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2 to 12-230: 가야 할 나

가야 할 나
1963.05.15 (수), 한국 전본부교회

12-192
가야 할 나
여러분들은 언제나 복귀역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기 모인 여러분을 불러 이 사망세계를 책임지우고 `이제부터 너를 통하여 이 세상을 복귀해야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12-192
복귀역사를 책임지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셨으나 아직도 종결되지 못한 복귀역사, 그러나 기필코 종결되어야 할 복귀역사, 이 복귀역사를 종결짓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합해야 합니다.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가지고도 안 되고 하나님만으로도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합해져야만 복귀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문제를….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개야! 이제부터 네가 이 큰 사명을 책임지고 복귀역사를 해 나가라’ 하는 명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금까지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 나왔는데, 우리가 느껴야 할 최후의 입장은 어떤 것이냐? 바로 이러한 입장입니다.

온 세상은 지금 사망과 흑암권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광명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흑암권내에 있습니다. 이런 흑암권내에 있는 여러분이 천신만고의 수고를 하고 정성을 들인 기반 위에서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는다면 그건 큰 복일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늘과 땅, 그리고 이 세계를 전부 너에게 맡기노라. 온 천지가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수 있게 하겠노라. 이런 무한한 혜택을 너에게 줄 것이니 너는 이 책임을 감당하라’고 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서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나오셨는데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천주까지 찾아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 복귀섭리의 범위를 확대해 나오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만물과 인간까지 들어갈 수 있는 권(圈)의 복귀, 즉 완전복귀를 목표하고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세워 역사하시기도 하고, 가정을 세워서 혹은 종족이나 민족, 국가나 세계를 세워서 역사를 해 오셨는데, 이렇게 역사해 오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조만물 전체가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창조이상권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피조만물은 반드시 완전한 한 사람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만물 자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중심이 되는 완전한 한 사람은 자기 홀로 책임한 입장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가 책임한 입장에 서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 천지의 모든 존재들이 같이 움직여서 일한 것과 동등한 가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가치적인 존재가 나와야만 하나님의 복귀섭리, 즉 구원섭리의 전체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 될 만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지금 여러분처럼 가정만을 위해 사는 사람? 사회를 책임졌다고 자처하는 사람? 혹은 이 세계의 2대 진영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거두들? 아닙니다.

이 하늘땅 전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맡기는 데는 모든 승리를 기반으로 잘 닦아진 영광의 터전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흑암의 세계, 원수의 떼거리가 세계적으로 널려 있는 엄청난 흑암의 세계를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명을 지고 세계를 책임지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이 세계는 위험권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구원섭리의 뜻을 따라 나가는 신앙자들이요, 도의 길을 찾아 허덕이는 사람들이건만, 진정 그러한 자리에서 이 모든 천주적 사명을 책임지겠다 하여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가? 있었더라도 그가 그 책임을 감당했는가? 이것은 아직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12-194
통일교회가 지향해 온 것
그러면 통일교회가 지향해 온 것은 무엇이고, 또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 세계 앞에서 홀로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아 가지고, `이런 흑암권내에서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해 내겠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버지, 해내겠습니다. 모든 것을 저에게 책임지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신도들은 모여서 움직였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면 최후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하나의 고정된 위치, 결정적인 그 위치는 어떠한 위치이냐? 이 세상이 모두 원수로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나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리신 최후의 명령을 받아 그 책임을 감당해 내겠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까지의 복귀역사란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역사입니다.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해 6천년을 거쳐 나왔어요. 6천년이 걸렸다는 거예요. 어느 한 시대가 아니요, 어느 한 세기가 아닙니다. 역사 속의 한 과정이 아니예요. 인류역사 전체가 잃어버린 조상을 찾아 나오는 복귀역사였던 것입니다. 6천년 동안이나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담을 완전히 찾아 가지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 인간 모두에게 승리의 전법을 가르쳐주어 개개인이 완전한 터전 위에 서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런 터전 위에 서서 나는 천하를 다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을 가졌다 하는 신념과 그것을 실천하는 면에 있어서 자신을 갖는, 거기서부터 비로소 완성이라는 명사를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늘도 땅도 모르고 아무도 전혀 모르는 가운데에서 뜻 앞에 불리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 말고, 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깜깜한 천지 가운데에서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아 `이러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 내라’ 하시는 명령을 받게 된다면, 어떠한 책임감과 어떠한 각오와 어떠한 결의를 가지고 나가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 서 보지 않는 한 선조들의 사정을 알 수 없고, 지금까지 역대의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수고한 역사적인 인연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볼 때 `아, 노아는 이러했구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가정적인 단위에서 책임과 사명을 해야 했던 노아의 사정, 종족과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적인 분야에서 책임을 해야 했던 모세의 사정, 혹은 메시아의 입장에서 원수들이 수도 없이 많은 이 천지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원수의 자식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직계의 자녀로 만들어야 할 엄청난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예수의 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 볼 때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인 여러분, 선생님도 그러한 입장에 서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이며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한 분야에만 제한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시대에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온 하늘의 역사적인 인연을 알아서 그것을 수습하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원수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신념에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로부터의 역사를 밟고 올라서서 처참한 환난 가운데 있는 이 시대를 쳐부수고 수습하여 복지를 건설해야 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만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어야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신앙길을 갈 수 있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가려고 해도 못 갑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한 원리를 배우고 있고, 노아 가정을 중심한 원리를 배우고 있고, 아브라함, 야곱, 모세, 예수 시대에 대한 원리를 배우고 있고,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따라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원리를 따라 쉴새없이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 가정을 내가 수습해서 세우겠다, 노아 가정을 내가 수습하겠다, 아브라함 가정을 내가 수습하겠다, 수습할 뿐만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도 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이 흑암세계에서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아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총책임을 졌다 할진대,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할 때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 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12-196
예외가 없는 원리
예수가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서 죽기까지 어떠어떠한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이 시대에 벌어진다면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고 지시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이념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일들을 놓고, 하늘의 불리움을 받은 자로서, 또 하늘의 사명을 진 자로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돼요. 어떤 한계권내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뜻 앞에 있어 미숙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마음입니다.

원리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가야 할 복귀의 노정에서는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입장이나 모세의 입장이나, 예수의 입장이나 오늘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입장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어떤 특정한 사명을 짊어졌으니 그런 책임을 해야지’ 하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만민이 모두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 예외로 취급한다’고 하는 것이 탈입니다. `누구니 그랬지. 예수님이니까 그랬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외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원리에는 예외란 없다는 것입니다.

12-197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심정기준
선생님이 3년 기간을 넘어가는 지금 이때에 와서 제일 말하고 싶은 것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갑시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무자비한 투쟁을 거쳐서 세상의 끝까지 나왔으니 이제는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찾아 나왔으니 이젠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있어서 책임을 졌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대적인 환경과 제한된 시간권내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권내에서 심정과 일치된 이념으로 현실적인 기반을 세워 가지고 이 이념에 반역하는 모든 원수들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세워 놓아야 할 엄청난 사명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기도할 때에는 그렇게 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뭘 알았나 말이예요? 타락이 어떻고 뭐가 어떤지 알았나 말이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 서 있지만 그것을 찾아야 되겠고, 사탄에게서 그것들을 빼앗아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인격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 아래 역사적인 원수 사탄과 대결하여 그 사탄을 때려부수고, 시대적인 환경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을 갖고 미래의 개척자의 입장에서, 사탄세계에 남아진 모든 환난과 고통을 다 받더라도 굴함이 없이 새로운 세계, 즉 하나의 이념세계를 이루기 위해 심정의 기준을 중심삼고 태평히 서 있어야 합니다. 고난의 중앙부에 세워져도 그런 심정의 기반을 갖고 태평하게 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 아담이 타락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날 때의 슬픔을 느껴 보았습니까? 뜻을 못 이룰까봐 천신만고 억센 환경 앞에 시달리면서도 120년 동안이나 혀를 깨물며 참고 나가던 노아의 심정을 느껴봤습니까?

그 당시 노아에게 권고하시며 `가라’고 지시하시던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이 세계적인 사명을 갖고 노아 할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도 남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하고, 만우주 앞에 스스로를 세워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자연적인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강제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과연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까?

노아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노아가 한 일은 전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정의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도 아브라함 자신의 일이 아니라 아브라함 가정의 일이었습니다. 야곱이 한 일도 야곱의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21년 동안 수고한 그것도 자기 개체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12형제를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의 이스라엘을 위해서 수고를 한 것입니다.

12-198
하나님의 대신자가 해야 할 일
여러분은 어느 한 때 그런 입장에 서 보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부터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고 아버지고 없다 하는 입장에서 그런 사명을 짊어졌다면, 그것은 죽더라도 해야 될 책임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될 것인가? 만약 먼저 아담 가정에 손을 대려고 해도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른다면 여러분은 손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스승이 있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재료를 갖다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전에 어느 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통해서 학자들은 자기 전공분야의 재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데, 세계적인 재료, 좀더 유익한 재료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걸 구하기 위해서 자기 처신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지도 않고,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의 전문분야를 위해서는 자기에게 있는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그 재료를 구하려 하는 것이 학자들의 마음입니다. 생명을 걸고 자기의 전문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려는 입장에 있는 사람일수록 뭐 아까운게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서 어떻게 아담 가정에 대한 재료를 수집하여 아담 가정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충을 느끼고 있을 때에 좋은 재료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원리의 가치를 알고 나서 그것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왔습니다. 원리 말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맺혀 있는 이념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우주적인 재료입니다. 심정의 세계에 편편이 연결되어 있는 우주적인 재료입니다. 나는 이 세상을 수습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원리를 찾지 못하면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고, 온 인류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를 생각할 때 여러분 어떨 것 같습니까?

노아의 가정을 비롯하여 과거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것을 알았으니 이들을 수습하고 맞추어서 하나님의 대신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 사실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원리를 배워서 알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입장에 인간을 세워 놓으시고 인간이 스스로 찾아나와 주기를 고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그 길을 가르쳐주고 싶어하셨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가르쳐주지 못하신 하나님의 신세가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타락의 동기는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떻다는 것을 누군가가 해명을 해서 사탄을 자연 굴복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바라만 보시던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느끼는 자리에서 `아버지시여! 제가 책임을 진자로 섰습니다. 당신께서 소망의 뜻을 품으시고 저를 세우신 것을 압니다. 아담 가정의 고충을 해결하게 하기 위해서 저를 세우신 것을 압니다. 아담 가정의 고충이 이것 아닙니까?’ 하며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예수도 그런 자리에 처하게 되었을 때 원수가 인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어찌하오리까?’ 하며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심정을 느껴야 됩니다. 역사는 그러한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12-200
통일교회 신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관
여러분,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는 데 있어서 몸뚱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뭐 어디가 잘나고 어디가 어떻고 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도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습니까? 모두가 배고프고 그랬습니다. 그들도 고통을 받으면 고통을 다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것에 충격을 받았느냐? 단 하나 하나님의 명령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아 세계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개척자의 사명에 불타올라 자기 일신을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가정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종족도 민족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개인을 무시하고, 자기의 가정을 무시하고, 자기의 종족을 무시하고, 자기의 국가를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고도 나중에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흑암세계에서 하나님이 왜 자기를 불러 분부하는지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왜 자기를 불러 명령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 악의 역사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끝날에 와서 원리를 배워 가지고 역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두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알게 된 그 원리가 진정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까? 아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알고만 있는 것이 자기 것입니까? 거지들도 듣기만 하면 다 압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이 우주적인 사명감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는 데는 심정을 통하여 맺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부활된 아담의 행세를 해야 합니다. 실패하지 않은 아담으로 서야 합니다. 이렇게 했으면 타락하지 않았을 걸 하며 한탄하는 실패한 아담 말고 승리한 아담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노아 말고 승리한 노아, 실패한 아브라함 말고 승리한 아브라함, 실패한 모세 말고 승리한 모세, 죽은 예수말고 살아서 승리한 예수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주 앞에 서서 `누가 나의 성전을 정복할소냐? 누가 나의 이념을 정복할소냐? 누가 뜻을 사랑하는 나의 이 마음을 심판하겠느냐?’ 하면 아무도 심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못해요. 그렇게 되면 천지도 공인해야 하고 하나님도 공인해야 합니다. 만우주의 존재는 그를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승리의 영광을 중심삼고 세워진 실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불변의 기대 위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을 6천년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지금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선생님이 특별히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념에 불타는 철두철미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철두철미해야 됩니다. 이 세계 어디를 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믿지 마십시오. 믿긴 뭘 믿어요. 믿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선생님도 믿지 마십시오. 최후에는 오직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만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역사적인 사탄이여 오라! 흑암이여 오라!’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더라도 시시한 십자가에 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시시하게 골목의 십자가가 뭡니까? 한 가정의 십자가? 무슨 동네의 십자가? 안 됩니다. 한 나라의 십자가도 안 됩니다. 천지의 십자가, 하늘 땅의 십자가를 내가 지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 원수 사탄이 농락하고 있는 이 세상을 내가 책임지고 원수의 도성을, 원수의 제단을 무너뜨리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골고다는 원수의 제단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예수는 죽음으로써 골고다를 무너뜨리고 갔지만 우리는 죽지 않고 실체로 무너뜨려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관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신앙관은 그런 사명을 감당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인 하면 그런 책임을 짊어지고 생활적인 무대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통일교인이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만 어려워도 꽁무니를 빼려고 하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무엇을 지고 가셨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지고 갔습니다. 그날의 예수는 아담을 지고 갔고, 노아를 지고 갔고, 아브라함을 지고 갔고, 모세를 지고 갔고, 수많은 선조들을 지고 갔고, 그때까지의 세계적인 모든 환난을 지고 갔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환난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세상을 환난을 완전히 소유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선지자들의 공로를 전부 소유하고 시대적인 환난을 밟고 올라섬으로 말미암아 그 시대 앞에 메시아적인 책임, 메시아적인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사를 대신 지고 간 십자가요, 시대의 환난을 지고 간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승리한 것입니다.

12-202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래서 예수는 역사적인 한을 품고 갔던 모든 선지자들을 부활시켰고 환난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해 주었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동시에 선조들의 부활도 벌어졌지요? 그래서 그들도 예수와 함께 영형체급 영계에서 생명체급 영계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환난을 밟고 올라선 사람, 세상을 대해 싸워 이긴 사람을 높은 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는 그 자리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최후는 골고다 산정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사탄 편인지 하나님 편인지는 골고다 산정에서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통일교인들이 믿고 있는 이념은 정말 멋지지요? 이건 뭐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불원간에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의 이념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이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 이념 앞에 움직임을 당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 이념 앞에 제물이 되겠습니까, 이 이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념이 종이 되느냐, 사람이 종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때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념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념 앞에 명령을 해야 됩니다. 이념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것은 뚝 잘라내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세상에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법으로는 돌로 때려 죽일 수밖에 없는 사람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장에 죽어야 되고 벌 받아야 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최고의 이념 앞에 지배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 최고의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이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결정권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모두 이념의 종이 되어서 서로 싸우고 있는 판국인데 이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은 어디서 결정되는가? 세계적인 골고다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인 골고다에서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느냐, 못 얻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는 가정적인 골고다, 민족적인 골고다, 국가적인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 예수가 영육을 중심삼고 왔다가 영적 승리의 기반만을 닦고 갔던 그 골고다가 있었지만 끝날에는 이것을 모두 합한 세계적인 최고의 골고다가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최고의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을 밟고 넘어가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골고다 산정을 밟고 넘어가는 사명을 진 사람들이 도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심정적인 종교관이 반드시 나와야 됩니다.

최고의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온 그 자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꼭대기를 바라보시고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 꼭대기를 향해 나오시기 때문에 그 꼭대기를 우리가 넘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은 후에 사탄을 세워 놓고 사탄으로부터 공인을 받아 승리의 패권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인이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느냐 말이예요.

이 마지막 고개를 넘는 데는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이냐? 그 고개를 넘으면서 당하는 고통보다도 하늘의 책임을 진 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내적인 싸움의 고통이 더 커야 합니다. 동기가 커야 결과도 크지요. 온 천지의 사명을 내가 홀로 책임졌으니 이것을 어떻게든 죽기 전에 감당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나가야 합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몇천만 번 맹세를 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눈물 흘리고 뒤넘이치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 내적인 고통이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에서 당하는 고통보다 커야만 큰 역사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이면 열 다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12-204
인간의 필연적인 노정
최후의 십자가의 고비, 세계적인 십자가를 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가 천지의 원한의 골고다입니다. 이 천지의 원한의 골고다를 넘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인간은 못 넘었고 하나님 홀로 내적 심정의 고통을 당하시며 이 세계적 골고다를 향하여 나오셨습니다.

`이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인간은 어디 있느냐’ 하시며 나오신 하나님은 6천년 동안 피어린 고통에 사무치셨습니다.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내적 사무침이 있으면 천하의 어떠한 원수가 나타나도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천주적인 감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하나님은 이 세계적인 골고다도 무난히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 앞에 세계적인 골고다에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 가지고 천주적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아 내적인 사명을 책임진 그날부터 역사적인 고통과 시대적인 고통을 책임지고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갈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골고다는 내적인 고통이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에서 당하신 시련보다 몇백 배 크다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생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런 환난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인생! 그것은 타락한 인간으로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러한 우주적인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불리움받은 아들딸의 입장에 서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혼자 이런 우주적인 책임을 지고 가야 할 나’라고 하며 나가야 되겠습니다. 한 많은 과거를 거치고 한 많은 생활노정을 거쳐서 한 많은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을 일시에 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10년을 싸워도 후퇴하지 않겠다, 일생을 바쳐야 한 발자국을 전진할 수 있다고 해도 후퇴라는 명사를 남기지 않겠다, 정상에 오르겠다, 정상에 올라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후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생명을 바쳐야 할 환난이 있더라도 그 시련을 통하여 승리의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억천만 사탄도 점령할 수 없는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은 자만이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오늘날 도인들이 찾아 나가는 기준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의 사명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뭐 하시는 분이냐 하면 바로 이러한 사명을 하시는 분입니다. 재림주님이 바로 그런 사명을 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알겠어요?

재림주님은 어떤 분이냐? 바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인류의 조상입니다. 세계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역사는 바로 자식의 역사입니다. 한 집안의 법도는 그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 나아가야 할 법도입니다.

12-206
통일교회가 넘어야 할 골고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시는가? 이 피조세계의 종으로 만드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천주를 손에 쥐고 만물 세계 앞에 호령하고 그들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골고다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꾸며 나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골고다는 아브라함이 책임졌고, 가정적인 골고다는 야곱이 책임졌습니다. 민족적인 골고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져야 했습니다. 세계적인 골고다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책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천주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하는데, 이것을 기독교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 우리 통일교회가 넘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은 늘 생각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의 입장에 서 있는데, 나는 선생의 입장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의 입장에 있으니 모든 것에 다 신경을 써야 됩니다. 한시라도 신경을 안 쓰면 안 됩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 벌어질 싸움에도 원래는 우리 통일교인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나는 그 작전에 통일교인들을 앞장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영계를 대신하여 움직이는 사람들을 앞장세울 것입니다. 지금 까지는 여러분을 앞장세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요. 그러나 몇백 명 희생되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래도 모든 사람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 통일교회를 증거하러 온 사람들이 전부 통일교회를 증거하고는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열 가운데 아홉은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그들은 선두에 서서 영계를 척하는 사명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제물이 된 것이지요. 보십시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했지만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럴 적마다 선생님은 참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의 보따리를 전부 다 빼앗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수고한 공적 이상의 기준으로 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다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책임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책임을 못 하면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은혜받은 사람들을 많이 심판했습니다. 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종들이 자녀를 이용해 먹었으니 이제는 자녀들이 종을 이용해 먹어야지요. 이것이 탕감복귀노정입니다. 그런 이치가 통하기 때문에 이용해야 하는데 그들이 책임 못하면 잘려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증거를 하면 다 잘 상대해 줍니다. 그랬는데도 책임을 못하여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가 쌓아 놓은 공적이 우리 것이 되지요. 이러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길을 닦아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가까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강한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대개 흐름을 알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거예요?

여러분에게 이러한 것을 인식시켜 놓고 오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니 잘 들으십시오. 알겠어요?

이제 여러분들 각자가 온 천지 앞에서 홀로 아버지의 불리움을 받아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라는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수습하여 가지고 승리의 기반을 세워 놓고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에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 후에 천주적인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하러 오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님의 자녀가 되려면 그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길로 내몰았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고통의 길에는 가정적인 골고다가 있고, 종족적인 골고다가 있고, 민족적인 골고다가 있습니다. 3년간에 걸쳐서 이 노정을 걸어나가고 있는데 맨 처음에는 개인적인 핍박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가정적인 핍박, 종족적인 핍박, 민족적인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핍박시대가 와서 한꺼번에 들이칠 것입니다. 금년이 한꺼번에 들이치는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가는 해입니다. 알겠어요?

12-208
우리가 세워야 할 믿음의 기준
그럼 지금부터 다시 한번 죽 이야기해 봅시다. 여러분! 인간은 타락했지요?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지요? 타락이 뭐예요? 타락은 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천사장은 종이지요? 대답을 하라구요? 왜 이렇게 물어보느냐 하면 여러분이 졸기 때문입니다. 졸면 안됩니다. 졸면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없잖아요.

타락은 뭐라고 했지요? 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종중의 종, 충복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 중에서도 제일 효자 효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만물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이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은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부모를 잃어버렸고, 만물까지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복귀하려면 이것을 모두 복귀해야 합니다.

요즘 신앙자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가자고 합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나도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 안 합니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 하나님 믿습니다. 주님도 믿습니다’ 하는 믿음만 가지고 구원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입니다.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믿음의 내용은 피조세계를 찾기 위한 것이요, 천주를 찾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또 참다운 사람을 찾기 위한 믿음이요, 참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믿음이요, 참다운 국가를 세우기 위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다운 천국을 찾기 위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내용이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뭐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구요? 예수를 믿는다 할 때 그 믿음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믿음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천지는 내 것이다. 온 세계 인류는 내 것이다. 영계에 있는 천사들도 내 것이고,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도 내 것이고, 예수도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한 기준을 갖고 믿어야 합니다. 그저 믿고 천당 간다구요? 가 보라구요. 갈 수 있나. 그렇게 믿어 가지고 천당 가겠어요?

믿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욕심을 내서 믿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더 크게 믿어야 되느냐. 사탄보다도 강한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밤에라도 데려다 쓰고 싶으면 쓰고, 잡아다가 때려 주고 싶으면 잡아다 때려 줄 수 있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려면 이만한 배포를 갖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알겠어요? 저기 할아버지는 왜 웃으시나요? 믿음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은 그러한 내용을 표방해서 하는 말입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고생 안합니다. 내가 못나서 지금 이 일을 하는 줄 알아요?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제 믿음의 내용을 알았지요? 믿음의 표준이란 아까 선생님이 말한 그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만물과 천하를 잃어버렸고, 영계도 육계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아들딸, 또 하나님이 세우신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탄까지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 하나님까지도 내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전부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내 것, 하나님의 사랑도 물론 내 것이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천하의 대왕자로 만들기 위해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신앙이라는 명사는 얼마나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까? 죄를 짓고도 `믿으라고 하여 믿으니 내 죄를 용서해 주고 천당 보내 주소서’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천당 보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 신앙의 표준은 엄청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거 알아야 되겠습니다.

12-210
바른 신앙관을 가져야 할 때
예수가 주장한 믿음관에는 천하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신앙 가운데서만이 성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들어가야 한다고 한 예수의 신앙이념이 완결되어야 예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예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니 결국 하나님이 예수의 몸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으니 이 성전의 뜻이 완성되는 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이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에 설 때 성전의 뜻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그러한 견지에서 신앙관을 펼쳐 왔습니다. 본래 출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신앙관을 가지고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껄렁껄렁 믿어 가지고는 안 돼요.

그렇게 쉽사리 믿고 천당 갈 수 있다면 어찌하여 세상이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천당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앙권내에서 신앙의 승리자라면 그는 우주사적이고 천주사적인 존재입니다.

메시아 예수도 그러한 신앙관을 기반으로 하여 승리적인 개체가 못되었기 때문에 저나라(영계)에 가서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무엇 때문에 기도하겠습니까? 소원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했으면 왜 기도를 하겠습니까? 성신이 지금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잃어버렸고 우리의 심부름꾼으로 부려야 할 천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게 누구의 잘못입니까? 다 인간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모두 다시 찾아야 합니다. 천하를 찾아야 하겠고 천사, 즉 종을 찾아야 되겠고 자녀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참부모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꿀잡이로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오늘날 신앙의 길입니다.

아까 선생님이 말한 것도 이런 우주적인 사명을 말한 것입니다. 이 흑암세계를 홀로 책임지겠다 하는 신앙관과, 이 사탄세계, 이 흑암세계 가운데서도 내 신앙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하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방망이가 되어야 합니다. 방망이가 되어서 세계를 때리면 세계가 깨질지언정 나는 안 깨진다 하는 기준이 있어야 그 싸움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은 싸움의 노정입니다. 싸움으로 모든 것을 해결지어 나가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적 종말시대에도 반드시 싸움이 벌어질 것인데 그 싸움은 신앙적인 싸움입니다.

우주사적이고 천주사적인 신앙을 가지고 부딪치면 세계는 다 깨어져 넘어질 것입니다. 그런 신앙 이념을 가진 사람을 중심할 때 이 세계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고 이 세상은 새로운 천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 왔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이 몇천만 원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해도 그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거 찾는 것이 문제가 되겠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인데 거기에 내 생명 하나가 문제가 되겠느냐?’ 예수님도 그러한 심정권내에서 살다 갔습니다. 세상에는 시시한 녀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책임 못 하면 그들이 망하지 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2-211
메시아가 와서 해야 할 일
과거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쩌고 저쩌고….’ 참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는 망하더라도, 축복받은 교인 몇 명은 망하더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뜻만은 망할 수 없다’ 하는 기준에서 싸워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지 못한 선조들은 다 망해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는 무슨 사장인데, 나는 무슨 대학을 나왔는데, 뭐 나는 어떻고 어떤데….’하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모릅니다. 그런 패들은 깨깨 망해야 합니다. 망하나 안 망하나 두고 봅시다. 그들이 안 망한다면 내가 망하게 할 겁니다.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후손이지요? 타락한 후손이예요, 아니예요? 타락한 후손이지요?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타락한 후손입니다. 타락은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라고요? 천지를 잃어버리고, 종들을 잃어버리고, 참다운 아들딸들을 잃어버리고, 참다운 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타락이란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잃어버렸나요?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만일 그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자기 자식보다 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거기에 자식도 희생시켜야지요. 자기의 몸뚱이도 그것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한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신앙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역사가 복귀역사요, 구원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서 잃어버리기 전의 모양으로 세워 나오는 노정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땅의 역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복귀역사입니다. 타락한 이 땅을 복귀하기 위한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이 땅에 올 때 어떠한 사명을 짊어지고 와야 하느냐? 이건 말하지 않아도 명백합니다. 무슨 사명을 해야 하느냐? 잃어버린 하늘과 땅을 찾고 잃어버린 만물을 찾고, 잃어버린 종을 찾고,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찾아 가지고 그것을 인간의 조상으로서 후손들에게 그대로 상속해 주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가 쫓기는 메시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부모로 와서 부모로서의 사명을 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사명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했느냐? 복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복귀노정을 나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재창조의 역사를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천사를 먼저 짓고 만물을 짓고 그 다음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복귀역사는 이 노정을 되풀이해 나가야 합니다. 역(逆)으로 되풀이해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에서 역사의 전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기한 개체가 역사적인 실체, 천주사적인 복귀의 실체이니만큼 그 자신의 실체를 중심삼고 역사적인 인연과 내용들을 전부다 완결시켜야 했습니다. 과거의 인연을 거쳐야 했으며 현실적인 인연을 거쳐야 했고 미래적인 인연까지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 사명이 있었던 연고로,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생애를 걸어 놓고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종의 입장에서부터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을 찾아야 했었고, 만물을 찾아야 했었고, 동시에 세계를 찾아야 했었고, 동시에 자녀를 찾아야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참부모의 자리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인 창조목적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참부모의 삼위적인 기반 위에서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지 못한 것은 옛날에 아담 해와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억천만 년이 지나도 처치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가 이러한 사랑으로 한 번 맺어졌다 하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타락한 세상에서도 자기 자식이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그 관계를 부모가 아무리 뗄려고 해도 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12-213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다니…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이 본연의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의 기반을 완결지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전부 깨져 버렸으니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거꾸로 올라가는 데는 편안한 자리에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고 귀한 자리에서 흙덩이로 떨어져야 합니다. 맨 처음에 하나님이 지으시던 흙덩이로 다시 떨어져야 합니다. 또 종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메시아가 와도 그런 위치로 오는 것입니다. 높은데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적인 인연을 거쳐서 낮은 땅에 올 때는 높은 자리로 오면 낮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낮은 자리로 오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났지요? 그렇지요? 내가 요전에 기차로 어디를 가는데 기찻간에서 어느 여인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기금을 모아서 주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예수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난 그렇게 알고 있어요. 버스에서나 길에서나 아기를 낳으면 전부 다 동정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런 풍속이 왜 생겼을까요? 예수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 가다가 만약 아기를 낳는 아주머니가 있으면 양복이라도 벗어 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기를 보듬어 주고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선생님이 통과할 때 그 시간에 딱 맞추어서 길거리에서 아기 한번 낳아 보십시오. (모두 웃음)

예수는 어떠한 분이냐 하면 하나님의 황태자입니다. 멋진 말이지요. 예수는 어떠한 분이라구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황태자란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천지 모든 만물의 대주재, 곧 주인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이요, 영원무궁토록 왕 중의 왕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이 형용을 하지 못할 정도로 높고 크십니다. 예수는 그렇게 크신 분의 아들로 태어난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 실감이 나지요? 메시아, 구주하면 실감이 잘 안 나지만 하나님의 황태자라 하면 실감이 날 거예요.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로 태어난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를 인간들이 잡아 죽였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하나님의 황태자,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가 하늘 보좌를 두고 땅 위에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났는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마굿간의 말구유가 메시아나 누울 자리입니까? 여러분이 태어날 때는 그래도 기저귀니 미역이니 하는 것을 준비하느라 야단법석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보다 훨씬 비참하게 태어났습니다. 방이 뭡니까? 말구유에 눕혀졌는데요. 그렇잖아요?

우리 통일교회 축복가정들, 내가 말은 안 하겠지만 우리 축복가정 중에 이런 가정이 하나는 나와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저 산꼭대기에 아기를 낳아 놓고 내려와 보십시오. 독수리가 그 주위를 빙빙 돈다고 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멋진 일이지요.

말구유 속의 아기 예수를 누가 지켜 주었습니까? 누가 지켜 주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이 지켜 주셨고 천사가 지켜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목자들이 그 자리를 지켜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태어나기는 그렇게 태어났지만 갖춘 바의 내용은 모두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12-215
영계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의 딱한 사정
그러면 예수는 왜 그렇게 태어났는가? 맨 밑바닥으로 떨어진 세계를 구하려니 맨 끝에서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맨 꼭대기라면 예수님은 맨 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 즉 이념세계란 둥근 세계입니다. 원의 세계예요. 그러니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야 영원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돌아가는 세계를 만들자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워 역사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돌지 않는 세계, 망해버린 세계, 타락한 이 세계를 돌게 하려니 하나님은 맨 꼭대기에서 예수님은 맨 밑창에서 역사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돌고 돌아서 하나님이 땅에 내려오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자리에 못 올라가고 낙원에 딱 걸려 있습니다. 낙원에서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 이 천지에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시옵소서’ 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 뭐 했나?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죠? 망신 잘 주고 일으켜 세워서 뺨도 갈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들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언제나 이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말씀 들으면 대개 신앙노정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거 그만 둘까요? 그만둬요? 「아뇨」 여러분에게도 연대적인 책임이 있어요. 자려면 집에 가서 자야지요. 그렇게 자고 싶어요? 자요. 자! 앞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역사에 남을 겁니다. 통일교회의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는 거예요.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른편으로 내려오고 예수는 왼편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노정은 전부다 역로(逆路)입니다. 정상적인 노정이 아니예요. 반대의 노정이예요, 세상과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면 예수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어디까지 갔느냐? 천국문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낙원에 떡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가 있다고 했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했다는 말이지요.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며 천당 가겠다고 하는 목사, 장로, 박사들, 두고 봅시다. 세상에서 신뢰받는 자들은 최후에 가서는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당코 뜻을 이루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반대하려면 해라. 몇 해나갈 것이냐?’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몸으로는 땅을 바라보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불쌍하신 예수님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길인데 예수님은, 영계에 가 계시는 예수님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몸으로는 땅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못 알아들을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을 설명하려면 며칠 동안 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이십니다. 이 땅의 가장 비참한 자리로 오셨지만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예수님의 본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남기고 가신 후 꿈으로만 바라보고 계십니다. 재림이라는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시며 신랑 신부의 이름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런 내용을 잘 알지요?

이렇게 불쌍하신 분을 신랑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패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입니다. 욕심들은 많아서 `좋은 것은 다 나 주시고 나쁜 것은 예수님이 맡아 주소서. 내 고통을 예수님이 전부 가져 가셔서 나를 편안히 해주소서’ 합니다. 기도를 해도 전부 복을 달라, 세계 제일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수고를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져 가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본래의 정상적인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 같습니까? 죄지은 후손들이 되어 가지고 책임은 못 해 놓고 복만 달라고요? 이런 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깨뜨려야 돼요. 근본적으로 깨뜨려서 산산조각을 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12-217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불쌍한 예수! 이렇게 불쌍한 예수를 어느 누가 진정 신랑으로 모시기를 원하는가? 이 땅 위에 와서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아가려 했던 예수의 소망을 붙들고 이 땅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신념을 갖지 않은 자는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남기신 십자가의 길이 아직도 남아 있고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을 무너뜨려 탄탄대로를 만들기 전에는 내가 그분을 만날 수 없다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예수와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복받자고요? 천만에요. 예수는 복 주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다가는 예수 믿고 세계적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은 인간 때문도 아니고 세계 때문도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흥하게 되면 흥하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을 해도 올바른 신앙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믿고 복받겠다는 사람은 전부 강도들입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다 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타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거늘, 종교의 중심의 도리를 세운 교회가 기독교라 할진대 기독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그저 복만 받겠다고요? 그런 자들은 이단입니다. 이단이 뭡니까? 그들이 이단이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 기성교회 목사들을 대해 `우리 선생님이 그러던데 당신들이 이단이다’ 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만 알고 있고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할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통일교회 선생님은 무엇하려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한이 엉켜 있으니 풀어야 합니다. 신랑이 오시는 길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것을 잘라 버려야 되겠고, 태산준령이 있으면 그것을 깎아 탄탄대로를 닦아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사도들이 신부인데, 신부 되겠다는 자들이 신랑의 살과 피를 뜯어 먹으려고만 하니 되겠습니까?

신랑은 신부 앞에 무엇이냐? 열남입니다. 열남! 세계적인 열남이예요. 열녀라는 말은 들었어도 열남이라는 말은 못 들었지요? 예수님은 신부된 만민에 대하여 열남이었습니다. 하늘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하고, 시대가 공인하고, 현재와 미래가 공인하는 남자 중의 남자였습니다. 그런 예수 앞에 신부 되겠다는 사람들이 열녀라는 명사도 못 세워 가지고 될 것같아요? 열녀도 못 되어 가지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강도식입니다. 거지들의 토굴에서 사는 여자가 세계적인 대통령을 자기 남편이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오! 케네디 대통령이 내 남편이다’ 한다면 다들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왕자에게 `오, 신랑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를 뒤집어 쓰고 예수님께 `여기 와서 나와 같이 삽시다’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많은 예수님은 아직까지 해원성사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해원을 못 했으니 예수를 보냈던 하나님의 한이 해원되었겠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해원 못하고 예수도 해원 못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천지만물도 해원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천지의 한을 해원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원해야 할 것인가? 이 타락의 한을 해원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해원을 하는 데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되고, 하나님의 참아들딸들이 못 된 인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성신이 이 땅에서 수고의 역사를 해 나오며 탄식하였으니 성신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됩니다. 그 다음엔 메시아 스스로의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그런 다음 비로소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메시아의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12-219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그러한 역사적인 한을 해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의 실체로 하나님의 대신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실 때 4천년 역사의 소망의 결실체로 보내셨으니, 예수님 한 분은 세계적인 복귀의 중심이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중심삼은 인류, 예수를 중심삼은 만물, 예수를 중심삼은 천사들, 예수를 중심삼은 영계, 즉 모든 것이 예수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날, 하나님은 비로소 인간과 함께 사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 하나를 붙들고 사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조본연의 세계 전체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승리적인 기반을 닦은 후 본연의 세계를 찾는 주체로 예수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땅에 온 예수는 만물의 한과 인류의 한과 역사적인 한, 시대적인 한, 미래적인 한까지 모두 해원하고 예수님 자신의 한까지 완전히 해원하여 세상을 수습한 다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최고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수습하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러니 원칙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예수는 이 땅에 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땅에 와서 세계를 수습했는가? 인류를 수습했는가? 못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주권자들을 수습했는가? 못했습니다. 수습하지 못한 채 심판이라는 명사를 남겨 놓고 갔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와서 모든 것을 수습하여 승리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역사적인 한을 청산짓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 `이 세계를 전부 아버지께 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는 때가 끝날입니다. 그러니 그 끝날에는 예수님도 부활해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0-23)”라고 성경에 나와 있지요?

예수님도 부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성경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맨 처음 익은 열매 되시는 예수님도 부활해야 한다는 거예요. 부활은 무슨 부활? 낙원에 있었던 한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를 통치하는 왕으로, 하나님 대신 천상 천하를 통치하는 왕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몸으로 땅을 내려다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으로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이러한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는 부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 곧 성도들이 부활해야 합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했지요? 그때가 끝날입니다. 사탄 세상의 모든 것을 멸할 때가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끝날이 어떤 때라구요? 여러분, 똑똑히 알란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사탄의 세계, 사탄의 나라를 멸망시켜 버리고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그 주관을 세워 가지고 아담의 후손들이 한 분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서 `하나님이시여, 받으시옵소서’ 하는 때가 끝날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는 물론 내적인 기준에서 만물을 대신할 수 있고, 만민을 대신할 수도 있었으며, 모든 아들딸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딸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느냐? 아닙니다. 지으신 피조 세계의 탄식을 해원해 주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만물을 탄식권내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만민을 탄식권내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하며, 천상천하 영계에 있는 탄식권까지 완전히 해방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 나라를 하나님 앞에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당신이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나라가 이 나라이오니 받으시어서 이 나라에 당신이 세우고 싶어하셨던 만왕의 왕을 주권자로 세우소서’ 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나라를 바치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대표적인 존재가 그 나라의 주권자로 세움을 받게 될 때에 천하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독교의 신앙관입니다.

12-221
기독교의 사명
그런데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와서 되겠습니까? 세상을 수습해야 하는데 구름 타고 와서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눈 뜨고 똑바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오늘날 신부된 우리들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 그러한 분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신부인 성도들의 책임인데 지금 성도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지금 요한 23세가 범세계적으로 기독교의 대화를 선언하고 있지요?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기독교를 합해 하나로 만들어 보겠다고 하지 않아요? 그런 내적 운동이 벌어지는 이때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종교인들은 단합하여 어떠한 민족이나 주권이 이겨낼 수 없는 세계적인 주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유엔을 정신차리게 해야 됩니다. 지금은 공산주의가 반대하면 유엔은 꼼짝 못하지요? 그러니 종교의 유엔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좌우편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신부된 우리들이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 기독교인들 뭐하고 있습니까? `오! 예수는 내 예수, 나에게 다 주소서’ 합니다. 이거 다 도적들입니다. 도적이 따로 있습니까?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하면 도적이지요.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도둑 아닙니까? 강도가 별건가요? 남의 사정 보지도 않고 훔쳐내는 사람이 강도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는 일을 사탄의 자식들이 하고 있으니 도적 아닙니까? 틀림없이 도적들입니다. 내가 한 가지 물어 볼테니까. 아니라는 사람 있으면 일어서 보십시오.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다 도둑들인 모양이지요? 그래. 생긴 것도 꼭 도적같이 생겼어. (모두 웃음)

12-222
끝날에 처한 성도는 신부의 내용을 갖추어야
여러분! 사실 선생님은 지금 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나깨나 이런 생각만 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정상적인 신앙자의 자세라고 보고, 선생님 역시 그런 자세로 일관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신랑되신 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런 소망을 갖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부된 자들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 되어야해요.

세상에서도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은 여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자가 독살이 뻗치고, 혓바닥이 둘이 되어 가지고 나가서 나불거리게 되면 그 집 망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신부된 자들이 두 패로 갈라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를 보세요. 교단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갈라지면 갈라질수록 하나님은 떠나시는 것입니다. 장로교도 처음엔 두 파로 갈라지고 거기서 다시 한 파가 갈라졌지요? 세번만 갈라지면 하나님은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 가서 은혜 받겠다고요? 암만 은혜 받으려 해도 졸음만 올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신부 중의 신부를 세워서 이 세상을 맡기고자 하실텐데 그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교회에는 주님의 신부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의 교회에는 있습니까? 우리 함께 그런 신부를 찾습시다’ 하면서 목청을 높여 가지고 세계사적인 신부를 찾아 세워야 할 것이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신부 될 사람 찾을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이단이다, 사교다. 뿔난 교회다. 뭐다 하며 욕설만 하고들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쪘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나는 남들이 걸려 넘어지는 가시를 먹고도 살찔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짜 건강한 사람 아닙니까? 그렇지요? (모두 웃음) 여러분! 이런 것 생각해 보았습니까? 끝날이 가까와질수록 예수님은 어떻게 계실 것인가 하는것 말입니다. 입을 벌리고 웃을 것 같습니까? `아! 이제 끝날이 가까와지니 천하를 한꺼번에 호령하고 심판해서, 자를 것 있으면 쓱쓱 다 잘라 버리고 이거나 저거나 후다닥 해치워 버릴 수 있으니 기분 좋다’ 할 것 같습니까? 이런 것 생각해 봤어요? 예수님은 끝날이 되면 입이 귀밑까지 돌아갈 만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날뛰고만 있지요?

끝날이 되면 될수록 예수님은 최고의 십자가의 자리로 내려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신부가 당하여야 할 세계적 환란의 고개, 최고의 골고다의 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랑의 입장에서 신부들이 당해야 할 환난까지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들은 모르지만 그런 고개를 넘어야만 하기에 천국문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끝날을 준비하고 그 한 때에 승리한 신부를 맞기를 고대하면서 2천년 동안 고통을 당해 나오셨습니다. 끝날이 오면 올수록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걸 생각할 때에 형제끼리 서로 물어뜯고 칼을 들고 싸우는 현상을 바라보면 잠이 안 와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시기를 바란다면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그러하고 교회가 그러하고 나라가 그러하고 세계까지 그러하니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돼요. 끝날에는 나라와 나라가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끝날의 징조가 다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런 이념권내에 있으니 우리는 됐다고 태평하게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거늘, 우리도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생각하고, 심정적인 입장에서 만민을 대신하여 신랑의 심정에 도달할 수 있는 신부의 내용을 갖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끝날에 주님의 신부로서 하나님 앞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12-224
예수님께서 뜻을 펴시기 전에 하셨던 생활
다시 한번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두고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의 비참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온 예수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그에게는 만물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고, 만민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며, 종(천사)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며, 또한 자녀를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모 중에서도 세계적인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했고, 형제 가운데에서도 큰형의 마음, 형 중에서도 형의 마음을 가져야 했으며, 세계적인 효자의 마음을 가져야 했고, 세계적인 충신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제사장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하여 선의 실적을 쌓은 선조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충성스런 마음까지 가져야 했습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밥을 먹을 때도 `하나님이시여, 제가 밥을 먹사오니 아브라함의 제단에 올리어졌던 3제물로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식의 생활을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알아요? 성경을 볼 줄 알아요? 알고 보니 예수의 심정이 그랬었다는 것입니다. 왜? 세계적인 책임을 져야 할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탄식권내에 있는 만물과 인간의 모든 탄식의 조건을 내적으로 탕감해야 할 사명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모르는 가운데 그런 역사적인 생활의 기반을 닦아 나가야 했습니다. 그는 인간 세상에서 뜻을 펴기 전에 남모르는 가운데 내적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역사의 배후를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30년 동안 세상에서 웃고 아무렇게 생활한 것 같지만 그의 생활은 전부가 제사였습니다. 그가 보고 듣고 하는 전부가 아버지께서 받아 주실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우는 것은 아버지의 고통과 인연맺고자 함이요, 내가 움직이는 것은 이 땅, 이 악한 세상을 아버지의 것으로 드리기 위함이다’ 하는 기준에서 생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온 만물과 관계를 맺겠다는 것을 절대적인 목적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나깨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만민의 죄가 속죄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잠을 잘 때도 만민의 죄가 속죄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남모르는 고요한 밤에 깨어 일어나 잠자고 있는 만민을 대신하여 홀로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적 사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천주적인 한의 조건을 탕감하기 위한 하나의 실체로서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숨은 기도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종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만물을 잃어버렸고,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앞에 `만물 대신 선한 것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준비기간이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 봉사하는 기간이 있어야 했고, 아들로서 효도하는 기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효자라는 명사는 남겼으나 충신이라는 명사는 못 남겼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천사장 입장에 서서 세상을 수습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 땅 앞에 천사장의 입장에서 충성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효성을 해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단 하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단 하나의 충신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땅에 신부 되겠다는 무리들이 있다면 먼저 땅 위에 남아 있는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종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들의 사명을 한 예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보면 그는 만물의 가치를 무한에 두고 만물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힘썼습니다. 또 종의 입장에서 종 중의 종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사명을 가지고 아들 중의 아들의 사명을 했습니다. 이렇듯 30여 년이란 짧은 생애노정을 살다 갔지만 그는 그 생애 동안 복귀의 한 전체를 일신에 걸고 탕감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골고다 산정까지 감으로써 사탄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실체세계는 예수의 이념권내로 복귀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복귀의 이념만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재림이라는 명사를 남기고 간 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그 실체세계를 찾아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12-226
예수의 3년 공생애 기간
예수는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했느냐? 종의 입장에서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민족, 종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또 자녀의 입장에서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또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세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 생전 뭘 했느냐? 종의 몸을 쓰고 아들을 대신하여 부모를 찾아가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3년 공생애 노정, 3년 준비기간에는 종으로 뛰었습니다. 종으로서 사탄과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하늘의 법, 즉 천법을 어겼으니 천사를 굴복시켜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천사장이 종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으니 배반한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3년 공생애 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3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쳐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한 실체로 서 가지고 아들의 책임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승리한 천사장의 입장에서 하늘편 해와, 즉 신부를 세워 가지고 복귀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의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면, 딸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남자, 즉 아담격 신랑인 예수는 여자인 해와격 신부를 바라보며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대에 다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종적인 천사장의 사명을 3년 준비기간 동안에 완결짓고 자녀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했습니다. 자녀의 사명을 완결짓는 데는 형제와 인연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형제의 발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발판을 중심으로 부모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데는 신랑과 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신랑 신부는 타락하지 않은 인간 조상으로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참아버지 격이 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땅에서 인류의 참아버지로 서려면 참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을 완결지었으나 참어머니가 될 신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만 부모의 인연을 남기고 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는 신랑으로 하늘을 대신하고 성신은 신부로 땅을 대신하여 영적 부모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본래 부부란 실체를 쓰고 평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예수가 본래 이루어야 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고 신부 되신 성신은 땅에 내려와서 다시 영계와 육계를 하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인류는 영계와 육계권내에서 뒤넘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 인류는 이에 대한 동기도 모르고 목적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머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눈을 깜짝깜짝하며, 별의별 놀음을 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참부모의 뱃속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와 같은 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몰라요.

12-227
중생해야 할 인간
이제 앞으로 인류를 다시 낳아 줄 날이 올 것이어늘, 그때가 세계적인 끝날입니다. 해산과 동시에 아들딸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늘땅의 만물이 하나님권내에 들어와 있어야 됩니다.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참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외적인 천지가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반드시 하나님이 지배할 수 있는 외적인 세계를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하 세계의 모든 사조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세계, 천국 이념을 중심삼은 세계,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고 행복과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세계로 지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세계, 그 가운데에서도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많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지요? 그것은 아담 해와가 10대권에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제 참자녀를 해산하실 것인가? 어떠한 인간으로 해산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인간으로 해산할 것입니다. 과거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타락했지만, 오늘날 복귀의 역사를 거쳐 끝날 세계적인 아들딸을 해산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아들딸로 해산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아들딸이 태어나면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세계는 곧 그 아들딸의 세계로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아까 하나님의 사랑을 말했지만, 여러분은 지금 뱃속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젖을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얼굴을 못 보았으니 뱃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런 사정에 오늘 인간들은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생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영적인 구원섭리는 완결지었지만, 영적으로는 중생되어 영적인 젖은 먹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영육이 동시에 중생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오시는데, 그 주님은 참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실체를 쓴 인류의 아버지로 오시는 것이요, 실체를 쓴 신랑으로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실체를 쓴 인간 가운데에서 신부를 찾아 어머니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아야 할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를 잃어버렸기에 오늘날 인간들은 타락한 부모는 가졌지만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는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거쳐 가지고 실체를 쓰고 참부모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알겠어요? 역사적인 진리를 가지고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사명을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영적 구원의 기반을 닦으셨으니 그것을 기반으로, 영육 완전한 아들딸을 해산하지 못한 것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이 땅에 온 예수는 골고다 산정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러니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오시느냐? 골고다에서 출발하십니다. 수억만 인류가 반대하는 골고다를 넘어 죽음의 길로 가신 예수님은 부활의 성체(聖體)로 다시 오십니다. 죽음으로써 골고다를 넘어갔지만 영원히 승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활해서 다시 찾아오시지요? 골고다 산정을 넘어가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 가신 대로 오십니다. 십자가로 가셨으니 십자가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12-229
끝날에 통일교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
이와 같은 십자가를 지고 나선 단체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보다 더 큰 단체가 나올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어떤 단체든지 그러한 사명을 하고자 하는 단체는 반드시 배척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 길을 가는 데 집안 식구들이 반대하지요? 성경에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때려 죽이기 전에 가지 말라’고 반대하고 부모도 `가지 말라’ 형제도 `가지 말라’고 합니다. 전부가 반대합니다. 극심한 반대를 합니다. 칼로 찔러 죽인다고도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가 창에 찔려 돌아가셨으니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민족적인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까지 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길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만물 복귀, 종 복귀, 자녀 복귀, 부모 복귀를 위해 천주를 대표한 심정을 가지고 골고다를 넘어간 것같이 골고다를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품고 온 소망이 골고다에서 깨졌으니 골고다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의 소망이 깨져나갈 때 만물이 깨져 나가고, 가정이 깨져 나가고, 종족, 민족, 천주가 깨져 나갔습니다.

맞는 것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해요. 한꺼번에 국가적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골고다의 도상은 개인적인 골고다, 가정적인 골고다, 종족적인 골고다, 민족적인 골고다, 국가적인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까지 있습니다. 우선 종족적인 골고다의 기준까지라도 반드시 넘어가야 됩니다. 소생, 장성, 완성의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 이 골고다를 넘어가야 할 것이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담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것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하는 기간이 이 3년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이 골고다 산정에서 싸워 나가게 될 때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나 깨나 먹을 때나, 모든 전부를 그것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흘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때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서 이 잔을 피하게 하옵소서’ 하시며 눈물을 흘렸지요? 왜 그랬나요? 자신이 그런 길을 가게 되면 자기를 따르는 성도들도 모두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놓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시는 주님은 현실을 놓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현실을 놓고 뼈에 사무치게 기도한다는 거예요.

주님이 당하신 분함과 원통함을 당해 봐야 합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식들까지도 이런 고통과 원한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까지도 그런 고통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자기의 종족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느껴봐야 합니다. 민족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느껴 보게 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오시는 주님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해 보세요. 사실인가 아닌가.

그러면 누가 더 불쌍합니까?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염려해 눈물지으면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시는 주님을 현실에서 십자가 노정에서 고통당하고 신음하고 있는 자녀들을 놓고 `할 수만 있으면 이들에게서 십자가의 잔을 피하게 하시옵소서’라는 애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12-230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
자녀들이 책임 못 하면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괴로움과 고통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에게는 그런 입장에서 개인에서부터 민족, 국가,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십자가 노정, 가정적인 십자가 노정, 종족적인 십자가 노정, 국가적인 십자가 노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할 적마다 어떤 결심을 해야 하느냐? `나는 이렇게 싸워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종으로서 간 길도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아들로서 못다 가고 남기고 간 그 길도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풀지 못한 한을 저에게 와서 푸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 앞에 신부로서 해야 할 책임을 완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자기 개체만이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하나님까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갖고 나가는 자라야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3년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고생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나 고생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소망을 두고 기도하였지만 오늘 통일교인들은 현실을 두고서 기도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눈물 흘린 기준을 세우고 가정을 대표하여 생활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이니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 세계인의 죄를 속죄시켜 주는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가정적인 환난 기간에 동참하게 하고, 민족적인 환난 기간에 동참하게 하고, 세계적인 환난 기간에 동참하게 하여 고통당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통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져 나갑니다. 알겠어요? *