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3 to 12-338: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
1963.08.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12-293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
창세기 1:27-31

[기 도(Ⅰ)]

지존하신 하늘의 주인되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이 지으신 만상은 당신의 이념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의 이념 앞에 모여 아버님을 모셔 놓고 환희에 넘쳐서 영광과 더불어, 그 지으신 천주가 기쁨의 대상으로서 드리는 찬양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아버님의 참아들딸이 되어 그 영광 가운데 잠겨 사는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 지극히 큰 한임을 저희들은 오래 전에 깨달았사옵고 오랫동안 후회하여 왔사옵니다.

당신께서 고대하셨던 영광의 세계, 지존하신 아버지께서 환희와 기쁨에 넘치시고, 그 기쁨은 지음받은 만물의 기쁨이요, 그 영광은 지음받은 만물의 영광으로서 둘이 아닌 하나의 환희와 영광이 되어야 할 것이었사오나 그러한 이상적인 기준은 간 데 없고 도리어 슬픔으로 저끄러 놓았사옵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잘못이옵고, 이 모두가 죄악 인간의 후손인 저희의 책임인 것 또한 잘 아옵나이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슬퍼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아버지의 성상을 우러러볼 적마다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없는, 죄악의 봉화불을 들고 하늘을 배반하여 왔던 후손임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음이 무한히 원통스럽고 통탄스럽사옵나이다.

이와 같이 죄악된 저희들을 붙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영광의 심정을 소망으로 남겨 놓으시고 기나긴 6천년 동안 참고 고대하셨사옵니다. 하루도 아닌 한 많은 6천년을 저희들 때문에, 저희의 선조들 때문에,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때문에, 그리고 천상세계의 탄식권내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영인들 때문에 수고해 오신 아버지의 그 거룩한 은사를 생각할 때에 아버지 앞에 황공하오며 불초한 죄인인 것을 다시 한번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크고 크신 아버지의 사랑 앞에, 수고로우신 아버지의 손길 안에, 상처 입고 찾아오신 아버지의 발자국 앞에 머리 들 수 없는 불초한 모습들이옵니다. 당신은 이토록 피눈물의 길을 걸어오셨사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길에 인간들이 동참해 주기를 고대하셨사오나 인간들은 그 길을 피해 왔사옵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사정을 함께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심정이었사오나 자식 되어야 할 인간들은 소망의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그 심정에 못을 박기가 일쑤였사옵니다.

이렇듯 불효막심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다시 나와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라 부르고 있사옵니다. 그 아버지의 음성에는 무한한 슬픔이 스며 있사옵고, 아버지의 심정에는 통탄하고 가슴이 막히는 억울한 사정이 맺혀 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붙들어야 되고, 그러한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옵고 또한 아버지는 이러한 사정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아버지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남아 있사옵고, 아버지께서 그 뜻을 버리지 않는 한 저희들도 이 길을 가면서 아버지를 다시 붙들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모든 슬픈 사정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슬픔을 통고했던 것을, 아버지 앞에 용납을 구해야 했는데 구하지 아니했음을 아버지,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망의 물결은 오늘도 쉴 새 없이 저희의 생활환경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사옵고, 저희의 주위를 점령하여 하늘의 영광을 가리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으며, 그 자리가 어떠한 위치인가를 다시 명심하여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이와 같이 크나큰 섭리의 뜻 앞에 불리움을 받았사옵니다. 아무런 공적도 없이 불리움을 받았사옵니다. 아무런 수고의 행적도 없이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드릴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부족함을 눈물로써, 저희들의 악함을 회개로써 직고하여 아버지를 다시 붙들고자 하는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왔사옵니다.

탕자의 사정을 긍휼히 여기시던 아버지의 역사적인 수고의 인연을 아는 저희들, 그 인연을 바라고 긍휼의 심정을 고대하면서 찾아 나왔사오니 다시 한번 아버지의 깊은 심정으로 저희들을 얽어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 나아가 싸울 수 있는 저희들로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은 1963년, 역사적인 한 때를 남겨 놓고 있사옵니다. 이때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세계사적인 역할과 사명을 인계받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입장에서 책임과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수고로운 지난날의 모든 역사를 이 세상의 죄악과 더불어 탕감하여 버리고,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바라보면서 마음과 몸을 다시 가다듬어 심판의 깃발을 들고 원수 세계를 향하여 정비된 하늘의 정병으로서 행렬을 이루어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이 저희의 두 어깨에 젊어지워져 있음을 명심하여 하루한 시간을 아껴 싸우기에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참다운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효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 이 세상, 죄악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끝날이 가까운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이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 나가 있는 힘을 다해 싸워야 되겠사옵니다. 비장한 결의와 싸움의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의 한을 풀기 위한 최후의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정병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한번 비장한 결의와 맹세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고로우신 아버지의 섭리의 뜻 앞에 불리움받아 염려를 끼쳐 드린 지난날의 모든 과오를 다시 한번 회개하면서 저희의 남아진 생을 아버지만을 위해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는 새로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세계에 심판의 주인공으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만민이 우러러 아버지를 찬양해야 할 날이옵고, 정성을 다 모아 아버지를 섬겨야 할 날이오니, 아버지의 성호를 부르며 찬양하는 곳곳마다,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이삼천리 반도의 방방곡곡에서 하늘의 뜻을 품고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이 염천하에 외로운 음성으로 외치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최후의 섭리의 뜻을 품은 그들 앞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의 사랑의 힘과 권고하심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후의 모든 절차를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한 생명이라도 헛되이 아버지의 뜻을 참소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2-296
기 도(Ⅱ)
아버님! 저희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저희들은 한없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 앞에 제물 될 것을 각오하였사옵니다. 통일의 이념이 이 땅 위에 나타난지도 어언 십여 성상이 지났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동안 환난 도상에서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오늘까지 생명을 유지하여 아버지의 뜻 앞에서 1963년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오늘날 이때가 얼마나 중요하고, 이 시기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가 저끄러진 그날부터 아버지께서는 다시 우리의 선조들을 세우시어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나오셨사옵니다. 그 한 많은 역사 위에 불쌍한 저희들을 세우시어 섭리의 인연을 세우셨고, 그 세우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완결지을 수 있는 참된 기간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이 기간을 위하여 아담 이후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수많은 선지들과 이 땅에 나타나셨던 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사도와 성도들이 피의 제단을 쌓아 나왔으며,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거쳐서 오늘날 이 불쌍하고 한 많은 한반도를 택하셨사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저희들을 택하시어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쓰러지지 않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한 터전을 마련하여 주신 것은 모두가 아버지의 은사임을 알고있사옵니다.

이 은사 가운데에는 무한한 역사적인 수고가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날의 환희와 기쁨은 수많은 선령들이 원하던 소망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기간은 하늘과 땅이 진정으로 고대하던 최후의 싸움 기간이며, 최후의 고개를 넘는 결정적인 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무지한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기간을 거치게 하여 주신 아버지의 거룩한 은사 앞에 감사드릴 따름이옵니다. 이런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몸 마음을 움직이는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슬퍼하시는 아버지로 모셔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고, 지금까지 수고로운 길에서 싸움의 전체를 책임지고 지휘하시며 명령하시던 아버지로 모셔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완성실체가 되어 영광의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어서, 아버지께서 이는 진정 사랑하는 내 아들이요 내 딸이라 하실 수 있고, 이 천지간에 진정한 효자 효녀가 여기 있고, 진정한 충신 열녀가 여기 있다고 하실 수 있게 해드리는 이러한 대표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러한 대표적인 사명을 감당하여 아버지의 자랑이요, 아버지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심정의 깃발로서 나타나야 할 저희들이 이렇듯 보잘것없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 황공하옵나이다.

수고로우신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저희들은 그 아버지 앞에 다시 효도하고 싶사옵니다. 상처 입으신 아버님의 전신을 부여안고 눈물로 씻어 드리고, 당신의 모든 고통을 덮어 드리고 당신께 기쁨을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에 십자가의 길이 있거들랑 저희들이 앞장서서 그 모든 전체를 책임지겠사옵니다.

악이 아직까지 저희들의 환경에서 떠나지 않고 이 땅을 움직이고 주관하고 있는 연고로 저희들이 가는 길에는 수고의 노정이 남아 있음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분한 마음을 품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자신들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이 시간 아버지 앞에 회개하며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환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픔이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 환경을 벗어나야 되겠사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어지러운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자유로운 천지에 아버님을 모셔 놓고 해방의 심정으로 활개치며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이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악과 싸워 승리의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저희의 책임이요, 저희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시간 더더욱 아버지 앞에 결의하고 맹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의 마음을 수습하여 바로 세워주시옵고, 흩어진 저희의 사정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자신을 위주로 하거나 자신의 사정에 얽매여 있거들랑 무자비하게 끊으시옵고, 자기 개체의 욕망에 얽매여 있거들랑 용서없이 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사정과 아버님의 심정과 아버님의 소원만이 저희의 마음 중심에 싹터 오르고 싹터 오른 그 힘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실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 뜻 앞에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불쌍한 민족이 된 것을 알았사옵고, 큰 뜻을 대하던 노아 가정이 뜻 앞에 충성하는 아들딸을 갖지 못하게 될 때 슬픈 역사의 인연을 상속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지 못한 한낱 보잘것없는 행동의 실수가 천지에 화근을 불러일으켰던 것 또한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렇듯 엄청난 섭리의 뜻 앞에 오늘날 저희들은 불리움을 받았사오나 연약하고 초조한 모습들이옵니다. 다시 가겠다고 결의를 하고 나서는 저희들은 아직까지 타락세계에 살고 있는 부족한 모습들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이 저희들의 사정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역사적인 인연으로 그와 같은 사정에 저희들을 몰아넣으신 것을 생각할 때, 마음으로 맹세하고 몸으로 다짐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걷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하기 위하여 맹세하고 결의하면서 가고 있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임을 아옵니다.

아버지, 특별히 시대적인 곤궁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시대적인 굶주림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시대적인 절망과 탄식이 저희 앞에 다가올지라도 이것을 무난히 넘고 나서는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고, 사망세계에서 제물로 사라지지 않고 부활의 권세를 갖추어 승리의 깃발을 세울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나이다.

저희들 가운데 부족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가 있사오면 쳐서라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망의 땅 위에 세워 주시옵소서. 죽음으로라도 승리의 자체를 세워 놓고야 말겠다는 것이 하늘의 뜻인 것을 아오니, 저희도 거기에 발맞추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가겠다는 신념만은 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할 때에 모세가 쓰러지는 자들에게 채찍을 들어 때려 쳐서라도 광야노정을 거치게 했던들, 이스라엘 60만 대중은 광야에서 독수리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이 민족 전체가 마음으로 믿고 생활로 하나 되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에서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나를 이끌어 달라는 결의와 맹세를 할 수 있는 민족적인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의 무리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무리들이오니, 아버지,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옵소서. 죽더라도 그 자리에 가서 죽겠다고 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광야에서 쓰러져 독수리 밥이 되어 천추에 한을 남기고 역사적이 오점을 남긴 선조들의 전철을 밟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소망과 하늘의 뜻 앞에 택함받은 선민의 그 귀중한 가치를 역사를 두고 추구해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노정의 이스라엘이 증거하고 있고, 수많은 유대 백성과 유대교인들이 증거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역사를 통하여 피어린 투쟁의 노정과 제물의 과정을 아직까지 다 거쳐 나가지 못하였으면서도 선민권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그들이 가지 못한 십자가의 고비를 책임지고 갈 줄 아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상습적인 신앙관념 속에 사로잡히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날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를 위한 충성심과 효성심이 마음속 깊이 흐르게 하시옵소서. 험난한 환경일수록 더욱 간절할 수 있는 참다운 심정만이 저희 자체를 주관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옵니다. 1963년도 벌써 반이 지났사옵니다. 저희들이 작정하고 약속한 3년 기간, 그 동안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남은 기간 동안 더더욱 충성을 다하여 지난날의 부족함과 불충함을 보충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속에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할 수 있도록, 아버지, 힘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2-300
말 씀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려는 제목은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2-300
슬픔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벌어진 그날부터 역사가 슬픔으로 점철되어 나왔음은 물론이요,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 인간도 이 슬픈 현실을 넘지 못한 채 아직까지 슬픈환경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가 그러하고 현실이 그러하니, 역사를 지배하고 현실을 움직여 나오는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 하늘 역시 이 슬픈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오늘날의 이 슬픔을 수습할 수 없고, 지난날의 슬픔을 수습할 수 없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실의 슬픔을 수습할 사람도 없고 내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있다 할진대 이 일은 필시 하늘을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이 천지간에 슬픔을 제거해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타락의 후손된 인류는 오늘날까지 역사 노정을 거쳐오면서 탄식을 하였고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입장에서 생의 그 무엇을 찾기 위하여 허덕여 나왔지만 전부다 소망의 한날을 남겨 놓고 갔습니다. 그들은 목적이 이루어지고 때가 되기를 바라며 미래를 걸어 놓고 무언 중 혹은 은연 중에 마음 깊이 호소를, 혹은 절규를, 혹은 부탁을, 혹은 간곡한 기도를, 혹은 간곡한 염원을, 혹은 간곡한 소망을 하였으며, 한 때와 한 목표를 세워 놓고 지금까지 왔다 간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12-301
인류의 불행을 수습할 참다운 주인공을 보내셔야 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참다운 주인공이 계신다 할진대, 또 그분이 인류를 위하고 역사를 위하고 천주를 위하는 분이라 할진대, 그분은 필시 어느 한때에 가서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 왔다 간 모든 선조들이 고대하고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현세의 모든 인류가 요구하는 것을 수습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탄식과 슬픔을 수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 참다운 주인이 나와서 참다운 역사와 참다운 시대를 만들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이 그분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섭리해 나오신 것을 인정하는 한, 그분은 소망의 한 때를 기점으로 하여 과거 역사노정에서 탄식권내에 살다가 쓰러져 갔고, 현재 탄식권내에서 생활하고 있고, 또한 미래의 수많은 인류에게 소망할 수 있는 참다운 주인, 곧 참다운 인간을 보내어 참다운 생활을 하게 하고, 그런 참다운 생활을 통해 참다운 시대를 만들고, 그런 참다운 시대가 계속되는 참다운 역사를 이룩하기 위하여 섭리하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자체는 슬픈 세계를 거쳐 나가는 과정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고 있는 이념이니 행복이니 자유니 평화니 평등이니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소망의 터전 위에서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르짖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적인 것들은 어차피 거쳐 지나가야 할 것들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애착심을 갖고 있다 할진대 그것은 어느 한 때 여지없이 파괴될 것이요, 또 이 현세를 중심삼고 자기의 어떠한 목표를 세운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역시 지나가는 시대의 비참상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고대하고, 인류가 고대하고, 역사가 고대하고, 시대가 고대하는 하나의 기점, 그 기점 위에 만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주인의 자격을 갖춘 참다운 소망의 사람, 참다이 구원된 사람, 참다이 부활된 사람, 참다이 섭리의 뜻을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슬픔과 고통과 역경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시대적이요 역사적인 요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이 세계는 넓은 세계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동반구 서반구의 이념을 서로 접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살았으나 오늘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동서는 `나’를 중심삼고 좌우로 좁혀져 들어오고 있고, 전후로 압박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수습해야 할 엄청난 문제가 우리의 주위에 엉클어져 있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수습하려는 신념을 가졌다 할진대 이런 환경에 얽매여 살지라도 우리는 사망의 물결을 넘어서 소망의 곳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는 보다 높고, 보다 행복스럽고, 보다 소망적인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흐름이 있어서 시시 각각으로 우리를 재촉하고 전진의 명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하늘이 바라시는 어떤 목표가 있다 할진대 하늘과 인연을 갖고 있는 인간은 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연고로 인간의 본성의 흐름은 자동적으로 하늘이 바라시는 목표를 향하여 이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그러한 목적을 향해 흘러 나왔고, 예수님의 소원도 그러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과 예수님의 소원은 기필코 하나의 이상적인 기점, 승리의 기점, 성공의 기점, 천하가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목적점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소망이요 뜻이요 욕구이기 때문에, 이 욕구의 달성을 위해 역사는 흘러왔고 시대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지 운세가 나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그러한 곳을 향하여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간절하고 그런 모든 사정은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자극해 들어오는데, 과연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주관하여 그런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느냐 할 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렇듯 불쌍한 우리들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303
최우선 과제는 자기 확립
역사는 슬픔으로 시작되어 아직까지 슬픔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들을 슬픔의 과정 속으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어떠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대책을 세웠다면 그것은 슬픔의 과정을 박차고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어떠한 힘을 가지고도 되는 것이 아니요, 경제적인 힘을 가지고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행복의 여건으로 세우고 그것을 생명시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해결해야 합니다. 외적인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해결하지 못하면 내적인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해결해야 됩니다. 환경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어려움이 더하고 모순된 사정이 부딪쳐 들어옴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것은 세계적인 어떠한 이념을 갖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자신의 몸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뜻을 부르짖고, 하나님의 이념을 찾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먼저는 자신이 확고부동해지는 데 있습니다. 역사적인 슬픔이 나를 점령할 수 없고 시대적인 역경이 내 마음과 몸에 확고히 서 있는 기반을 점령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신념이 없는 한, 그러한 위치를 갖추어 놓지 않는 한 제아무리 역사적으로 충성을 하였고, 시대적으로 자신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하늘은 그를 믿고 섭리할 수 없고, 그를 세워 시대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승리의 때, 역사적인 소망의 때, 오늘날 이 시대가 소망하는 때는 틀림없이 와야 할 것인데, 그때는 막연한 관념 가운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몸과 마음에 사무쳐 자극되고 긍정되는 가운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세워 생활적으로 밀려드는 슬픔과 대결하여 그것을 쳐 넘길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체의 역량을 갖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진 역사의 슬픈 흐름에 휩쓸리고 말 것은 정한 일입니다.

12-304
복귀섭리는 잃어버린 주인을 찾는 섭리
오늘날 이 천지는 주인이 없는 천지가 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천지는 있으되 천지의 주인은 없었습니다. 이 천지의 주인은 본래 인간입니다. 천지의 주인은 본래 여러분이요, 나입니다. 우리들이예요. 주인이 있어야 목적이 있고 사명과 책임이 있고 생활의 목표가 있을 텐데 주인이 없습니다. 주인을 모시고 살고, 주인을 모셔 놓고 천지가 하나 되어야 할 것인데 오늘날 이 땅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하늘이 있어도 하늘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르고, 땅이 있어도 땅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내가 존재해도 내 자체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그 주인을 찾을 것이냐? 막연하게 세계적인 환경이 그 주인을 찾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대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충성하는 사람들이 그 주인을 찾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들이 주인을 찾아 준다 하더라도 그 주인과 하등의 관계맺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그 주인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러한 흑암에 묻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천지의 주인을 찾아 주기 위해서 섭리하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소원은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무엇이냐?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신앙이라는 것에 의해 섭리와 경륜하시는 뜻 앞에 충성하겠다고 외치며 나가는 것도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 자신이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리에 나가면 많은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좌우로 널려 있는 수많은 건물에도 각각 주인이 있습니다. 달리는 택시 하나에도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이 모든 만상에는 모두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죄악된 세상에 널려 있는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 아닙니다. 그 주인은 참된 주인이 아닙니다.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하고, 이 시대가 공인하고, 미래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을 찾아서 그의 뜻을 받아 가지고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든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방법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을 알고 인류가 지금까지 고대하던 것을 알아서 역사의 모든 흐름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필시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요 이 천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현세의 인간도, 과거의 인간도, 천지도 그런 주인을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인을 못 찾게 될 때는 역사가 동원되어 찾아야 합니다. 왜? 그는 역사적인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소망하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역사가 고대하던 주인이니 역사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시대가 고대하는 주인이니 시대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천지가 고대하는 주인이니 천지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하나님이 고대하는 주인이니 하나님이 동원되어 찾아야 합니다. 만일 그 주인을 찾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12-306
인간의 소원성취와 참주인
인류역사노정에서 지금까지 인간들이 소망해 오던 모든 짐들을 어디에 가서 풀 것이냐? 어디에 가서 그 소망의 짐을 풀어 놓을 것이냐? 그 곳은 한 분의 주인을 모셔 놓고 그분과 하나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주인과 하나 되어 그 주인의 아들이 되든가 딸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 주인이 바로 내 아버지요, 우리의 부모입니다. 그분은 역사적인 부모요, 시대적인 부모요, 천지의 부모요, 하나님이 고대하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가 기뻐할 때 천지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딴 조건은 필요없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니 뭐니 하는 그 무엇보다도 그분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주인은 어떤 분이냐? 그 주인은 역사의 전부를 쥐고 있는 주인이요, 시대적인 모든 전체의 가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주인이요, 천지를 대표하는 주인이요, 하나님의 섭리를 대신하는 주인이요, 하나님의 심정으로 고대하는 소망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을 가진 사람은 천하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은 어디를 찾아 가고 있는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여러분들은 자신의 마음이 불의를 제거하고 선을 추구하여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가고, 시대적인 역경의 물결을 넘어 나가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의 목표는 어디인가? 주인을 만나 그 주인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하여 우리 인생은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만 움직인다면, 마음의 명령대로만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만일 내 마음의 흐름의 목표가 겨우 친구로서 끝나고 하루 생활의 기쁨이나 만족을 얻는 정도로 끝난다면 나는 그런 기쁨 싫습니다.

자식이 없어지기 전에는 부모는 없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식이 없어져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역사가 없어져도 남아 져야 할 것, 시대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천지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그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바로 내 부모요, 나는 이분의 아들이요 딸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역경과 곡절과 슬픔과 비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비애의 참상이 우리를 지배해 나왔고, 지금도 지배하며 우리의 환경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힘을 얻든가, 부모를 가진 기쁨의 마음을 폭발시키든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12-307
종교의 사명
양심의 도리를 주장하는 종교, 양심을 움직여 가지고 선을 지향해 나가는 종교가 소개해야 할 최고의 목적은 무엇인가? 주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역사 이래 왔다 간 성인 현철 위인들의 모든 사상을 인계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 가운데서도 더 좋은 종, 양자 가운데서도 더 좋은 양자가 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좀더 좋은 것, 좀더 좋은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목적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주인이란 참된 부모를 말합니다. 그래서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이란 참된 부모를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부모의 내용을 증거하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생활관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회가 역사적인 소망이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그곳은 역사적인 슬픔과 시대적인 슬픔이 남김없이 해소된 곳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이 있지만 그런 이념의 세계말고 심정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참주인을 찾으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참주인을 찾아 돌아가야 됩니다. 그 주인을 찾는 것은 간단합니다.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 역사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 시대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자식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부모를 중심삼고 살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흘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그 부모는 타락한 부모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내 몸 마음에 심어 주고, 내 피살에 상속시켜 준 부모입니다. 영원한 이념세계와 하늘의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천주의 인연을 거치고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친 승리적인 기반 위에서 인연된 피살로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연고로 어차피 참된 부모 앞에 정비를 당해야 합니다. 그 부모는 우리의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부모의 혈통을 받은 타락의 후손입니다.

이 천지는 점점 수습되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관문에 서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고대하고 어떠한 사상이나 주의가 고대하는 것은 일단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천지는 역사적인 호소와 역사적인 목적과 시대적인 욕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주의를 향하여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의는 하나의 세계주의입니다. 그러한 주의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에게도 필요하고 민주주의자에게도 필요하며, 인종과 관념을 초월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세계에 있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일등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그런 것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리게 할 수 있는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만가지의 물건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진 기쁨이 잃어버린 부모를 찾은 기쁨과 환희의 마음에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주인을 만나는 기쁨은 그 순간적인 기쁨과 바꿀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인간들도 그 주인을 만나기를 소망했고, 이 시대의 인간들도 그 주인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알았을진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먹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먹고, 싸우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분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분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양심을 근본으로 하여 출발한 것이 종교입니다.

종말 시기에 기필코 참다운 주인이 오시거늘,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다 이루어지면 종교는 필요없습니다. 전부다 없어져야 됩니다.

12-309
천주의 주인을 맞으려면
세계가 문제가 아니고,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사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자신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문제예요. 역사적인 위인들은 참다운 승리의 세계를 고대하며 죽어갔습니다. `하늘이여 그 주인을 이 땅에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고, 혹은 피를 흘리며 호소하지는 못했을망정 누구든지 죽어갈 적에는 마음속으로 `소원성취의 한 날을 세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갔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주인을 모셔야 합니다. 나는 아무개의 자식으로, 일개 종족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크나큰 섭리의 흐름을 대하고 있는 자신임을 인식하고, 역사노정에서 선을 위하여 무참히 쓰러져간 선조들이 호소하던 정신을 이어받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목적을 실체로 대하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역사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자 하는 욕망은 역사노정에 왔다간 수천 수만의 인물들보다 간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인 위인들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역사의 전통을 상속받은 역사적인 열매로서 시대적인 모든 곡절이 청산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 시대, 이 사회의 내적인 흐름입니다.

참된 주인을 고대하는 무리라 할진대 역사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간곡한 마음과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지니고 이 시대를 손아귀에 넣고 못된 것은 때려부수고 정비하고 수습하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주인과 여러분이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천지가 고대하고, 천지가 요구하는 그 기준 앞에 가치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있게 나가야 합니다. 천지가 고대하고 갈망하는 마음보다도 천지를 주관해야 할 인간의 마음이 더 간절해야 됩니다.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시고 유일하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루 한 시간을 보내도 오직 그 마음이었습니다. 오직 참다운 주인, 참다운 아들딸을 고대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주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참다운 아들딸이 못 돼요.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이 악한 세상을 수습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해 오셨고, 곡절의 환경에서도 그 일념을 버리지 않고 싸워 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주인을 세워 가지고 이 천지를 수습하시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를! 역사노정에 있어서 전투가 벌어지고 세계 대전의 참상이 벌어진 것은 하나님 마음속에 목표하시는 참다운 주인의 사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찾아나오신 그 주인과 인연을 맺고 그 주인을 모시기를 고대한다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본래의 위치를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철석같이 불변인 것처럼 나도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시대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천륜 앞에 있어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심정적인 세계관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그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세계는 그 주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가 될 터인데 그 세계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그냥 막연하게 그 세계를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림사상, 메시아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든지 재림사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구세주가 온다.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온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이 없으면 올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사이비입니다. 그야말로 사이비예요.

12-311
참주인을 중심한 세계
온다, 온다, 온다 하는데 무엇이 옵니까? 무엇이 오느냐 말입니다. 참다운 주인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주인을 중심삼은 참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생활을 통하여 참다운 생애를 살 수 있게 되고, 참다운 세계관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어떤 생활이냐? 주인을 모시고 기쁨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 세상의 악은 주인을 모시고 기뻐하는 그 기쁨에 밀려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천지에 있는 악과 천지에 있는 고통이 전부 밀려 나가 자빠지게 할 수 있는 주인을 만났을 때 기뻐하고 부풀어오르고 끓어 오르고 격동될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습니까? 물어 봅시다. 어때요? 신앙의 길은 가면 갈수록 험한 길입니다. 알고 보면 그렇습니다.

역경으로부터 출발한 역사이기에 역경의 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흐름으로 엮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웠던 주인을 만나면 그분의 손을 붙들고 억천만년이라도 놓고 싶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억천만년의 고통과 모든 슬픔을 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초월하여 감격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냐?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너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이 옛날부터 고대하고 갈망하던 그 마음의 기준에 동참 하였느냐고. 그래도 지금까지 전통의 길을 닦아 나온 역사적인 위인들과 선지자들은 그 누구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못 되게 하면 역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의 귀일점은 마음이 영원히 기뻐할 수 있고, 마음이 영원한 생활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기반 위에서는 주인도 그러한 주인이어야 하고, 그 주인이 주장하는 세계도 그런 세계라야 하니, 세계는 하나의 주인을 위한 영원한 평화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과 사상을 이 인류 앞에, 역사 앞에, 천주 앞에, 하나님의 섭리 앞에 세우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요, 구원섭리입니다.

12-312
참주인의 발판이 되는 참종교
여러분은 종의 자리에 있으니 종의 자리를 지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부모의 이름을 통해 참다운 혈통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참다운 아들딸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망할지라도 그렇게 됩니다. 아무리 사회가 떠들며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선생님의 이 철석같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몰아치는 환경에서도 하늘은 선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점령당하지 않고 침범당하지 않는 신념과 생활태도를 갖춘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 세계가 이루어져도 그 세계와 여러분은 화합할래야 화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을 찾아야 됩니다. 주인의 사명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해야 됩니다.

그를 중심삼은 것은 모든 것이 참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된 주인, 참된 부모와 인연을 맺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역사는 종교인들을 수습하고, 양심적인 인사들을 수습하고, 심정적인 인사들을 수습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교 문제가 상당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오늘날 한국의 어느 종교도 이 문제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갈래갈래 갈라지고 편편이 파편이 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공산주의도 그렇습니다.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주권이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시대가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역사가 팔리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자기의 신용을 팔아먹고, 인격을 팔아먹고, 자유를 팔아먹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돈으로 처리하는 때가 되면 그때가 끝날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 대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아들딸에 대해서도 돈으로써 처리하고 돈으로써 팔아먹고 돈으로 왔다갔다 하는 세계,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것에서부터 제일 나쁘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돈 때문에 팔려 다니고 이동되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세계가 될 때는 끝날이 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자신이 되든가, 아니면 주인이 되든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종족과 민족마다 종교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의 목적 세계를 지향하도록 하기 위해 그 지역과 환경에 적응될 수 있는 종교를 세워서 역사를 수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민주주의를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는데 기독교가 민주주의를 수습하지 못하면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삼켜 버릴 수 있고, 공산주의를 삼켜버릴 수 있는 종교, 공산주의 이론 이상의 내용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을 찾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있느냐? 그런 종교를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 지성인들과 종교인들과 종교를 지배하는 제사장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교리를 붙들고 싸우고만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교회냐? 그러한 사상의 기반을 닦기 위해 나온 교회입니다.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이념을 확립해 가지고 나가자고 모인 무리가 여러분들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어떠한 주의나 종교적인 무엇에 팔려 다닌다면 여러분은 다 깨집니다. 지금까지의 기성종교나 기성주의에 팔려 다니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을 정립할 수 없고, 역사적인 종교의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나 시대적인 주의에 팔려 다니는 통일교회가 된다면 통일교회는 깨집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것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 입각해 계시는 주인, 이러한 관점에서 행차하시는 하나님, 이러한 관점에서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오늘날 시대적인 지성인들, 그리고 이념적인 혹은 사상적인 그 무엇을 찾아 나아가는 선각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2-314
반성해야 할 통일교인들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들, 역사적인 어떤 종교나 주의 앞에 휩쓸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어떤 어려운 폭풍우가 부딪쳐 오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신이 있습니까? 목이 짤려도 자신이 있습니까?

항복문서를 쓰고 후퇴하는 패들은 망해 쓰러집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목적 밑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 싸워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투쟁역사입니다. 나는 일편단심입니다. 일편단심! 내가 그 길을 닦지 못하면 그 길을 닦아 줄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주인을 맞이할 이념적인 기반과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적 사명을 하자고 선포하고 나선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보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힘찬 경종을 해야 할 상태입니다. 채찍을 들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상태예요.

과거의 생활 관념에 사로잡힌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성 종교 관념, 기성 신앙관념에 사로잡히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성 신앙관념을 밟아 치우고 기성 신앙관념을 넘어서야 됩니다. 전통적인 사조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 사조를 넘어서야 됩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뜻을 위한 행동을 해야 됩니다. 뜻을 위한 명령이 우리 앞에 떨어질 때에는 언제나 `예스(Yes)’여야 합니다. `노오(No)’가 없어야 됩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주인을 세계적인 주인으로 모셔 놓고서야 여러분의 갈 길이 생겨납니다.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선생님의 작전 가운데 제1차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원수들이 아우성치는 와중에서도, 수많은 화살을 받아 가면서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는 죽지 않았습니다.

12-315
보여 주어야 할 우리
우리를 핍박하던 그들이 우리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가까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1차적으로는 종교인들을 무색하게 했으니 제2차적으로는 모든 주권자들이 `저런 사상과 이념이 있는 것을 몰랐구나’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여 줍시다. 개인적으로 보여 주고, 가정적으로 보여 주고, 종족적으로 보여 주고, 민족적으로 보여 주고, 전체적으로 보여 줍시다. 그래서 가정을 굴복시키고, 종족을 굴복시키고, 그 민족을 굴복시키고, 모든 주권을 굴복시켜야 되겠습니다. 세계의 어떤 사조나 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도 `저들과는 상대가 될 수 없다. 못 당한다. 지독하고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뭔가 됩니다.

나라를 생각하고 이 시대를 염려하는 마음이 있거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멱살을 잡고 갈겨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해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인생의 가치가 떨어지는 낙엽만도 못한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고대하고 역사와 시대가 고대하는 하나의 중심으로서 찬양받고 영광의 가치를 지녀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 통일 신도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냐! 시대적인 사망권내에서 아우성치고 갈구하며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느냐! 하늘 땅 앞에 부끄럽지 않느냐!내 마음을 재촉하는 천지의 대운세 앞에 부끄럽지 않으냐!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자는 외식하는 자입니다. 내 자신도 부끄럽습니다.

길을 가다가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얼굴을 못 들겠어요. 부끄러운 남편을 둔 부인은 인격을 갖춘 신랑을 모시고 나오는 부인들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렇잖아요? 못된 자식을 둔 부모는 그 자식을 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어 얼굴을 못 듭니다. 우리는 심정세계의 존재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정경을 바라볼 때 여러분들은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많이 느껴야 됩니다.

저들이 누구냐? 우리 한국 사람들이 누구냐? 형제입니다, 형제. 역사의 곡절과 비운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만 심정의 세계에서 볼 때에 그들은 동기요, 형제입니다. 그들이 죽을 자리에 있고 비참한 입장에 놓여 있으니 내가 숨을 쉬고 살 기력이 있는 한 그들을 살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먹고 나서도 부끄러워하고, 입고 나서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없어지는 날이면 이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거예요.

처참한 이 사회 환경에서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고 버터야 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뜻을 위해 외쳐야 되겠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그 진의라도 알려 주고 죽겠다는 사명에 불타는 통일신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체가 되어 있습니까?

선생님이 알고 찾아 나오는 신앙세계는 여러분이 찾아나 온 신앙세계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재정비하고 재수습하여야 되겠습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나니 역사적인 선조들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시대가 부르고 있고, 천륜이 부르고 있는데 그 앞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선조들은 참다운 주인이 이 땅에 찾아오기를 얼마나 바라왔습니까? 그 때가 오지 않아서 얼마나 한스러워했습니까? 10년 걸릴 공사를 1년에 마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쁩니다. 한없이 바쁜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심정을 생각하며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어도 숟가락을 들고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주인이 되든가 주인이 올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됩니다. 이것은 지도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몽둥이로 패서라도 하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과는 달라요.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여기 오면 전부 다 평등입니다. 사회적인 명사 같은 것 나는 모릅니다. 원리 앞에서는 모두 평등입니다. 말을 안 들으면 패서라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놔 두면 망합니다. 망하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둘 수는 없습니다.

12-317
주인이 되려면
그러면 그렇게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잃어버린 주인을 찾게 해서, 그 주인으로부터 상속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천주의 주인을 모시어 그분의 상속을 받기 전에는 천지의 대주재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천지의 주인을 모셔 가지고 천지의 부모의 사명을 하기 위해 오시는 분한테 혈통을 상속받아 축복을 받으면, 아까 봉독한 성경 말씀과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천지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참부모, 참된 주인의 자리를 경유하여 참된 부모의 자리로 올라간 그분과 내적인 인연을 맺고, 혈통을 상속받아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은 직계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이 있으면 그 부잣집의 영감도 주인이지만 그 아들도 주인입니다. 그렇지만 종은 주인이 아닙니다. 직계가 되어야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제나 심중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딸이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주인의 행사를 대신하고, 주인을 대신한 기준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했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낸 목적은 예수 한 분과 우리의 관계를 맺는 데 있습니다. 그 관계가 맺어져야만 우리가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소원의 실체대상이 될 수 있고, 역사적인 모든 소원의 실체대상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모든 인간들이 이상하는 소망의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 있느냐?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저 건너편의 크고 좋은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 집이 자기 집이라면 주인된 입장에서 `거 참 잘 탄다’ 하고 구경만 하겠습니까? 어떠한 농토나 땅이 자기 것이라면 그것을 주관하고 관리해야 할 터인데 악질분자나 불한당들이 뺏으려 하는데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한 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보다 몇십 배 악착같이 해서라도 때려부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천지가 주인이라고 공인한 사람 앞에 어떤 악질 불한당이 나타나 위협한다면 그 주인은 그 악질들보다 몇십 배 악착같이 해서라도 그 악질을 처치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인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2-318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할 때
이러한 문제들을 천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때가 바로 심판의 때입니다. 그때에는 주인의 가치를 지녀 가지고 불의를 대하여 주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인의 행사를 못 하면 물러가야 됩니다. 악한 사람보다 몇십 배 악한 행동을 해서라도, 목을 베고 갈기갈기 찢어서 독수리밥을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됩니다. 그런 시대가 옵니다.

어떻게 종교의 이념을 가지고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심판이라는 명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한당들은 전부 때려부숴야 됩니다. 이것은 한 사람 개인의 분풀이가 아니라 역사적인 화풀이, 시대적인 화풀이입니다. 그들은 정의를 위하여 선을 추구해 온 수많은 역사적인 위인들을 유린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나온 원수들이요, 선을 지향해 나가는 모든 선한 사람들 앞에 말할 수 없는 방해 공작을 해온 악당들이니, 모든 역사적인 한을 통합하여 치는 것입니다. 칠때는 천 배 만배로 무자비하게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래요.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이 삼천리 반도와 세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온 백성이 `하나님은 내 주인이요, 나 또한 주인이다’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았습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백성이 그런 자리로 나가도록 권고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또 `권고해도 물러서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없거든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성취와 당신의 해원성사가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의 소원성취를 위해 내 손으로 싸우겠습니다. 원수와 부딪치더라도 안 깨지겠습니다. 내 몸은 찢어지고 깨어져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정신만은 깨지지 않겠습니다. 천지의 어떤 것이 부딪쳐 오더라도 깨지지 않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세상 풍파가 들이치고 또 칠지라도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두고 보자! 10년이라도 두고 보자! 20년이고 30년이고 두고 보자! 40년이라도 두고 보자’라고 해야 합니다. 40 고비를 넘고 나면 고개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정신 차려야 됩니다. 알겠어요?

몸은 하나인데 마음은 바쁩니다. 할 수 없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책임인 줄 알고 가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 손이 모자라고 발이 모자라서 안타까운 내 심정을 아버지는 아십니다. `주인의 길을 닦는 내 자체가 하늘이 볼 때 거슬리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천지 앞에 거슬리는 내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념에 사무친 마음만 있다면 돈 한푼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세상의 무지한 이들과 악한 사람들을 몽땅 모아 가지고 선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복귀섭리입니다. 여러분은 악한 사람들에게 먹혀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과 세파에 사로잡혀 쓰러지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쓰러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주인이 될 것이냐? 한국의 주인이 될 것이냐?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냐? 천지의 주인이 될 것이냐? 천지의 주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눈만 감으면 한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해서 세계 일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말입니다. 마음세계에서 수천만 번 움직이고 나서야 실제세계에서 성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복귀섭리를 하는 6천년 동안 하루 24시간 중단 한 시간도 그것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6천년 동안 마음속에서 고대하고, 마음속에서 염려하고, 마음속에서 그리워했던 것이 한 때를 맞이하여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역사입니다.

12-320
구세주와 제사장
여러분의 마음은 천지의 주인과 더불어 주인이 되고, 주인 대신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친다 할지라도 안 쓰러진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쯤은 돼야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런 신념을 갖지 않으면 먹혀 버립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통일교회에 와서 선생님 노릇 할 수 없습니다. 30억 인류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세워도 선생님만큼 할 수 없습니다. 천지의 누구도 안 됩니다. 그들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용서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남이 도와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나를 도와주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해 놓고 난 후에 남에게 주고 싶지 손을 벌리고 도와 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손만 벌리는 거지 패들은 망합니다, 망해요. 그러면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없는데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없으면 없는 고비를 넘고 넘어가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넘고 가자 이겁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그런 길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에게 월급을 줘요, 뭘 줘요? 예? 밥을 굶는지 어떤지 알고 있어요? 여기 본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굶어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세 안 져도 굶어 죽지 않아요. 그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애를 두고 자신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무지무지한 일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저런 일을 하다니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심정으로 간곡하게, 세상의 어떠한 무엇이 참소할 수 없는 기준에 서서, 그러한 마음 기반이 되어 가지고 한다면 성사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안 되면 눈물을 흘리세요. 안 되면 몸뚱이라도 폭발시키세요. 부딪치면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폭동을 일으키자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불을 붙이자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이고이 단장하여 제사장의 옷을 입고 무릎을 끓고 분향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통일신도들은 그것을 알았기에 피눈물의 꼭대기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 눈물 흘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땀 흘리는 사람 앞에 땀 흘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피 흘려 쓰러지는 사람 앞에 피로써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속죄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세상 만민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만민의 죄를 대표해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생사를 걸어 놓고 호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우리의 것, 세상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하느냐? 제일 나쁜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비롯해서 별의별 곳에 다 가 보았지만, 어디 가든지 말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불한당, 살인 강도라도 며칠만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선생님 앞에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이 됩시다. 무엇부터? 영광은 수고의 터전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귀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륜의 발전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지의 대주인,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근심이 있으면 그 근심을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마음 가운데 십자가가 있으면 그 십자가를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되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환난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주인 된 책임을 못 하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할 수 없는 환경에 있으니,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으니, 통곡으로 주어야 합니다. 눈물로 주어야 합니다. 피와 살로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피와 살을 주신 것입니다. 피로 주고 살로 주자는 것이 도의 길을 가는 자의 생활철학입니다.

12-322
주인의 바른 마음자세와 생활태도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최일선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수와 싸우고, 시대적인 불한당과 싸워야 합니다. 총칼을 들고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를 쓰러뜨려야 합니다. 총칼을 들더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쓰러뜨리면 정의가 됩니다. 그런 사상과 그런 결의에 불탈 수 있는 청년 남녀를 빨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을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쁜 것을 수습하여 좋은 것으로 만드는 작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시대가 올 때 배척하지 못합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상의 나쁜 자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모든 위인들은 그 시대시대마다 나쁜 자리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서는 제일 나쁜 죄목을 지고 제일 나쁜 보자기를 쓰고 갔지만 그 시대가 지나간 후에는 그 사람을 선의 주인공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환난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면 여러분의 후손들이 처참하게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시대적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 앞에 나아가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는 주인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인을 모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한국에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는 도의 기준을, 세계의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그 주인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주인을 위해 준비하는 자가 되고 주인이 되기 위한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서 악이 사라질 때까지 주인의 책임을 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주인이 되고 잃어버린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늘 말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12-323
세계를 수습해야 할 통일교회
다시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행차하신다 할진대 이런 사명과 책임을 중심삼고 준비하는 곳과 준비하는 모임과 준비하는 민족에게 와야 됩니다.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오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짓말장이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이제 두고 보란 말입니다. 선생님의 말이 맞나 안 맞나? 때가 되면 세계가 굴러 들어옵니다. 이 굴러 들어오는 세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혁명정부도 이 민족 앞에 수습할 방법을 몰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그 사람들이 잘못을 하고 아무리 핍박을 하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아무리 지지고 볶고 망하게 하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이 세상을 대신하여 걱정하는 한, 세계가 아무리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결국은 통일교회한테 흡수될 것입니다. 흡수되게 되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내 자산에게 차근차근 흡수할 수 있는 재료가 있습니다. 그들이 불평할래야 불평할 수 없습니다. 무어라 항서를 써서 나에게 항의할 수 있는 재료가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이 예수님으로서 이 만민 앞에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냐? 그것은 만민을 위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런 기준에 항서를 써서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천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뜨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굴복하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우리는 사망의 구덩이에서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하늘이 있음을 알고 세계를 책임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많은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예요. 어차피 많아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걸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료가 필요합니다. 역사를 두고 때릴 수 있는 재료, 미래를 두고 때릴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가 무엇이냐? 피와 눈물과 땀입니다.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 하나님이 눈물 흘릴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 온 인류가 눈물 흘릴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입니다. 그 피와 땀과 눈물 위에 쌓은 승리의 공적은 역사상의 인간들이 숭배할 수 있는 재료요, 역사상의 인간들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이러한 재료를 만들게 되면 죄악의 세계는 깨져 나가게 됩니다. 깨져 나가요.

12-324
통일교인들을 고생시킨 이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년 동안 고생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망하지 않습니다. 축복받은 가정을 산지사방에 흩어 놓고 고생하는 것을 보는 선생님 마음은 아픕니다. 통곡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억제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비한 스승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재료를 준비하고 역사를 수습하는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기에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내모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몇 해 후에 많은 곳에 우리 교회가 들어가야 합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입장에서 축복이라는 명사를 받아 가지고 하늘의 위신도 잊고 체면도 잊으며 살아왔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개인을 그러한 자리에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개인이 없고, 가정을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가정이 없고, 민족을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민족이 없고, 국가를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국가가 없으면 전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석같은 원칙입니다.

이런 철석같은 원칙으로 만들어 놓은 그 세계는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이상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길을 나설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고개 이상의 고통이 올지라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와야 할 한의 소원을 남겨 놓고 갔으니 내가 그 소원을 이루겠다고 하는 결의를 하며 심각히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걸 생각할 때에 오늘 통일교제단을 지도하는 선생님과 예수님과는 아무런 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방향은 세상과는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생활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30억 인류 앞에 정성이 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후손을 위해야 합니다. 이런 무리가 하늘의 아들딸입니다. 이런 무리를 찾아 세계사적인 사상의 기반을 한반도를 중심삼고 이루어 놓자는 것이 통일교회요, 통일사상입니다.

선생님은 누가 한마디만 하면 대성통곡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선생님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통일교회란 명사를 중심삼고 투쟁해 왔습니다. 비참하고 비참한 노정을 거치면서 꼬부랑길 벼랑길과 같은 길을 걸어 나왔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해 주셨습니다. 썩어 들어가고 부패해 들어가는 이 민족을 바라볼 때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밤낮없이 돌아다니고 싶은 것이 선생님 마음입니다. 어디에 가 앉아 있더라도 금방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버지! 지금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한 시간이 바쁘고, 한 날이 바쁜 것을 내가 아니 한 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세계 인류가 지금 이 시간도 도탄 중에 있고 지옥행열차를 타고 달리고 있는데 정지시킬 수 있는 방책은 없겠습니까?’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고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는 주인이 되든가 아니면 주인을 모시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이 이념이 옳다고 생각되고 여러분이 먼저 이 이념을 알았다 할진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어느 직장에서도 그 책임을 못 하면 그 직장에서 참소를 받게 됩니다. 선생님은 3년기간 동안 탕감받으며 통일교회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12-326
주인이 되든가, 주인을 모실 준비를 하든가 해야
이제부터는 한국을 위주로 하여 세계적인 길로 뛰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내 것을 전부 내놓아도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이 교회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건 하루에 불이 열 번 나도 아무 미련이 없습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역사적인 재료입니다. 이 인류 앞에 영원히 내세울 수 있고, 세계 앞에 영원히 내세울 수 있고, 복귀 섭리 앞에 영원히 내세울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재료는 한끼의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데서, 잠을 못 자고 하늘 앞에 호소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역사를 살릴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하는 것이 통일신도의 세계사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교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심정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세계적인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잃어버린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든가 주인이 되든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말입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할래요 안 할래요? 안 하려면 나가란 말입니다. 다 나가요. 내가 맨발 벗고 다시 할 겁니다. 그거 못 하겠으면 다 나가란 말입니다. 나가서 몇 해 후에 찾아 들어와요.

여러분을 믿어야 할 환경이 되고 때가 왔는데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여러분을 믿고 일을 못 하겠습니다. 안심이 안 돼요. 안심이 안 된단 말입니다. 책임을 할래요, 안 할래요? 담판을 짓자구요. 책임을 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내리세요. 웃을 게 아닙니다. 웃을 게 아니예요.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이렇게 큰소리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내 갈 길이 바빠요! 여러분들이 갈 길이 바쁘면 나도 갈 길이 바쁩니다.

선생님에게 가정이 있지만 가정엔 관심이 없습니다. 일단 문 닫아 놓으면 자식이든 무엇이든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한계를 딱 갈라 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유사시엔 일단 보따리 싸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직계를 위해 눈물 흘릴 때가 아닙니다. 내 가정을 재료삼아 그보다 더 큰 세계를 살려야 하고, 세계를 위해 눈물 흘려야 합니다.

그런 심적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밤에라도 천명이 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상권내에선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의 길을 선생님은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가는 게 아닙니다. 무목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12-327
역사적인 사연과 곡절이 어려 있는 본부
여러분, 통일교회 본부는 서울이죠? 여기 통일교회 본부에 사는 여러분들은 과연 자격이 있습니까? 말은 안 하지만 선생님은 하루에도 몇십번 눈물을 흘립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측근에서는 다 알 겁니다. 선생님은 한마디만 하면 그저 통곡합니다. 대단히 예민한 사람입니다. 삼천리 반도에 널려서 이 시간에도 굶주린 자리에서 애절한 기도를 올리는 식구가 있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그런 식구들에게 심정의 인연을 전달해야 할 중간 영이요 매개체들이 여러분들인데, 여러분 자신들이 그래 가지고서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되겠어요?

본부에 있는 사람은 벌을 받아도 더 크게 받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새로운 말을 할 적마다 본부에서 먼저 하지 않습니다. 지방에 가서 먼저 하고 나중에 본부에서 합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는 무슨 기도를 해요?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늘 땅 앞에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내자신이,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자신이 가르치기가 부끄럽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 들어올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 들어올 때 여러분 마음대로 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여기는 피어린 눈물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 수련생들도 있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이 와서 사는 이 집을 농락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하늘과 더불어, 땅과 더불어 천지 인류들이 마음과 심정을 털어 놓고 통곡하는 제단입니다. 제단은 비참한 것이예요. 역사적인 제단인 이 집에 들어올 때 문밖에서부터 눈물 흘리며 들어와야 할 집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자는 식구들의 행동이 그래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집이 아깝습니다. 내게는 호화찬란한 집도다도 이 집이 더 귀합니다. 비록 금은 갔지만 금이 간 것은 역사적인 풍상이요, 역사적인 흔적입니다. 여러분은 이 집의 흠집을 보면서 `너의 상처는 아직까지 가시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겁니다.

앞으로 이 집에 모든 세계 인류가 찾아오게 될 겁니다. 찾아오게 돼요. 꿈 같은 얘기인 줄 알아요? 내가 여기에 살았고, 여기에서 뜻을 찾아 나왔기에 내가 지도하는 이념을 따라 국경을 넘어 찾아올 것입니다. 집을 새로 지으려면 지금이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역사적인 행사를 한 곳이고, 하늘 땅이 통곡을 한 곳입니다. 뭇 사람들이 통곡한 자리입니다. 피를 뿌려 몸부림치며 호소하던 자리입니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곡절로 인연된 눈물 자국이 어려 있는 곳입니다. 눈물로 얼룩진 거룩한 제단입니다. 함부로 들어오고 함부로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온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될 겁니다. 선생님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본부의 사진만 보고도, 아니 본부를 기억만 하고도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통곡하며 찾아오는 그들을 마음으로 반겨 기뻐하며 간곡한 마음으로 대해 주고 마음의 친구가 되어 위로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면 선생님이 일단 정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본부에 모이지 말란 말입니다. 왜 선생님이 자주 돌아다니는지 알아요? 할 일은 천 가지 만 가지이고 정리할 것은 많은데, 외적인 환경이 못 돼 있습니다.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어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지금 지방의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은 본부에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같이해 왔고, 같이 풍상을 겪어 왔으므로 고이고이 하늘 앞에 축복받고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12-329
멋지게 돌파해야 할 4년 기간
오늘 저녁 ‘과연 나는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죽어도 좋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고 직장에 있으면 직장에서, 어디에 가든지 뜻을 위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주인을 모시든지 주인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주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여러분들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통일교회 교인들이 썩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책임을 지고 이루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으니 그 맹세한 기준을 가지고 재수습하여 이제 남은 4년 기간을 멋지게 돌파해야 합니다. 이제 3년 노정이 지났지요? 선생님이 가야 할 3년 노정은 지났습니다. 이제는 4년 기간이 남았습니다. 이 4년 기간을 마치게 되면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선지 21년째입니다. 여러분이 21수 과정에 동참하게 되면 야곱의 70가정 수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40년 역사적인 한을 해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한 기간입니다. 3년 기간의 3수라는 것은 아들딸, 즉 가정을 세우기 위한 기간입니다. 아들딸을 찾는 기간입니다. 복귀섭리에 있어서 3수라는 것은 자녀를 분별하기 위한 수입니다. 4수는 땅을 복귀하기 위한 수입니다. 그래서 4년 기간을 지내는 겁니다.

40수는 4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4년을 여러분은 멋지게 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 교인들은 3년 기간에 못했으면 새로이 각오하고 4년 기간을 출발해야 합니다. 영광의 출발을 못 하겠거든 고통의 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 교인들은 너나할것없이 7년 노정을 넘어가야 합니다. 성경에 7년 대환란이 있지요? 개인적인 7년 대환란, 가정적인 7년 대환란, 민족적인 7년 대환란, 국가적인 7년 대환란을 거쳐야 합니다. 이 7년대환란을 한꺼번에 수습해서 개인적,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넘어가는 기간이 바로 이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십시오. 머리를 싸매고 기도해 보란 말입니다. 이 다음에 죽어 가지고도 `왜 땅에 살아 있을 때 안 가르쳐 주었습니까?’ 하고 선생님에 대해 참소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 말은 기성교회 목사의 말과 다르단 말입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다른지 안 다른지. 부부가 아들딸을 두고 일대에서 책임 못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죽어 보면 어떤지 알게 될 것입니다.

12-330
하나님이 고생시키시는 이유
앞으로 선생님은 세계적인 민족 대이동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선생님 일대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흑인은 한국에 살고, 한국 사람은 흑인 세계에서 가서 살아야 합니다. 민족적인 관념, 주권적인 관념, 국가적인 관념 등을 모두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대이동의 역사가 벌어져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금의 때는 그런 세계적인 대이동을 시작해 나가는 때입니다. 각도로 보면 15도 정도의 각도가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각이 처음에는 거의 같지만 이것이 계속해서 돌아가면 아주 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지정된 땅에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급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찾아가는 것이 복귀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애급 땅을 박차고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 것이 복귀역사인 연고로, 애급 땅에 처해 있는 오늘날 통일신도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광야노정은 각자에게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가라! 집이 문제가 아니고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가야 합니다. 두고 보세요. 가야 합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하겠어요.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내에서는 국가적인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즉 도(道)적인 이동이고 면(面)적인 이동이지만 이것이 앞으로 세계적인 전통이 되어 역사적인 세계의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사탄세계의 흔적조차 보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것이라면 모두 하나님이 보기 싫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탄을 무찔러 버리자니 무지무지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급에서 고통당한 것 이상의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고생을 할 때에 애급고역 시대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뜻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생각으로 돌이키기 위해 들이치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신도들은 세상에서 했던 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앞에서 더 간곡하고 더 심각한 고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생이나마 하나님 것으로 돌려 달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중심 자녀들을 들이치십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복귀하기 위해 치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쓰라리고 못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나는 모릅니다.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난 지 두 달도 못 된 성진(聖進)이를 그냥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처자를 내버리고 가는 그 사내녀석이 사람입니까?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성진이는 천지에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 얼마나 처량해요? 그러나 가는 겁니다. 사망의 땅을 박차고 하늘이 바라는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겁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국경선을 넘어서 가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출발한 것이 이 길입니다. 이 길! 선생님은 이렇게 환경적인 모든 시련을 겪었습니다.

역사적인 기반이 되었던 모든 것이 전부 십자가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돈을 탐하지 않고, 명예에 굴복하지 않고, 내 위신과 처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나안을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이념에만 사무쳐 있습니다.

12-332
책임 못 하면 후손들로부터 참소받는다
축복받을 수 있는 민족, 축복받을 수 있는 땅이 어디뇨? 그것을 찾아 헤매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감옥도 가는 것이요, 처참한 길도 가고, 죽음의 길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원수의 땅은 망망대해입니다. 바라보면 하늘밖에 없습니다. 친구도 없고 동기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부모까지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쓰러졌던 역사적인 길, 노아가 탄식하며 고생했던 길,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면서까지 하늘을 위하여 갔던 역사적인 비참한 길을 왜 내가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가는 것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앞으로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니면 이 세계를 책임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모험의 길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대이동을 해야 합니다. 몇년 후에는 세계의 통일교회 사람들을 데려다가 한국 땅에서 결혼식을 할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결혼시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세계 방방곡곡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고, 또 우리만이 그런 것을 할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명령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한 길을 안 가면 수많은 후손들 앞에 참소를 받게 됩니다. 수많은 후손들이 왜 복귀하지 못했느냐고 참소합니다. 에덴 동산을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이 길을 안 가면 후손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그런 한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때가 필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던 애급 땅, 애급의 혈족이 지긋지긋하다는 겁니다. 원수의 땅에서 웃고 잘 먹는 것보다도 축복받은 땅에서 땀을 흘리면서 노동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의 땅에서 잘 먹는 것보다도 못 먹고 고생하더라도 축복받은 땅에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호화찬란한 원수의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축복받은 땅 길가에서 객사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 무덤 그 자리에 흔적이라도 남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민족 관념이나 전통 관념 등을 전부 떼어 버릴 수 있는 신념의 왕자들만 모인 곳이 통일교회요, 통일이념입니다. 그렇게 할 결의가 다 돼 있습니까?

땅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행하여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뭐합니까? 하늘이 알아 주지 않더라도 신앙인이면 응당히 해야 됩니다. 깨깨 행해야 합니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정도 안 하고 권고도 안 하는 겁니다. 권고도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겁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중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엄청난 사명과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 안 해도 다 잘 알고 있지요? 알아요? 몰라요? 알지요?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요? 이왕지사 가려면 한창 때에 가야 해요. 늙으면 못 갑니다. 내 나이 40이 되니까 20대와는 달라요. 많이 달라졌습니다. 꽃다운 청춘시대에 하늘이 고대하던 인연을 중심삼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제 나이 40이 넘고 보니까 한이 맺힌 게 많아요.

12-333
나 대신 민족을 사랑하라
여러분들이 지금까지는 가정을 섬기고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뜻 앞에 `아버지여! 나는 자식 사랑하던 이상 아버지 앞에 충성을 했고, 남편 섬기는 이상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일을 했고, 내 몸 생각하는 이상 했습니다. 그런 조건을 걸어 놓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조건 앞에는 나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여러분이 가는 길이 평탄하게 됩니다. 저 나라에 가도 갈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만 못해서 지금까지 허덕여 나온 줄 알아요? 여러분보다 수완이 없어서 이러구 있는 줄 알아요?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갈 길이 이 길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걸어야 할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고생을 더 많이 해서라도 후대 사람들의 갈 길을 개척해 줘야 할 책임과 사명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잘 모르겠만 여기 식구들은 다 알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신세를 지고 있고, 여러분은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신세를 갚아야 됩니다. 신세를 갚으려면 선생님한테 갚지 말고 민족 앞에, 세계 인류 앞에, 하나님한테 갚아야 합니다. 선생님한테 갚는 것을 선생님은 원치 않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여러분들이 선생님께 집을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집은 무슨 집? 집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이 있거든 민족을 위해 일하십시오. 집은 열심히 일해 가지고 거지한테나 사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을 지고 있으면 빚을 갚아야 합니다. 내게 갚지 말고 인류와 하나님한테 갚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하늘땅, 민족과 인류를 다 사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관입니다.

여러분은 빚을 갚아야 합니다. 갚는 데는 언제 갚아야 되느냐? 지금부터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을 수 있는 존재를 세워 놓아야 이 세계가 살아 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전부 망하는 겁니다. 이 박사도 자기만 위하다가 망했습니다. 망한 거예요. 선생님 생각해 준다고 뭐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돈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을 닦아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도 해야 할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고, 여러분에게도 해야 할 각자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7년 대환란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갈 길입니다. 그 길은 아득한 천리 길입니다. `아득한 천리 길 고향은 먼데….’ 이런 노래도 있지만 그거 다 실감이 나는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하나님에게 황공한 생각이 듭니다. 이 못난 것을 붙들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시고 그래도 믿어 줘야 하는 하늘의 사정이 얼마나 슬프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해요. 하나님 앞에 뜻을 대신 하겠다고 나선 여러분들이지만 나 같은 것을 믿고 이런 사명을 맡기신 하늘이 얼마나 안타까우시며, 사명을 다하라고 권고하시는 선생님의 사정이 얼마나 처량하시겠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알고 남아진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금년에는 어디 갈지도 모릅니다. 사실 지금 미국으로부터 초청장이와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미국 갈 수 있는 패스포트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도 아직까지 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못 갔겠어요? 여러분 때문입니다. 그거 다 알고 있지요? 내가 떠나면 여러분들은 불쌍해집니다. 이 땅에서 해야 할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3년 기간을 걸어 놓고 결사적으로 해 나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다 졸면서 나왔지요?

12-335
하늘이 절대적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여러분들은 이제 알 만큼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인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주인을 찾기를 고대하고 계시니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닦든가 여러분이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을 다하길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그런 책임 하겠지요? 믿어요, 믿지 말아요? 예? 결론을 지읍시다. 믿어 주기를 바랍니까, 믿지 말기를 바랍니까? 대답해요! 예? 이 상헌씨! 「믿어 주기를 바랍니다.」 믿어 주기를 바래요? 선생님이 믿어 주다가 얼마나 배척받은 줄 알아요? 지긋지긋해요. 선생님이 믿어 주는 것은 여러분이 믿어 주는 것과 다릅니다. 한번 믿어 주면 요동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한번 약속하면 요동이 없습니다. 내 가정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믿고 약속한 것은 어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믿어 준다고 하지만 난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지내온 결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싸구려입니다. 싸구려!

선생님이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못 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서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렸을 겁니다. 선생님은 일생 동안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못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이제 앞으로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큰 일을 하기 위해 감옥까지도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철창에 들어가 10년 20년 있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통일교회는 부흥되게 돼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일을 할 것입니다. 감옥이 무슨 문제입니까? 감옥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파리가 제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나님도 무심해라. 약속은 그렇게 하시고 큰 소망을 주시더니 감옥이 다 뭐야?’ 하고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고 절망하자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도 약속과 더불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망한다고 해서 자기 전체를 팔아 버리는 사람은 인간이 아닙니다. 망하더라도 약속했으면 고이 망하라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저나라에 가서 귀한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꿈에라도 `아, 아버지 이제는 못 가겠습니다’ 하고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처리해 나왔습니다. 얼마든지 복귀해 나왔습니다. 효원씨도 잘 알지만 말입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구나’ 하고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입술이, 내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각오하고 나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믿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제부터 그런 신념을 갖겠으니 믿어 달라고 하는 겁니까? 여러분은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12-337
하늘 앞에 충과 효를 세우는 사람이 되라
이제는 나도 40이 넘었습니다. 내가 요즘 이 손을 보면서 `이 손이 참 많이 고생했다. 그런데 이 손이 곧 물이 되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해골이 되어 누울 때가 되면 몇 푼짜리나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이 나이가 점점 많아지니 갈 길이 바쁩니다. 내 갈 준비가 바쁩니다.

종교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생활 속에서 시간시간 처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명을 책임진 입장에서 나오다가 최종적인 결론에 이를 때 어떻게 남아질 것인가? 천상 장부에 무엇으로 남아질 것이냐? 상이냐 중이냐 혹은 하냐…. 나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늘 앞에 무슨 말을 할 것이냐? 그런 일이 곧 닥칠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생각하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도 지금보다 더 철저한 법도에 의해서 하늘을 모셨습니다. 그렇게 개척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제단입니다. 여기는 여러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무가치한 곳이 아닙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단단히 정신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선생님이 믿어 주기를 바라니 믿어 주겠습니다. 1963년은 이제 지나가고 1964년으로 넘어가는 입장에서 여러분을 다시 믿어 주겠습니다. 믿어 줄까요? 대답이 왜 시원치 않아요? 믿어 줄 테니 여러분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발바닥이 전부 다 벗겨졌겠어요, 안 벗겨졌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습니까? 선생님도 짐을 많이 져봤습니다. 지금도 그거 잘 합니다. 그럴 때에 내가 그것을 생각 안 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어떠했는지 말입니다. 몸이 지칩니다. 지치고 지치게 될 때에 하늘의 심정이 녹아 드는 겁니다. 하늘의 심정이 녹아 들어요. 남들 다 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이 울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을 붙들고 울어야 하고 남이 한탄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의 한을 붙들고 한탄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과 효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12-338
기 도
아버님! 한 많았던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하니, 부족한 이 모습, 아버지! 보잘것없는 모습을 놓고 염려하고 계시고, 이 모습을 세워 놓고 약속해 주셨던 때와 시기를 그대로 이루어 주기만을 고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될 때 황공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어떠한 환난이 있고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감사하며 하늘을 위하고 싶사옵니다.

이러한 간곡한 마음을 나에게 두지 마시옵고, 사망의 길에서 허덕이며 나를 따르고 통일의 이념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에게 상속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이들이 싸움터에서 승리의 기준을 얻지 못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이들을 다시 한번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민족이 사망의 최정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실상을 바라볼 때 저희들은 눈물 흘리지 않고는 바라볼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였사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늘의 섭리의 한 때를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면서도 스스로 준비하지 못하고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황공하옵나이다.

하늘은 완전한 자를 세우시어서 완전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 같고 부족한 자, 부끄러운 자를 세우시어서 지혜롭고 당당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섭리가 종말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아오니, 이들 앞에 당신의 긍휼의 심정과 사랑의 심정을 가하시어서 이들이 가는 길에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가는 길에 눈물을 더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가는 길에 당신의 사랑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남아진 역사의 도상에서 탄식과 더불어 사라지는 민족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과 더불어 호소하여 아버지의 섭리에 발판이 되고 민족이 바라볼 수 있는 용맹의 깃발을 골고다 산정에 달 수 있는 당당한 생명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복귀의 사명이 지중한 것을 알았사옵고, 세계적인 사명이 저희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길을 가야 할 저희의 발걸음이 바쁘고, 저희 마음 또한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를 따르고 있는 이 무리들, 마음이 변하지 말게 하시옵고 눈물로써 호소하며 생활적인 모든 고통을 해결해 나갈 수 있고 참다운 주인의 사명을 완결하게 하시옵소서.저희들이 그러한 사명을 못할진대 주인을 모시고 부축하며 갈 수 있는 재료라도 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용사들과 세계 각지에서 눈물을 흘리며 본부를 그리워하고 보잘것없는 스승을 그리워하고 있는 통일의 용사들이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의 마음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충성하는 것이 있으면 당신이 그 이상 갚아 주시옵고, 당신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옵고, 당신이 직접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내 마음을 아시오니 지도하여 주시옵고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모의 심정의 인연을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무리 `참다운 가정을 잃어버린 불쌍한 무리가 된 이 세계인류를 당신이 풀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복지를 건설하는 데에 재료가 되고 승리의 기반이 될 수 있게 저희들은 특별히 세워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말미암아 한 많고 슬픔 많은 역사를 청산짓고 아버지의 안식의 터전과 복지를 마련하고 하늘과 땅에 자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앞에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섭리의 뜻 앞에 온 세계의 인류가 화동해야 할 것을 아오니, 그때까지 역사해 주시옵고, 그때까지 지쳐 쓰러지거나 하늘 앞에 배반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승리를 계획하시는 아버님 뜻 앞에 만만사의 영광만이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 저녁에 말씀을 들었사오니 섭리의 뜻 앞에 주인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