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6: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963.07.27 (토), 한국 전본부교회

12-286
나는 누구냐
[말씀 요지]

여러분과 같은 연령 때에는 꿈도 많고 소망도 클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과 욕망이 불타고 있을 것이다. 무엇에든지 접붙이면 잘 적응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때에 있는 여러분은 또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고통을 받기도 할 것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제목은 `나는 누구냐’다.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의 아들이며, 또 어느 도(道)의 사람이며, 어느 나라의 사람이냐? 내 개체는 상대성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여러분 같은 소망적인 청년들도 상대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보다 좋은 것이 있었을 것이거늘, 이 더 좋은 것을 나의 환경에 두고 싶고 가정에 두고 싶고 민족에 두고 싶은 것이다. 더 좋은 가치를 바라는데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더 좋은 것을 찾는 여러분에게 그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자들이요,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자들이다. 그것, 즉 더 좋은 것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발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으로 무엇을 만질 때나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더 좋은 것을 만지려 하고 더 좋은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것은 더 좋은 것과 인연맺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을 때는 자연히 반항하게 되고 불평이 앞서게 된다. 그러니 내 손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더 좋은 것을 창조하겠다는 신념을 불붙여 줘야겠다.

우리 젊은이들은 더 좋은 가치의 것이 없다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더 가치적인 것을 창조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생활해 나가야 한다. 그런 생활을 해 나갈 때 제2의 소망을 품게 되고, 또 그 소망을 향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썩어 가는 나뭇가지와 같은 젊은이들을 다시 창조하여 환경을 정리해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여기 온 사람 중에는 반대하는 환경을 극복하고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올 때는 여러 환경을 거쳐 흘러왔지만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가지고 보다 좋은, 보다 가치적인 환경을 창조해 나가자.

타락한 후손들은 탄식권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러분은 이러한 탄식권내에서 선의 터전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갖고 투쟁해 나가야겠다. 더 큰 선을 창조하려면 신념을 갖고 그릇된 환경을 짓밟고 투쟁해야 한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 악한 환경도 선의 환경으로 흡수될 것이다. 제2의 창조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도, 어떤 파도가 휘몰아쳐도 이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선생님도 이러한 신념을 갖고 싸워 나가고 있다.

재창조를 하려면 상대적인 위치가 아니고 주체적인 위치에 서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재창조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다가 도중에 쓰러지면 결국 망한다. 여러분은 재창조의 목표를 세워 놓고 행진해 나왔는가? 어디서부터? 나 자신부터 재창조해야 한다. 선을 창조하는 `나’, 선을 대변하는 `나’로 재창조해야 한다. 여러분, 이렇게 재창조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 자신들이 없구나. 그러면 재창조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

`나’는 누구냐? 나는 선을 세울 수도 있고 선을 깨뜨릴 수도 있는 존재다. 두 갈래 길에 선 모체인 것이다.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욕망을 채우려면 하나님 앞에 대상의 위치에 서야 한다. 우리는 땅에서 선을 옹호하는 자가 되자. 그리고 악을 미워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은 무엇부터 선하게 되기를 원하시느냐? 여러분 자신의 마음부터 선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선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이냐? 정이 많아 누구든 품어 주려 하는 마음이다. 남의 어려움을 볼 때 동정하는 마음이 선이다. 의협심이 폭발되어 정으로 덮어 주려 하는 마음이 선이다. 흘러가는 물결도 정으로 품어 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의 바탕이 선이다. 그런데 타락으로 이러한 마음이 모두다 무너져 버렸다.

온 천지를 엎어 줄 수 있는 마음 바탕 위에 몸이 호응할 수 있는 ‘나’가 되면 된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만천하에 외치고, 어떤 것이 좋은 것임에 틀림없을 때 그것을 민족화, 세계화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선의 생활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전보다 몇백 배 더 강해야 선으로 한 발자국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내 자신이다. 나는 누구의 아들이 될 것이며, 누구를 아버지로 삼을 것이냐? 누구나 그 시대의 최고 이념을 가진 사람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거든 인간이 최고로 소망하는 분, 즉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을 아버지라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최하의 자리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인간은 길가에 있는 풀 포기 하나도 창조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천하가 반대해도 나는 간다고 하는 신념을 갖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천하가 굴복할 것이다.

그동안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수속을 밟아 왔지만 모두 그 과정에서 낙제하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에는 모두 낙제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시험을 칠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의 시험지에 명답을 써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는가? 수속 절차를 밟아 그러한 답을 써 주실 분이 메시아다. 답을 쓰기는 자기가 쓰되 연필 꼭대기는 메시아가 잡아 주시는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딸로 축복받을 수 있는 답을 백 퍼센트 가르쳐 주시는 분이 메시아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여기에 왔지? 그렇지? 믿고 순종하라. 그러면 최후의 고비(결승전)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비결은 명령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당신의 아들딸로 만들고자 하시고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자 하나, 그렇게 되는 데는 필연적으로 해산의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다. 수고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만들어지는 편이니 만들려고 하는 편에 무조건 져야 된다.

그런 후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딸이다’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효자 효녀, 하나님의 열남 열녀, 하나님의 충신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한 면을 담당해야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분이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길을 가셨다.

과거에는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였으나 이제부터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아 드릴 수 있어야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