜻을 아는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안 가면 때려서라도 빨리 가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는 고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3년 동안 전도하라고 했는데 떨어지지 않고 근근히 따라나온 여러분입니다.

이제 4년 동안은 만물복귀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딴것을 좀 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착같이 돈도 벌어야 되겠습니다. 이북서 내려온 피난민이 약 10년 만에 한국의 경제권을 잡았습니다. 이북 사람이 10년 만에 경제권을 잡았다면 통일교회는 몇년 안에 경제권을 잡는가 두고 보라는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돈을 벌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돈을 버는 것은 세계의 불쌍한 사람들을 품어 주기 위해서요, 그들에게 베풀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배우는 것은 사탄세계의 철망을 끊는 비밀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인생의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달성하지 못한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는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승리의 인간으로서 고이고이 모심받을 수 있는 선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상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세계의 발판을 넓히고, 새로운 주권을 세워 새로운 문화세계와 지식세계를 창조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진짜 하겠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선생님 얼굴 보고 그러지 마십시오. 내려요. 그러면 노래 한 곡 부르고 선생님도 좀 쉬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